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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화되는 ‘5·18’정신](5.끝)특별기고

    1980년 5월의 광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그리고 오늘 2000년 5월의 광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80년 5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2000년 5월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1980년 5월의 광주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다가가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5·18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으로 혹은 한을안고 살아 왔거나,5·18을 또 하나의 기회로 삼고 허둥대며 20년이란 세월을살아왔다. 이러는 동안 5·18은 계층별,지역별,또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다양하게 채색되고 포장된 채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5·18은 80년대와 90년대를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사실이다.5·18은 독재의 암울했던 시절,압제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모두가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던 시절 5·18은 신군부 등장의 서곡이자 동시에 종식을 재촉했던 기폭제가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한 커다란 시금석이 됐던 것이다. 나아가 5·18은 우리가 지켜야 했지만 그 동안 각박하고 고단했던 세월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우리 자신들의 참모습을 다시 일깨워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80년 5월의 광주는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걱정하는 눈물나도록 정겨운 곳이었고 우리 본래의 이웃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5·18은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 허물어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온몸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처절한 외침이었다.삶과 생명의 소중함에는 가진자와 못가진 자,배운 자와 못배운 자,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간에 차별이나높낮이가 있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오늘도 망월동의 영령들은 소리없이 기다리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5·18이 지니는 이러한 보편적인 상징적 의미가 어떤이념이나 특정집단 혹은 특정지역의 이해관계에 의해 무시되고 왜곡되거나또는 지나치게 미화돼서도 안된다는 점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그동안 5·18은 우리 국민 모두의 5·18이 아니라 광주지역과 그 지역주민들만의 것이었고 참여자만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5·18이었다. 나머지는 방관자 내지는 가해자처럼 5·18을 외면하거나 또는 그렇게 취급해 왔다.이러한 보편적 상징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독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은 그 동안 5·18이 각종 이념과 이해관계들로 도색되고,지역감정으로 멍들고,정치판의 도구로 악용되어 왔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5·18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상징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지역적이고지엽적인 한계를 지닌 채 20년이란 세월을 지내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5·18은 여전히 우리 모두가 지향하고 만들어가야 할,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붙들고 씨름해야 할 우리자신의 업보이며 한이며우리 모두의 화두이다.이제 5·18을 모든 오염으로부터 해방하여 청정하게다시 태어나게 하여야 한다.이것이 우리 모두의 할 일이며 망월동의 영령들이 편안한 안식에 들게 하는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5·18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金 斗 植 대구대교수·사회학
  • 金대통령 광주민주항쟁 기념식 연설 안팎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18일 광주 5·18 묘지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했다.당사자였던 만큼 김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여부는 그동안 많은 관심을 모아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문은 여러 함의(含意)를 지니고 있다.무엇보다 5·18이후 20년이 지나 성년을 맞이했고,자유와 평화,인권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기위한 항쟁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이날 “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제가 대통령이 되어 이 자리에섰다”고 강조한 대목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이번 행사 참석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대한 김 대통령의 행보를 마무리짓는 ‘완결판’의 의미를 갖고있다.지난해 10월 부산 민주공원 개원식을시작으로 올들어 2·28 대구 의거 기념식,3·15 마산 민주화 운동 기념식,4·19 기념식에 이은 최종 참석이기 때문이다. 실제 김 대통령은 이날 행사를 계기로 5·18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고 민주주의와 인권발전을 다짐하는 자리로 삼으려 했다.이날 개인적 술회를 담은긴 연설을 들은 참석자들과 시민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흐느낌을 멈추지 않는것을 보면서 김 대통령이 더욱 의지를 다졌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여기에 김 대통령은 5·18 광주항쟁의 완성을 화해와 대화합의 시대로 규정함으로써 지역감정 타파와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이어가려는 의지를 분명히했다.오찬때 “광주 5·18과 남북정상회담은 관계가 깊다”며 5·18 민주항쟁-정권교체-햇볕정책 추진-남북정상회담 개최의 등식을 피력한 것도 같은맥락이다. “민족의 장래를 크게 열어가는 남북정상회담에 온 국민이 하나가되는 게 5·18 민주영령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라는 언급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이날 광주항쟁 20주년 기념으로 국내외기자들의 취재기가 ‘광주봉기(The Kwangju Uprising)’라는 영문판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간돼 화제다. ‘한국 천안문 사태의 언론 목격담’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모두 240쪽으로 김 대통령이 직접 서문을 썼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 기념식 연설문 요지

    내가 광주의 비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5·18 항쟁이 일어난지 40여일이 지나서였다.5·18 하루 전 군사정권에 연행되어 40여일 동안 모진 박해를받던중 당시 군부의 실력자 한사람이 전해준 묵은 신문을 보고서야 비로소 광주에서 있었던 천인공로할 참상을 알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후 나는 아무것도할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나는 그 때 결심했다. 가신임들을 위해서,그리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분들의 뒤를 따라 정의롭게 죽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20년이 지났다.줄기찬 민주화의 불길은 87년 6월 전국적인 시민항쟁으로 번져나갔고,마침내 97년 12월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는민주주의의 커다란 성취로 이어졌던 것이다.위대한 광주의 정신이 살아서 승리한 것이다. ‘폭도’로 몰렸던 그날의 광주시민은 이제 민주주의의 위대한 수호자로서전 세계인의 추앙을 받고 있다.또한 무도한 총칼 아래 짓밟혔던 광주는 이제민주주의의 성지로서 역사 속에 우뚝 솟아 있다. 5·18에서 우리가 보았던 첫번째 정신은 인권정신이었다.불의한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서 광주는 인간의 소중한 권리를 지키고자 싸웠다. 둘째는 비폭력의 정신이었다.광주시민은 맨손으로 잔혹한 총칼에 맞섰다.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온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다.무기를 손에 넣고도 결코 이를 사용해서 누구에게도 살상을 가하지 않았다.철저한 비폭력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셋째는 성숙한 시민정신이었다.공권력의 공백 속에서도 광주에는 단 한건의약탈이나 방화도 없었다.그 어떤 혼란이나 무질서도 없었다. 시민 모두가 동지애와 높은 질서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보살피고 치안을 지켰다.이것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다. 넷째는 평화의 정신이었다.시민자치가 이루어진 열흘동안 어떠한 보복도 없었으며,광주시민들은 진압군 측과 대화를 시도하는 등 항쟁의 평화적 해결을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 [승화되는 ‘5·18’정신](4)학계의 평가

