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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관운(官運)/곽태헌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차관급이지만 영향력은 웬만한 장관급 이상인 국세청장에 누가 낙점될지가 관심사였다. 국세청 출신 2명이 1, 2순위에 올랐고,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 출신 2명이 3, 4순위에 올랐다. 국세청 출신들이 너무 치열하게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자, 청와대는 국세청 출신 모두를 제외시키고 외부 출신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구·경북(TK) 출신이 3순위였지만, 4순위였던 호남 출신 A씨가 국세청장이 됐다고 한다. 국세청장을 발표하기 직전 역시 영향력이 막강한 자리인 경찰청장에 TK 출신이 낙점되면서, 국세청장은 호남 출신 몫으로 정리됐다는 게 정설로 돼 있다. 1년 뒤인 2004년 3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에는 호남 출신인 B씨가 임명됐다. 예산실장은 장관급 1급이라는 말을 듣는 막강한 자리다. 당시 기획예산처 장·차관 모두 영남 출신이었다. TK 출신 예산전문가가 있었지만, 총선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실장까지 영남 출신이 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이 있었다고 한다. A씨, B씨 모두 그뒤 장관도 지냈다. 둘 다 금배지를 달았고, 4·11 총선에서 재선됐다. 운이 좋은 관료는 대통령과 비슷한 지역 출신이라 출세하기도 하고, 대통령과 출신지역이 다를 때에는 지역 안배 차원에서 승진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 시절에는 사법시험 동기(17회)들이 요직에 발탁됐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임 전 실장의 행정고시 동기(24회)들이 출세했다. 임 전 실장이 동기들을 봐줬기 때문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지나친 운명론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옛말에 관운(官運)이라는 게 있다. 사주에 관운이 있는지를 확인한 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를 보는 게 좋다는 말까지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소위 ‘영포(영일·포항) 라인’이 잘나갔다. 경찰의 대표주자는 이강덕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다. 그는 청와대 공직기강팀장, 치안비서관, 부산·경기지방경찰청장을 차례로 지내고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발탁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영포라인이라는 게 걸림돌이 됐다. 그제 김기용 경찰청 차장이 이강덕 청장을 제치고 경찰청장에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9급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으로 근무하며 방송통신대를 졸업했고, 어렵다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운도 비켜가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헛방’ 출구조사/곽태헌 논설위원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의 원조 격은 미국이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誌)는 1916년부터 전화와 자동차 등록명부를 이용, 많은 모의투표 용지를 보낸 뒤 회수해 결과를 예측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1936년 대통령선거 때 결과와는 정반대의 예측 결과를 발표해 망신을 샀다. 많은 표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과 소득·연령·성별 등에 따른 비례할당법에 따른 정교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선거 전에 하는 여론조사보다 정확도가 높은 게 출구조사(Exit Poll)다. 출구조사는 투표소에서 투표를 막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를 상대로 어느 후보를 선택하였는지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유권자가 실제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출구조사의 정확도는 여론조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출구조사가 보장돼 있다. 1993년엔 출구조사만을 전담하는 투표자뉴스서비스(VNS·Voter News Service)라는 컨소시엄이 설립됐다. 여기에는 ABC, NBC, CBS, CNN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00년 대통령선거 때 당시 부통령이던 앨 고어의 당선을 성급하게 잘못 예측해 VNS와 전 회원사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정확한 선거 예측을 위해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1996년 15대 총선 때는 선거법상 투표소로부터 500m 내에서는 투표자를 상대로 한 출구조사를 할 수 없었으나 1999년 말 선거법 개정에 따라 그 범위가 300m로 완화됐다. 2004년 3월 선거법 개정으로 100m로 더 완화됐다. 출구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15대 총선 때에는 당시 여당의 의석수를 175석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155석에 불과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제1당과 제2당을 잘못 예측하는 ‘굴욕’을 당했다. 2008년 18대 총선의 출구조사에도 직접 출구조사는 40%였고, 전화예측조사가 60%였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그제 실시된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70억원이나 들여 100% 직접 출구조사로 정확도를 높이려고 의욕을 보였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방송 3사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의석수를 각각 20석 정도의 여유치를 둔 예상치를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정확히 맞히지 못했다. 참고는커녕 괜한 혼란만 주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출구조사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라면 출구조사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부메랑/곽태헌 논설위원

