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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DT대원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 영화로 만든다

    UDT대원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 영화로 만든다

     UDT 대원들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는 작전이 영화화 된다. 세계시장 배급을 목표로 제작된다.  영화 ‘괴물’을 투자했던 크리스마스 엔터테인먼트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달 18일 논픽션으로 ‘아덴만의 여명’을 전격 영화화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작비는 약 200억원이 들어가고 국내의 명망있는 감독과 최고의 스태프으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대 대표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느낀 우리 국민들에게 이 영화가 큰 감동과 자긍심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9월쯤 크랭크 인 되며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아덴만 여명’ 작전 영화로 만들어진다

    ‘아덴만 여명’ 작전 영화로 만들어진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이 해군 특수전여단(UDT)에 의해 구출된 내용이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진다.  ㈜크리스마스 엔터테인먼트는 8일 “아덴만의 여명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시나리오 초고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20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블록버스터로 9월 크랭크인해 내년 2월 전 세계 배급을 목표로 제작된다.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해적수사 결과 발표] “교전중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몸에서 발견된 해군 특수전여단(UDT) 탄환 1발은 작전팀의 오발탄이 아니라 해적과의 교전에서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7일 석 선장의 몸에서 나온 해군 탄환 1발은 “벽이나 물체에 맞아 튕겨진 유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합참은 입장 자료를 통해 “1월21일 새벽 청해부대 UDT 작전팀이 삼호주얼리호 선교(船橋)로 진입할 당시 석 선장은 이미 해적이 쏜 총에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면서 “해양경찰청에서 발표한 UDT 작전팀의 권총 탄환으로 추정된다는 1발은 (해적과의) 교전 간 발생한 유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으로, 정확한 것은 국과수의 최종 감식결과가 나와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이어 “UDT 작전팀이 선교로 진입 후 해적과 교전할 때 근거리에서 정확하게 조준 사격해 쓰러진 석 선장 옆에 서 있던 해적 1명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해적들 1차 구출작전때 청해부대원 총격사실 시인

    삼호주얼리호 납치 해적 13명이 소속된 일명 ‘푼틀란드그룹’은 소말리아 북부지방 푼틀란드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국제해적단이다. 국제경찰형사기구(인터폴)가 파악하고 있는 조직원만 1만명으로 알려졌다. 1일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별수사본부에 따르면 푼틀란드그룹은 지난해 4월 삼호해운 소속 원유운반선 삼호드림호를 납치해 한국 측으로부터 거액의 몸값을 받아 냈던 해적단이다. 이 해적단은 소말리아 북부해역에서 인도양까지 넓은 활동 무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금미305호를 납치한 해적단과도 교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미305호는 지난해 10월 케냐 해역에서 납치돼 현재까지 한국인 선원 2명을 포함해 43명이 억류돼 있다. 따라서 ‘아덴만 여명 작전’을 통해 해적 13명이 사살되거나 생포된 푼틀란드그룹 측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금미호 선원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한 주장도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인터폴과 해경이 파악한 정보로는 삼호주얼리호의 13명은 푼틀란드그룹의 지시를 직접 받은 게 아니라 독자적인 행동에 나섰던 해적들로 추정된다. 동료 해적들이 삼호드림호를 통해 쉽게 거액을 챙긴 것이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해적 13명 중에 10명이 푼틀란드 지방에서도 작은 마을인 갈카요 출신인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남해해경은 수사 사흘째를 맞아 해적들이 심경의 변화와 수사관의 집중 추궁 덕분에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2일 귀국하는 삼호주얼리호 선원 7명 중 1명이 석해균 선장의 피격 장면을 분명하게 목격했다고 청해부대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곧 진행될 대질심문에서 상당한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적들은 지난달 18일 청해부대의 1차 구출작전 때 우리 군에 총격을 가해 UDT 장병 3명에게 부상을 입힌 사실을 인정했다. 또 해적 두목인 아브디 리스끄 샤크(28)와 부두목인 수티 알리 하루트(29)가 같은 달 21일 구출작전 때 모두 사살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한 것으로 지목된 마호메드 아라이(23)는 여전히 “총을 만져본 사실조차 없다.”며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해해경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이 의뢰된 탄환 파편 3개와 2일 도착하는 해적의 총기류에서도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삼호주얼리호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에 청해부대가 촬영한 작전동영상에서도 단서를 찾기로 했다. 부산 김정한·김동현기자 jhkim@seoul.co.kr
  • 장군님의 ‘알통구보’

    장군님의 ‘알통구보’

