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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박성서의 7080X파일] 35년 만에 재결합한 자니브라더스

    남성적인 매력이 한껏 돋보였던 남성 4중창단 자니브라더스가 35년 만에 재결합을 선언했다. 평균연령이 자그마치 68세. 이로써 우리나라 최장·최고령의 보컬 팀이 탄생한 것. 유독 박력 있고 시원스러운 가창력과 더불어 싱싱한 수목을 연상시키는 건강미가 매력 만점이던 이들 멤버는 각각 김현진(리드,71세), 양영일(테너,68세), 김준(본명 김산현, 바리톤,67세), 진성만(베이스,67세). 여전히 ‘빨간 머플러’가 썩 잘 어울릴 듯한 외모, 전성기 때 못지 않은 박력에 깊이까지 갖춘 이들의 정겨운 화음은 세월을 뛰어넘어 특히 중장년층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1961년, 당시 최고의 음악성을 갖춘 정예들로 구성된 예그린합창단 1기생으로 출발, 기량을 뽐내던 중 뜻이 맞는 이들 네 명이 모여 4중창단을 결성했다. 이어 문화방송 톱싱거대회 월별 예선을 통과, 연말 본선 결선을 앞두고 예그린이 해체된다. 아울러 이들은 당시 문화방송 톱싱거 경연대회, 동아방송 연말 중창단경연대회 등을 잇달아 휩쓸며 무서운 신예로 급부상했다. 특히 춤과 연기 실력으로 완전무장한 예그린 출신답게 TV쇼를 화려하게 바꾼 동시에 영화주제가 ‘빨간 마후라’를 비롯해 ‘방앗간 집 둘째딸’,‘아나 농부야’,‘수평선’ 등을 잇달아 발표, 정상에 오른다. 아울러 당시 꿈의 무대였던 워커힐에 전속되며 통행금지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마치 한 몸인 양 ‘사인오각(四人五脚)’을 이뤄 바쁘게 활동,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최정상에서 이들은 해체를 선언한다. 각자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솔리스트로 전향을 꿈꾸던 이들은 결국 1968년 6월8일 동양TV ‘쇼쇼쇼’를 통해 ‘자니브라더스 고별쇼’를 갖는다. 하지만 이들의 재능을 아쉬워하던 당시 장태화 서울신문사 사장 등 후견인들에 의해 다시 재결성, 그룹명을 ‘메아리진(전국에 메아리친다는 순수 우리 말)’으로 바꾸고 1970년 1월11일 mbc-TV ‘메아리진쇼’를 통해 컴백, 매주 30분씩 브라운관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들은 당시 중창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각각 부업전선에 나선 후 이어 1972년, 서울 을지로 4가에 ‘메아리진’이라는 음악 살롱을 차려 경제적 타개책을 적극 모색하지만 1년이 채 못돼 하나둘씩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오는 3월12일 공식적으로 KBS 가요무대를 통해 재결합을 선언, 컴백무대를 갖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섰던 무대는 1973년 1월, 당시 TBC ‘쇼쇼쇼(PD 황정태)‘ 400회 특집프로그램. 오랜 만에 똑같은 의상으로 통일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비록 그동안 제각각의 길을 걸어왔지만 늘 음악과 함께 해왔기에 이 번 재결성은 매우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라고. 실제로 멤버 중 바리톤 파트의 김준씨는 그룹 해체 후 솔로가수로 전향, 현재까지 매년 음반을 발표해오며 국내 유일의 남성재즈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멜로디 파트의 김현진씨는 그간 보험일을 거쳐 현재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본인이 이끄는 ‘울바우 남성합창단’과 더불어 매년 정기공연을 해왔다. ‘빈대떡 신사’의 작곡자인 양원배씨의 차남으로 경희대 음대 출신이기도 한 테너 양영일씨는 지난 23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해 왔다. 현재는 부산 코스모스악기사 상무로 재직 중이다. 그런가하면 동아방송 성우 1기생이기도 한 베이스 진성만씨는 영화배우 김지미씨의 여동생 김지애씨와 결혼, 지미필름 대표를 거쳐 현재는 요식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니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이들은 이미 지난 가을부터 매주 한 차례씩 모여 호흡을 고르고 화음을 맞춰 왔다. 이전까지는 멜로디 위주의 유니송(Unison)을 주로 발표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모니 위주의 4성, 즉 네가지 화음을 조화시켜 남성4중창단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펼칠 예정. 클래식과 교회음악에서 출발한 이들이 들려줄 주요 레퍼토리는 역시 올드팬들에게 친숙한 ‘올드송’들이다. 자신들의 히트곡은 물론 민요에서 올드 팝까지 폭넓게 펼칠 예정으로 편곡은 작곡가 김기웅(71)씨가 맡았다. .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공연+새앨범]

    ■ Max 14 3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편집음반. 벌써 14집째다.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0주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비욘세의 ‘Irreplaceable’,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exy Back’, 웨스트라이프의 ‘The Rose’ 등 무려 20곡의 히트 넘버들이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다.SonyBMG. ■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 The Essential 프로그레시브 록과 팝을 현명하게 조화시킨 듀오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역사가 망라된 2CD 베스트 앨범. 이들이 발표한 모든 앨범에서 적절하게 발췌한 곡들을 발표 연대에 맞춰 수록해 놓았다.80년대 최대의 히트곡 ‘Eye In The Sky’등 총 30곡 수록.SonyBMG. ■ We All Love Ennio Morricone 45년간 400곡 이상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며 20세기 영화음악을 이끌어온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카데미상 최초 수상(공로상)을 기념하는 공식 헌정앨범. 셀린 디온, 브루스 스프링스틴, 허비 핸콕, 메탈리카 등 초특급 뮤지션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그의 대표곡들을 노래한다.SonyBMG. ■ 카펜터스 ‘The Ultimate Collection’ 70년대 소프트 팝의 대명사 카펜터스의 베스트 앨범. 비틀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Ticket To Ride’를 시작으로 소닉 유스가 다시 불러 신세대 팝팬들에게도 익숙한 ‘Superstar’,7080세대의 영원한 애창곡 ‘Top Of The World’,‘Yesterday Once More’ 등 35곡의 대표곡들이 연대별로 두장의 CD에 담겨져 있다. 유니버설뮤직. ■ 클로드 볼링 내한공연 크로스오버의 살아있는 거장 클로드 볼링과 그의 19인조 빅밴드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CF나 라디오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아름다운 클로드 볼링의 선율을 풍성한 빅밴드의 연주와 함께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24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예술회관 대극장.(02)6080-5643. 미술 ■ 명화의 재구성 3월2일∼5월20일 사비나미술관. 밀레의 ‘만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 명화를 한국의 작가 20명이 새롭게 해석했다. 서양 명화가 평면회화, 조각, 설치작품 40여점으로 재탄생한 전시회. 명화 속에서 찾아낸 창작의 샘.‘명화 속 주인공 되기’란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한다.1000∼2000원.(02)736-4371. ■ 마리노 마리니-기적을 기다리며 4월22일까지 덕수궁미술관. 헨리 무어와 함께 구상 조각계를 이끈 쌍두마차. 기마상과 풍만한 여성 누드 조각은 2차대전 이후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다. 조각과 회화 등의 작품 105점을 만날 수 있다. 인사동 선화랑(02-734-0458)에서도 마리니의 회화, 판화 등을 3월14일까지 전시한다.(02)2022-0612. 연극 ■ 앵콜 아트 폐막 기한 없음 화∼목 7시30분, 금·토 4시·7시30분, 일 4시 허밍스 아트홀.2004년 시작돼 전용관까지 마련된 대학로의 롱런 히트극으로 이번이 9번째 공연이다. 우정의 본질에 관한 세련된 블랙코미디. 정보석 권해효 오달수 박광정 정원중 심혜진 송승환 등 연기력이라면 남 부럽지 않은 당대의 명배우들이 모두 출연한 바 있다. 김효중 연출, 박윤호 허성민 조성호 출연.1만 5000∼2만원.(02)764-8760. ■ 열하일기만보 3월10∼25일 화∼금 8시, 토 3시·7시30분, 일 3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조선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모티브로 삼아 최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극작가 배삼식씨가 특유의 상상력과 재기를 한껏 발휘했다. 정체조차 모호한 짐승 연암이 성인을 위한 동화를 들려준다. 인간의 본능인 호기심과 새로운 것의 탐닉에 대한 이야기. 손진책 연출, 서이숙 정태화 박영숙 황연희 등 출연.1만 5000∼3만원.(02)747-5161. 뮤지컬 ■ 위대한 캣츠비 3월9일부터 화∼금 8시, 토 4시·7시30분, 일 3시·6시30분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인터넷 만화의 선두주자 강도하씨의 ‘위대한 캣츠비’를 원작으로 최근 화제작 연출을 도맡고 있는 박근형씨가 연출했다. 뮤지컬 ‘불의 검’, 드라마 ‘연개소문’에 참여했던 아트모스피어(이충한, 정재환씨)가 작곡한 음악은 감미롭기 그지없다.20대 청춘의 현실적 고뇌, 사랑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뮤지컬 언어로 담았다. 김태훈 서범석 정인지 등 출연.3만 5000∼4만 5000원.(02)1588-7890. ■ 쓰릴 미 3월17일∼5월13일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2시·5시 충무아트홀 소극장.1924년 시카고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흉악한 범죄를 바탕으로 만든 섬세한 심리극. 당시 재판정에서 최종변론문이었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지금도 전해지는 명문장. 무대 위의 피아노 연주만으로 2명의 남자 배우가 노래 대결을 벌인다. 류정한 김무열 최재웅 이율 출연.3만∼4만원.(02)744-4337. 클래식 ■ 드레스덴 필하모닉 & 성 십자가 합창단 내한공연 3일 8시,4일 2시30분.3일 모차르트 ‘레퀴엠’과 바흐 칸타타 ‘내 마음에는 근심이 많도다’,4일 바흐 ‘마태수난곡’. 지휘 성십자가 합창단의 28대 칸토르인 로데리히 크라일레.3만∼20만원.(02)599-5743. ■ 국립합창단 정기연주회-드보르자크 ‘스타바트 마테르’ 6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로베르트 리히터. 소프라노 신숙경, 알토 장현주, 테너 최상호, 베이스 박흥우. 고양시립합창단,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1만∼3만원.(02)587-8111.
  • 25년만에 불러보는 ‘너’

