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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C에 알짜 취업정보가…/인터넷 구인사이트 안내

    인력은행이나 지방노동관서 등 취업알선기관을 찾아 정보를 얻으려면 여간 번거롭지 않다.몇시간을 기다린 끝에 상담이 이뤄지더라도 단 몇분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러나 취업알선 기관을 찾아가지 않더라도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채용정보’를 활용하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더구나 인터넷을 통해 채용광고를 내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어 인터넷의 효용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취업정보를 얻을 수 있는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한다. ▲www.sscp.co.kr=‘고급 경력인재 전문’을 기치로 내걸고 있으며 5대그룹 출신 경력자들만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회원제로 운영되며 등록비는 3만∼5만원. ▲www.whitejob.co.kr=화이트칼라 실직자들을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해 만든 사이트.단순근로직,일용직,아르바이트 등의 구인정보는 취급하지 않는다. ▲projob.synergy.co.kr=정보통신 업체 및 일반 기업의 전산직 관련 구인 정보만을 다루는 사이트.원하는 일자리가 나타나면 해당 기업 담당자와 직접 연결해 준다.재택근무 희망자를 위해 ‘프리랜스 그룹’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users.unitel.co.kr/~jccon=해외취업에 대한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취업대상국은 미국,캐나다,호주 등이며,직종은 전산직이다. ▲www.donghyun.co.kr/joframe.html=제약업계 경력자 및 약사를 위한 사이트.동네 약국,병원,제약업체 등의 구인 정보을 얻을 수 있다. 이밖에 취업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사이트. ▲노동부=www.molab.go.kr(4대 통신에 접속시 GO MOL) ▲리크루트=www.recruit.co.kr ▲신바람 일터정보=www.job.combase.co.kr ▲종합구인구직정보=www.job.co.kr ▲커리어 모자이크=www.careermosaic.co.kr ▲유니콥데이터서비스=www.unicoop.co.kr ▲취업뱅크=www.touch.co.kr ▲인턴=www.intern.co.kr ▲벼룩시장=www.cfm.co.kr ▲하이텔=www.hitel.co.kr/cy5.htm ▲인터넷 코리아=www.ink.co.kr ▲JOB BANK=www.jobbank.co.kr ▲드림서치=www.DreamSearchKorea.com ▲did헤드헌터=www.freelancer.net ▲사이버채용박람회=www.unicoop.co.kr
  • 생존 위안부 기록 첫 발견/方善柱 교수 美 기록보관소서

    ◎45년 5월 마닐라 ‘빌리비드 감옥’서 작성/얼굴·직업 등 기재… “진상규명 귀중한 자료” 자매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실을 입증하는 미군 포로수용소의 기록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한국정신대연구소는 21일 44년 4월 필리핀 마닐라로 끌려가 7∼8개월동안 위안부생활을 한 뒤 미군 포로수용소로 넘겨진 金영숙(가명·작고)·성숙(72·가명·경기도 거주) 자매에 대해 수용소가 작성한 개인 신상기록카드 2부를 공개했다. 작성 일시와 장소가 45년 5월21일 마닐라의 ‘빌리비드 감옥’으로 명기된 이들의 신상기록카드는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가 미국 국가기록보존소에서 찾아냈다. 16절지 크기의 카드에는 이들 자매의 앞 얼굴과 옆 얼굴 사진이 부착돼 있으며,이름난에는 언니와 동생이 각각 창씨 개명한 이름인 ‘Sonoda Kindan’(소노다 긴단),‘Sonoda Soran’(소노다 소란)으로 적혀 있다.직업란에는 각각 ‘Entertainer’(접대부 의미인 듯),‘Housekeeper’ 등으로 기재돼 있고 주소는 똑같이 ‘군위군…,Korea’ 등으로,나이는 각각 28,19세로 기록돼 있다. 한국정신대연구소 관계자는 “위안부 생존자 기록이 처음으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위안부문제 진상규명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열사 열전:3/崔鍾吉 서울 법대 교수(정직한 역사 되찾기)