    “준비됐습니까”, “악!” 1일 오전 경남 진해 해군특수전여단(UDT) 훈련장. 매의 눈을 가진 조교의 호령에 계급을 알 수 없는 단단한 모습의 사나이들이 오리발 수영에 앞서 맨손체조를 시작했다. 체조라지만 구령과 동작은 얼차려에 가깝다. 영하의 기온에도 불구하고 온몸에서 하얀 김이 서려 올라온다. 소말리아 해적을 제압하고 우리 선원을 구출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해군 특수전여단(UDT)의 장병 100여명이 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테러훈련을 실시했다. 이날 훈련에는 역대 특수전여단장을 지낸 해군 군수사령관 윤재갑 소장과 해군본부 정보화기획실장 방금철 준장, 9전단장 김판규 준장 등 장성 3명도 참가했다. 계급과 상관없이 전투 능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이 전투부대 육성의 목표라는 취지에서다. 장군들은 이날 100여명의 특수전요원과 함께 ‘알통구보’와 ‘1000m 오리발 수영’ 등 혹한기 훈련을 소화했다. 훈련은 체조와 구보, 수영, 레펠, 폭발물 처리 시연, 대테러 사격, 해상침투 등으로 진행됐다. 해상침투 훈련은 특공작전팀이 적지에 침투해 항공기에 의한 폭격을 유도하거나 저격수에 의한 직접 타격, 폭발물 설치 등 실전과 유사하게 실시됐다. 또 고무보트에 탑승한 대원들이 순차적으로 해안으로 침투한 다음 기동대형을 갖춰 은거지로 이동해 핵심 목표물을 타격하고 폭파하는 방식으로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에 참가한 김판규 준장은 “아덴만의 신화를 이뤄낸 UDT 대원들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캡틴 석! 당신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캡틴 석! 당신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의 숨은 영웅 석해균(58) 선장이 총알파편 제거 수술을 받은 30일, 온 국민은 죽음의 문턱에서 어서 돌아오라며 빌고 또 빌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가 지난 21일 해군 특수전여단(UDT)이 펼친 구출작전 당시 입은 중상 탓에 의식불명의 몸으로 돌아온 석 선장은 30일 새벽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3시간 10분간에 걸쳐 긴급수술을 받았다. 귀국해서는 첫번째, 오만에서 받은 것까지 합치면 세번째로 오른 수술대였다. 유희석 아주대 병원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앞으로 2~3일이 고비”라면서 “귀국 전에 비해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낙관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복부 총상 부위와 오른쪽 겨드랑이부터 허벅지까지의 광범위한 근육 및 근막이 괴사했다.”면서 “패혈증 및 혈액응고이상증(DIC)을 보이는 등 위중한 상태였다.”면서 이같이 덧붙였다. 31일 기준으로 48시간을 더 지켜봐야 영웅의 생환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석 선장은 기도에 삽관하는 시술의 영향으로 향후 1~2일 사이에 폐렴을 일으킬 우려까지 있어 의료진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아프리카 오지인 오만에서 귀환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또 다른 작전이었다. ‘하늘을 나는 앰뷸런스(챌린저604)’로 불리는 전용기를 타고 11시간이나 되는 장거리 비행 끝에 지난 29일 오후 10시 33분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어렵사리 고국 품에 안긴 석 선장은 들것에 실린 채 천천히 내려졌다. 위중한 상태를 고려해 매우 조심스럽게 다룬 나머지 오후 11시를 넘겨서야 구급차는 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석 선장 몸은 산소호흡기를 비롯한 다수의 의료장비가 부착된 상태였다. 전용기에 동승했던 이국종 아주대 외상센터장 등 의료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행 도중 석 선장에게 안정제와 수면제를 투여하며 수면 상태를 유지시켰다.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하는 그와 재회한 부인 최진희(58)·차남 현수(31)씨는 줄곧 눈물만 흘렸다. 국민들은 해군 부사관 12기 출신인 석 선장을 두고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국민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라.”고 기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캡틴 석’ 29일 한국 온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6발의 총상을 입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29일 국내로 이송돼 수술을 받는다. 28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석 선장을 태운 이송전용기(에어 앰뷸런스)가 29일 오전 8시(이하 한국시간) 오만 살랄라 공항을 출발, 오후 7시 5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다. 석 선장은 성남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아주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지 의료진이 석 선장의 상태를 후송할 수 있을 정도로 판단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생포된 해적 5명은 30일 오전 김해공항을 통해 국내로 압송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삼호주얼리호 1차 구출작전 때 부상한 청해부대 해군 특수전여단(UDT) 요원 2명은 이날 국내로 이송됐다. 오이석·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작전성공 직후 UDT단체사진…해군 “작년 12월 촬영” 정정

    작전성공 직후 UDT단체사진…해군 “작년 12월 촬영” 정정

    해군이 24일 각 언론사에 배포했던 청해부대 검문검색대 소속 해군특수전여단(UDT) 대원들의 단체사진<서울신문 1월25일자 4면>이 지난해 12월10일 촬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군은 25일 국방부 출입 기자단에 ‘바로잡습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 후가 아닌 12월10일에 촬영한 것입니다’라며 작전 직후 촬영한 사진이 아니란 점을 밝혔다. 당초 군은 사진을 제공하며 “구출작전에 성공한 직후 대원들이 최영함 선상에 모여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아덴만 주역’ UDT 3주간 동계훈련 돌입

