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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안어벙’으로 유명한 개그맨 안상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안어벙’으로 유명한 개그맨 안상태

    “아무나 박수 칠 때 떠나나.” 20대의 한 젊은이가 있다. 원래는 대학을 진학해 여름방학때 시골집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수박을 실컷 먹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또 회사 다니다가 아이 낳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업보일까. 일찍부터 노숙자같은 생활, 단칸 월셋방과 고시원 전전, 시골카페 DJ생활 등 춥고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깨달았다. 슬픔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통째로 웃겨보자고. 친구들과 거리공연에 나섰다. 서울역, 지하철, 대학로, 거리식당 등 닥치는 대로 찾아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웃겨드리겠습니다.”며 ‘철판 깔고’ 사람들 앞에 섰다. 고진감래(苦盡甘來), 드디어 공중파 방송에 뜨면서 박수갈채를 받기 시작했다. 꿈에서나 생각했던, 그건 분명 인기와 사랑의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돌연 방송중단을 선언, 미련과 욕심을 아낌없이 버렸다.“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인기 개그맨 안어벙(28·본명 안상태).2004년 혜성처럼 나타나 ‘빠∼져 봅시다.’‘마데 홈쇼핑’ 등의 유행어를 뿌려대며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절정을 달렸다.‘잘 나가던’ 그는 지난 6월26일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매몰차게 방송계를 떠났다. 특히 젊은층은 물론 40∼50대의 장년층 팬들도 많았기에 아쉬움도 컸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 동숭동 탑아트홀.‘안어벙의 깜짝 콘서트’(7월7일∼9월26일)가 열리고 있었다. 출연진은 ‘안상태와 실미도 개그군단’, 모두 15명. 무명시절 고생했던 개그팀 ‘오장육부’의 김대범 황현희도 함께 출연했다.200석 규모의 소극장은 꽉 찼다. 공연이 시작되자 안어벙은 ‘마데홈쇼핑’을 비롯, 랩과 춤 그리고 즉흥 퍼포먼스를 섞어가며 관객을 압도했다. 이튿날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안어벙을 만났다. 어벙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아주 진지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한 청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먼저 방송계를 떠난 이유를 물었다.“좀더 멋진 모습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팬들과 만나기 위해서”라고 운을 뗐다. 이어 “여태것 물흐르듯 살아왔다. 가는 길을 열심히 갈 뿐이다.(방송에)있어도 문제, 나가도 문제라는 생각도 했다. 우선 연기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연 중인 대학로 개그콘서트에 대해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두달간 연습했다. 팀원들과 마찰도 많았고, 주위의 걱정도 있었지만 후회없이 행복하게 무대에 올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돈벌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수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살면서 늘 감사하고 또 (자신의)이름을 걸고 공연을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울러 항상 호응해주는 관객이 있기에 행복하고 또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느냐고 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무명시절, 길거리 공연때에는 눈물도 설움도 참 많았다.”면서 그때 여자친구한테 많이 차이기도 했다며 쓴 웃음을 짓는다. “얼마전 대학로 공연장에 당시 만났던 여자 친구가 찾아왔더군요. 맨앞좌석에 앉아 제 공연을 다 보고나서 만나달라며 안가고 기다리더군요. 할 수 없이 잠시 갔더니 악수를 청하며 ‘이젠 미워하지 않을 거지.’라고 하더군요. 당시엔 뒤도 안돌아 보더니…” 안어벙의 눈물겨운 개그는 2002년 늦가을 서울 응암동 달동네에서 30만원짜리 월셋방에 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료 3명과 합숙하며 더욱 뻔뻔해지기 위해 ‘오장육부’라는 이름으로 길거리 공연에 나섰다. 서울역 앞부터 대학로까지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았다. 백화점, 경찰서, 지하철 안 등 닥치는 대로 개그 퍼포먼스를 벌였다. 노숙자들과도 자주 접했다. 이때 안어벙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노숙자의 시선에 얻어진, 초점을 잃은 듯한 바보같은 느낌, 덜 미친사람 등을 떠올렸다. 영구나 맹구는 확실한 바보지만 중간형태, 즉 “어벙하게 가자.”고 정했다. 이무렵 안어벙은 개그맨 모집을 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밀었으나 ‘엿장사 주제에’라는 말과 함께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열심히 머리를 짜내 만들었던 개그 아이템이 아무런 동의도 없이 모방송국 개그프로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꼈다.2003년 2월 대학로의 한 고시원으로 방을 옮겨 심기일전을 다졌다. 오장육부팀은 “개그맨이 안되면 함께 죽자.”며 손가락으로 혈서까지 썼다. 대학로의 소극장을 전전했다. 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미친 듯이 공연을 했다. 주위에서는 안어벙을 가리켜 ‘인간 영사기’라고 했다. 이때 받은 한달 개런티는 30만원. 고시원 월세 25만원을 내고 남은 5만원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나중에 월급이 50만원으로 오르자 안어벙은 그날로 은행으로 달려가 매달 10만원씩 붓는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나중에는 주택부금 통장으로 전환했다. 그러던 2004년 4월 오장육부팀은 KBS 개그맨 공채 19기에 응시, 당당히 합격했다. 이날 너무 감격스러워 모처럼 점심밥을 배가 터지도록 실컷 먹고는 다들 남산에 올라갔다.“우리를 배반한 자들은 절대 잘 될 수 없다. 하지만 다 잊자, 앞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자.”고 굳은 결의를 했다. 이날 안어벙의 고향인 충남 아산시 인주면 밀두리 마을입구에는 ‘축 합격, 개그맨 안상태 탄생’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내걸렸다. 그해 안어벙이 KBS개그맨 신인상과 개그코너상을 연이어 수상했을 때에도 그랬다. 안어벙은 평범한 농촌의 종가에서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는 동네에서 직원 5명 정도의 조그만한 방직공장을 운영했다. 어머니도 여기에 하루종일 매달렸다. 때문에 안어벙은 할머니한테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독서실 등에서 혼자 자취하며 다녔다. 대학은 취직이 잘된다는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이때만 해도 개그맨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도 너무 소심하고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고 부끄러움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인생을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성격을 바꿔보자.”는 고민에 빠졌다. 대학 1학년때 하루는 학과대표와 얘기하던 중 문득 “상태야, 내일 MT가는데 진행을 맡아볼래”라고 제의했다. 안어벙은 아무생각없이 “그래”라고 대답했다. 막상 그러고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또라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온갖 표정연습을 했다. 이튿날 MT진행은 무난했다. 끝나고 나서 과대표의 “수고했다.”는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 용기를 내 유머책 등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때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그는 휴식시간마다 자청해서 앞에 나와 훈련병들을 웃기기 시작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느끼가이’.32사단 배치를 받은 뒤에는 보초를 설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며 음악DJ 연습을 했다. 군생활을 회고하면서 하마터면 대형사고를 칠 뻔했다고 고백했다. 상급자한테 워낙 매를 많이 맞아 몇번이고 죽이려고 했지만 실행직전 꾹꾹 참았다는 것. 이때마다 돌아서서 노래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를 혼자 부르며 마음을 달랬다. 제대하던 날 천안역에 내리자 비가 쏟아졌다. 비를 쫄딱 맞으며 이벤트 카페를 찾아다녔다.DJ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4개월여 동안 카페 DJ를 하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길거리 공연 등에 나서면서 개그맨의 길을 걷게 됐다. “개그란 진지하고 페이소스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한 계층만이 아닌 어린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다 공감을 얻어야 하지요. 어릴 때 할아버지의 모습, 살아오면서 많은 고생을 했던 경험이 저에겐 소중한 자산이지요.” 안어벙은 그림과 시(詩)에도 많은 끼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영화 ‘야수와 미녀’에도 출연했듯이 아마 그쪽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한결같은 사람, 살아가면서 인간적인 사람, 뒷모습이 멋진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한테 용돈을 드리냐고 하자 머리를 끄덕이며 “얼마전에는 건강검진을 시켜드렸다.”며 웃었다. ■ 그가 걸어온 길 ▲1978년 충남 아산 출생 ▲96년 신림고등학교 졸업 ▲97년 단국대 전자공학과 입학 ▲98년 육군 입대,2001년 만기 제대 ▲2001∼03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지하철 등 거리공연 ▲03년 단국대 졸업 ▲03∼04년 3월 대학로 공연 ▲04년 4월 KBS개그맨 공채 19기 ▲04년 KBS 개그콘서트 ‘A-YO’‘춤추는 대수사선’‘X-FAIL’ ‘깜빡홈쇼핑’ ‘TV는 사랑을 싣고’‘해피선데이’‘비타민’‘해피투게더’ ‘스펀지’‘폭소클럽-록키루키’ 등 오락프로 다수 출연, 영화 ‘안녕, 형아’ 카메오 출연 ▲04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 부문신인상, 최우수 개그 코너상 수상 ▲05년 영화 ‘야수와 미녀’ ‘작업의 정석’ 출연 ▲05년 6월 ‘KBS 개그콘서트-깜빡 홈쇼핑’ 마지막 방송출연 ▲05년 7월 대학로 탑아트홀 ‘안어벙의 깜짝 콘서트’ 공연 km@seoul.co.kr
  • 與 “DJ는 도청 중단시킨 대통령”

