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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혁명음악의 대부 정율성 탄생지 광주서 기념음악회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 정율성(1914∼1976)을 기리는 국제음악제가 그의 탄생지인 광주에서 열린다. 광주시 남구는 “‘기억과 행진’을 주제로 내달 12∼13일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에서 이 음악제를 열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12일 열리는 전야제는 국악 실내악단 ‘도드리’와 크로스오버 앙상블, 소프라노 이수현과 테너 김백호 등이 ‘옌안송’과 ‘팔로군가’ 등 정율성의 대표곡을 부른다. 본행사는 KBS 관현악단의 연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정치용 교수의 지휘로 중국 출신 소프라노 오벽하, 테너 김영철을 비롯, 소프라노 민숙연과 전주시립합창단이 출연, 한·중합동 음악회로 꾸며진다. 또 국제학술세미나도 열려 근대 광주의 기독교 역사와 정율성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황일봉 남구청장은 “올해는 정율성 선생 타계 30주년으로 더욱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클래식과 국악이 만나는 색다른 무대로 시민이 함께하는 음악제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한편 정율성국제음악제는 정율성 선생을 기리기 위해 남구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개최해 4000여명의 중국 관광객이 찾는 등 성황을 이뤘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진실화해委, 첫 진실규명 결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8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과 김익환 일가 고문사건에 대해 위원회 설립 후 처음으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게 북한을 고무·동조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한 혁명재판부의 판단이 잘못됐고, 여수출장소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김익환씨 가족 3명을 간첩 혐의로 불법 감금하고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국가가 조용수씨 및 유족, 김익환씨 등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고 특히 조용수 사건의 경우 재심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특히 조 사장을 1961년 5월18일 체포했는데도 6월22일 제정한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적용한 것과 관련, 특별법을 3년 6개월 이전까지 소급 적용하도록 하고 혁명재판소라는 이유로 2심제로 재판이 진행된 점 모두 위헌소지가 있다고 밝혔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80년 오월 꼬마’ 행복한 웨딩마치

    ‘오월의 꼬마’ 조천호(31·광주시청 총무과)씨가 26일 광주시 북구 용봉동 영빈관 예식장에서 신부 고은아(27)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조씨는 1980년 5·18 당시 장례식에서 다섯살의 나이로 하얀 상복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아버지의 영정을 들었던 모습이 외신 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주인공이다. 이날 결혼식에는 가족 친지와 5월단체 회원·공무원·시민 등이 참석해 조씨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보며 축하했다. 주례를 맡은 조비오 신부는 “국민들의 기억 속에 ‘슬픈 꼬마’로 남았던 조군이 어느덧 어른이 돼 기쁘다.”며 “이들 부부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이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80년 5월21일 금남로 시위에 나섰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조사천(당시 34살)씨의 2남1녀 중 장남이다. 어머니 정동순(53)씨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란 아들의 결혼식을 보니 감개무량하다.”며 “이런 날 남편이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조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군에 입대했으며, 군복무를 마치고 1998년 6월 광주시 5·18묘지관리사무소에 특채돼 사진 전시실의 안내를 맡아왔다.2000년에 주경야독으로 조선대 이공대 건축설계학과를 졸업했다.2003년 9월 국립묘지로 승격한 5·18묘지의 관리를 보훈처가 맡으면서 광주시청 총무과로 자리를 옮겼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씨줄날줄] 훈장/진경호 논설위원

    현대사회에서 훈장(勳章)의 가치가 극대화된 공간은 전쟁이다. 희생의 대상이 전쟁이고, 그 희생의 대가가 훈장이다. 작가 이외수의 등단작 ‘훈장’에서 아버지는 그런 전장에서 잘려나간 한쪽 팔의 대가로 훈장을 받고, 이 훈장을 매일 닦고 또 닦으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는 것으로 생을 보낸다. 그런 ‘아버지의 훈장’을 작가 이병주는 “아이로니컬한 난센스이며, 이에 집착할 때 (인생은) 비극보다 슬픈 희극이 된다.”고 했다. 그 아버지에게 호국의 대가인 이 훈장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넘어가면 또 다른 가치가 된다. 동생 진석(원빈 분)을 하루빨리 전쟁터에서 빼내려 진태(장동건 분)는 국방군이든 인민군이든 전쟁영웅이 돼 훈장을 받아야 했고 결국 목숨을 던진다. 호국 대신 전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훈장이든, 진태의 훈장이든 희생의 상징이며, 덧이 있고 없음을 떠나 희생으로 피운 꽃일 것이다. 상훈법 제2조가 규정한 ‘훈장 받을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다. 올해 8779명 등 정부 수립 이후 43만 8800명이 훈장을 받았다. 대통령 부부와 외국 원수 부부에게만 수여되는 최고훈장 무궁화대훈장부터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훈장 종류만도 11개에 이른다. 무궁화대훈장을 빼고 각 훈장마다 5개 등급이 있으니 총 훈장 수는 무려 51개나 된다. 훈장은 받을 때보다 거부하거나 치탈, 즉 빼앗길 때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정부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로로 받은 태극무공훈장 등 10여개의 훈장을 취소한 것이 한 예다. 올 2월엔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뜻으로, 그리고 최근엔 지방의 한 정년퇴직 교사가 무너진 교육현실을 자책하며 서훈을 거부하기도 했다. 8·31 부동산 대책 ‘유공 공무원’ 30여명에게 수여한 훈·포장을 취소하라는 여론이 거세다. 이들의 훈장이 폭등한 집값에 주저앉은 서민들의 눈물 위에 핀 꽃으로 남아선 절대 안 될 일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강남 시각 바꿔야 집값 잡는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강남 시각 바꿔야 집값 잡는다/우득정 논설위원

