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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통문인 이광수·주요한 원조 ‘멀티테이너’였다

    정통문인 이광수·주요한 원조 ‘멀티테이너’였다

    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구인모 지음/현실문화/584쪽/2만 8000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 문인들은 1929년부터 1937년까지 근 10년간 유행가 가사를 쓰고 음반으로 취입했다. 일제 강점기 문인들의 외도와 이탈을 문학사 및 문화사적으로 분석한 책 ‘유성기의 시대, 유행시인의 탄생’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는 선언으로 출발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동환, 이은상, 홍사용 등이 노랫말을 쓰고 고한승, 김종한, 김형원, 노자영, 유도순, 이하윤, 조영출 등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시인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음반에 취입한 작품은 확인된 것만 698곡으로, 식민지 시대 전체 유행가요의 18%에 이른다. 이들이 유행가 가사를 쓰며 대중과의 교감에 나선 것은 ‘개벽’ 등 동인지의 폐간에 따른 창작 공간의 위축, 높은 문맹률에다 빈약한 독자층 등 시단의 폐색현상을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잡가나 유행창가와 같은 이종 양식들과의 경쟁, 시의 대중화에 대한 열망, 시인으로서의 삶을 보장받으려는 현실적 욕구, 다국적 음반산업과 유성기의 도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험은 자유시에서 출발한 근대시를 정형시로 퇴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행시는 1929년 이광수 외에 김소월, 변영로, 양주동 등 11명의 문학인과 안기영, 윤극영 등의 음악인 5명이 조선가요협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효시는 이은상의 ‘마의태자’다. 이광수의 ‘우리 아기 날’, 김동환의 ‘종로네거리’, 홍사용의 ‘댓스 오-케-’가 음반으로 나왔다. 대표작은 김형원이 노랫말을 쓰고 안기영이 곡을 붙인 ‘그리운 강남’으로 해방 후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인기가 오래갔다. 조선가요협회 참여 문인들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해 1933년을 기점으로 활동이 뜸해졌지만 김억, 유도순 ,이하윤 등은 그 후에도 활발하게 작품을 냈다. 김억은 1933년 ‘수부의 노래’를 시작으로 1940년대까지 61편을 음반으로 냈다. 이하윤은 ‘섬색시’, ‘처녀열여덟엔’ 등 158편의 유행가 가사를 발표했다. 유도순은 카페 여급 김봉자와 경성제대 의학사 노병윤의 스캔들을 다룬 ‘봉자의 노래’를 히트시키는 등 1934~35년 2년간 92편을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유행가요의 운명은 1932년 매일신보 기자가 이광수의 ‘쓰러진 젊은 꿈’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엽기적’이라고 한 데서 보듯 어느 정도 예견된다. 흘러왔다 흘러가는 유행가의 속성처럼 정통 문인들의 유행시는 곧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 김억과 이하윤은 1937년 이후 전시상황에 부응하는 시국가요를 짓는 등 전쟁협력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기도 했다. 지은이는 그러나 “‘동심초’(김억 작사, 김성태 작곡), ‘동무생각’(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등이 가곡으로 남아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아파트 편안함 누리며 한옥에 살려는 건 욕심”

    [저자와의 차 한잔] “아파트 편안함 누리며 한옥에 살려는 건 욕심”

