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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선 자살 보도에 “들개들”…시골의사-기자 설전

    송지선 자살 보도에 “들개들”…시골의사-기자 설전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경북 안동 신세계연합병원장이 한 기자와 트위터에서 벌인 설전이 화제가 되고 있다.  박 원장은 지난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송지선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자살 보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또 한명의 목숨이 들개들에게 희생이 되었네요. 제목이 ‘조사를 마친 시신’이라니요? 시신이 엠뷸런스에 옮겨지는 장면, 그곳을 향해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사람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자행할 수 없는 일들이죠. 이건 금수의 마음입니다.”라며 언론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박 원장의 글은 리트윗을 통해 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퍼져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한 기자가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박 원장의 트위터에 “아까 쓰신 카메라 기자들의 직업 정신과 일과를 죽은 사람을 보는 일반적인 안타까운 감정으로 매도하셨던데요. 그러면 5·18민주혁명도 찍은 기자들은 다 쓰레긴가요? 사과바랍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박 원장은 “죄송하지만 사과할 수 없네요. 정말 5·18 역사의 현장을 남기는 것과 투신자의 시신 이송 장면 사진을 속보로 올리는 것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박했다.  기자는 “희극인은 가족상이 있어도 웃겨야 하듯이 기자들은 마음이 아프나 좋은 소식이나 알려야 할 천직 의무가 아닙니까?”라면서 “개인사를 언급한 것은 잘못이라 치더라도 의사는 시체를 부검해도 되고 기자는 찍으면 안되나요?”라고 다시 받아쳤다.  결국 박 원장은 “그냥 제 생각이 짧았다 생각하겠습니다. 어찌 제가 판단하는 사안이 무조건 옳을 수가 있겠습니까?”라면서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님이 옳습니다. 님의 기자정신과 가치관을 존중하겠습니다.”라고 사과했다.  기자 역시 “박 선생님께서 감성에 젖어 말씀하실 수 있는 부분이고 일반시민은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만 얄궂게 들개처럼 뭐 주워 먹으려고 달려든 것은 아니잖습니까? 타인의 직업을 존중해 달라는 말입니다.”라면서 “박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비판적 지지가 이럴 때 쓰이겠죠. 용기있게 사과해서 감사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남겼다.  두 사람의 설전이 마무리 된 상황이지만 네티즌들은 양쪽 주장을 놓고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있다.  박 원장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박씨가 지적한 부분은 한국 언론이 가진 고질적인 병폐”, “언론이 알권리를 내세워 개인적인 실례를 모른 척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라는 주장이다. 반면 “언론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일 때도 있지만 그 역시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 “기자들의 특성상 감정적으로 사건을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與자문위원 ‘여성폄하 욕설’ 논란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소속 한 자문위원이 19일 트위터에서 여배우 김여진씨에게 욕설을 퍼부어 논란이 됐다. 김씨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31주년이었던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 “당신은 학살자입니다. 전두환씨”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자문위원 박모씨는 트위터에 “김여진! 경제학살자 김 아무개 전 대통령 두 사람에게는 뭐라 말할래?”라면서 “못생겼으면 함부로 씨부렁거리지 마라.” “미친Ⅹ” 등의 욕설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데 정권을 유지하고 싶으면 여성을 폄하하는 저속한 발언을 제발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박씨는 논란이 지속되자 자신의 트위터에 “개인적으로 화가 나서 막말 좀 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김여진 이외의 분들에 대해서는 사과드린다.”고 했다가 “인신에 대한 저의 말은 사과한다.”고 밝혔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전두환 전 대통령 두고 배우 김여진과 욕설한 한나라당 자문위원 사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난한 배우 김여진에게 트위터로 욕설을 남겨 논란이 됐던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자문위원 박용모씨가 자문위원직에서 사퇴했다.  김여진은 5·18 민주화운동기념 31주년이었던 지난 18일 트위터에 “당신은,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십팔일 그 날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신은 학살자입니다. 전두환씨”라는 글을 올렸다.  박씨는 19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김여진! 경제 학살자 김아무개 전 대통령 두 사람에게는 무어라 말할래? 못생겼으면, 함부로 씨부렁거리지 마라? 나라 경제를 죽이는 자는 나라 전체를 죽이는 학살자가 아니겠니? 아가리 닥치거라 가시내야”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그는 김여진에게 ‘XXX’이라는 답글을 보냈고, 김여진은 그의 글을 리트윗 하며 “맞을지도..”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박씨는 이 욕설이 논란이 되자 “개인적으로 화가 나서 막말 좀 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게 됐다.”면서 “누구를 지지하고 안하고를 떠나 학살자라는 말에 아직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김여진 이외의 분들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매년 돌아오는 이 때마다 또 누군가가 계속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신에 대한 말은 사과한다.”며 정책위 위원직 사퇴서를 냈고 위원회도 이를 수용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5월 민주올레’ 관광객 몰린다

    ‘5월 민주올레’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제31돌에 맞춰 선보인 이 행사에는 서울·부산 등 외지 방문객의 참여가 늘면서 ‘5월 정신’의 전국화에 보탬이 되고 있다. 18일 광주시교육청과 5·18 민중항쟁 제31주년기념행사위원회에 따르면 행사는 청소년들이 항쟁의 현장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는 22일까지 이어지는 민주올레 행사는 ▲5·18 코스 ▲민주열사 코스 등 2개로 나뉘어 진행된다. 5·18 코스는 옛 전남도청~전남대~상무대 영창~국립 5·18민주묘지를 돌며 5·18민주화운동을 체험하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은 민중항쟁의 역사적 해설, 주먹밥 만들기 체험, 상무대 탐방-영창 순례, 시민군 재연, 묘역 참배, 5·18 정신의 계승에 대한 교육 등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앞서 5·18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전남대생 박승희, 보성고 김철수 등 민주열사의 발자취를 각각 탐방하는 목포권과 보성권 올레 코스가 운영돼 호응을 얻었다. 이들 코스는 5·18의 생생한 현장 위주로 짜여진 만큼 학부모와 학생, 외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행사에 참여한 대학생 이모(20·여·부산시)씨는 “책에서만 접했던 5·18의 현장을 직접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우리 같은 후세가 5월 정신을 계승, 발전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5·18 최초 발발지인 전남대와 금남로, 민주묘지 등을 잇는 ‘5월 테마길’을 관광코스로 적극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위는 민주올레 참가단을 대상으로 다음 달까지 감상문을 공모해 선정된 작품을 홈페이지 등에 실을 계획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여진에 “미친X” 폭언 여당 자문위원 “화가나서 막말 좀 했다”