    “이 땅의 자주·민주·통일된 사회로의 변혁을 위한 진보적 움직임과 사상·이론의 복원·성장은 모두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출발했거나 적어도 거기서 심대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글은,한국정치학회 주최로 오는 20일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리는 학술회의 때 정대화 상지대 정치학과 교수가 발표할 예정인 논문 ‘광주항쟁과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일부분이다.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이같은 인식은 현재 국내 정치·역사학계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20년이라면 한 사건이 학문연구의 대상으로 자리잡기에 길지 않은 기간이다.그런데도 ‘1980년 5월 광주에서 열흘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간단찮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이는 물론 정치상황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광주를 밟고 일어선 5공화국 시절 제도권 내의 공개적인 학문연구 대상에서 ‘광주’는 철저히 제외됐다.집권 신군부세력은 “불순분자 책동으로 유발된 폭도들의 무장난동”이라고 선전하며 ‘광주사태’라는 용어로 본질을 왜곡했다.실제로 ‘광주’를겪지 않은 일반 국민으로서는 실상을 전혀 알지못하는 상태였다. 이 시기 ‘광주’는 지하에서 급진 학생운동권에 의해 연구됐다.그리고 그영향력은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 80년대 사회과학 운동에 밑거름이 되었다(임혁백 고려대 정치학과교수). 87년 6월 항쟁은 “위대한 어머니 광주가 낳은 아들”(이름없는 한 유인물에서)이었다.이어 출범한 노태우 정권에서 ‘광주’는 “광주 학생·시민의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 의미가 다소 격상한다. 6월 항쟁을 전후해 ‘광주’는 비로소 햇빛 아래로 나왔다.우선은 진상을알리는 다큐멘터리·증언집들이 쏟아졌고 정치·사회학 논문도 하나둘씩 선보였다.김영삼 정권에 들어서서야 한국 민주주의의 초석인 ‘5·18 민주화운동’으로 복권되었다. 90년대 들어 ‘광주’ 연구는 급류를 탄다.“광주항쟁이 전두환 정권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퇴진과 한국사회 민주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정대화교수),“우리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제공했다”(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평가는 이제 보편적 인식이 되었다. 지난 88년 노재봉 당시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가 발언해 물의를 빚은,“김대중씨가 외곽을 때리는 노련한 정치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유의 해석은 더이상 학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울러 학계는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 않고 ‘민중항쟁’이라고 정의한다.기층민중이 항쟁을 주도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손호철 서강대 정치학과 교수). 이제 광주민중항쟁에 관해 학계가 떠안은 과제는 그 외연(外延)을 계속 확대하는 일이다.고착화한 지역대결 구도를 극복해,정치적으로 복권한 ‘광주’를 사회적으로도 해결하는 것이 그 첫째다.5·18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일어난 79년의 부마항쟁,87년 6월 항쟁과의 연속성 속에서 그 역사적 위상을제대로 매김하는 일은 두번째다.또 광주항쟁의 의의를 세계사적 보편성으로자리매김하는 일은 그 마지막 과업이 될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는 처절하게 패배함으로써 시작했다.그러나 그곳에서민중들이 흘린 피는 씨앗이 되어 ‘한국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열매를 민족사에 선사했다. 이용원기자 ywyi@
  • 5·18 해직교수 국가배상키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의원면직돼 교단을 떠났던 국·공·사립대학교수들에게 국가차원의 손해배상이 이뤄진다. 교육부는 17일 5·18로 그만둔 교수들이 강제사직된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면 해직기간 동안의 급여 등에 대해 배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현재 의원면직으로 강제사직된 교수는 20명으로 파악된다. 지금까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형의 선고’ 등의 취소에 따라 복직된 국·사립 교원에 대해서만 배상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대학 자체위원회가 해당 교수의 해직사실을 확인,교육부에 통보하면 급여와 호봉을 다시 따져 법정 이자액과 함께 배상하고 연금도 재산정해줄 계획이다. 때문에 지난해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를 했던 당시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 6명과 전북대 김용성 교수 등 4명은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배상을 받을수 있게 됐다. 또 당시 서울대 이명현·김진균·한완상·변형윤 교수 등 4명과 조선대 임영천 교수 등 6명도 배상을 받을 전망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해당교수20명에게 1억원씩 20억원 정도를배상할 예정”이라면서 “대학에 지침을 통보,불이익을 받았던 교수들이 추가로 나타나는대로 배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3월26일 형의 선고 취소로 복권된 당시 전남대 오병문교수 등 6명에게 4,000만∼6,000여만원씩 모두 3억2,800여만원을 배상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인물 포커스/ 서유진 광주시민연대 상임자문위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벨로 주교,요한 갈퉁 교수(유럽평화대 교수) 등 해외 인권 운동가들의 광주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이 20주년을 맞아 세계사적인 이벤트로 자리잡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같은 해외 인사들의 광주 방문을 막후에서 추진한 사람이있어 화제다.주인공은 서유진(徐裕鎭·58) 광주시민연대 상임자문위원.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씨가 광주시민연대와인연을 맺게 된 것은 94년.시민연대는 5·18의 국제화를 위해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등 해외 민주단체와 연대를 추진하고 국제청년캠프와각종 국제학술대회를 준비중이었다. “시민연대가 비정부기구(NGO)로서 5·18 정신의 확산을 위해 힘쓰는 것을보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참여했다”는 서씨는 그동안 시민연대의 국제교류사업을 도맡다시피했다. 그는 스리랑카·태국·캄보디아·베트남·동티모르 등 분쟁지역을 돌며 각국의 인권상황을 출판물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 왔다.이같은 활동으로 이번5·18 20주년을 맞아 광주를 방문한 동티모르 벨로 대주교와 제1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결정된 동티모르 지도자인 사나나 알렉산더 구스마오 등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현재의 인권상황이 5·18 당시와 비슷한 국가들의 인권 지도자들이5·18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0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때 문동환 목사가 이끌었던 ‘북미 한국민주회복통일연합’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군사정부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세계화 어디까지 왔나