    되돌아오는 부메랑(boomerang)은 편평하고 활 모양에 가까운 나무로 된 투척 기구를 말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부메랑은 폴란드 남부의 카르파티아 산맥의 동굴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1만 80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를 던지는 관습은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북아프리카의 암석화에도 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들이 새를 사냥할 때 곡선형의 특수한 막대기를 사용했다. 나무를 던져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은 이집트에서 시작돼 북부 아프리카와 대서양으로 퍼져 나갔다는 설이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과 인도에서도 부메랑을 사용했다. 보통 부메랑 하면 호주 원주민들을 떠올리게 된다. 호주 원주민들은 새나 작은 짐승의 사냥, 전투·놀이 등에 부메랑을 사용했다. 근래 호주 원주민들이 사용한 부메랑은 길이가 30~80㎝ 정도이며, 양 끝이 70∼120도 벌어진 나뭇조각이다. 단면은 밑이 편평하고 위쪽은 불룩한 반원형이다. 표적물에 명중되지 않으면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있다. 가볍고 되돌아오는 것은 사냥용이며, 무겁고 되돌아오지 않는 것은 전투용 무기라고 한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하거나 자본을 투자해 생산한 물품이 현지의 수요를 웃돌아 도리어 선진국으로 역수출돼 해당 산업과 경쟁하는 것을 경제용어로 부메랑 효과라고 한다. 국내 대표적인 팟캐스트(pod cast)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진행자였던 민주통합당 김용민(서울 노원갑) 후보가 부메랑을 맞았다. 지난해 4월 나꼼수 멤버로 합류한 그는 거침없는 말로 유명해졌고, 이에 힘입어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단일 후보가 됐다. 하지만 2004~2005년 인터넷 방송인 라디오 21 ‘김구라·한이의 플러스 18’ 코너에서 했던 성적 막말과 폭력적인 말이 독이 돼 돌아왔다. 김용민 후보의 과거 영상과 말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그와 가까운 방송인 김구라씨 때문이라고 한다. 노원갑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노근 후보의 참모는 김구라씨가 김용민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동영상을 우연히 보고, 인터넷에서 김용민 후보의 과거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김구라씨야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김용민 후보와 거친 말을 주고받았던 게 알려진 김구라씨에게도 혹시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김용민 후보의 막말은 며칠 남지 않은 총선의 중요 변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우산론/곽태헌 논설위원

    대기업 임원 A씨를 만났다. 얼마 전 A씨 위에는 새로운 임원 자리가 생겼다. “시어머니가 더 생겼는데 어떠냐.”고 했더니 “우산이 생겨서 좋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새로 온 상사에게 자문도 구할 수 있고, 경험도 공유할 수 있으니 좋다는 얘기였다. 기댈 수 있는 상사가 생겼으니 괜찮다는 게 그의 요지.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었다. 기분이 다소 상했을 줄 알고 물어봤는데 말뿐이 아니라 표정도 그게 아니었다. 그런 질문을 한 게 멋쩍었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는 직장 상사를 우산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이다. 가정에서의 시어머니, 직장에서의 상사를 어떻게 보려고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잔소리를 한다고 부정적으로 보면 나쁜 것만 보일 것이고, 과거의 경험과 삶의 지혜를 알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보면 좋은 것이 보일 터.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이 훨씬 좋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환율과 국민소득/곽태헌 논설위원

    요즘처럼 사실상 국경이 없는 시대에는 경제 전반에 환율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이 원화가치를 낮춰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것은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표시되는 수출가격을 낮출 수 있어 가격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보통 자국의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수출경쟁력(가격경쟁력)은 생기지만 수입물가는 오르는 탓에 특히 서민들의 부담은 심해질 수 있다. 환율은 수출, 물가는 물론 소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별 소득은 미국 달러화로 환산돼 발표되기 때문에 달러와 비교한 자국 화폐 가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1995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만 76달러로 전년보다 18.4%나 껑충 뛰었다. 경제성장률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9.0%로 높았던 게 ‘1만 달러’ 시대를 연 주요인이지만, 환율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해 달러와 비교한 원화가치가 전년보다 4.2% 뛰면서 원화로 계산한 명목 GDP를 달러로 환산한 금액도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1984년 1인당 소득 ‘1만 달러’ 고지에 오른 뒤 세계에서 가장 짧은 4년 만에 ‘2만 달러’ 고지에 오른 것도 환율 덕이 컸다. 1984년에는 달러당 237엔이었으나 1988년에는 128엔으로 엔화 가치가 뛰었다. 환율 탓에 1인당 소득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1980년 1인당 GNP는 1만 2390달러였지만 81년에는 1만 783달러로 뒷걸음쳤다. 1981년의 경제성장률이 1.1%였지만 프랑스 프랑화 가치가 전년보다 달러에 비해 22.2% 떨어진 게 주요인이었다. 84년까지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독일(당시 서독)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1983년 1인당 GNP는 1만 692달러였지만 84년에는 1만 136달러로 후퇴했다. 84년의 경제성장률은 3.2%로 괜찮았지만 독일 마르크화 가치가 전년보다 달러에 비해 10.3%나 떨어진 탓이다. 작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 2489달러로 전년보다 9.4% 늘어났다. 원화 가치가 전년보다 4.2% 올라 1인당 GNI는 역대 최고였지만 팍팍한 국민의 삶과는 관계없는 수치다. 환율의 마력에 따라 소득이 늘기도, 줄기도 하기에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지만 지난해 1인당 GNI 순위가 세계 44위라는 것을 정치인, 관료, 국민은 기억해야 한다. 1인당 소득에서 보면 선진국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부터 퍼주기로 선심 쓰고, 공짜에 맛들이고,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전경련/곽태헌 논설위원