    열린우리당이 김대중(DJ) 전 대통령측 달래기에 나섰다. 도청문제를 놓고 ‘여권­DJ’의 대결구도로 비화되면 호남민심의 이반 등 당으로선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삐걱거리던 양측의 관계는 지난 5일 국정원이 DJ정부 시절에도 도청이 있었다는 발표 이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DJ측이 불쾌한 감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자 열린우리당은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9일 정세균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DJ를 감싸고 나섰다. 정 대표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김 전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것은 국가체면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오신 분”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도청은 박정희 시대부터의 악습으로 이를 중단시킨 게 김대중 정권”이라면서 “이를 이상한 방법으로 얘기해서 김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고 악용해서 정치적으로 이익보려고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여당은 배기선 사무총장이나 다른 인사를 동교동에 ‘특사’로 보내 상황설명과 함께 이해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DJ측은 감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DJ의 최경환 비서관은 정 원내대표의 이날 발언에 대해 “당에서 나온 말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심기가 아주 좋지 않다.”고 전했다.DJ의 불쾌감이 짐작보다 크다는 얘기인 듯하다. 배 사무총장의 방문설과 관련해서도 “언론을 통해서만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미림팀 도청은 흐지부지되고 국민의 정부에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 씌우고 있다.”면서 “본질이 뒤집혔다.”고 답답해했다. 또 국민의 정부 시절 함께 일한 전 국정원장 4명에 대한 검찰의 조사방침에 대해서도 그들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도청을 하지 말라는 지시대로 역대 네 분의 국정원장들이 불법 도청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확실히 믿고 있다.”며 “그분들의 깨끗한 경력과 투명한 일처리로 볼 때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열린우리당의 화해 제스처를 ‘강·온 양면작전’으로 규정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유종필 대변인은 “최 비서관의 말은 김 전 대통령의 말이 아니겠느냐.”면서 “정 원내대표의 말은 병 주고 약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DJ측과 결별→영남과 대연정 수순?

