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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과 군산 짬뽕거리 [한ZOOM]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과 군산 짬뽕거리 [한ZOOM]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중년이 된 지금도 이 선택은 어렵다. 젓가락을 손에 들고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머릿속은 최근 먹은 음식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어느 쪽도 먹은 기억이 없다. 결국 ‘짜장면’의 달콤한 소스와 ‘짬뽕’의 얼큰한 국물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볶음밥’을 주문했다.  1601년 덴마크 왕자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를 외쳤지만, 현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딜레마 속에서 살아간다. 1997년을 즈음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고통받고 있을 때 중국음식점에서는 자구책으로 칸막이가 있는 그릇에 짜장면 절반, 짬뽕 절반을 주는 ‘짬짜면’을 출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짬짜면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두 메뉴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숙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우리를 고통받게 했던 딜레마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짜장면의 표기법 ‘짜장면이냐 자장면이냐’가 바로 그것이었다. ‘짜장면이 자장면이면, 짬뽕은 잠봉이냐?’ 정말 환상적인 이 논리에도 불구하고 짬뽕은 살고 짜장면은 숨죽여 살았다. 다행히 2011년 온 국민의 염원이 해결됐다. 국립국어원에서 ‘자장면’과 ‘짜장면’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발표를 했다. 수요일이었던 바로 그날 짜장면의 독립일을 축하하기 위해 회사 근처 중국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 모인 수많은 독립투사들 덕분에 짜장면 한 그릇 먹으려고 1시간이나 줄을 서야만 했다.  도대체 우리를 이토록 괴롭혀 온 짜장면과 짬뽕은 어디서 온 놈들일까? 우선 짜장면의 시작을 찾아 인천광역시 중구에 있는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짜장면 탄생 설화 짜장면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화교들이 춘장에 면을 비벼 먹는 중국음식 ‘작장면’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바꾼 것이 오늘날의 짜장면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요리에 처음 ‘짜장면’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한 곳은 인천광역시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共和春)이다.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나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中華民國)이 들어섰다. 공화춘은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수립을 기념하며 ‘공화국에 봄이 왔음’을 기뻐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은 2004년 개업한 가게로, 1983년 폐업한 원조 공화춘과는 무관하다. 원조 공화춘이 있던 자리에는 2012년 개관한 ‘짜장면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짜장면의 정체를 알아냈으니 다음은 짬뽕의 시작을 찾아 멀리 전라북도 군산시로 향했다. 짬뽕 탄생 설화 서해로 흐르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에는 충남 서천군, 남쪽에는 전북 군산시가 있다. 그리고 금강을 가로질러 1930m의 동백대교가 두 도시를 이어주고 있다. 동백대교가 보이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길을 건너 왼쪽으로 약 300m 정도 걸어가면 ‘짬뽕거리’가 나온다. 군산시는 2018년부터 ‘복성루’, ‘지린성’, ‘빈해원’ 등 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장미동 일대 골목상권에 짬뽕 특화거리를 조성하고, 2021년부터 매년 ‘군산짬뽕 페스티벌’ 사업을 벌이고 있다.짬뽕의 시작 역시 여러가지 설이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짜장면과 같이 화교가 있다. 우리에게 ‘칭따오 맥주’로 유명한 칭따오(靑島)가 있는 산둥성(山東省)에서 동쪽으로 가장 가까운 도시가 군산이다. 군산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이 '산둥식 초마면'에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을 넣어 ‘매운 초마면’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 음식이 군산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짬뽕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선택의 기로 짬뽕거리 입구에 있는 ‘빈해원’을 들러 메뉴판에 있는 ‘군산짬뽕’을 주문했다. 각종 해산물이 가득 들어있는 군산짬뽕의 국물 맛은 먼 거리를 찾아온 보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칼칼하면서도 불맛을 담은 담백한 국물맛은 분명 지금껏 경험한 짬뽕과는 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눈 앞에 원조 짜장면인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과 원조 짬뽕인 ‘군산 짬뽕거리 짬뽕’이 둘 다 놓여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될까? 짜장면과 짬뽕의 역사적 딜레마를 해결했는데도 또 다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딜레마의 덫에 걸려들었다.
  • ‘예비 엄빠’ 1017명 꿈 반짝반짝… 마포 미래 밝히는 ‘아기 햇살’

    ‘예비 엄빠’ 1017명 꿈 반짝반짝… 마포 미래 밝히는 ‘아기 햇살’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 부모의 건강관리와 육아를 지원하는 서울 마포구 햇빛센터에 5개월 만에 1000명 이상 등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11일 마포구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햇빛센터에 임신 준비 등록을 한 예비 부모는 모두 1017명이다. 이 가운데 969명이 임신 준비 검사를 마쳤고, 난임 상담과 의료비 지원도 978건 진행됐다. 지난 7월 마포구보건소 2층에 조성된 햇빛센터는 임신 준비부터 출산 후 산모 건강, 영유아 건강검진 등 전 과정을 한곳에서 관리해 주는 종합지원센터다. ▲난임 부부 상담실 ▲영양상담실 ▲모자 건강교육실 ▲임산부 휴게 쉼터 ▲아이들을 위한 오감발달존 ▲비혼모 상담실 ‘처끝센터’ ▲구강관리실 등이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난임 상담을 받은 김모씨는 “햇빛센터 간호사가 마음을 잘 헤아려 줘 편한 마음으로 상담을 받았다”며 “한곳에서 다양한 교육과 상담,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어 바쁜 직장인에게 유용하다”고 말했다.센터 개소 이후 5개월간 임산부 2911명이 임신 중 건강관리를 받았고 591명이 산후관리를 받았다. 2301명의 임산부가 영양 상담과 보충식품 지원 혜택을 받았다. 햇빛센터는 806명의 출산가정을 방문해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 상담과 부모 교육을 진행했다. 아울러 미숙아, 선천성이상아에 대한 의료비 및 저소득층 기저귀와 분유 지원 등이 437건 이뤄졌다. 산모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산후우울증 검사도 1087건 진행됐다. 햇빛센터가 운영하는 출산 준비 교실, 토요 예비 부모 교실, 우리 손주 돌보기 교육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예비 부모 교실에 참석한 임산부 이모씨는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양육 방식을 남편과 함께 고민해 볼 기회였다”며 “딱딱한 행정기관이 아니라 따뜻하고 친절한 센터 분위기와 서비스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밝혔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햇빛센터는 ‘아이가 태어나 처음 보는 햇빛’이라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라며 “모든 예비 부모가 임신과 출산, 양육이 혼자 감당할 몫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고귀하고 소중한 일임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 정영주 최초 고백… “난소암으로 자궁 적출”

    정영주 최초 고백… “난소암으로 자궁 적출”

