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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진압 연대장이하 지휘관 사법처리 제외방침/검찰,현장조사 마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9일 5·18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해 지난해 12월27일부터 시작된 광주 현장조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20일중 광주지검으로부터 관련기록을 넘겨받아 정밀검토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광주시위진압에 참여,검찰에 피소된 연대장급 이하 현장 지휘장교들은 형법상 내란죄를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검찰관계자는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한 시민의 암매장여부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등 장소확정 등에 문제가 있어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수사발표 이후라도 발굴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란죄는 「5·18법」 없이도 처벌” 법원 판단

    ◎전씨측,헌소 내기로 12·12사건과 관련,군형법상 반란수괴등 6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전대통령측은 5·18특별법과 김문관판사의 위헌제청 기각 사유중 「내란죄는 5·18특별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학봉·유학성·황영시씨가 낸 위헌제청 신청이 김판사에 의해 기각,구속영장이 발부된데 대해 전씨 및 이씨등의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는 이날 『김판사의 결정문 중 「형법상 내란죄의 경우 5·18특별법을 적용,공소시효를 정지하지 않더라도 현행법 테두리에서 처벌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며 이 부분을 포함,5·18특별법 전체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전변호사는 이어 『범죄행위에 대한 기산점은 법률에 규정한 대로 범죄행위가 완성된 때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는 만큼 김판사와 검찰측의 주장과는 달리 12·12 및 5·18사건의 기산점은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그러나 구체적 기산점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헌법소원 신청인은 전전대통령을 포함,12·12 및 5·18사건 관련자들 모두』라며 『그러나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늦어질 경우 전전대통령과 이씨등이 우선적으로 헌법소원을 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 헌재 빠른 결정 기대한다(사설)

    여야 합의로 5·18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것은 헌정파괴의 주모자들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쿠데타로 인한 민족의 비극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역사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시작한 과거청산의 과정은 적법하고 빠를수록 좋다.우리사회가 과거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갈등에서 빨리 벗어나 대화합의 전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특별법 위헌 제정신청이 수용됨에 따라 「12·12」 및 「5·18」사건 주모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제청 심리를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본격심리에서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리려면 최소한 2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여 재판일정이 영향을 안받을 수 없다. 「12·12」 반란혐의 공소시효문제와 함께 특별법 자체의 위헌여부 제청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정치권이 좀더 정교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법적 혼란은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정치권은 당초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일부가 특별법제정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헌재의 결정 직전에 소원을 취하했었다.결국 이번에 12·12 반란혐의의 공소시효와 특별법의 위헌여부는 헌재의 판단을 받게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정치권이 당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고 대응해도 되는데도 서둘러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제 다시 헌재의 결정을 구하는 역순을 밟음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자초했다고 하겠다.검찰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내란혐의를 22일까지 추가기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밖의 관련 불구속피의자에 대한 기소는 위헌제청 결정 이후로 미룰 수 밖에 없어 재판일정이 상당기간 미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는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며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지금 진행되고 있는 「5·18」처리는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야 지도부 총선 표밭갈이 시동/김윤환대표 TK찾아 결속 당부

    ◎DJ·JP 「부산 교두보」 확보 나서/민주는 대구서 총선대책 설명회 【대구·대전=박대출·백문일기자】 15대 총선을 80여일 앞둔 가운데 여야지도부는 19일 지구당창당대회와 시·도지부 행사 등을 계기로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정지작업에 나섰다. 신한국당 김윤환대표위원은 이날 경북출신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이 참석한 도의원 입당환영식 및 당직자 오찬간담회에서 이른바 「TK지역당」의 한계와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집권세력내에서 대구·경북이 결속해 힘을 결집하는 것이 국가안정과 지역발전에도 바람직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총선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김대표는 TK의 위상제고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무소속이나 자민련이 이 지역 이익을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과 신한국당 후보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국민회의 김대중총재는 이날 낮 대전에서 총선 바람몰이를 위한 현지 당무회의를 가진데 이어 하오에는 지구당창당대회 참석차 부산으로 이동,본격적인 표밭갈이에 들어갔다. 국민회의는 대전 당무회의에서 5·18 특별검사제 도입 및 관권선거 음모 중단,대선자금 공개 등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김총재는 20일에는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열리는 3개지구당 합동창당대회에 참석,김영삼대통령이 야당을 국정동반자로 인정할 경우 집권후반기의 국정운영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민주당 장을병공동대표도 이날 대구 금호호텔에서 대구·경북지역지구당위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총선대책설명회를 갖고 총선승리를 다짐했다.20일에는 김원기공동대표 주재로 대전에서 총선대책설명회를 가질 예정이다. 자민련 김종필총재도 20일 사상갑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다.김총재는 현지에서 중앙당직자 및 지구당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4월 총선에서의 교두보 방안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 「특별법 위헌 심판」 제청이후 수사 전망

