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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대통령이 보는 ‘광주 의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박지원(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을 통해 소회를 피력했다.공동 성명이나 메시지가 아닌 개인적 회고이긴 했지만 5·18을 ‘광주의거’라고 규정,그 의미를 되새겼다. 김대통령은 “5·18은 우리나라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고,국민의정부를 탄생시킨 원천”이라고 말해 국민의 정부가 5·18 정신을 계승한 정권임을 분명히 했다.이어 “국민은 영원히 5·18 희생자들의 위업을 추모하고 이를 국민적 자랑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자리매김을 한 뒤 “5·18의 위대함은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고 전했다.광주시민들이 처참한 희생을 겪고도 10일동안 폭력없이 평화적 투쟁을 했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투쟁을 주도했으며,시내 질서도 철저히 보장함으로써 민주시민의역량을 발휘한 점이 평가받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김대통령은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 모두가 희망과 행복을 갖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승현기자
  • 정치권 5·18반응

    - 與 “고귀한 희생정신 계승 지역갈등 극복” 野 “화해·용서 할지라도 비극은 잊지말자” 5·18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은 18일 여야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여권은 광주항쟁 정신의 계승을 위해 지역갈등 타파와 개혁작업 추진을 강조하고 나섰다.반면 한나라당은 광주 항쟁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며 정치공세를폈다.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장영철(張永喆)정책위의장 등 당지도부는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대거 참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보였다.박광태(朴光泰)의원등 광주·전남지역 의원들 대부분도 참석,당시를회상하며 5·18 정신을 기렸다. 국민회의는 특히 5·18 정신을 현정권이 추진하는 개혁작업과 연결,그 뜻을 되새기는데 초점을 뒀다.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성명에서 “광주 항쟁이없었다면 민주주의의 빛과 혜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광주의 희망이군부독재와 문민독재를 극복,정권교체를 이루게 했다”고 밝혔다.이어 “지역갈등과 분단,개혁 과제들은 광주의 역사적 사명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며 5·18정신의 계승을 강조했다. 자민련 이미영(李美瑛)부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며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참뜻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그들의 고결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 망국적 지역갈등을 깨끗이 없애고 국민통합과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최근 움직임을 꼬집으면서 광주 항쟁의 의미가 변질되고 있다며 여당을 공격했다.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전씨등은 아직도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화해와 용서는 할지언정 그날의 비극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정부는 5·18의거는 국민적 자랑이라고 구호만 외치지 말고 실천을 통해 항쟁의 의미를 현재에 살리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망월동 기념식에 이부영(李富榮)총무를 보내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 “5·18은 세계 민주운동의 상징”

    - 金총리 19주년 기념식 참석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18일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만의 것이 아니라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는 세계 민주시민들이 우러러 지향해야 할민주주의운동의 상징으로 승화시켜 나가는데 힘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리는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19주년 기념식에 참석,“5·18 민주화운동은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의로운 시민들의 항쟁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김총리는 “그동안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고 5월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회복했지만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면서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우리 민주주의 발전의살아있는 지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오고 있는 여러분들의노력이 알찬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5·18묘역’ 전국서 2만명 참배

    - 어제 서울·광주서 기념식, 유족·시민등 6천명 참석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19주년 기념식이 18일 오전 광주 5·18묘지에서 김종필(金鍾泌)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와 유족,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기념식은 5월 영령에 대한 묵념과 각계 대표의 헌화,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헌시,기념사 순으로 30분 남짓 진행됐다. 5·18묘지에는 이날 하루동안 전국에서 2만여명의 참배객의 발길이 이어져5월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서울에서는 5·18 민중항쟁연합중앙회(회장 金好成) 주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건(高建)서울시장과 서울·경기지역의 5·18관련단체 회원,정당및 사회단체 대표 등 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식을 가졌다.5·18추모식이 서울시가 후원하는 공식행사로 치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추모식이 끝난 뒤 보라매공원에서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 세워진 40m높이의 대형 추모탑을 5분의 1 크기로 축소한 추모탑 제막식이 열렸다.