    ‘아덴만 주역’ UDT 3주간 동계훈련 돌입

    ‘아덴만 쾌거’의 주역 해군 특수전여단(UDT)이 혹한의 추위 속에 3주간의 동계훈련에 돌입했다.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UDT의 훈련은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24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일대 해안에서 시작됐다. 두꺼운 외투로 몸을 감싸도 추위를 느낄 날씨지만 UDT 대원들은 전투복 안에 습식 잠수복만을 입고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다. 은밀하게 보트를 타고 이동한 대원들은 가상의 적지 해안을 500m 정도 남긴 지점에서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각자 이동하기 시작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바닷물을 뚫고 해안에 상륙한 UDT 대원들은 침투조를 편성, 육상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고 퇴각했다. 해군에 따르면 이날부터 시작된 동계훈련에는 100여명의 UDT 대원이 참가했다. 냉해 극복훈련을 시작으로 주·야간 해상침투 및 퇴출훈련, 심해 잠수훈련 등 지옥을 넘나드는 듯한 힘든 훈련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또 산악행군, 전술기동, 표적타격 훈련, 폭발물 처리 및 대테러 진압훈련 등 육상훈련도 전개된다. 이번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을 위한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선보인 해적 진압 작전의 성공도 이런 고난도의 훈련을 통해 몸에 밴 덕분이다. UDT 대원들은 이밖에도 해상과 수중은 물론 육상, 공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각종 침투 및 타격기술을 연마한다. 해군 특수전여단은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6월 한국함대 제2전단 해안대 예하에 수중파괴대(UDT:Underwater Demolition Team)가 편성되면서 ‘탄생’했다. 1968년 폭발물처리(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임무, 1976년 전천후 타격(SEAL:Sea Air and Land), 1993년 해상대테러(CT:Counter Terror) 임무가 더해져 전천후 특수부대로 거듭났다. UDT 1대대장 도진학 중령은 “동계훈련은 지금 당장 싸워 이기는 전투기술 배양을 위해 실전 위주로 편성했다.”면서 “대원 모두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강한 정신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100%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대장 깨진 고글 보며 전의… 실탄 장전순간 긴장감 사라져”

    “부대장 깨진 고글 보며 전의… 실탄 장전순간 긴장감 사라져”

    소말리아 해적의 인질로 잡혀 있던 21명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완벽하게 구출해 낸 청해부대 최영함의 검문검색대 장병 6명의 수기가 24일 공개됐다. 김모 대위를 비롯한 6명의 대원들은 수기에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수기는 1차 작전에서 부상당한 팀장을 대신해 팀을 이끌게 된 김 대위가 지난 21일 2차 구출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팀원들에게 비장한 목소리로 실탄 장전을 지시하는 모습 등은 당시 상황을 마치 눈앞에서 보여주는 듯하다. ●지옥훈련 뚫은 나를 믿고 동료를 믿었다 김 대위는 “2011년 1월 22일 새벽 3시. 기상 명령과 함께 눈을 떴다. 1차 구출 작전 때 대장님께서 착용했던 그 총탄 맞은 고글을 보는 순간 잠을 설쳤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그날을 기억했다. 부대장의 깨진 고글을 보며 전의를 불태운 순간이었다. 그는 이어 “돌이켜 보면 (작전 투입 직전)이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다.”면서 “작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서로 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실탄이 장전되는 소리를 듣자 긴장감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해군 특수전여단(UDT) 저격수로 작전에 참가한 박모 중사는 “해적 중 한명이 휴대용 로켓포(RPG7)를 최영함 쪽으로 겨냥하는 것을 발견하고 조준사격을 해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적었다. 혹시라도 최영함에 발포됐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피랍소식후 2시간이상 깊은 잠 못자 그는 “만약 (로켓포가) 한발이라도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면 아군 피해도 상당했을 것”이라며 “그 순간은 정말 긴박했다.”고 표현했다. 작전이 시작되기 전 긴장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격팀에 속했던 김모 중사는 “피랍 소식을 접한 이후로 하루에 잇따라 2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면서 “지옥훈련을 뚫고 나온 나 자신을 믿고, 동료를 믿고, 할 수 있다는 다짐을 계속하며 자신감을 다져 나갔다.”고 전했다. 김 중사는 “(삼호주얼리호) 진입 후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입니다. 한국 사람은 고개를 들어주십시오’라고 외치자 그때서야 모두 안도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때 선원 한 명이 ‘해적이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님을 쐈습니다’라고 하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김 중사는 “선장은 총상을 여러 군데 입었지만, 의식이 있어서 평소 훈련대로 지혈했다.”면서 “선원들은 선장이 해적들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그런 고초를 겪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의무병으로 최영함에서 작전에 참가한 우성윤 상병은 “18일 우리 부대원 동료 3명이 다쳤다는 소식에 무척 놀랐고 걱정됐다.”면서도 “침착하게 행동하자고 마음먹고 환자 치료에 힘썼다.”고 기록했다. 우 상병은 이어 “1차 작전보다 더 위험한 2차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 준비에 만전을 기했고 동이 트기전 새벽에 시작된 작전으로 긴장한 채 대기했다.”면서 “우리 대원들의 인명 피해가 없다는 사실에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그는 “구출작전 직후 최영함으로 후송된 부상자(석 선장)의 혈색이 너무 창백해 안 좋아 보였는데, 다행히 의식도 있었고 미국 해군 헬기에 태워 보내고 나서야 ‘아,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작전이 성공하고 나서 안도와 함께 청해부대원들이 느꼈던 자부심도 수기에 담겨 있다. 링스(LYNX)헬기 조종을 맡은 항공대장 강태열 소령은 “1차 교전 중 부상당한 전우를 후송하면서 ‘해적들이 절대 소말리아 땅을 밟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나눴고, 이를 지킬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공격팀 김 중사도 “삼호주얼리호가 안정화되고 나서 그때서야 선원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우리 대원들의 손을 꼭 붙잡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면서 “그때 왠지 모르게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군의 존재 이유, 우리 UDT 대원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국민을 보호하는 강한 국가, 내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적었다. 병기 담당이었던 신명기 중사도 “작전이 끝나고 우리는 선원 전원을 구했으며, 우리 부대원들은 사상자가 전혀 없었다.”면서 “말이 필요없는 ‘완벽한 작전’이다. 청해부대 6진 최영함이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구출한 작전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해적들은 우리 함정을 향해 응사하지 못했고 이는 해적들이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또 다른 ‘일등공신’ 손재호 1등 기관사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에 이어 손재호(53) 기관사도 구출 작전 성공의 일등공신이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삼호주얼리호의 1등 기관사 손씨가 작전 당시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목숨을 걸고 청해부대 작전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군의 한 소식통은 24일 “청해부대 특수전여단(UDT) 대원들이 삼호주얼리호에 처음 진입하자 손재호 기관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기관실로 달려가 엔진을 정지시켰다.”며 “이 덕분에 납치된 선박이 정선하면서 작전 성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손씨는 지난 21일 새벽 4시 58분(현지시간)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이 시작되자 선교(船橋·배의 상갑판에 있는 선루나 갑판실 위로 한층 높게 있는 구조물)에서 다른 선원들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링스헬기의 K6기관총 등의 위협·엄호 사격이 계속되던 오전 6시 9분쯤 15명의 UDT 작전팀 가운데 2번팀이 삼호주얼리호 선교로 처음 승선, “모두 엎드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해적들과 총격전을 벌였다. UDT와 해적 간의 총격전으로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손씨는 목숨을 걸고 기관실로 내달렸다. 그는 청해부대의 구출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배를 멈춰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관실로 향한 것이다. 당시 기관실에는 선원들이 엔진을 고의로 정지시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해적 3~4명이 지키고 있었다고 군 소식통은 전했다. 기관실에 잠입한 손씨는 총탄 소리에 해적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 엔진 스위치를 내렸고, 삼호주얼리호는 멈춰 섰다. 배가 멈추자 링스헬기의 저격수들은 고정된 표적을 저격할 수 있었고 선내로 진입한 UDT 대원들도 선박이 기동할 때 우려됐던 흔들림 없이 안전한 작전을 펼칠 수 있어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해양과학고를 나온 손씨는 동문회에서 ‘기관과’ 모임을 주도하는 등 의협심이 강한 인물이라고 가족들은 전했다. 그는 해상 생활 후 그간 육상 관리 업무를 하다 다시 배를 탄 지 1년 6개월 정도 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해적 증원세력 미사일까지 있었다”

