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CIA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K9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KT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DJ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 ANA
    2026-04-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135
  • [주말 하이라이트]

    ●경제스페셜(OBS 토요일 오전 6시 55분) 경영 악화로 인한 20억원 적자에서 연매출 100% 증가라는 성장가도를 달리며, 1000억원대 매출 신화를 창조한 패자 부활전이 시작된다. 위기를 기회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화려하게 부활한 주식회사 ‘제닉’의 유현오 대표가 출연하여 젊은 날의 방황과 불사조처럼 시련을 이겨 낸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민화(왼쪽) 카이스트 초빙교수와 김원경(오른쪽) 아나운서가 진행한다. ●걸어서 세계속으로(KBS1 토요일 오전 10시 10분) 시청자와 함께하는 첫 번째 이야기. ‘꿈을 찾아 떠난 여행, 스페인’ 편으로 부모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어릴 때부터 보육시설에서 함께 자란 중학교 두 남학생이 사회복지사와 여행을 떠난다.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나라에서 역사와 전통이 빚은 문화를 만난다. ●사랑을 믿어요(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영호와 함께 큰아버지를 만나러 간 윤희는 그동안의 그리움에 눈물을 쏟고 만다. 우진은 윤희가 계속 마음에 걸려 큰집 앞을 서성이다 자기를 보고 숨은 윤희를 본다. 한편, 남자친구에게 바람맞고 초라하게 길거리에 서 있는 명희 앞에 오픈카를 타고 멋진 모습으로 나타난 철수가 안부를 묻자 명희는 당황한다. ●반짝반짝 빛나는(MBC 토요일 밤 8시 40분) 승준의 어머니는 금란에게 자신이 마음에 든다면 승준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승준 어머니는 승준을 불러 금란을 집에 데려다 주라며, 앞으로 정원과는 거리를 두라고 말한다. 한편, 출판사를 정원에게 물려준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상한 상원은 출판사를 담보로 승준 어머니에게 돈을 빌리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0분) 1992년 3월 31일 시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800회를 맞았다. 800회 특집 3부작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아직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가슴 아프게 했던 1990년대의 미제 사건 파일을 다시 펼쳐 추적한다. ●완벽한 스파이(KBS2 일요일 밤 11시 15분) 북한 보위부 내 서열 7위인 이문옥이 정권 계승 과정에서 실각한다. 숙청을 피해 남한에 내려온 이문옥은 미국 중앙정보부(CIA) 한국지부 요원들과 접선한다. 이문옥은 10년 전 미국에 포섭되어 첩자로 일해 왔다. 지난 10년 간 북한 곳곳에 자신의 조직도 만들었다. 그 명단을 CIA에 넘기고 미국으로 망명할 계획인데…. ●창사 50주년 나눔 프로젝트 ‘비움과 나눔’ 1, 2부(MBC 일요일 낮 12시 10분) 가수 이현우, 아나운서 최윤영의 진행으로 나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무소유, 비움과 나눔 축제’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자는 내용. 가수 태진아, 마야, 이현우, 노브레인, 박상민 등이 함께한다. 연중 계속되는 프로젝트다.
  • ‘백악관 상황실’ 사진 속 21세기 美정부 변화상

    ‘백악관 상황실’ 사진 속 21세기 美정부 변화상

    참모에게 상석을 내주고 웅그린 흑인 대통령.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나는 권력의 중심부를 꿰찬 여성 참모진. 백악관이 지난 2일(현지시간) 공개한 상황실 사진에서 유독 시선을 잡아끈 이 두 장면은 21세기 미국 정부의 변화상 3가지를 단적으로 뽑아냈다. 인종과 여성, 권위의 장벽을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오사마 빈라덴 제거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주시하는 미국 국가안보팀(NSC)을 포착한 이 사진은 전 세계 언론 1면을 차지했다. 정치·역사학자들은 사진이 “우리가 넘고 있는 새로운 미국의 지평을 시각적으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고 CNN이 5일 보도했다. 정계와 군부의 중심부, 미국의 힘을 과시하는 결단의 순간에는 항상 남성들만 들끓었다. 하지만 이번 사진은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에 맞선 여성들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뒤편에 서서 고개를 삐죽 내민 낯선 여성의 존재는 세인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신상정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실 대테러국장 오드리 토머슨이었다. 1999년 터프츠대, 2003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40세도 채 안 된 것으로 알려진 이 젊은 여성은 미 중앙정보국(CIA) 글로벌 지하드팀에서 전 세계 알카에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에게 정기적으로 현황을 보고, 오바마 이너서클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왜 신상이 알려진 게 없느냐는 질문에 토미 비어터 NSC 대변인은 “그전에는 빈라덴을 죽인 적이 없으니까요.”라고 대답, 그녀가 빈라덴 제거 작전의 공신임을 내비쳤다. 460㎡짜리 상황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사진 앵글의 구석에 자리해 있다. 합동특수전사령부(JSOC) 사령관인 마셜 B 웹 준장에게 중앙의 상석을 내준 그는 캐주얼한 재킷 차림에 사진에 나온 누구보다 몸을 낮추고 앉아 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탑건’ 흉내를 내며 수컷 이미지를 과시했던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들과는 180도 다른 자세다. 하지만 이 사진 한장에서 미국인들은 참모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협동의 힘을 믿는 오바마식 리더십과 자기 확신을 읽어 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강한 척하지 않아도 강했다.’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당을 도맡았던 흑인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다. 정치 블로그 ‘잭&질팔러틱스’의 셰릴 콘티는 “흑인은 그간 길에서 피해야 할 깡패였지만 사진에 그런 흑인은 없었다. 이제 백인들은 흑인을 대통령일 뿐 아니라 최고의 수호자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몸은 굽혔지만 눈빛만은 비장했던 오바마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1승을 거뒀고, 성난 흑인의 이미지를 없애려다 얻은 유약한 이미지까지 걷어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학력위조’ 홍역 치른 가수 타블로, 모교인 美스탠포드대서 강연

