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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지금 가을은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세간의 어려움 때문에 가을의 낭만보다는 싸늘한 인간적 아픔이 살을 파고 든다.올해의 이 길목에서 유난히도 많았던 자살사건 특히 가족단위 집단 자살사건은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보여 주었다.심화되어 가는 빈부격차와 극단적인 이기주의,어느 한 곳에도 따뜻하게 발 붙일 수 없는 사회에서 인간이 선택해서는 안 되는 최후의 절망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야만성과 문명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란 원시인이자 야수 야만인이자 우상숭배자이고 동시에 이성과 사랑 정의를 누릴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정의한 적이 있지만 요즘 같아선 오직 야수성만이 지배하는 사회로 비친다.절제되지 않는 일차적인 욕망과 감정이 넘실거리는 사회.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괴로운 사회이지만 한편 먹고 살 만한 사람은 그들대로 욕망의 배출구를 찾지 못해 안달을 하는 사회이다. 한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던 영화 ‘바람난 가족’이나 TV 일일극‘앞집 여자’는 어지러운 이 땅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남편 말고 애인이 필요해.” “아내 말고 여자가 필요해.”라는 말은 얼크러진 우리 사회의 내밀하게 가려진 부분을 잘 들추어주고 있다.아니 어쩌면 남성중심적 가족이라는 억압질서의 허위의식을 강력하게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앞으로 전개되는 21세기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전통적인 결혼제도나 가족제도까지도 소멸할 것이라는 관련 연구자들의 보고도 있다.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것보다는 비정상인 것이,원칙보다는 변칙이 지배하는 요즘의 사회문화 추세이다.무엇이 올바른 가치의 기준인지조차 헷갈리는 세상이다.이 속에서 참되고 올바른 진정성을 갖는 사랑보다는 비정상적이고 약삭빠른 사랑이 범람한다.혼란과 모순으로 가득찬 삶속에서도 밤하늘의 샛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난해 5월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전남 영광에서 올라갔던 75세의 정귀업 할머니.그녀는 23살 때 헤어진 북쪽의 남편을 52년만에 만난 것이다.당시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TV에서의 상봉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가시밭길도 그런 가시밭길이 없어라우.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50년 넘게 혼자서 훠이훠이 걸어 왔어라우.눈물을 밥 삼아 살아왔지요.‘눈이 높아 못오나 길을 몰라 못오나’라는 노랫말이 내 삶의 노래가 됐지요.” 상봉하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구절구절 슬픔이 담겨있는 그 자체로서 고도로 집약된 하나의 시 구절이었다.52년간의 세월이 농축된 한편의 연가였다. 정귀업 할머니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시골에 남았다.남편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지만 6·25전쟁으로 행방불명된 것이다.남편 사이에 아이 하나가 있었지만 4살 때 병으로 숨졌다고 한다.그녀는 지금껏 남편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혼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고 돌아온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남편이 살아있다는 그런 믿음의 그늘에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라고 해서 젊은 날의 욕망이 없었겠는가.사랑은 믿음 속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우리는 기존의 가치와 도덕,진리마저도 새롭게 해석되고 도전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요즘의 세태 속에서 정귀업 할머니와 같은 사랑의 진정성도 새롭게 도전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쓸쓸한 가을에 다시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정귀업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이다. 신 일 섭 호남대교수 동양사
  • 美FRB 금리1% 유지/ 상당기간 저금리 지속될듯 이달 소비자지수 큰폭 상승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8일 연방기금 금리를 45년 만에 최저인 1%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FRB는 이날 정책결정 기구인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은행간 하루짜리 단기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1%로 유지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면서 “현재의 저금리가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FRB는 지난 6월25일 마지막으로 금리를 0.25% 내린 뒤 아직 한번도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지 않았다.FRB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경제가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도 인플레 하락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FRB의 현금리 유지 결정으로 민간은행의 표준금리는 계속 4%로 유지된다. 현재의 저금리 기조는 소비자와 기업들로 하여금 지출·투자를 늘리도록 만들어 성장을 촉진하자는 의도다.한편 미국의 10월 소비자신뢰지수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상승하고 지난달 내구재 주문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미국 경제회복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민간 경제조사 기관인 콘퍼런스 보드는 28일 10월 소비자신뢰지수가 81.1로 전달 수정치 77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9월 내구재 수주 실적이 자동차와 사무기기 등을 중심으로 0.8% 증가한 1763억달러에 달해,전달의 0.1% 감소에서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발표했다.이와 관련,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8일 미국 경제가 광범위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mip@
  • “매순간 산소같은 방송역할에 최선”EBS 이사장 오른 방송인 김세원

    이 순간 내가/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9명 이사중 남자들 제치고 이사장에 EBS(교육방송) 이사장 김세원(58)씨를 인터뷰하면서 내내 무엇이 그를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했나 궁금했는데 말미에야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별 생각없이 어떤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는데,피천득의 ‘이 순간’을 암송했다. 김 이사장은 80년 초 MBC의 ‘FM 가정음악실’을 시작하면서 시를 한 편씩 읽었다고 했다.그 후 20여년간 방송에서 낭송한 시가 줄잡아 7300편.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가 ‘이 순간’이니 그의 마음이 오롯이 투영됐을 것이다.‘이 순간’에는 이 순간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삶을 즐기고,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지난달 25일 9명의 EBS 이사 중 호선(互選)을 통해 남성을 물리치고 이사장에 뽑힌 것도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김 이사장은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2학년 때인 1964년동양방송 성우 1기로 입사한 뒤 40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했다.70년대 ‘밤의 플랫폼’(동아방송) ‘안녕하세요 김세원이에요’(MBC)‘김세원의 영화음악실’(KBS),80년대 ‘FM 가정음악실’(MBC)을 거쳐 90년대부터 지난 5월까지 ‘노래의 날개 위에’(KBS)를 진행했다.그처럼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목소리 덕분.심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저음이면서 정확하고,지적이면서 편안하고 감미롭다.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누군가가 ‘안개낀 날의 수은등 같은 목소리’라고 표현했는데 한동안 그대로 인용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웃었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는 목소리뿐 아니라 ‘이 순간’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항상 방송의 영향력을 생각했지요.당연한 얘기이지만,방송인으로서 청취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정직하고자 했습니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이다. “저 때만 해도 여성들은 결혼만 하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이제 여성들도 못할 일이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후배들에게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어요.기회가 왔는데 준비가 없어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도 TV다큐 내레이션 맡아 김 이사장이 주목을 받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고,임화의 시 ‘인민항쟁가’에 곡을 붙인 월북 음악가 김순남(1917∼1983)씨다.‘해방공간의 가장 탁월한 천재 음악가’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 아내와 해방둥이인 두살배기 딸 김 이사장을 남겨두고 1948년 월북했다.그가 작곡한 노래는 88년 올림픽 때에야 해금됐다.그 후 그의 ‘자장가’는 신영옥·김신자가,‘산유화’는 조수미 등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그는 아버지의 부재를 언제 절실하게 느꼈을까.“6·25가 나서 엄마 손을 잡고 피란을 가는데,다른 애들은 아버지가 무동을 태워 가는 거예요.피란 시절,학교에 다닐 때도 선생님이 호구 조사를 하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납치 또는 납북되셨는지 물었는데,‘지게꾼’이라거나 ’미국으로 유학가셨다.’고 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연좌제에 대한 공포로 숨을 죽이며 살다가 88년 납·월북 예술인 작품 해금조치 이후 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그 때 아버지 친구에게 들었던 말들이 지금도 뇌리에 각인돼 있다.“순남이는 예술가야.” “순남이는 불의를 보고는 못 참아.” 90년대 초에는 베이징을 여러차례 드나들었다.아버지의 교향악곡 악보를 찾기 위해서였다.김순남은 53년 모스크바 유학 중 소환당한 뒤 ‘사상문예투쟁’에 휘말려 숙청됐지만 김일성이 “재주가 아깝다.”며 처형은 하지 않아 주물공장 노동자 등으로 전전하며 작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북에서 결혼도 했지만 여자 쪽에서 아이를 낳지 못해 사내 아이를 입양해 키운 것으로 전해들었다.김 이사장은 그 사내가 미공개 악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보고 여러 경로를 통해 사본이나마 입수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40년 방송경험 살려 봉사할 것” 월북 예술가의 딸이 보는 북한은 어떨까.‘경계인’ 송두율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버지는 자유주의자요,이상주의자인데 남에서는 좌익 음악가로 배척당하고 북에서는 부르주아 음악가로 숙청당했습니다.아버지는 정말 절망하셨을 거예요.90년대 초 모스크바에 갔을 때 처음으로 붉은 깃발을 봤는데 아버지를 기만한 깃발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김 이사장은 햇볕정책,북한에 퍼준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도 ‘노 아이디어’라고 했다.북한이 아버지를 홀대했고,아버지의 좌절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요즘도 TV 다큐 프로의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현역인 그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방송이 너무 오락성과 상업성에 치우쳐 있어요.방송의 역할을 새겨야 합니다.EBS가 대안 방송이 될 수 있습니다.산소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EBS의 1년 예산이 1000억원 정도인데 300억원만 수신료와 방송발전기금 등 공적 자금이고 700억원은 자체 광고수입입니다.전체 운영예산을 늘려야 할 뿐 아니라 공자금의 비율을 대폭 높여 공영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남편 강현두(66) 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월남한 집안.친어머니(82)를 모시고 산다.쌍둥이 남매(34) 중 아들은 영국에서 미디어 법을 공부하고 있고,일간지 기자인 딸은 해외연수 중인 언론인 가족이다. 황진선기자 jshwang@
  • [나의 건강보감] ‘한국승마 산 역사’ 이항진 박사

