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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임기 마치는 주한 美대사관 맥클로린 공보관

    “직설적이고 솔직한 대화 태도 언제나 변치 말기 바랍니다.” 제럴드 맥클로린(Gerald McLoughlin·49) 주한 미국 대사관공보관에게 한국인의 나쁜 점을 꼬집어 달라고하자 대신 내놓은 칭찬이다. 다음달 1일 임기를 마치고 한국을 떠나는 맥클로린 공보관이 한국에서 보낸 세월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정도면 ‘한국통’이라고 할 법도 한데 본인은 “아직도 한국을 배우는 중”이라고 겸손해한다. 이번이 세번째 한국 생활로,1979년 처음 한국땅을 밟았을 때는 평화봉사단원이었다.4년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86년부터 89년까지 광주 미문화원원장을 지냈고 99년부터 주한 미대사관에서 근무해왔다.6·25전쟁이 끝난 뒤 주한 미군으로 복무했던 아버지로부터 한국에 대해 “조금” 들어서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고. 지난 10년은 한국과 한국인에게 있어서 격동의 세월.이방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처음 한국에 도착한 날이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이라며 당시의 긴장된 분위기를 기억해냈다.“90년 이전 한국 사회는 경직돼 있었다.국민들은 정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정부는 국민을 소외시켰다.”면서 그러나 “87∼89년 민주화운동을 고비로 한국사회는 더 개방적이고 여유롭게 됐다.”며 가장 인상깊은일로 주저없이 ‘한국의 민주화’를 꼽았다. 평양 방문도 뇌리에 남는 일.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 준비를 위해 2000년 10월 처음 가본 평양은“참 슬펐다.”고 술회했다. 그가 색다르게 본 한국문화는 무엇이었을까.‘전통문화어쩌구…’하는 뻔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의 남다른 애정과 헌신”“배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란다. 화제를 돌려 ‘여가’를 어떻게 보내느냐고 묻자 “내가 여가가 있었나?있었어?”라고 옆에 앉은 보좌관들에게 농담을 건넨 뒤 틈이 나면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다고 했다.그래서 지난 13일 공보과 직원들은 그의 환송회를 겸해서 원주 치악산으로 하이킹을 다녀왔다. 그는 “자전거로 돌아본 작은 마을과 시골길이 너무나 좋았다.”“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급속한 도시화를 은근히 비판했다.재미있게 본 한국 영화로 ‘쉬리’‘공동경비구역 JSA’을 열거하더니 불교영화 ‘만다라’가 가장 좋았다고 꼽았다. 그는 짐도 싸기 전에 벌써 ‘다음’을 기약했다.15살 아들과 역시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부인이 이곳의 생활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상숙기자 alex@
  • 이산상봉 이모저모/ “”내가 죄인…”” 한숨·회한

    금강산에서 처음 이뤄진 이번 제4차 이산가족 상봉에서도눈물겨운 사연들이 흘러 넘쳤다.반세기 만에 만난 부부와부모·자식 등은 한숨과 회한으로 점철된 지난 세월의 아픔을 눈물로 씻어냈다. 부부상봉 ■6·25때 부인 이영희(73)씨와 다섯살배기 아들(창근·57)을 두고 평양을 떠나온 길영진(吉永鎭·82)씨는 백발의부인과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여보,내가 죄인이구려,죄인.”이라며 어쩔줄 몰라 했다.평양의 건설회사에서 일하던 길씨는 당시 북측의 토지국유화 조치로 땅을 빼앗긴데다 전쟁이 나자 “곧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라며 화물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몸을 피했다. 월남 후 재혼한 길씨는 “나도 없는데 창근이를 이만큼키웠으니… 할 말이 없소.”라며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못한 채 아내의 손을 쓰다듬으며 눈물만 흘렸다. ■안용관(安龍官·81·경기도 안산시 사동)씨도 반세기 만에 만난 아내와 딸을 마주하고는 “그 곱던 피부에 주름이많이 패었구려.”라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 없이딸과 아들을 키운 아내와 아버지없이 힘든 생활을 견뎠을딸에게 연신 “미안하다.”며 어깨를 감쌌다. 안씨는 전쟁 막바지인 53년 인민군을 피해 황해도에서 서해 앞바다의 수니도로 아내 윤분희(75)씨와 함께 피란했다.당시 두 살이던 아들 희복(53)과 100일도 안돼 이름조차없던 딸(안복순·51)은 부모에게 맡기고 움막을 짓고 피란생활을 했다.그러나 인민군이 갑자기 섬으로 들이닥치는바람에 아내와도 생이별을 한 지 50년이 지났다.아들은 건강이 나빠 금강산에 오지 못했다. 부모·자식 상봉 ■“필순아 미안하다.” 51년 만에 딸(55)을 만난 오정동(吳鼎東·61)씨는 복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오씨는 어느덧 주름이 가득한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헤어질 당시 세살배기의 잔상을 찾으려 애썼다.“고모를 많이닮았구나. 아니야 할아버지를 닮았어.”라고 혼자 되뇌이기를 여러번하다 끝내 끌어안고 울었다.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오씨는 51년 1·4후퇴 때 동생 관동씨가 국군으로 참전해 전사하자 인민군의 보복이 두려워야반도주했다.“며칠만 숨어있다 돌아올 생각으로네 어머니와 너를 두고 떠났는데….”라며 울먹이던 오씨는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는 딸의 말에 고개를 떨구었다. ■남측 가족 가운데 최고령인 권지은(權志殷·88) 할머니는 막내 아들 이병립(62)씨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살아있어 고맙다.”는 말만 되뇌였다. 47년 5월 먼저 남쪽으로 간 남편 이석주(36년전 사망)씨를 찾아 3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온 권 할머니는 “너무 어려 나중에 데리고 올 생각으로 두고 온 일곱살짜리 막내아들이 눈에 밟혀 57년동안 죄책감 속에 살았다.”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아들 이씨도 노모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
  • [월드컵 이야기] (13)터키

