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 상담창구」 무협 구평회 회장에 듣는다(인터뷰)
◎남북 쌀회담 막전막후와 경협 전망/“김용순등 당실세가 배후 지휘”/평양시민 1백만 식량증산 동원/정무원쪽과 갈등… 전금철로 대표 교체/북,경협에 적극적 자세… 교역 확대 될것/임가공위주 소규모 대북투자 바람직/월드컵 공동개최엔 정치적 결단 필요
남북문제가 여러가지로 잘 풀려가는 듯합니다만.
▲남북간 쌀협상을 두고 북한 권력내의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치열한 암투가 있었습니다.결국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매파가 비둘기파의 의견을 수락했고,나중에는 매파가 협상을 주도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누구를 매파로,누구를 비둘기파로 볼 수 있습니까.
▲북한의 당과 군이 매파죠.이에 비해 세계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실제 살아가는 문제를 다뤄야 하는 정무원쪽이 아무래도 비둘기파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기로는 당초 쌀협상의 북한측 대표는 정무원 사람이었던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누군지 밝힐 수 없지만 그것이 회담 직전에 전금철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남북간 쌀협상타결이 남북경협확대로 이어지리라 보십니까.
▲서명주체의 이름은 정무원 산하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금철 고문으로 결정됐지만 노동당과 군을 대표하는 권력핵심부에서 쌀회담을 적극 지원,타결을 이끌어냈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을 포함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꺼려하던 북한권력이 이번 쌀회담을 계기로 한국정부와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 막후외교 치열
일본이 이번 쌀회담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무역진흥공사가 이 일에 끼어든 것도 그렇고요.
▲김용순 노동당비서가 쌀회담타결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이 사실입니다.남북한은 물론 일본·미국등도 막후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에서 일본대표인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이 김용순비서에게 「남한과의 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남북정부간 대화가 어려우면 준정부기관인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를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김용순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구회장은 이번의 쌀협상이 실질적인 남북간 정부차원에서 타결됐고 북한내 실세인 김용순이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만큼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큰 길에 나선 상태』라고 전제,활발한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 쌀회담을 북·일수교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고 북한도 수교시 받을 수 있는 막대한 배상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남북 쌀제공타결이 자칫 북·일 양국간의 수교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길」 들어선것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정도인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북한이 최근 평양시민 1백만명을 지방으로 보냈습니다.부분적으로 폭동 등을 예방,김정일정권의 공고화를 위한 사전포석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식량증산에 투입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남한측으로부터 식량원조을 받은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질 경우 지도노선(주체사상)에 큰 흠집이 생기지만 이를 각오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쌀제공집행기구가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아닌 민간기업에 돌아갈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북한측은 지난 달부터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접촉창구로 삼기 전에 북경에 나와 있는 우리 대기업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면서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기업들도 쌀제공을 경색된 남북경협의 돌파구로 판단,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정부도 「아무런 조건 없이 쌀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북한측이 와타나베의 의견을 수용,무공에 접근했습니다.이것이 우리정부에 긴급보고되면서 「민간기업을 통한 쌀제공」이 한단계 격상된 것 입니다.「정부차원의 쌀제공」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했다면 정부는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쌀문제로 북한과 막후접촉을 벌인 모기업을 선정,쌀제공창구로 삼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발한 경협이 예상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전망과 우리측의 대책은 어떻습니까.
▲남북경협은 장사라는 기본원칙에 정치(남북대화)와 교육(자본주의화)이라는 두 가지변수가 얽혀 다른 장사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이번의 쌀협상타결로 남북경협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투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남북대화(정치협상)가 진전돼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임금결제 등에 관한 문제가 타결돼야 본격적인 경협이 가능합니다.
○이기주의 버려야
현재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이 과열경쟁입니다.최근 전경련이 남북경협특별위원회를 가동,대북투자시 과열경쟁와 중복투자를 막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기업들이 소아적인 이기주의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쌀회담타결로 북·일간 급속한 관계진전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은 사실 한국쌀보다 일본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물량(30만t)도 한국보다 많고 북·일수교에 앞서 배상금으로 미리 받았다고 선전할 수 있어 김정일체제에 타격도 훨씬 적다는 이유지요.일본도 북·일수교를 무라야마정권의 당면과제로 설정,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즉 쌀을 지렛대로 수교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북경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북한도 수십억달러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붕괴직전까지 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는 복안이 있을 겁니다.결국 양국은 수교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쌀문제를 효과적으로 이용,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양국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던 한국쌀 제공문제가 타결된 만큼 북·일관계는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쌀에 더 관심
남북관계의 개선이 예상된다면 2002년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서 월드컵 남북공동개최의 가능성이 있습니까.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공동개최는 세계축구연맹(FIFA)의 규약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과거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등 민족의 이름으로 FIFA의 규정을 뛰어넘은 전례도 있습니다.개최형식등은 우리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일입니다.유치신청서의 최종마감일(9월말)까지 남북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유치위원장으로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면 「분단된 상태에서 공동개최라는 거사를 이룩해야 전세계에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냐.또 역사에 기록될 이 일을 해내야 후세에 떳떳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공동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신청서를 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겠습니다.
무협의 5만회원 가운데 남북교역을 희망하는 기업이 많은데 지원책과 경협의 추진방향은 어떻습니까.
▲무협은 현재 정부를 대신한 「남북교역상담창구」로 지정돼 회원사에게 남북교역절차와 관련법규 및 서식작성방법 등에 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부산과 대구·광주지부 등 10개 지부에 상담요원 1명씩을 파견,지원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임가공 위주의 소규모투자입니다.
○북,민간원칙 불변
이를 통해 북한경제도 이해하고 신뢰도 쌓아 대규모투자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야 합니다.남한기업이외국기업의 선점을 우려하지만 사실 북한은 「황금알을 낳은 투자지」도 아니고 구매력을 갖춘 시장도 아닙니다.남북관계의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경협은 남한정부를 배제하고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의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의 개선이며 정부차원에서 경제적인 안전장치를 만들 때까지 임가공 위주의 교역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