    우리 나라에 그보다 오랜 세월을 말과 벗하며 지낸 사람은 없다.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국 승마의 역사’라고 부른다.그렇다고 그가 ‘명예’자를 앞에 단 마사회의 전직 직원은 아니다.말은 그에게 사실상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승마장 찾아 희수(喜壽)를 넘긴 의학박사 이항진(78·이항진내과의원 원장).일제때 서울대의대의 전신인 경성제대 의예과를 나온 장로급 현역 의사지만 지금도 새벽 여섯시면 어김없이 말등에 몸을 싣는 승마인이다.“하루라도 애마를 못만나면 그날은 하루가 길어요.나 뿐 아니라 그 녀석도 그날은 괜히 심통부리고 까탈을 떨어요.사람과 말이 그렇게 교감하는거죠.” 그가 처음 승마를 접한 건 해방 직전인 1943년 경기중학(지금의 경기고) 시절.특별활동 시간에 승마부를 택한 것이 계기가 됐다.“태평양전쟁때라 학생들도 검도,사격 등 군사훈련을 많이 받았어요.전 그게 싫어 승마를 택했는데,당시 전국을 망라해 승마부가 있었던 곳은 우리 학교와 휘문중,이북의 함남중이 전부였지요.”이렇게 시작된 말과의 인연은 해방 후에도 계속됐다. “당시 조선은행(한국은행 전신)에서 일한 이재간씨나 명성황후의 혈족인 민병선씨 등이 승마 애호가였는데,저도 그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일본인들이 군마를 많이 들여놔 말도 그다지 귀하지 않았구요.”민씨는 일제때 올림픽선수로 발탁되기도 했으며,해방후 헬싱키올림픽에도 출전한 우리나라의 승마 개척자이다. ‘말타면 경마잡히고 싶다.’는 옛말처럼 말을 좋아한 그도 ‘내 말’을 갖고 싶었다.그가 처음 ‘내 말’을 가진 것은 48년.비월용(飛越用)으로 ‘송악’이라는 말을 구입해 당시 신설동 경마장에 맡겨뒀다가 그만 6·25전쟁통에 잃어버렸다. ●고교시절 승마 접해… 벌써 60년 군의관으로 전쟁을 마친 그는 종전후 인촌 김성수씨 배려로 지금의 고려대 이공대 자리에 어렵사리 마련한 한국승마구락부에서 다시 승마를 시작했다.“일제때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인근에 경성승마구락부가 있었는데,일본 사람들 전용이었거든.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몰라.그러던 차에 이 구락부가 생겨 우리나라 승마의전통을 이어갈 수가 있었지.그랬다가 74년 한국마사회가 뚝섬에 승마장을 만들었고,이어 과천에 경마장이 건립돼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른거지.나도 74년부터 뚝섬에서 타다가 86년부터는 과천,이후 99년부터 다시 뚝섬에서 말을 타고 있는데,여긴 실내마장이 없어 날궂으면 못타.” 첫 말 ‘송악’을 잃어버린 그는 한동안 사정이 어려워 말을 갖지 못하다 75년에야 마사회가 불하한 경마용 퇴물 ‘슈퍼스타’를 구입했으나 얼마 타지도 못하고 굽에 종양이 생기는 제암(蹄癌)으로 잃고 말았다.지금 가진 말은 영국산 사라브렛종인 ‘위태천’.3살짜리를 구입해 3년간 정을 들이고 있다.말 나이 여섯살은 사람 나이 스물다섯 정도의 한창때로 힘이 넘쳐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흐뭇하다. ●길들이지 않은 말 타다 중상입기도 회갑(回甲)의 세월 60년을 말과 함께 살면서 그가 터득한 깨우침은 말도 정성을 들이면 사람과 생각까지도 나눌 수 있다는 것.“말이 사람을 먼저 알아요.낯선 사람이 타면 복종하지 않고 날뛰어 떨어뜨리거나 짖궂은 장난을 치곤해요.”지금이야 ‘말도사’로 통하지만 말등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회수는 기억조차 할 수 없다.한번은 길들이지 않은 말을 타다가 떨어져 골반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장애물을 넘던 말이 넘어질 때 자칫 고삐를 당겼다가는 300㎏이 넘는 말에 깔려 목숨을 잃기도 한다.수년 전 미국 상무장관이 로데오경기를 하다 숨진 것도 비슷한 경우다.그러나 초보자라도 조교의 가르침만 제대로 따르면 이런 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전국승마대회 장애물경기 우승 경력에 12년간 한국학생승마연맹 회장을 연임했는가 하면 40년 역사의 승마클럽 승우회 회장을 20년간이나 맡는 등 말과 관련된 그의 이력은 따로 설명이 필요없다.말의 얼굴과 굽만 보고도 질(質)과 격(格)을 가려내는 안목을 지닌데다 하루라도 말을 타지 않으면 허벅지에 살이라도 오른 듯 비육지탄(肉之嘆)의 조바심이 일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는 말에 관해 겸손하다.“승마의 첫걸음은 기본에 충실한 것입니다.무작정 타고 호기를 부리기보다 굽을 씻고,털을 빗기면서 정부터들여야지요.그렇게 교감해야 제대로 된 승마가 가능합니다.” 그의 승마예찬도 귀담아 들을 대목.“승마는 남녀 구별이 없고,동물과 더불어 하는 유일한 올림픽 종목이며,경기중에 반드시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점이 그겁니다.한마디로 신사의 스포츠입니다.그런 만큼 승마인은 예절을 먼저 익혀야 하며,건강은 그 뒤에 얻는 것입니다.말등에서 자질구레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것은 물론 심폐기능,소화기능을 향상시킵니다.또 전신운동이면서 평형감각을 높이지요.” ●‘죽 반공기, 메밀국수, 물만두 5개' 소식 지켜 175㎝의 키에 73㎏의 이상적 체격도 승마로 얻은 건강의 증표다.매일 아침 마장을 찾는 규칙성 말고도 아침에 죽 반공기,점심은 메밀국수 한 공기,저녁은 물만두 5개로 해결하는 철저한 소식주의자다.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소식을 시작했지만,말과 함께 하면서 얻은 것은 결코 소량이 아니라면서 웃는 그의 건강이 참 부럽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이항진 박사의 승마 예찬 승마는 몸의 균형을 잡는 운동이다.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마장마술이 안되기 때문에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기수의 기본이다.이런 점에 착안,독일에서는 소아마비 어린이들에게 승마를 가르쳐 평형감각을 길러 주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병원에서 이 치료법을 사용했으나 부대비용이 만만찮았던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다.대신 일본에서는 승마가 몸매를 가꾸는데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들어 승마클럽에 주부를 비롯한 여성 회원이 크게 느는 추세다. 이 박사가 말하는 승마의 운동효과는 많다.“제가 어려서부터 소화불량이 잦았는데 승마를 시작한 뒤로 그게 나았어요.소화기도 튼튼해지고 심폐기능도 향상됩니다.말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 욕심이나 독단이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보기와 달리 관절 등 전신운동 효과도 큰 편입니다.” 그러나 운동효과만 생각해 막 덤벼 들었다가는 큰코 다치기 쉽다.이 박사도 60년동안 말을 타면서 세번이나 앰뷸런스에 실려갔다.모두가 낙마로 빚어진 사고다.“낙마를 하는 경우는 대개 조교의 가르침을 소홀히 한 경우고,정상적인 과정을 밟으면 승마처럼 안전한 운동도 드물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론 말이 결코 값싼 동물은 아니다.소나 돼지처럼 단순하게 살코기의 무게로 값을 따지지 않고 격(格)을 따지기 때문에 값이 천차만별이다.승마용은 보통 경마장에서 퇴출된 열살을 넘긴 말을 시용하는데,싸게는 1400만∼2400만원에서 3000만∼4000만원씩 하는 것도 있다.얼마전 외국에서는 말 한필이 3000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는데 이는 승마 혹은 경주용이 아니라 새끼를 얻기 위한 종마다. 뚝섬승마클럽 김문식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가져야 승마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가까운 승마클럽엘 가면 정회원의 경우 월 60만원,비회원은 1회에 2만원 정도로 승마를 즐길 수 있다.”며 “승마가 생각처럼 소수계층이 향유하는 특별한 운동이 아니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 “보훈처의 장관급 승격은 국가적 자존심 차원문제”/안주섭 국가 보훈처장

