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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퇴직자의 풍부한 경험 필요로 하는 곳 많아요”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퇴직자의 풍부한 경험 필요로 하는 곳 많아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유창복(53) 센터장의 별명은 ‘짱가’다. 짱가는 로봇 만화영화의 주인공이다. 그가 살고 있는 성미산 마을에 가면 아이들이 그렇게 부르며 달라붙는다. 성미산 마을은 익히 알려진 대로 공동 육아, 교육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에 걸쳐 있는 성미산에 몰려들어 형성된 커뮤니티다. 1996년부터 살아온 터줏대감인 데다 동네 아이들을 가르쳐 왔으니 그가 짱가라고 불리는 것도 당연하다. 자녀교육에 뜻을 같이하다 보니 웬만한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다 안다. 마을을 오가다 만나면 동네 일들의 진행상황을 물으며 안부인사를 대신한다. 나무 심기 행사가 있는데 올 수 있느냐 묻는가 하면 사업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하면 ‘○○아빠에게 부탁해 보라’고 한다. ●일상을 공유·공동관심사로 성미산 마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작은나무 카페를 중심으로 생성된다. 그 주변으로 두레 생활협동조합과 동네부엌이라는 반찬가게, 성미산 밥상이라는 식당이 늘어서 있다. 주민들이 들르면서 ‘○○엄마와 ○○가 ○○동아리를 만들었다’거나 ‘○○아빠가 마을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면 입에서 입을 통해 마을 전체로 퍼진다. 집에서는 이를 놓고 뒷담화를 한다. 또 학교 송년잔치나 아이들의 추수감사제 파티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주민들의 일상이 생활에 녹아들고 공동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특기 살려 동네일 척척 마을 일을 놓고 주민들 간에 협업도 척척 이루어진다. 생협 자금 문제가 걸리면 은행에 다니는 주민이 나선다. 축제 인쇄물은 디자인 회사에 다니는 전문가가 맡는다. 직업을 통해 체득한 특기로 동네 일을 도와주면 보람도 느끼고 존재감도 확인하게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을을 위해 기여하지 못해 아내의 눈총을 받던 남편도 마을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유 센터장은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살아온 50~60대의 풍부한 경험은 마을 공동체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IT(정보기술) 전문가는 게임에 빠진 아이의 멘토가 될 수 있다. 엄마가 야단을 쳐 봐야 자녀와의 관계만 악화될 뿐이다. 이럴 때 KT 퇴직자가 게임과 IT의 차이, 게임과 관련된 직업은 어떤 것이 있으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면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어줄 수 있다. ●청년들과 협업, 소통 감수성 높여 그는 마을 공동체에서 퇴직자들의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고 덧붙인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복지돌봄 서비스에 참여하면 자존감과 보람,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시니어들도 이런 일에 초대를 받으면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뻘쭘해서 잘 나서지 않지만 이 단계만 넘기면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관계 형성에는 자신이 있었던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니어들이 마을과 접속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또 베이비 부머가 청년들과 협업관계를 구축하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돼 자식과의 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받는 등 소통의 감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지역사회에서 ‘제2의 인생’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지역사회에서 ‘제2의 인생’

    일본 시니어들은 직장을 그만두면 지역사회의 일원이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동경대생’이 되고 심하면 ‘서울대생’이 된다. 일본 퇴직자들이 직장에서 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간다면 한국은 여전히 직장문화에 중독돼 지역으로의 귀환(歸還)이 원활하지 못하다. 최근 시니어 비즈니스 전문기업 시니어파트너즈와 교보생명이 공동으로 펴낸 ‘대한민국 시니어 리포트 2014’에 따르면 일본 은퇴 남성들에겐 ‘지역 데뷔’가 숙제라고 한다. 이는 일본의 젊은 엄마들이 자녀들이 유치원에 갈 시기가 되면 동네 공원에 나가 또래 엄마들과 사귀며 정보교환을 하는 ‘공원 데뷔’의 남성용 버전으로, 직장을 그만둔 50~60대들이 주변의 이웃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을 말한다. 동네마다 은퇴 남성들의 지역 데뷔를 돕는 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에선 보편적인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니어들은 은퇴 이후의 삶에 서툴다. 일부 여유계층은 오피스텔을 얻어 여전히 ‘출근’을 계속하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퇴직하면 ‘하바드생’에서 ‘예일대생’, ‘동경대생’을 거쳐 ‘서울대생’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거래처 관계자, 친구, 동창 등 만나자는 사람이 많아 할 일 없이 바쁜 하바드생이 됐다 조금 지나면 바쁜 일이 없는데도 일찍 일어나는 예일대생이 된다. 다음에는 동네를 배회하며 경치를 구경하는 동경대생이 됐다가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 후배들에게 서운해하며 울적해지는 서울대생이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은퇴증후군’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퇴직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된다. 주위와 관계를 형성하는 출발점은 이웃이고 동네와 마을이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들은 이웃을 잊고 일터 중심으로 살아왔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지역 중심의 공동체 생활에 연착륙하지 못하는 것은 오랜 직장생활로 인해 이웃과 소통하는 기능이 퇴화했기 때문이다. 퇴근한 뒤에도 회식 등으로 사무실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은 잠자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해 왔다. 아파트 중심의 단절된 주거문화도 지역과의 소통을 방해한다. 이러다 보니 삶의 무게중심이 회사 등 조직사회에서 집과 이웃 등 지역으로 옮겨졌는데도 여전히 직장문화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생활로 맺어진 사회적 관계망은 퇴직과 함께 대부분 종료되는 게 일반적이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게 아니라 업무적 필요에 따라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베이비 부머의 노후를 다룬 책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 “개인의 사회관계망은 크게 가족 등 친인척 관계망, 친구·동료 등 친근 관계망, 직장생활로 맺어진 공적 관계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이 공적 관계망”이라면서 “그러나 공적 관계망은 퇴직하면 급속히 붕괴돼 거의 무용지물이 된다”고 말했다. 시니어파트너즈와 교보생명이 1000명을 대상으로 현재 연락하는 친구수를 조사해 봐도 20대는 16명으로 많았으나 60대는 11명에 불과해 나이가 많을수록 관계망은 줄어들었다. 여기에 아내, 자식 등 가족들로부터 소외받으면 시니어들은 더욱 외로워진다. 퇴직자들은 이제 지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 주민들과 교분을 가져 관계망을 형성하면 소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시니어들이 지역사회에 손쉽게 편입될 수 있는 방법은 종교와 동호회 활동이다. 동네 교회와 성당은 비슷한 연배의 교인들을 그룹으로 묶어 교리공부를 시키면서 서로 안면을 익히게 한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지만 자주 만나게 되면 격의 없는 사이가 된다. 선호도는 교회보다는 성당이 높다. 성당이 교회에 비해 술, 담배 등에 대해 관대한 데다 구속력이 덜하기 때문이다. 테니스, 배드민턴, 조기축구회 등 동호회 모임도 지역과의 좋은 연결고리가 된다. 이웃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뛰어나다. 아줌마, 할머니들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동네 주민들과 수다를 떨며 친하게 지낸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커피동아리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황은자(71)씨는 길을 가다 동네 주민을 만나면 형님 커피 한 잔하고 가라며 집으로 불러들인다. 황씨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편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소통이 된다”면서 “다음에 만날 때는 훨씬 더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들은 쉬 마음을 열어놓지 못하고 간단한 수인사를 나누는 것에서 그친다. 상하관계의 조직문화에 익숙해 일상적인 관계 맺음에는 서투르기 때문이다. 송호근 교수는 같은 책에서 “일본의 퇴직자들은 마을에서 필요한 공공업무를 주로 맡는다”면서 “치안 유지, 복지 서비스 전달, 고령자와 장애인 돌보기, 환자 관련 서비스, 기타 소소한 공적 업무를 맡아 적으나마 소득도 올리고 사회에 공헌한다”고 말했다. 퇴직하면 동네 경치 구경하지 말고 동네에 녹아들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민자치센터나 사회단체도 퇴직자들이 자신이 가진 역량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stslim@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시니어는 창업보다 일자리 찾는 ‘창직’…젊은이들과 협업하고 돈 욕심은 버려야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시니어는 창업보다 일자리 찾는 ‘창직’…젊은이들과 협업하고 돈 욕심은 버려야