    ◎“유신 사죄” 외친 참지식인/법학자답게 ‘정의의 저울’로 독재에 항거/반공주의자… 간첩혐의 조사받다 의문사 崔鍾吉은 서울대 법대 교수였다.그는 70년대초 유신독재를 공공연하게 비판했다.그러던 어느날 그의 비판의 소리가 사라졌다.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 의문 속에 죽었기 때문이었다.공작정치를 자행하던 중앙정보부는 그를 간첩이라고 발표했다.독재권력에 의해 그는 간첩으로 왜곡됐다.그러나 죽은 사람은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유럽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수사중이었던 중앙정보부는 73년 10월25일 “구속수사를 받던 崔鍾吉 교수가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崔교수가 사망한지 6일 뒤의 발표였다. 그러나 당시 유가족은 물론 崔교수를 아는 사람중 중앙정보부 발표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대부분 고문으로 죽자 자살로 위장했을 것이라고 믿었다.가족들은 검시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장례마저도 소리없이 비밀리에 치러야 했다.그의 죽음은 張俊河 선생의 죽음과 더불어 유신시대 최대 의문사 사건이다.그의 의문사는 독재권력의 인권유린과 민주화 탄압 및 공작정치의 실상을 증언하고 있다. 사건 1년여 뒤인 74년 12월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崔교수가 전기고문 도중 조작 실수로 심장파열을 일으켜 사망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그러한 의혹은 당시 모 신문사 기자가 취재도중 입수해 사제단에 알려온 정보를 바탕으로 제기됐다”고 사건 당시 정보부 직원이었던 P씨가 전한다.P씨는 사제단에 있던 한 신부의 고등학교 1년 선배다.그는 “앞서 열린 1주기 추도식때도 崔교수 죽음의 의혹이 제기됐었으며 몇개 신문의 초판에 실렸던 관련 기사가 밤사이 누락됐었다”고 전했다. 사제단은 88년 10월6일 서울지검 김두희 검사장 앞으로 崔교수 사인 진상규명을 위한 고발장을 제출했다.사제단은 “崔교수 사인을 은폐하는 과정에서 간첩 누명이 씌워졌다”고 주장하고 당시 사건 관련자로 이후락 정보부장 등 22명을 고발했다.崔교수 죽음의 의혹이 사건발생 15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민의 관심사로 등장했다.고발은 사건 당시 정보부 감찰실 직원으로 있던 崔교수 동생 종선씨(미국 거주)가 비밀리에 작성했던 수기가 바탕이 됐다.그는 사건 후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친구가 있던 세브란스 정신병동에 약 1주일간 입원하며 수기를 썼다. 그러나 수사는 겉돌았고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일인 10월18일 “崔교수가 타살됐다는 증거도,자살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간첩 혐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족들과 사제단의 자료,88년 검찰 발표 등을 종합하면 당시 정보부 발표는 의혹 투성이다.먼저 정보부는 “崔교수는 퀼른대학 유학중 중학동창생인 이재원·노봉유(미체포)에게 포섭돼 평양에 가서 간첩교육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라고 발표했다.그러나 유족들은 “주범이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섭된 사람이 어떻게 확인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사고이후 시체를 현장에 두지 않고 급히 국립수사연구소로 옮긴 점,가족이나 변호인·의사의 검시 참여를 불허한 점,한장 뿐인 사체사진이 투신 자살(뒷머리가 깨지고,양쪽 손발이 부러졌다는 정보부 발표)을 전혀 입증하지 못한 점 등도 정보부의 발표를 믿을 수 없게 했다.떨어진 지점이라는 곳도 종선씨가 그날 새벽 몰래 가본 결과 핏자국이나 이를 씻어낸 흔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崔교수가 뛰어내렸다는 화장실 구조도 투신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지적됐다.162㎝의 작고 뚱뚱한 그가 수사관들을 6m 거리에 둔 채 잠긴 창문을 열고 150㎝ 높이의 창문턱을 잡고 올라 투신한다는 것은 시간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이것은 정보부 감찰실에 근무하면서 건물구조를 잘 아는 동생 종선씨가 제기하는 최대 의혹이다. 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10년전에 지났다.그러나 진상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정부나 국회의 적극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국민들은 당시 관련자들이 참회의 ‘양심선언’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다.종선씨는 수기에서 “그들도 언젠가 증언대에 서면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착한 형제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진실규명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다. ◎외아들 光濬씨/“역사의 진실에 공소시효는 없다” 崔鍾吉 교수의 외아들인 光濬씨(34·부산대 법대 조교수)는 최근 독일에 다녀왔다.학술회의 때문에 갔지만 그의 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부친 행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그러나 이번에도 새로운 것은 얻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부친 모교인 퀼른대 출신인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 죽음의 내막을 알게 됐고,그 이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억울한 사정을 알게 되면서 답답함만 더해 갔습니다. 자상한 아버지가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왜 간첩누명까지 써야 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독일 유학시절 부친의 은사였던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 등 아버지가 만났던 교수 동료들을 만나 부친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보려 했다. 그는 아버지가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시절 만났던 코헨,박스터,라이샤워 교수들에게도 전화나 편지로 도움을 청했다.“그들은 한결같이 부친의 결백을 믿었으며 억울한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고 光濬씨는전한다.특히 세계적인 민법학자 케겔 교수는 75년 독일 슈피겔지에서 崔교수 관련 기사를 읽고 당시 법무장관에게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光濬씨의 어린시절은 아픈 기억으로 가득하다.“1주기 추도식 때였어요.당시 명동성당에서 갖기로 했는데 정보부에서 막아 어머님이 저와 동생을 끌고 감시의 눈을 피해 사람이 많은 시장거리 등을 몇차례씩 통과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때문에 여러번 이사를 해야 했다. 학교를 옮겨 조금만 있다보면 자신을 보는 친구나 선생님들의 눈치가 이상하게 느껴지곤 했다고.그는 결국 고등학교만 마치고 유학길을 택해야 했다. 사건 이후 미망인 백경자씨(62·의사)는 “오로지 남편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고 했다.그녀는 당시 열살,여덟살이던 光濬·希晶 남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이사다니기를 반복해야 했고 ‘자랑스런 아버지’였다는 점을 심어주어야 했다.덕분에 光濬씨는 아버지 뒤를 이어 민법학자가 됐다.希晶씨(32)는 성신여대를 나와 출가해 미국에 살고 있다. ◎왜? 촉망받던 그가 죽음을 당했나/권력핵심부 거침없는 비판/독재정권의 ‘눈엣 가시’ 崔鍾吉 교수는 촉망받던 젊은 학자이자 의식있는 지식인이었다.그는 모교인 독일 퀼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남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그러나 “모국에서 배움의 의지에 불타는 법대생들 앞에 서는 것이 내 소망이요 소명”이라고 뿌리치며 귀국했다고 가족과 당시 동료교수들은 전한다. 하버드 대학의 코헨,라이샤워,박스터 교수 등은 崔교수에 대해 ‘그는 애국자였으며,위대한 학자요,우리들의 친구”였다고 말했다고 한다.코헨 교수는 후일 미국의 한 신문에 ‘우울한 한국(Gloomy Korea)’이란 기고를 통해 崔교수 죽음을 애도하고 한국 공작정치를 비판했다고 아들 광준씨가 전한다. 간첩혐의에 대해서 가족들은 “본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칠 것”이라고 했다.아들 光焌씨는 “아버님은 학도병 출신입니다.학도병시절 한국전쟁 전선에 투입되기 전 일본에서 몇개월간 훈련을 받았는데 그때 한국말을 쓰며접근하는 사람을 매우 조심했다고 당시 친구분들에게서 들었어요.공산주의자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때문이었다고 해요.아버님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崔교수를 비극의 죽음으로 몰고간 시대적 상황은 무엇일까.사건 2달여전인 73년 8월8일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 미수에 그치자 박정희 정권은 국내외적으로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아울러 조용하던 대학가에서 반 유신시위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서울법대에서도 연이어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교내에 진입해 시위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연행해 갔다.이에 대해 崔교수는 교수회의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을 구타하고 고문하는 무도한 행위에 대해 정의를 가르치는 스승으로서 모른 체하면 안된다”“서울대 총장은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와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정보부는 결국 수사중이던 간첩사건(崔교수 출두전 간첩사건은 거의 수사가 종결돼 있었다고 사제단은 판단)에 崔교수를 엮어 반유신투쟁의 불길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던 것 같다.동생 종선씨는 88년“공공연하게 정권을 비판하는 형님을 손보려고 했으나 뜻하지 않게 조사도중 사망하자 사인을 은폐하기 위해 어거지로 간첩혐의를 씌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崔鍾吉 열사 연보 ▲1931년 충남 공주에서 4남1녀중 차남으로 출생 ▲1950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51년 학도병 입대 통역병 근무 ▲1957년 서울 법대 대학원 졸업 ▲1962년 독일 퀼른대학 법학박사 ▲1964년 서울대 법대 전임강사 ▲1970년 2년간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수 ▲1972년 서울대 법대 교수 ▲1973년 11월16일 중앙정보부(남산)에 출두 ▲1973년 11월19일 새벽 1시30분 사망
  • 영문 뉴스레터 창간호 발간/통일부

    통일부는 30일 정부의 통일정책을 알리고 남북 현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문 뉴스레터 ‘Korean Unification Bulletin’ 창간호를 발간했다. 창간호에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설명,상호주의 및 정경분리 등 주요 정책 해설과 남북관계 일지 등이 실렸다.격월간으로 2,000부씩 발간되며 외국 정부와 언론사 등에 배포된다.
  • 金 대통령,외자유치 CF모델로/국가홍보물 일부 완성

    ◎여름밤 청사초롱 불밝히고 합창/만족할때까지 연습… 또 연습/10초짜리 촬영150분 걸려/“선거때 보다 더 힘들었다” “한국이 변하고 있습니다.오셔서 새로운 한국을 만나십시오(Korea is changing.Come and meet the new Korea)” 金大中 대통령이 6일 국가홍보 CF촬영을 마쳤다.노구를 이끌고 나라경제의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발벗고 나선 것이다.스스로도 “IMF만 아니면…”이라고 되뇌었을 정도로 금융·기업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근로자들의 파업 움직임으로 시간을 쪼개 쓰고있는 상황이다. 이날은 청와대 뒤뜰 녹지원에서 어린이,인기연예인들과 청사초롱을 들고 ‘세일즈’의 불을 밝혔다.탤런트 최진실·고소영·심은하,마라토너 황영조·이봉조,체육인 현정화·전병관,국악인 박동진,작가 조정래,인기가수 조용필·DJ DOC·HOT·SES,디자이너 앙드레 김,김덕수 사물놀이패,영화배우 안성기·강수연,의학박사 이시형,감독 임권택·강우석 등 사회 저명인사 120명과 홍보용 노래를 합창했다.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도 이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현장에서 모델로 동참했다. 노래 제목은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Korea)’.참석자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오 4시40분쯤 녹지원에 도착,11시까지 6시간동안 정성을 다했을 만큼 참석자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었다.金대통령조차 ‘휴식을 취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다들 쉬지않는데…”라며 거절했을 정도다.심지어 어린이들의 땀을 닦아주며 청사초롱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김대통령은 지난 3일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전문 모델 못지않은 열의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광고문안도 직접 고쳤다. 그러나 이미 한차례 촬영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날은 두 세차례 리허설을 거친뒤 곧 바로 최종 무대에 섰다. 지난 3일 김포공항 대한항공내 빌딩에 설치된 비행기 조종석 촬영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날처럼 광고문안도 직접 고치고,마음에 들때까지 연습을 거듭했다.스스로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재촬영을 요구하는 적극성을 보였다.영어문안 발음 연습도 수십 차례 거듭했다는 게 朴仙淑 청와대부대변인의 전언이다.그 때도 10초 짜리로 편집될 CF 촬영에 무려 2시간30여분이 소요됐다. 당초 ‘가장 신비롭고 편안한 여행이 되도록 제가 모시겠습니다’라는 한국어 광고 문안중 ‘모시겠습니다’를 ‘책임지겠습니다’로 고쳤다.金대통령은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장황한 느낌의 두가지 영문 문안도 짧게 줄였다.영국인의 자문도 참고했다.‘Welcome to the Land of Mystery(신비의 나라로 오시는 것을 환영합니다.)’와 ‘Welcome to the Land of Natural Wonder(경이로운 나라에 오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金대통령은 이날 촬영을 모두 마친뒤 “선거때 보다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번 김대통령의 CF촬영을 일본 등 외국에서는 부러운 시각으로 보고있다. 문화관광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일본 관료들과 지식인들은 ‘대통령의 광고에 나오는 한국의 변화가 놀랍다. 우리 수상도 그래야 되는데…’라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 경마 농림부 이관 불합리/宣相圭 체육진흥회 회장(발언대)