    보통 경제 4단체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상의), 한국무역협회(무협), 중소기업중앙회가 꼽힌다. 여기다 노사문제를 전담하는 사용자들의 대표적인 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를 포함하면 경제 5단체다. 전경련은 5·16 직후인 1961년 8월 16일 설립됐다. 역사로만 보면 상의, 무협보다 짧지만 그동안 ‘재계의 본산’ ‘재계의 맏형’ 격으로 여겨져 왔다. 민간경제단체인 전경련에는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어제 현재 전경련의 대기업 회원사(일반회원)는 432개.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는 등 2000년 전까지는 주로 5대그룹 회장이 돌아가면서 전경련 회장을 지냈다.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이 정부에 할 말도 한 게 전경련의 위상을 높이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전경련은 외자 유치와 기간산업 건설, 중화학공업 육성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한국의 경제 개발 역사와 같이 성장해 왔다. 한국이 무역규모로만 볼 때 세계 10위권 정도로 성장한 데에는 전경련, 대기업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 전경련은 정경유착의 상징처럼 돼 왔고, 선거 때면 정치자금을 걷어 정치권에 건네 왔다. 국민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 권위주의 정부가 사라지고, 또 세상이 깨끗해지고 투명해지면서 이런 일은 없어졌지만 과거 전경련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민간부문이 커지면서, 재계가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정부와의 뒷거래를 통해 무엇을 챙길 수 있는 것도 점차 사라져 가면서 전경련의 역할, 전경련 회장의 매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아이러니다. 2000년 이후에는 5대그룹 회장 출신의 전경련 회장은 한명도 없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그제 “대기업이 경제정의와 법을 무시하고 기업철학마저 휴지통에 버리길 서슴지 않았다.”면서 “전경련은 다시 태어나거나 발전적 해체의 수순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동반성장이 전경련의 비협조로 제대로 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일 수도 있고 대통령선거를 노린 정치적 멘트일 수도 있지만 정 위원장의 말에 공감하는 국민은 많을 터. 전경련이 중소기업과 약자의 아픔을 계속 외면한다면 전경련을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더 거세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경련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지각/곽태헌 논설위원

    비행기를 탈 때에는 퍼스트클래스, 비즈니스, 이코노미 승객의 순이다. 요금을 많이 낸 퍼스트클래스, 비즈니스 승객들에게 여유 있게 좌석에 앉아 기다리도록 하는 항공사 측의 ‘배려’가 깔려 있다. 내릴 때에도 퍼스트클래스, 비즈니스, 이코노미의 순이다. 화물칸에 맡긴 짐도 퍼스트클래스 손님의 것이 먼저 나온다.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비즈니스 요금은 이코노미의 2배, 퍼스트클래스는 비즈니스의 2배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거나, 비행기 내의 좌석이나 서비스로 나오는 음식을 보면 돈의 위력을 알 수 있다. 퍼스트클래스에 예약한 VIP나 재력가 중에는 일부러 마지막에 타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간이 없고, 폼 잡기 좋아하는 VIP를 모시는 최고의 의전은 그 VIP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이륙하는 경우라는 말까지 있다. 주요 그룹의 회장을 지냈던 K씨는 비행기에 가장 늦게 오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K씨의 비서진은 출발 자체가 늦었음에도, 항공사 측에는 수도 없이 “길이 막혀 도착이 늦다.”는 해명을 해야 했다. K씨 때문에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이륙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지각으로 많은 승객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 소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설 때 가능한 한 교통통제를 최소화하도록 했다. 시민들의 불편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외국 순방을 하기 위해 서울공항을 갈 때에도 헬기를 타는 등 종전 대통령보다 헬기를 자주 이용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너무 많은 차들이 길게 늘어져 있으면 교통통제로 시민들이 불편할 수 있으니 최소화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 차의 앞뒤에 따라붙는 경호차도 그리 많지 않다. 권위주의 정부 때와 비교하면 VIP 등을 위한 교통통제는 많이 줄었지만 정상회담이나 주요 회의에 참석한 외빈에게는 손님 대접을 해야 한다. 이틀간의 일정으로 그제 끝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길이 막히는 일은 없었을 텐데도 ‘지각대장’이 됐다. 공식회의에 앞서 25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는 10분 늦게 청와대에 도착했고, 26일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이 길어지면서 업무 만찬에 늦었다. 27일 오전의 정상회의 세션에도 지각하면서 회의 시작이 10여분 늦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각 1위, 후진타오 주석이 지각 2위에 올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센 G2 정상들의 오만이라고 해야 하나.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서울광장] 이참에 국회의원 재·보선 없애자/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참에 국회의원 재·보선 없애자/곽태헌 논설위원

