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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개 길이만 30㎝…‘자이안트 나비’ 경악

    날개 길이만 무려 30cm에 달하는 ‘자이안트 나비’가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고있다. 현지 온라인 매체 베트남넷에 따르면 하노이 지아 람 지역에 사는 당 티 안 뚜예의 집에 수일전 부터 초대형 나비가 집으로 날아와 잡은 뒤 여러장의 사진을 찍고 풀어주었다는 것. 베트남넷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이 ‘자이안트 나비’는 날개 길이만 무려 30cm로 함께 촬영한 작은 고양이나 샌달과 거의 비슷한 크기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집으로 몰려와 날개 길이를 재보기도 했는데, 이웃인 다오 반 뚜이는 얼마전 그와 뚜예의 집 앞 나무에서 매우 큰 애벌래를 본적이 있는데 이것이 ‘자이안트 나비’가 된거 같다고 추측했다. 뚜예는 처음에 ‘자이안트 나비’를 건조시켜 소장하려 했는데 이웃들이 반대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한편 마을 노인들은 1990년대에 유사한 나비를 한번 본적이 있다고 하며, 이 나비를 레이디 나비 라고 부르는데 이 종은 사실 카람볼라 나무에서 서식하는 카람볼라 나비(Attacus Atlas)이며 베트남 멸종위기 목록에 있는 3종의 나비 가운데 하나이다. 인터넷 뉴스팀
  • [서울광장] 손학규의 ‘주홍글자’ 넘어서기/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손학규의 ‘주홍글자’ 넘어서기/김종면 논설위원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07년 3월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나는 그의 자기중심적인 정치행태를 비판하는 조그만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기는 법만 배웠지 아름답게 지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삼류 정치꾼의 저질 해프닝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고 적었다. 현란한 둔사를 나열했지만 탈당은 누가 봐도 벌거벗은 욕망의 정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손 고문은 다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이라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앞두고 있다. 걸림돌을 치우고 디딤돌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주홍글자 이야기도 그런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 전력이 지금에 와서는 ‘주홍글씨’가 되어 내 발목을 잡을 때가 많았다. 그 주홍글씨가 자주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불편한 기억을 불러내며 피맺힌 자기고백을 했을까. 지금도 한나라당이라는 원죄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다니 최고통치자가 되겠다는 이의 고백치고는 너무 초라하고 왜소하다. 왜 그렇게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벗어날 도리가 없는 주홍글자에서 탈출할 궁리만 하고 있을까. 안타깝다. 한번 새겨진 주홍글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숨기거나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 선명히 드러난다. 소설 ‘주홍글자’를 떠올려 본다. 목사와 사랑에 빠진 헤스터 프린은 죄악의 상징으로 간통을 뜻하는 ‘A’자를 가슴에 달고 산다. 그러나 소설을 찬찬히 읽어 보면 헤스터에게 그것은 단순한 치욕의 징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남성중심 가부장사회에 도전하고 독선적인 청교도주의의 억압에 저항한다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겼다. 헤스터는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세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이 주홍글자의 여인을 “우리 헤스터”라고 부른다. 비평가들이 주홍글자를 종종 ‘펠릭스 쿨파’(felix culpa·행복한 죄)의 관점에서 읽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나는 지금 손 고문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같은 ‘관점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주홍글자관(觀)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담대하게 고백해야 한다. 오 행복한 죄여, 복된 죄여! 이제 주홍글자를 넘어서는 역발상의 정치를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까 고민할 때다. 주홍글자 사용설명서라도 만들어라. 주홍글자를 차별화 포인트로 삼을 정도가 돼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손 고문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는 중간층을 얼마나 많이 끌어오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더 구체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한 중간층을 우군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른바 ‘중도 후보론’이다. 손 고문이 야권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이미지가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나 중도의 철학과 가치에 투철한지는 알 수 없다. 민주당 대표 시절 그는 ‘허공에 매달린 사나이’처럼 어정쩡한 자세를 보여 실망을 안겨줬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나 KBS 수신료 인상 문제 등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시계추 리더십’은 진보·보수 양쪽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사유화한 공권력으로 시민을 유린하던 세력이 북한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은 낡은 이념이라고 해 수구 논란을 낳기도 했다. 그건 중도가 아니다.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안정적으로 아우르는 진정한 중도 정치인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것만이 ‘출신 콤플렉스’를 벗는 길이다. 주홍글자 때문에라도 더욱더 ‘손학규 정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쇠붙이도 사람도 연단을 통해 강해진다.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치열한 자성의 세월을 보냈다면 손 고문은 더 이상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장자풍도(長者風度)의 성숙한 정치로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요즘 손 고문의 말이 독해졌다는데, 남에게 상처를 주는 속좁은 정치는 하지 말기 바란다. 몇달 후면 대선, 바야흐로 야망의 계절이다. 약점을 강점으로, 시련을 축복으로 만드는 건 손 고문의 몫이다. 주홍글자는 꿈을 실은 배를 움직이는 바람이 될 수도 있다. jmkim@seoul.co.kr
  • “근육질 남성들, 여성 차별할 가능성 높아”