    11일 저녁 8시 10분에 방송되는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서는 1994년, 뮤지컬 ‘스타가 될 거야’로 데뷔한 29년 차 배우 정영주가 출연한다. 이날 방송에서 정영주는 취향이 드러나는 소품과 감각적인 실내장식이 돋보이는 집을 공개한다.집에 초대된 절친한 친구로는 82년도에 데뷔해 뮤지컬 대중화를 이끈 ‘1세대 뮤지컬 배우’ 남경주와 ‘한국 뮤지컬 최고의 디바’ 최정원, 폭발적인 가창력과 퍼포먼스로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차지연까지 국내 최정상 뮤지컬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은다. 이들은 미국 911테러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로 뭉친 근황을 전하며 각자의 경력과 대표작을 언급, 관련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정영주는 15살의 아들이 겪었던 큰 교통사고를 언급하며 뮤지컬 연습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엄마로서 마음고생했던 당시를 회상한다. 그는 “하관 대부분이 손상될 만큼 큰 사고였다. 마취도 하지 못하고 1400바늘을 꿰맸는데 잘 버텨줬다. 그런데도 비트박스를 하더라”며 아들에 대한 대견함을 전한다. 차지연 또한 임신 사실로 공연 관계자에게 독설을 들은 후 임신 7개월 때까지 압박 스타킹을 신고 공연을 했다고 깜짝 고백, 공연에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임신 사실을 숨겨가며 버텨냈던 일화를 얘기한다. 정영주는 갑자기 닥친 난소암으로 자궁을 적출하게 돼 이른 폐경을 겪게 된 사연과 공연 중 갑자기 닥친 성대파열로 무대에 오를 수 없어 심한 우울증까지 앓았던 가슴 아픈 사연까지 공개될 예정이다.
  • 현대차·기아 219만대 수출 질주 ‘역대급 성적표’

    현대차·기아 219만대 수출 질주 ‘역대급 성적표’

    올해 말까지 현대자동차·기아의 합산 수출 대수가 7년 만에 2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이에 힘입어 자동차 업계도 역대급 수출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생산량을 확대하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통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1~10월 수출 대수는 각각 94만 5062대, 86만 7136대로 합산 181만 2198대를 기록했다. 이 같은 흐름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올해 연간 수출 실적은 현대차 약 114만대, 기아 105만대 등 약 219만대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업체의 합산 수출 대수가 200만대를 넘는 것은 2016년 200만 5798대 이후 7년 만이다. 현대차·기아의 연간 수출 대수는 2011년 228만 3000대로 200만대를 처음으로 돌파했으나 2016년 이후 해외공장 생산량 증가로 200만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내 생산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200만대 재탈환을 눈앞에 두게 됐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의 악재에도 리스, 렌터카 등으로 판매 채널을 다변화하고 친환경차 시장에서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며 현지에서 선전한 것이 실적을 끌어올렸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현대차와 기아의 1~11월 미국 판매량은 151만 57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1% 늘었다. 미국 내 연간 최다 판매인 2021년 148만 9118대 기록도 이미 뛰어넘었다. 업계에서는 올해 국내 자동차 산업이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KAMA는 최근 발표한 ‘2023년 자동차산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수출 대수가 전년 대비 17.4% 증가한 270만대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수출액은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차,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고부가가치 차량의 수요 증가로 수출 단가가 큰 폭으로 뛴 까닭이다. 2016년 1만 4000달러(약 1800만원)였던 자동차 한 대당 평균 수출 단가는 올해 2만 4000달러(3100만원)로 7년 새 약 1만 달러(68%) 상승했다. 이에 따라 올해 수출액은 지난해 대비 27.2% 상승한 약 690억 달러(91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지난해 541억 달러(71조 4000억원)를 뛰어넘은 역대 최대 수치다.
  • 제주형 돌봄정책 시행 두달… 518명 혜택 ‘연착륙중’

    제주형 돌봄정책 시행 두달… 518명 혜택 ‘연착륙중’

    #용담2동에 사는 A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서 허리 다쳐 치료받고 퇴원했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뒷바라지하던 할머니마저 아파 거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부부는 스스로 식사를 제대로 준비 못하는 상황에서 통합돌봄 센터를 알게 돼 서비스 문의를 했고 무료로 복지서비스 혜택을 받게 돼 지금은 건강이 많이 좋아져 흡족해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딸이 있는 제주로 온 B할머니는 생활형편이 녹록지 않고 거동도 불편해 장보러 다니기 힘든 상황에서 식사지원 서비스를 받은 후 삶의 활력을 다시 찾았다. 오영훈 제주도지사의 핵심 사업인 제주형 돌봄정책 ‘제주가치 통합돌봄’이 시행 두달이 지나면서 연착륙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의 사회복지 핵심 사업인 생애주기별 통합돌봄 체계 구축을 위한 ‘제주형 돌봄 정책’인 제주가치 통합돌봄사업을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오영훈 지사는 지난 6일 제주가치 통합돌봄사업에 참여하는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에서 민생투어를 하면서 직접 종사자들과 함께 도시락을 만들고, 식사지원을 신청한 도민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면서 제주가치 통합 돌봄사업에 대한 도민들의 높은 만족도를 확인했다. 오 지사는 7일 도청 기자들과의 차담회 자리에서 이같은 제주가치 통합돌봄서비스를 언급하면서 “제주형 돌봄정책은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게 목표”라면서 “기초수급자, 장애인들만 위한 정책이 아니라 누구든 긴급상황이 됐을 때 도가 관련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더 많은 도민들, 심지어 이 자리에 있는 공무원도 언론인까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제주사람들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서비스를 받고 도민사회가 더 건강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까지 500여명 정도 서비스를 받았는데 향후 1만명까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1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서비스 신청 현황은 두 달간 제주시 349명, 서귀포시 169 등 총 518명에 달한다. 생애주기별 대상자와 소득수준 현황을 보면 아동청소년 2명, 청장년 112명, 노인 404명으로 노인이 이용한 비율이 80%이며 경제수준은 수급자가 297명이 가장 많았고 뒤이어 기초·장애연금계층 184명, 차상위 11명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비스 유형별 신청 현황을 보면 전체 686건(제주시 466, 서귀포시 220건) 가운데 식사지원이 362건으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가사지원 227건, 방문목욕 82건, 긴급돌봄 15건 순이었다. 제주가치 통합돌봄은 소득, 장애 유무 관계없이 혼자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우나 돌봐줄 가족이 없고 기존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도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도는 현재 ▲가사지원 ▲식사지원 ▲긴급돌봄을 제공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건강의료 ▲주거편의 ▲방역방충 ▲통행지원 ▲일시보호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한편 돌봄 서비스가 필요한 도민들은 주소지 읍면동을 방문해 신청하면 되며, 통합돌봄 상담콜(1577-9110)을 통해 돌봄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상담받을 수 있다.
  • 동물원·수족관 허가제로 전환…미등록 시설 전시 금지