    4·11 총선에서 국회의원 300명이 쏟아진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처음으로 19대 국회에서 의원 300명 시대를 열게 됐다. 물론 좋은 기록이 아닌 부끄러운 기록이다. 18대 국회보다 의석은 단 한 석 늘어나는 것이지만 국민이 느끼는 심리적인 충격은 작지 않다. 경제가 좋지 않아 많은 국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선량(選良)이라는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은 희생하지 않고 오히려 의석수를 늘려 국민세금만 축내고 있다. 여야는 민간인으로 구성됐던 국회의장 산하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지난해 11월 제시한 선거구 조정안을 무시하고 동료 의원 봐주기를 위한 꼼수만 생각해 왔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곳이 많을 경우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에, 누더기 옷보다도 더 심하게 지역구를 조정하면서 통폐합을 최소화했다. 경기 용인과 충남 천안에서는 동(洞)을 옆 지역구로 떼다 붙이는 편법을 동원했다. 여야는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낸 아이디어로 포장하면서 인구 하한선에 미달하는 세종시를 예외적으로 독립선거구로 신설하기로 했다. 경남 남해·하동, 전남 담양·곡성·구례를 인근 지역과 통폐합했지만 경기 파주와 강원 원주를 분구(分區)했으니 결과적으로 한 석이 늘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사건건 싸우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의석 늘리는 데에는 우애 좋게 찰떡 같은 공조를 과시했다. 역시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었다. 국회의원 세비(歲費)를 줄이고 중의원 수도 80명 정도 줄이는 것을 추진하는 일본과는 정반대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처럼 양심도 없고, 뻔뻔한 정치인들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올해 국회의원 세비는 연간 1억 4000만원이다. 여기에 국회의원의 보좌진, 입법정책 개발비 등을 포함하면 1명의 국회의원 때문에 직접 들어가는 세금만 연간 10억원 가까이 된다. 19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이 한 명 늘면서 매년 이 정도의 세금은 18대 국회 때보다 더 들어가게 돼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일을 제대로 한다면,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면 세비도 아깝지 않고 국회의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멀쩡한 사람도 국회의원만 되면 이상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조직력이 좋은 약사들의 반발이 무서워 가정상비약을 슈퍼에서 판매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반대해 왔던 게 현 18대 국회의원들이다. 예금자 보호 제도를 뿌리째 허물어뜨리는 내용의 ‘부실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던 게 현 18대 국회의원들이다. 마땅히 통과시켜야 할 법안에는 팔짱을 끼고 통과시켜서는 안 될,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저축은행법은 통과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게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다. 일단 4·11 총선에서는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를 반대하는 국회의원들과 예금자 보호 제도를 흔들려고 하는 국회의원들을 떨어뜨려 국민이 무섭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더 나아가 국회의원 300명 시대를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이참에 국회의원 재·보선을 없애야 한다. 시장이나 군수 등 자치단체장들이 없으면 지방행정에 다소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대행체제든, 재·보선이든 해야겠지만 국회의원 몇십명 없다고 이 나라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회도 조용해지고, 몸싸움도 줄어드는 긍정적인 현상이 더 많을 것이다. 18대 국회 때 모두 21곳에서 국회의원 재·보선을 했다. 투표율이 40% 될까 말까 하는 재·보선을 위해 227억원을 사용했다. 한 곳당 10억원이 넘는 아까운 세금이 함량 미달 국회의원들을 다시 뽑기 위해 쓰였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다. 재·보선 비용으로 한 곳당 10억원씩 뿌리는 것보다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을 쓰는 게 훨씬 유익하고 시급한 일이다. 국회의원 없다고 아쉬워할 국민은 없다.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청첩장/곽태헌 논설위원

    요즘 청첩장이 많이 오는 것을 보면 봄은 봄인가 보다. 가족들을 위로해 줘야 할 상가에는 가능한 한 가지만, 결혼식장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고 지인에게 ‘봉투’를 전달하는 편이다. 휴일 선약이 있거나 일요일 근무하는 날이 겹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축하할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는 소극적인 생각도 결혼식장을 다소 멀리하게 된 요인이다. 결혼식장에는 가지 않더라도 청첩장에 쓰인 문구는 꼭 읽어 본다. 친지와 친구를 초대하는 문구를 보면서 요즘 젊은이들의 재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씩씩한 군인과 싹싹한 기자가 만났다.’는 후배의 청첩장 문구도 기억에 남는다. 어릴 때 옆집에도 살면서 친동생처럼 지냈던 고종사촌이 청첩장을 보내왔다.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딴 4행시를 통해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아끼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이 눈길을 끈다. 모든 부부들이 청첩장의 문구처럼 힘들고 어렵더라도 밝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지킨다면 이 세상은 보다 더 좋아질 터.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해양수산부/곽태헌 논설위원

    2008년 1월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2원, 18부, 4처, 18청, 4실, 10위원회’를 ‘13부, 2처, 17청’으로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의 일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당선인의 뜻이 반영된 조직개편이었다. 조직개편 방안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18부 중 통일부, 해양수산부, 정보통신부, 여성부, 과학기술부 등 5부는 사라지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통일부와 여성부는 살아남았다. 통일부와 여성부를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헌법 조항도 제대로 모르고 조직개편을 서둘러 추진하다 빚어진 해프닝이기도 했다. 헌법 88조 ②항은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로 돼 있다. 5개부의 장관을 없애 13부의 장관만 남게 되면 국무회의를 개최할 수가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뒤늦게 잘못을 알고 없애기로 한 5개 부 가운데 통일부와 여성부를 구제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 29일 없어진 해양수산부가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6년 8월 해양·수산 정책의 수립 및 시행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해운항만청, 수산청, 건설교통부 수로국, 해난심판원 등을 통합해 출범했다. 해양수산부 신설로 각 부처로 흩어졌던 해양업무는 일원화됐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어떤 해양수산부 장관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자, “나는 생선회를 좋아한다.”고 이해하기 힘든 이유를 대며 업무의 연관성을 말하기도 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그제 부산을 방문, “이명박 정부가 해양수산부를 해체한 것은 바다가 삶의 터전인 부산의 미래를 해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대표가 해양수산부 부활을 공약으로 내건 것은 물론 부산시민의 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부산의 발전을 많이 생각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깔려 있다. 선거철만 되면 강도 없는 곳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공약을 하는 게 정치인이라지만, 특정지역 주민을 위해 정부부처를 부활하겠다는 게 제대로 된 것일까. 특정지역, 특정계층을 위한 부처 신설이나 부활을 남발하다간 정부 부처가 30~40개가 되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이웃사촌/곽태헌 논설위원