    터키 국민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광적인 수준이다.터키 국민 모두가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축구다.터키에서 프로축구팀이 처음 창설된 것은 52년전인 1950년.현재 전국적으로 200여개 프로팀이 등록돼 있어 거의 매일 경기가 열리고 있다.모든 국민이 ‘축구로 잠을 깨고,축구를보다가 잠을 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터키는 2002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고,조 추첨 결과한국에서 예선전을 치르게 되자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체육·언론계 인사들은 터키가 브라질을 제외하곤 비교적 해볼 만한 상대인 코스타리카·중국과 함께 예선 C조에 배정돼 절호의 예선통과 기회를 잡았다며 흥분했다. 터키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54년 월드컵 이후 48년 만이다.터키는 당시 서독에 1대4로 패한 뒤 한국에 7대0으로 이겼으나 8강전에는 오르지 못했다. 터키의 명문 프로축구팀인 갈라타사라이는 99·2000 유럽축구연맹(UEFA)컵 대회에서 우승,터키의 뛰어난 축구 실력을과시했다.터키 대표팀은 갈라타사라이,페나르바흐체,베식타시등 명문 프로팀 소속 선수들로 구성됐다.터키는 오는 6월3일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9일 코스타리카,13일 중국과 각각 예선전을 치른다.터키 대표팀은 현재 최소한 8강전에는 오른다는 목표 아래 마무리 맹훈련을 펼치고 있다. 터키 국민들은 터키대표팀이 전통적인 우방국가인 한국에서 예선전을 치르게 된 것은 행운이라며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터키와 한국은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 이후 혈맹의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터키군은 6·25전쟁에서 740명이 전사하고 2100명이 부상하는 등 참전 16개국 가운데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봤다.터키 전몰 장병들은 부산 유엔묘지에 잠들어 있다. 터키 국민들은 이렇듯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는 한국에서 경기를 할 때 한국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응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터키 국민들은 대부분 TV를 통해 이번 월드컵 경기를 관전할 것이다.이때 한국인들의 응원 장면이 TV를 통해 방영된다면 양국의 우호관계는 더욱 증진될 것이다.터키 국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우리 국민들의 열렬한 응원을 부탁드린다. 김영기 대사
  • 월드컵 당일·전날 차량2부제

    월드컵축구대회중 실시되는 ‘승용차 홀짝제’를 위반하면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시는 15일 월드컵축구대회를 전후해 실시하는 자동차 홀짝제의 세부 시행지침을 마련했다. 자동차 홀짝제는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5월30일부터 6월25일까지 서울,인천,수원 등 수도권 일대에서 경기 전일과당일 등 15일간 실시된다. 서울에서는 개막전(프랑스-세네갈) 전날인 5월30일과 경기 당일인 31일,그리고 6월 12∼13일(중국-터키전),24∼25일(준결승전) 등 6일간 강제 홀짝제가 실시된다.나머지 9일은 자율 부제 형식으로 운영된다. 인천지역에서는 6월 8∼9일(터키-코스타리카전),10∼11일(프랑스-덴마크전),13∼14일(한국-포르투갈전) 등 6일은강제 홀짝제를,나머지 9일은 자율 홀짝제를 시행한다. 경기도 수원시에서도 6월 4∼5일(미국-포르투갈전),10∼11일(세네갈-우루과이전),12∼13일(브라질-코스타리카전),15∼16일(16강전) 등 8일은 강제 홀짝제,7일은 자율 홀짝제를 실시한다. 경기가 없는 경기도 지역 다른 시·군에서는 자율부제로운영한다.부제시행시간은 오전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이며 10인 이하 비사업용 승용·승합차를 대상으로 한다.서울에서는 3.5t이상 비사업용 화물차도 대상이 된다. 그러나 외교·보도·긴급·장애인·생계형영세업자·장례·결혼식 차량,월드컵 지원차량 등은 부제에서 제외된다. 강제 홀짝제를 위반하면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자율 홀짝제는 부과 여부가 자율 결정된다. 조덕현기자 hyoun@
  • 정책자금 대출금리 5%대 인하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 정책자금 대출금리를 기존 6.25%에서 0.35%포인트 내린 5.9%로 인하한다고 14일 밝혔다. 적용 대상은 구조개선자금,경영안정자금,중소·벤처창업자금,소상공인 지원자금,협동화자금,입지지원 사업자금,지식기반서비스업 육성자금,지방중소기업 육성자금 등이다. 신규 지원자금 뿐만 아니라 이미 지원된 융자금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 “49년 못온 길 불과 5분만에…”

