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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EPB+MOF/곽태헌 논설위원

    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MOF)는 경제부처의 양대산맥이었다. 많은 경제부처 엘리트들은 EPB와 MOF로 나뉘어 파워게임도 했다.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11월 발족한 MOF의 핵심은 금융과 세제 쪽이다. 1961년 7월 발족한 EPB의 핵심은 예산과 기획분야다. 1961년 5·16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은 경제발전을 주요 목표로 정하고 EPB를 만들었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은 부총리로 격상돼 정부 내 위상이 더 강화됐다. EPB는 경제 정책을 기획·총괄하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 등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처를 통솔할 수 있었던 것은 부총리라는 점도 있었지만, 부처의 예산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MOF 관료들은 다소 보수적인 반면 EPB 출신들은 개방적인 편이었다. 업무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MOF에서는 상하관계가 비교적 엄격했지만, 토론문화가 발달된 EPB에서는 상하관계가 비교적 느슨했다. MOF에서는 과장들이 회식할 때, 그 자리에 국장이 없더라도 욕하지 않았지만 EPB 과장들은 그 자리에 국장이 있음에도 대놓고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국장의 지시라고 고분고분하게 듣거나 따르지는 않았다. EPB와 MOF 모두 독특한 문화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4년 12월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EPB는 다른 부처와는 달리 특정 집단을 봐줄 필요가 없어 비교적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른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고 간섭했지만 이러한 것을 귀찮게 여긴 부처들의 반발이 거세진 게 통폐합된 주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물론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어 가는 시대적인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재경원 출범과 함께 EPB 출신과 MOF 출신을 섞는 ‘화학적 인사’가 이뤄졌다. 국장이 MOF 출신이면 과장들은 EPB 출신을 기용하는 식이었다. 최상의 조합은 국장은 EPB, 과장은 MOF 출신으로 짜여졌을 때다. EPB 출신 국장이 재량권을 주니 MOF 과장들은 좋아했고, MOF 과장들은 상사를 깍듯하게 모시니 EPB 국장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MOF 출신인 이석준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내정됐다. MOF 출신 예산실장은 처음이다. 화학적 인사도 좋고, 융합 인사도 좋지만 차기 정부에서라도 EPB를 부활시켜 국가의 큰 밑그림과 장기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짜야 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아메리칸 드림/곽태헌 논설위원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자동차·건설·중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거대그룹을 일궜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하면 된다.’는 구호가 전국적으로 메아리쳤다. 그 구호대로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고, 이 땅의 많은 농부의 아들도 성공신화를 써내려 갔다. 1950~1970년대에 어렵다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외무고시에 합격하면서 고관대작과 재벌의 사위가 되며 신분이 상승한 경우도 적지 않다. 1960~1970년대 예비고사와 본고사로 대학 입시가 단순했던 시절에는 명문대에 진학한 농부의 아들, 딸이 지금보다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재력을 바탕으로 하는 끼리끼리 문화가 고착되면서 신분 상승의 기회도 줄고 있다. 각종 고시에 합격해도 결혼시장에서 평가받는 가치는 예전만 못하다. 게다가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나와야 법조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가정의 아들과 딸들은 법조인의 꿈을 아예 접어야 할 지경에 놓였다. 연간 등록금만 2000만원 안팎인 로스쿨에 3년간 다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2013년 외무고시가 폐지됨에 따라 보통가정의 자녀들이 외교관이 되는 것도 종전보다 어려워졌다. 외무고시를 대체할 국립외교원에서는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있는 집’ 자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입학사정관제니 뭐니 하면서 성적보다는 가능성을 보고 뽑는다고 떠들지만, 그 가능성을 보여주려면 스펙이 필요하다. 여유 없는 집에서는 자녀의 스펙을 관리해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신분 상승의 걸림돌이 사라지키는커녕 갈수록 늘어만 간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의 나라 미국에서도 신분 상승의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스웨덴대 마르쿠스 잔티 교수의 논문을 인용해 “미국에서 소득수준 하위 5%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가 성년이 되고서도 여전히 같은 수준에 머무르는 비율은 42%로 덴마크(25%), 영국(30%)보다 훨씬 높았다.”고 보도했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가난의 대물림, 부의 대물림 현상이 유럽 선진국보다 심한 것이다. 재력이나 신분의 대물림이 심한 ‘그들만의’ 나라와 사회는 건전할 수가 없고 발전이 있을 수도 없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무너진 사회, ‘하면 된다.’는 구호가 구시대의 유물처럼 들리는 사회라면 희망은 없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서울광장] ‘결과적’으로 안철수 도와준 박근혜/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결과적’으로 안철수 도와준 박근혜/곽태헌 논설위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미지도 좋은,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시작한 ‘청춘콘서트’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청춘들에게 보낸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에 2030은 열광했다. 그동안 안 원장은 정치와는 다소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였지만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상황은 바뀌었다. 그는 9월 초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말하며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결국은 출마하지 않고 박원순 야권후보에게 양보했지만, 안 원장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현 비상대책위원장을 2위로 끌어내리며 단숨에 내년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4년 가까이 부동(不動)의 차기 대선주자 1위였던,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박 위원장은 예상하지도 않은 일격을 당한 셈이다. 