    ‘학력위조’ 홍역 치른 가수 타블로, 모교인 美스탠포드대서 강연

     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31)가 모교인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강연한다.  6일 스탠포드대의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 연합인 ‘AASA(Asian American Students’ Association)’ 홈페이지(www.stanford.edu/group/AASA/)에 따르면 타블로는 오는 10일 오후 7시(현지시간) 스탠포드대 커벌리 오디토리엄(Cubberley Auditorium)에서 1시간 동안 ‘아시안 이미지(Asian Images)’를 주제로 강연을 한다.  AASA는 홈페이지에서 “타블로는 스탠포드대에서 영문학 학사(2001년), 석사 학위(2002년)를 받았다.”면서 “그는 프로듀서와 한국 힙합 트리오 에픽하이로 잘 알려져 있으며 지난 해에는 한국 아티스트로는 처음 US 음악 앨범차트(아이튠즈 힙합/랩)에서 1위를 했다.”고 소개했다.  타블로는 지난 해 학력 위조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는 악성 루머 이후 음악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美·파키스탄 결국 갈라서나

    테러와의 전쟁에서 ‘불편한 동맹’ 관계를 이어 오던 미국과 파키스탄이 오사마 빈라덴 사살을 계기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사살 직후 서로에 대해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던 양국은 그러나 3일(현지시간)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는 등 그동안 깊이 패었던 감정의 골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파키스탄 정부에 대한 비난의 포문은 이번 작전을 사실상 총지휘한 리언 패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열었다. 패네타 국장은 이날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의 공조는 작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애초부터 배제했다.”고 밝혔다. 패네타 국장은 “미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체포 작전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도 3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년씩 빈라덴이 아보타바드에 있는 동안 어떻게 파키스탄 정부에 발각되지 않았는지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파키스탄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궁지에 몰린 파키스탄 정부는 미국 정부에 정면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살만 바시르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패네타 국장의 발언에 대해 “듣기 불편하다.”면서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은 2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일부 미국 언론은 우리가 빈라덴을 포함해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한발 더 나아가 3일 성명을 내고 미국 특수부대가 빈라덴을 사살하기 위해 파키스탄 내에서 군사작전을 편 것은 “승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또 앞으로 미 당국은 이런 일방적인 작전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의문점 7문 7답

    Q:은신처는 어떻게 찾았나. A:미 중앙정보국(CIA)은 오사마 빈라덴의 연락책 한명이 최측근 그룹 안에서도 특별한 지위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를 추적해 지난해 8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은신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 연락책을 어떻게 찾아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프가니스탄 정보당국이 은신처를 찾는 데 도움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Q:미군 작전의 목표는 무엇. A: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측근들은 특공대가 받은 지시는 오사마 빈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전에 대해 잘 아는 미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그가 살해될 것이라는 예상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고 전했다. 백기를 흔들며 쏘지 말라고 애원하며 비굴하게 항복하지 않는 한 오사마 빈라덴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Q:빈라덴이 저항했나. A:미국 정부는 당초 빈라덴이 살해당하기 전 아내를 방패 삼아 총을 들고 저항했다고 지난 2일 말했다. 하지만 곧 빈라덴이 총을 갖고 있었지만 쏘지는 않았다는 설명이 나왔다. 이어 3일에는 “빈라덴이 있던 방에서 빈라덴의 부인이 특공대원에게 덤벼들려 했고, 다리에 총을 맞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이후 빈라덴을 사살했다. 그는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살 당시 상황이 하루 만에 180도 뒤바뀐 셈이다. Q:빈라덴은 총을 몇발 맞았나. A:미국 관리들은 빈라덴이 총상을 신체 어느 부위에 몇발이나 맞았는지 최종 보고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시신 사진을 본 한 관리는 그가 최소 한발은 얼굴에 맞았다고 전했다. 이런 종류의 작전에서 미 해군 특공대의 일반적인 전술은 가슴에 한발을 쏜 다음 머리에 한발을 쏘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빈라덴도 가슴과 머리에 총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Q:빈라덴은 여성 인간방패 이용했나. A: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2일 “은신처에는 가족이 있었고 여성 한명이 있었다. 이 여성은 빈라덴을 보호하는 방패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 날 제이 카니 대변인은 이 문제에 대해 불확실하다며 사실상 인간방패 발언을 뒤집었다. Q:포로를 확보했나. A:영국 BBC방송은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작전 도중 남성 한명을 생포했으며, 그가 빈라덴의 아들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부 미국 관리들은 특공대가 현장에서 가져온 것은 빈라덴 사체뿐이라며 보도를 오보라고 일축했다. 미국 관리들은 현장에 있던 빈라덴 가족은 파키스탄 당국에 넘겼으며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파키스탄 당국에 달렸다고 말했다. Q:파키스탄은 작전에 어떤 역할. A:빈라덴 사망 발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데 파키스탄이 도움을 줬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등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에 이번 작전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의 공조는 작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배제했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빈라덴 시신사진 CIA “공개” 백악관 “신중”

