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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프로 내 맘대로 즐긴다

    TV프로 내 맘대로 즐긴다

    외화시리즈 ‘CSI과학수사대’ 마니아인 직장인 A씨.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날이면 저녁 약속도 깨고 방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시리즈 예약녹화’기능을 이용하면 시리즈 전편이 녹화돼 아무 때나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부 B씨는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새벽이나 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교육적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녹화, 방과 후 아이들과 함께 시청한다. 비디오 테이프 없이도 프로그램 편성표를 검색,‘원터치 녹화’서비스를 이용한다. 시청자가 TV 편성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프로그램을 저장, 원하는 시간에 보는 맞춤식 방송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13일 “국내 최초로 ‘개인 맞춤 저장형 서비스’(PVR·Personal Video Recorder)를 20일 출시한다.”고 밝혔다. 비디오 테이프나 CD 없이 생방송을 녹화해 보거나, 실시간 방송을 여러 번 돌려보고 VOD(주문형비디오)도 녹화해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서비스다.PVR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위성과 케이블방송 등의 서비스 경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실시간 방송?‘나중에 본다’ 스카이라이프는 이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국내 방송 최초로 선보이는 개인맞춤형 ‘SkyPVR’서비스 발표회를 갖고, 관련 서비스를 시현했다. 이 서비스는 하드 디스크가 내장된 셋톱박스를 장착하면 비디오 테이프나 CD를 사용하지 않고 스카이라이프가 제공하는 100여개 채널의 실시간 방송을 자유롭게 저장하고, 원하는 시간에 맞춰 재생해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다. 생방송뿐 아니라 편성표(EPG)에서 녹화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원터치 예약녹화 버튼만 누르면 간편하게 녹화할 수 있으며, 드라마·교육프로그램 등 시리즈물도 한번만 설정해 놓으면 종방때까지 연속 녹화된다. 또 생방송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정지시켰다가 다시 볼 수 있는 타임머신 기능도 제공되며, 녹화한 프로그램을 최대 30배속까지 빨리 감기나 뒤로 감기를 할 수 있다. 최신 영화 등을 보여주는 ‘스카이초이스’채널도 프로그램을 저장해 보고 싶은 시간에 꺼내 볼 수 있다. PVR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전용 셋톱박스를 설치해야 한다. 회사측은 셋톱박스 대여·수신료 등 월 2만 5000원짜리 프로모션 패키지를 내놨다. 기존 가입자가 셋톱박스를 교체하면 3만원의 보상판매를 받을 수 있다. ●맞춤서비스 경쟁 가열 예고 스카이라이프가 선보이는 PVR서비스는 이미 미국·영국 등 위성방송 시장에서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서비스다. 오늘날 시청자들의 행태가 더욱 개인화, 고급화하면서 방송사들의 차별화한 서비스 경쟁이 낳은 결과다.PVR서비스는 현재 케이블·위성방송이 제공하고 있는 VOD·PPV(프로그램 유료시청제) 등 주문형 서비스나 교통·요리·날씨·건강정보 등 데이터방송,‘하나TV’ 등 인터넷망을 통한 VOD서비스를 비롯한 IP(인터넷프로토콜)TV의 양방향 방송과 차별화해 지상파 등 모든 방송을 실시간 녹화하고 돌려볼 수 있어 시청자 위주의 맞춤형 방송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생방송 타임머신 기능과 비디오 테이프 없는 예약녹화 기능을 갖춘 LG전자의 ‘엑스캔버스’ 등 디지털TV가 출시되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 TV를 선뜻 바꾸기 쉽지 않다. 그러나 PVR서비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셋톱박스를 대여하면 아날로그·디지털TV 상관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카이라이프 서동구 사장은 “내년 말까지 신규 가입자 10만가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다양화, 개인화하는 고객의 욕구에 맞출 수 있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We랑 외국어랑 놀자-영어] At car rental service

    Clerk(점원) :How may I help you ? (하우메아이 헬프 유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Customer(손님) : I would like to rent a car.(아이 우드라이투 렌트 어 카)차 좀 렌트하고 싶은데요 Clerk(점원) : Are you looking for short term rent or long term lease ?(아유 룩킹퍼 쇼트 텀 렌트 오아 롱텀 리스?)단 기 렌털인가요 아니면 장기 렌털인가요? Customer(손님) : I will rent for three months.(아윌 렌트 포 쓰리 먼스.)3개월간 빌릴 예정입니다. Clerk(점원) : What size of car do you like ? We have two mid-sedans,three compact size,and one mini-van available at this moment.(왓 사이즈어브 카 두유 라이크? 위해브 투 미드 세단스, 쓰리 컴팩 사이즈 앤드 원 미니밴 앳 디스 모먼트.)어떤 크기의 차를 원하십니까? 저희는 지금 중형세단 두 대, 소형차 세대와 미니밴 한 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Customer(손님) : a mid-sedan will be perfect.(어 미드 세단 윌비 퍼팩트.)중형세단이 좋네요. Clerk(점원) : We have them in black or silver color.Which color would you like ?(위해브 뎀 인 블랙 오아 실버 칼러. 위치 칼러 우듀 라이크 ?)중형세단이 검정색과 은색이 있습니다. 어떤 색상을 원하십니까? Customer(손님) : I prefer the silver car.(아이 프리퍼 더 실버 카.)은색차가 더 좋습니다. 세종외국어학원 영어 담당: 고병진(02)723-4587
  • [공연+새앨범]

    ■ 심수봉 콘서트 ‘사랑이 시로 변할 때’ 데뷔한 지 2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가수이자 우리들의 영원한 누이인 심수봉. 리드미컬하면서도 한과 흥을 함축한 멜로디와 평범하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노랫말 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심수봉표 노래’들로 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신다.11월 3,4일. 서울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02)522-9933. ■ 홍경민 콘서트 ‘Evolution of Rhythm’ 관객이 많건 적건 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는 홍경민의 ‘음악으로 꽉 찬’ 콘서트. 흔한 이벤트는 과감히 없애고 오로지 음악으로만 달려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공연이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가수로서의 ‘밑천’이 없다면 함부로 선택하기 힘든 구성. 그래서 이번 홍경민 공연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10월 27∼ 29일. 서울 대학로 질러홀.(02)522-9933. ■ 이지형 콘서트 ‘Unplugged Diary’ 90년대 얼터너티브 록밴드 Weeper를 이끌던 소년이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금년 4월 첫 솔로음반을 낸 신인이지만,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오래된 뮤지션. 홍대앞 클럽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못다한 이야기들이 마치 뮤지컬처럼 펼쳐진다.11월10일 백암아트홀.(02)559-1341. ■ 바이브 콘서트 ‘We Go’ 음악포털 쥬크온이 진행한 ‘연인과 함께 가고 싶은 가을콘서트’ 설문조사결과 1위에 오른 R&B 듀오 바이브의 전국투어 콘서트. 방송출연 대신 음반활동을 위주로 콘서트 무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들은 감미로운 발라드가 매력적인 남성듀오.‘미워도 다시한번’,‘오래오래’ 등 히트곡들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10월28,29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 홀.(02)542-5903. ■ 김진표 디지털 싱글 ‘사랑따위’ 인기래퍼 JP(김진표)가 1년만에 컴백작으로 내놓은 디지털싱글.‘사랑따위 Part1’ 과 ‘사랑따위 Part2’ 등 2곡을 발표한 김진표는 이번 디지털 싱글 음악을 직접 기획하고 작사, 작곡, 편곡, 녹음까지 모두 혼자 소화해내는 역량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팜엔터테인먼트. 클래식 ■ 2006 가을밤 콘서트 29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재일 한국인 뮤지션 양방언,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기타리스트 임정현, 뮤지컬의 박해미, 바리톤 김동규가 출연하는 4인4색의 콘서트. 박상현 지휘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필하모닉 합창단도 출연.3만∼10만원.(02)2000-9752. ■ 아시아의 실소리 11월1일 오후 7시30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한·중·일 아시아 3국의 실로 만든 현악기와 각국의 연주자들을 초청하는 협연무대. 중국의 고쟁 연주로 ‘고산유수’, 한국의 가야금 연주로 ‘돈돌라리’, 일본의 고토 연주로 ‘편곡 침’ 등을 들려준다. 무료 공연.(031)782-5502. 연극 ■ 이상한 동양화 27일∼11월5일 화∼금 7시30분, 토 4시·7시30분, 일 4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강화도 전등사의 나부상 설화를 모티브로 펀드매니저에서 노숙자로 전락한 기러기아빠 등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을 조명한다. 이기도 작·연출, 남우성 최홍일 등 출연.1만 5000∼2만원.(02)744-7304. ■ 자객열전 26일∼11월26일 화∼금 8시, 토 4시30분·7시30분, 일 4시30분 우리극장. 민족의 스승인 백범 김구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코믹극.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애국과 폭력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박상현 작·연출, 이대연 김학수 등 출연.1만 2000∼2만원.(02)745-0308. 무용 ■ 브라질 그루포 코르포 내한 공연 27일 8시,28·29일 4시 LG아트센터. 발레에 브라질 특유의 열정과 정서를 입힌 현대무용. 원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섯 커플이 사랑의 기쁨과 배신, 비통함 등 다양한 감정을 춤으로 풀어낸다.3만∼7만원.(02)2005-0114. ■ 카르멘 28일까지 목·금 8시, 토 5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비제의 음악을 배경으로 한 마츠 에크의 ‘카르멘’과 조지 발란신의 ‘심포니 인 C’를 국립발레단이 공연.5만∼10만원.(02)587-6181. 뮤지컬 ■ 라이온 킹 28일부터 무기한 화∼금 7시30분, 토 2시·6시30분, 일 2시 샤롯데극장. 디즈니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첨단 무대기법으로 형상화한 가족뮤지컬. 일본 최대 극단 시키가 제작하고, 한국 배우들이 참여했다.3만 5000∼9만원.(02)411-5083∼6. ■ 개똥이 2006 11월19일까지 화∼목 7시30분, 금·토 4시·7시30분, 일 4시30분 학전블루 소극장. 곤충의 시각으로 현대 산업문명의 폐해를 고발하는 생태 환경 노래극.1995년 초연에 이은 두번째 공연으로 ‘날개만 있다면’등 주옥같은 노래가 돋보인다. 김민기 작·연출, 김소연 권형준 등 출연.1만 5000∼2만 5000원.(02)763-8233.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단학·뇌호흡 창시자 이승헌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단학·뇌호흡 창시자 이승헌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