박 위원장은 얼마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원래 대세론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받은 충격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안 원장이 대선을 1년여나 남은 시점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각된 것은 박 위원장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안 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오게 된 계기는 서울시장 보선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과 관련한 8·24 주민투표를 앞두고 “2012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면서 박 위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박 위원장과 친박은 냉담했다. 야권의 보이콧과 친박의 수수방관 등으로 8·24 주민투표율은 25.7%에 불과했다. 개함(開函) 요건인 33.3%에 미치지 못하자, 오 전 시장은 사퇴했다. 친박이 적극적으로 투표를 독려했더라면 33.3%를 넘어설 가능성은 높았다. 그렇게 됐더라면 서울시장 보선이 없었기 때문에 안 원장이 부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 위원장은 “서울시민 여러분, 투표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입니다. 1안이든, 2안이든 선택을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어야 했다. 1안은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안’, 2안은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하는 안’이다. 투표율 미달로 1안도 아니고 2안도 아닌, 내년에는 중학교 1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어중간한 무상급식 방법이 채택됐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투표 거부운동을 할 게 아니라,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2안을 지지했어야 했다. 2안이 채택됐더라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은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기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어제 공식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박 위원장은 내년 4월 총선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어야 한다.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먹통과 불통이 됐다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총선 때 자기사람을 챙기려 해서도 안 된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고, 충언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는 옛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내년 12월 19일 대선까지는 꼭 51주 남았다. 그때까지의 변수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지지율과 민심은 하루가 다르게 변할 것이다. 불과 한 달 전(11월 26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만 하더라도 박 위원장은 안 원장에게 38% 대 50%로 뒤졌으나, 한길리서치의 조사(12월 24~25일)에서는 40%대38.9%로 안 원장을 앞섰다. 박 위원장이 소통을 강화하고 반대세력의 목소리도 귀담아 듣는다면 대선을 1년여 앞두고 2위로 떨어졌던 게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안 원장은 대선을 1년여나 앞두고 1위에 오른 게 견제를 일찍 받는 측면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현재의 페이스를 제대로 유지한다면 가능성은 열려 있을 것이다. 박 위원장이나 안 원장이나, 또 제3의 후보나 모두에게 위기도 오고, 기회도 생기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명암은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다.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휴대전화/곽태헌 논설위원

    기계·기구를 다루는 데 친숙하지도 않고, 별 관심도 없다. 요즘 인기가 있는 다기능의 휴대전화도 나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아직도 구형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있지만 불편한 것은 없다. 그런데 며칠 전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다.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기초적인 용도로만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수준이지만 없으니 불안했다. 특별히 올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받아야 할 문자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휴대전화 중독 증후군 환자도 아닌데 점심 직전 집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져오기까지 3시간 정도 불안하게 보냈다. 부재 중 걸려온 전화는 한 건이었고, 문자메시지도 회사를 그만둔 선배로부터 온 것을 비롯해 몇 건 되지 않았다. 몇 시간 휴대전화가 없었어도 문제될 게 없었는데도, 추운 날씨에 집사람에게 휴대전화를 가져오라고 한 게 미안했다. 미국에는 TV 안 보는 날도 있는데, 휴대전화 없는 날도 1년 중 하루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비상대책위원회/곽태헌 논설위원

    매주 일요일 KBS2에서 방영되는 ‘개그콘서트’는 시청률 20%대를 웃돌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감수성’ 코너에 출연 중인 김준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적 분위기에서 서로 인간적으로 끌어주는 게 장수와 인기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비결을 설명했다. 개그맨들이 국민 공감을 얻을 만한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도, 선배와 후배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분위기라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요즘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 중에서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애정남)와 함께 특별히 인기가 높은 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다. 비대위는 이런저런 이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 일도 못하는 공직사회를 풍자하는 코너다. 경찰 고위간부(치안감)로 나오는 김원효는 할 수 없는 핑곗거리를 속사포로 열거하며 “안돼~”를 연발한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씨가 오는 20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송년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청와대는 참모들의 소통지수를 높이기 위해 특히 젊은 세대가 공감하는 웃음을 선사하고 있는 김씨를 초청하게 됐다고 한다. 며칠 전 안철수 교수의 멘토로 알려진 법륜 스님 강연을 들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법륜 스님과 개그맨을 초청한다고 막혔던 소통이 하루아침에 될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 아예 할 생각도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한나라당은 그제 상임 전국위원회를 열고 비대위 출범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새로운 당헌 개정안에 따라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대권 주자는 대선 1년 6개월 전에 당직에서 사퇴한다.’