    영화배우 김여진에게 “XXX”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던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자문위원 박용모씨가 “김여진 이외의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욕설의 당사자인 김여진씨에 대한 사과는 거부했다.  박씨는 19일 오전 10시께 자신의 트위터에 “김여진! 경제학살자 김 아무개 전 대통령에게는 뭐라 말할래? 못생겼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라.”며 “경제를 죽이는 자는 나라 전체를 죽이는 학살자가 아니겠나.”라는 비난글을 올렸다. 이어 김여진의 트위터에 “XXX”이라는 멘션도 남겼다.  박씨는 이 글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트위터에 “개인적으로 화가나서 막말 좀 했습니다.”라면서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김여진 이외의 분들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고 적었다. 그는 “누구를 지지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학살자라는 말은 아직도 별로 안좋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2시 30분 현재 김여진을 비난했던 멘션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박씨는 트위터에 자신을 ‘대구광역시’, ‘40대말 아저씨’,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정책회의 자문위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김여진은 18일 트위터를 통해 ”당신은 1980년 5월18일 그날로부터 단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신은 학살자입니다. 전두환씨“라면서 전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씨의 돌발행동은 전날 한나라당 지도부가 광주 망월동 국립 5·18묘역를 참배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 빈축을 샀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대한항공·아시아나 6월 한달간 유공자 동반가족 1인 할인 제공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월 한달간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5·18 민주유공자 및 유족의 동반가족에게 국내선 일반석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18일 밝혔다. 유공자와 유족은 두 항공사의 국내선 전 노선에서 평소대로 30~50%의 할인을 받고, 6월 중에는 이들의 동반가족 1인도 10~30%의 할인율을 적용받을 수 있다. 두 항공사 모두 가족의 범위는 증조부모, (외)조부모, 부모, 배우자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외)손자녀, 며느리, 사위 등으로 한정한다. 아시아나는 에어부산과 공동 운항하는 부산~제주 노선은 10%의 할인율을 각각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유공자·유족 신분증과 가족관계 확인서류(주민등록등본·호적등본 등), 동반가족의 신분증을 지참하면 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1년간 원내정치 이끌었던 김무성·박지원 의원 인터뷰