    김병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지난 5월22일 정책실장 시절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서울 강남 집중현상의 원인을 과거 정권의 강남지역 주택공급 확대 탓으로 돌렸다. 중산층이 선망하는 지역에 공급을 계속 늘려주다 보니 기대심리에 편승한 투기자본이 대거 몰리면서 집값 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그는 공적인 재화의 특성이 강한 주택에 대해서는 “팔고 사거나 지니고 있을 때 일정한 부담을 느끼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부동산 정상화를 가로막는 세력으로 복부인, 기획부동산, 건설업자, 그리고 광고지면의 20% 이상을 부동산광고로 채우는 일부 신문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들과의 전쟁에 ‘시민사회의 신념’이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얼마전 국정감사에서 ‘부동산 비전문가’라고 실토한 정문수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지난 4월10일 역시 청와대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강남공급 확대론을 ‘강남 파괴론’으로 규정하고 “참여정부는 도시를 개악하여 가격을 잡고자 할 만큼 무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강남 수요의 50% 정도가 강북과 지방에서 유입되는 상황에서 재건축을 통한 공급 증가는 가격 안정에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면서 수요 조절과 분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청와대는 정부의 유일한 목표가 집값 안정이라면 강남지역의 용적률 제한을 완화해 공급을 늘리겠지만 무분별한 사익 추구행위가 강남을 과밀도시로 만들어 종국에는 강남 집값 폭락사태를 유발할 것(올 5월29일 ‘강남공급확대론, 해답 아니다’)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정부가 공황상태에 빠진 집값을 잡기 위해 잇달아 대책을 쏟아내면서도 강남 규제만은 절대 풀 수 없다고 고집하는 이면에는 청와대 당국자들의 이러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주택시장 안정의 관건은 강남지역 수급 불균형 해소에 달렸다’(올 5월18일 ‘부동산시장 전망-계속 오르기는 어렵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강남 수급불균형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로 해석하는 고집은 굽히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3일 공급확대론을 앞세워 신도시 용적률·건폐율 완화, 다세대·다가구주택 규제 완화라는 카드를 꺼냈다. 교통여건이 나은 도심의 용적률은 높이고 근교 신도시지역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공급해야 함에도 거꾸로 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난개발을 초래할 다세대·다가구주택 규제 완화는 강남 규제의 당위론으로 내세웠던 ‘도시 파괴론’과 상치된다. 이러니 수요억제-공급확대라는 ‘투 트랙 정책’의 일환이라는 정부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부동산정책이 춤추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는 취임 직후 논설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남의 집값이 끼리끼리 치고받도록 방화벽을 설치해야 하는데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월28일 MBC 100분 토론에서 “일부 강남아파트는 시장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명품과도 같다.’며 부동산대책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노 대통령의 말처럼 강남아파트가 ‘명품’이라면 명품 공급을 늘려야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인천 검단신도시와 같은 ‘짝퉁’으로 물량공세를 펴봐야 명품 가격만 더 띄울 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부동산정책의 잘못 꿴 첫단추인 강남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려야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김용갑 발언’ 한나라서도 비판

    ‘김용갑 발언’의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서도 보수 색채가 강한 김용갑 의원이 지난 26일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대변인”,“6·15 민족대축전 때의 광주는 해방구”라고 언급한 뒤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27일엔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김 의원의 발언이 자칫 호남 민심을 자극할 경우 내년 대선을 위해 그동안 ‘호남 껴안기’에 공들였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은 정의화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말씀의 뜻은 알겠지만,‘해방구’ 등등은 아니올시다라고 생각한다. 자중을 부탁드린다.”면서 “김 의원의 발언은 호남인들에게 ‘그럼 그렇지, 한나라당이 어디 가겠느냐.’는 얘기를 듣게 한다.”고 꼬집었다. 소장파인 원희룡 의원은 언론과의 통화에서 “‘광주 발언’은 1980년 5·18 광주항쟁을 연상시키고, 과거 매카시즘적 사고에서 조금도 바뀐 게 없다는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면서 “당이 호남에 다가가려는 노력들이 시대착오적 발언들 때문에 물거품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당 지도부가 김 의원을 공개 비판하진 않을 것 같다. 여당의 공세에 말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이날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김 의원 발언을 빌미로 국감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김 의원의 의원직 사퇴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공개사과·출당 조치 등을 촉구했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국회의원이라고 하기엔 낯뜨거운 망언과 망동”이라면서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지 의심이 간다.”고 논평했다. 민주당 김재두 부대변인도 “한나라당이 김 의원을 감싸고 있는 한 서진(西進) 정책과 집권의 꿈은 일장춘몽에 그칠 것”이라고 냉소했다. 그동안 김 의원의 ‘공세 대상’이었던 이종석 통일부장관도 MBC라디오 ‘시선집중 손석희입니다’에 출연,“김 의원의 발언은 객관적 사실에 어긋나며, 국민이 뽑은 정부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반격에 나섰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김용갑 발언에 국감 또 파행