    잘나가던 대기업 임원, 퇴사 후 두 번의 실패, 은퇴 컨설턴트로의 변신. 은퇴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봉중(63)씨의 2003년 이후 삶의 궤적이다. 그는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50~60대에게 “시니어는 창업(創業)이 아니라 창직(創職)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젊은이들과 협업을 하되 욕심을 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1977년 신동아화재에 입사한 김씨는 18년 6개월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손해보험업계에 소문날 정도로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경영 악화로 예금보험공사로 넘어갔다 한화그룹에 인수되는 등 부침을 거듭했다. 주인이 세 번 바뀌었지만 계속 임원으로 살아남은 그는 2003년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새 일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여가정보사업에 뛰어들었다. 명지대 대학원에 들어가 당시로선 생소한 ‘휴(休)테크’에 대해서도 배웠다. 막 주 5일제가 도입되던 시점이었다. 놀 줄 모르고 일만 해 오던 우리 사회가 휴식에 대해 관심을 돌리던 때여서 잘될 것이라 생각했다. 극장, 축제, 날씨 등 대기업에 여가정보를 공급하는 등 사업이 될 조짐이 보이자 모 언론사 인터넷 매체가 뛰어들었고, 결국 주요 고객이 이탈해 사업을 접어야 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달리 우리나라는 소기업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대기업이 달려들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주변 사람이 선택적 복지사업을 하자고 해 2대 주주로 동업을 했다. 뮤지컬 관람, 국내외 여행, 도서 구입, 상해보험 가입 등 사원들의 기호에 맞는 부가 복지서비스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력 부족으로 사업을 매각해야 했다. 1대 주주는 주식을 싼 가격에 처분하고 빠져나갔지만 그는 빈털터리가 됐다. 아무리 친해도 동업하지 말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2008년 새 사업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다. 케냐,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70여일간 돌아다녔다. 탄자니아 커피 맛이 좋아 수입하면 돈벌이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커피는 여러 산지의 원두를 잘 블렌딩해야 더욱 맛이 난다. 유통업자들의 손에 놀아날 것이란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퇴직 당시 그의 재산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아파트와 퇴직금 1억원이 전부였다. 그나마 아파트는 융자금이 남아 있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려 사업에 투자했으나 사업 실패로 빚만 지고 말았다. 대학을 다니던 딸은 그럭저럭 졸업했으나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을 마쳐야 했다. 그는 꽤 공부를 하던 아들에게 남들처럼 지원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들은 직장에 들어가 지난해 학자금을 모두 갚았다. 2009년 다시 보험업계로 돌아왔다. 친구가 놀고먹을 수 없지 않느냐며 보험 영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2년간은 그럭저럭 벌이가 괜찮았으나 도와주던 사람이 하나둘 퇴사하면서 사정이 어려워졌다. 여러 차례의 실패를 통해 그는 준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 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이 때문에 그는 퇴사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에게 은퇴 준비를 하고 회사를 그만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는 새로운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해 오던 분야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자신이 평생 해 오던 분야와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라. 자격증을 따면 좋지만 못 따도 괜찮다. 공부하면서 그 분야를 종합, 정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틈새 아이디어도 나온다. 그래도 안 되면 도서관으로 가라고 권한다.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고 아이디어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2011년 공인중개사 시험에 매달렸다. 공부하면 시간이 잘 가고, 자격증을 따 젊은이와 공동으로 사무실을 내면 노후에 갈 곳도 생긴다.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나 9개월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협동조합이 시니어들에겐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해 강의를 들었다. 2012년 6월에는 ‘우선은 휴식이 필요해’라는 책을 냈다.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두면 일단 머리를 식히고 다가올 20~30년의 노후를 위해 재충전(공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업 실패의 경험담도 녹였다. 베이비부머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여서 책은 제법 팔렸다. 강의 요청도 들어왔다. 앞서 여가정보사업을 하던 2005년에도 ‘주말을 잘 공략해야 인생이 성공한다’라는 책을 냈다. 시니어는 겸손하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두 차례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인지 창업에 대해선 조심스럽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 아니냐고 묻자 보수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디지털과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는 쏠림 현상이 심해 1등 기업에 모든 것이 집중된다. 2등 기업도 3년을 보장할 수 없다. 시니어가 창업을 하려면 젊은이들과 협업하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시니어는 두뇌를 팔기에 한계가 있는 데다 체력적으로 처지기 때문이다. 창업은 젊은이에게 맡기고 시니어는 일자리를 찾는 창직에 만족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과욕을 버리고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협업을 하라는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서울 광진구 능동 손해사정 사무실로 나간다. 직장 후배가 손해사정 자격증이 있는 그에게 도와 달라고 해 한 귀퉁이에 책상을 갖다 놓았다. 후배는 6개월이 지나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1년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의외의 변수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매출을 신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용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무실에 자리를 내준 것만 해도 고맙다며 급여는 수익이 발생하면 그때 줘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25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보험 영업을 통해 80만원 정도 벌고 강연이나 글 쓰는 것 등을 통해 70만원 안팎, 국민연금 100만원 등이다. 다행히 어려운 형편을 알게 된 지인이 기업체 감사 자리를 줘 2012년 12월부터 별도의 보수를 받고 있지만 이 돈은 모두 융자금과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간다. 감사 임기가 끝나기 전에 아파트를 처분해 빚을 청산할 계획이다. 그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 뭔가에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연초에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주관하는 ‘2014년 박물관대학 특설강좌’에 등록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역사에 대해 강의하는 것으로 연 32회에 회비는 48만원이다. ‘고대 동아시아 세계와 한국 고대사회’ 강의를 듣고 자신의 블로그 ‘시니어 도서관’(www.100w.kr)에 ‘오늘 김춘추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선덕여왕 때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중국 문화 수용, 고구려 침략 방안 등을 제시해 삼국을 통일했다며 여성 대통령이 남북통일에 관심이 높은 만큼 김춘추 같은 명 전략가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5시간 걸려 이 글을 썼다. 힘들지만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생활이 의미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나이 들어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여가 활동은 책 읽고 글 쓰는 것이다. 돈이 들어가지 않고 젊은이 등 다양한 계층과 대화를 할 수 있다. 그가 은퇴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자세가 몸에 뱄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동국대 행정대학원에 나가 은퇴학 강의를 했다. 올해는 고려대 평생교육원에 나가 ‘스타강사되는 법’에 대해 강의한다. 그는 항상 노란색 넥타이에 노란색 손수건을 가슴에 꽂고 강의를 한다. 노란색은 어린이를 상징한다. 시니어는 어린이로 새로 태어난 것과 다름없으니 어린이처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그는 명함이 6개나 된다. 손해사정 등 업무와 연관된 것이 3개이고 나머지 3개는 글 쓰는 것과 관련돼 있다. 시니어들의 은퇴 생활을 안내해 주는 시니어파트너즈 앙코르 스쿨의 강사를 하며 글을 쓴다. 또 KDB 시니어브리지센터 두드림 기자단의 일원이며 서울시의 서울인생이모작센터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85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처럼 여행 중 짧게 병을 앓다 숨지는 상상을 해 본다.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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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통상자원부 ◇파견△미래창조과학부 중앙전파관리소 전파관리과장 정경회△중소기업청 기업혁신지원과장 나성화 ■보건복지부 △기초연금사업지원단장 류근혁△국민연금정책과장 김현준 ■국토교통부 △서울국토관리청 하천국장 인기환△대전국토관리청 도로시설국장 김철민△예산국토관리사무소장 박희성△부산국토관리청 도로시설국장 임광수△부산국토관리청 하천국장 김광덕△한강홍수통제소 하천정보센터장 이재형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장 이종희△고도보존육성과장 김삼기△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 김덕문◇국립무형유산원△기획운영과장 이길배△전승지원과장 홍두식△조사연구기록과장 연웅△무형유산진흥과장 유재은◇4급 승진△대변인실 윤혜영△정책총괄과 정성조 ■강원도 △보건정책과장 양금란△식품의약과장 남원욱△동계올림픽추진본부 시설1과장 박병진△동계올림픽추진본부 시설2과장 박재명△여성청소년가족과장 김영녀△보건환경연구원 총무과장 박태영△인재개발원 교육연구실장 직무대리 손인주△한국여성수련원장 신주호△동해안경제자유구역청 개발사업과장 직무대리 최종상 ■신한금융투자 ◇지점장 <신규 선임>△유성 선희찬<전보>△대전둔산 김미라◇센터장△신한PWM대전센터 개설준위비원장 이성훈 ■코엑스 △기술사업본부장 유선수 ■한국얀센 △향남공장장 마이클 최 ■한국감정평가협회 ◇상근 임원△상근부회장 신순철△선임부회장 최호근△기획이사 김윤철△업무이사 이기수△부동산이사 연광철 ■포스코 ◇경영임원 <상무 신규선임>△광양연구소장 주상훈△CSP 법인장 김동호△포항연구소장 윤한근△광양 선강담당 부소장 최주△선재마케팅실장 강석범△투자엔지니어링실장 권우택△강건재열연마케팅실장 방길호△POSCO-Vietnam 법인장 윤양수△광양 행정담당 부소장 양원준△포항 STS담당 부소장 이은석◇전문임원 <전무 직위승진>△기술위원 정철규 유성 황석주<상무 신규선임>△연구위원 이창선 김교성 이상호 한찬희△기술위원 홍문희 양성식△마케팅위원 이영우△원료위원 유병옥 신학균 하경식△재무위원 오숭철△법무위원 원형일△전략위원 배재탁△인사위원 이주태◇출자사→포스코 전환 <상무>△홍보위원 곽정식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대기업 퇴직 후 전통공예로 제2인생 이맹호씨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대기업 퇴직 후 전통공예로 제2인생 이맹호씨

    이맹호(55)씨는 정년퇴직을 4년 앞둔 지난 2010년부터 노후를 위해 투자를 하고 있다. 그는 회사를 다닐 때 친구와 등산을 다니면서 종종 사찰을 찾았다. 그는 이때 절에 새겨진 단청이 궁금했다. 어떻게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색을 칠했을까, 색은 어떻게 배합했을까…. 언젠가 한번 배워보리라 마음먹었다. 그가 투자하고 있는 것은 단청(丹靑)과 각자(刻字)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 이씨는 학창시절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술을 직업으로 가지면 춥고 배고프니 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 말에 따라 건축학도가 됐다. 적성보다 먹고사는 게 우선이던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뒤 1984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입사했다. 초년병 때에는 현장에서 살았다. 명절에나 쉴 수 있었지 거의 매일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가끔 틈이 나면 수채화를 그렸다. 우연히 삼성생명 전산실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사무실에서 편하게 근무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당장 동네 전자정보처리(EDPS)학원에 등록하고 대학에서 2년간 컴퓨터공학을 더 배웠다. 그리고 삼성중공업으로 옮겨 줄곧 전산계통에서 일을 했다. 밀레니엄으로 온 세상이 흥분하던 2000년 앞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미래의 계획표를 세웠다. 엑셀의 가로변에 부모님, 나와 아내, 두 자녀의 나이를, 세로변에는 연도를 적어놓고 직장생활은 언제까지 할 수 있고 자녀교육과 생계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인지 등을 따져봤다. 아내에겐 120세까지의 일정표를 보여주면서 “앞으로는 ‘60 인생’을 두 번 사는 시대”라고 말했다. 친척 어른들이 90세까지 사는 장수집안이라 이야기했지만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을 계기로 장수시대에는 직장을 그만두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라 은퇴 이후의 긴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친구, 동료 등 주위 사람들에겐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고 수시로 업그레이드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50이 가까워지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대학에서 4년 배워 25~30년 가족들과 산 지금까지는 전반기 인생이다. 마찬가지로 남은 후반기 인생을 지내려면 4~5년간은 배워야 한다.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세대는 재력이 있는 60~70대이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전통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문화는 후손들에게 계승이 되어야 한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규강좌를 개설한다는 게 눈에 띄었다. 침선, 전통자수, 소목 등 14개 강좌가 있었다. 미술에 대한 동경, 건축학도, 등산하면서 가진 단청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단청에 눈이 갔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고건축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문도 배워둔 터였다.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일을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에 2010년 3월 단청 기초반에 등록했다. 단청은 오전에 수업이 진행됐다. 토요일 인천서 올라와 강의 하나만 들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에 개설된 각자 기초반에도 등록했다. ●단청과 각자 전통공예 강좌는 매주 토요일 3시간씩 32주 동안 진행된다. 이씨는 2010년 기초과정을, 2011년에는 연구과정을 이수했다. 2012년부터는 전문과정에 등록해 단청은 3년째 배우고 있다. 각자는 2년간 배운 뒤 올해부터는 공방에서 선배, 동료들과 수련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5년간 토요일과 일요일은 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살았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강의를 들은 뒤 밤 10시까지 배운 것을 실습하고 인천행 마지막 전철에 올랐다. 직장이 끝난 뒤에도 실습실을 찾았으며 해마다 맞는 여름휴가도 작품을 위해 반납했다. 단청은 청·적·황·백·흑색의 오방색을 사용하여 목조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린 것을 말한다. 각자는 글을 새기는 것, 즉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목각판을 각자 또는 서각(書刻)이라고 한다. 단청이 회화라면 각자는 조각이자 공예다. 단청은 붓으로 덧붙이고, 각자는 칼로 깎아낸다. 극과 극의 관계이지만 숭례문에서 보듯 둘 사이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단청이 없는 숭례문과 현판이 없는 숭례문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청은 기본색을 바탕으로 따뜻하고 차가운 색이 보색관계를 이루어 화려하다. 또 기본색을 바탕으로 1빛, 2빛, 3빛의 단계를 둬 채색돼 평면인데도 음영과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각자는 우직하고 담백하다. 오랜 세월 나무가 건조되기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고 나무, 칼과 궁합이 맞아야 작품이 나온다. 글자를 새겨놓으면 죽은 나무가 새로운 생명을 얻어 재탄생한다. 단청반은 젊은 여성들이 많아 활기차고 개성이 강하다. 나이 든 남성이 많은 각자반은 진중하다. 이씨는 단청반이 ‘치맥’(치킨과 맥주)이라면 각자반은 막걸리에 빈대떡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에게 감사한다. ‘맥가이버 칼’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던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바탕으로 ‘단청 한글’, ‘봉황도’ 등 작품을 만들어 2013년에 열린 제1회 단청 전수동문 기획전 등에 출품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오늘 만나는 사람과’ 등의 글을 새겨 제5회 각자전수동문전 등에 선보였다. 또 문화재수리기술자 화공(畵工) 자격증도 취득했다. 지금까지 단청과 각자를 배우는 데 들어간 비용은 2000만원가량 된다. 과목당 연간 수강료 88만원에 100만원 정도의 재료비 등 한해에 400만원이 들어갔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후회되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마음먹은 대로 진행돼 왔다”며 “70~80세가 될 때까지 할 일이 생겼기 때문에 노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현재와 미래 그는 지난해 말 55세로 회사를 정년퇴직했다. 그렇다고 생활이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종전과 같이 아침 5시 20분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은 뒤 전통공예건축학교와 서울 뚝섬에 있는 공방을 오가며 밤늦게까지 단청과 각자에 매달리다 집으로 돌아간다. 결혼을 일찍해 딸은 출가했고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 가장으로서의 부담은 많이 덜었다. 그렇다고 생계유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32년 다녔지만 크게 벌어놓은 것은 없다. 1984년 인천으로 이사 간 뒤 줄곧 그곳에서 살 정도로 재테크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부었다. 우선 생활비는 100만원 선에서 맞추려 한다. 경조사비를 줄이고 낭비요소를 줄이는 등 생활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당분간 생활비는 실업급여로 충당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을 타려면 6~7년 더 있어야 한다. 이 기간에 내야 할 국민연금은 개인연금에서 일시불로 낼 생각이다. 국민연금을 노후생활의 보루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여유자금이다. 장기적으로는 거주지를 옮길 생각이다. 인천의 아파트를 빌려주고 지방에 집을 구하면 차익이 발생하는데다 생활비도 적게 들기 때문이다. 가까운 강화도와 경기 양평을 알아봤지만 형편에 맞지 않아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 그는 단청과 각자를 단순한 취미생활을 넘어 수익과 연결시키려 한다. 이미 연꽃 문양의 단청 작품을 컵 받침대, 포장지로 활용할 것을 기업에 제안했다. 전통문양 중의 하나인 삼족오(三足烏)를 새긴 장식용 액자도 만들었다. 장식용 솟대도 만들어 제안서를 냈다. 솟대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세우는 긴 장대로 명함이나 가족사진 꽂이가 된다. 단청 기초반이던 2010년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단청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복지관이나 방과 후 교실에서 어르신이나 학생들에게 단청, 각자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시골로 내려가 단청·각자를 기반으로 한 전통문화마을을 만들고 싶다. 공방에서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단청·각자 교육과 체험행사를 하면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 공예품이 지역의 특산 농산물과 어우러지면 상생의 효과도 기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후가 불안하고 무료하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다. 미래를 위해 투자했기 때문이다. stslim@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은퇴 후 서예 작가로 ‘70~80세 대기만성’ 야망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은퇴 후 서예 작가로 ‘70~80세 대기만성’ 야망