    근육질 남성일수록 여성을 차별하는 성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영국에서 제기됐다. 27일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웨스트민스터대학 연구진이 이성애자인 영국 남성 32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시행한 결과, 근육질을 추구하는 남성일수록 성차별적인 가치관을 더 많이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 응답자의 32.2%는 현재 애인과 교제 중이며 23.9%는 기혼자, 나머지 38.5%는 싱글로 나타났다. 또한 대부분이 백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위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응답자들에게 ‘남자에게 알랑거리는 여자는 그들(남성)을 괴롭히거나 다치게 할 것 같다.’와 ‘여자들끼리 술에 취하는 것은 남자들끼리 술에 취하는 것보다 나쁘다.’ 등의 질문을 제시하고 동의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또 ‘난 좀 더 근육질이길 원한다.’는 질문에 동의한 남성일수록 스스로 성차별적인 고정 관념을 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을 이끈 비렌 스와미 박사는 “근육질 남성을 포함한 성차별적인 생각을 가진 남성들은 남자다움이란 전통적인 고정 관념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기존 연구를 통해 성차별적인 신념이 강한 남성일 수록 날씬한 여성 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자신의 몸을 좀 더 근육질로 만들고 싶어하는 남성들도 이와 같은 신념에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지난달 28일 ‘남성 심리와 남성성(Psychology of Men & Masculinity)’ 저널에 실렸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르노삼성 내년 신차 발표

    르노삼성 내년 신차 발표

    로노삼성차가 내년 하반기에 신형 차종을 선보이며 국내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로 했다. 2007년 12월 QM5가 출시된 이후 6년 만에 새롭게 공개되는 소형 크로스오버 차량(CUV)인 ‘QM3’(미정)는 르노삼성차의 콘셉트카인 ‘캡처’를 기반으로 개발된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르노그룹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은 한국을 방문, 27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르노삼성차가 내년 한국에 소형 CUV인 ‘QM3’를 선보일 것”이라면서 “르노그룹이 르노삼성차를 통해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비즈니스를 이어간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또 내년부터 전기차 ‘SM3 Z.E’도 양산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로써 르노삼성차는 SM3, SM5, SM7 등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인 QM5 등 4개 차종에서 내년부터는 CUV인 ‘QM3’와 전기차 SM3 Z.E 등 2개를 더해 모두 6개 차종을 판매하게 된다. 또 타바레스 부회장은 “르노삼성차는 매년 르노와 닛산을 통해 60여개 국가에 10만대 이상의 차를 수출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은 물론 그룹에 있어서도 중요한 거점”이라면서 “르노삼성차 매각설은 뜬소문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높은 품질과 서비스 만족도를 자랑하는 르노삼성차가 내수시장 10%의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원숭이+드라큘라’ 특이한 모양 꽃 화제

    자연이 그린 그림? 원숭이 얼굴을 닮은 기이한 무늬를 가진 난초가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에콰도르 남동부에서 발견되는 이 꽃의 이름(학명)은 ‘드라큘라 시미아’(Dracular simia), 별칭은 ‘원숭이 난초’다. 드라큘라 시미아는 꽃의 양 끝이 드라큘라의 뾰족 솟은 송곳니 2개를 연상케 한다는 의미에서 따온 ‘드라큘라’와 암컷 원숭이를 뜻하는 ‘시미아’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에콰도르와 페루에 걸쳐 있는 운무림(습기가 많은 열대지방의 삼림)의 해발 2000m 지점에서 서식하며, 꽃잎에 원숭이 얼굴을 연상케 하는 특이한 무늬를 가졌다. 특히 꽃마다 그 무늬와 색깔이 모두 달라서 각기 다른 원숭이의 얼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꽃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78년이며, 꽃의 학명은 ‘루어’(Luer)라는 이름의 식물학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숭이 난초’는 계절에 상관없이 꽃을 피우며 오렌지 향을 내뿜는다. 에콰도르에서는 총 120여 종이 발견됐지만 고산 지대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특징이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北여성들, 아리랑 공연중 화장실 못가고 결국…

    北여성들, 아리랑 공연중 화장실 못가고 결국…

    세계 최대의 집단체조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바 있는 북한의 아리랑 공연. 연 인원 10만명이 참가해 음악, 무용, 체조, 카드섹션, 서커스 등을 펼치는 아리랑 공연은 북한이 세계적으로 내세우는 문화상품이자 관광자원이다. 그러나 공연에 동원된 어린이와 부녀자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워낙 커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탈북자 인터넷신문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22일 ‘남한은 소녀시대, 북한은 선군시대’라는 기사를 통해 화려한 아리랑 공연의 이면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탈북자의 증언을 빌어 소개했다. 뉴포커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소녀시대’ 등 한국 대중가요 그룹들의 군무를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탈북자들은 어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면 저런 동작이 나왔겠느냐며 세련된 모습 속에 숨겨진 그들의 땀방울을 측은해 한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다는 이주연(34·가명)씨는 “넉달 동안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연습을 했는데 밥 대신 빵과 사이다를 주었다.”면서 “공연을 할 때는 화장실도 갈 수가 없어서 지린내가 진동했지만, 그것에 불만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뉴포커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씨는 이렇게 몇 달간 고생을 한 후 북한주민에게 지급되는 보상은 TV 한 대와 이불 한 점뿐이라고 한다. 이씨는 “대부분의 주민은 상품 때문에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불참했을 때 받게 되는 생활총화 등 사상비판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포커스는 “아리랑 군무는 세계적인 규모이지만 칭찬보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체제 우월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위해 노예들의 군무를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북한 당국을 비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에서 부부 싸움하다 접시말고 이것 던졌더니…