  • 姜信錫 5·18 기념행사위원장 인터뷰

    “이번 행사는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민족화합과 정신승화에 역점을 뒀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제 19주년 기념행사위원회 강신석(姜信錫·60·광주 무진교회 목사)위원장은 17일 “5·18정신을 민족화합과 평화 그리고 세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신장에 접목시키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강위원장은 “5·18은 21세기 통일과 민족번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이상 불행했던 과거를 회상하거나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몸부림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5·18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견인차로 평가받은 만큼 이같은명예를 바탕으로 민주적 사회질서 확립과 새로운 가치관의 확산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위원장은 그래서 올 기념행사의 주제는 ‘인권신장·민족화합·실업극복’ ‘민족과 함께 다시 서는 5·18’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추모식,전야제,기념대회 등 연례적 기본행사를 강화하고 주제와 걸맞지 않은 정치성·상업성이 짙은 행사는 과감히 축소했다. 올해 처음으로 기본행사에 ‘5·18문제해결 공로단체 관계자 초청한마당’과 ‘동아시아권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 단체 연대모임’을 추가했다. 행사위는 이 자리에서 5·18문제 해결에 힘써온 사람들을 모아 격려하고 필리핀·동티모르 등 동아시아 인권지도자들과 아시아 각국의 인권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해결방안을 찾는다. 강위원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단순논리로 적대시해왔던 관련 군부대와 만남의 자리를 갖는 등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5·18정신의 계승과 전국화·세계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성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시민과 관련단체가한마음으로 이번 행사를 치러내 진정한 광주정신을 외부에 알리자”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정치권 ‘5·17’‘5·18’재조명 열기

    80년대 민주화의 열기가 17일 여의도에서 재현됐다. 당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몸바친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날 오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이름아래 한자리에 모였다.지난 80년‘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도 이날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민주화 정신을 되새겼다. 민추협 기념식 민추협기념사업회는 민추협 창립 15주년을 맞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심포지엄 및 기념식을 가졌다. 김상현(金相賢·전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행) 김명윤(金命潤·전민추협 부의장)의원은 기념사에서 “민추 승리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하나로 뭉쳤다는데 있다”며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값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두김의원은 특히 “길을 달리하고 있더라도 모든 동지가 민추시절 처럼 뜨거운 동지애로 하나가 된다면 민추협은 과거와 현재에 이어 앞으로도 민주발전과 민족통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세력의결집을 호소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민추협은 지난 84년 자유와인권이 억압당하던 암울했던 시절에 김영삼,김대중이 앞장선 가운데 군사독재체제에 맞서 민주화의 등불을 밝혀들어 85년 2·12총선 선거혁명과 87년 6월 국민 대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강만길(姜萬吉)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심포지엄에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민추협 정신의 계승과 현 정치상황의 극복 과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2부 기념식에서는 일부 고인이 된 민추협 출신 인사 유가족에게 민주화 공로패가 수여됐다. 행사에는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를 포함,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현역의원으로는 국민회의 안동선(安東善)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이협(李協)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이윤수(李允洙)의원과 한나라당 신상우(辛相佑) 김덕룡(金德龍) 박관용(朴寬用) 서청원(徐淸源) 김무성(金武星) 박종웅(朴鍾雄)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김대통령은 직접 참석하지 않는 대신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다. ‘5·17 내란음모사건’ 재조명 지난 80년‘김대중(金大中)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와 그 가족 30여명은 이날 모임에서 내년 사건발생 2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는 사건 관련자의 회고록이나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을 모은 사진집을 출간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직후 “국민의 정부를 맞아 내란음모사건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과제”라면서 “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사설] 다시 ‘5·18’ 아침에

    5·18 광주(光州)민중항쟁 19주년 되는 날이다.광주에서는 18일을 전후해서 예년과 다름없이 추모제와 전야제,기념예배 같은 각종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이날이 국가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희생자묘역이 성역화된 지도2년이 됐다.보상도 광주의 그 많은 피해자들이 만족하진 않더라도 그런대로이루어졌다.그러나‘5·18’은 여전히 미완의 장으로 남아 있고 해마다 계속되는 광주행사가 항상 허전하기만 한 것은 또 웬일인가. 그것은‘5·18’이 아직도 온국민의 것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지역적 한계,광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5·18’의 벽이다. 17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5·18’묘역을 참배한 영남지역 대학생들의 57%가‘5·18’의 진상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불과 43%만이 얼마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마음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것이다. 이날을 맞아 세칭 5공세력에 속한다는 사람들의 논평을 보면 더욱 놀랍다. “폭동진압의 정당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민주화투쟁을 했다는 분들도 무장했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 입장은 분명하다” 대충 이렇다. 누가 그들을‘폭도’로 만들었으며 누가 그들로하여금 무장토록 했는가.‘5·18’의 골은 이렇게 깊다. 일이 이토록 꼬여 있는 것은 우선은‘5·18’의 진상에 대해 다수의 국민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있다.당시 군부는 언론보도를 철저히 통제해 국민은 이 사태에 대한 리얼리티가 부족했다.진상을 바로보지 않으려는 특정집단의 완강한 편견이 있고 5·18당시 개별사건의 은폐·조작 시도가 진상 접근을 원초적으로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5·18’을 있는 대로 보려는 진실파악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다같이마음을 열고‘5·18’의 객관화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광주의한(恨)은 민족의 한으로 남게 된다. 광주시민들도 이 역사의 비극을 안으로만 끌어안아서는 곤란하다.대승적 자세에서 한의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광주는 이제‘5·18’을 광주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으로 흔쾌히 내놓아야한다. 1999년은 새로운 천년을 눈 앞에 둔 마지막 장이다.한과 비극으로 얼룩진 20세기를 이제 훌훌 털어내야 한다.17일 밤 광주에서 열린 전야제의 테마는‘생명의 5월,희망의 5월,새 천년을 위하여’였다.
