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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의 ‘학폭 전쟁’ 20년… 그래도 못 살려내는 아들

    아빠의 ‘학폭 전쟁’ 20년… 그래도 못 살려내는 아들

    “대현아! 내 목숨보다도 귀한 사랑하는 내 아들아! 만약 인간의 목숨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너를 대신 살려내서 나보다 값지고 멋있게 살아가도록 하고 싶구나.”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편지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부는 손수건을 꺼내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지난 8일 서울 금천구의 푸른나무 청예단 사무실에서 낭독된 이 편지의 주인공은 이 단체를 설립한 김종기(68) 명예 이사장이다.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과 삼성전자 홍콩지점장을 거쳐 신원그룹 기조실장 전무이사로 성공한 샐러리맨이었다. 비보가 날아든 것은 20년 전인 1995년 6월 8일. 당시 고1이었던 대현군이 아파트 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세상과 이별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김군이 성적에 대한 고민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얼마 후 한 일간지가 “김군의 자살은 학교폭력 때문이었다”고 밝혀내면서 죽음의 이유가 세상에 알려졌다. 아버지는 강원 속초 바다에 아들의 유해를 뿌리고 돌아오고서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전 재산을 걸고 학교폭력을 위한 거대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11월 1일 국내 최초의 학교폭력 예방 시민단체(NGO)인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이렇게 설립됐다. 김군의 사망 이후 학교폭력은 사회 이슈로 부각됐다. ‘왕따’, ‘일진’ 등 학생들이 쓰던 은어들이 이를 계기로 학교 바깥으로 나왔다. 신문·방송에서 특집 기사와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고 1996년에는 각 정당이 학교폭력 척결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청예단이 시민들의 서명을 이끌어내면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2004년 제정되기도 했다. 김군의 죽음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학교폭력은 표면상으론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청예단에 따르면 2011년 조사에서 18.3%를 기록했던 학교폭력 피해율은 2012년 12.0%로 줄었고 2013년에는 6.1%, 지난해 3.8%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학교폭력 피해 이후의 고통의 강도는 여전하다. ‘고통을 겪고 있다’는 답변이 2012년 49.3%, 2013년 56.1%, 2014년 50.0% 등 거의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임종화 청예단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학교폭력 발생 시점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낮아지고 신체 폭행, 금품 갈취 등 폭력의 유형도 점점 복합화하고 있다”며 “피해율은 줄었지만 피해학생의 체감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 추세”라고 했다. 특히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사이버 괴롭힘이 늘어나고 있다. 이유미 청예단 단장은 “그동안 많이 개선이 됐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학교폭력 추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교 차원을 넘어 일반 시민들까지 두루 참여하는 범사회적 운동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중국서 ‘무인 편의점’ 첫 시도…결과는?

    중국에서 점원 없이 고객 스스로 대금을 내는 ‘무인 슈퍼마켓’(无人超市)이 한시적으로나마 처음 등장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 따르면, 6일 베이징과 항저우에 있는 ‘반고’(Vango) 편의점 두 지점에서 ‘무인 슈퍼’가 이날 하루 동안만 실험적으로 운영됐다. 무인 슈퍼는 이름 그대로 고객이 제품을 선택한 뒤 스스로 대금을 내는 시스템. 편의점 안에는 점원이 없으며, 손님이 대금 지급 여부와 얼마를 낼지를 결정한다. 실험을 진행한 알리바바(阿里巴巴)의 민간 신용평가업체 즈마신융(芝麻信用)은 매년 6월 6일을 ‘신용의 날’로 정하고 후 타오 즈마신융 사장은 “이번 활동을 통해 신용을 중시하는 것을 호소하겠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항저우 지점을 방문한 세 여성이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가져갔으며, 어떤 남성은 반복해서 방문하며 자루 가득 값비싼 술이나 담배를 담고 10위안(약 1800원)만 내고 갔다. 즈마신융 담당자는 이번 무인 슈퍼는 단지 실험이므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제대로 대금을 내고 간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하루 동안 약 3000위안(약 55만 원)의 적자가 있었고 이날 매출은 약 1만 6700위안(약 302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현지 네티즌은 “역시 규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있어도 도둑이 있는데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러 실험하지 않아도 중국인의 문화 수준은 세계인이 알고 있다”, “이런 방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 “법이 알몸 상태인데 도덕이라는 옷을 입으라는 것은 무리다”, “겨우 3000위안?” 등 혹평을 쏟아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콘택트렌즈, 눈에 치명적 박테리아 전이

    콘택트렌즈, 눈에 치명적 박테리아 전이

    라식·라섹수술보다 부담이 적고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콘택트렌즈가 박테리아를 전이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 눈에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의할 필요가 있겠다. 최근 미국 뉴욕대학 랑곤 메디컬센터(NYU Langone Medical Center) 연구진은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과정에서 피부의 박테리아가 눈에 전이돼 심각한 안구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콘택트렌즈 사용자 9명과 비사용자 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그룹 모두의 안구 표면 또는 결막에서 다양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번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그룹에서는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메틸로박터, 락토바실루스(젖산간균), 아시네토박터(포도당 비발효균 중 하나), 슈도모나스 등의 박테리아가 3배 이상 많이 발견됐으며, 이들 박테리아는 눈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거나 염증 등 다양한 안구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뉴욕대학 랑곤 메디컬센터의 마리아 글로리아 도밍게즈-벨로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콘택트렌즈 등 눈 위에 이물질을 씌우는 것이 안구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면서 “콘택트렌즈 사용자가 비사용자에 비해 안구질환이 잦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콘택트렌즈 사용자 대부분이 손가락으로 렌즈를 집고 이를 눈에 넣는데, 이 과정에서 손가락이나 손, 얼굴 피부에 있던 박테리아가 렌즈를 통해 안구로 전염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렌즈를 집거나, 손으로 집은 렌즈를 안구 표면에 씌우는 과정에서 눈을 압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들이 안구의 면역시스템을 자극하고 박테리아가 눈으로 들어가거나 번식하게 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함께 연구를 이끈 잭 도딕 박사 역시 “콘택트렌즈가 보급된 1970년대 이후 각막궤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면서 “눈꺼풀과 손의 위생을 철저하게 해야 안구질환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미생물학회 연례 학회 (annual meeting of the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에서 발표됐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빈국에 세운 ‘배움이란 희망’

    최빈국에 세운 ‘배움이란 희망’

