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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씨 등 4명 내란목적살인죄” 검찰

    ◎「5·18」 핵심 노씨포함 8명 기소/“자위권행사 지시”는 발포명령 간주/광주 일설 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3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의 발포명령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희성계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주영복국방부장관·정호용특전사령관 등 5명에 의해 사실상 하달된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은 이날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8명을 기소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이에 따라 국회가 개회중이라 이번 기소대상에서는 빠진 정호용의원(무소속)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게 내란목적 살인죄가 추가적용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5명은 80년 5월21일 일련의 회의를 통해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결의,이날 하오 7시30분 방송을 통해 이희성계엄사령관이 자위권 행사를 지시했고 이는 일선 지휘관들에게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들은 전씨 등의지시에 따라 정권찬탈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광주에 투입,「생명이 있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지적,따라서 계엄군의 일선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5·18 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집권시나리오인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비상계엄 전국확대,광주민주화운동 과잉진압,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와 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 등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내란이었으며 이에 따라 이 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점은 5·17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로 잡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씨 등 신군부측은 최규하전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국보위를 설치해 내각을 무력화시켰으며 결국 입법·행정·사법권을 총괄하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헌법기관의 기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추가기소된 전·노씨를 비롯,황영시씨,유학성 당시 3군사령관,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씨,주영복씨,차규헌 당시 육군사관학교장 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에게는 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목적살인·반란수괴·불법진퇴·지휘관계엄군지역수소이탈 등 9가지 혐의가 2∼5가지씩 적용됐다. 검찰은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4명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광주진압군의 지휘체계가 뚜렷하게 이원화된 것은 아니지만 전두환·정호용씨가 정식 지휘체계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지휘체계가 일원화됐다는 전씨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전씨 등은 80년 5월17일 임시국무회의가 열린 중앙청 안팎에 무장병력을 배치,위압적인 분위기속에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토록 한 사실 등이 확인돼 군사반란죄가 추가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특히 80년 7월 권한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사임을 결심하자 8월10일 노태우씨를 만나 대통령에 취임하는 문제를 논의한 뒤 각 지역 보안부대장들에게 지시,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신을 지지토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80년 언론통폐합 조치도 전씨 집권계획의 일환으로 자행된 내란의 주요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발포명령·지휘체계이원화 규명/전씨등 내란죄 기소­수사결과와 의미

    ◎「정권찬탈」 단죄… 역사 재정립에 큰획/16년 응어리 광주시민 명예 법적회복 23일 검찰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8명을 내란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함으로써 12·12 및 5·18사건 재수사가 마무리됐다. 국회 회기가 끝난 뒤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을 사법처리해야 하는 수순을 남겨놓고는 있지만 수사 자체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지난해 11월30일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지 54일,12월19일 5·18특별법이 제정된 지 35일 만이다. 이로써 전씨와 노씨는 기왕에 기소된 비자금 및 12·12사건에 이어 3가지의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전·노씨에게는 12·12사건에서뿐 아니라 5·18사건에서도 군사반란혐의가 추가적용됐다. 일각에서는 5·18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12·12사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물론 헌법재판소에서 5·18특별법에 대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12·12사건 관계자들도 사법처리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한 5·18이후 15년8개월여 만에 공소시효만료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관련자들을 기소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재수사를 통해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의 법적·역사적 성격을 확실히 했다는 점은 큰 성과다. 검찰은 5·18사건이 ▲계엄확대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국회해산 ▲언론통제 등 신군부측의 치밀한 집권시나리오에 의해 이뤄진 정권찬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따라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역사를 바로 세웠다」는 점에서 전국민으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5·18 당시 발포명령 및 지휘체계의 2원화문제 등도 어느 정도 밝혀냈다. 김상희주임검사는 『명시적으로 발포명령을 내린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희성계엄사령관의 자위권발동 천명을 발포명령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수사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16년동안 응어리진 광주시민의 명예가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완전하게 회복된 점 역시 큰 의의로 내세울 수 있다. 앞으로 전씨측은 5·18특별법 등에 대해 집요하게 위헌시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전씨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이미 5·18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해 「성공한 내란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또한 전씨측은 5·18사건 공소시효 기산점이 최규하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소시효 기산점은 법률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질 수 있는 사실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전씨 “내란죄 추가기소 예상했던 일”/연희동·검찰 이모저모