    반상회에 참석하면 그나마 이웃을 알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파트 생활을 하는 경우 앞집 사람 얼굴도 제대로 모른다. 어쩌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무래도 어색하다. 사람 잘 사귀는 회사 후배 H는 이 점에서 부러울 정도로 예외다. 그는 이사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같은 아파트 주민 및 동네 주민 3명과 가깝게 지낸다. 고깃집 사장, 쌀집 사장, 전시 및 기획 전문가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자연스럽게 부인들도 가까워졌다고 한다. 지난 주말 네 부부는 승합차를 빌려 지리산까지 갔다 왔다. 화엄사도 둘러보고, 화개장터에도 가는 등 1박 2일간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얼마 전 이들의 저녁 모임에 동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같은 동(洞) 주민의 자격으로 준회원이 됐다. 이달 말 집 근처 산에 같이 오르기로 했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일 터. 이웃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해야 겠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변호사 값어치/곽태헌 논설위원

    박사가 귀한 시절 박사 학위만 있으면 특별대우를 받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박사 학위가 있으면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으로 특별채용됐다. 대기업에는 보통 임원으로, 못해도 부장으로는 갈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박사가 대폭 늘자, 박사의 값어치도 예전보다 훨씬 못한 세상이 됐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당연한 현상이다. 과거 신분상승을 위한 대표적인 지름길은 고시였다. 행정고시, 외무고시도 그랬지만 특히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사실상 평생이 보장됐다.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권력 있는 집안이나 재력가 집안의 사위가 되고, 판사나 검사를 하면서 폼나게 살았다. 또 판검사를 그만둔 뒤에는 변호사를 하면서 전관예우 덕에 돈도 쉽게 벌 수 있었다. 사법시험의 높은 위상 때문에 대학 서열을 정할 때에도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됐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1980년대 300명, 1990년대 500명, 2000년대 1000명으로 늘면서 가치도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법연수원 수료 성적이 좋아 판검사가 되면 ‘결혼시장’에서 특별대우는 받는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서울대 법대도 없어졌지만, 아직도 어떤 결혼정보회사에서 기준으로 삼은 1등 신랑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판사다. 2등 신랑감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검사, 5대 로펌 변호사다. 판검사·변호사의 위상은 여전하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임용되면 3급 대우를 받는다. 행정고시(5급) 합격자보다 두 단계나 높다. 하지만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대폭 늘다 보니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잘나가는 판검사·변호사가 되는 게 쉽지 않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 부장으로 갈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대리급으로 낮아졌다. 5급 공무원으로 특별채용되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주 국민권익위원회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 3명을 6급 주무관(옛 주사)으로 특별채용했다. 이에 대해 일부 동료 사법연수원생들은 “공개적인 모욕”이라며 발끈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다.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주무관 자리에 채용 원서를 낸 그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보았는가. 국민권익위가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생들을 모욕한 게 아니라 아직도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팔자 좋고, 집안 좋고, 성적 좋은 사법연수원생들이 국민권익위 주무관에 지원한 동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세대교체/곽태헌 논설위원