    말(馬)은 시대변화에 따라 역할과 기능이 다양하게 바뀌면서 인간의 삶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91년 이전에는 말을 단순한 가축으로 보아 농림부에서 관장해 왔으나 92년부터는 레저스포츠인 경마로서 주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고 체육부에서 관장해 왔다. 그런데 근래들어 마사회를 어느 행정부서에서 관장할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논리적 근거를 상실한 채 정치적인 목적과 단순한 경제이익을 내세워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쪽으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말이 옛날과 같이 밭을 갈고 화물을 운반하고 식용으로 이용된다면 당연히 농림부의 관장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그 주된 기능과 역할이 레저스포츠인 경마에 맞춰져 있다면 문화관광부에 속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논리적 근거를 요약한다면 첫째 현재 말은 기능상 경마가 목적이란 점,둘째 경마는 말이 사람과 조화를 이뤄 만들어 내는 스포츠의 한 분야라는 점,셋째 경마가 국민의 심신건강과 여가선용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넷째 마사회의 주된 설립 목적은 경마를 하는 것이라는 점 등이다.마사회의 명칭을 영문으로 ‘Korea Racing Association’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운영 측면에서도 농림부가 관장할 때는 총 2조5,566억원이던 매출액이 문화관광부 때는 총 10조7,040억원의 실적을 올려 4.2배의 신장을 보였다.축산기금 출연도 농림부 때 343억원에서 문화관광부가 관장한뒤 1,832억원을 지원해 5.3배나 증가했다.문화관광부에서 국민 여가선용으로 활용했을 때가 경제적 운용측면에서 더 효율적이었다. 마사회의 농림부 이관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마사회의 명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마사회라는 명칭은 일제시대부터 사용해온 것으로 글자 그대로 ‘말을 사육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이번 기회에 명칭을 목적에 맞게,예를 들어 ‘한국경마회’ 등으로 개칭하여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 朝鮮海 표기 ‘일본판 金正浩’展(특파원 수첩)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의 ‘에도 도쿄 박물관’에서는 요즘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전’이라는 흥미로운 지도 전람회가 열리고 있다. 이노는 19세기초 일본 전국을 실제로 답사해 가면서 전국 지도를 완성한 인물.그가 그린 지도는 깜짝 놀랄 만큼 정확해 100년 뒤에 사용해도 손색이 없었다고 한다.한국의 金正浩인 셈이다. 전람회에는 출품된 지도나 측량용 기구 등 눈길을 끄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한국 기자의 관심을 모은 것은 따로 있었다.이노의 스승인 다카하시요시토키(高橋至時)의 장남으로 역시 걸출한 지도 제작자였던 다카하시 가게야스(高橋景保)가 만든 두 장의 지도였다. 하나는 에도 도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정만국전도(新訂萬國全圖)라는 세계지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베 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라는 동아시아 지도.당시에는 모두 세계 최고의 지도로 평가 받았던 터다. 신정만국전도와 일본변계약도의 한반도와 일본 사이 부분을 들여다 보면 동해가 ‘조선해(朝鮮海)’로 적혀 있었다.한반도쪽에 가깝게 적혀 있는 ‘조선해’라는 세 글자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이 동해를 ‘한국의 바다’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95년 7월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에서 열렸던 미국 외교관 폴C 블룸 소장 고지도전에서도 동해가 한국해(Sea of Korea)로 표기된 지도가 다수 출품되었다. 동해라는 명칭이 갖는 일방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동해의 원적은 한국(조선)에 있음을 가게야스는 두 장의 지도로 보여주었다. 가게야스는 후일 독일에 지도를 유출시켰다는 죄로 처형되고 말았다.땅과바다를 정확하게 그리고,부르려 했던 그의 노력과 용기는 대동여지도를 그린 金正浩의 일화를 생각나게 했다.
  • 과거 청산과 미래 개척(대한민국 50년:21·끝)