    80년 5월21일부터 일주일간 광주엔 시민 자치상황이 이어졌다.항쟁끝에 얻은 자치기간 동안 ‘치안 부재’ 상태였던 것.그러나 이때 단 한건의 범죄와폭력,생필품의 매점매석이 발생하지 않았다. 광주시민들이 이때 보여준 높은 도덕성과 민주주의 역량은 이제 세계적 자랑거리와 시민의 자긍심으로 자리잡았다.5·18 민주화 운동은 저항의 상징을넘어 인권과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 인권 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5·18 20돌을 맞아 세계적 인권지도자들이 광주로 몰려들고있다.비도덕적인 권력의 인간 존엄성 훼손에 대한 저항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으면서 유사한 상황에 처한 국가들의 인사와 학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 5·18기념재단과 시민연대모임 등은 인권과 평화,민주화로 상징되는 5월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90년대 초부터 노력을 쏟아왔다. 행사 자체가 비합법적으로 여겨지던 지난 80년대에는 ‘세계화’는 고사하고 5월 정신의 ‘전국화’라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같은상황에서 밖으로부터 5·18의 평가를 먼저 받아보자는 것이 세계화의 첫걸음이었다.그후 아시아인권헌장 선포,국제 인권상 제정,전세계 비정부기구(NGO)간 연대 등을 통해 광주는 아시아 민주화의 교과서이자 인권의 메카로 발돋움했다. 기념행사기간 동안 광주·전남 일원에서는 ▲제4회 동아시아 평화·인권 국제회의 ▲아시아 민주단체 실종자 가족 초청 ▲해외 민주인사 초청 ▲아시아인권상황전 ▲호남문화연구소의 국제학술회의 등 광주를 뛰어넘어 세계의인권과 민주화를 토론하는 행사가 이어진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현장] 대학생들 “5·18이 뭐예요?”

    “5·18이 뭐예요?” 17일 낮 봄축제가 한창인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앞.학생들은 화창한날씨 속에 파아란 잔디밭에 끼리끼리 몸을 맞대 누워 있는 등 봄의 정취를한껏 즐겼다. 그러나 바로 옆 80년대 단골집회 장소인 ‘아크로폴리스’ 광장 한쪽 구석에 붙어 있는 벽보에 눈길을 주는 학생은 없었다.‘너희가 5·18을 아느냐’는 제목이 시사하듯 5·18에 관심이 없었다. 테니스 대회 참가신청을 받고 있던 사범대의 한 여학생(19)은 “올해가 5·18 20주년이라는 사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5·18이뭐예요”라고 되물었다. 잔디밭에 누워 있던 한 공과대생(19)도 “광주민주화운동요?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라면서 “저는 81년에 태어났는데요”라고머리만 긁적였다. 지난 15일 시작한 서울대 축제는 스타크래프트 경연대회,당구대회,3대3 길거리 농구대회 등 21일까지 수십여 행사가 치러지지만 5·18 관련행사는 17일 저녁에 열린 ‘5·18 문화제’ 하나뿐이다.봄축제의 이름부터 아예 ‘우리도 재밌자’이다. 지난 16일부터 서울대 근처의 PC방 2곳을 3일동안 통째로 빌려 연 ‘스타크래크프 최강전’에는 참가자 600여명과 구경인파 수천명이 몰려들었다. 지난 15일 연세대 총학생회는 80년 당시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했던 이관근(45)·정종선씨(47) 등을 초청해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듣고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그러나 강연회를 찾은 학생은 겨우 50여명.같은 시각 연세대 학생회관 앞에서 상영된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Ⅰ’에는300여명이 몰렸다. 건국대는 지난 13일과 14일 총학생회 주최로 학생들을 모집해 광주 망월동을 순례했지만 참석자는 겨우 14명이었다.법과대는 지난 16일 광주항쟁기념영화제를 열기로 했으나 호응이 없어 취소하고 말았다. 서울대 교정에서 길거리 농구대회를 구경하던 사회대의 한 박사과정 대학원생(35)은 “10년 전만 해도 이런 5·18을 맞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신세대들이 사회와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이기주의와 재미에만 함몰돼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영우 이창구기자 ywchun@
  • 광주항쟁 20주년… 다양한 특집 마련

    5·18 광주항쟁 20주년을 맞아 방송사들은 다양한 특집을 준비했다.21세기에 처음 맞는 의미까지 합쳐져 올곧은 자리매김을 위한 장이 TV에서도 마련된 셈이다.특히 이번 특집에서는 광주항쟁 이후 20년간을 가해자와 피해자의시선에서 바라본 프로들이 마련됐다. KBS-1은 ‘광주 항쟁,그후 20년’(18일 밤 10시)에서 항쟁 당시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소개된다.5·18 당시 수습대책위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죽음의 행진’을 주도한 김성용 신부,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들불야학 출신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얽힌 가슴아픈 사연들, 진상을 알리는증언이나 노래 테이프를 복사해 광주를 알리는 방송 역할을 했던 전 기독교청년회 인권위원장 변광순씨의 후일담 등이 방송된다. MBC는 ‘MBC 스페셜-충정작전,그후 20년’(19일 밤 9시55분)에서 당시 가해자 쪽에 섰던 진압군의 고뇌와 삶을 담아냈다.광주항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진행될수록 살아있는 진압군과 국립묘지에 잠든 23명 사망 군인의 유가족들은 점점 숨을 죽여야 했다.정신적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성우씨,학살에 대한 증언을 했다가 테러를 당한 최영신씨 등 가해자인동시에 피해자인 그들을 만나 본다. 광주 현장에서의 토론회도 마련됐다.MBC ‘정운영의 100분 토론’(18일 밤10시55분)은 광주 전남도청 현지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광주항쟁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최근 귀국한 윤한봉 민족미래연구소장,조선대 문병란 교수,이경남 전 공수부대원 등이 토론자로 나서 진정한 화해와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위한 조건들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음악회,연극 등도 준비됐다.MBC는 18일 오후 7시 임진각 특설무대에서 가수이선희, 조영남,인순이 등이 참가한 ‘통일음악회’(방송은 19일 오전 11시10분)를 연다.이에 앞서 진압에 참가한 공수대원의 회상을 통해 열흘간의 긴박한 사항들이 빠짐없이 그려진 연극 ‘봄날’(18일 낮 12시15분)도 마련했다.EBS는 ‘시네마천국’(19일 밤 10시)에서 광주사태를 다룬 영화들을 모아서 방송한다. 전경하기자 lark3@
  • [사설] 광주항쟁 20주년 아침에