    ◎검찰 「12·12」 사법처리 궤도 수정 불가피/관련자 기소 헌재결정 이후로 늦춰져/5·18 사건은 재판 일정에 큰 차질 없어 법원이 5·18특별법에 대해 「내란과는 달리 군사반란은 국가의 존립과 안전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헌심판을 제청함으로써 사법 처리의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최종결정할 때까지 검찰이 12·12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단행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이 장세동씨등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보류하고 위헌심판을 제청하기는 했으나 검찰은 12·12관련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5·18과 중복되지 않은 나머지 20명에 대해 불구속 기소,공판을 청구할 수는 있다.그런데도 검찰이 헌재결정 이후로 기소 시점을 미루게 된 배경에는 독자적 의견만을 내세워 이들을 기소할 경우 법원이 김문관판사의 결정에 준해 관련자들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5·18사건과 관련해서도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과 이학봉·황영시·유학성씨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전계엄사령관등 3∼4명만을 불구속 기소키로 하는등 사법처리의 범위를 대폭 줄였다 이는 5·18 사건의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공수부대 여단장 등 현장지휘관들이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유혈 진압에 가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위헌제청으로 향후 재판일정 등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5·18사건 재판이 연기되거나 공전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가 12·12 및 5·18사건을 심리하기에 앞서 전·노씨 비자금사건을 종결한다는 방침을 세운데다 현재 노씨 재판이 예상보다 가열돼 결심공판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또 전씨측이 5·18의 공소시효를 비상계엄해제일인 81년 1월24일이라고 본 법원의 결정에 불복,헌법소원을 내기로 방침을 굳힘에 따라 특별법의 위헌문제와 관련해서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법원이 위헌심판을 제청한 경우와는 달리 신청인들이 위헌신청 기각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면 재판은 헌재결정과는 무관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씨측의 5·18관련 위헌신청을 받아들여 위헌제청을 하더라도 「긴급한 사정이 있을 때는 헌재결정이 나오기 전이라도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고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돼 있어 재판부의 의지 여하에 따라 신축적으로 재판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 18일 전씨가 낸 12·12사건 위헌신청에 대해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할지 적극적으로 헌재에 위헌을 제청해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밝혀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음을 내비쳤다.그러나 지난 18일 같은 사안에 대해 위헌심판이 제청된 상태이고 이 사건에 대한 전씨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위헌제청의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 여야 선거구협상 새 돌파구/신한국 당론 재조정 안팎

    ◎원칙론 계속 고집땐 정치공세 부담/조정대상 지역구 「집안 동요」 불가피 임시국회의 공전속에 난항을 거듭하던 선거구 조정 협상이 김영삼대통령의 대야협상 지시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게 됐다.이는 여권이 9만1천∼36만4천명안에서 사실상 한발짝 물러선 것을 의미한다. 당초 강경하던 여권의 방침이 후퇴한 것은 원칙론을 앞세웠을 때 생길 수 있는 현실적인 부작용과 정치적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여권내부에서는 그동안 총선을 불과 80일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야3당의 극력 반대를 무릅쓰고 표결처리를 강행하는 것이 과연 실리가 있느냐는 의문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야간 「게임(총선)의 룰(규칙)」인 선거법을 야당과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다면 아무리 명분이 좋더라도 야당에 정치공세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여론의 악화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야당안보다 하한선을 높게 책정해 조정대상에 포함된 일부 지역구 의원들의 심리적인 동요도 부담으로 작용했다.7만5천명을 하한선으로 잡은 야당안대로라면 지난 해 3월2일 기준으로 모두 16개의 지역구가 조정대상이지만 신한국당의 9만1천명안은 30개 지역구가 해당된다.추가로 포함되는 14개 지역구 가운데 신한국당이 차지한 곳은 경북 영양·봉화(7만8천),충남 연기(8만1천),경남 창녕(8만1천),경북 의성(8만9천) 등 6곳이다.표결과정에서 물갈이대상 의원이나 5·18관련의원 등의 반발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이같은 내부 동요가 총선을 앞둔 당내 화합에 악영향을 미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손학규대변인도 이날 고위당직자회의를 마친뒤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는 여론의 요구가 강하다』며 『야당이 강경하게 반대하는 현실을 감안,정치적 차원의 검토가 있을 것』이라고 당내 화합과 정치일정을 감안한 「융통성」을 암시했다. 어쨌든 「협상의 전권」이 김대표에게 넘어옴으로써 신한국당은 전국구의 증원을 포함한 구체적인 안을 재조정,야당과의 협상에 나서 조만간 선거구문제를 매듭지을 방침이다.실무자들은 인구하한선을 7만5천이나 8만명선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7만5천명을 하한선으로 하면 서로 다른 행정구역끼리 합쳐진 부산 해운대·기장 등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때문에 이들 지역은 15대 국회에서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근본 해결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이밖의 선거구 조정대상은 부산 강서,인천 강화 등 모두 16곳이다.이가운데 8곳쯤의 선거구가 줄어들고 협상결과에 따라 전국구는 6∼10개정도 늘어나 현재 39석에서 45∼49석이 된다.인구하한선을 8만명으로 하면 전남 곡성·구례와 무안,경북 영양·봉화등 3곳이 추가로 조정대상이 되고 전국구 의석수도 그만큼 늘게 된다.
  • 「5·18특별법」 위헌제청 신청하면…