    미국 정부가 오사마 빈라덴 사살 사실을 공개한 지 이틀째인 3일(현지시간)까지도 시신 사진 공개 여부를 결론 내리지 못한 가운데 백악관과 중앙정보국(CIA) 사이에 엇박자가 나고 있다. 주검 사진 공개 문제는 이미 작전 계획 당시부터 미 정부 내부에서 논쟁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이날 시신 사진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처참한 시체 사진을 공개할 경우 자칫 반미 감정을 촉발할 것을 우려한 백악관은 즉각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런 속에서 CNN 등 미 언론들은 대체로 정부가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사진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패네타 국장은 NBC 뉴스에 출연해 빈라덴의 사망을 증명할 사진을 “대중에 공개할 것”이라면서 “당연히 나는 그 사진들을 봤고, 사진 분석 결과 그가 빈라덴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핵심은 우리가 빈라덴을 잡았다는 것”이라면서 “나는 전 세계에 우리가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DNA 테스트와 안면인식 기법을 동원해 신원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의문을 제기하는 등 논란과 음모론이 계속되자 사진 공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백악관은 이에 대해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고 바로 선을 그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빈라덴의 시신 사진에 대해 “끔찍한 사진”이라면서 “사진 공개 시 강한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빈라덴이 왼쪽 눈에 총을 맞아 두개골 일부가 훼손되고 가슴에도 총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 같은 참혹한 모습을 공개했을 때 빈라덴 추종 세력과 이슬람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도 이날 미 공영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미국 국민에게 공개하는 과정에 있으며 신중한 방식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면서 “추가적인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빈라덴이 죽었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지만 시각적 증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점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오해를 불러오거나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은 아니지만 공개할 수 있다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렇다.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해 적절한 시점에 공개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최후 순간 비무장”… “가족이 보는 앞에서 총살”

    오사마 빈라덴 사살이 정당했느냐는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당초 발표했던 사살 당시 상황과 전혀 다른 사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처음엔 빈라덴이 여성을 방패막이 삼아 총을 들고 저항했다고 설명했지만 하루 만에 그가 비무장 상태였다고 번복했다. 그런데 이번엔 미군이 빈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기름에 불을 부은 형국이 됐다.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빈라덴이 무기를 지니고 있었고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을 인간방패로 이용한 (치졸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불과 하루 뒤 그가 네이비실과 마주한 순간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빈라덴이 여성을 인간방패로 삼았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의 설명이 하루 만에 뒤집힌 이유에 대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美 빈라덴 가족 등 16명 체포” 미 정부가 오락가락한 정황을 되짚어 보면, 애초 작심하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면 언론의 폭로도 없었는데 스스로 하루 만에 설명을 뒤집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빈라덴에 대한 악감정과 사살을 정당화하려는 의욕이 앞서면서 미국 측에 유리한 쪽으로 정보를 해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장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사살해야 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카니 대변인은 “가능하다면 그를 생포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상당한 정도의 저항이 있었고, 그곳에는 빈라덴 외에도 무장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빈라덴이 있던 방에는 무장한 다른 인물이 없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받자 “당시는 매 순간 언제라도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특수부대 요원들은 고도의 전문성에 입각해 현장 상황에 대처했다. 빈라덴은 저항했기 때문에 사살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빈라덴이 어떻게 저항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하면서 “저항할 때 무기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백악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애초부터 사살을 목표로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생포했을 경우 재판 등 신병처리 과정에서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 수 있고, 빈라덴을 구출하기 위한 테러가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차라리 사살하는 게 속 편하다고 계산했을 법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빈라덴이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관계를 폭로할 것을 우려, 사살했다는 설도 나돈다. 이와 관련,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은 “우리는 빈라덴이 생포 작전에서 저항할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빈라덴이 사살될 공산이 큰 것으로 가정했다.”고 말해 사살 쪽에 무게를 두고 작전을 폈음을 시사했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 해명과는 또 다른 증언이 나와 파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는 4일 파키스탄 정보당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미군이 빈라덴을 생포한 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일 미군의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빈라덴 딸(12)의 진술에 따르면 미군은 1층에 있던 빈라덴을 사로잡은 뒤 가족들 앞에서 사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무장하지 않은 상대방을 사살한 것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가피하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미군이 작전을 종료한 뒤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시신 네 구를 수습하고 여성 2명과 2∼12세 어린이 6명을 연행했다고 알아라비야는 보도했다. 현지 일부 매체는 파키스탄 당국이 모두 16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관리는 이들 대부분이 빈라덴의 가족으로 현재 이슬라마바드 인근 라발핀디의 군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미군은 이미 빈 라덴과 아들의 시신을 헬기에 싣고 이륙한 뒤였다고 파키스탄 관리들은 전했다. 또 다른 한 관리는 ”은신처에는 벙커나 도피용 터널이 전혀 없었다.“면서 ”세계 최고의 수배 인물이 이런 곳에 살았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다.”라고 말했다. ●“은신처에 벙커·터널 없어” 미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판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당장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미군 작전은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고 세실리아 말스트룀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도 빈라덴을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의 국제법 전문가인 게르트 얀 크놉스도 2001년 체포돼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섰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빈라덴 역시 법의 심판에 맡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영국 켄트대학의 닉 그리프 교수는 나치 전범들도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며 미군의 작전은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은 초법적인 사살”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서울 강국진기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유산 한 푼도 못 빼돌려 연줄 이용 자금확보”