    천부경(天符經)이라고 한다. 출현 시기는 BC 3800년 경 천제환웅 시대에 고대상형 문자인 사슴발자국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됐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많은 백성들에 의해 암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신라시대 대학자 최치원은 비석에 새겨진 천부경을 발견해 묘향산 석벽에 한자(漢字)로 옮겨 새겨 놓았다. 아울러 생전에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래된 유교와 불교·도교 이전에 현묘한 도가 있다.”고 설파했다. 이 경전은 오늘날 전 세계인이 유일하게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숫자의 기원’을 깨우쳐 줄 고대경전으로 전해진다. 모든 철학사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우주만물의 탄생과 소멸의 과정인 조화와 순환의 법칙, 즉 우주를 비롯해 천(天), 지(地), 인(人)을 근본으로 한 ‘숫자의 생성원리’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천부경은 우리 인간 세상에서 많은 세월만큼 멀어졌다. 그러던 20년전 ‘천부경’은 ‘단학’으로, 민족의 ‘국학’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이자 중심철학으로 새삼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 이후 ‘단학’은 뇌호흡, 뇌교육 등으로 일상과 깊이 접목되면서 널리 퍼졌다. 단학을 수련하는 인구만 하더라도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러시아, 브라질 등 세계 각국에서 500만이 넘었다. 특히 뇌호흡은 오늘날 뜨거운 관심과 열풍을 일으켜 미국 MIT대학, 하버드대학, 노스웨스턴 대학의 초청으로 많은 강연회가 열릴 정도로 현대 과학에 근접했다. 일지(一指) 이승헌(56)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 오늘날의 단학과 뇌호흡을 창시했다. 또 평화철학, 뇌철학, 지구인 철학을 주창·정립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세계 명상의 요람인 미국 애리조나 주 세도나에 진출, 일지명상센터를 설립하고 한국 선도(仙道)를 전파하는 등 평화운동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특히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에서는 매년 9월19일을 ‘일지 이승헌 박사의 날’로 선포할 정도로 이 총장의 업적을 각별하게 예우한다. 국내에서는 사단법인 국학원을 설립하고 홍익정신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대한민국 국민훈장과 서울언론문화상 등을 받았다. ●수련인구 전세계 500만명 넘어 그는 또 ‘한국인에 고함’‘힐링 소사이어티’‘휴먼 태크놀로지’ 등의 책을 저술, 지난 2000년 한국인 최초로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려놓아 한국인의 긍지를 세계 만방에 알렸다. 이런 그가 24일 저녁 ‘국학의 길 20년’ 행사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갖는다. 지난 1987년 ‘민족정신 광복운동본부’를 발족한 이래 국내외에서 국학운동을 전개해온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감회어린 자리를 마련했다. 이 행사에는 정·재계는 물론, 학·법조·문화예술계 인사 500명이 참석한다. 행사에 앞선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단월드’ 빌딩 사무실에서 이 총장을 만났다. 소탈한 모습이 퍽 인상깊게 다가왔다. 먼저 단학과 국학은 어떻게 연관되며 그 뿌리는 어디에서 나왔는지 물었다. “핵심은 한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에서 비롯됩니다. 즉 한민족의 선도이지요. 선도는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이자 중심철학입니다. 최치원 선생은 선도의 대가였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단학과 국학을 굳이 구분하자면 ‘단학수련’이라고 하고,‘국학운동’으로 보면 됩니다.” 국학은 지난 2002년 설립된 국학원과 국학운동시민연합을 통해 학술·문화·교육 분야에서 한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한민족의 정신적 중심이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이 총장은 20년 전에 단학을,10년 전에 뇌호흡을 창시했다. 이에 대해 “지금부터 26년 전 고행을 통해 깨달았다.”고 전제한 뒤,“깨달음은 생명의 실체와 삶의 목적이었다. 생명의 실체가 ‘천지기운 천지마음’이었다.”면서 천부경에 담겨진 진리를 만나면서 큰 깨달음을 접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천부경을 알리고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를 실현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정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를 위해 초창기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공원에 나가 중풍환자를 대상으로 건강을 위한 수련법을 꾸준히 지도했다. 그러기를 5년여. 우리 민족의 선도인 ‘단’을 학문화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단학’이라 이름짓고 수련장을 ‘단학선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민족, 인류를 위한 일’임을 세상에 천명했다. 뇌호흡과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고행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체험을 했다.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을 통해 생각과 분별, 감정과 기억이라는 선을 넘어선 순간 기적처럼 무한한 사랑과 평화를 깨달았다. “뇌호흡은 5단계로 정리돼 있습니다. 먼저 뇌의 감각을 깨우고, 뇌를 유연화하고, 정화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에는 뇌를 통합해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단계를 정해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시도할 수 있습니다.” 문득 역사 드라마 ‘연개소문’의 제작지원이 단월드라는 생각이 떠올랐다.“현재 전 세계에 600개의 단월드 센터가 있다.”면서 93년 이후 단계적으로 제자들에게 물려주었으며 여전히 대스승이자 선임자로 있다고 했다. 아울러 단학의 대중화를 위해 제자들 스스로 경영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주고 있단다. 뇌교육 등 과학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자들에게 던져주는 일 또한 그의 몫이다. 단학이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던 것도 과학적인 프로그램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21세기 인류에 뇌교육 가장 필요 이 총장은 뇌과학연구원을 운영하면서 국내 굴지의 연구기관과 공동협약을 맺고 있다.“현재 미국 등 저명한 뇌과학자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뇌의 인지기능 가운데 고등감각 인지기능(HSP,Heightened Sensory Perception) 연구에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당히 의미있는 연구결과 또한 곧 발표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뇌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생산성과 창조성, 평화성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인간성 상실, 전쟁의 위협과 공포, 지구환경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건강, 행복, 평화는 선택하는 순간 창조됩니다. 이것을 HSP법칙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뇌교육을 통해 간단한 진리를 알려주는 것이지요. 거듭 말하지만 답은 뇌에 있습니다.” 이 총장은 초등학교 시절을 잠시 떠올린다. 집중력에 문제가 있어 학습장애자였다. 공책에 필기가 제대로 안될 정도였다. 당연히 성적이 나빴다. 그럴수록 ‘나는 누구인가’라고 뇌한테 자주 물었다. ●21일간 극한체험뒤 ‘천지기운´ 깨달아 1950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몸이 약한 소심한 아이였다. 열네살때 저수지에 수영갔다가 친구가 물에 빠져 죽은 후 한동안 죽음의 공포에 빠졌다. 그러던 20대말. 고서점에서 ‘태극권’이란 책을 만지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이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도 하고 몸수련도 했다. 당시 임상병리실을 운영하며 모은 돈을 부인에게 주고 모악산으로 훌쩍 떠났다. 여기서 21일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죽음의 경계까지 가는 극한 체험을 했다. 그러면서 계속된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던졌다. 마침내 ‘나는 천지기운이다’라는 답을 얻고 산에서 내려왔다. “뇌를 속여보십시오. 예를 들어 나이 60에 관속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인생은 60부터야,20세라고 생각 하자’라고 하면 90까지 팔팔하게 살 수 있습니다. 뇌는 입력하는 정보에 따라 반응합니다.” 이 총장은 오는 2007년 코스닥과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뇌교육 시장이 미래의 가장 유망분야로 1조달러의 가치를 가진다고 자신했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컴퓨터 운영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지만 이 총장은 HT(Human Technology)산업으로 미래비전을 활짝 펼치겠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희망은 인재이고, 또 두뇌강국을 위해 뇌교육 산업과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 즉 세계에서 가장 뇌를 잘 쓰는 나라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km@seoul.co.kr
  • [서울광장] 반기문을 풀어주자/이목희 논설위원

    [서울광장] 반기문을 풀어주자/이목희 논설위원

    2003년 말 정치부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청와대를 출입하던 문소영 기자가 대통령 보좌진의 별명을 기사로 써왔다. 그중 반기문 당시 외교보좌관의 별칭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기름장어’였다.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잘 피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 외교장관과 개인 친분을 떠나 몇몇 기자들의 자의적 호칭을 지면에 실을지 잠깐 고민했다. 현장기자 시절 반 장관을 십여년 취재했다. 특종을 주거나 화끈한 발언을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언론에 평이 좋았던 것은 성실한 답변자세 때문이었다. 특히 뉴스는 없지만 방향을 오도하지 않았다. 기름장어가 그의 특성을 반영하는 듯해 기사를 출고했다. 항의전화 한통쯤은 받을 각오를 했다. 기사가 나간 날,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반 장관이 약간의 불평을 토로했다고 들었다. 문희상 당시 비서실장은 “기자들이 별명을 지어줄 적이 좋을 때”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 장관은 신문사에는 한마디도 항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름장어(slippery eel)란 별명을 이후 내외신 회견에서 껄끄러운 질문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는 데 스스로 활용했다. 기름장어란 별명이 탄생한 역사는 반 장관의 특장을 보여준다. 첫째, 보도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원치 않는 시기에 기사가 엉뚱하게 터지면 외교협상은 삐꾸러진다. 욕 안먹는 보도 조절은 절제와 중용의 도를 갖추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은 비외교적 지도자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북한 김정일은 논외로 친다 해도, 한·미·일 지도자의 언행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둘째, 불쾌감을 공개 표출하지 않는 것 역시 반 장관의 장점이다. 셋째, 약점인 듯싶은 부분을 기회로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을 기름장어라고 부르면 굉장한 빈정거림이 될 수 있었다. 반 장관은 그 단어를 ‘탁월한 외교관’으로 승화시켜버렸다. 기름장어의 힘이 그를 어떤 정권에서도 중용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까지 밀어올렸다. 이제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는 노르웨이, 스웨덴, 미얀마, 오스트리아, 페루, 이집트, 가나 등이다. 중립국이거나 국제정세에 영향을 못 미치는 나라들이었다. 남북이 분단된 갈등의 나라, 세계 경제 10위권의 나라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 것은 반 장관의 ‘외교적 기름칠’ 능력 덕분이라고 본다. 나는 반 장관이 이전 총장에 비해 중간 이상은 할 것으로 믿는다. 그를 넘어 역사에 남으려면 한국 국민과 정부가 기름칠을 도와줘야 한다. 한국의 이해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유엔 192개 회원국 모두가 이제 그에게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는’ 대상이 되었다. 세계는 넓고 사무총장이 할 일은 많다. 반 장관이 한국인임을 당분간 잊어주는 것이 방법이다. 국제 현안인 북한 핵 문제에 유엔 사무총장이 관심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반기문의 중재’가 힘을 가지려면 한국 외교장관식 접근은 피해야 한다. 엄격한 중립성과 독립성을 갖고 한반도 평화를 중재한다는 인식을 북한과 세계에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반 장관이 사무총장에 내정되자마자 북핵 해결의 선봉장으로 내세우려는 일각의 움직임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우리가 반기문을 풀어줄 때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그의 역할이 커지고 궁극적으로 한국이 도움을 받는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세계 최대 연기금 ‘캘퍼스’ 25억弗 한국투자 추진