    “국가보훈처의 위상 승격은 공무원들의 직급 높이기나 자리 늘리기가 아닙니다.순국선열이나 독립 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국가적인 자존심 차원의 문제입니다.” 안주섭(安周燮·56) 국가보훈처장은 8일 정부가 추진중인 보훈처의 위상 승격에 대한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월25일 국가유공자와 유가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보훈처의 위상 승격을 약속했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법개정작업이 이뤄지는 대로 이르면 연내에 부로 승격되거나,적어도 차관급인 보훈처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될 전망이다. “국가 정통성을 위해 애국심을 고취해야 할 보훈업무가 본래의 기능보다는 원호(援護)라는 소극적 정책에 머물러 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각 기관별로 다소 혼잡스럽게 나뉘어진 보훈 관련 업무의 재조정에 대한 그의 입장은 의외로 간단하다.군에 가기 전까지 병력 모집 등의 업무는 병무청이,현역 군인은 국방부가,전역한 예비역 관련 업무는 보훈처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그는 이와 관련해 독립유공자나 전상자를 보상하고 생계를 지원하는 차원을 뛰어넘어,군 복무자 특히 일반 의무병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크게 강화하겠다고 밝혔다.군 복무자에 대한 가산점 제도의 폐지 같은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군필자에 대한 사회적인 역차별로 이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분명하게 비판했다. 일반 의무병에 대한 지원책으로 군 복무 때문에 생기는 대학 복학생들의 등록금 차액 할인,군 주특기 관련 전공과목과 일반 교양과목의 학점 인정,군 복무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 사례 신고 접수센터 설치 등도 적극 검토중이라고 그는 밝혔다.현재 전국에 5개 지방보훈청과 20개 지청으로 흩어져있는 지방보훈관서에 대해서는 조만간 광역지자체인 시·도에 맞춰 조직을 재정비,본부는 정책기능을 강화하고 지방은 대민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여 나갈 방침이다. 이밖에 ▲국가보훈기본법 제정 ▲국가보훈위원회 설치 ▲2000병상 규모의 중앙보훈병원 신축 ▲독립기념관,전쟁기념관,서울과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 관리권 보훈처 이관 등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안 처장은 밝혔다.육사 24기 출신으로 육군대학 총장(중장)까지 지낸 전형적인 군인이다.지난 98년 김대중(DJ) 정부 출범때 전역과 동시에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임명돼 정권이 끝날 때까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다가 새정부 출범때 보훈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 근무시 바쁜 생활속에서도 고려-거란 전쟁 연구로 명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U대회 버스추락 외국선수 20여명 부상

    대구 U대회에 출전한 각국 육상선수들을 태운 셔틀버스가 시내버스와 충돌하면서 7m 언덕 아래로 굴러 외국선수 등 2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태국 선수 2명과 홍콩 여자선수 1명의 남은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 졌다. ▶관련기사 22면 29일 오후 6시25분께 대구시 수성구 대흥동 대구월드컵경기장 사거리에서 선수단을 태우고 선수촌으로 이동하던 대구70바 1046호 경상관광 소속 셔틀버스(운전자 배정길·52)가 U턴을 하던 경북 70자 7310호 40번 시내버스(김정만·35)와 충돌,7m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이 사고로 밀리아니 월리드(19.알제리)씨등 외국선수와 코치,경비경찰 등 20여명이 중경상을 입고 인근 성삼병원과 영남대병원,동경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는 없으나 골절환자가 많아 남은 경기 출장이 불가능해져 대회 이미지 손상이 우려된다.이에 대해 대회조직위 관계자는 “도의적 책임은 있지만 출장 불가능한 선수를 구제할 방법은 없다.”고 밝혔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용인에 외국어高

    오는 2005년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비용 전액을 지원하는 외국어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가 설립된다. 경기도 용인시는 외대가 ‘부속 외국어고등학교’ 설립을 위해 모현면 왕산리 용인캠퍼스내 1만 6000여평에 대해 제출한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 변경인가 신청을 공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앞서 외대측은 지난 6월25일 경기도 교육청에 학교설립계획승인신청을 제출했다.이번 도시계획시설 변경 신청이 승인되는 대로 건축허가 등을 거쳐 오는 10월쯤 착공할 예정이다. 2005년 개교 예정인 외고는 학년당 10학급,학급당 35명 규모로 영어·불어·독일어·중국어·일본어과 등 5개 과가 설치된다.학생 전원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원어민 교사는 물론,기숙사를 담당하는 사감과 각종 시설 관리자까지 영어권 출신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학교측은 학생들에게 대학이 갖추고 있는 교육 시스템을 제공하고,학생들이 졸업 후 외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45개국 70여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용인시는 지역내 명문학교유치 차원에서 개교까지 설립비용 198억원 전액을 지원키로 약정했다.학교측은 입학정원의 30%를 특별전형을 통해 용인지역 출신에 할당하기로 했다. 용인 윤상돈기자 yoonsang@
  • [씨줄날줄] 한 탈북여성과의 대화

    탈북자,귀순자로부터 듣는 북한 생활 체험담은 북쪽 체제의 문제점을 생생히 알려주기도 하지만 남쪽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냉정히 반성해 보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최근 관훈클럽 주최 모임에서 만난 평양 출생 탈북 여성 L(39)씨의 얘기도 폐부를 찌르는 내용이 많았다. 그는 6·25때 서울에서 월북해 북한에서 의사가 된 인텔리 여성의 딸로 약사 직업을 갖고 있었다.정치적 성분 불량자로 낙인 찍혀 온 가족이 함흥으로 추방당한 후 약사가 되기까지 과정은 남북 교육체제를 선명하게 대비시켜 준다.그는 중학교 6학년(고3) 때까지 학교에서 이름을 날린 우등생이었으나 성분 문제로 대학 진학이 좌절돼 노동자의 길을 간다.교사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우수 학생 특별 지도에 열을 올리게 되는데 그는 6학년 때 이 대열에서 갑자기 제외됐다.그러나 워낙 뛰어났던 그는 노동 현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3년 이상 실적 우수자에게 주는 진학 추천 케이스로 약대에 진학했다고 한다.비록 좌절이 있었으나 평등한 교육 기회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노모와초등학생 두 딸을 이끌고 탈북한 그는 장차 아이들의 학원비가 큰 걱정이라고 했다.아직은 과외를 받지 않고도 선두 그룹에 들어 있으나 중학 진학을 하면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학원 교육은 북한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그는 약대와 의대의 좁은 문에도 놀랐다고 했다.그는 목숨을 건 탈출에 자격증이나 다른 증빙 서류를 갖고 오지 못해 이쪽에서 약사로서 활동하자면 다시 약대에 입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현행 대입 제도는 탈북자를 뽑는 특별 전형이 있지만 약대와 의대만은 거의 문호를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꼭 약사직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남한에 와서 사람들이 얼마나 정년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그러나 약사는 정년이 없지 않습니까.” 자녀 교육,정년에 대한 불안은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다.그러나 10년 이상 약사로 일해 온 탈북 여성이 약대 재입학을 원할 때 우리 교육 제도는 정말 이를 수용해 줄 방법이 없는 것일까.탈북여성을 통해 우리 교육의 허점을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신연숙 논설위원
  • 소버린·SK측 ‘일촉즉발’