    ◎이데올로기·개발독재 넘어 통일로/反民특위 “실종”… 건국 최초 과거청산 실패/‘제주 4·3’ ‘거창사건’ 아직도 어둠 속에/지역할거 정경유착 파당정치 악습 깨고 군사정권 시대 숱한 의문사도 밝혀내야 1948년 8월15일 신생정부 출범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약소국이었다.한반도 면적 22만1,487㎢ 가운데 3·8선 이남인 9만9,221㎢만 확보했고 인구도 2,002만명(48년 미군정청 추정치)에 불과했다.또 국민 가운데 80%가량이 농업 등 1차산업에 종사했고,그해 수출액이 2,230만달러에 그칠만큼 경제력도 볼품없었다. 정부수립 50돌을 눈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어떠한가.97년 말 현재 인구는 4,666만명,수출액은 1,361억6,430만달러,1인당 GNP는 9,511달러에 이른다. ○‘삶의 질’ 향상되지 않아 지난 50년동안 인구는 2.3배,수출규모는 6,106배로 급증했다.1인당 GNP는,가장 이른 통계치인 53년의 67달러에 비교해도 142배나 늘었다.가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양적 팽창이었다.그러면 이같은 성장이 우리 사회의 내적(內的) 발전이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그대로 동반한 것일까.여기서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각을 잠깐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펴낸 책자 ‘South Korea’(92년 간)는 한국의 기본사항을 소개한 데 이어 ‘재벌 중심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독재정권 시대에 고착된 퇴행적인 정치질서에,통제받는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덧붙였다.또 65만의 군대와 한해 100억달러(89년 기준)에 이르는 군사비도 주요항목으로 들었다.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한국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 의회도서관 책자의 표현이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우리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대한민국 성장의 뒤안길에는 필히 청산해야 할 역사적 잔재가 누적돼 있기 때문이다.이는 정치·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특정사건의 진상을 은폐·왜곡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의 청산대상은 분단체제에서 파생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악용과 개발독재 논리이다.해방이후 정치의 흐름을 살펴보자.3년동안의 극심한 좌우대립 끝에 남과 북에는 상호 배타적인 정부가 들어선다.2년이 채 못돼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져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진다.이후 한국에서는 李承晩 정부가 장기집권하고 그에 따른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4·19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곧바로 5·16쿠데타로 무너진다.朴正熙 정권은 개발논리를 앞세워 독재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른다.군사정권은 全斗煥­盧泰愚 시대까지 이어졌지만 80년의 5·18광주민중항쟁,87년의 6월항쟁 등 국민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93년에 문민정부가,그리고 50주년이 되는 올해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다. 대한민국 50년 정치사를 일별하면,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이에 맞서 민주사회를 추구한 국민의 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억압적 정권이 양손에 든 무기가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개발 논리였다. ○가치관 대혼란 초래 남북이 체제의 존립을 걸고 대립하는데다 6·25라는 비극을 겪은 마당에 반공이데올로기는 필연적인 역사의 부산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문제는 권력이 이를 정치적 대항세력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악용한 점에 있다. 멀게는 한국전쟁 전의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에서 가깝게는 지난 대선의 ‘吳益濟 월북 및 편지사건’‘흑금성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늘 ‘용공조작’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시도했고 대부분 목적을 달성했다. 朴正熙 정권이 들어서서는 경제성장을 내세운 개발독재 논리가 못잖게 위력을 발휘했다.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살려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추상적 가치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쉽게 먹혀들어갔다.시민의식이 어느정도 성숙하기 전까지 ‘중단없는 전진’과 ‘잘 살아 보세’는 국민적 합의처럼 보였다. 이같은 정치적 적폐(積弊)는 지금도 파당정치·지역할거주의·정경유착 등 여러 유형의 악습으로 고착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의식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전통을 잇는 문화와 사상은 ‘전근대적’이거나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외면받는 대신 출세지상주의·이기주의가 넘쳐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재벌의 소유 집중,극심한 빈부격차 등 경제 분야의 해묵은 과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정치사의 굴절이 가져온 또다른 폐해는 역사적 진실의 은폐·왜곡이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과거청산 실패’사례로는 48∼49년에 걸친 ‘반민특위 사건’이 꼽힌다.일제강점기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자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한 제헌국회는 곧이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 305명을 검거하지만 참다운 활동을 벌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만다.친일파에 권력기반을 둔 李承晩 행정부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는 길이 남게 마련인가.해방정국에서 수차례 벌어진 정치지도자 암살사건,6·25를 전후해 빚어진 ‘제주 4·3’이나 거창사건을 비롯한 양민학살,군사정권에서 발생한 민주인사·학생들의 숱한 의문사와 실종들이 아직껏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어둠에 묻혀 있다. 사건 발생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예컨대 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에서 일어난 국군의 양민학살 건이다.미국 국립공문서 보존관리청(NARA)에서 최근 발굴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나타난 실상은 이렇다. 육군 25연대 7중대 병력이 석달이라는 산간벽지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을 모은 다음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무차별 살해한다.보고서는 “(주민들이) 도발하지도 않았는데 카빈 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으로 공격해 성인 86명,학생 9명,어린이 3명이 숨졌다.또 집 27채 가운데 23채를 불태웠다”고 밝혔다.이 사건이 세상에는 빨치산의 만행으로 알려졌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민족의 성지’국립묘지에도 존재한다.문민정부 출범 초기인 93년 7월 국가보훈처가 金性洙·李甲成·尹致暎·李殷相·徐椿·李鍾郁·尹益善·全協 등 8명에 대한 친일행각을 조사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은 모두 독립유공자로서 각종 훈·포장을 받았고 사회의 지도층인사로 행세했다.이 조사 역시 결말없이 끝났고 뒤이은 문민정부의 ‘역사바로 세우기’도 정치적인 의도라는 오해만 샀을 뿐 결실을 맺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특별한 책무 한민족이 빛나는 21세기를 향해 전진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이뤄져야 한다.하나는 물론 통일이요,또 하나는 역사에 덕지덕지 낀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이다.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와 더불어 장기간에 해결해야 할 민족의 숙원이지만 잔재 청산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국민의 정부는 우리 현대사를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특별한 책무를 안고 있다.
  • 98 국제정보통신·이동통신전/23∼26일 KOEX 3층 대서양관

    ◎세계 최첨단 기기 한눈에/미국·일본 등 8개국 200여 업체 참가/데스크탑·셀룰러폰 등 최신기술 경연 ‘21세기의 총아’인 첨단 정보통신제품이 한자리에 모인다. 서울신문사와 한국종합전시장(KOEX),한국통신산업협회(TIAK),EJK 등이 공동 주최하는 ‘98 국제 정보통신 및 이동통신전’이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한국종합전시장 3층 대서양관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는 이 행사는 지난해의 경우 15개국에서 122개 업체가 참가했다.관람객만 16만여명에 달해 명실공히 국내 최대 최고의 정보통신전시회로 자리잡고 있다.‘EXPOCOMM/WIRELESS KOREA 98’로 명명된 이 전시회에는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핀란드 등 8개국에서 200여 업체가 300개 부스에서 자사의 최신 기술과 신제품을 뽐낸다. KOEX측은 지난해 못지않은 관람객이 몰려 1백억원 가량의 상담실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특히 신규 통신사업자의 등장과 원화상승 등에 따른 상대적인 가격하락으로 외국업체와 바이어의 발길이 잦아질 것으로예상된다. 전시회에서는 이동통신 부가장비와 계측기,부품 등 전문 제조업체와 일반소비자를 위한 단말기,액세서리 업체들의 부스가 눈길을 끌 것같다.이동통신 분야의 주요 전시품목은 셀룰러,무전기,주파수 공용통신(TRS),개인휴대통신(PCS) 등으로 초소형 초경량제품과 양방형 무선호출기 등 신제품이 많이 선보인다.개인정보서비스 분야는 랩탑,데스크탑,전자수첩,네트워ㅋ 주변기기 등이 주류다. 올해 참여업체는 삼성전자 SK텔레콤 LG정보통신 NK전자 텔슨전자 등 국내유수의 무선통신 사업자와 제조업체들.외국업체로는 모토로라,루슨트 테크놀러지,EJK,에릭슨,ETRI,마쓰시다 등 세계 통신시장을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참여해 행사를 빛내준다.그러나 IMF 여파로 현대전자 대우통신 퀄컴 등 단말기 제조업체와 기간통신 사업자는 불참했다. 이번 행사는 국내 정보통신업계의 기술수준을 점검하고 선진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행사기간에 맞춰 오는 25일부터 이틀간 KOEX 4층 회의실에서는 국내외 저명인사가 참석하는‘무선접속과 콜센터 솔루션’을 주제로 한 정보통신 세미나도 열린다. 문의처 서울신문사사업국 721­5481∼2,한국종합전시장 전시2과 551­1123∼5.
  • 對北韓정책 韓國 주도/韓·美 새 공조체제 모색

    ◎金 대통령 6월 訪美 ‘워싱턴 선언’ 천명 한미 양국은 한국에 50년만의 여야간 정권교체로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한국정부가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는 내용의 새로운 대북정책 공조 방안을 마련중이라고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26일 밝혔다. 양국이 마련중인 대북정책 공조의 방향은 ▲무력도발 불용,흡수통일 배제,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화해와 협력이라는 金대통령의 대북 3원칙을 빌 클린턴 정부가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이에따라 향후 한반도 정책은 한국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주도하고 미국은 보조적,지원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양국 공조방향은 또 ▲안보동맹 체제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지력을 계속 유지하며 ▲통일후 한반도에도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경수로 건설과 4자회담 등 기존의 남북한,미국간의 합의는 계속 준수하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 가능성에도 대비한 ‘북한관리’도 계속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양국은 이와함께 남북관계에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미국과 북한간의 접촉은 한국 정부가 양해한다는데도 의견을 모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은 다음달 1일 방한하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대북정책 공조 방안을 확정한다. 미국측은 특히 金대통령의 ‘흡수통일 배제’ 선언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올브라이트 장관의 방한도 한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대미 정책 담당자는 말했다. 양국은 오는 6월 金大中 대통령의 미국 방문중 클린턴 대통령과의 공동발표문이나 공동회견을 통해 새로운 대북정책 공조방안을 ‘워싱턴 선언’형식으로 대내외에 공식 천명할 예정이다.이에앞서 한미 양국의 전직 고위 외교당국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서울국제포럼과 미국외교협의회(CFR) 방한협의단은 양국 정부측과의 협의를 거쳐 한국이 한반도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보고서(Korea Project)를 채택,25일 양국 정부에 건의했다.
  • 對北 농업지원 체계적으로/金容相 연구위원(남풍북풍)