는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조해진 의원이 상임 전국위원회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표최고위원 등 지도부를 당원이 뽑는 정당이 비대위 설치를 명문화한 것은 쿠데타를 합법화한 것”이라며 비대위를 반대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박 전 대표에게 당 대표의 모든 권한을 주면서도 ‘예외’적으로 대선 출마의 걸림돌을 없애는 데 큰 잡음이 없었던 것은 현재 한나라당이 비상상황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비상(非常)은 정상이 아닌 상태다. 비상상태에서는 정상적인 방법과 절차로는 현안을 헤쳐갈 수도 없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비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꿔 보려고 노력하는 조직에는 그나마 희망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은 다 아는 비상상태인데도 태평했던 요순(堯舜)시대로 착각하는 조직이라면, 또 그러한 고위층이 많은 조직이라면 과연 희망이 있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조·상·제·한·서·외/곽태헌 논설위원

    요즘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은행처럼 성적이 뒤바뀌는 업종을 찾기 힘들었다. 대형사고에 관련됐는지 여부, 거액을 대출해준 대기업이 부도가 났는지 여부가 은행의 성적에 결정적이었다. 197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가 불거지기 직전까지 20년간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성적표를 보면 그대로 알 수 있다. 상업은행은 1977~1981년 순이익 1위를 지킨 최고의 은행이었다. 그러나 1982년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어음사기 사건에 휘말린 데다 이듬해에는 명성사건까지 겹쳤다. 중동에 진출한 건설사의 부실도 이어지면서 타격을 받았다. 1986~1989년에는 최하위로 추락했다. 제일은행은 1985~1986년, 1992~1993년 1위였지만 영화도 잠시였다. 1995년 유원건설, 1996년 우성건설, 1997년 한보철강 등 주거래관계에 있던 대기업들의 잇단 몰락으로 휘청했다. 조흥은행은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사건과 영동개발사건(1983년)이 겹치면서 위기를 맞았으나 소매금융 쪽 강화로 나서면서 회생의 길을 찾았다. 1994~1996년 1위에 올랐다. 은행들의 부침이 심해서였는지 외환위기 직전까지 은행 출입기자들과 은행 관계자들은 설립 순인 ‘조·상·제·한·서’로 불렀다. 외환은행은 6번째, 국민은행은 7번째 시중은행에 이름을 올렸다. 그뒤 신설은행인 신한·한미·동화·동남·대동·하나·보람·평화은행의 순이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6대 시중은행 모두 대주주가 바뀌거나 통폐합되는 비운을 맞았다. 후발은행인 신한·하나은행이 대형 선발은행인 6대 시중은행을 인수하는,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현상도 빚어졌다. 선발은행이 경영 실패로 부실해진 측면도 없지 않지만, 떼일 줄 알면서도 대출해줄 수밖에 없었던 정치·경제적인 외압과도 무관하지 않다. 반면 신한은행은 부실한 대기업에 대출하라는 압력을 받을 때마다 대주주인 재일교포 핑계를 대면서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규모가 작았던 하나은행에는 정부의 대출 압력이 거의 없었다. 신한·하나은행에는 행운이었다. 이제 6대 시중은행의 이름도 다 사라질 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는 종전의 명칭 SC제일은행에서 ‘제일’을 빼고 한국SC은행으로 바꾸기로 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그제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당분간 지주사 밑에 (하나·외환) 2개 은행을 유지하는 체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당분간’이 지나면 외환은행 이름은 어떻게 될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수험생 마케팅/곽태헌 논설위원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3학년과 재수생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나자마자 수험생들에게 각종 할인 등 많은 혜택을 주는 것도 입시의 중압감에서 이제 조금이라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매출을 늘리려는 상술이지만, 장삿속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착한’ 영업전략이다. 올해도 놀이공원, 패밀리레스트랑 등 수험생이 즐겨 찾는 곳에서 수험표를 지참하면 할인해 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그제 ‘수능 수험생 할인 이벤트’라는 대문짝만 한 글자 옆에 더 큰 글씨로 ‘20% 할인’을 강조하는 신발 매장을 찾았다. 아들이 선택한 신을 들고 계산대에 갔다. 당연히 할인을 생각하고 있는데, 직원은 “이것은 할인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고객을 유혹한 ‘20% 할인’ 밑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콩알만 한 글씨로 ‘일부 품목과 브랜드는 제외’라고 적혀 있었다. 수험생과 학부모를 희롱하는 ‘착하지 않은’ 상술에 한 방 맞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서울광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대못’/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은 ‘대못’/곽태헌 논설위원

    보수진영과 보수 언론매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실상 사사건건 대립했다. 조금 과장하면 노 전 대통령의 집권 5년 내내 그랬다. 보수 쪽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여러 ‘대못’을 박았다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행정수도 공약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9월 30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충청권으로 행정수도를 옮기겠다는 공약을 공식으로 내놓았다. 한나라당이 정치감각이 조금만 있었다면 “우리도 검토하겠다.”거나 “수도권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대응했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순진한 것인지, 정치감각이 없었던 것인지 한나라당의 첫 반응은 “서울의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고가의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보유한 일부를 제외하면 서울의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희소식 중의 희소식이다. 그해 12월의 대선에서 노 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 57만여표를 더 얻었다. 경남 김해 출신인 노 후보는 충남 예산 출신인 이 후보보다 충청권에서 26만여표를 더 얻었다. 이 후보는 충남의 시·군 중 예산과 홍성에서만 1위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행정수도 공약으로)재미 좀 봤다.”고 했다. 행정수도 공약은 대선은 물론 총선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4년 4월의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충청권 24곳 중 19곳을 휩쓸었다. 한나라당은 단 1석만 건졌다.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것은 노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동정표와 함께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공약 덕분이었다. 