    SK㈜의 최대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이 11일 기자간담회를 갖는다.소버린측이 공개석상에 나서는 것은 지난 6월25일 기자간담회에 이어 두번째다. 소버린은 이날 SK글로벌 지원 중단 결정의 필요성 및 SK㈜ 기업지배구조개선의 원칙과 방법 등에 대한 의견을 내놓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SK글로벌 국내 채권단과 해외 채권단의 의견이 접근하는 등 SK글로벌 워크아웃이 사실상 실현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실제 SK와 채권단 주변에서는 늦어도 다음달 20일까지는 양측간에 SK글로벌 정상화에 대한 양해각서(MOU)가 교환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같은 수순은 소버린 및 소액주주,그리고 노동조합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특히 이들은 지금까지 ‘SK㈜가 SK글로벌 지원에 나설 경우 임시주총 소집을 통한 경영진 교체 등을 추진하겠다.’고 공언,실제로 실력행사 여부 및 시기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최근 SK㈜의 외국인지분율 확대는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SK㈜의 외국인지분율은 지난주 말 사상 처음으로 45%를 넘어섰다.외국인지분 전체와 소액주주(25% 안팎) 지분이 모두 소버린쪽에 동의하면 언제든 임시주총을 소집,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게 된 것.문제는 소버린의 경우 주식보유 기간 6개월 시한에 걸려 9월 말까지는 직접 나서지 못한다는 점이다.소버린이 지금까지 ‘구두 경고’만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소버린은 이달 말쯤 SK㈜가 이사회를 열어 8500억원 출자전환 등의 SK글로벌 지원 방안을 승인하게 되면 템플턴자산운용 등 뜻을 같이하는 외국계 대주주들을 동원,임시주총을 소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그렇게 되면 우호지분을 40% 안팎으로 분석하고 있는 SK측과의 치열한 표 대결이 불가피해진다.양측간 ‘일촉즉발’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아! 낙원에 살 천사가 없는지 천사가 살 낙원이 없는지/ 16년만에 중단편집 낙원?천사? 낸 윤흥길

    “지금까지는 과거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부터는 요즘의 현상이 과거의 어떤 일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분단과 민족’이란 두 화두를 업고 30여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중견작가 윤흥길(61)이 작품집 ‘낙원?천사?’(민음사 펴냄)를 냈다.창작집 출간으로는 ‘꿈꾸는 자의 나성’이후 16년 만이고 신작으로는 장편 ‘꿈꾸는 자의 나성’이후 6년만이다. 작가는 예의 겸손함이 밴 느릿한 어조로 “사실 공백은 별로 없었다.”며 “80년대부터 장편을 주로 쓰느라(그의 대표 장편 ‘에미’‘완장’등은 이 시기 씌어졌다.)중·단편집을 오랜만에 내서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고 설명했다.독자를 위해 작품 세계를 좀 풀어달라고 부탁하자 “표제작 ‘낙원?천사?’는 사랑이 없는 비정한 세계를 살펴본 것이고 ‘산불’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문제를 찾아본 것”이라고 말한다.“나머지 중편 ‘쌀’은 주식인 쌀이 알게 모르게 민족 정체성에 미쳐온 영향을 더듬어본 작품”이라고 덧붙인다. ‘낙원…’과 ‘산불’엔 대학교가 공간적 배경이다.95년부터 한서대교수로 재직한 그는 “학생과 접촉이 늘다 보니 캠퍼스 풍경이 관심사로 자리잡았다.‘낙원…’는 어느 지방대 단신뉴스가 모티프였는데 동료교수의 비슷한 경험도 살려 보편적 이야기로 만들었다.대학 안에서 기숙하다가 얼어죽은 ‘천사’라는 별명의 부랑 청소년 오군을 소재로 한 작품.오군의 죽음을 추적하는 학보사 기자가 담은 다양한 인물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그의 죽음을 방치했을지 모를 야박한 세태를 상징한다. ‘산불’은 한서대에 있었던 실화에 소설이라는 무늬를 씌운 작품 이라고 설명한다.고아 출신의 주인공이 학생운동을 하던 중 고문에 못이겨 친구들 이름을 자백한 죄의식에 시달리다 시골의 신흥 대학촌에서 숨어들어가 살면서 겪는 방화 누명 등을 다룬 것이다.‘쌀’은 월남한 장인·장모가 북한 쌀로 장모의 병을 치료하는 해프닝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이번 작품집엔 작가가 30년전 ‘장마’에서 탁월하게 조화시킨 분단과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배어있으면서도 문학적 절차탁마가 더해졌다.작가는 “조상의 해학미와 민족의 특성에 쏠리는 관심은 어쩔 수 없다.”라며 “젊은이들이 구질구질한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안좋아 한다고 소설로 쓰지 않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단호하게 말한다.그는 “반세기 동안 숱한 정책을 적용했지만 통일은 여전히 요원한 현실에서 문학을 매개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10월경 창작과비평사에서 연작소설집 ‘때와 곳’(가제)도 펴낼 계획이다.초등학교 졸업후 40년만에 모인 동창생들이 회고하는 6·25전후의 이야기로 9편의 연작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보탠 11편의 소설집이다. 이종수기자 vielee@
  • 정몽헌회장 자살 / 어떤 혐의 받아왔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지난 한달 동안 대북사업 지휘자로,대북송금의혹 공판 피고인으로,또 현대 150억원 비자금 의혹사건 수사대상으로 숨가쁘게 움직였다.특히 7월31일부터 8월2일까지 3일 동안 잇따라 검찰수사와 대북송금 재판을 받는 등 심리적 압박감이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때문에 검찰의 고강도 압박수사와 재판출석 등이 자살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3일동안 잇따라 출두 대검 중앙수사부는 지난달 22일 ‘현대 비자금 150억원’ 사건에 대해 본격수사를 착수한 이래 정 회장은 지난달 26일과 31일,8월 2일 모두 3차례 출퇴근 조사를 받았다.고강도 조사는 비자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영완씨가 해외로 도피한 상황에서 불가피했다.김씨의 귀국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뇌물을 준 것으로 시인한’ 정 회장의 진술은 검찰수사의 최대 관건이었다. ●‘150억+α' 압박수사 부담 느낀듯 검찰은 비자금 150억원이 양도성예금증서(CD) 형식으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전달되는 과정 등을 집중추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 과정에서 검찰이 현대 계열사의 분식회계나 그룹 전체 비자금에 대한 수사확대라는 압박용 카드를 사용해 정 회장이 심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도 점쳐진다.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폭언 등 강압수사가 정 회장의 자살 원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정 회장을 하루 12시간씩 조사했지만 대담 형식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했다고 말했다.또 김&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명이 번갈아가며 대동했고 수시 접견과 식사시 동행 등을 허가하는 등 재벌총수에 대한 배려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했다.검찰은 정 회장이 진술을 거부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지도 않았으며 특검이나 재판 과정과는 배치되는 진술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검찰 관계자는 “정 회장이 조사받는 입장에서 정신적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수사팀이 여러가지 배려를 한 입장에서 검찰수사와 정 회장의 자살을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정 회장의 변호인측도 “적법절차에 의해 검찰조사가 이뤄졌다.”면서 “정 회장이 조사받을 때마다 동행했지만 이상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송금공판서 경협 타당성 주장 지난 1일 ‘대북송금 의혹 사건’ 3차 공판에서 정 회장은 앞선 재판과는 달리 평소보다 많은 진술을 했다.“예.”,“아니오.”의 단답식 답변에서 벗어나 특유의 느린 말투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대북사업과 남북관계 개선과 경협을 위해 이뤄진 대북송금이 폄하되는 것에 대해 답답했던 심경을 표현했다. 정 회장은 이날 변론요지서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대북송금은 경협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면서 “이번 사건이 남북경제활동을 투명하게 하는데 일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 1억달러 지급 약속 부분에 대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국익을 이유로 진술을 거부했던 것과는 달리 “4차 예비접촉 때 북한을 통해 정부가 1억달러를 보내기로 했다는 것은 알았다.”고 진술했다.그러나 박 전 장관은 “1억달러를 대신 지급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없다.”며 부인했다.미묘하게 입장이 엇갈렸던 탓인지 3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정 회장은 바로 옆에 앉은 박 전 장관과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홍지민 정은주기자 icarus@ ■특검·대검 수사 및 재판 일지 ▲2003년 1월23일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정몽헌 회장 출금 ▲〃4월17일 송두환 특별검사팀 대북송금 의혹사건 수사착수 ▲〃5월30일 특검,정 회장 소환조사 ▲〃6월7일 특검,정 회장 출금 일시정지 ▲〃6월9일∼13일 정 회장,방북 ▲〃6월14일 특검,정 회장과 이익치 전현대증권 회장 대질조사 ▲〃6월25일 특검팀,수사발표 및 정 회장을 구외국환거래법,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및 증권거래법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7월4일 정 회장,대북송금 1차공판 출석 ▲〃7월21일 정 회장,대북송금 2차공판 출석 ▲〃7월22일 대검 중수부,현대비자금 150억 사건 본격착수 발표.‘북송금’ 제2특검 추진 무산 ▲〃7월23∼25일 정 회장,방북 ▲〃7월26일 대검 중수부,정 회장 1차 소환조사 ▲〃7월31일 대검 중수부,정회장 2차 소환조사 ▲〃8월1일 정 회장,대북송금 3차 공판 출석 ▲〃8월2일 대검 중수부,정 회장 3차 소환조사 ▲〃8월4일 정 회장,현대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투신자살
  • [열린세상] 돈 때문에 죽는 사회

