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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B를 열다] 1969년 완공되기 직전의 금화시민아파트

    [DB를 열다] 1969년 완공되기 직전의 금화시민아파트

    주거 환경을 단기간에 개선하고자 1960년대 말에 지었던 서울의 시민아파트들은 대부분 다 헐렸지만 아직도 일부는 역사 유적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서대문구 천연동과 냉천동의 금화시민아파트다. 남아 있는 시민아파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금화아파트의 입주식은 1969년 4월 21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는데 사진은 그해 완공 전의 모습이다. 그러나 수천명이 참석했던 입주식은 부실공사의 공포로 곧 악몽으로 바뀌고 만다. 저곳은 안산 줄기인 야산의 정상과 가까운 곳인데, 당시 산꼭대기에까지 들어서 있던 불량 주택들을 철거한 자리에 그대로 아파트를 지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와대에서 잘 볼 수 있도록 일부러 높은 곳에 지었다고 한다. 금화아파트는 당초 모두 3만㎡가 넘는 부지에 112개 동을 지으려 했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가 터지면서 시민아파트 건립 사업이 중단되고 금화아파트의 일부 동을 포함해 부실하게 지어진 아파트들은 도리어 철거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실 판정을 받은 금화아파트의 철거는 중간중간 계속돼 199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 서울에는 32개 지구에 430여개 동의 시민아파트가 남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재개발되거나 헐려 공원으로 바뀌었다. 중구 회현동의 회현시민아파트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배경 장소였다. 남산에 밀집해 있던 무허가 주택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준공된 회현시민아파트는 당시 최초로 중앙난방 시설을 갖추었고 인기 연예인들이 거주해서 ‘연예인 아파트’로 유명했던 적도 있다. 동숭, 낙산, 김포, 본동, 연희A, 홍제, 청운, 청파, 도봉, 숭인, 영흥, 창신지구 등의 시민아파트는 공원이 되었다. 녹번, 연희B, 삼일, 월곡지구의 시민아파트는 재건축되었다. 금화아파트도 1990년대 말 재건축이 확정되어 거의 모든 동이 헐렸고 그 자리에 일반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재개발 지역인 서울 북아현3구역에 포함된 금화아파트 두 개 동은 그대로 남아 있다. 붕괴 위험이 큰 건물로 지정되었지만 옮겨 갈 집이 없는 10여 가구의 주민이 아직도 폐허가 다 된 아파트를 지키고 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9년 12월 새 단장 후의 김포가도

    [DB를 열다] 1969년 12월 새 단장 후의 김포가도

    1954년 여의도비행장이 국제공항으로서 서울의 관문이 되었다가 김포공항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 때는 1958년이었다. 공항에서 서울까지 드나드는 도로가 반드시 필요한데 처음에는 영등포와 김포 사이에 국도가 있었다. 이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 공사를 1961년 8월 1일 시작해 1963년 10월 31일 준공을 보게 되었다. 양화대교에서 등촌동을 지나 강서구청 입구 사거리를 거쳐 김포공항 입구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지금은 공항대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총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 2억여원이 들었는데 1960년 3·15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당선된 이기붕씨의 부정축재 환수금이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당시에는 주변이 개발되지 않았고 초가집이나 양철집 등 불량주택들이 있어서 당국은 미화 작업과 확장 공사를 계속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포가도는 대중가요 소재로도 애용되었다. 1974년 남진의 ‘김포가도’라는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렇게도 떠나기를 아쉬워한 사람을 보내고 돌아오는 김포가도/ 창밖을 스쳐가는 싸늘한 바람 /쌓이고 쌓였던 지난 사연 구름 속에 사라졌네/ 수많은 별 같은 추억을 안고 쓸쓸하게 돌아오는 밤 깊은 김포가도’ 같은 해에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이라는 노래도 나왔다. ‘하고 싶은 말들이 쌓였는데도 한마디 말 못하고 헤어지는 당신이/ 이제 와서 붙잡아도 소용없는 일인데/ 구름 저 멀리 사라져 간 당신을 못 잊어 애태우며/ 허전한 발길 돌리면서 그리움 달랠 길 없어 나는 걸었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9년 잔디밭에 앉아 대화하는 대학생들

    [DB를 열다] 1969년 잔디밭에 앉아 대화하는 대학생들

    1969년 10월의 어느 날,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지금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학생이 대학에 들어갔던 그 시절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입시 지옥의 문을 탈출했다는 것, 성인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다방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술과 담배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 미팅을 한다는 것 등등. 무엇보다 캠퍼스의 낭만은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대학생은 한마디로 낭만의 자유인이었다. 시간이 나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잔디밭에 앉아 시국을 논하고 철학을 이야기했다. 누구나 가난했던 때 대학생들의 주머니도 늘 비어 있었다. 시골 출신 학생들은 소를 팔아 등록금을 댄다고 해서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에 빗대어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렀다. 요즘같이 아르바이트 거리도 많지 않았고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란 가정교사가 거의 유일했다. 그마저 떨어지면 돈을 적게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가난했던 대학생들은 물들인 군복 상의를 입고 군화를 끌고 다녔다. 대학을 왜 상아탑이라 할까. 상아탑은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고고한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19세기의 프랑스 시인·극작가였던 알프레드 드 비니를 평론가 생트 뵈브가 평할 때 사용한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 말이 발전하여 현재는 대학 또는 대학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명창 박녹주의 1969년 모습