    동물원·수족관 허가제로 전환…미등록 시설 전시 금지

    앞으로 동물원 등으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의 야생동물 전시가 금지된다. 야생동물 특성에 맞는 서식환경 조성 및 먹이 공급 등의 의무를 부여해 갈비사자 ‘바람이’와 같은 전시동물 방치를 원천 차단키로 했다. 환경부는 5일 이같은 내용의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14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2022년 기준 국내 등록 동물원은 공영 24개와 민간 90개 등 총 114개에 달한다. 보유 동물은 4만 8911마리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6247마리, 국내 멸종위기종 및 천연기념물이 698마리로 집계됐다.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라 동물원과 수족관 설립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된다. 일정 규모 이상 시설 기준과 휴식처·바닥재 등 서식환경을 조성하는 등 허가요건이 강화된다. 동물원은 검사관의 검증과정을 거쳐야 운영할 수 있고 수의사와 사육사 등 전문인력을 갖추고 보유동물 질병·안전관리 계획과 휴·폐원 시 동물 관리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존 등록 동물원은 오는 2028년 12월 13일까지 5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해 허가요건을 갖추도록 했다. 환경부와 해부수는 5년마다 동물원과 수족관의 운영현황과 서식환경, 보유동물 복지실태 등을 조사해 공표하게 된다. 개정 야생생물법에 따라 동물원이나 수족관이 아닌 시설에서의 야생동물 전시가 금지된다. 기존 사업자에게는 2027년 12월 13일까지 4년간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유예기간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영업지의 시도지사에게 전시 현황을 신고해야 한다. 유예기간 중에는 야생동물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가하는 만지기와 올라타기 등 행위가 금지되고 위반시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물원 등 전시시설로 야생동물을 운송할때는 적합한 먹이와 물을 공급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시 최대 60만원의 과태를 부과한다. 특정지역에 밀집 서식해 양식업·내수면어업 등에 피해를 주는 민물가마우지와 까마귀류가 신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정환진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동물원의 동물복지 관리 강화 및 허가받지 않은 시설에서의 전시 등을 금지해 야생동물 보호·관리제도의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맞벌이 소득기준 140→200%… 청약 ‘결혼 페널티’ 손질

    청약할 때 혼인신고를 하면 1인가구보다 조건이 강화돼 이른바 ‘결혼 페널티’라고 불리는 제도를 정부가 손질한다. 맞벌이 소득기준은 현재 도시근로자 가구(3인기준)당 월평균 소득(650만 9452원)의 140%에서 200%로 상향되고, 부부가 중복으로 당첨되면 둘 다 무효처리하던 것도 앞으로는 먼저 신청한 건은 유효하다. 국토교통부는 30일 이런 내용을 담은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 등 6개 법령·행정규칙을 오는 7일부터 순차적으로 입법·행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우선 청년특별공급을 제외한 모든 특공의 맞벌이 소득기준이 완화된다. 현재는 1인가구 소득기준이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100%인 데 반해 결혼해 맞벌이가 되면 소득기준이 월평균 소득 140%(911만원)가 돼 결혼하는 게 오히려 불이익이란 지적이 있었다. 이번 개정으로 맞벌이 소득기준이 200%로 올랐다. 이렇게 되면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인 650만 9452원의 두 배가 적용돼 합산 월소득 1302만원인 고소득 맞벌이 부부도 특공을 신청할 수 있다. 이번에 상향된 맞벌이 소득기준에 적용되는 추첨제는 특공 유형별로 10%씩 신설된다. 내년 3월부터는 공공분양주택 청약 때 ‘신생아 특공’이 도입된다. 대상은 태아 포함해 2세 이하 자녀를 가진 출산 가구로 지난해 3월 이후 출산한 가구는 신생아 특공 신청이 가능하다.
  • “더 나빠지기 전에…” 분양 시장 막바지 ‘밀어내기’ 물량 쏟아져

    “더 나빠지기 전에…” 분양 시장 막바지 ‘밀어내기’ 물량 쏟아져

    올해 분양시장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11~12월 사이 7만 5000여가구의 아파트가 분양에 나서며 ‘밀어내기’ 분양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건설사들이 불확실한 내년으로 분양을 미루기보다 계획했던 물량을 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22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임대 가구를 포함해 11월 3만 6681가구, 12월 3만 9174가구가 분양에 나선다. 최근 미분양이 감소세를 보이는 데다 내년 건설·부동산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분양을 서두르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올해 분양 실적을 살펴보면 지난 2월 올해 최저치인 8839가구를 분양한 데 이어 6월까지 7월까지 매월 분양 물량이 1만 가구대에 머물렀다. 8월에 처음으로 2만 가구(2만 1463가구)를 넘겼지만, 9월 다시 1만 가구(1만 1911가구) 수준으로 떨어졌다. 10월 이후 3만 가구(3만 2719가구) 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내년에 건설, 부동산 시장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올해 안에 남아있는 물량을 다 털어내려고 한다”며 “내년에 예정하고 있는 물량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주택 경기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이 더 나빠지기 전에 분양을 서두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와 비슷하다. 지난해도 4분기 분양 물량(11만 8853가구)이 분기 중 가장 많았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원래 11~12월은 분양 비수기이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기존에 잡혀있던 분양 일정이 계속 밀리다 보니 4분기에 분양 물량이 몰려있는 상태”라며 “내년 연초에는 건설사들이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GS건설, 현대건설, 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은 다음달 ‘광명5R구역 재개발 사업’을 통해 선보이는 ‘광명자이힐스테이트SK뷰’를 분양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SK에코플랜트, 코오롱글로벌 컨소시엄도 올해 안에 수원에 총 2178가구 규모의 대단지 ‘매교역 팰루시드’를 분양한다. 제일건설은 인천 검단신도시에서 ‘제일풍경채 검단 4차’를 분양한다. 쌍용건설은 12월 평택시 가재지구 도시개발사업(지제역 반도체밸리)에서 ‘지제역 반도체밸리 쌍용 더 플래티넘’을 분양할 예정이다.
  • 정부, 친일파 이기용 후손 땅 부당이득금 소송 승소

    정부, 친일파 이기용 후손 땅 부당이득금 소송 승소

    정부가 친일파 이기용(1889~1961)의 손자들이 소유한 2억원 상당의 토지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이원석)는 22일 이기용의 손자 A씨 등 2명에게 각각 1억 466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정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기용은 흥선대원군의 큰형인 흥녕군 이창응(1809~1828)의 장손으로 1911년 매일신보에 한일합병 1주년을 기념하는 축사를 게재하고 일본제국의회의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친일행적을 펼쳤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됐다. 법무부는 2021년 이기용과 이규원, 홍승목, 이해승 등 친일반민족행위자 4명의 후손이 소유한 27억원 상당 토지 11필지(8만 5094㎡)의 소유권이전등기 및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기용 후손이 소유한 필지는 경기 남양주시 이패동 2필지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의국가귀속에관한특별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1904년 2월)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 받은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
  • 과연 자매선…브리태닉, 타이태닉 비슷한 곳에서 침몰 ‘비운’[지구촌 소사]

    과연 자매선…브리태닉, 타이태닉 비슷한 곳에서 침몰 ‘비운’[지구촌 소사]