    빚 독촉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생활비는커녕 아이들 병원비도 없어 안 죽겠다고 울부짖는 자식을 껴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주부가 있다.카드 빚을 돌려 막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어머니와 아들의 목을 조른 가장이 있다.아예 궁핍한 삶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온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함께 목숨을 끊는 일도 있다.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너무나 참담하고 슬픈 일이다.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부실기업들을 과감하게 퇴출시키고 기존의 조직과 인원을 대폭 축소했다.이에 따라 수없이 많은 실업자들이 생계수단을 잃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이 과정에서 정부는 경기회복을 명분으로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 소비와 투자를 적극 권장했다.그러자 신용카드 발행이 넘쳐나고 나라는 빚 소비와 부동산 투기로 들떴다.하지만 정작 일자리 마련을 위해 필요한 기업들의 투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부유층에는 호화 소비와 투기 혜택을 집중시킨 반면 빈곤층에는 생계 불안과 빚더미의 굴레를 씌운 결과를 낳았다.정부의 구조조정과 경기부양 정책이 남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쫓아낸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시킨 셈이다.이렇게 되자 우리 사회는 공동운명체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부도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그러나 극빈층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 안정망은 절대적 조건이다.이를 무시하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소비와 투기까지 조장하여 서민들의 삶을 파탄으로까지 몰고 간 것은 반사회적 행위이다.침몰하는 배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인명부터 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급해도 빈민층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칙이다. 돈 때문에 죽는다는 사람들의 인식은 더 큰 문제이다.아무리 살기가 어렵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스스로 끊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우리 민족은 수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가난과 고난 속에 살아왔다.그러나그럴수록 강인한 생명력을 기르며 정체성을 지키고 꿋꿋이 살아왔다.6·25 전쟁 때 나라가 두 동강이 난 상태에서 1000만명이 가족을 잃고 헐벗은 채 전쟁터를 헤매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어떻게 다니던 직장을 잃거나 카드 빚을 돌려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을 하는가? 그것도 자신에 그치지 않고 자식과 부모의 생명까지 빼앗는가? 참담한 죽음의 행렬은 무조건 중단되어야 한다.이를 위해 정부는 극빈층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가를 파악하고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현재 부양자가 없고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공식적 극빈층은 135만명에 이른다.또 극빈층은 아니지만 가족이 실직을 하고 빚이 많아 사실상 생계가 어려운 준 극빈층이 300만명을 넘는다.전인구의 10%가 삶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며 모든 책임을 근로자에게 떠넘기는 기업정책은 지양돼야 한다.임금인상 억제,일자리 나누기,기업투자 확대,신산업 발전 등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사는 공생의 전략이 필요하다.더 이상 가난한사람들을 방치하지 말고 재기의 꿈을 안겨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사람들의 의식개혁도 절실하다.돈은 벌어야 한다.그러나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우리는 남을 이기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약육강식의 경제전쟁 시대에 살고 있다.이 전쟁에서 이기고 사람답게 사는 선진국이 되려면 정신무장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생활고에 넋을 잃은 나약한 패배자에서 벗어나 세상이 무너지는 전쟁 포화 속에서도 강인하게 일어서는 의지인으로서 우리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이것이 진정 경제동력을 찾고 동북아 중심국가로 가는 길일 것이다. 이 필 상 고려대 교수 경영학
  • 박지원·이근영씨 보석 기각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金庠均)는 ‘대북송금 의혹사건’과 관련,구속기소된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과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가 낸 보석신청을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할 만한 사안이 아닌 데다 두 피고인을 풀어줄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지난달 21일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고 산업은행에 대출압력을 가했다는 부분이 무죄”라며,이 전 총재는 지난 6월25일 “백내장 등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고 대출 당시 실정법 위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각각 보석을 신청했다. 강충식기자
  • 양길승 실장 향응 파문 / 제1부속실장이 청와대 ‘뒤통수’

    ‘새만금 헬기파문’에 이어 양길승(사진·47) 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이 불거지는 등 청와대에 악재가 계속 터지고 있다.도덕성을 강조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힘이 빠지는 일이다.양 실장은 노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최측근이다. ●양 실장의 향응 경위 양 실장은 지난 6월28일 청주를 방문,민주당 충북도지부 간부 등 40∼50명과 저녁을 했다.지난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함께 일했던 오모 충북팀장이 “국민경선 때 고생했던 사람들을 격려해 달라.”고 요청,참석하게 됐다는 게 양 실장의 얘기다.양 실장은 당일 서울로 올라오려고 했으나,오 팀장 등이 “이대로 헤어지면 서운하니 가볍게 한잔 하고 가라.”고 제안해 2차로 K나이트클럽을 갔고 R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2차에는 양 실장과 오 팀장,K나이트클럽과 R호텔의 소유주인 이모씨 등 5∼6명 정도가 자리를 함께했다.양 실장의 향응문제가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대목은 이씨가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양 실장은 31일 “수사와 관련한 어떤 대화도 나눈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양 실장이 묵은 R호텔의 스위트룸 숙박료는 14만원 정도로 알려졌다.윤태영 대변인은 “술값과 호텔비는 오씨가 계산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구두 주의조치로 끝내 양 실장이 청주를 방문해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는 것은 7월8일 지역언론인 충청리뷰의 인터넷판인 오마이충북에 처음 공개됐다. 이호철 청와대 민정1비서관은 이 내용을 토대로 양 실장에게 사실을 확인했다.당시 양 실장은 “친목모임에서 술을 마셨다.”고 보도내용을 대부분 인정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구두경고를 하기로 했고,문희상 비서실장도 동의했다.하지만 오마이충북에는 이씨가 동석했다는 내용은 없었다.청와대는 당시 술값을 누가 계산했는지 등은 조사하지 않았다.청와대가 새만금사건의 책임을 물어 비서관급 3명을 경질한 게 6월25일이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향응제공 건에 대한 징계수위가 낮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양 실장 건은 특히 청와대가 지난 5월부터윤리강령을 통해 3만원 이상의 금전·선물·향응을 제공받는 것을 금지한 이후 발생,비판을 받고 있다.윤태영 대변인은 “민정수석실의 1차 조사는 비서실장까지만 보고됐다.”면서 “대통령은 오늘 아침 이호철 비서관으로부터 경위 등을 보고받았다.”고 설명했다. ●제2의 음모론? 한달 전에 보도됐고,청와대가 당사자 경고로 매듭지은 사건이 불거지게 된 배경을 놓고 말들이 많다.비디오테이프까지 나옴으로써 음모론을 둘러싼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386핵심측근이 양 실장을 몰아내고 민정비서실쪽에 타격을 주려 한다는 설도 있고,반대로 386핵심측근들을 공격하는 측이 퍼뜨렸다는 관측도 나온다.청주 현지 인사가 청와대에 불만을 품고 양 실장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추측도 있다.윤태영 대변인은 “제2음모론은 실체도,근거도 없는 것”이라며 부인했다. 노 대통령은 “양 실장이 (회식과 술자리에)개인적으로 빠지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을 수도 있겠지만,어울려 술 마시는 상황이 여러 가지 논란이 될 수 있다.”면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주의가 환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실장은 누구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 대통령의 광주경선을 승리로 이끌어 낸 ‘노풍(盧風)’의 일등공신이다.2000년 12월 서갑원 의전비서관의 소개로 노 대통령과 처음 만난 뒤 대선 캠프에 합류,2001년 3월부터는 광주·전남지역 조직책을 맡았다.경선 승리 후에는 후보 의전팀장을 맡았다.앞서 전남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전남대·순천대·목포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지냈다. 곽태헌기자 tiger@
  • 停戰 50년 동맹 50년 / (하)정전협정과 방위조약