    광주 민중항쟁 20주년이 되는 이 아침,옷깃을 여미고 ‘5월 광주’를 새삼다시 생각해 본다.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시해로 초래된 권력공백기에 불법적으로 집권을 꾀하던 신군부의 군홧발과 총칼에 맨몸으로 저항하다가 ‘해방구’까지 만들어 내고 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계속된 광주 민중항쟁.흔히 5·18로 불리는 이 민중항쟁은 4·19혁명과 맞먹는 한국 민주화의금자탑으로 이제 자리매김 되고 있다.4·19가 반독재 투쟁에 머물렀던데 비해 5·18은 한걸음 더 나아가 반외세 민족민중운동과 민족통일운동을 촉발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 20주년이 되는 올해,광주는 우리 국민의 한 가운데,아니 세계의 한 복판에 놓인 듯한 착각이 든다.5·18 기념 민중예술제가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열리는가 하면 정부 주관의 공식기념식에 앞서 제1야당인 한나라당 총재가주요당직자들과 함께 광주 망월동 5·18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고 여·야 신진정치인의 공동참배도 이루어졌다.정부와 민주당은 망월동을 국립묘지로 승격하고 광주민중항쟁 희생자를 비롯해‘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대상자들을 민주유공자로 지정,예우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광주항쟁의 세계사적 의미를 재평가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잇따라열리는 가운데 전남대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는 “5·18이 아시아 민주화의 기폭제”(미국 웬트워스 대학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광주 민중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했던 사람들은 정작 한마디 사과의 말도 하고 있지 않다.지난해 그들은 오히려 “폭동 진압의 정당성을 결코포기할 수 없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한나라당 총재의 망월동 참배에 당내의 옛 민정계 인사들은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다.광주 항쟁을 지역주의로 몰아 붙인 당시 신군부의 책략은 재갈 물린 언론의 협조아래오랜 세월 국민들을 세뇌한 결과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직도 5월광주의 진상을 제대로 모른다. 광주 민중항쟁이 이렇게 역사 속으로 묻혀버리게 해서는 안된다.“광주 시민들에게는 아직도 피눈물 솟구치는 현실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수습끝난 과거로 인식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아무리 떠들썩한 기념행사와 정치적제스처가 많고 세계사적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5월 광주의 진실이 우리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왜곡된 지역주의의 벽을넘어서 5·18정신의 전국적인 공감대가 형성될때 광주의 비극은 끝난다.그동안의 직무유기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지는 의미에서 언론은 꾸준히 그진실을 알려야 하고 일반 국민들도 이제 마음을 열고 5월 광주를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 “金大中 내란음모 법적 명예회복 절실”

    ‘5·17 김대중(金大中) 내란음모사건’ 20주년을 맞아 사건 관련자들의 ‘법률적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7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20주년 회고모임’(회장 李文永)에서 민주당 설훈(薛勳)의원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계기가됐던 5·17 내란음모 사건은 아직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지난해 말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재심 판결이조속히 내려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숙명여대 이만열(李萬烈)교수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인 만큼 역사적 진실규명을 위한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회고 모임측은 당시 사건에 대한 신문보도와 재판기록 및 일지,관련자 회고담을 엮은 기념책자 발간을 추진하고,재심 요구에도 적극적으로 임해 법률적인명예회복을 마무리짓기로 의견을 모았다. 모임에는 당시 옥고를 치른 민주당 한화갑(韓和甲)김옥두(金玉斗)이협(李協)김홍일(金弘一)이해찬(李海瓚)의원과 배기선(裵基善)심재권(沈載權)당선자,한승헌(韓勝憲)전 감사원장,한완상(韓完相)전 부총리,고은(高銀)시인,이해동(李海東)목사,소설가 이호철(李浩哲)씨 등이 참석했다. 주현진기자 jhj@
  • 5·18 20주년 소설·詩選集 어느 오월 광주의 상념들

    5·18 20주년 기념 소설집 '밤꽃'과 시선집 '꿈,어떤 맑은 날'이 도서출판이룸에서 출간되었다. 소설집(최인석·임철우 엮음)에는 90년대 초까지 발표됐던 중단편 10편이묶어졌다.윤정모의 '밤길'은 최후의 결전을 눈앞에 두고 광주항쟁의 진실을밖으로 알리기 위해 현장을 빠져나와 밤길을 재촉하는 신부와 청년의 번뇌를쓰고 있다.가해자와 피해자를 부부로 등장시켜 항쟁의 비극을 드러내는 한승원의 '어둠꽃',택시부대 일원으로 항쟁에 참여했다가 정신이상으로 넋을 놓아버린 남편에 관한 이야기 '어떤 넋두리',행방불명된 누나를 동생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이삼교의 '그대 고운 시간', 광주항쟁의 주체와 그들의 분열을 집중적으로 탐구한 문제작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공선옥의 '씨앗불' 등이 실려 있다.이밖에 '녹슨 철길'(문순태) '포경선 작살수의 비애'(박양호) '머나먼 광주'(이청해) '어느 오월의 삽화’(채희윤) 등도 수록.시선집(김사인·임동확 엮음)은 주로 90년 이후 쓰여진 100명 시인의 시 101편을 담았다. 5·18 뿐아니라 광주,전라도,민족 등을 다룬 시들이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사투리를 숨기고 표준말로/이야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다//또 어떤 부류의 사람을 만나다 보면/당당하게 사투리를강조해서/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숨기는 사람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공포나/드러내는 사람의 광기를 들여다보면/겁이 난다/사투리가 무섭다///(유용주 '사투리가 무섭다'일부)김재영기자
  • [대한광장] 5·18과 386세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싸우자던 뜨거운 맹세…산 자여따르라!’. 만주일대를 휩쓸던 독립투사들의 장엄한 절규같은 이 노래는 식민지 시대 행진곡이 아니다. 바로 ‘80년의 봄’ 광주의 노래다.‘빛고을의봄’ 당시 민주화운동의 중심 세대였던 소위 386 세대가 이번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5·18 민주항쟁 정신’이 금배지의 젊은 대열로 대거 여의도 행군으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5월 18일 아침,날씨 맑음,그러나 전남 도청은 그 전날부터 어두움의 깊은공포로 웅크리고 있었다.전날밤 자정을 기준으로 정동년,김상윤 등 복학생과전남대 총학생회 간부들이 무자비하게 끌려가고 01시,시계가 땡! 울리는 것과 동시에 광주일원에 공수부대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다.한편 01시45분경,무장한 제 33사단 병력을 계엄군으로 해서 국회의사당을 포위하였다.이렇게 5·18의 새벽은 피튀기는 살육의 전야제로 시작된 것이다. 작전 개시 전야,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인사가 사전에 체포되었고,전국의 대학교 등에는 탱크가 위협하고 있었다.그 중심에 있었던 80년대학번들인 386 세대가 이제 30대가 되어 ‘바꿔 바꿔’ 열풍을 타고 탱크가가로막고 있던 바로 그 여의도에 다시 입성하게 된 것이다.금남로 일대의 이현장기록이 나중에 ‘타임’지에 의해 전 세계로 찍혀나가자 그 필름을 숨죽여 보던 사람들은 시린 어금니를 딱딱거리며 치를 떨었다. 빛고을 뿐이랴,이미 그 전 해의 12·12사태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양심세력과 대학생들이 분노하고 있었다.5월 17일 계엄확대는 신군부 ‘하나회’를중심으로 한,전두환 군사정권의 쿠데타를 음모하고 있었다.이번 총선에서의‘낙천낙선’운동의 주역들도 이들이다.참여연대 등 각 사회단체의 중심세력들도 이들 386이다.‘반영남-반호남’의 지역대결로 38선보다 더 분명하게갈라진 이번 총선에서 ‘우리들 386 초선의원들은 당의 단순한 거수기가 아니다’며 언성을 높이는 것도 5·18정신의 계승과 무관하지 않다. 과연 여야 흑백대결로만 구도화된 여의도 정치관행에서 이들의 언성이 얼마나 실현될 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우선은 당을 초월하여‘386 시대정신’으로 결집한다는 의지는 신선하다.민주당 총재 비서실장인 김민석 의원이한나라당의 남경필 의원 등을 만나서 ‘새천년 새청년’ 정신으로 여의도를바꾸자는 깃발이 좋다.어찌 보면 마피아 조직보다도 더 경직된 정치조직의벽을 이들이 어떻게 깰 것이냐가 지금 486 세대들에겐 흥미거리이다. 그 결과가 펜티엄세대는 물론이지만 밀레니엄시대 한국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실험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들의 병역 납세 재산 등의문제는 ‘총선시민연대’ 등을 통해서도 이미 깨끗하게 통과되었다.위법적문제를 무릅쓰고 결행된 ‘낙천낙선’운동이 없었더라면 과거와 같이 또 구린내가 나는 전과자들이 타이어같은 낯가죽으로 대거 여의도를 거들먹거렸으리라.그래서 이번의 검증절차는 ‘필요악’이었다.앞으로는 미국 등과 같은‘선거시민’ 운동이 ‘필요선’이 될 것이다. 97년 대선에서 돈과 조직이매우 빈약했던 이인제 의원이 거의 500만표 가까운 지지표를 얻었다는 것도높아진 시민의식의 반증이 아니겠는가.앞으로의 대선이나총선도 더욱 이러한 민주의식으로 고양될 것이다. 그것은 386 세대들이 5·18 민주 정신으로 우리 사회를 중심적으로 이끌어가는 청장년세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그 연장선 상에서 당시 ‘5·18’ 주체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는 청와대의 주인으로서 평양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포옹도 예견되고 있다.5·18 정신이 ‘햇볕정신’으로 승화되어 남북한의 민주화가 오기를 기대해 보아도 좋을 꺼나? 신상성 용인대교수 소설가.
  • 금남로 장엄한 추모행렬