    [DB를 열다] 명창 박녹주의 1969년 모습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시대의 명창 박녹주(1905∼1979)의 1969년 10월 모습이다. 6·25 때 한쪽 눈을 잃어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경북 선산 출신인 박녹주는 일제강점기부터 최고의 명창으로 군림했고 대구 달성권번과 서울 한남권번의 명기(名妓)로 이름을 날렸다. 동편제의 거목으로 인간문화재 5호인 그녀는 판소리 춘향가와 흥보가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굴곡진 삶은 판소리 서편제처럼 서글펐다. 특히 그녀는 ‘봄봄’ ‘동백꽃’으로 유명한 세살 아래 소설가로 연희전문을 다녔던 김유정(1908~1937)으로부터 광적인 사랑, 요즘 말로 하면 지독한 스토킹을 받은 일화로 유명하다. 녹주에게 첫눈에 반한 유정은 밤마다 연서를 써 보냈다. 편지를 아무리 보내도 답장이 없자 유정은 녹주의 집을 찾아가 대성통곡을 하기도 한다. 녹주가 소리하는 사람이 학생과 연애를 할 수는 없다고 하자 유정은 학생과 소리하는 사람이 사랑해서 안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냐고 대들며 사랑이란 국경이 없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유정은 늘 그녀의 공연장을 찾아가 밖에서 기다렸지만 녹주는 만나주지 않았다. 녹주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소실이 되어 있어 유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유정은 혈서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녹주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할 정도로 병적으로 변해갔다. 연모의 감정이 복수심으로 바뀐 것이다. 유정의 소설 ‘생의 반려’와 ‘두꺼비’는 그와 녹주의 관계를 소재로 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0년대 중산층 가정

    [DB를 열다] 1960년대 중산층 가정

    1968년 5월 2일 촬영한 어느 중산층 가정의 거실 풍경이다. 소파와 탁자가 있고, 부모와 아이들은 신문과 잡지를 읽고 있다. 도자기와 액자가 놓인 장식장도 있다. 먹고살기도 어려웠던 당시 이런 서양식 거실을 갖춘 양옥에서 살았으면 부유층 집안이었다. 아이들은 넷이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평균 네댓 명의 자녀가 있었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전후에 태어나 현재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소위 베이비붐 세대들이다. 이런 부유층의 주택은 서울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에만 존재했다. 그렇다면, 당시에 일반 가정의 생활상은 어떠했을까. 한국식 주택은 방과 부엌, 마당, 화장실이 서로 분리돼 있었다. 두세 개의 방이 있고 거실 대신 마루가 있고 마루와 마당은 벽으로 막혀 있지 않다. 부엌은 마당으로 나가야 들어갈 수 있고 음식을 해서 방으로 나른다. 화장실도 마당의 한쪽에 있는 재래식이다. 마당에 수돗가나 우물이 있어서 세탁과 세수를 밖에서 한다. 이런 전통 가옥은 1960년대 들어 서서히 변모하기 시작한다. 서양식 주택 설계로 방과 거실, 화장실, 부엌이 모두 한 평면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실내에 있는 입식 부엌과 싱크대는 여성들에게 말할 수 없는 편리함과 노동의 절감을 선사했다. 이런 편리함의 추구는 아파트 문화를 낳았다. 한국인들의 유별난 아파트 사랑은 주택 부족을 단기간에 해소하는 동시에 전통주택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장점 때문이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8년 여름철 앞두고 서울시청 앞서 열린 방역차량 발대식

    [DB를 열다] 1968년 여름철 앞두고 서울시청 앞서 열린 방역차량 발대식

    지금도 전염병 발생이 우려되는 곳에서는 방역 차량이 다니기는 하지만 그렇게 흔하게 볼 수는 없다. 위생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던 시절, 방역차가 수시로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연기를 내뿜었다. 파리, 모기야 요즘도 있지만 그 시절에는 여름철이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들끓었다. 그럴 때면 방역차가 어김없이 나타났고, 한번 소독을 해 주고 가면 왠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잠시 맡아도 별 이상한 느낌이 없는 이 냄새를 맡고도 파리, 모기가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도 방역차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방역차가 나타나면 으레 아이들이 몰려들어 차량 꽁무니를 따라다니는가 하면 연기 속으로 들어가 보곤 했다. 약품 냄새가 나는 연기를 내뿜는 방역 차량의 뒤를 아이들은 왜 그렇게 쫓아다녔을까. 방역차의 연기는 살충제를 섞은 경유를 태울 때 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살충제 냄새가 아니라 경유 타는 냄새를 쫓아다닌 것이다. 경유나 휘발유가 타는 냄새는 묘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거기에다 시골 아이들은 자동차를 구경하기 어려웠을 터이니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자동차 자체가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또 연기 속에 숨었다 나왔다 하며 숨바꼭질하듯 방역차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았던 듯하다. 방역차를 따라가다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연기에 가려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뒤에서 돌팔매질을 장난으로 하는 녀석들도 있다. 연기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길옆의 웅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전봇대나 마주 오는 자전거와 부딪쳐 다치는 일도 다반사다. 방역차 연기가 멈추고 나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 어떤 아이는 머리에 혹이 나 있고 바지에 진흙을 뒤집어쓴 아이도 있다. 연기를 잔뜩 마신 녀석은 비틀거리기도 하고 구토를 해대기도 한다. 사진은 1968년 4월 20일 여름철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방역차 발대식이다. 오른쪽 멀리 덕수궁이 보인다. ‘전염병을 박멸하자’라는 글씨가 적힌 피켓이 보이고 왼쪽 아래에는 ‘쥐를 잡자’ ‘오후 7시 쥐약을 놓자’라는 글귀도 보인다. 식량이 부족하던 때, 곡식을 축내는 쥐잡이는 방역보다 더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아일랜드 포일호, 고화질 ‘호수 괴물’ 포착