    처녀 출항에서 침몰한 비운의 호화유람선 ‘타이태닉호’엔 동생이 있었다. 영국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 선사의 자매선 ‘브리태닉호’ 역시 항해 중 침몰이라는 비운을 맞는다. 하필 참변을 당한 위치도 엇비슷하니 참으로 묘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6년 11월 21일 오전 8시 12분쯤 영국 해군의 병원선 ‘브리태닉호’가 그리스 에게해의 케이스 섬을 지나던 도중 갑자기 우현에서 커다란 섬광과 함께 폭발음을 울렸다. 배수량 4만 8158t이나 되는 거대한 선박은 엄청나게 높아진 물결에 휩싸여 뒤뚱거렸다. 덩달아 탑승한 부상병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얄궂게도 아주 청명한 날씨였다. 침몰의 원인이 독일군 특전사 유보트(U-Boat)의 공격인지, 기뢰에 의한 폭발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군대의 공격에 의한 것임은 분명했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브리태닉 선장 존 코로퍼(1864~1916)는 인근 케오스 섬까지 항해한 뒤 배를 좌초시켜 침몰을 모면하려 했지만 결국 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배가 심하게 기울어져 희망을 꺾어버렸다. 다만 구명정 하나가 전속력 추진 중인 배의 왼쪽 스크류에 걸려 30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바틀렛 선장 또한 침몰하는 배에서 침착하게 빠져나와 근처 구명정으로 헤엄친 뒤 구조 작업을 전두지휘했다고 한다. 탑승객 1066명 중 대부분이던 환자와 의료인들은 승조원들의 지휘로 일사불란하게 탈출했다. 브리태닉은 사고 후 55분 만에 바다 밑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사람들을 전원 구조하는 듯했다. 그러나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구명정이 프로펠러 날에 찢겨 제 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타이태닉 침몰 때의 뼈아픈 경험을 살려 크레인까지 설치해 구명정을 최대 한계치로 갖춘 덕분에 사상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브리태닉의 선상 간호사 바이올릿 제솝(1887~1971)은 올림픽호 충돌사고 때에도 배에서 근무했고, 타이태닉 사고 생존자 710명 중 1명이었으며, 이후 브리태닉에서 근무하다 또 다시 사고를 당하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미스 불침몰’(Miss Unsinkable)이라는 흥미로운 별명을 얻었다. 1986년 에게해에서 브리태닉의 잔해가 발견됐다. 브리태닉호는 ‘언니’ 타이태닉호처럼 두동강으로 산산조각나지는 않았다. 해저 146m의 그다지 깊지 않은 연안에 침몰해서인지 멀쩡하게 형상이 남아 있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침몰한 최대 상선이란 기록을 남겼다. 화이트 스타 라인에 따르면 브리태닉은 당초 대서양을 운항하기 위해 올림픽급으로 만든 세 번째 선박이었다. 첫 번째 올림픽호, 두 번째는 타이태닉이다. 올림픽급 여객선은 1907년 경쟁사인 큐나드 라인의 주력 여객선이었던 루시타니아와 모리타니아를 뛰어넘는 더 크고 호화롭게 만들려는 화이트 스타 라인 경영진의 의지를 담은 선박이다. 올림픽과 타이태닉이 각각 올림푸스족과 타이탄족에서 이름을 땄듯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이갠틱(Gigantic)이라고 명명했다가 침몰한 타이태닉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바꿨다. 결국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뽐내려는 의도였다. 타이태닉 침몰 사고로 올림픽급 선박에 치명적인 결함이 밝혀지자 건조 중이던 브리태닉의 수밀격벽 및 다른 부분의 설계를 뜯어 고치느라 완성하는 데 오래 걸렸다. 어쨌거나 1914년 2월 26일 진수된 뒤 여객선으로 활용되나 싶었으나 7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듬해 병원선으로 징발돼 개조를 거쳤다. 화이트 스타 라인의 첫 번째 올림픽급 선박인 올림픽호는 1911년 6월 14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까지 무난하게 첫 항해를 마쳤다. 그러나 다섯 번째 항해를 하던 9월 20일 영국 해군의 순양함과 충돌해 선수 우현에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6주간에 걸친 수리를 통해 11월 29일 운항을 재개했다. 타이태닉은 사우샘프턴을 떠나 뉴욕을 향해 출항한 지 닷새 후인 1912년 4월 10일 캐나다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로부터 동남쪽 700㎞ 지점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탑승자 2224명 중 15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배수량 5만 2310t으로 세계 최대의 유람선이던 타이태닉호는 선내에 레스토랑은 물론 개인 목욕탕과 체육관, 수영장, 도서관, 흡연실, 그 외의 호화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느슨한 규제 탓에 구명정은 20척밖에 없었다. 구명정 20척의 최대 정원은 1178명이었다.
  • “100엔=850원대” 역대급 엔저, 이젠 끝? 전문가 “엔화 내년엔 오른다”

    “100엔=850원대” 역대급 엔저, 이젠 끝? 전문가 “엔화 내년엔 오른다”

    원·엔 환율이 약 16년만에 최저치로 하락한 가운데, 이같은 ‘엔저’ 현상이 ‘바닥’에 다다랐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 엔화 약세와 미국과의 금리 격차, 인플레이션 등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행(BOJ)이 내년까지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전망에서다. 100엔=850원대 … 약 16년만 최저치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56.80원으로 종가 기준으로 2008년 1월 10일(854.31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날 원엔 환율은 장중 한때 850원대 초반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원·엔 환율은 지난 2022년 4월부터 100엔=1000원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6월에는 원·엔 평균 환율이 918.39원, 7월과 8월에는 911원대까지 하락하며 엔화 약세가 뚜렷해졌으며 9월에는 901.65원까지 하락했다. 지난달까지는 강달러 현상 속에 엔화와 원화가 동반 약세를 보였지만, 이달 들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추가 긴축 우려가 완화된 가운데 원화와 엔화가 상반된 행보를 보이면서 원화 대비 엔화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가 이달 들어 지난 16일까지 2.1% 하락한 사이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3.96% 상승했다. 그간 강달러 현상과 더불어 수출 부진 등 경제 펀더멘털 악화가 원화 약세로 이어졌다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추가 긴축 우려가 사그라들면서 강달러 현상이 주춤해지고 무역수지가 지난달부터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화 가치가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엔화의 경우 일본은행(BOJ)이 통화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탓에 나홀로 약세를 이어가면서 원·엔 환율은 이달 들어 800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0.5% 역성장을 기록하고 지난달 무역수지가 6625억엔(5저 7041억원) 적자를 내는 등 악화된 경제지표가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우에다 BOJ 총재 “엔저, 日 경제에 나쁘다 할 수 없어” 그럼에도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통화완화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우에다 총재는 17일 의회에 출석해 “엔저(低)가 수입물가를 높여 부정적인 경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글로벌 기업들의 수출과 이익을 늘리는데 긍정적”이라면서 “현재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엔화의 추가 약세를 용인하겠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블룸버그 등은 전했다. 우에다 총재는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이 가까워지면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을 포함한 초완화 정책의 종료 전략을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증권가 “내년 BOJ 초완화적 정책 변화 … 엔화 올해가 바닥”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원화 대비 엔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현 수준에서 엔화 가치가 추가 하락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경제가 3분기 역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호조를 띄고 있는데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내년에는 통화정책에 전환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광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일본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돼 엔화 약세 현상은 마무리 국면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본 3분기 경제성장률은 예상치를 밑돌았지만 여전히 4분기 이후 미국 경제성장률을 앞서 나갈 것으로 예상돼, 일본 통화정책이 추가 완화로 나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김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이미 2년 가까이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는데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인플레이션과 함께 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내년 말 엔·달러 환율은 135엔 내외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美서 60대 유대인,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와 다투다 사망…반유대 범죄 급증