    ◎「12·12」 연루자 사법처리 차질/위헌여부 헌의 결정때까지 재판 중단/비자금 사건은 별개… 전·노씨 재판 계속 5·18 특별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12·12 및 5·18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지법 김문관판사는 18일 『5·18 특별법이 12·12 군사반란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중단된다고 규정한 것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의 발부를 보류했다. 그는 그러나 5·18 내란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라 하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기능을 회복하기까지는 공소 시효가 중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두 사건에 동시에 연루된 유학성씨 등 3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다. 김판사의 이같은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93년 3월 형법 제241조에 대한 위헌심판사건에서 『영장 심리도 재판에 해당되므로 영장발부 단계에서도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할 수 있다』고 선고한데 따른 것이다. 김판사뿐 아니라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도 앞으로 12·12와 5·18 사건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위헌 여부를 제청할 수 있다.전두환전대통령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5·18 사건과 관련한 내란혐의 역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거나,「성공한 내란」이라는 등의 이유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부가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전씨측 인사가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따라서 헌법재판소가 5·18 특별법에 대해 위헌 여부 심사를 한다는 것은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검찰이 장씨 등에게 12·12 군사반란사건만을 적용한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담당 재판부가 위헌 여부 제청을 할 때는 물론 김판사의 결정만으로도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중지된다.이 때 재판부는 12·12 사건에 대해서만 재판을 중지하고 5·18 사건은 그대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하지만 효율적인 재판 진행을위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12·12 및 5·18 사건 전체를 중지시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므로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통령은 내란·외환을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군사반란죄의 공소 시효는 재직중 정지되는 것이므로 전·노씨를 처벌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김판사의 결정에 따라 검찰이 기소까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검찰은 장씨와 최씨에 대해 5·18 및 개인비리 관련 부분을 추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는 12·12 사건으로도 기소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2·12 사건에만 연루된 관계자 역시 군사반란혐의로 기소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다만 구속 대상자로 알려진 정호용·허삼수·허화평·박준병의원 등도 두 사건에 모두 연루돼 있어 신병 처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넘겨받으면 가급적 1∼2개월 안에 위헌 여부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헌재의 한 관계자는 『기왕에 한번 검토한 사건인 만큼 내용은 물론 관련 법이론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제까지는 현행법 테두리내에서 판단했으나 이번에는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 “「5·18 특별법」 위헌제청 유감”/여야 논평

    신한국당·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은 18일 5·18특별법에 대한 법원의 위헌심판제청과 관련,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신한국당의 손학규대변인은 『전두환씨측이 위헌심판을 신청한 것은 시대적 흐름과 국민감정을 도외시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국민의 성원과 지지속에 여야합의로 제정된 법이므로 헌재에서 합헌 판결이 내려질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국민회의 박지원대변인은 『전두환씨측의 위헌심판신청은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것으로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하고 『헌재는 내란 주동자들이 집권한 기간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역사적·국민적 인식과 감정을 충분히 감안,바른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이규택대변인은 역시 『법원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나 이런 위헌제청 결정으로 군사반란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무산되거나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는 달리 자민련 구창림대변인은 『아무리 정치적 명분이 좋더라도 위헌적 소지가 있는 법률을 만드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며 국정운영의 무능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 이종찬 12·12특수본부장 인터뷰

    ◎“5·18관련자 기소는 예정대로 할것”/법원결정 존중… 위헌제청 대응책 마련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서울지검3차장은 18일 법원이 전두환전대통령측의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것과 관련,『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법원이 위헌법률제청 신청을 받아들였는데 대응책은. ▲전전대통령측에서 특별법이 공표될 때 위헌제청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했었다.따라서 영장청구·기소 등 각 단계별로 위헌제청에 따른 대응책을 나름대로 대비해 왔다.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구속영장이 보류된 장세동씨와 최세창씨에 대해 오는 22일 이학봉씨 등 구속 피의자 3명과 함께 기소할 것인가. ▲기소에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22일 기소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난 뒤 기소와의 장단점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해 놓았다.장씨와 최씨에 대해 다른 혐의를 추가하는 방안은 현단계에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5·18사건에 대한 관련자 기소는 예정대로 하는가. ▲원래대로 할 것이다.구속피의자와 두전직대통령을 기소할 계획이다.불구속기소자가 있는지 여부는 말할 수 없다.따라서 사법처리 대상자가 몇명인지 말하기 힘들다. ­5·18관련 현역의원의 처리는. ▲(웃으며)있다면 임시국회가 끝나는대로 하겠다. ­귀가조치한 최세창씨는 12·12사건 이외에 5·18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던데.사법처리여부는. ▲최씨에 대해서는 12·12와 함께 5·18부분에 대해서도 법률적용을 했다고 봐야한다.5·18쪽은 법률평가를 할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다른 혐의가 있다면 모르지만…. ­12·12사건 관련자의 기소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헌재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헌재의 판단이 빨리 내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씨에 대한 비자금 수사는. ▲진전이 있다. ­광주 현장조사는 마무리되었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가혹행위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조사결과를 조만가 보고서로 받을 예정이다.
  • 「5·18법」 위헌심판 제청/서울지법

    ◎장세동·최세창씨 영장 보류/유학성·황영시·이학봉씨 수감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 들여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서울지법 김문관판사는 18일 전두환전대통령측의 변호인 전상석변호사가 낸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에 대해 『12·12 군사반란사건의 공소 시효는 이미 만료된만큼 특별법상의 공소 시효 정지 조항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받아들였다. 김판사는 이에따라 검찰이 장세동전수경사30경비단장과 최세창3공수여단장에에 대해 12·12 군사반란혐의만으로 청구한 구속 영장의 발부를 보류했다.검찰은 장·최씨를 이날 상오 귀가시켰다. 김판사는 그러나 『특별법에서 5·18 내란 사건 관련자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헌법상의 요청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본다』며 12·12 및 5·18사건에 함께 연루된 유학성 당시 군수차관보,황영시육참차장,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3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다. 유·황씨는 서울구치소에,이씨는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됐다. 검찰은 또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12·12 사건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5·18 사건과 중복 관련된 13명을 제외한 25명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사법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해서도 5·18 관련 및 개인 비리 혐의 등을 추가 적용하지 않고 헌재의 결정이 나올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과 5·18 사건에 중복 관련된 피고소·고발인은 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내란죄로 기소하면서 일괄 기소하기로 했다. 한편 전전대통령은 이날 다시 전변호사를 통해 12·12 및 5·18 사건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냈다. ◎내주 전원재판부 회부/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소장 김용준)는 18일 최세창·장세동씨 등의 변호인이 『5·18특별법이 위헌요소가 있다』며낸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서울지법이 받아들임에 따라 사건을 접수하는 대로 19일 중 재판부를 지정,위헌심판 제청 요건의 미비 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한뒤 빠르면 다음주 초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기로 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와 관련,『국민적 관심도와 12·12 및 5·18 사건의 재판 진행 등 여러 사정을 고려,재판부가 빠른 시일안에 심리를 마쳐 위헌 여부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영장보류」와 검찰·헌재 표정