    아일랜드 포일호, 고화질 ‘호수 괴물’ 포착

    아일랜드 포일(Foyle) 호수에서 선명한 괴생명체 영상이 포착돼 화제다. 이 영상은 북 아일랜드에 있는 포일에서 세 명의 대학생들이 수업과제의 일환으로 단편영화를 촬영하던 중에 포착된 것이다. ‘Monster in Lough Foyle!’(포일호수의 괴물) 제목의 1분 정도의 이 영상에는 잔잔한 호수 위로 커다란 괴생명체가 보트 주위에서 빠른 속도로 헤엄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한 코널 멜락키(Conall Melarkey)란 이름의 학생은 “마치 네스호의 괴물처럼 보인다.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생각할 수 없었지만 대단한 걸 보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양복을 입고 낚시를 하고 있지만 이는 ”영화를 찍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며 이 영상은 실제 장면을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상을 접한 사람들이 ”괴생명체가 큰 물고기나 고래, 돌고래 혹은 다른 해양 동물일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지만 포일호엔 고래가 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디스커버리 뉴스 캡처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DB를 열다] 1969년 3월 1차 완공된 3·1 고가도로

    [DB를 열다] 1969년 3월 1차 완공된 3·1 고가도로

    서울 마장동과 도심을 잇는 3·1고가도로는 1969년 3월 22일 1차 구간이 준공됐다. 준공 행사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서울시장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인 사업이었다. 근처에 3·1빌딩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전체 도로는 1976년 8월 완공됐으며 폭이 10.3~16m, 연장 5737m였다. 주변에 판잣집이 즐비하던 청계천의 복개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58년이었다. 1961년까지 광교에서 오간수교 사이가 복개되었고 1965년부터 1978년 사이에 청계천 9가 마장철교까지 시멘트로 덮였다. 복개된 청계천 위에 고가도로를 건설한 첫째 목적은 김포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와 워커힐호텔까지 정차 없이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도심고속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워커힐 행차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사진에서 보듯이 청계천 하류 쪽에서 3·1고가도로는 중구 충무로 2가 세종호텔 앞을 거쳐 남산1호 터널로 연결되었다. 이 고가도로는 휘어지는 곡선 도로였기에 신문사들은 차량 불빛이 꼬리를 무는 풍경을 야간 촬영을 해서 연말 신문의 송년호 사진에 자주 실었다. 이 고가도로는 통행량 분산에 도움을 주었지만 도심을 관통했기 때문에 차량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3·1고가도로의 운명도 끝이 나 2006년 7월 1일 철거되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8년 교통사고 낸 ‘하동환 버스’

    [DB를 열다] 1968년 교통사고 낸 ‘하동환 버스’

    서울의 어느 육교 아래 사고를 내 찌그러진 ‘하동환 버스’가 서 있다. 1968년 3월 25일 촬영한 사진이다. 종로와 신촌을 오가는 버스의 앞유리창 아래에 하동환 버스임을 알려주는 체크 표시 위의 H자가 보인다. 뒤에 오는 버스도 하동환 버스다. 하동환은 ‘드럼통 버스왕’이라 불렸다. 1930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때부터 자동차 정비공장의 기술자로 일하며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다. 그가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를 설립, 미군이 남기고 간 폐차 엔진에 드럼통을 두드려 펴서 차체를 붙인 버스를 선보인 것은 1955년이었다. 1962년에 하동환은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해 본격적으로 버스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하동환 버스는 1966년 브루나이로 처음 수출되고 이듬해부터는 베트남으로도 수출되어 현대자동차의 포니보다 10년 앞선 한국 최초의 자동차 수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동환은 1974년에 지프를 개발하고 소방차 생산업체로 지정된 1977년에는 회사명을 다시 동아자동차로 변경했다. 1984년에는 코란도를 출시한 ㈜거화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지만 1986년 동아자동차를 자동차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쌍용그룹에 매각한다. 결국 쌍용자동차의 뿌리는 하동환 버스인 셈이다. 이후 그는 트레일러를 생산하는 동아정기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원그룹을 세워 장학회와 미술관, 한원컨트리클럽(골프장) 등을 운영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정보마당] 구인·구직·할인·행사·교육소식