    “한옥은 과학적이다 못해 오묘합니다.” 건축가인 임석재 이화여대 교수의 말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한옥은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하고 겨울에 햇빛이 잘 드는 구조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있어 북반구의 해는 여름에 높게, 겨울엔 낮게 뜬다. 한옥의 처마는 햇빛이 여름엔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최소화하고, 겨울에는 집안 깊숙이 받아들인다. 복사와 대류의 원리를 이용한 온돌은 열 보전과 전도가 뛰어나 아파트 난방에도 사용된다. 바람도 지혜롭게 활용했다. 대문, 중문, 마당, 대청을 한 일(一)자로 배열, 바람길을 냈다. 에어컨과 비교할 수 없는 시원한 천연 바람이다. 그는 최근에 낸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인물과사상사)에서 “한옥의 과학은 기계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아 자연친화적”이라고 했다. 한옥은 또 생활미학이 뛰어난 집이다. 한옥의 공간은 갈라지고 순환하는 것은 물론 창문을 열고 닫는 데 따라 모습이 바뀐다. 숨을 수 있는 곳도 많아 아이들이 숨바꼭질하기에 좋다. 문이나 창에 바르는 창호지는 여름에 햇빛을 쳐내 시원함을, 겨울엔 햇빛을 받아들여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봄, 가을 등 4계절과 아침, 저녁 등 시시각각 분위기를 다르게 한다. “한옥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 있지만 집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이고, 집이 우리들에게 정서적·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해 주는 책은 없습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힌 그는 “아파트 등 현대의 공동주택은 놀이기능을 상실한 단조롭고 재미없는 집”이라면서 “집이 재미없으니 현대 한국 남성들이 밖으로 겉돌아 유흥·향락 문화에 빠져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파트의 편안함을 다 누리면서 한옥에 살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그는 온몸에 퍼져 있는 신경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체성(體性)감각’을 들어 이유를 설명한다. 체성감각은 적절히 자극받아 깨어 있으면 정서가 안정되고 혈과 기가 잘 돌아 건강에 좋다. 한옥은 체성감각을 자극하고 살리는 데 제격이지만 아파트는 이를 봉쇄하고 퇴보시킨다. 물론 한국인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집에 들어가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을 해방시키지만 한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마당과 대청, 부엌 등 높낮이가 다른 한옥은 자연스레 신경부위가 집중된 발을 지압해 주고 온돌에 앉고 눕는 좌식문화는 신체 접촉을 최대한 늘려준다. 한옥에 살면 체성감각의 작동이 생활화돼 건강하고 행복해지는데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체성감각을 사장시키는 집에 살 것이냐고 반문한다. 생활방식, 삶에 대한 접근법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 불편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이다. 그는 최근 한옥 열풍에 편승한 한옥의 변신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많은 사람들이 보온이 잘 되는 우수 창호를 쓰고, 최신식 싱크대와 수세식 변소를 갖추고, 평면화된 아파트 공간을 도입하는 등 한옥의 개량화, 현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으로 인해 한옥의 장점이 많이 죽은 것도 사실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한옥의 대중화에 대해 묻자 “사실 도시에서 한옥의 부활이 쉽지는 않다”면서 “앞으로 21세기의 집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공부하겠다”고 했다. 21세기는 상대주의 문명인 만큼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1세기와 한옥의 공존이라는 더 어려운 숙제가 우리들에게 놓여 있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72개어 달인 伊 추기경·65개어 구사 獨 외교관…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언어의 천재들/마이클 에라드 지음/박중서 옮김/민음사/503쪽/2만원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언어 습득의 비법부터 말해야겠다.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도파민을 관리하고 몰입해야 한다.” 6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중언어 구사자를 연구해 ‘언어의 천재들’(원제 Babel, no more)을 펴낸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도파민은 즐거운 일을 하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서 즐거운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줘 사람들이 계속 즐거운 일을 하게 한다. 여러 가지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좋아서,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언어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산만하고 충동적인 상태는 언어 습득의 장애 요인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몰입 상태에 빠져야 한다. 평범해 보이지만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전 세계 다중언어 구사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 언어를 배우려는 절박한 동기를 가져라, 언어 감각을 발달시켜라 등의 조언도 있다. 그러나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는 공자의 ‘지지자(知之者), 호지자(好之者), 낙지자(之者)’론처럼 ‘즐기고 몰입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자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전·현직 다중언어 구사자를 찾아나서고 언어 습득과 관련된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다중언어 지역을 순례했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언어 천재’는 이탈리아의 추기경 주세페 메조판티(1774~1849)로 72개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외국인 전용 고해신부 시절에는 사형수 2명의 모국어를 밤새워 공부해 다음 날 아침 처형되기 전 이들의 죄를 사해줄 정도로 뛰어난 언어 습득 능력을 지녔다. 메조판티는 30개 언어에는 통달했지만 11개는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며 14개는 공부는 했지만 사용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60~65개의 언어를 아는 것으로 전해진 독일의 외교관 에밀 크렙스는 사후 뇌를 해부한 결과 언어 발달과 관련이 깊은 좌뇌의 브로카 영역이 과도하게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 영역의 발달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크렙스가 본격적으로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 12세 전후에 형성된 것인지 규명되지 않았다며 언어와 브로카 영역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칼을 쥔 노예’ 그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칼을 쥔 노예’ 그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로마 검투사의 일생] 배은숙 지음/글항아리/588쪽/2만 5000원 검투사 경기만큼 오랜 세월 로마인들 사이에 인기를 누린 것도 없다. 검투사 경기가 언제 시작됐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기원전 6~4세기부터 기원 440년까지 이어졌으니 최소한 800년 넘게 인기몰이를 해 온 것은 분명하다. 로마사를 연구해 온 배은숙 계명대 외래교수가 ‘로마 검투사의 일생’을 통해 검투사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준다. 지은이는 경기의 잔인성, 기독교도 처형 등 검투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걷어내고 검투사와 로마인들의 시각과 삶으로 검투사를 보려고 한다. 연극, 전차 경주, 검투사 경기는 로마인들이 즐긴 대표적인 오락물이었지만 그 가운데 압권은 단연 검투사 경기였다. “콜리사이우스(콜로세움)가 존재하는 한 로마는 존재하고 콜리사이우스가 무너지는 날 로마는 망한다”는 말처럼 콜로세움에서 열린 검투사 경기는 로마의 상징이자 로마인들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렇게 된 것은 재미와 즐거움, 돈, 쾌락 등 온갖 흥행 요소가 검투사 경기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높은 인기를 배경으로 검투사 경기는 통치수단으로도 적절히 활용됐다. 근육질의 검투사들이 벌이는 생명을 건 혈투, 팽팽한 긴장감과 스릴, 경기에 빨려들어가는 관중의 흥분과 환호 등은 연극, 전차 경주를 압도해 기원전 165년에는 검투사 경기가 열린다는 소문이 나돌자 연극이 상연될 극장이 텅 비는 일이 일어날 정도였다. 검투사 경기를 혐오하던 예비 신학생 알리피우스는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경기장을 찾았다가 열성 팬이 되고 말았다. 이런 중독성으로 검투사 경기는 검투사인 스파르타쿠스가 난을 일으켜 로마를 3년 가까이 위협했는데도 폐지되지 않았다. 검투사 경기를 보면 요즘의 프로스포츠가 연상된다. 관중에게 음식 등 선물을 제공하고 여자 검투사와 난쟁이 남자가 성대결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경기의 승자에겐 생존이 최고의 선물이지만 출신 성분에 따라 임대료의 일정 부분이 상금으로 주어졌다. 검투사의 강인함과 뛰어난 외모는 여성들을 가슴 설레게 해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부인 파우스티나는 검투사에 대한 상사병을 남편에게 고백하기도 했다. 권력자들이 검투사 경기를 그냥 둘 리 없다. 황제들은 검투사 경기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고 국가적인 구경거리를 제공해 시민들의 마음을 샀다. 검투사 경기를 보면서 시민들은 제국의 번영과 팽창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으며 황제와 시민들은 함께 흥분하며 하나가 됐다. 그러나 검투사 경기는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면서 서서히 반대에 부딪히고 로마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440년 이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은이는 “로마 시대는 칼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남자들이 전장에서 사람을 죽이던 시절”이라면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죽이는 것을 본 일도 없는 오늘날의 잣대로 검투사 경기의 잔인성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전후 日지도자 9명 통해 본 열도의 미래

    [일본 부활의 리더십] 손열 외 지음/동아시아연구원/332쪽/1만 6000원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후 1970년대 후반까지의 번영기와 그 이후 ‘성공의 역설’에 빠져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정체기 또는 모색기로 대별된다. 일본 전문가 9명이 공동집필한 ‘일본 부활의 리더십’은 성격이 다른 두 시기에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변환적 리더십을 발휘한 지도자 9명을 해부, 일본의 미래를 전망하려 한다. 전후 건축단계의 지도자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다. 1945~1947년, 1948~1954년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그는 미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함으로써 안보를 다지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 위주의 경제민족주의 시책을 펼치면서 자유·민주 등 보수대통합을 통한 정치 안정화를 이뤄 고도성장의 초석을 닦는다. 그는 타협하고 설득하고 때로는 밀어붙이고 실리를 위해서는 비굴해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 곡예에 능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전후 일본의 설계자’, ‘미국에 군사적 주권을 팔아넘긴 매국노’ 등 극단의 평가가 교차한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는 소수 파벌이면서도 ‘대통령형 총리’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 전후 체제의 문제점이 노정되던 1980년대를 슬기롭게 헤쳐갔다. 전후 요시다 체제의 탈피를 내세운 그는 퍼포먼스에 능한 언설 정치, 유력 파벌과의 연대 및 당내 유력자의 포섭 등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재정·행정·교육개혁에 나섰으며, 전후 체제의 긍정적 요소를 기꺼이 수용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2001년 총리가 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는 정책결정 구조를 상향식에서 총리 주도의 하향식으로 바꾸고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개혁정책을 소신 있게 펴 1990년부터 시작된 거품 경제의 일본 사회에 숨통을 터 주었다. 편자인 손열 연세대 교수는 결론적으로 분명한 비전과 목표, 하부 실행전략을 제시하고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는 21세기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며 대중과의 소통능력을 고루 갖춘 지도자가 등장할 때 새로운 일본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우린 프로이트에게 속고 있다