    4·11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공천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70대인 박희태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이상득 의원은 불명예스럽게 4·11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같은 70대인 민주통합당 박상천 의원은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했다. 선거를 앞두고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낙선에 따라 타의(他意)로 정계를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의(自意)로 물러나는 지혜가 있는 정치인도 많다. 보통 국회의원 선거를 할 때마다 초선의원 비율은 40% 안팎이나 된다. 세대교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다. 오는 12월에 실시될 대통령선거를 통해서도 세대교체는 분명하게 이뤄지게 돼 있다. 현재 여론조사상 빅3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50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60세,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61세다. 빅3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6·25 이후 출생한 첫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갖게 된다. 시대흐름을 보면 2017년 대선의 주인공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가 될 가능성이 사실상 100%다. 한국정치사의 대표적인 세대교체 계기는 1971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온 ‘40대 기수론’이다.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 김영삼(YS) 의원이 대통령후보를 겨냥,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왔다. 김대중(DJ) 전 의원과 이철승 의원이 호응하면서 ‘40대 기수론’은 야당의 세대교체를 가속화시켰다. DJ는 1차 투표에서는 YS에 뒤졌지만 결선투표에서 이철승 의원 지지표를 대거 흡수하면서 대통령후보가 됐다. DJ는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꺾고 당선됐다. 당시 나이는 72세. DJ에 5년 앞서 대통령의 꿈을 이뤘던 YS도 70대 초까지는 현직에 있었다. 구상유취(口尙乳臭)하다는 말도 들으면서 40대 기수론을 주창했던 YS와 DJ 모두 70대까지 정치판을 흔든 것은 아이러니다. 정치판이든, 스포츠계든 모든 분야에서의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다소 인위적으로 이뤄질 때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부총재, 부총재보, 국·실장급 인사를 놓고 말이 많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보수적인 한은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연공서열이 파괴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50대 초·중반의 임원은 물론 고참 1급이 맡았던 주요 국장에 2급을 중용하면서 한은이 술렁이고 있다. 분위기 쇄신도 좋고, 세대교체도 좋지만 어느 조직이든 능력이 아닌 나이가 인사의 결정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서울광장] 박근혜 지역구 불출마 대단한 건가/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근혜 지역구 불출마 대단한 건가/곽태헌 논설위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두달 앞으로 다가온 4·11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대구 달성군)에 출마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7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역구민 여러분의 뜻을 따라서 더 큰 정치에 몸을 던지도록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간담회를 하는 동안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1998년 4·2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대구 달성 주민들의 압도적인 성원에 힘입어 4선(選) 의원이 됐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랐다. 달성은 박 위원장을 정치에 입문하게 해준 정치적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박 위원장이 14년간 정들었던 달성을 떠나게 돼 목도 메고 눈물도 나온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결단’이라고 할 만큼 달성에서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한 게 그리 대단한 것인가. 적지 않은 언론들은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기자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박 위원장의 지역구 불출마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텃밭으로는 대구·경북(TK)과 서울 강남권이 꼽힌다. 이곳에는 새누리당 후보로 누가 나서더라도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쉽게 당선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곳에 출마하지 않기로 한 것을 놓고 ‘결단’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의 꿈을 꾸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희생’도 아니다. 박 위원장이 당을 위해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에 출사표를 던지는 자기희생적인 선택을 했으면 진짜 ‘결단’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저는 정치를 안 하면 안 했지 (지역구를 옮기는) 그런 식으로는 안 한다.”고 당내 일각의 수도권 출마 요구를 일축했다. 이게 박 위원장의 ‘소신’이고 ‘원칙’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을 앞두고 당선이 확실하지 않은 수도권에 출마하는 모험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원론적으로 보면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유력한 대선 주자가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되면 국회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 낙선된 뒤 국회의원직을 유지한다는 것도 보기에 좋지 않다. 어떤 경우든 그만둔다면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 세금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대선에서 낙선한 뒤에도 금배지를 단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와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도 있지만, 이게 정상은 아니다. 과거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 김종필(JP) 전 총재도 대선에서 떨어진 뒤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3김은 다른 정치인들보다 특별대우는 받을 만했다. 이제 대선에 출마해 떨어졌으면 조용히 원로로 남는 게 맞다. 전면에 계속 나서는 것은 추(醜)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처럼 대통령 본선 출마도 한번으로 제한할 필요도 있다. 정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됐다. 대 선주자가 비례대표 의원이 되는 것은 지역구 출마보다는 문제가 적다. 국회의원을 내놓으면 다음 순위에 있는 후보자가 자연스럽게 승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의 일부 측근들은 지역구를 포기했으니 비례대표 1번을 비롯한 상위 순번을 박 위원장에게 추천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본인은 물론 새누리당을 살리려면,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비례대표를 한다면 배수진을 친다는 각오로, 당선이 불확실한 20번 이후를 선택해야 한다. 확실한 대선주자인데 4선이면 어떻고 5선이면 어떤가. 박 위원장이 당선이 불투명한 번호를 받으면 그를 아끼는 많은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나설 것이다. DJ는 1996년 4·11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비례대표 14번으로 출마했다.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고 나름대로 성공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비례대표 12번 출마를 공언했다. 20%의 지지율이 있어야 당선될 수 있는 쉽지 않은 순번이다. 박 위원장은 큰 꿈을 이루려면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맥주 삼국지/곽태헌 논설위원

    지난 1993년 조선맥주가 하이트맥주를 내놓기 전까지 맥주시장은 조용했다. 오비맥주로 더 알려진 동양맥주와 크라운맥주가 주력이었던 조선맥주의 점유율은 약 70대30이었다. 두산그룹 계열사였던 동양맥주는 점유율을 더 높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1위를 하면 이런저런 규제도 받을 수 있고, 사실상 독점이라는 말을 듣는 게 싫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다. 맥주시장 나름의 황금률을 70대30으로 봤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하이트맥주가 나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만년 2위 조선맥주는 ‘지하 150m 천연암반수로 만든 맥주’를 강조했다. ‘맥주를 끓여서 드시겠습니까.’라는 도발적인 광고도 나왔다. 2년 전 터진 두산전자의 페놀사건을 겨냥, 두산그룹의 아킬레스건인 환경문제를 이슈화하는 전략은 성공했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는 양사의 광고가 불을 뿜었다. 동양맥주는 조선맥주의 공세에 우왕좌왕했다. 게다가 1994년 6월에 나올 진로쿠어스맥주의 카스맥주까지 염두에 둔 신제품 출시전략 때문에 괜찮은 제품 출시를 당길 수도 없었다. 1994년 동양맥주, 조선맥주, 진로쿠어스맥주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맥주시장 판도변화는 본격화됐다. 광고전쟁도 볼 만했다. 동양맥주의 점유율은 60.9%로 1년 전보다 8.8% 포인트나 떨어졌다. 조선맥주는 33.8%, 진로쿠어스맥주는 5.3%였다. 1996년 마침내 조선맥주는 43%의 점유율로 동양맥주(41.7%)를 누르고 꿈에 그리던 1위에 올랐고 1998년에는 회사 이름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맥주 삼국지의 결과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진로그룹은 1997년 부도를 냈다. 맥주사업에 거액을 투자한 게 부도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맥주부문은 오비맥주에, 소주부문은 하이트맥주에 각각 매각됐다. 두산그룹은 그룹의 모태나 다름없는 맥주 지분을 2001년 완전 정리했다. 식음료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도 처분했다. 알토란 같은 땅도 매각하는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 중공업·기계 등 중후장대한 쪽으로 바꾸었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지난해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가 50.2%, 하이트가 49.8%로 박빙이었다. 유통망도 탄탄하고 자금도 풍부한 롯데그룹이 충북 충주에 공장을 짓고 2017년부터 맥주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1990년대의 맥주 1차 삼국지는 다소 싱겁고 짧게 끝났지만, 2차 삼국지는 그리 만만치 않을 듯싶다. 원론적으로 보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들은 신난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EPB+MOF/곽태헌 논설위원

