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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하 그렇구나] 리메이크 앨범 낸 JK김동욱

    왜 하필 죽은 사람들의 음악을 선택했을까.하지만 어두울 거란 생각은 기우다.그의 목소리는 창에 스며드는 따스한 봄볕처럼 포근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들의 오라(aura)를 감싸안는다. JK김동욱(29).그가 최근 발표한 2.5집 ‘Memories in Heaven’은 유작 리메이크 모음집이다.첫 CD엔 김광석,김현식,유재하 등 국내음악이,둘째 CD엔 마빈 게이,지미 헨드릭스,토미 볼린 등의 외국음악이 그만의 색채로 다시 불려졌다.“고인이 된 선배들의 곡이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에겐 사실 죽음을 추억하는 것이 익숙하다.처음 진지하게 음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죽마고우가 군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뒤였다.이름에 붙여진 K자도 캐나다 유학시절 암에 걸려 투병중이던 옆집 꼬마아가씨 이름인 케이트에서 따왔다.“처음엔 서글프고 화가 나기도 했죠.하지만 지금은 삶보다 죽음이 더 길다는 생각을 합니다.” 절친한 사람들을 잃고난 뒤 더 성숙해져서일까.그의 목소리는 나이답지 않은 깊은 울림이 있다.데뷔 당시에는 임재범과 비슷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록 보컬로 출발한 임재범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둥글고 깊게 감싸안기에 솔과 재즈에 잘 어울린다.드라마 ‘위기의 남자’의 삽입곡 ‘미련한 사랑’으로 스타덤에 오른 탓에 아직도 그를 발라드 가수로 오해하는 이들도 많지만,그의 음악적 뿌리는 솔과 재즈다.대학에서의 전공도 재즈 보컬이다. 솔풍의 발라드 위주였던 데뷔앨범 ‘Lifesentence’(2002년)와 달리 재즈와 랩 등으로 장르를 넓힌 ‘Multiplepersonalize’(2003)에 이어 이번 앨범도 재즈에 많이 기대고 있다.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는 보사노바 스타일의 재즈로,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는’는 스탠더스 재즈로 편곡되는 등 그의 목소리 위로 서로 다른 느낌의 재즈가 화사한 붓질을 했다. 그의 목소리도 곡마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감칠맛나게 때로는 간지럽게 파고들면서 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색깔이 뚜렷한 곡들이라 처음엔 잘 소화해낼 지 두려웠어요.곡의 느낌을 깨지 않으면서 곡마다 다른 나만의 색깔을 담고 싶었습니다.” 70년대 인기를 끈 ‘장계현과 템페스트’의 베이시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가장 많은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피는 못 속이더라.”며 멋쩍게 웃었다.어릴 때는 음악을 하느라 자주 집을 비우는 아버지가 싫었고,좀 자란 뒤에는 거꾸로 아버지가 힘들다며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그는 결국 뮤지션의 길로 들어섰다. 데뷔 3년차 가수지만 “하고 싶은 음악이 너무도 많다.”는 그에게 음악은 숙명적인 듯했다.하지만 음반시장이 침체화되고 가수들이 엔터테이너화되는 요즘 시대에 뮤지션의 길을 걷기란 힘들지 않을까.“아무리 피와 땀을 쏟아내 음악을 만들어도 팬들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음악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도 없잖아요.” 김소연기자 purple@˝
  • 800선 초반 반등때 매도 나서라

    주식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좀체 감을 잡기 힘든 상황이다.15년 경력의 증권사 애널리스트조차 “투자자들의 전화를 받기가 겁난다.”고 말할 정도다.앞으로 기술적 반등 가능성은 있지만 국제유가 급등,중국경제 긴축조치,미국 금리인상설 등 돌발변수가 많아 섣부른 예단은 불가능하다.하지만 이럴 때에도 수익을 내는 사람들은 나오게 마련이다.전문가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할 것을 주문한다. ●외국인도 관망세 현금비중 높여야 한국투자증권 신동성 팀장은 “지금처럼 시장이 급변할 때에는 일단 관망하는 게 좋다.”면서 “지난 금요일(21일) 종합주가지수가 20포인트 가까운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나친 낙폭에 따른 기술적인 반등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지금은 기술적 반등을 적극 활용하는 수밖에 없으며 700선 초반을 저점으로 보고 매수하고 800∼830선까지 가면 매도하는 패턴이 최선”이라고 했다. 현대증권 투자전략팀 류용석 연구위원은 “유가의 고공행진 등 현재 나타난 불리한 변수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라면서 “중기적인 시각을 갖고 기술적으로 대응하되 820선까지 반등하면 매도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교보증권 박석현 수석연구원은 “요즘같은 요동장세에서는 투자를 자제하고,장이 안정됐을 때 투자실탄을 확보하기 위해 현금보유를 늘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면서 “최근 외국인들도 관망세로 돌아서 현금비중을 상당히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세엔 적립식투자 가장 좋아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과장은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삼성전자,포스코 등 몇몇 대표 우량주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화증권 홍춘욱 리서치팀장은 “월 단위로 일정액을 은행적금 붓듯이 내놓는 적립식 투자가 현재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서 “월급을 타면 저축한다는 생각으로 주식을 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공격적인 투자자라고 생각한다면 그동안 낙폭이 컸던 주식을 사되 삼성전자,삼성SDI,조선(造船)주 등 전망이 비교적 분명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보수적인 투자자에게는 한국가스공사,KT&G 등 배당률이 높은 공기업 주식들을 권했다.이 주식들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이익을 올렸는데도 이번에 별다른 이유없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홍기석 증권조사팀장은 “이익규모에 비해 주가가 낮는 저PER(주가수익률)주 가운데 배당수익률이 5% 이상되는 기업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교보증권 박석현 연구원은 “방어주에 대한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경제의 영향을 덜 받고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통신서비스,전기가스 같은 안정적인 업종의 배당관련주,시장지배력이 높은 주식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전문가들 “이번주 어느정도 반등”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주에 어느 정도의 반등은 예상하고 있다.하지만 추가하락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 팽배해 있어 안정성이 확보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지난주 말 다소 떨어진 유가의 추이가 어떻게 될지가 최대의 관건이다. 굿모닝신한증권 김중현 연구원은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려워 투자자들이 관망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급매물은 어느정도 소화된 것 같다.”면서 “최근 해외 뮤추얼펀드의 자금은 이탈하지만 외국인이 타이완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에서는 차별적인 매수 움직임을 보여 800선까지 기술적 반등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증권 이영원 연구위원은 “외국인의 태도 변화와 지수의 반등시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매수 주체가 등장하기 힘든 형편이어서 시장이 충분한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주가의 폭락행진에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지난주 하루 등락폭이 30포인트를 넘어설 만큼 큰 폭의 변동성이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추세적인 반등 주도업종을 찾기보다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많이 떨어진 종목군을 중심으로 대응해 나가는 전략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시론] 개입형 韓·美동맹에 대비하자/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미래전략연구원 공동대표

    지난 14일 미국이 주한 미 2사단 예하 2여단을 차출해 이라크에 배치할 것이란 계획을 한국측에 통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이러한 차출 결정을 계기로 주한 미군과 한·미 동맹의 성격변화에 대한 다수의 논의들이 제기되었는데 대부분의 논의가 한·미 동맹 유지의 중요성과 한국군의 자체 방위력 증강의 시급성,한국이 미국의 해외 미군기지 재편 구상에서 어느 정도 중요도를 차지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냉전적 불안심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정작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미 연합방위 능력 및 작전,전투 체제에 반세기를 투자한 미국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해낸 한국을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경제적인 계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치 및 경제적으로 성공한,그리고 잘 정비된 연합방위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은 포기보다는 이용의 대상이다.즉 우리가 용미(用美)를 생각하듯이 그들은 당연히 용한(用韓)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되어 익숙해진 미국의 해외주둔군 재배치계획(GPR)은 이러한 미국의 ‘용한’에 있어 한국의 용도를 예측하는 단초를 제공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생각의 출발점은 현재의 국제체제가 어떠한 생각을 띠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데에 있다.왜냐하면 현재 한국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라는 특이한 형태의 국제체제에서 동맹의 국제정치를 추진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단극체제에서의 동맹은 양극 및 단극 체제에서와 같이 뚜렷한 적에 대한 방어형 동맹이기보다는 유일 초강대국,즉 미국이 세계안보 질서를 관리하기 위하여 동맹체계의 정점에 서는 관리형,또는 개입형 동맹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 중심의 세계 안보질서에 대한 위협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국이 공동관리,개입하는 형태의 동맹이 미국의 주요 이해 지역에 구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미국의 21세기 탈냉전형 세계전략은 이러한 세계질서 관리의 시각을 반영한 해외 주둔군 재배치와 동맹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냉전형 고정군보다는 신속하고 유연하게 이동하여 안보위협을 처리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의 형태로 미군이 바뀌고 있고 동맹국들은 이러한 새로운 전략개념에 맞추어 미국이 정점이 된 동맹체계에서 하위 분업체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하위분업체계는 전력투사근거지(Power Projection Hub),주요작전기지(Main Operation Base),전진작전거점(Forward Operating Site),그리고 안보협력대상지역(Cooperative Security Location)으로 나뉘고 있는데 한국은 전력투사근거지와 주요작전기지의 중간급 기지가 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만약 한국이 이렇게 상위의 동맹분업체계로 편입하게 되면 한국은 북한에 대한 자체방위 능력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주요 이해지역에 공동 개입하고 관리해 나가야 하는 미래의 숙제를 안게 된다. 이것은 한국군의 개입과 투사능력을 강화하는 수준의 안보구상과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다.이러한 구상과 정책은 우리가 예상하기 힘든 다양한 국내외 정치 및 경제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고,우리 군의 인프라와 전략 등이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요구할 것이다.따라서 한국 정부는 단기적인 대응보다는 단극체제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관리 및 개입형 동맹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문제의 중심에 두고 이에 맞춘 대응과 준비를 국민적 합의와 지혜를 모아가면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미래전략연구원 공동대표˝