    美서 60대 유대인,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와 다투다 사망…반유대 범죄 급증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대치하던 중 물리적인 폭력이 발생해 60대 유대인 남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지상작전이 확대되면서 미국에서 반유대주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 벤투라 카운티 보안관실은 지난 5일 오후 로스앤젤레스(LA)의 서북쪽에 인접한 사우전드 오크스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던 69세 남성 폴 케슬러가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음날 사망했다고 7일 밝혔다. 카운티 검시관실은 부검을 끝낸 뒤 사인을 둔기에 의한 머리 부상, 즉 타살로 결론지었다. 보안관실은 사건 당일 오후 3시 20분쯤 대로변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며, 현장의 교차로에서는 이스라엘 지지 시위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가까운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머리를 다쳐 바닥에 누워있는 케슬러를 발견했고, 한 목격자는 그가 반대 측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이다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경찰에 말했다. 보안관실은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며 증오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용의자가 누구인지, 몸싸움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케슬러와 함께 있었던 한 목격자는 지역 방송 ABC7 인터뷰에서 “그들(폴 케슬러와 가해자)이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확성기를 들고 폴을 때렸고 폴이 쓰러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로 카운티에 거주하는 50세 남성을 특정하고 전날 구금해 조사를 벌인 뒤 석방했다. 이 용의자는 케슬러와 다툼이 있었으며 자신이 그의 치료를 요청하기 위해 911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당국은 증오범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이지만, 용의자가 협조적이고 아직 사건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체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광역 LA 유대인연맹은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 커뮤니티에 대한 폭력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런 배스 LA 시장도 이날 성명에서 “이번 사망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긴장이 계속 고조되는 상황에 우리 지역에 큰 타격을 줬다”며 “우리는 폭력과 증오가 책임과 대가를 치르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CNN은 사건 당시 이 지역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력한 보복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일요일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진 시위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미국 내 이스라엘 지지자들이 이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현장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중동의 전황이 격화함에 따라 양측 간 긴장도 점차 고조되는 양상이라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이날 애리조나주에서는 유대인 랍비에게 “유대인들을 처형하겠다”고 협박하는 이메일을 보낸 혐의로 50세 남성이 체포됐다. 또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이스라엘 학교를 공격할 목적으로 차를 몰고 한 건물에 돌진한 34세 여성이 지난 3일 체포됐다고 지역 매체 등이 이날 전했다. 다행히 이 사건과 관련한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더는 숨을 쉴 수 없었다”며 자신이 평소 지나가다 본 이스라엘 학교가 생각나 일부러 차를 몰고 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스라엘라이트’라는 이름이 포함된 이 학교는 유대인 학교가 아니라 전통적인 유대인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체 ‘급진 히브루 이스라엘라이트’(Radical Hebrew Israelites)와 관련 있는 건물이라고 인디애나폴리스 스타는 전했다. 또 최근 미국 내 주요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 공화당 의원 20여명은 펜실베이니아대학 총장에게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교 측을 비판하는 서한을 보냈다고 CNN이 보도했다.
  •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이 ‘바딘광장’ (Ba Dinh Square)’을 가로 질러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호찌민의 묘소에요. 호찌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방부처리한 호찌민의 시신을 직접 보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어요. 호찌민의 시신은 매년 러시아로 보내서 점검한다고 해요.” 솔직히 그동안 호찌민(Ho Chi Minh, 1890~1969)’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에는 사회주의자인 호찌민의 이름을 들어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람보’, ‘머나먼 정글’과 같이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시각으로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베트콩(Viet Cong)의 정신적 지주였던 호찌민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촌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는 호찌민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유와, 베트남의 경제도시 사이공을 호찌민의 이름을 붙여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로 바꾼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호찌민이라는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 아저씨’의 등장 호찌민은 1890년 5월 19일 베트남의 작은 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이었다. 호찌민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한 174개의 수많은 가명 중의 하나였다.  한편, 베트남 사람들은 국부(國父)인 호찌민을 ‘박호(Bác-Hồ, 伯胡)’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호 할아버지’ 또는 ‘호 아저씨’라는 의미이다. 호찌민이 태어났을 때에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원래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영국이 양쯔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메콩강(Mekong River)과 홍강(红河, Red River)이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다른 열강들처럼 식민지 베트남을 세금과 노역으로 착취했다. 1907년 프랑스의 착취에 반발하는 농민들의 봉기가 절정에 이르던 당시 호찌민은 프랑스식 국립학교 학생이었다. 호찌민이 다니던 학교는 졸업만 하면 고위관리가 될 수 있는 곳이었지만, 호찌민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외국어에 능숙했던 호찌민은 자청해서 농민들의 주장을 번역해서 프랑스 당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면서 시위에 연루된 호찌민은 퇴학당했고 프랑스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호찌민은 프랑스 경찰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정착해 교사가 되었다. 그러던 1911년 10월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후 그는 남부 항구도시 사이공(現 호찌민시티)에 나타났다. 호찌민은 지금 이대로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의 나라들이 힘을 가진 이유를 직접 보기 위해 주방보조 선원이 되어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그렇게 호찌민의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호 아저씨의 성장 프랑스로 가는 배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며 프랑스에 도착한 호찌민은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는 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경험하면서 가난하고,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조국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호찌민은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원래 베트남은 중국 유교문화 영향을 받은 나라였다. 호찌민 역시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교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호찌민이 경험한 서구의 현실은 탐욕과 부의 착취로 보인 반면, 사회주의의 공동체 의식, 검소함, 평등 등의 가치는 유교문화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호찌민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것은 어떠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찌민의 사회주의는 일반적인 사회주의와는 결이 달랐다. 유교는 봉건시대 도덕, 종교는 아편으로 취급하던 사회주의 속에서도 호찌민은 공자,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했다. 또한 호찌민은 규율과 복종에 가치를 두는 사회주의 속에서도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의 네 가지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호찌민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사실상 베트남 민족주의자에 더 가까웠다.  호찌민은 1930년 '베트남 공산당'을 창설했고, 1941년에는 ‘베트민(Viet Minh, 越盟, 월맹)’을 결성해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에 맞서 싸웠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패망하자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4년 5월 6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하면서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은 열강들의 일방적안 결정으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나눠졌다. 이후 남베트남 정권의 폭정과 무장저항의 확산으로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호 아저씨의 유언 “내가 죽은 후 웅장한 장례식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신은 화장하고, 재를 셋으로 나누어 베트남의 북부, 중부, 남부에 뿌려 주길 바란다. 내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대신 넓고 튼튼하며 통풍이 잘 되는 집을 지어 방문객들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방문객들이 나를 추모하는 의미로 나루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룰 것이다.”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24번째 독립기념일 아침 호 아저씨는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79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검소하게 하고, 화장한 유해를 조국의 땅에 뿌려달라고 부탁한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방부 처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쿠바의 혁명가로 유명한 ‘체 게바라(1928~1967)’는 호찌민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호찌민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는 다양하다. 하직만 적어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 ‘호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다정하고 온화한 국부(國父)이자,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 강인한 지도자였다.
  •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미국 M1150 ABV 강습돌파차량 [최현호의 무기인사이드]

    우크라이나에 공급된 미국 M1150 ABV 강습돌파차량 [최현호의 무기인사이드]