    “빈라덴, 유산 한 푼도 못 빼돌려 연줄 이용 자금확보”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 특수부대원의 총탄에 최후를 맞기 전까지 철저히 음지에 숨어 살았다. 이 때문에 그를 둘러싼 각종 소문만 무성했다.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조차 그를 쫓는 데 애먹는 사이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는 근거가 빈약한 소문과 억측으로 덧씌워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빈라덴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반박했다. ① 빈라덴은 CIA가 키웠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옛 소련에 맞서기 위해 빈라덴을 지원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무근이다. 그와 추종자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받거나 훈련받은 적이 없다. 다만 소련에 맞서 빈라덴과 함께 싸웠던 아프간의 무장 게릴라 단체 ‘무자헤딘’은 파키스탄 정보국을 통해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② 개인 재산이 막대한 갑부였다? 빈라덴의 아버지는 건설 갑부 출신으로 빈라덴을 포함한 52명의 자녀들에게 유산을 공평히 나눠 줬다. 그러나 그가 1991년 고향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파키스탄으로 갈 때 개인 재산을 반출하지 못했고 가족들도 그와 관계를 끊었다. 대신 빈라덴은 자금을 쉽게 모을 수 있는 연줄이 있었던 까닭에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③ 1993년에도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했다? 빈라덴이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파 시도에 연루됐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당시 사건을 주도했던 람지 유세프는 독립적으로 테러를 기획했던 셰이크 무함마드를 위해 일했다. ④ 동굴에서 주로 살았다? 빈라덴의 ‘동굴 거주설’은 1990년대 말 그가 선전전을 위해 일부 기자들을 아프간 동부 토라보라 산악지대의 동굴로 초청하면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빈라덴은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안락한 거처에서 생활했다는 증거가 많다. 1999년에는 아프간 칸다하르 인근의 복합 주거 시설로 이주했으며 그가 숨을 거둔 곳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3층짜리 고급 맨션이었다. ⑤ 청소년 때 불량배였다? 청소년 때 흥청망청 생활했다는 비난들도 있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없다. 빈라덴은 오히려 진지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었다는 증언들이 나온다. 17세 때 결혼한 그는 경전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⑥ 신장 질환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전 대통령은 2002년 “빈라덴이 신장 질환으로 숨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장병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190㎝가 넘는 장신인 탓에 척추 질환을 앓은 것으로 전해진다. ⑦ 영국 프로축구팀 아스널의 광팬이다? 빈라덴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아스널의 광팬이며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은 센터포워드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 그렇지는 않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美서 죽은 여동생 DNA로 신원 확인

    미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뒤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빈라덴의 죽은 여동생 유전자(DNA) 샘플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미국 ABC방송 등에 따르면 미군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교전 끝에 빈라덴을 사살하고 시신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DNA 테스트를 통해 그의 신원이 빈라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송은 빈라덴의 여동생 가운데 한명이 미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뇌종양으로 숨졌는데, 미 정보당국은 훗날 빈라덴의 신원을 확인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여동생의 뇌세포 조직에서 DNA를 미리 채취해 두었다고 했다. 미 국방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빈라덴 가족 몇명의 DNA를 이용해 빈라덴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으나 그 가족이 누구인지, 테스트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등은 설명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급 정보당국 관계자는 전날 특수부대가 빈라덴의 얼굴을 확인했으며, 빈라덴의 아내 가운데 한명이 그의 신원을 확인해줬다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시신의 사진과 빈라덴의 얼굴을 대조한 결과에서도 시신이 빈라덴이라는 것을 95% 확신할 수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 다른 빈라덴 친척들과의 DNA 샘플 테스트에서도 빈라덴 시신에서 나온 것과 100%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보스턴의 한 DNA테스트 연구소의 기짓 허드슨 박사는 “조사관들이 빈라덴의 머리카락과 손톱, 구강 상피세포 등을 채취해 조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일 밤 빈라덴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DNA 테스트 결과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미 연방수사국(FBI)에서 일했던 브루스 버다울 박사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적절한 조건에서라면 DNA 대조를 통한 신원 확인 작업이 매우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당국은 얼굴의 고유한 특징을 일치시켜 신원을 확인하는 ‘얼굴 인식’(facial recognition) 기법을 통해서도 빈라덴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빈라덴이 190㎝가 넘는 장신이라는 점도 신원 확인에 간접 활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빈라덴의 은신처 급습 당시 한 여성이 빈라덴의 이름을 부른 것도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됐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美 “알카에다 괴멸” 테러戰 2막

    미국 정부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을 계기로 알카에다 조직을 완전히 괴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알카에다 조직이 다른 이슬람 과격 테러 조직과 연대하거나 미국인들을 새로운 조직원으로 모집하는 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은 3일 NBC방송에 출연, “알카에다 조직은 지난 10년간 미국 주도로 진행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빈라덴의 사망을 계기로 나머지 조직도 타격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미군 특수부대가 빈라덴 은신처를 급습, 사살 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드라이버를 비롯해 DVD·문서 등 알카에다 조직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다수 입수했으며, 중앙정보국(CIA)이 이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브레넌 보좌관은 이를 통해 “파키스탄 내부에서 어떤 방식으로 빈라덴을 지원했는지도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A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 정부 당국자들은 현재 알카에다가 9·11테러 수준의 대형 테러를 저지를 역량은 갖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공격력은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빈라덴 은신처에 대한 습격작전의 윤곽이 잡혀 가던 지난 2월 “지속적인 미군의 공격으로 알카에다의 핵심 역량이 크게 약해졌다.”면서 “우리는 알카에다가 미국인을 새로운 조직원으로 모집하고 아라비아반도의 다른 테러 단체와 제휴하려는 움직임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인 파키스탄 서북부의 알카에다 세력권에 대한 미군 무인항공기의 지속적인 공습이 알카에다 전력 약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무인항공기 공습을 더욱 가속화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 사살을 승인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을 CIA 국장, 리언 패네타 CIA 국장을 새 국방장관에 지명함으로써 이 같은 기조를 뒷받침했다. 무인항공기를 통한 알카에다 공습은 2007년 5차례에서 지난해 120회로 급증했다. 한편 빈라덴 사망과 관련, 경찰은 주한 각국 대사관을 목표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사관 주변 순찰을 강화했다. 경찰청 대테러센터는 3일 삼성 사옥과 주한 아랍국가 대사관을 폭파하겠다는 협박 이메일이 접수됨에 따라 수색 작업에 나섰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서울 백민경기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사살 이후] ‘빈라덴의 최후’ 오바마 백악관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빈라덴 사살 이후] ‘빈라덴의 최후’ 오바마 백악관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우리는 작전 개시 때부터 목표물 발견, 시신 이동까지 모든 작전 상황을 ‘실시간으로’으로 모니터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0분에 걸친 오사마 빈라덴 공격작전을 백악관 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고 백악관 측이 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존 브레넌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의 브리핑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상황실에서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 등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과 함께 작전을 최종 점검했다. 그리고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화면을 통해 작전 모습을 지켜봤다. 브레넌 보좌관은 “아마도 백악관 상황실에 모였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초조하고 불안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라면서 “몇분이 며칠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실시간 상황 점검은 현장 전투요원들이 헬멧에 착용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암호화된 상태로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백악관 상황실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교전상황 생중계에 사용된 핵심 위성은 국방위성통신시스템(DSCS)3와 밀스타 시스템이다. 밀스타는 더 뒤에 개발된 위성으로 안정적인 통신을 가능케 하지만 DSCS3만큼 많은 신호 대역폭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이 시스템은 지상 기지나 정박 중인 선박, 또는 공격용 헬리콥터에 설치된 통신 단말기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브레넌 보좌관에 따르면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작전 상황을 지켜보다 마침내 특수부대원이 진입한 건물에서 오사마 빈라덴과 마주치자 상황실에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특수부대가 습격한 은신처에 정말로 숨어 있는지 100% 확신하지 못했는데 화면을 통해 그를 발견하자 모두들 ‘작전 성공’이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곧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특수부대원들한테서 암호명 ‘제로니모 E-KIA’를 보고받고서야 작전을 무사히 마쳤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로니모(1829~1909)는 아메리카 원주민 아파치족 추장으로 미군에 맞서 신출귀몰한 활약을 펼쳤던 것으로 유명하다. 1885년 전후로 미군이 제로니모를 붙잡기 위해 동원한 군인이 5000명이 넘었을 정도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오사마 빈라덴에게 제로니모란 암호명을 붙인 것도 두 사람이 이미지가 상당히 겹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E-KIA’(Enemy Killed In Action)는 적이 사살됐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오바마 대통령이 전해 들은 ‘제로니모 E-KIA’는 임무 완수 신호였던 셈이다. 백악관은 어떤 기술, 어떤 경로로 현장상황을 실시간 전송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는 사진을 공개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SNS, 범죄수사·의료정보 교류에 활용