    미얀마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고 있는 시민단체(NGO)와 작은 기업이 있어 화제다. 시민단체인 ‘황막사’(황사를 막는 사람들)와 부동산 경매 전문업체인 ㈜우리토지정보는 4년째 미얀마에 학교시설을 지어 기부하고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버스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툰십 맹가이수 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1200여명의 학생과 마을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황막사와 우리토지정보가 직업학교를 지어 기부하는 행사를 가졌다. 우리나라의 마을회관보다 작은 건물이지만 미얀마에서 이런 시설을 갖춘 직업학교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학교뿐만 아니라 노트북 50대와 관련 기기, 학용품과 의료품도 전달했다. 장학금도 4년째 전달하고 있다. 이들 단체가 미얀마에서 교육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2008년 이 나라를 초토화시킨 태풍 나르기스 피해로 고아들이 많은 지역을 찾아 학교를 지어 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2012년 ‘마더홈스쿨1’을 시작으로 다음해에는 마더홈스쿨2를 지어 기부했다. 마더홈스쿨은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NLD)의 국민 교육기관으로서 100여개가 운영 중이다. 마더홈스쿨 1~2에도 가난해서 정규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 2100여명이 5부제 수업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양곤 시내에 있는 한글학교에도 컴퓨터와 한글교재를 보내 주고 있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시신 수습 못해 곧 우기 닥치면 전염병 속수무책”

    “시신 수습 못해 곧 우기 닥치면 전염병 속수무책”

    “시신 부패하는 냄새가 온 천지에 진동을 합니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아우성이 카트만두 외곽 지역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당장은 해결책이 없으니 난감할 따름이죠.” 드비에 자(51) 네팔 인권위원회 법무관리담당관은 24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신두팔초크, 고르카 등 지진 피해 지역의 건물 잔해에서 아직도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이 심하게 부패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염병 발생이 아직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5일 오전 11시 56분(현지시간) 네팔 대지진 참사가 발생한 지 1개월이 지났다. 자 담당관과 현지 한인 선교사 문광진(45)씨 등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네팔은 홍수, 산사태, 전염병 등 2차 피해 가능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각국 구조대와 의료진은 대부분 자국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지진 당시부터 예고됐던 우기(雨期)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려는 한층 깊어지고 있다. 2주~30일 내로 우기가 본격화되면 식수, 해충 등을 통해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질병이 유행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 기간 전염병은 지진이 없을 때에도 항상 골칫거리였던 터다. 수시로 일어나는 산사태는 지진에 버금가는 공포 그 자체다. 지난 23일 밤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140㎞ 떨어진 람체 마을에서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 칼리간다키강이 막히면서 길이 2㎞가량의 ‘호수’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홍수 발생 위험이 커지면서 주민 수천명이 긴급 대피했다. 네팔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난도 커져 가고 있다. 각국 비정부기구(NGO) 구호팀들은 쌀, 천막 등 1차 구호를 마무리하고 의약품, 방역, 재건 등 2차 구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네팔 정부는 아직도 쌀을 나눠 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제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자금과 인력에 한계가 큽니다. 모기장과 의약품을 나눠 주고 방역을 해 줘야 하는데 공급이 너무 부족하네요.”(문 선교사) 트라우마(외상후스트레스)는 이미 확인된 2차 피해 중 하나다. “많은 주민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국민 전체가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정신과 치료를 담당할 의료진도 거의 없는데….”(자 담당관) 이런 가운데 수도인 카트만두 시내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도시 기능이 거의 정상화됐다. 부서지지 않은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열었고, 학생들도 29일부터 다시 등교할 예정이다. 시내 가장 큰 규모로 형성돼 있던 라트나 파크의 이재민 텐트촌도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무너졌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다라하라 타워’와 더르바르 광장의 ‘쿠마리 사원’ 등도 잔해가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다. 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의 김미영(51) 선교사는 “유네스코의 허가와 지원 없이 복구 작업을 할 순 없다”면서 “복원이 결정돼 관련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지진과 여진에 따른 인명 피해는 현재까지 사망 8600여명, 부상 1만 6000여명으로 집계됐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해외여행 | 남아프리카의 손짓③Botswana 보츠와나