    대북(對北) 농업지원이 본격화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남북 당국자간 회담으론 3년9개월 만에 열린 베이징 차관급회담에선 비료를 지원키로 했고 남북한 첫 합영농장 조성을 추진해 온 두레마을영농조합을 통일부가 남북협력사업자로 승인해주었다.두레측은 선봉시내 두곳에 3백15만평 규모의 합영농장을 운영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영농기술지도를 해줄 예정이다. 또 지난 1월 북한에 다녀온 ‘옥수수박사’ 金順權 교수는 국제옥수수재단을 설립,북한에 심을 옥수수씨앗과 비료 살 돈을 모금하는 한편 수확량이 30∼50%나 많고 농약이 필요없는 환경친화적 신품종 ‘슈퍼 옥수수’개발에 나섰다.이 모두가 지금까지 ‘고기를 잡아다 준’식량지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낚싯대를 쥐어주고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농업지원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또 그렇게 하는 게 주는 쪽의 부담도 적고 받는 쪽에서도 더 낫다.옥수수 10만t을 사려면 1천7백만달러가 필요한데 그 돈으로 비료를 사주면 30만t 이상의 옥수수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 갖고는 경사도가 40도에 이르는 다락밭 조성 등으로 황폐해진 산과 높아진 강바닥,농업자재와 영농기술 부족 등 북한농업이 안고있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장 바람직한 것은 이미 정부 일각에서도 검토한 바 있는 한반도 농업개발단(KADO Korean­Penninsula Agricultural Developement Organization)같은 국제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일 게다. 단기적으론 좋은 씨앗과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을 보내주고 영농기술지도를 해주는 한편 중장기적으론 농촌연료대책사업 수해복구사업 사방사업 5대강종합개발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이다.물론 이 사업에는 20조원이 넘는 엄청난 자금이 소요된다.이때문에 미국 일본 중국과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컨소시엄에 선뜻 참여해줄지 알 수 없다. 또 우리 입장에서도 아무리 연차적으로 지출한다 해도 다른 때라면 모를까 IMF한파로 내 코가 석자라 그 많은 사업비를 조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그렇지만 지레 포기하기에는 북한의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이쯤에서 정부가 관련국들에게 KADO구성안을 내놓고 의사라도 타진해 보면 어떨까 싶다. 또한 KADO의 성사 여부와는 별도로 현재 정부와 민간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농업지원도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휴(遊休)중장비를 북한에 보내 수해복구 등에 투입토록 하는 것 등은 당장검토해 볼만한 것 중의 하나.아울러 효율적인 대북지원을 위해 유관 기관과 단체가 참여하는 ‘대북농업지원협의회’같은 기구를 구성,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과기원 “적당한 이름 없나요”

    ◎새학기 맞아 개명 논란 다시 수면위로/“KAIST↔KIST 혼동 많다” 변경 주장/지명도 감안 현재 이름 고수 의견도 “한국과학기술원(과기원·KAIST)의 특성을 잘 함축하는 새로운 이름 없나요” 국내 최고 이공계 대학교육기관중의 하나인 대덕연구단지내 한국과학기술원이 새학기를 맞아 또다시 개명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개명을 바라는 쪽은 과기원이란 이름이 일반 연구소 같은 어감을 풍기는데다 비슷한 이름의 연구기관과 혼동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KAIST(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란 영문이름에도 ‘원’을 뜻하는 ‘Institute’가 들어 있어 교육기관인 대학의 이미지를 살리는데 실패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게다가 학생들도 외부인에게 학교를 소개할 때 한국과학기술대학(KIT),과기대,한국과학기술원(KAIST),과기원의 명칭을 혼용하고 있다는 것. 특히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기연·KIST)과는 한글·영문 이름이 엇비슷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과학기술계 인사들까지 한국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KIST,과기원­과기연을 혼동하는 사례가 많다고 개명론자들은 설명했다. 따라서 이들은 학교이름에 과학대학교,과학기술대학 등의 ‘대학’을 넣고 이름도 더 짧게 줄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 최고의 공과대학인 MIT도 ‘대학’(University)이 아닌‘원’(Institute)을 쓰고 있다”며 “지금까지 KAIST로 얻은 지명도를 감안해 현재의 학교이름을 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양쪽의 주장이 이처럼 팽팽히 맞서자 학교측은 최근 대학로고 밑에 영어로 ‘대학’(University)을 삽입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과기원이라는 이름도 지키고 대학이라는 이지미도 살리자는 뜻에서였다.그러나 구성원간의 의견이 워낙 엇갈려 이 안이 공식 채택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다. 과기원 관계자는 “과기원이 과학기술발전에 이바지한 것 만큼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이나 개명시비가 감정적 논쟁으로 변해 연구활동에 지장을 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첫 한국어능력시험 711명 합격

    ◎올엔 중국·동남아·중남미로 대상국가 넓혀/외국인 국내유학·근로자 선발때 성적 활용 외국인을 대상으로 지난 해 10월 처음 실시한 한국어능력시험에서 711명이 합격했다. 교육부는 10일 국내를 비롯,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 16개 지역에서 치른 제1회 한국어능력시험에 외국인 2천274명이 응시,711명이 합격했다고 밝혔다. 한국어능력시험(Korean profiency Test·KPT)은 영어의 토플·토익,일본어 능력검정 등과 같이 한국어의 국제화와 외국인들의 한국어 구사능력 평가 표준화 등을 위한 것이다. 등급별 합격자는 고급 수준인 6·5급에 100명,중급인 4·3급에 217명,초급인 2·1급에 394명이다. 6·5급은 전문직 및 고등교육에,4·3급은 단순노무직에 종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2·1급은 도움을 받아 한국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실력이다. 국가별 합격자는 일본 372명,한국 183명,카자흐스탄 87명,우즈베키스탄 69명 순이다. 국가별 응시자는 일본이 1천353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 382명,우스베키스탄 296명,카자흐스탄 243명 등이다.대부분 응시자들은 대사관 직원과 주한 미군 및 가족,국내 외국인 근로자,국내 유학생,한국어 전공 대학생 등이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평가 결과는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선발,국내·외 한국기업의 외국인 근로자 선발 등에 활용할 계획”이라면서 “올해는 한국어의 수요가 많은 중국·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등으로 시험 대상국가를 넓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 반도체기술 빼내 해외 판매

    ◎대만회사서 로열티 받고 64MD 합작생산 추진/삼성·LG 전현직 연구원 등 16명 구속 【수원=김병철 기자】 삼성과 LG반도체 등 세계적 반도체회사의 첨단기술을 빼내 외국에 유출시키고 거액의 로열티를 챙긴 전자제품 제조업체 간부와전·현직 반도체연구원 등 16명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수원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곽무근)는 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주)KSTC(Korea Semiconductor Technology Company) 상무이사 김형익씨(39·서울 서초구 서초동)와 총무이사 김덕수씨(35·서울 양천구 신월동) 등 2명을 부정경쟁 방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첨단기술을 빼내 김씨 등에게 넘겨 준 오승철씨(34·수원시 팔달구 영통동)와 김태훈씨(33·서울 서초구 우면동) 등 삼성과 LG반도체의 전·현직 연구원 14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 등 KSTC 간부들은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오씨 등 삼성과 LG반도체의 전·현직 연구원들을 꾀어 첨단 반도체 기술을 빼낸 뒤 대만의 유명 반도체회사에 팔아 넘긴 혐의다.삼성의 오씨는 지난해 8월말 회사 사무실에서 64메가 디램의 전체 회로도를 빼내 KSTC측에 넘겨줬으며 LG의 김씨도 같은해 7월 64메가 디램의 회로도와 제조공정 등의 기밀서류를 직접 훔쳐 내오거나 팩스 등을 이용,유출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조사 결과 KSTC의 김씨 등은 대만의 유명 반도체회사와 64메가 디램 반도체를 합작 생산,30%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기술을 빼돌렸으며 오씨 등은 대만의 반도체회사에 선임연구원으로 파견돼 거액의 연봉을 받기로 계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삼성과 LG반도체 현직 연구원들도 산업스파이 행위에 깊숙히 관련돼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초대 대선과 첫 조각(대한민국 50년:5)