    세계 최대규모의 연기금인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캘퍼스·CalPERS)이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직접 투자에 나선다. 최근 태평양지역 연금제도회의(PPI) 참석차 방한한 캘퍼스의 매튜 키플링 퐁 자문위원이 “한국 시장에 대한 직접 투자를 추진 중이며 3∼4개월 안에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캘퍼스의 국내투자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제이슨인베스트먼트가 15일 밝혔다. 캘퍼스는 과거 사모 펀드나 뮤추얼 펀드를 통해 국내 투자를 한 적이 있지만 직접 투자 계획을 구체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퐁 자문위원에 따르면 캘퍼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계획 중인 국내 직접투자 규모는 23억∼25억 달러에 달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북 핵실험 천명 파장] 반장관 “4차투표 끝난 뒤라 다행”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발표가 행여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마지막 관문 통과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북핵 문제 등 분쟁·갈등의 당사자는 사무총장이 될 수 없다는 유엔 내 논리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반 장관을 비롯한 ‘선거캠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1차 예비선거에서 반 장관은 선두를 달렸다. 반 장관은 4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나 북한의 핵실험 계획 발표가 미칠 영향에 대해 “은근히 걱정은 된다.”면서도 “4차 투표가 끝난 뒤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 선거와는 별개로, 오는 9일 안보리 공식 투표와 총회인준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북핵 문제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 ‘반기문 신임 유엔사무총장’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날 반 장관이 탁월한 인간미로 사무총장 선거에서 앞서나갈 수 있었다고 전하면서, 반 장관이 기자들의 까다로운 질문에 ‘외교적인 화법’으로 잘 받아넘긴다는 뜻에서 ‘기름 장어’(slippery eel)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비화도 소개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0)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40)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좋은 나라를 일구는 데는 반드시 그런 나라를 가꾸게 하는 정신문화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다. 좋은 정신문화의 밑바탕이 없이 좋은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불가능하다. 우리도 우리 나라를 좋은 나라로 가꾸기 위하여 그 바탕이 되는 정신문화의 터전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조선조 500여 년을 지탱해 온 주자학적 정신문화가 더 이상 21세기적인 정신문화의 기틀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그 주자학적 정신문화의 뿌리는 깊이 땅에 박혀 있어서 주자학이 심어 놓은 순수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인 흑백적 사고를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이 대체로 은연중에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그와는 정반대로 경제와 기술을 전담하고 있는 기업과 실업계에서는 주자학적 도학사상보다 실용적이고 실사적인 실학적 사고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한국사회에서 좌파적 도덕주의가 높이 흔들고 있는 깃발로 상징되고 있고, 후자는 우파적 실용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프랑스의 파리가 센 강을 끼고 좌안에는 대학가를 지배하는 좌파적 사상이, 우안에는 금융실업가를 석권하는 우파적 사상이 각각 우세하고 있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그 사회에는 우리보다 격돌이 훨씬 덜하다. 좌파든 우파든 정신문화가 깊어야 고요히 사색하면서 좋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지혜가 나오지, 철학적 사유를 결여한 감정적인 이데올로기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세상을 더욱 불행하게 한다. 좌파는 우파를 미워해 극좌적 공산주의와 한 통속이 되거나, 우파는 좌파를 싫어해 극우적 파시즘을 동경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국의 좌파와 우파의 사상적 근원이 외래적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주자학적 도학(道學)과 반(反)주자학적 실학(實學)의 유학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도학사상의 원조는 맹자(孟子)고, 실학사상의 원류는 순자(荀子)라는 데 이의가 없겠다. 나는 우리의 정신문화가 21세기에는 맹자류의 도학적 도덕주의와 순자류의 실학적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서 나는 19~20세기에 걸친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의 이론(프랑스의 사회학자 쥘리앵 프뢴드의 저서 ‘막스 베버의 사회학’에 의거)에 잠시 의존하고자 한다. 맹자의 도덕주의는 베버가 말한 가치합리성(rationality of value)에 연관되고, 순자의 실용주의는 목표합리성(rationality of goal)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목표합리성은 돈벌기의 목적, 승진하기 위한 목적, 집짓기의 목적 등과 같은 결과에 성공적으로 이르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행위를 분명히 조직하고 자각하고 있는 합리성을 말한다. 가치합리성은 자기의 합리적 행위의 결과에 따라 가시적 결과를 얻으려고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동기적 가치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행위다. 즉, 행위자가 자기의 신념을 집행하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도 불사하는 행위다. 죽어가는 부모를 살리기 위하여 단지를 한 옛 효자의 행위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바친 애국열사의 행위가 가치합리성이다. 이것은 목표합리성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위처럼 보이나, 행위자 당사자의 판단에서 보면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의 가치에 합리적으로 봉사했을 뿐이다. 맹자의 사상이 가치합리성이라는 이유는 ‘차마 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不忍人之心)인 측은지심(惻隱之心)에 바탕하여 모든 행위를 도덕적으로 발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정치마저도 측은지심과 연관되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정치함’(不忍人之政)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맹자의 도학사상과 도덕주의는 인의충신(仁義忠信)과 같은 ‘하늘의 벼슬’(天爵)을 버리고, 세속적 인간의 벼슬(人爵)을 탐하는 인간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면서 저 ‘하늘의 벼슬’을 불변의 황금률로 마음에 간직할 것을 권장한다. 그런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도심이고, 그런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을 그는 도학정치라고 여겼다. 이것은 순자의 사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 순자도 유가이므로 인의충신의 덕목을 귀하게 여기지만, 그 덕목이 내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그 덕목들이 유효한 사회적 결과를 낳게 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덕목들은 현재의 인고(忍苦)를 통하여 결과적으로 각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결과의 목표성취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여 노후에 편하게 모시려는 목표가 인간에게 각자의 일에서 현재를 참아가며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내면적 도덕가치의 계발보다 사회적 제도를 예법(禮法)의 이름으로 잘 만들어 제도의 목표합리적 경영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익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맹자와 순자의 각각 다른 합리성은 다른 윤리의식을 심어준다. 이 다른 윤리의식은 합리성의 차이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다. 베버에 의하면, 맹자적인 도덕이상주의는 가치힙리성의 정신을 잇는 신념윤리(ethics of conviction)에 상응하고, 순자적인 현실실용주의는 목표합리성의 정신을 존중하는 책임윤리(ethics of responsibility)와 상관적이다. 그리고 이런 각 윤리의식의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자로서 베버는 신념윤리에 칸트를, 책임윤리에 마키아벨리를 대입시켰다. 마키아벨리는 고향 피렌체 도시의 위대한 영광을 위하여 신념윤리로서 비난받을 수 있는 수단을 사용했다. 이것은 행동인에게 필요한 목표달성적 책임윤리의 의미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칸트는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을 타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가장 높은 도덕적 신념을 설파했다. 칸트의 신념윤리는 사회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행동인의 윤리라기보다 오히려 개인의 도덕적 양심의 차원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베버는 이 두 가지 윤리의식이 극단적으로 이율배반적이지만 서로 대립적으로만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에는 두 가지 종류를 다 적절하게 병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두 가지 합리성과 윤리의식이 불가양립적인 모순은 아니지만, 그러나 서로 궁합 좋은 일치를 이룩하는 것은 아니라고 베버가 이미 밝혔다. 가치합리성과 신념윤리가 너무 넘쳐나 조선조 도학 정치시대처럼 실용적인 현실주의가 거의 숨을 죽이고 살았을 때에는, 순수성이란 선의 탈을 쓴 악마가 세상을 지배한다.‘순수성의 악마’라는 말은 프랑스의 가톨릭 철학자인 무니에가 쓴 말로서, 순수의 명분으로 사회를 도덕적으로 지배하려는 사회의 도덕화 사상과 상통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도덕주의적 지배의지가 얼마나 악마적인가를 모른다. 그냥 순수한 도덕적 선의지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도덕적 동기의 순수성이 인의(仁義)라는 가치를 지키는 도심 자체가 되어서 국가사회를 살리기 위한 거짓말과 변칙을 자행하는 것을 불순하고 잡스러운 것으로 비난한다. 조선조 중종 때의 조광조는 가치합리성과 신념윤리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그는 조선 유학사에서 올곧은 선비로 높이 숭앙받는다. 그러나 그는 여진족 추장 막고내가 침략해 오는데, 위계를 써서 그를 생포하려는 군사전략을 맹렬히 비난한다.‘어찌 군자의 나라에서 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거짓부리인 위계를 쓸 수 있는가?’ 하고. 이 조광조의 고사를 ‘순수성의 악마’와 같은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사색당쟁의 대부분이 나의 순수가 상대방에게 악마로 둔갑하여 나타난 결과가 아니겠는가? 20세기 프랑스의 토미즘 철학자인 마리탱은 그의 ‘인간과 국가’에서 맹자적인 도덕이상론과 왕도사상을 ‘정치의 도덕적 양식’이라 명명했고, 순자적인 실용현실론과 패도사상을 ‘정치의 기술적 양식’이라고 언명했다. 전자의 특징은 국가사회를 물질적으로 번영케 하기보다 정신적으로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도록 하여 인류의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국민정신을 유도해나가는 정치형태라고 규정하고, 후자의 특징은 국가의 대외적 외교성공과 안보역량 강화, 국민생활의 물질적 향상을 가져오는 정치에 주력하지만, 그 성공을 가져오는 수단이 도덕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 정치형태라고 마리탱은 설파했다. 그는 전자의 형태는 과잉도덕주의(hypermoralism)의 위험성을 늘 안고 있고, 후자의 형태는 사리사욕의 부패와 그 위험성을 은닉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잉도덕주의는 독선주의의 표독한 독재를 초래하기 쉽고, 사리사욕의 부패는 금권정치의 타락상을 가까이 하게 된다. 순자의 철학은 자연의 본능을 대신한 친본능적 인간지능의 경제기술적 능력과의 연결마디에서 세상과 인간을 보았고, 맹자의 철학은 자연의 본성을 대신한 인간의 반본능적 도덕주의와의 연결마디에서 인간과 세상을 보았다. 경제주의와 도덕주의는 다 철저한 지성주의(39회 글 참조)의 작품이고,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다. 경제기술적이거나 사회도덕적으로 인간이 이 우주의 지배자라는 의식이 그 기본에 깔려 있다. 순자적 예법주의나 맹자적 도덕주의는 이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인간지성의 두 가지 얼굴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는 그 동안 두 가지 지성주의의 택일로 세상을 다스리려 했다. 두 사상이 서로 이율배반적인데, 그나마 서로 덜 배척적으로 동거시키는 나라는 흥융했고, 우리처럼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으로 적대시하는 나라는 위기를 맞았다. 영국이 프랑스보다 근대화의 시작에서 훨씬 상호 덜 배척적인 정신문화의 길을 갔기에, 영국이 프랑스보다 후발국이었는데, 드디어 프랑스를 능가하는 선진국이 되었다고 프랑스의 문인 사학자 모루아가 그의 ‘프랑스사’에서 통탄의 슬픔을 안고 기술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도덕적 명분주의가 지나치게 공허하여 내용이 없는 형식적 사고방식의 형해(形骸)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정반대로 현실주의는 너무 맹목적으로 타락하여 속물주의적 사고방식에 천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한다. 공허한 명분주의와 맹목적 속물주의의 두 극단을 피하는 것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양극단에 젖지 않는 것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여긴다. 한국의 정신문화는 묘용(妙用)을 존중하면서도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동시에 노출하고 있다. 최근의 경향은 쏠림 현상을 더 많이 표출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정신문화의 자기 함정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주관업체 직접 방문하세요”

    “주관업체 직접 방문하세요”