    동암(東庵) 박병희(73)씨는 지난해 한국미술협회의 서예부문 초대작가가 됐다. 문학으로 치면 문단에 등단한 셈이다. 골프를 그만둔 뒤 2002년부터 붓을 잡았으니 11년 만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에서 입선 2회, 특선과 우수상 각각 1회 수상을 했다. 입선은 1점, 특선은 3점, 우수상은 6점, 대상은 9점이 주어지는데 기본 점수인 10점을 채운 것이다. 여기에 9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해 당당히 미협 회원이 됐다. 초대작가가 된 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씩 서울 송파구청의 문화교실에 나가 서예를 가르치고 있다. 손에 쥐는 건 별로 없지만 무엇보다 나갈 곳이 생긴 데다 대기업 퇴직 이후 없었던 명함을 다시 갖게 돼 기쁘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다.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는 뜻으로 느지막하게 한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룰 때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다. 60~70세 인생이던 시절 대기만성은 40세였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는 70~80세에도 일가(一家)를 이루기에 충분하다. 물론 90세, 100세에도 가능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다. 하루 3~4시간씩 1년간 매달리면 1000시간이 조금 넘는다. 이렇게 10년간 노력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60대에 새로운 것을 배워도 이젠 대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박씨 역시 지난 세월 매일 3~4시간씩 서예에 매달렸다. 선생님이 체본을 써 주면 열심히 베껴 쓰고 집에 가서도 붓을 잡았다. 최근에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낮에는 정신이 산만해 글 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 마음을 깨끗이 한 뒤 한획 한획 공을 들이면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든다. 2009년 스카이라이프에서 퇴직한 동원(東園) 김성현(60)씨도 늦깎이 서예가가 되려 한다. 퇴직을 앞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동료들과 골프도 쳐 봤지만 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불현듯 어렸을 때 미술을 하고 싶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다른 길을 가고 말았다. 퇴직한 다음 해인 2010년 서실을 찾았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문득문득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미술이 생각났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차츰 서예에 빠지게 되자 넉넉하던 시간이 모자랐다.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식사하라고 하면 짜증이 날 정도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글이 달라졌다. 재미있고 신기했다. 더 글에 매달리게 됐다. 그는 지난해 서예대전에서 입상했다. 굉장히 빠른 편이다. 입선을 하고 나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성취감, 만족감과 함께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느끼는데 어떻게 서예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기만성의 행렬에는 운학(雲鶴) 조강래(77) 연세대 명예교수와 송연(松姸) 정선희(60·여)씨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죽암서실에 나와 글을 쓰고 있다. 호는 죽암서실 여성구 원장이 지어 줬다. 특히 조씨는 부부가 함께 나오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취미 생활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우리 부부는 밥상을 치우고 나면 바로 글을 쓴다”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조씨도 “글이 잘 써지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을 느끼니 일요일에 등산을 갔다 와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바로 글 연습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는 붓을 잡은 지는 20년이 됐으나 본격적으로 수련한 것은 10년이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해 지금까지 7점의 점수를 쌓았다. 초대작가가 되려면 3점을 더 쌓아야 하는데 올해는 무난히 관문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서예는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데다 나이가 들어서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서 “무엇보다 글을 쓰고 나면 즐겁고 마음이 깨끗해져 좋다”고 말했다. 집 안에 작업실이 없는 정씨는 그래서 자녀들에게 빨리 결혼해서 나가라고 압박하고 있다. ■나이들수록 부부함께 취미생활 좋은 취미는 평생의 동반자이고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여유가 없어 취미 활동에 눈을 돌리기 어렵지만 은퇴 이후 시간이 많아지면 사정이 달라진다. 여 원장은 80대 노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년까지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니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무료했다. 북한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바라봐도 오라는 곳이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평생을 함께 하는 취미가 있는 당신이 부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예는 집중하고 몰두해야 하는 작업이다. 잡념이 생기면 잘 써지지 않는다. 서예는 글을 쓰는 것이기도 하지만 글의 내용도 음미하게 된다. 자연히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여 원장은 “말은 입 밖으로 내뱉으면 사라지지만 글은 써서 걸어 놓으면 오랜 세월 남는다”면서 “중국 한자가 예술로 승화한 것은 서예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퍼포먼스가 가미되는 등 서예가 정적인 것에서 동적인 것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그는 또 “글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라면서 “몇백년 전의 글을 보면 그들의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대로 글이 계속 발전하니 표구해서 걸어 놓은 글도 몇달 뒤에 다시 봤을 때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멋진 글이 걸려 있으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다. 박씨는 자녀에게 명심보감에 나오는 ‘지락(至)은 막여독서(莫如讀書)요 지요(至要)는 막여교자(莫如敎子)다’라는 글을 써 줬다. 지극한 즐거움은 독서만 한 것이 없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만 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손자, 손녀의 친구들이 놀러 와서는 액자를 보고 ‘너희 할아버지 참 멋지다’며 부러워하고, 사위도 작품을 걸어 놓으니 집안 분위기가 한결 품위 있어졌다고 좋아한다. 글을 표구해서 주면 받는 사람도 굉장히 기뻐한다. 그래서 그는 ‘서예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멋진 작품 집안 분위기 품위있게 서예는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실력이 는다. 여 원장은 “젊었을 때는 수양이 덜 된 탓인지 글이 날린다”면서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지고 삶의 연륜이 더해져 글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서실의 막내인 김씨는 “다른 취미는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발전이 없지만 서예는 노력하면 글이 좋아지고 발전한다”면서 “하루하루 글이 달라지니 더욱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씨도 “추사 김정희는 운명하기 3일 전 봉은사 창고의 현판을 썼다”면서 “글은 붓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생명이 있을 때까지 가능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인성을 길러 주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에게 서예를 가르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내친김에 5년 뒤 77세에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생활 자세, 마음가짐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엇을 쓸 것인가, 서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열심히 구상하고 있다. 생활에 활력이 넘치고 정신을 더욱 집중하게 된다. 요즘에는 논어와 맹자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명제를 찾기 위해서다. 또 매주 토요일 산에서 잠을 자는 ‘비박’을 한다. 어지간한 추위에도 이를 거르지 않는다. 글을 쓰는 데는 하체의 힘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체력을 기르려는 것이다. 정씨는 “일본 방송을 보니 80세에 지공예를 배운 할머니가 100세에 개인전을 열더라”면서 “100세인데도 작품이 굉장히 동적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서예는 나이 든 사람의 경륜과 품격을 더 높게 만들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퇴직 후 직장 동료나 고교 동창 모임 등에 나가면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간 레코드판처럼 되풀이된다. 과거의 무용담이나 실수담, 직장 상사의 험담 등이 대부분이다. 한두번은 재미있지만 계속 이어지면 식상하다. 김씨는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니 즐겁고 뭔가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정씨도 “서예를 배운 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일이 재미없어졌다”면서 “서실에서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들의 대기만성 행렬이 어떻게 꽃을 피울지 기대된다. stslim@seoul.co.kr
  • 천국을 누비다…‘설국의 고장’ 日도호쿠 3현을 가다