    26일 통일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발언을 놓고 여야간 고성을 주고받으며 사과공방을 벌였다. 국감은 두 차례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고, 포용정책을 둘러싼 정책 질의 없이 이념공방만 벌였다. 두번째 질의에 나선 김용갑 의원은 광주에서 열렸던 6·15 민족대축전에서 “주체사상을 선호하는 홍보물이 거리에 돌아다녔고 교육현장에서까지 사상 주입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면서 광주를 ‘해방구’로 표현했다. 이에 이 장관이 김 의원을 오히려 호통치는 듯한 투로 발끈했다.8월 국회에서 김 의원으로부터 세작(細作ㆍ간첩)으로 지칭됐던 이 장관은 “정책실패를 지적하면 답변하겠지만 친북좌파, 한·미동맹 균열자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받아쳤다. 이 장관은 또 김 의원이 ‘2003년 10월 송두율 교수 입북 배후는 이종석, 서동만’이라는 발언을 사과했던 사실까지 꺼내며 “모든 문제를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무리 국감장이지만 옳지 않다.”고 몰아세웠다. 김 의원이 당황한 듯 “답변만 하세요.”라고 하자 “제가 답변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도를 넘은 발언”이라면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최재천 의원은 “광주에 대한 모욕이며,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 모순”이라면서 사과가 없으면 국감을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감은 논란 끝에 2시간 이상 중단됐다가 재개됐으나 김 의원의 사과를 놓고 여야는 팽팽히 맞섰다. 김 의원은 ‘해방구’ 발언에 대해 자신의 발언이 직설적이었다면서 국감 회의가 잠시나마 중단된 데 유감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최재천 의원은 “그게 무슨 유감 표시냐.”라며 “전두환, 노태우 정권 밑의 하수인들이 안보장사를 위해 (5·18 항쟁을) 좌익·친북좌파로 밀어붙이는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용갑 의원은 “아니. 이게 뭐하는 거냐. 하루종일 이렇게 한번 해볼래?”라고 소리쳤고,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국감은 안 하고 깽판 치자는 거냐.”면서 장내를 정리하고, 정상적인 회의 진행을 하라고 김원웅 위원장에게 요구했다. 김 의원은 한때 시민단체에 의해 낙천·낙선의원이었던 사실까지 거론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거듭 사과를 촉구하자 “아니 이게 뭐하는 거야. 본질과 다르게…. 나를 재판하는 거냐.”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김 의원은 “광주시민을 모독하려는 게 아니었다. 오해가 생겼다면 사과를 한다.”고 말했지만 열린우리당측에서 선거를 의식해 지역감정을 자극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 모든 것(그동안 한 유감·사과발언)을 다 취소해 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국감은 오후 3시30분쯤 중단됐다가 저녁 8시20분쯤에야 속개됐으나 설전만 거듭하다가 15분만에 종료됐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최규하 前대통령 별세] ‘12·12부터 하야까지’ 역사의 비밀 품고 영면하다

    [최규하 前대통령 별세] ‘12·12부터 하야까지’ 역사의 비밀 품고 영면하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80년대 초 일어난 격동의 현대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22일 영면했다. 끝내 12·12 등에 대한 진상을 가슴 속에 묻고 떠난 것이다.‘재임 중의 행위’라는 이유로 당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최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비밀의 열쇠’를 내보이지 않았다. 결국 숱한 의혹을 낳은 12·12 등의 실체 역시 역사의 베일 속에 가려지게 됐다. 1. 헌정사상 최단명 대통령 최 전 대통령은 분명 10·26에서부터 12·12와 5·18, 대통령 하야에 이르는 혼돈의 정치상황을 거친 ‘비운의 대통령’이었다. 외교관료로 국무총리와 대통령에 올랐지만 8개월 만에 사임, 가장 짧은 임기의 대통령으로도 기록됐다. 최 전 대통령은 80년대 정치적 격랑,‘서울의 봄’ 중심에 있던 국가통수권자였다. 유신체제인 1975년 말 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이듬해 국무총리로 임명됐다.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대통령권한 대행에 올랐다. 그리고 신군부의 12·12 직후인 같은달 21일 제1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제4공화국과 5공화국 사이의 정치적 격변기에 대통령에 오른 셈이다. 최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정상적인 권한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12·12로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위세’에 눌린 탓이다. 최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 만인 1980년 8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특별성명을 발표한 뒤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특별성명에는 “국익 우선의 국가적 견지에서 임기 전에라도 스스로의 판단과 결심으로 합법적 절차에 따라 정부를 승계권자에게 이양하는 것도 확실히 정치 발전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최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과도 ‘인연 아닌 인연’을 갖고 있다.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하던 당시 최 전 대통령은 아랍을 순방하다 급거 귀국, 이른바 ‘광주사태’의 수습에 나섰다. 광주에 직접 내려간 뒤 광주 시위군 대표와 담판을 지으려다 신군부 측의 만류로 무산된 적이 있다. 최 전 대통령은 사임 때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밝혔다. 2. 신군부 권력장악 음모 묻다 10·26 직후부터 신군부의 권력 장악은 숨가쁘게 전개됐다. 전두환·노태우 등으로 대표되는 신군부는 12·12를 일으켰다. 최 전 대통령은 12·12의 핵심인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한 사전 재가 여부의 진실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5·17 비상계엄 확대와 사임 과정 등도 마찬가지다.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가 정 총장의 연행 재가를 요구하자,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이 들고온 서류를 대강 검토한 뒤 이례적으로 사인 옆에 일자와 시간을 기입했다고 한다. 엄연히 불법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함에서다. 최 전 대통령은 검찰의 ‘12·12 및 5·18 사건’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1996년 11월14일 검찰의 수사와 관련, 강제 구인돼 법정에 서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증인 선서와 증언를 거부했다. 법정에서 “재임 중 행위에 대해 일일이 소명이나 증언을 한다면 국가경영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전례를 만들어 앞으로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부담을 주는 것은 국익에 손상이 된다.”며 증언 거부의 변만 남겼을 뿐이다. 물론 검찰 수사 및 공판 기록에 따르면 12·12 당시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정 총장 연행 요청에 대한 사전 재가를 거부했다. 최 전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난 뒤에도 당시 신군부와의 구체적인 회유 및 협박 등 갈등 관계에 대해 입을 떼지 않았다. 3. 외교관의 길 최 전 대통령은 1919년 7월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아호는 현석(玄石)이다. 경성제1고보,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영문과와 만주국립대동학원을 졸업했다. 최 전 대통령은 광복되던 해인 1945년 서울대 사범대 교수로 임용됐지만 이듬해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직에 들어섰다.51년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서리를 거쳐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발탁되면서 직업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전직 대통령/이용원 수석논설위원