    1년간 원내정치 이끌었던 김무성·박지원 의원 인터뷰

    김무성 한나라당·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여러모로 닮은꼴 정치인이다. 18대 국회 때 당의 공천을 못 받고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당으로 돌아와 원내대표를 하며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이 맡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울신문과의 퇴임후 인터뷰 날짜도 공교롭게도 18일로 함께 잡혔다. 지난 1년 “정치를 복원했다.”고 자평한 두 전직 원내대표의 소회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어 봤다. ■ 박지원 前 민주당 원내대표 “난 리더로 끼는 있지만 당대표 도전은 아직…” →지난 1년을 자평한다면. -야당다운 모습으로 민주당의 존재감을 확인했던 것,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에서 승리한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 4대강 예산이 날치기 처리된 점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때 기업형 슈퍼마켓(SSM)법, 농·어업인 지원법을 숙제로 남겨 둔 점은 아쉽다. →누구에게 미안하거나 아쉬웠던 점은. -김 전 원내대표가 많이 양보했는데 협상할 때 믿지 못하고 ‘뭐가 더 있지 않으냐. 더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 미안하다. →어떤 부분을 믿지 못했나. -예를 들어 김 전 원내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다고들 했는데 “대통령을 1년 동안 한번도 독대한 적이 없다.”고 하기에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퇴임 기자회견에서도 그리 말하기에 정말 놀랐다. ‘저런 상태에서 친이·친박계를 아우르면서 일했구나, ‘대통령이 그 정도까지 했을까.’라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이제야 밝히는’ 뒷얘기가 있다면. -세종시 수정안 부결 때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측근들과 적극적인 접촉에 나섰다. 나는 친박이 좋아하는 ‘개헌 반대’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수정안 부결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봤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반대토론을 할 줄은 몰랐다. ‘박 전 대표에게 한 방 맞았구나.’ 싶었다. 모든 과실은 박 전 대표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박 전 대표가 본회의장에 나타났다는데 ‘찾아도 없다.’고들 했다. 그러나 나는 평소 박 전 대표의 동선을 유심히 살펴왔기에 알고 있었다. 종종 본회의장 입구 오른쪽 남자 화장실 앞 휴게실에서 측근들과 얘기를 한다. 그 날도 거기에 있는 걸 확인하고 안심했었다. →손학규 대표와는 어떤 관계인가. -14대 국회 때 나는 민주당 대변인을 했고 손 대표는 재·보궐선거로 들어와 한나라당 대변인을 했다. 당시 여당을 세게 공격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 뒷조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 김대중 총재에게 보고했더니 “박 대변인, 손톱 깎지 마.”라고 했다. 손톱을 깎지 말라는 건 같이 ‘공세를 늦추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더 세게 공격했다. 그러면서도 손 대변인과는 술자리를 자주 했다. 내게 늘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손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가장 많이 동교동을 찾아왔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도 가장 많이 면회왔다.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그래서 내가 “김대중 대통령 이후 당신 같은 사람이 대통령 된다면 지지하고 싶다.”고 했다. →손 대표와 좋기만 한 사이였나. -18대 총선에서 목포 공천을 다섯 번이나 약속했다. 김홍업 전 의원도. 그런데 공천 대상에서 탈락시키더라.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지만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나중에 손 대표가 사과했다. →현재 손 대표가 가장 유력한 야권 주자인가. -손 대표는 꾀를 안 부리고 진실성이 있는 사람이다. 현재로는 가장 유력하다. 분당을에서 당선됨으로써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손 대표는 김대중의 희생정신과 노무현의 구당정신을 구현했다. →당 지도부 모두 수도권 출신이다. 호남 물갈이론이 현실화될까. -선거 때가 되면 호남 표를 구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호남색을 탈피하자고 한다. 공천 때가 되면 호남 물갈이론을 얘기한다.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다. 우선 집토끼를 잡고 산토끼를 잡아야 한다. 전국 정당은 인적 쇄신을 통해 이뤄야 한다. 전국적으로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노·장·청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쇄신의 의미를 호남이라는 지역에 국한하면 안 된다. →당의 정체성은. -원칙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야당다워야 한다. 그래야 중도를 포용할 유연성을 갖게 된다. 중도, 유연성부터 잡게 되면 무너진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찍은 후보가 당선됐나. -됐다. 1, 2차 투표에서 지지한 후보는 다르다. →야권 연대, 시기와 내용은. -빨리 1대1 구도로 만드는 게 좋다. 올해 안으로 하는 게 좋다. 안 되면 구동존이하자. 산술적 연대는 안 된다. 각 지역구에서 후보를 선정할 때 권력의지와 당선 가능성을 봐야 한다. →이른바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가치 사이에서의 위치선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김대중 5년, 노무현 5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굉장히 성공한 정부다. 그런데 왜 업적을 자랑하지 않나. 한나라당은 나쁜 역사·정체성·업적을 자랑한다. 친노와 친DJ가 합쳐야 한다. 두 분의 정신을 계승하는 게 관건이지 차이를 강조하면 안 된다. →당 대표에 도전하나. -(말하기) 아직은 빠르다. 인터뷰에서는 재미있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총선 공천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선거는 미인대회가 아니다. 철저하게 승리작전으로 가야 한다. 지역구별로 정밀하게 검토해 이길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 →인재 영입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생각이 있나. -지금은 겸손·조용 모드로 가려고 한다. 그걸 하자고 했고 하려고 한다. →마음에 둔 사람들이 있나. 조국 교수도 마찬가지인가(박 전 원내대표는 재임시 조 교수의 ‘진보집권플랜’을 기자들에게 나눠 줬다). -(고개를 끄덕) 4·27 재·보선에서 분당을에 나오라고 할 때 “조국을 위해서 조국이 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강하게 공격했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두 사람 아니냐. 현 정권의 실정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왜 박 전 대표는 혼자 고고한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퍼스트레이디였다.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당 대표를 지내지 않았나. -물론 감동의 정치를 보여 주기는 했다. 그러나 검증 과정은 없었다. 언론이 “대전은요?” 같은 말만 자꾸 미화하면 되겠나. →한나라당 차기 주자로 박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나. -지금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역대 모든 선거에서 1등 했던 사람이 당선된 적이 없다. 내년 4월 총선 결과에 따라 요동칠 것이다. →5·18 기념식에 대통령이 3년 연속 불참했다. 비서실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대통령의 덕목은 국민통합이 가장 우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영남 출신 대통령이기 때문에 반드시 가셔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구혜영 허백윤기자 koohy@seoul.co.kr ■ 김무성 前 한나라당 원내대표 “친이·친박 대결 구도엔 당대표 더러운 게임 안해” →원내대표 퇴임 이후 평가는. 어떻게 지냈나. -원내대표 끝나고 각계각층으로부터 칭찬 많이 들었다. 그러나 부산이 (내년 총선에서) 위험하다고 해서 지역구에 자주 내려간다. TV에 자주 나와 좋았다는 분들도 있고, TV에만 나오고 지역구는 잘 안 왔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해 예산안을 약속한 날(12월 8일)에 처리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템플스테이 예산이 빠지는 바람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억울했다. 군 공훈자를 위해 600억원을 올려 배정했는데, 템플스테이에 60억원을 안 쓰겠나. 사전에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한·EU FTA 처리도 기억에 남는데, 내 임기 중 처리를 못하면 한·미 FTA와 엮여서 둘 다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주당의 반대파를 제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박지원 대표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민주당이 본회의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적기에 비준한 것이 큰 보람이다. →아쉬운 점은. -그래도 예산안 처리를 일주일 정도 늦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지원 대표가 일주일만 연기해 달라기에 ‘연기해 주면 표결에 참여하겠느냐.’고 했다. 확답이 없었다. 그래서 단독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 회기 내에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 여유를 보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내는 의원총회를 생각만큼 자주 하지 않은 게 아쉽더라. 누구보다 의총 많이 해야겠다고 했는데.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양보를 많이 했다는 비판이 있다. -지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얻어 낼 것은 다 얻어 냈다. 그나마 상대를 청산의 대상으로 보는 대결의 정치에서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상생의 정치로 일정 부분 복원해 놓았다고 생각한다. →정말 대통령과 독대를 한번도 안 했나. -독대한 적이 없다. 데리고 온 자식 취급받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참 힘든 입장이었다. 친박근혜계는 내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붙었다고 비난하고, 친이명박계는 굴러온 사람이 측근 행세를 한다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갑자기 실세가 돼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고 전화한다는 소문이 어느 순간에 퍼졌더라. 그래서 나한테 줄을 서려 하고, 인사청탁을 하려는 사람도 많았다(웃음). 나를 청와대 거수기라고 욕하는 사람도 생기더라. 그래서 내가 화나서 공개한 거다. 거짓말이면 어떻게 공개하나. 청와대 가면 기록이 다 있는데. 누구누구 만났다는 말 다 들어온다. →대통령과 독대할 생각은 왜 안 했나. -우선 소신껏 일하고 싶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대통령의 진짜 의중이 궁금했다. →당이 시끄럽다. 어떻게 보나. -나는 당에서 쫓겨났던 사람이다. 그래도 한나라당 대통령이 성공해야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게 과연 옳은가.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면 자기들은 살 수 있나. 정권의 핵심들이 이제 와서 이러면 안 된다. 그들이 대통령을 멀리할 게 아니라 수시로 만나면 되지 않나. →대통령과 의견이 다른 적이 많았나. -사실 인사 때 반대를 많이 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나 정진석 정무수석에게 “민심이 돌아섰다. 걷어들여라.”라고 매몰차게 대한 적도 있다. 정 수석이 서운하다고 연락을 끊은 적도 있다. 청와대에 끌려다니지 않았다. →공천은 어떻게 해야 하나. -선거는 미인대회가 아니다. 이길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꿩 잡는 게 매다. 좀 떨어지는 것 같아도 특정인에게 강한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상대를 보고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모든 기술을 뛰어 넘는 게 주민들의 여론이고, 지금까지의 가장 좋은 방법은 여론조사다. 서푼어치 권력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하는 엉터리 공천을 막아야 한다. 공천권은 지역 주민에게 줘야 한다. 한나라당이 비민주적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총선은 ‘바람’의 영향이 크지 않나.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모든 정보가 열려 있어 바람이 불 가능성이 별로 없다. 다만 비민주적인 공천 등 심하게 잘못하면 바람이 불 수도 있다.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해서 뽑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찬성한다. 1년 동안 최고위원을 해 보니까 지금 체제로는 일이 하나도 안 되더라. 경선 때 생긴 감정 때문에 사사건건 반대만 한다. 당 수뇌부들이 모여서 나눈 의견이 5분도 안 돼 다 공개된다. →무엇을 쇄신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나오는 쇄신론은 당이 민주적으로 운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위기감이 조성되고, 그동안 (특정인들이) 해오던 드라이브가 먹히지 않는다. →여전히 실세들의 공간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실체니까. 그러나 그들도 잘못을 자각해야 한다. 자기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실세들이 무엇을 잘못했나. -공천은 다 실세들이 하지 않았나. 강원도지사 후보로 엄기영씨를 데려왔는데, 안 데려오면 민주당을 가고, 그러면 필패라는 논리로 영입한 것 아니냐. 어떻게 정권 초기 촛불시위로 국정을 마비시킨 방송사 사장 출신을 공천할 수 있나.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 수도 있지 않았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딱 움켜쥐고 내놓지 않더라. →민심이 멀어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서민경제에 실패했다. 정부가 외형적인 성장률을 자랑했지만, 대다수 국민은 ‘헛소리 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우선 수출대기업에만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조정해서 물가를 잡아야 한다. →보수대연합이 필요한가. -반드시 필요하다. 역대로 연대한 세력이 집권했다. 보수와 중도 그리고 충청권이 뭉쳐야 한다. →당 대표에 도전하나. -당이 비대위 체제로 온 것은 원내대표로 최고위원회에 참여한 나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 진로를 말하기 어렵다. (사무실 ‘네 덕 내 탓’이라고 쓰인 액자를 가리키며) 자숙하고 있다. →출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친이·친박 대결 양상으로 가면 출마 안 한다. 더러운 게임을 하기 싫다. →차기 대표는 어떤 사람이 맡아야 하나. -당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분열 때문이다. 친이·친박 갈등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다. 당을 화합시킬 대표가 필요하다. 오랜 경륜과 사심이 없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마음을 열고 화해해야 한다. 이창구·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MB “지역·세대·이념갈등이 선진화 발목 잡지 말아야”