    [구인·구직]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직을 채용한다. 원서 접수 기간은 20일까지다. 응시 원서는 연구원 홈페이지(www.kida.re.kr)를 통해 접수하고 각종 증빙 서류는 우편이나 방문으로 접수해야 한다. 총무과 (02)961-1262. ●법제처 법령 정비 및 기획 정비 업무를 맡을 계약직 연구원을 모집한다. 민법, 행정법, 상법 또는 경제법에 정통한 사람을 우대한다. 원서 접수는 7일까지다. 서류심사 합격자는 필기 및 면접시험을 보게 된다. 원서 접수는 이메일(kmkg@korea.kr)로만 가능하다. 법령정비담당관실 (02)2100-2512.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기술개발 투자관리자(MD: Managing Director)를 모집한다. 채용 분야는 주력산업MD와 에너지산업MD다. 소관 분야 연구 개발(R&D) 정책 발굴, 정략 수립, 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임용 기간은 3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원서 접수 기간은 10일까지다. 채용담당자 (02)6009-8735. ●한국콘텐츠진흥원 금융 전문가와 신용평가 전문가, 공제조합 전문가를 모집한다. 콘텐츠공제조합 설립 준비를 위한 전문 인력이며 신설 법인에서 고용 승계가 가능하다. 원서 접수는 16일까지이며 접수 방법은 워크넷(www.work.go.kr)을 통해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인사총무팀 (02)3153-1156. ●한국어촌어항협회 청년인턴을 채용한다. 선박 사무행정 업무를 맡는다. 원서 접수는 12일까지이며 협회 홈페이지(www.fipa.or.kr)를 통해 접수가 가능하다. 전략기획실 인사담당 (02)6098-0716. ●국회사무처 방송국에서 근무할 일반계약직공무원(기획편성과장)을 채용한다. 국회방송 업무계획의 수립과 조정, 프로그램 기획·편성 등의 업무를 맡는다. 원서 접수는 8~15일이며 국회채용시스템(gosi.assembly.go.kr)을 통해 응시가 가능하다. 인사과 고시담당 (02)788-2081. ●국립생태원법인화추진단 생태교육 프로그램의 교육 보조강사를 모집한다. 모집 분야는 유아·초저교육과 초고·중등교육이다. 원서 접수 기간은 13일까지이며 우편이나 방문으로 접수할 수 있다. 근무지는 충남 서천군 소재 국립생태원이다. 운영관리팀 (041)950-5355.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기술직 직원을 채용한다. 승강기 법정검사를 담당한다. 계약 기간은 1년으로 연장이 가능하다. 원서 접수는 상시이며 워크넷(www.work.go.kr)을 통해 가능하다. 인사후생실 (02)3497-7478.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7월 개원 예정인 국립김제청소년농업생명체험센터와 국립영덕청소년해양환경체험센터에서 근무할 직원을 채용한다. 모집 분야는 영양사, 조리사, 간호사 등이다. 원서 접수 기간은 15일까지이며 우편 또는 방문으로 접수할 수 있다. 사무처 경영관리부 (02)330-2822. ●현대자동차 전략지원, 연구·개발(R&D), 디자인 분야 인턴사원을 모집한다. 4년제 정규대학 3학년 2학기 이상 재학생 가운데 2014년 1월이나 7월 입사 가능자면 된다. 학점, 영어 점수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지만 R&D는 이공계 전공자에 한한다. 인턴 실습 우수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접수는 2일까지 채용 홈페이지(recruit.hyundai.com)에서 받는다. ●신한금융투자 본사와 지점에서 근무할 인턴사원을 뽑는다. 4년제 정규대학 이상 졸업자 및 2014년 2월 졸업 예정자면 학점, 전공 제한 없이 지원 가능하다. 인턴 수료 뒤 최종면접을 거쳐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5일까지 채용 홈페이지(recruit.shinhaninvest.com)에서 접수하면 된다. ●리빙프라자 영업 부문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지원하려면 4년제 정규대학 2013년 졸업(예정)자로 전 학년 평점 평균 3.0을 넘어야 한다. 2일까지 홈페이지(www.livingplaza.com)에서 지원할 수 있다. ●푸르덴셜생명보험 영업추진, 시스템기획 등 6개 분야에서 신입 및 경력사원을 뽑는다. 신입은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 또는 8월 졸업 예정자로 토익 800점 이상자, 경력은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로 3년 이상 경력 보유자면 지원 가능하다. 접수는 홈페이지(prudential.scout.co.kr)에서 5일까지 하면 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행정, 토목, 건축 등 9개 분야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영어, 중국어, 일어 중 1개 이상의 공인 어학성적(영어는 토익 기준 650점 이상, 일본어는 JPT 650점 이상, 중국어는 신HSK 5급 180점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평점 평균 3.0 이상자(대졸 기준. 고졸은 전 학년 전 과목 내신 평균 3.00등급 이상자)로 관련 전공자나 관련 기사 자격 보유자면 지원할 수 있다. 행정업무는 전공 제한이 없다. 접수는 채용 홈페이지(airport.career.co.kr)에서 3일까지 받는다. ●오리온 오리온,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에서 신입사원을 모집한다. 4년제 정규대학 이상 졸업자 및 8월 졸업 예정자, 토익 기준 700점 이상자면 지원할 수 있다. 오리온 법무는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 오리온 영업은 자동차운전면허증 1종 소지자에 한한다. 접수는 7일까지 채용 홈페이지(recruit.orionworld.com)에서 가능하다. [할인] ●홈플러스 12일까지 온라인 종합몰(www.homeplus.co.kr)에서 ‘명품 슈퍼위크’ 할인행사를 연다. 페라가모, 펜디, 에트로 등 고가 패션 브랜드 제품 100여종을 시중가보다 20∼70% 싸게 판다. 고객 부담을 덜기 위해 신한·삼성·KB카드로 10만원 이상 결제 시 6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제공한다. ●롯데마트 1~5일 미국 산지로부터 항공 직송한 ‘활 랍스터’(500g 내외·1마리)를 50% 저렴한 1만 4900원에 판매한다. 시중에서 파는 500g 내외 캐나다산 활 랍스터(3만원대)의 절반 수준이며 국내산 암꽃게보다도 100g당 가격이 40%가량 저렴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로 관세율이 낮아졌고 산지 수입업체와의 직거래로 유통단계를 줄였다. ●더페이스샵 8일까지 전국 매장에서 전 구매 고객에게 품목별로 20∼50% 할인 혜택을 준다. 50% 할인 품목은 수분크림 베스트셀러 ‘치아씨드 피지 잡는 수분크림 대용량’, 자외선 차단제 전 품목, ‘갈아 만든 마스크 시트’ 전 품목 등이다. ●롯데면세점 6월 13일까지 전 지점에서 ‘더 롯데 세일’을 진행한다. 아르마니, 폴스미스 등의 가방·의류는 최대 70%, 향수·화장품은 최대 30% 할인 판매한다. 본점·잠실점·코엑스점에서 신한카드로 500달러 이상 결제하면 금액대별로 스마트 선불카드를 증정한다. 잠실점·코엑스점에서 롯데카드로 1200달러 이상 구매하면 오페라 리골레토 티켓 2매를 준다. 화장품을 1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 10명을 추첨해 제주도 고급 휴양지인 아트빌라스 무료 2박 숙박권과 왕복 항공권을 제공한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4일까지 매일 오후 3∼5시를 ‘해피아워’로 정해 프라푸치노를 반값에 판매한다. 프라푸치노는 얼음을 갈아 만든 스타벅스의 대표 여름 메뉴로 모두 20여종이 출시됐다. 해피아워에 바나나 프라푸치노를 뺀 모든 프라푸치노를 할인하며 1명당 2잔까지 주문할 수 있다. 프라푸치노의 정상 판매가격은 ‘톨사이즈’ 기준 제품별로 4800∼6100원이다. ●W몰 3일까지 ‘가정의 달 선물 상품전’을 열어 의류를 최대 80% 할인한다. 