    영어 체험학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을 해외 영어캠프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거리도 가깝고 비용도 저렴한 필리핀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이 주목받고 있다. 캠프 주관업체들은 올 겨울방학을 겨냥해 이미 참가자 모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인기가 높으면 그만큼 유혹도 많은 법. 동남아 영어캠프의 특징과 함께 좋은 캠프 선택 요령, 주의사항을 알아봤다. “힘들더라도 아이를 위해 발품을 파세요.” 해외 어학캠프 전문가들이 학부모에게 강조하는 첫 번째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를 해외 영어캠프에 보내기를 원한다면 해당 업체를 직접 방문해 구체적인 사항을 직접 확인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동남아 영어캠프를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소개한다. ●부모 방문시 프로그램·시설 등 모두 공개 자녀를 해외 영어캠프에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면 주관업체를 방문해 내용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광고나 인터넷 홈페이지만 보고 계약할 경우 업체의 수준이나 캠프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우선 후보업체를 몇 개로 압축한 뒤 직접 찾아가 관련 자격 및 허가사항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뒤탈이 없다. 믿을 만한 업체들은 부모가 방문하면 프로그램과 시설, 강사 등 관련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기자. 캠프를 보내기 전에 확인해야 할 서류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우선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귀찮다는 생각에 유학원이나 어학원, 캠프 주관업체에서 해주는 대로 맡겨서는 안된다. 약관을 자세히 읽고 환불 규정이나 보험 가입 여부 등도 확인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계약하면 별도의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에도 계약서를 반드시 받아 놓아야 한다. 필리핀 캠프의 경우 필리핀 이민국에서 발급하는 SSP(Special Study Permit)를 받은 업체인지 확인해야 한다.SSP는 필리핀 정부가 외국 학생들을 위해 일정한 교육시설과 강사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에 한해 인가를 내주고 있다.SSP가 있으면 일단 안심해도 좋다.SSP가 없으면 모두 불법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여행자보험에 주관업체나 대표자 명의로 가입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만 15세 미만은 필리핀에 입국하려면 부모가 인솔자에게 아이를 일임한다는 위임장이 필요하다. 이에 해당하는 재정보증서에 부모의 자필 서명이 들어가야 하므로 반드시 챙겨야 한다. 이 밖에 캠프 참여와 관련된 각종 영수증도 꼭 챙겨두는 것이 좋다. 약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구체적인 환불 규정이나 당초 계획과 달라졌을 때 어떻게 보상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당자의 서명을 넣어 문서로 만들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알선업체는 피한다. 학생을 모집하는 곳이 캠프를 직접 주관하는 단체인지 알선만 해주는 곳인지도 살펴야 한다. 캠프 주관업체는 학생 모집에서부터 진행, 마무리까지 모두 책임지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반면 알선업체는 실제 캠프도 운영하지 않으면서 학생만 모집해 주관업체로 넘기기 때문에 돈벌이에만 급급해 과대·과장광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피해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알선업체의 수익은 캠프 참가비의 20∼40% 선이다. 최근에는 언론사와 방송사 등에서도 해외 영어캠프 알선업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유명 언론사의 이름만 보고 안심하고 계약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 내용을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불 규정을 반드시 확인하자. 만약에 대비해 환불 규정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약관에 일정 액수를 선금으로 내게 하고 계약을 해지하면 위약금으로 물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계약할 때 위약금이 어느 정도인지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출국 보름 전까지는 100%,3일 전까지는 50%, 출국 이후에는 30%까지 환불받을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숙식·학습관리 상황을 점검한다. 현지에서 어떻게 먹고 자고, 공부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호텔이나 리조트의 일부만 빌려 운영하는 곳은 일반 관광객과 섞여 학습 분위기를 해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대학생이나 성인과 함께 숙식하는 것도 피한다. 되도록이면 자는 곳과 공부하는 곳이 함께 있거나 가깝게 있는 것이 좋다. 매일 차를 타고 이동할 경우 불편하기도 하지만 안전 문제도 일어날 수 있다. 식사는 전문 한식 조리사가 있는지, 강사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업체와 계약을 맺고 교육을 받아 투입되는지 여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히 영어공부는 물론 생활지도까지 해주는지 곳이 바람직하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도움말 CIA열린학교 이형근 팀장 캠프나라 김병진 팀장
  • “스나이퍼 설기현 최고의 골”

    “대단한 골(tremendous goal)이었다.”,“최고의 골(superb goal)이었다.”,“설(기현)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스나이퍼’ 설기현(27·레딩FC)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일으키고 있는 바람이 경기를 치를수록 세기를 더하고 있다. 돌풍에서 점점 태풍으로 커지고 있는 것. 설기현이 1일 밤 웨스트햄전에서 벼락 같은 중거리포로 팀의 1-0 승리를 이끌자 영국 스포츠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는 2일 “최고의 골”이라는 평가와 함께 설기현에게 평점 7을 줬다. 웨스트햄의 파상 공세를 주도적으로 막아낸 이브라히마 송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평점이다. 적장이었던 앨런 파듀 웨스트햄 감독마저도 “설(기현)이 멋진 마무리(great finish)를 했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설기현은 또 이날 스포츠 전문사이트 ESPN사커넷이 선정한 ‘베스트 11’에도 오른쪽 미드필더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사커넷은 “설기현이 스스로 날카롭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고 언급했다. 설기현이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베스트 11에 뽑힌 것은 BBC와 스카이스포츠 등을 합쳐 이번이 벌써 네 번째다. 특히 웨스트햄전 직후 “우리 팀은 대단한 골로 앞설 수 있었다. 설(기현)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라고 예견했던 스티브 코펠 레딩 감독의 말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AFP는 “설이 웨스트햄을 침몰시켰다.”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레딩 경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BBC 버크셔는 “한국 대표 선수가 빛나는 슛(glorious shot)으로 웨스트햄 골네트를 흔들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 온라인은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고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7경기 2골 2도움으로 스트라이커 케빈 도일(3골 1도움)과 함께 팀 내 공격포인트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설기현은 레딩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설풍(風)’을 계속 이어갈 기세다.지난달 맨유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공식발표하는 선수 랭킹 19위로 껑충 뛰어올랐던 설기현이 조만간 발표될 7라운드 누적 랭킹에서는 얼마만큼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9) 마음의 혁명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9) 마음의 혁명

    지난주에 보드리야르의 소비사회 비판의 내용을 훑어보면서, 그의 사유의 한계를 금주에 말하겠다고 언급했다. 그의 사유의 한계는 서구의 지성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듯이,3대째로 내려오는 서구의 반자본주의의 사상은 다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사상(fetishism)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의 표시와 같다. 그런데 경제기술적 자본주의든 사회도덕적 사회주의든 다 서구적 지성철학의 전통이 낳은 쌍생아와 같다. 본디 서구 지성철학의 원조는 아리스토텔레스다. 그의 논리학이 지성적 사유의 원조와 같다. 그의 논리학은 동일성(同一性)과 이타성(異他性)을 확연히 쪼개는 이분법적 사유로서, 간단히 말해서 A와 비(非)A를 완전히 별개로 취급하여 그 둘 사이에 어떤 애매모호한 중간지대도 용납하지 않는 사유를 말한다. 그 논리는 택일적 사유를 기본으로 한다. 택일적 사유는 명사적 사유와 같다. 명사적 사유는 산은 산이고 골짜기는 골짜기로 여기는 사고방식으로서, 산과 골짜기가 불일이불이(不一而不二=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로 상호 이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을 보지 않는다. 명사적 사유는 개념적 사유로 이어지면서, 인간지성이 개념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파악하려는 소유의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서구의 기독교 신학도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사유와 만나서 신학을 합리적 논리학과 어긋나지 않게 정립하게 되었다. 이런 정립의 금자탑이 바로 토머스 아퀴나스에게서 시발된 토미즘(Thomism)이라 하겠다. 무(無)에서부터 신(神)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이성(지성)의 능력으로 에누리없이 파악하는 철학이 헤겔의 사유다. 그래서 헤겔의 사유는 웃음을 빼고 역사와 자연과 사회의 모든 것을 다 놓치지 않고 파악한 철학이라고 풍자되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이 너무 진지해서 인간이 웃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다는 우스갯 소리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적 논리학과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학이 다르다고 항의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자가 반대되는 양자사이의 택일을 주장하는 것이나, 후자가 모순되는 양자의 투쟁사이에서 합일을 주장하는 것이나, 다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두 논리학은 다 서구의 지적 전통의 뼈대로써 지성이 어떤 경우에도 세상을 혼미한 상태나 모순된 상태로써 방임하지 않는다는 지적 소유의 강인한 소화력을 상징한다. 지성의 철학은 그 출발부터가 소유의식의 자부심이 강렬했다. 지성이 세상을 소유하려는 철학은 서구 지성사에서 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경제적 기술적으로 세상을 소유하려는 도구적 실용철학이고, 둘째는 그 실용적 소유철학이 회임하고 있는 이기적 속성을 싫어한 반(反)이기적 사회도덕을 중시하는 인도적 해방철학이다. 소위 인도적 해방철학은 스스로의 이상주의에 심취해서 자신의 지성철학은 소유론이 아니고, 인간을 물질적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는 인간주의의 정상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도덕주의가 곧 형이상학적 존재론이라고 착각했다. 좌우간 서양지성사에서 이런 착각을 처음으로 명쾌하게 세상에 밝힌 이가 독일의 하이데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적 실용주의만이 소유론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도덕주의도 역시 지성철학이 분비한 소유론이라는 것이다. 이 하이데거의 통찰은 사회주의적 이상주의가 짙게 피워온 신비의 안개를 하루아침에 날려보낸 셈이다. 사회주의적 소유론은 물질적 소유론보다 더 지독한 정신적 소유론이라는 것이다. 정신적 소유론이므로 독재를 필연적으로 몰고 온다. 보드리야르가 소비사회의 비판으로써 제기한 환영(simulacrum), 흉내내기(simulation), 초과실재(hyperreality), 내파(implosion)(38회 글 참조) 등과 같은 용어들은 다 실재의 알맹이를 잃고 기호로 변해가는 사회의 환상들을 비판한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은 사회가 도덕적 가치를 잃지 않고 내용이 있는 현실이 구성되기 위하여 교환가치보다 더 튼튼한 사용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존재의 알맹이가 있는 사회가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소비사회가 그런 존재론적 알맹이를 다 잃어버렸거나 상실해간다는 것을 통탄하고 있다. 그의 사회학은 반자본주의의 사회학이 자본주의적 소비사회를 길들이지 못한 것을 한탄한 소리와 같다 하겠다. 그러나 그의 사회학은 두 가지의 착각을 범한 셈이다. 첫째로 그는 그의 사회학이 형이상학적 존재론의 요구라고 생각한 점이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정신적 소유론의 요구이지, 결코 존재론의 요구가 아니다.(모든 정신적 가치론은 경제적 가치론의 은유화에 다름 아니라고 지난 9회 글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시장에서 매매가격의 은유적 표현으로 정신적인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인간이 상정한다. 따라서 정신적 가치도 인간이 세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은유적 생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은 세상을 사용가치로서 정초시키고 싶어하는 지성의 도덕의지가 바라는 소유학이다. 둘째로 그는 아직도 정신적 도덕적 가치론이 경제적 이기적 소유론을 길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도덕적 가치론은 당위적인 명령인데, 그 당위의 명령이 자연적 본능의 이기심을 이은 지능(지성)의 이익추구의 충동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지성의 이기주의는 자연적이고, 지성의 도덕주의는 당위적인데, 당위가 자연을 못 이긴다는 것을 노자가 이미 풍자했다.‘도덕경’에서 노자는 ‘발돋움하고 있는 자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성큼성큼 걷는 자가 오래 가지 못한다.’고 암시했다. 인위적인 노력이 자연적인 것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의 도덕적 사회주의가 경제적 자본주의를 이기지 못한 까닭은 그것이 힘이 들어간 인위적 당위주의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반자본주의 사상은 자본주의 병리현상의 지적에선 빛났으나, 그 병리를 치유하는 생리적 처방에는 아주 미흡해서 당위적 주장만을 늘 내놓는 추상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경제기술적 자본주의의 장점을 살리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찌꺼기와 같은 낭비와 배금주의를 씻어내는 길이 무엇인가를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나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다시 그 처방으로 생각한다. 반자본주의적 서구의 지성이 범한 사유상의 과오는 십자군적인 도덕주의의 사고에 너무 젖었었다는 것이다. 십자군적 도덕주의의 사고는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여 선악을 각각 분리된 별개의 것인 양 실체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도 그런 십자군적 도덕주의의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개 서구 지성이 이런 과오에 습관적으로 젖어있는 경향을 갖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비판도 그가 반소비적 물건 가치의 실재를 선으로 집착한 정신적 소유주의를 기본으로 깔고 있기에 생긴 이론이다. 선이 악을 온전히 제거하겠다는 사상으로는 악이 사라지지 않는다. 악과 싸우는 선이 이미 내부에서 악을 또한 분비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까닭이 바로 도덕주의의 허상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그의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론적 욕망의 부름으로써의 양심’을 천명하였다. 나는 이 뜻을 우리가 다시 깊이 새겨야 한다고 여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철학자들이 하는 어려운 관념의 유희라고 오해하거나 일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장 절실하게 세상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생리의 길이라고 생각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론적 욕망의 부름으로써의 양심의 소리’는 흔히 도덕론자들이 즐겨 쓰는 선의 진군나팔 소리를 울리자는 뜻이 아니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세상사람들이 손익의 계산적 지성이나 또는 선악의 도덕적 지성의 둘 중 하나에 젖어서, 전자는 현실주의자들의 방패로, 후자는 이상주의자들의 창으로 각각 써 온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둘 다 소유주의의 철학이다. 소유주의적 문명을 존재론적 문명으로 되돌리려 하는 것이 그의 사유의 본질이다. 모든 것은 다 동시에 양가적이므로 선악을 분별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 모든 것이 양가적이고 이중적인 한에서, 세상을 구하는 길은 세상을 분별적으로 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하는 양심의 소리는 분별적인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본래의 본성적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마음의 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가리킨다. 본성의 소리는 당위적인 도덕의 명령이 아니라, 본능처럼 마음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기호적(嗜好的) 욕망을 말한다. 기호적 욕망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본능적 소유욕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본성의 존재론적 욕망이다.(1·2회 글 참조) 하이데거가 언급한 양심은 마음이 자기의 본성을 되찾은 자성(自性)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그 자성을 그리스도성이라 불러도 좋고, 불성이라 말해도 괜찮다. 그러므로 그 양심의 부름은 도덕적 당위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성이나 불성이 하고싶어 하는 욕망을 부르는 것이다. 이런 부름을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마음)가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가능성에로의 말건넴’과 같다고 언명했다. 소유론적 욕망은 이기배타적인 욕망이지만, 존재론적 욕망은 그리스도성이나 불성이 욕망하는 것이므로 자리이타적 욕망이다. 인간에게 이런 욕망의 자발성도 있다. 이 자발성을 부르는 것이 양심의 부름이다. 이 욕망은 경제와 과학기술을 위한 지혜도 부정하지 않고, 사회도덕도 파괴하지 않는다. 자리이타의 욕망은 자기본성에 의한 재능의 계발이 곧 사회적 이타행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소유론적 지성(知性)을 넘어선 존재론적 지성(智性)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명스님은 ‘대승기신론’에서 이 지성(智性)을 중생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수염본각(隨染本覺)의 능력인 지정상(智淨相)과 그 것의 불가사의한 활동력인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이라고 명명했다. 본성의 욕망인 양심이 숨을 쉬면, 이 본성의 능력들이 우리를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양심의 부름을 하이데거는 간결하게 말했다.“양심의 부름은 나로부터 나오지만, 나를 넘어서 나온다. 그 부름이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나에게 온다.” 이것이 마음의 혁명이다. 세상을 혁명하려하지 말고 마음을 혁명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8)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비판에 대하여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8)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비판에 대하여