    北에서 부부 싸움하다 접시말고 이것 던졌더니…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상화가 일상화가 돼 북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눈치 채지 못하는 우상화도 있다. 남쪽에서는 알고 보면 황당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우상화 사례 몇가지를 최근 탈북자 인터넷 매체인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소개했다.  최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북한 교과서’라는 사진 한 장이 실렸다. 확인 결과 남쪽에서 안보용으로 제작된 책의 내용이었다. 확인한 탈북자가 북한 교과서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유는 김정일 이름을 줄을 바꿔가며 표기됐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일가의 이름을 쓸 때 절대 줄을 바꿔서는 안된다.  북한에서는 여행할 때 몰래 사진을 찍거나 갑작스레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 행위다. 김일성 동상을 예로 들자면, 급하게 찍다가 동상이 일부라도 사진 속에서 잘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관광객 카메라에서 김일성 동상의 한쪽 팔이나 하반신이 잘린 것이 발견될 경우 바로 삭제 된다.  북한에서는 또 극중에 김일성 일가로 분장한 배우에게는 실제 김일성 일가를 대하듯 해야 한다. 북한의 유명한 영화 감독으로 인민예술가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던 류호손씨(68)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 촬영 도중 흥분해 김일성 역할을 맡은 젊은 배우에게 소리를 질렀다가 혁명화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혁명화는 북한 고위층이 과오를 저질렀을 때 농촌이나 오지 탄광으로 보내 생산 현장에서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처벌이다.  김일성 일가 사진이 들어간 노동신문 지면은 절대 다른 용도로 쓸 수 없고, 따로 모아 반납해야 한다. 만약 휴지나 도배지로 사용하거나 담배를 말아서 피는 행위를 했다가 적발되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김일성 일가의 사진이 실린 지면을 따로 분류해 반납하는 게 귀찮아 아예 태워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뉴포커스는 전했다.  북한에서 집에 불이 났을 때 김일성 초상화를 가장 먼저 챙기는 게 좋다. 패물 대신 김일성 초상화를 들고 나온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정부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부부 싸움을 하다가 성난 남편이 던진 물건이 김일성 초상화를 건드렸는데, 이를 아내가 신고해 남편이 처벌받은 일도 있다고 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여성들, 아리랑 공연중 화장실 못가고 결국…