    ◎하지 사령관 서재필 대통령 꿈꿨다/암살 겁내 출마거부… 결국 국회 간선서 이승만 당선/초대총리 이윤영 제청,인준 부결 수모… 이범석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정치적 지도력과 개성에 관해서는 평판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대한민국을 세운 국부”“운산광산을 팔아먹은 매국노”“프린스톤 사람”(무초) “×자식”(하지)….남한에 진주한 미군 사령관 J.R.하지 중장은 애초부터 서재필을 귀국시켜 대통령에 입후보시키려 했다. 그것은 다분히 이승만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당시 하지의 개인고문으로 일하던 서재필은 이미 암에 걸려 있었다.그는 자신이 살해될 것이라는 피해의식 때문에 입후보를 거절,미국에 돌아간 직후 운명했다. 1948년 7월20일 제헌국회에서 간선으로 치러진 초대 대통령선거에는 결국 이승만과 김구,안재홍 등 3인이 나섰다.이미 예견된 대로 이승만은 196명의 재석의원 중 180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김구는 겨우 13표를 얻었다.그리고 안재홍은 2표,무효가 1표였는데 무효는 미국 국적의 서재필에 투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7월24일 중앙청서 취임식 압도적인 다수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7월24일 중앙청 광장에서 취임식을 가졌다.“죽었던 이 몸이 하나님의 은혜와 동포의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 이와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은 나로서는…” 그는 독립의 공을 연합군측에도,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한 해외독립운동파에도,국내의 항일투쟁 세력 어느 곳에도 돌리지 않았다.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다. 이승만은 취임후 곧바로 이화장에서 조각에 착수했다.‘조각의 산실’로 등장한 이화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73세의 이승만은 철저하게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만을 각료에 임명했다.그러나 그의 건국 내각은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출발부터 상처를 입었다.이승만은 북한의 조선민주당 위원장인 조만식의 후광을 내세워 부위원장인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제청했다.하지만 이윤영 총리안은 제헌국회에서 인준이 부결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면이 거의 없는 이윤영을 내세운 것 자체가 당시 정황으로 볼때 무리였다.한민당의 김성수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공론이었다.그러나 이승만은 자칫 한민당에 업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이를 애써 무시했다.국회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발판을 국회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초대내각은 결국 항일독립운동가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실마리를 풀었다.그리고 내무 윤치영,외무 장택상,국방 이범석,재무 김도연,법무 이인,문교 안호상,농림 조봉암,상공 임영신,사회 전진한,체신 윤석구,교통 민희식,법제처 유진오,공보처 김동성,무임소 이윤영 등으로 조각을 마무리했다.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인선은 국회에서 친일논쟁이 가열되면서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1948년 8월15일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은 출범했다.이와 함께 이날 상오 0시를 기해 미 군정은 폐지됐다. 이승만은 모든 관리들을 하향식으로 통제하려고 했다.이와 관련,미 중앙정보부(CIA)는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마치 ‘행정보좌관’처럼 부리고 있다”고 혹평했다.또한 미대사관은 상공부 장관 임영신을 “2다스의 속옷만으로도 매수당하는” 인물로 파악했다.그는 부패로 쫓겨난 최초의 각료라는 오명을 남겼다. 이같은 이승만 정권의 최고 통치방침 가운데 하나는 유엔에서의 승인을 획득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새롭게 출범한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계속 의존했던 만큼 합법정부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즉각 얻어내지 못했다.1948년 10월19일 재일조선청년단체의 암살 위협 속에 이승만은 일본을 방문했다.목적은 주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를 만나 대한민국의 방위와 국제적 승인문제를 의논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대 주한미국대사 무초에 의하면 이승만은 맥아더를 특별히 존중했다고 한다.그래서 이승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질 때마다 맥아더를 찾았다.1945년 10월 미국에 머물던 이승만은 환국과 더불어 그를 만났다.1948년 10월 회담은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미국이 한국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이승만으로 하여금 내외에 공표토록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수립에 산파역을 맡았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은 1948년 10월8일 유엔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채택했다.이 보고서에는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성립된 한국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모든 유엔 가맹국들은 한반도 전체의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한다는 권고 내용도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제3차 유엔총회에서 심의에 부쳐졌다.1948년 12월12일 마침내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에서 46대 6으로 승인됐다.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된 것이다.그 후 대한민국은 소련과 그 동맹국가들을 제외한,50여개국의 자유진영 국가들로부터 개별적인 승인을 받았다. ○임정 세력 반대속 출범 대한민국의 출범은 민족사적으로 볼 때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진정한 의미의 민족국가가 비로소 출범한 것이다.우리 민족이 주권확보를 위해 장기간 노력해온 결과로,그 자체가 민족 숙원사업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남북에서는 상이한 정권이 출범했다.그것은 무엇보다 미·소 강대국의 서로 다른 한반도 정책에 기인한다.이는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정책에 있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반소·반공정책에 의한 남한지역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유엔이 결정한 데서 비롯됐다.당시 유엔은 미국의 대한정책을 그대로 추수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제헌국회가 남북통일특별대책위 설립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이는 국회가 남북통일문제를 도외시한 뚜렷한 징표라는 점에서 그렇다.국회소집 무렵 김구·김규식 등은 통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했다.통일운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려고 한 이들을 이승만은 공산당으로 몰아부쳤다.그렇듯 대한민국 정부는 김구·김규식을 중심으로 한 임정세력의 반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이다. ◎미,이승만 신뢰하지 않았다/본사특별취재반,미 CIA 작성 비밀보고서 입수/“독립위해 최선 다했지만 재난 불러올 행동 가능” “이승만은 한국의 독립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참된 애국자였다.그러나 그는 독립한국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최선을 다했다.……위험이 도사리고 있다.이승만은 증폭된 자아의식 때문에 재난을 불러올 행동을 하거나 적어도 신생 한국정부와 미국의 이해를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직설적인 평가를 보여주는 문건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의 국립공문서보존기록관리청에서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1948년 10월28일에 작성한 2급비밀보고서 ‘대한민국의 생존전망(PROSPECTS FOR SURVIVAL OF THE REPUBLIC OF KOREA)’을 찾아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워싱턴 정책담당자들의 상황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자료다.이 문건에 의하면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옹립했지만 결코 신뢰하지는 않았다.따라서 미국은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계속했다.또한 미국은 군정이 끝난 후에도 CIC나 G­2,CIA 등을 통해 이승만과 그의 각료들이 행한 부정축재 사실과 같은 부정적인 정보를 모았다. 또 방위와 재원에 대해서도 통제를 가했다. 이 보고서는 제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승만은 개인적인 이익과 로비활동도 들추어냈다. 워싱턴 임시정부 한국위원회의 수장이었던 이승만은 그 지위를 상당히 이용했다고 밝힌다.사적인 로비활동이야말로 이승만에게는 전쟁이 끝난뒤의 소중한 정치적 밑천이 되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얼룩진 헌정(대한민국 50년:4)