    5·18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와 전야제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광주시 일원과 서울 광화문 등에서 열렸다. 특히 서울에서의 전야제 개최는 20년만에 처음 있는 일로 ‘빛고을 정신’의전국화를 상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천년의 빛 5·18-평화·인권·통일의 세상으로’란 주제로 오후 7시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전야제에는 수만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참석,장엄한 추모행렬을 이루었다. 대형 태극기와 만장행렬,꽃상여를 앞세운 차량 70여대가 광주공원을 출발,당시 항쟁의 주무대였던 금남로3가 옛 광주은행앞에 집결했고,5·18희생자 295명을 상징하는 횃불행렬이 이어졌다.이 행렬엔 동아시아평화와 인권 국제회의에 참석한 일본·타이완 인사 180여명과 아시아민주화운동 실종자가족 30여명 등이 참가했다. 행렬의 최종 집결지인 도청앞 5·18민주광장 특설무대에서는 기념공연이 다채롭게 펼쳐졌다.창작판소리 ‘5월광주’와 안치환·김원중 등 한국과 대만,일본 민중가수의 공연,풍물패의 한마당행사 등이 자정까지 이어졌다. ◆이날 오전 10시 북구 운정동 5·18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고재유(高在維) 광주시장과 유족,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희생자의 넋을 달랬다. 18일 오전에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5·18묘역에서 기념식이 거행된다. ◆이날 오후7시30분부터 10시30분까지 서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1,000여 시민과 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된 민중문화예술제 ‘2000 님을 위한행진곡’ 은 항쟁 와중에 어머니 뱃속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냈던 우민주씨(20·단국대 예술학부1년)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면서 시작됐다. 우씨의 편지 중간중간에 동학,4·3제주민중항쟁,4·19혁명,6·10항쟁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 민중항쟁사가 시와 노래,춤과 극으로 꾸며졌다.판화 작가 홍성담의 대형걸개그림 ‘시민군’이 드리워진 무대에는 우리 역사의 그늘진아픔을 담은 영상이 비쳐졌다. 하교길에 아버지와 함께 들렀다는 정슬기(16·경기상고 2년)양은 “5·18전야제가 이제서야 서울에서 열리게 됐다는 데대해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광주에서 보여준 참다운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임병선기자 cbchoi@
  • 5·18희생자 민주유공자 지정

    정부와 민주당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 대상자들을 민주유공자로 지정,예우하는 내용의 특별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현행 국가유공자예우법상의 독립유공자,6·25참전 유공자,4·19유공자 등에 대해서도 각각 별도로 법을 제정해 예우키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중이다. 당정은 또 현재의 5·18묘지를 국립묘지로 승격하고,5·18민주화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각종 기념 추모사업도 벌이기로 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도 이날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한 뒤가진 기자회견에서 “5·18 유공자에 대해 적정한 대우와 보상이 이뤄져야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 “독립유공자 및 6·25전쟁 참전자등과의 형평성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 전향적으로 여러대책을 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 인터뷰/ 96년 노벨평화상 수상 동티모르 벨로주교

    지난 9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동티모르의 세계적 인권지도자 카를로스 필리페 기메네스 벨로 주교(52)가 전남대 5·18연구소 초청으로 16일 한국을방문했다.벨로주교는 이날 정진석(鄭鎭奭)가톨릭 서울대교구장과 면담한 뒤기자들과 만나 동티모르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화에 대한 갈망으로 촉발된 5·18광주 민주항쟁은 독재자에 의한 살해와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 측면에서 지난해 9·10월 동티모르 사태와 연결된다고 봅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5·18항쟁은 한국민주화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됐다고 믿습니다”벨로 주교는 동티모르 사태때 한국 정부와 천주교주교회의가 보내준 지원과협력에 감사한다면서 새천년엔 국제사회가 소수민족의 더 많은 배려와 이해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동티모르는 겉으론 평온한 상태지만 여전히 물질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황폐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재건을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지구촌 곳곳에서 인권에 대한 말과 행사가 무성하지만 정작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벨로 주교는 새천년기 교회가 인권수호자로서 이론이 아닌적극적인 실천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벨로 주교는 17일 전남대에서 ‘제3의 천년의 인권운동의 방향’이란 주제로 특강을 하며 18일 5·18기념식에 참석한 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예방할 계획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교수 33년만의 귀국 포기