    “25년 만에 ‘너’를 부르려니 가슴이 떨립니다.” 1970년대 ‘겨울아이’ ‘너’ 등의 노래로 인기를 모았던 가수 이종용(58)이 12년 만에 노래를 한다. 1982년 가수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로 활동중인 그는 KBS 1TV ‘콘서트 7080’ 출연을 위해 13일 오전 귀국했다. 그는 “‘너’라는 노래를 25년 만에 부르려니 감회가 정말 새롭다. 또 가사가 생각이 나지 않아 순간 많이 당황했다.”면서 “정말 오랜만에 무대에 서려니까 힘들어서 잠을 못잤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낙엽지던 그 숲속에/파란 바닷가에/떨리는 손 잡아주던 너∼’ 그가 히트곡 ‘너’를 25년간 부르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가수가 아니라 목사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계속 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게 될까봐 부르지 않았다. 혹시 마음이 흔들릴까봐 일부러 마이크와 기타를 멀리한 것 같다.”면서 “솔직히 다시 노래를 하라는 유혹을 떨치기 위해 미국까지 갔지만 몇번 흔들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늙어서 다시 가수하기가 힘든 만큼 불러도 좋을 듯싶다며 웃었다. 현재 미국 LA 코너스톤교회의 목사로 재임중인 그는 14일 미국으로 떠난다. 이종용과 절친한 가수 윤복희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녹화분은 17일 밤 11시30분 방송된다.연합뉴스
  • [박성서의 7080가요 X파일]佛 샹송가수, 한국가요 부르다

    [박성서의 7080가요 X파일]佛 샹송가수, 한국가요 부르다

    ‘시인의 혼(L´ame Des Poetes)’의 세계적인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1960년대 한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에서의 잦은 공연과 함께 아시아에서 샹송 붐을 주도했던 지로는 당시 에디트, 줄리에트 그레코와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가수 중 한 명이다. 상냥하고 붙임성 있는 외모와 함께 그의 깊고 낮은 목소리에는 한껏 정감이 묻어난다. 부드러운 창법과 발음으로 매우 친근감을 안겨주는 그의 노래는 이전까지 어둡고 우울한 샹송 이미지를 또 다르게 바꾼 인물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방문해 최초로 내한공연을 펼쳤던 샹송가수이기도 하다. 아울러 우리 노래를 직접 우리말로 취입한 최초의 가수이기도 한 지로가 당시 발표한 앨범은 ‘노오란 샤쓰’와 ‘안개’. 그가 ‘노란 샤쓰’를 처음 부른 것은 1963년, 당시 시민회관에서 가졌던 내한공연 무대에서였다. “마치 우리말을 알기라도 하듯 섬세하면서도 역동감이 넘치는 표현력, 그래서 ‘노래는 표현’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지로만의 가창력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뜨거운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공연에 참관했던 ‘노란 샤쓰’의 작곡가 손석우(87)씨의 회고다. 지로는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른 뒤 자청해 손석우씨가 자주 제작하고 있던 뷔너스레코드사를 통해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레코딩한다. 특히 노래 취입 당시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에 집중하던 그녀의 모습 또한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전해진다. 단순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힐빌리(Hillbilly, 현재 Country & Western) 리듬의 이 곡은 1961년, 가수 한명숙씨가 발표한 불멸의 레퍼토리. 처음 발표될 당시엔 일부 관계자들로부터 그저 단순히 동요에 털이 좀 난 것일 뿐이라는 별로 곱지 않은 악평도 한편으론 감수해야 했지만 바로 그 ‘파격’으로 말미암아 1960년대 우리나라 가요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부터 우리 가요는 다양한 리듬의 팝스타일로 폭넓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이베트 지로, 그리고 일본의 하마무라 미치코를 비롯해 자국의 가수들 목소리에 제각각 실려 일본, 타이완을 비롯한 동남아를 강타한다. 속칭 ‘한류’의 원조인 셈이다. 지로는 이로부터 6년이 지난 1968년 6월, 다시 내한해 펼친 공연과 함께 작곡가 이봉조악단의 반주에 맞춰 ‘안개’ 그리고 그녀의 히트곡인 ‘Papa Aime Maman(아빠는 엄마를 좋아해)’를 ‘엄마 좋아 아빠 좋아’라는 제목으로 바꿔 우리말로 취입한다. 이 노래 ‘Papa Aime Maman’은 이후 1970년대 들어 포크부부듀엣 바블껌이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라는 제목으로 또다시 번안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었다. 비록 우리말 발음이 서툴긴 해도 지로 특유의 부드러운 악센트와 감정 표현이 압권인, 이때 취입한 여섯 곡은 음반 ‘YVETTE GIRAUD와 안개(신세기)’에 담겨 발표된다.1968년 8월의 일이다. 이후 지로는 이 ‘안개’를 자신의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자 했다. 때문에 일본에서 발표한 ‘이베트 지로 대표 샹송집(일본방송서비스사 발매)’을 발표할 때 이 노래의 원제를 ‘Brouillard(안개)’, 그리고 일본어 제목으로는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이라 표기해 직접 일본말로 취입해 수록하기도 했다. 1916년 파리에서 태어난 지로는 1952년 L’ame Des Poetes(시인의 혼)로 프랑스 디스크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국경을 초월, 언어 장벽을 뛰어넘은 외교대사로 수많은 외국공연을 통해 프랑스 문화와 샹송을 보급하며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시인들이 사라진 오랜 뒤에도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를 것’이라고 지로는 그녀의 노래 ‘시인의 혼’에서 읊조렸다. 그녀가 한국을 찾은 것도 어느덧 근 4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그들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베트 지로 또한 세월 속에 묻혀버렸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서툰 우리말 노래들은 여전히 한국인들 가슴에 이따금씩 흘러, 젖어들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성인가요 전문채널 개국

    성인들을 위한 가요채널이 문을 연다. 오는 30일 국내 유일의 24시간 가요전문채널인 ‘가요TV’가 케이블을 통해 안방을 찾아간다. 추억에 남아있는 7080가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통가요, 아름다운 선율의 감동을 느끼는 올드 팝 중심의 전문방송이다. 대표적 프로그램으로는 7080 가요프로그램인 ‘이야기콘서트 임지훈의 길’과 언더그라운드 실력파의 생생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권용욱…歌人’, 진솔한 삶과 함께 떠나는 음악여행, 시청자의 사연을 담아 가슴에 전하는 ‘조은형의 라이브카페’ 등이 있다. 또한 출연 가수와 함께 노래를 배우는 ‘김성기의 송 투게더’, 인생의 진솔한 삶과 감동을 전하는 토크쇼 ‘이무창 쇼’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진다.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1)