    SNS, 범죄수사·의료정보 교류에 활용

    이르면 내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의료 정보를 교류하고 범죄 신고와 수사 등에 SNS를 활용하게 된다. SNS가 국가·사회적 의사소통 수단으로 격상되는 셈이다. 정부는 개인정보보호 강화를 위해 사용자가 원할 경우 SNS에 올린 게시물과 콘텐츠를 삭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 제도도 도입키로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일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에 SNS를 국가·사회적 소통 수단으로 활용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하는 생태계 조성 등을 골자로 한 ‘소셜플랫폼 기반의 소통·창의·신뢰 네트워크 사회 구현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앞으로 방통위,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협력해 교육, 건강, 재난 대응, 치안, 민원 등 주요 공공 서비스를 SNS와 결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SNS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학습 이력을 관리하는 ‘소셜 학습’이 본격화된다. 또 SNS로 환자와 의사 간 실시간 정보를 교류하고 치료 중심의 의료 체계를 관리·예방과 환자 중심인 ‘소셜 의료’로 바꿔 그 기반을 조성한다. 지진 등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한 지역에는 임시 재난용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정부 부처에는 SNS를 통한 소통을 담당하는 소셜커뮤니케이션 전략담당자(Social CIO)가 배치되고 소셜 플랫폼의 활용도를 평가하는 ‘소셜 인덱스(지수)’가 적용될 계획이다. ‘소셜 비즈 파트너’ 인증제도 도입된다. 아이디어와 자본·인력 등을 연계하고 지원하는 투자사를 정부가 인증해 SNS 창업을 지원하고, 참여형 소셜펀드를 조성해 비즈니스 활성화에 나선다. 소셜 시대의 역기능인 개인정보 유출 등을 방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SNS 이용자가 본인의 글이나 사진 등을 파기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를 도입하기로 했다. 잊혀질 권리는 유럽연합(EU) 등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또 SNS의 허위·유해 정보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온라인 평판시스템’도 고도화하기로 했다. 방통위는 올 하반기에 실현 가능한 모델을 개발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네이비실 40분 만에 작전완료… “빈라덴 시신 바다에 수장”

    네이비실 40분 만에 작전완료… “빈라덴 시신 바다에 수장”