    대한민국 건국 이래 대통령 직에 오른 분은 모두 9명, 이 가운데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뺀 전직 대통령은 모두 여덟 분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국민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전직’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개헌을 거듭하며 장기집권하다 4·19혁명으로 쫓겨났다. 그는 이국땅 하와이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타계한 뒤에야 국민의 용서를 받아 환국했다. 내각책임제 하의 유일한 대통령인 윤보선은 재직시 장면 총리와 끝없는 권력투쟁을 벌였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추인했다. 그는 뒷날 박정희를 상대로 반독재투쟁을 벌이지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이에 협력하는 등 불투명한 정치 행각으로 빈축을 샀다. 윤보선을 뒤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업적에 관한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이다. 경제성장은 공(功)으로 꼽히는 반면 장기집권과 독재적 통치는 어쩔 수 없는 과(過)의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종말과 그에 따른 시국 혼란을 틈타 총칼로 집권한 전두환, 그리고 전두환 세력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훗날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등을 선고받았다. 잇단 감형과 사면으로 자택에서 칩거한 지 오래됐지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노태우의 후임인 YS(김영삼 대통령)는 ‘IMF 사태’를 불러들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직전 대통령인 DJ(김대중)는 필생의 과업인 ‘햇볕정책’이 최근 도마에 오르면서 새삼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사이의 혼란기에 잠시 대권을 계승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어제 아침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의 종말을 부른 ‘10·26사태’, 전두환의 권력장악 계기가 된 ‘12·12사태’, 그리고 국민의 숭고한 피로 얼룩진 ‘5·18 광주’를 권력의 최상부에서 겪은 인물이다. 그런데도 하야한 뒤로는 증언을 일체 거부한 채 세상을 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는 현실은 국민의 비극이다. 재직 시에 존경받고, 퇴직 후에도 길이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언제쯤이나 우리 역사에 등장할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홍남순과 DJ의 화해(?)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홍남순과 DJ의 화해(?)

    얼마 전 타계한 고(故) 홍남순 변호사는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자 큰 별이었다. 이명박·박근혜·고건·손학규·정동영 등 대권주자들과 여야 정당 대표들까지 줄줄이 빈소를 찾았으니 그의 비중을 능히 알 만했다. 홍 변호사는 60∼70년대 반독재 투쟁과 시국사범의 변론을 도맡았고,80년 5·18 민주화운동 때에는 내란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칠순 가까운 나이에 1년 7개월간이나 옥고까지 치렀다. 감옥에서도 온갖 고초와 고문, 협박을 당했지만 의연하고 남다른 기개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의 민주화 운동 궤적에서 잘 나타나듯이 홍 변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같은 호남 출신인 DJ와 홍 변호사가 민주화 동지로서 수십년간 형제와도 같은 끈끈한 정을 나눠 온 것은 주지의 사실. 홍 변호사는 DJ가 군사정권 시절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등 숱한 고초를 겪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이런 홍 변호사에 대한 DJ의 고마움은 88년 13대 총선 때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홍 변호사의 둘째 아들인 기훈을 전남 화순에 공천한 것이다. 당시 전남 지역에서 DJ의 공천은 100% 당선을 뜻하기에 기훈은 3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정계입문에 성공했다. 홍기훈 의원은 14대 총선에서도 재공천 받으면서 홍 변호사와 DJ의 관계는 바위 같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러나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던 두 사람의 신뢰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것 역시 결정적 계기는 국회의원 총선거다.96년 15대 총선 때 당연히 전남 화순에서 세번째 공천을 받으리라 생각했던 홍기훈 의원이 그만 공천에서 탈락한 것. 이와 관련해선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야사(野史)가 있다. 깃발만 꽂으면 되는 곳인 만큼 DJ측에서 공천 대가를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고, 네번째 대권 도전의 목표를 확실히 한 DJ가 전열정비 차원에서 물갈이를 하다 보니 시원찮은 의원 평가 성적을 받은 홍기훈 의원이 대상자가 되었다는 설까지 나돈다. 공천 대가와 관련, 구체적 액수까지 전해지나 확인할 길은 없다. 또 당시 야당의 경우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나 당선 확실지역의 공천을 받으면 당연히 일정액의 거금을 내는 게 상례였다. 어찌됐건 이 일로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홍 변호사는 지인들에게 “DJ가 공천 장사를 한다.”,“DJ가 호남을 망치고 있다.”며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DJ측도 홍 변호사의 이같은 비난에 무척 섭섭해했다고 한다.DJ의 한 측근은 “아들에게 두 번이나 금배지를 달게 해줬으면 보답은 된 것 아니냐.”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가 원하는 만남을 갖지 않았다.2년 후인 98년 DJ는 대통령에 당선됐고,2001년에는 홍 변호사가 그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5년간의 기나긴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물리적 화해는 불가능해졌다. DJ가 홍 변호사 빈소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많은 이들은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두 사람이 화해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허주(虛舟·고 김윤환 의원의 아호)도 생을 마감하기 전 철천지원수처럼 여겼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용서하지 않았던가.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현실적 가치에 집착하다간 정말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jthan@seoul.co.kr
  • [사설] 낙산사 동종에 ‘유홍준’을 새기다니