    ◎검찰­“헌의결정 지켜보자” 관망속 애써 태연/헌의­“예고된 위헌신청… 1∼2개월안에 결정”/관련자­구속3인 “난 5·18과 무관” 억울함 호소 18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되면서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가 본격화되자 검찰은 일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관망적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위헌제청이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앞으로의 심리과정 등에 대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검찰은 전두환씨측의 5·18특별법 위헌제청이라는 「기습공격」으로 장씨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되자 당황해 하는 모습. 그러나 이종찬특별수사본부장은 『5·18특별법은 제정 당시부터 끊임 없이 위헌소지와 관련한 잡음이 일었기 때문에 위헌문제는 언젠가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면서 괘념치 않겠다는 뜻을 피력. 또 다른 검찰관계자는 『12·12와 5·18사건은 신군부측이 정권을 장악해 나가는 일련의 한 과정이고 관련자 대부분이 두 사건에 모두 연루돼 있기 때문에 관련자들의 사법처리에는 별다른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모습. ○…이날 상오 구속집행이 된 유학성씨 등 구속자 3명은 각기 대조적인 표정으로 억울함을 호소. 상오 10시52분쯤 서울지검 10층 조사실에서 1층 로비로 내려온 유씨는 굳은 표정으로 사진촬영 포즈를 취한 뒤 『나는 5·17과는 무관하다』고 짤막하게 항변했으며 곧이어 내려온 황영시씨도 『나는 5·18관련 회의에 참석은 많이 했지만 강경진압을 주도한 적은 없다』고 주장. 이들과 대조적으로 이학봉씨는 웃음을 띤 채 5분 남짓 손짓·몸짓을 곁들여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는데 『나에게 적용된 내란 혐의는 전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를 내란이라고 한다면 국가 위기 상황에서 누가 앞장서 일을 하겠느냐』고 언급. 이씨는 이어 장세동씨와 최세창씨가 풀려난 것과 관련,『동지들이 풀려나 기쁘다.특히 최세창씨는 건강도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 뒤 구치소행 승용차에 탑승. ○…검찰은 구속영장발부가 보류된 장씨와 최씨에 대해 『귀가하는 마당에 보도진들에게 공개해 곤혹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본인들의 의사를 물어 몰래 귀가시키기로 결정. 장씨는 상오 10시를 전후해 검찰청사를 빠져나갔으나 15분쯤 뒤 청사 지하1층을 통해 귀가하려던 최씨는 보도진과 조우. 최씨는 『영장이 보류된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소를 지으며 『나쁠 것이야 없지 않느냐』고 말한 뒤 『오늘 바깥 날씨가 춥냐』고 여유를 보이기도.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서울지법의 김문관판사가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지자 「예상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날 상오부터 대책을 숙의. 한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이 사건 영장 판사 또는 담당 재판부가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건 관련자가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설명. 이 관계자는 헌재의 결정 과정과 관련,『구속 사건에 대한 위헌 심판 제청 사건인데다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돼 있고,국력의 낭비를 줄인다는 차원에서도 가급적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면서 『기왕에 상당히 검토를 마친 사건이므로 대법원을 거쳐 헌재에 사건이 접수된 뒤 빠르면 1∼2개월 안에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헌재 관계자들은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위헌제청신청 사건이 들어오기까지는 법보다는 물리력을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법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 한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말 5·18 사건 등에 대한 헌재의 선고를 앞두고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소취하를 해 헌재 결정이 무산된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강조하고 『만약 그때 헌재가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오늘과 같은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전씨 65회 생일맞아 ○…경찰병원에 입원 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이 18일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이 법원에 의해 수요외면서 측근인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된데 대해 밝은 표정을 보였다고 가족과 측근들이 밝혔다. 특히 전씨는 지난 16일 65회 생일을 맞아 부인 이순자씨, 아들 재국·재용·재만씨와 딸 효선씨, 손자·손녀들, 이량우·석강진변호사 등의 생일축하 인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세창·장세동씨 「영장보류」 전말/전씨측 핵심 5인 구속에 위헌시비 제기/서울지법, 서류요건 미비 불구 신청 접수/영장 담당판사 14시간 숙고끝 “위헌제청” 12·12 및 5·18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놓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밤낮 없이 공방을 전개해 왔던 전두환전대통령측과 검찰은 지난 17일 결전의 장소를 서울지법으로 옮겼다. 이학봉·장세동씨 등 5공실세 5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전씨측이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를 전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온 것이다. 전씨측은 제정된지 한달여가 지나도록 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해 별달리 문제제기를 하지 않다가 이 법으로 측근들이 무더기로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영장이 접수된 직후인 이날 하오 3시40분쯤 화급히 서울지법 2층 접수실을 찾아와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서」를 냈다. 법원이 위헌소지가있다고 판단,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제청하면 이들에 대한 영장은 기각되기 때문에 전씨측과 검찰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법원측은 장씨 등 영장청구 피의자 5명에 대한 변호인선임계가 제출되지 않는 등 서류상 요건이 미비했으나 별달리 문제삼지 않고 신청을 접수한 뒤 12·12 및 5·18사건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로 보냈다.전씨가 이미 12·12사건으로 기소됐고 장씨 등도 추후 기소될 예정이므로 심사주체가 30부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신청서를 받아든 재판부는 전씨는 이미 기소된 상태이므로 문제가 없지만 장씨 등은 영장심사단계에 있어 영장당직판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판부는 이에 전씨측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신청취지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전변호사는 이날 하오 8시20분쯤 장씨 등 5명에 대한 변호사선임계와 함께 『신청목적은 검찰측의 영장청구가 합헌적인지를 가려달라는 것』이라는 보정서를 제출했다. 영장당직판사인 합의21부 김문관판사는 이때부터 9만여쪽의 수사기록과 5·18특별법의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숙고에 들어갔다.검찰이 보내온 위헌제청신청에 대한 의견서도 함께 검토했다.기자들이 판사실로 전화를 걸어 진행상황을 물어보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8일 상오 5시20분.신청서가 접수된지 14시간여나 걸린 숙고 끝에 김판사는 12·12와 관련해 군형법상 반란죄로만 영장이 청구된 장씨와 최세창씨에 대해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소급해서 시효를 정지,배제하는 법률은 위헌소지가 있다』고 판단,영장발부를 보류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5·18법 위헌심판 제청 결정문 ◇주문=피의자 장세동·최세창 영장사건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의 위헌여부에 관한 심판을 제청한다.신청인 이학봉·유학성·황영시의 위헌심판 제청신청을 기각한다. ◇위헌신청의 대상이 된 법률규정=5·18 특별법 제 2조 1항 「79년 12월12일과 80년 5월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사범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조의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에 대해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 것으로 본다」.제2조 2항 「제1항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이라 함은 당해 범죄행위의 종료일로부터 93년 2월24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장세동·최세창의 신청에 대한 판단=헌법 제12조 1항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헌법 제 13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러헌 적법절차 원리와 법률불소급의 원칙에 비추어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람에 대해 소급해서 그 시효를 정지 내지 배제하는 내용의 법률은 위헌이라 생각한다. ◇이학봉·유학성·황영시의 신청에대한 판단=신청자에게 적용된 반란중요임무 종사죄는 군형법 제5조 2호에 의하면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로서 공소시효가 15년인 바 영장이 청구된 1월17일은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15년이 경과되었음이 기록상 명백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내란 등이 일단 성공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한 경우 그 공소시효는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부터 비로소 진행된다고 주장한다.즉 5·18 특별법에서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인 범죄행위 종료일로부터 93년 2월24일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이같은 법리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특별법이 합헌이라는 것이다. 검찰의 이같은 공소시효 관련 주장은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형사소송법 등 어떤 법률에도 없었다.그렇다면 군사반란죄의 경우 그 주도세력 등이 집권한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될 것이다. 형법상 내란죄는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거나,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신청인들에게 적용된 군형법상의 반란죄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성격을 달리한다.즉 내란죄의 보호법익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이라고 할 때,군사반란죄의 보호법익은 군대의 조직과 기율유지,전투력 유지 등이라고 보여지고 그 외에도 내란죄와는 목적·요건 등을 달리한다.결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정면으로 유린하는 내란죄의 경우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자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하기까지 사실상 처벌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공소시효가 그 기간동안 정지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또다른 헌법상의 요청에 의해 가능하다고 보더라도 성격을 달리하는 군사반란죄에 대해서까지 기존의 적법절차 원리나 법률불소급 원칙과의 부조화를 감수하면서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내란죄부분은 특별법과는 관계없이 아직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되므로 특별법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고,신청인들에 대해 내란죄부분만으로도 구속사유가 있다고 판단되어 각기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이상 피의사실 중 군사반란죄 부분 역시 더이상 재판의 전체가 될 수 없으므로 신청인들의 제청은 이유없다고 판단된다.
  • 보훈처/정부 4개 부처 올 업무계획 주요 내용