    미국의 거대한 자본주의에 늘 정신적 대립각을 세워 온 유럽은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3세대에 걸쳐 시도했었다.1세대의 극복시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거대한 관료주의의 괴물로 치달음으로써 실패했다. 소련의 붕괴가 이를 입증한다.2세대는 네오 마르크시즘 운동으로서 관료화에 빠지지 않고 도덕적 이성에 의하여 소외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목표로 하는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 이른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사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들의 철학사상이 지닌 고매한 도덕적 이상주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가지 거리감을 지울 수 없었다. 첫째로 60년대 내가 유학생이던 당시의 한국은 아직도 고도자본주의 사회에로 진입할 기미도 없었던 저개발 최빈곤국이었다. 반대로 신좌파운동은 그들 사회가 이미 맛보고 있는 풍요한 고도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삼고 그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인데, 이들 사상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20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이 경고한 ‘지식인의 아편’인 혁명적 관념의 유희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떨쳐버릴 수 없었다. 둘째로 나는 이들이 주장하는 이상사회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현실성에 큰 의문을 가졌었다. 관념적으로 아무리 멋져도 현실적인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면, 나는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고 늘 생각했다. 더구나 인간사회는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연습장이 아니기에, 관념적 사유로 현실을 대체하겠다는 혁명적 발상을 나는 저어했다. 특히 1세대 ‘사회주의=관료주의’의 실패가 늘 나로 하여금 2세대 신좌파운동의 사상에 선 뜻 동의하기를 어렵게 했다. 더구나 그 당시에 나의 철학공부를 이끌어 주던 두 정신의 스승이 있었는데, 프랑스의 메를로-퐁티와 가브리엘 마르셀이었다. 전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다가 소련의 스탈린주의가 실현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낭만적 허구를 보고서 이상주의 사상의 거짓을 고발한 철학자였다. 그는 또 현실역사가 이성의 빛과 의미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정리하지 못하는 애매모호성으로 엮어진다는 것을 서술하면서, 인간역사를 오직 의미의 역사로 환원하고자 하는 과잉 도덕적 명분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후자는 가톨릭 철학자로서 인류의 역사세계가 이미 ‘깨어진 세계’인데, 그 세계에서 악을 박살내겠다는 결심으로 굳어진 절대선 지향이 결국 국가주의적 나치즘과 계급주의적 공산주의와 같은 광적인 격정의 정치체제를 만들게 된다고 고발했다. 다음 3세대의 자본주의적 비판운동이 다시 등장했다. 해방적 이성의 자기 소외극복 운동으로 마르크시즘을 승화시키려는 2세대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한 마당에서 생긴 포스트 모던적인 운동이 3세대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미 너무 농염하게 성숙하여 마르크스주의로 새 사회를 창조하기가 어려운 경지에 이르러, 비마르크스적인 자본주의의 극복이 시도되었다. 이번에는 독일과 달리 프랑스의 푸코, 들뢰즈, 알튀세르, 보드리야르를 중심으로 한 사회사상의 운동이 생겼다. 이들 사상의 공통점을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자본주의적 정치권력의 상품적 대중화를 비판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심어 놓는 무의미한 허무주의적인 흐름을 그대로 빨리 노출시켜 자본주의가 허무주의로 종말을 맺게끔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들은 약간씩 허무주의자들이다. 들뢰즈와 알튀세르가 좌우간 자살로 삶을 마감했고, 푸코가 에이즈병에 걸려 50대에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특이한 일이겠다. 보드리야르의 사회사상을 잠시 훑어보자. 단적으로 보드리야르의 사회사상은 초월의 정신을 망각한 현대 소비사회의 정신부재의 경박성을 슬퍼하면서, 그런 삶의 경박성의 원인이 바로 소비사회의 자본적 본질인 모든 것의 기호화(signalization)에 있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물건은 어떤 가치에 대응했었다. 사용가치든 교환가치든 물건은 인간의 구체적 욕망의 충족을 만족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집은 어떤 정신적이고 내면적 가치를 가족에게 주었었다. 그러나 이제 집은 단지 상상적인 상품의 기호적 가치만을 지시해서 헌 물건 버리고 새로 사듯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의 소비품목에 불과하다.TV프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앉아서 리모컨으로 쉽게 손가락 끝으로 바꾸듯, 모든 것은 소비자의 순간적 변덕에 따라 움직이는 기호와 같은 ‘환영’(幻影=simulacrum)에 불과하다. 고도소비사회에서 자동차도 기능가치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이나 삶의 스타일이나 허세나 으쓱대고 싶은 욕망의 환영을 만족시켜 주는 일시적 대용물일 뿐이다. 그런 욕망의 환영은 마치 옛 사회주의 소련의 한 청년이 서방 자본주의의 대명사 같은 블루진을 입고 다니거나, 아프리카 부시맨의 어떤 사나이가 비행기에서 떨어진 서방 콜라병을 무슨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싶어하는 그런 환영과 유사하다 하겠다. 중요한 것은 블루진이나 콜라병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이의 기호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소비사회에서 모든 이들은 다른 이들과 다른 어떤 기호의 환영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자본주의의 본질은 노동과 정신적 가치 등 모든 것이 다 시장의 교환가치로 전환되어 상품화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마르크스의 비판이론은 이미 지나간 시절의 가치유물에 불과하고, 이제 사회는 모든 것이 기호적 교환과 같은 ‘흉내내기’(simulation)의 차원으로 전락하여 실재적 가치가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든 흉내내기의 환영은 소비사회가 부추긴 차이화의 조작 코드에 인간이 멋모르고 덩달아 춤추는 껍데기에 불과함을 연상시킨다고 보드리야르는 진단한다. 차이화 코드는 소비사회가 소비자를 유혹하는 차별화 기호의 놀이에 해당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차이의 환영 속에서 각각 섹시(sexy)해지기 위해 돈을 마구 쓴다. 섹시하다는 것은 소비시장에서 상품으로 잘 전달되기 위하여 남들을 유혹하는 기호고, 각자는 대중사회에서 차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과감히 더 섹시하게 튀어 보이게끔 스스로를 기호화한다. 모든 이는 다 섹시한 차이를 연출하기 위해 환영을 좇는다. 보드리야르가 그의 저서 ‘소비사회’에서 기술한 것처럼 ‘소비는 기호(sign)가 흡수하고 기호에 의하여 흡수되는 과정이다.’ 모든 것이 영상으로 비쳐진다. 브라운관이나 컴퓨터의 화면, 유리처럼 투명하나 절연체와 같은 차가운 매체의 통로를 통하여 세상을 구경하거나, 백화점의 상품을 훑어본다. 충격적인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고도 자동차 유리를 통하여 감정이 절연된 상태에서 구경하는 정도의 감정만 사람들이 갖는다. 서로 관여하는 진실이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금방 지나가는 일시적 참상에 불과하고, 먼 나라에서 전쟁이 터져도 그것은 TV화면의 순간적 그림으로 보는 환영일 뿐이다. 사람들이 지하철에 우굴거리나 그들이 사람들이라고 여겨지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환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냥 사람 비슷한 환영들이 득실거릴 뿐이다. 아무도 대중을 사람들의 실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현실을 실제로 느끼지 않고, 차가운 기호로 대체되어 실제로 느낀 척 흉내낼 뿐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런 소비사회를 형이상학적 근거를 상실한 ‘환영’의 사회,‘흉내내기’의 사회라고 불렀다. 이런 사회를 그는 또한 실재가 증발되고 환영이 진짜보다 살을 그 위에 더 덧붙이는 ‘초과실재’(hyperreality)의 사회라고 명명했다. 이 초과실재가 바로 환영이고 흉내내기의 허상과 같다. 그는 이런 환영의 흉내내기와 같은 기호가치(value-sign)만이 비대해진 소비사회에는 환영처럼 무수하게 지나가는 기호적 ‘초과실재’에 의하여 인격의 파탄이 내부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런 파탄을 그는 ‘내파적 폭력’(implosive violence)이라 불렀다. 예컨대 게임이나 쇼핑에 미친 사람이 상상적 초과실재를 현실로 착각하고 자기 내부에서 환영으로 배가 불러 파열한다. 본디 내파(內破=implosion)는 음운론적으로 외파(外破=explosion)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영어의 ‘tap(탭)’,‘cut(컷)’에서 파열자음의 음가인 ‘t’,‘k’ 등이 첫 발음에서는 바깥으로 폭발하는 외파적 파열음이 되지만, 끝 발음의 파열자음인 ‘p’와 ‘t’는 밖으로 폭발하지 않고 안으로 파열이 잠기는 그런 음가를 지닌다. 이것이 외파음에 대한 내파음의 의미다. 과거의 문명은 마르크스의 분석처럼 외부의 모순(계급투쟁)으로 외파하는 구조를 지녔지만, 현대 소비사회의 본질은 스스로 인간이 기호처럼 흉내내기를 하다가 많은 기호에 헛배가 불러 내부에서 내파하여 폭발하는 폭력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드리야르가 본 소비사회에 대한 허무적 진단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3세대의 주장인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이 소비사회의 병을 진단하는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상이 소비적 인간사회를 구원하는 약이 아니고, 오히려 허무주의적 결말을 예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풍요와 편리, 그리고 낭비와 배금주의를 동시에 가져온 이중적 얼굴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서구의 사상은 마르크스로부터 보드리야르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병리(病理)를 잘 보았으나,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생리(生理)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나도 그 생리를 알지 못해 많은 시간 헤맸지만, 최근에 해체적인 존재론적 사유가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생리의 길이란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이기적이고 물질적 소유론을 그 동안 서구는 도덕적 형이상학적 당위의 가치론으로 극복하려고 시도하였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마르크시즘이나 네오 마르크시즘은 자본주의의 본능적 소유론에 비하여 반본능적 정신의 소유론에 다름 아니다. 본능적 소유론을 치유하는 길은 역시 자연적 존재론에 의해서 가능하지, 인위적 당위론으로 불가능하다. 보드리야르의 허무론도 결국 형이상학적 실체의 붕괴를 소비사회가 촉진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생긴 반본능적 형이상학적 소유론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 그러나 거기에 그의 사회학의 큰 약점이 있다 하겠다. 이것을 다음주에 더 설명하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美해외대사관 보호 ‘007장비’ 개발 박차