    해외여행 | 남아프리카의 손짓③Botswana 보츠와나

    ●Chobe National Park 코끼리를 위한 고속도로 잠비아에서 보츠와나로 떠난 일일 사파리 리빙스톤에서 보츠와나의 초베국립공원으로 일일투어를 떠났다. 초베국립공원은 흔히 ‘코끼리들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초베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간단하다. 리빙스톤에서 60km 떨어진 국경까지 이동해 이민국을 통과한 후 보트를 타고 2~3분이면 보츠와나 쪽 강변에 도착한다. 여기서 초베국립공원까지는 차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보츠와나의 북동쪽에 위치한 초베국립공원은 1968년 문을 열었다. 1만1,700km2의 면적을 자랑한다. 보츠와나에서 세 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다. 공원이 보츠와나의 북쪽 국경 경계가 되는 셈이다. 남서쪽으로는 오카방고 델타와 접한다. 공원 이름은 초베강에서 비롯되었다. 초베국립공원에서 두 가지 사파리를 했다. 리버 사파리와 초베 야생동물 사파리. 초베강을 따라 길이 나 있기 때문에 강에서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도 동시에 사파리를 할 수 있다. 리버 사파리는 초베강에서 출발하고, 초베 야생동물 사파리는 4륜 구동차량을 타고 초베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둘러본다. 초베강을 오르내리며 즐긴 리버 사파리는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가장 평온한 시간이었다. 일행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이 없다. 간간히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곤 몸을 움직일 줄조차 모른다. 물줄기는 고요하고, 그림 같은 수평선과 지평선이 우리가 탄 배 앞으로 펼쳐졌다. 어느 순간 코끼리 무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푸른 초원에서 세상이 온통 즐겁고 신기한 듯 유유하게 노니는 코끼리들. 아, 여기는 정말 코끼리들의 낙원이다. 코끼리뿐만 아니라 바로 눈앞에서 4개월 정도 된 새끼 악어도 만났다. 어미를 보고 싶었지만 물속에서 끔쩍도 안한다. 보트에서 어미 악어까지 거리는 1m 정도였다. 보트는 코끼리 무리가 모여 있는 강기슭으로 향한다. 보트가 다가가도 코끼리들은 물러나지도 않고, 경계하지도 않는다. 코끼리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몸에 진흙을 바르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 아프리카에서 본 가장 평화로운 풍광이다. 내가 꿈꿨던 아프리카의 풍광을 바로 여기 초베강에서 만났다. 초베강 리버 사파리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초베 야생동물 사파리가 이어진다. 초베강 기슭은 초베국립공원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다. 특히 겨울 같은 건기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동물을 볼 수 있는데 수킬로 내에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초베강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기 때는 초베강 기슭에서 천 마리 이상의 코끼리를 보게 되는 게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천 마리의 코끼리떼가 운집한 모습이라니! 상상만으로도 흥분에 휩싸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저게 엘리펀트 하이웨이에요. 코끼리가 물가를 찾아갈 때 흔적을 남긴 길이죠. 코끼리들은 푸른 풀을 찾아 종종 강을 건너 섬으로 향합니다.” 레인저의 설명이 이어진다. 사실 초베로 올 때 나는 코끼리 보는 것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인도와 태국을 여행할 때도 코끼리는 많이 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마주한 아프리카 코끼리들은 인도나 태국 코끼리와 완전히 다르다. 좀더 깨끗하고 순정한 동물로 보인다고 하면 내 느낌이 전달되려나? 인도나 태국 코끼리들이 세파에 휩쓸려 있는 느낌이라면 아프리카 코끼리들은 유복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인도나 태국에서 본 코끼리들은 야생 코끼리가 아니다. 늘 인간과, 그것도 관광객과 함께 있는 코끼리들이다. 코끼리를 조종하는 마홋mahout들은 항상 한 손에 날카로운 갈고리를 들고 코끼리를 위협하고 조종했다. 하지만 초베 코끼리들은 다르다. 사파리 차량이 근접해도 피하지 않는다. 사파리 차량을 경계하거나 공격성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사파리 차량이 다가오면 새끼의 움직임에 따라 어미는 자리를 옮기며 새끼를 지킬 뿐이다. “사실 코끼리는 굉장히 위험한 동물이에요.” 태국을 여행할 때 많이 들은 얘기다. 그런데 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초베 와서 알았다. 코끼리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에 맞게 반응할 뿐이다. 버펄로도 마찬가지다. 버펄로는 사람들이 사파리를 할 때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빅 5 사자, 코끼리, 표범, 버펄로, 코뿔소 중에서 코뿔소와 함께 가장 위험한 동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A라는 밀렵꾼이 오늘 버펄로를 공격하면 버펄로는 내일 B이건 C이건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한다. 사람 생김새를 비슷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베의 버펄로는 사파리 차량 옆에서 유유자적한다. 사파리 차량에게 공격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마에 대해 나는 어떻게 알고 있었나? 낮에는 물속에 있다가 밤에 나와 활동하는 동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초베국립공원에서는 수많은 하마떼가 한낮에 들판에서 돌아다닌다. 하마들은 안다, 여기에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초베는 코끼리뿐만 아니라 버펄로, 하마, 임팔라라 불리는 아프리카산 영양, 비비라 불리는 개코 원숭이, 460종 이상의 조류 등 수많은 동물들의 낙원이다. ▶epilogue에필로그 다시 가고 싶은 아프리카 아쉽게도 여행은 너무 짧았다. 단 6일 동안 남아프리카와 잠비아, 보츠와나를 둘러보았을 뿐이다. 많은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관광객의 동선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아프리카가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곧 아프리카를 다시 찾을 것 같다. 나의 아프리카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가 며칠간 묶은 케이프타운 샨티 가든 게스트하우스 직원 중 한 사람은 말라위 사람이다. 7년 전에 일자리를 찾아 케이프타운으로 왔다. 틈틈이 그림을 그리며 언젠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도 꾼다. 그를 만난 후 처음으로 말라위? 말라위는 도대체 어디 있는 나라인지 생각해 봤다. 말라위 사람을 만난 것도 처음이다. “말라위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일을 구할 수 없어요.” 그를 만났기 때문에 말라위가 내게로 왔다. 아프리카에 왔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리빙스톤에 갔을 때 시간이 없어 빅토리아 다리 위에서 번지점프를 하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쉽다. 빅토리아 폭포 아래에서 물줄기를 맞으며 수영을 하지도 못했다. 원주민 마을인 무쿠니 빌리지에 가보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헬기를 탔으니 다음에는 초경량항공기인 마이크로라이팅을 타고 빅토리아 폭포를 보고 싶다. 나는 다시 리빙스톤에, 초베국립공원에 가고 싶다. 다시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Q&A 남아프리카 여행, 안전할까? 남아프리카를 여행하고자 하면 에볼라가 아니더라도 흔히 이런저런 걱정부터 하게 된다. 안전할까? 강도가 많다던데? 내가 아는 두 사람이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에서 가방과 캐리어를 잃어버렸다. 나로선 요하네스버그는 매우 위험한 곳이란 강한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치안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요하네스버그에선 걸어 다니면 안 돼요.”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난 가이드 프레드릭은 단호하게 말했다. 난 처음에 도대체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칼튼Carlton 호텔이 범죄를 우려한 투숙객의 급감으로 문을 닫았다고 하는 어이없는 이야기까지 들려 남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게는 극심한 일교차로 인한 지독한 기침으로 고생한 일을 빼면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나는 현지인들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샌톤 지역을 제외하고 요하네스버그 시내에 가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하네스버그에 사는 한 친구는 요하네스버그가 통째로 ‘범죄의 도시’로 여겨지는 것에 “직접 와서 보고 요하네스버그 치안이 어떤지 얘기해 줄래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지만 친구 말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요하네스버그의 ‘특정’ 지역이 위험할 뿐이에요. 상식적으로 사람들이 안 가는 특정 지역에 가서 강도를 만났다고 하면 현지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되물어요. 그 시간에 거기를 왜 갔대?” 현지인들도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을 밤에 가는 일은 없다. 하물며 여행객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안 가면 그만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요하네스버그를 ‘이골리Egoli’라고 불렀다. ‘황금의 도시’라는 말이다. 황금시대부터 2015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황금을 찾아 아프리카 전역에서 흑인들이 모여 들고 있다. 남아프리카 사람들은 남아프리카 흑인들이 아니라 불법이민자들이 요하네스버그 범죄의 온상이라고 생각한다. 자, 남아프리카 여행의 안전 문제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 요하네스버그를 제외하곤 상식적인 주의만 기울이면 큰 문제는 없다. 그럼 다른 치안은 어떠할까? 케이프타운시에서 권고하는 주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어둡고 외진 길을 혼자 걷지 마세요. 걷는 동안 핸드폰을 사용하지 마세요. 핸드백은 몸 가까이 두세요. 값비싼 보석류를 눈에 띄게 하지 마세요. 많은 돈을 갖고 다니지 말고, 남이 보는 데서 돈을 꺼내 세지 마세요….”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여행을 할 때 ‘상식적으로’ 주의해야 할 내용들이다. 더욱이 케이프타운 시내 곳곳에는 녹색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들이 있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그러니 막연한 공포를 이유로 남아프리카 여행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내게는 치안 문제보다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다 있다는 극심한 케이프타운의 일교차가 더 큰 문제였다. 치안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는 끊이지 않는다. 말라리아나 황열병은 어떤가? “약을 먹으면 3일이면 낫는 병이 말라리아에요.” 가이드 프레드릭(사실 그는 할아버지다)은 말라리아에 세 번이나 걸린 적이 있다고 했다. 적절히 약만 먹으면 3일 만에 낫는 병도 말라리아다. 황열병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프리카에 오기 전 인천공항에서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았다. 국립의료원에는 대기자가 많아 출국까지 접종시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알았다. 2015년 1월31일부터 남아프리카와 잠비아를 여행하는 데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제네바 소재 세계보건총회의 결정이다. 한국 의사들은 누군가 아프리카에 간다고 하면 무작정 습관적으로 황열병, 말라리아 등 최대한 많은 예방주사와 약을 처방한다. 이게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그들은 과연 아프리카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까? 이번에 남아프리카, 잠비아, 보츠와나를 여행하는 동안 어느 나라에서도 황열병 예방접종 증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프리카는 안전한 게 틀림없다. Airline 남아프리카항공South African Airways; SAA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우수한 항공사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전 세계 38개 도시로 취항한다. 아직 인천까지는 운행을 하지 않아 홍콩에서 SAA로 환승한다.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매일 운행하며 13시간 25분 걸린다. 스타 얼라이언스 멤버인 SAA는 12년 연속 아프리카에서 ‘베스트 에어라인 인 아프리카Best Airline in Africa상’을 받았다. Mango항공은 남아프리카항공이 만든 저비용 항공사다. SAA는 Mango와도 코드 셰어를 확대했다. SAA와 Mango항공은 아프리카에서 정시운행을 가장 잘 지키는 항공사 1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02-777-694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www.flysaa.com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남아프리카항공 02-777-6943 www.flysaa.com, Sun International www.suninternational.com, Thomson Gatraway www.thompsonsafrica.com
  • [포토] 朴대통령 ‘인천 세계교육포럼’ 참석