    ◎국외 안장 선열유해 5위 봉환/고엽제 후유증수당 월 40만원까지/카자흐공 홍범도장군 묘소 재정비 국가보훈처는 민족정기 선양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국가보상의 내실화와 노후복지 확충을 꾀하며 보훈단체의 역할제고와 참전군인의 명예선양에 중점을 두고 올해 보훈시책을 펴나가기로 했다. ◇민족정기 선양사업의 범정부적 추진=독립유공자 3백여명을 발굴,3·1절이나 광복절에 포상하고 중국 등 국외에 안장된 선열 유해 5위를 봉환한다.연 20만∼3백60만원이던 생존 애국지사 특별예우금을 60만∼6백만원으로 인상하고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이 영주귀국하면 가구당 3천만원의 정착금을 지원한다.1만달러를 지원,카자흐공화국 크질오르다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홍범도장군 묘소를 확장한다.독립운동사의 교육 및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 유공자 자녀와 역사·윤리교사 등 8백명을 상해 임시정부 청사,청산리전투지역,독립기념관 등에 보내 현장교육을 시킨다.4·19 혁명기념 도서관을 서울 종로구 평동에 지상 7층,지하 2층 규모로 지어 97년 11월 개관한다. ◇국가보상의 내실화와 노후복지 확충=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및 생활정도 등을 고려,11만5천4백명에게 7천5백81억원을 지급하고 97년까지 기본연금을 월 45만원 목표로 해마다 12%씩 인상한다.전국 보훈의료망 구축을 위해 3백병상의 대전보훈병원을 신축하고 서울병원에 종합재활센터를 건립한다.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장애정도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후유증수당을 월 20만∼40만원씩 지급한다.97년 이후 정부출연금으로 고엽제 후원재단을 설립한다.전국 10곳에 있는 상이군경 복지회관을 경기,전북에 추가로 짓고 오는 6월 수원 보훈복지타운에 고령자 보훈복지대상자 4백52가구가 입주할 수 있도록 한다.충주에 2백명이 이용할 수 있는 미망인 전용시설을 6월 개원하고 제주지역에 17만평 규모의 종합 휴양시설을 짓는다. ◇보훈단체의 역할제고 및 참전군인 명예선양=보훈단체 운영비를 지방비에서 연 3백만∼6백만원씩 정액보조하고 상이군경 복지회관 운영비도 1곳당 5천만원씩 지원한다.제대군인 5천18명의 자녀교육,주택 및 생업자금을 2백10억원 지원하고 참전군인의 명예선양과 복지증진을 위해 정부출연기금으로 1백억원을 조성한다.참전용사의 인적사항을 전산화하고 대통령명의의 참전용사 증서를 교부하고 사망했을 때는 영구용 태극기를 증정한다.97년 서울서 열리는 세계제대군인연맹 총회 개최 준비를 위해 민관합동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황영시·최세창·장세동·이학봉/허삼수·허화평·정호용·박준병의원 국회 끝난뒤 영장청구/“22일 내란혐의 일괄기소”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7일 두사건 전개 및 처리과정에서 군권 및 정권찬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학성 당시 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최세창3공수여단장,이학봉보안사 대공수사과장,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 등 5명을 내란 및 군형법상 반란중요임무종사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오는 22일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기소하면서 불구속 기소자들과 함께 이들을 일괄적으로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허삼수 당시 보안사인사처장,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정호용특전사령관,박준병20사단장 등 현역 국회의원 4명도 국회회기가 끝나는대로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국회로부터 체포동의안을 발부받아 회기중에 구속하는 안도 함께 고려하고 있으나 동의안의 부결가능성 등여러가지 점을 감안,국회회기가 끝난 뒤에 사법처리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고소·고발인가운데 이날 구속된 5명과 현직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권정달보안사보안처장 등 관련자 15명 안팎을 불구속 기소하고 10여명을 기소유예 처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환서울지검장은 이날 이와 관련,『앞으로 현역의원을 제외하고는 추가 구속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장세동씨의 구속과 관련,『12·12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의 허락없이는 출입이 일체 금지됐던 수경사30경비단을 모임장소로 제공하는 등 반란군지휘부를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또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를 설득해 육본측의 병력출동을 저지하고 정승화육참총장 연행할때 30경비단소속 5분대기조 80여명의 병력을 총장공관으로 출동시켰다는 것이다. 이씨는 정육참총장 연행 및 대통령재가에 핵심적 역할을 맡았으며 5·18이후 정치인과 재야인사 체포를 주도한 혐의가 적용됐다. 유씨와 황씨는 경복궁모임에 참가한 이외에도 2기갑여단과 30사단을 중앙청과 고려대에 진주시키는 등 육본측의 병력동원을 저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5·18당시에도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하고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데 적극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씨는 또 경복궁모임에 참가한 것을 비롯,정병주특전사령관을 체포토록 지시하는 등 특전사령부를 유혈 진압한뒤 경북궁에 예하 병력을 진주시켰다는 것이다.
  • 「12·12」·「5·18」 핵심 5인 영장 안팎