    노무현 대통령이 8일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음모론의 진앙지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지난 5일 ‘DJ 정권 도청’ 발표에 노 대통령의 정치적 의중이 개입됐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노 대통령이 기득권을 걸고 ‘방점’을 찍은 연정 구상이 정파간 이해관계로 벽에 부딪히자 특유의 승부수를 띄웠다는 의혹의 눈길을 강하게 보내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노 대통령이 도청 파문을 등에 업고 ‘국민의 정부’ 세력과 ‘불가피한’ 결별 시나리오를 연출하면서 결과적으로 영남세력과 대연정을 추진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접한 뒤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표정은 어두웠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인 최경완씨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김 전 대통령의 기분이 좋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대북 송금 특검에 이어 또다시 국민의 정부 인사들을 조사하면서 수모를 주려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동교동계 인사들의 반응은 직접적이다. 한화갑 대표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서 “국정원 발표에 노 대통령의 의중이 개입됐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청와대에서 결정을 한 것”,“노 대통령이 X파일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정치적 동기가 불순하다. 집권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움켜쥐고 있다가 이제 발표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면서 “이런 식으로, 모든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면 반드시 ‘잃어버린 5년’이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후폭풍/우득정 논설위원

    안기부 ‘X파일’사건은 삼성그룹 불법대선자금 전달의혹 공개가 도입부라면 ‘미림’팀의 도청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폭발력을 지닌 핵폭탄’이라고 비유한 이건모 전 감찰실장의 발언과 274개 도청테이프 및 녹취록 압수가 전개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5일 국민의 정부시절에도 불법감청이 지속됐다는 국가정보원의 발표는 사건의 반전국면쯤 될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이든 특검이든 수사를 통해 사법처리하고 테이프에 담긴 일부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핵폭발에서 폭발 및 지속순간은 각각 100만분의1초,200만분의1초에 불과하지만 후폭풍과 방사능으로 인한 2차 피해는 폭발에 비해 월등히 클 뿐 아니라 후유증도 오래 간다.‘산 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이라는 말이 고통의 크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뉴턴의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리학적인 반비례 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핵폭발 피해 반경에 든 사람들이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8년 전 우리 사회는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뒤 아직도 후폭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남은 사람조차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봄 정치권을 강타한 탄핵 후폭풍도 강도면에서 외환위기에 못지않다. 소수 집권층을 겨냥했던 거대 야당의 칼날은 자신들의 철옹성을 초토화시키는 핵폭탄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틈만 나면 자만이 고개를 치켜드는 것을 보면 권력이라는 독수(毒樹)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힘들지 않은가 보다. 도청테이프 공작 당시 안기부와 국정원의 계선상에 있었던 인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나는 몰랐다’‘나는 깨끗하다’는 식으로 들어줄 이 없는 허공을 향해 항변을 내뱉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방패막이 뒤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 지금으로선 가장 안전한 도피처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이번 사건의 수사 결과를 예고하는 것 같기도 하다.‘9·11 테러’라는 초강력 폭풍에 이어 무수한 총탄이 난무했지만 빈 라덴은 잡지 못하고 무고한 민초들의 목숨만 거둬들였듯이. 그래서 잘못된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千법무 “국정원 철저 수사”

    千법무 “국정원 철저 수사”

    안기부 및 국정원 도청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8일 특수1부 유재만 부장검사와 특수부 2명, 공안부 2명, 외사부 1명 등 검사 5명을 수사팀에 보강, 수사팀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이번 사건 수사팀 규모는 황교안 2차장 검사를 포함, 총 14명으로 늘어나 사실상 특별수사본부 수준으로 격상됐다. 검찰은 공안2부(부장 서창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수사팀은 녹음기를 설치해 도청한 미림팀 등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고, 보강된 새 수사팀은 국정원이 자체 개발한 감청장비를 이용한 도청행위 등에 대한 수사를 맡기로 했다. 이는 사실상 YS정부 당시의 도청과 DJ정부 당시의 도청을 구분해 수사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검찰은 이날 미림팀 소속이었던 현 국정원 직원 2명을 소환, 미림팀 부활 배경 및 활동 내역 등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검찰은 또 9일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참고인 겸 피고발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한편 천정배 법무장관은 이날 압수수색 등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도청 사건을 철저히 수사할 것을 검찰에 지시했다. 천 장관은 주례 간부회의에서 “이번 사건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국민의 인권 및 사생활 침해 사례인 만큼 한 점 의혹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지시했다. 천 장관은 “검찰 수사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투명해야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서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의 강제 수사에 응하고 공조수사도 하겠다고 밝힌 만큼 공조할 것은 하고 필요한 경우 강제 처분을 포함해 한 점 의혹도 없이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부고발자는 최대한 보호하고 선처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정원 전·현직 관계자들의 수사 협조를 촉구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檢, 특수 공안부 ‘쌍두마차’ 구성

    검찰이 안기부 도청사건의 난국을 헤쳐가기 위해 특수부와 공안부 ‘쌍두마차’를 구성했다.서울중앙지검은 8일 유재만 특수1부장과 수사검사 5명을 보강해 DJ 정부 시절 불법도청 사건을 전담토록 했다. 서창희 공안2부장이 이끄는 기존의 수사팀은 미림팀과 참여연대 고발 건을 담당한다. 이는 수사의 속도를 높이는 한편 지휘계통의 혼란을 최소로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수사팀들의 사령탑인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국정원에 대해 엄격한 수사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에서 특수1부장에게 수사팀장을 맡겼다.”고 말했다. 검찰은 당초 공안부 인력을 우선 보충하려 했다.하지만 검찰 수뇌부는 국정원 송치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공안1부가 수사를 맡을 경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이어온 수사의 흐름을 유지하는 선에서 수사팀을 확대·보강했다.‘판도라의 상자’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아지면 검찰로서는 그만큼 비밀유지와 보안이 힘들어진다는 부담도 감안한 것이다. 아울러 지휘계통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현재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수사팀의 사기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사실상 특별수사본부로 수사팀을 확대했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갑자기 들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공개된 삼성 관련 테이프와 추가로 압수한 다른 테이프의 내용을 수사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내용을 수사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법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씨줄날줄] 새와 쥐/진경호 논설위원