    우상의 추락/미셸 옹프레 지음/전혜영 옮김/글항아리/712쪽/3만 2000원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1906년 50세 생일선물로 앞면에는 자신의 얼굴이, 뒷면에는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하는 장면이 각각 새겨진 메달을 받고 무척 좋아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그의 정신분석학의 뿌리인 만큼 그가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간다. 2010년 프랑스에서 나온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평전이 ‘우상의 추락’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겨졌다. 프로이트에 심취했다 비판자가 된 저자는 이 책을 낸 뒤 논란의 중심에 섰다. 프로이트는 본능 또는 충동을 뜻하는 리비도와 무의식, 금기시됐던 성욕 등의 개념을 끌어내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수면 아래 잠겨 있는 잠재의식으로 인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저자는 프로이트가 임상 사례를 조작하고, 전기작가들이 그를 미화해 그의 사상이 실제와 달리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또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만든 것이어서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으로 치료했다는 환자가 6개월 뒤 사망하는가 하면 프로이트는 처제 민나 베르나이스와 모호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러나 전기작가들은 두 사람이 스위스, 이탈리아 등 10여 차례 장기여행을 떠난 것은 사실이지만 불륜관계는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연결고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반(反)유대주의자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아들에게 모멸감을 안기는 모순적인 아버지, 후처로 들어와 장남인 프로이트를 최고로 여긴 20세 연하의 어머니, 딸 안나에 대한 프로이트의 과보호 등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형성된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산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 어머니에 대한 사랑, 딸에 대한 집착, 처제와의 밀월 행각 등 다양한 행태로 나타난다. 저자는 그러나 근친상간에 대한 욕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또 미국의 영화 배우 메릴린 먼로가 비밀리에 오스트리아에서 프로이트의 딸 안나에게 심리치료를 받았으며 이것이 인연이 돼 먼로의 유산이 사후 안나 프로이트 재단과 프로이트 연구소에 들어가는 재미난 사연도 담겨 있다. 저자의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이 옳은지 그른지는 차치하더라도 그의 숨겨진 면모는 프로이트 정신심리학을 다시 보게 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해리포터 시리즈, 스핀오프로 재탄생한다…원작자 J.K. 롤링이 시나리오 집필

    해리포터 시리즈, 스핀오프로 재탄생한다…원작자 J.K. 롤링이 시나리오 집필

    전세계를 휩쓴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번외편)가 제작된다. 12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워너 브라더스가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 영화 제작에 나선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해리포터 스핀오프의 시나리오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원작자인 조앤 K. 롤링이 맡는다. 해리포터 스핀오프의 첫 작품 제목은 ‘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기이한 짐승들과 그들을 찾을 수 있는 장소·신비한 동물사전)이며 누트 스카만데르의 모험을 토대로 한다.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교과서로 등장하기도 했다. 스핀오프란 기존 작품의 등장인물이나 세계관에 기초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번외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해리포터 스핀오프로 첫 시나리오 작업에 도전하는 조앤 K. 롤링은 “워너 브라더스 측이 내게 ‘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기이한 짐승들과 그들을 찾을 수 있는 장소·신비한 동물사전)의 각색을 제안했고 굉장히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 작품은 ‘해리포터’ 영화나 책을 본 관객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 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해리포터’ 시리즈는 지난 2001년 개봉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시작으로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해리포터와 불의 잔’ 등을 거쳐 2011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까지 모든 작품이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식탁위의 한국사’ 펴낸 주영하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저자와의 차 한잔] ‘식탁위의 한국사’ 펴낸 주영하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냉면에는 20세기 한국 현대사가 압축돼 있습니다.” 최근 ‘식탁위의 한국사’(휴머니스트)라는 책을 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0세기 한국을 대변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냉면이 냉장고 등의 개발로 겨울 음식에서 여름 음식으로 변했고,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 지역에서 시작돼 이동과 이주를 통해 전 국민의 음식이 됐으며, 세계화로 베이징과 도쿄를 비롯한 해외에서도 찾는 음식이 되는 등 대한민국의 지난 100여년간 변화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음식을 식품영양학, 조리학이라는 미시적 관점에서 벗어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시적이고 종합적으로 보려는 음식인문학자다. ‘음식인문학’ 등 여러 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번에 낸 책에선 음식으로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봤다. 그는 지난 세기를 서양과 중국·일본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한 1880~1900년대, 근대적 외식업이 정착한 1900년대 이후부터 1940년대 초반, 전쟁으로 인구가 대규모로 이동하고 밀가루가 널리 보급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 이농(離農)과 도시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도시화가 완성되고 세계화 시대에 진입한 1990년대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이 시기 음식문화의 특징은 근대적 외식업이 자리 잡은 것. 아는 사람의 집에서 밥을 먹는 식객(食客)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 먹는 고객(顧客)의 시대가 된 것이다. 외식업소는 전통적인 국밥집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의 명월관으로 대변되는 조선요리옥, 해방 이후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준 대폿집으로 변화한다. 그는 20세기 한국 음식을 식민주의, 전통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세계 체제, 세계화 담론이 뒤섞인 혼종의 산물로 본다. 식재료와 조리법의 이동, 사람들의 이주와 교류도 음식의 문화적 혼종을 가속화했다. 이 때문에 한국 음식이 최고라는 편협한 우월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류 등에 편승해 전주 비빔밥이 조선 왕가에서 먹던 건강식이라며 음식을 역사로 만들고 그러한 음식의 역사를 진리인 것처럼 여기려는 사회 일각의 풍토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는다. “2020년이 우리 음식문화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입니다. 외식업계, 식품업계 등은 이 시기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990년대생들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살고 외국생활도 접해 봤을 뿐만 아니라 학교급식으로 전통적 식단이 강요된 세대라면서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2020년에는 음식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등 변화가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확산되면서 아침도 밖에서 사 먹는 추세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음식이 짜고 매워지는 등 자극적으로 변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1970년을 전후해 도시화로 호남 인구의 전국적 이동이 많았던 데다 고추 등 양념류의 수입으로 양념값이 싸지면서 호남 음식이 널리 보급됐다면서 이로 인해 담백한 음식맛이 많이 사나워졌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음식은 건강에도 좋지 않은 만큼 심심하고 깊이 있는 맛을 살리는 데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주문했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퇴계, 율곡의 학문태도 비판하고 율곡, 퇴계의 글 냉정히 지적하다