    ◎영장 묘당 1장씩 읽어도 24시간 소요/검찰,전씨측 「위헌제청」 신청에 촉각/사건당시 계급순으로 5명 영장청구 검찰은 17일 장세동씨등 12·12와 5·18사건의 핵심관련자 5명을 내란·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관련자에 대한 본격적인 사법처리에 들어갔다. ○…검찰은 이날 구속된 5명중 12·12사건당시 30경비단장이었던 장씨를 다시 구속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했다는 후문. 장씨의 경우 이종찬본부장에 의해 지난 88년 5공청산과정에서 일해재단기금조성등과 관련,직권남용등 혐의로 구속된데 이어 최환서울지검장에 의해 93년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한 이른바 「용팔이사건」으로 이미 두차례나 구속된 전력이 있기 때문. 검찰관계자는 『장씨를 또 구속할 경우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국민들의 동정론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많아 상당시간 숙의했다』면서 『그러나 사건 자체가 별개인 만큼 법의 형평에 따라 처리하기로 했다』고 소개.결국 이번에는 최지검장과 이차장이 함께 장씨를 구속하는 악연을 재연한 셈. ○…검찰은 이날 하오2시30분쯤 12·12당시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씨등의 구속영장청구를 위해 9만여쪽의 수사기록을 법원 영장계에 접수시키면서 봉고차까지 동원.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사건수사기록은 총 13만쪽에 달하나 우선 구속영장집행에 필요한 기록 9만여쪽만 전달했다』고 설명. 한 수사관계자는 『9만여쪽의 수사기록을 한줄로 세울 경우 높이가 약 4.5m에 이른다』며 『산술적으로는 하루 24시간 즉 8만6천4백초동안 1초당 1쪽씩의 수사기록을 검토한다해도 8만6천4백쪽을 볼 수밖에 없어 당직판사 혼자서 하루 24시간을 꼬박 봐도 9만여쪽을 모두 검토하는 것은 힘들다』고 설명하기도 . ○…장씨등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되자 이날 하오4시쯤 전두환전대통령측이 전격적으로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내 법원측은 한동안 당황. 원래 위헌심판신청은 피의자가 기소된뒤 담당재판부에 내는 것이 관례였으나 전씨측이 전례없이 영장심사단계에서 신청을 했기 때문.서울지법은 그러나 지난 90년 부산지법 김백영판사가 간통혐의로 영장이 청구된피의자에 대해 직권으로 간통죄의 위헌심판을 제청,『영장심사도 재판의 일종이므로 이 단계에서도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헌재가 결정한 적이 있어 절차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 ○…검찰 역시 위헌신청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그러나 밤늦게까지 퇴근을 하지 않고 영장발부여부를 기다리던 최지검장등은 『영장발부나 기각은 판사의 권한이지만 여러 각도로 검토해본 결과 크게 염려할 것은 못된다』며 다소 여유. ○…검찰은 이날 영장을 사건당시 계급에 따라 유학성·황영시·최세창·이학봉·장세동씨의 순으로 청구. 계급이 같을 경우에는 두사건에 있어 책임의 정도를 고려했다고 후문. 기 자 입 력 ◎기구한 운명의 장세동씨/「일해재단」·「용팔이사건」 이어 3번째 구속/모두 전두환씨와 관련… 일부선 동정론도 17일 구속된 장세동전안기부장은 「주군」인 전두환전대통령을 「완벽」하게 모신 덕에 세번째 구속되는 기구한 신세가 됐다. 89년 일해재단 기금조성 등과 관련 직권남용혐의로,93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인 속칭 「용팔이사건」으로 구속됐을때와 마찬가지로 12·12사건 등으로 인한 이번의 구속 역시 전씨와 직결돼 있다. 검찰조사결과 그는 12·12당시 수경사30경비단장으로 모반의 회합현장인 「경복궁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단장실을 제공하고 각급 부대지휘관들의 통화내용을 감청,신군부측이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말하자면 장씨는 12·12반란이 성공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기여를 한 셈이다. 그가 이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전씨와 육사 선후배라는 관계를 뛰어넘는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장씨는 81년 7월 대통령 경호실장에 임명되기까지 군에서 7년8개월에 걸쳐 다섯차례나 전씨를 최근접에서 보좌했다.전씨가 수경사 30대대장 시절 장씨는 작전장교(대위)였고 육참총장 수석부관때는 육본 인사참모부 장교였다.또 9사단 29연대장일때는 정보참모(소령),1공수여단장 시절에는 대대장으로 근무했다.경호실 작전차장보 시절에는 그 밑에서 작전보좌관과 수경사30경비단장을지냈다. 이를 반영하듯 장씨는 전씨가 1공수여단장이던 72년 국군의 날에 전씨의 백색 낙하산을 빌려 타고 여의도광장에 선두로 낙하했다. 장씨는 지난 88년 국회 청문회에서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말해 전씨와 자신의 관계가 주먹세계의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임을 과시했다.또 지난 93년 12월 구속집행 정지결정으로 석방되자 집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전씨를 찾아 큰 절을 올리며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신고했다.전씨를 이 자리에서 위로금조로 18억원을 장씨에게 주었다.전씨가 퇴임한 이후 장씨에게 건넨 돈은 모두 30억원.장씨는 그러나 「어른께서 필요하면 돌려드리려고」 30억원 모두 고스란히 보관해온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장씨는 이러한 인연때문에 84년 경호실장 시절 아웅산사태를 맞았음에도 문책당하기는 커녕 도리어 안기부장으로 영전했다. 현대판 「의리의 돌쇠」 또는 전씨와는 「바늘과 실」 관계로 표현되던 장씨는 결국 전씨를 따라 감옥까지 동행함으로써 영욕을 함께하는신세가 됐다.
  • 「12·12」「5·18」단죄수순 돌입/핵심관련자 5명 영장 안팎