    천국을 누비다…‘설국의 고장’ 日도호쿠 3현을 가다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등 일본의 3개 현은 혼슈의 동북 끝에 있다. 이 지역은 외진 곳인 데다 농업 외에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해마다 인구가 줄고 있다. 그러나 일본 내 변방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은 한적함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있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 쾌적한 환경, 잘 다듬어진 아늑한 시골 풍광은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국토교통성 동북운수국 국제관광과의 기무라 다카히로 전문관은 “이곳은 도시인들이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겨울왕국] 핫코다 설산서 5월까지 눈꽃 스키… 아오모리 시내선 벚꽃 만끽 겨울을 달궜던 설원(雪原)이 봄기운에 하루가 다르게 힘을 잃고 있다. 스키 마니아들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아오모리시 핫코다(1584m) 산은 아직도 눈의 세계다. 아오모리는 연간 강설량이 426㎝에 이를 정도로 일본에서도 눈이 많은 지역이다. 하루 최대 적설량은 82㎝다. 여기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4~5도에 불과해 오랫동안 눈이 녹지 않는다. 일본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핫코다 산 자락에 자리한 스키장은 5월 중순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아오모리현 관광국제전략국 관광교류추진과의 사카모토 슈헤이는 “스키장은 아오모리시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여서 4월이 되면 시내에서 벚꽃을 구경한 뒤 산에서 눈꽃을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정상부에서는 수빙(樹氷)이 반긴다. 수빙은 빙점 이하로 냉각된 짙은 안개가 나무에 달라붙어 형성된 하얀 얼음층으로 일명 ‘스노 몬스터’로 불린다. 말 그대로 기괴한 괴물이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설질(雪質)은 수분이 적은 데다 입자가 고운 스노 파우더여서 최상이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올 수도 있고 상급자의 경우 신고를 하면 수빙과 숲 속을 자유롭게 활강할 수도 있다. 인근에는 1954년 국민보양온천 1호로 지정된 스카유 온천이 있어 스키어들의 피로를 풀어 준다. 센닌부로(千人風呂)라는 혼욕 대욕탕이 유명하다. 아키타현 모리요시 산에 있는 아니 스키장은 슬로프가 삼나무와 너도밤나무 군락지 사이에 형성돼 있다. 눈을 이고 있는 삼나무의 푸른 잎과 알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너도밤나무의 앙상한 가지가 대비된다. 스키장 정상에서도 수빙을 구경할 수 있다. [설국열차] 스토브열차 속 난로에 손 녹이고… 내륙열차 창밖 설경 보며 맘 녹이고 아오모리현의 스토브열차와 아키타현의 내륙열차는 완행열차다. 나카사토와 고쇼가와라 역을 왕복 운행하는 스토브열차에 오르면 객실과 승무원 모두 1950~60년대 모습 그대로여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객실 가운데에는 석탄 난로가 설치돼 있어 오징어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종종 들려오는 신호등 소리도 한가하게 울린다. 내륙열차는 기타아키타시 다카노스역과 센보쿠시 가쿠노다테를 잇는 협궤 전철이다. 차창 사이로 아키타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쉴 새 없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열차는 연간 2억엔(20억원)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광객이 찾아 명백을 잇고 있다. 두 열차가 고속철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빠름이 아닌 느림 때문이다.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풍토와 여유가 부럽다. 이와테현에 있는 히라이즈미는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불교 유적지다. 홋카이도·도후쿠 지방에서는 처음이고 일본 전체로는 16번째다. 히라이즈미 문화유산은 주손지 절(中尊寺), 모쓰지 절(毛越寺), 무료코인 유적지(觀自在王院跡) 등으로 이뤄져 있다. 주손지에는 일본 국보 1호인 곤지키도(色堂)가 보관돼 있다. 곤지키도는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 48개 불상을 금으로 장식한 것으로 이곳을 통치했던 후지와라가의 1대손 기요하라가 1124년 만들었다. 불상에다 변하지 않는 금을 입혔으니 영원불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읽을 수 있다. 모쓰지는 2대손 모토히라가 건립한 사원으로 ‘정토의 세계’를 표현한 정원이 복원, 정비돼 있다. 무료코인 유적지는 3대손 히데히라가 교토의 뵤도인 사찰을 본떠 만든 사원으로 현재는 연못 터와 초석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페스티벌] 메밀국수 먹기 대회선 추억 쌓고… 가마쿠라 축제선 소원빌며 情 쌓고 겨울은 관광 비수기다. 추워서 야외 활동을 하기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북 3개 현은 아기자기한 축제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고 있다. 이와테현 하나마키시에서는 매년 완코소바(메밀국수) 대회가 개최된다. 56회째를 맞는 올해 대회는 지난 11일 열렸다. 하나마키의 메밀국수는 에도시대 도쿄로 가던 영주 남부토시나오가 완(椀)이라는 작은 그릇에 대접받은 메밀국수가 너무 맛있어 여러 차례 더 먹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대회는 소년부, 일반부, 여자부 등으로 나뉘어 완에 담긴 메밀국수를 누가 얼마나 먹는가에 따라 순위가 정해진다. 많이 먹는 것을 자랑하는 것보다 미련한 짓이 없다지만 친구, 부모들이 북과 함성을 울리며 열띤 응원전을 펼치자 대회는 달아올랐다. 보통 여자는 50그릇, 성인 남자는 70그릇을 먹는데 역대 최고 기록은 254그릇이라고 한다. 승패를 떠나 참가자들에겐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고 시에서는 메밀을 홍보하고 비수기 특수를 창출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남는 장사다. 아키타현 요코테시는 인구 10만의 소도시지만 가마쿠라 축제가 열리면 이틀 동안 3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다. 가마쿠라는 눈으로 만든 눈집으로, 안에 물신(水神)을 모시고 집안의 평화와 안녕, 한 해의 풍작을 기원한다. 축제는 400년이 넘었으며 관광객들은 시내 곳곳에 설치된 가마쿠라를 순회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아오모리 고쇼가와라시에서는 해마다 8월 다치네푸타 축제가 열려 지난해에는 130만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높이 24m, 무게 19t에 이르는 대형 무사 인형 3개를 앞세우고 춤과 노래를 추며 시내를 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축제는 여름에만 반짝하지 않고 사시사철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시내에 다치네푸타 상설 전시관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까이서 다치네푸타를 볼 수 있으며 제작 과정을 견학할 수도 있다. 글 사진 이와테·아오모리·아키타(일본)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동북 3현을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비행기로 센다이로 간 뒤 기차를 이용하거나 아오모리와 아키타 국제 공항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센다이는 아시아나항공이 월·수·금·일요일 주 4회 운항한다. 센다이공항에서 JR센다이역까지는 지하철로 25분 걸리며 센다이역에서 신칸센을 타면 이와테현 모리오카까지 44분 걸린다. 아오모리는 수·금·일요일, 아키다는 월·목·토요일 각각 주 3회 대한항공이 뜬다. 항공편수는 항공사 사정에 따라 조정되며 비행 시간은 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주변 볼거리 아키타현 도와다하치만타이 국립공원 기슭에 있는 유토온천은 역사가 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온천이다. 온천이 여러 개 있지만 학이 내려와 상처를 치유했다는 뽀얀 우유 빛깔의 쓰르노유 온천이 유명하다. 아오모리현의 오이라세 계곡은 울창한 수림에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흘러 봄부터 가을까지 트레킹하기에 좋다. 도와다 호수의 겨울 축제도 볼 만하다. 눈 조각상을 구경할 수 있으며 눈으로 만든 얼음집에서 술과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은퇴, 10년 전부터 준비했지요”… 소액대출 심사로 재능 기부 큰 보람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은퇴, 10년 전부터 준비했지요”… 소액대출 심사로 재능 기부 큰 보람

    “보증은 부자간에도 서지 않습니다. 다시는 보증을 서지 마세요.” 기업은행 지점장 출신 장기명(59)씨는 유모씨를 따끔하게 혼냈다. 유씨가 1500만원을 빌리면서 자신이 아닌 아내 이름으로 대출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용불량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유씨는 친구와 동생의 보증을 서다 빚을 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 대출명목으로 낸 병원 빌딩 주차관리사업은 전망이 밝아 대출서류에 사인을 해줬다. 대신 보증을 잘못 섰다가는 패가망신할 수도 있다며 단단히 주의를 줬다. 마음 약한 남편의 성격에 속을 끓던 유씨 아내도 고마워하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107의 37 사단법인 희망도레미 이사다. 이사라는 직책을 달았지만 월수입은 50만원 안팎이다. 30%는 사무실 유지관리비로 떼고 나머지는 경비로 쓰니 실제 손에 쥐는 건 거의 없다. 그래도 항상 기쁘고 생활에 활력이 넘친다. “친구들을 만나 술 마시고 등산 가는 것보다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며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퇴직 이후의 삶은 돈보다는 사회공헌 등 자존감을 찾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삶입니다.” 장 이사는 은퇴한 이후 더욱 재미있게 산다. 남을 도우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희망도레미는 소액대출을 해주는 ‘(사)신나는 조합’과 업무협약을 맺고 대출심사와 사후관리를 해주는 곳이다. 소요 경비는 신나는 조합이 지원한다. 전직 은행원에겐 안성맞춤의 재능기부다. 희망도레미는 뜻이 맞는 은퇴자들이 모여 남자는 300만원, 여자는 100만원씩 출자해서 만든 사단법인이다. 36명이 회원으로 있으며 이 가운데 15~20명 정도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나는 조합이 대출자 명단과 관련 서류를 넘겨주면 현장에 나가 확인하고 대출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대출자들을 만나 경영컨설팅을 해주고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지도한다. “실사를 통해 사업성이 없으면 냉정하게 대출불가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현장지도를 나가 하루가 다르게 사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가게를 열기 위해 대출을 신청했으나 요건이 안 돼 대출금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대출심사를 할 때 진실성에 우선점을 둔다.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부풀린 것은 없는지 서류를 꼼꼼히 따져보고 30여가지 질문을 한다. 사정이 아무리 딱해도 실현가능성이 없으면 대출해주지 않는다. 얄팍한 동정이 당사자를 더욱 큰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포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40대 남자가 점포를 확대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지만 청담동에서 25년간 공방을 해온 40대 남자가 가계를 접을 때에는 장인의 정성이 깃들여진 수공예 기술이 사장되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 그는 희망도레미에서 한 달에 10일 정도 일한다. 소액대출을 담당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C) 팀장 회의가 월 2회 열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업무로 현장을 둘러본다. 현장지도를 나가서는 상환금보다 먼저 자녀가 학교에 잘 다니는지, 가게는 잘되는지 등에 대해 물어본다. 원리금을 갚으며 가족들과 함께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것을 보면 내 일처럼 신이 난다. 장사가 안돼 어려움을 겪을 경우에는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2010년 8월 기업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28년간의 은행원 생활을 그만뒀다. 그는 여느 사람에게 찾아오는 상실감이나 박탈감 등 은퇴증후군을 겪지 않았다. 항상 일이 있어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 가야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온 덕에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지내고 있다. 2010년 봄 직원들과 강원도 영월로 1박 2일 야유회를 갔다. 마지막 야유회였다. 단종이 묻힌 장릉을 둘러본 소회와 직원들과 헤어져야 하는 감회를 담아 인터넷에 ‘아름다운 이별여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직원들이 무척 좋아했다. 자신이 정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조선 왕릉에 대한 궁금증도 한층 더 커졌다. ‘다른 왕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퇴직한 9월부터 11월까지 서울 근교와 경기도 이천 세종 영릉 등 44개 왕릉의 사진을 찍고 도서관 등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좋아하고 궁금한 것을 하니까 힘든지 몰랐습니다.” 하루 8시간씩 글 쓰는 데 매달려 2011년 7월 44편의 원고를 모두 탈고했다. 제목은 ‘조선왕과의 만남’으로 정했다. 그러나 출판사가 막바지에 책 내는 것을 주저해 인터넷 카페에만 올렸다. 같은 해 5월부터는 자서전을 쓰는 심정으로 한 달에 하나씩 에세이를 써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다. 2012년 5월부터는 ‘간략삼국지’를 썼다. 삼국지는 등장인물이 많고 내용이 방대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줄거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권으로 추려야겠다고 생각하고 40개 단락으로 나눈 뒤 1주일에 한 단락씩 썼다. 조조 등 위나라 인물은 파란색, 유비 등 촉나라 인물은 초록색, 손권의 오나라 인물은 빨간색으로 구분,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하고 중간에 삽화를 넣어 재미를 더했다. 그는 노후의 중요성에 대해 일찍부터 눈을 떴다. 고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아버지의 상심이 커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생은 노년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은행에 들어갔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공계 출신이라 재직기간의 3분의 1을 전산분야에서 보냈다. 비금융 분야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뭔가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8년 외환위기로 동료, 선후배들이 대량 해고되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월급의 절반을 저축했다. 생활비와 용돈이 줄어들자 아내와 자녀가 울상을 지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 사치를 없애고 과외 등 자녀교육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늦게 사줬다. 스스로도 낡은 승용차를 계속 끌고 다니는 등 모범을 보였다. 다행히 가족들도 미래를 위해 참자는 그의 말을 잘 따라줬다. 퇴직 이후의 경제적 인프라를 일찍부터 구축하게 된 것이다. 퇴직 전 지점장으로 7년 있으면서 실적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다. 자연스레 덜 먹고 덜 쓰더라도 퇴직 후에는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직장선배가 추천해준 2차 취업자리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는 퇴직교육을 받던 중 업체로부터 퇴직교육을 해달라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노후준비가 잘돼 있는 것을 안 업체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양했다. 노후준비는 최소 10년 정도 해야 하는데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사람에게 교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퇴직 후 개인택시를 몰려 했다. 돈벌이보다는 하루 6시간 정도 소일거리로 생각했으나 성격이 급해 승객들과 온종일 싸울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 생각을 접었다. 왕릉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서 고궁가이드로도 나서보려 했으나 지원자가 많은 것을 보고 그만뒀다. 2012년 4월에는 대학에서 사무자동화 관련 전산강의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나 석사학위가 없어 무산됐다. 이후 은행 퇴직동료가 희망도레미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희망도레미에서 희망제작소의 행복설계 아카데미 교육을 먼저 받으라고 해 이 해 9월부터 11월까지 교육을 이수했다. 그는 기타가 수준급이다. 학창 시절 대학축제에 초청받았을 정도였다. 아내는 팬 플루트를 연주한다. 간혹 합주 공연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희망도레미의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다. 회원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재능을 이용해 강연을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 은퇴후 재무설계, 사주와 명리학 등 20여개를 준비했다. 40여개가 만들어지면 구청 구민복지관 등을 다니며 홍보를 할 예정이다. 물론 실비를 받고 강연을 한다. 은퇴 후의 삶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stslim@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기제사 어떻게 지내시나요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기제사 어떻게 지내시나요

