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BBC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문화활동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네바다주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원조 예산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채식주의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274
  • 온 세상이 그를 멀리 뛰게 도왔다. 꼴찌였지만 누구보다 큰 박수를

    온 세상이 그를 멀리 뛰게 도왔다. 꼴찌였지만 누구보다 큰 박수를

    글로벌 작전 끝에 아프가니스탄을 무사히 탈출한 이 나라 패럴림픽 대표 선수 둘 가운데 한 명인 호사인 라술리(26)가 힘차게 뜀틀을 박차고 올랐다. 2020 도쿄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육상 남자 멀리뛰기 경기가 열린 31일 도쿄 내셔널 스타디움에서 그 어느 선수보다 힘겹게 이 자리에 선 라술리가 4.46m에 그쳐 꼴찌를 차지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하지만 그는 출전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올림픽 정신의 의미를 곱씹게 했다. 지난주 어렵사리 조국을 탈출한 그는 여러 나라와 여러 경기연맹, 인권단체 등 수많은 이들이 도와 천신만고 끝에 지난 29일 도쿄 선수촌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남자 100m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뒤늦게 도쿄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대회 조직위원회가 배려해 다음달 2일 남자 400m에 출전하는 쪽으로 조정됐다가 본인이 고사해 이날 T47 등급 멀리뛰기 결선에 출전한 것이었다. 다만 대회 조직위원회는 일체의 인터뷰나 경기 뒤 믹스트존 인터뷰를 금지해 아프간 선수를 보호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그가 어떤 감격을 느꼈는지 들어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날 은메달을 목에 건 미국 대표 로데릭 타운센드는 이날 선발 출전 명단에 원래 12명이 아니라 13명의 이름이 게재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곧바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너무도 개인의 삶에 사로잡히곤 한다. 여기 와서 은메달을 딴 것이 불만족스러웠는데 누군가는 우리 모두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온 세계가 거들어야 했다. 이런 일이야 말로 패럴림픽이 진짜로 의미하고 표방하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뿌듯해 했다. 라술리는 광산 폭발에 변을 당해 왼쪽 손목 아래를 절단했다. 함께 도쿄에 당도한 태권도 대표 자키아 쿠다다디(23)는 다음달 2일 여자 K44 등급 49㎏미만급 경기에 나선다. 아프간 여자 선수로는 사상 처음 패럴림픽 경기에 나서는 것이라 값진 의미를 지닌다
  • 탈레반, 미군 떠나자 저항세력 집결한 판지시르 공격했지만

    탈레반, 미군 떠나자 저항세력 집결한 판지시르 공격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미군 철수가 완료되기 직전 탈레반에 반대하는 세력의 마지막 거점인 판지시르 계곡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고 현지 언론이 31일 보도했다. 톨로 뉴스는 전날 밤 트위터를 통해 “탈레반이 오늘 저녁 판지시르의 전초기지를 공격했지만, 저항군이 물리쳤다”면서도 저항군 사령관인 아흐마드 마수드의 측근을 인용해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간 하아마 통신도 이날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탈레반이 합의를 깨고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탈레반 대원 8명이 죽고 저항세력은 둘만 다쳤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이에 대해 공식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탈레반은 저항세력의 방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싸움을 건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전날 자정을 전후해 미군이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마지막 철군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탈레반은 이에 발맞춰 저항세력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판지시르 계곡을 포위한 탈레반은 현지 통신망과 물자 보급망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지시르는 과거 옛 소련에 항전한 아프간 민병대의 거점 지역이기도 하다. 아프간의 ‘국부(國父)’로 통하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가 현재 이 계곡에서 탈레반에 반대하는 세력을 이끌고 있다. 마수드는 전날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이 모든 이와 권력을 나누고 정의 실현과 함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면 항쟁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은 보도했다. 그는 또 자신이 이끄는 아프간 민족저항전선(NRF)은 외국으로부터 아무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앞서 AFP 통신 등은 판지시르에 수천명의 저항 세력이 운집했으며, 마수드 휘하에만 9000명이 집결한 상태라고 전했다. 국제관계 대변인인 알리 나자리는 지난 26일 영국 BBC 인터뷰를 통해 “막강한 적군도 우리를 패퇴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25년 전의 탈레반도 그랬다. 그들은 계곡을 접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절망적인 패배를 맛봤다”고 말했다. 남서쪽에서 북동 방향으로 120㎞나 뻗어 있고, 계곡 밑바닥에서 위까지 3000m나 될 정도로 깊고 메마른 계곡이다. 천혜의 요새인 것은 물론, 일단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좁다란 길 하나로만 진입할 수 있다. 강한 바람이라도 불면 길 옆의 큰 바위가 떨어져 길을 막기 십상이다. 어릴 적부터 살아오다 최근 탈레반이 탈환한 뒤 아프간을 탈출한 샤킵 샤리피는 “온통 신비로운 곳이다. 계곡이 하나가 아니라 작은 계곡까지 치면 모두 21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계곡의 동쪽 끝은 해발 고도 4430m의 안조만 패스로 이어지고 더 동쪽으로 힌두쿠시 산맥과 연결된다. 알렉산더 대왕과 중앙아시아 마지막 유목민 정복자였던 티무르가 이 길을 지나갔다. 영국 리즈대학 국제역사학부의 엘리자베스 리크 부교수는 “역사적으로 이곳은 보석류 등 광물 채굴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수력 댐과 풍력 발전 설비가 들어섰다. 미국은 도로를 깔고 송신탑을 세웠다. 1950년대 소련군이 지은 뒤 최근까지 미군이 사용한 바그람 공군기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5만~20만명이 살고 있으며 주요 공용어인 다리어를 사용한다. 인종적으로는 이 나라 인구 3800만명의 25%를 차지하는 타지크족 혈통이다. 다만 문화적 자부심이 강해 타지키스탄에 기울지 않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켜왔다. 아프간 농업부의 고위 관료였던 샤리피는 “아프간을 통틀어 가장 용맹한 사람들일 것”이라면서 이곳 주민들이 탈레반에 굴복하지 않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호전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소련, 탈레반을 모두 물리쳐본 경험이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20년 전 탈레반이 물러난 뒤 이 나라에서 가장 작은 면적의 주로 인정받고 자치권을 부여받은 것도 이곳 전사들이 카불 재점령에 결정적 도움을 줬기 때문이었다. 주 지사도 이곳 출신이 임명돼 다른 지역과 차별화됐다. 북부 쿤두즈, 마자르이샤리프 같은 도시들로 통하는 터널이 뚫린 것도 이곳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여준다. 더불어 이곳 전사들은 탈레반 축출 후에도 무기를 반납하지 않고 많이 보관하고 있는데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과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 정부 관리들이 이곳에 많은 무기를 옮겨놓았다. 이곳에 집결한 정부군 병사들과 반탈레반 세력을 지휘하는 이는 서른두 살 밖에 안된 아마드 마수드다. 1980년대와 90년대 저항의 상징인 아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이다. 그는 정부군과 보안군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 오피니언 면에 기고해 “아버지 시절부터 고통스럽게 모아온 충분한 탄약과 무기가 있다. 우리는 이런 날이 올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별명이 ‘판지시르의 사자’였는데 판지시르가 ‘사자 다섯 마리’란 뜻이다. 아프간 육군장성의 아들로 이곳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계곡 곳곳에 들어선 선전탑이나 카불 의 가게 유리창에는 그의 사진이 붙여져 있다. 카리스마에다 서구 매체도 활용할 정도로 품이 넓었다. 소련조차 그와 타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매혹적이어서 거칠고 문맹에다 깡패 같던 다른 반군 지도자들과 구분됐다. 하지만 9 11 테러를 이틀 앞두고 암살당했고 이제 그의 아들이 또다시 저항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 탈레반 카불공항 장악, 이제 유일한 탈출 루트 파키스탄 국경 르포