    “해적 증원세력은 미사일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열린 ‘아덴만 여명 작전’ 결과 보고 간담회에 출석한 합동참모본부 이성호(육군 중장) 군사지원본부장은 이렇게 말하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군에 따르면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의 증원세력은 다른 지역에서 납치한 파나마 국적 7만t급 대형 선박을 몰고오던 해적 9~10명쯤이다. 이들은 방패막이용인 인질 24명을 싣고 미사일 등 중화기로 무장까지 하고 있었다. 이 중장은 “해적 증원선박과 삼호주얼리호가 22일쯤 상봉할 예정이었다. 증원세력이 오기 전에 결판 내야 했다.”고 덧붙였다. 군은 이와 함께 청해부대가 작전 당시 전파교란(재밍·jamming)을 통해 레이더와 해적들의 무선통신을 마비시킨 사실도 새롭게 밝혔다. 여야 의원들은 군의 이번 작전 성공을 한목소리로 격려했다. 특히 국방장관 출신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김관진 국방장관이 합참의장이던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샘물교회 인원 23명이 인질로 잡혔을 때 군이 3개월동안 치밀하게 (타격 및 구출작전을) 준비했는데 최종 통수권자의 승인을 못 받아 돈으로 해결한 사례가 있었다.”면서 “이번 작전을 결심한 합참과 국방부,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에 온 국민이 환호를 보낸다.”고 비교했다. 김 의원은 또 “생포한 소말리아 해적들을 국내로 이송해서 금미305호 석방 협상에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야당 의원들도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상세한 작전 경과 보고 등과 관련, ‘보안 누설’을 우려하며 군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은 “(국방부와 합참이)작전과 훈련 준비 상태 등을 공공연히 알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이래서야 작전을 수행한 UDT 대원들이 제대해 사방팔방 떠들어도 다룰 죄목이 없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도 “자칫 해적들에게 우리 대응방법과 전술을 교육시키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하고 먼저 생각한 것이 또 다른 인질사건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였다.”면서 “더 이상 (관련)자료가 (언론 등에)안 나가도록 하는 등 작전 보안에 대해 최대한 유의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북한 위협에 자만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軍 작전 앞서 부산항서 똑같은 선박 찾아 수차례 ‘실전연습’

    軍 작전 앞서 부산항서 똑같은 선박 찾아 수차례 ‘실전연습’