    러시아군의 강력한 방어선을 무너뜨리려는 우크라이나군에 미 육군이 운용하는 M1150강습돌파차량(ABV)가 배치된 것이 확인되었다. M1150 ABV의 우크라이나군 배치는 미국이나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확인은 없었지만, 11월 3일 (현지 시각)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텔레그램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확인되었다. 미 육군은 원래 1995년부터 M1 그리즐리 공병전차라는 장애물 개척 전차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비의 복잡성과 비용 문제로 도입에 난색을 보였고, 2001년 미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사업이 취소했다.그러나 2001년 11월 911 테러가 발생한 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으로 새로운 지뢰제거 차량이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도입을 주도한 것은 미 해병대였다. 미 해병대는 미 육군이 잉여로 생산한 M1A1 전차를 사용하여 M1150 ABV를 개발했다. 우리나라의 K600, 영국의 트로얀, 독일의 코디악과 달리 전차 포탑을 제거하고, 대신 운영 병력이 탑승할 수 있는 포탑 형태의 구조물이 달려있으며 추가 방어력을 위해 반응장갑을 달 수 있다. 차량 안에서도 카메라로 밖의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통합 비전 시스템(IVS)도 달려 있어 상황인식에 도움을 준다.실전 배치는 2008년부터 이루어졌고, 2009년부터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어 능력을 발휘했다. 미 해병대가 45대를 도입한 이후, 실전 능력을 지켜본 미 육군도 187대를 도입했다. 차량 전면에는 영국 피어슨 엔지니어링의 지뢰지대 돌파용 쟁기와 도저용 삽납을 장착할 수 있으며, 추가로 전자 감응 지뢰를 무력할 수 있는 장비도 달린다. 포탑을 개조한 병력실 뒤에는 지뢰지대를 날려버릴 수 있는 미클릭과 유사한 선형 폭파 장약 체계(LDCS)가 달려 있다. LDCS에는 선형 장약 2개가 달려 있다. 그 외에 개척된 통로를 표시할 수 있는 통로 표시용 막대들이 있는 통로 표시기가 차량 후미에 달렸다. 방어용으로 50구경 기관총이 달린 원격무장대(RWS)가 달려 있다.미 육군과 해병대 외에 2021년 12월에는 호주도 M1A2 SEP V3 전차 75대를 도입하면서 M1150 ABV 29대도 도입하기로 했지만 아직 배치되지는 않았다. 미국이 몇 대의 M1150 ABV를 지원했는지 알 수 없지만, 러시아의 견고한 방어를 돌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최근 러시아가 북한에서 지원받은 것으로 보이는 포탄을 사용하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큰 활약을 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 국내 수입차 판매 감소 확대…“지키는 회사가 이긴다”

    국내 수입차 판매 감소 확대…“지키는 회사가 이긴다”

    국내 수입차 판매 감소 폭이 확대되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 6월 이후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이 종료된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았다. 지난해 불황 속에서도 몸집을 키우던 수입차 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지난달 국내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가 2만 1329대로 지난해 같은 달(2만 5363대)보다 15.9% 감소했다고 3일 밝혔다. 감소세는 7월부터 본격화했다. 6월만 해도 2만 6756대로 1년 전보다 17.9% 늘었지만, 7월 –1.3%로 대폭 내려앉더니 8월(-2.1%), 9월(-5.7%)까지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고금리 등의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수입차 소비를 붙잡고 있던 개소세 혜택이 지난 6월 이후 사라지면서 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브랜드별로는 아우디(1151대·-56.4%)와 폭스바겐(853대·-23.4%)의 역성장이 두드러졌다. 수입차 부동의 1·2위인 메르세데스벤츠(6612대·-14.3%)와 BMW(5985대·-11.4%)는 그나마 선방한 편이다. 국내 수입차 시장에선 이 둘을 제외한 3위 싸움이 치열한데, 볼보(1263대)는 같은 기간 무려 123.1%의 괄목할 성장으로 3위에 올랐다. 볼보는 지난 9월에도 이들을 제치고 3위에 올랐는데, 지난달 이후 순위를 굳히는 모양새다. 올해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신차를 내놨던 렉서스(963대·23.3%)도 높은 성장세로 5위를 차지하며 4위 아우디를 위협하고 있다. 차종별로는 BMW ‘5시리즈’와 벤츠의 ‘E클래스’가 베스트셀링카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까지 누적 기준으로 5시리즈가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지난달부터 E클래스가 역전했다. E클래스가 1만 9119대, 5시리즈가 1만 7010대다. 업계에서는 최근 BMW가 신형 5시리즈를 지난달 세계에서 최초로 국내 시장에 출시하면서 초도물량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데다 E클래스의 경우 기존 모델로 할인이 계속된 영향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공개만 된 신형 E클래스도 내년쯤 국내 출시 예정이라 두 차종의 경쟁은 연말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료별로는 전기차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4%나 급감했다.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 등의 우려가 현실화한 모양새다. 전기차의 판매 둔화가 가장 컸지만, 다른 연료라고 해서 잘 팔린 것은 아니다.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도 -44.8%, 디젤은 -35.2%, 가솔린은 -20.1% 등으로 감소했다. 최근 대세로 떠오르는 하이브리드는 44.7%로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수입차 업체들은 소비 진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달 중 열리는 국내 최대 쇼핑 축제인 ‘코리아세일페스타’에 수입차 업계도 동참한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오는 11일까지 쇼핑몰 11번가에서 온라인 모터쇼를 개최하고 차량 구매 시 혜택을 제공한다. 스텔란티스코리아도 산하 브랜드 지프와 푸조 등을 대상으로 한 할인 이벤트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포드 산하 링컨도 ‘에비에이터’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특별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 11월인데도 땀이…비 내린 이후엔 좀 나아질까

    11월인데도 땀이…비 내린 이후엔 좀 나아질까

    지난 2일 전국의 낮 최고기온이 25~29도까지 올랐고, 금요일인 3일에도 아침 최저기온이 11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곳이 나타나면서 ‘가을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아침 전국의 최저기온은 7~18도를 기록했다. 간밤에 흐린 날씨가 이어지면서 복사냉각이 덜했던 중부지방은 이날 아침에도 ‘11월 최저기온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원 강릉은 이날 오전 8시 45분까지 최저기온이 21.1도로 이 지역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한 1911년 이후 11월 최저기온으로는 가장 높았다. 강릉의 11월 최저기온 최고치 기록은 1일부터 3일 연속 경신됐다. 서울의 경우 이날 최저기온이 18.3도를 기록해 역대 2위에 올랐다. 서울 11월 최저기온 역대 1위와 3위는 2일(18.7도)과 1일(17.2도)이다. 속초, 철원, 동두천, 파주, 백령도, 인천, 울릉도, 서산, 홍성 등도 강릉이나 서울과 마찬가지로 최근 사흘간 최저기온이 11월 최저기온 상위 1~3위에 올랐다. 기상청은 11월 초 더위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 “한반도 남쪽에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서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따뜻하고 습윤한 남서풍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은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가을비가 내리겠다. 비는 서울과 경기 북부에서는 늦은 오후, 다른 중부지방에선 저녁에 대부분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과 제주는 오후부터, 강원 영동 북부는 늦은 밤부터 비가 오겠다. 비가 내리면서 전날과 비교해 낮 최고기온은 낮아지겠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19~26도로 예보됐다. 4일은 15~24도, 5일은 17~24도로 예상된다. 주말인 4~5일에도 전국 곳곳에 비가 오겠다. 4일은 강원 영동과 충청, 남부 지방, 제주에 비가 내리겠고, 강원 영동과 남해안, 제주는 5일까지 비가 이어지겠다. 다만 충청권과 남부 지방은 오후에 비가 대부분 그치겠다. 일요일인 5일에는 비가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겠고, 월요일인 6일까지 이어지겠다. 3~4일 예상 강수량은 부산·울산·경남 남해안·제주 10~50㎜, 강원·대구·경북 남부·경남내륙 5~40㎜, 전남 남해안 10~40㎜, 수도권·충청·전북·광주·전남(남해안 제외)·경북 북부·울릉도·독도 5~20㎜, 서해5도 5㎜ 내외다.
  • 역사가 된 육아일기… 독립운동가도 서툰 부모였음을