    박재란씨는 가창력, 좋은 노래, 외모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만능가수’이자 여러 리듬에 따라 다양한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실력파 가수.‘항상 웃음을 띤 얼굴’로 기억되는 가수 박재란은 건강한 보이스 컬러에 경쾌한 노래들로 특히 어려웠던 시절, 삶에 지친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마치 남쪽에서 불어 오는 남풍처럼 화사하고 따뜻한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가수 박재란. 그 역시도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수시로 잔병치레를 할 정도로 몸이 허약해 전염병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앓았고 특히 일곱 살 나던 해에 걸린 ‘뇌염’으로 인해 가망이 없다며 장례 치를 준비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의사를 불렀을 때 다행히도 살아났다. 아울러 초등학교 시절,6·25전쟁 중이던 그의 나이 열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마저 여읜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나섰다.‘럭키 모닝’,‘푸른 날개’,‘해피 세레나데’ 등 초기 히트곡을 시작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방방곡곡 전파하며 사회 분위기를 밝게 리드해 나갔다. “저는 트로트풍의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어요. 대신 대부분 노래들이 폴카나 트위스트, 부기우기, 룸바, 탱고, 삼바, 차차차 등 신나는 멜로디였죠. 때문에 무대에 서면 관객들이 매우 즐거워했어요. 물론 한꺼번에 여러 멜로디를 동시에 불러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지만 정말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죠.” 그의 회고처럼 최초 히트곡 ‘럭키모닝’을 시작으로 ‘푸른 날개’, 민요풍의 ‘맹꽁이 타령’, 그리고 ‘님’,‘둘이서 트위스트를’,‘산 너머 남촌에는’,‘소쩍새 우는 마을’,‘아나 농부야’,‘밀짚모자 목장아가씨’,‘행복의 샘터’,‘진주조개 잡이’,‘강화도령’ 등 SP시대에서 출발해 LP시대를 수놓았던 그의 히트곡들은 얼추 손꼽아 봐도 템포가 사뭇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양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소화했던 가수는 우리 가요계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바이브레이션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창법으로 장르에 따라 발성을 달리하는 뛰어난 가창력은 작곡가 입장에서 보면 탐이 날 수밖에 없다. 가수 박재란은 불과 열여섯 살 때, 처음 무대에 발을 디딘다. 본명은 이영숙. 교회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던 부친 이수천씨와 성가대원이었던 모친 유순남씨 사이의 1남5녀 중 4녀로 서울에서 출생했다. 네 살 때 철도국에 근무하던 부친이 전근함에 따라 가족 모두 천안으로 이사했다. 천안 제일국민학교(지금의 천안초등학교), 천안여중을 거치는 동안 그는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다.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당시 인기 있던 유행가를 전파시킨 메신저 역할은 늘 그의 몫이었다. 특히 백난아씨가 부른 ‘망향초 사랑’을 즐겨 불렀다고 기억한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무대 활동을 적극 권유한 인물이 당시 인천경찰악대장 박태준씨. 그의 추천을 통해 육군본부 산하 군예대(KAS) 3기생으로 발탁되면서 대구에서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수양아버지까지 되어 주는 박태준씨로부터 받은 예명이 박재란. 일선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문공연이 주 임무였던 군예대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말 그대로 ‘일인다역’. 노래는 물론 무용, 악극 등 쇼에 관한 한 모든 걸 소화해야 했던 어린 재란은 대구에서 2년, 서울에서 2년간의 군예대 생활을 거치는 동안 무대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군예대 시절, 대구에서 첫 취입해 발표한 노래는 나화랑 작곡의 ‘뜰아래 귀뚜라미’와 김학송 작곡의 ‘코스모스 사랑’. 그러나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이후 악극단으로 자리를 옮겨 첫 히트곡 ‘럭키모닝’이 발표될 때까지 무명인 채로 ‘희망악극단’과 ‘무궁화악극단’ 그리고 ‘반도악극단’ 등을 옮겨가며 무대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는 사이 그의 가창력과 미모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면서 뭇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 된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나애심(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나애심(2)

    국내 최초로 본격적인 ‘싱잉스타’ 시대를 연 나애심씨가 발표한 노래들은 대부분 오빠인 작곡가 겸 연주인 전오승씨가 만든 곡들이다. 이 ‘전봉수-전봉선’ 남매, 즉 ‘전오승-나애심’ 콤비는 대구 피란시절 취입한 나애심씨의 데뷔곡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언제까지나’ ‘미사의 종’ ‘황혼은 슬퍼’ ‘과거를 묻지마세요’를 비롯해 60년대 들어서도 ‘맘보는 난 싫어’ ‘해 떨어지기 전에’ ‘아카시아 꽃잎 질 때’ 등을 잇달아 히트시킨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생활 속에 미국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었다. 대중가요 역시 상당수의 노래가 5음계를 탈피해 화성과 선율이 서양화되기 시작한다. 이전 가요에서 찾기 쉽지 않았던 새로운 리듬들이 속속 등장할 무렵 당시 젊은 작곡가 전오승 역시 특히 폴카나 룸바 리듬에 매력을 느낀 듯하다. 계층상승적 욕구와 더불어 이러한 새로운 조류가 유행을 선도했던 그 변화의 중심에 전오승씨가 있었고 그와 콤비를 이루며 새로운 리듬을 따라 인기를 누리던 리더가 나애심씨였다. 이들 남매의 대표곡 중 하나가 ‘과거를 묻지마세요’. 이 노래는 1959년 개봉된 영화주제가로 영화에서의 타이틀 롤은 배우 문정숙씨가 맡아 열연했다. 주제가는 정성수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 노래로 이들은 모두 이북 출신이다. 이를테면 아픈 역사의 증언이요, 우리 민족의 넋두리인 셈이다. 작사자 정성수씨는 이 노랫말을 통해 ‘38선이란 장벽이 하루 빨리 무너지고 북녘 땅에도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어둡고 괴로웠던 과거를 서로 묻지 말고 앞으로 평화롭게 함께 살자’라는 메시지를 담아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의 희망을 동시에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이 노래의 빅 히트와 더불어 한때 이 ‘과거를 묻지마세요’라는 단어는 남녀관계를 비유하는 말로 비화되어 한동안 유행어로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은막의 스타’로서 나애심씨는 1956년 ‘백치 아다다’에 이어 ‘나는 너를 싫어한다(권영순 감독)’,‘쌀(신상옥 감독)’,‘육체의 고백(조긍하 감독)’,‘감자(김승옥 감독)’등을 비롯해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활동이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 “처음엔 다큐멘터리 기록영화, 문예영화 등에 주로 출연했어요. 이후 술집마담 같은 역을 맡기도 했는데 어느 날 세 살 난 어린 딸이 젓가락장단을 두드리며 엄마의 영화장면을 흉내내며 놀고 있더군요. 이때 충격을 받아 이후부터는 주어지는 배역들에 지나치게 신경쓰다 보니 연기 폭이 많이 위축되었지요.” 이 회고 속에 등장하는 어린 딸이 바로 가수 김혜림씨.1989년 ‘DDD’라는 노래를 발표해 사랑받았던 가수다. 그렇듯 ‘나애심 가족’은 소문난 ‘스타 패밀리’였다. 오빠인 연주인 겸 작곡가 전오승씨, 그리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1년)’에서 ‘옥희’로 기억되는 아역배우 출신 전영선씨가 바로 전오승씨의 딸. 또 나애심씨의 세 살 아래 동생 전봉옥씨 역시 성악을 전공했던 재원으로 전오승 작곡의 ‘샌프란시스코의 꾸냥(姑娘)’,‘스냅 사진사’ 등을 발표했던 가수. 아울러 나애심씨의 딸인 가수 김혜림씨까지, 말하자면 이들 ‘연예가족’의 이야기는 한동안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애심씨의 큰 키는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줄었다. 아울러 본인 스스로 ‘쿤타킨테 머리’라 부르는, 이른바 머리숱이 많아보이게 하는 파마 헤어스타일로 변신해 지내고 있다는 조크를 던지기도 하는 그는 1983년부터 그 동안의 모든 연예활동을 접고 신앙생활에만 전념하고 있다. 동시에 ‘세상노래’는 앞으로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동안 성가집만을 틈틈이 발표해 왔다. “처음 병원에서 ‘골다공증’ 진단이 나왔을 때는 그게 무슨 용어인지 몰라 ‘골고다의 언덕’이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만큼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지요. 또한 연예활동 내내 나이를 적게 속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믿으니 거짓말은 더 이상 안 되겠지요?”라며 실제 본인은 ‘30년 말띠 생’이었음을 웃으며 밝히기도 했다. 특히 물자부족과 열악한 시설로 ‘우리나라 최악의 음반 침체기’였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더욱이 음반 제작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전오승-나애심’ 콤비가 남긴 아름다운 노래들은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낚시광’으로도 소문난 작곡가 전오승씨는 현재 딸 전영선씨와 함께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과거를 묻지마세요’의 나애심(1)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과거를 묻지마세요’의 나애심(1)