    ‘제사가 계속될 것인가, 중단될 것인가, 변형될 것인가.’ 제례(祭禮) 문화가 어떻게 변모할까.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한데 모여 차례(茶禮)를 지내며 조상들의 덕을 기린다. 또 기일(忌日)이 되면 제사(祭祀)를 지내며 돌아가신 분을 추모한다. 오랜 세월 가족의 구심점으로 구성원 간 결속력을 다져온 제례의식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횟수가 줄고 음식도 간소화되고 있지만 제사는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기성세대의 맏아들, 맏며느리들에겐 여전히 부담이다. 유교문화의 마지막 세대로서 부모세대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지만 한편으론 전통의식이 희박한 신세대 자식들에게 제사를 잇게 해야 하는 의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낀 세대’의 고민이다. 제사는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국가도 저절로 통치된다고 보고 효를 강조했다. 효는 제사를 통해 실천하고, 제사는 가정에서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장남 등 가부장이, 국가 차원에서는 왕이 집전하도록 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속돼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보다 더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에 따르면 기제사는 제주부터 2대조까지로 하되 매년 조상이 사망한 날 제주의 가정에서 지내게 돼 있다. 제수(祭需)는 평시의 간소한 반상(飯床)음식으로 부담 없게 차리도록 했다. 차례는 명절 아침에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고 돼 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정3품 이상의 높은 벼슬을 가진 사람들만 부모, 조부모를 넘어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 4대 봉사를 하게 돼 있다. 그러나 좋은 집안이 되려는 심리가 작용, 일반인들도 4대 봉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머니, 할머니 등 배우자까지 모시면 제사횟수가 8번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들쭉날쭉한 제사일자에 맞춰 많은 친척들이 모이기 어려워지면서 제사횟수는 자연스레 조정되고 있다. 바라봄사진관 나종민(51) 대표는 “종갓집이어서 어머니가 3대 봉사를 해왔으나 몇 년 전 하나로 합쳤다”면서 “조상을 모시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제사음식도 간편해지고 있다. 종전에는 ‘붉은색 과실은 동쪽, 흰색은 서쪽에 둔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등 예법을 따졌으나 최근에는 정성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제사 음식은 형제들끼리 분담해 가져오고 제사상을 업체에 주문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 경기 수원에 사는 이모(51·여)씨는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3년 전부터 제사상을 주문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았지만 이젠 시댁 식구들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 설의 경우 제사상 차림이 전년보다 10% 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퇴계 이황 종가는 지난달 문중운영위원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자정에서 저녁 6시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퇴계 종가가 제사 문화의 롤 모델인 만큼 제사 현대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28일(음력 7월 2일) 퇴계의 권씨 부인 제사와 내년 퇴계 불천위 제사는 초저녁에 지내게 됐다. 불천위는 큰 공이 있거나 도덕성 및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제례문화의 간소화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고향, 문중 등 전통사회의 개념이 해체돼 친척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면서 기제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5대조 이상 제사를 모시는 시제(時祭) 때 후손들에게 장학금이나 여비를 지급해 참석을 독려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가부장 중심의 유교문화가 퇴조기미를 보이면서 가정살림을 책임지는 여성의 영향력이 커지고 남아선호사상도 엷어지고 있다. 장묘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는 것도 제사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최근에는 수목장이나 바다장까지 나올 정도다. 부모세대들도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후 화장을 당부하고 있다. 경기 고양에 사는 김모씨는 설을 쇠러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죽으면 화장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납골당에 합사하고 봉분을 없애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퇴계의 16세손인 이근필(82) 종손도 ‘죽으면 납골당에 가겠다’는 뜻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제사에 대한 장남이나 장손의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집안 전통에 따라 여전히 예법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경기 과천에 사는 이모(55)씨는 제사상을 차리는 아내에게 미안하다. 장손이어서 제사를 지내지만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작은아버지 등 집안 어른들이 제수가 잘못됐다는 등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도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이씨는 “친척들의 눈이 있는데다 맏이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나까지는 감당하겠지만 아들에게 제사를 계승시킬 자신은 없다”면서 “미래의 며느리가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지내려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유모(57)씨는 딸만 둘이다. 그는 절에서 집안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동생 가족들로부터 은근한 압력을 받고 있다. 아들을 둔 제수씨가 자식대에 가서 제사가 넘어오지 않도록 정리해달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진흥팀 김미영 팀장은 “50~60대는 과도기적 세대이다 보니 제사 문화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친척 등을 의식해 과감하게 나서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조상을 숭배하는 제례적 측면보다는 가족 간의 결속과 단합을 도모하는 기능이 강해져 기제사가 사라지고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반드시 장남이 제사를 모실 것이 아니라 기제사는 맏이가, 추석과 성묘는 동생이 담당하는 등 가족 간 대화를 통해 윤회봉사(輪回奉祀)를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16세기 학자 유희춘(柳希春)이 친필로 쓴 ‘미암일기’(眉巖日記)를 보면 ‘오늘은 큰 누님 댁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딸들이 제사를 지내는 외손(外孫)봉사도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제사를 합사해 합동추모제를 지내거나 시제를 10월 셋째 주 일요일 등으로 정례화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도 “제사가 조상의 덕을 기리는 것에서 가족 간의 만남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가족들끼리 의논해 기일을 2월 마지막 주 금요일로 정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중앙대 비교민속학과 박환영 교수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려는 의식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제례문화는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될 것”이라면서 “차례는 친척들이 참여하지만 기제사는 형제 등 직계 가족들 중심으로 치러지도록 이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stslim@seoul.co.kr
  • 시리아서 총 든 ‘4세 테러리스트’, 검은마스크 뒤엔…

    시리아서 총 든 ‘4세 테러리스트’, 검은마스크 뒤엔…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고작 4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가 기관총을 들고 전쟁에 나선 모습이 포착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소년은 AK-47 총을 들기에 버거울 만큼 아직 작은 몸집이어서 받침대를 사용해 총을 고정한 채 사수로 나섰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등 해외 언론은 이 소년이 지하디스트(jihadists·이슬람교의 종교적 법칙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신병’인 것으로 추측하며, 매우 능숙하게 대형 총을 다루는 것을 보아 상당기간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총을 쏠 때에는 다른 내전 참가자들처럼 눈만 내놓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마스크 뒤에는 평범한 작은 소년의 얼굴만 있을 뿐이다. 시리아의 대테러공식본부(Counter-terrorism officials)는 더 많은 아이들이 테러리스트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이 소년의 모습을 통해 증명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지난 달 21일 유투브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 동영상은 미국 주재의 ‘안티-지하드’ 단체가 올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동 학대의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상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유투브에서 삭제됐다. 하지만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터넷에 퍼지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권오준 내정자, 포스코 혁신 첫발

    권오준 내정자, 포스코 혁신 첫발

    권오준(64) 포스코 차기 회장 내정자가 29일 인수위원회 성격의 ‘혁신 포스코 1.0’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포스코 혁신에 나섰다. 권 내정자는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정기 이사회에 참석해 정준양 회장을 비롯한 사내 인사들에게 내정자 신분으로 정식 인사를 한 뒤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TF 구성 방안을 보고했다. 사내 인사는 정 회장을 비롯해 김준식 사장, 박기홍 사장, 장인환 부사장, 김응규 부사장 등 5인이다. 현재 포스코 기술총괄부문 사장을 맡고 있는 권 내정자는 특히 기술과 마케팅을 연계해 신성장동력을 마련하는 데 혁신의 중심을 두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TF는 인사·조직 혁신을 포함한 경영 전반, 경쟁력 강화, 신성장동력 등을 다루는 총 4개팀으로 구성된다. 신성장동력 창출팀은 기술과 마케팅 연계를 통한 구체적인 경쟁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며 재무구조 개선팀은 부실 계열사 정리 방향 등을 정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인사·조직 등 경영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작업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는 현재 기술(권 내정자), 기획재무(박기홍 사장), 성장투자사업(김준식 사장), 탄소강 사업(장인환 부사장), 경영지원(김응규 부사장), STS사업(서영세 전무) 등 6개 부문과 CR본부(황은연 부사장)와 원료 본부(서명득 전무) 등 2개 본부로 구성돼 있다. 인수위는 계열사 임원 등을 포함해 10여명의 임원과 30여명의 직원 등 총 40여명으로 구성될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의 실무 총괄은 부사장급이 하며 팀장은 전무·상무급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외부 인사의 참여는 배제됐다. 특히 인수위 참여 멤버 가운데 정 회장 측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권 내정자가 제대로 경영 혁신 드라이브를 걸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한편 권 내정자는 다음 달 1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제 2회 캠브리지 YLE 어린이 영어 경연대회’ 성황리 개최

    ‘제 2회 캠브리지 YLE 어린이 영어 경연대회’ 성황리 개최

    캠브리지 잉글리시 언어평가 위원회 한국사무소(대표 이현정)는 지난 24일 주한 영국대사관 아스튼홀에서 열린 ‘제 2회 캠브리지 YLE 어린이 영어 경연대회’ 결선대회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고 27일 밝혔다. 캠브리지 YLE 어린이 영어 경연대회는 캠브리지 잉글리시 언어평가 위원회가 어린이들의 영어 실력 향상을 장려하고자 마련된 대회로 캠브리지 YLE(Young Learners English Tests) 인증서를 소지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스콧 와이트먼(Scott Wightman) 주한 영국대사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실시된 이번 대회는 심사위원 및 참가자 소개, 스피치 준비, 결선진출 3분 스피치, 시상식 및 사진촬영 순서로 진행됐다. 올해 진행된 캠브리지 YLE 어린이 영어 경연대회에는 약 50개 학교에서 400여 명의 학생들이 ‘My Treasure(나의 보물)’ 주제의 에세이를 제출하였다. 에세이 심사를 거쳐 본선 대회에 진출하게 된 70명의 학생 중 아래 13명의 학생들이 결선대회에 참가했다. 결선대회에 진출한 학생은 ►배하민(8, 서울행현초) ►성아침(9, 서울압구정초) ►안수빈(13, 인천굴포초) ►이승현(8, 대전성룡초) ►임지민(11, 경기분당초) ►정현수(8, 경기부안초) ►정훈(14, 전주온고을중) ►하유리(9, 경남진주교초) ►한지예(13, 광주백일초) ►한진주(13, 경기산운초) ►홍수진(7, 충북서청주) ►황제이(9, 경남웅상초)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주어진 3분 동안 본선 대회에서 제출한 에세이 내용을 바탕으로 그 동안 갈고 닦은 영어 말하기 실력을 겨뤘다. 특히 이날 결선에 진출한 학생에게는 상장 및 지도교사, 학부모와 함께 주한 영국 대사관에 초청되는 특전이 주어졌다. 캠브리지 잉글리시 언어평가 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대회를 통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한국 학생들이 좀 더 자신감 있는 대화법을 깨닫고 자신의 영어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캠브리지 YLE 어린이영어 시험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부설기관인 캠브리지 잉글리시 언어평가 위원회에서 출제 및 감독하는 국제공인 영어능력 평가시험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전세계 7~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읽기와 쓰기, 듣기, 말하기 영역을 국제언어평가기준(CEFR)에 맞춰 동시에 평가하며, 매년 전 세계 135여 개국에서 실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잉글리쉬무무 전국 학습관 학생들을 비롯한 수 천 명의 학생들이 매해 캠브리지 YLE 어린이영어 인증시험을 응시하고 있으며, 캠브리지 YLE 어린이 경연대회 관련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cambridgeyle.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50대 교수직 버리고 새 삶 찾은 인문학자 김경집 씨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50대 교수직 버리고 새 삶 찾은 인문학자 김경집 씨