    北여성들, 아리랑 공연중 화장실 못가고 결국…

    세계 최대의 집단체조로 기네스북에도 오른 바 있는 북한의 아리랑 공연. 연 인원 10만명이 참가해 음악, 무용, 체조, 카드섹션, 서커스 등을 펼치는 아리랑 공연은 북한이 세계적으로 내세우는 문화상품이자 관광자원이다. 그러나 공연에 동원된 어린이와 부녀자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워낙 커 인권침해라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탈북자 인터넷신문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22일 ‘남한은 소녀시대, 북한은 선군시대’라는 기사를 통해 화려한 아리랑 공연의 이면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탈북자의 증언을 빌어 소개했다. 뉴포커스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소녀시대’ 등 한국 대중가요 그룹들의 군무를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탈북자들은 어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으면 저런 동작이 나왔겠느냐며 세련된 모습 속에 숨겨진 그들의 땀방울을 측은해 한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다는 이주연(34·가명)씨는 “넉달 동안 아침 7시부터 저녁 12시까지 연습을 했는데 밥 대신 빵과 사이다를 주었다.”면서 “공연을 할 때는 화장실도 갈 수가 없어서 지린내가 진동했지만, 그것에 불만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뉴포커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씨는 이렇게 몇 달간 고생을 한 후 북한주민에게 지급되는 보상은 TV 한 대와 이불 한 점뿐이라고 한다. 이씨는 “대부분의 주민은 상품 때문에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불참했을 때 받게 되는 생활총화 등 사상비판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포커스는 “아리랑 군무는 세계적인 규모이지만 칭찬보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체제 우월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위해 노예들의 군무를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북한 당국을 비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사진은 진실이다. 진실은 감동이다. 감동은 사랑이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피사체를 담는 카메라는 언제부터 나왔을까. 궁금하다. 잠시 어원을 들여다본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고 반대 면에 종이를 붙여 그림의 윤곽을 잡았다. 바늘구멍이 향하고 있는 쪽의 영상이 상자 속으로 들어와 종이에 비치는 기능을 활용했다. 이 같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오늘날의 사진기, 즉 카메라의 어원이 됐다. 재미난 과거의 뉴스 하나. 1839년 프랑스인 다게르에 의해 현재의 사진기가 처음 개발됐을 때 당시 유럽의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하느님의 형상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떠드는 다게르는 분명 바보 중의 바보다.” 아마 사람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영혼을 빼앗는 걸로 여겼던 것 같다. ●‘대양을 향하여’ 30일까지 여수서 사진전 지난 19일 오후 카메라를 들고 오롯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배병우(62)씨. 소나무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바다에 풍덩 빠진 사람이다. 서해안, 남해안, 제주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로 사진 인생 40년, 궁금한 것은 만나서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작업실로 갔다. 어라, 약속된 시간인데도 탁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업실에 있는 조교랑 주거니 받거니 잘도 한다. 약이 올랐다. 탁구 라켓을 잡고 같이 치자고 했다. 그런데 배씨는 왼손잡이.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왕년의 탁구 실력을 발휘해 볼 생각에 열심히 덤벼들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푸싱을 했다. 그런데 잘도 받아 낸다. 20분쯤 지났다. 땀이 눈을 자극했다. 항복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 왜 그렇게 체력이 좋으세요.”라고 인사했다. 육십이 넘었는데 민첩하게 탁구를 잘도 친다. 돌아오는 답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탁구에는 급수가 있어요. A급은 프로 선수고 B급은 아마추어인데 내가 B급 정도는 되지.”라고 한다. 그러고는 슬쩍 웃는다. 흘리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물과 냉커피를 갖다준다. 얼른 물었다. “여수 바닷가 출신이지요.”라고. 배씨는 오는 30일까지 여수에서 ‘대양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그는 소나무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바다를 먼저 시작했다. 1970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다를 그리워했다. 태생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배씨에게 다시 “탁구는 일주일에 몇 번 치세요.”라고 물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한테 강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땐 유도를 했습니다. 탁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했고요.” 잠시 시간이 흐른다. 창밖에는 6월의 열정으로 가득 찬 나무들이 있다. 배씨는 그것을 잠시 응시하면서 말했다. “1999년이죠. 아내가 죽었을 때 탁구장 회원 등록을 했어요.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건강도 생각해야 했고요. 그때부터 했어요, 탁구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탁구를 칩니다. 한 시간 30분 정도씩…. 웬만한 상대를 만나도 자신 있습니다.” ●1년 중 3분의1씩 바다·소나무와 보내 배씨는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 있단다. 건강해야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얘기를 여수 전시로 돌렸다. 지난달 경주 전시에 이어 여수엑스포에 맞춰 전시 중이다. 소나무 작가인데 왜 바다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제 나이 29살 때 제주를 처음 갔지요. 카메라 들고 말입니다. 그 바닷가가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계속 바다를 찍었습니다. 지금도 1년의 3분의1은 제주도(바다), 또 3분의1은 경주(소나무), 나머지는 서울에 있지요.” 다음 전시는 언제 하는지 물었다. 피식 웃으면서 답을 한다. 늘 하는 건데 새삼 묻느냐는 의미로 다가온다. “올 11월 4개국에서 동시에 전시를 합니다. 따로따로 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동시에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서울, 파리, 베를린, 안트베르펜(벨기에)에서 합니다. 주제는 바다로 3년 동안 찍은 제주바다를 전시합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았지만 바람과 바다를 접목시켜 정하려고 합니다.” 그는 생선장수의 아들이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한다. 어머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바다를 보면서 수채화를 그렸고 나중에 미술대학을 갔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바다로 갔다. 어머니 품을 담으려고 했다. 고향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울릉도도 가고 서해안과 남해안 섬에도 갔다. 제주 마라도에도 갔다. 그러던 33살 때 소나무를 찾았다. 소나무는 아버지였다. ●독일 등 유럽 귀족들에 내 작품 인기 그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손의 떨림, 시선은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열 명이라고 합시다. 각자의 신체, 손이나, 손가락의 움직임, 감각, 숨결, 사상, 재능 따위가 다르겠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문학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이미지와 플러스알파, 뭐 이런 것도 있고요. 사진은 온갖 것을 찍을 수도 있지만 자연을 대할 때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집니다. 사람의 자질도 자연을 대할 때 각자 달라지겠지요.” 소나무로 다시 돌렸다. 전국 방방곡곡 소나무 숲을 전부 다녔을 터이니 말이다. “바다를 찍다가 우리나라의 상징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소나무를 찾게 됐다.”면서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한다. 제주도 자리돔이 울릉도에 와 있듯이 온도 변화로 활엽수가 침엽수를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갔던 숲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가야산 숲이 최고다.”라고 대답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배씨 뒤에는 온갖 책들이 있다. 사진집, 미술 서적, 대부분 영어로 된 책이다. 문득 사진 예술가로 걸어 오면서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었다.“에드워드 웨스턴이 멘토였어요. 만나지는 못했지만 집에 가서 남겨놓은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라면서 책꽂이에서 사진집을 꺼냈다. ‘캘리포니아 오두막에 살면서 사진관도 하고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아낸 작가’라는 설명이 나온다. “보세요, 누드도 얼마나 잘 찍었는지….” 배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까닭 중에 하나는 2005년 팝스타 엘턴 존이 2700만원을 주고 배씨의 사진을 구입한 일이다. 이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엘턴 존이 애틀랜타 별장에 사는데 거기에다 걸어놨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실 스페인,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귀족들 별장에도 많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하기야 그는 스페인에서 2년 동안 알람브라 궁전만 찍었다. 그러면서 사귄 유럽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어디 유럽뿐일까. 2009년 호주에서 사진 발명 170년에 맞춰 선정한 세계적인 사진작가 60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필름을 사용한다. 디지털이 영 안 맞는다고 했다. 린호프(4x5) 카메라를 주로 들고 다닌다. ●필름 없어질지 몰라 2년 쓸 것 구입해 놔 “내가 필름을 사용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겁니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을 대비해서 2년치는 구입해 놨지요.”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사진에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의 기척 같은 것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기는 한데 인간의 모습이 숨어 있다. 사람의 숨결이 감돌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술병, 술잔, 도자기, 달력 등등 모두가 배씨의 그림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거 저런 거 묻기가 부끄러워 술 친구들 많이 있느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인문학이라고 하잖아요. 사진도 그래요. 역사를 살피는 것, 자연을 살피는 것은 바로 인문학입니다.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갔어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움을 갈망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조용한 기다림이라고나 할까요.”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잠시 후 시계를 본다.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고약한(?) 질문을 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여자 친구가 있는지라는 말을 꺼냈다. “귀찮아요.”라고 했다. 에구 역시 잘못 물었나 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배병우 작가는 미대시절 사진 독학… “발 부르트도록 대상 찾아다녀” 1950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여수고를 나와 1974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동대학 대학원 공예도안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대학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찾았다. 사진은 독학했다. 1984년부터 사진작가 배병우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소나무 작업에 매달렸다. 자신이 태어난 바다와 산과 제주 오름 등 한국의 자연에 천착했다. 국내는 물론 프랑스, 일본, 캐나다, 미국, 스페인, 독일 등 국외에서도 많은 전시를 열었다. 세계적인 팝 가수 엘턴 존이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세계 유수의 아트경매에서 1억원을 호가하며 낙찰되는 등 세계적인 작가로 활동 중이다. 사진 찍는 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손 대신 발이 부르트도록 대상물을 찾아다닌다.”고 말한다. ‘풍경을 넘어서’ ‘사진-오늘의 위상’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했으며, 일본 국립근대미술관 ‘90년대 한국미술’(1996), 토론토 파워 플래닛 ‘Fast Forward’(1997), 파리 OZ 갤러리 ‘배병우 개인전’(1998), 서울 박영덕갤러리 ‘배병우 개인전’(2000) 등의 전시 경력이 있다. 1981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요 작품집으로 ‘종묘’(1998), ‘청산에 살어리랏다’(2005), ‘Sacred Woo’(2008), ‘창덕궁: 배병우 사진집’(2010),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2010) 등이 있다.
  • 공각기동대?…日 ‘사이버공격 시각화’ 경보시스템 개발