    “이번 작전의 완벽한 성공 뒤엔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다.” 군 고위 관계자는 23일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은 청해부대 외에도 민·군 협동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군 특수전여단(UDT) 수중폭파팀 대원 등으로 구성된 최영함의 검문검색대는 삼호주얼리호가 피랍되자마자 구출작전을 위한 연구에 돌입했다. 작전은 속도가 생명인 만큼 1만t이 넘는 삼호주얼리호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수백번의 훈련으로 대테러 작전이 몸에 배어 있지만 선박 구조가 복잡해 작전 동선이 명확하게 준비되지 않을 경우, 작전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작전을 지휘한 합동참모본부, 해군 작전사령부와 최영함 지휘부는 선박 내부 구조를 알아낼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뜻밖의 정보가 입수됐다. 삼호주얼리호와 똑같은 선체를 가진 선박이 부산항에 있다는 정보였다. 해군은 즉시 UDT 단장과 전문가들을 부산항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배 선체를 면밀히 분석한 뒤 관련 영상자료를 만들어 최영함으로 전송했다. 덕분에 현지 요원들이 배 안을 손금 보듯 인지한 상태에서 작전이 시작됐다. 합참은 지난 18일 1차 진입작전 때 해적들과의 교전으로 안병주 소령과 김원인 상사, 강준 하사가 부상당하자 다음 날 국내에 있던 UDT 대원 2명을 현지로 급파했다. 최영함에서 특수전을 수행할 수 있는 대원은 모두 30명이다. 이들은 10명씩 3개조로 구성되는데 팀마다 담당한 임무가 달라 부상으로 손실된 3명은 큰 공백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급파된 2명의 대원들은 20일 오만 무스카트항에 도착했지만 수천㎞나 떨어진 최영함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검문검색팀은 9명씩 3개팀으로 재구성해 작전에 돌입했다. 이번 작전이 끝난 뒤 부상이 경미한 강 하사는 다시 최영함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해 다시 검문검색대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며, 급파된 UDT 대원 2명도 안 소령과 김 상사의 자리를 채울 예정이다. 석해균 선장의 빛나는 기지는 연일 화제다. 18일 잠시 삼호주얼리호가 정선했던 이유도 석 선장이 기관장과 함께 엔진 윤활유 등에 물을 타 기관이 정지하도록 했기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하지만 석 선장은 작전 당시 총상에 골절상까지 입고 만신창이 상태로 구출됐다. 함께 구출된 갑판장은 “해적들이 우리 군의 진입 작전이 시작되자 흥분한 상태에서 석 선장을 찾아 총격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해적 가운데 두목으로 보이는 과격파가 모포를 덮고 숨어 있던 선원들을 일일이 확인해 석 선장을 찾아낸 뒤 4발의 총격을 가했다고 갑판장이 진술했다.”고 전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삼호주얼리호 운명은…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전격 구조된 삼호주얼리호가 다시 정상 운항에 나설 수 있을까.’ 1만 1500t급 화학물질 운반선 삼호주얼리호가 해군 최영함(4500t급·KDXⅡ)의 해군 특수전여단(UDT) 대원들에 의해 회수됐지만 이 과정에서 워낙 격렬한 총격전이 발생해 선체가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현지에서 전송된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삼호주얼리호의 함교와 조타실 등에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모습을 지켜본 국민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하다. 당시 현장의 상공을 선회하던 해군 링스 헬기에서는 구경 12.7㎜의 중기관총이 연방 불을 뿜었으며, 선체에 오르는 UDT 대원들을 엄호했다. 고도로 훈련된 UDT 대원들은 해적들과 마주했을 때 3발 안팎으로 정밀사격을 했지만, 해적들이 AK47 소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선체 내부에도 총알 구멍이 무수하게 생겼다. 그러나 다행히 내부의 엔진을 포함한 동력기관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삼호주얼리호는 23일 최영함 등의 호위를 받으며 오만 북쪽의 무스카트항으로 시속 12㎞ 속도로 이동 중이다. 삼호주얼리호가 27일쯤 무스카트항에 도착하면 지난 22일 국내 본사에서 급파된 선박수리 전문가들과 현지 기술진으로부터 정밀검사를 받게 된다. 아울러 부서진 통신설비도 수리 또는 교체하게 된다. 삼호해운은 정밀검사를 통해 운항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정비와 긴급 보수를 거친 뒤 새 인력을 태우고 삼호주얼리호를 당초 목적지였던 스리랑카로 보낼 예정이다. 삼호주얼리호는 이후 국내로 귀항하면 다시 한번 정밀감사를 받는다. 여기서 ‘폐선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으면 ‘선체훼손보험금’을 통해 배를 말끔하게 복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박 관련 전문가는 “국내의 조선 및 선체복구 기술이 뛰어나 총상을 말끔하게 없애는 것은 별로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면서 “아울러 해적들은 피랍에 실패한 배에는 악령이 있다고 믿어 다시는 건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삼호주얼리호 선장 기지 빛났다

    이번 구출작전의 숨은 공로자는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58) 선장이다. 청해부대의 뛰어난 작전 능력에 석 선장의 빛나는 기지가 더해져 ‘완전 작전’이 만들어졌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지난 18일 비공개 브리핑을 통해 “삼호주얼리호가 확인할 수 없는 원인으로 정선해 있어 구출 작전을 시도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선 원인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미 군은 석 선장이 기지를 발휘해 삼호주얼리호를 일시 정지시켜 놓았던 점을 확인했다. 공해상에 머무르는 시간을 연장시켜 청해부대가 작전에 돌입할 수 있는 시기를 여유 있게 저울질할 수 있도록 했다. ☞[포토] 긴박했던 해적 소탕…‘아덴만 여명작전’ 첫 차례 구출작전에서 실패한 청해부대가 발길을 돌리자 삼호주얼리호가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말리아 연안과는 반대 방향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방향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하루 만에 소말리아 연안에서 무려 185㎞나 멀어졌다. 석 선장이 대형선박의 운항법을 알지 못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눈을 피해 정확한 방향으로 갈 수 없도록 선박을 조정해 놓았던 것. 덕분에 청해부대는 또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계속 따라가며 방송과 함께 경고사격을 해 해적들을 긴장시켰다. 심리전을 실시하는 한편 적절한 작전 시기 조율도 할 수 있었다. 석 선장은 해운사와 통화하며 우리 군이 작전할 수 있도록 내부 상황도 알려 주었다. 21일 작전 종료 후 이성호 합참 군사지원본부장도 브리핑에서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과를 설명하면서 석 선장의 기지를 높이 샀다. 이 본부장은 “선장이 최초 피랍 이후 해적들이 빨리 소말리아 연안으로 가길 바랐지만 지그재그로 기동하고 시간을 늦춰 가며 첩보를 제공했다.”면서 “작전 진행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석 선장은 구출 작전 과정에서 복부 총상을 당했다. 해군 특수전여단(UDT) 요원들이 진입한 이후 해적들이 선장을 향해 쏜 총에 배를 맞았다. 하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석 선장은 구출 직후 미군 헬기로 인근 국가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구축함 등 지원…美·오만 큰 도움”