    ◎52년 첫 개헌… 87년까지 9차례 뜯어 고쳐/이승만 이어 박정희도 종신집권 노려 헌법손질/69년 3선 개헌­72년 유신 선포… 대통령 간선 고착/전두환 쿠데타 집권… 87년 6월 항쟁 직선제 확립 이승만은 1954년 2차개헌으로 종신집권에의 길을 텄다.그러나 이는 몰락을 재촉했다.1960년 4·19혁명은 마침내 이정권의 무한권력 추구를 좌절시켰고 6월15일 3차 개헌을 가져왔다.큰 골격은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다.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법률유보조항을 손질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정리하는데 촛점을 맞췄다.그러나 내각제 도입으로 3·5부정선거범 등에 대한 처벌근거인 정·부통령선거법이 소멸되자 혁명 주체세력들은 거세게 반발했다.학생들의 의사당 난입 등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집권민주당은 11월29일 이승만 정권하의 반민주행위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 근거규정을 헌법 부칙에 설치하는 4차개헌을 단행했다. 헌법의 수난은 갈수록 심화됐다.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군사쿠데타는 헌정파괴라는 극단적사태를 몰고왔다.국회는 즉각 해산됐다.이듬해 12월16일엔 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5차 개헌이 단행했다.이 개헌안은 인권규정을 보강하고 미국식 사법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외견상으로는 3권분립을 강화하는 것이었다.그러나 핵심 골자는 부통령제 폐지와 정당설립 규제 등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었다. ○6차 3선개헌 날치기 처리 박정희는 5차개헌으로 부활된 새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중임제한 규정에 부닥치자 전에 이승만이 걸었던 전철을 답습했다.영구집권의 획책한 것이다.중임제한 폐지 개헌안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디ㅊ치자 1969년 10월21일 새벽 국회 제3별관에서 야당의원들을 따돌린채 여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들만으로 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3선개헌으로 불리는 6차개헌이 그것이다. 개헌뒤 실시된 1971년 선거에서 박정희는 대통령 3선에 성공했다.그러나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박정희 634만표,김대중 539만표로 나타난 개표결과는 영구집권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그래서 영구집권을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이것이 바로 헌정 수난의 절정판인 이른바 유신헌법이다. 유신은 1972년 7월17일에 선포됐다.이날은 아침나절 약간 흐렸으나 낮부터는 전국적으로 맑았다.시민들의 생활은 평온했으며 각 관청들만 막바지에이른 국정감사로 다소 부산했다.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국체변혁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물밑에서는 이를 위한 시나리오가 극비리에 착착 진행됐다.상오9시 국무총리 김종필은 우시로쿠(후궁호랑) 주한일본대사와 만나 약 20분간 요담한데 이어 10시 15분부터는 필립 하비브 미국대사와 40분간 요담을 가졌다. 유신을 통보한 자리였지만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하오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서울 소공세무서에 대한 국정감사를 행하던 재무위에서는 “야당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국회가 해산될지 모른다”는 협박투의 발언이 여당의원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날 상오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는 박정희 주재로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박정희는 둘러앉은 보좌관과 비서관들을 응시하다가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모두 한번씩 읽어보고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하오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헌법 정지,국회 해산,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개헌,….’달리 의견이 있을수 없었다.너무도 엄청난 일에 모두 할말을 잃었다.이어 외무장관 김용식은 하오5시 주한외교사절 23명을 불러 유신단행을 설명했다. 계엄선포 H아워를 1시간 앞둔 하오6시 청와대에서는 영문도 모른채 소집돼온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령을 의결했고 같은 시간 시내 전역의 주요 공공건물에는 계엄군이 포진하기 시작했다.중대뉴스가 예고된 하오7시,라디오에서는 헌법의 효력을 2개월간 중지시키겠다는 박정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유신이 일단 선포되자 개헌작업은 미리 짜인 각본에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작업은 신직수 법무·이경호 보사·서일교 총무처장관과 유민상 법제처장,헌법학자 한태연·갈봉근 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회에서 맡았다.하지만 실상은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팀으로 구성된 일명 ‘기획소위’가 건네준 골자를조문화하는 것에 불과했다.이때 심의회의 역할이 어땠는지는 “이 헌법의 기본골격은 이미 고위층에서 만든 것이므로 골격 자체에는 일체 손을댈 수 없습니다”고 한 신직수의 발언이 입증하고 있다. 개헌안은 유신선포 25일만인 11월21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선과 대통령의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국회의원 3분의1과 대법원장 등 전법관 임명권 보유 등 사실상 대통령 1인의 무한권력 창출이었다. 박정희에게 유신헌법은 종신집권을 담보해주는 안전판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종말로 향하는 단초이기도 했다.국내 상황은 팽팽한 긴장으로 치달았고 최대우방 미국과도 갈등이 깊어갔다. ○80년 8차개헌 간선제 유지 서울신문이 최근 입수한 미국 국무부의 ‘한미관계의 조사’라는 보고서는 당시 한미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돼 갔음을 보여준다.유신 직후인 73년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를 토대로 국무부가 작성한 이 문건에서 이미 미국이 경제원조 중단과 미군철수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결국 안팎으로 시련을 겪던 유신은 끝내는 1979년 박정희의 피살과 함께 또한번의 헌정중단 및 개헌을 초래했다.공백상태의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정치군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1980년 10월27일 복지규정 보강 등으로 위장한 8차 개헌을 실시하지만 권력획득의 핵심인 대통령 간접선거는 그대로 유지했다.전두환 군사정권은 강압적 통치로 일관하다 직선제 개헌 요구로 상징되는 전국민적 저항에 굴복하고 말았다.그래서 87년 6월29일 개헌을 수용하기에 이른다.이 9차 개헌의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헌정 50년을 맞는 올해는 그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정권을 인수인계하는 뜻깊은 해다.하지만 헌법은 또다시 개정의 고비를 맞고 있다.내각제 공약을 내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정권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미,73년부터 “유신철회” 압박/본사특별취재반,미 하원보고서 입수 확인/“주한미국 철수” 일방선언­‘코리아게이트’ 돌출 유신이 절정을 이뤘던 197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급기야 1977년 3월9일 주한 미지상군의 철수를 일방선언했고 6월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의 청와대 도청사건이 불거졌다.한국내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한국정부의 항의가 거세자 미국은 박동선 사건으로도 불리기도 했던 코리아게이트를 돌출시켜 한국정부를 더욱 옥죄었다. 모두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철회를 겨냥한 미국정부의 압박전술이었다.그런데 미국은 이처럼 유신에 대해 명백하게 거부태도를 보이기 훨씬 전부터 유신의 몰락을 예견한 교포들의 지적들을 주목했으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수단도 강구했었음이 최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입수한 문건에서 확인됐다. 이 문건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작성한 ‘한미관계의 조사’(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라는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1973년 9월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보고를 토대로 하고 있다. 문건은 김대중 등 미국내에서 반한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과 교포들의 증언을 인용한 것이다.문건은 “남한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성으로 인해 아시아권에서 점차고립되는 상황이고 대미관계에서도 원조와 군사지원을 둘러싸고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문건은 이어 “한국인들은 만약 미국이 일본과의 공조아래 경제원조 및 권사지원 철회로 압력을 가할 경우 박정희 정권은 급격히 붕괴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문건이 작성된 직후부터 미국내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의 활동에 대한 FBI의 사찰이 강화됐다.이와 더불어 한미 정부간에 인권침해와 내정간섭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됐던 사실에 비추어 이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작용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국채 콘서트/이세기 사빈 논설위원(외언내언)