    MB “지역·세대·이념갈등이 선진화 발목 잡지 말아야”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지역갈등, 세대갈등, 이념갈등이 선진화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김황식 국무총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우리나라는 이제 국제사회에서 ‘완전한 민주국가’ 26개국의 일원으로 평가받으며, 아시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의 유산을 이어받아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이룬 명예로운 성취”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민주 영령들이 성취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을 굳건히 하는 ‘더 깊은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면서 “‘공정한 사회’는 우리가 성취한 현대사의 업적을 다시 한번 성찰하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정부가 솔선수범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자유롭게 의견을 피력하고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큰 장점이자 힘”이라면서 “그러나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견해와 이익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극한 대립과 투쟁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겠다.”고 덧붙였다. 이는 최근 대규모 국책사업 등을 두고 지역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빚어졌던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올해로 3년째 행사에 직접 나오지 않고 총리를 통해 기념사를 대독했다. 청와대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총리가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이 전달되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1주년] 5·18 왜곡 활동에 국민혈세가 줄줄?

    [5·18민주화운동 31주년] 5·18 왜곡 활동에 국민혈세가 줄줄?

    정부로부터 활동자금을 지원받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훼손하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마저 왜곡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학살 北소행” 단체 세계유산 반대청원 17일 보수단체인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국정협) 등 보수단체에 따르면 국정협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 소속 대표들은 최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찾아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광주시민 학살은 북한특수부대 소행”이라는 내용의 ‘광주 5·18사건 유네스코 등재 반대 청원서’를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작성했다. 청원서를 직접 작성한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서석구 대표는 “5·18은 명백한 북한군의 소행”이라면서 “다시 한번 청원서를 제출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추진위)는 5·18 당시 정부와 전남도청 등이 만든 자료와 관련 사진, 시민 성명서 등을 지난해 3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바 있다. 오는 22일부터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보수단체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반대하는 청원을 낸 것으로 알려지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명백한 역사 왜곡 시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정협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가 제출한 청원서에는 “살인자들은 한국군이 아니라 북한이 파견한 북한특수부대 군인들이었습니다. 북한군이 광주시민과 남한 군인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하여 무고한 광주시민을 사살하였기 때문에 광주사건이 악화되었습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국고지원에 사후관리도 강화해야” 여기에다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려는 단체들 중 일부가 정부로부터 활동지원금을 받고 있어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국정협은 지난달 12일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2011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20개 단체에 포함돼 450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국정협은 행안부 공익사업선정위원회에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국민통합활동’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지원금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실제로 이들이 국가 정체성을 알리기는커녕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왜곡된 사실만 확산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재근 참여연대 시민감시팀장은 “국정협 등 단체에서 정부 지원금을 직접 역사왜곡 활동에 썼다는 것이 확인되면 환수 대상이 되겠지만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국고를 지원할 경우 사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1주년] “아직도 술 마셔야 잠… 5월 트라우마에 관심을”