  • [주한미군 감축] GPR과 기지 위상

    미국은 지난 2월 제7차 한·미 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해외 방위력 배치 재검토(GPR)와 관련,한국의 기지개념을 주요작전기지(MOB)로 정할 것이란 방침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대한 안보 전략적 가치를 낮춰 평가하는 것인지,그렇다면 일본과 우리의 전략적 중요도가 차이 나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일미군 위상 더 높아질 듯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일본과의 동맹관계 강화가 한국에 대한 안보전략적 고려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GPR에 따르면 미국의 4단계 기지 개념 가운데 ‘전력투사기지(PPH)’는 이른바 ‘중추기지(허브)’다.미국 본토와 괌·하와이가 포함되며,대규모 병력·장비의 전개 근거지를 말한다.다음이 ‘주요작전기지(MOB)’인데,미측은 일본과 한국이 함께 이 개념에 들어갈 수도 있고,한국이 PPH와 MOB의 사이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했다.바꿔 말하면 일본이 PPH에 갈 수도 있다는 말과 통한다.MOB는 대규모 병력이 장기적으로 주둔하는 상설기지로 동맹국과 초현대식 지휘체계를 갖추며 병사들이 가족과 함께 2∼3년 머무르는 형태가 된다. 이밖에 유사시 증원을 전제로 한 ‘전진작전지점(FOS)’,소규모 연락요원만 상주하는 ‘안보협력대상지역(CSL)’이 있다. 일본의 진지 강화는 분명해 보인다.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특히 GPR를 추진하면서 미·일 동맹을 ‘동아태 지역 질서의 근간’으로 판단,계속 강화해 왔다. 한국 전쟁 이후 주한미군은 편제상 태평양 사령부 관할에 있으면서도 직접 워싱턴에 보고하는 특수지위를 인정받고 있다.GPR 구상이 완료되는 시점에는 이러한 특수성은 없어지고,상대적으로 주일미군 사령관의 위상이 더 높아진다는 점에서 심리적인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적극적 대응 필요 그러나 한국이 미 군사작전의 허브인 ‘PPH’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논란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대규모 미군 병력의 전진 기지가 될 경우,이미 변화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한·미 양국은 새로운 동맹관계 정립을 과제로 안게 됐다.”면서 “과거 방어형의 동맹에서 국제사회 테러에 공동 대응하는 개입형 동맹으로의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美 4단계 기지 개념 ●전력투사기지(PPH, power projection hub) 대규모 병력·장비 전개근거지 ●주요작전기지(MOB, main operating base) 대규모 병력 장기주둔 상설기지 ●전진작전지점(FOS, forward operating site) 소규모 상주간부와 상당수 교체 병력 근무시설 ●안보협력대상지역(CSL, cooperative security location) 소규모 연락요원 훈련장 김수정기자 crystal@˝
  • 소수의견 왜 공개안했나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문에 헌법재판소의 의견만을 기재하고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표시하지 않은 법리상 이유는 다음과 같다.그리고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문에 기재할지 여부는 법률적용상의 문제이지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1.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평의의 비밀유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본문 및 단서에 의하면 헌법재판소 심판의 변론과 결정의 선고는 공개하여야 하지만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하도록 되어 있다.이 때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평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평의의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 외형적인 진행과정과 각 재판관에 의하여 교환된 실질적인 의견내용 일체에 관하여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즉 평의의 경과뿐만 아니라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평의의 비밀에 관한 위 헌법재판소법 규정은 강행규정이다.따라서 설령 헌법재판관들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평의의 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위법한 것이다.그러므로 개별 재판관의 의견내용이나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평의의 비밀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법률상의 특별규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에 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관한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규정이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에 있으나,탄핵심판에 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법률규정이 없다.따라서 이 사건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에 관해서도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2.합의체 재판부의 평의비밀유지는 역사적으로 확립된 법리이다. 가.오랜 기간에 걸쳐 법원조직법에 의해 확립된 법리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정된 법원조직법(1949년 9월26일 법률 제51호) 제58조는 법원의 재판시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즉 합의부 재판시 합의의 비공개 원칙은 1949년도 법원조직법 제정 당시부터 규정되어 있었다.다만 대법원의 재판에 한하여 위 법원조직법 제20조가 “대법원 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대법관의 법률상 이견을 첨서(添書)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행 법원조직법 제65조도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합의 내지 평의의 비밀을 원칙으로 규정하면서 다만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재판에 한하여 위 법률 제15조가 “대법원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하여야한다.”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즉 사법부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이루어지는 평의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며,그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예외규정을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이러한 입장이 평의의 비공개에 관하여 우리나라 법원조직법이 건국초기부터 취한 태도이며,이러한 태도는 크게 변화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서 본 바와 같이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가 헌법재판관들의 평의를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법 제36조 제3항이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과 달리 탄핵심판에 관하여 평의에 관여한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이상 이 사건 탄핵심판사건에서도 평의에 관하여 재판관들의 개별적인 의견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해야 한다.법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재판관들의 개별적 의견을 결정문에 공개한다면 이는 위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 된다. 나.우리나라 헌법재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역사상 확인되어 온 법리이다. 우리나라에서 탄핵심판절차에 관해 규정했던 입법선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1) 1950년 2월21일 법률 제100호 헌법위원회법 제21조는 “헌법위원회의 결정에 관계한 위원과 예비위원은 (법률의 위헌여부 결정에 관해) 위원회의 결정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결정서에 이견을 발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던 반면,탄핵재판에 관하여 규정한 1950년 2월21일 법률 제101호 탄핵재판소법 제21조는 “재판의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같은 법 제23조는 “재판에는 이유를 부쳐야 한다.파면의 판결에는 파면의 사유와 이를 인정한 증거를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 1961년 4월17일 법률 제601호 헌법재판소법 제14조는 “헌법재판소의 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각 심판관의 의견을 첨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3) 1964년 12월31일 법률 제1683호로 제정된 탄핵심판법 제24조는 “재판의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26조 제1항은 “재판에는 이유를 달아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4) 1973년 2월16일 법률 제2530호 헌법위원회법 제41조는 “심판의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46조는 “(법률의) 위헌심판에 관여한 위원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으며,(5) 1982년 4월2일 법률 제3551호로 일부 개정된 헌법위원회법도 위와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우리나라 역사상 헌법재판에 관한 법률들을 살펴보면,법률의 위헌심판에 관하여는 결정에 관여한 재판관들이 결정문에 각자의 의견을 표시하도록 규정하면서도 탄핵심판에 관하여는 결정문에 결정 관여자 개개인이 그 성명을 밝혀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단지 법정의견만을 기재하게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법부의 오랜 전통에 의해 확립된 법리인 평의의 비공개 원칙을 관철하여 탄핵심판에 있어 개별 재판관들로 하여금 그 의견을 재판서에 기재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만약 탄핵심판절차에 관하여 평의의 비밀유지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자 했다면 그러한 예외규정을 마련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은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헌법소원심판에 한하여 그러한 예외를 인정한 규정을 두었을 뿐 탄핵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예외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해석을 통해서도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에서 규정한 평의의 비공개 원칙이 이 사건 탄핵심판사건에서도 준수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다.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당시 입법자의 의사에 의해 확인되는 법리이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현행 헌법인 1987년 10월29일 헌법 제6장의 규정에 의해 1988년 8월5일 법률 제4017호로 제정되었다.