    “북한 땅까지 하루 빨리 철길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안보관광열차’로 명명된 경의선 열차가 11일 분단 이후 처음 일반승객을 싣고 남한 최북단 도라산역까지 운행됐다.지난 53년 문산역 이북 방면 운행이 중단된 지 무려49년 만이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임진강역에서 간단한 민통선 출입 절차를 마친 실향민 등 일반승객 35명은 내·외신 기자 65명과 함께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열차에 올랐다. 오전 10시43분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차창 밖에는 6·25때 폭격으로 부서진 채 남아 있는 독개다리 철교 교각이 스쳐 지나가고 다리 아래 임진강물이 도도히 흘렀다. 그러나 감흥을 채 느끼기도 전에 열차는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까지는 3.7㎞.반세기 동안 오가지못해 가슴에 한으로 남았던 이곳을 오는 데 불과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실향민 1세대로 개성이 고향인 구본창(70·경기 안양시호계동)씨는 “감개무량하다.”며 “곧 고향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설렌다.”는 말만 되뇌었다.승객들은이날 도라산역사와 주변 민통선 지역을 돌아보고 1시간30분 만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올들어 설과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당시 등 두 차례 특별열차가 운행돼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던 이곳 도라산역은앞으로 경의선 운행 횟수도 늘고 안보관광지와 연계관광도 시행되어 세계적 명소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음달 1일부터 임진각∼도라산을 오가는 관광열차 운행을 시작하며 도라산역,도라전망대,제3땅굴을 연계한 안보관광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승객이 300명으로 제한되는 관광열차는 오전 10시33분과 오후 2시33분 등 하루 두 차례 운영하며,요금은 1100원이다. 국방부는 민통선 출입 관광객들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임진각에 군·경 합동검문소를 운영하기로 했다. 파주 한만교기자 mghann@
  • [대한광장] 이 나라 ‘진짜 주인’의 뜻

    나에겐 여든을 훌쩍 넘으신 외할머니가 살아계신다.할머니는 작년 봄에 일주일 이상 음식을 못 드시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간 적이 있었다.마지막으로 얼굴을 뵙기 위해 병원에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마지막 기운을 내시며 내 손을 잡고기도를 부탁하시는 것이었다.“이 보잘것없는 늙은이가 지금까지 밤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왔단다.이제 그 소임을 다 못하고 가니 네가 그 기도를 계속해다오.” 뜻밖의부탁에 당황한 나는 “얼른 기운 차리셔야지 지금 나라 걱정하실 때예요”라며 딴청을 부렸다. 할머니는 기도를 못 물려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던지그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지금도 밤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배움도 없고 시골 고향마을에 내려가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한 노인이 죽음 앞에서야 마음의 진실 한가닥을 드러내시는 것을 보고 나는 그후 많이 생각했다.이 나라가 힘든역경 속에서도 살아남고,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제나 사회의 발전을 이루어올 수 있었던 밑거름은 무엇인가.아무런이해관계도 없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마음과 정성을다하는 그 간절한 바람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예로부터 정신적인 에너지를 일컫는 ‘기'를 매우중요시한다.‘기가 찬다' ‘기가 질린다' ‘인기를 받는다' ‘기가 죽는다'는 등 기와 관련된 말들도 많고,기세나 기운이있으면 어떤 힘든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선각자들이나 민초들의 기운 하나로 나라를 지킨경우가 많았다.조선시대 의병들의 활동이 그렇고,일제시대의 독립운동과 독재시대의 민주화 운동이 그렇다.기를 모아집중하는 것을 도를 닦는다고 하는데, 산속에서 도를 닦아야만 도사인 것은 아니다.밭 매느라 지친 몸으로 나라가 잘되기를 빌며 기도하는 시골 아낙네들,경쟁사회를 살아가느라 지친 와중에서도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걱정의끈을 놓지 못하는 중년의 가장들,인터넷에 들어가 전문지식을 총동원하여 밤새 열띤 토론을 벌이는 젊은이들,이들 모두가 자신의 진실한 기운을 모두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도사들이다. 이 도사들의 기도가 깊어지면 때로 서로의 기를 통하며 음모를 벌이기도 한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통하니 음모라고 하는 표현이 맞겠다.그런데 기도가 깊어지려면 사사로운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니,기도가 깊어진 이들의음모는 음모 중에서도 좋은 음모다.우리가 때로 생각지도못했던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이 민초 도사들의 음모 때문이다. 이 민초들의 기운을 받은 사람은 겸허해져야 한다.그는 이들의 소중한 기운들을 거저 받은 것이 아니라 위탁받은 것이기 때문이다.사심없이 진실한 이 기운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나서지 말아야 한다.그는 나설 자격이 없다. 할머니는 기도를 부탁하시던 날,6·25 때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식을 겨우 구해내었던 일을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다.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 중에 가장 극한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시는 거였다.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절박했던지 50년이 지났음에도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울기까지 하셨다.아마도 전쟁 속에서는 내 자식을 지켜낼 수 없다는 어미로서의 깨달음이 할머니로 하여금 그후로 간절히 나라기도를 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전쟁의 경험에서 증오를 배우고 키우는 대신 평화의 기도를 할 줄 알았던 현명한 우리 할머니들은 세계가 전쟁에 휘말린 오늘날을 사는 우리 어미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부탁하신다.“아이들을 전쟁의 총탄 속으로 몰아 넣어서는 절대안된다. 그렇다고 내 아이만 미국인을 만들어서 군대 안보내는 것은 나라 망하는 길이다.지금부터라도 마음과 정성을모아서 평화의 기도를 시작해라. 그리고 평화를 지켜줄 만한 사람에게 그 기운을 모아 줘라.”[박주현 변호사·사회평론가]
  • 용인 신갈∼수지 6차선 확장