    퇴계, 율곡의 학문태도 비판하고 율곡, 퇴계의 글 냉정히 지적하다

    “옳은 것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천행(天行)을 살펴 자강불식(自强不息)하고 지세(地勢)를 살펴 후덕재물(厚德載物)하는 것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율곡 이이), “사물의 이치는 지선(至善)하지만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옳음이 있으면 그름이 있습니다. 격물궁리(格物窮理)라는 것은 그 시비와 선악을 따져 (그릇된 것을) 버리고 (옳은 것을) 취하는 것일 뿐입니다.”(퇴계 이황) 북송 시대의 학자 사마광의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을 놓고 두 사람은 부딪친다. 율곡이 사물의 움직임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퇴계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 것이다.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퇴계와 율곡은 1558년 처음 만난다. 23세인 율곡이 처가인 성주를 찾았다가 외가인 강릉으로 가는 길에 58세를 맞은 퇴계의 처소를 방문한 것이다. 이이가 시를 지어 ‘이 몸은 도를 듣기를 구하는 것이지, 반나절의 한가로움을 훔치려는 것이 아니라오’라고 하자 이황은 ‘명성 아래 헛된 선비가 없음을 이제야 알았다’고 화답한다. 이황은 또 강릉으로 간 율곡에게 편지와 시를 보내 당신은 재주가 뛰어나니 올바른 길로 가면 많은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격려하고 율곡이 어머니를 잃은 뒤 불교에 빠져들자 탄식하지 말라며 위로한다. 그러나 학문의 지향점에서는 양보가 없었다. 격물치지론에 대한 논쟁도 이때 나온 것이다. 이광호 연세대 교수가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란 책을 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와 시를 번역하고 해설과 주를 달았다. 격물치지론, 중용 1장 등도 보충 자료로 실었다. 성리학자로서 퇴계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율곡은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폈다는 점에서 뚜렷이 대비된다. 편역자는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의 손가락이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는 것처럼 퇴계의 관심은 하늘을, 율곡은 땅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퇴계가 하늘의 진리에 대한 앎과 실천을 통해 사람의 삶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 짓는 것을 철학적 과제(이기이원론)로 삼았다면 율곡은 넓은 우주를 보면서도 땅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실(이기일원론)에 관심을 가졌다. 퇴계는 벼슬길에서 물러나 ‘수기’(修己)했고, 율곡은 민생을 개혁하려는 ‘치인’(治人)에 치중했다. 이러한 차이는 뒷날까지 좁혀지지 않았다. 퇴계는 1570년에 주고받은 편지에서 강한 어조로 율곡의 학문 태도를 비판하고 경계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율곡도 마찬가지였다. 율곡은 퇴계 사후 제문과 추모글을 썼지만 친구인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서 퇴계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요즘 글을 보니 정암(整菴) 나순흠이 최고요, 퇴계가 다음이요, 화담(花潭) 서경덕이 그다음인데 그중 정암과 화담은 스스로 터득한 맛(自得之味)이 많고, 퇴계는 모방한 맛(依樣之味)이 많다”고 했다. 물론 퇴계의 입장을 옹호하는 편역자는 “율곡이 학문적 다름을 수용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퇴계는 주자의 학설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생각이 정당함을 입증하려 했다”며 이런 평가는 정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두 사람의 생각이 융합되거나 변증법적으로 통일돼 한 단계 더 고양되지 않고 평행선을 그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14세 남장소녀, 규방 넘어 금강산을 보다

    14세 남장소녀, 규방 넘어 금강산을 보다

    “금강산과 바다를 본 것은 천하를 다 본 것이나 다름 없다.” 14살 소녀는 금강산을 유람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시를 써 ‘이제 알겠다. 하늘과 땅이 아무리 크다 해도(方知天地大)/ 내 한 가슴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客得一胸中)’이라고 했다. 소녀가 금강산을 여행한 것은 조선 후기인 1831년으로 여성의 문밖 출입이 어렵던 시절이다. 아무리 남장을 했다 하더라도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강원도 원주에 살던 금원(錦園·1817~?)은 어린 시절 제천·단양 일대의 호(湖)와 동(東)쪽의 금강산·관동팔경·설악산, 조선의 낙양(洛陽)인 한양을 둘러보고 1845년쯤에는 의주 부윤 김덕희의 부실로 관서(關西)의 의주를 다녀온다. 1850년에는 여행기와 문집을 묶어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낸다. 일종의 자서전이자 회고록인 셈이다. 여성사를 공부한 지은이는 그녀의 책을 해부해 19세기 생활사, 문화사, 풍속사를 추적한다. 금원은 제천·단양 등을 구경한 뒤 한강 수계를 이용해 춘천으로 올라와 김화를 거쳐 금강산에 당도한다. 당시로선 가장 일반적인 금강산 여행 경로였다. 산을 봤으니 바다도 봐야 한다며 관동팔경 순례에 나선 소녀는 총석정과 낙산사 일출에 감동을 먹는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4개의 돌기둥을 보고선 “돌 무더기가 어찌 이렇게 고르고 가지런할까”라며 감탄한다. 낙산사 해돋이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미친 듯 기뻐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고 싶었다”고 한다. 서울 구경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땐 한결 성숙해진다. “군자는 충족한 것을 알면 그칠 줄 알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던 숙원이 보상되었으니 여기서 그침이 마땅하다. 다시 본분으로 돌아가 여자의 일에 종사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금원에게 ‘여자의 일’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그녀가 한 해 뒤 기생으로 입적돼 기녀가 되고 그녀의 어머니 역시 기생 출신의 양반가 첩일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시대는 자녀 신분이 어머니를 따르는 종모법(從母法) 사회이고 서녀인 양반가 딸의 기생 대물림도 많았다. 기녀는 낮은 신분의 천한 직업이었지만 한편으론 가무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전문 직업인이었다. 평양 기생의 일상을 소개한 녹파잡기(波雜記)를 보면 기생 경패는 13살 어린 나이에 서울로 가 노래와 춤을 배울 정도로 성취욕이 강하다. 기생은 시와 문장, 가무를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예술인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그들에겐 어느 정도의 자유와 독립성이 부여돼 있다. 아마 이런 전후 사정이 그녀의 파격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눈으로 산하의 넓고 큼을 보지 못하고 마음으로 온갖 세상사를 겪지 못하면 변화무쌍한 이치에 통달할 수 없어 생각과 식견이 좁아진다”고 말해 여행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 그러면서 ‘여자라고 해서 규방에 들어앉아 여자의 길을 지키는 것이 옳은가’ 하고 반문한다. 금원은 말년에 삼호정시사라는 모임을 만들어 기생 출신의 명문가 소생 4명과 문재를 주고받는다. 남자 중심의 양반 사회에서 첫 여성 시동호회다. 삼호정은 한강변 용산에 있는 정자로 지금의 용산성당 일대로 추정된다. 그녀는 호동서락기에 동호인들의 시 26수를 남기지만 더 이상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질병의 스토리텔링… 치유를 나누다

    병에 걸렸을 때의 두려움, 건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나 회한, 병에서 회복했을 때의 기쁨…. 병은 숙명적으로 많은 이야기(서사·?事)를 남긴다. 지은이는 병에 대한 이야기를 복원(restitution), 혼돈(chaos), 탐구(quest)의 서사로 나눈다. 복원이 병에서 나을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라면, 혼돈은 과연 병에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이다. 탐구는 병과 정면으로 마주친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복원의 서사의 주체는 약이나 의사이며, 복원의 이야기는 의학의 승리에 관한 것이다. 반면 혼돈의 이야기는 고통을 받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로, 그 고통은 너무 커서 자아에게 말할 수 없다. 탐구는 병과 동행하면서 느낀 깨달음 또는 탐색의 이야기로서 질병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기에 속한다. 사람들은 질병을 마주하면서 한층 성숙해지고 인생을 관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병은 철학과도 연결된다. 지은이는 현대 탐구 이야기의 아버지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꼽는다. 원인 미상의 두통 등 만성 증상에 시달린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을 ‘개’라고 불렀다. 고통이 충직하면서도 영리하게 몸에서 떠나지 않는 데다 병을 꾸짖을 수도 있고, 나쁜 기분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 책은 쉽지 않다. 질병이 복잡하고 전문적 기술로 치유된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진료는 ‘모던’하며, 아픈 사람들이 자신의 눈으로 병과 마주치고 대응하는 것을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했다. 또 병에서 나았지만 재발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회복사회’라고 했다. 이 책 역시 지은이가 암의 재발이 의심돼 불안해하던 1994년에 쓴 것이다. 중간중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탈코트 파슨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위르겐 하버마스·죄르지 루카치 등의 이론을 인용해 병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더해주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병에 대한 깊은 담론이 귀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두창·마마·천연두…괴질·고레라·호열랄·콜레라…질병이 변했나? 시대가 변했지!