    ◎정국파장 등 고려 구속 최소화 선회/나머지 15명 일괄 불구속 기소할듯 장세동씨 등 12·12 및 5·18 사건 핵심 관련자 5명이 군사반란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17일 일괄 구속됨으로써 검찰의 수사가 단죄 수순에 접어들었다.지난해 11월24일 김영삼대통령이 5·18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지 50여일만이다. 검찰은 신병 확보의 어려움 등을 감안,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일체 비밀에 부치다 이날 하오 전격 공개했다. 검찰은 정호용·허화평·허삼수씨 등 현역 국회의원들은 국회 회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체포동의안을 제출해 사법처리 수순을 밟거나 국회 회기가 끝난 뒤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김상희주임검사는 이와 관련,『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공소 시효와 관련해 위헌 시비를 없애기 위해 81년 2월24일 비상계엄해제일을 기산점으로 삼을 때 공소시효 만료일인 오는 24일을 이틀 앞둔 22일쯤 관련자들을 기소할 계획』이라면서 『관련자가 기소되면 공범에 대해서는 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현역 의원들을 추가로 사법 처리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초 이날 10명 안팎을 구속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향후 정국과 사회전반에 미치는 후유증 등을 고려,구속자는 줄이는 대신 불구속 기소자를 늘리는 쪽으로 사법처리의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환서울지검장은 이날 상오 김기수검찰총장을 만나 사법 처리의 폭을 최종 결정한 뒤 『예상보다 구속자 숫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구속된 사람들과 현직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 15명 안팎도 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에 대한 추가기소 때 일괄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이다.따라서 의원 신분이 아닌 나머지 관련자 가운데 추가 구속자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결정은 두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무더기 구속과 재판이 정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5·18 사건 피해자들이 특별법에 따라 사법처리 결과에 대해 불복해 재정신청을 낼 가능성에대비,불기소 또는 기소유예 처분은 가급적 줄이고 불구속 기소자를 늘리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 결과 37명을 1차 사법처리 대상으로 정해 12·12 및 5·18 사건 당시의 역할,계급,가담 경위와 정도,개전의 정 등 7∼8개의 기준에 따라 사법처리 수준과 경중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이종찬본부장은 그러나 이날 『구체적인 사법처리 기준은 기소하면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장세동씨를 또다시 구속한 것과 관련,『장씨는 12·12 당시 수경사 30경비단장으로 「경복궁 모임」의 장소를 제공,지휘부 구성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 「가담 경위」 등 감안 구속 결정/이종찬수사본부장 일문일답