    “그래도 힘이 있을 때 말을 갈아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누린 뒤 새롭게 변신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김경집(55)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는 충남 서산 해미면 일락골길 15 아담아파트 4층에 산다. 집 앞에 성벽으로 둘러쳐진 해미읍성이 있으니 월스트리트에 사는 셈이다. 뉴욕 월가의 사람들처럼 돈은 많지 않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2013년 1월 이곳으로 내려왔으니 어언 1년이 된다. 26㎡(8평) 원룸에는 책이 가득하고 책상과 의자, 식기 등 가재도구는 단출하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 관리비는 5만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미읍성을 끼고 도는 둘레길 아라뫼길을 산책한다.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챙겨 먹고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쓴다.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산책 뒤 독서와 집필이다. 밤 12시쯤 잠자리에 든다. 가끔 개심사로 넘어가는 뒷길을 거닐기도 한다. 산책을 할 때에는 반드시 수첩을 챙긴다.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적기 위해서다. 그가 해미에 둥지를 튼 것은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을 쓰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30대 초반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40대 중·후반 다시 떠올랐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도 30대 때 5년 동안 오두막에서 책만 읽지 않았던가. “선배 교수들을 보니 정년 퇴직하고 나면 금방 늙더군요. 60~70 인생이면 모르겠는데 요즘은 수명이 주책없이 길어져 100세까지 사는 세상 아닙니까. 긴 노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전환점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 2월 가르치던 대학에 사표를 냈다. 인도인들은 전통적으로 삶을 4단계로 나눈다. 베다 등의 고전을 배우는 범행기(梵行期), 집에서 머무는 가주기(家住期), 산에서 지내는 임서기(林棲期),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유행기(遊行期)이다. 범행기가 사회에서 활용할 지식을 습득하는 기간이라면 가주기는 배운 지식으로 가정을 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시간이다. 임서기는 집을 나와 숲속에서 명상을 하며 자아를 찾는 시기이며 유행기는 세상을 주유하며 깨달은 것을 전파하는 시기이다. 이에 대입하면 대학에서 인간학과 영성을 가르쳐 온 인문학자 김경집은 임서기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에겐 40대가 없었다. 아내가 위암에 걸려 7~8년 투병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병수발에 두 아들 뒤치다꺼리에 경황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아파트가 외환위기로 반토막이 났다. 이마저도 치료비를 대느라 전세로 살게 됐다. 한창때 개인적 삶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내는 다행히 병에서 회복됐다. “빚을 내 아내 치료비를 마련하고 간호를 할 때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이것도 살 만한 인생이구나, 나름대로 괜찮은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내 할 일은 다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위안이 들었다. “평탄하고 순탄한 삶을 살았으면 대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닥까지 내려가 봤으니 더 이상 두려움이나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2011년 가족들에게 이젠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큰아들은 ‘아버지 원하는 대로 하세요’라고 했고, 둘째 아들은 ‘대학은 마쳐야 하지 않나요’라고 했다. 아내는 흔쾌히는 아니었지만 ‘원하면 하라’고 ‘암묵적’ 동의를 했다. ‘설마 그렇게 할까’라는 미심쩍은 생각과 함께 병수발을 들어준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대학시절 영문학도로서의 문학에 대한 열망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해미가 떠올랐다. 힘들 때 해미를 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닐 때 온화한 미소가 일품인 마애석불을 보러 간 기억도 났다.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해미에 아파트를 구하고 책을 옮겼다. “책 읽고 원고 쓰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작업입니다. 해미에 오니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강의나 채점 등 방해받거나 간섭받는 일이 적어졌기 때문입니다. 벌써 책을 세 권이나 냈습니다. 집중력도 높아졌습니다.” 그는 해미생활에 대만족이다. “제 연배의 동료들은 이제 하나 둘 현업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들이 그만둘 때 저는 새로운 분야에서 힘차게 시동을 걸고 있으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 50대 중반이지만 해미에 온 뒤 세상을 보는 안목과 폭은 오히려 넓어진 느낌입니다.”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40대 때의 경험으로 아침 저녁 등 끼니를 때우는 것은 혼자서도 거뜬히 해결한다. 그러나 얼마 전 급체로 5분 거리의 병원을 진땀을 흘리며 30분 동안 가야 했을 때는 조금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이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비상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산책을 하면서 명상을 해서인지 번쩍이는 생각도 많다. 해미에서 할 일이 20~30가지는 된다. 해미읍성의 솔밭숲에서 달빛을 밟으며 시낭송회를 열면 환상적일 것 같다. 해미읍성에선 민속놀이만 하고 있는데 관악기 축제도 해봄 직하다. 대학에 있을 때 한 음대생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해 학교를 다니다 돈이 떨어지면 휴학을 하는 등 힘들게 공부하는 것을 봤다. 재주 있는 학생들을 불러 기업의 협찬을 받아 연주회를 개최하면 문화사각지대에 있는 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어려운 음대생들의 부담도 덜어 줄 수 있다. 또 음대생들이 재능을 기부하면 이 곳 학생들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악기를 배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교화를 위한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방식이 떠오른다.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구스타브 두다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됐다. 불모지인 해미에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대중 인문학을 전파하겠다는 그의 꿈이 영글고 있는 것이다. 해미생활은 예상보다 빨리 연착륙하고 있다. 책을 쓰고 인문학 강의도 다닌다. 처음에는 수입이 교수시절의 5분의1로 줄었으나 지금은 절반 정도로 좁혀졌다. 올해 말이 되면 3분의2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5년 정도 걸려야 안정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속도가 빠르다. 해미로 오면서 가훈을 바꿨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각자도생(各者圖生)으로 정했다. 이제 아빠의 인생을 살 테니 자식들도 자신들의 삶을 살라고 한 것이다. 혹시 책이 잘 팔려 인세를 많이 받으면 모르겠지만 물려줄 것도 없다고 했다. 물질적 도움은 줄 수 없지만 아이들이 세상을 살다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밑돌이나 발판은 될 수 있다. 평소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주부들에게 직업이 없어도 명함을 만들라고 권했다. 명함은 자존감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명함을 만들지 못했다. 이름 뒤에 들어갈 마땅한 직책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름과 함께 작업실·이메일 주소, 휴대전화번호를 적은 명함을 만들었다. 평소 갖고 싶었던 당호(堂號)도 지었다. 나무처럼 살고 싶어 수연재(樹然齊)라고 했다. 명함 뒤에는 ‘뜻은 높게 생각은 깊게 영혼은 맑게 삶은 소박하게’라는 글이 적혀 있다. 처음에는 해미에서 10일, 서울에서 20일을 지냈다. 여름이 되자 해미와 서울이 절반씩 균형을 이루다 가을이 되자 해미 20일, 서울 10일로 역전됐다. 아들이 한두 번 다녀가고 친구들도 찾아온다. 생활은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된다. 강연, 취재, 출판사 업무 등은 서울에 머물 때로 몰고 서울에 없을 때에는 경조사도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친구 모임 등도 서울에 있을 때로 조정한다. 그러다 보니 만남의 밀도도 훨씬 높아진다. 해미에는 아직 친구가 없다. 도서관 사서, 교육공동체 회원과 이를 후원하는 의사들과 교분이 있는 정도다. 시간이 지나면 주민들과의 만남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tslim@seoul.co.kr
  • 계열사 간 합병·총수일가 지분 축소… 재벌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제외

    대기업집단(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법안이 다음 달 1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이미 20개 재벌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규제 대상에서 줄줄이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제재를 피하기 위해 계열사 간 합병이나 총수 일가의 지분 축소 등의 수법으로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왔다. 재벌닷컴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방안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지난해 10월 이후 규제 대상에 지정된 122개사의 경영 변동사항을 조사한 결과, 지금까지 20개가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고 20일 밝혔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총수 일가의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이면서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율 12% 이상, 연간 내부거래액 200억원 이상인 대기업에 적용된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령이 입법예고된 이후 규제대상이었던 122개사 중에서 총수 일가 지분감소로 12개사, 계열사 간 합병으로 11개사, 영업양도 또는 인수로 3개사, 매각으로 1개사, 모그룹 대상 제외로 1개사 등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총 20개가 규제를 받지 않게 됐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45.69%)로 있던 삼성SNS를 삼성SDS와 합병시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게 됐다. 이건희 회장 가족이 46.04% 지분을 보유한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12월 내부거래가 거의 없는 제일모직 패션 사업부를 인수하는 대신, 내부거래가 많은 식자재 사업을 따로 떼어내 삼성웰스토리로 넘겨 내부거래 비율을 낮췄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엠토도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하면서 정몽구 회장과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각각 4.68%와 11.72%로 낮아져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친척이 대주주인 STS로지스틱스와 승산레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일가족이 대주주인 신록개발과 부영CNI,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일가족이 대주주인 티시스와 티알엠도 계열사 합병으로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사설] 일감 몰아주기 규제 피하려는 재벌들의 꼼수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재벌들의 꼼수로 그마저 무력화될 지경에 놓였다. 총수 일가가 30%(비상장사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은 다음 달 14일부터 시행된다. 규제 대상은 122개사다. 이 가운데 핵심 계열사 20여 곳이 시행령 발효를 앞두고 총수의 지분 축소나 합병으로 규제를 벗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만 중소기업과 상생하려는 척하는 재벌들의 이중성을 보여준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중소기업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또 총수 일가의 편법 상속·증여, 사익 편취의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그런 만큼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경제 민주화 정책의 핵심이다. 작년 초만 해도 규제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하나같이 “계열사, 지배주주 친족 간 부당 내부거래를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재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결국 취지가 크게 퇴색한 법안이 통과됐다. 그 하나가 애초 모든 계열사 간 거래를 규제하려 했다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일정 비율 미만이면 규제를 받지 않도록 빠져나갈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재벌들은 이를 십분 활용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가족이 지분 46%를 보유한 삼성에버랜드에 내부거래가 거의 없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를 합치고 내부거래가 많은 사업을 넘겨 내부거래 비율을 대폭 낮췄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였던 삼성SNS를 삼성SDS와 합병시켜 규제를 피했다. 삼성SNS는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회사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대주주인 현대엠코도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해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갈 전망이다. 현대엠코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 부회장이 총 35%의 지분을 갖고 있고 내부거래 규모는 1조 7588억원으로 매출액의 61%에 이른다. 합병 후 두 사람의 지분은 16%로 낮아져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친척이 대주주로 있던 STS로지스틱스와 승산레저도 합병을 통해 규제에서 빠졌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고 할까. 경제 민주화의 본모습은 지금 온데간데없다. 여러 경제 민주화 법안들이 통과됐지만, 재벌들의 압박과 로비로 사실상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이런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정부와 여당의 의지가 약했던 탓이 크고 야당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규제를 피하려고 재벌들이 꼼수를 부린 것도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하기보다 빠져나갈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 꼴이 아닌가. 이래서는 경제 민주화는 또 헛구호로 끝날 것이다.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36년간 軍 복무 뒤 건물 전기원 취업 성공한 김두문씨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36년간 軍 복무 뒤 건물 전기원 취업 성공한 김두문씨