    경기도 용인시 신갈∼수지간 왕복 2차선 도로가 6차선으로확장된다.따라서 도로 양쪽 끝인 풍덕천사거리와 신갈오거리의 차량 상습 정체가 해소될 전망이다. 용인시는 ‘지옥 체증’ 현상을 빚고 있는 시도 27호선의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793억원을 들여 신갈∼수지간 6.25㎞를 왕복 6차선으로 확장키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시는 이를 위해 영동고속도로 위를 통과하는 교량 등 크고작은 교량 6개(전체 길이 795m)도 건설하기로 했다. 확장 공사는 오는 6월 착공돼 2004년 말 완공되며,2003년 6월 완공 예정인 풍덕천 입체화도로와 연계된다. 시 관계자는 “이 도로가 확장되면 국지도 23호선을 이용해 수원 영통에서 서울로 가는 차량이 신갈오거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풍덕천쪽으로 빠질 수 있는 데다 풍덕천사거리에서도 신호를 받지 않고 서울 양재동 방면으로 향하게 돼 출·퇴근시간 상습 정체가 크게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 윤상돈기자 yoonsang@
  • [씨줄날줄] 연좌제의 유령

    제15대 대통령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1997년 10월 초 대선후보 5명이 보수우익을 표방하는 한 잡지사 주최의 ‘사상검증 대토론회’에 참석했다.당시 이인제 후보는,“부친이6·25때 부역을 했으며 그 때문에 고향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하지 못하고 안양으로 지역구를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는 추궁을 당했다.이에 이 후보는 “연좌제가 있을 때 판사로 임관했다.”고 해명하면서 “가족·친척 가운데 (사상)문제가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답답하고,불쾌하고,또 두려웠을 것이다.사상의검증이란 게 버선목 뒤집어 보이듯 쉬운 일이 아니므로 답답했을 터요,연좌제가 폐지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 따위 시비를 붙나 해서 불쾌했을 터이다.아울러 과거에 연좌제가 떨친 위세를 생각하면서 억울하게 당하지나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일말 가졌을 법하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 대선후보를 뽑는 국민경선 과정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다만 옛날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했을 뿐이다.노무현 후보의 장인이 6·25전쟁 때 인민군에 부역을 해 장기 옥살이를 하다결국 옥사했다는 내용을 이 후보 캠프에서 ‘선전’한 것이다.이에 대해 노 후보는 “연좌제가 있던 1977년 판사로 발령받은 것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는,5년전 이 후보가 내세운 같은 논리로 반박하면서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토가 분단되고 남북이 전쟁을 겪은 뒤 우리사회에서 연좌제는 현대판 노비문서나 다름없는 악역을 했다.가족 중에월북자·빨치산·부역자가 있으면 공직에 나서기는 불가능하다시피 했고 8촌이내 친척 중에 해당자가 있어도 해외 출장이 어려울 정도였다.연루된 사람들로서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사회활동에 큰 제약을 받은 것이다.1980년 연좌제 폐지가 헌법에 명시돼 이후 외형상으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사회 저변에 흐르는 ‘연좌제정서’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그런데 21세기 이 시점에서낡고 추악한 연좌제의 유령을 다시 불러내려는 시도를 하는것인가. 그 어리석음이 답답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을 따름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
  • [신경영 트렌드] (14)푸르덴셜의 성공 비결