    북한 핵위기 속에 27일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맞는다.극대화된 위기는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 것일까.다시 움트기 시작한 북핵 문제 해결 분위기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정착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통념을 뒤엎는 논리와 실증 자료로 ‘한국전쟁’에 대한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소장학자 박명림 교수는 사실상 사문화된 정전협정을 새로운 평화협정·체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작전지휘권 회복 등 한·미 방위조약의 손질도 필요하다고 밝혔다.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북한의 고립없는 봉쇄정책’을 제안했다.정전협상 당시 유엔군 통역장교였던 원일한 박사도 평화체제의 조속한 정착을 기원했다. ■박명림교수가 제시한 방향 ●평화협정 초안 마련할 때 ‘한국전쟁’전문가로서 50년 전 체결된 정전협정의 의미는. -한반도가 분단관리체제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평화와 전쟁의 중간상태이다.승자 없이 맺어진 협정은 이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균형을 잡아준 냉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승리를 유보한 가운데,정전의 조건을 교환했지만 향후 평화를 위한 조건을 담지 않았다. 정전협정은 엄청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정전체제가 규정해놓은 비무장지대(DMZ)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대가,가장 오랫동안 대치해온 사실상의 MMZ(Most Militarized Zone)이다.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전쟁의 수백배에 달하는 폭력의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 평화협정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나. -정전협정 50년을 대체할,향후 미래 100년,200년의 민족 평화를 담보할 구상을 협정에 담아야 한다. 전쟁의 완전한 종식선언을 담아야 한다.병력과 무기증강을 포함한 일체의 군비확장을 금지,남북 대치의 논리에서 민족 전체의 공동안보와 협력안보로 대체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다음은 전후 청산이다.미귀환 국군포로,이산가족 등 인적 청산 문제를 짚어야 한다.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거론되겠지만,주한미군 철수가 한반도 평화보장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평화공존을 공식화하면서 막연한 상태로 놓아둔 통일 담론도 구체화해 한반도 미래의 그림을 민족앞에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한 과제와 전략은. -한반도 평화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제안을 통해 시민사회로부터 의회로,의회로부터 정부로,그리고 북한과 유엔 및 미국·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 연결되는 다층 다면의 해법을 시도해야 한다.평화 연결고리의 형성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평화협정 당사자로 한국을 배제하고 있는데. -북한 김일성 주석도 74년 3월까진 한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하자고 했다.한국은 분명한 당사자다.꾸준히 이야기해야 한다.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실패한 이유는 남한이 배제된 채 핵위기를 봉합하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이다.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했으면 달라졌을 것이다.동시에 한반도 분단과 평화는 국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보장이 없어선 안된다.남북한 당사자간 평화협정 체결에 국제사회가 이를 보장하는 이중적 어프로치가 필요하다.위기가 클수록 이후 구축해낼 평화체제는 안정적이다. ●한·미 동맹관계와 방위조약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전협정과,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한 한·미동맹은 한국전쟁의 쌍생아이다.남북 적대 상태의 완화와 한·미동맹 구조의 완화는 맞물려 있다.이것의 전략적 지점을 잡아야 한다. 먼저,작전지휘권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북한이 우리를 당사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논리는 작전지휘권 없는 군대와 평화협정을 체결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주한미군 주둔과 다른 문제다.미국과 우리의 국익을 적절히 조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지휘권 환수는 당사자 역할뿐 아니라 대미 외교적 자주권,주권 국가의 위상과도 관련된다.안보와 평화에 독자적 비전과 전망,구상을 갖지 못하면 미래는 어둡다.그러나 현 단계에서 북한과의 군사대결이 첨예하기 때문에 안보 불안에서 초래되는 경제악화 등이 문제가 된다.따라서 작전지휘권 문제는 남북한 갈등의 완화 정도와 맞물려 들어가야 한다.자주성을 확보하면서 남북한이 평화체제를 위한 합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하다.안보 자주 없이 평화체제의 구축이 없고,평화체제 구축 없이 안보자주는 없다. 북한 정권의 신뢰성을 문제삼는 시각도강하다. -한반도 분단 50년 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지난 김대중 정권 때 남한의 햇볕정책과 북한의 강성대국론이 만난 사실이다.햇볕정책 추진을 밝힌 같은 해 북한은 강성대국 군사제일주의로 나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왔다.이제는 대북 대화에서 북한의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핵 등 대량살상무기,인권문제 등을 지적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핵심을 빼고 이야기하면 남북한 갈등 해소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반전 평화운동과 반핵 및 북한 개혁운동을 함께 해야 한다.양분화돼 있는 시민사회의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인권과 반핵은 원래 진보파의 논리다.움직이는 중용을 잡아야 한다.친미·반미 논쟁보다 우리 공동체의 이익,발전에 어떤 것이 이익이냐로 봐야 한다.이념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중국 외교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념과 실용주의를 분리하는 것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박명림교수는 누구 박명림 교수는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와 일본의 와다 하루키 등 외국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한국전쟁 연구를 우리 식의 문제의식과탈이념적으로 분석,평화대안을 제시한 학자다. 북한 인민군 내부문서와 미 육군 극비문서 등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분석한 ‘한국 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한국 1950-전쟁과 평화’(2002)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그는 한국전쟁을 남북 갈등과 세계 냉전구조가 겹쳐진 ‘내전적 국제전’으로 규정,계급갈등으로 보는 커밍스의 수정주의론을 뒤집었다는 국내외 평가를 얻었다. ‘한국전쟁 발발과 기원’으로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으로 영문판 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일어·중국어·독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40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및 북한실장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협동연구학자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2002년∼) ■커밍스교수 제안 한국전쟁의 수정주의적 연구로 널리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5일 “지난 71∼72년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채택한 정책인 ‘고립 없는 봉쇄정책’과 같은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제안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날 학술단체협의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정전체제를 넘어 평화체제로’ 주제의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강연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대화와 출구 없는 무조건적인 대북 봉쇄정책의 위험성을 경계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전쟁을 종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위험하고 실패한 북한 고립을 고착시켜 왔다.”면서 “한반도의 전철을 밟는다면 이라크 역시 세동강 나고 5년 뒤 내전이 발발해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커밍스 교수는 지난 2001년 출범 당시의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북한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기술을 수입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나,우라늄 농축시설건설 증거를 확보한 지난해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커밍스 교수는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10월 켈리 특사의 방북 때 북한과 대결하기 위해 비로소 이 사실을 거론,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심각한 위기로 만들어 (북·미)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렸다.”고 말했다. ■정전협정 지켜본 원일한박사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정전상태가 50년이나 계속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1951년 7월10일 개성에서 열린 첫 정전협상부터 53년 7월 협정서명 직전까지 유엔군 협상단의 수석통역장교로 활동한 원일한(86·미국명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현 연세대 이사) 박사는 “당시에는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3개월 뒤면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국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정전체제의 극복과 관련,원 박사는 “원칙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대립하기보다는 자꾸 북한에 외부 사람들을 들여보내야 북한 사회가 변한다는 것이다. 원 박사는 그러나 북한이 한국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갖고 있는 한 분단의 극복은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원 박사는 “내 기억으로 북한이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입으로 말한 것은 김 전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딱 한번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특히 젊은이들의 반미 감정에 대해 원 박사는 “주체성 또는 강한 독립정신의 발현”이라고 해석했다.원 박사는 그러나 “독립감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냉정하고 논리적인 판단력을 결여하면 감성적으로 흐르기 쉽다.”고 경계했다.원 박사는 또 “나의 처가인 호주는 현재 미국과 가장 절친한 나라이지만,호주 사람들조차 미·호주 관계는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면서 “현재 미국이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미국과의 관계는 불평등하다고 느끼게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
  • “未堂의 詩 - 행적 따로 평가 받아야죠”/36년만에 교정 떠나는 서울대교수·시인 황동규 씨