    [베를린 연합] 재독 사회학자인 송두율(宋斗律·56)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가1967년 독일 유학을 위해 고국을 떠난 지 33년만의 귀국 기회를 또 포기했다. 송교수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았으나 국가정보원이 귀국조건으로 준법서약서 제출등을 요구하자 귀국을 포기했다. 지난해 광복절 서울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됐으나 역시 조건 없는 귀국허용을요구하며 귀국을 포기한 바 있다. 송교수는 주최측인 전남대 5·18연구소에 보낸 불참 통보 서한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남북한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교수는 70·80년대 작곡가 윤이상씨와 독일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 운동을 주도했다. 송 교수는 그동안 한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으나 199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지금까지 10여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 뉴스피플 최신호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5월16일 발매,5월25일자)는 요즘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는 ‘로비’와 ‘로비스트’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백두사업,고속철도사업과 관련,검찰수사의 배경과 이를둘러싼 로비활동의 막전막후를 자세히 다뤘다. 과외금지 위헌판정으로 고액과외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인터넷과외 대안론’이 새롭게 일고 있는 것과 관련,현황과 문제점 등을심층취재했다.최근 발견된 생체 리듬 지배 유전자 활동을 토대로 한 ‘인간생명활동의 비밀’도 흥미롭게 취급했다. 대우차 인수를 둘러싸고 GM과 포드간의 신경전이 날카롭다.한국 자동차업계에 유리한 ‘보따리’를 제시할 쪽은 어딘지 꼼꼼히 짚어봤다.또 7세이하의유아들도 성폭행 대상이 되고 있지만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방법이 전무한‘유아 성폭행’의 현주소를 긴급진단했다. 올해로 스무해를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의 이모저모를 현장 취재했다.또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16주년 행사
  • 5·18항쟁 문화적 영향/ 문학·출판부문 성과

    문학은 제일 먼저 느끼고 가장 늦게 잊는다.5·18 광주민주항쟁은 잊어버리고 싶으나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억울한 피의 기억,죽기 전에 다시 느끼고 싶은 뜨거운 시민 공동체의 삶이 있다.문학이 어찌 5·18을 모른체 할 수 있을까. 5·18을 소재로 한 5·18문학,광주문학은 지난 20년 동안 연면히 이어졌다. 5·18이 가지고 있는,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역사적 지형성과 풍부한 문학적 잠재량 등에 비춰 그간의 문학적 노력이나 성과가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이 있긴 하다.그러나 문학의 바탕이 되는 일반의 관심과 인식을 살필 때,5·18이 전국적·보편적 스케일로 성장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광주 5·18의 피에 절은 꾸러미를 풀어보지도 않고서 싫증을 내며 창고에다 쳐박아 버렸다면 틀린 말일까.이같은 지역적 한계를 염두에 두면 소설이 주축이 된 지난 20년간의 5·18 문학화는 긍정적인 색채를 띤다.특히 최근 이삼년 5·18문학의 재흥 기류는 보다 더 확실하다. 5·18 문학은 80년대에는 외적 제약을 비집고 나오려고애를 썼고,90년대에는 내적 관심의 불씨를 다시 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사태후 4년 가까이 거론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던 5·18은 ‘존재’가 점선,괄호로나마 인정되면서문학화를 출발시켰다.85년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광주항쟁의 전말과 의미를 민중적 전망아래 정리한 보고문학의 역작이나 본격 문학작품은 아니었다.본격작품은 이보다 다소 앞선 84년말 임철우의 단편 ‘봄날’을 꼽을 수 있다.5·18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우회적으로 유추하게 하는 이 작품은 내용도 항쟁의 당시상황이 아닌 항쟁이후 남은 자의 죄책감에 관한 것이다.이같은 사태이후의 후일담 성격은 알레고리나 우회적 언급을 차용한 작품화 방편을 거둬들인 뒤에도 80년후반 1차 광주문학 활성기의 주조라 할 수 있다. 광주문학을 연 작가 임철우는 이어 4년간 ‘직선과 독가스’ ‘사산하는 여름’ ‘불임기’ ‘관광객’ ‘동전 몇닢’ ‘어떤 넋두리’ 등의 광주 단편을 차례로 발표했다.윤정모의 85년 단편 ‘밤길’도 항쟁 현장을 빠져나온부끄러움을 이야기하지만 보다 강한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어 주목받았다.국회 광주특위가 가동된 88년에 발표된 중편들인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방향에서 커다란 편차를 드러내 넓어진 광주문학의 폭을 말해준다.시민군 주체와 관련해 노동자의 주도성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깃발’은 광주항쟁이 없었으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며 항쟁 와중에 실성한 소녀의 실존적 후일을 그린 ‘저기 소리없이…’에서 광주사태는 역사성이 최대로 희석된 특수한 인간조건으로 확장된다. 80년대 말까지의 5·18문학은 87년과 90년에 차례로 나온 소설집 ‘일어서는 땅’(인동)과 ‘부활의 도시’(인동)에 집약되었다.