    최근 1∼2년동안 국내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상품은 종신보험이다.2001 회계연도에 종신보험은 전년도와 비교해 1000%(수입보험료 기준)의 고성장을 이뤘다.더불어 종신보험을파는 ‘남성 전문설계사’들이 ‘아줌마 부대’로 불리는현행 보험설계사 조직을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다. 시장점유율이 1%에 불과한 푸르덴셜생명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삼성·교보·대한 등 ‘빅3’ 보험사들이 최근저금리에 따른 역마진으로 고전하는동안 푸르덴셜은 연간 60%가 넘는 고속성장을 했다.비결이 뭘까. [남성 보험설계사 사관학교] 업계에서 푸르덴셜은 이른바‘남성 보험설계사 사관학교’로 통한다.종신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라면 국내·외국계 할 것없이 모두 푸르덴셜 출신을 데려갔다.96년부터 시작된 스카우트 경쟁으로,현재 241명에 이르는 이곳 출신 남성설계사들이 14개 보험사에서 상무 지점장 등 요직에서 활약하고 있다.최근 한 외국계 생보사의 집요한 ‘설계사 빼내기’도 어찌보면 푸르덴셜 영업조직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신규 영업사원의 채용기준을 푸르덴셜에서 벤치마킹하는 일도 업계에 보편화된 지 오래다. ‘30대 중후반으로 보험업 경험이 전혀 없고 사회경력 2년차 이상인 남성.’ 이 기준은 91년 영업을 시작한 푸르덴셜이 국내 보험업계의 관행이던 연고판매와 리베이트 제공,저축성 상품 판매 등에서 벗어나 미국식 영업방식을 정착시키려는 뜻에서 만든 것이었다.증권사 애널리스트,목사,대기업전문연구인력, 중견기업 부장 등으로 구성된 1200명에 이르는 탄탄한 영업조직은 바로 이 기준과 방침에 따라 탄생했다. [고객만족도 4년째 1위] 푸르덴셜의 보험설계사 1인당 종신보험 계약 건수는 매월 평균 12건.업계 평균(삼성생명 2.5건,외국계 5건)보다 월등하다.덕분에 푸르덴셜은 99년에 80%(전년대비),2000년에 74%,2001년에는 65%에 이르는 고속성장을 거듭했다.보유계약수(2001년말 현재)는 34만 4900건,보유계약액은 24조 8923억원으로 업계 10권이다. 보험계약 유지율은 단연 업계 최고다.2위와 큰 차이가 날만큼 월등하다.푸르덴셜의 보험상품에 가입한 고객이 13개월째에도 보험료를 낼 확률(계약유지율)은 91.3%다.국내 대형사 및 업계 평균은 76.9%에 불과하다.낮은 계약유지율이보험사에겐 이득이고,고객한테는 손해라는 점을 생각하면푸르덴셜의 이같은 실적은 고객과 보험사의 ‘윈-윈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한국생산성본부로부터 99년 이후 4년연속 생명보험업종 고객만족도 1위를 고수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종신보험 상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을 뿐 아니라,보험시장의 질적 성장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그래서 대단하다. 문소영기자 symun@ ■생명보험은 기적파는 일. ‘용장 밑에 약졸없다.’는 말은 푸르덴셜에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한국푸르덴셜 최석진(崔石振·제임스 최 스팩만 ·62)회장은 “생명보험은 가족에게 보장이라는사랑을 남겨주기 때문에 기적을 파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같은 신념으로 93년 한국푸르덴셜을 맡아 ‘큰 바위(Big Rock·푸르덴셜의 애칭)’로 키워냈다.지난 2월엔 푸르덴셜국제보험그룹의 최고책임자(CEO)까지 올라 한국 푸르덴셜이 이룬 탁월한 성과를 미 본사로부터인정받았다. 전쟁고아로 인간적인 노력이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하다.경북 경주출신인 그는 6·25전쟁때 부모를 잃고 부산에 임시로 있던 미국대사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한 것이 미국 진출의 계기가 됐다.1955년(15세) 미군 스팩만 상사에 입양돼하버드대와 콜럼비아대학원을 졸업한 뒤 체이스맨해튼 서울지점장,마린 미들은행 서울지점장,홍콩은행 한국본부장등을 지냈다. ■푸르덴셜 3총사의 자랑. “보험설계사가 되면서 가족사랑과 미래의 꿈을 되찾았습니다.” 푸르덴셜의 대표주자 김종민(金鍾旻) 김민식(金敏植) 유용선(劉容先)씨.이들은 보험수수료 수입이 연간 5600만원 이상돼야 가입자격이 주어지는 ‘100만달러원탁회의’(MDRT)에 이미 3∼4차례씩 참석한 베테랑이다.오는 6월 미국 내시빌에서 열리는 MDRT에도 푸르덴셜의 국내 동료 설계사 660명과 함께 참석한다. 이들이 설계사로 나선 것은 푸르덴셜의 조직문화가 마음에쏙 들었기 때문. ‘가족과 가정에 대한 사랑’ ‘고객에게약속을 지키는 회사’ ‘클린 컴퍼니’…. 회사는 고객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킨다.김민식씨는 “우리회사는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익이된다는 점을 125년의 영업경험에서 깨닫고 있다.”고 설명한다.한 고객이 교통사고로 4급 장해를 받았지만,회사는 설계사에게 3급으로 올려 보험금을 지급하게 한 적도 있다. 대신 푸르덴셜에서는 첫해 보험료를 깎아준다든지,보험가입 대가로 경품을 제공하는 일은 없다.유용선씨는 “회사의방침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라고 말한다.내부 감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컴퓨터에 깔린 불법 프로그램을 적발하고,보험판매를 위해 쓰는 각종 자료가 적법한 지도 확인한다. 고객을 현혹시키는 자료를 보냈는 지도 꼭 살펴본다. 본사에서 설계사에게 접대비(팥빙수값 1만 5000원)의 증빙을 요구했던 일화도 있다. 보험사끼리 종신보험 판매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카우트붐이 일자 직원들이 “우리도 남들처럼 쓸만한 사람 데려오면 안되겠냐.”고 건의한 적도 있다.최석진(崔石振) 회장은그러나 “상품을 베끼고 설계사를 빼갈 수는 있지만, 우리의 문화를 옮겨가긴 어려울것”이라며 개의치 않았다.시간이 흐르면서 정도(正道)경영만이 이기는 길이라는 걸 그들은 배웠다.물론 열심히 일한 만큼 따르는 경제적 보상도 큰힘이 된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 4월의 호국인물 최종봉 공군 소령