    이사를 앞둔 탓이었을까.이번 여름을 끝으로 36년 만에 교정을 떠나는 서울대 황동규(黃東奎·65) 영문과 교수의 연구실은 좀 어수선하게 느껴졌다.하지만 베토벤 현악 4중주의 바이올린 선율과 오래된 책 냄새가 떠도는 방에서 따뜻하면서도 형형한 눈빛을 한 황 교수는 ‘시인마을 촌장’의 품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만해(萬海)와 소월(素月),그리고 미당(未堂)의 궤적을 잇는 한국 서정시가의 ‘적자(嫡子)’ 황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서정시의 기본이 바로 ‘사랑 노래’죠” 황 교수 작품의 스펙트럼은 40여년 시작(詩作)의 세월 만큼 다양하다.‘즐거운 편지’,‘조그만 사랑노래’ 등의 사랑시부터 시작,‘계엄령 속의 눈’,‘삼남에 내리는 눈’ 등 암울한 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한 참여시의 경지까지 나아갔다.80년대 이후로는 ‘풍장’ 연작시와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몇년 전 영화 ‘편지’로 널리 알려진 황 교수의 ‘즐거운 편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대중적이면서도 평론계에서도 높게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즐거운 편지’는 고려가요 ‘가시리’로부터 내려오는 ‘기다림’이라는 한국 사랑노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면서도 “6·25 전쟁 직후 풍미하던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자세가 나타났다.”고 자평했다.사랑 역시 시간의 흐름에 소멸한다는,자연 법칙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말이었다. 왜 결국 사라지고 마는 사랑과 죽음에 줄곧 매달렸을까.황 교수는 “‘사랑과 죽음’은 삶의 앞뒷면을 보여준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그는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랑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의미 있는 법”이라면서 “고통을 받아들여야 결핍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 시의 핵심 개념은 ‘홀로움’.황 교수는 “외로움은 수동적으로 혼자 남겨진 상태지만 홀로움은 선택에 의해 혼자 있는 것”이라면서 “홀로움은 결국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사회망의 기초가 된다.”고 말했다.홀로움이 개인성의 극대화로 해석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미당에게 무언의 시위를 했다” “고은 선생의 미당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미묘한 질문을 던졌다.황 교수가 미당의 추천으로 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을 뿐 아니라 평소 가장 존경하는 시인으로 미당을 손꼽아 왔기 때문이다.지난해에는 모 신문사에서 제정한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친일 행각은 접어두더라도 80년대 초 군사독재 정권에 아부하던 미당의 행적은 용납하기 어려웠다.”면서 “당시 평론가 고(故) 김현 선생과 매년 다니던 세배를 2,3년동안 다니지 않는 등 미당에게 무언의 시위를 했다.”고 회상했다.황 교수는 그러나 “시인의 삶에 문제가 있다고 시가 엉터리라고 하는 것이나,시가 좋으니까 과거의 것을 일절 묻지 말자고 하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친은 제 문학의 표본입니다” 황 교수의 아버지는 ‘소나기’와 ‘목넘이 마을의 개’를 지은 소설가이자 오랫동안 경희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고(故) 황순원 선생이다.보기 드문 ‘부자 문학가’인 셈이다. 인터뷰 내내 황 교수는 선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선친의 그늘에서부터 헤어나오기 위해 나름대로 싸워왔기 때문이다.“선친은 소설 외에는 다른 글을 쓰지 않은 깨끗한 선비 같은 분”이었다고 황 교수는 떠올렸다.수필 등 체취가 묻어 나오는 ‘잡문’을 써 온 것도 문학적 스타일을 세우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선친에 대한 존경심 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황 교수는 “대학 시절 회현동 2층 집에서 새벽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1층에 내려갔을 때 서재에서 불을 밝힌 채 창작에 매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면서 “선친은 예술인의 엄격함을 보여준,내 문학적 인생의 무시할 수 없는 표본”이라고 떠올렸다. ●“젊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은 쉽게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법.슬쩍 ‘즐거운 편지’의 대상이 됐던 분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황 교수는 “선친이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동료 선생님의 딸”이었다고 들려줬다.“결혼한뒤로 미국에 이민 간 그분을 한국에서 몇 번 만나 술도 마셨지만 예전의 감정이 안 오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황 교수는 올해는 아무것도 안 할 계획이다.“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게 이유다.문단에서 꼽히는 ‘여행광’이지만 무작정 떠나는 일도 자제할 생각이다.시도 억지로는 안 쓸 참이다. 황 교수는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교수님’이지만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다.점잖으면서도 멋있다는 게 그 이유다.종종 이메일로 ‘팬레터’까지 받을 정도다.황 교수는 “언제나 젊어지려고 노력한다.”면서 “학생들에게 너무 논리에만 얽매이지 않고 감수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전쟁범죄 재발 않도록 공정 재판”르완다 ICTR 비상임재판관 박선기 변호사

    “집단학살·강간 등 전쟁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아프리카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비상임재판관으로 선출된 박선기(사진·49) 변호사는 17일 “6·25전쟁을 통해 전쟁의 잔혹성을 경험한 민족으로서 ‘군사적 필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범법행위를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ICTR는 94년 르완다 내전에서 발생한 대량학살 및 국제인도법 위반자를 처벌하기 위해 유엔이 설립한 국제재판소. 한국인이 국제형사재판 분야에 진출한 것은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권오곤 옛 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에 이어 세번째다. 박 변호사는 임기 4년의 비상임재판관 18명중 한명으로 지난달 선출됐다.아프리카 탄자니아 수도 아루샤에 위치한 재판소에서 내년부터 2년 정도 활동하게 된다. 박 변호사는 이같은 국제활동 외에 국내에서 미군 병사의 변론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군도 부모·형제를 떠나 이국땅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라면서 “대한민국 국민과 동일하게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어 “최근 촛불시위 등으로 미군이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된 상태”라면서 “다양한 시각에서 한·미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법대를 졸업한 박 변호사는 78년 군법무관으로 임용된 뒤 육군 법무감과 병무비리 합동수사본부장 등을 거쳤다. 8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변호사시험에 합격,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프로야구 /‘SK 태풍’ 계속될까

    SK의 돌풍은 계속되나. 올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가 57%인 303경기를 소화하고 전반기를 마친 가운데 돌풍의 주역인 SK의 행보가 하반기 관심사다. 당초 올시즌 판도는 삼성 기아의 양강,현대를 필두로 한 LG 두산 SK의 4중,한화 롯데의 2약으로 점쳐졌다.그러나 전반기를 치른 결과 항상 그렇듯이 예측은 빗나갔다.현대 SK 삼성이 3강을 구축했고,두산 롯데가 바닥권에서 헤매 선두와 하위권이 극명하게 갈렸다. 초반 삼성 기아의 연승 행진 속에 ‘찻잔속의 바람’에 불과했던 SK는 경기를 더하면서 거센 바람을 일으키더니 마침내 태풍으로 발전했다.지난 5월24일 창단 이후 첫 정규리그 단독 선두에 나섰으나 주위에서는 일과성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하지만 6월25일까지 무려 한달동안 단독 선두를 고수했고,이후 삼성과 선두자리를 놓고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 13일 현대(48승28패2무)에 패해 승차없이 2위(48승31패2무)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SK의 원동력은 젊음.마운드에서는 고졸 3년차 채병룡(7승)과 고졸 2년차 제춘모(8승),루키 송은범(5승)이 겁없는 활약을 펼쳤다.물론 안방마님 박경완의 투수리드가 큰 힘이 됐다.타격에서도 고졸 5년차 이진영이 불방망이를 휘둘러 최다안타(102개) 1위,타격(타율 .324) 2위에 오르며 타선의 핵이 됐다.여기에 이적생 조경환과 외국인 선수도 한몫했다. 그러나 이들은 전반기를 마감하면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강인한 힘과 정신력으로 막판 뒤집기쇼를 펼치던 무서운 뒷심이 사라진 것.SK는 적기에 일주일간의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았다.흐트러진 심신을 추슬러 하반기 상승세를 이어가며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낼지 주목된다. 김민수기자 kimms@
  • “복날 음식 형편따라 즐겼지요”/서울 班家음식의 산증인 김숙년씨