    [포토] 朴대통령 ‘인천 세계교육포럼’ 참석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15 세계교육포럼’ 개회식에 참석했다. 유네스코 등 유엔 국제기구가 주최하는 세계교육포럼은 교육분야 최대의 국제회의다. 15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그동안 국제사회가 진행해온 ‘모두를 위한 교육’ 운동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15년간 추구할 새로운 교육 목표를 설정했다. 박 대통령은 개회식에서 모든 학생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날 개회식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총재,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등 국제기구 대표와 100여개국의 교육 관계 장·차관, 비정부기구(NGO) 대표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진행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진행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 www.gni.kr)는 최근 급증하는 아동 성범죄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굿네이버스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은 집이나 밖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아동 성추행 상황을 인형극으로 재연하여 아동 스스로 성폭력, 성추행 등 위험상황을 인지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성추행 예방 교육 대상은 외부 활동이 시작되는 나이인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들이다. 성추행(성폭력)이 일어날 경우 조기 발견이 가능한 때 인 점을 고려해 4~7세 유아와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아동들은 인형극을 통해 위험상황을 접하고, 직접 참여하는 활동과 상황극 훈련으로 실제 대처 방법을 배운다. 또한 교육을 받은 아동은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바르게 알고,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 알아간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굿네이버스 아동성폭력예방인형극 만족도(2012)를 실시한 결과 참여한 아이들의 위험상황 인식 및 대처능력이 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며 “교육기관의 만족도가 높아 신청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굿네이버스는 지난 8년간 전국 2만2597개교 216만2973명의 아동에게 성폭력 예방 인형극을 통한 아동보호 교육을 지원했다. 올해에는 전국 2,769개교(유아교육기관 및 초등학교 포함) 26만7420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쟁 성범죄가 낳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 세상을 향해 외치다

    전쟁 성범죄가 낳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 세상을 향해 외치다

    -보스니아 청년, 친부모 찾기 나선 다큐 화제 앨런 무히치는 1992년부터 95년에 걸쳐 일어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인에게 성폭행당한 이슬람교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직후 버려졌다. 내전 종결 20년, 그는 친부모를 찾는 여행에 나섰다. 그의 극적인 여정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됐다. 그처럼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무히치의 이야기는 그런 아이들의 처지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의 함정’(An Invisible Child ‘s Trap)의 프리미어 상영회 이후 무히치는 “단지 진실을 알 필요가 있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왜 그녀가 나를 버렸는지 그는 전쟁에서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라고 말했다. 무히치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그를 낳은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 아버지는 재판에서 성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듬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올해 나이 22세인 무히치는 보스니아 동부 마을 고라즈데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그가 1993년 태어난 병원이다. 이번 다큐를 제작한 셈스딩 게기치 감독은 보스니아인이다. 그는 “국제인권단체들은 전쟁 당시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난 앨런이 ‘보이게’ 하려고 영화를 만들려했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아래 성폭력으로 태어난 많은 아이 중 한명”이라고 말했다. 무히치의 친모는 보스니아 동부 밀예비나 출신이다. 당시 마을이 세르비아인 세력에 점거당했을 때 그녀는 성폭행당했고 1993년 2월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출산 후 아기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를 비롯한 이슬람교도들은 세르비아인의 ‘인종 청소’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나 있었다. 게기치 감독은 당시 30대였던 그녀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고 결혼한 뒤 두 아들을 낳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전쟁 범죄로 인한 법정 증언자로 보호돼 있으므로 영화에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왜 날 버렸는지...그는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에 의한 서로 다른 민족 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은 약 10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분열 과정에서 가장 비참한 분쟁으로 기록됐다. 전시 성폭행당한 여성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로 그 수는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지 비정부기구(NGO) ‘전쟁의 피해자여성 협회’(Association of Women Victims of War)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쟁 당시 성폭행으로 태어나 버려진 아이로 기록된 것은 불과 61명으로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히치는 생후 7개월 때 태어난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무하람 무히치에게 양자로 거둬졌다. 현재 60대인 무하람과 그의 아내 아도비야에게는 두 딸도 있다. 무히치는 “난 지금 행복하다. 좋은 가족에 거둬졌고, 양부모는 나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애정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아픈 과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할 때 양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부터였다. 무히치는 “사건이 일어난 뒤 양부모가 진실을 말해줬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며 “그들은 나를 지키고 싶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 민족이 증오로 아직도 분단된 보스니아에서는 그와 같은 입양 자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무히치는 “부모는 주위에서 내 몸에 세르비아인의 피가 흐르므로 크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며 “그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든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엄마를 용서합니다" 영화에서는 그가 친부모와 만나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게기치 감독은 “부친은 만남을 피했지만, 모친은 완성된 영화를 본 뒤 앨런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해왔다”고 말했다. 아직 모자 상봉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만남이 성사되면 이 다큐에 추가될 것이다. 무히치는 이전에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다른 감정을 품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성폭행당한 것도, 나를 버린 것도 그녀의 책임이 아니다. 그녀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면서 “그녀에게 큰 상처이며 충격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그녀를 용서했다고 말했지만, 친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을 내비쳤다. 무히치의 친부는 2007년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성폭행 혐의로 금고 5년 6개월을 받았지만, 이듬해 항소심에서 목격자의 증언에 모순이 있어 무죄로 판결받았다. 이 재판 중에 제출된 DNA 테스트 결과에서 그가 무히치의 생물학적 아버지임이 증명됐다. 무히치는 “누군가가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전쟁시 성폭행당해 태어난 보스니아 청년, 친부모 찾기 나서