    [5·18민주화운동 31주년] “아직도 술 마셔야 잠… 5월 트라우마에 관심을”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공휴(52)씨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5월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잇다. 그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괜히 가슴이 뛰고 불안증에 시달린다.”면서 “요즘도 독한 술을 마신 뒤에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문을 당한 후유증 탓이다. 군화 소리 속에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목을 짓누르고,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전신마비 증세가 오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기 일쑤라고 한다. 김씨는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으나 잦은 실직과 두 차례의 이혼을 반복하면서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혔다.”며 “잠을 이루기 위해 과하게 마신 술과 신경질적으로 변한 성격 때문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곤 했다.”고 털어놨다. 최근엔 성년이 된 아들과도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셋방을 얻어 홀로 지내고 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이기지 못한 상당수 피해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5월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는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쏟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의 불행은 1980년 5월 18일 우연히 시내에 나왔다가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수창초등학교 주변(금남로)에서 군중과 계엄군의 대치상황을 구경하다가 군인들에게 붙들려 소총 개머리판 등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주민의 도움으로 겨우 집으로 피신한 그는 “왜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맞아야 했을까. 그것도 나라를 지키는 우리 군인들한테…” 이런 생각에 잠긴 그는 시민들이 탈취해 운행 중인 트럭에 올라 탔다. 평범한 나전칠기공이 목숨을 내건 ‘투사’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같은 날 오후 전남도청 앞에서는 첫 총성이 울리면서 시위 중인 시민들이 쓰러졌다. 그는 22일부터 26일까지 시민군 기동타격대로 편성돼 외곽 순찰과 도심 치안을 맡았다. 계엄군의 도청 재진입을 앞둔 26일 시민 50여명은 도청을 사수하기로 했다. 그 역시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27일 새벽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면서 일주일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민원실 앞마당엔 주검이 쌓이고, 생존자는 밧줄로 묶였다. 그는 트럭에 태워져 상무대(현재의 광주 상무신도시) 영창으로 향했다. 고통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는 “총기 휴대와 내란 혐의는 인정했으나 강도·강간 혐의까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서 버텼더니 무자비한 몽둥이세례가 이어졌다.”며 치를 떨었다. 혼절을 거듭하면서도 이런 혐의를 인정치 않자 수사관들이 막사 밖의 포플러 나무 근처로 끌고 가 손발이 묶이고 옷이 벗겨진 채 개미집에 던져졌다. “개미들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상황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들이 요구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는 그는 결국 5개여월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같은 해 10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몸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김씨는 “허리 통증을 덜기 위해 인분과 견분까지 먹었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를 돕기 위해 최근 ‘5·18민주유공자회 설립추진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5월 단체(구속부상자회, 부상자회, 유족회)를 하나의 공법단체로 통합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월정신 못 지켜 반성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1주기를 맞아 ‘5월 정신’을 기리는 정치권의 추도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486’ 정치인들에겐 5·18의 그늘이 한 뼘 더 깊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정치의식화된 첫 세대이자 민주주의의 승리를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2000년 16대 총선 이후 대거 입성한 이들에게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걸었다. ‘젊은피’, ‘40대 기수론’, ‘세대교체론’은 486 정치인의 동의어였다. 그러나 운동권 엘리트주의와 주류 편승이라는 낙인도 동시에 찍혔다. 31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여야의 486 정치인들은 광주행 열차에 오르기 전 가슴 깊이 묻어 둔 반성과 다짐의 글을 꺼내 놓았다.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의회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지키면서 서민들이 정치적·사회적 주권자로서 존엄을 지키게 하는 것”이 5월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진구에 출마하기로 한 것도 5월 광주의 상흔인 ‘지역주의’를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당의 우상호 전 대변인은 “국민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보며 민주주의가 정치의 본령임을 다시 느낀다.”고 말했다. 당내 ‘진보행동’ 모임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5·18은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을 처음 확인한 사건”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보수 정치는 이제 공동체의 가치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3년 내내 5·18 기념식에 불참한 것에 대해 “그 정도로 포용력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성헌 의원은 “5·18 정신의 대중성을 위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엔 역사를 몸으로 부딪친 사람이 많지 않아 치열함이 부족하다.”면서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서민 정책이 중요한데 당이 거수기 노릇을 하다 보니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구혜영·홍성규기자 koohy@seoul.co.kr
  • 손학규, 순천에 간 까닭은

    손학규, 순천에 간 까닭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4·27 재·보궐 선거 때문에 중단했던 100일 희망대장정을 17일 재개해 첫 방문지로 전남 순천을 택했다. 순천은 재·보선 당시 야권 연대를 이유로 당 차원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던 곳이다. 손 대표는 “민주당이 중심이 되는 대통합이 시작될 것”이라며 5·18 민주화 항쟁을 기점으로 한 ‘2기 체제’의 서막을 알렸다. 손 대표는 당초 재·보선 직후 순천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지역 민심이 좋지 않아 가라앉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후문이다. ‘무(無)공천’으로 인해 지역에서 오랫동안 선거를 준비해 온 당직자들의 원망과 당을 지지해 온 주민들의 서운함이 컸다고 한다. 손 대표는 “순천의 결단이 민주당을 야권 연대의 주역으로 서게 했고 국민 승리로 이끌었다.”면서 “순천 주민들께 존경과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총력을 다해 여수박람회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순천시청에서 열린 시민 토론 마당에는 200여명의 당직자와 주민들이 참석했다. 순천의 민주당원들은 손 대표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명분도 좋지만 순천시가 찢기고 상처받았다. 당이 책임지라.”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손 대표는 “이제 정말로 대통합의 시작”이라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대통합하고 정권 교체의 길로 가는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대선 승리를 위한 야권 연대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당 야권연대특위 위원장인 이인영 최고위원, 선거총괄단장인 이낙연 사무총장도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당원들은 손 대표의 메시지에 수습책이 없다며 떨떠름해했다. 손 대표는 18일 민주화 항쟁 기념 행사에 앞서 광주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기로 했다. 희망대장정을 시작으로 2기 체제 개편에도 시동이 걸렸다. 전날 전병헌 정책위의장에 이어 양승조 당대표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했다. 이날은 이춘석·차영 대변인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정책위의장에는 박영선·이용섭·정장선·우제창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만 대선 공약을 짜는 정책 기획 능력도 있고 공천 진통을 잘 아우를 인물을 고르는 데 손 대표의 고심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원내 수석 부대표에는 노영민 의원이 선택됐다. 원내 대변인에는 홍영표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순천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1주년] 5·18 유공자 지원 현실은…