2003년 12월 국회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으나 헌법재판소가 2004년 10월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대통령도 떠나는 ‘천도’(遷都)는 없는 일이 됐다. 대신 국무총리실과 9부2처2청 등 36개 기관이 세종시로 옮겨가는 것으로 다소 축소됐다. 보수진영과 보수 언론매체들이 쌍수를 들어 노 전 대통령을 칭송한 이례적인 게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다. 2007년 4월 2일 한·미 FTA가 타결됐다. 협상을 시작한 지 14개월 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날 밤 대국민 담화를 통해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먹고사는 문제, 국가경쟁력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FTA를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그동안 근거 없는 사실, 논리 없는 주장, 과장된 논리가 너무 많아 국민에게 혼란을 주었다.”면서 “앞으로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에 안 갔다고 다 반미냐. 또 반미면 어떠냐.”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하겠다는 노 전 대통령 시절 한·미 FTA가 타결된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한·미 FTA 체결의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 때 FTA가 비준됐으면 현재와 같은 여야의 극심한 대립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여당이고 다수당이던 시절 통과됐으면 현재와 같은 사생결단식의 싸움은 피할 수 있었다. 진보적 성향의 노 전 대통령이 반대하는 세력들을 설득했으면 문제는 지금보다는 수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두 나라 모두 대선을 앞둔 정치현실 등과 맞물려 비준이 늦어지면서 한·미 FTA 비준은 꼬일 대로 꼬였다. FTA 체결 당시 찬성했던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도 반대로 돌아섰다. 2007년 4월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던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를 지금에 와서 야당이 문제삼는 것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미처럼 좋은 구호도 없을 것이다. 야당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도 물론 이런 게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표 계산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도 물론 비판받아야겠지만 결국 정치인의 수준은 유권자들에 의해 좌우된다. 노 전 대통령이 좋은 뜻으로 시작했던 한·미 FTA가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는 결정적인 ‘대못’이 된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tiger@seoul.co.kr
  • [길섶에서] 북엇국/곽태헌 논설위원

    과음한 다음 날 아침에는 회사 근처의 북엇국집을 가끔 찾는다. 꽤 유명하다 보니 문을 여는 아침 7시부터 손님들로 만원이다. 아침에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점심때는 조금만 늦으면 길게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손님들이 몰린다. 영업 수완도 보통이 아니다. 식탁마다 반찬통이 있어 시간도 줄일 수 있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다. 아침에는 밥맛이 없는 손님이 많다는 생각에서인지 낭비를 줄이려고 밥을 적게 준다. 직원들도 상냥한 편이다. 회전율을 높이려고 술은 사실상 팔지 않는다. 웬만한 대기업보다 영업전략이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제 아침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가격을 올린 지가 1년도 안 된 것 같은데 또 올렸다. 그래도 손님이 여전할 것이라는 배짱이 깔린 듯하다. 불과 4~5년 전 4000원 하던 북엇국 한 그릇이 연례행사처럼 5000원, 5500원, 6000원으로 슬금슬금 오르더니 이제는 6500원이다. ‘사실상 독점’의 횡포에 소비자는 괴롭다. 물론 독과점의 횡포와 폐해가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미국식 철밥통/곽태헌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사고방식이 심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선비가 농사짓거나, 물건을 만들거나, 장사하는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은 당연시됐다. 해방 직후에는 기업다운 기업이 없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관직에 대한 변함없는 선호에 따라 사법시험, 행정고시(5급) 등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선발 인원이 많지 않았던 1960~70년대만 해도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에 붙으면 돈 많은 집안이나 권력 있는 집안의 사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남자 신데렐라’다. 옛 재무부 이재국 사무관(5급)이 은행장을 상대했다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도 있다. 요즘에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 선발인원도 늘어난 데다 재력가 집안끼리 사돈을 맺는 게 굳어지면서 과거와 같은 ‘고시 신데렐라’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취직이 비교적 잘됐던 1980년대에는 대기업과 증권사의 인기는 치솟았지만 7급 공무원이나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은 그리 치열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행정고시에 대한 인기는 여전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취업시장에도 변화가 왔다. 외환위기 때 사기업에 다니던 직장인들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대거 구조조정됐지만 공무원과 공기업 등 소위 ‘철밥통’으로 불리는 직장인들은 구조조정의 칼날을 비켜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7급은 물론 9급 공무원 시험도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워졌다. 월급이 조금 많지만 신분이 불안한 직장보다는 안정성을 갖춘 직장에 대한 인기가 치솟게 된 것이다. 월급도 많고 안정성도 갖춘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금융권 공기업은 그야말로 ‘신(神)의 직장’의 대명사가 됐다. 공직에 대한 인기가 그리 높지 않던 미국도 요즘에는 달라졌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그제 채용 컨설팅업체인 유니버섬이 직장인 6700명을 조사한 내용을 보도한 것에 따르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IT) 업체 3개사가 일하고 싶은 직장 1~3위를 휩쓸었지만, 씨티그룹(99위)을 비롯해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금융사들은 금융위기에 따라 뚝 떨어졌다. 미국 국무부,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이 톱10에 포함되는 등 공직에 대한 인기는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어려운 경제 탓에 고용불안이 심해지면서 안정된 직장을 찾는 것은 한국이나 태평양 건너 미국이나 다를 게 없는 듯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신(新) 라면전쟁/곽태헌 논설위원