문순태(‘일어서는 땅’‘녹슨 철길’)한승원 (‘어둠꽃’)이영옥(‘남으로 가는 헬리콥터’)정찬(‘완전한 영혼’‘새’‘슬픔의 노래’)정도상(‘십오방이야기’‘저기 아름다운 꽃 한송이’)공선옥(‘씨앗불’‘목마른 계절’)을 비롯 김중태 김남일 김유택 박호재 김신운 박원식 백성우 이명한 이삼교 홍인표 이순원등이 1차 광주문학의 축대에 돌을 보탰다. 문학의 역사성에 반기를 든 90년대 들어 5·18은 소설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으나 끝무렵 새얼굴의 문학을 솟구쳐 낸다.임철우는 97년말부터 98년초에걸쳐 장편 ‘봄날’ 5권을 완간,다시 광주문학의 기수 역을 맡았다.완성하는 데 10년이 소요된 이 대장편은 작가가 소설이 아니라 기록으로 읽어달라고주문할 만큼 비참하고도 찬란한 당시상황을 세밀하게 복원한다.이어 그때 수습위원으로 일했던 송기숙과 현지 신문사 부국장이었던 문순태는 올해 장편‘오월의 미소’와 ‘그들의 새벽’을 각각 내놨다.80년대에 볼 수 없었던항쟁기간의 디테일 삽입과 함께 화해와 테러를 동시에 모색하거나 노동자 출신 시민군의 마음 끝까지 더듬고자 한다.그리고 시인 황지우는 5·18 당시와 오늘을 역동적으로 엮은 희곡 ‘오월의 신부’를 지금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처럼 90년대 말부터 재기한 2차 광주문학은 장편화와 입체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기억과 껴안음의 새 길을 열고있는 5·18문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뜨겁고 투명한 불꽃을피워낼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5·18은 민중문화 뿌리내린 주역”. 소설가 임철우(46)씨는 이맘때만 되면 예서제서 부지런히 들먹거려지는 사람이다.누구 한사람 ‘5월’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는 광주이야기를 감히 소설로 썼었다.그러나 여전히 맘은 편치 않다.그날의 이야기가 오늘로 남지 못하고 20년전 과거로 잊혀지는 지금,‘5월 작가’라는 이름표는 버거운 짐이다. “진상은 제대로 파악되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는데,모두들 부담스러워 잊어버리려 하는 게 5월의 역사 아닙니까? 광주시민들에게는 피눈물 솟구치는 현실이 세상사람들에게는 한낱 수습 끝난 과거가 돼있으니까요.5월만 되면 으레들떠서 설치는 언론들도 솔직히 밉상맞고 그렇습니다”그는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소리를 하느라” 청년기의 한 토막을 생으로 바쳤다.1980년 5월16일부터 27일까지 열이틀간의 ‘광주사태’(소설을탈고할 때까지 ‘사태’였다) 현장으로 아득바득 사람들을 이끌어간 소설이장편 ‘봄날’이다.모두 5권짜리 대하소설을 이태전 원고지 7,000장으로 묶어내기까지는 꼭 10년이 걸렸다. 그에게 소설은 단순한 글쓰기 영역이 아니다.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하지 못했던 그에게 그건 “비겁하게 살아남아 치르는 대가”일 뿐이다.전남대를 휴학하고 지역마당극단에서 연극운동에 몰입하던 당시 ‘광주사태’는글쓰기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다.아니,확신이라기보다는 의무를 주었다고 해야 옳다.등단하기도 전이라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치열하게 현장을 기록하고 다녔더랬다.광주시내 골목골목을 뒤지며 보이는 것,들리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적어뒀다.그 수첩 기록들이 고스란히 ‘봄날’ 원고속으로 들어갔다. ‘5월 문학’이란 용어를 그는 달가워하지 않는다.5월 이야기가 한국문학사의 엄연한 한 맥락인데,굳이 거기에 특별한 수식어를 달아 생색내는 것 같아서이다. “80∼90년대의 화두는 광주였습니다.그 화두를 꺼내 고통스런 십자가를 지는 역할을 문학이 자임했고요.5월 문학이 없었다면 ‘민중문학’이나 ‘민중론’이 목소리를 낼 터전도 없었겠지요.5·18은 우리 사회에 민중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문화예술에서의 민족 주체성을 확인시킨 주역이었어요”그는 5월 이야기를 다시 꺼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5월을 폐광처럼 팽개치는 세상에다 또 그 이야기를 들이민다는 게 맥도 빠진다.“기력이 소생하기를기다린다”며 그가 웃었다.지난 3월 5·18연극 ‘봄날’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던 그는 요즘 수원 한신대로 출강한다. 황수정기자 sjh@. *6·29선언 계기 활발히 출간. 5·18의 참상을 친구들 간에도 터놓고 얘기하기가 불안했던 시절이 꽤 오랜기간 있었다.활자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지난 85년 5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황석영 기록)가 처음 책으로 묶여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당시만 해도 비밀리에 인쇄를 마치고 제본작업을하다 발각돼 전량 압수당한 뒤 밤새 마스터인쇄로 조금씩 찍고 손으로 제본해 5,000부를 발행,대학가 서점을 통해 은밀히 판매했다.대학가의 필독서로자리잡았다. 5·18 관련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증언록이나 자료집을 간간이낸 것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했던 5·18 관련서적은 87년 6·29선언을 계기로 활발히 출간되기 시작했다.‘죽음을 넘어…’도 이때야 정식출판됐다.이제까지 나온 책은 대략 수백종.종류도 시·소설 등 문학물에서 사진기록·자료·증언·수기집,취재기,정치·사회·법적 연구서까지 다양하다.‘광주민중봉기와미국’(이삼성) 등 잡지 등에 발표된 글이나 연구논문들도 많다.5·18 관련주요 서적을 정리한다. 김주혁기자 jhkm@
  • [승화되는 ‘5·18’정신](3)치유되지 않은 상처