    전쟁기념관(관장 朴益淳)은 6·25전쟁 당시 낡은 비행기를 타고 낙동강 최후방어선 사수에 공을 세운 고 최종봉(崔鍾奉·1926∼1951) 공군 소령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경북 청도 출신의 최 소령은 1949년 10월 공군 창군요원으로 참여한 뒤 소위 계급장을 달자마자 6·25전쟁이터졌다.최 소령은 전투기가 1대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공군 연락기인 L-4기에 30파운드 대전차용 폭탄과 수류탄을 싣고 60여 차례나 출격,물밀듯이 남하하는 북한군에게크고 작은 타격을 주었다. 51년 4월 3일 최 소령은 꿈에 그리던 전투기인 F-51(P-51 무스탕과 같은 기종)을 타고 북한군 건물,보급품 집적소,통신장비 등을 파괴하는 전과를 세웠다.최 소령은 을지무공훈장과 함께 소령으로 추서됐다. 김경운기자 kkwoon@
  • 박세리 최연소 그랜드슬램 ‘찜’

    박세리(삼성전자)가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 무대는 28일 밤 캘리포니아 란초미라지의 미션힐스골프장(파72·6460야드)에서 올시즌 첫 메이저대회로 개막하는나비스코챔피언십(총상금 150만달러).여기서 우승하면 지난 98년 US여자오픈과 LPGA챔피언십,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 이어 여자골프 4대 메이저대회를 석권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 특히 이제 막 24세6개월째로 접어든 박세리는 지난해 26세6개월의 나이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캐리 웹(호주) 보다 2년 앞서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남자골프의 타이거 우즈가 지닌 24년6개월25일째 보다 앞서는 기록이 된다. 박세리의 견제세력으로는 아직 메이저 왕관이 없는 김미현 박지은과 대회 2연패를 겨냥하는 애니카 소렌스탐(스웨덴),최근 서서히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는 웹,그리고 미국의 자존심 줄리 잉스터,로라 디아스 등이다. 곽영완기자
  • “남산의 역사 알고 싶으면 남산전시관 구경오세요”

    ‘남산전시관을 아시나요.’ 남산의 사계와 역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남산전시관알리기에 서울시가 나섰다. 남산전시관은 거금을 들여 지난해 7월 개관했지만 전시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산기슭의 하얏트호텔 건너편(구 이광희 패션 건물)에 위치한 남산전시관은 1010㎡의 부지에 지하 1층,지상 1층 규모로 꾸며져 있다. 1층에서는 남산의 수려한 사계와 남산의 역사적 사실, 옛명칭,사적지 등을 컴퓨터 그래픽과 영상물로 보여준다. 지하에는 일제강점기,6.25전쟁,경제개발 등으로 파괴된 남산의 모습과 남산의 숲속이 생동감있게 연출됐다. 특히 전시관 마당에 마련된 야외 자연학습장에서는 할미꽃·제비꽃 등 초화류와 나무 800여종도 볼 수 있다. 최용규기자 ykchoi@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퍼주기’의 유래와 남북관계(Ⅰ)

    며느리가 시집식구 몰래 친정에 식량을 보낸다는 뜻의 ‘퍼주기’라는 말이 대북지원의 대명사처럼 되었다.대량의 대북지원의 시작은 7년 전의 일이다.1995년 북이 수재를 당한 후 식량이 부족해지자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운동이 시작되었다.그런 가운데 일본쌀 40만t의 북송설이 나왔고,당시 김영삼 대통령도 대북 쌀지원을 적극 추진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쌀이 맨 먼저 북한에 들어가게 되었다.첫 항차로 2000t을 실은 배가 ‘95년 6월25일 오후 동해항을 출발해서 청진으로 향했다.“6·25동란 45주년되는 날 북에 쌀을 보내다니.정신이 있는 것이냐.”는 비난도 있었고,이틀 후의 지방자치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포석일것이라는 의심의 눈길도 있었다.일본의 인도주의 입장과 차별화하기 위하여 당시 정부는 동포애를 강조하면서 북에 쌀을 보냈었다. 사실 그때 김영삼 대통령이 북에 쌀을 보내지 않아도 누가비난할 수는 없었다. 김일성 조문문제로 북이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 험한 표현의 인신공격을 연일 해대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은 2억 3000만달러 상당의 우리 쌀 15만t(t당 1500달러)을 북에 보냈다. 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40만t,일본시가 7억 6000만달러)보다 먼저 북에 쌀을 보냈을까? 동포애를 강조했던 것으로 미루어,도리상 그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물론 그렇게 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어 나가려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지원 취지나 기대와는 정반대의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원래 당시 남북당국간 협의에 따라 우리 배는 인공기를게양하지 않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쌀을 싣고 간 우리 배에 북이 강제로 인공기를 게양하도록 했던 것이다.선원이 청진항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10여일 억류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쌀받고 뺨때리기’,‘쌀주고 억류당하기’ 등의 사설이 나오고 일반국민들의 대북정서가 아주 나빠졌지만,그래도 약속한 쌀 수송은 10월초까지 계속되었다. 96년과 97년에도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비록 양은 줄었지만,계속되었다.김영삼정부 후반부 3년 동안 2억 8400만달러(정부:2억 6170만달러),3년간 국민 1인당 약 5,000원을 부담했다. 김영삼정부 후반부터 시작된 대북지원이 김대중정부 출범후에는 ‘퍼주기’로 지칭되는 일이 벌어졌다.그러면 과거에 비해 대북지원과 경협에 과연 돈이 얼마나 들어갔기에 퍼주기논쟁이 계속되고 있는가? 혹시 외국보다 북을 적게 지원하면서도,낯뜨겁게,퍼주기논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체적인 수치를 비교해가면서 차분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정세현 통일부장관
  • 독자의 소리/ 6·25 참전용사 은전 시행해야