    산불로 녹아내려 1년 6개월만에 복원된 강원도 양양 낙산사 동종에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이름이 새겨졌다고 한다.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대형 건설사업 기념비에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졌던 것을 기억한다. 소양강댐과 대청댐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비를 세웠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민박한 것을 기념해 세운 전남 담양의 비석은 얼마 전 5·18 영령 참배객들이 밟고 오갈 수 있도록 망월동 구 묘역 입구에 묻혀 화제가 됐다. 이렇듯 후세 사람들은 대부분 기념비를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본다. 흉물로 여기기도 한다. 문화재청은 유실되거나 훼손된 문화재를 복원하거나 중수할 때는 중수기나 복원기, 상량문에 주관 관청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이 관례요, 소중한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다른 문화재의 보수 정비과정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외 전문가의 검토와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이름을 지울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낙산사측은 국민의 세금으로 복원된 동종에 유 청장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사찰에서는 보통 동종 내부에 시주자의 이름을 새겨넣을 뿐이다. 낙산사 동종 역시 국민의 정성으로 복원된 종이므로 유 청장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의 논의가 어떻게 모아질지 모르겠지만, 이름을 새길 것이 아니라 별도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나서는 안 된다.
  • “시대의 양심… 이젠 편히 쉬소서”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길없는 시대에 큰 길로, 언젠가는 하나로 설 이 나라에 큰 넋으로 왔다 가는 이여…”(양성우 시인의 조시(弔詩)중에서) ‘광주의 혼’ ‘시대의 양심’으로 추앙받는 고 홍남순 변호사가 17일 각계의 애도 속에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안장식은 유족과 정·관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의식, 헌화, 하관, 허토, 성분, 묵념 순서로 엄수됐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명박 전 서울시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박광태 광주시장 등 정·관계 인사와 유족, 친지 등 10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지켜봤다. 영결식은 묵념, 약력보고, 노무현 대통령·박광태 광주시장등의 조사, 불교의식, 양성우 시인의 조시 낭송, 육성녹음 근청, 헌화 및 분향, 유족대표 인사 등 순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이병완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고인께서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오셨다.‘어둠의 시대에는 법보다 양심이 앞선다’는 신념으로 민주투사들의 벗이 되셨다.”며 “임을 향한 존경과 그리움을 민주주의와 나라 발전의 큰 힘으로 삼아나가겠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친 유족, 친지, 지인 등은 광주 동구 궁동 고인의 생가를 방문, 노제를 지낸 뒤 5·18 민주묘지로 향했다. 유족과 5.18묘지측은 고인의 부인이자 5·18 유공자인 고 윤이정(1992년 작고)씨의 묘도 화순군 선산에서 국립묘지로 조만간 이장할 계획이다. 민주화 투쟁과 양심수 무료변론 등을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은 지병이 악화돼 지난 14일 새벽 타계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민주화·인권운동의 영원한 대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자 광주지역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홍남순 변호사가 14일 오전 2시10분 타계했다.94세. 유족으로는 13∼14대 국회의원을 지낸 홍기훈(53)씨를 포함해 기원, 원숙, 광숙, 기섭, 성욱, 영욱 등 5남2녀가 있고 부인 윤이정씨는 1992년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광주시 민주시민장(장의위원장 박광태 광주시장)으로 치러진다.그는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생애를 바친 ‘우리시대의 어른’이자 ‘행동하는 양심’‘광주의 혼’이었다. 고인은 1912년 전남 화순의 중농 집안에서 2남 1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고인은 땔감을 해다 팔아 모은 돈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물한살이던 1933년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 건너간 그는 고물장사를 하며 와카야마(和歌山)시립 상공학교를 졸업했다. 고국에 돌아와 1948년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마흔의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1953년부터 10년 동안 광주지법과 고법, 대전지법에서 판사를 지냈고 1963년 ‘호남 민주화 운동의 산실’인 광주 동구 궁동 자택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이후 그의 삶은 한국 민주화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발언으로 문제가 된 전 국회의원 유옥우 사건을 필두로 학생, 문인, 정치인 등 양심수들을 위해 60건 이상의 무료 변론을 해 ‘법보다는 양심’을 중시하는 변호사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73년 전남대 ‘함성지 사건’,1976년 ‘3·1 구국선언’,1977년 시 ‘겨울공화국’으로 파면된 양성우 시인의 노예수첩 필화사건,1978년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의 교육지표사건 등 30여건의 긴급조치법 위반 사건을 맡아 ‘긴급조치 전문변호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1980년 5월20일 서울을 출발, 다음날에야 광주에 도착해 ‘피의 화요일’을 목격한 그는 같은 달 26일 16명의 수습위원들과 함께 소위 ‘죽음의 행진’에 나선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 뒤 다음해 12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석방된 뒤 그는 광주 구속자협회 회장,5·18광주민중혁명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추진위원장 등을 맡아 ‘끝나지 않은 5·18’의 진상규명과 시민들의 명예회복 활동에 진력했다. 그러나 본인은 피해보상을 신청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죽은 사람들에게 부끄럽다.”며 거부하다 지난해 5·18 유공자로 인정됐다.1985년 가톨릭 인권상과 1986년 대한변호사회 인권상,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우리대학 이렇게 뽑아요] 한성대학교