    탈레반 카불공항 장악, 이제 유일한 탈출 루트 파키스탄 국경 르포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사실상 장악한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미군이 30일 자정을 전후해 철수 작업을 완료하고 탈레반이 접수하기까지 국제사회의 관심은 온통 카불 공항에 집중돼 왔다. 하지만 카불 공항에 몰려와 미국 등 동맹국에 피신시켜달라고 매달렸던 이들은 이들 국가의 협력자였거나 그 나라 비자나 여권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런 희망마저 품어볼 처지가 아닌 이들은 파키스탄과의 국경인 차만 스핀 볼닥으로 몰려들고 있다. 영국 BBC의 슈마일라 재프리가 30일 두려움과 땡볕, 굶주림을 견뎌내며 이곳을 통해 파키스탄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피난민들을 만나 심경을 들어봤다. 사진들은 BBC 홈페이지에 실린 것들인데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운 사진들만 골랐다. 한눈에 봐도 바싹 메마르고 황량한 이 마을은 전에도 수많은 무역업자들과 여행객들이 두 나라를 오가는 통로였는데 탈레반이 정국을 장악한 뒤 박해를 받을까 두려워 아프간을 떠나려는 인파가 부쩍 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동틀 때부터 저물녘까지 몇백명의 남자들이 어깨에 짐을 인 채 앞장서 걷고, 부르카 차림의 여성들이 뒤를 따라 힘없이 걷고, 지친 표정이 역력한 아이들이 엄마 몸에 매달려 있으며, 환자들은 외바퀴 수레를 밀며 이곳을 지나간다. 지르쿤 비비(가명, 57)는 과거 탈레반이 박해했던 소수민족 하자라족 출신이다. 최근에도 일부 남성들이 잔인한 폭력에 시달렸다는 얘기가 돌면서 악몽이 되살아나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녀는 울먹이며 “내 마음은 (고통으로) 타오른다. 다음 차례는 우리 아들인가 속으로 묻곤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아들은 영국 회사에서 일해 탈출하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몇년 전 하자라족을 겨냥한 탈레반의 폭탄 공격에 며느리를 잃었다고 했다. “상실감에 빠져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탈레반은 끔찍한 사람들이다. 난 그들이 무섭다.” 비비는 파키스탄에 도착하기 전 24명의 하자라족 여성들, 아프간 전역에서 온 어린이들과 함께 임시가옥에 머물러 있었다. 두 딸, 손녀와 함께 카불의 집을 떠났는데 이제는 집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했다. 손녀의 어깨를 만지며 “우리 집이나 재산 따위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직 아들과 그의 딸 걱정 뿐”이라고 말했다. “어디로 갈 수 있는가? 뭘 내가 할 수 있는가? 내 손으로 이 아이의 어미를 묘에 묻었다. 손이 많이 가겠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 또 하나를 잃고 싶지 않다.”자르미니 베굼(가명, 60)은 과거 수니파인 탈레반에 괴롭힘을 당한 시아파 무슬림이다. 탈레반이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이 나라를 떠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탈레반이 공포를 퍼뜨리는 통치로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 집을 습격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정부 관리들을 색출하고 있다. 매일 아침을 폭탄으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느낀다.” 갈수록 이곳 국경에 도착하는 이들의 연령이 젊어지는 것이 체감된다. 무함마드 아메르(가명)는 카불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는데 그곳이 탈레반 수중에 그렇게 갑자기 떨어질지 몰랐다며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그의 미래가 탈레반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삶에 관한 선택을 스스로 내리고 싶다. 자유를 원하며 거기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자말 칸(가명)도 카불에서 학생이었는데 마찬가지였다. “모든 사람이 자기 집에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는 억지로 아프간을 떠나야 한다. 파키스탄이나 다른 나라들로 이민가는 것을 좋아라 하지 않는다. 모두가 걱정하지만 어떤 희망도 저버렸다.” 탈레반이 성지로 여기는 칸다하르 출신 노동자 오바이둘라(가명)는 “사업체들도 붕괴됐고 정부도 없으며 경제는 완전히 망가져” 파키스탄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칸다하르는 평온하지만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라도 찾으려고 여기 왔다. 아마도 릭쇼(인력거)라도 몰 것이다.”탈레반은 과거보다 자제하는 이미지를 연출하려 애를 쓰고 있는데 이곳 국경을 지키는 한 병사의 태도에서도 그런 태도가 엿보였다. 평화롭게 월경을 허용하고 있다며 “외국 점령군들이 이 나라를 떠나면 곧 아프간인들의 트라우마는 끝날 것”이라면서 “이건 신뢰의 문제다. 사람들은 우리가 약속한 것이 진짜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곳에 밀려드는 사람들은 그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아메르는 “탈레반이 이번에는 다르게 굴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에 이들의 손에 당한 이들은 그들을 믿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파키스탄은 이미 1980년대 옛 소련의 침공 이후 지금껏 300만명 이상의 아프간인들이 넘어와 체류하고 있어 아프간 난민들을 감당할 여력이 안된다고 밝혀왔다. 많은 이들이 파키스탄 당국이 난민들의 유입을 완전 차단하는 일은 시간문제라고 믿고 있다. 이번에는 국경 근처에 난민 수용소를 세워 아프간인들이 그 나라의 중심으로 밀려드는 일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차만 스핀 볼닥 국경을 통해 사람들은 파키스탄으로 자유로이 입국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문이 좁아진다고 판단해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아주 제한될 것이라고 BBC는 결론 내렸다.
  • 탈레반 저항군, 자율권 주장하며 맹훈련…어린 소년까지 소총들고 무장