    정열적인 눈, 이지적인 마스크로 등장,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는 스타, 즉 ‘싱잉 스타 시대’를 열었던 나애심(77)씨.1953년 ‘밤의 탱고’를 시작으로 300여 곡의 주옥 같은 노래를 남김과 동시에 1980년대 초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스크린과 무대를 동시에 장악, 배우와 가수 두 분야에서 모두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이었다. 아울러 ‘백치 아다다’,‘과거를 묻지 마세요’,‘미사의 종’,‘아카시아꽃잎 필 때’ 등 직접 영화에 출연하며 동시에 영화주제가까지 히트시켰다. 당시로서는 꽤 큰 키에 속하는 162㎝에 ‘버스트, 웨이스트, 히프 사이즈가 몇이냐.’로 화제가 되며 한국 여배우 최초로 글래머 스타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의 또 다른 애칭은 ‘한국의 안나 카시피’. 이렇듯 이국적인 용모가 돋보이던 나씨는 실제로 ‘춤추는 안나’라는 노래까지 발표했을 정도. 나씨로부터 시작된 글래머 스타, 즉 육체파 배우의 계보는 이후 김지미, 도금봉, 김혜정으로 이어졌다. ‘글래머스타’이자 ‘멋쟁이의 대명사’로 1950∼60년대 예술인들의 집합지인 ‘명동시대의 주역’이기도 했던 나씨는 또한 당대 예술가들과 폭넓은 교류를 가지며 시인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고 극작가 이진섭씨가 즉흥적으로 곡을 붙여 만든 노래 ‘세월이 가면’을 현장에서 최초로 부른 일화 속 인물로도 유명하다. 본명은 전봉선(全鳳仙).1930년 9월5일 부친 전상연, 모친 장중차 사이의 5남3녀 중 장녀로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과거를 묻지 마세요’ ‘미사의 종’의 작곡가 전오승씨가 바로 그의 친오빠. 진남포여고를 졸업한 뒤 잠시 아이들을 가르치던 스무 살 때 6·25 전쟁이 발발한다. 이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이튿날, 그는 당시 정동방송국(현 KBS, 당시 이념의 혼란기라 ‘대적방송국’이라고도 부름)의 ‘HLKA 경음악단‘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던 오빠 전오승씨를 찾아 단신 월남한다. 이듬해인 1·4 후퇴 당시 서울로 피란내려온 나머지 가족들과 가까스로 상봉, 피란길에 오른다. “당시 오빠와 함께 방송국 경음악단에서 활동하던 박춘석, 최상용씨 등 연주인 여덟 명의 가족들, 총 80여명과 함께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란민 행렬에 합류했어요. 먹을 것이 없어 한 끼 걸러 한 끼씩 동냥을 하며 죽음의 사선을 넘던 그 25일 간의 일들은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메어옵니다.” 그의 회고다. 그렇게 정착한 대구 피란 시절, 그는 작곡가 김동진씨를 단장으로 이북 출신 예술인들로 구성된 ‘꽃초롱’ 단원으로 입단, 첫 무대 활동을 시작한다. 이 무렵 곽규석(후라이보이), 구민(성우) 그리고 현미(가수) 등과 오페라 ‘아리아’의 무대에 서기도 했고 또 호구지책으로 함께 피란생활을 하던 김미정(미스코리아 출신 영화배우, 가수 현인의 미망인), 그리고 이경희(영화배우), 그리고 막내 동생 전봉옥(가수) 등과 함께 ‘아리랑시스터즈’를 결성해 미8군 무대와 일반무대에까지 나섰다. 비록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미군부대공연을 갈 때마다 손짓발짓해가며 군인식량이나 초콜릿,DDT, 휴지 등을 얻어 와야 했을 만큼 물자가 매우 귀했던, 절박한 시절이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실력을 인정받은 나씨는 당시 대구에 있던 오리엔트레코드 녹음실을 빌려 정식 음반을 첫 취입한다. 전오승 작곡의 ‘밤의 탱고’,‘정든 님’ 같은 블루스 리듬의 곡들로 당시엔 녹음 시설과 방음 시설이 매우 열악해 어렵게 녹음을 끝낸 뒤 테이프를 틀어 보면 ‘재치국 사이소!’ 같은 당시 주위의 소음들이 종종 들어가 있어 몇 번이고 재취입해야 하는 소동이 다반사로 일어나던 시절이라 회고했다. 이 때 처음 사용한 예명이 나애심(羅愛心).‘나는 내 마음을 사랑한다.’라는 뜻을 담은 이름으로 ‘빈대떡 신사’로 유명한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씨가 지어준 것. 환도 직후, 영화배우로도 활동을 시작하는 그는 16㎜ 다큐멘터리 ‘여군’을 시작으로 ‘불사조의 언덕’ ‘미망인’ 등 전쟁영화에 이어 극영화 ‘구원의 애정’에서 첫 주연을 맡는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물새 우는 강 언덕’. 영화에서는 나씨가 이 주제가를 불렀고 음반으로는 백설희씨가 취입해 널리 알려진 노래다. 이어 문예영화 ‘물레방아’로 주목을 받은 그는 계속해서 계용묵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백치 아다다’에 캐스팅되는데 처음엔 기분이 매우 언짢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가수로서 목소리 연기 또한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하필 대사가 거의 없는 언어 장애인 역할이 맡겨진 것이 나름대로 불만이었던 셈. 그러나 6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촬영된 이 영화의 연출을 맡았던 이강천 감독은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그의 선글라스 아래에는 항상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 감독의 실제 다섯 살 난 딸이 바로 언어장애인이었기 때문. 해서 나씨는 ‘아다다’ 역을 위해 온몸을 던져 열연함과 동시에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씨가 곡을 쓰고 홍은원씨가 노랫말을 만든 주제가 또한 발표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큰 반향을 몰고 왔다. 결국 이 ‘백치 아다다’는 그의 대표곡이자 대표작으로 자리잡는다.1956년의 일이다.(계속)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강동구 목요일은 ‘藝요일’

    강동구 목요일은 ‘藝요일’

    한달에 한번씩 강동구민들의 문화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목요예술무대’가 공연 3년째를 맞았다. 12월의 공연이 열린 지난 7일 저녁 8시 강동구 구민회관 대극장.30∼40대의 아줌마들이 가수 최성수의 무대입장에 맞춰 ‘오빠∼’를 연호하는 순간 목요예술무대 ‘7080콘서트’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날 콘서트에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10대들의 전유물인 ‘형광 막대’를 흔드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본 이서진(가명)씨는 “오랜만에 정말 좋은 공연을 봤다.”면서 “올 한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공연의 정례화라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2005년 2월 첫 무대를 가진 ‘목요예술무대’가 주민들의 절대적인 지지속에 벌써 24회를 맞은 것이다. 공연 때마다 구민회관 대극장 좌석 608석은 유료(5000원)임에도 불구하고 전회매진됐다. 뒤늦게 예매에 나선 이들은 ‘입석’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공연이 끝나면 목요예술무대 인터넷 게시판에는 공연 리뷰들이 수십건씩 올라온다. 지난 9월 재즈공연을 본 강성민(가명)씨는 “가슴이 찡하다는게 뭔지를 깨달은 시간이었다.”면서 “지금도 손 바닥이 얼얼하고 목이 칼칼하다.”는 글을 올렸다. 예술팀 김현숙 팀장은 “주민들이 길거리에서 만난 공연 담당 직원들에게 인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면서 “건립 중인 지역 문화예술회관이 2009년에 완공되면 더 좋은 시설에서 주민들을 모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목요예술무대가 안정 궤도에 오르기까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공연 섭외를 위해서 구청 예술팀 직원들의 발이 부르트는 것은 기본이고 “제발 공연을 해달라.”는 통사정으로 목이 쉬기 일쑤였다. 내년 1월에는 색다른 목요예술무대가 기다린다. 겨울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위해 낭만주의 클래식 음악을 집중적으로 들려준다. 이 때문에 매월 첫번째 목요일에 열리는 목요예술무대가 1월 둘째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시작으로 3주 연속 낭만파 음악가인 슈베르트와 브람스, 푸치니의 곡들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들을 수 있다. 목요예술무대 3주년을 맞는 오는 2월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그림 형제의 명작동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연극 ‘헨젤과 그레텔’이 예정돼 있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문화적으로 ‘변방’에 속하다 보니 지역 주민들이 문화 공연을 찾아가는 불편함이 적지 않았다.”면서 “주민들의 편의와 문화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매월 공연을 하게 됐는데 벌써 3년이나 됐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조감경 ‘넌센스 넛크래커’로 뮤지컬 데뷔