    [우리대학 이렇게 뽑아요] 한성대학교

    정원외를 포함해 모두 615명을 선발한다. 원서접수는 9월11∼15일이며, 인터넷으로만 실시한다.361명을 뽑는 학업우수자 전형에서는 학생부 전 과목 가운데 ‘수’를 1개 이상 받은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부와 전공적성검사 각 60%와 40%를 반영해 선발한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적용하지 않는다. 실기우수자 전형은 실기고사로만 35명을 뽑는 독특한 전형이다. 대학독자기준에 의한 특별전형으로는 사회기여자 및 배려대상자, 학교장 추천자, 자격증 소지자 전형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사회기여자 및 배려대상자 전형에는 독립유공자 손·자녀, 국가유공자 자녀, 고엽제 후유의증환자 자녀,5·18민주유공자 자녀, 특수임무 수행자 및 그 자녀, 보건복지부에서 인·허가받은 국내 아동보육시설에서 3년 이상 지낸 자, 소년소녀가장,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군·경·소방·교도공무원 자녀 등이 지원할 수 있다. 대학독자기준에 의한 특별전형은 1단계에서 학생부로만 5배수를 뽑은 뒤 2단계에서 학생부와 구술 심층면접을 각 80%,20%씩 반영해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이 밖에 정원 외로 선발하는 농어촌학생 및 실업계고 졸업자 특별전형도 있다.
  • [MLB] 추신수 ‘금쪽’같은 동점 3루타

    ‘증기기관차’ 추신수(24·클리블랜드)가 첫 3루타로 금쪽 같은 동점 타점을 올리며 또 한번 팀의 ‘복덩이’임을 입증했다. 좌타자 추신수는 24일 미프로야구 캔자스시티전에서 12-13으로 뒤진 9회 2사2루 때 대타로 나섰다.상대 선발이 좌완 호르헤 데 로사여서 선발 출장하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캔자스시티가 6번째 투수로 우완 앰비오릭스 부르고스를 내세우자 에릭 웨지 클리블랜드 감독은 추신수를 투입, 맞불을 놓았다. 추신수는 볼카운트 1-1에서 몸쪽 체인지업이 들어오자 날카롭게 방망이을 돌렸고,1루수 왼쪽을 꿰뚫은 타구는 우측펜스까지 흘렀다.2루주자 헥터 루나는 홈을 밟았고 추신수는 질풍처럼 3루로 내달렸다. 빅리그 첫 3루타로 시즌 16타점째를 장식한 추신수의 타율은 .275로 뛰었다.1회말 무려 10점을 내주며 일찍 무너진 클리블랜드의 저력은 무서웠다.클리블랜드는 야금야금 추격전을 펼쳤고 9-13으로 뒤진 9회 대거 4득점, 연장으로 끌고간 뒤 결국 10회 2점을 보태 15-13의 믿기지 않는 역전드라마를 일궈냈다. 한편 김병현(27·콜로라도)은 이날 밀워키전에서 5이닝 동안 4안타만 내줬지만 사사구 6개의 제구력 난조로 6실점한 뒤 6회 마운드를 내려왔다.콜로라도는 1-7로 졌고, 김병현은 시즌 9패(7승)째를 당하며 방어율은 5.18까지 치솟았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국가유공자가족 공무원시험 가산점비율 5%로 축소