    탈레반 저항군, 자율권 주장하며 맹훈련…어린 소년까지 소총들고 무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손에 넣으면서 저항군과의 충돌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 북쪽에 있는 힌두쿠시 산맥의 판지시르 지역에서 저항군 민족저항전선(NRF)를 상대로 새로운 정부에 합류하라고 압박하고 있다.판지시르에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역사적인 항전지인 판지시르 계곡이 있으며, 저항군은 현재 이곳에서 탈레반에 맞서기 위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소총을 들고 계곡에 들어가거나 통나무를 등에 지고 물을 건너는 등 강도 높은 훈련이 진행 중이며, 여기에는 어린 소년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지역에서는 군복을 입고 무기를 든 저항군이 산악 지역을 이동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해당 지역은 탈레반에 맞서는 반군의 마지막 저항지라는 점에서, NRF 소속원들의 의지는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현재 NRF는 아프간 ‘국부’로 불리는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32)가 이끌고 있으며, 탈레반과의 평화적 협상을 원하지만 공격 당한다면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알리 나사리 NRF 대외관계 책임자는 BBC와 인터뷰에서 “평화협상을 추진하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공격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수천명의 병력을 저항군에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 어떤 탈레반도 협곡을 통과해 계곡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수드가 이끄는 NRF는 그들의 가족, 지지자 그리고 탈레반을 피해 몸을 숨긴 주민 등을 합치면 17만 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마수드는 “다른 지역에서 판지시르 계곡으로 피난처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있다. 아프간의 또 다른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탈레반이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협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탈레반, 집권 후 '민족 간 통합' 새로운 숙제로 떠올라 탈레반은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한 뒤 포괄적인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새 정부에 참여할 인사 10여 명을 거론하며 파슈툰뿐만 아니라 타지크, 우즈베크 등의 민족도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탈레반이 해당 지역에 대한 통치를 NRF에 넘겨줄 경우, 비(非)파슈툰 민족도 같은 통치적 자유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탈레반이 NRF와 전면전을 불사할 경우, 유화적 제스처로 정식 국가와 정상 정부를 인정해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던 목소리가 거짓이 된다. 외신들은 이번 대치 상황에 대해 “탈레반이 집권한 이후 아프간 내 모든 주요 집단을 대표하는 포용적 정부를 추구한다는 주장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양측은 대화와 협상을 계속 시도하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었고, 계곡과 인접한 지역에서 한 차례 교전이 있었다”고 전했다. 전문가와 외신들은 저항군이 판지시르 계곡을 거점으로 반탈레반 운동을 확산하고 다른 민족이 힘을 보탤 수는 있지만, 장기전이 될수록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1980~1990년대 계곡 입구에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면서 이전보다 넓어져 방어가 어려워졌고, 마땅한 보급로가 없어 외부 지원이나 자원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미 공습에 당한 카불 일가족, 미군 등 도와 탈출 대기하다 참변

    미 공습에 당한 카불 일가족, 미군 등 도와 탈출 대기하다 참변

    미국 국방부가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극렬 이슬람국가(IS)-호라산(K) 지부와 연결된 한 사람이 테러 공격을 위해 운반 중이던 차량을 드론으로 공습해 어린이 6명 등 일가족 10명을 애꿎게 희생시켰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할 점이 없다고 밝혔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30일 현지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대해 확인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반박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도 “실수는 없었다. 이 지구의 어떤 군대도 미군보다 더 민간인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도 무고한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아주 아주 심각하게 이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우리 작전 수행이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아울러 차량에 대한 정보는 IS-K가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을 타격하기 위한 것으로 “아주 실제적이며 구체적이었으며 임박한 위협이라고 믿게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현장의 미군 지휘관은 드론 공습에 이어 “상당한 2차 폭발”이 있었다며 그 차량에 많은 폭발물이 탑재돼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며 해서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해를 미쳤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어쩔 수 없는, 부수적 피해란 것이다. 일가족이 몰살된 친척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6명의 어린이가 희생됐는데 가장 어린 아이는 두 살배기 수마야, 가장 맏이가 열두 살 파르자드였다. 아래 사진의 형제도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다. 친척인 라민 유수피는 “잘못됐다. 잔인한 공격이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 일어난 일”이라면서 눈물이 글썽인 채 “왜 그들이 우리 가족을 죽였나? 우리 아이들을? 그애들은 너무 타버려 시신의 신원 파악은 물론,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다른 친척 에말 아흐마디는 수마야의 아빠인데 미국 정부에 탈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공항으로 나오라는 전화만 기다리며 집안에 머물던 중 이런 변을 당했다면서 미국이 “실수를,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아흐마드 나세르란 친척도 희생됐는데 그는 미군 통역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다른 희생자 한 명도 전에 국제기구를 위해 일해 미국 입국 비자를 갖고 있었다.
  • “차 지붕과 후드에 사람들이 묶여 있어요” 브라질 무장강도들 ‘인간방패’

    “차 지붕과 후드에 사람들이 묶여 있어요” 브라질 무장강도들 ‘인간방패’

    브라질 무장강도들이 30일 새벽 은행을 습격하는 과정에 인질들을 붙잡아 자동차 지붕과 후드 위에 묶어놓고 달아나 총격전 중 적어도 세 명이 숨졌다. 이 중에는 용의자 한 명도 포함됐다. 상파울루주 아라차투바란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치안이 엉망인 브라질에서는 은행강도가 아주 흔한데 최근에는 이렇게 은행을 턴 다음 인질을 붙잡아 자동차에 싣고, 이른바 ‘인간방패’로 삼는 일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전했다. 이번 강도 행위에 참가한 갱단원들의 숫자가 적어도 50명이라고 경찰 간부들은 전했다. 딜라도르 보르헤스 아라차투바 시장은 경찰이 개입해 용의자들을 검거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반드(Band) TV에 “경찰들은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어서 대치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도들이 인질들을 풀어줬는지도 모르겠다면서도 보안군들이 도심을 다시 통제했다고 밝혔다. 보르헤스 시장은 강도들이 시내 곳곳에 폭발 장치를 숨겨놓았다며 집안에만 머물러 달라고 당부했다. 주지사에게 인력을 더 충원해달라고 전화로 요청했다. 중무장한 강도들은 시내 은행 세 곳을 동시에 털었다. 강도 행위를 마친 뒤 이들은 헌병 파출소를 에워싸고 위협하기도 했다. 또 자동차에 불을 붙여 주요 도로로의 진입을 막는 등 아수라장을 이뤘다. 레코드(Record) TV 기자 유리 마크리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탈주 자동차 한 대의 지붕과 후드에 인질 한 명씩이 묶여 있고, 두 번째 차량 후드 위에도 한 사람이 웅크려 있다. 트위터에 올라온 다른 폐쇄회로(CC)TV 동영상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다수의 차량이 시내 도로를 퍼레이드하듯 나아가는데 인질들이 후드에 묶여 있거나 손발이 묶여 있거나 밴승합차의 선루프로 머리를 내밀고 서 있기도 했다. 동영상들을 보면 총성과 폭발음이 들리는데 경찰과 총격전 때문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용의자들이 위력을 과시하고 공포감을 극대화하려고 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용의자 한 명과 다른 두 사람이 숨진 사실을 확인했지만 사망 경위 등을 밝히지 않았다. 세 명이 더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 둘도 검거됐다. 용의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강탈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몇몇 동영상을 보면 주민 한 명이 거리에 떨어진 지폐를 모으는 모습도 눈에 띈다. G1이란 뉴스 매체는 갱단원들이 경찰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무인 드론을 띄웠다고 전했다. 이 도시가 은행강도들의 표적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에도 범죄자들이 이 도시 곳곳의 경찰서와 사설 경호업체 등을 공격하고 도로를 봉쇄했다. 이번처럼 대규모 은행강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5년 무렵이었다. 기관총과 중화기를 동원하는 일도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대체로 브라질 갱단은 국경을 넘는 일은 드물지만 이웃나라 파라과이의 은행을 턴 일도 있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애니 ‘업’의 괴팍한 할배 목소리 에드 아스너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애니 ‘업’의 괴팍한 할배 목소리 에드 아스너