  • [김삼웅칼럼] 5·18 진혼곡

    소돔과 고모라시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지만 까레시는 여섯명의의인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군사정권시대에 광주민주항쟁이 없었다면,그들 의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 현대사는 정신적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을지 모른다. 마치 사육신의 의혈(義血)이 조선왕조의 건강성을 유지해온 역설과 비유될수 있겠다. 군사정권시대에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그들은 대부분이 일방적인 사법살인·암살·테러·의문사·고문치사의 희생자들이다.그러나 광주항쟁은 폭력집단에 맞서 싸우다가 희생된 차이가 있다. 오늘(18일)은 광주민주항쟁 19주년이다.학살자와 부상자·‘시민군’이 살아 있는,그래서 어느 측면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이를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동시대인들에게 194명의 사망자와 1,059명의 부상자를 낸광주학살은 불의와 폭력이 판치는 반이성의 시대로 각인된다. 고려 100년 동안 11명의 무신이‘칼로 칼을 갈고,피로 피를 씻는’폭력의논리가 지배한 이래 8백년 후 이 땅에서는 또다른 무인시대가 열리면서 반이성의 광란이 칼춤을 추었다. 고려 무신들은“문관(文冠)을 쓴 자는 서리(胥吏)라도 남김없이 죽이라”면서 학살을 일삼았고,나중에는 어용문인들만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현대의 무인정권도 비슷했다.무자비한 학살과 양심세력을 묶어놓고 그들을 추종한 반민세력과 어용문사들이 한시대를 주름잡았다. 아카시아꽃 향기로운 80년 5월,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고 꽃 한송이 꺾지 못하는 여린 학생과 시민들이, 대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찍어 죽이는학살자들을 상대로 무장항쟁에 나선 것은 나약한 시대의 양심의 불꽃이고 저항의 횃불이었다. 돌이켜보면 동학의 피울음,의병의 한맺힘,독립군의 애국혼,4·19의 민권의식이 합쳐서 마침내 광주민주항쟁의 불꽃이고 횃불이 되었던 것이다.우리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민족혼이요,당당한 저항의 맥박이었다. “내 손에 숨진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습니다.어떤 벌이라도 달게받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그동안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비밀경찰 책임자로킬링필드 대학살의 실무총장 두크(본명 카잉케프예프)가 최근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한 말이다.그는 20년 만에 정체를 드러냈다.기독교인으로 변신한 이 학살자는‘죄값을 받겠다’고 뒤늦게나마 참회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스페인내전의 장본인 프랑코는 독재와 학살을 참회하면서 내전 당시 전몰자의 계곡에서 사망한 수십만명 장병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사원을 세우고,숨지기 전에 그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지금‘전몰자의 계곡’은 용서와 화해의 성지가 되었다. 얼마 전 5·18 관련 단체 회원 250여명이 당시 진압부대를 차례로 방문하여 용서와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부상자회와 구속자회·유족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화해의 손길을 편 것이다.우리는 여기서 광주항쟁의 민주와 평화정신의 맥락을 거듭 살피게 된다.가해자들이 여전히 5·18을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으로 규정하고‘폭동 진압’ 자긍심을 느낀다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용서와 화해의 손길은 바로 까레의 의인정신과 연결된다 할 것이다. 5·18 당시 현장에 달려간 뉴욕타임스 기자는“광주시민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폭동(Violence)이 아니라 봉기(Insurrection)였다.나의 판단은 광주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보면서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고 썼다.민중봉기·민주항쟁을 폭동으로 호도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자들은 역사에대한 바른 안목을 갖고 뒤늦게나마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캄보디아의 두크나 스페인의 프랑코보다 못한 학살자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지역색 조장이‘오역죄(五逆罪)’라면 양민학살과 참회를 모르는 죄는 무슨죄에 해당될까.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건립지원을 통해 역사적 용서와 화해를 모색하고 있다. 이 기회에 5공세력도 피해자들이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펼 때 진정으로 참회하면서 지역화합과 IMF극복에 동참해야 한다.그리하여 20세기의 불행했던업보를 모두 풀고 화합의 새 세기를 맞아야 한다.광주의 영령들도 그러길 바랄 것이다.