그리고 이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할 당시 제안된 법률안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988년 4월경 법무부의 헌법재판소법 제정안 제71조는 현행법 제36조 제3항과 달리 권한쟁의심판을 제외한 채 “위헌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 1988년 6월30일자 민정당의 헌법재판소법 시안 제36조 제3항은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과 완전히 동일하게 규정하여 권한쟁의심판,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에 한하여 관여재판관으로 하여금 의견을 표시하게 하고 있었다. (3) 반면 1988년 5월 대한변호사협회의 시안 제43조 제3항은 “판결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재판관의 소수의견을 부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민정당 시안과 달리 헌법재판소의 모든 심판사항에 대해 소수의견을 기재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4) 1988년 7월4일 이한동,오유방,유수호,강재섭,이진우 의원 등 국회의원 97인이 제안한 헌법재판소법안 제36조에 의하더라도 같은 법안 제2조에 규정된 탄핵심판에 관해 관여재판관이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5) 반면 1988년 7월18일 김봉호,황병태,김용환 의원 등 국회의원 166인이 제안한 헌법재판소법안 제41조 제3항은 탄핵심판에 관하여도 판결서에 최종심리에 관여한 재판관의 의견을 부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6) 그리고 최병국 국회법사위 전문위원이 검토한 헌법재판소법안 제36조는 위 여당 국회의원이 제안한 내용과 동일한 규정을 두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시 제안된 법률안들에 의하면 개별 재판관의 의견기재 의무를 부과한 심판사건 범위에 관해 헌법재판소법 제정 시안을 마련한 주체에 따라 견해차이가 있었던 점과 입법자가 이러한 시안들을 주의깊게 검토한 후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을 제정하여 재판관 개개인의 의견기재 의무를 부여한 심판사건 범위를 설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입법자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그러한 의견기재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탄핵심판사건에 대해서는 개별 재판관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결정서에 기재할 의무를 지울 수 없다고 해야 할 뿐만 아니라,나아가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 이전부터 확립된 법원칙인 평의의 비밀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도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서에 기재하면 안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 3.다른 나라의 입법례에 의해서도 평의비밀유지의 법리를 확인할 수 있다. 가.독일의 경우 독일은 오래 전부터 재판에 있어서 평의의 비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즉 독일 법관법 제43조에 의하면 “법관은 업무를 종결한 이후에도 합의와 표결의 경과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야 한다.” 합의(평의)와 표결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법관의 독립성,법관조직의 통일성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판결의 권위와 법원의 명예이다.법원조직법을 제정할 당시 소수의견을 밝힐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평의의 비밀은 엄격하게 지켜졌다.입법자는 평의의 비밀이라는 독일의 법률전통을 지켜내려 했고,이 전통에 따라 현재에도 평의와 표결의 비밀이 관철되고 있다. 따라서 평의와 표결은 비공개리에 이루어져야 하며 평의와 표결에 참여한 자는 그 이후에 제3자나 상급기관에 평의와 표결내용을 밝혀서는 안 된다.평의는 표결에 있어서 그 정점을 이룬다.평의의 비밀의 대상은 두 과정 즉,평의와 표결로 나뉜다.독일 법관법 제43조에 의한 평의의 비밀 준수의무는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 두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으므로,법관은 평의뿐 아니라 표결에 대하여도 침묵을 지켜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에도 위와 같이 평의의 비밀을 유지하는 전통이 오랜 동안 지켜져 내려 왔다.다만 1970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 제30조 제2항을 신설하면서 비로소 재판관들이 법제도상으로 소수의견을 공표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그런데 위와 같이 개정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사건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헌법소송사건에서 소수의견을 표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은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 사건에 한하여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 탄핵심판에 관하여는 그러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그러므로 위와 같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의 규정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탄핵심판사건에 관하여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일본의 경우 일본의 재판소법 제75조도 “합의체로 하는 재판의 평의는 밝히지 않는다.” “그 평의의 경과 및 각 재판관의 의견 및 그 수의 다소에 대해서는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합의체 재판부의 평의는 비밀로 해야 하며,그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이에 따라 동법 제11조가 최고재판소 재판서에 각 재판관의 의견을 표시해야 한다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즉 일본에서도 합의체 재판부의 평의경과 및 그 평의결과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판관탄핵법도 같은 법 제31조에서 재판관 탄핵절차의 평의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법 제33조에서 재판관 탄핵절차의 재판서(판결문)에 주문과 법정의견인 이유만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그리고 실제로 일본의 탄핵재판소 실무상 개별 재판원들의 의견은 재판서에 기재되지 않는다. 다.미국의 경우 흔히들 미국 연방대법원의 예를 들면서 미국 법원의 판결문과 같이 우리 헌법재판소도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이 기재되는 결정문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제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우선 미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들의 평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오랜 관행(tradition)에 의한 것이며,그것을 규정한 명문의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니다.또한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밝힐 것인지 여부에 대해 직접 규정한 명문의 법규도 없다.그에 따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들의 선택에 의해 판결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고서 “원심판결을 인용(認容)한다.”는 주문만을 기재한 채 판결을 선고하거나,법정의견의 집필자를 밝히지 않은 익명의 판결(per curiam)을 선고하거나,개별 대법관들의 의견을 밝혀 판결을 선고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판결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은 미연방의 경우와 달리 평의의 비밀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2항 제4호는 헌법재판소의 모든 결정서에 헌법재판소 전체의 의견을 표시하여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조문 제3항은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해야 하는 사건 범위를 명확하게 특정하고 있다. 이처럼 평의의 비밀유지와 재판관의 의견 표시에 관해 명문의 법률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법률의 명문규정없이 실무관행의 역사적 전통에 의해 평의를 하고 판결을 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예를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4.결어 이처럼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 및 제36조 제3항은 위 법률 규정 자체에 대한 조화로운 해석원칙,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오랜 역사에 의해 확립되어 온 법리,헌법재판에 관련된 법률의 역사,외국의 법제 등에 비추어 해석해야 할 일이지 단편적으로 위 법률조항만을 떼어 내어 해석하거나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공개할 국가적·역사적 필요가 크다는 등의 모호한 주장에 근거하여 해석할 것이 아니다.그렇다면 결국 이 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하여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준수할 의무를 부여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이러한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서에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표시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의견만을 기재하는 것이다.˝
  • 소수의견 왜 공개안했나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문에 헌법재판소의 의견만을 기재하고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표시하지 않은 법리상 이유는 다음과 같다.그리고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문에 기재할지 여부는 법률적용상의 문제이지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1.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평의의 비밀유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본문 및 단서에 의하면 헌법재판소 심판의 변론과 결정의 선고는 공개하여야 하지만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하도록 되어 있다.이 때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평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평의의 결론에 이르기까지 그 외형적인 진행과정과 각 재판관에 의하여 교환된 실질적인 의견내용 일체에 관하여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즉 평의의 경과뿐만 아니라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평의의 비밀에 관한 위 헌법재판소법 규정은 강행규정이다.따라서 설령 헌법재판관들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평의의 결과를 공개하는 것도 위법한 것이다.그러므로 개별 재판관의 의견내용이나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평의의 비밀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법률상의 특별규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에 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관한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규정이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에 있으나,탄핵심판에 관해서는 평의의 비밀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법률규정이 없다.따라서 이 사건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에 관해서도 재판관 개개인의 개별적 의견 및 그 의견의 수 등을 결정문에 표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2.합의체 재판부의 평의비밀유지는 역사적으로 확립된 법리이다. 가.오랜 기간에 걸쳐 법원조직법에 의해 확립된 법리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제정된 법원조직법(1949년 9월26일 법률 제51호) 제58조는 법원의 재판시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즉 합의부 재판시 합의의 비공개 원칙은 1949년도 법원조직법 제정 당시부터 규정되어 있었다.