    “구축함 등 지원…美·오만 큰 도움”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육군 중장)은 21일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 속에 특수전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객실을 차례로 제압하고, 피랍 선원 모두의 안전을 확보했다.”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완벽한 작전’임을 밝혔다. 다음은 이 본부장과의 일문일답. →왜 오늘 작전을 실시했나. -작전 전 몇 가지 상황이 있었고, 합참에서 정식 구출 작전 명령을 내리더라도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소말리아항에서 적의 모선이 마중 나온다는 첩보를 받았다. 인질범이 합세하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어 오늘로 정했다. →한·미 연합 해군 전력은 어떤 도움을 줬나. -한·미 해군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합참의장과 사령관이 몇 차례 상의했고 5함대 사령관으로부터 직접 지원 연락을 받았다. 미 구축함의 지원으로 총격을 당한 선장이 헬기로 후송됐고, 필요한 첩보, P3C(초계기) 정찰기 등 항공기 지원도 받았다. →다른 나라의 도움은 없었나. -오만 경비정과 함께 연합작전을 수행했다. →구출작전에 직접 투입된 전력은. -최영함이 적을 속이기 위해 근접 기동과 위협사격을 했고, 링스헬기가 옹호 사격 지원을 했다. UDT 작전팀은 섬광탄·최루탄 등 필요한 장비를 지원했다. →언제 대통령 승인을 받았나. -어제(20일) 오후 5시 12분에 안보장관회의 후에 정식 승인을 받았다. →18일 1차 작전 때는 승인이 없었나. -1차 작전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적을 추적하면서 벌어진 것이기에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의해 작전이 진행됐으며 합참의장이 승인했다. →작전에 5시간이 걸린 이유는 -1만 1000t 규모의 화학운반선에 사무실·창고 등 격실이 57개가 있어 하나씩 검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적의 주력을 격퇴하거나 선원의 안전을 확보하는 건 3시간 만에 다 종료됐다. →언론의 비보도요청(엠바고)이 잘 지켜졌다고 보나. -구출작전에 보안을 지켜준 국방부 기자단과 언론사에 감사드린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25개 언론사는 합참이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을 계획하던 17일부터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공식 발표가 있었던 21일까지 닷새 동안 군이 구출작전을 한다는 뉴스를 보도하지 않아 작전 성공에 기여했다. 한편 국방부는 그동안 비보도를 전제로 모두 6차례에 걸쳐 구출 작전의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UDT 30명 섬광탄·최루가스 쏘며 승선 3시간만에 제압

    UDT 30명 섬광탄·최루가스 쏘며 승선 3시간만에 제압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은 현지시간 오전 4시 58분(한국시간 오전 9시 58분) 여명이 밝아 오기 직전 어둠을 틈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아덴만 여명’이라는 작전명이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특히 이번 작전은 해군 특수전여단(UDT)의 기습 해상 침투, 최영함(4500t급·KDX-Ⅱ)의 위협 함포 사격, 링스헬기의 공중 엄호 사격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입체 전술이 빛났다. 당초 오전 4시 50분 정각에 개시하려던 작전이 현지 기상여건 등 때문에 8분 지연됐지만, 우리 군은 작전 개시 명령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첫 공격은 최영함의 5인치 함포에서부터 시작됐다. 뒤이어 링스헬기가 K6 기관총 수백 발을 삼호주얼리호의 선교(상갑판) 등으로 발사했다. UDT 작전팀의 안전한 승선을 위해 선교에 있던 해적들을 선실 내로 몰아넣기 위한 교란작전이 그대로 먹혀들었다. 특히 링스헬기에 탑승한 저격수가 저격용 소총으로 선교에 있던 해적 1명을 조준 사살하자 해적 5~6명이 혼비백산하며 선실로 내달렸다. 링스헬기에서는 우리말로 “지금 진입 작전이 시작됐다. 선원들은 전부 바닥에 엎드려라.”라고 경고을 방송했다. 우리 선원과 적을 구분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틈을 타 삼호주얼리호 우현으로 기동해 있던 특수전 요원 30여명이 나눠 탄 고속단정 3척 가운데 2척이 먼저 접안해 승선을 감행했다. 개인화기와 최루가스탄, 소음탄 등을 완비한 작전팀은 선교를 점령하고 뒤이어 선교 하단으로 진입해 격실과 기관실 등 57개 격실을 차례로 장악해 나갔다. 기관실의 복잡한 기계 틈새나 화물 사이로 숨어 든 해적들이 있는지, 해적들이 소탕작전에 대비해 설치해둔 폭발물이 있는지를 검색했다. 사전에 부여된 팀별 임무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적 제압에 나선 작전팀은 AK 소총과 기관총, RPG7으로 무장한 해적 13명 전원을 3시간 만에 제압했다. 8명을 사살하고 5명은 체포했다. 작전 개시 4시간 58분 만인 오전 9시 56분 모든 작전이 종료됐다. 작전 종료 후 확인 결과 해적들이 소지하고 있던 AK 소총은 모두 3정이었다. 앞선 18일 1차 작전 때 우리 군이 노획한 3정을 포함하면 모두 6정이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1차 작전 때 소총 3정을 미리 빼앗아 두지 못했다면 이번 작전 때 우리 측이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구출 과정에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복부에 총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면 장병과 선원 중 사상자는 없었다. 석 선장은 응급치료를 받고 청해부대 군의관과 함께 미군 지원 헬기를 이용해 인근 국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은 청해부대 의료진에게 건강검진을 받았고 모두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작전 성공에는 청해부대뿐 아니라 미군 등 연합군의 지원도 한몫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작전 단행에 단초가 됐던 ‘소말리아항에서 적의 모선이 합세하기 위해 마중나오고 있다.’는 첩보도 연합군을 통해 입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접국인 오만도 연합 해군사령부(CTF151) 소속 경비정과 후송 헬기를 지원하며 청해부대의 작전을 도왔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18일 1차 교전 → 3일간 끈질긴 추격 ‘아덴만 여명’ 완료