    [5·18민주화운동 31주년] 5·18 유공자 지원 현실은…

    #1. 지난 3월 광주 광산구 모 아파트 김모(52)씨의 집에서 김씨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는 1980년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총상으로 척추가 마비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동안 휠체어에 의지한 채 후유증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삶을 마감한 것이다. 김씨의 아내는 “남편은 갈수록 더해가는 통증을 견디지 못해 하루 세 차례로만 제한된 진통제 처방을 무시하고 수시로 약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밝혀졌다. #2. 지난해 9월에는 광주보훈병원 주차장에서 5·18 유공자 지모(당시 56세)씨가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씨는 5·18 당시 헌병대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했으며, 이후 고향인 전남 여수에 정착했지만 우울증, 불면증 등으로 시달렸다. 5·18 관련 유공자 중에 상당수가 부상과 고문 후유증, 생활고 등을 겪고 있으나 별다른 지원 대책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5·18 당시 공식 부상자 중 현재까지 사망한 사람(406명) 가운데 10.5%(43명)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 것으로 집계됐다. ‘5·18구속부상자회’ 관계자는 17일 “최근 2년간 5·18 유공자 10여명이 후유증 등으로 자살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4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자살의 이유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생활고 등으로 나타났다. 5·18유족회가 최근 유가족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를 보면 자살자의 34%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전체 정신질환 피해자 133명 가운데 71명이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른 국가유공자처럼 국가보훈처의 사후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18유공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이 규정하는 유공자 범주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일시불로 보상을 받았기에 연금을 받는 다른 유공자와 달리 생활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5·18유공자로 등록된 사람은 4098명에 이르며, 이들은 ▲본인과 자녀의 교육비 ▲취업 지원 ▲의료 보험 등을 지원받을 뿐이다. 정부는 1990~2006년 6차례에 걸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상 신청 8721건 중 5252건을 인정하고, 건당 1000만~1억여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20대 청년층으로 관련법에 따른 보상이 결정된 10년 이후에는 취업시기를 놓친 데다 부상, 고문 후유증, 알코올 중독, 가정 해체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시는 최근 5742㎡ 규모의 가톨릭센터(동구 금남로 3가) 매입을 추진 중이다. 이 건물에 5·18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유센터와 인권자료관 등을 배치할 계획이다. 정수만 5·18유족회장은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를 돕기 위한 전문치료병원 설립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수백명이 넘는 아들이 새로 생겼죠”

    “수백명이 넘는 아들이 새로 생겼죠”

    “내 아들은 잃었지만, 수백 명의 아들을 새로 얻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총탄에 아들을 잃은 80대 아버지가 아들이 다녔던 중·고등학교에 30년째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주인공은 조선대 토목학과 명예교수인 임병대(84)씨. 아들 균수(당시 21세)씨는 원광대 한의대 본과 2학년에 다니던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슬픔에 잠겨 있던 임씨는 한 스님으로부터 “당신 아들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법어를 들은 뒤 후세들에 장학금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듬해 아들이 다녔던 순창 북중학교와 광주 인성고에 매년 150만원의 장학금을 내놨다. 그리고 아들의 추모비가 세워진 원광대 한의대에는 1989년부터 해마다 100만원의 ‘무등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범야권 ‘민주화’ 기치 아래 뭉치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31주기, 5·2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6·10항쟁 24주기. 범야권 진영이 5~6월 ‘민주화’ 일정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있다. 2012년 정치적 격변기에 대비, 여권엔 정체성 차별화로 맞서는 한편 내부에선 진보개혁 진영의 과제를 추스르는 중이다. 보수 진영의 5·16 재평가 움직임을 ‘쿠데타’, ‘민주주의 후퇴’로 규정하며 진보진영의 단결을 강조한다. 정체성 다지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6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5·16쿠데타를 재평가한다는 명목으로 군사독재를 합리화하는 것은 우리를 또 한번 가슴 아프게 한다.”고 밝혔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5·16쿠데타는 현 정권 정체성의 핵심이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당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야권의 화두는 ‘연대연합’(통합)이다. 야권 관계자들은 “진보개혁 진영은 반독재민주화 운동을 공동 경험했다. 복지와 평화 등의 가치를 함께 품고 있다.”며 재결집을 다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18일 광주에서 최고위원회를 열고 5·18 민주화운동 31주기 기념식에 참석한다. 당내 진보개혁 모임도 광주를 찾는다. 손 대표는 17일 전남 순천을 시작으로 희망대장정을 재개한다. 이번에는 ‘정의’가 주제다. 정세균 최고위원은 18~23일 도보로 광주~부산~마산을 잇는 민주화 항쟁 현장을 찾는다. 다음 달 초쯤이면 야권의 대통합 물살이 빨라진다. 민주당의 야권 대통합 구상이 공식 제안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오는 26일 제6차 진보통합 연석회의에서 진보 대통합 논의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꼴불견’ 보수단체 “5·18은 북한특수부대 짓”

    정부로부터 활동자금을 지원받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의미를 훼손하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마저 왜곡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17일 보수단체인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국정협) 등 보수단체에 따르면 국정협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 소속 대표들은 최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를 찾아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광주시민 학살은 북한특수부대 소행”이라는 내용의 ‘광주 5·18사건 유네스코 등재 반대 청원서’를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작성했다. 청원서를 직접 작성한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서석구 대표는 “5·18은 명백한 북한군의 소행”이라면서 “다시 한번 청원서를 제출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회’(추진위)는 5·18 당시 정부와 전남도청 등이 만든 자료와 관련 사진, 시민 성명서 등을 지난해 3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바 있다. 오는 22일부터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보수단체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반대하는 청원을 낸 것으로 알려지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명백한 역사 왜곡 시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정협과 한미우호증진협의회가 제출한 청원서에는 “살인자들은 한국군이 아니라 북한이 파견한 북한특수부대 군인들이었습니다. 북한군이 광주시민과 남한 군인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하여 무고한 광주시민을 사살하였기 때문에 광주사건이 악화되었습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에다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려는 단체들 중 일부가 정부로부터 활동지원금을 받고 있어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국정협은 지난달 12일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2011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20개 단체에 포함돼 450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국정협은 행안부 공익사업선정위원회에 ‘국가 정통성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국민통합활동’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지원금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실제로 이들이 국가 정체성을 알리기는커녕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왜곡된 사실만 확산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재근 참여연대 시민감시팀장은 “국정협 등 단체에서 정부 지원금을 직접 역사왜곡 활동에 썼다는 것이 확인되면 환수 대상이 되겠지만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국고를 지원할 경우 사후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부고] 차규헌 전 교통부장관 별세

    차규헌 전 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폐렴으로 별세했다. 82세. 차 전 장관은 경기 송탄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와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제7사단장, 수도경비사령관, 육군사관학교장, 육군 참모차장, 군사령관 등을 지냈다. 1983년 대장으로 예편한 뒤 1986년 제31대 교통부장관에 취임했다. 하지만 신군부와 함께 ‘12·12 사태’에 참여하고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의 무력 진압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장세동씨와 함께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성빈씨와 아들 유만(사업)·유신(사업)·왕준(사업)씨, 딸 계연·재은·영은·지은씨, 사위 안철우(사업)·박정훈(동아일보 기자)·배경환(성남시립교향악단 비올라 수석)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7시. (02)2072-2091.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더라…5월, 그리고 31년 그래서, 또 광주다