다만 대법원의 재판에 한하여 위 법원조직법 제20조가 “대법원 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대법관의 법률상 이견을 첨서(添書)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을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행 법원조직법 제65조도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합의 내지 평의의 비밀을 원칙으로 규정하면서 다만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재판에 한하여 위 법률 제15조가 “대법원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모든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하여야한다.”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즉 사법부의 합의체 재판부에서 이루어지는 평의에 대해서는 비밀을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며,그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예외규정을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이러한 입장이 평의의 비공개에 관하여 우리나라 법원조직법이 건국초기부터 취한 태도이며,이러한 태도는 크게 변화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서 본 바와 같이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가 헌법재판관들의 평의를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법 제36조 제3항이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과 달리 탄핵심판에 관하여 평의에 관여한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이상 이 사건 탄핵심판사건에서도 평의에 관하여 재판관들의 개별적인 의견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해야 한다.법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재판관들의 개별적 의견을 결정문에 공개한다면 이는 위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 된다. 나.우리나라 헌법재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역사상 확인되어 온 법리이다. 우리나라에서 탄핵심판절차에 관해 규정했던 입법선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1) 1950년 2월21일 법률 제100호 헌법위원회법 제21조는 “헌법위원회의 결정에 관계한 위원과 예비위원은 (법률의 위헌여부 결정에 관해) 위원회의 결정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결정서에 이견을 발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던 반면,탄핵재판에 관하여 규정한 1950년 2월21일 법률 제101호 탄핵재판소법 제21조는 “재판의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같은 법 제23조는 “재판에는 이유를 부쳐야 한다.파면의 판결에는 파면의 사유와 이를 인정한 증거를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 1961년 4월17일 법률 제601호 헌법재판소법 제14조는 “헌법재판소의 재판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각 심판관의 의견을 첨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3) 1964년 12월31일 법률 제1683호로 제정된 탄핵심판법 제24조는 “재판의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26조 제1항은 “재판에는 이유를 달아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4) 1973년 2월16일 법률 제2530호 헌법위원회법 제41조는 “심판의 평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46조는 “(법률의) 위헌심판에 관여한 위원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으며,(5) 1982년 4월2일 법률 제3551호로 일부 개정된 헌법위원회법도 위와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었다. 이상과 같은 우리나라 역사상 헌법재판에 관한 법률들을 살펴보면,법률의 위헌심판에 관하여는 결정에 관여한 재판관들이 결정문에 각자의 의견을 표시하도록 규정하면서도 탄핵심판에 관하여는 결정문에 결정 관여자 개개인이 그 성명을 밝혀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단지 법정의견만을 기재하게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법부의 오랜 전통에 의해 확립된 법리인 평의의 비공개 원칙을 관철하여 탄핵심판에 있어 개별 재판관들로 하여금 그 의견을 재판서에 기재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만약 탄핵심판절차에 관하여 평의의 비밀유지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자 했다면 그러한 예외규정을 마련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은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헌법소원심판에 한하여 그러한 예외를 인정한 규정을 두었을 뿐 탄핵심판절차에 관하여는 예외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해석을 통해서도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에서 규정한 평의의 비공개 원칙이 이 사건 탄핵심판사건에서도 준수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다.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당시 입법자의 의사에 의해 확인되는 법리이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현행 헌법인 1987년 10월29일 헌법 제6장의 규정에 의해 1988년 8월5일 법률 제4017호로 제정되었다.그리고 이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할 당시 제안된 법률안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1988년 4월경 법무부의 헌법재판소법 제정안 제71조는 현행법 제36조 제3항과 달리 권한쟁의심판을 제외한 채 “위헌심판 및 헌법소원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 1988년 6월30일자 민정당의 헌법재판소법 시안 제36조 제3항은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과 완전히 동일하게 규정하여 권한쟁의심판,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심판에 한하여 관여재판관으로 하여금 의견을 표시하게 하고 있었다. (3) 반면 1988년 5월 대한변호사협회의 시안 제43조 제3항은 “판결서에는 합의에 관여한 재판관의 소수의견을 부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민정당 시안과 달리 헌법재판소의 모든 심판사항에 대해 소수의견을 기재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4) 1988년 7월4일 이한동,오유방,유수호,강재섭,이진우 의원 등 국회의원 97인이 제안한 헌법재판소법안 제36조에 의하더라도 같은 법안 제2조에 규정된 탄핵심판에 관해 관여재판관이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다. (5) 반면 1988년 7월18일 김봉호,황병태,김용환 의원 등 국회의원 166인이 제안한 헌법재판소법안 제41조 제3항은 탄핵심판에 관하여도 판결서에 최종심리에 관여한 재판관의 의견을 부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6) 그리고 최병국 국회법사위 전문위원이 검토한 헌법재판소법안 제36조는 위 여당 국회의원이 제안한 내용과 동일한 규정을 두었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시 제안된 법률안들에 의하면 개별 재판관의 의견기재 의무를 부과한 심판사건 범위에 관해 헌법재판소법 제정 시안을 마련한 주체에 따라 견해차이가 있었던 점과 입법자가 이러한 시안들을 주의깊게 검토한 후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을 제정하여 재판관 개개인의 의견기재 의무를 부여한 심판사건 범위를 설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입법자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그러한 의견기재 의무를 부과하지 않은 탄핵심판사건에 대해서는 개별 재판관들에게 각자의 의견을 결정서에 기재할 의무를 지울 수 없다고 해야 할 뿐만 아니라,나아가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 이전부터 확립된 법원칙인 평의의 비밀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도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서에 기재하면 안 된다고 해석해야 한다. 3.다른 나라의 입법례에 의해서도 평의비밀유지의 법리를 확인할 수 있다. 가.독일의 경우 독일은 오래 전부터 재판에 있어서 평의의 비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즉 독일 법관법 제43조에 의하면 “법관은 업무를 종결한 이후에도 합의와 표결의 경과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야 한다.” 합의(평의)와 표결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법관의 독립성,법관조직의 통일성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판결의 권위와 법원의 명예이다.법원조직법을 제정할 당시 소수의견을 밝힐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평의의 비밀은 엄격하게 지켜졌다.입법자는 평의의 비밀이라는 독일의 법률전통을 지켜내려 했고,이 전통에 따라 현재에도 평의와 표결의 비밀이 관철되고 있다. 따라서 평의와 표결은 비공개리에 이루어져야 하며 평의와 표결에 참여한 자는 그 이후에 제3자나 상급기관에 평의와 표결내용을 밝혀서는 안 된다.평의는 표결에 있어서 그 정점을 이룬다.평의의 비밀의 대상은 두 과정 즉,평의와 표결로 나뉜다.독일 법관법 제43조에 의한 평의의 비밀 준수의무는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이 두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으므로,법관은 평의뿐 아니라 표결에 대하여도 침묵을 지켜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에도 위와 같이 평의의 비밀을 유지하는 전통이 오랜 동안 지켜져 내려 왔다.다만 1970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 제30조 제2항을 신설하면서 비로소 재판관들이 법제도상으로 소수의견을 공표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그런데 위와 같이 개정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사건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헌법소송사건에서 소수의견을 표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3항은 법률의 위헌심판,권한쟁의심판 및 헌법소원심판 사건에 한하여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도록 하고 있을 뿐 탄핵심판에 관하여는 그러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그러므로 위와 같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법의 규정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탄핵심판사건에 관하여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일본의 경우 일본의 재판소법 제75조도 “합의체로 하는 재판의 평의는 밝히지 않는다.” “그 평의의 경과 및 각 재판관의 의견 및 그 수의 다소에 대해서는 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합의체 재판부의 평의는 비밀로 해야 하며,그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이에 따라 동법 제11조가 최고재판소 재판서에 각 재판관의 의견을 표시해야 한다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즉 일본에서도 합의체 재판부의 평의경과 및 그 평의결과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판관탄핵법도 같은 법 제31조에서 재판관 탄핵절차의 평의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법 제33조에서 재판관 탄핵절차의 재판서(판결문)에 주문과 법정의견인 이유만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그리고 실제로 일본의 탄핵재판소 실무상 개별 재판원들의 의견은 재판서에 기재되지 않는다. 다.