    “솔직히 자식을 뒷바라지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보다는 이제 나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더 좋았습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701 공무원연금공단 건물에서 전기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두문(58)씨는 재취업의 기쁨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해군에서 통신운용관 등으로 36년간 복무하다 지난 2011년 12월 말 준위로 전역한 군 부사관 출신이다. 2012년 7월 취업했으니 어느덧 1년 7개월째 접어든다. 그는 “직장을 구했을 때 아내가 친구나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 남편 출근한다며 전화하는 것을 보고 역시 취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시 출근을 하니 가라앉았던 집안 분위기가 밝아지고 활력이 넘쳤다”고 뒤돌아봤다. 아내로부터 아들이 ‘아버지가 저렇게 열심히 사시는데 우리도 분발하자’라며 여동생을 독려했다는 말을 듣고 재취업이 가족들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았다. “형님, 좀 부드러워지세요. 이젠 군대 물 좀 빠질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는 동료들로부터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오랜 군 생활로 명령과 지휘계통에 따라 움직이는 습성이 아직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8명이 일하는 전기실에서 두번째로 나이가 많지만 상사가 “이것 좀 해주세요”하면 “네 잘 알겠습니다”라며 깍듯이 대답한다. 동료들은 “형님이 그렇게 FM(야전교본)대로 하니 우리들이 불편합니다. 좀 자연스럽게 지내죠”라고 투정 섞인 말을 한다. 전기 수선 요청이 들어오면 곧바로 장비를 들고 일어선다. 연장자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장병규(51) 전기실장은 “가정생활, 자녀교육 등에 대해 물어보면 인생선배로서 경험담을 이야기해줘 많은 도움을 받는다”며 “무엇보다 동료들과 화합하며 잘 지내는 것이 고맙다”라고 말했다. 책임감도 강하다. 지난해 8월에는 수·변전설비의 조작전원용 배터리에서 황산이 새는 것을 발견하고 조치를 취했다. 꼼꼼한 업무자세가 몸에 익지 않았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군 부사관 출신들의 재취업이 쉽지는 않다. 나이가 많은 데다 군 출신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열심히 노력하고 두드리면 취업 문은 열린다”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곳에서 정년(65세)을 채우고 싶으며 이후에도 몸이 허락하면 다른 곳에서라도 더 일을 할 생각이다. 1956년생인 그는 베이비 붐 세대의 대부분이 그렇듯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 의식이 강하다. 근면, 성실, 도전의식도 몸에 뱄다. 전역 당시 아들이 대학원 1학년, 딸이 대학교 3학년이어서 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11년 한 해 동안 전직기본교육, 소자본창업교육, 전직컨설팅 등 군에서 전역 간부들의 사회적응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직업보도교육을 충실히 받았다. 성격을 말해주는 ‘MBTI(성격유형)검사’, 행동유형을 알아보는 ‘DISC 진단’, 성격과 직업의 관계를 말해주는 ‘Strong 직업흥미도 검사’가 기억에 남고 이런 교육은 재직 중에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소자본창업교육은 만일에 대비해 아내와 함께 받았는데, 강사가 준비 없이 도전하면 위험 부담이 크다고 해 창업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같은 해 5월부터 10월까지 전기기능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1년 11월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의 상시선거부정감시단 채용공고를 보고 처음으로 이력서를 냈다. 선관위 직원을 보조해 사전선거운동이나 불법선거활동을 단속하는 업무였다. 연락이 오지 않아 선관위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의했다. 지원자가 워낙 많았던 데다 컴퓨터 자격증도 없어 특별히 눈여겨볼 만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취업에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사실 그는 자격증만 없다뿐이지 동년배 누구보다 컴퓨터를 잘 다루었다. 곧바로 집 근처 대우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 2012년 4월 16일까지 강의를 들으면서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시트(엑셀)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 고용노동부의 워크넷, 민간에서 운영하는 사람인, 잡코리아 등의 채용정보 등을 서핑하며 이력서를 냈다. 50~60차례 응모했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나이가 많다’ ‘군인은 사회실정에 어두워 융통성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군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거에는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군 출신만큼 충성심이 강하고 성실한 집단이 어디 있느냐면서 선입견을 갖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취업에서 계속 미끄러지자 초조해지고 조바심도 났다. 집안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서울일자리센터 최선경 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 둘이 아직 대학에 다니는 집안 사정을 이야기한 뒤 일자리를 꼭 알아봐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취업 낙방의 스트레스는 규칙적인 생활로 극복했다.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오전, 오후 4시간씩 온라인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1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졌다. 그는 구직활동을 하면서 월급은 150만원 이상, 집이 노원구 공릉동인 만큼 회사는 강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 상담사는 “가깝고 입맛에 맞는 자리가 나오겠느냐. 꼭 강북만 고집하지 마라”고 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공무원연금공단 건물을 관리해주는 대동지에스에 자리가 났을 때에는 근무지를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달려가 면접을 봤다. 면접에서 적극적으로 일할 의사를 보인 때문인지 그는 꿈에 그리던 제2의 직장을 구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처음 하는 업무여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들었지만 열심히 하면 못할 일도 없다는 생각에 매달렸다. 3주 동안 실습을 받고 전기실에 배치돼 이젠 수·변전설비 운영, 전기설비 점검도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다. 3교대 근무에 돌아가면서 야근도 한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 성산읍 신풍리이다. 5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지만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봄에는 달래를 캐고 가을철에는 지네를 잡아 학용품을 마련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해군에 입대, 무선통신사로 일했다. 군에서는 1978년 4월 거문도 대간첩작전에 참가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북한 무장간첩 11명 전원을 사살하고 간첩선을 침몰시켰지만 아군도 1명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하는 격렬한 전투였다. 격렬한 총격전이 끝나고 함정을 살펴보니 온통 벌집투성이여서 등골이 오싹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근무하던 1981년에는 인천전문대 통신공학과를 야간에 다녔다. 무선전신 교육만으로는 날로 발전하는 통신기술을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데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4년제 대학에 편입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군 복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군 부사관들의 정년이 55세여서 안타깝습니다.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도 좋아진 만큼 정년이 3년 더 연장돼도 업무를 수행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나 집에서 틈날 때 주위를 산책하고 산을 오르는 등 몸 관리에도 열심이다. 더 오래 일하기 위해서다.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동료들과 회식을 하자고 하는 등 소통과 화합에도 힘을 보탠다. stslim@seoul.co.kr ■ 김두문씨의 재취업 노하우 자격증 전직준비 철저…취업 눈높이는 확 낮춰야 김두문씨와 인터뷰한 뒤 이메일을 세 차례 받았다. 처음 하는 인터뷰여서 답변이 미진했다며 쉬는 시간을 이용, 이메일을 작성해 보내온 것이다. 그가 재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성실함과 꼼꼼함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군 생활 동안 몸에 익힌 근면과 책임감을 무기로 직업훈련, 구직활동 등 전직준비를 철저히 했다. 이력서를 낸 뒤 연락이 없으면 왜 채용이 되지 않았는지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볼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구직 의사가 확고하자 최선경 상담사도 자기 일처럼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김씨는 재취업을 위해서는 자격증 취득 등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면서, 군 생활의 몸가짐은 직장생활에 필요하지만 취업의 눈높이는 확 낮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 ‘올해 주목할 아티스트 14’ 美 빌보드, 그룹 엑소 선정

    ‘올해 주목할 아티스트 14’ 美 빌보드, 그룹 엑소 선정

    그룹 엑소(EXO)가 미국 빌보드의 올해 주목할 아티스트에 선정됐다. 엑소는 빌보드가 지난 13일(현지시간) 게재한 ‘2014년 주목할 아티스트 14’(14 Artists to Watch in 2014) 제목의 기사에서 아시아 가수로 유일하게 뽑혔다. 빌보드는 엑소를 “미국에서도 팬층을 넓히고 있는 K팝의 차세대 스타 그룹”으로 소개하며 “‘으르렁’(Growl)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싸이와 소녀시대의 노래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본 K팝 뮤직비디오로 기록됐다”고 썼다. 이어 “그들의 노래 ‘으르렁’과 ‘늑대와 미녀(Wolf)는 작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K팝 곡 순위에서 각각 5위와 9위를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 [부고]

    ●김인(대웅제약 고문)인정(전 한국폴리텍대학 학장)인권(현대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인양(전 LG농구단장)인경(삼일A&B 사장)유리(전북대 교수)씨 모친상 신성곤(한양대 교수)씨 장모상 김경조(한국폴리텍대학 교수)씨 시모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010-2265 ●김기조(전 청주중 교장)씨 별세 성구(전 쌍방울 대표이사)평구(충청대 교수)민구(유민에이앤디 부장)동숙(전 우암초 교장)명숙(음성중 수석교사)미숙(한국교통대 학장)씨 부친상 김선광(경남대 교수)씨 장인상 박신순(문일중 교사)씨 시부상 1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10시 30분 (02)3410-6915 ●황칠은(목사)정호(연세대 기계공학과 교수)재호(사업)씨 부친상 박장현(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씨 장인상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2227-7580 ●정용설(대경기계 부사장·전 현대건설 상무)용원(인하대 환경공학과 교수)경훈(샘표식품 생산기술팀장)경욱(모뉴엘 상무)씨 부친상 이난주(포천 대경중 교감)씨 시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30 ●김석기(울산적십자사 회장)씨 부친상 11일 울산 영락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52)256-6896 ●이봉우(STS네트웍스 대표이사)씨 모친상 1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4일 오전 6시 (02)2227-7587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국내 첫 장애인 전용 사진관 연 나종민씨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국내 첫 장애인 전용 사진관 연 나종민씨