스파오 등의 티셔츠, 점퍼, 바지 등을 1만원 균일가로 판매하고 코데즈컴바인 원피스 500점을 2만 9000원에 한정 판매한다. 베네통키즈와 톰키드 등 아동복을 5000∼9000원에, 핑·슈페리어·아놀드파머 등의 골프복을 80% 저렴하게 판다. ●에뛰드하우스 4일까지 최대 50%의 할인 혜택을 주는 ‘스위트 빅 파트’ 행사를 진행한다. 면세점을 제외한 전국 매장 및 에뛰드하우스 온라인 쇼핑몰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신제품 향수 ‘미니미 비 마이 프린세스’를 제외한 전 품목이 할인 판매된다. 에뛰드 핑크 멤버십 회원이면 누구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행사] ●G마켓 20일까지 ‘글로브’(GLOVE) 봉사단 20기를 모집한다.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없는 20~30세의 G마켓 고객이면 누구나 홈페이지를 통해 응모할 수 있다. 국내외 100명씩 선발하며 국내 봉사단은 다문화가정 교육 봉사를, 해외 봉사단은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등 5개국에 파견된다. 최종 합격자는 국내에서 7월 8~17일, 해외에서 7월 22일~8월 2일에 활동하게 된다. ●아이배냇 신제품 ‘아이배냇 Only12(온리트웰브)’ 출시 기념 퀴즈 이벤트를 24일까지 진행한다. 아이배냇 홈페이지(www.ivenet.co.kr)에 공지된 문장 중 빈칸에 알맞은 단어를 채우면 된다. 퀴즈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선정된 1등에게 대형마트 상품권 10만원권, 2등에게 모바일 상품권 5만원권, 3등에게 신제품 ‘아이배냇 Only12’ 1캔(800g)을 증정한다. 당첨자 발표는 31일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개별 통지된다. ●존슨즈베이비 ‘존슨즈베이비 내추럴’ 출시를 기념해 6월 30일까지 ‘좋은 엄마와 함께하는 내추럴 다이어리’ 캠페인을 진행한다. 다음 달까지 총 600명을 홈페이지(www.johnsonsbabynatural.co.kr) 및 주요 육아 커뮤니티를 통해 모집한다. 참여자 중 300명은 ‘친환경 염색물감을 사용한 오가닉 셔츠 DIY’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며 ‘존슨즈베이비 내추럴’ 정품 2종, 프리미엄급 호텔의 가족 숙박권, 오가닉 티셔츠 등이 들어 있는 ‘내추럴 박스’를 선물받는다. 또 전원에게 ‘존슨즈베이비 내추럴’ 정품 2종 등이 제공된다. ●롯데슈퍼 창립 13주년을 기념해 1일부터 일주일간 숫자 1과 3을 이용한 할인 행사를 한다. 오징어 한 마리 1000원, 사과는 한 봉지 가득 담아 1만원에 판매한다. 오이는 개당 300원, 동해 전복은 한 마리에 3000원이다. ●아벤트코리아 이탈리아 유아용품 브랜드 ‘깜’(CAM) 론칭 기념으로 31일까지 이벤트를 진행한다. 그레이튼 홈페이지(www.greaten.co.kr)를 방문해 브랜드 퀴즈 소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고 해당 인터넷 주소와 함께 정답을 댓글로 적으면 된다. 추첨을 통해 106명에게 제주 해비치 호텔&리조트 2박 숙박권, 구찌 베이비 스카프 등 푸짐한 상품을 준다. 유모차를 구입하면 적립금 5%와 함께 ‘스킨베리 나뛰르 썬로션’과 ‘쏭레브 썬프로텍션’도 증정한다. 당첨자는 6월 10일 홈페이지 발표. ●빙그레 1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과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제(APEC) 나루공원에서 제28회 어린이 그림 잔치를 연다. ‘상상의 날개를 활짝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주제로 유치부, 초등 저학년부, 초등 고학년부 등 3개 부문으로 나눴다. 참가 어린이 가운데 총 1500명에게 장학금과 부상을 수여한다. 희망자는 전화(02-2253-1121) 또는 홈페이지(art.bing.co.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참가비는 무료다. [교육소식] ●청심 ACG수학대회 청심국제중·고등학교는 학년 통합 팀 프로젝트 형식의 ‘제3회 청심 ACG수학대회’를 6월에 개최한다.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초등부와 중등부로 나눠 예선 및 본선을 진행한다. 예선은 6월 22일 전국 지정 고사장에서 개인별 지필 평가로 진행되고, 본선은 예선을 통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7월 20일 청심국제중·고에서 학년을 통합한 팀 프로젝트 방식으로 치러진다. 본선에서는 다양한 수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미션형 문제를 해결하고 발표하는 과제가 제시된다. 대상·금상·은상·동상·장려상·특별상·성적우수상 등이 수여되며 수상자에게는 주최 기관 명의의 상장과 상패, 부상이 주어진다. 접수 기간은 1일부터 6월 9일까지이며 ACG에듀 홈페이지(www.acgedu.co.kr) 또는 전국 휴브레인 가맹점에서 신청할 수 있다. 참가비는 4만원이다. 문의 (02)721-5599. ●학교폭력 예방 콘서트 서울시교육청은 경찰대와 함께 매주 일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학교폭력 예방 콘서트’를 개최한다. 경찰교향악단과 의장대 및 체육단의 재능 기부로 진행되며 7~8월 혹서기를 제외하고 10월 말까지 매주 일요일 90분씩 2회(오후 1시·3시) 공연이 열린다. 일반 시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예방 100만인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된다. 문의 (02)399-9541. ●한의학 만화 출간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한의학 만화 ‘한방에 산다’를 출간했다. 사상의학, 한의학 위인들, 한의학의 오해와 진실 등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인 한의학을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도록 만화로 풀어냈다. 주인공인 한의사 장용한과 초등학생 강으뜸이 불의의 사고로 서로 몸이 바뀌게 되면서 한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몸이 바뀐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의학에 대한 지식이 쌓일 수 있도록 했다. 1만 6000원. 문의 (042)868-9631. ●홈스쿨링 강의 대안교육연대는 11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서울 마포구 공간민들레에서 ‘홈스쿨러 부모들을 위한 기획 강좌’를 실시한다. 홈스쿨링을 통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경험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열리는 행사다. 신호승 부모교육원 추진위원장이 ‘홈스쿨링 부모 되기’에 대한 강의도 진행한다. 홈스쿨러 청소년 공연, 홈스쿨러 가정과의 대화 시간 등도 마련된다. 교육비는 1만 5000원. 문의 (010)2490-7933. ●자녀학습 확인 학부모앱 출시 영어교육 전문기업 윤선생이 ‘스마트베플리(SMART BEFLY) 학부모앱’을 출시했다. 이 애플리케이션(앱)은 윤선생영어숲과 우리집앞영어교실에서 학습하는 자녀의 학습 상황을 학부모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이다. 자녀의 학습내용과 학습시간, 단어·문장시험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자녀가 스마트베플리로 녹음한 음성도 들어볼 수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등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체험 버전으로 별도의 가입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윤선생 회원 학부모는 회원 이름과 회원번호(7자리)를 입력하면 이용할 수 있다. 문의 1588-0594.
  • [DB를 열다] 1968년 광화문 복원 기공식