  • 학술단체협-5·18기념재단 주최 심포지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겼는가.그리고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학술단체협의회와 5·18기념재단 주최로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는 ‘5·18은 끝났는가’라는주제로 5·18의 의미와 평가,남은 과제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과)교수는 “5·18은 우리가 추구한 반외세민족자주화를 통한 해방공간에서의 통일국가 형성의 역사적 계기를 복원한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러나 어렵게 복원된 계기가 제대로 성숙해 민족통일의 터전을 닦기도 전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주의 구축 등 세계사적 전환과 IMF 경제신탁통치라는 내외적 강풍에 의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냉전과 탈냉전,동북아 질서의 변화,제3세계와 미국과의 관계,미국의 이윤축적 방식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우리의 민족자주화 운동은 숱한 고난을 겪어왔다”면서 “한반도는 특히 미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5·18을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운동과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로이어진다”면서 “5·18의 민족사적 의의는 한반도의 탈냉전에 기초한 국가통합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대 랜즈버그(경제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한국 민중의 투쟁에서 분수령적 사건”이라면서“신군부의 압제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결해 대항한 민중의 잠재력을 보여준 항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5·18이 ▲한국 엘리트들의 자본주의적 특권보호를 위한 폭압 ▲한국의 민주발전 촉진을 무시한 미국의 정책 ▲민주주의 발전 현실화의 장애물로 나타난 남북분단이라는 교훈과 통찰력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치연구회 정해구(丁海龜·정치학)연구위원은 5·18이 한국의 지배체제에 대해서 갖는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정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배체제를 ‘국가적·체제적지배체제’와 ‘정권적차원의 지배체제’로 나누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배체제의 은폐된본질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또 이렇게 드러난 지배체제의 본질은 결국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급속히 약화시켜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함께 “5·18은 당시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던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지역공동체적 차원의 ‘민중’을 형성시키는 역할도 했다”면서 각 시대별 민주화운동의 예를 들며 한국 민주변혁운동 자체 맥락 속에서의 5·18의의미도 되새겼다. 전남대 나간채(사회학과)교수는 ‘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5·18운동의 과제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나교수는 “최근 5·18관련 운동은 유가족과 부상자,구속자 등 5·18 관련단체들이 법인화·통합화하고 기념재단 설립 등을 추진하는 추세”라면서 “5·18관련 책임자 처벌 등을 명시한 96년 ‘5·18재판’을 기점으로 5·18운동의 저항적 투쟁성도 기념사업활동이나 항쟁 정신을 구현하는 시민운동적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5·18운동이 해결해 나가야 할 구조적 측면의 과제로 ▲관련단체들의내부 통합성 강화 ▲지역사회와의 연대성 강화 ▲비합법적·폭력적 방식에서 절차적 민주성을 실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 문제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활동적 측면의 과제로는 ▲진실규명과 과거 청산을 위한 문제 ▲미완의 처벌과 재심 문제 ▲불완전한 보상에 관한 문제 등 미해결 과제와 ▲각종 조형물을 포함한 기념사업 ▲학술연구회나 토론회 ▲5·18관련 사회운동 등을 제시했다. 나교수는 “이러한 모든 과제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5·18을 포함하는광주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5·18의 기본정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고 변화된 현재의 환경 속에서 인권·정의·자치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과제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안병욱(安秉旭·국사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민족의 통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서 “한국 역사의 민주적 발전과 민족통일을 위해 꼭 넘어야 할 과제인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한국인들의 대미(對美)인식의 전환문제가 광주항쟁을 통해 어떻게 투영됐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교수는 “민족의 통일로 가는 과정은 또 하나의 변혁운동”이라고 전제하고 “단순히 보편적인 개념이나 이론틀을 내세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자취 속에서 그 구체적 의의를 추구할 때 5·18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남겨진 과제들을 발전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추모행사 이모저모