    조감경 ‘넌센스 넛크래커’로 뮤지컬 데뷔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추운 천막극장에서 무대 위 먼지도 마다 않고 뛰고 구르며 안무와 노래연습을 했다.20대 미혼시절 고운 목소리로 ‘바보같은 미소’를 부를 때와는 달리 아이 셋을 키우는 주부의 강단이 묻어 난다. 데뷔 이래 가수,DJ, 사회자 등으로 한번도 쉬지 않고 활동을 해왔다는 주부가수 조갑경(39)이 뮤지컬에도 도전했다. 내년 2월15일까지 서울 목동운동장 아이스링크 옆 엔젤시어터에서 공연되는 ‘넌센스 넛크래커’의 로버트 앤 수녀 역할이다. ‘넌센스’는 윤석화, 신애라, 이아현 등 당대 유명 배우들이 모두 출연했던 뮤지컬이다. 지난 15년간 28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국민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인기 작품이다. 이번 ‘넌센스 넛크래커’는 개그맨보다 웃기는 엔젤수녀원의 수녀들이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대왕’을 연습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내용을 담고 있다.‘넌센스’의 속편격으로 한국에서는 처음 공연되는 작품이다. 연말연시 가족나들이로 안성맞춤이다. 소냐, 이소은 등 가수들이 뮤지컬 배우로 본격 활약할 정도로 한국 뮤지컬 시장이 성장한 마당에 조갑경도 혹시 뮤지컬 배우로 전향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가수가 뮤지컬에 서는 것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에도 또 뮤지컬에 출연할지는 이번에 제가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스스로 자신을 잘 파악한다는 조갑경은 “20여년 활동하는 동안 팬클럽도 만들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관객 동원력은 미약하다.”고 겸손해 한다. 남편 홍서범과는 오는 30일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7080 송년음악회 그리운 얼굴들’의 사회도 맡았다. 가족이 매일 연습이 끝나면 데리러 올 정도로 막강 후원을 펼친다는 기획사측의 홍보에 대해 ‘뻥’이라고 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이다. 남편의 격려가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사람 다 바빠서 얼굴 볼 틈이 없을 정도란다. 앨범을 낼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태진아 아저씨가 곡을 주신다며 자꾸 트로트 앨범을 내라고 하세요. 제가 심수봉씨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거든요.”라고 반색하면서도 말꼬리는 흐린다. 가요시장의 골깊은 불황 탓이다. 뮤지컬 무대에서 중장년층도 반갑게 기억할 수 있는 목소리로 자주 만날 수 있을지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연말 콘서트 ‘별별’ 콘서트

    연말 콘서트 ‘별별’ 콘서트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면서 대중가요 공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두배 가까운 공연 숫자이다. 가수들이 연말 가요대상 시상식 대신 ‘공연과의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하다. 중장년층이 볼 만한 공연으로는 우선 박강성의 디너콘서트(02-450-4327)가 눈에 띈다. 오는 23∼24일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다. 패티김은 24∼25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호텔(1577-8857), 남진은 25일 서울 센트럴시티에서 각각 디너쇼를 갖는다.7080 송년음악회(02-2651-3001)도 빼놓을 수 없는 공연이다. 홍서범·조갑경 부부의 진행으로 오는 30일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무대에만 서면 펄펄 나는 ‘라이브 황제’들의 공연도 준비돼 있다. 엄정화 패러디를 선보일 것이 유력한 싸이는 22일과 24일 각각 대구와 광주에서 ‘올나잇 스탠드 콘서트’(1544-0737)를 연다. 무대에 로봇을 출연시킬 예정인 김장훈은 16일 청주에 이어 23∼2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굴욕 쌍쌍파티’(1544-1555)를 펼친다. 이승환은 23일 광주,29∼31일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무적’콘서트(1544-6402)를 준비중이다. 록 밴드의 공연도 다양하게 이어진다. 러브홀릭과 일렉트로니카의 선두주자 클래지콰이는 각각 22∼24일,28∼31일 서울 호암아트홀(02-545-9174)에서 공연을 연다. SG워너비, 바이브, 씨야, 그리고 휘성 등이 함께 펼치는 ‘빅4 콘서트’(1544-0737)도 관심거리다. 오는 23∼24일 서울 코엑스 대서양홀(1544-0737). 남성듀오 바이브는 25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포에버 크리스마스’ 콘서트(02-542-5903)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 스타에 관심이 있는 10대라면 빅뱅의 첫 단독콘서트 ‘더 리얼(The Real)’을 찾아도 좋겠다.30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2)

    2005년 말,‘잃어가는 우리의 꿈을 위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1970년대 포크음악사이트,‘바람새홈(windbird.pe.kr)’ 게시판에는 사월과 오월의 ‘사월’ 백순진씨가 새롭게 만들 곡의 가사를 공모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지난날에 대한 추억, 혹은 회상’, 또는 ‘중년이 느끼는 인생’ 같은 것을 테마로 한 노랫말을 7080세대들에게 직접 의뢰한 것. 이 작업에 참여한 노랫말 가운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이정미)’,‘잠시라도 숨 고르고(둘숨날숨, 박석)’ ‘기약 없는 노래(최은영)’ 등은 어느덧 노래로 완성되어 소모임을 통해 발표회를 가졌고 또한 음반 제작이 이미 결정된 노래도 있다. 이렇듯 7080 가수 백순진씨와 김태풍씨는 무대에서뿐 아니라 창작 작업에까지 ‘7080’ 세대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마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 듯’, 이른바 ‘잃어가는 꿈의 세대들’인 중년들에게 추억과 향수, 그리고 그동안 잠시 접어두었던 열정을 새삼 일깨워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1975년, 이른바 ‘대마초 파동’과 함께 사월과 오월 역시 기타와 마이크를 접은 채 무대를 떠났다. 음악활동이 묶이면서 ‘오월’ 김태풍은 평소 꿈꾸던 오스트리아 유학길에 오른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을 전공한 뒤 시티은행에 입사, 다시 국내에 파견될 정도로 정통 은행가이자 경제통으로 변신했다.3년 전 귀국한 그는 현재 투자자문회사인 영창파트너스 대표로 M&A 컨설팅을 하고 있다. ‘사월’ 백순진 역시 이 참에 잠시 호흡을 고른 뒤 ‘오토(OTTO)프로덕션’을 설립, 본격적으로 신인발굴과 음반기획에 나섰다. 처음엔 작곡에 뜻을 두었으나 본격적으로 CM송 작업에 착수, 당시 유명 브랜드였던 콘티찐빵(노래 정수라), 반디캔디(노래 윤석화), 빙그레 밤초코(전영), 환타 등 100여 편의 CM송을 작곡했고 아울러 영주와 은주, 오정선, 박형철, 정용원 등을 발굴한 것을 비롯, 듀엣 ‘하야로비’에게 ‘사월과 오월’의 대를 잇게 했다. 사월과 오월의 4기인 ‘하야로비(김영민, 이지민)’에게 만들어준 ‘장미’ 등의 빅 히트로 프로덕션은 성공했지만 예기치 않은 부도를 맞아 ‘흑자도산’한 뒤 사업을 접고 뉴욕으로 건너가 부친 사업에 참여한다. 현재는 (주)노스웨스트항공 한국총대리점인 (주)샤프의 부회장으로 재임 중. 이렇듯 사업가로 제각각 성공한 이들이지만 수시로 ‘사월과 오월’이 되어 무대에 오른다. 여전히 캐주얼 차림에 통기타를 멘 채. 공식적으로 해체한 적이 없었던 만큼 재결합이라는 말 자체도 어색하다고 강조하며. 어느덧 창립 1주년을 맞는 팬 카페 ‘사오모(사월과 오월을 사랑하는 모임,http:/cafe.daum.net//4m5m)’는 어느덧 회원수가 457명에 이른다. 카페지기인 박훈종(49)씨 역시 1970년대 사월과 오월에 열광했던 팬으로 ‘사오모 팬클럽은 우리들의 젊은 시절이 그저 흘러간 시절만이 아닌 것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또한 ‘사월과 오월’ 공연장에서 만난 임윤경(50)씨는 10대 때부터 이들의 공연장에 거의 빠짐없이 찾았던 열성 포크팬.‘7080세대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정체성을 위협받으며 위기를 맞는 세대’라며 ‘특히 우울증이 쉽게 잦아들 나이인 만큼 적극적으로 자아 찾기에 나서 삶의 의미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월과 오월 역시 이러한 팬들의 반응에 한껏 자극을 받았다. 그 감동은 새로운 창작에의 욕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열악한 환경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 그 ‘미완의 작업’에의 완성을 이제금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사월과 오월’의 대를 이을 젊은이들을 찾아 자신들의 꿈과 음악을 물려주고 싶다고 밝히는 이들의 얼굴에선 4월과 5월의 싱그러운 햇살만큼이나 생기가 가득했다. sachilo@empal.com
  • [09일 TV 하이라이트]