미국의 경우 흔히들 미국 연방대법원의 예를 들면서 미국 법원의 판결문과 같이 우리 헌법재판소도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이 기재되는 결정문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하기에 앞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제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우선 미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들의 평의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은 오랜 관행(tradition)에 의한 것이며,그것을 규정한 명문의 법령에 의한 것이 아니다.또한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서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밝힐 것인지 여부에 대해 직접 규정한 명문의 법규도 없다.그에 따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법관들의 선택에 의해 판결이유를 전혀 기재하지 않고서 “원심판결을 인용(認容)한다.”는 주문만을 기재한 채 판결을 선고하거나,법정의견의 집필자를 밝히지 않은 익명의 판결(per curiam)을 선고하거나,개별 대법관들의 의견을 밝혀 판결을 선고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판결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은 미연방의 경우와 달리 평의의 비밀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36조 제2항 제4호는 헌법재판소의 모든 결정서에 헌법재판소 전체의 의견을 표시하여 이유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으며,같은 조문 제3항은 개별 재판관의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해야 하는 사건 범위를 명확하게 특정하고 있다. 이처럼 평의의 비밀유지와 재판관의 의견 표시에 관해 명문의 법률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법률의 명문규정없이 실무관행의 역사적 전통에 의해 평의를 하고 판결을 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예를 곧바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4.결어 이처럼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34조 제1항 단서 및 제36조 제3항은 위 법률 규정 자체에 대한 조화로운 해석원칙,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오랜 역사에 의해 확립되어 온 법리,헌법재판에 관련된 법률의 역사,외국의 법제 등에 비추어 해석해야 할 일이지 단편적으로 위 법률조항만을 떼어 내어 해석하거나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공개할 국가적·역사적 필요가 크다는 등의 모호한 주장에 근거하여 해석할 것이 아니다.그렇다면 결국 이 사건에 관하여 헌법재판소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결정서에 표시하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제정하여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준수할 의무를 부여한 헌법재판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이러한 이유로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2004헌나1 대통령 탄핵사건의 결정서에 개별 재판관들의 의견을 표시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의견만을 기재하는 것이다.
  • 패션·뷰티도 체형·취향 맞춤시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지휘봉 케이스를 가진 마에스트로 정명훈,어느 곳에서도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디자인의 여행용 서류가방을 들고 출장길에 오르는 이웅렬 코오롱 회장,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메고 운동장에 들어선 축구선수 안정환….세계적인 브랜드 루이뷔통이 한 사람을 위한 디자인으로 내건 ‘스페셜 오더 시스템’의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 고객이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루이뷔통의 스페셜 오더 시스템과 같은 ‘그대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자기표현 욕구 점점 강해져 지난 3월 LG경제연구원은 현대인의 소비를 대변하는 5가지 흐름의 하나로 ‘매스-클루시버티(mass-clusivity)’를 꼽았다. 매스-클루시버티는 대중(mass)과 독점권(exclusivity)의 합성어.소수만을 대상으로 한 맞춤생산 방식으로 제공되는 고급품·고급서비스가 대세라는 설명이다. 소비자의 이같은 요구에 따라 LG경제연구원은 “매스-클루시버티 시대에는 최상급 시장에 대한 차별화 전략과 함께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특수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맞춤 서비스의 확대를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mass-customization)’의 일환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주문에 따라 이루어지는 고객화(customization)에 대량 생산(mass production)을 접목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방식의 앞선 모습이라는 것이다. 삼성패션연구소의 김정희 과장은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시대를 벗어나 개개인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생산하는 방식은 전반적인 산업의 흐름”이라며 “특히 다른 체형,각각의 취향,선호하는 스타일에 따라 변화해야 하는 패션·뷰티 산업과 맞춤서비스는 필연이다.”라고 설명했다. ●내게 맞는 색을 찾는다. 태평양은 국내 최초로 개인별 특성에 맞는 맞춤 화장품 ‘아모레퍼시픽 커스텀 블랜드 메이크업’을 선보였다.오는 25일 서울 압구정동에 ‘디 아모레 갤러리’를 열고,고객에게 맞는 화장을 제안하고 개발하는 특별한 공간을 제공한다.이희 고원혜 김선진 손대식 박태윤 등 당대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5명이 1대1 카운슬링을 통해 컬러,향,질감 등 재료를 섞어 가장 적합한 제품을 맞춰준다. 태평양 소비자미용연구소의 김종일 소장은 “전문가와 고객이 함께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만들어 내는 이곳은 제품을 섬세하게 맞춤 제작하는 오트 쿠튀르의 철학을 담고 있다.”며 “나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나만의 컬러를 지향하는 고객에게 독특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운데이션 20㎖,루스 파우더 20g이 각각 10만원,립스틱 3.5g 5만원,아이섀도 2컬러 3만원부터.하루 전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서비스받을 수 있다.완제품 배송까지는 7일 정도 소요된다. ●당신만의 ‘그 무엇’을 위해 과거 서울 소공동,명동 등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맞춤 정장 서비스가 최근에는 좀더 고급스럽게 변하고 있다. LG패션의 최고급 신사복 브랜드 ‘알베로’는 직접 고객을 방문해 옷을 맞춰주는 ‘알타 사르토리아(Alta Sartoria)’ 서비스를 시작했다.알타 사르토리아는 고급 양복·맞춤 양복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로,최고 품질을 추구하는 VVIP를 위한 서비스다. 40년 가까이 신사복 패턴 업무를 해오면서 전직 대통령,국무총리,장관 등 명사의 옷을 맞춘 알베로 수석패턴사 박광수 차장이 직접 고객을 찾아 원단,컬러,부자재 등을 함께 고른다.원단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복 소재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로로 피아나 등의 최고급을 사용한다.생산기간은 15일 정도,가격대는 정장 한 벌에 120만원에서 최고 850만원이다. 이밖에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제일모직의 ‘갤럭시 란스미어 오더 시스템’을 비롯해 수입브랜드 제냐의 ‘수미주라’,까날리의 ‘R30’ 등도 맞춤 정장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 [차이야기] 페퍼민트- 청량한 맛과 향 소화 도와줘요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시원한 차의 인기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그저 차갑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개운한 맛까지 지닌 차가 더 반갑다.그렇다면 페퍼민트는 어떨까.냉커피,냉녹차에 비해 청량감이 뛰어나 대환영이다. 서양박하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수요도 가장 많은 페퍼민트.이름에서 알 수 있듯 후추(peper)를 연상케 하는 톡 쏘는 향미가 특징이다. 맛도 맛이지만 유럽에서는 약용으로 즐겨 사용할 만큼 몸에 좋다.페머민트 달인 물을 위장병약으로 썼을 정도다.커피를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사람이 페퍼민트를 마시면 위를 보호할 수 있다.또 박하 성분이 위벽을 자극해 장내의 가스를 배출시켜주고 소화를 촉진시킨다. 이외에도 진정작용이 있어 투통 해소와 더불어 불면증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또 상쾌한 양이 입안을 개운하게 하기 때문에 식후에 마시면 그만이다. 단 임신 중이나 수유 중인 사람은 많이 마시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찻잔에 생잎의 경우 3티스푼 정도,가늘게 썰어 말린 것은 1티스푼 정도가 적당하다.90℃ 이상의 뜨거운 물을 넣어 3∼5분 정도 우려마시면 된다.오랫동안 우려내면 쓴맛이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나길회기자 ■ 도움말 조강희 허브다섯매(www.herb5.co.kr)대표˝
  • [이경기의 스크린 1인치]‘블러디 선데이’ 피맺힌 추억

    ‘흡사 피에 굶주린 듯한 갈망과 냉소적인 태도로 영국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보내고 있는 록밴드’.아일랜드 더블린에서 1976년 결성된 5인조 록밴드 U2에 대한 영국 팝계의 평가다. 1980년대 들어 가장 대중적인 록 그룹의 하나로 명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이들 팀은 전자 기타와 헤비메탈 악기 등을 내세워 고국과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정치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영국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담은 노래를 지속적으로 발표해 이목을 끌어냈다. 특히 83년 2월 발표한 앨범 ‘워’(War) 타이틀곡 ‘Sunday Bloody Sunday’는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오랜 정치적 분규를 소재로 했다.흔히 ‘피의 일요일’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72년 1월30일 발생했다.그날 북아일랜드 데리 시(Derry City)에서는 정부의 집회 금지를 어기고 시민 권리 운동 행진이 벌어졌다. 시민 운동가 이반 쿠퍼(Ivan Cooper)의 선도로 진행된 항의 시위대가 영국 군대로부터 총격 진압을 받아 13명이 사망하고 14명 이상이 부상당한다.평화적 시위에 대해 영국 정부군은 ‘사회 질서 교란’을 이유로 시위대를 겨냥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것. 무고한 시민을 겨냥한 무력 진압에 대한 국내외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당시 수상인 에드워드 히스가 나서서 재발 방지와 북아일랜드 국민을 대상으로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북아일랜드 가톨릭계 과격파 무장조직 IRA가 주축이 된 보복 테러를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강력한 전자 기타 리듬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Sunday Bloody Sunday’는 영국 정부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린 노래가 됐지만 록 밴드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게 됐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는 바로 1972년 1월 발생했던 사건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재현한 작품이다.비극적 참극이 발생한 지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이 영화는 완성 직후 영국의 채널 4(Channel 4)가 곧바로 입수해 방영,당시 사건에 대한 앙금을 갖고 있는 북아일랜드인들에게 참회의 제스처를 나타냈다. ‘영국 군 당국의 순간적인 오판이 엄청난 보복과 반발을 불러 일으킨 원인을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묘사한 올해의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독립 영화계의 최대 행사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 관객상’을 비롯해 2002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 곰상을 수상해 전세계 영화 애호가들에게 ‘피의 일요일’ 사건에 대한 비극을 다시한번 반추시켜주는 공헌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북아일랜드의 게리 콘론이라는 청년이 영국 런던 거리를 배회하다 체포돼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혀 10년 이상 무고한 수감 생활을 했던 사건을 고발한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1994년)도 베를린에서 황금 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영화의 연출자 짐 세리단은 ‘블러디 선데이’에서는 제작자를 맡아 영국 극우정부가 자행한 추악한 사건에 대해 끈질긴 추궁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은행들 PB시장 새판 짠다