    2009년 1월 취임하기가 무섭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은밀하게 백악관으로 호출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일에 주력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에 미 정보 당국은 빈라덴에 대한 정보망을 더욱 열심히 돌렸고 마침내 석달 뒤인 그해 4월 심상찮은 단서가 포착된다. 빈라덴을 숨겨 주고 있는 남자의 소재를 통해 빈라덴의 은신처로 의심되는 곳이 파악된 것이다. 그곳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은신처는 주변의 집들보다 8배나 크고 고급스러운 3층짜리 고급 아파트였다. CIA는 그 건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차츰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CIA는 지난해 8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빈라덴의 은신처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고 정식으로 보고한다. 하지만 100%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더 확인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CIA는 8개월을 더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3월 빈라덴의 은신처라는 확신이 들면서 오바마 안보팀은 긴박하게 움직인다. 확인된 것만 3월 14일과 19일, 4월 12, 19, 28일 등 다섯 차례의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팀 회의가 열렸다. 물론 여기에는 극소수의 핵심 멤버만 참여했고 웬만한 고위 각료들도 정보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아침 8시 20분 오바마 대통령은 토네이도 피해를 입은 앨라배마로 가기 직전 빈라덴에 대한 공격작전을 승인했다. 헬기에 소규모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 요원들을 실어 은신처를 습격하는 것이 작전의 골자였다. CIA는 작전 D데이를 일요일인 1일로 잡았다. 아무래도 상대편이 긴장을 풀기 좋은 때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1일 오후 1시 백악관에 오바마 대통령과 극소수의 참모들이 모여 공격을 위한 최종 점검을 했다. 3시 32분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다. 3시 5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현재 은신처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파키스탄 시간으로는 2일 새벽 1시 15분)부터 30분 동안 은신처에 대한 공격이 헬리콥터를 통해 이뤄졌다. 이후 네이비실 요원 20~25명이 헬기를 통해 현장에 투입됐고 지상에서 약 40분간 임무를 수행했다. 헬기의 집중 공격으로 은신처는 화염에 휩싸였다. 상황을 목격한 현지 주민에 따르면 미군 헬기들이 빈라덴의 거처를 향해 접근하자 빈라덴 측 병사들은 지붕에서 로켓식 유탄 발사기를 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화염에 휩싸인 채 추락했다. 추락 헬기에 탄 네이비실 요원들은 헬기를 부수고 밖으로 나와 작전에 가담했다. 빈라덴은 그 후 양측 간 총격전의 와중에 최후를 맞았다. 사살 당시 상황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CNN은 이번 작전에 정통한 미 의회 소식통과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 빈라덴이 머리에 총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시간으로 저녁 7시 1분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보고를 받는다. 8시 30분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망한 게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후 백악관 참모들은 의원들과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에게 대통령이 곧 중대한 발표를 할 것임을 알린다. 밤 11시 35분 오바마 대통령이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빈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의 작전으로 사살됐다고 확인하면서 “정의는 실현됐다.”고 말했다. 미 특수부대는 교전 직후 빈라덴의 시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신을 헬기로 옮긴 뒤 바다에 수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의 한 관계자도 이날 “빈라덴의 시신은 수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수장된 곳이 어느 바다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도자를 잃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이나 추종세력이 어느 바다인지 알게 되면 빈라덴의 주검을 탈취할 수도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빈라덴 은신처는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는 당초 예상과 달리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날씨가 쾌적해 관광 명소로 꼽히며 주민들의 소득과 교육기관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는 퇴역 군인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3개 파키스탄 육군 연대가 자리 잡고 있어 군사시설과 군인 거주시설이 많았다. 빈라덴이 은신하던 맨션도 군사학교에서 불과 100m 정도, 경찰서에서 2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2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빈라덴의 은신처 크기는 주변 일반 가옥보다 8배나 컸고, 100만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3층짜리 최고급 맨션이었다. 2005년에 지어진 이 거처에는 철조망이 붙어 있는 5.5m짜리 외벽과 키 높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내벽도 있었다. 3층 베란다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별도의 2m 높이 담으로 가려져 있었다. 주변 건물들과 따로 떨어져 비포장 도로 끝에 있는 데다 주택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2개의 문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었다. 평소 경비원들이 서 있는 등 매우 삼엄한 경비가 이뤄져 왔다고 통신은 전했다. 쓰레기는 버리지 않고 안에서 태웠던 것으로 알려졌고, 전화도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는 등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CIA는 빈라덴이 그곳에서 아들, 막내 부인을 포함해 여러 명의 가족과 기거해 왔다고 추정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美 “빈라덴 사살” 테러戰 1막 끝났다

    美 “빈라덴 사살” 테러戰 1막 끝났다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키며 지난 10년 동안 지구촌을 아프간 전쟁 등 ‘테러와의 전쟁’ 속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 오사마 빈라덴(54)이 마침내 사살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밤(워싱턴 현지시간) 미 특수부대가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최고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 교전을 벌인 끝에 그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빈라덴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약 100㎞ 떨어진 아보타바드의 고급 맨션에 머물고 있었다. 미 특수부대의 기습은 파키스탄 시간으로 2일 새벽 이뤄졌다. 이날 작전으로 빈라덴의 아들 1명을 포함한 남자 3명과 여자 1명도 사살됐다고 AP통신이 미국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교전 중 미군 피해는 없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밤 12시쯤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발표한 성명을 통해 빈라덴 사살 소식을 전한 뒤 “빈라덴의 사살은 (지난 10년간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며 “이제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주요 서방 각국은 이날 빈라덴 사살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반미 노선 국가들은 빈라덴 사망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등 엇갈린 기류를 보였다. 그동안 전 세계에서 반미·반서방 테러를 주도해 온 빈라덴의 죽음으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 전기를 맞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의 사망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면서 “빈라덴의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가 미국을 향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언 패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날 “빈라덴을 잃은 테러리스트들은 거의 확실히 복수를 시도할 것”이라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빈라덴 사살에 반발하는 반미 테러 세력들이 조만간 세계 각지에서 무장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해외 공관에 경계강화를 지시하는 한편 해외여행에 나서는 자국민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심야 발표에서 “수년간 공들인 작업 끝에 지난해 8월 빈라덴에 대한 단서를 보고받았다.”며 “수개월간의 정보 확인 뒤 지난주 우리가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확보해 빈라덴을 잡아 법정에 세우기 위한 작전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요일인 지난달 29일 공격작전을 승인했다고 AP 등이 전했다. 한편 빈라덴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은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에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어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9·11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제로에서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carlos@seoul.co.kr
  • 10년만의 개가… ‘이름값’한 美 정부 기관들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제거로, 그동안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네이비실(Navy SEAL)이 오랜만에 웃을 수 있게 됐다. 빈라덴의 목에 2500만 달러(약 266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던 미 행정부도 체면치레를 하게 됐다. ●CIA ‘전담팀’ 불구 9·11테러 못 막아 CIA는 지난 10년 가까이 신출귀몰한 빈라덴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는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서도 최종 확신을 갖기까지에는 신중을 거듭했다. 그 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빈라덴의 은신처에 대한 정식 보고를 CIA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발표에서 “첫 보고를 받은 뒤 정보를 확인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고 밝혔다. CIA는 마지막 순간에 빛나는 정보력을 발휘했으나 9·11테러 이후 10년 동안 헛발질을 되풀이하며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알카에다가 1996년 필리핀을 방문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CIA는 ‘빈라덴 전담팀’까지 만들었으나 결국 감시에 실패해 2001년 9월 11일 본토를 공격당했다. 또 미국은 빈라덴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토라보라 산악지대의 복잡한 동굴 연결망에 숨어 지내는 것으로 예상해 이곳을 여러 차례 폭격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산악 지역은 지형이 파키스탄 정보기관도 침투할 수 없을 만큼 산세가 험해 서방 정보조직 사이에서는 “진정한 블랙홀”로 통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였던 2008년 테러와의 전쟁이 ‘소득 없는 싸움’이라는 비아냥을 듣자 빈라덴 체포를 위해 정찰활동을 강화했다. 그러나 빈라덴이 안전 문제에 민감해 팩스나 전화기 등 추적 가능한 통신기기를 쓰지 않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CIA도 행방을 쫓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폭로 전문 위키리크스가 2001년 미국의 아프간전 개시 직후 빈라덴이 수도 카불 등 아프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추종자를 만나 공격 지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CIA의 정보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해군특공대 6년전 실패 딛고 명예회복 미국의 엘리트 부대로 불리던 네이비실도 빈라덴 사살에 성공하면서 구겨졌던 자존심을 회복했다. 미 해군 특공대인 네이비실 부대원들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의 맨션에 있던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40분 만에 작전을 완료했다. ABC방송은 이번 작전에 미군 헬기 2대가 동원됐고 이날 오전 1시 30분~2시에 20~25명의 네이비실 대원들이 투입됐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전 당시 정보 수집과 군사시설 폭파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세계 최고의 특수부대로 군림해 온 네이비실은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더불어 미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총부대원은 2500여명으로 바다와 육지, 상공의 적 정보 분석 등으로 작전 수행을 지원하고 게릴라전과 대테러전, 특수 정찰 작전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투입된 부대원들은 1980년 창설된 테러 진압 특공대인 ‘SEAL팀6’ 소속으로 알려졌다. SEAL팀6는 현재 ‘데브그루’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고도의 체력단련 훈련을 통과한 정예 요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주로 대테러 훈련에만 집중한다. 최근 네이비실의 명성은 쇠락해 왔다. 2005년 네이비실은 아프간 동부 쿠나르 산악지대에서 알카에다 소탕 작전을 펴다 19명의 부대원을 잃었다. 2001년 이후 미군의 단일 작전으로는 최악의 실패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작전의 성공은 네이비실이 명예를 회복할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서린·유대근기자 rin@seoul.co.kr
  • 총감독 오바마, 재선 ‘파란불’