    역사적 구국의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국가나 정권은 미래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6·25전쟁 당시 목숨 걸고 조국을지킨 참전용사들을 위한 은전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예산이 없고 수혜 대상자가 많다는 이유 등으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그나마 일부 시행되는 것은 70세 이상 또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자라야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린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그 누가 전장으로 나가겠는가.6·25전쟁 당시 가진 것 없는 ‘무식쟁이’들만 전선에서 싸웠다는 말이 지금도 신빙성 있게 회자된다.또다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지도층 인사들 자녀들이 전선에 나가 옛날의 참전용사들처럼 나라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확신할 수있을까.이른 시일 내에 6·25 당시 전선에서 조국을 위해죽어간 용사들과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구별없는 은전이 이루어져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기 바란다. 오병섭 [충남 서산시 해미면]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만화경] 소도와 군홧발

    중국의 후한서,삼국지,진서,통감 등에 등장하는 소도(蘇塗)에 대해서는 사가들의 해석이 분분하지만,대체로 삼한시대 종교적인 제의가 행해지던 성역으로 해석되어진다.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도망자가 그(소도) 속에 들어가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아…”라는 기록이 전해져 소도에서종교의례를 주관한 천군(天君)의 위엄에 통치자와 세속의힘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소도는 철기시대 들어 사회체계 변화로 사라졌지만 신전과 같은 위상의 공동체 핵(核)이였다는 게 학계의 생각이다.소도는 고대국가가 형성되기 전 제정일치 사회에 존재했던 독특한 종교영역이지만 현대사회의 종교에서도 소도와 같은 불가침의 성역은 엄연히 존재한다.그것은 종교자체가 가진,세속과는 구별되는 신성(神聖)의 고집이요,일반 사회의 속된 세력에 침해될 수 없다는 자존의 영역이다. 과거 우리 종교계의 성역은 유난히 시련이 많은 소도로작용해왔다.천주교의 명동성당이며 성공회의 서울 주교좌성당,불교의 조계사….적지않은 민초들이 군사정권의서슬퍼런 압제에 떼밀려 마지막 도피처로 삼았고,자갈물린 입을 열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식 양심의 최후일성을토해낸 곳도 이 소도였다.기댈 곳 없는 세상의 듬직한 은신처요,익사 직전의 지푸라기였는데 종교라는 이름의 마지막 구원처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도가 각종 집회와 모임의 장소로 애용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보호받지 못하는 위험 지대(?)로 바뀌었다.성당과 사찰의 책임자는 시위대에 철수를 강권했고,심지어는 공권력의 투입을 요청하기까지 이르렀다.잦은 시위로 인한 피해와 신도들의 불편이 큰 이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도는 여전히 시위자들이 모여들고,시국과 관련한양심선언이 발표되는 장소로 애용된다.우리사회에서 종교에의 믿음이 살아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불교 조계종이 ‘소도아닌 소도’ 논쟁에 안팎으로 시끄럽다.지난 10일 조계사로 피신했던 발전 노조원 연행과정에서 경찰이 군홧발로 법회중인 법당을 유린했다는,불교및 시민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친다.“한국불교의 상징이자,수행도량을 침탈한 명백한 만행”임을 주장하는 이들의 비판에는 경찰병력 투입이 총무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불만이 실려 있다.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는 한암 큰스님의 일화가 전해진다.6·25전쟁중 공비의 은신처가 될 것을 염려한 군경의 법당 소이(燒夷)작전에 “내 몸까지 태우라.”며 버텨 사찰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이야기이다.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고 했던가…. 김성호 기자 kimus@
  • 국민연금, 2008년이후 가입땐 손해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미래세대의 연금으로 현 세대가 이익을 보는 구조로 설계돼 있어 2008년 이후 가입자들은 손해를 감수해야 연금고갈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또 연금 수익이나 소득대체면에서 고속득층보다 저소득층이,사무직보다 자영업자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보건사회연구원 석재은 책임연구원이 보건복지포럼 최근호에 기고한 ‘국민연금제도의 가입자 특성별 소득보장 효과'에 따르면 국민연금보험료율이 9%선에서 고정되는 것을전제로,지난 88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당시 만 26세 사무직근로자의 수익비(연금급여총액/보험료부담총액)는 저소득층2.6,중소득층 2.0,고소득층 1.6으로 예상된다. 석 연구위원은 “모든 가입자의 수익비가 1.0 이상으로 설계돼 있는 현행 국민연금제도는 미래의 어느 시점(2040년대중반 추정)에 고갈될 수밖에 없는 재정불안 요소가 내재돼있음을 의미한다.”면서 “연금수급과 보험료 부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제도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연금고갈을 막기 위해 2010년부터 5년마다 보험료율을 1.8∼1.85%씩 올려 16.25%까지 상향조정할 경우 가입시점별 수익비(중소득층 기준)는 2008년 0.93,2018년 0.87,2028년 0.85로 각각 떨어져 2008년 이후 가입자부터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생애 소득유형별 수익비(보험료 9% 고정,88년 만 26세 가입 기준)를 보면 ▲자영업자는 3.6-2.5-1.9(저·중·고소득층순) ▲사무직 중간퇴직자는 2.9-2.1-1.6 ▲사무직 임금근로자는 2.6-2.0-1.6으로 급여혜택면에서 자영업자-사무직 중간퇴직자-사무직 임금근로자 순으로 유리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현재 5년마다 보험료율을 1%씩 상향토록 돼 있고,또 연금재정도 주식 및 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불려나가기 때문에 보고서가 우려하는 것처럼 연금재정고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FRB “”美 올 2.5~3% 성장””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7일 미국 경제의 올해 실질 성장률이 2.5~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은 하원 금융위원회에서의 반기 경제보고를 통해 “”9·11 테러로 인한 차질에도 불구하고 경기순환에서 전형적인 역동성이 다시 발견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스펀 의장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5~3%에 이를 것이며 실업률은 6~6.25%로 연초에 비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해 경제를 제약했던 몇가지 요인들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면서도 “”경제회복의 속도와 폭은 매우 완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6·25때 한국군에 위안부”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에 위안부 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24일 보도했다. 한국의 경남대 객원교수인 김귀옥(金貴玉·40)씨는 23일교토(京都)의 리쓰메이칸(立明館)대학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를 흉내낸 위안부 제도가 한국군에도 있었다고 발표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 교수는 1996년 이후 5년간 인터뷰 등을 통해 “직접위안소를 이용한 적이 있다.”,“군에 납치돼 위안부가 됐다.”는 남녀 8명의 증언을 녹취했다고 말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김경운 기자 marry01@
  • 6·25때 한팔 잃은 전쟁고아 국립대 학장 됐다