    현대식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다. 신용조합 이사였던 안도 모모호쿠가 1956년 술집에서 생선튀김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2년 뒤 닛신식품에서 라면이 처음 나왔다. 당시의 라면은 면에 양념이 가미돼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다. 묘조식품은 세계 최초로 분말 형태의 수프를 갖춘 라면을 개발했다. 삼양식품은 묘조식품과 제휴해 196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라면을 선보였다. ‘귀한’ 쌀밥이 최고로 인식되던 시절 라면은 인기가 있을 리 없었다. 삼양식품은 라면 판촉을 위해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지만 반응은 별로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밀가루를 원조해 주면서 쌀이 부족했던 정부가 밀가루 소비를 권장하자 라면도 서서히 인기를 끌게 됐다. 국물에 친숙했던 소비자의 입맛도 라면이 인기를 얻게 된 요인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농심은 안성탕면과 짜파게티, 신(辛)라면 등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으며 1986년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뒤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1989년 검찰이 무리하게 발표한 우지(牛脂) 파동까지 겹쳐 한때 벼랑 끝 위기로 몰리기도 했다. 1997년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우지 파동에 따른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라면은 34억개가 넘는다. 세계 6위의 라면시장이다. 금액으로는 1조 9000억원 정도. 1인당 소비량은 70개로 세계 1위다. 농심의 점유율은 70% 안팎으로 절대적이었다.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나머지를 놓고 싸우는 상황이다. 신라면의 점유율만 20%가 넘을 정도다. 농심이 장악한 라면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8월 출시한 꼬꼬면이 새바람을 몰고 왔다. 8월에는 900만개가 팔렸고 지난달에는 1750만개나 팔려 나갔다. 없어서 못팔 정도라고 한다. 빨간 국물 일색이던 라면시장에 흰색 국물 라면의 반란이다. 꼬꼬면보다 1주일 먼저 나온, 역시 흰색 국물인 삼양식품의 나가사끼짬뽕의 인기도 상한가다. 여기에 오뚜기까지 흰색 국물에 칼칼한 맛을 내는 기스면을 그제 내놓았다. 흰색 국물 라면의 인기로 시장점유율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9월 국내 라면시장에서 농심의 점유율은 65% 정도로 소폭이지만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흰색 국물 라면의 인기는 안주하면 뒤처지게 되고, 고정관념은 깨뜨려야 한다는 평범한 교훈을 확인시키는 사례로 꼽힐 만하다. 라면시장이든 다른 제품이든 경쟁이 치열할수록 소비자는 즐겁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꽃미남 마케팅/곽태헌 논설위원

    보통 동양 미인의 대명사로는 중국 당(唐)나라 현종 때의 양귀비가 꼽힌다.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중독시키는 아편 꽃에 양귀비란 이름이 붙은 걸 보면 그녀의 미모를 짐작할 수도 있을 듯하다. 서양의 미인으로는 이집트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가 단연 으뜸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이 그의 수상록 ‘팡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 게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시대에 따라, 또 나라와 지역에 따라 기준은 다르지만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나 동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요즘은 의학의 발달로 인해 성형을 이용해 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한국은 ‘성형공화국’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성형바람이 거세다. 결혼을 앞둔 20~30대 여성은 기본이고 중·고등학생들의 성형도 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여고 3학년생들이 대학 입학식을 하기 전의 몇달 동안을 이용해 성형수술을 했지만 요즘에는 중3 여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성형을 하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며느리를 맞기 전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 앨범으로 원래의 얼굴을 확인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여성 외모지상주의는 결혼정보회사가 분류한 여성등급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한 신문에 보도된 예비신부 15개의 등급 중 4등급에는 미스코리아대회 선(善) 이상 입상자가 메이저 방송사 아나운서, 스타급 연예인과 함께 들어 있다. 5등급에는 미스코리아대회 미(美) 입상자가 포함돼 있다. 의사, 판사, 변호사, 약사, 교수, 행정고시 합격자 등 소위 전문직 여성들은 그 밑의 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KBS2TV의 일요일 인기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사회풍자 코너인 ‘사마귀 유치원’에서 한 개그맨은 ‘인어공주’를 말하든, ‘선녀와 나무꾼’을 말하든 말끝마다 “이~뻐”라는 말을 내뱉는다. 고질적인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말이나 다름없다. 요즘에는 남성들의 성형도 늘고있다. 꽃미남을 찾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남성 캐디를 찾는 여성 골퍼도 적지 않다고 한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남성 직원들을 둔 레스토랑, 떡복이집은 매출도 껑충 뛰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여성의 힘이 세지면서 나타나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성이 우월한 시대가 다가올수록 이런 현상이 대세가 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김일성의 오산/곽태헌 논설위원

    1945년 8월 15일 혹독한 일제 36년 치하에서 해방되고 3년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남쪽에는 변변한 공장이 하나도 없었다. 1943년 11월 완공됐을 때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던 수력발전소인 수풍발전소도 북쪽에 있었다. 지하자원도 북쪽에 편중됐다. 남과 북이 각자 출발했지만, 출발선부터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열세에 있었다. 게다가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을 업고 6·25 전쟁을 일으키면서 남쪽은 쑥대밭이 됐다. 그러지 않아도 공장다운 공장도 없던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의 날벼락이었다. 김일성의 오판(誤判)과 오산(誤算)에 따른 참화였다. 정부가 수립되던 해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규모는 2억 달러에 불과했고,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다. 60여년 전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이었다. 하지만 올해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10대 무역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로 아프리카 50여개국의 GDP를 합한 것보다 많다.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신흥 경제모범생이 됐다. 