    5·18민주화운동 19주년을 하루앞둔 17일 광주에는 여느 해와는 달리 용서와 화해를 바라는 갖가지 추모행사가 잇따라 열려 분위기가 한껏 달아 올랐다. 이날 오전 광주 전남대병원에서는 ‘영·호남인간의 장기이식’이라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대구·경북지역본부와 광주·전남본부를 통해 마련된이번 행사는 경북 안동에 사는 박모(58·농업)씨가 자신의 신장을 광주에 사는 임모(42·여)씨에게 이식하겠다고 자청해 이루어졌다. 생면부지의 영·호남인 사이에 이뤄진 장기기증 행사는 80년 5·18이후 오랫동안 반목으로 대립해온 두 지역간의 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18기념기간인 18일부터는 전국 대학생 순례단 1,000여명 등 전국 각지에서 온 1만여명이 망월동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5.18기념재단의 이성길 사무차장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온 것은 5·18이 국민화합의 장으로 자리매김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계엄군이었던 군인들이 묘역을 참배하고 헌혈을 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5·18묘역에는 일부 외국인 추모객도 눈에 띄었으며,특히 일본인 29명이 단체로 희생자들을 참배해 눈길을 끌었다. 일본인 미야자와 미에코(41·여)씨는 “진도 영등제 관광에 앞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긴 5·18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광주에 들렀다”며 “역사의현장에 와보니 그날의 참뜻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피력. 이날 추모제가 열리는 동안 유가족 200여명은 80년 당시의 고통과 아픔을상기하는듯 연신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이 항쟁 마지막날인 27일 도청을 사수하다 총상을 입고 5년간 투병생활 끝에 삶을 마감했다는 이미희(44·여)씨는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잊혀졌던 그날의 아픔도 5월 이맘때만 되면 되살아나 유가족들의 가슴을 짓누른다”며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 누구를 원망하고 분노하진 않지만 국가유공자 지정 등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완전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80년 당시 광주시장을 지낸 고(故) 구용상(具龍相)씨의 유족들이 최근 5·18 당시 구시장의 메모,시청 상황일지 등을 한데 묶어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광주시민들에게 남기고 떠나며’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는 5월 18일 이후 광주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참상의 현장을 누비면서 27일 계엄군 진입 이후 수습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소회가 담겨 있다.당시 시위대를 폭도로 간주한 당국과 계엄군의 과잉진압 등에 대한 시민들의심한 반발로 극한 대립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기관장들의 대책회의모임과 이후 대책수립 상황 등이 날짜별로 기록돼 있다. 광주 임송학기자 shlim@
  • 5·18정신 인터넷 타고 세계로

    “국내외 네티즌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리고 인터넷상에서 영령들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광주지역 20∼30대 직장인들로 구성된 ‘빛고을공동체’(회장 차혁렬)는 인터넷을 통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5·18 민주화운동을 알리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들은 지난 97년 5월 홈페이지(www.518.org)를 개설한 뒤 지금까지 한글과 영어로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자료를 제공,‘5·18 대중화’에 큰 역할을담당하고 있다. 지금까지 9만여명의 네티즌이 이곳을 다녀갔다. 빛고을공동체가 결성된 것은 지난 94년.우연히 컴퓨터 통신으로 5·18과 광주 지역사회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다가 뜻있는 회원 13명이 모여 활동을 시작했다.회원들은 자료수집 등 2달여에 걸친 밤샘 작업 끝에 97년 3월에는 홈페이지를 완성,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그 뒤 회원들은 매주 광주시 동구 수기동 ‘참여자치’에서 정기 모임을 갖고 최신 자료를 첨가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는 망월동 묘역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사진과 안내도를 실었다.온라인상에서 당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190명의 묘소를 방문,직접 헌화및 참배를 할 수 있다. 자료실 등에는 당시 불려졌던 민중가요와 ‘5·18부상자 동지회’에서 제작한 5∼20분짜리 동영상 5편도 볼 수 있다. 특히 홈페이지에는 외국인들도 5·18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영문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5·18 19주년인 올해 회원들은 ‘전남대 5·18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당시 성명서와 판결문,미국무성 관계 서류 등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으며 지난 11일 천리안과 나우누리에도 5·18 사이트를 개설했다. 초대 회장을 지낸 박인배(朴仁培·35)씨는 “컴퓨터 세대인 젊은이 상당수가 5·18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서 “5·18 알리기에 조그마한 보탬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5·18묘역 국립묘지 언제쯤