    총감독 오바마, 재선 ‘파란불’

    오사마 빈라덴 사살에 따른 정치적 수혜는 다른 누구보다 버락 오바마(얼굴) 대통령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군 통수권자로서 이번 사살작전을 총지휘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밤(현지시간) 자신이 빈라덴 제거 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작전이 본인의 직접적 결단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7년 동안이나 추적했어도 잡지 못했던 빈라덴을 취임 2년여 만에 제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유능한 군 통수권자의 이미지를 과시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보수세력으로부터 약점으로 공격받아 온 점들, 즉 안보에 무능하다거나, ‘후세인’이라는 중간 이름(middle name)으로 미뤄 무슬림이라거나, 미국 외 출생 의혹이 있는 등 애국심이 박약하다거나 하는 등의 의구심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 내용을 보면 본인의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빈라덴 제거에 각별한 공을 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빈라덴을 잡기 위해 중앙정보국(CIA) 등과 긴밀한 작전을 가동했다.”는 비화를 공개했으며,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7개월 만인 지난해 8월에 벌써 빈라덴의 행적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 제거라는 뚜렷한 업적으로 내년 재선을 앞두고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남은 변수는 경제다. 아무리 다른 쪽에서 공을 세워도 민생이 팍팍하면 재선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은 누구보다 오바마 대통령이 잘 인식하고 있다. 그가 리비아 공습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서두르는 것도 전쟁에 쓸 돈을 민생에 투입하려는 계산이다. 반면 경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엉망으로 하지만 않는다면 재선은 무난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미국 국민 입장에서 10년 만에 ‘나라의 원수’를 잡은 대통령을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특히 9·11테러는 미국이 진주만 피습 이후 당한 가장 자존심 상하는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빈라덴 제거로 분출되는 애국주의는 고스란히 현직 대통령에게 투영될 공산이 크다. 1일 밤 워싱턴 시민들이 백악관으로 몰려가 기쁨을 분출한 것이 단적인 현상이다. 만일 빈라덴 사살에 대한 보복으로 알카에다가 다시 테러를 자행한다면 그것 역시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사건이 될 것이다. 미국은 위기에 처할 수록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빈 라덴 사살 정예 특수부대 ‘데브그루’ 정체는?

    빈 라덴 사살 정예 특수부대 ‘데브그루’ 정체는?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특수부대의 작전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작전을 실행했던 대원들의 정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군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50여 ㎞ 떨어진 아보타바드시의 은신처를 급습해 이곳에 있던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은신처를 급습한 병력의 소속이나 규모를 밝히진 않았으나, 외신들은 이들의 규모가 약 20~25명으로 소속은 미 해군 특수전부대(SEAL)라고 전했다. SEAL은 바다와 하늘, 지상을 가리키며, 육해공 모두에서 작전을 펼칠 수 있음을 뜻한다. 이 부대는 흔히 네이비실(Navy SEAL)이라 불리며 맡은 임무에 따라 몇 개의 팀으로 구성되는데, 이번에 빈 라덴을 사살한 병력은 그 중에서도 최정예로 알려진 ‘데브그루’(Devgru)로 알려졌다. 데브그루는 ‘미 해상특수전개발단’(United States Naval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의 약자로, 원래는 다른 팀들처럼 ‘팀 6’로 불렸으나 1980년대를 거치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공식적으로 데브그루는 해상특수전사령부 소속으로 관련 전술과 장비, 기술 등을 연구하는 조직이지만, 실제로는 합동 특수작전사령부(JSOC)의 지시를 받으며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사한 조직으론 미 육군의 ‘델타포스’(Delta Force)가 있다. 데브그루나 델타포스 모두 부대의 규모나 장비, 임무 등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을 만큼 베일에 싸인 특수부대지만, 이들은 잠수함을 이용한 수중침투나 고공낙하 등 다양한 침투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JSOC에는 이들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각종 특수전 헬기로 무장한 ‘특수전 항공연대’(SOAR)까지 존재한다. 이번 빈 라덴 은신처 급습에도 데브그루 대원들이 SOAR 소속의 헬기 여러 대에 나눠타고 침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중 한 대는 현장 인근에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이번 작전에서 미군 희생자는 없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로 미루어 볼 때 조종사는 무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외신들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추락 직후 정보보호를 위해 현장의 대원들에 의해 폭파됐으며, 대원들은 임무 종료 후 다른 헬기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사진 = 네이비실 팀 6 마크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
  • CIA가 빈 라덴 사살 주도했다