    2009년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에 칼 프레드릭센 할아버지 목소리를 연기했고 1970년대 미국 TV 드라마 ‘메리 타일러 무어 쇼’에서 방송 기자 루 그랜트를 열연했던 배우 에드워드 아스너가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에미상을 일곱 차례나 수상한 배우 에드워드 아스너의 가족과 홍보 담당자들은 고인이 29일(이하 현지시간) 아침 미국 캘리포니아주 타르자나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고 뉴욕 타임스(NYT)와 영국 BBC 방송 등이 전했다. 유족들은 트위터를 통해 아스너의 사망 소식을 확인했으며,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고인은 1981∼1985년 미국 배우조합 회장을 지내는 등 정치적 활동도 활발히 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자유주의 성향이 아주 강해 전임 회장 찰턴 헤스턴이 총기협회장으로 나서는 등 보수 성향이 강해 첨예한 갈등을 빚은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아스너는 1970∼1977년 메리 타일러 무어 쇼에서 그랜트 역을 맡으며 매년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세 차례나 수상했다. 그랜트란 캐릭터는 매리 리처즈가 다니는 가상의 매체 로스앤젤레스 트리뷴의 편집장 겸 성마른 상사로 등장했는데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스핀오프 작품인 ‘루 그랜트’로 독립했다. 아스너는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한 배역으로 다섯 차례나 에미상을 거머쥔 최초의 배우로 기록됐다. 남자 연기자로선 가장 많은 일곱 차례 에미상 수상 기록은 지금도 넘볼 수가 없다. 2003년 윌 페럴의 ‘엘프’에 산타클로스로 출연하기도 했고, 2009년에는 인기 애니메이션 ‘업’에서 홀로 살며 괴팍하지만 사실은 잔정 많은 할아버지 칼 프레드릭센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소화해 젊은 세대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1929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아스너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1951년 프랑스에서 군 복무를 했으며, 미 육군 통신부대에서 2년간 복무한 뒤 제대했다. 제대 후 시카고에서 연극 활동을 하다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는데 1955년 잭 레몬과 호흡을 맞춘 ‘영웅의 얼굴’이란 작품이었다. 아메리칸 뉴욕 셰익스피어 축제 무대에도 섰으며 수많은 오프 브로드웨이 쇼에 얼굴을 내밀었다. 1957년 드라마 ‘스튜디오 원’으로 데뷔했다. 1961년 할리우드로 옮겨와 텔레비전과 영화 등에서 경력을 쌓아갔다 .그는 또 1976년 미니시리즈 ‘리치맨, 푸어맨’으로 골든글로브 5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TV 예술과학아카데미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 브라질 법원, 불륜남 시켜 그리스 대사 살해한 부인에 31년형

    브라질 법원, 불륜남 시켜 그리스 대사 살해한 부인에 31년형

    지난 2016년 브라질 주재 그리스 대사의 현지인 부인이 군 헌병인 정부(情夫)를 사주해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31년형을 선고받았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당시 키리아코스 아미리디스(당시 59) 대사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브라질 주재 대사를 지낸 뒤 2016년 다시 브라질에 돌아와 두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었다. 아마도 브라질인 부인과 딸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자원한 것 아닌가 보인다. 그런 그가 리우 외곽 고속도로 램프 아래 불에 탄 차량 안에서 숯검댕이 사체로 발견됐다. 아내 프랑수아 드 수자 올리베이라가 실종 신고를 해 경찰이 몸값을 노리고 범죄조직이 납치한 것이 아닌가 조사했지만 미심쩍은 정황이 없었다. 대신 정부인 세르히오 고메스를 추궁했더니 전모를 털어놓았다.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 그리스 총리에게 정식으로 사과할 정도로 파장이 적지 않았다. 고메스는 징역 2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의 친척으로 아미리디스 대사의 시신을 숨기는 데 도움을 준 에두아르도 모레이라 테데스치 디멜로는 살인 혐의는 벗었지만 사체 은닉 혐의로 일년 옥살이를 했다. 사흘 동안 이어진 재판을 마무리하며 판사는 29일(현지시간) 이들의 범죄가 “짐승 같다”고 질타했다. 아미리디스 대사는 2004년 프랑수아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비운의 그날, 그는 성탄 휴가를 아내, 장인장모와 보내기 위해 수도 브라질리아를 출발해 리우 북쪽 노바 이구아추로 향했는데 대신 그를 기다린 것은 아내와 정부였다. 그의 아내는 실종 신고를 하면서 남편이 아무런 설명 없이 렌트한 차량을 운전해 외출했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경찰은 집안 소파에서 혈흔을 발견해 그가 그곳에서 살해된 뒤 옮겨졌을 것이라고 의심해 정부를 추궁했고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 호우! 돌아온 우상… 소니! 시작된 승부

    호우! 돌아온 우상… 소니! 시작된 승부

    ‘손날두 vs 호날두’. 손흥민(29·토트넘)이 자신의 우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격돌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8일(한국시간) 유벤투스(이탈리아)와 호날두 이적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BBC 등에 따르면 이적료 1280만 파운드(205억)에 계약 기간은 2년이다. 이로써 2003~2009년 맨유에서 6년간 뛰며 슈퍼스타로 발돋움해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9년간 절정기를 누렸던 호날두는 12년 만에 올드 트래퍼드로 복귀하게 됐다. 당초 호날두는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에 이어 해리 케인(토트넘)을 놓친 맨체스터 시티행이 유력했으나 2002년 스포르팅(포르투갈)에서 프로 데뷔한 자신을 발탁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의 연락을 받고는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레전드를 지역 라이벌에 빼앗기지 않으려던 맨유는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손흥민은 ‘꿈의 대결’을 펼치게 됐다. 과거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롤모델 질문을 받으면 늘 호날두를 꼽아왔다. 스피드를 앞세운 직선적인 드리블에 순도 높은 골 결정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까지 스타일도 비슷하다. 손흥민에게 ‘손날두’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었다. 토트넘과 맨유는 10월 31일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2021~22시즌 첫 대결을 갖는다. 두 번째 대결은 내년 3월 13일 올드 트래퍼드에서다. 손흥민과 호날두는 앞선 인연이 있다.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에서 만났다. 호날두는 선발 출전했으나 손흥민은 후반 44분 투입돼 만남은 4분여에 그쳤다. 호날두가 유벤투스 소속이던 2019년 프리시즌 친선대회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ICC)에서 두 번째로 만나 45분간 대결했다. 이날 둘은 훈훈하게 유니폼을 교환했다. 한편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 ‘황소’ 황희찬(25)이 울버햄프턴으로 임대 후 이적이 임박했다고 29일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보도했다. 최종 확정되면 황희찬은 국가대표팀 선배 손흥민과 EPL에서 코리안 더비를 펼친다.
  • 손날두 vs 호날두, 10월 31일 EPL 격돌