    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MOF)는 경제부처의 양대산맥이었다. 많은 경제부처 엘리트들은 EPB와 MOF로 나뉘어 파워게임도 했다.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11월 발족한 MOF의 핵심은 금융과 세제 쪽이다. 1961년 7월 발족한 EPB의 핵심은 예산과 기획분야다. 1961년 5·16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경제발전을 주요 목표로 정하고 EPB를 만들었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은 부총리로 격상돼 정부 내 위상이 더 강화됐다. EPB는 경제 정책을 기획·총괄하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등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처를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은 부총리라는 점도 있었지만, 부처의 예산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MOF 관료들은 다소 보수적인 반면 EPB 출신들은 개방적인 편이었다. 업무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MOF에서는 상하관계가 비교적 엄격했지만, 토론문화가 발달된 EPB에서는 상하관계가 비교적 느슨했다. MOF에서는 과장들이 회식할 때, 그 자리에 국장이 없더라도 욕하지 않았지만 EPB 과장들은 그 자리에 국장이 있음에도 대놓고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국장의 지시라고 고분고분하게 듣거나 따르지는 않았다. EPB와 MOF 모두 독특한 문화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4년 12월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EPB는 다른 부처와는 달리 특정 집단을 봐줄 필요가 없어 비교적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른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고 간섭했지만 이러한 것을 귀찮게 여긴 부처들의 반발이 거세진 게 통폐합된 주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물론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어 가는 시대적인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재경원 출범과 함께 EPB 출신과 MOF 출신을 섞는 ‘화학적 인사’가 이뤄졌다. 국장이 MOF 출신이면 과장들은 EPB 출신을 기용하는 식이었다. 최상의 조합은 국장은 EPB, 과장은 MOF 출신으로 짜여졌을 때다. EPB 출신 국장이 재량권을 주니 MOF 과장들은 좋아했고, MOF 과장들은 상사를 깍듯하게 모시니 EPB 국장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MOF 출신인 이석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내정됐다. MOF 출신 예산실장은 처음이다. 화학적 인사도 좋고, 융합 인사도 좋지만 차기 정부에서라도 EPB를 부활시켜 국가의 큰 밑그림과 장기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짜야 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아메리칸 드림/곽태헌 논설위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자동차·건설·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거대그룹을 일궜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하면 된다.’는 구호가 전국적으로 메아리쳤다. 그 구호대로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고, 이 땅의 많은 농부의 아들도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다. 1950~1970년대에 어렵다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외무고시에 합격하면서 고관대작과 재벌의 사위가 되며 신분이 상승한 경우도 적지 않다. 1960~1970년대 예비고사와 본고사로 대학 입시가 단순했던 시절에는 명문대에 진학한 농부의 아들, 딸이 지금보다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재력을 바탕으로 하는 끼리끼리 문화가 고착되면서 신분 상승의 기회도 줄고 있다. 각종 고시에 합격해도 결혼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는 예전만 못하다. 게다가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나와야 법조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가정의 아들과 딸들은 법조인의 꿈을 아예 접어야 할 지경에 놓였다. 연간 등록금만 2000만원 안팎인 로스쿨에 3년간 다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외무고시가 폐지됨에 따라 보통가정의 자녀들이 외교관이 되는 것도 종전보다 어려워졌다. 외무고시를 대체할 국립외교원에서는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있는 집’ 자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입학사정관제니 뭐니 하면서 성적보다는 가능성을 보고 뽑는다고 떠들지만, 그 가능성을 보여주려면 스펙이 필요하다. 여유 없는 집에서는 자녀의 스펙을 관리해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신분 상승의 걸림돌이 사라지키는커녕 갈수록 늘어만 간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나라 미국에서도 신분 상승의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스웨덴대 마르쿠스 잔티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미국에서 소득수준 하위 5%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가 성년이 되고서도 여전히 같은 수준에 머무르는 비율은 42%로 덴마크(25%), 영국(30%)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도했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가난의 대물림, 부의 대물림 현상이 유럽 선진국보다 심한 것이다. 재력이나 신분의 대물림이 심한 ‘그들만의’ 나라와 사회는 건전할 수가 없고 발전이 있을 수도 없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무너진 사회, ‘하면 된다.’는 구호가 구시대의 유물처럼 들리는 사회라면 희망은 없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서울광장] ‘결과적’으로 안철수 도와준 박근혜/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결과적’으로 안철수 도와준 박근혜/곽태헌 논설위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미지도 좋은,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시작한 ‘청춘콘서트’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청춘들에게 보낸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에 2030은 열광했다. 그동안 안 원장은 정치와는 다소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상황은 바뀌었다. 그는 9월 초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말하며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결국은 출마하지 않고 박원순 야권후보에게 양보했지만, 안 원장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현 비상대책위원장을 2위로 끌어내리며 단숨에 내년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4년 가까이 부동(不動)의 차기 대선주자 1위였던,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박 위원장은 예상하지도 않은 일격을 당한 셈이다. 박 위원장은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원래 대세론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안 원장이 대선을 1년여나 남은 시점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각된 것은 박 위원장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안 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오게 된 계기는 서울시장 보선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8·24 주민투표를 앞두고 “201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면서 박 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박 위원장과 친박은 냉담했다. 야권의 보이콧과 친박의 수수방관 등으로 8·24 주민투표율은 25.7%에 불과했다. 개함(開函) 요건인 33.3%에 미치지 못하자, 오 전 시장은 사퇴했다. 친박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독려했더라면 33.3%를 넘어설 가능성은 높았다. 그렇게 됐더라면 서울시장 보선이 없었기 때문에 안 원장이 부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 위원장은 “서울시민 여러분, 투표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입니다. 1안이든, 2안이든 선택을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어야 했다. 1안은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안’, 2안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안’이다. 투표율 미달로 1안도 아니고 2안도 아닌,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어중간한 무상급식 방법이 채택됐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투표 거부운동을 할 게 아니라,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2안을 지지했어야 했다. 2안이 채택됐더라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어제 공식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박 위원장은 내년 4월 총선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먹통과 불통이 됐다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총선 때 자기사람을 챙기려 해서도 안 된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고,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는 옛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내년 12월 19일 대선까지는 꼭 51주 남았다. 그때까지의 변수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지지율과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할 것이다. 불과 한 달 전(11월 26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만 하더라도 박 위원장은 안 원장에게 38% 대 50%로 뒤졌으나, 한길리서치의 조사(12월 24~25일)에서는 40%대38.9%로 안 원장을 앞섰다. 박 위원장이 소통을 강화하고 반대세력의 목소리도 귀담아 듣는다면 대선을 1년여 앞두고 2위로 떨어졌던 게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안 원장은 대선을 1년여나 앞두고 1위에 오른 게 견제를 일찍 받는 측면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현재의 페이스를 제대로 유지한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을 것이다. 박 위원장이나 안 원장이나, 또 제3의 후보나 모두에게 위기도 오고, 기회도 생기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명암은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다.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휴대전화/곽태헌 논설위원