    ‘자유와 민주’로 상징되는 성역지 5·18묘지가 서울·대전에 이어 제3의국립묘지로 격상될 것인가. 광주시 북구 운정동에 위치한 5·18묘지는 문민정부 들어 5·18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시작되면서 국비와 시비 등 261억원을 들여 지난 97년 5만여평부지에 조성됐다. 5·18 민중항쟁추모탑 등 상징물과 기념건축물로 단장된 이곳에는 5·18희생자 325명중 284명이 안장돼 있다. 나머지 41명은 국립묘지 승격 후나 풍수지리 등을 내세워 유족들이 이장을미룬 상태다. 지난 97년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뒤 관련 단체나 재야인사 등은 5·18묘지를 국립묘지로 승격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서 활용가치가 충분하고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게 살아있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현재 ‘국가유공자 및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상정돼 계류중이다. 만일 임시국회에서 이 법률안이 통과되면 5·18묘지는 문민정부시절 수유리 4·19묘지처럼 곧바로 국립묘지로승격된다. 따라서 묘지 관리도 광주시에서 국가로 옮겨져 보훈처에서 맡게 된다.특히관련자들은 국가유공자인 원호대상자처럼 의료보험 확대적용,공무원시험에서 점수가산 등 각종 혜택을 보게 된다. 다만 제주 4·3항쟁이나 부마항쟁 관련 유가족 등도 이같은 주장을 굽히지않고 있어 형평성 때문에 국회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5·18민주화운동 19주년-광주YMCA 5·18기록특별위원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록이 아닌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영상으로담아낸다. 광주 YMCA 5·18영상기록특별위원회(위원장 李光宇·전남대 명예교수)소속 회원 11명이 그 주인공으로 올해 말까지 영상 제작을 마무리하기 위해비지땀을 쏟고 있다. 특위는 이를 위해 이번 19주년을 맞아 ‘5·18을 말합시다’란 행사를 마련했다.회원들은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 동안 망월동 5·18묘지 등지에서 일반 시민이나 타지역 참배객 등을 대상으로 5·18에 대한 증언을 듣고 이를카메라에 담느라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그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일반인들의 5·18에 대한 입장을 영상에 담아 객관화하고 실체적 진실을 파헤쳐보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특위는 이 기간 동안 5·18을 경험한 광주시민의 기억과 타 지역민이 바라본 5·18,당시 외국인의 체험담 등을 집중 발굴한다. 특위는 이에 앞서 지난 96년 기초조사를 거친 뒤 97년 한햇동안 유족,부상자,구속자 등의 직접 피해자 140여명의 증언을 320여개 비디오테이프(9,600분 분량)에 담았다. 내용은 당시 계엄군의 만행과 금남로와 광주교도소 인근 전투상황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지난해에는 이같은 채록을 토대로 ‘기억에서 영상으로’란증언집을 펴냈다. 특위는 또 최근 이를 요약한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basenetwork.com/kwangju)를 개설,동화상으로 관련자의 진술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일부 유족과 재야인사·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특위의 발족은 지난 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의 은폐된 사실을 밝혀내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관련 자료를 수집,정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생각에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나간채 전남대교수,정찬용 광주YMCA사무총장 등 11명이 특별위원을 맡아 각종 기획을 주도한다.영상채록단은 5·18유족과 구속자 등의 생활상을카메라에 담아온 김혜선(33·다큐멘터리 사진가)씨가 맡고 있다. 이광우 위원장은 “아직도 5·18이 광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번 행사가 5·18의 전국화,세계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길기대한다”고 말했다.
  • 金대통령, 朴전대통령과 화해 이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로 자신을 핍박해온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과 화해한 것은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약의 차원을 넘는 것이다.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물꼬를 트는새 작업으로 평가된다.21세기를 앞두고 화합과 사랑의 정신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대승적 자세를 보인 것이지만,5·16과 5·18 등과 맞물려 역사적 함의(含意) 또한 적지 않다. 우선 피해 당사자로서 ‘큰 정치’의 시도다.새 천년을 열기 위한 국민화합의 열정인 셈이다.“왜 정치권은 정략적 의미만을 부여한 채 선의(善意)를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라고 청와대가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큰의미’를 이해해달라는 당부다.김대통령의 화해선언 이후 영남지역의 정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청와대측도 인정한다. 이번 화해선언으로 김대통령의 향후 정국운영은 화합과 관용의 기조를 유지할 게 확실하다.청와대 핵심참모도 “국민의 정부 2차연도 중반부터는 지역을 담보로 한 구태(舊態)의정치를 떠나 국민화합과 화해,관용등이 주요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원(朴智元)청와대대변인은 16일 “박전대통령 기념사업지원에 대해 70∼80%가 감동적이라며 긍정적 평가를 하고,20∼30%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말해 국민평가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도 박전대통령에 대한 부정적평가부분 계승은 경계했다.이어 “(김대통령이) 5·16,5·17,5·18에 여러가지 감회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대변인은 이어 ‘재평가가 박전대통령 뿐이냐’는 질문에 “역대 대통령가운데 박전대통령이 국민의 마음 속에 일정부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에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해 신호탄임을 부인하지 않았다.‘전직대통령들도 잘한 부분은 평가해야 한다’는 큰 정치 정신은 그래서 이승만(李承晩)초대대통령부터 윤보선(尹潽善)·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으로 지평을 넓혀갈 공산이 크다. 양승현기자 yangbak@
  •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 다채