    손날두 vs 호날두, 10월 31일 EPL 격돌

    ‘호날두 vs 손날두’‘손날두’ 손흥민(29·토트넘)이 자신의 우상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6)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대결하게 됐다. 호날두가 12년 만에 맨유로 귀환했다. 지난 28일(이하 한국시간) 맨유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유벤투스(이탈리아)와 호날두 이적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이적료 1280만 파운드(205억)에 계약 기간은 2년이다. 이로써 2003~2009년 맨유에서 6년간 뛰며 슈퍼스타로 발돋움해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9년간 절정기를 누렸던 호날두는 유벤투스를 거쳐 12년 만에 올드 트래퍼드로 복귀하게 됐다. 당초 호날두는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에 이어 해리 케인(토트넘)을 놓친 맨체스터 시티로의 이적이 유력했으나 2002년 스포르팅(포르투갈)에서 프로 데뷔한 자신을 발탁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의 연락을 받고는 방향을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이 키워낸 슈퍼스타를 지역 라이벌에 빼앗기지 않으려던 맨유로서는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셈이다.손흥민은 ‘꿈의 대결’을 펼치게 됐다. 과거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롤 모델 질문을 받으면 늘 호날두를 꼽아왔다. 스피드를 앞세운 직선적인 드리블에 순도 높은 골 결정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까지 스타일도 비슷하다. 손흥민에게 ‘손날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토트넘은 맨유와 오는 10월 31일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2021~22시즌 첫 대결을 갖는다. 두 번째 대결은 내년 3월 13일 올드 트래퍼드에서다. 앞서 둘은 그라운드에서 스친 적이 있기는 하다.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2017~18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차전에서 만났다. 호날두는 선발 출전했으나 손흥민은 후반 44분 교체 투입돼 만남은 4분여에 그쳤다. 호날두가 유벤투스 소속이던 2019년 프리시즌 친선대회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ICC)에서 두 번째로 만나 손흥민이 교체되기까지 45분간 대결했다. 이날 둘은 유니폼을 교환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편, 독일 분데스리가 라이프치히의 ‘황소’ 황희찬(25)도 울버햄프턴으로 임대 후 이적이 임박했다고 29일 영국 스카이스포츠가 보도했다. 최종 성사되면 황희찬은 국가대표팀 선배 손흥민과 EPL에서 코리안 더비를 펼치게 된다. 토트넘과 울버햄프턴은 지난 22일 정규리그 첫 경기를 치렀으나 다음달 22일 카라바오컵 3라운드에서 다시 만난다. 정규리그 두 번째 대결은 내년 2월 13일이다.
  • 그린란드 위 세계 최북단 섬 새로 발견, 60mX40m 밖에 안 돼요

    그린란드 위 세계 최북단 섬 새로 발견, 60mX40m 밖에 안 돼요

    그린란드 위 북해에 떠오른 60m에 40m 밖에 안되는 뭍이 세계 최북단 섬으로 새롭게 확인됐다고 덴마크 연구진이 주장했다. 지난달 코펜하겐 대학의 모르텐 라슈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우연히 발견했다. 드넓은 바다에서 그 정도 크기의 뭍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진은 1978년에 발견돼 최북단 섬으로 알려진 우다크(Oodaaq) 섬을 방문하고 연구 샘플을 모으기 위해 비행기로 바다 위를 정찰하는 과정에 이 조그만 땅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들도 처음에는 우다크 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북극해를 관장하는 덴마크 정부 관리들과 위치를 확인한 결과 우다크 섬보다 북쪽으로 800m 위인 것을 파악했다. 물론 북극점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다. 라슈 교수는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북극 기지에서 영국 BBC와 인터뷰를 갖고 덴마크와 스위스의 연구 및 탐사 작업 일환으로 아주 척박한 여건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적응하는지 샘플을 찾는 중이었다고 털어놓았다. 6명이 작은 헬리콥터 안에 비좁게 앉아 열심히 살폈는데 오다크 섬이 눈에 띄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가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는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뻘과 빙퇴석(moraine), 자갈로 이뤄진 곳에 내려앉았는데 결코 썩 내키는 곳이 아니었다고 했다. 과학의 견지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새로운 땅을 발견한 6명 중 한 명이란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라슈는 털어놓았다. 과학자들은 이 섬의 이름을 그린란드어로 최북단 섬을 뜻하는 케커르탁 아반나르렉(Qeqertaq Avannarleq)으로 짓고 싶어한다고 방송은 전했다. 그린란드는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느닷없이 이 땅을 매입하고 싶다고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덴마크는 즉각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일축했으나 그린란드의 미래 운명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BBC의 마지막 표현은 이곳에 대한 영국 정부나 학계의 미련이 상당하다는 여운을 남긴다.
  • 22차례 헌혈, 88마리를 도운 ‘공혈견 헌혈왕’ 우디 은퇴합니다