    조선시대 하인들 가운데 ‘규비(糾婢)’가 있었다. 힘깨나 쓰는 양반가를 기웃거리며 그들의 은밀한 얘기들을 엿듣는 계집종들을 일컫는다. 오늘로 말하면 첩보원이자, 도청 전문가들이다. 나라가 새삼 시끄럽지만, 우리를 포함해 인류 역사로 보면 도청(盜聽)은 이처럼 매춘(賣春)과 더불어 가장 오랜 기원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역(聖域)이 없기로는 더 윗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독재자 스탈린이나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 브라질의 페르난두 카르도수 대통령 같은 수많은 절대권력자들조차 도청에 시달렸다. 안기부 도청팀 ‘미림’도 성역을 두지 않기로는 남 못지않았던 듯하다. 한 문헌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도 1990년대 중반 도청을 당했다. 당시 안기부장이던 모 인사가 천주교 고위인사에게 “추기경님을 도청 대상에서 빼주겠다.”고 했고, 곧바로 사제관에는 도청 탐지기가 설치됐다고 한다. 김 추기경을 들여다보신 분이 하나님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미림팀의 활약은 당시 야권의 중심이던 김대중(DJ)씨에 대한 감시로 정점을 이룬다. 김 추기경이 도청받던 이 무렵 DJ의 동교동 자택 주변은 사실상 첨단 도청설비로 채워져 있었다.DJ 자택 양 옆의 178의 16호와 177의 6호는 전체가 안기부의 도청시설이었다고 한다. 특히 178의 16호에 있던 가건물은 DJ 집 지하서재 환풍구로 흘러나오는 얘기들을 도청하던 시설로 알려졌다. 당시는 92년 대선 패배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온 DJ가 아태재단을 만들어 정계복귀를 검토하던 때였다. 물론 DJ는 이런 도·감청에 익숙해 있었다. 전화를 하다 중요한 얘기가 나오면 DJ는 “이 사람아, 이거 도청되는 거 알지?”라고 물어 상대방 말을 끊었고 은밀한 얘기는 필담(筆談)으로 나눴다. 도청과 사찰에 치를 떨던 DJ였건만 도청은 그가 집권한 기간에도 계속돼 온 사실이 드러났다. 마약보다도 강하다는 중독성을 다시 한번 내보인 셈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제 세상은 ‘에셜론’이라는 국제적 도·감청망이 지구촌 전체를 감시하고, 휴대전화마저 도청당하는 시대가 됐다.‘낮말은 새가,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예언이었던 게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도청 파문] 천용택·신건·임동원씨등 줄소환

    [도청 파문] 천용택·신건·임동원씨등 줄소환

    ‘천용택은 0순위, 그 다음은?’ 국가안전기획부와 후신인 국가정보원이 자행한 도청 행위에 대한 본격 수사로 과거 정권의 정보기관 수장들이 줄줄이 검찰청사에 불려올 전망이다. 소환 0순위는 DJ 정권 두번째 국정원장을 지낸 천용택씨. 천씨는 국정원 자체 조사에서 99년 미림팀장 공운영씨로부터 도청테이프를 회수할 당시 자신과 관련된 2개의 테이프를 건네받은 것으로 드러난 데다 같은 해 말 기자들에게 도청 내용을 누설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국정원이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를 자체 개발, 도청에 이용한 때도 그가 재임했던 시기다. 검찰이 천씨의 집과 사무실 등에 대해 지난 4일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도 그가 전직 국정원장 중 첫번째 소환대상임을 시사한다. 당초 검찰 수사는 YS정부 시절 안기부의 도청 행위와 DJ정부 시절에 이뤄진 도청테이프 유출 행위에 맞춰져 있었다. 여기에 “DJ정부 때도 4년간 도청했다.”는 국정원의 발표로 DJ정부 시절의 도청 행위라는 큰 덩어리 하나가 추가됐다. 진상규명만을 염두에 뒀던 도청 행위가 사법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천씨 이후의 소환자는 도청중단의 역순으로 진행될 공산이 커졌다. DJ 정부 마지막 국정원장이었던 신건씨를 필두로 임동원·이종찬씨 순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 도청중단의 과정을 파악하고 있는 신씨를 상대로는 도청 경위 및 도청자료와 기기의 폐기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 이종찬씨의 경우,DJ가 도청근절 지시를 내렸음에도 도청이 계속된 것을 알고 있었는지, 각종 보고 때 도청자료를 활용했었는지 등이 규명 대상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도청 파문] 공소 시효는 물증 있을까 ‘입’ 안연다면

    국정원의 불법 도청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곧 착수될 예정이지만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불법 도청의 공소시효는 대부분 지났고, 도청이나 기밀유출 사실을 입증할 물적 증거는 대부분 폐기됐다. 관련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도청 2000년 8월 이후만 처벌 가능 수사의 가장 큰 장애는 공소시효 문제. 통신비밀보호법은 2002년 3월 개정돼 도청행위 처벌의 공소시효가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났지만 국정원의 도청 행위는 개정전의 통비법을 적용받는다. 따라서 2000년 8월 이후의 도청행위만 처벌할 수 있다. 다만 도청 내용 유출의 경우 국정원직원법상 비밀누설 혐의를 적용해 공소시효가 7년으로 늘어나지만 이 경우도 1998년 8월 이후의 것만 처벌할 수 있다.●증거를 어떻게 찾을까 증거확보도 난제다. 공소시효 범위 내에 있는 전직 국정원장은 DJ정권 시절의 임동원·신건 전 원장이다. 조사는 불가피하지만 국정원 설명대로라면 물증이 남아 있지 않다. 국정원은 2002년 3월 불법 도청을 전면 중단하면서 도청에 쓰인 장비는 모두 폐기됐고 과거 감청 자료도 제작한 지 1개월 내에 매번 소각됐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과거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여야 대선 후보 누가 어떤 도청을 당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을 용의도 있다.”고 말한 것은 뒤져봐도 안 나올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관련자들이 입을 다문다면 관련자들의 ‘입’을 여는 것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 문제는 국정원 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관련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회피했다. 미림팀 부활 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오정소 전 차장도 ‘상부라인’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내가 다 안고 가겠다.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씨는 물론 오씨의 상부라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이원종 전 청와대정무수석과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도 묵비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도청 파문] “DJ때 정치공작용 도청 없었다”