    역사가 된 육아일기… 독립운동가도 서툰 부모였음을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부모에게 큰 기쁨이다. 지금이야 휴대전화로 손쉽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기록을 남기지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전엔 손으로 써 내려간 육아일기가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는 매체였다. ‘제시의 일기’는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 최선화(1911~2003) 부부가 딸 제시를 낳고 기록한 육아일기다. 부부가 직접 제목을 지었고 제시가 태어난 1938년부터 광복 후 조국으로 돌아온 1946년까지 8년간의 일을 기록했다. 한 부부의 평범한 육아일기지만 독립운동의 흔적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상해에서 시작한 임시정부가 시기별로 어떻게 이동하며 활동했는지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사료로 의미가 남다르다. 임시정부 가족들의 생활상과 독립운동가들의 인간적 모습도 생생하게 담겨있고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투항했다는 소식을 임시정부가 1945년 8월 10일 오후 8시(중국시간)에 알게 된 사실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부부의 딸 제시를 아껴주던 주변 어른들의 이름으로 김구, 조소앙 등도 언급된다.지난달 29일 초연의 막을 내린 창작뮤지컬 ‘제시의 일기’는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부부의 소중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활자 기록으로는 와 닿기에 한계가 있는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실감 나게 구현했다. 양우조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고 1999년 국가보훈처 9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최선화는 1991년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뭔가 다른 사람들일 것만 같지만 ‘제시의 일기’에서 좌충우돌하는 부부의 일상은 이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한다. 날이 좋으면 일본의 공습을 걱정하고 비가 내리면 낡은 집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는 일상, 갓 백일이 지난 아이를 안고 피신하던 모습 등을 통해 한 가족의 추억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기에 겪는 일들이 따뜻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오세혁 총괄프로듀서는 “4년 전 원작을 처음 접하고 공연을 통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 “제시는 자라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어른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계속 싸우고 소통이 단절된다. 모든 어른이 아이처럼 발전하며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와닿았다”고 말했다. 부부의 둘째 딸이자 제시의 동생인 양제니씨도 공연장을 찾아 직접 관람하는 등 ‘제시의 일기’는 의미 있는 초연을 마치고 다음을 기약했다.
  •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❿ 1922.10.31 무솔리니, 39세에 총리 등극베니토 무솔리니(1883.7.29~1945.4.18·이탈리아)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독일), 도조 히데키(1884~1948·일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 3대 인물로 유명하다. 셋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3형제 중 맏아들 무솔리니는 아버지의 대장간에 나가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름도 멕시코의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1806~1872)를 따라 지었다. 집에선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았다. 1902년 무솔리니는 병역을 피해 스위스로 이민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머물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조르주 소렐(1847~1922),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사상을 깨우쳤다. 그곳에 망명해 있던 안젤리카 발라바노프(1878~1965),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같은 러시아 마르크시스트도 만났다. 1904년 스위스는 무솔리니를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무솔리니는 1905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1908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트렌토로 가서 노동당 서기에 올랐다. 정치 신문 ‘라보니레 델 라보라토레’(노동자의 미래) 편집진도 맡았다. 1910년엔 고향인 포를리로 돌아가 주간지 ‘로타 디 클라세’(계급 투쟁)의 편집진이 되었다. 이후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11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점령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탄했다가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석방된 뒤 무솔리니는 사회당에서 전쟁을 지지한 수정주의자와 정쟁에서 승리해 기관지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에 선임됐다. 무솔리니는 2만명이던 기관지 독자를 10만명으로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9개월 뒤 수류탄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1917년 8월 병상에서 전역한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죽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19년 3월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200여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파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이탈리아 투쟁 결사)를 창립했다. 모든 사회 계급의 구분과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이념에 국가 부흥을 염원하던 국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21년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창당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더욱 힘을 얻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은 1922년 10월 27일 로마 진군을 감행했다. 당내 준군사 조직인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로 루이지 팍타(1861~1930)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만 39세였다. 2014년 취임한 마테오 렌치(1975.1.11~현재) 전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했다. 7개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했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걸리적거리는 모든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8년엔 파시스트당을 뺀 정당 활동은 금지됐다. 같은 해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대신했다. 이탈리아 제국은 스스로를 신로마 제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팽창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파시즘은 결국 에티오피아를 침략한다. 또 반종교주의, 특히 반가톨릭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공군 전투비행단 선발대를 스페인으로 파견했다. 이탈리아군은 1939년까지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탈리와와 프랑스, 영국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즉각 참전하진 않았다. 1940년 들어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승전으로 곧 종전을 맞을 것으로 판단해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6월 무솔리니는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후 일본 제국이 진주만 사건을 일으키자 이번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전황은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대대적인 후퇴가 계속됐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 이탈리아는 패배를 눈앞에 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폭격으로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곡물 수급난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1943년 들어 무솔리니의 선전술은 더 이상 국민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그들은 바티칸 라디오나 라디오 런던을 들으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1925년 이래 최대의 파업이 벌어졌다. 또한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와 토리노는 공습을 피해 노동자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멈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로 인해 이를 묵인하는 무솔리니를 대놓고 반대했다. 일찍이 무솔리니는 아프리카 전선과 튀니지에서 패퇴하자 히틀러에게 서부 전선으로부터 공격해 오는 연합국과의 전쟁에 집중해달라고 간청했다. 아프리카와 튀니지를 얻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겨눌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본토이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며칠 후 무솔리니는 해외 군대의 회군을 지시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7월 19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무솔리니와 회동했다. 무솔리니는 더 이상 독일의 말만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솔리니는 이날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안에서마저 무솔리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회에서 19 대 7로 가결됐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869~1947)는 무솔리니를 왕궁으로 불러 해임을 통고했다. 무솔리니는 왕궁을 나오자마자 근위대에 의해 체포됐다. 호텔에 연금됐던 무솔리니는 9월 12일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72명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독일군은 왕가와 내각인사를 체포하고 무솔리니의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데려와 회동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국가를 재건하기를 바라면서 독일군이 밀라노, 제노바, 투리노 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동의한 무솔리니는 9월 23일 살로에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망명 정부의 수반에 오른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반한 파시스트 대의회의 요인들을 처형했다. 이 무렵 무솔리니는 1928년 출판한 자서전의 개정판 ‘나의 흥망’ 집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45년 4월 패전을 예감한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1912~1945)와 함께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탈출할 참이었다. 그런데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에게 체포됐다. 무솔리니는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 장교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튿날 발레리오(실명 왈테르 아우디시오) 대령은 두 사람을 총살했다. 시신은 29일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옮겨졌다.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들이 처형된 자리였다. 숱한 군중의 발길질에 짓밟힌 두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 중국계 애플 엔지니어, 美 교통사고로 동승자 사망케 한 후 中 도주