    22차례 헌혈, 88마리를 도운 ‘공혈견 헌혈왕’ 우디 은퇴합니다

    반려동물에도 ‘헌혈왕’이 있을 수 있으며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영국 레스터셔주 멜턴 모브레이에 사는 그레이하운드 종인 우디는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런 별칭을 붙여도 될 것 같은데 이제 이 소중한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고 BBC가 28일(현지시간) 전했다. 아홉 살 수컷인데 세 살 때 시작해 지난 6년 동안 22차례 귀중한 혈액을 기증해 88마리의 소중한 목숨을 구하는 것을 도왔다. 주인 웬디 그레이는 “힘겨운 시기에 그녀석이 많은 가정에 힘이 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영국 반려동물혈액은행은 450ml의 혈액을 기부하면 반려견 네 마리를 도울 수 있다며 우디를 슈퍼스타라고 칭찬했다. 러프버러에 있는 이 자선단체는 그레이하운드 종의 피는 음성이라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느 종의 반려견에라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략 반려견의 30% 정도만 이런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려견의 헌혈은 원래 한 살부터 여덟 살까지만 가능하도록 돼 있어 우디가 은퇴하는 것이다. 우디는 마지막으로 채혈한 뒤 장난감, 샴푸, 사탕, 영예로운 메달을 부상으로 챙겼다. 그레이는 우디가 헌혈하는 일을 매우 행복해 했다고 전했다. “현혈하러 갈 때마다 낑낑 소리를 내고 만나는 사람마다 달려드는 등 난리법석을 부린다. 그러다가도 테이블에 몸을 누이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끝난 뒤에는 또 난리를 부린다. 그 일을 좋아한다. 앓거나 하지도 않고 헌혈한 뒤에도 네 시간부터 여덟 시간 정도 산책을 할 때도 있다. 난 녀석이 자랑스럽다. 발걸음만 봐도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 그레이도 반려견과 함께 지내기 시작하고 한참 뒤에야 그들도 현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여러분의 반려견이 언제 피를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힘겨운 시기에 가족들을 도울 수 있고 목숨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일은 대단한 일이다.” 첫 반려견 리오를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았다가 헌혈을 권하는 팜플렛을 본 것이 계기였다. 리오는 11차례나 헌혈을 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해낸 것이 좋다. 사람끼리도 서로 돕는데 왜 반려견끼리 도우면 안되겠나?” 영국반려동물혈액은행의 니콜 오스번은 우디가 “도드라진 기증견”이라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에게도 혈액은 절대 중요하며 우디의 놀라운 기증 횟수는 영국 전체의 다른 반려견 목숨을 구하는 일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한국헌혈견협회가 공혈견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과 건국대 동물병원 등이 반려견 헌혈카 ‘아임 도그너’를 운행하는 등 인식을 넓혀나가고 있다.
  • 관 속 고인이 걸친 보석류 털어간 프랑스 60대 여성 덜미

    관 속 고인이 걸친 보석류 털어간 프랑스 60대 여성 덜미

    프랑스 북부의 한 장례식장에서 24일(이하 현지시간) 치러진 예식에 참석한 유족들은 낯선 추모객이 한사코 관 옆을 떠나지 않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설마 싶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고인의 오랜 친구라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해서 60대 여성이 열린 관 옆에서 추모의 시간을 갖도록 양해했다. 그런데 유족들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보니 고인의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들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유족들은 경찰에 신고해 어렵지 않게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 리에벵에 있는 이 장례식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여성을 체포한 뒤 집에서 사라진 보석류를 압수할 수 있었다고 영국 BBC가 28일 전했다. 수색 과정에 그녀가 그날 같은 곳에서 앞서 진행된 다른 장례식에 참석한 남성의 지갑을 슬쩍한 사실도 드러났다. 용의자의 집에서는 최근 세상을 떠난 이들의 부음 통지들이 수북히 발견됐다. 부음 통지에는 유족들이 관 안의 부장품 등을 다시 정리할 수 있도록 안치 공간에 드나들 수 있게 문의 비밀번호가 기재돼 있었다. 관 뚜껑을 열지 않는 우리네 사정에 빗대면 입관을 전후해 관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안내해 도둑을 불러들인 셈이다. 방송은 문제의 용의자가 내년에나 법원에 출두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는데 현행범에 가까운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
  • 아프간 탈출 여성, 영국 향하던 여객기 안에서 딸아이 출산

    아프간 탈출 여성, 영국 향하던 여객기 안에서 딸아이 출산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여성이 영국으로 향하는 여객기 안에서 딸아이를 출산했는데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고 영국 BBC 방송이 28일(현지시간) 전했다. 며칠 전 아프간 카불공항을 떠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머무르던 소만 누리(26)가 이날 이곳을 떠나 버밍엄으로 향하던 터키항공 여객기 특별 좌석에서 여자아이를 무사히 출산했다. 고도 9000m를 비행하던 중 산모가 갑자기 진통을 호소하자 승무원들은 기내 방송으로 일반 승객 중 의사가 있는지 다급히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해 승무원들이 직접 산파와 산부인과 의사 역할을 했다. 누리는 무사히 여자아이를 낳았고, 여객기는 쿠웨이트에 비상착륙해 산모와 아이의 건강 상태를 점검한 뒤 다시 떠나 버밍엄에 이날 밤 11시 45분 안착했다. 산모와 남편 타지 모 하마트(30)는 두 아이에 이어 새로 얻은 딸의 이름을 ‘하바’(영어로 ‘이브’)라고 지었다. 한편, 영국 정부는 자국을 도운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작전을 이날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국방부는 아프간인들을 실은 비행기가 마지막으로 카불을 이륙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카불 공항을 이륙하게 되는 추가 항공편은 영국의 외교관과 군인들을 실어나르게 된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영국은 지난 14일부터 아프간에서 자국민과 아프간인 1만 5000명 이상(어린이 2100명 포함) 대피시켰다고 방송은 전했다.
  • 세상 가장 부유한 저항집단 탈레반, 기부-아편-세금-광물 수입원과 규모