    [DB를 열다] 1968년 광화문 복원 기공식

    사진은 1968년 3월 15일 거행된 광화문 복원 기공식 장면이다.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진 옛 중앙청 건물이 보이고 건물 벽에는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글씨가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광화문은 전쟁과 침략으로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된 이 문이 광화문이라 명명된 것은 1425년 세종 7년 때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서였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에 타 270여년간 방치되었다. 그랬다가 1864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광화문을 다시 세웠다. 광화문은 다시 수난을 겪는다. 한일병합 후 일제는 1927년 궁궐 건물들을 헐어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을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 존재 가치를 상실시켰다. 설상가상으로 6·25전쟁 동안에 광화문은 폭격을 받아 목조 부분이 불에 타고 말았다. 이를 1968년에 다시 건립하게 된 것이다. 석축은 그대로 썼지만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필체로 쓰고 상부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했으며 총독부 건물의 축에 맞춰 짓는 등 겉모양만 복원했다는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이를 바로잡고자 2006년 12월부터 1960년대에 세운 광화문을 다시 뜯어 복원 공사를 해 2010년 8월 비로소 경복궁의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광화문 편액(扁額)도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으로 있으면서 서사관(書寫官)으로서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되살렸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미셸 오바마 닮고 싶어…美서 팔뚝 성형 인기

    미셸 오바마 닮고 싶어…美서 팔뚝 성형 인기

    미국 여성들은 미셸 오바마 영부인의 탄탄한 팔뚝을 가장 부러워하고 있으며 그런 팔뚝을 얻기 위한 성형 수술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고 29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미국 성형외과학회(ASPS)에 따르면 2000년 이후 급증한 팔뚝 성형은 지난해 미국 여성 1만 5000명 이상이 받았으며 총 수술 비용은 6100만 달러(약 672억 원)를 넘어섰다. 또한 팔뚝 수술은 40대 이후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으며 지난해에는 남성 수백 명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레고리 에반스 미국 성형외과학회 회장은 “일반적으로 여성은 팔뚝을 더 신경 쓰는 데 그 부분의 살을 없애기 위해 수술까지도 고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겉으로 알 수 없지만, 유명인사를 따라 하길 원하는 심리나 그런 사람처럼 탄력적인 팔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학회가 공개한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여성이 가장 부러워하는 팔은 1위가 미셸 오바마 영부인이었고 2위는 근소한 차이로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이 꼽혔다. 데이비스 리스 미국 성형외과학회 공교육위원회 위원장은 “팔 수술은 팔꿈치부터 겨드랑이까지 절개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고 흉터가 남지만, 팔 모양이 좋아진다면 훌륭한 수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Wikimedia Commons(By Joyce N. Boghosian, White House photographer)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서강대 강의실 교육용으로 등장한 TV

    [DB를 열다] 1967년 서강대 강의실 교육용으로 등장한 TV

    사진은 1967년 4월 서강대학교에서 국내 처음으로 텔레비전 수상기를 활용해 강의를 하는 모습이다. 당시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선은 영어 회화 교육에 TV를 이용하고 점차 생물학이나 물리학 강의로 활용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고 대학 측은 밝히고 있다. 요즘 초·중등학교 교실에서도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영상 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서강대가 한 셈이다. 그전에도 시청각 교실이 대학에 설치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녹음기를 틀어주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대형 TV를 설치함으로써 큰 강의실의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도 화면을 통해 큰 어려움 없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영상 강의를 하려면 녹화를 해야 하는데 서강대 교수들이 ‘실용 미어’라는 책을 교재로 하여 영어회화 테이프 제작에 참여했다고 되어 있다. 사실 일반화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도 녹화기인 VTR(video tape recorder)이 있었다. 서강대에서 쓴 녹화기는 ‘암펙스 7000’이었다. VTR은 필름이 아닌 자기테이프를 기록 매체로 하여 영상과 음성을 기록하고 재생하는 녹화기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처음 만든 회사가 미국의 암펙스사였고 그때가 1956년이었다. 서강대에 이어서 경희대도 영상 교육을 하였고, 이화여대도 1970년 11월 텔레비전 방송 설비를 갖춘 시청각교육원을 열었다. 공중파를 이용한 본격적인 교육방송은 1976년에 시작됐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남산 야외음악당 유세장에 모인 인파