    ◎전씨 “단식 않겠다” 건강회복 강한 의지/검찰 “특별법 적용안해 공소유지 자신” ▷전씨측 반응◁ ○…경찰병원에 34일째 입원중인 전두환전대통령은 23일 검찰에 의해 내란혐의로 추가기소된데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병원측은 전했다. 전씨는 면회온 가족들로부터 추가기소 소식을 들은 뒤 『오는 2월5일 공판 때에는 하루종일 앉아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해야 할텐데』라고 말하는 등 건강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병원 관계자가 전언. ○…이날 상오 10시부터 10여분간 전씨를 면회한 부인 이순자씨와 재국씨 등 아들 3형제,이양우변호사 등도 『추가기소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했으나 전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차남 재용씨의 득남소식을 전해듣고 『장세동씨의 귀가조치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로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등 흐뭇한 표정을 지었으며 『이제는 우둔한 짓(단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 ▷검찰측 반응◁ ○…검찰은 이날 공소장의 적용법조에 5·18특별법이 포함되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자 『특별법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기능만 있을 뿐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며 『통상 시효를 규정한 법조항은 공소장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설명. 또 전직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군형법상 반란죄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관계없이 이날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유지는 가능하다는 입장. 검찰은 내란의 완성시점을 최규하대통령 하야일에서 비상계엄해제일로 늦춘 점과 관련,『법원의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검사가 확신 없이 어떻게 기소하느냐』며 자신감을 피력. ○…검찰은 기소된 8명의 죄목을 정하기 위해 그동안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돼온 5·17사건과 5·18사건을 별개의 사건으로 엄밀히 구분. 5·18은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행위를 말하며 5·17은 이를 제외한 비상계엄확대부터 해제까지의 일련의 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전자에만 내란목적살인죄가 인정된다는 것. ◎전·노씨 등 재판 일정/「12·12」 「5·18」사건 병합심리/헌재 결정따라 일정 바뀔수도/비자금 사건은 공판일 달리해 병행심리 23일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제기로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가 맡은 사건은 5·18사건을 비롯,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12·12사건 등 모두 4건이다.하나같이 초대형 사건에다 관련 피고인만 해도 모두 26명에 이른다.재판부는 앞으로의 재판일정과 관련,몇가지 원칙을 세워놓았다. 우선 전·노씨 비자금사건은 피고인들이 서로 겹치지 않으므로 공판일자를 달리해 병행해서 심리한다는 것.노씨 비자금사건 3차공판은 오는 29일,전씨 비자금 사건의 첫 공판은 다음달 5일 열기로 이미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다. 재판부는 그러나 12·12와 5·18사건에 대해서는 전·노씨가 함께 관련됐고 성격상 분리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해 두 사건을 병합해 같은 날 공판을 진행키로 잠정 결론을 지었다.두 사건의 첫 공판은 지난 18일 전씨측이 특별법에 대한 위헌신청을 낸 데 이어 전·노씨측이 두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라 헌법재판소의 판단 전에는 일정을 잡기 어렵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최대한 빨리 결정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면 다음 달말이나 3월초쯤 첫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헌재의 심리가 늦어지더라도 『위헌제청이 있을 경우 해당 소송사건의 재판은 정지되지만 긴급하다고 인정되면 법원은 선고공판 전단계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42조에 근거,심리를 앞당길 수는 있다.그러나 검찰은 장세동전청와대경호실장 등 아직 기소되지 않은 12·12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헌재결정에 따라 기소여부를 판단할 방침이어서 재판부도 헌재의 결정을 끝까지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 「5·17­5·18」수사 검찰 발표