    국가정보원의 ‘DJ정부 도청’ 발표로 정치권은 극심한 혼돈양상을 빚고 있다. 당초 여야간 대치 국면을 보였던 도청 파문이 여권내 신·구세력간 갈등양상으로 번지면서 한치 앞을 가리기 힘든 안개정국으로 치닫는 조짐이다. 급기야 야당이 ‘DJ정부 도청’ 발표가 고도의 정치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하자, 여당은 근거없는 음해론을 응징하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국정원 발표 이후 열린우리당의 공세는 크게 두 갈래로 펼쳐지고 있다. 하나는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정치적 음모론이다. 진앙지인 민주당에 당 지도부가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까지 보냈다. 문희상 의장은 7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정원 발표의 순수한 취지를 호도해 정치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정파간의 이간질에 이용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5·16 쿠데타 이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에서 음습한 모든 비리의 종합결정판이며, 정·재·언론계의 추악한 뒷거래가 그 본질”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정치적 의도 개입’ 주장에 “지역감정으로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민주당이 지역감정을 조장해 호남에서 정치적 이득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이라면, 호남 민중들이 그런 얕은 주장에 현혹될 주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류는 도청 파문에 따른 호남 민심의 잠식을 차단하려는 당 지도부의 속뜻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DJ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도청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의장은 간담회에서 “DJ정부 시절 정치공작을 위해 미림팀을 운영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다.”면서 “당시 불법도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칼날은 한나라당으로 향하고 있다. 국정원 발표 직후 수세에 몰리던 분위기를 뒤집기 위해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병헌 대변인은 한나라당 권영세 불법도감청 조사단장을 겨냥,“권 의원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YS정부 시절 안기부 파견 검사였으며, 미림팀이 재가동된 시절 안기부장 특보실에서 3년이나 근무했다.”면서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하기 전에 고해성사부터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영달 상중위원도 “도청 원조당인 한나라당은 끽소리 말고 침묵을 지키고,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게 맞다.”고 공세를 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도청 파문] “현정권 정치적 승부수” 음모론

    국가정보원 발표 직후 충격에 빠졌던 민주당과 ‘DJ진영’은 시간이 흐를수록 현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강한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X파일 사건을 정치적 승부수로 이용하기 위해 국정원 발표에 개입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유종필 대변인은 7일 논평에서 “이번 발표의 형식은 국정원의 자기고백이지만, 내용은 참여정부의 국민의 정부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노무현판 역사 바로세우기의 시발점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유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취임초 대북송금 특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김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겨냥하는 것이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의 한 측근도 정치적 음모론을 거론하며 “현 정권이 DJ와 단절하기 위해 제2의 대북송금 사태로 가는 게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8일 대표단 회의를 열어 현 정권의 불법도청 검증 작업에 정부 여당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와 ‘DJ정부 도청’ 사실을 미리 알고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뒤늦게 공개했다는 의혹 등을 제기하며 역공에 나설 태세다.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도청 파문] 국정원 개편론 ‘솔솔’

    [도청 파문] 국정원 개편론 ‘솔솔’

    ‘DJ 정권’에서도 불법도청을 자행했다는 국가정보원의 ‘자기고백’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국정원 개편론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국회의 국정원 감시강화론, 개혁론은 물론 해체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7일 “국회 정보위가 앞으로 이번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도청을 원천적으로 확인, 감시하는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불법도청을)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는데, 필요하면 정보위가 국정원 감시를 강화할 수 있고, 오히려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이날 당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명분과 신뢰를 잃은 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남북문제와 국제 정세 등 국가 안보를 전담하는 정보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도 국정원 해체와 순수 정보기관의 신설을 주장했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수사기능 폐지 등 국정원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장비구입 당시 기조실장 해명해야”

    [베일벗는 도청] “장비구입 당시 기조실장 해명해야”

    김대중(DJ) 정부 시절 국정원장은 이종찬(98.3∼99.5)-천용택(∼99.12)-임동원(∼2001.3)-신건(∼2003.2)씨 등으로 이어졌다. 일단 불법 도·감청에 대한 ‘역할론’ 또는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4명이다. ●與, 문의장 관련설 일축 이종찬 전 원장 시절에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이강래 의원이 기조실장을 역임했다. 먼저 이강래 의원이 첫 안기부 기조실장을 맡아 이종찬씨와 호흡을 맞췄고, 이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던 문희상 현 우리당 의장이 이강래 의원과 자리를 맞바꿨다. 한나라당이 문희상·이강래 의원을 따로 지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1998년 5월부터 2002년 3월까지 도·감청이 재개됐다면 98년 3월과 같은 해 5월 기조실장에 취임한 문 의장과 이 의원이 도·감청 장비 구입 및 기획 등의 문제와 관련해 해명해야 한다고 한나라당 관계자가 밝혔다. 이에 열린우리당 대변인실은 “문 의장이 기조실장으로 재임하던 시기에는 설비 구입과 관련한 예산 지출이 없었다.”면서 “한나라당은 문 의장에 대한 공작적 의혹 제기를 즉각 중단하고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때 신건씨는 국내담당 안기부 1차장을 지냈다. 설령 신건씨가 자신이 원장으로 재직한 2002년 3월 불법 도·감청을 근절했다 하더라도 논란을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천용택씨는 알고 박지원씨는 몰랐다? 일부 DJ정부 시절 인사들은 “당시 국정원의 핵심은 이종찬·문희상·이강래·나종일 라인”이라고 주장한다. 현 주일대사인 나종일 대사는 그때 해외·북한담당 차장을 지냈다. 이날 국정원이 발표한 자체 조사결과는 누구보다 천용택 전 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국정원은 테이프 회수 및 폐기 경위에 대해 ‘국정원 전직 간부가 복직을 위해 미림팀 테이프를 들고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접촉하고 삼성에 공갈을 치고 있다는 첩보가 있으니 테이프를 회수하라.’는 지시를 천 전 원장이 내렸다고 밝혔다. 적어도 천 원장은 도·감청 사실 자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논리를 적용하면 불똥은 박 전 장관에게도 튈 뿐 아니라 나아가 당시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정권의 웬만한 실세라면 불법 도·감청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해진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장관시절 나도 휴대전화 도청 걱정”