    두창·마마·천연두…괴질·고레라·호열랄·콜레라…질병이 변했나? 시대가 변했지!

    이광수는 소설 ‘흙’에서 “염병할 자식, 제 집에는 계집도 없고 딸자식도 없담”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구한말 의병장 유인석은 당시 암울한 상황에 대해 “국병(國病)이 깊도다. 매국의 무리들이 일어나 외국 오랑캐들에게 아첨하여…”라며 울분을 토했다. 전염병을 뜻하는 염병(染病)은 요즘도 자주 쓰일 만큼 검질긴 생명력을 지닌 단어다. 돌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나라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 질병은 정치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병의 개념, 변천사를 통해서도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짚어볼 수 있다. 병의 영향력은 개인은 물론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미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문집이나 실록, 신문과 잡지, 사전에 나타난 어휘, 서양의 의학과 위생학 텍스트, 민속학 보고서, 문학 작품 등의 기록물을 섭렵해 병의 개념을 추적했다. 또 병이 전통 한의학에서 서양의학의 범주로 편재되면서 우리나라는 위생, 검역 등 근대적인 개념이 도입됐지만 식민지배가 강화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콜레라, 천연두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1821년 처음 발병해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콜레라(Cholea)는 한글학회가 해방 후 펴낸 큰사전을 보면 ‘고레라’ ‘코레라’ ‘호역’ ‘호열자’ 등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이 콜레라를 ‘고레라’로 음역하고 한자어로 ‘호열랄’(虎列剌)로 썼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호역(虎疫)이라고 했다. 호열랄이 ‘호열자’(虎列刺)가 된 것은 랄(剌)을 비슷한 글자인 자(刺)로 읽었기 때문이다. 콜레라는 처음에는 정체가 파악되지 않아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변강쇠가’를 보면 “아 그놈의 신사년(1821년) 괴질, 괴질”이라는 대목이 나와 대역병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엿보게 한다. 천연두는 두창(痘瘡)과 함께 마마라고 했다. 저자는 두신(痘神)이 만주어로 ‘마마’인 것으로 미루어 이 말은 병자호란 이후 생겨난 것 같다고 추측한다. ‘사람을 고치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라는 ‘의국’(醫國)과 ‘병든 나라를 고치자’는 ‘국병’(國病)의 개념은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이다. 인체의 병과 나라의 폐단에는 서로 상통하는 구조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병의국의 사상이 정점에 이른 때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이다. 저자는 다른 연구자들의 자료를 인용해 “독립신문, 황국신문에서도 국병담론이 적잖이 나왔지만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는 남달랐다”고 말한다.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천하의 명의를 모셔 국병의 위급함과 원인을 짚어내자는 ‘진찰국맥’(診察國脈·1908년 2월 14일자), 희망이라는 알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줄 테니 절망병을 깨자는 ‘희망보단’(希望保丹·1909년 4월 28일자) 등 1905년부터 1910년까지 74개의 기사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외로움이 무서울 때 친절이 구독을 구하리라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현대로 올 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또 고독해지고 있다. 인간은 왜 공동체와 분리돼 점점 비사회적 동물이 되고 있을까. 저자들은 그 원인을 진화심리학, 사회신경과학 등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외로움 극복의 방법을 제시했다. 대단한 게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울지 모르지만 ‘착한 사람’이 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인류가 아직 침팬지 등과 섞여 살던 시절에는 무리를 짓고 있을 때 생존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함께 있을 때 즐거움을 느끼고 외톨이가 될 때 불안감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전해지면서 인간은 유대감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니게 됐다. 유대감이 총족될 때 안전함을 느끼는 유전자도 전수됐다. 죄를 지은 사람을 사회에서 추방하는 그리스의 오스트라시즘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외로움, 고독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은 친구가 많은 사람보다 9년 안에 사망할 확률이 2~3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는가 하면,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고혈압 발병률은 37%, 스트레스 수치는 50% 더 높다는 조사도 있다. 사회적 고립에 따른 스트레스가 고혈압, 비만, 운동 부족, 흡연에 못지않게 사망원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저자 중 한 명인 카치오포는 사회심리학과 뇌과학을 접목한 사회신경과학의 권위자다. 그는 인간은 신체 내부의 평형을 유지하는 호메오스타시스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이것으로 여의치 않으면 고차원적인 알로스타시스를 동원한다고 말한다. 알로스타시스는 내분비계, 심혈관계, 면역체계 등 신체 전반의 기능을 조절하는 것으로, 이런 기능이 자주 동원되면 몸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필요한 생리적 비용은 커진다. 왜 외로운 사람이 건강에 취약한지를 말해준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뭘까. 친절이나 봉사, 용서와 화해 등의 작은 선행이 공동체를 살맛나게 한다. 이러한 것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균형 잡힌 상호주의 문화가 법과 제도 등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의나 호의가 배반이나 기만으로 되돌아오면 호혜적 관계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미국인들은 1985년만 해도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몇 명 있느냐는 질문에 3명이라는 답을 가장 많이 내놓았다. 그러나 2004년에는 한 명도 없다는 응답자가 25%에 이를 정도로 고독한 사회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인의 10%가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시달리고 유엔 아동기금(UNICEF)이 실시한 아동복지조사에서는 21개국 중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저자들은 공동체를 회복하면 사회적 비용이 훨씬 적게 들 텐데 미국은 아직 이런 것에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다고 꼬집는다. 우리에게도 먼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한국에서처럼 미국에서도 대형교회가 등장하는 현상 등이 책의 흥미를 더해준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부정청탁 금지 ‘김영란 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주말 인사이드] 부정청탁 금지 ‘김영란 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①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모든 공직자는 직무 관련 여부에 상관없이 형사처벌한다. ②모든 금품수수 행위는 수수액의 5배 이하 과태료를 문다. 단 직무와 관련 있거나 사실상 영향력을 통한 수수는 대가와 관련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할 수 있다. ①번과 ②번 사이에서 차이점이 느껴지십니까. ①번을 보면, ‘모든’과 ‘형사처벌’의 조합이 굉장히 강력해 보이죠. ②번에서는 형사처벌이 과태료로 수위가 떨어졌습니다. 형사처벌 대상은 일부로 제한됐고요. 얼마 전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룬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 얘기입니다. 지난해 8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면서 내놓은 법안인데요. ①번이 원안이었는데, ‘과잉 처벌’ 논란이 일면서 입법 작업이 1년 가까이 지체됐습니다. 결국 최근 총리 중재안으로 ②번을 채택했죠. ‘다소 낮아진 수위’를 두고 누더기 법안이 됐네, 의지가 후퇴했네 등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일까요? 실제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부정부패 척결 시늉만 낸 것처럼 말하지만, 공직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면서 바들바들 떨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체감도가 다른 걸까요. 대체 이 법안의 진실은 무엇이고 어떤 오해가 있는지, 낱낱이 파헤쳐 봅니다. 자, 먼저 용어 설명부터 해보겠습니다. 법안 이름에 있는 ‘부정청탁’은 언뜻 알겠습니다. 공직자가 불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하도록 ‘옆구리 찌르는’ 것이죠. 그런데 ‘이해충돌’은 감이 잘 안 옵니다. 이게 미국 공직자 윤리법에 있는, ‘컨플릭트 오브 인터레스츠’(Conflict of Interests)를 그대로 해석한 것이라 어색하죠. 공직자가 자신의 사적 이익이나 관계를 이용해서 공정하고 청렴한 업무 수행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습니다. 어떤 행동으로써 공직자 자신이나 가족, 친지가 이득이나 혜택을 봤다면 ‘이해충돌’에 속하는 겁니다. 권익위가 내놓은 이 법안은 총 6장 35조로 구성돼 있습니다. 2장이 ‘부정청탁의 금지 등’(3개 조)에 관한 것이고, 3장은 ‘금품 등의 수수 금지 등’(4개 조)을 내용으로 합니다. 4장이 ‘이해충돌’을 다루는데, 15조부터 24조까지 무려 10개 조항이 담겼습니다. 그런데 왜 ‘금품 수수’에 관한 것만 언론에 부각됐을까요. 금품 수수에 대한 처벌 조항에 ‘3년 이하 징역’ 같은 꽤 센 내용이 있기 때문이죠. 그동안 공무원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모두 인정된 경우에만 형법상 뇌물죄로 처벌했습니다. 권익위는 예외 없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 금품 5배 이하 벌금’에 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무원 상당수가 반대하고 나섰죠. “애가 아파 수술할 지경에 놓였는데 절친한 지인이 병원비에 보태라면서 200만원을 주었다면 징역을 살아야 하나”라는 논리였습니다. 법무부의 논리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입법을 할 때 고려해야 하는 ‘과잉금지 원칙’입니다. 양쪽 의견을 절충해 결국 총리 중재안이 나온 것이죠. 과연 대법원 대법관까지 거친 김 전 위원장이 이것을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권익위 관계자들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합니다. “우선 강력한 내용으로 밀어붙인 뒤에 접점을 찾아나가자. 어느 정도 물러서도 애초에 원하는 만큼을 얻을 수 있다.” 권익위에서는 “후퇴 논란은 억울하다”고 울상이지만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 사회부처 고위 공무원은 이 법을 두고 “부패의 사슬을 끊는 것과 더불어 공무원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평가하기도 하니까요. ‘금품수수’에 앞서 명시된 조항이 ‘부정청탁’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김 전 위원장의 법 제정의 의도에는 공직자가 청탁을 거절하고 싶을 때 활용하도록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 사회부처 사무관은 3만원짜리 화장품 세트를 받은 경험을 들면서 “껄끄러운 청탁을 거부할 이유가 생겼다”면서 반색합니다. 대부분 공직자가 이 부분에서는 같은 반응입니다. 한편 우리 국민도 이 조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아시나요. 공직자에게 직간접적으로 청탁을 했다가 딱 걸리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국민에게는 ‘공직자의 청렴하고 투명한 직무수행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책무가 있으니까요.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모두 중요하지만, 이해충돌 분야야말로 이 법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자행됐던 공직사회의 모든 부정부패 항목이 이 부분에서 거론됩니다. 공직자윤리법과 전관예우금지법에는 퇴직자 취업제한과 국가기관 사건수임 금지 조항이 있죠. 고위공직자가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퇴직 전에 맡았던 업무나 기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인데요. 이해충돌 방지법에는 그 반대되는 상황을 언급합니다. 아무래도 업무를 할 때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 이권 개입 여지가 농후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한 경제부처 공직자는 규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개방형직위라는 것이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만든 자리인데 전문가의 공직 임용에 제한을 두면 되겠느냐”고 의문을 드러냅니다. 이 규정에 단서 조항이 있긴 합니다. ‘국가의 안보·경제 등 공익증진 또는 민간부문의 전문성 활용 등을 이유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허용된 경우’입니다. 조금 애매하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해충돌 부문에서 열쇠말과 같은 것이 바로 ‘채용’과 ‘계약’입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공공기관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대놓고 가족을 채용하거나, 가족이 있는 사업체가 공공기관 공사 계약을 따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거죠. 이렇게 대놓고 이익을 챙길 수 있냐고요? 공직자들에게 물어보면 실제 사례가 속출합니다. 한 지자체 의회 의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A사업체의 대표 자리를 부인에게 넘겨 놓고는 지역 건설공사를 A사가 수주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외압을 넣는가 하면, 다른 지자체 고위직은 자신의 자녀를 채용하기 위해 채용 공고부터 절차까지 자녀에게 유리하게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자녀는 많은 이들이 꿈꾸던 7급 공무원이 됐고, 지금도 잘 근무하고 있다죠. 이 법이 제정되면 이런 공직자는 앞으로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합니다. 이렇게 ‘김영란법’은 예상 가능한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대해 다루고 처벌 조항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과태료 처벌이 공무원들에게 얼마나 심리적 부담감을 주는지 궁금하시죠? 안전행정부는 “과태료를 물게 되면 일단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면서 “여기서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으면 향후 승진과 승급에 지장을 받는 등 여러 불이익이 뒤따라 공무원에게는 치명적”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홍보 부족입니다. ‘금품 수수 시 처벌’만 조명하고 있어 실제 법안의 내용과 수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충남 지역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친족이 같은 지역에서 사업하는 공무원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하느냐”고까지 묻습니다. 안행부 관계자는 “법 체계상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 형법 등에 이 법안까지 얹혀 과잉입법 논란도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김영란법’에서 법 조항이 충돌할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옥상옥’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겁니다. 이 법안은 다음 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 외에 다른 조항이 삭제되거나 처벌 수위가 조정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군주의 조건’ 펴낸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