    18일 1차 교전 → 3일간 끈질긴 추격 ‘아덴만 여명’ 완료

    지난 15일 낮 12시 40분(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출발, 스리랑카로 향하던 삼호해운 소속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오만과 인도 사이의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해 입구에서다. 오후 피랍 소식을 확인한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외교통상부·국방부 등 관련 부처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정부 인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불과 두달 전 106억원의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삼호드림호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소말리아 해적이 한국을 ‘봉’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밤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파견돼 있던 청해부대 최영함이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16일 0시 30분 에티오피아 지부티항에서 군수물자 등을 싣기 위해 정박 중이던 최영함은 긴급 출동해 18일 오전 4시 피랍 해역인 아라비아해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정부는 해적 등 테러 세력과의 협상이 없다는 방침을 세운 뒤였다. 이 무렵 국내에 있던 해군 특수전여단(UDT) 수중폭파팀 정예요원들이 삼호주얼리호와 똑같은 선체를 갖고 있는 선박을 찾아내 내부를 샅샅이 확인했다. 최영함의 동료들이 구출작전을 개시한 뒤 머뭇거림 없이 해적을 진압할 수 있도록 움직이는 동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현장에선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8일 오후 8시 최영함이 삼호주얼리호 인근 2해리(약 3.6㎞) 지점에서 작전 시기를 저울질하던 중 몽골 선박이 나타났다. 삼호주얼리호에서 갑자기 작은 보트가 내려졌다. 5해리 떨어진 몽골 선박을 또다시 피랍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10여명의 해적들이 양측으로 분리된 틈을 타 링스헬기와 고속단정을 출동시켰다. 몽골 선박을 위기에서 구조하고 삼호주얼리호도 구출하는 작전이다. 링스헬기는 작은 보트에 탑승한 해적에게 경고 및 위협 사격을 가했고, 총격을 받은 해적 수명은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 이때 UDT 대원들이 탑승한 고속단정은 삼호주얼리호로 근접해 승선하려 했지만 배에 남아 있던 해적들의 총격을 받고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장병 3명이 총상과 파편상을 입고 오만의 한 대학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다. 최영함과 삼호주얼리호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하루 뒤인 19일 오전 3시 25분에는 삼호주얼리호로부터 13㎞ 떨어진 지점에서 미상의 선박이 접근해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해적 모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던 청해부대는 UDT 팀을 보내 검색을 실시하고 승선자들을 최영함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다음날 이란 국적의 선박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훈방 조치했다. 이날 오전 10시 20분 연합 해군사령부(CTF151)에 속한 오만 함정 1척이 작전에 참여했다. 청해부대는 삼호주얼리호가 소말리아 영해로 들어가기 전에 작전을 끝내기 위해 추격하기 시작했다. 최영함은 20일에서 21일을 넘어 100해리 이상을 추적하면서 투항권유와 경고사격을 지속적으로 했다. 해적들을 지치게 만들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21일 오전 9시 58분(현지시간 오전 4시 58분) 구출 작전에 돌입했다.고속단정으로 삼호주얼리호에 진입한 특수전 요원들은 총격전 끝에 오후 3시쯤 13명의 해적 가운데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한국 건드리면 가만 안둔다… ‘아덴만의 소탕’