    [DB를 열다] 1967년 남산 야외음악당 유세장에 모인 인파

    몇십년 전과 비교하면 대통령 선거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유권자들을 직접 보지 않고도 공약이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미디어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 후보들은 넓은 곳에서 수십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벌이는 선거 유세로 세몰이를 하고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서울에서는 한강 백사장, 효창운동장, 장충단공원이 유세장으로 주로 사용됐다.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1956년 신익희 당시 민주당 후보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30만명의 청중을 불러 모은 유세장이 한강 백사장이다. 지금은 한강 제방공사로 동부이촌동의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사진은 1967년 4월 22일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보선(오른쪽에서 두 번째) 당시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남산 야외음악당 앞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멀리 서울 도심과 북한산이 보인다. 이날 모인 청중은 약 25만명이나 되었다. 당시 서울의 가구 수는 75만 가구쯤 되었으니 세 집에 한 집은 유세장에 갔다는 말이 된다. 음악당 자리로는 부족해 어린이 놀이터와 근처 숲 속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서울시는 야외음악당을 유세장으로 허가해 주는 것이 음악인들의 정서에 반하고 난간이 많아 추락 위험이 있다며 난색을 보이다 결국 허가해 주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유세장 찾은 촌로

    [DB를 열다] 1967년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유세장 찾은 촌로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은 노인의 모습은 1960년대 농촌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사진은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남 산청의 운동장에서 열린 유세 현장에 모인 지역민들의 모습이다. 갓을 쓰거나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촌로(村老)들이 군중 속에 섞여 있다. 갓은 삼국시대 때부터 쓰기 시작한 것으로, 사진 속 노인이 쓰고 있는 일반적인 흑립은 조선시대 때부터 양반층에서 쓰기 시작해 서민들까지 쓰게 되었다. 갓의 용도는 비나 햇빛을 가리는 것이었으나 의관정제(衣冠整齊)라는 말이 있듯이 외출할 때 단정한 옷과 함께 갓을 갖추어 쓴다. 갓은 쓰지 않을 때는 태극무늬 등 문양이 있는 갓집에 넣어 보관한다. 주로 장롱 위에 얹어 놓아 방안 치레의 구실도 하였다. 일상생활에서 농민들이 입는 옷은 주로 무명 한복이었다. 남자들은 바지저고리를, 여자들은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한복은 세탁해서 입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하다. 풀을 먹여 빳빳한 상태로 입는다. 풀을 먹이면 오래 입고 때도 덜 탄다. 풀을 먹인 한복은 다듬이질을 한다.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이 다듬이질이다. 잘 다듬어진 옷감은 다리미로 다린 것 이상으로 매끈하고 잘 구겨지지도 않는다. 다듬이질을 하려면 옷감에 물을 축여야 하는데 대개 물을 입에 넣고 뿜는다. 농사일도 하얀 무명 한복을 입고 했다. 외출할 때는 한복 위에 두루마기를 입는데, 두루마기는 서양의 코트처럼 방한용도 되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당시 시골에서는 일할 때나 외출할 때나 거의 흰 고무신을 신었다. 1919년 우리나라에 ‘대륙고무’라는 고무신 회사가 처음 생겼고 이후 다른 공장들도 잇따라 생겨 농민들이 신던 짚신을 대체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도 많은 농촌 지역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흰색이나 검정 고무신을 신고 일도 하고 학교에 다녔다. 노인이 쓰고 있는 우산은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지(紙)우산으로 보인다. 지우산은 질긴 성질 때문에 부채에도 쓰이는 한지에 기름을 먹여 만든다. 종이우산은 비닐우산이 나오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제는 전통 공예의 하나로 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은 ‘여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은 ‘여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은 호주의 한 호텔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여행잡지 ‘콩데나스 트레블러’는 최근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을 갖춘 63개의 호텔 리스트를 공개했다고 25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이 중 상위 10선을 살펴보면 가장 아름다운 수영장은 호주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주(州) 킴벌리에 있는 ‘버클리 리버 로지’(BERKELEY RIVER LODGE)란 호텔에 있다. 이 호텔은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부시(호주 등 지역의 미개간지) 특유의 기울어진 지붕과 골이 진 철판으로 외관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고급스러운 실내 인테리어와 달리 욕실과 샤워실은 자연을 모방해 야외에 설치했다. 2위 역시 호주가 차지했다. 수도 시드니에 있는 ‘파크 하얏트 시드니’(PARK HYATT SYDNEY) 호텔에는 숨막힐 듯한 전경을 갖춘 수영장이 있다. 이곳은 도심을 벗어나고 싶은 사업가와 유명인사들이 중심 고객이며 호화로운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3위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리츠칼튼 비엔나’(RITZ-CARLTON VIENNA) 호텔에 있는 실내 수영장이 차지했다. 이 호텔은 기존 체인과 달리 중부유럽의 전통적인 대형 호텔 느낌을 준다. 미국이나 영국, 지역 유명인사들이 주 고객층으로 알려졌다. 그다음으로는 중남미 국가 벨리즈 엠버그리스키섬에 있는 ‘엘 세크레토’(EL SECRETO), 캄보디아 씨엠립에 있는 ‘신타마티’(SHINTA MANI),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샹그릴라호텔’(SHANGRI-LA HOTEL), 세인트루시아의 ‘슈가비치’(SUGAR BEACH), 칠레 이스터섬에 있는 ‘항가로아 이코 빌리지 앤 스파’(HANGAROA ECO VILLAGE & SPA) 순이었다. 이 밖에도 중국 상하이에 있는 ‘포시즌호텔 푸둥’(FOUR SEASONS HOTEL PUDONG)과 ‘트웰브 앳 헝산’(TWELVE AT HENGSHAN) 수영장이 각각 9, 10위를 차지, 10위권 안에 들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사진=콩데나스 트레블러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서울 구경 온 낙도 어린이들