    세상 가장 부유한 저항집단 탈레반, 기부-아편-세금-광물 수입원과 규모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저항단체의 하나로 손꼽힌다. 20년 동안 미국과 동맹국에 맞서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든든한 재력 덕분이며 이제 미국을 몰아내고 국토를 장악했다. 영국 BBC는 어떻게 이렇게 든든한 재력을 갖추게 됐는지 27일(현지시간) 팩트 체크해 눈길을 끈다. 옛 소련에 맞서 이겨냈지만 20년 전에는 미국에 축출됐다. 10년 전에는 3만명 정도로 조직이 쫄아들었는데 현재 7만~10만명 수준으로 회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에 따르면 2011년 연간 수입이 4억 달러 정도로 추정됐는데 BBC 심층취재에 따르면 2018년 말 15억 달러로 네 배 가까이가 됐다. 방송은 아프가니스탄과 해외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이 정교한 금융망과 납세망을 운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다양한 수입원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 중 중요한 네 가지를 간추려 살펴본다. 첫째로 해외 기부. 아프간과 미국 정부 관리들은 파키스탄을 비롯해 이란과 러시아가 탈레반에 재정 원조를 한다고 의심해왔다. 물론 그들은 관성적으로 부인해왔다. 하지만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걸프만 국가들의 민간인들이 상당한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액수를 측정하기 어렵지만 탈레반 수입 가운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전문가들은 연간 5억 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연결고리는 오래됐다. 기밀로 분류된 미국 정보기관 보고서는 2008년에 탈레반이 해외, 특히 걸프만 국가들로부터 1억 6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들였다고 추정했다. 둘째로 마약 거래. 탈레반은 오래 전부터 불법 마약 거래에 세금을 부과해 저항운동에 보태왔다. 아프간은 세계 최대 아편 주산지인데 정제하면 헤로인 원료가 된다. 연간 15억~30억 달러 정도를 수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계 헤로인 공급량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아편은 큰 사업이다. 2019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아편 경작으로 1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아프간 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아편 재배자에게 10%의 세금을 매긴다. 아편을 헤로인으로 가공하는 공장은 물론 불법 밀수업자들에게도 세금을 징수한다. 이런 식으로 불법 마약경제로 1억~4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인 존 니콜슨은 2018년 아프간재건 특별감사실(SIGAR) 보고서에 마약거래 수입이 탈레반 연간 수입의 60%를 차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은 종종 마약산업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며 권좌에 있던 2000년에 이미 아편 경작을 금지했다는 것을 선전해왔다.셋째로 납세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왔다. 2018년 공개서한을 통해 탈레반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구역 안을 오가는 아프간 무역업자들에게 연료와 건설자재 같은 다양한 재화들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아프간 정부에 의해 축출된 뒤에도 주요 교역로, 국경 검문소 등을 장악해 수출과 수입 품목에 세금을 매겨 뜯어갔다. 이렇게 지난 20년 서방의 상당한 돈이 의도치 않게 탈레반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서구가 뒷돈을 댄 도로와 학교, 병원 등 사회기반시설에도 세금을 매겼다. 심지어 곳곳에 흩어진 동맹국 군 기지에 보금품을 전달하는 트럭 기사들로부터 많은 돈을 뜯었다. 심지어 정부의 대민 서비스 활동에까지 손을 뻗쳐 돈을 뜯어갔다. 이 나라 전력회사 사장은 2018년 BBC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이 여러 지역의 전기 소비자들로부터 매년 200만 달러를 뜯어갔다며 혀를 내둘렀다. 탈레반이 미군 등의 기지를 접수할 때마다 무기와 자동차, 무장 차량 등을 압수해 챙겼다. 마지막으로 광물 수입이다. 광물과 보석 원석, 희귀 금속이 다양한데 오랜 혼란 때문에 제대로 발굴되지 않았다는 장점이 더해진다. 연간 1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채굴 작업의 대부분이 소규모로 진행되며 불법으로 진행된다. 이제 정국을 장악했으니 탈레반은 채굴 장소를 장악해 불법이든 합법이든 돈을 쌓게 됐다. 유엔 감시기구의 2014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남부 헬만드주에서만 25~30곳의 불법 광산에서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 로버트 케네디 암살범 53년 복역 후 가석방 될 듯, 주지사 서명만 남겨

    로버트 케네디 암살범 53년 복역 후 가석방 될 듯, 주지사 서명만 남겨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생이자 법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F 케네디를 1968년 암살한 범인이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캘리포니아주 가석방 심사위원회는 27일(현지시간) 이미 53년을 복역하며 16번째로 가석방을 허용해 달라는 시르한 비르샤 시르한(77)이 더 이상 “공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다며 가석방을 권고하기로 표결했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이에 따라 개리 뉴섬 주지사만 서명하면 그는 자유의 몸이 된다. 형 존이 1963년 먼저 암살의 흉탄에 스러졌는데 동생 로버트 역시 5년 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서 선두를 달리다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호텔에서 암살의 비운을 피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인 시르한은 역사를 바꾸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동기를 밝혔다. 그는 체포된 직후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정부에 찬동하는 케네디 상원의원을 응징하려 했다고 밝혔지만 나중에 공격한 일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처음에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캘리포니아주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사형제를 폐기해 종신형으로 감경된 데 이어 석방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시르한은 심사위원들에게 “이제 반세기가 흘렀다. 젊고 충동적인 꼬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가석방 심사를 참관한 유일한 통신사인 AP에 “상원의원 케네디는 세상의 희망이었는데 난 그들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고 해를 끼쳤다. 그런 끔찍한 일을 내가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돼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LA 지방검사는 그의 석방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가석방 심사위의 결정은 고인의 두 자녀가 석방하면 안 된다고 청원한 뒤 내려졌다. AP에 따르면 더글러스 케네디는 “난 스스로에나 세상에나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사람만 석방돼야 한다고 정말로 믿는다”고 말했다.
  • 아프간 구출, 한국 390명 vs 일본 1명…현지서도 분노 목소리 쏟아져

    아프간 구출, 한국 390명 vs 일본 1명…현지서도 분노 목소리 쏟아져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는 자국민과 협력자 등을 탈출시키기 위한 일본 정부의 작전은 사실상 실패했다. 일본은 이번 작전에 자위대 수송기 3대와 정부 전용기 1대를 투입했지만, 아프간 현지인은 한 명도 대피시키지 못했다. 전쟁터와도 같은 아프간을 빠져나와 파키스탄으로 피신한 사람은 교토통신 통신원 기자로 일해 온 야스미 히로미 씨 단 한 명 뿐이다. 수송 대상은 최대 500명 수준이었고, 대부분 일본 대사관과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에서 일본을 도와 일했던 아프간인과 그들의 가족이었다. 일본은 아프간 체류 일본인과 협력자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자위대 수송기를 두 차례나 파견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5일 밤부터 전날 오후까지 자위대 수송기가 두 차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향했지만, 대피 희망자가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수송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한국 정부는 작전명 ‘미라클’(기적)을 통해 아프간인 협력자 대부분을 수송기에 태우고 아프간을 떠난 후였다. 일본 정부는 대피 작전의 성공을 위해 한국과 마찬가지로 버스를 이용하는 시도도 했지만, 26일 오후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테러로 이동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일본은 아프간 국적의 협력자는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작전 대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현지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방위성 간부는 교도통신에 “(아프간 주재 일본) 대사관 직원들이 먼저 대피하고 외무성이 다양한 채널로 (대피 작전 성공을 위해) 탈레반과 의사소통을 하려고 했지만 무리였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 방위성과 자위대에서는 ‘현지 정세를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안전하다며 파견해 대원이 위험에 처했다. 정치의 판단 잘못이 분명하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일본 당국이 구출 작전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26일 교도통신은 “일본 민간 비영리기구(NPO)의 아프간인 직원은 이송 대상이지만, 직원의 가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소식을 접한 직원 여려 명이 탈출을 포기하기도 했다”면서 “일본 NPO에서 일한 아프간 직원의 경우 가족을 제외한 본인만 탑승이 허용됐다”고 보도해 논란이 일었다.이에 반해 한국의 ‘미라클’ 작전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BBC 서울 특파원인 로라 피기는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은 난민을 잘 받지 않는다. 또 아프간인들이 도착하면서 많은 ‘혐오 댓글’이 온라인 (뉴스)에 달렸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 난민들이 한국 정부에 해준 일을 강조하고 사람들이 ‘수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적었다.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7일 “아프간을 탈출한 대부분은 해외에서 환영을 받기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일부는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국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또 아프간 피란민 390명이 한국에서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신분을 부여받았다는 데 주목하는 동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이후 곰 인형을 받은 아프간 어린이가 버스에서 미소를 띄우며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다. 마이니치, 산케이 등 일본 주요 신문은 28일 한국 정부가 아프간 협력자를 대피시키는 데 성공한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 미국은 필사의 대피작전, 유럽은 속속 중단