    미국 정부가 해외 자국 대사관에 대한 테러를 막기 위한 ‘슈퍼 장벽(super-fence)’과 ‘특수 커튼’을 개발하고 있다고 미 ABC방송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전 세계 미 대사관을 영화 ‘007’에서나 나올 법한 첨단 장치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방송은 정부가 실시한 가상 테스트 장면도 방영했다. 미 정부는 첨단 보안장벽 등의 개발을 위해 매년 200만달러를 지출하고 있으며, 이를 전 세계에 주재하는 미국대사관에 설치할 계획이다.과학자들이 실험한 결과 시속 80㎞로 달리던 2t짜리 트럭은 육중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슈퍼 장벽을 파괴하지 못했다. 속도를 100㎞로 올렸지만 디젤 트럭은 장벽을 넘지 못했다. 슈퍼 장벽은 강화섬유와 특수한 합성수지가 혼합된 것이며 폭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문과 창문도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또 열가소성수지(열이 가해지면 형태가 변하는 물질) 재료로 제작된 커튼은 폭발이 일어나도 폭발 파편을 흡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보호하는 특수 커튼도 개발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1972년 뮌헨테러, 실체 해부하기

    1972년 서독 뮌헨 올림픽.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9월단’에는 최고의 무대였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던 TV는 생방송으로 뮌헨의 상황을 전파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뮌헨에 잠입,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납치한 뒤 모두 살해했다. 세계는 경악했지만, 검은9월단은 마침내 자신들의 문제에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자축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이스라엘은 이 꼴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었을까. 지금 레바논 사태를 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올해 초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에 따라 테러사건 배후에 있는 11명을 암살하는 ‘작전명;신의 분노(Operation Wrath of God)’를 개시한다. 그러나 응징이란 얼마나 무모한가. 살해대상이 정말 테러책임자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어김없이 명령은 내려지고 작전은 수행된다.그러면 이런 얘기는 그냥 스필버그 감독의 천재적인 상상력에 지나지 않을까. 디스커버리채널이 5일 오후 10시 다큐멘터리 ‘뮌헨:실제의 암살자들(Munich:The Real Assassins)’을 통해 이스라엘 복수작전의 실체를 밝힌다. 이스라엘 연구자들의 몇 년에 걸친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만든 이 다큐는 실제 이 작전에 참가했던 모사드 요원 5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여기에다 모사드 상급자와 피해자·목격자의 증언까지 곁들였다. 실제 이스라엘 최고위층의 승인에 따라 구성된 암살대는 2년여 동안 로마·파리·프랑크푸르트·베이루트·아테네·런던 등을 떠돌아 다니며 작전을 수행한다. 다큐는 이들 암살자의 일상과 도덕적 딜레마에서 오는 괴로움 등에 초점을 맞춘다. 궁금증은 남는다. 그렇다면 푸에블로호 사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아웅산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강원도 무장공비 사건 뒤 우리는 혹 보복공작을 하지 않았을까.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北핵실험 대비 행동계획 검토중”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일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계획(action plan)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 장관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주최 토론회에 참석,“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미사일 발사와는 비교될 수 없는 안보적인 위협, 비확산체계 근간을 뒤흔드는 상황으로 북핵 불용원칙에 상응하는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반 장관은 전시작권통제권 환수와 관련해 “작통권이 환수되는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협의를 위한 긍정적 여건이 조성될 것”이며 “평화체제 논의에서 우리가 유리한 입장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 장관은 또 ‘오는 14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과보다는) 실패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 있는데’라는 질문에 대해 “불행하게도 한·미 국민들간에 인식의 차이(perception gap)가 생겨 있다. 이는 한번 형태(frame)가 잡히면 벗어나기 힘들고 아무리 설명해도 브리핑을 해도 안 된다.”면서 “따라서 이것을 불식시키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래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정상회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대통령께서)어느 나라와 하든지, 문제를 잘 파악하고 대처하기 때문에 걱정 안해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 장관은 전시 작전통제권과 관련해 ‘외교문제에 박식한 김대중 대통령 때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참여정부 들어서 문제가 불거졌느냐.’는 질문에 “상황은 늘 변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지도자, 정책 결정자들이 어떠한 정책을 어떤 식으로 끌고 나가느냐는 것은 그의 고유의 권한이자 책임이다.”고 말했다. 이어 전작권 환수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전작권 환수 자체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생각나눔] 감독은 누가 할까

    [생각나눔] 감독은 누가 할까

    올 하반기 금융시장의 화두는 교차판매이다. 은행에서 보험상품이나 펀드를 팔고, 보험설계사가 펀드를 파는 시대이다. 그럼 은행에서 보험이나 펀드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팔아 분쟁이 발생하면 누가 검사를 해야 할까? 판매기관을 검사하는 곳이 담당한다. 상품은 기관을 넘나들면서 팔리고 있지만 검사는 기관 위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99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은 29일 교차판매 검사에 대해 “‘주요 감독자(leading supervisor)’ 원칙에 따라 판매상품 담당이 주(主)가 되고 판매기관 담당이 보조를 이루는 통합검사”라고 밝혔다. 김 부원장은 “기관별 정기검사에서 다른 금융기관 상품에 대해 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은행의 펀드 판매를 은행담당국이 검사한다.”면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일명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되고 시행령 작업이 진행되면 현재의 검사 구조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지난해 9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금융업 패널에서도 “은행·증권·보험 3개 금융기관이 모두 펀드를 파는데 이에 대한 규제가 제각각인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금감원 내에서도 은행의 불완전한 펀드 판매에 대한 검사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대한 신경전이 종종 발생한다.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 판매) 검사를 나갈 때도 은행 담당국과 보험 담당국 사이에 불협 화음이 나온다. 담당 업무간 인사교류 등을 통해 통합 시너지를 추구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출신 감독기관별 신경전이 남아 있는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내부적으로는 업무영역과 관련된 문제라 민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은 어떨까. 감독기관의 통합 여부와 달리 금융상품의 권유·판매행위는 영업행위로 규정, 금융상품 위주로 검사를 나간다. 자본시장통합법의 모델인 호주에서는 증권투자위원회(ASIC)가 영업 행위를 검사하고, 건전성 규제는 금융감독청(APRA)에서 각각 담당한다. 영국은 금융감독청(FSA)에서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 규제를 모두 맡지만 검사는 판매상품 위주로 이뤄진다. 일본의 금융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감독기관이 나눠져 있지만 판매에 대한 검사는 상품별로 실시된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각 기관의 펀드 판매에 대한 검사를 맡고, 방카슈랑스는 주(州)마다 있는 보험감독청에서 담당한다. 은행의 건전성 규제는 연방준비위원회(FRB)가 맡는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딸기코’ 방치하지 마세요