    은행들의 부자고객 쟁탈전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서울 강남지역 거액자산가’로 대표되는 프라이빗뱅킹(PB·고객자산관리) 영업대상을 금융자산 1억원대의 ‘중급(中級)부자’로까지 확대하고 있다.얼마 후면 은행들이 개인의 모든 자산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게 가능해져 업무영역이 대폭 확대되는 데다 PB영업의 절대강자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PB경쟁이 1라운드 탐색전이었다면 앞으로는 2라운드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것이다. ●거액자산가에서 중산층으로 하나은행은 지난 3일 PB센터 14개점을 총괄 지휘하는 ‘PB사업본부’를 신설했다.여기에 소속된 점포들은 간판을 아예 ‘하나은행’이 아닌 ‘하나골드클럽’으로 쓰는 등 기존 영업점과 전혀 다른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특히 VIP 고객을 금융자산 기준으로 세분화,1억원 이상 고객은 109개 PB영업점에서 관리하고 5억원 이상 고객은 ‘하나골드클럽’에 집중시키기로 했다.또 서울 목동·안국동,경기 분당 서현역·일산 주엽역 등 강남 이외 지역에도 PB센터를 대폭 확대한다. 특히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최고위층은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로 분류,서울 을지로 본점내 ‘웰스 매니지먼트 센터’에서 특별 관리한다.하나은행은 또 ‘하나골드클럽’에서 일하는 PB인력에 대해서는 연봉의 최고 50%까지 파격적인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자산규모 1억원 이상 고객은 일반 PB센터인 ‘투 체어스’에서,10억원 이상 고객은 ‘PCS(Private Client Service)센터’에서 각각 관리한다.지금은 서울 역삼동 교보센터에만 PCS센터가 있지만 오는 9월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완전인수 시점에 맞춰 강북에도 추가로 개설할 예정이다. 신한은행도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한 PB센터 외에 별도로 5억원 이상 고객들을 겨냥한 ‘준(準)PB센터’를 만든다. 제일은행도 지난 3일 서울 강남PB센터(테헤란로 포스코빌딩)와 강북PB센터(광화문 교보빌딩)를 동시에 개설했다.중산층 고객들에게도 신경을 쓰고 있다.국민은행 김정태 행장은 최근 “자산규모 3000만∼1억원의 중산층 고객들을 위한 ‘익스프레스 창구’ 등 특별서비스 공간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토털 재산관리서비스’ 하반기 개시 은행들이 PB영업 확대에 열을 올리는 것은 씨티은행이 한미은행 인수를 최근 확정함에 따라 첨단기법으로 무장한 선진 PB금융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진 게 큰 이유다.씨티은행에 대한 모방을 많이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씨티은행의 경우 자산 10억원 이상 고객은 ‘씨티그룹 프라이빗뱅킹 센터’에서,1억원 이상인 고객은 씨티은행의 ‘씨티골드 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국내은행들은 2002년 본격적으로 PB영업을 시작하면서 주로 10억원 이상 거액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에 주로 치중해 왔다. 올 하반기부터 도입될 ‘종합재산관리신탁’은 태풍의 핵으로 인식되고 있다.종합재산관리신탁은 현금,부동산,유가증권은 물론 저작권,특허권 등 개인의 모든 유·무형 자산을 은행이 맡아 관리·운용·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개인들이 부동산은 부동산신탁에,유가증권은 유가증권신탁에,금전은 금전신탁에 분산해 맡길 수 밖에 없어 재산을 한꺼번에 관리하는 데 불편이 많다.이는 마찬가지로 은행들의 PB영업에도 큰 제약 요인이 돼 왔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종합재산관리신탁이 도입되면 금전 위주의 자산운용에서 탈피할 수 있어 고객에 대한 재무상담 정도에 그치고 있는 PB 영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나은행 PB사업본부 안선종 차장은 “고객의 자산규모에 따라 은행의 영업방식도 달라지는 추세”라면서 “자산규모가 10억원 이상인 고객들의 경우 직원들이 발굴을 해서 파생상품·부동산·세금 등 전분야에 걸친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자산규모 5억원 이상인 고객들의 경우 지수연계 투자상품 등 금융상품 판매를 위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국내유일 저격수 전도사 황광한 예비역 준장

    “스나이퍼(저격수)는 정규전에서 킬링머신이 아닌 수호천사 역할을 합니다.적의 저격수와 핵심요원을 제거하면 싸움은 백전백승입니다.이순신 장군과 넬슨 제독도 결국 스나이퍼한테 당한 셈이지요.” 전쟁영화에서나 봤던 스나이퍼가 우리 군에도 등장한다.황광한(67·육사17기)예비역준장은 국내 유일의 ‘스나이퍼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최근에는 스나이퍼를 양성·교육하는 교관역할까지 맡고 있다. 해병대교육훈련단은 건군 이후 처음으로 지난 12일부터 2주 동안 스나이퍼 희망자 41명을 상대로 저격수 교육훈련을 실시 중이다.황 장군은 최근 이들을 상대로 ‘진정한 스나이퍼’를 위한 특별교육을 했다. 또 이라크 파병을 앞둔 자이툰부대 역시 황 장군의 권유로 24명의 스나이퍼 요원을 최근에 선발,훈련 중이라고 그는 밝혔다.이라크 주둔 미군부대에는 대대별로 8명의 스나이퍼 요원을 두고 있다는 그는 오는 18,19일 이틀간 자이툰부대를 방문,교육할 예정이다. 그는 “저격수는 당연히 특등사수로 구성되지만 특등사수가 곧 저격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격술 외에도 전장의 첩보수집을 위한 지역수색 능력과 엄폐와 은폐,개인 위장능력,고도의 인내심 등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한다.”면서 “양쪽 시력이 2.0 이상인 사람 중에서 금연·금주,정신자세,지적수준,유도능력,독도법 등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스나이퍼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나이퍼의 중요성에 대해 “예를 들어 1명의 적을 사살할 경우 1차대전 때는 소총탄환 7000발,2차대전에서는 2만 5000발,월남전에서는 무려 5만발이 소요됐다.”면서 반면 월남전 저격수 요원들의 경우 단 1.7발에 불과했다고 비유했다.저격수는 7.62㎜ 저격용 소총으로 1000m,12.7㎜ 소총으로 2500m의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단다. 원래 스나이퍼(sniper)는 도요새(snipe)의 사냥꾼이라는 뜻으로 1차대전 말 영국군에서 처음 공식 편제화했다.다음은 황 장군이 전하는 주요 사례들.1700년대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이 개조한 소총으로 적병을 저격했다.1777년 미국의 독립전쟁시 영국의 프레이저 장군은 300야드 떨어진 말 위에서 저격당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은 저격작전을 구사해 우리측 젊은 소대장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월남전 당시 최고의 저격수인 카를로스 미해병 상사가 베트콩 사단장을 저격한 일은 스나이퍼의 전설로 전해오고 있다. “북한은 1개분대에 1명의 저격수 요원을 두고 있습니다.” 원래 유격전문가인 황 장군은 전역후 지난 95년 미 조지아주의 ‘스나이퍼 학교’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나이퍼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해병대가 스나이퍼 양성훈련을 시작한 것도 3년전 그가 김명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교육훈련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서 비롯됐다.그는 현재 국방부 군사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가정의 달 ‘똑똑한 디카’ 쏟아진다

    ‘똑똑한’ 디지털 카메라가 쏟아지고 있다. 삼성테크윈·올림푸스한국·소니코리아 등 디지털 카메라 제조업체들이 이달 들어 기능을 향상시킨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신제품들은 다기능은 기본이고 간편한 조작과 디자인 강화,슬림화 등을 표방하고 있다.고화소(화질 단위)를 바탕으로 사진편집 등 디지털카메라의 고유 영역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평이다.가격도 전년 대비 10∼15% 가량 저렴해져 ‘가정의 달’을 맞아 구입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사진 촬영은 손쉽게 삼성테크윈은 최근 초보자부터 중급 사용자까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광학 2.8배줌 400만화소인 ‘케녹스 D430’과 광학 3배줌 320만화소인 ‘케녹스 D370’을 출시했다. 초고정밀도 렌즈인 ‘SHD(Super high definition)’를 탑재해 선명한 화질이 장점이다.특히 동영상 촬영기능을 강화해 초당 30프레임의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또 음성 녹음이 가능하고 동영상 재생중 원하는 장면을 정지영상으로 추출할 수도 있다.관계자는 “D430과 370은 가격에 비해 성능이나 화질,색감 등에서 경쟁사 제품보다 월등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에게 보급형 카메라 가격으로 고급카메라의 기능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는 실속 있는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후지필름㈜도 자동필름 카메라처럼 손쉽게 촬영·인화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 ‘파인픽스 A340(410만화소)’과 ‘파인픽스 A330(330만화소)’ 신제품을 내놓았다. 기존 필름카메라의 조작법과 비슷할 뿐 아니라 유선형의 메뉴 내비게이션으로 조작이 더욱 간편하다.여기에 무게가 193g으로 가볍고 세로형 디자인으로 잡기가 편하다.특히 고급카메라에서 볼 수 있는 인물과 야경,스포츠,풍경 등 4가지 모드를 별도로 처리해 손쉽게 촬영할 수 있다. ●보는 즐거움은 2배로 올림푸스한국은 2.5인치 LCD 대형화면에 앨범 기능을 갖춘 신제품 ‘AZ-1’을 선보였다.AZ-1은 촬영한 사진을 최대 12개의 앨범으로 저장할 수 있다.또 블루와 실버 등 3색 컬러의 400만화소인 ‘뮤-30디지털’은 물에 약하다는 디지털카메라의 약점을 보완했을 뿐 아니라 음성 기능도 추가로 탑재했다.여기에 ‘반투과형 TFT 컬러 액정’을 채택해 햇빛이 강한 야외에서도 액정 모니터가 어둡게 보이지 않는다.무게가 159g으로 휴대성이 뛰어나다. 올림푸스의 ‘뮤 시리즈’는 휴대하기 간편한 디자인과 방수 기능으로 판매 1년 만에 전세계에 200만대 이상 판매됐다. 소니코리아는 기존 제품보다 배터리 수명이 2배 이상 늘어난 디지털카메라 ‘사이버샷 P’시리즈 2종을 내놓았다.‘DSC-P100(510만화소)’와 ‘DSC-P73(410만화소)’은 26.6㎜의 슬림 디자인에 소니 고유의 화상처리 기술인 ‘리얼 이미징 프로세서’가 탑재돼 선명한 화상도가 특징이다.특히 수동기능이 추가되고 한글 메뉴를 지원한다.셔터 스피드와 조리개 값을 조절할 수 있어 소비자가 원하는 분위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관계자는 “그동안 고급제품에 적용된 리얼 이미징 프로세서를 탑재해 화질과 스피드,배터리의 양에서 업그레이드됐다.”면서 “특히 수동기능의 활용으로 보다 수준 높은 사진 촬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이수종 교수 ‘베셀상’ 수상

    고에너지물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울대 물리학부 이수종(45) 교수가 독일 훔볼트 재단이 수여하는 2004년 베셀상 수상자로 20일 선정됐다. 베셀상은 훔볼트 재단이 주관하는 국제적인 학술상으로 매년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업적을 남긴 45세 이하의 젊은 학자 10명에게 주어진다. 이 교수는 우주의 기원과 생성과정을 규명하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분야에서 지난 10년간 쌓아온 성과를 인정받았다.부상으로 5만 5000유로(한화 약 7700만원)와 1년간 독일에 체류하면서 드는 연구비용을 지원받게 됐다. 이 교수는 2001년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국제이론물리센터상을 수상했다.