     31년이 흘렀는데 ‘5월 광주’를 말하고 있다. ‘또(혹은 아직도) 광주냐.’란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개의치 않는 눈치다. 2년 동안 아내(주로미, 조연출·내레이션·구성작가)와 아들(김상구, 촬영보조)까지 동원해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오월愛’(오월애)를 완성했다. 40여명 무명씨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기억하는 1980년 5월과 이후 30년의 사적(私的) 기억을 복원했다.  뿐만 아니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민중의 세계사’란 주제로 10부작 시리즈를 만들겠단다. 20년 가까이 다큐멘터리 한우물을 파고 있는 김태일(48) 감독 얘기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전국 18개관 개봉(12일)을 앞둔 그를 지난 4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졸업 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하고 나선 ‘10대 스태프’ 상구(14) 군도 함께했다. “우리가 잊고 있던 31년을 살아온 분들이 궁금했다.” →경북 예천 출신인데 언제부터 광주항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대학(고려대 국문과 84학번)을 다닐 무렵이 아닐까. 엄청나게 피가 뜨거웠던 시절 아닌가.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살아남은 우리가 모두 죄인이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 없었다. →‘화려한 휴가’(2007) 같은 상업영화부터 각종 다큐멘터리까지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물은 넘쳐난다. 왜 지금, 광주를 다뤄야 했나. -기존 작품들을 대개 5월 항쟁 열흘의 기록이다. 당시 이름 없이 참가했던 분들의 기억과 지금의 모습을 통해 30년이 지난 이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아예 광주에 내려가서 살았던데. -2009년 3, 4월 두 차례 답사했다. 광주 대인시장의 방 한 칸을 ‘대인 예술인프로젝트’(시장의 문 닫은 공간에 작가를 상주시켜 예술작업을 지원하고 시장도 활성화하는 사업)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해 작업·생활공간을 얻었다. 실제 광주에 머문 건 6개월쯤이다. →40명에 이르는 무명씨(항쟁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뭉클했다. 이들의 마음을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쉬울 줄 알았다(웃음). 2009년 5월1일 내려가서 처음 만난 인터뷰 대상에게 딱지를 맞았다. 그다음 뵌 게 양동시장 노점상 이영애(항쟁 당시 주먹밥 부대) 어머니다. 거리에서 30분을 혼났다. 매년 5월이면 언론에서 취재를 와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데 막상 보도는 시덥지 않으니까 화가 나 있던 게다. 일단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조연출(아내)이 나서 아줌마들끼리의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흐르고서 비로소 인터뷰를 담을 수 있었다. →다큐에 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나. -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이 진압될 때 방송실에 3~5명 정도가 있었다. 그 중 중 3 여학생이 있었다는 복수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런데 구속자나 사망자 명단,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 훈방되면서 기록이 안 남은 걸로 추정할 뿐이다. 당시 넝마주이들이 맹열하게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분들이 모여 살았다는 월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끝내 못 찾았다. “광주의 속살을 들여다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부턴가 광주 안에서도 5·18이 우리 안의 타자가 된 것 같다’는 나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관련 단체끼리, 또는 단체와 시민 사이에 골이 깊어진 건 사실이다. 2년을 작업하면서 외부인으로 광주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봤다. 갈등은 90년대 중반 이후 보상과 함께 시작됐다. 이분들이 10년 정도를 폭도 취급을 받다 보니 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보상으로 목돈이 생기니까 빚을 갚거나 주식·사업을 한다고 90% 정도는 돈을 날려버렸다. 배운 것도 없고, 고문과 부상으로 막노동할 형편도 안 됐다. 5월의 트라우마는 고스란히 남았고, 후유증으로 최근까지 50여명이 자살했다.  현재는 도청 별관 철거 논란으로 갈등이 표면화돼 있다. 5월 정신을 계승하려면 도청별관을 보존해야 한다는 측과 하루빨리 (도청별관을 철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남도청 일원의 17만㎡에 2014년까지 민주평화교류원·아시아문화원 등 완공 예정)을 건설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 있다. 후자 측은 5·18 관련 단체(5·18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유족회)를 통합해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공법단체를 만들면 아시아문화전당의 자판기 수익금 등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오랜 갈등을 지켜본 광주시민은 진절머리를 낸다. 결국 ‘5월’은 광주 안의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생계 유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생활비와 제작비의 경계가 모호해서 제작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웃음).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영화제에서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돈이 떨어지면 ‘알바’를 했다. 늘 외환위기 때처럼 살았다(옆에 있던 상구가 “내 통장도 털렸어요.”라고 폭로했다. 김 감독이 “빌린거지, 털었다고 하면 도둑 같잖아”라며 멋쩍게 웃었다). →부인과 아들까지 (영화 작업에) 끌어들였는데. -아내는 빈민촌 어린이집 교사였는데 문을 닫았다. 40대 중반이면 원장을 할 나이라 재취업이 안 됐다(웃음). 2008년 단편 ‘효순씨 윤경씨 노동자로 만나다’부터 함께 했다. 이전에도 모든 작품을 가편집 단계부터 보고 상의했기 때문에 스태프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이자 후원자, 동반자다. 10여년 동안 작품이 주목받지 못 해 갈등도 많았지만, 항상 아내가 ‘구애받지 말고 해라. 당신 만의 힘이 있다’고 토닥여줬다. 상구는 촬영보조로 딱히 한 일은 없다(이들 부자의 대화는 친구들끼리 말장난하듯 친근하다). →스태프로 뽑은 이유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상구가 “돈이 없으니까.”라며 끼어든다). 중학교를 안 다니는데 집에서 놀기만 하더라. 우리 부부는 거의 광주에 내려가 있어야 하니까 그럴 거면 와서 경험해 보라고 했다. 안 내려온다고 버티기에 ‘알바비’를 준다고 미끼를 던졌다. 작업일지를 잘 쓰고, 현장에 꼬박꼬박 출퇴근하면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상구가 “아빠 말이 맞긴 한데 아직 못 받았어요. 다 합치면 360만~370만원은 받아야 해요.”라며 너스레를 떤다). →영화를 전공한 적이 없다. 1993년 ‘원진별곡’부터 다큐에 뛰어들었는데.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내 길은 아닌 것 같더라.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영상으로 옮기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독립영화협회에서 하는 3개월짜리 기초교육만 받고 바로 연출을 시작했다. 그때 조연출을 한, 두 편이라도 했다면 지금 고생을 덜 했을 것 같다. 그때는 다 배웠다고 생각했다(웃음). →‘민중의 세계사’ 시리즈 10부작을 기획했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현장답사를 다녀온 인도차이나를 먼저 다룰 거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콩고 등 중앙아프리카, 영국과 프랑스 등 서유럽, 동유럽, 호주와 남태평양 지역, 그리고 남미와 북미 등 얼개를 잡았다. →얼마나 걸릴까. -20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기자가 상구에게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업해도 되겠다’고 했더니 “전 관심없어요. 너무 무리 아닌가 싶어요. 10편에 집착하면 작품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라고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았다) →31년이 지난 지금, 광주정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를 보니 중고생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돈을 첫 순위로 꼽는다더라.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다. 31년전 광주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극한의 상황에서도 얼굴도 모르는 옆 사람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렇게 많은 시민이 죽어가면서 지키고자 했던 연대와 나눔 등의 가치를 우리가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상구는 “5월의 공동체정신을 되새기자라고 하면 되는데 아빠가 너무 장황하게 얘기한다.”고 면박을 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5·18민주 제2묘역 조성…광주, 연내 1000기 규모로