사실상 맨땅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은 1970년대 중반 경제력에서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다. 남북 간 경제력 차이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30조원으로 남한 GNI의 2.5%에 불과하다. 북한의 1인당 GNI는 124만원으로 남한의 5.1% 수준이다.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연구소인 우드로 윌슨센터가 공개한 ‘한반도에서의 데탕트 부상과 추락:1970~1974’에 따르면 1971년 6월 김일성은 북한을 방문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강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몽상이라고 일축했다. 김일성은 “그동안 우리가 잠을 자고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박 전 대통령)가 상상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오늘의 남북 경제력을 보면 남한은 밤을 낮 삼아 열심히 일한 반면, 북한은 잠만 잔 꼴이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대(代)를 이은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제대로 먹여살릴 능력도 없어 외국에 손을 벌리는 한심한 처지가 됐다. 러시아의 권위 있는 국책연구기관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는 2020년대에 북한은 사실상 남한에 흡수통일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고 한다. 6·25 전쟁에 이은 잇따른 김일성의 오판과 오산으로 북한과 북한 정권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있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현대·삼성병원/곽태헌 논설위원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문어발식 경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문어발식 경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전 국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 재벌의 새로운 업종 진출도 있었다. 대규모 병상을 갖춘 현대식 병원 진출이 그것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아산 재단 설립자)은 1977년 9월 전북 정읍 아산병원 기공식에서 “각 병원의 모(母) 병원으로서 기능을 하고 국내 의료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세계적 수준의 병원을 서울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병원의 첫 이름을 ‘서울중앙병원’(현 서울아산병원)으로 한 것도 지방병원들의 중심역할을 할 서울에 있는 모병원이라는 뜻에서였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1989년 6월 서울아산병원이 개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당시에는 생소했던 환자 중심 병원을 선언했다. 1994년 11월에는 삼성서울병원이 문을 열었다. 당시 재계 1, 2위였던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병원 사업에서 경쟁하게 된 것이다. 병원의 문턱이 높던 시절, 환자와 환자 가족이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없던 시절, 국민들은 양대그룹의 병원 진출을 반겼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의 출범과 더불어 의료수준과 서비스, 장례문화도 상당 수준 업그레이드됐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서울대·세브란스·가톨릭대병원 등 기존 빅3와 경쟁하면서 의료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서비스, 친절의 대명사인 삼성그룹 계열 삼성서울병원은 최근 6개 암 부문 평가에서 폐암 한 분야만 1등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 사이에는 ‘진단은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장례는 삼성서울병원에서’라는 말도 나온다. 삼성서울병원이 수술에 관한 한 라이벌인 서울아산병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제 삼성그룹은 삼성서울병원의 실적 부진 책임을 물어 이종철 삼성의료원장을 경질했다. 현대와 삼성의 병원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고객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수술의 질을 높이려는 경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좋지만, 환자와 가족들은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는 의사를 원한다. 병원에 가면 의사에게 한마디도 제대로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의사는 무섭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아시아 최고 병원이 되기 위한 질적인 경쟁도 좋지만 따뜻한 마음이 있는 의사를 보다 많이 양성하는 경쟁을 하는 게 더 시급하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서울 법대/곽태헌 논설위원

    예비고사와 학력고사가 있던 1970~1980년대 문과(인문·사회계열) 전체수석 중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희망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울 법대를 선택했다. 서울 법대 82학번인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으로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서울 법대는 수십년간 문과 지망생 중 최고의 인기학과로 주목받았다. 수재 중의 수재들이 모인 곳이 서울 법대다. 특히 법조계·정계·관계에 서울 법대 학맥은 뿌리가 깊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육법당(陸法黨)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육사 출신인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육사 출신이 최고 실세였고, 머리가 좋은 서울대 법대 출신은 전두환 정권의 테크노크라트로 요직에 중용됐다. 그래서 나온 말이 육법당이었다. 육사와 서울 법대 출신이 좌지우지했다는 뜻이다. 옛 재무부에서 최고 인기부서로 통했던 이재국의 성골(聖骨)도 서울 법대 출신이었다. 옛 경제기획원과 쌍벽을 이루는 재무부에 경기고 출신은 즐비했다. 그래서 경기고 출신이라는 간판은 기본이었다. 경기고 출신 중 서울 법대 출신은 성골, 서울 상대 출신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진골(眞骨)로 불렸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성골의 대표주자였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많지 않았던 1960년대에는 서울 법대 출신 중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서울 법대 출신과 사법시험에 대한 인기는 그대로 결혼정보회사의 직업별 등급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8월 한 신문에 나온 남자의 직업별 등급을 보면 1등급 신랑감은 서울 법대 출신의 판사로 돼 있다. 2등급 신랑감으로는 서울 법대 출신의 검사, 서울대 출신의 행정고시 재경직 합격자, 5대 로펌 변호사가 속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러한 막강한 서울 법대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으로 2009년부터 맥이 끊기며 대학 입시에서 사라졌지만, 서울시장에 박원순 후보(무소속)가 출마하면서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박 후보가 서울대에 진학한 1975년에는 계열별로 학생을 선발했다. 박 후보는 사회계열에 합격했다. 사회계열에는 법대 외에 경제학과, 정치학과 등이 있고 4학기째에 전공이 결정됐다. 박 후보는 1학년 1학기 때 제적됐으니 법대 학생이었던 적은 없는데도 그동안 법대를 나온 듯이 말한 것은 잘못이라는 게 한나라당쪽의 얘기다. 