    [저자와의 차 한잔] ‘군주의 조건’ 펴낸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

    “리더로서 최고의 덕목은 수신(修身)입니다.” 조선 왕들의 결단과 행적을 추적해 ‘군주의 조건’을 낸 스피치 라이터 김준태씨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천착해 온 그는 조선 군주들의 리더십을 수신, 의리(義利·명분과 실리), 용현(用賢·용인술), 공효(功效·공을 들인 성과), 건저(建儲·후계) 등 다섯 개로 압축했다. “리더는 장점과 강점, 약점과 단점 등 자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된다”고 배경설명을 한다. 이익집단 간의 갈등 조정 등이 날로 어려워지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도덕적·인격적 완성체로서의 이상적 군주론은 공허해 보인다고 하자 “그래도 리더가 어떤 마음을 먹고 결정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여전히 도덕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이상론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올바름의 이치를 뜻하는 ‘의리’(義理)가 아니고 올바름과 이로움이 결합된 ‘의리’(義利)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에서 이를 읽을 수 있다. ‘의’(義)와 ‘리’(利)는 명분과 실리, 이상과 현실, 동기와 결과를 가리키는 다소 대립적이고 상충되는 개념이어서 하나로 묶기가 쉽지 않다. 그는 “명분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럴 때는 명분과 현실을 조율하여 지금 바로 이 상황에 알맞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명분을 선택하더라도 철저한 준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준비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명분과 의욕만 앞세워 청과 승산 없는 전쟁을 한 인조는 무모했다고 지적한다. 현실에서는 올바름과 이로움이 충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숙종 때 흉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는 청으로부터의 식량 도입을 논의한다. 그러나 아직도 삼전도의 굴욕이 생생한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반대의견이 높다. 하지만 숙종은 황제에게 감사인사만 표시하면 양식을 공급하겠다는 청의 제의를 받아들여 구호양식인 ‘서곡’(西穀)을 들여온다. 비록 원수의 나라라 하더라도 백성의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이로움이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는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흘러 현실을 도외시했다며 비판한다. “국가의 가장 큰 명분은 국가의 자존심이 아니라 구성원 자체입니다. 구성원들을 지켜내기 위해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군주의 도리이고 바로 진정한 명분을 따르는 일입니다.” 국가는 법(제도)과 사람(인사)의 양축으로 통치되고 법을 운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그래서 흔히들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세종의 통 큰 용인술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집현전의 초대 책임자로 자신의 장인인 심온을 죽이는 데 앞장선 박은을 임명하고 사사건건 반대하는 허조에게 이조판서, 영의정을 맡기며 함께 간다. 세종이 고집불통이라고 불평하면서도 허조를 계속 요직에 중용한 것은 그의 반대를 통해 발생 가능한 문제들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정책이 더욱 튼튼해지며, 정치가 더욱 건전해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포용력 있는 인사는 수신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공(功)을 들여 효험(效驗)을 내는 공효는 개혁과 연관된다. 그는 “리더는 시대상황에 맞게 제도를 적절하게 변화시켜야 하며 공은 나누고 책임은 짊어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어느 암행어사의 일기