    전쟁시 성폭행당해 태어난 보스니아 청년, 친부모 찾기 나서

    앨런 무히치는 1992년부터 95년에 걸쳐 일어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군인에게 성폭행당한 이슬람교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직후 버려졌다. 내전 종결 20년, 그는 친부모를 찾는 여행에 나섰다. 그의 극적인 여정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됐다. 그처럼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불린다. 무히치의 이야기는 그런 아이들의 처지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의 함정’(An Invisible Child ‘s Trap)의 프리미어 상영회 이후 무히치는 “단지 진실을 알 필요가 있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왜 그녀가 나를 버렸는지 그는 전쟁에서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라고 말했다. 무히치의 생물학적 어머니는 그를 낳은 뒤 미국으로 도피했다. 아버지는 재판에서 성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듬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올해 나이 22세인 무히치는 보스니아 동부 마을 고라즈데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그가 1993년 태어난 병원이다. 이번 다큐를 제작한 셈스딩 게기치 감독은 보스니아인이다. 그는 “국제인권단체들은 전쟁 당시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난 앨런이 ‘보이게’ 하려고 영화를 만들려했다.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아래 성폭력으로 태어난 많은 아이 중 한명”이라고 말했다. 무히치의 친모는 보스니아 동부 밀예비나 출신이다. 당시 마을이 세르비아인 세력에 점거당했을 때 그녀는 성폭행당했고 1993년 2월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출산 후 아기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당시 그녀를 비롯한 이슬람교도들은 세르비아인의 ‘인종 청소’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나 있었다. 게기치 감독은 당시 30대였던 그녀는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고 결혼한 뒤 두 아들을 낳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전쟁 범죄로 인한 법정 증언자로 보호돼 있으므로 영화에서는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슬람교도와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에 의한 서로 다른 민족 국가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전은 약 10만 명의 목숨을 빼앗고,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분열 과정에서 가장 비참한 분쟁으로 기록됐다. 전시 성폭행당한 여성 대부분은 이슬람교도로 그 수는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지 비정부기구(NGO) ‘전쟁의 피해자여성 협회’(Association of Women Victims of War)가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쟁 당시 성폭행으로 태어나 버려진 아이로 기록된 것은 불과 61명으로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히치는 생후 7개월 때 태어난 병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무하람 무히치에게 양자로 거둬졌다. 현재 60대인 무하람과 그의 아내 아도비야에게는 두 딸도 있다. 무히치는 “난 지금 행복하다. 좋은 가족에 거둬졌고, 양부모는 나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애정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아픈 과거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할 때 양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고 말했을 때부터였다. 무히치는 “사건이 일어난 뒤 양부모가 진실을 말해줬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며 “그들은 나를 지키고 싶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 민족이 증오로 아직도 분단된 보스니아에서는 그와 같은 입양 자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무히치는 “부모는 주위에서 내 몸에 세르비아인의 피가 흐르므로 크면 자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며 “그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든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그가 친부모와 만나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게기치 감독은 “부친은 만남을 피했지만, 모친은 완성된 영화를 본 뒤 앨런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해왔다”고 말했다. 아직 모자 상봉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만남이 성사되면 이 다큐에 추가될 것이다. 무히치는 이전에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다른 감정을 품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성폭행당한 것도, 나를 버린 것도 그녀의 책임이 아니다. 그녀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면서 “그녀에게 큰 상처이며 충격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그녀를 용서했다고 말했지만, 친아버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을 내비쳤다. 무히치의 친부는 2007년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성폭행 혐의로 금고 5년 6개월을 받았지만, 이듬해 항소심에서 목격자의 증언에 모순이 있어 무죄로 판결받았다. 이 재판 중에 제출된 DNA 테스트 결과에서 그가 무히치의 생물학적 아버지임이 증명됐다. 무히치는 “누군가가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현장 블로그] 교육당국, 유엔 포럼서 “무상 교육” 외칠 자격 있나

    오는 19일 인천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정부 교육 대표자 회의인 세계교육포럼이 열립니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포럼은 전 세계 정부와 교육 업무 종사자들이 참가해 세계 교육의 발전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를 설정하는 의미 있는 회의입니다. 행사 개최 주기도 15년으로 아주 긴 편인데, 지난 2000년에는 아프리카 세네갈의 다카르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포럼을 위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포함해 154개국의 장관급 이상 정부대표, 국제기구 및 교육 비정부기구(NGO) 대표 등 거물급 인사들이 방한합니다. 교육부는 행사 준비에 바쁩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포럼의 총괄 및 세부 목표입니다. 총괄 목표는 ‘2030년까지 모두를 위한 평등하고 포용적인 양질의 교육 보장 및 평생학습 진흥’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와 유네스코가 사전 협의한 세부 목표 1순위는 ‘양질의 평등한 무상 초등 및 중등 교육 보장’으로 잡혔습니다. 이번 포럼에서 결정된 내용들은 오는 11월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최국 입장에서 머쓱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포럼에서 발표될 목표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실행하는 데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고교 무상교육과 무상보육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고교 무상교육은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무상보육 공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 정책의 예산을 놓고도 중앙정부와 17개 시·도 교육감이 돌아가며 매달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자는 구호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일부 극빈국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최국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고교 무상교육 논의를 재개하고 누리과정 예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에 부는 농업 개혁 바람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에 부는 농업 개혁 바람