    ●TV 종합병원(SBS 오전 11시) 예뻐질수록 망가지려는 여자, 김혜선. 연기하랴 공부하랴, 아이들 챙기랴 동분서주한 김혜선이 건강미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대기실에서도, 식당에서도 김혜선이 있는 곳에는 여기저기 물통, 물 그릇뿐. 그런데, 물을 사랑하는 건강미인에게 위험질병이 나타났다. 김혜선의 위험질병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라이프 n조이(YTN 오전 11시35분) 많은 시인들과 가수들이 노래해온 예와 멋의 고장, 전북 고창. 그중에서도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유서깊은 천년고찰 선운산을 찾아 맑은 정기를 느껴본다. 중심전각 대웅보전에서부터 6층 석탑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살피고 주변 녹차밭을 둘러본다. 장어의 으뜸이라는 풍천장어집도 찾아가 본다.   ●행복의 오솔길(EBS 오전 6시20분) 30년을 젊게 사는 비법. 몸짱 어르신의 나홀로 헬스 건강법을 알아본다. 개포동 8단지 공무원 연금매장 입구에 차려진 포장마차는 여느 포장마차와 다르다. 각종 풀뿌리와 잎으로 천연원료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예술가적 성향이 뛰어난 화가. 수묵화가 있는 포장마차의 이용주 어르신을 만나본다.   ●누나(MBC 오후 7시55분) 승주는 지나 할머니 수행 비서로 일하기로 하고, 지나의 집으로 이사간다. 승주는 학과장을 찾아가 건우가 학원에서 일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며 선처를 부탁한다. 대화를 엿듣던 수아는 승주의 태도에 분노한다. 승주는 수아에게 건우의 교수 채용 서류를 대신 접수해 달라며 건우와 헤어졌다고 말한다.   ●콘서트 7080(KBS1 밤 12시30분) 가수 이지연이 ‘콘서트 7080’을 계기로 17년 만에 TV무대에 섰다. 변하지 않은 청초한 외모 만큼이나 가창력과 무대 매너가 여전하다. 오랜 만에 한국에 온 이지연의 마지막 공식일정인 이번 무대에서 ‘바람아 멈추어 다오’,‘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등을 비롯한 히트곡들을 라이브로 들어본다.   ●소문난 칠공주(KBS2 오후 7시55분) 위급한 상황을 마무리하고 마주보게 된 미칠과 일한. 일한은 미칠을 품에 안으며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미칠은 일한을 밀어낸다. 일한은 아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며 미칠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지만 미칠은 이미 끝난 일이라며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는데….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30년 만에 재결합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1)

    새삼 ‘통기타’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크림빵’ 같은 추억의 상표들이 갑자기 무더기로 눈에 띄듯 이른바 7080붐이 일고 있다. 심지어 ‘배 나온 중년을 겨냥한 청바지’까지 등장,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분포에서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는 이 ‘낀 세대’들, 즉 ‘7080 세대’들이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부상하며 드디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7080붐과 더불어 마치 ‘강을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들’처럼 7080 가수들이 ‘시간을 거슬러’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팀이 70년대 남성듀오 ‘사월과 오월’의 멤버 백순진씨와 김태풍씨의 재결합. ‘화’ ‘등불’ ‘옛사랑’ ‘바다의 여인’ ‘욕심 없는 마음’ 등으로 통기타시대를 풍미하며 멋진 화음을 들려주던 ‘사월과 오월’. 각각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30년 만에 귀국해 재결합한 이들은 물론 ‘장미’를 부른 ‘후기 사월과 오월(김영진, 이지민)’과는 다른 멤버. ‘일년 중 가장 화창한 계절’을 지칭, 순수 우리말로 팀 이름을 정한 이들의 첫 멤버는 ‘4월’ 백순진과 ‘5월’ 이수만. 이들은 데뷔음반인 ‘오아시스 포크 페스티벌 1집/백순진 작품집(1972년 5월 발표)’에서 ‘화’ ‘욕심 없는 마음’,‘절망하지 마라’를 발표한 뒤 이수만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도중하차하자 이후 김태풍씨가 ‘5월’로 참여, 함께 ‘사월과 오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데뷔 음반의 ‘백순진 작품집’이란 표기가 그렇듯 백순진은 휘문고 2학년 시절부터 오승근, 홍순백, 김태옥 등과 보컬그룹 ‘엔젤스(The Angels)’를 결성해 공연까지 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남달랐던 실력파. 아울러 이들 ‘사월과 오월’이 발표한 노래들 대부분이 그의 작품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작곡은 물론 직접 편곡까지 맡았던 ‘아티스트’였다. 이들 ‘사월과 오월’은 통기타 붐이 일던 포크시대를 주도하며 1972년, 당시 주간잡지 ‘선데이 서울’이 주관한 ‘대학생을 위한 밝고 고운 노래공연, 맷돌’에 참여, 김민기, 송창식, 양희은 등과 함께 특히 서정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의 창작곡 위주로 활동했다. 김태풍이 가정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 1974년 1월께엔 잠시 가수 김정호씨가 ‘오월’의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김정호는 ‘이름모를 소녀’를 발표하며 솔로로 전향했다. 1974년 중반, 김태풍씨가 다시 멤버로 복귀하면서 ‘사월과 오월’은 듀엣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6인조 그룹사운드 ‘들개들’을 결성해 한층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 ‘들개들’은 두 멤버 외에 이수만(보컬 겸 베이스), 민영진(베이스), 정운남(건반), 김찬(드럼)의 라인업을 갖춘, 이를 테면 ‘복합 2중 팀’인 셈으로 이들은 창단 리사이틀을 겸해 그해 7월, 연세대 대강당에서 기념공연을 갖기도 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늦게 늙는 것이 바로 목소리’라 했던가. 마치 이러한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각각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 30여년 만에 일시 귀국, 호흡을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화음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최근 들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특히 ‘7080세대를 위한 추억의 통기타음악 찾기 붐’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팬클럽인 ‘사오모(사월과 오월 팬클럽 모임)’ 카페에는 새로운 행사와 소식을 알리는 글들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특히 백순진 김태풍, 두 사람은 카페 게시판에 직접 참여, 팬들과의 적극적인 교감은 물론 ‘번개팅’까지 수시로 갖는다. 1970년대 가수의 재등장은 가요계의 단절된 연결고리를 이어주며 다시 가요계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진다. 아울러 이름난 작곡가이자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한 백순진씨는 얼마 전 의미 있는 이벤트에 착수했다. 바로 그가 새롭게 만들 노래의 노랫말을 7080세대들에게 직접 공모한 것.(계속) sachilo@empal.com
  • 광주 충장로, 젊은이 곁으로 돌아오다

    광주 충장로, 젊은이 곁으로 돌아오다

    광주의 중심 거리인 동구 충장로가 부활하고 있다. 퇴색해 가던 건물들이 단장되고 사람들도 몰려든다. 불과 몇년 전에 비해 사뭇 다른 모습이다. 29일 거리에서 만난 이모(22)씨는 “최근 들어 전문 패션 매장이 들어서는 등 거리가 밝아지고 있다.”며 “친구들과 만날 때 이곳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충장로의 쇠락 충장로는 1970∼1980년대만 해도 호황을 누렸다. 패션·음식·오락시설 등이 밀집해 ‘만남의 공간’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시 광주에서 ‘시내’ 하면 충장로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시 외곽에 신도시 개발이 이뤄지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곳에 있던 대형 지방 백화점들도 부도가 나거나 저가용품 매장으로 변했다. 밀집한 상가들도 철시하거나 줄줄이 신도심 쪽으로 향했다. 건물값이 떨어지고 ‘구도심’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여기에 인근 전남도청마저 전남 무안으로 옮겨가면서 유동인구가 크게 줄었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을 질렀고, 관할 동구는 ‘충장로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거리환경 개선 동구는 ‘구도심’을 상징하는 시설물을 새롭게 단장했다. 노출된 전깃줄을 땅에 묻고, 간판을 새롭게 했다. 땅바닥은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아스콘으로 대체했다. 최근엔 충장로 5가 일대 ‘한복거리’엔 루미나리에를 설치, 어두침침한 밤거리를 대낮처럼 밝게 했다. 주변환경 개선과 함께 유명 브랜드 패션점과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등 젊은 층을 겨냥한 매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백화점 대신 대형 쇼핑몰과 복합 영화관 등도 입점했다. 요즘은 10∼20대들의 전문 거리로 변신 중이다. ●충장로 축제, 상권 활성화 주역 동구는 지난달 ‘추억과 만남’이란 주제로 충장로 축제를 열었다. 축제기간(5일) 동안 200여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축제의 주제도 ‘포크 송’으로 상징되는 7080문화와 힙합으로 대표되는 2030문화를 아우르는 화합과 조화로 잡았다. 거리엔 40∼50대들이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축제에 참여했다.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린 마당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10여년째 옷가게를 운영한 김모(49·여)씨는 “2∼3년 전부터 매출이 점차 늘고 있다.”면서 “이는 충장로를 되살리기 위한 각계의 노력 덕택으로 본다.”고 말했다. 광주시도 도심 활성화를 위해 ‘충장로 특화의 거리 조성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충장로 1∼3가,2가길을 화강석으로 포장하고 거리엔 원형과 사각형의 LED 보안등을 설치한다. 또 상가번영회 등의 의견을 수렴, 아케이드 거리 조성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최근 옛 한국은행 자리에 조성된 ‘금남공원’과 현재 공사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도 충장로 활성화에 큰 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홍진태 광주시 문화정책실장은 “광주의 얼굴인 충장로 거리를 문화중심도시 조성 컨셉트에 맞춰 새롭게 단장할 계획”이라며 “이 사업이 마무리되면 충장로가 과거의 번영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Seoul in] 29일 면목역 공원 가을음악회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29일 오후 3시 면목역 공원에서 가을음악회가 열린다. 이날 인기 가수 소리새가 대표곡 ‘그대 그리고 나’ 등 7080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다. 소리새의 공연에 이어 색소폰 연주로 친숙한 영화음악을 들려주고 힙합댄스가 이어진다. 연주 사이에 림보게임 등 레크리에이션도 마련된다. 면목1동사무소,2207-1011.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아나운서 출신 가수,‘네잎클로버’의 이규항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아나운서 출신 가수,‘네잎클로버’의 이규항