    “좋아하는 것을 하면 재미가 있고 그것을 더 개발하면 약간의 돈도 따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성세대들도 분명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너무 돈에 매달리기 때문입니다. 1년 돈벌이 안해도 큰일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라봄사진관 나종민(51)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전용 사진사다.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들의 사진을 찍어 준다. 덕분에 지난해 12월 24일에는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한 여성이 묵직한 하얀 돼지저금통을 들고 서울 마포구 양화로 8길 17-25 그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향하는…. 우리가 아닌 모두를 아우르는 바라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저금통에는 500원짜리 동전 1000개가 들어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나 대표는 “내가 하는 작은 일이 이렇게 울림으로 돌아오다니”라며 감격했다. 그가 장애인 사진관을 구상하게 된 것은 2011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애인 체육대회에 자원봉사 갔다가 한 어머니가 사진관에서 왔냐고 물어 자원봉사라고 답한 게 계기가 됐다. 어머니는 장애인을 둔 집에는 변변한 가족사진 한 장 없다며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가족사진에 어울리는 표정을 잡는 데 품이 많이 들어 사진관에서 장애인들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것도 취미와 사회공헌의 접목이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고 준비 기간을 거쳐 2012년 1월 서울 성북구 동서문로 돈암초등학교 인근 건물 1층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바라봄’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봄’을 영어로 쓰면 ‘BOM’이 아니라 ‘VOM’(viewfinder of mind)이다. ‘마음을 바라보는 카메라 창’이라는 뜻이다. 같은 해 3월 인터넷 모금을 통해 300만원을 모으고 장애인 단체의 신청을 받아 30가구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 소아마비, 다운증후군, 자폐아 등 모두 100여 가족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장애인 가족 사진 찍기는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자폐아의 경우 사진관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꺼린다. 설사 들어왔다 해도 조명 앞에 서지 않으려 한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기도 한다. 장애인들과 눈길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얼굴도 찡그러지고 좋은 사진은 물 건너간다. 이 때문에 사진 찍는 것보다 대화를 통해 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200~300번 셔터를 눌려야 한다. 1~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얼마 전 80대 노모가 60대 소아마비 환자인 아들과 함께 사진관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노령연금으로,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각각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맑고 깨끗했다. 비밀은 곧 밝혀졌다. 사진을 찍고 난 뒤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에게 기부를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두런두런 했다. 오히려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왜소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그의 베풂은 마음이 담긴 답례로 돌아온다. 하얀 저금통은 물론 고가의 장애인 전용 의자를 받기도 했다. 스마트폰에는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너무 기쁘네요”라는 문자가 연신 날아온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본받았다. 명문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돈 받고 가르치는 과외는 하지 않겠다며 고교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후배 2명을 추천받아 무료로 학과 공부를 지도해 주었다. 그는 “나눔이 아들에게 전염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1963년생에 82학번인 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다.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에 21년 종사해 오다 2007년 은퇴했다. 직장인으로서는 한창 때인 45살이었으니 승진, 성공, 출세의 사다리에서 일찍 내려온 것이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영업능력을 발휘,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에 올라 샐러리맨들이 부러워하는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회의를 느꼈다. 낙천적, 긍정적 성격이지만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불면증에 시달린 데다 직원들을 관리하며 통솔하는 자리보다 영업 현장에서 직접 뛸 때가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제2의 인생은 없을까 고민하다 사표를 냈다. “솔직히 재무적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축해 둔 것도 조금 있고 국민연금도 충실히 부었고 집도 있으니 여차하면 주택모기지도 가능해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원금 까먹지 않고 지내려고 애쓰는데 있는 것 쓰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5년 정도 더 일하면 2억~3억원을 모을 수 있었겠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 둔 것이 큰 힘이 됐다. 2008년 한 해는 뒹굴뒹굴했다. 집에서 책을 보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무료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그 역시 아침에 일어나면 나갈 곳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혀 줄 명함이 없다는 생각에 한동안 재취업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취업은 일시적으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지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자’로 모아졌다. 2009년 6개월간 성북구에 있는 사설 학원에서 사진을 배웠다. 평소 하고 싶은 것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가족 사진, 풍경 사진을 찍으면서 복습했다.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니 재미도 있고 쉽게 빨리 배울 수 있었다. 2010년 3월에는 희망제작소 행복설계 아카데미에서 은퇴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컨드 라이프 교육을 받았다. 취미와 사회공헌의 접목은 여기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자원봉사를 나가 장애인 단체의 행사사진을 찍어 주면서 해법을 모색했다. 베이비부머는 정해진 길을 걸어온 세대들이다. 상급학교 진학, 명문대 입학, 졸업, 취직 등 주어진 길을 갔을 뿐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의 일탈은 없었다. 나 대표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 실패를 해도 충격이 적다”고 말한다. 돈을 벌기 위해 치킨 집을 열었다 가게를 접으면 큰돈을 날리지만 악기 같은 것은 배우다 그만둬도 리스크는 크지 않다. 30~40년의 긴 노후가 기다리고 있는 만큼 한두 번 실패한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1~2년, 2~3년 더 좋아하는 것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제3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과거의 지위나 직책 등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어떻게 걸을 수 있겠습니까. 베이비부머는 성장시대를 살다 보니 부족함 없이 지낸 세대입니다. 그래서 물질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머릿속에서 돈과 수익만 떨쳐 버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게 문제입니다. 직장생활을 20년 정도 했으면 웬만한 변화는 헤쳐 나갈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사진 봉사의 영역을 장애인에서 소외계층으로 넓히기 위해 지난해 11월 합정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틈틈이 강연도 나가고 재능 기부도 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도 열면서 바쁘게 지낸다. “몸은 바쁘고 일은 직장 다닐 때에 비해 10배 더 하지만 스트레스받지 않고 재미있어서 좋다”는 그는 사회공헌과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외부 행사 출장도 열심히 나가고 협찬을 위해 윤리경영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나 공모전을 여는 지방자치단체를 찾아다니고 있다. 올봄에는 바라봄을 사단법인이나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할 예정이다. stslim@seoul.co.kr ■퇴사 후 나 대표가 ‘걸어온 길’ ▲2007년 11월 퇴사 ▲2008년 빈둥빈둥 지냄 ▲2009년 8월 사진 교육 ▲2010년 3월 희망제작소 행복설계 아카데미 교육 ▲2010년 5월 장애인단체 자원봉사 시작 ▲2011년 5월 장애인 사진관 구상 ▲2012년 1월 서울 성북구 동서문로에 바라봄사진관 개관 ▲2013년 11월 사진관 마포구 합정동으로 이전 ▲2014년 3~4월 비영리 민간단체로 전환 예정
  •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미래 노후 모델

    [임태순 선임기자의 5060 리포트]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미래 노후 모델

    50, 60대는 100세 시대를 맞는 첫 세대로서 20~30년의 오랜 은퇴 후 삶을 살아야 한다. 수명 연장으로 제3의 인생이 주어진 것은 축복이지만, 긴 여생은 처음 맞닥뜨리는 일로 새로운 숙제이기도 하다. 베이비 붐 세대로서 줄곧 희망과 긍정의 철학을 전파해 온 차동엽 신부로부터 직장에서 퇴직한 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견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두 차례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30일 명동 로열호텔 커피숍에서 오전 10시부터 1시간 남짓 만난 뒤 미진한 것이 있어, 12월 27일 오전 10시 경기 김포시 고촌읍 풍곡리 미래사목연구소에서 1시간가량 더 시간을 가졌다. →베이비 부머는 흔히 ‘낀 세대’라고 합니다. 자식을 뒷바라지하며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베이비 부머가 살아온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베이비 부머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60, 1970년대는 암울하고 모든 것이 급격히 바뀌는 격동의 시대였지만 한편으론 바닥이 없었던 희망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좌절을 몰랐던 희망에 부푼 시대였습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정신은 건강했던 시대이기도 했고,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했으니 행복한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차동엽 신부도 베이비 부머 세대다. 1958년 생이니 이른바 ‘58 개띠‘다. 중학교 시절 생계를 돕기 위해 봉천동에서 연탄 배달을 하기도 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뒤늦게 신부가 됐다.) 베이비 부머는 자식, 부모를 챙기고 본인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리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또 새로운 부담이 있을 것입니다. →베이비 부머를 포함, 우리 사회 전체가 그동안 너무 성공이나 성장, 물질의 이데올로기에 중독돼 살아오지 않았나요. -행복과 성공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성공을 추구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못한 게 아니고, 반대로 행복만 추구한다고 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공에 경도돼 성공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성공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성공, 출세에 매달리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을 성공적인 삶이라고 규정해야 합니다. 인생의 단계마다 행복은 다를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성취하는 게 행복입니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정리하는 세대입니다. 즉 있는 재산, 시간, 해 오던 일에서 깊이를 느끼며 누려야 합니다. 성취보다 여가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살 만큼 살아왔으니 50, 60대는 분명 권태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단계를 넘어서면 새로운 경지가 열릴 것입니다. 옛날보다 강도가 덜하고 에너지가 덜 소모되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과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베이비 부머는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는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유럽 등 고령화 사회를 먼저 거친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입니다. 정보화, 디지털화로 요즘 웬만한 정책은 투명하게 공개됩니다. 이 때문에 국가 간 정책의 호환도 가능합니다. 공직사회가 선행 사례를 치밀하게 연구해 완성도 높은 정책을 내놓아 제도 시행에 따른 낭비 요소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노인 일자리가 체계화돼 있습니다. 도로, 환경,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 노인들이 띠를 두르고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50, 60대는 삶의 경륜으로 존경받았는데 요즘에는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독일과 일본, 유대인은 장인을 대접하고 우대하는 사회입니다. 얼마 전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유럽을 다녀온 뒤 5~6선 의원이 장관 후보가 돼야 한다고 말한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치도 장인 경지에 이르러야 실수가 없습니다. 고령화를 재산, 자산으로 삼는 지혜를 가져야지 노인들이 왜 설치냐고 해선 안 됩니다. 원로가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경험 있는 사람들의 경륜과 지혜는 사회적 부(富)입니다. 이런 것이 어우러질 때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나이를 먹어도 기가 죽지 않아야 합니다. →장인사회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독일에서는 장인이 은퇴하면 적은 월급을 받고 자문, 고문을 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노후복지 시스템이 완비됐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인제도는 은퇴한 이후 새로운 직업교육을 받지 않아도 돼 훨씬 안정적이고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듭니다. 지혜가 축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한국은 한 분야에서 그만두면 새로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은 장인 시스템이 작동해 은퇴에서 오는 충격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선진화는 고령인구의 장인성을 평가하는 사회입니다. →경험 있는 사람들의 경륜과 지혜가 사회적 부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것이 사장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장·노년층의 채용을 꺼리는데 이런 장벽을 타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선진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 2%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갖출 것은 다 갖췄는데 뭔가가 빠져 있어 허전합니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단사리(斷捨離)에 눈길이 갑니다. 말 그대로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것을 끊고 버리고 이별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회의 주역이고 엘리트라는 인식을 벗어던지고 봉사하고 서비스하는 삶을 살도록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50, 60대가 과거의 지위나 직책에서 벗어나 급여보다 보람에서 만족을 느끼며 봉사하면 직장에서도 베테랑을 반값으로 고용할 수 있으니 효율이 향상될 것입니다. 50, 60대는 효율성 측면에선 떨어지지만 저임금에 고급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수요가 있을 것입니다. →2%가 부족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는 정신과 물질의 부조화를 겪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다 갖췄는데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압축, 고도성장하면서 큰 틀에서는 따라가고 비슷해졌지만 사회 그물망 형성 등 섬세함에서는 약합니다. 보듬고 살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50, 60대가 기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 바퀴를 잘 굴려야 합니다. 우선 자기가 가진 지혜를 극대화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장년이 젊은이들처럼 100m 달리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퇴직에서 오는 무력감, 소외감에 대해 비관할 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오면서 부닥친 경험을 자산화하고 인생을 갈무리해야 합니다. 사회를 보면 틈새가 있을 것입니다. 50, 60대가 한발 물러서 우리 사회의 구멍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는 성경 구절에서 보듯 50, 60대는 인생 전반에 대한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나이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사색과 성찰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한편으론 건강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몸이 약하면 위축되는 만큼, 스스로 건강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벌레’라는 별명처럼 평생 일에 매달리며, 성공과 출세 경쟁 속에서 살아온 세대들에게 사색과 성찰하라는 말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50, 60대에게 성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은 갖춰져 있습니다. 은퇴하면 혼자가 되고 외롭고 고독해지지 않습니까.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살아오면서 한번쯤 가졌음 직한 질문 ‘나는 왜 살지’ ‘도대체 행복이 뭐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런 것에 대해 10, 20대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복습해 보세요. 그때의 해답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하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10, 20대 때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 보면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듯이 그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깨달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삶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게 되고 궤도도 수정하게 될 것입니다. 출세, 가족 부양에서 자아 구현으로 자기를 찾아가야 합니다. 인간에겐 생존 본능과 함께 생존 능력이 있습니다. 50, 60대가 퇴직에서 오는 우울증, 무력감에 매몰될 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 새로운 삶의 모델을 개척해야 합니다. 베이비 부머는 역동적 삶을 살아온 만큼, 사색과 성찰의 길에서도 곧 해법을 찾을 것입니다. 필리핀에 ‘하고 싶은 일은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은 핑계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베이비 부머들은 곧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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