    각종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국가유공자 가족(자녀 및 배우자)에게 부여되는 가산점 비율이 과목별로 만점 대비 10%에서 5%로 축소된다. 그러나 국가유공자 본인과 전사·순직한 국가유공자 유족(순국선열·전몰군경 유족과 5·18 희생자 유족)에 대해서는 기존 10%의 가점 비율이 그대로 유지된다. 국가보훈처는 17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8일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법률 개정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2월 국가유공자 및 그 유가족, 가족 등에 대한 공무원 채용시험 가점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은 또 ‘공무원으로서 최소한의 능력과 자질을 구비한 국가유공자를 선발한다.’는 취지에 따라 시험 과목중 4할 미만(100점 만점에 40점 미만) 득점자에게 부여해온 가점도 폐지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특정 과목에서 4할 미만의 과락이 생겨도 가점 혜택을 받아 4할 이상의 점수를 받으면 합격에 제한을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시험과목중 한 과목이라도 과락점수를 받으면 합격이 불가능해진다. 또 국가유공자 자녀들에 대한 가점 비율이 축소됨에 따라 취업보호 대상자들의 자력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외국어 및 공무원 시험 과목 수강시 수강료 일부를 지원하는 ‘취업 바우처’ 제도를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헌재는 지난 2월 “취업보호 대상이 될 유공자 가족의 범위는 유공자·상이군경 본인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으로 좁혀 해석해야 한다.”며 “국가유공자 가족 모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헌법적 근거가 없어 입법정책으로만 채택된 것이며 능력과 적성에 따라 공직에 나갈 수 있는 일반인의 공무담임권과 평등권을 침해하게 된다.”고 판시했었다. 보훈처에 따르면 보훈대상자 가운데 취업보호 대상자는 총 28만 2000여명으로 이 가운데 기존대로 10%의 가산점 혜택을 볼 수 있는 인원은 1만 9000여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유공자 및 가족 등에 대한 가점제도가 일반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해온 일반 수험생들이 보훈처의 이같은 가점제도 축소 계획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함께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특수임무 수행자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도 함께 입법예고한다. 이들 개정안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권성 헌재재판관 퇴임…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권성 헌재재판관 퇴임…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의견마다 소수의견을 제시해 ‘Mr. 소수의견’이라고 불렸던 권성(65·사법시험 8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1일 헌재 대강당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권 재판관의 정년퇴임은 13일이다. 권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재판관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 기본적 인권을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이 가진 민주헌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가의 진로에는 따로 그늘이 지고 역풍이 몰아닥치는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원칙을 굳게 지켜 나라의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을 수호하는데 힘쓰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관에 임명되기 전 명지대 석좌교수였던 권 재판관은 퇴임 후에도 후학양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부산지법 판사로 법관의 길에 들어선 권 재판관은 99년 서울행정법원장을 마치고 2000년 헌재 재판관에 취임했다. 권 재판관은 판사시절이던 96년 12·12와 5·18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사형과 징역 22년 6월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씨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해 주면서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87년에는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권리라는 ‘신원권’을 도입, 배상판결을 내리기도 했었다. 헌법 재판소 재판관이 된 뒤에서도 그는 이슈가 되는 사건마다 독자적인 논리로 눈에 띄는 소수의견을 내놨다.2001년과 2002년 간통죄 위헌 소송이 제기됐을 때 헌재는 각각 8대1과 7대2로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권 재판관은 간통을 국가가 형사처벌하는 것은 성적 예속을 강제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 관련 특별법, 지난해 행정 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 지난 6월 신문법 대부분 조항에 대해서도 모두 위헌 의견을 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프로야구 2006] 아깝다 노히트노런

    ‘무명’의 프로 2년차 신재웅(24·LG)이 데뷔 이후 첫 선발 등판에서 완봉승을 거뒀다. 신재웅은 11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1안타만을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버텨 팀의 6-0 승리를 이끌었다.8회까지 볼넷 2개만을 허용하며 2000년 5월18일 송진우(한화) 이후 6년여 만에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우는 듯했지만 9회 마지막 수비에서 안타를 허용, 아쉽게 꿈을 접어야 했다. 올해 17경기 만에 올린 시즌 첫 승.LG는 3연패에서 벗어났다. 일찌감치 차세대 주자로 낙점받았지만 선발진에 합류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지난 시즌엔 주로 중간계투로 26경기에 등판했고, 투구 이닝은 13과3분의1이닝에 그쳤다. 승수와 방어율도 각각 1승과 7.43으로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1,2군을 오르내렸고,1군에서는 주로 원포인트 릴리프로 나왔다. 그러나 이날 깜짝 선발등판에서 빼어난 투구를 선보임에 따라 선발진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신재웅은 4회까지 단 한명의 선수도 1루를 밟지 못하게 하는 퍼펙트게임을 펼쳤다.5회 김태균을 볼넷으로 내보내 퍼펙트 꿈은 사라졌지만 8회까지 안타를 허용하지 않아 노히트노런을 노렸다. 그러나 9회 선두 타자인 신경현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 완봉승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당한 어깨부상으로 재활훈련을 해오다 지난 10일 올 시즌 첫 출장한 거포 김동주(두산)는 복귀 두번째 경기인 이날 롯데전에서 6회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컴백을 알렸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호남 섭섭하게 한 점 사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10일 광주에서 취임 1개월 기자 간담회를 열어 ‘사죄’의 뜻을 밝히면서 허리를 숙여 절했다. 강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의 전신이었던 정당 시절부터 최근 (한나라당 소속) 광명시장의 호남 비하 발언에 이르기까지 호남의 국민 여러분을 섭섭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당의 최종 책임을 맡은 당 대표로서, 또한 민정당 시절부터 (정치를)시작해 5선의 정치경력을 가진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최적의 책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개인적으로 ‘유신 피해’에 대해 사과한 적은 있으나, 한나라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호남에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한나라당이 호남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청산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당장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은 “형식적인 느낌”이라고 비판하는 등 진정성 여부에 의구심과 함께 경계심을 표출해 주목된다. 강 대표는 이날 “조국 근대화의 업적은 이루었지만 (영·호남)균형 발전이나 인재 발굴에 미흡하고, 차별적인 부분은 없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 아픈 것이 많다.”면서 “5·18(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도 있는데 당에서 누군가 한 번은 털고 가야 한다.”고 사과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발언은 강 대표가 지난 한달 동안에만 벌써 호남을 세 번째 방문하는 등 ‘진한’ 구애 노력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전날에는 전북에서, 이날은 광주에서 각각 당정협의를 열어 “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 돕겠다.”며 본격적 읍소작전도 폈던 그다.이를 반영하듯 강 대표는 “차기 총선 때 비례대표의 30% 정도는 호남 출신으로 기용할 것을 약속한다.”면서 “국회 예결위 간사와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호남에서 정책간담회를 실시하겠다.”며 장밋빛 공약도 내놓았다. 그러나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사과수준이 미미하다.”면서 “내년 대선을 의식한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도록, 한나라당은 낙후된 호남을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광주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강남 아파트 전셋값 무섭네