    암행어사 하면 지방 수령의 비리를 치죄하던 ‘박문수’가 떠오르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민정시찰이라는 본분을 다하면서도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암행어사도 있었다. 암행어사 일기는 15종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은 후자에 관한 이야기다. 홍문관 부교리로 있던 저자는 43세이던 1822년 3월 16일부터 7월 28일까지 평안남도로 가 126일 동안 암행(暗行)하던 행적을 일기로 남겼다. 책에는 암행어사가 탐관오리를 혼내는 기록도 나오지만 암행어사의 풍속사, 생활사를 소개한 장면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저자는 임금으로부터 사목책(事目冊) 한 권, 마패(馬牌) 하나, 유척(鍮尺) 두 개를 하사받고 수행원 12명과 함께 추레한 행색으로 길을 떠난다. 4달 남짓 2654㎞에 이르는 4915리를 다녔으니 하루 21㎞를 이동한 셈이다. 평안도 지역의 21개 마을을 조사해 순안, 강서, 강동, 평양 등 모두 8곳에서 어사출두를 외친다. 암행어사 출두는 주로 높은 문이나 관아의 문 앞에서, 저물녘에 이루어졌다. 고을 노파로부터 수령의 이야기를 듣는 등 민심도 청취한다. 암행어사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보안이 가장 어려웠다. 5월 12일 일기를 보면 눈치 빠른 41살의 퇴기(退妓) 빙심(氷心)이 눈치를 채자 서둘러 자리를 뜨고, 역졸들에게 탐문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양, 파주, 장단 등 암행지역이 아닌 마을을 지나면서 수령들로부터 점심이나 저녁, 잠자리를 제공받았으니 아무리 옛날이라 해도 암행어사가 나간다는 소문은 새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무 수행 중에도 명승지 유람 등 틈틈이 즐긴 기록도 나온다. 평양에 들어간 7월에는 기생 만홍(晩紅)과 객고를 풀고 다음 날에는 순찰사와 함께 배를 타고 부벽루에 오른 뒤 밤에 내려오지만 구름이 껴 애석하게도 달 구경은 못한다. 임무를 대충 끝냈기 때문에 평안도 순찰사가 접대를 한 것이겠지만 암행업무가 한창이던 5월 용강현에서는 수령이 보낸 기생과 잠자리를 함께 했으니 당시 암행어사의 도덕관은 상당히 무뎠던 것으로 보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그들의 속셈

    뉴딜 정책이 한창이던 1933년만 해도 똑똑한 젊은이들은 공익 또는 평등을 위해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기조는 1968년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레이건이 집권하던 1980년을 기점으로 워싱턴은 부자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앞장서는 ‘우파의 도시’로 변신한다. 저자는 “우파는 좌파의 무능에서 미국을 구하겠다고 하지만 국가를 수익모델로 활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는 장사꾼”이라고 말한다. 책의 원제는 ‘난파선원’을 뜻하는 ‘더 레킹 크루’(The Wrecking Crew)로, 자신이 만든 정부를 스스로 파괴하는 보수주의자를 상징한다. 저자는 이전에 내놓은 책 ‘왜 가난한 자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등에서 보듯 보수주의에 비판의 칼날을 높인 진보 논객이다. 보수 행정부는 감세, 규제철폐, 민영화를 통해 정부의 효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임금삭감 또는 동결을 통해 우수 공무원을 내쫓고 업무를 민간에 아웃소싱한다. 정부 업무를 맡게 된 업체들은 보수주의 정치를 위해 거액을 기부하고 이 과정에 부패한 보수 정치인들은 로비스트로 나선다. 1975년까지만 해도 연방 공무원들은 민간 부문보다 10%가량 임금이 적었지만 1987년에 와서는 격차가 30% 가까이 벌어진다. 정부 각료들이 민간으로 이직하고 반대로 민간부문에서 정부로 이동하는 ‘회전문현상’에 가속도가 붙은 것도 ‘레이건 혁명’이 워싱턴을 휩쓴 1981년부터였다. 한발 더 나아가 보수 정부는 아웃소싱 업체를 감독하는 기관을 없애고, 연방기관의 업무에 적대적인 인물을 해당 기관의 장으로 임명하는 교묘한 수법까지 개발해 낸다. 저자는 이러한 부패구조와 생산성, 효율 우선주의 등의 문제가 축적돼 터져 나온 것이 2000년대 발생한 엔론 사태, 리먼브러더스 사태라고 주장한다. 보수의 부패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담합 등의 의혹이 제기돼 4대강 공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고위 공무원을 그만둔 뒤 로펌에서 한 달에 수억원을 받은 인물이 장관으로 임명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에 대한 비판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흘러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도 발견된다. 저자는 연방 공무원들이 1968년 이후 의약품 분야에서 노벨상을 일곱 번이나 수상했는데 보수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던 기간에는 한 번에 그쳤고, 이는 보수정권이 우수 공무원을 내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과학수사의 탄생기