    CIA가 빈 라덴 사살 주도했다

    무려 10년 넘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타깃이 되면서도 좀처럼 위치를 노출하지 않았던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지난주 사살된 작전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CNN, ABC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이번 작전은 기존에 미군이 광범위하게 활용해온 ‘공중 폭격’ 대신 빈 라덴의 소재를 정확히 파악한 후 급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CNN은 “리온 파네타 CIA 국장이 빈 라덴의 사망사실을 1일 저녁 의회 고위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면서 “CIA와 파키스탄 정보당국이 이 작전을 주도했으며, 사살은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CIA 고위관계자는 언론에 “작전은 철저하게 ‘목표를 갖고’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공식 발표에서 “취임 직후 CIA와 함께 지속적으로 빈 란덴의 경로를 추적해왔으며 지난해 경로를 포착, 이번 사살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당초 일부 언론은 빈 라덴이 ‘드론’으로 불리는 무인폭격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전했지만, 백악관은 공식발표에서 ‘지상 작전’이었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전쟁 선동자…‘지지 않는 탐욕의 해’가 만든 분쟁사

    분쟁 지역 취재를 하던 히로세 다카시는 어느 날 이스라엘 가자 지구를 찾아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난다. 고통과 증오로 범벅된 눈빛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온 저녁에는 팔뚝에 나치 강제수용소의 문장과 수인 번호를 찍은 채 살고 있는 이스라엘 여성을 만난다. 어느 한쪽에 서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을 몸으로 직접 맞닥뜨린 셈이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벌어진 전쟁과 갈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스스로 묻고, 묻고, 또 묻는다. 고민과 성찰 속에서 그는 역사 속 한 인물을 만난다. 군사이론 교범서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다. 히로세는 평화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근대사에서 전투와 전쟁의 기술적 이론을 만들어 내며 ‘천재적 군사 전략가’로 일컬어지는 이를 호출하며 전쟁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의문을 풀어 가기 시작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는 47장의 지도를 앞세워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1991년까지 해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과 전투, 분쟁을 빼곡히 채워 놓은 분쟁사 연속 지도다. 지도는 지구상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이 계속돼 왔음을 한눈에 보여 준다. 구구한 말과 설명 없이도 지도 자체가 전쟁의 지긋지긋함을 웅변해 준다. ‘1인 대안 언론’이자 ‘평화와 대안의 삶’을 직접 실천하며 사는 히로세는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전쟁이 세상과 인류를 어떻게 절멸시키는지 생생히 보여 준다. 1984년에 처음 쓰여진 책으로 히로세 평화사상의 원형과도 같다. 평화운동의 고전으로도 꼽힌다. 책의 원제목이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인 것에서 짐작되듯 그는 전쟁이 미치는 해악과 무엇을 이용해 학살을 자행했는지, 누가 전쟁을 지시했는지를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밝힌 이론을 차용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던진 ‘전쟁의 이유’라는 질문에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 끊임없이 적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쉼 없이 전쟁을 지향하며 주변을 선동하는 사람을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라고 구분 짓는다. 히로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사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 의한 ‘전쟁 선동사’였으며 이들이 적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의해 전쟁이 이뤄진다고 결론짓는다. 전쟁의 근원적 이유를 탐구하기 위해 클라우제비츠를 불러냈다가 다시 그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히로세에 따르면 역사 속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츠로부터 시작해 히틀러, 스탈린, 부시, 앨런 덜레스(미국 CIA 국장) 등으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전쟁사는 ‘전쟁 선동사’였다고 규정하고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은 분쟁 지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A전쟁 프로젝트를 완수하면 곧바로 B전쟁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래서 히로세는 권유한다. 독자들 또한 자신처럼 매일 신문에서 분쟁 기사를 보며 분쟁 지도를 만들어 보라고. 미국이건, 구 소련이건 가릴 것 없이 전쟁으로 탐욕을 채워 가는 존재들은 집요한 취재의 결과물 앞에서 낱낱이 까발려진다.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한다.’는 논리에 대해 히로세는 “핵은 오로지 핵전쟁만을 방지하고 핵이 없는 나라의 군사적·경제적 지배만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라며 그 허구성을 논박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도 개운찮은 구석이 있다. 뭔가 말을 마치지 않고 책을 닫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철저히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했는데 추구하는 ‘이익’의 실체 등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어서다. 히로세는 2년 뒤 ‘제1권력-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를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이 책이 첫 번째 책 ‘왜 인간은’보다 먼저 나왔다. 히로세는 두 책을 통해 전쟁과 자본의 연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자신의 이론을 완성해 나간다. 한국전쟁 때 자행된 세균 전쟁의 진실과 1983년 여객기 격추 사건에 얽힌 음모, 한국과 일본의 군대를 이용한 방위 시스템을 구축해 ‘손 안 대고 코 푼’ 미국 CIA의 첩보전 실상 등도 곁들여져 있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하고 야만적인 전쟁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 역시 주요 전장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