    5일 ‘안기부 X파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은 “진실을 고백하는 게 참으로 어려운 문제였다.”면서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았다.”고 착잡한 심경을 피력했다.“고뇌가 많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숨기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여론에 떠밀려 고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면서 “자기 고백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의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 원장은 이날 공식 기자회견과 언론사 국장 간담회에서 조사 과정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냈다. 그는 “취임한 지 열흘 만에 X파일에 대해 보고받고, 속이 무척 상했다.”면서 “외부에 알리기 어려운 사안이지만, 솔직하고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국민 충격우려해 도청사실 부인 조사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음도 내비쳤다. 그는 “X파일의 핵심 보고라인에 있었던 천용택 전 국정원장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고, 오정소 제1차장은 ‘말을 않겠다.’며 침묵을 지켰다.”고 전했다. 특히 “나머지 전·현직 직원 일부도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고 가겠다.’는 입장이어서 조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도청실태 공개와 관련해 “안기부나 국정원 특성상 (국가 안위를 위해)합법적인 도·감청에 관여하는 직원들이 ‘그럼 우리는 뭐냐.’고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도청팀 직원들은 정확한 정보는 (도·감청)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라며 그런 작업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면서 “이로 인해 어느 시점에 갑자기 도청을 중단하지 못했고,DJ정부에 들어서도 규모나 범위는 줄었지만 계속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감청장비 2002년 3월 완전 폐기 그는 “나도 (법무)장관 시절에 휴대전화 감청을 걱정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원장에 취임한 뒤 확인해보니 유선전화는 감청해봐야 별 가치가 없어 안 하고 있고, 휴대전화 감청도 2002년 3월 이후에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법 감청에 사용됐던 장비들도 이때 완전 폐기됐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휴대전화 감청을 계속 부인했던 이유로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국민에게 줄 충격을 우려해 거짓으로 일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청팀장을 지낸 공운영씨와 관련해 김 원장은 “재직 중에 얻은 정보를 빼내 어떻게 장사를 하려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사람으로 치면)‘속옷’과도 같은 것인데 도덕적으로 이미 붕괴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법적 처리여부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가 끝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DJ땐 합법도청하다 일부 불법 범한것” YS와 DJ시절의 불법 도·감청 실태에 대해서는 “감청과 도청을 구분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정부(DJ)시절은 합법적 감청을 하다가 일부 불법 감청을 한 것이며, 문민정부(YS)때는 미림팀에 의한 (음식점 등지에서의) 도청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원장은 “국가안보를 위해 합법적인 감청이 필요한데 도·감청 논란으로 감청을 못해 안보 관련 수사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면서 “앞으로 통신비밀보호법 등의 개정이 반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풀리지 않은 6대 의혹

    5일 국정원이 불법 도청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인지여부 등 몇가지 의문점들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① YS·DJ는 몰랐을까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YS정부는 물론 DJ정부때까지 불법 도청이 행해졌다. 그러나 당시 두 대통령이 그 사실을 알거나 보고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측은 YS에 대해서는 “당시 국정원 도청 담당 국장이 입을 열지 않고 있어 알 수 없다.”고 했고,DJ에 대해서는 “당시 제한된 사람들만 봤을 것이고,DJ가 그걸 원치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권력자인 두 사람이 불법도청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미림’팀이 본격 재편된 1994년 6월은 YS정부의 권력이 정점에 있던 시기란 점에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DJ정부 말기인 2002년 3월 신건 국정원장이 도청을 전면 금지하는 과정에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정황이 농후하다.DJ가 처음엔 도청사실을 몰랐을지라도 나중에 알고 신 원장에게 중단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② 현정권 불법도청 없다? 청와대는 5일 현 정권의 불법 도청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윗선에 도청 사실 자체가 보고되진 않더라도, 양질의 정보에 욕심이 있는 정보기관 요원들이 도청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했을 가능성은 적지않다. 실제 참여정부 초기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청 의혹을 부인하자 면전에 있는 기자들에게 “OO기자,OO기자, 당신들 휴대전화도 다 도청되고 있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도 이날 “정보기관은 과거 중앙정보부 때부터 나름의 타성과 고집이 있기 때문에 도청 근절을 선언한다고 해서 안하는 게 아니다.”고 추정했다. ③ 2002대선 도감청 여부는 국정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감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력의 향배가 왔다갔다 하는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정보기관 요원들이 손을 완전히 놓고 있었다고 보긴 무리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실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도청을 우려해 휴대전화 비화기를 부착하고 통화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④ 미림팀 부활 진짜 배후는 국정원은 “당시 국내정보 수집담당인 모국장이 간부회의에서 재편을 건의함에 따라 결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미림팀은 국정원의 조직 직제상 명시돼 있는 조직이 아니므로 실무선에서 이뤄졌을 것이며, 따라서 지휘부에는 보고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YS의 차남 김현철씨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정황을 들어, 그의 지시에 따라 미림팀이 재편됐고 그에게 도청 결과가 직보됐을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선 나온다. 이런 의혹에 대해 국정원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사실 여부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⑤ ‘미림’ 도청테이프 8000개? 국정원은 “일부 언론에서 미림팀에서 8000여개의 테이프를 생산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루 1∼2개의 테이프를 생산하고 6개월마다 재분류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테이프는 폐기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테이프 폐기를 담당한 실무자들이 폐기하지 않거나 복사본을 만들어두었을 경우 수량은 8000개가 충분히 넘을 수 있다. ⑥ 274개와 261개 차이는 국정원은 “공씨가 원본 테이프 274개의 복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본 테이프 중 음질상태가 좋지 않은 13개를 뺀 261개를 복제한 뒤 99년 12월 국정원에 261개의 원본 테이프를 반납했고, 남은 복제 사본 261개와 원본 테이프 13개를 섞어 자택에 보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드러난 역대정권 도·감청