    6·25 때 한 팔을 잃은 전쟁 고아가 장애인을 위한 국립전문대학의 학장이 됐다. 새달 5일 문을 여는 경기도 평택 한국재활복지대학 학장으로 취임할 중앙대 문과대학 아동복지학과 김형식(金亨植·56) 교수가 주인공이다.김교수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통틀어 첫 장애인 학장이다. 김 교수는 5살 때인 1951년 1·4후퇴 때 어머니와 북쪽에서 남쪽으로 피란하다 비행기 폭격을 맞아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었다.폭격을 맞은 장소가 충청남도라는 기억밖에없다.어머니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사망했다.팔없는 장애인으로서 혈혈단신이 된 김교수는 재활원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전국 곳곳을 옮겨다녀야 했지만공부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전에 있던 국내 최초의 장애인 재활원에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생활하다 서울로 전학해 고교 1학년을,다시 선교사의 추천으로 경남 거창고로 옮겨 졸업했다.돈이 없어참고서를 못사 친구들의 참고서를 빌려볼 때도 적지 않았다. 김교수는 “어렸을 때는 팔이 없는 것보다 전쟁 고아를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더 큰 고통이었다.”며 고통으로점철된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기 싫은 듯 말을 아꼈다. 고아와 장애인이라는 두가지 불행을 동시에 겪었던 김 교수는 고교를 졸업할 즈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외계층을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그래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입학했다.장애인들이라면 으레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길러야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학비를 대줄 사람도 없고 신체도 부자유스러운 그에겐 대학 생활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미군과 선교사에게서 배운영어 실력으로 통역과 번역 아르바이트 일을 해 학비를 보탰다. 숙식은 대부분 당시 서울 남대문로 5가에 있었던 연세 세브란스병원의 재활원에 의탁,해결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에도 꿈을 키웠다.졸업하던 해인 71년영국 런던대 정경대학원에 유학,사회행정학 석사 학위를땄다.그뒤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다시 석사를,각고의 노력끝에 호주 모나시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75년부터퀸즐랜드대학·모나시대·코완대 등 호주의 3개대에서 19년 동안 사회정책학 교수로 재직했다. 93년 중앙대교환교수로 온 김교수는 그 인연으로 이듬해신설된 이 대학 아동복지학과 학과장을 맡아 23년만에 귀국했다.이중 국적이던 호주 국적도 포기했다.현재 한국장애인총연맹 정책위원장,지뢰피해 장애인지원 사업본부장으로 활동하며 장애인의 권익 옹호에 애쓰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억누르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유없는 폭력은 사라져야 합니다.건강한 사회는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곳입니다.장애인들도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김교수가 강연때마다 장애인들과 우리 사회에 늘 당부하는 말이다. 박홍기 김재천기자 h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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