    ‘네잎클로버 찾으려고/꽃 수풀 잔디에서 해 가는 줄 몰랐네/당신에게 드리고픈/네잎클로버 사랑의 선물/희망의 푸른 꿈 당신의 행운을/당신의 충성을 바치려고 하는 맘/네잎클로버 찾으려고/헤매는 마음 네잎클로버’ -‘네잎클로버(이인선 작사, 김영종 작곡)’ 한때 ‘네잎클로버’가 프러포즈용으로도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기에 발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 곡은 아나운서 출신가수 이규항(67)씨가 1968년에 발표한 노래다. ‘이규항’이라는 이름은 특히 중·장년층에게 그 이름 석자만으로도 당시 라디오시대를 추억하게 만들 정도의 스타급 아나운서.60∼70년대 최고인기였던 고교야구 붐과 더불어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을 뛰게 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몰래 이어폰을 꽂고 야구중계를 듣던 교실 풍경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라디오가 최고 오락수단이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 아나운서들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아나운서 1세대’인 전영우, 장기범, 임택근, 박종세씨로 이어지는 아나운서 계보를 잇는 이규항씨는 1961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한 이후 특히 스포츠 캐스터로 명성을 날리면서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최고령의 야구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말품이 가장 많이 든다는 스포츠 캐스터로 근 40년간을 지켜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기 감각을 읽는 판단력과 순발력, 그리고 무엇보다 장단음을 정확히 구사해서 말의 맛을 두 배로 높이는 실력 때문. ‘언어의 마술사’로도 불릴 만큼 정확한 우리말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1939년 3월13일, 서울 연지동에서 부친 이세영씨와 모친 김복순씨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출생해 서울 중앙중·고, 그리고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특히 이규항씨는 명 스포츠 캐스터답게 중앙고 시절부터 대학 때까지 유도를 해온 스포츠맨으로 대한유도회 공인 6단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엔 지나치게 내성적인 성격으로 말이 없었고 그래서 표현력까지 부족했다. 심지어 지나치리만큼 말이 없는 것이 걱정되어 가정방문이 없던 시절임에도 담임선생이 집에 찾아와 부모와 심각히 진로문제를 상의했을 정도. 이러한 그가 아나운서의 꿈을 꾸게 된 동기는 중학생 시절, 당시 라디오 인기프로그램,‘스무고개’의 사회자 장기범 아나운서의 말씨에 반했기 때문. 당시 장기범 아나운서는 ‘스무고개’를, 그리고 양대 산맥이었던 임택근 아나운서는 ‘노래 자랑’ 사회를 봤던 시절로 이 쌍두마차는 온 국민들의 귀를 라디오에 쏠리게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등장하자마자 인기 아나운서 대열에 합류했던 이규항씨가 노래를 취입, 가수로까지 활동하게 된 계기는 60년대 중반,‘아나운서 온 퍼레이드’라는 아나운서 장기자랑 무대에 서면서부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펫분의 ‘I’ll Be Home’을 멋지게 부르자 주위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음반을 취입해도 되겠다고 부추긴 게 계기가 되었다. 결국 당시 방송 스크립터이자 작사가였던 하중희씨의 권유에 의해 ‘네잎클로버’를 취입, 히트하면서 이듬해인 1969년 당시 문화공보부가 주관했던 무궁화대상 남자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아나운서라는 신분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일반무대에 나서기는 힘들었다. 인기에 비해 많은 노래를 취입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인한 ‘반쪽가수’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는 소월 시에 서영은씨가 곡을 붙인 ‘가는 길’을 비롯해 ‘나비바람’,‘하늘인가 땅인가’,‘꿈의 그림자’ 등의 명곡들을 발표했다. 명아나운서의 부드럽고 중후한 목소리로 불려진 이러한 그의 노래들이 우리 가요사에 남겨져 전해진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현재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그는 말의 품격이 무너진 요즘 방송을 ‘언어교통사고’ 방송이라고 개탄한다. 아나운서는 ‘우리말 지킴이’로 특히 ‘춘향이와 이도령’의 말을 구사해야지,‘향단이와 방자’의 말을 써서는 안 된다며 말의 품위를 한층 강조한다. 그는 얼마 전 ‘우리나라 2대 아나운서’ 탄생의 주인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KBS 아나운서 공채로 입사한 이상협씨가 바로 이규항씨의 장남으로 ‘부전자전’의 길을 걷고 있다. sachilo@empal.com
  • ‘7080’ ★가 온다

    ‘7080’ ★가 온다

    연말을 앞두고 7080 스타들의 공연이 밀려오고 있다. 대중가수들의 공연이 10∼20대의 전유물처럼 치부되던 사회통념에 비춰보면 놀랄 만한 일이다. 신세대 스타 위주의 공연과 음반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0년쯤 한국사회의 중핵으로 떠오를 이른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이 음악산업의 중요한 고객으로 부상한 것. 7080문화는 이미 TV를 통해 화려한 조명을 받은 바 있다.‘추억’이라는 민감한 정서를 건드려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KBS 1TV ‘7080콘서트’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 샌드페블즈, 옥슨80, 건아들 같은 그룹들이 출연하는 스튜디오는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한때의 반짝인기가 아닌 지속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는 12월 7,8일 성남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7080 리얼 록 콘서트’는 액티브 시니어들의 음악적 열망을 충족시켜 줄 대규모 공연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울림과 들국화, 샌드페블즈, 휘버스, 건아들 등 70∼80년대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관록의 그룹들이 출연해 초겨울 밤을 추억으로 수놓는다. 공연시간은 2시간30분. 3막7장으로 이루어진 공연형식이 흥미를 끈다. 출연진과 팬들이 어우러져 교복 패션쇼를 벌이는 1막 1호차 ‘분위기를 잡아라’ 코너에서부터,‘추억의 음악다방’,‘대학축제 속으로’ 등의 코너가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3막 7호차 ‘엔딩-춤바다’에서 공연은 절정을 이룬다. 70년대 록 음악계를 주름잡던 산울림을 비롯, 전 출연진이 무대에 나와 관객들과 한바탕 질펀한 춤판을 벌인다. 설마 ‘광란의 밤’까지야 가지 않겠지만, 액티브 시니어들이 가슴속에 숨겨둔 열정을 마음껏 분출시키는 시간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02)6447-6500. 12월 20일,2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포크 빅 3 디너콘서트’는 관객들의 가슴을 추억으로 촉촉하게 적신다. 송창식·윤형주·김세환 등 1970년대 통기타 문화를 이끈 포크 1세대 주역들이 출연한다.80∼90년대엔 제각각 활동하던 이들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뭉쳐 포크음악에 대한 향수를 지닌 중·장년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세 거장은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각자의 대표적인 히트곡들을 부른다. 특히, 송창식과 윤형주는 포크 듀오 ‘트윈 폴리오’를 재현해,‘하얀 손수건’,‘웨딩 케익’,‘축제의 노래’ 등을 들려준다. 트로트와 동요를 비롯,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포크로 편곡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뮤지컬 공연은 서울 충무홀에서 열리고 있는 ‘달고나’가 눈에 띈다. 난타의 송승환 대표가 연출하고, 탤런트 박준형, 여성 댄스그룹 쥬얼리의 조민아, 개그맨 손헌수가 출연하는 110분짜리 공연이다. 지난 2004년부터 3년 동안 대학로 소극장에서 ‘숙성과정’을 거친 다음, 대극장용으로 재탄생했다. 만화영화 주제가 ‘은하철도 999’, 김현식의 ‘골목길’ 등 7080시대의 유행가들이 관객들의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안겨줄 듯하다. 오는 12월31일까지 계속된다.(02)738-8289. 한국철도공사에서는 ‘7080열차’도 운행하고 있다. 수도권서부지사(02-2639-3760)는 원하는 단체나 기업이 있으면 기차 객실을 향수어린 음악과 낭만으로 가득 채운 테마열차로 꾸며준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아침이슬’ 35주년 기념콘서트 양희은