  • 우수 건설기술자 임원급 대우

    전문 기술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업계 최초로 현장 소장과 기술 전문가 인증자격제도를 도입,시행키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마다 각 사업본부장의 추천과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우수 기술자를 ‘마스터’(master)와 ‘엑스퍼트’(expert)로 각각 인증,이들에게 명예와 각종 우대혜택을 주는 제도이다.건설전문 인력에 대한 보상과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일종의 이공계 우대대책이다. 마스터와 엑스퍼트는 초고층,하이테크,주거시설 등 9개 전문 분야에서 선정하며,시공실적·현장경험·공사업적·수상실적·평판 등에 대한 종합적인 심사를 통해 인증된다. 인증받은 기술자는 대형 프로젝트 우선 배치,국내·외 직무연수,자격수당 지급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특히 마스터 인증자에게는 개인 연구 사무공간 및 차량 제공 등 임원급의 보상과 처우를 받는다.이와 함께 정년 후에도 계약직으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학계의 석좌교수제도처럼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직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삼성은 이와 함께 기술 인력이 경력을 쌓고 싶은 분야에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할 수 있도록 해당 인력을 특정 전문분야에 지속적으로 배치하는 ‘맞춤형 핵심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시행키로 했다. 박창언 삼성물산 상무는 “현장 소장은 보통 업체 사장에 해당하는 책임과 권한을 가지지만 능력에 맞는 실질적인 보상이 없었다.”면서 “이번 제도 도입으로 전략적 기술인력을 육성하고 회사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찬희기자 chani@˝
  • 백화점 ‘퍼스널 쇼퍼’ 첫선

    국내 백화점에 처음으로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 제도가 도입된다.갤러리아백화점은 28일 명품관 4층 매장에 50평 규모의 퍼스널 쇼퍼 룸을 설치한다고 밝혔다.퍼스널 쇼퍼란 미국 뉴욕의 블루밍데일과 같은 유명 백화점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도우미들이 쇼핑을 전적으로 도와주는 제도다.이를 위해 갤러리아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를 초빙하고,명품 매장에서 근무경력이 풍부한 양유진씨 등을 채용했다. 이들은 VIP고객이 방문하면 미리 상품을 준비해서 패션 스타일을 제안하고,구매를 돕는다.또 문화상품 예매,여행지 알선 등 개인적인 편의 서비스도 제공한다.갤러리아 백화점은 1990년 국내 처음으로 명품관을 도입하여 연간 일본인 등 외국인 매출만 25억원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최근에는 국내 명품시장이 브랜드 200여개에 규모는 1조 5000억원대로 급성장했다.하지만 이윤없이 파는 직영 명품점이 속속 생겨나고,명품 아웃렛까지 등장할 예정이라 경기 침체와 맞물려 백화점의 명품판매는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갤러리아 백화점 관계자는 “퍼스널 쇼퍼제도와 같은 백화점만의 특화된 서비스로 국내 최대 명품 백화점의 위상을 지켜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
  • ‘호적없는’ 새 첫 발견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지 않은 신종 조류(鳥類)가 국내에서 발견됐다. 국립환경연구원은 전남 완도와 일본 등지에 서식하는 섬개개비(Styan’s Grasshopper Warbler Locustella pleskei)와 겉모양이 비슷한 새를 최근 울릉도에서 발견해 유전자 분석을 실시한 결과 이들과 계통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개체임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원은 “형태적으로는 섬개개비 등과 비슷하나 이들 종과는 40만∼60만년 전에 분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분포지역 확인 및 표본 확보,이름짓기 등 추가 절차를 거쳐 국제학회지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신종 조류는 몸 색깔은 옅은 갈색이며 날개 모양은 완도에 서식하고 있는 섬개개비와 일치했으나,부리 길이는 14.5∼15.3㎜로 섬개개비(15.2∼15.9㎜)보다 약간 짧았다. 박은호기자 unopark@˝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3)대원위대감의 생각 (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3)대원위대감의 생각 (下)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옥양봉 절골에 있던 가야사 터에다 아버지의 무덤을 옮겨쓴 지 12년 만에 둘째아들 명복을 낳은 것이 풍수설의 힘이라는 증거는 없다.또한 명복이 태어난 지 12년 뒤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것도 풍수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대원위대감의 그 해괴한 행동이 명복을 왕이 되게 했다고 여겼다.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민중들은 오래된 전통과 관습을 따르게 마련인가보다.풍수지리설은 조선 민중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한 꿈이었다. ●백성들, 부친묘 옮겨서 덕본 것이라 믿어 이하응이란 파락호(破落戶),궁도령(宮道令)의 둘째 자식이 왕위에 오르고,아비는 대원위대감이 되는 좀체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두고 민중들은 마치 자신들의 옹색한 신세가 훤히 펴지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다.대리만족의 한 극치였다. 대원위대감은 세상의 그런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집권 초기부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당색과 문벌을 초월한 인재 등용,탐관오리의 숙청,양반 토호의 면세토지 조사와 세금의 징수,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것,복식의 간소화 등 후기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여러 폐단들을 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집권 초반의 개혁 정치가 성과를 거두자 이를 발판으로 삼아 쇠미해진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경복궁 중건을 강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경복궁 짓는 일로 대원위대감은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과와 지지를 상실하게 되었고,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탄받기에 이르렀지만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그는 난세의 정략가답게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의 저돌성에 희생된 대표적인 경우가 속리산 법주사에 모셔져 있던 청동 미륵장륙상을 헐어다 녹여서 건축자재로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에는 대외적 위협과 난관도 만만치 않았다.천주교와 관련된 외세들과의 갈등이었다. ●정권유지 위해 천주교 탄압으로 급선회 집권 초기 그는 천주교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랬던 그가 장기간에 걸쳐 천주교 박해를 감행한 것은 서양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따른 국가적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난에서 벗어나 정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 감춰져 있었다. 대외적인 첫 위협은 러시아였다.두만강이 러시아와의 국경으로 바뀌게 되자 러시아의 통상요구는 대원위대감을 비롯,정부고관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 이때 천주교인이자 정부 관리인 김면호(金勉浩),홍봉주(洪鳳周) 등이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어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했고 대원군은 이를 정치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승지를 지낸 남종삼(南鍾三)이 대원군으로 하여금 한불조약(韓佛條約)을 체결하여 나폴레옹 3세의 위력을 이용,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는 정책을 펴도록 건의하기까지 이르렀다.숨막히는 긴장의 나날이었다. 이같은 정책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조선에 체류중이던 베르뇌(Berneux) 주교와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었고,그때 대원군은 만약 러시아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어 천주교인들은 자못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1866년 1월에 북경사신이 보내온 편지가 도착했다.청나라는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이 분위기에 편승한 국내의 반 대원군 세력들은 대원군이 천주교와 불순한 정치적 흥정을 한다며 공세를 취했고 대원군은 정치적 생명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탄압 정책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1866년 2월 베르뇌를 비롯해 홍봉주,남종삼,김면호를 포함한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이 서울과 그밖의 여러 지역에서 체포되어 순교했는데,이때 베르뇌,다블뤼 등 9명의 프랑스 신부들은 서울 새남터와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로 불리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프랑스 군대와 대원위대감의 지휘를 받은 조선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위대감은 국가적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면서 천주교인들을 외국의 적들을 불러들이는 무리로 규정하여 거듭되는 박해로 맞섰다. 서양오랑캐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땅은 그들과 내통하는 천주교 무리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처형지는 주로 서울과 해안지방으로 정해졌다.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이 계속되자 프랑스는 대원위대감을 기필코 굴복시켜 그들이 겪은 수모를 되갚아주겠다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프랑스 신부 페롱(Feron)이 묘안을 내놓았다.그는 1866년 8월 프랑스 제독 로즈가 조선을 공격할 때 뱃길을 안내했던 인물이다.또한 그는 조선의 사정에도 밝아서 대원위대감을 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그는 독일의 무역상인인 오페르트(Oppert,E.J)라는 인물을 끌어들일 궁리를 했다.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서 모두 실패한 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페롱은 오페르트를 책임자로 하여 대원군과 정치적 교섭을 벌이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묘책을 마련했다. 이 묘책을 강구하는 데는 조선인 천주교인도 가담했다.묘책이란 다름 아닌 대원위대감의 아버지 남연군이 묻혀 있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 옛터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이었다. 묘를 파헤쳐 시체와 부장품을 미끼로 내걸고 대원군과 통상문제,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흥정하자는 것이었다.조선은 조상의 무덤에 대하여 특별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자는 극단적인 방법을 내세웠다. 오페르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는 자금을 담당할 인물로 미국인 젠킨스를 끌어들였다.통상교섭이 성공하면 이익을 배당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도굴단이 결정되었다.오페르트,젠킨스,페롱,선장 묄레,조선인 안내자 2명,유럽·필리핀·중국인 선원 등 모두 140명으로 이루어졌다.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에 실패 1868년 5월 차이나(China)호,그레타(Greta)호 등 1000t급 기선 두 척을 이끌고 일본 나가사키에서 무기와 도굴용 장비를 구입한 다음,5월10일 충남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했다. 도굴단은 자신들을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면서 조선인의 안내를 받아 남연군 묘소로 직행했다.덕산 군청을 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는가 하면 민가들을 습격하면서 고의적인 난동을 부렸다. 절골의 남연군묘까지 온 그들은 도굴을 시작했으나 묘광이 워낙 견고하여 그들이 준비해온 도구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원위대감은 마치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측이나 했던 듯 성능이 매우 좋은 폭약을 사용하지 않는 한 묘를 파헤치기 어렵도록 만들어 둔 것이었다. 결국 남연군묘 도굴은 실패했다.오페르트는 돌아가는 길에 인천 앞 영종도에서 프랑스 제독 알리망 명의로 된 협박장을 대원위대감에게 보냈다.남연군의 시체와 부장품이 그들 손아귀에 있으니 교섭에 응하라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이 협박문을 접수한 영종첨사는 도굴행위가 인간의 짓이 아니므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협박문을 되돌려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젠킨스는 같은 미국인에 의하여 파렴치범으로 고발당하였고,페롱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소환당하였다. ●대원군의 박해로 8000명 이상 순교 대원위대감의 분노는 컸다.