    - 전남도청앞에 시민 3,000여명 운집 성지순례 통해 그날의 정신 되새겨 5·18민주화운동 19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역사의 현장인 전남도청 앞과 5·18묘지 등에서 민주영령을 추모하고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날 오전 시민걷기대회에 참가한 1,000여명은 5·18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를 출발,광주역∼광주일고∼광주천∼광주공원에 이르는 4㎞를 걸으며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오후 2시 도청 앞에서는 3,000여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5·18 정신계승 국민대회’가 열려 민중항쟁을 주제로 다룬 문화공연과 거리행진이이어졌다. 특히 전국의 실업자 300여명과 대학생 150여명은 도청 앞에서 성지순례단출정식을 갖고 역사의 현장을 찾는 거리행진에 동참했다. 운정동 5·18묘지에서는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5·18 민주영령천도제’와 마당극 ‘일어서는 사람들’이 참배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한편 이날 5·18행사위원회 초청으로 광주에 온 스리랑카,동티모르,태국 등 동아시아권 국가폭력 피해자단체 관계자 7명이 묘역과 도청앞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봤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아버지 영정 든 네살배기 5·18묘역 관리원으로

    “어렸을 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무척 원망스러웠지만 이젠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지난 80년 5·18의 참상을 상징했던 사진 속의 꼬마 조천호(曺天鎬·당시 4세)씨가 또다시 그날이 다가오자 역사의 현장에서 아픈 상흔(傷痕)을 추스르고 있다.그는 올해 23세로 지난해 5·18묘지 관리사무소 공무원으로 특채돼묘역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상복을 입은 꼬마가 초점없는 눈동자로 아버지 영정을 품에 안고 입술을깨물며 앉아있는 모습’ 이 사진은 국내 보도가 통제되던 그당시 외신기자(AP통신)의 타전으로 전세계 신문과 방송에 오르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조씨의 아버지 사천(四天·당시 34세)씨는 그해 5월 21일 오후 1시쯤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처참한 모습으로 숨졌다. “아저씨가 저 꼬마예요,아저씨랑 많이 닮았네요”우르르 몰려든 초등학생들이 사진앞에 서 있는 천호씨를 찬찬히 뜯어 보면서 물어봤다.“그래,맞아”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뒤편에서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들이 조씨의 등을 두드리며격려했다.“이렇게 당당한 청년으로 자라줘서 고맙네,아버지 없이 고생은 얼마나 했을까…” 조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88년 이 사진을 5·18관련 책자에서 우연히 확인했다.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는 87년 선거용 팸플릿에서 이 장면을보고 쓰러져 사흘만에 돌아가셨다고 가슴아파한다.조씨는 “이제는 아버지도편안하실 겁니다.제가 이렇게 옆에서 매일 돌보고 있으니까요”라며 웃었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민주화운동 희생자 보상길 열린다

    정부와 여당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지는 않고 일시 보상금과 함께 의료 및 생활지원금을 주도록 하는 내용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했다.다음달 열릴 204회 임시국회에 이러한 법률안을 제출해 통과시키기로 했다. 국민회의의 고위 관계자는 11일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 등에 관한 법률안’은 철회하거나 심의를 보류하는 대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했던 것처럼특별법 형식으로 일시 보상금을 주는 쪽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정부와 국민회의가 당초의 입장을 바꾼 것은 상이군경회 등 보훈단체와 자민련,한나라당이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방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국민회의 고위관계자는 “여권 내부,또 여야간 논란이 되는 부분을빨리 정리해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의 명예를 시급히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타협안’ 마련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와 국민회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의 적용을 받는 대상을 ‘지난 69년 8월 7일 3선개헌 발의일부터 지난해 2월 24일까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사망자,상이자,그 후유증으로 질병을 앓거나사망한 자 및 유족’으로 잡았다. 곽태헌 추승호기자 tiger@
  • 대체의학 응용·전망 밀도있게 취재…뉴스피플 5월20일자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5월20일자,5월11일 발행)는 최근 부쩍 인기를 얻고 있는 ‘대체의학’을 커버스토리로 올렸다.대체의학이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실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대체의학과 앞으로의 전망 등을 밀도있게 취재했다. 정치기사로는 미국 조사단의 북한 금창리 핵의혹 시설 사찰,대한적십자를통한 비료 지원,김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용의’등으로 한반도 5월 먹구름이 거둬질 것인지,그리고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관련,개각의 폭과 공무원사회의 대대적 지각변동설 등을 다뤘다. 경제기사로는 현재 호황을 이루고 있는 주식시장의 ‘거품 논쟁’과 그 정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짚어봤으며,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독립’논쟁을 둘러싼 배경과 앞으로의 전망을 핫이슈로 취급했다.이밖에 5·18 광주민중항쟁 19주년을 맞아 정치재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 등 ‘5월의 사람들’의 현주소를 짚어봤으며, 가정의 달을 맞아 소외받는 노인 문제를 현장 르포로 다뤘다. 아울러 별책부록 ‘전국낚시터 100선’ 역시 유익한 내용을 담고 있다.