    5·18은 80년대의 어둠을 뚫고 나가는 선봉에 선 거대한 횃불이었다.‘산자여 따르라’는 외침처럼 지식인들은 행동에 나섰고 민중의 힘도 이와 함께했다.그 힘은 민주화와 정권 교체를 가능하게 했다.하지만 횃불의 그늘에는아직도 아픔을 안고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참상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아픔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없다. “끌려간 다음에 많이 맞았어.머리가 아파” 지난 97년 어딘가를 떠돌다가 경찰에 의해 전남 무안의 한 부랑인 수용시설에 들어온 김모씨.자신의 가족과 나이,주변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어디선가 맞았다는 기억만 흐릿할 뿐. 그는 5·18피해자로 등록돼 보상금을 지급받았다.그뒤 보상금을 챙긴 가족이 떠나버리고 지금은 복지시설에 수용된 채 쓸쓸하게 보내고 있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5·18 때 겪은 참상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자는 사망한 30여명을 빼고도 120여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머리를 심하게 다쳤거나 여자인 경우 집단 성폭행당한 경험을갖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불행을넘어 가족에게도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의 슬픔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80년 5월 11공수여단 소속으로 진압작전에 투입됐다가 정신질환으로 병원을전전하다 최근 숨진 하모씨(전남 나주시).그의 어머니 김모씨(65)는 “5월만 되면 가슴이 저며온다”고 말한다.아들은 5·18을 겪은 후 “누군가 날죽이려고 해요… 살인마가 와요”라고 넋두리를 하며 고통에 시달렸다.그 모습을 생각하면 어머니 김씨는 지금도 온 몸이 떨린다. 광주시립 S병원에 입원중인 김모씨(38)는 80년 당시 전교 1∼2등을 다투던고교 3년생이었다.하지만 5월19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돼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6월쯤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병아리새끼를 죽인다.나와”하고 악을 쓰거나 혼잣말을 해댔다. 그는 모 의과대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정신분열증으로 판명돼 학업을 중단했다.이어 82년 겨울에는 철도레일에 오른팔을 올려 놓고 자해를 했다. 이들 말고도 당시의 충격으로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거나 이혼 등으로 가정파탄에 이른 피해자가 갈수록늘고 있다고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전했다. 광주시립정신병원 정신과 최재영(崔宰榮·35) 전문의는 “5·18 피해자들이공통적으로 겪는 질환으로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우울증’‘불안장애’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이들은 사고 당시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악몽에 시달리고,심해지면 정신분열증까지 앓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수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병원 설립을 희망하고 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동안 보상이 충분히 이뤄졌다며 병원 설립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20년째 유족회 활동 鄭水萬회장. 정수만(鄭水萬·53) 5·18유족회장은 5·18 2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80년 동생(31)을 잃고 유족회를 이끈 지 20년째를 맞은 그는 수많은 좌절과고통을 감내하면서도 5·18의 위상을 오늘에 이르게 한 핵심 인사중의 하나다. “5·18이 세계 인권과 평화·민주주의의 견인차로 우뚝 서게 된 데는 광주시민과 국민,전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그런의미에서 5·18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5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가는 ‘현재진행형’,나아가 ‘미래진행형’이라고 덧붙였다. 5·18 정신선양을 위한 투쟁과정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81년 5·18 구 묘역에서 열린 첫 추모제 행사 때는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수백명의 인파가 몰렸다. 그는 추모제를 주도하면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구속된 뒤 검찰 조사과정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추가돼 8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추모제 때 제물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제는 5·18이 국민통합과 지역·계층간 갈등을 해소하는 매개체가 돼야합니다”정회장은 정치적·지역적 이유로 5·18의 전국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광주 최치봉기자. *진실규명 앞장선 해외인사 방문. 지난 80년 이후 5·18 진실규명에 큰 도움을 준 다른 나라의 민주인사들이16일 대거 광주를 찾았다.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 행사위원회가 ‘보은’의 뜻으로 이들을 초청했다. 특히 해외인사 중에는 81년 광주방문 체험담을 담은 ‘거대한 강물처럼 한국의 기억’이란 책을 펴낸 루이스 M 윌슨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의장과 광주항쟁 3일 후 희생자와 유가족 후원활동을 위해 독일 교회 대표로 당시 광주를 방문한 헬무트 알무쉐 목사가 이곳을 다시 찾았다. 또 이날 광주를 방문한 해외인사는 패리스 하비 국제노동권리재단 사무총장과 댄 존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대표,폴 슈나이스 독일 동아시아 선교회 의장 등 모두 12명이다. 이들은 18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5·18 전야제 및 기념식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오전 5·18묘역에서는 전국 시사만화 작가회의 주관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친숙한 만화를 통해 광주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5·18 시사만화 전시회가 열렸다. 광주 남기창기자. *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대구서도 다양한 기념행사.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지역에서도 다양한 행사가열린다. YMCA를 비롯한 대구지역의 23개 시민단체들은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을 맞아18일 오후 7시 대구 YMCA강당에서 ‘5·18정신 계승 결의대회 및 기념강연회’를 개최한다.또 대구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3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앞광장에서 광주항쟁 사진전과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희망의 시민포럼은 17일부터 사흘간 경상감영공원에서 광주항쟁 사진전을 갖는다. 이밖에 극장 ‘열린공간 큐’는 17일부터 사흘간 영화 ‘꽃잎’ 등 광주항쟁 관련 영화 6편을 상영하는 ‘광주항쟁 영화제’를 개최한다.한편 대경연합은 이미 지난 14일 200여명의 회원들이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 돌아왔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5·18광주민주화 운동…망월동묘역 정치인 발길 줄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망월동 묘역에는 여야 정치인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6일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강창성(姜昌成)부총재,이부영(李富榮)총무,권철현(權哲賢)대변인,맹형규(孟亨奎)총재비서실장,이원창(李元昌)총재특보 등 당직자들과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찾아헌화·참배했다.이총재는 지난 96년 총선과 97년 대선을 앞두고 ‘전략적’ 차원에서 망월동을 방문했었다. 허경만(許京萬)전남지사와 고재유(高在維)광주시장이 이총재를 영접했고,묘역에서는 정수만(鄭水萬)5·18유족회장 등이 안내를 맡았다. 이총재는 “5·18은 특정지역 사람만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발전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이를 계기로전 국민의 통합과 지역발전을 이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광주에서 열리는 5·18 기념식에는 민주당 김옥두(金玉斗)사무총장,박상천(朴相千)원내총무,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정동영(鄭東泳)대변인 등당 지도부가 대거 참석한다. 이에 앞서 여야 386 당선자 16명과 원외 지구당 위원장 4명은 17일 오후 망월동 묘역을 공동 참배한다.민주당에선 김민석(金民錫)의원과 임종석(任鍾晳)·장성민(張誠珉)·정범구(鄭範九)·송영길(宋永吉)·김성호(金成鎬)·이종걸(李鍾杰)·함승희(咸承熙)당선자,한나라당에선 원희룡(元喜龍)·오세훈(吳世勳)·김영춘(金榮春)·안영근(安泳根)·정병국(鄭柄國)·심규철(沈揆喆)·김부겸(金富謙)·심재철(沈在哲)당선자가 공동참배단에 합류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5·18광주민주화 운동…계엄군 훈·포장 영예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를 진압하거나 시민군과의 전투에서 공을세웠다는 이유로 일부 계엄군에게 수여된 훈·포장은 과연 영예인가? 5·18 광주 진압작전인 충정작전에 계엄군으로 참가해 훈·포장을 받은 사람은 장성 3명,영관장교 7명,위관장교 11명,하사관 19명,사병 28명 등 모두69명에 이른다. 이들은 충정작전이 마무리된 직후인 8월20일 훈·포장을 받았다.포상 이유는 광주시내 일원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시위와 시민군을 효과적으로 진압해공을 세웠다는 ‘충정작전 유공’이다. 이 가운데 훈장은 36명,포장은 33명에게 수여됐는데 5·18에 대한 사법적,역사적 평가가 광주사태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바뀐 이후에도 이를 반납한 사람은 현재까지 1명도 없다.다만 당시 특전사령부 정호용 소장과 제3특전여단최세창 준장 등 2명만이 지난 김영삼 정권때 5·18재판으로 형을 받아,수여받은 훈장이 정부에 의해 박탈됐을 뿐이다. 이에대해 5·18관련단체들은 당시 계엄군의 활동이 엄연히 불법적인 것으로확인된 만큼 그들이 받은 훈·포장은 당연히 자진 반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수만 5·18유족회장은 “용서와 화해는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이라며 “5·18로 받은 훈·포장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용서와 화해의 손짓을 할 수 있겠느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광주 남기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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