    북한은 지난해 2월부터 한 농가가 몇년간 같은 밭에서 농사를 짓도록 허용하고 농민이 수확한 식량 중 상당 부분을 자신이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국제학부 초빙교수는 지난해 10월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보낸 칼럼에서 이 같은 북한의 조치에 대해 뒤늦게라도 농업개혁을 시작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정 부분 자기 몫의 일부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도록 한 조치로 1970년대 말 중국에서 실시한 농업 개혁과 유사하다고 란코프 교수는 분석했다. 북한은 지난해 정권 수립 후 처음으로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농업 생산의 책임제를 분명하게 하고 협동 농장의 자력 경영을 강조했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북한 농업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비료 지원 없이도 식량 생산이 꾸준히 늘어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들이 많다. 도대체 북한 농업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4년 5월30일 새로운 경제개선대책을 지시했다고 도쿄신문이 지난해 11월 보도했다. 5·30조치로도 불리는 김 제1위원장의 개혁조치는 공장, 기업, 농업부문의 생산·분배 독립채산제의 확대와 실적 향상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에도 실행을 위한 세칙이 마련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올부터 협동농장·기업소 자율경영제… 中개혁과 유사 중국의 북한 전문가에 따르면 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올해부터 북한 내 협동농장과 기업소에 자율경영제가 도입되고 협동농장의 작업분조를 폐지해 가족 단위의 영농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농장 노동력 1인당 농지 1000평을 할당해주고 여기서 발생한 생산물은 국가와 개인이 각각 40%와 60%씩 나눠 갖도록 했다. 이는 2012년 발표한 ‘6·28조치’보다 더 개인의 소유를 강화한 것이다. 당시에는 기업과 농장은 이익의 70%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 30%는 자유롭게 사용했다. 이 같은 북한의 조치는 1978년부터 시작돼 1980년대 중국에서 추진됐던 ‘생산책임제’ 개혁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78년 ‘포산도호(包産到戶)’로 시작된 중국 농업의 개혁은 개별 농가에 책임 농지를 배분하고 목표치를 초과하는 생산에 대해서는 농가에 추가로 배분하는 형태였다. 이 체제는 4년 만인 1982년 포간도호(包幹到戶) 형태로 발전했다. 즉 목표치를 초과하는 생산량만큼 농가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농업은 이후 2년 만에 사실상 완전한 개인농으로 전환돼 1980~1985년 농업생산액이 무려 48.2%나 증가했다. ●“제도 정착 땐 GDP 성장률 지금의 7배 육박할 것”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북한의 5·30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농업생산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해 9월 ‘북한 농업개혁이 북한 GDP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이 농업개혁을 통해 1차 산업 부문의 부가가치 증가만으로도 국내총생산(GDP)을 7% 이상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북한의 실질 GDP 성장률이 지난해 1.1%에 불과하다고 분석한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농업개혁을 통해 성장률을 엄청나게 끌어올리는 게 되는 셈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농업개혁이 북한 내 시장경제화를 촉진시키는 등 북한 경제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농업개혁이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유기농에도 관심을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3년 11월 조선신보는 북한에서 유기농업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신보는 북한 농업과학원 시험장에서 독일 유기농업연구소와 연계해 2010년부터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고 면적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유기농에도 관심… 알곡작물 화학비료 50% 줄여 또 조선유기농업개발협회, 농업과학원, 국토환경보호성과 평양원예지도국 등 전국의 여러 기관이 협동농장과 협력해 유기농업생산과 관련한 과학기술적 문제 해결에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논벼와 강냉이를 비롯한 알곡작물에서 화학비료를 50% 이상, 감자 및 과일에서 30% 이상 사용량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잎채소 등에서는 화학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생산량을 10% 이상 늘렸다. 북한은 지난 2003년 10월 조선유기농업개발협회가 창설된 데 이어 2005년 11월에는 북한유기산업법이 채택됐다. 이를 바탕으로 2004~2010년 유기농업발전 7개년 계획을 수립해 유기생산체계와 기술개발을 위한 시범단위가 설정됐다. 북한은 국제유기농업운동연맹(IFOAM)과 해마다 유기농 강습을 진행하고 있다. 평안도 숙천군 쌍운유기농업시험장에서 진행되는 실습에서 유기농업의 세계적 추세와 원칙 등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IFOAM은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북한에서 국제유기농강습을 진행한 바 있다. IFOAM은 세계 116개국의 750여개 가입단체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유기농업운동단체로 1972년 프랑스에서 설립돼 현재 독일 본에 본부를 두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북한의 농업전문가 6명이 독일에서 유기농업 등 농업생산성 증대 관련 기술을 교육받았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 농업전문가는 유기농 연구로 유명한 카셀대학과 유기농 농장, 기업 등을 방문해 독일 농업 현황을 살펴봤다. 또 독일 비정부기구(NGO)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GNE)는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2018년까지 북한 농업과학원과 함께 북한의 영농기술 개선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농업전문가 초청은 이 사업의 첫 단계로 이뤄졌다. GNE와 북한 농업과학원은 평양, 황해남도, 평안북도, 강원도 등에 유기농법을 이용한 농장을 시범 운영하고 평양에 농업증산센터와 농업현장연구센터를 설립해 관련 연구·교육도 병행할 예정이다. 이 사업으로 북한 4개 협동농장의 농민, 농업지도원 1000여명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VOA는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김영훈 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 협력연구부장은 8일 “유기농은 식품안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환경보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국내 식량 수급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북한에서 유기농을 육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올해 북한 식량 사정 11만t 정도 부족 예상 최근 북한의 농업과 관련해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는 2010년 450만t에 불과하던 식량생산이 2014년에는 503만t까지 늘어났다고 밝혔다. 최근 4년간 11.8%나 증가한 수치로 특히 2012년에서 2014년 사이에는 무려 14%가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년간 봄과 초여름에 가뭄 현상이 발생해 작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에도 이 같은 수치가 나온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북한의 올해 식량 생산량은 대략 508만t 정도로 예상되며 수요량은 549만t 정도로 추정된다. 여기에 해마다 북한이 30만t가량을 상업적 방식으로 수입하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11만t 정도가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꾸준하게 식량 생산이 늘어난 원인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농업 개혁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5·30조치에 따른 동기유발이 생산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식량생산 증가가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식량생산의 늘어난 몫의 일부 또는 전부를 꾸준히 농업생산자가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전히 식량이 부족한 북한으로서는 일부 농민에게만 식량 소유를 인정하게 하는 것은 상당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김영훈 부장은 “북한 농업개혁의 성패 여부는 얼마나 개인 생산분의 소유권을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현장 블로그] 희망을 다시 세우는 담대한 네팔 국민들