조선은 조상숭배 사상이 유별하여 묘를 신성시하는 데다,국왕의 할아버지며 자신의 아버지 묘를 파헤쳤으니 그의 생각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대원위대감은 덕산군 내포지방 천주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했다. 내포지방은 천주교회 창설기부터 천주교가 전파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를 내었고,부근의 지방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듯 대원군에 의하여 감행된,이른바 병인박해는 6년에 걸쳐 8000명 이상이 순교하는 불행을 낳았다. 한 정치가의 무모한 권력욕구가 불러온 결과는 조선의 세계사 합류를 지연시켜 근대화의 길을 막음으로써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을 초래했고,나쁜 지도자로서의 선례가 되었다. 그같은 대원위대감은 1871년 무슨 생각에선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서원산 남쪽 기슭에 자신이 불태웠던 가야사의 3층석탑을 옮기면서 보덕사(報德寺)라는 절을 지었다.아들이 보위에 올랐으므로 보은(報恩)의 뜻으로 절을 지은 대원위대감의 생각은 오늘날 한국 정치지도자들처럼 혼란스럽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3)대원위대감의 생각 (下)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옥양봉 절골에 있던 가야사 터에다 아버지의 무덤을 옮겨쓴 지 12년 만에 둘째아들 명복을 낳은 것이 풍수설의 힘이라는 증거는 없다.또한 명복이 태어난 지 12년 뒤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것도 풍수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대원위대감의 그 해괴한 행동이 명복을 왕이 되게 했다고 여겼다.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민중들은 오래된 전통과 관습을 따르게 마련인가보다.풍수지리설은 조선 민중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이상향을 향한 꿈이었다. ●백성들, 부친묘 옮겨서 덕본 것이라 믿어 이하응이란 파락호(破落戶),궁도령(宮道令)의 둘째 자식이 왕위에 오르고,아비는 대원위대감이 되는 좀체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을 두고 민중들은 마치 자신들의 옹색한 신세가 훤히 펴지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다.대리만족의 한 극치였다. 대원위대감은 세상의 그런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집권 초기부터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당색과 문벌을 초월한 인재 등용,탐관오리의 숙청,양반 토호의 면세토지 조사와 세금의 징수,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것,복식의 간소화 등 후기 조선 사회가 안고 있던 여러 폐단들을 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집권 초반의 개혁 정치가 성과를 거두자 이를 발판으로 삼아 쇠미해진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경복궁 중건을 강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경복궁 짓는 일로 대원위대감은 그동안 쌓아온 정치적 성과와 지지를 상실하게 되었고,사회 모든 부문에서 지탄받기에 이르렀지만 한 번 권력의 맛을 본 그는 난세의 정략가답게 저돌적으로 일을 밀어붙였다. 그의 저돌성에 희생된 대표적인 경우가 속리산 법주사에 모셔져 있던 청동 미륵장륙상을 헐어다 녹여서 건축자재로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에는 대외적 위협과 난관도 만만치 않았다.천주교와 관련된 외세들과의 갈등이었다. ●정권유지 위해 천주교 탄압으로 급선회 집권 초기 그는 천주교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랬던 그가 장기간에 걸쳐 천주교 박해를 감행한 것은 서양세력의 침략적 접근에 따른 국가적 위기의식과 정치적 반대세력의 비난에서 벗어나 정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 감춰져 있었다. 대외적인 첫 위협은 러시아였다.두만강이 러시아와의 국경으로 바뀌게 되자 러시아의 통상요구는 대원위대감을 비롯,정부고관들에게 위기의식으로 다가왔다. 이때 천주교인이자 정부 관리인 김면호(金勉浩),홍봉주(洪鳳周) 등이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어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했고 대원군은 이를 정치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승지를 지낸 남종삼(南鍾三)이 대원군으로 하여금 한불조약(韓佛條約)을 체결하여 나폴레옹 3세의 위력을 이용,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는 정책을 펴도록 건의하기까지 이르렀다.숨막히는 긴장의 나날이었다. 이같은 정책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조선에 체류중이던 베르뇌(Berneux) 주교와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었고,그때 대원군은 만약 러시아를 물리칠 수만 있다면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어 천주교인들은 자못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1866년 1월에 북경사신이 보내온 편지가 도착했다.청나라는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이 분위기에 편승한 국내의 반 대원군 세력들은 대원군이 천주교와 불순한 정치적 흥정을 한다며 공세를 취했고 대원군은 정치적 생명에 위협을 느껴 천주교 탄압 정책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1866년 2월 베르뇌를 비롯해 홍봉주,남종삼,김면호를 포함한 수천 명의 천주교인들이 서울과 그밖의 여러 지역에서 체포되어 순교했는데,이때 베르뇌,다블뤼 등 9명의 프랑스 신부들은 서울 새남터와 충남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병인박해로 불리는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 이후 프랑스 군대와 대원위대감의 지휘를 받은 조선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대원위대감은 국가적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면서 천주교인들을 외국의 적들을 불러들이는 무리로 규정하여 거듭되는 박해로 맞섰다. 서양오랑캐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진 땅은 그들과 내통하는 천주교 무리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처형지는 주로 서울과 해안지방으로 정해졌다.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이 계속되자 프랑스는 대원위대감을 기필코 굴복시켜 그들이 겪은 수모를 되갚아주겠다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때 프랑스 신부 페롱(Feron)이 묘안을 내놓았다.그는 1866년 8월 프랑스 제독 로즈가 조선을 공격할 때 뱃길을 안내했던 인물이다.또한 그는 조선의 사정에도 밝아서 대원위대감을 꺾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그는 독일의 무역상인인 오페르트(Oppert,E.J)라는 인물을 끌어들일 궁리를 했다.오페르트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서 모두 실패한 뒤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페롱은 오페르트를 책임자로 하여 대원군과 정치적 교섭을 벌이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묘책을 마련했다. 이 묘책을 강구하는 데는 조선인 천주교인도 가담했다.묘책이란 다름 아닌 대원위대감의 아버지 남연군이 묻혀 있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사 옛터의 무덤을 파헤친다는 것이었다. 묘를 파헤쳐 시체와 부장품을 미끼로 내걸고 대원군과 통상문제,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흥정하자는 것이었다.조선은 조상의 무덤에 대하여 특별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역이용하자는 극단적인 방법을 내세웠다. 오페르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는 자금을 담당할 인물로 미국인 젠킨스를 끌어들였다.통상교섭이 성공하면 이익을 배당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도굴단이 결정되었다.오페르트,젠킨스,페롱,선장 묄레,조선인 안내자 2명,유럽·필리핀·중국인 선원 등 모두 140명으로 이루어졌다.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에 실패 1868년 5월 차이나(China)호,그레타(Greta)호 등 1000t급 기선 두 척을 이끌고 일본 나가사키에서 무기와 도굴용 장비를 구입한 다음,5월10일 충남 덕산군 구만포에 상륙했다. 도굴단은 자신들을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면서 조선인의 안내를 받아 남연군 묘소로 직행했다.덕산 군청을 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는가 하면 민가들을 습격하면서 고의적인 난동을 부렸다. 절골의 남연군묘까지 온 그들은 도굴을 시작했으나 묘광이 워낙 견고하여 그들이 준비해온 도구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원위대감은 마치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측이나 했던 듯 성능이 매우 좋은 폭약을 사용하지 않는 한 묘를 파헤치기 어렵도록 만들어 둔 것이었다. 결국 남연군묘 도굴은 실패했다.오페르트는 돌아가는 길에 인천 앞 영종도에서 프랑스 제독 알리망 명의로 된 협박장을 대원위대감에게 보냈다.남연군의 시체와 부장품이 그들 손아귀에 있으니 교섭에 응하라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이 협박문을 접수한 영종첨사는 도굴행위가 인간의 짓이 아니므로 대응할 가치가 없다며 협박문을 되돌려주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젠킨스는 같은 미국인에 의하여 파렴치범으로 고발당하였고,페롱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소환당하였다. ●대원군의 박해로 8000명 이상 순교 대원위대감의 분노는 컸다.조선은 조상숭배 사상이 유별하여 묘를 신성시하는 데다,국왕의 할아버지며 자신의 아버지 묘를 파헤쳤으니 그의 생각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대원위대감은 덕산군 내포지방 천주교인들을 대대적으로 색출했다. 내포지방은 천주교회 창설기부터 천주교가 전파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희생자를 내었고,부근의 지방까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듯 대원군에 의하여 감행된,이른바 병인박해는 6년에 걸쳐 8000명 이상이 순교하는 불행을 낳았다. 한 정치가의 무모한 권력욕구가 불러온 결과는 조선의 세계사 합류를 지연시켜 근대화의 길을 막음으로써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을 초래했고,나쁜 지도자로서의 선례가 되었다. 그같은 대원위대감은 1871년 무슨 생각에선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서원산 남쪽 기슭에 자신이 불태웠던 가야사의 3층석탑을 옮기면서 보덕사(報德寺)라는 절을 지었다.아들이 보위에 올랐으므로 보은(報恩)의 뜻으로 절을 지은 대원위대감의 생각은 오늘날 한국 정치지도자들처럼 혼란스럽다.˝
  • [이 공연 놓치면 후회]한명이 나오는 오페라도 있었네

    호주 체임버 메이드 오페라(Chamber Made Opera)의 모노 오페라 ‘리사이틀(Recital)’이 한국을 찾는다.19∼20일 서울 연강홀,24·25일 대구문예회관,27·28일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 오페라에 연극적 요소를 결합한 ‘리사이틀’은 유명한 오페라의 디바(여주인공)였다고 착각하는 주인공이 화려했던 옛날과 남자에게 버림받은 가슴아픈 현실을 오가는 이야기.1989년 멜버른에서 초연된 이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에 초청됐다. ‘카르멘’의 ‘하바네라’,‘라 트라비아타’의 ‘아 그이였던가’,‘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라보엠’의 ‘내 이름은 미미’ 등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오페라 아리아 12곡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유일한 출연자인 호주의 오페라 가수 헬렌 누난은 ‘리사이틀’을 초연했을 뿐 아니라 아리아 선정과 배경음악 작곡 등에도 직접 참여했다.(02)2272-1088. 서동철기자 dcsuh@˝
  • 국가자격 필기시험 CBT전환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국가기술자격검정 방법이 대폭 변경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17일 “시험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필기시험을 기존의 지필방식(PBT)에서 컴퓨터 기반방식(CBT)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PBT(Paper Based Testing)는 종이시험지를 받아 종이답안지에 답안을 적는 방법이고,CBT(Computer Based Testing)는 컴퓨터 온라인 상에서 문제를 보고 답안을 작성하는 방식이다. CBT 방식은 현재 토플시험에서만 채택되고 있다.시험 종료와 함께 채점까지 동시에 이뤄져 시험결과를 빨리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공단 관계자는 “올해 CBT 프로그램 개발과 시스템 구축에 착수해 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할 계획”이라며 “시행 첫 해에는 정보처리,조리,미용 등 현재 상시검정이 실시되고 있는 종목부터 도입해 단계적으로 대상을 넓혀갈 것”이라고 설명했다.공인중개사 등의 시험에 CBT 도입은 시일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관계자는 “기존 PBT 시험은 원서접수에서 합격자 발표까지의 기간이 장기화되고 인쇄 과정 등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면서 “부정시비를 방지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CBT 도입이 검토됐다.”고 밝혔다.공단은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수험생을 위해 시행 초기에는 PBT와 CBT 가운데 선택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강혜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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