    강남 아파트 전셋값 무섭네

    서울 강남 아파트 전세시장이 심상치 않다. 매매가는 오름세가 멈칫하고 약세로 돌아섰지만 예년과 달리 아파트 전셋값은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반기부터 세금·대출·재건축 등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가 본격화되고 여름철 비수기까지 겹쳐 매매가는 안정세를 띠고 있지만, 전세값은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이다. ●인기 매물 월세로 돌려 전세 감소 부동산114, 닥터아파트, 스피드뱅크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중순 ‘버블 경고’가 나온 뒤 강남·송파·서초·강동 등 강남 4개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7주째 떨어졌다. 반면 강남구 전셋값 상승률은 7월21일 현재 연초 대비 5.18% 상승했다. 전년 같은 기간 상승률이 1.38%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올랐다. 더욱이 지난 6월부터 오는 8월까지 서울 입주 물량(1만 2224가구)중 22.4%(2736가구)가 강남4구에 몰리는 등 공급은 대폭 증가하는데도 거꾸로 전셋값은 더 오르는 양상이다. 각각 오는 8월과 9월 입주를 앞둔 강남 역삼동의 개나리푸르지오와 개나리래미안은 최근 한 달새 4000만원 이상 올랐다.5월까지도 3억 3000만원 수준이던 개나리푸르지오 33평형 전세가 21일 현재 3억 7000만∼4억원선까지 올랐다. C부동산 관계자는 “신규 대단지 아파트에 대한 선호 현상은 뚜렷하지만 공급은 따라주지 못해 전셋값은 연일 강세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입주한 인근 역삼푸르지오 32평형 전세는 연초 3억 2000만원에서 7월 현재 3억 5000만원으로 올랐다. 지난 6월 입주한 서초구 서초동 롯데캐슬클래식 34평형 전세는 3억 5000만∼4억원선. 지난 2∼3월만 하더라도 3억 2000만원선이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입주 3년차인 인근 서초래미안 34B평형은 지난해 7월 당시 3억원에서 7월 현재 3억 4500만원으로 올랐다. 낡은 소형 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서초구 잠원동 한신8차 17평형 전세는 지난해 1억원에서 1억 4000만원으로 올라 있다. 신한은행 고준석 부동산 팀장은 “올들어 매매값이 급격히 뛰면서 전셋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면서 “집주인들이 인기 매물을 월세로 돌려 그만큼 전세 시장이 줄어들었고,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면 전셋값은 더 오를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강남 집값 ‘무늬만’하락세 강남 지역 집값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어 얼마나 더 내릴 것인지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만 커지고 있다. 재건축의 대명사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이 7월말 현재 10억 5000만원까지 내렸다. 버블 경고가 있기 전인 지난 4월말만 하더라도 13억원에 거래되던 매물이다.10억 2000만원까지 올랐던 31평형은 8억 5000만원으로 조정됐다. 지난 4월 9억원까지 거래됐던 개포동 주공1단지 15평형은 8억원선이 무너진 7억 9000만원에 팔아 달라는 주문이 나와 있지만 찾는 이가 없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5단지에서 최고 11억 6000만원에 호가되던 34평형은 9억 5000만원으로 조정됐다. 일반 아파트도 가격이 떨어지긴 마찬가지. 재건축 뿐만 아니라 서울 모든 지역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도 7주 연속 빠지고 있다.7월 중순 이후 최근까지 서초구 반포동 경남아파트와 한신3차 30평형대는 3000만원,40평형대는 5000만원 가량 빠졌다. 반포동에서 재건축 중인 주공2단지는 모든 평형에서 5000만원 가량 빠졌고, 재건축을 추진중인 1단지는 22평형이 8억원으로 3000만원 가량 떨어졌다. 같은 기간 대치동 개포우성 1차 31평형과 45평형 시세는 각각 전주보다 3200만원과 2500만원이 떨어진 13억 6500만원과 21억원이 됐다. 가격이 연일 빠지는 것은 하반기 부터 각종 부동산 규제가 본격화되는데다 내년부터 1가구2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강화로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수요층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 급매물 더 나와 조정장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그 폭에 대해서는 미미할 것이란 시각이다. 21일까지 최근 연속 6주 동안 서울지역 재건축 아파트 변동률은 1.11% 하락이지만 연초부터 ‘버블 경고’가 나오기 이전인 5월 중순까지의 변동률은 무려 19.98%나 상승했다. 규제와 불안심리로 ‘분위기만’ 내림세라는 얘기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 팀장은 “ 지금은 기본적으로 여름철 부동산 비수기인데다 각종 규제로 불안심리가 커져 시장이 관망장에 빠졌다.”면서 “새학기 수요가 다가와야 향후 하락세 지속 여부를 알 수 있겠지만 강남 선호 현상은 바뀌지 않고 공급 보다 수요가 여전히 많아 앞으로도 크게 내릴 것 같진 않다.”고 전망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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