    ◎“관련 현역의원 사전영장 청구 고려안해/핵심 5명 기소때 전씨도 내란죄로 기소” 12·12 및 5·18사건특별수사본부 이종찬본부장은 17일 하오 장세동씨 등 관련자 5명에 대해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과 불구속의 기준은. ▲관련자가 가담하게 된 경위와 정도·사안의 경중·성행·개전의 정 등은 물론,당시 직책과 5·6공에서의 역할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수사는 계속되므로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인가는 기소단계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군사반란혐의만 적용된 것인가. ▲영장에는 대표적인 죄명 하나만 기재하면 되므로 대표죄명인 반란 하나만 썼고 적용내용에는 내란죄도 포함돼 있다. ­기소는 언제쯤 하나. ▲수사진척에 따라 먼저 사법처리한 사람 순서대로 할 것이다. ­전두환씨에 대한 내란죄 추가기소는언제쯤 할 것인가. ▲이들의 기소때 추가한다. ­(81년 1월24일 계엄해제일로부터 산정,공소시효 만기일이 되는)오는24일전에 관련자 사법처리를 다 끝내야 하지 않나. ▲현재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수사를 하고 있으므로 그때까지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말하기 어렵다. ­현역의원 가운데 구속대상자는 국회 회기가 끝나면 하나,아니면 회기중 체포동의서를 제출하나. ▲지금 말하기 곤란하다. ­이들에 대한 사전영장도 가능할텐데. ▲그런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사실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역의원을 제외한 추가구속자는. ▲더 생각해보자.구속자는 수사보안상 이 단계에서 말할 수 없다. ­장세동씨의 구속사유는. ▲12·12 당시 30경비단장으로서 30단장실에서 있었던 경복궁모임에 장소를 제공했다.이는 굉장한 의미다.일몰때는 수경사령관조차도 대통령 경호실장의 허락없이는 못들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또 모임의 일원으로서 반란지휘부를 구성하는 역할을 했고 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이 정승화총장을 연행할때 자신의 5분대기조 부하 80명을 김진영33경비단장에게 파견,허처장을 돕도록 했다.또 이희성중앙정보부장 서리에게 부탁해 육본 병력의 출동을 저지토록 하기도 했다. ­유학성씨는. ▲12·12와 관련,사전모의에 가담했으며 상대편에 전화를 해 육본병력 출동을 저지했고 5·18때는 시국수습방안논의에 참여,내란모의를 한 것이다. ­황영시씨는. ▲12·12때 1군단장으로 2기갑여단을 중앙청에 진주시키고 휘하 박희모30사단장에게 병력을 고려대에 진주시키도록 했다.고대 진주는 육본 진압병력의 통과를 막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또 5·18때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 불법감금·폭행 고문/전·노씨등 35명 고소/5·18피해자 35명

    80년 5·18당시 대학생이었던 정동년씨 등 35명은 17일 신군부측인 전남합동수사단 등에 의해 불법감금,폭행,고문을 당했다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35명을 내란수괴및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장을 통해 『80년당시 신군부측 학원팀이 김대중씨와 연계되었다는 허위사실을 뒤집어 씌워 계엄법위반,내란부화수행 등 혐의를 적용,구속하고 고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 「5·18법」 위헌심판 신청/전씨 등 6명

    전두환전대통령과 이학봉전보안사대공수사과장 등 12·12 및 5·18 관련자 6명은 17일 『5·18특별법이 헌법상 소급입법금지 원칙등을 위반했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서울지법에 냈다. 전씨측은 이날 석진강·전상석변호사 등 3명의 변호인을 통해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서」를 내고 『법률불소급의 원칙은 헌법13조1항과 형법1조에 규정된 인권보장을 위한 규정』이라면서 『소급입법인 5·18특별법에 따라 공소시효기산점을 자의로 바꾸는 것은 기본권보장을 규정한 헌법이념에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할 경우 12·12 및 5·18사건의 재판은 헌재 결정이 나올때까지 정지된다.
  • 색깔논쟁 사상논쟁 비화/여,DJ 전력공세

    지난주말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색깔론 시비를 제기한데 대해 신한국당이 16일 서경원전의원의 북한 공작금 수수사건을 비롯한 김총재의 과거전력을 문제삼고 나섰으며 이에 국민회의측이 정면반박,색깔론이 사상논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신한국당은 이날 상오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김총재와 국민회의가 「원색적인 저질비난」을 통해 색깔론을 계속 들고나와 정국을 혼탁하게 할 경우 김총재의 용공시비등 사상전력을 공개하는등 정면대응키로 했다고 손학규대변인이 전했다. 손대변인은 『김총재가 계속 색깔론을 갖고 저질적인 방법으로 흠집내기를 계속할 경우 간첩 서경원으로부터 돈을 받는등 사상전력시비와 깨끗하지 못한 과거에 관해 정면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성헌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소속당원인 김충조의원은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불태우고 허인회당무위원은 남파된 무장간첩과 밀담을 나누고 김총재 자신은 간첩 서경원으로부터 북한공작금을 수수하였으며 5·18 학살주범으로 지칭되는노태우씨로부터 20억원을 수수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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