    [베일벗는 도청] 드러난 역대정권 도·감청

    국가정보원이 5일 김영삼(YS)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DJ) 정부 때도 불법 도청을 했다고 자인함에 따라 의혹으로만 떠돌던 역대 정권의 불법 도청설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국회 본회의나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등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이후에는 불법 도·감청이 없었다.”고 단언해온 전·현직 국정원장들의 거짓 보고 또는 거짓 증언에 대한 법적 처리 여부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DJ 정부’ 시절의 불법 도·감청 의혹을 부단히 제기해온 한나라당은 “참여정부는 불법 도·감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DJ 정부 때도 그랬다는 점에서 이를 곧이들을 국민은 없다.”며 현 정부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DJ 정부’ 시절 한나라당 의원이 불법 도·감청 의혹을 제기하면, 정부측 인사들은 부인하는 일이 계속 반복돼 왔다. 지난 98년 국정감사 때는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긴급 통신제한조치가 불법 수사 관행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도청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DJ는 “과거 독재정권으로부터 고문에 의해 탄압받고 도청에 의해 유린당한 현정부에서 만에 하나 불법 감청이 있다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직접 일축했었다. 정형근 의원은 2002년 10월 국회에서 국정원 도청자료를 근거로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이귀남 대검 정보기획관에게 전화를 걸어 대북 4억달러 비밀지원 의혹에 대한 계좌추적 자제를 요청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신건 국정원장은 “국정원은 도청한 사실이 없다.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 감청을 할 뿐”이라며 “도청에 대한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서라면 국회 정보위 조사나 감사원 감사도 받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 해 11월엔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이 “국정원 내부 도청자료”라며 정치인과 언론인 30여명의 통화내역이 담긴 총 27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하며 불법 도청 의혹을 제기했지만 여권은 ‘정치공작’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DJ 정부’ 때의 신건 전 원장뿐 아니라 현 정부의 고영구 전 원장과 김승규 원장도 국회 보고와 답변 등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불법) 도청은 없다.”는 말을 해 적잖은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DJ정부도 4년간 도청

    DJ정부도 4년간 도청

    김영삼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 때도 4년여 동안 불법 도·감청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적 가능 여부로 논란을 빚어온 휴대전화 도·감청도 1996년 1월부터 자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정보원은 5일 서울 내곡동 청사에서 ‘옛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같은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미림팀’으로 불렸던 도청팀의 전·현직 직원 43명과 이들의 도청 실태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국민 사과 성명도 냈다. 두 전 정권 때의 휴대전화 등 도·감청이 사실로 밝혀지자 정·재계와 언론계 등 도·감청 대상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면서 ‘X파일’ 파문도 확산될 전망이다. 또 국정원은 불법 도·감청이 지난 2002년 3월 완전 중단됐으며, 청와대도 “참여정부에서는 불법 도청이 없다.”고 밝혔으나, 현재에도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예상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림팀은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 7월 해체됐다가 1994년 6월 공운영 팀장 등 3명으로 다시 구성돼 1997년 11월까지 3년5개월간 활동했다. 이들은 여당 내부와 양김(김영삼·김대중)씨 측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주요 인사의 동향을 주로 도·감청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이날 회견에서 “안기부의 도청 작업이 김영삼 정부 말기가 아닌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2002년 3월까지 실시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이후 신건 국정원장 재직 중에 도청 작업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도·감청과 관련해 그는 “기지국을 중심으로 반경 200m 이내와 도청 대상을 정점으로 120도 범위 내에서는 도·감청이 가능하다.”고 밝혀 처음으로 시인했다. 한편 국정원은 조사대상자 43명 가운데 전직 직원 18명, 현직 18명, 일반인 4명 등 40명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으며 21명에 대해 출입국 규제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천용택 전 원장을 직접 대면 조사하지는 못했다.”며 “천 전 원장은 전화 통화에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개입 여부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김승규 국정원장은 이날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으며 압수수색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배석한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감청 중단 후 감청자료가 1개월 내 모두 소각됐으며 감청 자료를 인지할 수 있는 범위가 극소수에 불과해 그 여부는 지금 단계에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2년 3월 이전 당시 노무현 후보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에 대한 감청 여부에 대해 “일부 불법감청이 있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감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DJ측 “우리도 충격”

    [베일벗는 도청] DJ측 “우리도 충격”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감청이 자행된 사실이 밝혀지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들은 충격 속에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동교동쪽은 김 전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함을 강조했으며, 당시 국정원 고위인사들은 애써 불법 행위 자체를 부인했다. ●이강래·문희상 “아는 바 없다” 동교동의 최경환 공보담당 비서관은 5일 국정원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놀랍고 믿을 수 없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조사를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최대 희생자인 김 전 대통령은 역대 국정원장에게 도청과 정치사찰, 공작, 미행감시, 고문을 없애라고 지시했고, 퇴임 때까지 계속 그런 의사를 강조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은 어떤 불법행위도 보고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8년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은 몽골 출장중 급히 보도자료를 내고 “조직·인사·예산 업무를 맡는 기조실장은 도·감청과 무관한 위치로, 불법적 도청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는지 알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당시 강력한 개혁작업 때문에 불법도청이 없었다는 점을 지금도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에 이어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문희상 당 의장은 제주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오영식 원내 공보부대표를 통해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고, 아는 바 없다.”고 주장했다. ●임동원 “합법적 감청만 있었다” 99년 말부터 1년 남짓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세종재단 이사장은 “국가안보 문제와 관련해 합법적인 감청은 관련 절차를 밟아 이뤄진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불법 도·감청은 원장시절 전혀 보고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휴대전화 감청과 관련,“당시 기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지금도 그런 식의 정보 수집은 없을 수 없다.”,“왜 국민의 정부를 문제삼느냐.”며 현 여권에 불만을 드러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국정원이 밝힌 실태