    현대인들은 24절기를 대부분 잊고 지낸다.하지만 복날만큼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여름 무더위가 지겨웠던 까닭일까,여름 보양식을 즐겁게 먹었던 기억 때문일까. 초복(16일)을 앞두고 전통요리연구가 김숙년(金淑年·69)씨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마른 장마 속에 몹시 더웠던 이날 그는 2시간 남짓 계속된 인터뷰 동안 앉음새를 흩뜨리지 않았다.흰색 모시 저고리에 포도색 치마로 곱게 차려입고 단아하게 화장을 한 김씨는 일흔을 바라보지만 수줍어하는 듯한 소녀티가 가시지 않았다.목소리 또한 낭랑했다. ●혀끝의 기억으로 350가지 맛 찾아 김씨는 최근 100년간의 서울 토박이 반가(班家) 문화를 대변한다.그의 고조부 김석진(金奭鎭) 이전 11대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살았고 증조부 김영한(金寗漢)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고 있다. 더위를 화제로 삼은 김씨는 복날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옛날엔 초복은 여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말복은 한여름을 넘겼다는 다소 허전한 느낌으로 맞았지요.제가 어릴 때만 해도 복날엔 ‘복놀이’가있었지요.학동들은 천렵을 나서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았고,어른들은 황구를 몰고 산등성이로 넘어 갔지요.” 복날 음식 이야기가 끝이 없다.복날 형편은 가세에 따라 다 달랐다.서민들은 보신탕과 추어탕을 즐겼고,반가에선 육개장이나 삼계탕으로 더위를 이겼다. “‘더 있는 집’에선 민어 잔치를 벌였지요.민어로 구이와 매운탕을 먹고,부레로 순대를,알로 어란을 만들었지요.” 인삼이 귀하던 옛날,서민들은 삼계탕 대신 닭곰탕을 먹었다. “장닭 몇 마리를 푹 고아 식구들이 한 그릇씩 먹으며 더위를 달랬지요.” “당시에도 음식 사치가 있었고 경제력이 있던 중인들은 궁궐 못지않게 먹었습니다.대표적으로 용봉탕을 들 수 있지요.” 용봉탕이란 잉어와 닭을 함께 고아 낸 다음 잣·호두 등으로 고명을 한 것으로 겉보기에도 화려하면서 먹음직한 것이다. 또 한겨울 동짓날의 팥죽도 복날 먹었다고 한다.붉은 팥을 액막이로 여겼기 때문이다. “참외와 수박도 빠지지 않았지요.” 그러면서 김씨는 참외와 증편(떡)을 살갑게 갖고 나왔다. 이렇게 당시의음식을 꿰뚫고 있는 김씨는 ‘김숙년의 600년 서울음식’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김씨는 어린시절 혀끝의 기억만으로 350가지나 되는 전통 서울음식의 맛을 찾아낸 것이다.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의 차원을 넘어 서울 반가의 생활문화와 예의범절이 담긴 역사책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엄한 가풍… 4대 42명 한집서 살기도 음식 이야기로 바뀌면서 김씨는 추억속에 빠져드는 듯했다. “어릴 적의 가풍이 무척이나 엄했지요.” 그도 그럴 것이 김씨 집안은 조선 인조 때 예조판서를 지낸 김상헌(金尙憲)을 배출했고,순조의 둘째딸 복온(福溫)공주의 시댁이기 때문이다. 김씨 가문은 김상헌 이후 잣골(효자동) 등 서울 4대문 안에서만 살아왔으나 1910년 한일합방 당시 형조판서였던 고조부 오천(梧泉) 김석진이 “세상을 보고 듣지 않겠다.”며 두메산골이던 서울 도봉구 번동 드림랜드 자리의 한 부분인 오현(梧峴·당호)집으로 이사를 했다.오천은 결국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못이겨 자결했다. 고조부의 자결 이후 일본의 감시와 수탈이 한창이던 1934년 김씨는 오현집에서 5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린 김씨는 대가족의 울타리 속에 살았다.오현집에 증조부·조부모·부모·삼촌·고모·당숙·당고모·김씨의 5남매 등 4대 42명의 식구가 살았다고 회상했다.일제시대 가족은 엄했지만 언제나 따스하고 정겨웠다. 이런 대가족이자 일제를 거부하는 집안의 맏며느리였던 어머니의 손이 마를 날이 없었다.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제사와 어르신들의 생신,세시풍속을 다 챙겼기 때문이다. 대신 집안에서는 구수한 음식 냄새 또한 가시질 않았다.댕기머리 소녀였던 김씨는 감히 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부엌에선 할머니와 어머니가 ‘숙아 맛좀 보렴.’하고 한 숟가락 떠준 덕분에 맛을 봤다.그 기억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음식은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해방과 더불어 김씨는 학교 교육을 받았다.일제 때 증조부가 신식교육은커녕 외출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6·25 때 800평에 이르던 오현집은 인민군에게 빼앗겼고 유엔군에게 폭격됐다.현재 드림랜드에는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안채는 수년 전에 복원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김씨는 1957년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합하고 성심여고에서 음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서예 교사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1959년 국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1973년 전근갔던 창문여고에선 가정 교사였지만 서예도 많이 가르쳤다.그동안 틈틈이 서예를 출품,국전에 입선한 적이 여러차례였다.한글 서예의 지평을 연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이 그의 숙부이다. 지난 1996년 교사를 그만둔 뒤 서예에서 멀어지는 대신 전통 음식에 가까워졌다.“감기 기운이 있다가도 부엌에만 들어가면 감기가 다 나았어요.” 그에겐 음식이 세대를 잇는 징검다리 같아 보였다.“언젠가 쇠골찜을 만들었는데,‘할아버지,숙이가 만들었어요.드셔보세요.’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지요.그리곤 즉시 전화를 걸어 7살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이라며 먹으라고 했지요.” ‘…서울음식’ 발간 이후 김씨는 잡지와 방송에서 음식 코너를 맡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요리 연구가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서울 반가음식의 산 증인인 김씨.그에게는 요즘 전통 음식과 생활문화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글 이기철기자 chuli@ 사진 이언탁기자 utl@
  • “맥아더 대선후보 막으려 아이젠하워에 출마부탁”/ 트루먼 前대통령 일기공개

    |워싱턴 연합|6·25전쟁중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해임했던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 재직시절에 맥아더가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부통령후보가 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을 대선에 출마시키는 것을 검토했던 사실이 10일 밝혀졌다. 미 국립문서보관소는 이날 이 내용이 담겨져 있는 트루먼 전 대통령의 일기를 공개했다. 일기에 따르면 트루먼은 1947년 7월25일 아이젠하워 당시 육군 참모총장과 “맥아더와 그의 우월성 콤플렉스에 대한 토론”을 나누던 중 그같은 제의를 했다. 트루먼은 일기에 “맥아더가 공화당 전당대회가 필라델피아에서 열리기 직전 로마의 개선식을 연출하며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며 “나는 만약 그(맥아더)가 그렇게 한다면 아이젠하워는 민주당 대통령후보지명에 나서는 것을 발표해야 하며 나는 기꺼이 부통령이 되겠다.”고 썼다. 그는 또 “(이 경우)나는 이 커다란 흰 감옥 즉 백악관에서 나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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