    [현장 블로그] 희망을 다시 세우는 담대한 네팔 국민들

    여느 때 ‘신들의 나라’ 네팔에 왔다면 이런 이야기를 썼을 겁니다. “따뜻한 햇볕이 창을 넘어 들어왔다. 가파른 산등성이를 계단 모양으로 깎고서 올라앉은 마을은 경이로웠다. 꼬마들은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이방인을 향해 활짝 웃었다. 개울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들도 손을 흔들어 반겼다. 기자도 손을 모아 ‘나마스테!(‘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 한다’는 뜻)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작은 희망을 찾아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깨달은 현실은 달랐습니다. “집 열 채 가운데 여덟 채는 무너졌고, 열 명 중 두세 명은 가족을 잃었다. 도로가 끊긴 오지 마을에서 정수리에 꽁지머리만 남기고 삭발한 사내들은 부모의 시신을 제 손으로 태우고 힌두교식 장례를 지내는 중이다.” 희망 대신 이런 문장을 써야 했습니다. 관광객을 끌어모으던 세계문화유산들은 죽음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부패한 정부와 분열된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구조대가 기울어진 건물 밑에 기어들어가 시신을 꺼낼 때 네팔 군인들은 먼발치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외곽 지역은 더 참담했습니다. 얼기설기 지어놓은 집들은 흙더미가 됐습니다. 허물어진 식량창고에 원숭이들이 기어들어가 남은 곡식을 먹어치웠습니다. 수백 개의 산간마을에 외국 구조대와 비정부기구(NGO) 봉사단이 일일이 들어갈 순 없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실종자 수색과 구조, 응급수술, 장례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8일이란 짧은 기간, 기자가 만난 네팔 인은 이런 고통을 겪기에는 너무도 선한 이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비누조각을 찾아내 이방인 기자에게 흙먼지를 씻어내라고 건네는 사람들입니다. 다치고 병든 몸으로 의료 지원을 받으러 와서는 의료진 소매에 붙은 쇠파리를 맨손으로 떼어내는 사람들입니다. 한국국제협력단 단원이 말했습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아요. 신이 있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진 않았을 거예요.” 재앙이 강타한 지 12일째. 마지막 글을 쓰고 공항으로 갑니다. 기자가 목도한 고통의 단편들이 네팔인들의 남은 인생에서도 이어질 거라 믿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다시 일어설 겁니다. 산간마을에서 만난 청년은 말했습니다. “마을을 세울 때처럼 다시 일으키는 것도 어차피 우리 손으로 해낼 것”이라고. 4륜 구동 차량으로 흙먼지를 뿜으며 달렸던 산길을 몇 년 뒤 배낭을 메고 걸어 보고 싶습니다. 지진으로 흙집이 무너지던 순간 조부모가 품에 넣어 죽음으로 지켜냈지만, 혀가 잘린 바데 가운의 소녀 어니샤(3)도 해맑은 미소를 되찾기를 그려봅니다. 글 사진 카트만두(네팔) 김민석 특파원 shiho@seoul.co.kr
  • 아기물티슈 몽드드 대한민국 어머니들 대신해 네팔 지진피해 아이들에게 3만달러 기부

    아기물티슈 몽드드 대한민국 어머니들 대신해 네팔 지진피해 아이들에게 3만달러 기부

    프리미엄 물티슈 전문기업 몽드드(대표 홍여진)가 대지진 피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네팔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휴먼브리지(대표 김병삼)에 성금 3만 달러를 전달했다. 월드휴먼브리지 김병삼 대표는 “갑작스러운 대지진 피해로 가족과 친구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진 네팔 어린이들을 돕는데 써달라며 ‘몽드드와 대한민국 어머니들’이라는 이름으로 성금 3만 달러를 기부했다”면서 “본 성금은 네팔의 피해지역 아이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월드휴먼브리지와 국내외에 다양한 지역에 나눔을 실천해온 몽드드는 연중 희망나눔 캠페인인 ‘3.6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번 네팔 지진피해 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게 됐다. 몽드드 CSR 총괄 장성수 실장은 “몽드드는 ‘사랑, 나눔’이라는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기업사회공헌(CSR) 실천을 위해 자체 희망 나눔 연중 캠페인 ‘3.6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면서 “성금이 최악의 대지진으로 인해 고통 속에 있는 네팔 재난지역의 아이들을 위로하고 피해지역의 신속한 복구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성금과 함께 아이들의 위생을 위해 필요할 물티슈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사랑과 신뢰로 성장해온 몽드드는 앞으로도 고객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환원하여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편 몽드드는 지난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피해를 입은 필리핀 재해지역에 5000만원과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도 1억원을 기부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혜자, 네팔 지진 피해자 위해 1억원 기부… “역시 마더 혜레사”

    김혜자, 네팔 지진 피해자 위해 1억원 기부… “역시 마더 혜레사”

    김혜자, 네팔 지진 피해자 위해 1억원 기부… “역시 마더 혜레사” 네팔 지진 피해자 배우 김혜자가 네팔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구호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지난 29일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김혜자가 네팔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김혜자는 월드비전 친선대사다. 김혜자는 월드비전에 기부 의사를 전하며 “네팔 지진 소식을 접하고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네팔 분들과 또 가장 고통받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면서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가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현장에서 긴급구호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기부금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많은 분들이 네팔 어린이들을 위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혜자는 지난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위촉돼 1992년 에티오피아 대기근 현장을 다녀와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아동들의 참상을 알리고 모금활동을 펼친 대한민국 최초의 나눔 홍보대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5년에는 파키스탄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1억원을 기부했고,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참사의 현장을 찾아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아동들을 만나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 2004년에는 전세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했고 인세를 전액 기부해 북한 용천 긴급구호와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꽃때말공부방)을 세우는 데 사용했다. 시에라리온에서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마담 킴스 프로젝트’를 후원, 결연으로 전세계 가난한 어린이 103명을 돕고 있기도 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혜자, 네팔 지진 피해자 위해 1억원 기부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김혜자, 네팔 지진 피해자 위해 1억원 기부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김혜자, 네팔 지진 피해자 위해 1억원 기부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네팔 지진 피해자 배우 김혜자가 네팔 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구호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다. 지난 29일 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은 김혜자가 네팔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김혜자는 월드비전 친선대사다. 김혜자는 월드비전에 기부 의사를 전하며 “네팔 지진 소식을 접하고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네팔 분들과 또 가장 고통받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면서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가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현장에서 긴급구호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기부금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많은 분들이 네팔 어린이들을 위해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혜자는 지난 1991년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위촉돼 1992년 에티오피아 대기근 현장을 다녀와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아동들의 참상을 알리고 모금활동을 펼친 대한민국 최초의 나눔 홍보대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5년에는 파키스탄 지진 피해복구를 위해 1억원을 기부했고,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참사의 현장을 찾아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아동들을 만나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 2004년에는 전세계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집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했고 인세를 전액 기부해 북한 용천 긴급구호와 어린이들을 위한 공부방(꽃때말공부방)을 세우는 데 사용했다. 시에라리온에서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마담 킴스 프로젝트’를 후원, 결연으로 전세계 가난한 어린이 103명을 돕고 있기도 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Mercedes-Benz Fashion Week, “벗은건가..띠로만 가리고...”