    시체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체가 말을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사인을 규명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1920~1930년대 발생한 독극물 의문사 사건, 이를 파헤치는 검시관과 독성학자들의 활약상을 추적했다. 1920년은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 해. 금주는 필연적으로 밀주제조를 불러온다. ‘밀주와의 전쟁’의 전면에 나선 사람은 뉴욕시 검시관 찰스 노리스와 화학자 알렉산더 게틀러다. 금주법이 의회를 통과하는 등 숨통을 조여 오자 뉴욕의 술꾼들은 비밀리에 증류기와 저장 설비를 구축했다. 값이 싼 우드알코올(메틸알코올)은 손쉽게 증류할 수 있고 술맛도 괜찮았다. 밀주업자들은 우드알코올이 독성과 실명 및 사망의 위험성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우드알코올이 든 술을 내다팔았다. 노리스와 게틀러는 30명 이상이 독성에 중독돼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사망자들의 시신에서 적출한 간을 분석해 이들이 마신 위스키에 우드알코올이 상당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924년 뉴저지주 오렌지시 한 공장의 여자 근로자들이 시름시름 앓다 9명이 숨졌다. 이들을 사망으로 이르게 한 물질은 퀴리 부인이 발견한 라듐. 이들은 입술로 붓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시계 숫자판에 야광(라듐) 페인트를 칠하다 라듐을 조금씩 삼키게 되고, 결국 방사능에 오염돼 이가 빠지고, 입안이 헐고, 빈혈로 쇠약해지다 목숨을 잃었다. 노리스는 뉴저지에서 보내온 시신의 뼈에서 방사능을 검출하고 라듐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결론내렸다. 퀴리 부인도 라듐 중독을 피해갈 수 없었다. 라듐과 가까이 해온 그녀도 1934년 재생불량성 빈혈로 숨졌다. 라듐이 암의 크기를 줄이는 등 의학적 효능이 있지만 다량에 노출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책을 손쉽게 읽으려면 원소 등 화학에 대한 적지 않은 상식이 필요하지만 금주법의 풍선효과와 풍속사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연암·다산, 닮은 듯 달랐던 사상가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은 18세기를 함께 산 동시대인이자 조선후기 대표적인 사상가다. 두 사람은 실학자, 개혁파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물과 불처럼 대비된다. 10년 전 연암의 ‘열하일기’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책을 내 반향을 받았던 작가 고미숙씨가 두 사람에 대한 평전을 내놨다. 둘의 대표적 저서는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다. 전자는 연암이 중국 연경을 거쳐 청 황제의 하계 휴양지인 열하까지 여행하고 쓴 기행문이고, 후자는 유배지에서 18년 만에 완성한 수령들의 지침서다. 연암은 일기에서 정통에서 벗어난 패사소품(稗史小品)에서 기(記), 논(論), 서(序) 등 정통고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체적 실험을 한다. 청 문명의 세계적 위상, 중화주의의 허와 실, 티베트 불교와 서교 등을 망라하고 티베트 법왕 판첸라마, 한족과 만족의 여인네 등 다양한 인물을 다룬다. 반면 목민심서는 부임(赴任)에서 해관(解官)까지의 전 과정이 12편 72항목으로 정교하게 쪼개진다. 주석과 인용을 통해 출처를 밝히고 견문과 체험을 덧붙인 뒤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열하일기에서 자유분방함과 유연성이 느껴진다면 목민심서에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함, 모범생의 풍모가 읽혀진다. 저자는 연암과 다산은 다르다고 말한다. 박지원은 거구에 비만이고, 정약용은 작고 단단하다. 연암이 탁월한 문장가라면 다산은 방대한 저술가다. 문체와 세계관, 사상과 윤리에서는 평행선처럼 팽팽하지만 그렇다고 대립적인 것은 아니고 헤어지지 않으면서 계속 간다. 호를 통해서도 두 사람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연암(燕巖)은 ‘제비바위’처럼 자유롭고 매끄럽게 생을 흘러 다녔고, 다산(茶山)은 움직이지 않는 ‘차의 산’처럼 우직하게 살다 갔다. 연암은 1737년에 태어나 69세인 1805년에 숨졌다. 다산은 1762년에 출생해 75세인 1836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열하일기는 47세이던 1783년에, 목민심서는 56세인 1818년에 각각 완성됐다. 두 사람은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왕을 지낸 정조를 고리로 연결된다. 25세의 나이차가 있고 박제가·정석치 등 둘의 절친한 친구들이 겹치지만 만난 적이 없다. 연암이 50세이던 1786년 생계를 위해 뒤늦게 벼슬길에 오르고, 다산은 1789년 대과에 급제해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문체반정(文體反正)과 수원 화성 축조, 천주교 사태 등으로 서로 충돌할 법도 했지만 만났거나 부딪치지 않았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 펴낸 도시학자 최종현

    [저자와의 차 한잔]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 펴낸 도시학자 최종현

    건축에서 주가 되는 것은 궁궐이나 집 등 건축물 자체이지 나무와 풍경은 뒷전이다. 최종현 전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런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한다. 그는 최근 펴낸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에서 “옛 사람들은 인공물을 자연(나무, 풍경)과 조화시키는 경지를 보여 줬다”고 말한다. 서양 건축이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켰다면 중화문화권의 건축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건축이 하나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 보문단지를 설계하면서 일본인으로부터 나무를 모른다고 타박을 받았고, 이게 계기가 돼 조경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다. 고구려인들은 영원불멸을 믿어 왕이 죽으면 생전의 모습을 벽화로 남겼다. 4세기 무용총 고분벽화는 나무로 인해 수렵도(狩獵圖)와 우교차도(牛橋車圖)로 분할된다. 저자는 “이 나무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이자 신목(神木)으로, 국가와 부족 간 활동영역의 경계를 표시하는 장치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퇴계 이황이 만든 도산서원은 단순히 서당이 아니라 그의 학문세계와 평생의 수도정신이 담겨 있다. 도산서원은 ‘하늘이 명을 내려 부여한 것이 성(性)이며,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도를 수양하는 것이 교(敎)’라는 중용의 경구에 따라 나뉜다. 천연대와 천운대 등은 성, 즉 천리를 깨우치는 장치이고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등은 성을 따르는 도의 공간이다. 전교당, 상덕사 등은 도를 익히는 교육의 공간이다. 건축물 주변의 원림은 중요한 요소부터 배치하고 비중이 작은 것을 배치하는 ‘근접성의 사고’를 적용했다. 도산서당에서 정우, 절우, 몽촌 등의 순으로 연못과 뜰, 개울, 나무 등을 배치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건축에서 조경은 배경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배경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그는 “주변을 아우르면서 총체적으로 사물을 봐야 건축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며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면 모든 게 더욱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경의 철학적 바탕이 된 주역, 논어 등은 우리 것이 아니고 모두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이론을 제기하자 그는 “우리나라는 깊이 들어가면 막히지만 중국은 막힘이 없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취사선택하는 등 변형시켰다”고 답변한다. 도산서원은 주변의 자연을 받아들여 원림을 확장했다. 천연대와 천운대에서 마주 보이는 금계산은 80여리나 떨어져 맑게 갠 가을에만 보일 정도다. 퇴계는 이를 두고 ‘차경(借景)의 의(義)’라고 설명했다. 먼 곳의 경치까지 끌어들이는 차경은 중국에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더욱 발전했다. 경복궁 경회루나 영주 부석사도 차경법을 활용한 것이다. 문화나 문명이 교류를 통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말해 준다. 경치는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주변 것들과 어울려 더욱 빛이 난다. 아름다운 풍광이 아지랑이나 노을, 밤비와 어울려 운치를 더하고, 또 이를 묘사한 시나 글로 묘미가 더해진다. 소동파가 왕유를 칭송했던 ‘시 안에 그림이 있고, 그림 안에 시가 있다’(詩中有? ?中有詩)는 글귀처럼 글과 그림은 서로를 보완하면서 공간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공간과 지리, 건축을 연구하면서 글과 그림을 가까이 하며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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