    중국계 애플 엔지니어, 美 교통사고로 동승자 사망케 한 후 中 도주

    미국 애플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26세 중국인 여성 예(叶)모씨가 현지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동승자가 사망했지만 자신은 중국으로 도주했다. 31일 중국 현지 홍싱신문(红星新闻)은 미국 워싱턴주 벨뷰(Bellevue) 경찰의 제보를 받아 사건 내용을 확인했다. 사건 발생일은 지난 9월 30일 새벽 3시 45분경, 당시 운전 차량은 시속 145km였고 차량 운전석에는 예 모씨, 동승자는 리우(刘)씨였다. 이 남성은 미국 틱톡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포르쉐 911 차량은 완전히 뒤집힌 채 풀 숲에 놓여있었다. 당시 도로 CCTV를 확인한 결과 차량은 먼저 콘크리트 펜스를 들이박고 공중으로 날아오른 뒤 또 다시 콘크리트 벽을 들이받으면서 뒤집혔다. 맨 처음 펜스에 충돌하기 전부터 비틀거렸던 모습이 포착되어 현지 경찰은 당시 예 씨가 음주운전을 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동승자석에 앉아 있던 리우 씨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예 씨 역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이후에도 예 씨는 리우 씨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알려주길 거부했고 경찰 측에서 이 남성이 시애틀 중국 회사에서 일하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 검찰 검찰 측은 10월 9일 체포 영장을 발부했고 보석금은 200만 달러였다. 또한 보석금을 내더라도 여권을 압수해 법원의 허가 없이 워싱턴주를 떠나지 못한다는 조건도 추가했다. 그러나 경찰이 한발 늦었다. 예 모씨는 이미 10월 6일 병원을 떠나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9일 캐나다 오타와로 향한 후 중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체포영장이 하루만 더 빨리 발부되었더라도 예 씨의 도주를 막을 수 있었다. 예 씨 역시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도주할 수 없을 것으로 방심한 탓이다. 예 씨와 리우 씨를 모두 아는 지인들은 이번 사건이 예 씨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추측했다. 사건 발생 이후 리우 씨의 상황을 계속 지인들에게 숨긴 점, 자신의 SNS 사진을 계속 올리면서 주변인들을 안심시킨 점 등이다. 현재는 예 씨 계정의 SNS는 모두 비공개로 전환한 상태다. 사고 사망자 리우 씨는 27세로 틱톡 프로그램 엔지니어였다. 젊은 나이에도 시니어 직책을 맡으며 전도 유망한 인재였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미국 벨뷰 경찰 대변인 세스 타일러는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피해자 가족의 정의실현이다. 예 씨가 미국으로 돌아와 경찰에 협력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으로 들어온 것까지만 확인된 예 씨는 중국 현지에서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미국과 중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로 중국 현지 공안이 예 씨를 찾을 가능성은 적은 상태다. 
  • 떴다 하면 예술…‘문 워크’ 하나로도 세계가 황홀했지만 [지구촌 소사]

    떴다 하면 예술…‘문 워크’ 하나로도 세계가 황홀했지만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❽2001.10.30 마지막 앨범 낸 마이클 잭슨6세 때인 1964년 데뷔했다. 5형제 음악단 ‘잭슨 파이브’ 멤버로 출발했다. 재키(72), 티토(70), 저메인(69), 랜디(66)와 함께였다. 그로부터 37년 뒤인 2001년 10월 30일(현지시간) 마이클 잭슨(1958~2009)은 정규 앨범 ‘Invincible’을 발표했는데 생전 열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앨범 이름처럼 ‘천하무적’은 고사하고 명성에 걸맞지 않은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팝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빌보드 핫 100 1위 곡을 배출하지 못했다. 제작 도중엔 소속사 최고경영자(CEO)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CEO는 곧 사퇴하고 만다. 썩어도 준치라고 미국 240만장, 프랑스 68만 3000장을 포함해 세계에서 800만장이 판매됐지만 역시 이름을 떠받칠 수 없었다. 뮤직비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안았을 뿐이다. 성인 첫 앨범인 1979년 ‘off the Wall’ 가 세계적으로 2000만장이란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점과 비교된다. 이어 1982년 내놓은 앨범 ‘Thriller’는 6500여만장 판매라는 놀라운 소식을 얼린다. 기네스북에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실렸다. 5000장만 팔려도 잘 나간다고 보는 우리나라에서도 ‘스릴러’는 5만 장이 팔렸다고 보도됐다. 잭슨이 작사·작곡한 ‘Billie Jean’이 7주 동안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한 뒤, ‘Beat it’이 정상을 이어갔다. 한 가수의 곡이 1주일도 못돼 연속으로 차트 정상에 오른 경우는 비틀즈 이후 19년 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다. ‘Invincible’을 발표한 직후 열린 30주년 콘서트에서 신곡 ‘You Rock My World’만 공연하고 이 앨범의 다른 곡은 라이브 및 영상에서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실패한 작품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1994년 의문의 성추행 의혹에 이어 2004년 성추행 혐의로 재판까지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다. 역시 아무런 물증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경찰에 신체수색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후 잭슨은 세상과 벽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재판 이후 은둔 생활을 하던 잭슨은 MTV 재팬과 영국 런던 뮤직어워드에서 상을 받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6월엔 일본의 방송 프로그램인 SMAP×SMAP에 출연했다. 잭슨의 거주지였던 집인 네버랜드는 돈 문제로 인해 안채 폐쇄명령을 받았다. 잭슨은 당시 재정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다고 한다. 2008년엔 ‘Thriller 25’라는 기념 앨범을 발매한다. 앨범에는 기존의 ‘스릴러’ 곡들이 수록됐고, 새롭게 리믹스 시킨 곡과 미공개 곡이 함께 추가됐다. 전 세계에서 300만 장이 팔렸고, 벨기에, 콜롬비아, 유럽, 인도 차트에서 1위를 했다. 또한 같은 해 ‘King of Pop’이라는 베스트앨범이 발매된다. 2009년 3월 잭슨은 런던에서 복귀를 선언했다. 마지막 공연이라고 했다. 처음 10회의 공연이 계획됐는데 매진 사례로 40회를 추가했다.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듯했다. 공연은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O2 아레나에서 7월 13일부터 2010년 3월 6일까지 열릴 것으로 계획됐고, 75만개 티켓은 전부 팔렸다. 그러나 잭슨은 2009년 6월 25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당시 주치의가 정맥 주사로 프로포폴을 주사하는 과정에서 기본 투여량보다 과도하게 투약한 게 원인이었다. 12시 22분 911을 부르고 의료진과 구급대원들이 3분 만에 잭슨의 저택으로 출동했다. 주치의는 잭슨에게 법정에서 2.5㎖의 프로포폴을 주입했다고 말했으나, 그의 집에서 다 쓴 프로포폴 100㎖ 병이 발견됐다. 공식적인 사인은 프로포폴과 벤조디아제핀 중독으로 발표됐다. 일찍이 ‘문 워크’(moon walk)로 온 지구촌 사람들을 열광케 하던 불세출의 스타는 사망 70일 만인 2009년 9월 3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북쪽 글렌데일의 포리스트론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AP는 “팝의 역사에서 가장 중대하고 충격적인 죽음”이라고 뒷붙였다. 2011년 1월 25일 LA지방검사보 데이비드 월그렌은 잭슨의 주치의 콘래드 머레이를 2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2011년 11월 7일 머레이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2014년 ‘YouGov’라는 유명 여론조사 업체에서 미국인에게 잭슨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61%가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32%는 비호감을 표시했다. 이는 11년 전인 2003년 갤럽의 여론조사인 호감 18%, 비호감 65%와는 상반되는 결과다. 2015년 12월 ‘스릴러’는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에서 국내 최초 3000만장 판매 앨범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사후 소득만 1억 달러라는 뉴스도 나왔다. 죽어서도 이름을 헛되게 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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