    국립 5·18민주묘지의 제2묘역이 조성된다. 26일 광주시에 따르면 공원조성위원회를 열어 최근 국가보훈처가 제출한 ‘5·18 민주묘지 제2묘역 조성안’을 의결했다. 보훈처는 오는 6월 설계비 등 8억원을 들여 광주 북구 운정동 산35 일대 현 묘지의 후문 부근 5471㎡에 평장묘지 1000기를 조성하는 공사에 들어간다. 올해 말쯤 완공된다. 제1묘역은 1997년 794기 규모로 조성됐으나 640기가 안장돼 154기의 공간만 남았다. 이대로라면 2013년 만장이 예상된다. 보훈처 관계자는 “제2묘역이 조성되면 앞으로 10년 정도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시신을 곧바로 매장하지 않고 화장한 뒤 유골을 평장 형태로 안치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문화마당] 외규장각 도서의 대여와 정신의 반환/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외규장각 도서의 대여와 정신의 반환/신동호 시인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儀軌)가 창고에 던져졌을 때 조선의 왕운도 기울고 있었다. 단지 외규장각이 불타고 도서가 침탈당한 건 아니다. 그때 ‘홍익인간‘이 불타고 예(禮)가 바다를 건너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는 조선의 예를 담기에 비좁고 어두웠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갈 날을 기다렸을까. 500년을 켜켜이 쌓은 나라의 법도와 조선성리학의 정신은 넓고도 견고했으니 갑갑했으리라. 왕은 의궤를 읽고 또 읽으며 백성을 생각하고 예를 다하여야 했다. 왕이 그 지독한 법도를 따를 때 백성들은 비로소 스스로를 반추할 거울이 생기는 법이다. 잊었으리라. 남대문은 불탔다. 2008년이었다. 나라 전체가 화(火)에 휩싸였다. 예고된 일이었다. 가속이 붙은 물질만능을 제어할 브레이크 장치가 부족했다. 투기와 개발이 미화되었고, 미덕과 가난은 천대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약게 살라.’고 가르쳤다. 그저 생활전선에서 싸워야 했던 아버지는 대화를 잃었고 가정교육에 소홀했다.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지도자가 선거에 당선되었다. 부덕이 부덕을 낳았다. 모두의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선(善)이 있었지만 행할 기회가 없었다. 양보는 거듭될수록 무능으로 낙인찍혔다. 끼어드는 차량을 향해 욕을 내뱉는 자신을 발견하고도 어느새 무감각했다. 윤리를 반추할 거울이 없었으니 국보1호는 불탔다. 우리 현대사에 화를 도닥였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민주화에 대한 헌신은 권위주의와 부딪치며 화를 다스렸다. 정치가 행하지 못한 윤리를 재야와 민간, 종교에서 대신했다. 장준하·문익환·김수환 등 지금은 잊혀 가는 이름들, 그들로 인해 도덕이 목숨을 부지했다. 가혹한 희생은 화를 잠재우는 과정이었다. 4·19의 김주열, 청계천의 전태일, 5·18의 광주시민 등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개개인 마음속에 불타던 화가 진화됐다. 예측할 수 없는, 이유 없는, 혹은 잔인한 행동이 도덕과 정의 앞에 무릎 꿇었던 시절이었다. 미덕이 칭송받고 양보와 희생에 예를 다하던 시절이 우리에게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서양이 동양을 배우려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본주의조차 도덕과 정의, 공익을 끌어들인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전체의 복리를 증진시킨다.’고 말한 애덤 스미스, 그가 윤리학자였다는 것을 새삼 들춰낸다. 그가 주장한 분업과 협업, 공정한 교환과 이윤이 이야기될 때 동양의 도덕과 정의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서양에서 실현되는 듯하다. 우리의 예가 향교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때 저 멀리 프랑스에서 울고 있는 의궤와 논어집주(주희가 엮은 논어의 주석들)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역사에 대한, 아주 작은 일들과 초라해 보이는 것들과 소수인 것들에 대한 예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탈한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 75권이 돌아왔다. 145년 만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여되었다. 여전히 우리 문화재로 등록할 수도 없으며, 연구를 위한 대여와 전시도 프랑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도서에 담긴 정신까지 대여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는 아직 돌려받아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환영 행사를 자제하고 있으나 문화재 환수가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은 단지 국가유물의 소유 이전 문제가 아니다. 조선이 꿈꿔온 예의 나라를 되찾는 일이다. 조선은 끊임없이 기록했고 기록을 통해 후대가 그 이상을 되새기길 원했다. 대장금도, 다모도, 조선명탐정도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만났다. 의궤에 소상히 새겨진 왕실과 국가의 예를 통해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할 것들은 제국주의 침탈로 피폐되었던 세계사의 반성이며 다가올 시대의 공정성이다. 또 개인에게는 선을, 국가는 민간에 신세 졌던 윤리를 비로소 실천할 계기점이다. 이것이 반환받아야 할 우리의 정신이며 오히려 프랑스에 대여해 줘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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