    [DB를 열다] 1967년 서울 구경 온 낙도 어린이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섬을 낙도(落島)라고 한다. 1969년에 제작된 ‘수학여행’이라는 영화가 있다. 섬마을의 낙도에 부임한 교사(구봉서 분)가 갖은 노력을 한 끝에 섬 아이들과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아이들은 서울에 도착해서 서울 아이들의 환대를 받고 집으로 초대를 받는다. 도심과 고궁을 돌아보며 섬과는 너무나 다른 대도시 서울의 모습에 신기해한다. 서울 아이들은 돌아가는 낙도 아이들에게 리어카를 선물해 준다. 요즘도 낙도 어린이를 서울로 초청하는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교통이 좋아지고 도농 격차가 줄어서 낙도의 개념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1960년대만 해도 낙도나 오지에서 서울로 오려면 배와 버스, 기차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야 했고 시간도 하루가 넘게 걸렸다. 그만큼 돈도 많이 들어 독지가나 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사진은 1967년 4월 베트남에 파견된 기술자들이 고국에 보내온 성금으로 서울 구경을 온 낙도 학생들의 모습이다. 제주도 가파초등학교, 울릉도 석포초등학교, 진도 지산서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이다. 스카우트 복장을 한 서울 아이들이 팡파르를 울리며 환영하고 있다. 교복 차림에 모자를 쓴 시골 아이들은 환영 인사를 받으면서도 즐겁다기보다는 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다. 품에는 강아지를 안고 있는데 아마도 서울 아이들에게 줄 선물인 모양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구로공단 준공식

    [DB를 열다] 1967년 구로공단 준공식

    구로공단은 한때 우리나라 수출 총액의 10%가 넘는 제품을 생산했을 정도로 한국 산업의 선봉기지 역할을 담당했으면서, 동시에 한국 노동역사에서 아픔의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구로동 일대는 경부선과 경인선 철도가 통과하고 인천항이 가까워 공장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봉제업, 전자기기 제품, 가발 등이 주 품목이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방에서 상경한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 취직해 ‘공돌이’ ‘공순이’로 불리며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갔다. 그런 가운데 노동 착취 행위가 만연해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나타났고, 1985년 구로공단 노동조합의 연대파업이었던 ‘구로동맹파업’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사진은 1967년 4월 15일 여성 근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구로공단 수출공업단지 준공식 모습이다. 주로 봉제 공장 여성 근로자들이 살았던 집은 겨우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쪽방이었다. 쪽방들이 모여 있던 곳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일명 벌집촌으로 불렸다. 1970년대 후반 11만명에 이를 정도로 산업의 요람이었던 구로공단은 국내 산업의 변화에 따라 업종도 변해갔고 근로자 수도 줄었다. 1995년에는 근로자 수가 4만여명으로 감소했다. 2000년대에 들어 정부는 쇠락해 가는 구로공단을 살리기 위해 IT 첨단산업 단지로 변화를 시도했다. 이름도 서울 디지털산업단지로 변경했다.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섰고 패션타운이 조성되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7년 전화국에서 근무중인 전화교환원

    [DB를 열다] 1967년 전화국에서 근무중인 전화교환원

    1970년대와 그 이전에는 수동식 전화기가 주로 쓰였다. 수동식에는 자석식과 공전식이 있다. 모두 교환원이 필요하다. 자석식은 전화기에 붙은 핸들을 돌리면 교환원이 나오고 전화번호를 말하면 교환원이 연결해 준다. 공전식은 전화기를 들기만 하면 교환원이 나온다. 교환원은 ‘교환수’라고 불리기도 했다. 교환원은 가입자가 번호를 말하면 받는 사람의 전화로 연결해 준다. 사진은 1967년 3월 전화국에서 근무하던 교환원들의 모습이다. 이런 수동식 전화 연결은 전화 가입자가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0년에 전화 가입자는 8만 6600여명에 불과했다. 서울에서는 겨우 몇 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자동전화도 부분적으로 개통됐는데, 1960년 2월 24일 서울 영등포 전화국에서 자동전화가 개통될 때에는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했다. 당시 이 전화국에 총 42명의 전화교환원이 근무했다고 한다. 전화는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보급이 따라주지 못했다. 한 동네에 전화가 한 대밖에 없는 곳도 있어서 동네 사람들이 같이 썼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전화 신청이 밀려 백색전화 한 대 값이 250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집 한 채 값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백색전화는 투기의 대상이었다. 백색전화는 소유할 수 있어서 사고 팔 수 있는 전화를 말한다.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아 양도할 수 없는 전화는 청색전화라 불렀다. 백색과 청색은 전화기 색깔이 아니라 가입 대장 명부의 색깔이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DB를 열다] 1966년 4월 서울시장 취임 인터뷰 하는 김현옥

    [DB를 열다] 1966년 4월 서울시장 취임 인터뷰 하는 김현옥

    역대 서울시장 가운데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제14대 김현옥(1926~1997)이다.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지만 김현옥은 서울을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육사를 3기로 졸업했다. 5·16 쿠데타 당시 부산에서 육군 준장으로 제3항만사령관 자리에 있었던 인연으로 1962년 군복을 입은 채로 부산시장에 임명돼 4년 동안 부산시정을 이끌었다. 시장이 됐을 때 그의 나이 겨우 36세였다. 1966년 40세에 서울시장이 된 김현옥은 ‘불도저’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서울을 과감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그가 한 일은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중요한 것만 해도 여의도 윤중제 건설, 명동·광화문 지하도 건설, 세운상가 건립, 강변북로 건설, 국내 최초 고가도로인 아현고가도로와 청계고가도로 건설, 남산·삼청·사직터널 건설 등이 있다. 특히 김현옥은 1969년부터 3년 동안 2000동 10만 가구의 시민아파트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밀어붙이기식 속도전은 부실공사를 불렀고 1970년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로 이어져 시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듬해 내무부 장관으로 복귀했다가 공직을 떠난 그는 1981년 5월 경남 양산 장안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뒤 여생을 보냈다. 1995년 첫 지방 선거에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 문정수·노무현에 이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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