    공각기동대?…日 ‘사이버공격 시각화’ 경보시스템 개발

    일본에서 사이버 공격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는 경보 시스템을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19일 일본 디지인포뉴스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일본 정보통신연구기구(NICT)가 인터롭 도쿄 전시회에 대 사이버 공격 경고 시스템 ‘디덜러스(DAEDALUS·Direct Alert Environment for Darknet And Livenet Unified Security)’를 공개했다. ‘디덜러스’는 네트워크 등이 공격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이버테러를 그린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떠올리게 해 일본은 물론 해외 네티즌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된 디덜러스의 구동 장면을 보면, 중심부에 있는 구(球)가 인터넷을 나타내며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원 하나 하나가 현재 공격 중인 네트워크를 나타낸다. 이러한 공격의 모습은 3D 그래픽으로 표시되며 어떠한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디덜러스’는 사고 분석 시스템인 닉터(NICTER·Network Incident analysis Center for Tactical Emergency Response)를 활용해 신뢰성 높은 불법 네트워크를 식별할 수 있다. 특히 ‘디덜러스’는 가입 조직에서 기기나 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도 IP 주소의 등록만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기존의 경계 방어 솔루션과 병용이 가능하여 조직의 보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악성코드 감염 및 활동 감지 이외에도 서비스 거부(도스·DoS) 공격에 의한 반사 및 설정 착오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3D 그래픽이다. 사이버 공격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경고하는 ‘디덜러스’에 대한 동영상은 인터넷상에서도 공개돼 이목을 끌고 있다. 영상을 접한 일본 네티즌들은 “공각기동대 같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멋지다.” 등의 호응을 보였고, 해외 네티즌들 역시 “쿠사나기(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의 등장이 기다려진다.”, “스카이넷(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슈퍼컴퓨터)의 탄생이구나” 등의 열띤 반응을 보였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탈북女와 직접 결혼해 살아보니 이런 일들이…

    탈북女와 직접 결혼해 살아보니 이런 일들이…

    탈북여성 박영미(33·가명)씨는 집에 있을 때 필요없는 전기는 반드시 끈다. 박씨는 “북한에 살던 시절 등잔불을 켜고 책을 보다가 가끔 전기가 들어와서 환해지면 가슴이 뛸 만큼 기뻤다.”면서 “전기의 고마움을 알기 때문에 지금도 아끼며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여름 국내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탈북자 인터넷 신문 뉴포커스(www.newfocus.co.kr)는 최근 남한에 내려와 정착한 탈북자들의 몸에 밴 절약실천을 소개했다. 북한에서 전기, 물품 등 워낙 심각한 생활고를 경험했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의 낭비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기사다. 탈북여성 이정숙(38·가명) 씨는 “음식물 쓰레기를 일주일에 한 번만 버린다.”면서 “남한사람들은 물자가 풍부해서 그런지 음식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고 말했다. 이씨는 “북한에서 생활할 때 음식을 아끼던 것이 버릇이 돼서 지금도 음식을 대할 때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탈북여성 김혜연(26·가명)씨와 결혼한 한국인 이정민(33·가명)씨는 외출할 때 구두보다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그는 “아내가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기를 원해서 바쁘지 않을 때는 2~3정거장 거리는 걷기 때문”이라면서 “처음에는 운동 삼아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 그런 것이었다.”고 말했다. 뉴포커스는 “대부분의 탈북자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절약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 절약정신을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면서 “탈북자를 통해 얻는 가르침은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인간의 미덕”이라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700만년 전 짝짓기 중 죽은 ‘거북 커플’ 화석