    [베일벗는 도청] 국정원이 밝힌 실태

    단순 수집활동(1990년 이전)→도청장비 결합한 과학적인 활동 시작(91년 9월 이후)→본격적인 불법도청 활동 전개(94년 6월 이후).5일 국정원이 밝힌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실태의 변천사다. 앞서 역대 정부의 불법도청 실태의 역사는 군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6월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국가안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유선 감청기구를 설치·운용해 불법 감청을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 같은 해 12월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불법감청은 개선됐지만 특정인사를 대상으로 한 유선전화 불법 감청은 여전히 지속됐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1998년 5월부터 2002년 3월까지 휴대전화 도청장비를 개발, 불법 감청에도 일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김대중 대통령은 안기부의 도청을 없애는 게 신념이라고 했지만 국정원은 불법 감청을 근절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40명의 관계자를 조사했지만 불법 도청의 보고체계와 최고 책임자의 인지 여부, 불법 도청 자료 활용 등 핵심 사안이 밝혀지지 않아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차 미림팀 운영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을 전담해온 ‘미림팀’은 1991년 9월 출범해 1993년 7월까지 활동했다. 출범 두달 전 당시 송민호 국내분야 차장이 “단편적인 정보수집 활동에 그쳤던 미림팀을 과학화해 활동을 강화하라.”고 지시해 공운영 팀장이 구성을 맡았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유명 접객업소에 출입하는 주요 정치인과 그의 측근들을 도·감청하는 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활동요원들이 전날 녹음 테이프나 수집내용을 일시·장소·대화내용으로 구분해 작성해 공운영에게 제출하면 공 팀장이 호텔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담당과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1992년 초 담당국장이 “과장을 통하지 말고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해 국장에게 직보하는 체제로 변경됐다.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유선전화는 물론 휴대전화도 불법 감청이 지속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1990년대 초 아날로그 휴대전화가 일반화되면서 96년 1월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4세트 도입해 99년 12월 아날로그 휴대전화 서비스가 중단될 때까지 불법 감청에도 일부 활용됐다.”고 시인했다. 그러다가 92년 9월 선거전 와중에 이같은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담당 국장의 지시에 따라 93년 7월 활동이 중단됐다. ●2차 미림팀 미림팀은 1994년 2월 새로 부임한 오정소 대공정책실장의 지시에 따라 그 해 6월 재구성됐다. 오 당시 국장은 출범 후 정보수집 실적이 저조하자 ‘획기적인 활동을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공운영을 중심으로 다시 출범한 미림팀은 정·관·언론계 인사들의 사항을 파악해 본격적인 불법도청 활동을 전개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수집이 끝난 송신장비는 수거하고 녹음테이프 해독은 공운영이 안가에서 전담했다. 하루 1∼2개의 테이프를 생산해왔다.”고 전했다. 보고 내용이 수록된 테이프는 라벨을 붙여 이중장치로 된 캐비닛에 보관됐고 공 팀장이 열쇠를 관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녹음상태가 불량하거나 정보가치가 적은 테이프는 일반 캐비닛에 보관하다가 6개월마다(통상 200여개) 소각했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주요 수집대상 미림팀의 주요 도청대상은 사회 각분야 지도층 인사들이었다고 국정원은 발표했다. 특히 2차 미림팀이 활동할 당시에는 1997년 대선 전 여당 내부의 동향과 김영삼(YS)·김대중(DJ) 측근 인사 및 이회창 등 주요인사의 동향이 주요 타깃이었다. 이들은 1인당 5개 업소를 맡아 업소 운영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뒤 주요 인사들이 예약하면 사전에 가서 테이블 밑에 송신기를 붙이거나 차량에 대기하면서 녹음하는 식으로 운영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2002년 3월 정말 중단했나

    왜 2002년 3월인가? 국가정보원이 5일 “2002년 3월 이후 현재까지 유·무선을 막론하고 모든 불법 감청은 완벽하게 근절되었음”이라고 밝힌 것을 놓고 갖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국정원이 이 시기 이후 불법 감청을 중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몇가지 의문점이 남는다는 분석이다.●野 “盧대통령 대선후보 활동시기” 한나라당은 이 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여권 대선후보로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시점임을 들어 의혹을 제기한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이 시기 이후 불법 감청이 근절됐다는 발표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억지 짜맞추기”라면서 “이는 노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국정원 발표 내용의 ‘논리적 모순’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국정원은 이날 발표에서 불법 감청을 중단한 이유로 ▲2002년 3월 통비법 개정 등으로 감청업무 절차 강화 ▲16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국정원 불법 감청’ 논란이 거세진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장 권영세 의원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불법 감청’ 의혹을 제기한 것은 9월부터 12월까지였는데 국정원이 이 때문에 불법감청을 중단했다면 그 시기는 3월이 아니라 9월 이후였어야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2년 12월1일 이부영 선대위 부위원장은 2002년 1월3일부터 3월26일까지 박지원 대통령정책특보를 비롯, 청와대 관계자와 장관, 민주당 의원, 언론사 간부의 통화내역을 공개했다.●호남 민심 이반 감수한 배경? ‘2002년 3월’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김대중(DJ) 정권 당시의 불법도청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호남 민심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무릅쓰고 공개한 배경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사실 그대로 밝힌 것”이라며 “만약 이를 감추었다가 누군가 양심선언이라도 한다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정치적 판갈이의 신호탄”이라며 “불법도청과 관련된 기성 정치인과 선을 분명히 그으면서 새로운 정치판을 짜겠다는 의도”라며 “그 과정에 자기 팔을 자르거나 호남 민심 일부가 버려지는 경우도 불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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