    Mercedes-Benz Fashion Week, “벗은건가..띠로만 가리고...”

    4월30일(현지시간)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 도밍고에서 열린 메르세데스 벤츠 패션 위크(Mercedes-Benz Fashion Week)에서 이스라엘 패션 디자이너 이단 코헨(Idan Cohen)의 작품을 모델이 입고 런웨이를 걷고 있다. A model presents a creation by Israeli fashion designer Idan Cohen during on April 30, 2015 in Santo Domingo, Dominican Republic.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SNS는 따듯했네...지진 네팔 청년, 소셜기부로 7만달러 모아

    SNS는 따듯했네...지진 네팔 청년, 소셜기부로 7만달러 모아

    네팔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당한 수도 카트만두에 사는 청년이 인터넷을 통해 구호금 기부를 호소, 7만 달러(약 7000만원) 이상을 모았다고 미국 CNN이 28일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하고 귀국한 로케시 토디(28)는 25일 발생한 이번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것을 피했지만, 도시의 피해상황을 보고 곧바로 기부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해외 경험을 가진 사촌 아디챠(22)와 함께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를 통해 모금 마련을 시작했다. 이들은 목표액 2만 달러를 조기 달성해 추가로 목표치를 7만 5000달러로 상향 조정했고, 이마저도 이미 돌파했다. 이에 대해 토디는 “네팔에서는 1달러만 있으면 세 사람이 충분히 식사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모인 7만 달러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고고를 통해 접수된 기부금은 인도될 때까지 1~2주 정도가 걸리지만, 그는 이미 은행 등 직접 전달받은 기부금을 이재민에게 제공할 식량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또 네팔의 장기적인 재건을 위해 이들은 현지에 계속 남아서 비정부단체(NGO)에 기부금을 전달할 생각인데 토디는 자신이 예일대 기숙사에서 쌓았던 인맥을 활용할 계획이다. 토디는 대학에서 배운 재해지역 재건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지진재해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보육과 교육은 물론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자립 등을 지원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식수 확보와 감염 예방, 화장실 정비 등 위생 사업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토디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관심을 높이기 위해 카트만두 시내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은 기부금을 어느 단체를 통해 활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아동정책포럼 열어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 아동정책포럼 열어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 www.gni.kr)가 ‘2015 굿네이버스 아동정책포럼’을 열고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를 위한 아동보호체계 개선의 필요성 및 방안에 대해 제안한다. 30일 오후 2시부터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진행되는 이 포럼에는 연구진, 정부기관, 유관단체 관계자,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 실무자, 학계 및 일반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다.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의 개회사 및 남인순 국회의원의 환영사가 있을 예정이며, 굿네이버스 김정미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이 사회자로 나선다. 포럼은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으로 구성된다. 먼저 주제발표에서는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를 위한 아동보호체계 개선방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발표가 이어진다.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안재진 교수가 ‘아동학대관련 특례법 시행 이후 아동보호서비스 체계의 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김기현 교수가 ‘미국, 일본, 영국의 아동보호체계 분석’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가 ‘한국의 아동보호체계 중장기 개선방안’을 다룬다. 토론에서는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신혜령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 보건복지부 아동권리과 정영숙 사무관,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홍종희 과장,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윤진영 경감, 서울시 동남권 아동보호전문기관 전미선 관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안미현 팀장이 참석해 논의한다.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개정 아동복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민간과 국가의 역할이 커진 것은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의 진일보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건 위기대응 체계는 아직 미완성 단계이다”면서 “이번 포럼에서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 개선을 위한 각자의 역할수행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며, 민관의 역할이 균형을 이뤄 더욱 발전적인 아동보호체계의 정책변화가 현장에 적용되고 체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네팔 청년, 소셜기부로 7만달러 구호금 모아

    네팔 청년, 소셜기부로 7만달러 구호금 모아

    네팔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당한 수도 카트만두에 사는 청년이 인터넷을 통해 구호금 기부를 호소, 7만 달러(약 7000만원) 이상을 모았다고 미국 CNN이 28일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 예일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취득하고 귀국한 로케시 토디(28)는 25일 발생한 이번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는 것을 피했지만, 도시의 피해상황을 보고 곧바로 기부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해외 경험을 가진 사촌 아디챠(22)와 함께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인디고고’를 통해 모금 마련을 시작했다. 이들은 목표액 2만 달러를 조기 달성해 추가로 목표치를 7만 5000달러로 상향 조정했고, 이마저도 이미 돌파했다. 이에 대해 토디는 “네팔에서는 1달러만 있으면 세 사람이 충분히 식사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 모인 7만 달러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고고를 통해 접수된 기부금은 인도될 때까지 1~2주 정도가 걸리지만, 그는 이미 은행 등 직접 전달받은 기부금을 이재민에게 제공할 식량을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또 네팔의 장기적인 재건을 위해 이들은 현지에 계속 남아서 비정부단체(NGO)에 기부금을 전달할 생각인데 토디는 자신이 예일대 기숙사에서 쌓았던 인맥을 활용할 계획이다. 토디는 대학에서 배운 재해지역 재건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지진재해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한 보육과 교육은 물론 가족을 잃은 여성들의 자립 등을 지원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식수 확보와 감염 예방, 화장실 정비 등 위생 사업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토디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관심을 높이기 위해 카트만두 시내를 돌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며, 지금까지 모은 기부금을 어느 단체를 통해 활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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