  • 黨政추진 ‘민주화 관련법’ 골자

    정부와 여당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는 인정하지 않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 했던 것처럼 일시 보상금을 주면서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렇게 된 것은 상이군경회 전몰군경유족회 전몰군경미망인회 등 보훈단체들이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을 국가유공자로 하는 것을 적극 반대하기 때문이다.유공자 문제로 갈등을 초래하는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보훈처 및 한나라당,공동여당인 자민련도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방안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국민회의가 지난해 말 당론으로 발의해 국회 정무위에 제출한 ‘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 명예회복 및 예우 등에 관한 법률안’에 관한 심의가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게 이런 배경 탓이다.그래서 정부와 국민회의는 처리방향을 변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자에게는 보통 3,000만∼1억5,000만원을 일시 보상금으로 지급했으며 부상자에게는 의료보험카드도 발급해줬다.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도 비슷한 지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유공자로는 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적용대상은유동적이다.지난해 말 국민회의가 제출한 안에는 69년 8월 7일 3선개헌 발의일부터 현정부 출범 직전인 98년 2월 24일까지로 돼 있다.국민회의의 안에는 김영삼(金泳三) 전정권시절이 포함돼 있어 한나라당,특히 민주계의 반발이거세다.그렇지 않아도 김전대통령이 요즘 현정부를 비난하는 상황이라 적용대상은 더 미묘하다.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 등 30명의 의원들이 지난해 7월 국회에 낸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예우 등에 관한 법률안’에는 적용대상기간이 민주헌정이 유신으로 파괴된 72년 10월 17일부터 6월항쟁에 의해 민주화가 선언된 87년 6월 29일까지로 돼 있다.따라서 최종 적용대상은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중간선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곽태헌기자 tiger@
  • 정부 구조조정 내주초까지 매듭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른 각 부처의 새로운 직제안을 오는 18일쯤 국무회의에서 처리하여 20일쯤 공포하는 등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한다는계획이다. 공직사회는 50여국·실,100여과를 감축하여 6,800여명의 공무원을 줄인다는 정부 방침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나아가 개방형임용제 등의 도입으로 공직이 더 이상 평생직장이 되지못한다는 ‘혁명적’ 변화에 동요하고 있다.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4일 공직사회의 이같은 불안감을 의식한 듯 “각 부처 직제 제·개정안이 정부조직법과 함께 공포되어 공직사회를 조속히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하라”고 직제안을 최대한 빨리 처리할 것을 지시했다. 직제개편의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의 김범일(金範鎰)기획관리실장은 “직제안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라면서 “정례 국무회의는 매주 화요일에 열리나 오는 18일은 5·18민주화운동기념식이 예정되어 있는 만큼 17일이나 19일 국무회의를 열어 직제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공직사회의 불안감은 지난해 1차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폐지가 거론된 국·과의 직원들 사이에서 짙게 드러나고 있다.기획예산위나 행자부로 부터 직접·간접으로 감축규모를 전해들은 부처들은 마지노선을 정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공직사회의 조기안정화 대책의 하나로 그동안 중단됐던 승진인사를직제개편 과정에서 대규모로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승진을 동결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한 지난해와는상황이 다르다”면서 “대폭적인 승진인사로 직제개편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공직사회의 사기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직제 개편과 인원감축이 마무리되면 공무원의 사기를 진작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정부 부처의 과장급 가운데는 이미 이런 움직임에 대비하여 석·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가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등 자구노력이 시작됐다.대충 보고 쌓아놓던 자료를 펴놓고 열심히 연구하는 사무관들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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