    ‘주사(Rosacea)’라고 불리는 피부질환이 있다.‘술에 익은 듯 코 끝이 빨개진다.’고 해 ‘주사비’나 ‘비류(딸기코)’로도 불리는 이 질환은 코끝이나 이마, 볼 등에 생기는 만성 피지선 염증을 말한다. 주사는 홍반, 뾰루지, 농포, 모세혈관 확장 등의 증상을 유발하며, 방치하면 딸기코로 발전한다. 피부가 술에 중독된 듯 보여 병명에 ‘주(酒)’자가 붙었다.●원인과 증상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내분비 이상, 혈관운동의 부조화, 소화기능의 이상, 음주, 진드기 감염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의 피부 모낭에 기생하는 ‘데모덱스’라는 진드기가 원인인 경우 피부과에서 진균도말 검사로 쉽게 확인된다. 주사로 나타나는 뾰루지, 농포, 낭종은 여드름과 비슷해 보이지만, 살펴보면 흑색 또는 백색 면포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여드름과의 차이다. 또 모세혈관이 확장되거나 코끝의 피지선이 과다하게 형성되면 코가 울퉁불퉁한 딸기코로 변하는 특징도 나타난다.●관리 방법 많은 사람들이 딸기코를 습관적인 음주의 후유증 정도로 여기나 그것은 오해다. 술 때문에 딸기코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사는 여드름처럼 스트레스와 지나친 일광 노출에 의해 악화된다. 커피, 콜라 등의 카페인이 든 음료, 술, 뜨겁거나 매운 음식 등이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하므로 피하는 게 좋다. 주사가 나타나면 자꾸 손을 대고 눌러 짜기도 하는데 이는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가 하면 자가진단을 해서 연고제 등을 바를 경우 모세혈관 확장증이 더욱 악화되거나 피부 위축증이 나타나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전문의 처방이 없는 연고 사용은 금물이다.●어떻게 치료하나 치료는 증상에 따라 다르지만 뾰루지, 농포, 결절, 낭종 등이 심한 경우에는 여드름과 흡사한 방법으로 치료한다. 이미 모세혈관의 확장이 심해 겉보기에 피부가 붉어져 있고, 미세한 혈관이 눈에 보이는 이른바 ‘딸기코’ 단계라면 혈관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색소 레이저로 치료하는 것이 좋다.‘브이빔’ 등이 대표적인 색소레이저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치료는 치료 후 1∼2주간 멍 자국이 남아 일상생활에 적잖은 부담을 준다. 이런 점을 보완한 새로운 개념의 치료법 중에 ‘퍼펙타(Perfecta)’를 이용한 치료가 있다. 이 방법은 치료 후 멍 자국이 남지 않아 일상생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주사 및 여드름의 붉은 흔적, 안면홍조 등에 좋은 치료 효과를 보인다. 홍남수 듀오피부과 원장은 “퍼펙타의 경우 표피를 냉각시켜 뜨거운 레이저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면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움말 홍남수 듀오피부과 원장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주말탐방] 香전문연구소 ‘센베리 퍼퓸 하우스’

    [주말탐방] 香전문연구소 ‘센베리 퍼퓸 하우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학교 감성공학연구센터 4층.‘센베리 퍼퓸 하우스’라는 이상한 간판을 단 연구소의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진한 향수 냄새가 확 밀려온다. 또 다른 문을 밀치자 세탁기와 빨래 건조대가 놓여 있다. 향수와 세탁기. 도통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세탁기 옆에는 미용실에서나 봄 직한 머리 감는 세면대가 있다. “머리만 감나요. 저는 하루에도 이를 스무 번 닦습니다.” 치약 담당이라는 임형준(43) 조향사(調香師)의 얘기다. 이어지는 말이 더 재미있다. “아무리 쉬었다가 이를 닦아도 치약 향이 입안에 남아 있어 수시로 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도 안될 때는 식빵을 잘근잘근 씹죠. 입안 냄새를 없애는 데는 흰 식빵이 최고예요.” 맘에 드는 치약 향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향이 각각 다른 수백개의 치약 샘플을 만들어 보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를 닦는다는 이 남자. 샴푸 담당은 그 옆에서 머리를 감고, 세제 담당은 분주히 세탁기를 돌린다. 그러고는 시도 때도 없이 머리카락에, 빨래에, 화장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냄새에 집착하는 걸까. “향이 돈이니까요.” 이 이상한 하우스의 책임자인 김병현(49) 조향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잘라 말한다.“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진다.”는 설명이다.LG생활건강이 프리지어 등 네 가지 다른 향의 섬유유연제로 단숨에 시장점유율 2위로 올라선 것이나 미국 유니레버사의 ‘도브’ 비누가 세계적으로 히트한 것은 향의 힘을 말해 주는 대표적 예다. ●국내 유일의 향 전문 연구소 센베리 퍼퓸 하우스(Scent Berry Perfume House). 영어 발음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간판에 달았다. 쉽게 말해 향(香) 전문 연구소다. 향만 전문으로 연구하고 개발하는 연구소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유통업체인 LG생활건강이 올 3월 서울대 건물을 빌려 처음 문을 열었다. 외국의 유명 유통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차석용 사장이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길게는 제품의 질이지만 단시일내 승부를 낼 수 있는 것은 향과 디자인”이라며 서울과 대전(대덕) 등에 제품군별로 흩어졌던 향료팀을 한데 모은 것이 향 전문 연구소가 탄생한 계기가 됐다. 손에 잡히지 않는 향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은 발상의 전환이 이채롭다. 연구소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향 도서관. 책이 향료병으로 바뀌었을 뿐 용기마다 향의 이름과 종류, 가격 등을 써붙여 놓은 것은 일반 서가 풍경과 똑같다. 물론 데이터베이스(DB)가 잘 돼 있어 찾아보기도 쉽다. 액체 형태로 용기에 담아 보관하는데 이곳에 있는 향의 종류만 7000여종. 귀하고 비싼 향은 특수 냉장고에 넣어 별도 저온 보관한다. 왠지 이곳에서는 사람보다 향이 더 대접받는 느낌이다. “(오일 형태의)장미향 1㎏을 얻으려면 장미꽃잎을 얼마나 따야 하는지 아십니까. 무려 5t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동이 트기 전에 일일이 사람 손으로 따야만 향이 제대로 삽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전 세계적으로 5000종이나 되는 장미나무 중에 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지중해 연안에서 나는 불가리안 로자 등 딱 2종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1984년 럭키 향료실에 입사,‘동동구리무’와 ‘나너샴푸’에 향을 입힌 것을 시작으로 20년 조향사 길을 걸어왔다는 김병현씨는 향 이야기를 한보따리 풀어놓는다.“장미 등 천연향이 비싼 것은 이 때문”이라는 그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향을 즐기게 된 데는 순전히 합성향료가 개발된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퐁퐁에서부터 향수까지 향 하면 향수나 화장품만 떠올리게 되지만 막상 이 연구소를 찾고 보니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퐁퐁에서부터 샴푸, 치약, 비누, 향수에 이르기까지 향이 들어가지 않는 제품이 거의 없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들 제품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주는 향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조향사들의 역할이다. 때로는 기존 향을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새로운 향을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머릿속에 수백 종류의 향이 들어있지 않으면 ‘속도전’에서 살아 남기 어렵다. 숙달된 조향사는 최소한 천연향 200여종, 합성향 500여종을 구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조향사는 모두 12명. 이들은 매일같이 서가가 아닌 ‘향가’를 드나들며 새로운 향을 만들어 보고 시험한다. 배합법을 조금만 달리 하면 향이 달라지는 만큼 통상 한 가지 신제품을 위해서는 수백개의 샘플을 만들어야 한다. 경쟁사의 신제품이나 세계 유명 향수를 발빠르게 구입해 분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일과다. ●“술 담배요? 큰일날 소리” “향이란 게 참 묘한 놈입니다. 첫 향이 좋은 놈이 있는가 하면 잔향이 좋은 놈이 있고…. 어떤 놈은 실컷 좋은 향을 내다가도 제품과 결합하면 이상해지기도 해요.” 세제 담당이 세탁기를 가져다 놓고 열심히 빨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제나 섬유유연제가 빨래와 섞이는 과정에서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말리는 과정에서도 향이 달라져 반드시 건조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코가 생명인 조향사들에게 술과 담배는 금물. 후각을 둔하게 하기 때문이다. 축농증이나 감기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특수 저장실까지 둘러보고 연구소 문을 밀치고 나오는데 조향사들의 얘기가 귓전에 울린다.“소리가 난다고 해서 모두 음악이 되나요. 작곡가가 있어야지요. 냄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조향사 되려면 자격증 제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조향사가 되려면 화장품 회사 등 관련 기업체나 연구소에 입사해 훈련을 받는 방법과 향료회사에서 전문 조향사 훈련을 받는 방법, 프랑스 이집카(ISIPCA) 등 전문 조향 학원에서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주로 화학원료를 배합해 향을 만드는 만큼 화학 전공자가 유리하다. 국내에 남자 조향사가 더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조향사는 60∼80명. 크게 맡는 향(취향)과 먹는 향(식향) 전공으로 나뉜다. 연간 15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향 시장은 스위스 지보단, 일본 하세가와 등 외국 회사가 80% 이상을 석권하고 있다. 최근 들어 향 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데다 ‘LG생활건강´, ‘태평양’ 등 국내 업체들도 자체 조향사를 양성하고 있어 직업적 전망도 밝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관련 기업체들은 평소 향에 관심이 많거나 후각이 예민한 신입사원들 가운데 ▲얼마나 빨리 냄새에 반응하고 ▲서로 다른 향을 골라낼 줄 알며 ▲이를 감정으로 표현해낼 줄 아는지를 테스트해 전문 조향사로 훈련시킨다. 초보 조향사는 맨 먼저 향의 계보를 설명해 놓은 ‘향 족보’를 달달 외워야 한다. 처방전(배합법)을 직접 써 자신만의 향을 만들려면 최소한 3년은 지나야 한다. 그렇지만 향은 특허가 없다. 특허를 내는 순간 배합법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샤넬의 유명 향수 ‘넘버5’는 개발된 지 8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확한 배합법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조향사로 성공하려면 예민한 후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시장에서 먹히는 향을 찾아내는 마케팅 감각이 더 중요하다.”는 게 조향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밤에 향수 뿌리는 여자 윤보임(30) 조향사는 ‘밤에 향수 뿌리는 여자’다. “아침에 향수를 뿌리면 출근해서 향을 제대로 맡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여자 조향사들은 화장도 진하게 안 합니다. 저녁에 퇴근할 때도 좋아하는 향수를 못 쓰고 여러 제품을 다양하게 뿌려야 합니다.” 그는 국내 최고가 화장품으로 꼽히는 ‘후 환유고’(68만원)에 송이버섯향을 입혀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당귀나 홍삼 향은 너무 흔해서 내키지 않았는데 우연히 백화점에 갔다가 송이버섯 향을 맡고는 이거다 싶었지요.” 그는 지하철을 타든, 시장을 가든 습관처럼 냄새를 맡는다.“우연히 마주친 냄새에서 아이디어를 얻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LG에 입사, 네 가지 관문을 차례로 뚫고 향료 연구팀에 합류했다. 화장품과 향수 등 ‘맡는 향’ 전문이다.“향을 맡은 뒤 이를 말로 표현하는 테스트가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냄새를 맡는다는 게 의외로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입사 초기에는 퇴근하자마자 무조건 쓰러졌다.”고. 이제는 요령이 생겨 하루종일 향 속에 있어도 두통이 없다고 한다. 주로 오전에는 전날 만들어 놓은 향을 가볍게 맡아보고 팀원들과 의견을 교환한다. 오후에는 배합이나 부양처럼 강향(强香) 작업을 한다. 늘 가습기를 틀어놓고 채소와 비타민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코 관리 비결.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김형기의 영화, 99가지 모놀로그] 바다야, 지혜 품은 바다야