    독일의 한 화석 유적지에서 4700만 년 된 거북 커플의 화석이 발견됐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전문매체가 20일 보도했다. 독일 튀빙겐대학 연구팀이 메셀 화석 유적지에서 발견한 이 화석은 암컷과 수컷이 한 쌍인 채로 화석화 됐으며, 이중 일부는 교미 중인 모습 그대로 화석이 돼 학자들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거북은 이미 멸종된 ‘Allaeochelys crassesculpta’ 종(種)이며, 등껍질의 길이는 0.6m, 폭은 0.3m 정도다. 수컷은 꼬리가 길고 등껍질 끝에 돌출돼 있는 반면 암컷은 이보다 꼬리가 더 짧고 등껍질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 총 9쌍의 거북 커플화석이 발견됐으며, 이들 대부분은 화산호(Volcanic lake)에서 뿜어져 나온 독성물질에 의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를 이끈 튀빙겐대학의 월터 조이스 박사는 “매년 수많은 동물들이 죽거나 태어나며, 이중 일부는 뜻하지 않은 환경을 통해 화석으로 남는다. 하지만 자신의 짝과 교미 중 화석이 되는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물다.”고 말했다. 이어 “교미중인 척추동물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동물 커플이 한날한시에 죽는 것과 함께 죽은 뒤 화석의 상태로 보존되는 것 모두 흔치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와 관련한 연구결과는 영국 학술원 생물학 저널(Royal Society journal Biology Letters)에 실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19일 ‘연평해전 10년’을 앞두고 당시 해전에 참전했던 북한 해병의 증언을 소개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2002년 6월 29일 해전 직후 취재했던 내용을 옮긴 것이다.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장 대표는 2004년 탈북할 때까지 5년 넘게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로 일했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 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뢴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 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 조끼입니다. 방탄 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 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 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 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 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 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 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 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 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 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 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 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 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 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 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 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 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 지도원이 정치 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 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 우세나 함선 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 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 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 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 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보위 지도원은 국기 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 훈장 2~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컬러 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을 담은 연극 ‘세 파편’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양사이버대 2학기 신·편입생 모집

    한양사이버대(부총장 유병태)가 2012학년도 2학기 신입생과 편입생을 모집한다. 모집 기간은 6월 18일~7월 17일. 신·편입생 모집은 영어학과, 부동산학과, 사회복지학부, 경영학부, 디자인학부 등 모두 16개 학과(학부), 14개 전공에서 일반전형 449명, 산업체 위탁전형 122명 등 모두 8개 전형을 통해 선발한다. 장애인 특수교육전형과 저소득층을 위한 기회균등전형, 북한이탈주민전형, 외국인 및 재외국민전형 등 자신에게 어울리는 전형을 선택하면 된다. 이 학교는 지난해 실시한 2011학년도 2학기 신·편입생 모집에서 1541명 정원에 2677명이 지원, 평균 1.74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양사이버대는 국내 사이버 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연간 약 60억원(2011학년도 기준)의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번 학기부터는 행정안전부와 협약을 맺어 정부중앙부처 공무원을 위한 장학금을 신설했다. 자세한 입학 안내는 홈페이지(www.hycu.ac.kr)를 참조하거나 전화(02-2290-0082)로 문의해도 된다.
  •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北 해병, 방탄조끼 안바란다며 원했던 장비가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19일 ‘연평해전 10년’을 앞두고 당시 해전에 참전했던 북한 해병의 증언을 소개했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가 2002년 6월 29일 해전 직후 취재했던 내용을 옮긴 것이다.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장 대표는 2004년 탈북할 때까지 5년 넘게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로 일했다.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 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 11호 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 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 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 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뢴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 준비!’하면 모두 갑판 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 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 조끼입니다. 방탄 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 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 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 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 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 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 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 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 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 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 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 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 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 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 조타 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 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 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 지도원이 정치 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 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 우세나 함선 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 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 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 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 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 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보위 지도원은 국기 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 훈장 2~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컬러 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을 담은 연극 ‘세 파편’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훼미리마트 → CU 개명 ‘새출범’

    훼미리마트 → CU 개명 ‘새출범’

    “험한 길을 가더라도 앞이 트인 길을 가기로 했다.” 국내 편의점 1위 업체인 훼미리마트가 ‘CU’(시유)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이름을 바꾼다. 1990년 10월 일본 훼미리마트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훼미리마트 1호점을 개점한 지 22년 만이다. 앞서 보광훼미리마트는 사명도 BGF리테일로 변경했다. 홍석조 회장은 1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탄탄대로지만 막힌 길은 미래가 없다.”는 말로 독자경영에 나서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등 편의점으로 올라선 지금 이 시기가 정체성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보광훼미리마트의 현재 점포 수는 7281개, 매출 2조 6000억원대다. 확고한 1위라는 자신감이 이번 홀로서기의 바탕이다. 또 편의점 수 2만 5000개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데 반해 20년 전 점포형태와 운영방식을 고수하면 업체 간 차별화는 물론 발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 새 출발의 동기가 됐다. CU는 ‘CVS for You’(당신을 위한 편의점)의 약자다. 가맹점, 그리고 당신을 위한 편의점을 의미하며 ‘또 만나자’는 뜻의 영어표현 ‘See You’와 발음이 유사한 점도 고려됐다. 전국의 훼미리마트 점포는 8월 1일부터 10월까지 순차적으로 ‘CU’라는 간판을 달게 된다. 이달 말까지 전 점포에 새로 개발한 전산시스템도 도입한다. 브랜드 교체 등 재단장에 따른 비용은 본사가 모두 부담하기로 했다. BGF리테일은 브랜드명 전환을 계기로 ‘21세기 한국형 편의점’을 선보일 방침이다. 평균 면적 66㎡(20평)인 우리나라 편의점의 좁은 공간에 최적화된 집기 배치와 상품 운영을 하겠다는 의미다. 고객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기간 만큼 ‘CU’의 간판에 ‘with FamilyMart’를 부기하기로 했다. 홍 회장은 “일본 훼미리마트사와 상표 사용권에 대한 계약을 체결해 기존 훼미리마트 브랜드를 사용하고 싶은 가맹점주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브랜드의 무단 점용도 막기로 했다.”고 말했다. 홀로서기에 나서지만 일본 훼미리마트와 전략적 파트너 관계는 당분간 유지된다. 지분구조에도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광훼미리마트의 지분은 홍 회장이 최대주주로 전체의 35.02%, 일본 본사가 23.48%를 갖고 있다. BGF리테일은 3대 주력 사업군인 ‘소매유통-물류’, 식품제조-외식‘, ’정보-생활서비스‘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 2020년 매출 10조원대의 종합유통서비스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열린세상] 옴진리교와 일본사회/국중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열린세상] 옴진리교와 일본사회/국중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재정학 교수