    한국 건드리면 가만 안둔다… ‘아덴만의 소탕’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삼호해운 소속 화학물질 운반선인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 전원이 피랍 엿새 만인 21일 해군 특수전여단(UDT)에 의해 무사히 구출됐다. 삼호주얼리호에 투입된 UDT 대원들은 해적 13명과 총격전을 벌여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우리 부대원들 중 사상자는 없었다. ☞[포토] 긴박했던 해적 소탕…‘아덴만 여명작전’ 합동참모본부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에 대한 구출작전(작전명 ‘아덴만 여명작전’)을 감행해 해적을 소탕하고 선박을 구출했다.”고 발표했다. 청해부대 구축함인 최영함(4500t급)은 이날 오전 9시58분(한국시간·현지시간 오전 4시58분) 작전에 들어갔다. 고속단정을 이용해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에 투입된 UDT 대원들은 총격전 끝에 오후 2시 56분쯤 해적을 제압하고 선박을 장악했다. 진압 과정에서 한국인 8명과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인 2명 등 선원 21명은 안전하게 구출됐지만, 석해균 선장이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석 선장은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청해부대 군의관이 동행한 가운데 미군 헬기로 인근 국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합참은 “군은 아덴만 해역의 여명 시간에 맞춰 작전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면서 “오전 9시 58분부터 오후 2시 56분까지 4시간 58분 동안 작전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작전은 최영함의 위협 함포사격과 링스헬기의 엄호사격하에 UDT 작전팀이 은밀히 승선하면서 시작됐다. UDT 작전팀은 선교(상갑판)와 기관실, 50여개의 격실을 차례로 장악해 AK 소총과 기관총, RPG7으로 무장한 해적 13명 전원을 제압하고 피랍된 선원의 안전을 확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원 구출과 관련, “우리 군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다.”면서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오후 춘추관에서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 관련 대통령 담화’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저는 어제(20일) 오후 5시 12분 국방부장관에게 인질 구출 작전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이 작전을 위해 협력해준 우방국에도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작전에는 미 해군 구축함 및 헬기와 오만의 경비정 등이 측면지원을 해 줬다고 합참은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면서 “앞으로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청해부대는 지난 18일 오후 7시 51분쯤 몽골 선박을 추가 납치하기 위해 삼호주얼리호에서 하선하던 해적의 소형 보트에 총격을 가해 탑승한 해적들을 바다에 빠뜨렸다. 이 과정에서 UDT 작전팀 소령 1명과 상사 1명, 하사 1명 등 3명이 해적의 총격으로 부상해 오만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1명은 치료 중이고 2명은 치료를 끝내고 호텔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한편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는 구출작전이 끝난 뒤 오만 살랄라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23일쯤 도착할 예정이다. 김성수·오이석기자 sskim@seoul.co.kr
  • 몸값 대신 응징…구출 시기 판단이 작전의 승패 갈랐다

    몸값 대신 응징…구출 시기 판단이 작전의 승패 갈랐다

    “이번 작전은 시기 선택의 승리였다.” 해적들로부터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에 대해 군 고위 관계자는 “청해부대가 수일 동안 끈질긴 추적과 감시를 통해 잡아낸 두 차례의 작전시기가 작전 성공의 열쇠”라고 평가했다. 공해상에서 소말리아 영해를 지나 해적소굴까지 도착하는 기간이 피랍 후 일주일 안팎이란 시간밖에 없었고 두 번의 작전이 모두 결정적인 성과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작전의 시기가 현장지휘관의 판단에 맡겨져 있던 점을 고려할 때 최영함의 함장 조영주 대령과 해군 특수전여단(UDT) 소속 대원들의 작전시기 판단이 이번 작전의 승패를 갈랐다. 첫 번째 시기 선택은 18일 해적들이 몽골 선박을 추가로 납치하기 위해 자선을 내려 이동하던 때다. 해적들이 몽골 선박에 접근하던 시기 링스헬기를 출동시켜 경고방송과 함께 사격으로 해적들이 바다에 빠져 실종된 데다 자선 2척 가운데 1척을 확보하고 AK소총 3정도 노획했다. 당시 고속단정으로 삼호주얼리호로 진입을 시도하던 UDT 대원 3명이 총상 등을 입어 오만의 병원으로 후송됐다. 우리 장병 3명이 부상당하고 인질을 구출하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해적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된 셈이다. 두 번째 시기 선택은 바로 21일 구출작전이다. 1차 작전 이후 끈질기게 심리전을 진행해 해적들이 지쳐 있던 상황인 데다 해적 모선이 접근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해적 모선은 600t급으로 군 정보에 따르면 미사일 장착이 가능하고 각종 무기와 다수의 해적이 탑승해 있어 인질을 옮겨 태울 경우 사실상 구출작전이 불가능하다. 또 작전명처럼 날이 밝기 직전에 작전을 시작한 점도 이번 작전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인질과 해적들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의 구출작전은 해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인질 21명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해적을 사살하며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했다는 점에서 군사적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작전이란 평가다. 군 관계자는 “청해부대의 성공적인 작전으로 해외 파병이 우리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란 점을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본때를 보여 준 것을 시작으로 해적들이 우리 국기를 단 선박 근처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앞으로 소말리아 해적의 납치 시도에 대비해 해적 출몰 시 배 안에 몸을 은닉할 수 있는 ‘선원 피난처’ 설치, 위험해역 항해 시 민간 보안요원의 탑승을 의무화하는 방안들을 추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선원 피난처는 선박 안에 설치된 선원들의 특수 신변보호구역으로 기본적인 식량과 식수, 통신수단을 갖추고 있어 해적들에게 선박을 점령당하더라도 몸을 숨긴 뒤 하루이틀 버티며 우리 해군의 구출작전을 기다릴 수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방안이 담긴 ‘국제항해 선박 및 항만시설의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정부는 소말리아 해적퇴치연락그룹(CGPCS) 일원으로서 역할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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