    영화 ‘고래와 창녀’(La Puta y la ballena·2004)는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고 꽉 막힌 세상에서 도피를 시도하는 여성작가 베라가 우연히 손에 넣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 창녀 로라의 흔적을 추적해 가면서 시작된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깊은 바다의 신비로운 블루 톤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화면 속에, 사랑은 깊은 바다 밑에서 부유하는 고래가 건네주는 허무함과 같다는 것을 말해준다. 죽기 전에 해변으로 올라온다는 고래가 70년 전 로라와 함께했던 같은 장소로 다시 올라와 베라에게 모습을 보인다. 상처 입은 고래처럼 아픔을 가진 베라와 로라도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들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렇게 가라앉든지 다시 헤엄치든지…. 재난영화의 플롯을 따르면서 적극적으로 바다를 상대로 대결하는 사나이들의 짠내 그득한 영화가 있으니, 바다영화에 강한 폴프강 페터슨 감독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2000)이다. 폭풍이 몰려와도 만선의 꿈을 저버릴 수 없었던 그들은 다른 두개의 기상전선이 충돌하며 만든 거대한 폭풍우와 미칠 듯이 날뛰는 바다 위에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학적 욕구가 인간의 본성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10층 건물 높이의 파도와 시속 120마일에 달하는 강풍을 일컫는 ‘퍼펙트 스톰’이 되레 그것에 맞서 싸운 사나이들을 일컫는 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바다로부터 운명을 이겨내는 지혜를 깨닫는 여인들이 있고, 그것에 맞서 싸운 바다 사나이들이 있다면, 바다와 호흡하고 대화하며 소통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도 있다. 영화 ‘그랑블루’(1988·Le Grand Bleu)는 로맨스와 유머, 경쟁심과 우정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이 빽빽하게 차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말 그대로 ‘커다란 청색’이다. 실제로 그리스 어촌 출신인 감독 뤽 베송과 푸른 이미지의 배우들 그리고 에릭 세라의 음악은 푸른빛이 묻어날 정도로 정교하고 특별하다. 바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특별한 남자의 이 이야기는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의 이미지와 맞물려 오래도록 각인되어 바다를 그리워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철 지난 바닷가도 좋고, 활기에 넘쳐 제철을 만난 해수욕장도 좋으며, 비나 눈이 흠씬 내리는 모래사장에 솟구쳐 오르는 검푸른 파도를 아우르는 상상도 가슴 뛰게 한다. 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즐거움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얌전하게 넘실대는 파도와 푸른 물살은 평화와 고요를 상징하지만, 속을 뒤집듯 안의 것을 토악질해대는 때에는 그것만큼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없다. 모든 자연이 그렇지만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할 때에만 그것은 우리에게 행복과 풍요를 약속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세상에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이 따로 없다. 우리가 2006년 여름을 보내며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교훈이다. 그리고 바로 그 교훈에 대한 반성과 실천에서부터 푸른 바다 저 멀리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희망이 시작된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자. 시나리오 작가
  • [세계의 싱크탱크] (5) 美 헤리티지 재단

    [세계의 싱크탱크] (5) 美 헤리티지 재단

    ■ 에드윈 풀너 이사장 인터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현재 미국의 주류는 보수이며, 보수의 주류는 헤리티지이다.” 에드윈 풀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헤리티지는 27만 5000명에 이르는 풀뿌리 지지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그 때문에 정부, 의회, 기업과 협력하면서도 우리의 독립성과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헤리티지가 다른 싱크탱크보다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첫째, 명확한 타깃이 있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 말하자면 의회와 정부의 스태프들이 우리의 고객이다. 둘째, 헤리티지는 단기 정책보고서(Short Position Paper)에 중점을 둔다. 의원들이나 정부 고위관리들은 다른 연구소가 발간하는 긴 보고서들을 읽을 시간이 없다. 셋째, 우리는 연구 방향을 공동으로 결정한다.‘슈퍼스타’ 한 사람에 의존하지 않고 연구소 전체의 의견을 만들어낸다. 넷째, 매우 광범위한 지원자층을 갖고 있다. 특정한 기업이나 산업이 아니라 미국의 전반적인 보수층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헤리티지는 공화당을 지지하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어느 당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강력한 국방, 미국의 전통적 가치, 법치를 신봉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지지한다. 보수주의 안에서도 다른 생각들과 다른 정책적 해법들이 존재한다. ▶연구원들을 뽑을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 -똑똑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기본적으로 헤리티지의 임무에 동조하는 인재들을 선발한다. 우리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가야한다.’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식으로 ‘가는가.’를 연구한다. 따라서 좌파적 진보주의자가 헤리티지에서 일한다면 결코 편하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의 다른 보수적 싱크탱크들과는 경쟁관계인가, 협력관계인가. -양쪽 측면이 다 있다. 개인적으로 케이토(CATO)나 미국기업연구소(AEI), 스탠퍼드대학의 후버연구소를 후원한다. 헤리티지는 이들과 공동으로 연구도 진행한다. 그러나 보수적 싱크탱크 사이에도 특정 사안을 놓고 경쟁적으로 서로 다른 해결책들을 내놓기도 한다. ▶극좌를 1, 극우를 10이라고 할 때 헤리티지는 어디쯤 서있는가. -우리는 주류 보수주의자들이다. 아마 7이나 8쯤일 것이다. ▶미국에서도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가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헤리티지의 연구활동에 진보적 시각은 어떻게 반영되는가. -우리는 이념을 떠나 올바른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는데 집중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7이나 8이지만 4,5,6도 수긍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1,2,3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쪽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대기업과의 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가. -지난해 헤리티지가 받은 기부금은 3500만달러(약 350억원)다. 이 가운데 정부로부터는 받은 돈은 전혀 없다. 기업들로부터 온 기부금도 200만달러, 즉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개인이다. ▶한국에 헤리티지와 같은 싱크탱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기부 전통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우선은 기업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재벌기업들이 사회에 많은 돈을 환원하고 있다. 그 돈을 서너개의 싱크탱크에 집중 지원하면 될 것 같다. 서울에도 싱크탱크가 어떤 식으로 운영돼야 하는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그 돈을 맡겨서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연구자들을 초빙하면 좋은 연구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특정기업도 5% 이상을 기부하면 안 된다. 독립적인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앞으로 헤리티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혁명 대신 변혁을 할 생각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현재 헤리티지 연구의 75%는 인터넷 사이트에 먼저 올라간다.4년전 상원에 독극물 배달 사건이 발생한 뒤 우편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젊은 세대는 우편보다 이메일로 정보를 받기 원한다. 기술 발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며칠전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이곳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우리는 24개월마다 웹사이트를 대폭 개편한다. 사용자들의 요구에 맞춘다. 또 삼성이나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이 실시하는 마케팅 기술을 재단 운영에 적용하고 있다. dawn@seoul.co.kr ■ 부처 정책에서 인사 방향까지 제시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헤리티지 재단은 미국의 정치권과 매우 가까운 기관이다. 물리적으로도 근접해 있고 심리적으로도 친밀하다.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북쪽으로 5분쯤 걷다 보면 곧바로 매사추세츠 애비뉴 214번지에 자리잡은 헤리티지 재단의 8층짜리 건물에 도착하게 된다. 재단의 로비에 30분만 앉아 있어도 미 의회와 정부 관계자 여러명과 마주치게 된다. 헤리티지 연구원들은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 정부나 의회 담당자들과 협의를 거친다. 예를 들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담당하고 있는 다니엘라 마크하임 연구원은 미 무역대표부(USTR)의 한국 담당자들과 거의 매일 만나고 전화 통화를 한다는 것이다. 헤리티지는 ‘학생없는 대학’이라는 기존의 싱크탱크 개념을 ‘정부의 자문기구’로 바꾼 기관이다. 그런 만큼 헤리티지가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특히 1981년 발간한 ‘리더십 지침 (Mandate for Leadership)’은 싱크탱크 역할에 ‘혁명’을 가져온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무려 1000쪽에 이르는 이 지침서를 통해 헤리티지는 모든 정부 부처의 예산과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또 정부 고위직에는 반드시 정치적 인사들을 임명하라는 요구도 담았다. 헤리티지의 이같은 제안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1990년대까지 헤리티지는 레이건 행정부 대외정책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헤리티지는 1994년 공화당이 의회에서 수십년만에 민주당을 제치고 다수당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미국과의 계약’을 탄생시키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하는 등 국내 정치 및 정책에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해왔다. 헤리티지는 1973년 쿠어스 맥주 창업자 조지프 쿠어스가 기탁한 50만달러를 종자돈으로 삼아 설립됐다. 쿠어스는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헤리티지는 재단 임무를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제한된 정부, 개인의 자유, 전통적인 미국의 가치, 강력한 국방의 원칙에 따라 공공정책을 제안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1977년에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에드윈 풀너는 헤리티지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리처드 앨런, 이라크 전 당시 미 행정관을 맡았던 폴 브레머, 현 노동장관인 일레인 차오, 국방부 대변인인 로렌스 디 리타 등이 대표적인 헤리티지 출신 인사들이다. dawn@seoul.co.kr ■ 이사장 비롯 ‘한국통’ 수두룩 현대·한화등 기부금 내기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헤리티지는 워싱턴에서 한국과 관계가 가장 ‘끈끈한’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다. 우선 에드윈 풀너 이사장부터 한국을 잘 안다. 풀너 이사장은 지금까지 100번 넘게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교분을 가져왔다. 풀너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였던 시기에 워싱턴의 싱크탱크 및 정부 전직 관리들과 함께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과 관련한 정책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현재 헤리티지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는 발비나 황 동북아정책분석관이다. 황 분석관은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미·북관계는 물론 한·미간 경제 현안도 관심있게 다뤘다. 황 분석관은 국무부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특별보좌관으로 내정된 상태다. 경제분야에서는 한·미 FTA를 담당하는 다니엘라 마크하임 연구원이 있다. 이와 함께 안보 및 테러 전문가인 피터 브룩스 선임연구원도 한국 및 한반도와 관련한 정책 보고서를 내거나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한·미관계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브룩스 연구원은 올해 헤리티지의 ‘정주영 펠로’로 선정됐다. 정주영 펠로는 고 정주영 전 현대회장의 기부금을 통해 설치된 연구직이다. 현대 말고도 한화 등 많은 한국 기업들이 헤리티지에 기부금을 냈다. 삼성은 지난 1995년 40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도 국제교류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100만달러(10억원)가 넘는 기부금을 연구 용역 형태로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미 보수세력의 한국 정부에 대한 공격이 심해진 탓인지 올해 들어 국제교류재단의 지원 목록에서 헤리티지는 빠졌다. 헤리티지에는 다른 싱크탱크에서 만나기 어려운 한국인 연구원들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발비나 황 분석관과 국제무역경제센터의 앤서니 김 연구데이터담당자는 한국계이며, 아시아연구센터의 신지혜 연구조교는 한국인이다. 또 올해부터 이기호 전 노동부 장관이 헤리티지에서 초빙연구원으로 한·미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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