    1995년 3월 옴진리교라는 종교 교단이 도쿄 지하철역에 사린(독가스)을 살포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13명이 사망하고 6000여명이 신체 마비 등의 상해를 입었다.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하여 주모자들 대부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수배범 다카하시 가쓰야만은 도주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3일 용의자 기쿠치 나오코가 체포되면서 다카하시의 행적이 밝혀졌고 그를 체포하려는 일본 경찰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 발생 당시 옴진리교 신자 수는 1만 1400명까지 이르렀다. 입신자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 거품경제 시기에 빠른 속도로 교세가 확산되었다. 일본의 부동산 가치가 세계 제일을 자랑하며 승승장구하던 때가 이 시기다. 그렇게 잘나가던 때에 유능한 젊은이들이 어째서 옴진리교로 모여들었을까? 공룡 같은 시스템에 짓눌려 있어 자신들의 내면에 도사린 답답함을 풀어낼 무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젊은이들이 사회 풍조에 저항하거나 반항하던 옴진리교에 끌리게 된 일면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살면서 불안, 좌절, 고민 등이 따르게 마련이니 그 안식처로 종교를 갈구한다. 옴진리교 교주의 즉문즉답(?問?答)은 입신자들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입신자들이 무엇을 물어보아도 교주가 곧바로 대답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데 빨려들었다. ‘당신의 고민은 이것이다. 이렇게 하면 해결되고, 그러면 이런 경지에 이른다’는 식으로 문제 설정부터 해답, 해결방법까지 개개인에게 즉석에서 제시하였다는 것이 그의 인기비결이었다.”고 저널리스트 에가와 쇼코는 지적한다. 젊은이들의 소용돌이치던 불안을 해소하고 맺힌 응어리를 풀어준다는 식으로 옴진리교는 사람들을 모았다. 일본 인구는 1억 2700만명, 종교 인구는 3억명이라는 유명한 조크가 있다. 크리스마스 때는 모두가 캐럴을 듣는 기독교인이 되었다가, 정월 초하루가 되면 신사참배하는 신도(神道)인이 되고, 죽어서는 불교식으로 화장한 유골을 사찰 묘역에 안치하니 말이다. 그만큼 종교에 대해 너그러운 듯하지만 에도 시대에는 막부(幕府)가 성모 마리아상이나 그리스도상 판화를 밟게 한 종교탄압도 있었다. 기독교의 유일신과 일본 천황과의 양립을 허용하기 어려웠다는 속내도 있다. 기독교 탄압에 성공한 일본이지만 정부가 인간 내면의 영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이 발생하자 도쿄지방재판소는 옴진리교 해산명령을 내렸다. 신자 수는 현재 1500명 정도로 줄었지만 옴진리교는 ‘아레프’(Aleph)와 ‘빛의 고리’ 교단으로 나뉘어져 현재도 활동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최근 들어 신자 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1년 신자 증가 수는 213명으로 2010년 (108명)에 비해 두 배나 증가했고, 2007년(56명)에 비하면 네 배나 증가했다. 대부분이 20~30대 젊은이들이다. 경기침체로 불안감이 가중된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이 그 배경에 있다. 예전 시골 장터에서 닭장수들이 닭의 다리를 끈으로 묶어 장에 내놓았다. 장 본 닭을 집으로 가지고 와 묶인 끈을 풀어도 닭은 계속 자신이 묶여 있는 줄 알고 움직이지 못한다. 지하철 사린 살포사건 발생 후에도 젊은이들의 활동무대 마련을 위한 대안 찾기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너무 묶어 놓다 보니 자신들이 그저 묶여 있다고 느끼며 스스로 풀이 죽어 있는 듯하다. 행여 어떤 젊은이가 ‘아! 움직일 수 있구나. 움직여야겠다.’며 여기저기 날아다니려 해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여긴 올 수 없네.’하고 있던 둥지로 돌아간다. 젊을 때는 어쩌다가 천방지축 실수도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야 너그러운 사회다. 광신도 집단(cult)은 배제되어야 마땅하나, 일본의 젊은이들이 너무 숨죽이고 사는 듯하여 안타깝다. 응어리를 발산할 무대 마련은 어른들이 나서야 할 몫이다. 옴진리교 사건은 무대 마련을 하지 못한 어른들이, 실수한 젊은이들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들’처럼 몰아간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 생명체 있을까?…美탐사선 8월 6일 화성 착륙