    후조처럼 이역을 떠돌던 작곡가 안익태는 바르셀로나에서 조국 하늘을 바라보면서 ‘코리아 환타지’‘강상의 논개’‘흰백합화’ 등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그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 부다페스트에서였으나 ‘애국가’를 처음 들은 것은 1950년 6·25 참상을 전하는 뉴욕의 텔레비전 뉴스에서다.그는 당시 그가 지휘하려던 뉴욕 필하모니의 레퍼토리를 ‘애국가’가 들어있는 ‘코리아 환타지’로 바꿔 넣었고 ‘애국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나는 하나님의 영감을 조국에 전했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음악인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나의 조국에 태양은 빛난다’의 쇼스타코비치나 쇼팽과 시벨리우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쇼팽은 러시아군이 조국 폴란드의 혁명운동을 탄압한다는 소식에 ‘혁명 에튀드’를 작곡했고 39세로 파리에서 사망할 때는 바르샤바의 흙을 유해에 뿌렸으며 그의 심장은 이송되어 바르샤바 성십자가교회에 안치되었다.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도 러시아 치하에 있던 핀란드가 1919년 독립할 때까지 핀란드 국민을 격려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음악은 통분과 우울,기쁨과 희망이 교차될 때마다 민중의 마음을 움직여 왔고 예술가들은 ‘조국’의 뿌리가 없이는 어떤 위대한 창작도 탄생될 수 없음을 증명해 왔다. 나라 전체가 경제위기로 움츠러든 마당에 음악인들의 ‘국채 판매 촉진’ 해외콘서트는 여간 반가운 노릇이 아니다.‘조국을 위하여(Salute to Korea)’란 타이틀을 내걸고 2월과 3월 서울을 비롯한 미국·일본 순연에서 정부가 발행한 1백억 규모의 국채 판촉에 앞장 선다는 것이다.국제적으로 명성을 굳힌 정명훈을 필두로 신영옥과 장영주,판소리 명창 안숙선과 가야금 명인 양승희가 협연하여 해외교포들에게 한바탕 ‘조국애’를 분발시키게 된다. 음악은 다른 예술이 할 수 없는 설득력으로 그때마다 민중의 희노애락에 깊이 참여해 왔고 민중을 다스리며 선동하고 용기와 힘을 주었다.민족의 단합과 일체감을 촉구하고 한국인의 강인한 민족정신에 호소하려는 음악인들의 의지에 공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국채 판매 촉진’ 해외 콘서트

    ◎정명훈씨 등 유명 음악인 ‘외환 극복’ 동참/새달∼3월 한·일·미서 자선 순회 연주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음악인들이 국가 외환위기 극복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지휘자 정명훈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국·양악 연주자들이 국채판매 촉진을 위한 자선콘서트를 마련한 것.‘조국을 위하여(Salute to Korea)’를 기치로 한 이 콘서트는 오는 2월부터 3월까지 한국,미국,일본을 순회하며 열린다. 국내공연은 정씨가 이끄는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야금연주자 양승희씨,사물놀이패 등이 3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가지며 KBS 1TV를 통해 생중계된다.이어 2일 도쿄,3일 오사카 등 일본공연에는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가 합세한다. 미국공연은 ▲2월 18일 워싱턴 D.C.케네디 센터 ▲20일 샌프란시스코 ▲22일 L.A ▲23일 뉴욕 카네기홀 등에서 열리며 정명훈씨를 비롯,피아니스트 서혜경·백혜선,김혜정씨,소프라노 신영옥,홍혜경씨,첼리스트 정명화씨,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씨가 조를 이뤄 실내악 연주를 들려준다.한국,일본공연은 국제문화교류협회(이사장 김상우)가,미주공연은 UN에서 주관한다.
  • ‘컴퓨터 바이러스’ 막아라/기존 40개외 신종 10여종 가세

    ◎안철수연구소 98캘린더 무료 배포/내일 ‘카지노’ 2월13일 ‘예루살렘’ 주의 철 따라 유행하는 전염병이 있듯 컴퓨터 바이러스도 한해중 특정한 시기에 발동하는 것들이 많다.1월과 2월에 주의해야 할 컴퓨터 바이러스는 무엇일까. 1월에 조심해야 할 바이러스는 크게 5가지 정도.한국산 파일 바이러스인 NRLG.946,NRLG.953바이러스와 외국산 바이러스인 조쉬바이러스,바로테스바이러스,카지노 바이러스 등이다. 이 가운데 카지노바이러스는 COMMAND.COM파일을 감염시키고 1,4,8월15일 화면에 ‘MALTEDE JACKPOT’라는 문자열이 출력된다. 2월에는 빈대바이러스,12일의 목요일 바이러스,스웨덴소년 바이러스, 예루살렘 바이러스 등 6가지 바이러스가 활동한다. 예루살렘 바이러스는 잘 알려진대로 일명 ‘13일의 금요일 바이러스’.2월13일이 금요일이라 이날 조심해야 한다. 감염돼 있으면 이날 실행되는 파일이 삭제되며 그외의 날은 감염 30분뒤부터 컴퓨터의 속도가 떨어진다. 빈대바이러스는 한국산 파일바이러스.COM파일이 감염되지만 읽기전용 파일과 V3.COM파일은 감염되지 않는다. 그밖의 달에 활동하는 것으로는 한국산 파일바이러스인 월드컵 바이러스가 특이하다.이것은 실행 실행파일을 감염시키는데,매년 5월16일과 10월27일 화면에 ‘2002 World Cup Korea¡¡’라는 메시지를 출력한다. 또 작은공산당바이러스는 매년 9월9일과 12월26일에 실행되는데 스피커를 통해 중국 음악이 연주된다.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인사바이러스는 12월24일과 26일 사이에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연주되면서 EXE파일을 감염시킨다. 파일 내부에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라는 메시지가 있다.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는 올해 활동하는 컴퓨터바이러스를 달마다 표시해 놓은 ‘98년 컴퓨터바이러스 캘린더’를 제작,배포하고 있다. 이 캘린더는 특정일,매주,매월 주기로 활동하는 컴퓨터바이러스에 대해 활동일 및 원산지,증상 및 특성 등의 정보를 요약해 놓고 있다. 지난 96년 이후 올해로 세번째. 캘린더에는 특정바이러스가 활동하는 날을 노란색으로 표시해서 컴퓨터사용자들이 미리컴퓨터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 캘린더에는 시스템의 날짜 또는 시간을 체크해 해를 끼치는 악성 컴퓨터 바이러스를 총망라한 것이 특징. 미켈란젤로,예루살렘,푸른얼음바이러스 등 40여종의 기존 바이러스를 비롯해 지난해 새로 발견된 한국변형 Cri­Cri 5595바이러스,외국산 바이러스인 12일의 목요일바이러스,Kaczor.444바이러스 등 10여종의 새로운 바이러스 정보가 실려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연구소를 방문하는 일반사용자들에게 바이러스 캘린더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연구소의 인터넷홈페이지(http://www.ahnlab.com)를 통해서도 캘린더를 얻을 수 있다.(02)525-2141
  •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진현종 엮음(화제의 책)

    ◎팔만대장경의 설화·비화 108가지 얘기 팔만대장경은 불교사 2500년의 결집체이자 인간 사고의 모든 가능성과 깨달음의 영역을 보여주는 한 편의 파노라마다.또한 붓다의 말씀을 수록한 팔만사천 법문은 세계 설화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 책은 팔만대장경 곳곳에 숨어 있는 설화나 비유 중에서 완성도 높은 108가지 이야기를 골라 실었다.대부분의 불교 경전들은 출가자,즉 스님들이 중심이 돼 결집하고 전승해온 것이다. 때문에 속세의 범부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의 주연이라고 할 석가모니 붓다는 출가자들을 위한 어려운 이야기만을 고집하지 않았다.그것은 당시 붓다가 설법을 할 때 지식인들의 공통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마가다국의 속어를 썼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불전설화’를 통해 붓다의 지혜를 나누어 갖는데 초점을 맞췄다. 팔만대장경은 고려국신조대장(고여국신조대장),즉 고려대장경의 속칭이다.이 팔만대장경은 지난 9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이제는 ‘트리피타카 코리아나(Tripitaka Koreana)’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불교경전 일체를 총괄한다는 뜻에서 일체경으로도 불리는 대장경은 부처님의 설법을 담은 경과 불제자들이 지켜야할 도리를 담은 율,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한 논 등을 포괄해 이르는 말이다.팔만대장경에는 모두 1천514종의 방대한 경전이 담겨 있다. 나침반과 지도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보물섬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심오한 진리의 바다를 항해하는 데 ‘암초’와도 같은 작용을 하는 불교 특유의 난해함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뒀다.혜윰 6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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