    ‘아침이슬’ 35주년 기념콘서트 양희은

    벌써 35년이다. 강산이 네번째 탈바꿈을 하려는 긴∼시간.1971년 ‘아침이슬’을 들고 세상에 나온 양희은(54)이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20여년 전인 1985년, 서울 명동 ‘쉘부르의 우산’이란 음악살롱에서 가수와 팬으로서 처음 보았던 그를 이제서야 다시 만났다. 물론 지금도 변함없이 가수와 팬으로서다. 갸름하던 얼굴에 어느덧 세월의 살집이 붙고, 긴 생머리 짧게 잘라 세월의 간극이 느껴졌지만, 목소리만은 여전히 낭랑했다. “1971년 가수로 데뷔하던 해에 방송일을 시작했으니, 방송인으로서의 35주년이기도 해요.CBS 라디오에서 ‘해프닝 코너’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처음 방송을 시작했죠.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라디오는 나의 도피처였어요. 어린 나이에 쏟아졌던 주위의 지나친 격려도 부담스러웠고요. 노래보다는 라디오 방송을 하는 것이 나다웠고,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라디오에 쏟았던 시간과 마음만큼 노래에도 정성을 기울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가수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수와 방송인이란 두 마리 토끼를 쫓아 예까지 오며, 그는 추억어린 옛노래로 연명하거나 만족해하지 않고 쉼없이 새노래를 발표해 왔다. 이번에 새로 발표한 8집앨범의 소재는 ‘꽃’.40∼50대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꽃을 바라보는 넉넉한 시선을 앨범 곳곳에 담아 내고 있다. 예전엔 꽃보다 나무를 더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꽃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란다.“인생 후반전에 들어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사람의 눈은 늘 새로운 것을 찾는데, 귀는 낡고 익숙한 것만 찾는다고 하죠. 요즘 7080세대 노래와 가수들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창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꽃과 일을 제대로 알게 될 때 쯤, 꽃과 일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듯 해서요.” 그는 지난 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35주년 기념콘서트 제작발표회에서 “‘아침 이슬’ 등 나의 대표곡들이 시위현장에서 ‘참여’를 독려하는 노래로 불릴 줄은 몰랐다. 노래가 좋아서 부른 거지, 저항에 ‘동참’하라는 의미로 부른 것은 아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그가 발표한 200여곡의 노래 중 30여곡이 금지곡이었고, 김민기 등과 함께 70년대 청년문화와 저항문화의 상징이었던 그였기에 이번 발언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전화로 다시한번 그의 속내를 들어 보았다.“‘내 어린 날의 학교’라는 노래가 있어요. 영화 ‘선생 김봉두’ 주제곡이었죠. 이 노래가 왕따당한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는 대안학교의 교가로 선정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노래는 품안의 자식과 같아서, 일단 발표를 하고 나면 부른 사람보다는 불러주는 사람들의 것이 되죠.‘아침이슬’도 마찬가지예요. 시위현장에서 불려질 때마다 내 느낌이 아니었고, 내 노래 같지가 않았어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들의 것이었죠.” 나이가 들면서 무대공포증이 심해졌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노래를 좀 더 겸손하게 부르게 된다.“43세때 제 이름으로 벌인 첫번째 콘서트가 지금도 기억이 나요. 제 공연에 보내준 그 뜨거웠던 사랑에 부지런히 보답을 해야죠.” 이번 콘서트는 오는 12월 14,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02) 522-9933.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웨딩드레스’의 인텔리 가수 한상일(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웨딩드레스’의 인텔리 가수 한상일(2)

    ‘내 마음 나도 모르게 꿈같은 구름타고/천사가 미소를 짓는 지평선을 나르네/구만리 사랑 길을 찾아 헤매는/그대는 아는가 나의 넋을/나는 짝 잃은 원앙새 나는 슬픔에 잠긴다’ ‘웨딩드레스’와 함께 가수 한상일씨의 또 다른 히트넘버인 이 ‘애모의 노래(황유철 작사, 안길웅 작곡)’는 1969년 당시 뮤지컬,‘카니발의 수첩’의 주제가였다. 남녀 듀엣으로 불려진 이 세미 클래식조의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탐냈으나 가수 겸 작곡가 안길웅씨는 이 노래만큼은 밝고 힘 있는 한상일씨 목소리가 최적이라고 판단, 그에게 취입하게 했다. 이 ‘애모의 노래’가 그렇듯 탄탄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마치 ‘단전 호흡하듯 노래하는’ 한상일씨는 대곡 스타일의 번안곡이나 가곡, 가톨릭 성가 등을 특히 많이 발표했다. 그에게 노래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어보고자, 그가 취입한 노래 곡목을 뽑아 건네주자 리스트를 훑어보던 그의 표정이 순간 당황스러운 빛으로 변했다. 자신이 그렇게 많은 노래를 취입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의외로 많은 옛 가수들이 그러하듯 그 역시도 자신의 취입 곡 중 상당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사는 물론 멜로디조차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불과 몇 번의 연습 끝에 단 한 차례 취입한 곡들이 대부분이기 때문. 더구나 그는 음반을 취입해놓고 제대로 들어볼 시간도 없이 바빴다고 회고한다. 처음 TV 전속가수로 출발했듯 엔터테이너 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이내 ‘예그린악단’으로부터 뮤지컬 ‘대춘향전’의 출연제의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스스로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무대에서 내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김희조씨가 음악을 맡은 이 뮤지컬 공연에 직접 나서지 않는 대신 가수 패티김과 함께 ‘이도령’‘춘향’역을 각각 맡아 음반만을 취입했다. 그러나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그는 결국 고영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사랑은 파도를 타고’, 그리고 당시 인기 TV 드라마 ‘수사반장’ 등에 출연,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때 그는 건축학도 출신답게 치밀한 성격을 드러내 담당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가령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막무가내로 대사 수정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 드라마 상황에 비해 세트장이 너무 작다고 지적, 세트장을 모두 다시 제작하게 만든 당시 에피소드들이 그 것. 아울러 가수 윤복희씨와 함께 에디트 피아프의 삶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 ‘빠담빠담빠담’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 이브 몽탕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렇듯 주위에서는 그에게 다양한 활동을 요구했지만 정작 그는 연예인으로서 집안의 내조를 전혀 받지 못했다.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출신이라는 ‘최고학부’의 꼬리표는 늘 그에게 무거운 짐으로 작용해 수시로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결국 집안의 반대로 연예활동을 접게 된 그는 1978년, 뒤늦게 전공을 찾아 건설 분야로 U턴,‘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어느덧 37세. 건설회사 입사 초기엔 그동안 연예인이기에 받아왔던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눈부셔 되레 짙은 그늘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미국 연수를 마치고 사우디건설 현장에 파견, 외국인 감독관으로 근무한 뒤 가구회사, 투자개발회사 등을 거쳐 20여 년간 건설, 건축 분야에 종사했다. 그 기간 동안 공식 가수활동은 접었지만 CF를 통해서는 대중들과 늘 만났다. 포도주나 커피광고, 종합 비타민, 패션양복 모델 등이 그 것으로 지성, 낭만, 건강함을 지닌 귀족적 이미지로 각인된 그의 캐릭터는 이 때문에 더욱 굳혀진 것이기도 하다.1998년에 퇴직한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여전히 술보다는 음악을 찾는 로맨티스트로 동시에 최근 영화들을 모두 섭렵한 영화광. “전성기 때 이봉조·백영호 같은 훌륭한 작곡가들의 취입 제의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었던 것이 이제금 못내 아쉽다.”는 그. 이제부터라도 노래에 관한한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 현재 제주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틈틈이 음악에세이 등을 집필하고 있다. sachil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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