박 후보의 서울 법대 논란은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리느냐를 떠나 고질적인 학벌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자수성가 부자/곽태헌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의 CEO를 지냈지만 오너가 아닌 월급쟁이였다. 이 대통령이 고(故) 정주영 그룹 명예회장을 대신해 청와대에서 열린 재벌 회장 모임에 대타로 참석하자 모 그룹 회장이 “당신이 왜 여기에 왔느냐.”고 핀잔했던 것으로 재계에는 알려져 있다. 그 재벌 회장은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보복을 당할까 좌불안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피해를 본 것은 아직까지는 없다. 모 그룹 회장이 이 대통령에게 이같이 말한 것은 재벌의 힘, 재벌의 폐쇄성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대기업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사실상 재벌 오너들의 모임이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하는 S그룹 회장도 재벌 모임에서는 약간 소외돼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것도 재벌의 폐쇄성, 그들만의 리그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많고 계열사도 많으면 보통 재벌 회장으로 불리지만 처음에는 맨손으로 일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집단을 일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수성가한 부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20년 전쯤 정 명예회장이 정계에 발을 들여놓자 노태우 정부는 현대그룹을 겨냥해 세무조사 등 온갖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계열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한해 순이익은 삼성그룹 전체의 순이익과 비슷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등 잘나가는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는 즐비했다. 반면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정도가 그나마 의미 있는 순이익을 내는 정도였다. 재벌닷컴이 1813개 상장사와 1만 4289개 비상장사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배당금·부동산 등 등기자산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흔히 억만장자(billionaire)의 기준으로 삼는 1조원 이상의 부자는 25명이었다. 이중 대(代)물림에 의존하지 않은 자수성가형 부자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비롯해 6명. 박 회장의 재산은 2조 4683억원으로 6위였다. 부모의 능력이나 부모의 대물림에 의존하지 않은 자수성가형의 부자가 많아야 열린 사회이고 희망이 있는 사회다.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기존 재벌들의 폐쇄성을 경고하는 의미에서도 앞으로 제2, 제3의 박현주가 많이 나와야 한다. 신흥부자들은 돈도 제대로, 멋있게 써서 기존 재벌과는 또 다른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곽태헌 논설위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출입국을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60년대 중반부터는 거의 매월 청와대에서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수출을 독려했다. 수출에 걸림돌이 된다고 기업인들이 지적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을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다. 1973년 정부는 ‘1980년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목표로 제시했다. 힘들어 보이는 목표였으나 정부와 기업,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1977년에 앞당겨 달성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12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4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오직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땀 흘리며 매진해 온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벅찬 감회를 누를 길이 없습니다.”라고 감격해했다. 성취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점에서 적당한 목표, 합리적인 목표는 국가든 개인이든 바람직하다. 박정희 정부 시절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불렸던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96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보고했다. KDI는 경제규모와 관련, “2000년에는 캐나다와 스페인을, 2010년에는 브라질을 제칠 것”이라며 “2020년에는 영국도 제치고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21세기 한국경제의 비전과 발전전략’을 보고했다. 2000년, 2010년의 ‘희망사항’이 이뤄지지도 않은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지 1년 6개월여 뒤인 1997년 말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제 전경련은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한 창립 50주년 기념 보고대회에서 2030년 한국경제의 비전으로 국내총생산(GDP) 5조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렇게 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GDP는 1조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 불과하다. 박정희 시절처럼 고도성장을 계속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경제성장률 4%도 버거운 때에 20년 만에 5배로 늘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전망을 내놓는 것은 무책임하다. 물론 전경련의 전망을 믿을 사람도 없고, 2030년이 되면 전경련의 전망을 기억할 사람도 없겠지만…. 정부든, 경제단체든, 기업이든 너무 먼 미래의 황당한 목표를 제시하는 구태를 벗을 때도 되지 않았나. 국민은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서울광장] 지방대학 더 어려워질 등록금 대책/곽태헌 논설위원

    [서울광장] 지방대학 더 어려워질 등록금 대책/곽태헌 논설위원