    미국은 필사의 대피작전, 유럽은 속속 중단

    ‘미국의 필사적인 대피작전, 대피작전 속속 중단하는 유럽’ 수도 카불 공항 인근 자살폭탄 테러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응이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대피 및 철군 시한을 4일 앞둔 27일(현지시간)에도 막바지 탈출 작전을 이어갔다. 미 국방부는 이날 오전 5400명이 대피를 위해 카불 공항에 대기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며 31일 대피 및 철군 완료를 거듭 천명했고, 행크 테일러 미 합참 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불에서 또 다른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 속에 미국의 철수 작전은 극도의 긴장감과 철통같은 경비 태세 속에 긴박한 작전이 진행됐다고 AP는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팀으로부터 “카불에서 또 다른 테러 공격 가능성이 있다. 이번 임무의 다음 며칠은 지금까지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는 보고를 받았다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미국은 차량을 이용한 자살폭탄 가능성 탓에 일부 도로를 폐쇄하라고 탈레반에 전했으며, 탈레반이 설치한 검문소도 더 엄격해다고 한다. 미군은 일부 공항 입구를 폐쇄했고, 공항 상공에 유인기와 무인기를 계속 띄워 주변을 감시했다. 공항에는 로켓 공격에 대비한 방어체계도 작동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영국 벤 월러스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BBC 등과의 인터뷰에서 카불 공항에서 구출작업이 몇 시간 안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러스 장관은 아프간인 통역사 1100명과 영국인 150명 등이 남겨질 것이라며 모두 데려오지 못해 크게 유감이라고 말했다. AP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는 이날로 아프간 대피 작전을 끝냈다. 독일도 전날 카불 공항에서 군 항공기로 자국민과 아프간 현지 협력직원을 빼 오는 대피 작전을 종료했다. 아프간에 여전히 자국민과 아프간 현지 직원 등 1만명 이상이 남은 가운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군 작전 종료후에도 탈레반에 위협받는 이들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계속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탈리아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부 장관은 자국 외교관과 군인, 아프간 시민 등을 태운 마지막 대피 항공편이 카불에서 출발했다고 말했고, 스위스 외무부도 독일군의 도움으로 스위스 국적자 34명을 포함해 385명을 대피시킴으로써 아프간 구출 작전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현지에는 국제기구 직원 등 스위스 국적자 11명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스웨덴도 이날로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 현지에서 고용된 경비 요원, 스웨덴인 등 1100여명의 대피 작전을 끝냈음을 알렸다. 안 린데 스웨덴 외무장관은 아직 스웨덴인과 아프간 현지 직원이 남아있다면서 아프간을 떠나는 것을 돕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도 27일 아프간 대피 작전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전날 카불 공항 테러 여파로 계획을 변경했다. 클레망 본 외교부 유럽담당 장관은 이날 유럽1 라디오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작전을 계속하겠다”고 말했고, 프랑스 정부 특사단은 탈레반 측과 대피 작전을 두고 직접 협상에 나섰다.
  • 카불 참극 전날 벨기에 도착한 아프간 소녀 깡충 “난민 도우면 이런 일이”

    카불 참극 전날 벨기에 도착한 아프간 소녀 깡충 “난민 도우면 이런 일이”

    26일 오후 6시(이하 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으로 미군 13명 등 100명 넘게 희생됐는데 위 사진은 전날 벨기에 브뤼셀 근처 멜스브루크 군공항 활주로에서 찍힌 사진이다.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 조핸나 게론이 촬영했다. 폭탄 테러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도 아수라장이었던 카불을 떠나 안전한 곳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에 부모의 뒤를 따라 걷던 소녀가 홀가분해진 듯 깡충 뛴 것이다. 기 베르호프슈타트 전 벨기에 총리는 소셜미디어에 이 사진을 올리며 “여러분이 난민들을 보호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며 “벨기에에 온 것을 환영한다. 꼬마 소녀!”라고 적었다. 벨기에는 탈레반이 장악한 뒤 지금까지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1400명을 받아들였는데 소녀의 가족도 포함됐던 것이다. 소녀의 이런 반응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벨기에는 이들을 대피시킨 뒤 카불 공항에 테러 공격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정보 소식통으로 접수한 뒤 일시 중단했다. 그랬는데 바로 다음날 카불 공항의 애비 게이트와 250m 떨어진 배런 호텔에 두 차례 자폭 공격이 가해져 73명 이상이 숨졌다고 미국 폭스뉴스가 AP 통신 등을 인용해 27일 오전 5시 20분(한국시간) 보도했다. 테러 발생 이후 5시간쯤 지난 시점이었다. 현재는 희생자 수가 100명을 넘긴 상태다. 벨기에 외에 캐나다,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은 이날 대피 항공편 운항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27일 카불 공항의 대피 작업을 재개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 이집트 사막에서 다리가 넷인 고래 화석 “4300만년 전에는 뭍도 걸었다”

    이집트 사막에서 다리가 넷인 고래 화석 “4300만년 전에는 뭍도 걸었다”

    이집트 과학자들이 4300만년 전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살았던 다리가 넷 달린 고래 종류를 새로 확인했다고 영국 BBC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뭍에서 걷고 물속을 헤엄쳐 다닌 학명 피오미세투스 아누비스(Phiomicetus anubis)의 화석이 맨처음 발견된 것은 이집트 서부 엘파윰 저지대(El Fayum depression)에서다. 두개골 모양은 고대 이집트에서 죽음의 신으로 통했던 자칼의 머리를 의미하는 아누비스의 그것과 닮은꼴이었다. 무게는 600㎏ 정도에 몸 길이는 3m나 됐는데 강한 아가리로 먹잇감을 낚아챌 정도라고 전날 영국 왕립학술재단에 실린 논문을 통해 만수라 대학 연구진이 주장했다. 원래 현생 고래의 조상은 1000만년의 긴 세월 동안 뭍에서 살았던 사슴처럼 생긴 포유류에서 기원한 것이 정설로 돼 있다. 엘 파윰 저지대는 현재 사막이며 과거 바다로 뒤덮인 곳이라 다양한 화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연구를 주도한 압둘라 고하르 박사는 로이터 통신에 “피오미세투스 아누비스는 새로운 고래 종 연구에 열쇠가 된다. 이집트와 아프리카 고생물학에 있어서도 결정적 발견”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다리가 넷인 원시 고래의 화석이 발견된 것이 처음은 아니며 피오미세투스 아누비스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뭍과 바다에서 모두 생존한 고래의 초기 유형으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은 남아시아에서 진화한 5000만년 전의 것이다. 2011년 페루 고생물학 연구진은 다리가 넷이며 발과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4300만년 전의 고래를 발견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