    기계·기구를 다루는 데 친숙하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다. 요즘 인기가 있는 다기능의 휴대전화도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아직도 구형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지만 불편한 것은 없다. 그런데 며칠 전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기초적인 용도로만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수준이지만 없으니 불안했다. 특별히 올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받아야 할 문자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휴대전화 중독 증후군 환자도 아닌데 점심 직전 집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져오기까지 3시간 정도 불안하게 보냈다. 부재 중 걸려온 전화는 한 건이었고, 문자메시지도 회사를 그만둔 선배로부터 온 것을 비롯해 몇 건 되지 않았다. 몇 시간 휴대전화가 없었어도 문제될 게 없었는데도, 추운 날씨에 집사람에게 휴대전화를 가져오라고 한 게 미안했다. 미국에는 TV 안 보는 날도 있는데, 휴대전화 없는 날도 1년 중 하루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비상대책위원회/곽태헌 논설위원

    매주 일요일 KBS2에서 방영되는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20%대를 웃돌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감수성’ 코너에 출연 중인 김준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적 분위기에서 서로 인간적으로 끌어주는 게 장수와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비결을 설명했다. 개그맨들이 국민 공감을 얻을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선배와 후배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분위기라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요즘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 중에서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애정남)와 함께 특별히 인기가 높은 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다. 비대위는 이런저런 이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 일도 못하는 공직사회를 풍자하는 코너다. 경찰 고위간부(치안감)로 나오는 김원효는 할 수 없는 핑곗거리를 속사포로 열거하며 “안돼~”를 연발한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씨가 오는 20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송년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청와대는 참모들의 소통지수를 높이기 위해 특히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김씨를 초청하게 됐다고 한다. 며칠 전 안철수 교수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 스님 강연을 들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법륜 스님과 개그맨을 초청한다고 막혔던 소통이 하루아침에 될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아예 할 생각도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한나라당은 그제 상임 전국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출범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새로운 당헌 개정안에 따라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대권 주자는 대선 1년 6개월 전에 당직에서 사퇴한다.’는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조해진 의원이 상임 전국위원회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표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당원이 뽑는 정당이 비대위 설치를 명문화한 것은 쿠데타를 합법화한 것”이라며 비대위를 반대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박 전 대표에게 당 대표의 모든 권한을 주면서도 ‘예외’적으로 대선 출마의 걸림돌을 없애는 데 큰 잡음이 없었던 것은 현재 한나라당이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비상(非常)은 정상이 아닌 상태다. 비상상태에서는 정상적인 방법과 절차로는 현안을 헤쳐갈 수도 없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비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꿔 보려고 노력하는 조직에는 그나마 희망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은 다 아는 비상상태인데도 태평했던 요순(堯舜)시대로 착각하는 조직이라면, 또 그러한 고위층이 많은 조직이라면 과연 희망이 있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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