    지난 5월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취임하자마자 나라의 재정형편, 대학의 구조조정은 생각하지 않고 ‘반값 등록금’을 불쑥 내놓으면서 온 나라가 반값 등록금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떠밀리듯 정부와 여당은 1조 5000억원을 투입, 소득 하위 70%의 학생에게는 내년 등록금을 평균 22% 인하하는 내용의 대책을 지난달 내놓았지만 반값 등록금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소득 상위 30%는 대학의 자구노력에 따라 5% 정도의 인하 혜택만 볼 수 있으니 말할 필요도 없다. 잔뜩 기대수준이 높아진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미흡하기 짝이 없다. 정부의 등록금 대책은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는 것 외에도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됐다. 첫째, 엉터리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국민 세금으로 등록금을 깎아주는 것은 문제다. 정부는 등록금 경감 대책 발표에 앞서 전국 346개 사립대를 평가해 이 중 43개 대학을 ‘정부지원 제한 대학’으로 선정했다. 대학 구조조정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평가가 객관적으로 됐는지는 모르지만 43개 대학의 학생들은 등록금 경감 혜택을 볼 수 없게 됐다. ‘정부지원 제한 대학’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이름뿐이 대학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곳에까지 아까운 세금으로 등록금 경감 혜택을 준다는 것은 올바른 처방이 아니다. 사립대 구조조정을 더 확실하게 한 뒤 등록금 대책이 나왔어야 했다. 듣도 보도 못한 대학의 학생들에게 세금을 쓰는 것보다는 의무교육이 아니어서 수업료롤 꼬박꼬박 내야 하는 중산층 이하의 고등학생에게 연간 140만원 정도의 수업료를 면제해주는 게 훨씬 유익하고 시급한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199만명의 고등학생 중 특성화고 학생과 저소득층, 기초수급자, 한부모 자녀 등 76만명은 수업료를 면제받았으나 이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 등록금 대책의 다른 문제점은 전국 모든 대학의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그러지 않아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학생이 몰리는 상황에서 지역적인 차이 없이 등록금을 지원하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등록금 부담이 대체로 경감되기 때문에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유학’을 올 경우 경제적 부담이 다소 덜어진다. 서울행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적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등록금 인하 혜택을 최소화하고, 남는 예산으로 수도권 이외의 대학에 등록금 인하 혜택을 대폭 늘리는 게 ‘합리적’인 처방일 수 있다. 미국 주립대의 경우, 해당 주 출신에게는 등록금을 상당액 깎아준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가령 대전에 사는 학생이 국립인 충남대에 입학하면 대학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하면 지방대 위축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30여년 전만 해도 지방 국립대의 위상은 대단했다. 부산대, 경북대 입학생의 수준은 고려대, 연세대에 뒤지지 않았으나 1980년대 이후 지방 국립대의 위상도 떨어지고 있다. 지방대가 위축되는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가령 부산의 목재나 대구의 섬유 등 대표적인 산업이 위축된 것도 이유가 될 것이고, 서울에서 취직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는 게 유리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서울로 유학을 보낼 여력이 종전보다 더 생긴 것도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서울과 지방의 대학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 거점대학인 국립대를 살리고 지방 사립대에도 우수한 자원이 더 많이 몰릴 수 있도록 등록금 경감 대책이 바뀌어야 한다. 지방대학이 살아나면 지방사회도 활기를 띨 수 있다. 지방대학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지방산업은 육성돼야 한다. 정부는 ‘획일적’인 등록금 대책으로 지방대학의 발전, 서울과 지방의 균형성장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날려 버리고 있다. tiger@seoul.co.kr
  • [씨줄날줄] 위장전입/곽태헌 논설위원

    맹자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놀 만한 친구가 있을 리 없던 맹자는 자주 보았던 곡(哭)을 하는 등 장사 지내는 놀이를 하며 지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안되겠다 싶어 이사했다. 시장 근처였다. 맹자는 이번에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면서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도 좋지 않다고 보고 글방 근처로 다시 옮겼다. 그랬더니 맹자는 제사 때 쓰는 기구를 늘어놓고 절하는 법, 나아가고 물러나는 법 등 예법에 관한 놀이를 하며 지냈다. 맹자 어머니는 이곳이야말로 아들과 함께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곳에 오래 머물러 살았다고 한다. 아들 교육을 위해 세 차례 이사한 맹자 어머니의 교훈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고 한다. 전한(前漢) 말의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자녀 교육에서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된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맹자 어머니에 뒤지지 않는 한국의 어머니들이 많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된 것은 맹자를 뛰어넘는 어머니들이 넘쳐난 결과다. 서울에는 고입·대입 학원이 몰려 있는 대치동, 목동에 맹자 어머니에 뒤진다면 서운해할 어머니들이 많다.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는 살지도 않는 곳에 위장전입을 하는 것도 보편화됐다. 특히 현 정부의 장관, 대법관 등 고위직 상당수는 부동산 투기를 위해서든, 자녀 교육을 위해서든 위장전입에 관한 달인이다. 위장전입한 과거가 없으면 팔불출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가 됐다. 미국에도 자녀를 위한 위장전입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위장전입이 성행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소득이 낮거나, 흑인이나 히스패닉이 많은 지역의 학부모들이 소득수준이 높거나 백인이 많은, 교육여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학군으로 위장전입시킨다는 것이다. 자녀를 위한 마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게 없다. 한국에서는 고위공직자 등 힘있는 계층이 주로 위장전입을 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주로 중산층 이하에서 하는 게 다르다. 미국 상류층은 1년에 수만 달러의 수업료를 내는 사립학교로 자녀들을 보내기 때문에 위장전입을 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위장전입에는 서민들의 슬픔이 깔려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온 몸이 투명한 ‘블루벨벳새우’ 대만서 공개

    최근 타이완에서 열린 국제아쿠아리움엑스포에서 온 몸이 투명한 신종새우가 등장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로이터 등 해외언론이 28일 보도했다. 일명 ‘블루벨벳새우’(Blue Velvet shrimp)라고 불리는 이것은 투명한 몸과 빛나는 두 눈 등 매우 독특한 외형으로, 릴리새우를 유전자 기술로 개량한 것이다. 유전자 개량연구 담당자인 리치타는 “본래 투명한 몸과 붉은색 머리를 가진 릴리새우에게서 푸른색 유전자를 발견했다.”면서 “수명은 1년 정도”라고 설명했다. 6~7년의 연구 끝에 탄생한 이 새우는 애완용으로도 시판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아쿠아리움엑스포에서 공개된 중 2마리는 온라인 경매를 통해 1만6000 타이완달러, 우리 돈으로 약 62만원에 팔렸다. 이날 엑스포에서는 블루벨벳새우 뿐 아니라 타이완 토종새우인 벌 새우(bee shrimp), 호랑이 새우(tiger shrimp) 등을 혼합 교배 시킨 초콜릿 새우도 큰 인기를 모았다. 몸이 초콜릿처럼 짙은 색을 띠는 이 신종새우 역시 수 년의 유전자 연구 끝에 탄생했다. 연구 담당자는 추가 연구를 통해 신종새우의 수명을 연장시켜 대량 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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