    지난해 11월 성공적으로 발사된 차세대 무인 화성탐사선 큐리오시티호(Curiosity)가 오는 8월 6일 화성에 착륙해 본격적인 탐사에 나선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는 11일(현지시간) “ 5억㎞ 이상을 순항한 큐리오시티호가 오는 8월 6일 화성의 적도 부근에 있는 분화구 게일 크레이터에 착륙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호기심’(Curiosity)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탐사선에는 ‘로버’(rover)라는 6개의 바퀴가 달린 로봇이 실려있으며 이 로봇은 화성의 토양은 물론, 각종 광물 등을 채취해 조사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탐사가 눈길을 끄는 것은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임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 작은 승용차 크기인 큐리오시티호는 장착된 10개의 장비로 생명체의 근간인 탄소를 찾는 임무도 수행한다. 그러나 순항중인 큐리오시티호가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한 난관은 아직 남아있다. 바로 화성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의 리차드 쿡 선임연구원은 “이미 수차례 예행 연습을 통해 착륙 준비를 했다.” 면서 “착륙 성공 여부 보다는 얼마나 빨리 착륙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며 성공을 자신했다. 한편 플루토늄 배터리를 장착한 큐리오시티호는 화성에서 1년(지구기준 687일)간 활동해 관측 결과를 지구로 전송할 예정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종편, ‘재정·기술’ 하위권 점수 받고도 선정

    방송통신위원회가 8일 종합편성·보도전문 채널 사용사업자 승인과 관련된 백서를 공개하면서 종편 선정 과정의 부실·편파 심사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종편 채널을 놓고 경합했던 6개 사업자 가운데 계량 평가에서 하위권이었던 사업자가 주관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비계량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석연치 않은 대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종편 선정 심사 배점은 총 1000점으로 방송 공적 책임 및 공정성 250점, 방송 프로그램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 적절성 250점, 조직 및 인력운영·경영계획 적정성 200점, 재정 및 기술적 능력 200점, 방송발전 지원 계획 100점으로 구성됐다. 실제 세부 심사 항목은 모두 44개로, 계량화된 항목이 9개이고 나머지는 비계량 항목이다. 백서 분석 결과 TV조선(조선일보), 채널A(동아일보), MBN(매일경제) 등 현재 종편 사업자들이 계량 항목에서 HUB(한국경제), CUN(케이블연합) 등 탈락 사업자에 대부분 뒤진 것으로 드러났다. 계량 항목으로 주관적 판단이 배제되는 재정 및 기술적 능력 평가에선 HUB와 CUN이 각각 150.86점과 155.35점을 받아 5~6위인 MBN(146.68점), 채널A(149.81점)를 1~9점가량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계량 항목인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 평가에서 3~4위인 채널A와 MBN은 각각 212.24점과 207.80점을 받아 각각 198.94점과 184.02점을 받은 HUB와 CUN을 8~23점 차로 크게 앞섰다. 심사위 구성도 문제로 지적됐다. 심사위는 위원장 1명, 방송 2명, 회계 2명, 경제·경영 3명, 법률 2명, 기술 1명, 시민 1명, 기타 2명 등 14명으로 구성됐다. 방송 전문가는 단 두 명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날 공개된 900여쪽짜리 백서에서 종편 주요 주주 출자 규모, 특수관계인 또는 개인 참여 현황, 중복 주주 현황 등 그동안 언론·시민단체들이 공개를 요구했던 핵심 사항들은 제외됐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北 젊은여성, 담배피우는 남한 女배우 보더니…

    北 젊은여성, 담배피우는 남한 女배우 보더니…

    보수성과 폐쇄성이 지배하는 북한 평양에서 젊은 여성들이 대놓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고 탈북자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www.newfocus.co.kr)가 보도했다. 뉴포커스는 8일 ‘한류가 북한 여성들에게 담배까지 권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을 탈출한 이미정(39·가명)씨는 “재작년 방문한 평양의 한 주택에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평양의 일부 남자들은 여성들의 이런 변화를 인정하며 먼저 담배를 권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포커스는 “기존에는 북한 여성에게 담배란 오직 할머니만의 전유물이었으며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운다는 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그런 면에서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라고 전했다. 이런 흐름은 북한 간부층이나 부유층 자녀들 사이에 시작된 담배가 평양의 젊은 여성들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한국 드라마를 꼽았다. 요즘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국민보건의 이유로 담배 피우는 장면을 볼 수 없지만 북한에서는 주로 과거에 나왔던 드라마들을 접하기 때문에 여성 탤런트들의 흡연 장면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박모씨는 “북한에선 한국 드라마를 따라 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여성의 옷차림이나 말투, 그리고 자신 있는 모습 등 특히 담배를 피며 운전까지 하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고 전했다. 뉴포커스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삶의 고난도가 적은 평양 여성의 흡연은 스트레스를 풀기보다는 단순한 멋부리기용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북한에서는 담배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여성의 흡연이 지방으로 번져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다. 뉴포커스는 “이미 지방의 여성들은 합법적 마약인 담배보다 오히려 ‘얼음’이라 불리는 진짜 마약의 위험에 더 노출되어 있다.”면서 “경제적으로 빈곤해 삶에 지친 지방여성에겐 비싼 담배보다 마약이 더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서 담배보다 마약을 하는 여성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기인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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