    ▷1,공소제기개요◁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오늘 5·17,5·18사건과 관련하여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을 내란등 혐의로 서울지방법원에 기소하고 △이 사건 범행 당시 제3군사령관이었던 유학성을 내란모의 참여등 혐의로,육군참모차장이었던 황영시,보안사 대공처장이었던 이학봉을 각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였으며 △이 사건 범행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주영복,육군참모총장이었던 이희성을 같은 혐의로,육군사관학교장 차규헌을 내란모의참여 등 혐의로 각 불구속기소하였음 ○이로써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하여 반란 등 혐의로 △5·6공화국 대통령 재직중 비리와 관련하여 수뢰혐의로 각 기소하고 ○행정부 등 강압 통제 △이번 사건을 추가기소함으로써 세가지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하였음. ▷2,공소사실요지◁ ○전두환 전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등은 △12·12 반란사건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나 그 문책이 우려되고 △국민과 정치권의 반발이 현실화됨에 따라△정국안정을 명분으로 12·12 반란사건의 핵심관련자를 주축으로 정치주도권의 장악을 기도한 끝에 ○군사력에 의한 힘을 바탕으로 정국을 장악하기로 하고 △행정부등을 강압적인 분위기속에서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비상기구의 설치를 구상하고 △입법부의 입법기능과 견제기능을 봉쇄할 수 있는 조치등을 강구하되 △그 개괄적 수단은 불법적 계엄확대조치 및 그 연장을 통한 폭압적 방법을 사용하기로 모의한 다음 ○국회기능 정지 시켜 ○80년 5월17일에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함에 있어 국무회의장 주변에 장갑차등으로 무장한 병력 6백여명을 투입하여 위압적인 분위기속에서 비상계엄 확대 선포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정당의 총재등을 체포·연금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하고 ○5월18일에는 △계엄 해제를 안건으로 소집된 임시국회를 장갑차등을 동원하여 열리지 못하게한후 △그해 10월26일 제10대 국회가 해산될 때까지 그 기능을 정지시키고 △나아가 10월27일에는 입법기능을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닌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강압에 의해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또한 행정각부를 임으로 통제하기 위해 ○비상계엄 이용 개헌 △같은해 5월27일에는 대통령자문기구 명목으로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12·12 반란사건의 중요관련자들이 위원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상임위원회를 두어 그 소관위원회로 하여금 △공직자 숙정,삼청교육,언론인 해직 △개헌작업등을 추진하게 함으로써 행정각부를 조정·통제하여 국무회의와 행정각부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데 이어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에 이르게 하고 ○그해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사이에는 광주지방의 시민·대학생등이 비상계엄해제,전두환 퇴진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자 피고인등의 목적을 관철할 의도하에 공수부대 병력등을 동원,과잉진압에 의한 살상행위등을 자행함과 아울러 ○비상계엄을 이용한 폭압적 분위기속에서 개헌,김대중 재판,언론기관 통폐합등 일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헌법기관인 행정부·입법부등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등 국헌을 문란할목적으로 △전두환은 최고책임자로서 △노태우,황영시,이학봉,이희성,주영복은 각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유학성,차규헌은 각 모의참여자로서 폭동하여 내란함과 동시에 반란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한 범행을 저지른 것임. ▷3,향후수사계획◁ ○검찰은 5·17,5·18 사건에 대하여는 수사상황에 따라 관련자를 적법절차에 의해 계속 처리해 나가되 ○12·12 사건 관련자 전원에 대하여는 이 사건과 관련한 위헌 법률심판제청·헌법소원등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속중에 있으므로 그 결정이 내려진 후 처리할 예정이며 ○전두환 전대통령의 수뢰 및 축재사건에 대하여도 계속 수사해 나갈 계획임.
  • 전·노씨 오늘 기소/검찰/내란 혐의… 유학성씨 등 6명도

    ◎나머지 관련자 헌재결정뒤 처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은 2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8명을 내란 등 혐의로 23일 하오 기소한다. 구속 기소자는 전·노씨를 비롯,5·18당시 3군사령관 유학성,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육군참모차장 황영시씨 등이며 불구속기소자는 계엄사령관 이희성,국방부장관 주영복,육군사관학교장 차규헌씨 등이다. 검찰은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20사단장 박준병,보안사령관비서실장 허화평,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씨 등 현역의원 4명은 임시국회가 끝나는대로 사법처리키로 했다. 검찰은 나머지 5·18 피고소·고발인들에 대한 사법처리 방향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5·18특별법 등에 대한 위헌여부를 결정한뒤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힐 방침이다. 이본부장은 이와 관련,『전·노씨 등에 대한 공소장은 A4용지로 50∼60쪽에 이르며 12·12사건은 포함시키지 않았다』면서 『이들의 내란혐의에 대해 법리적인 설명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검찰의 전씨측 위헌공세 대응

    ◎“5·18재수사는 「사정변경」 해당돼 정당”/법원의 공소시효 인정도 검찰 입장 “부축” 5·18특별법에 대한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측의 위헌공세가 가열되고 있다.검찰의 5·18사건 기소를 하루 앞둔 22일 전씨측은 「헌법소원 보충이유서」를 통해 또다시 검찰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등 집요한 법리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씨측은 지난 18일 장세동전안기부장 등에 대한 법원의 영장심사 단계에서 전격적으로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특별법의 위헌성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또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한데 고무돼 이틀 뒤인 20일에는 새로운 시각에서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94년과 지난해에 12·12와 5·18사건에 대해 각각 「기소유예」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고도 검찰이 이를 뒤엎고 재수사에 착수,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려는 것은 부당한 공소권행사라는 주장이었다. 노씨 역시 22일 한영석변호사를 통해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전씨측은 특히 이날 헌재에 낸 「보충이유서」에서 『헌재의 결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마찬가지로 「기판력」이 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 및 공소제기 등 어떠한 결정이나 처분도 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지난해 1월 헌재가 12·12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은 타당하다고 결정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나 공소제기 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전씨측은 그 근거로 「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한다」는 헌법재판소법 75조를 제시했다. 전씨측은 23일 5·18사건 관련자들이 기소되고 담당재판부가 정해지면 또 다시 위헌법률제청신청 또는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이 때에는 노씨측도 전씨측과 공동전선을 펼 것으로 보인다.전씨측 변호인인 석진강변호사는 이날 『검찰의 공소장을 면밀히 검토한 뒤 담당재판부를 통해 내란죄에 대한 위헌신청을 할지,아니면 헌재에 곧바로 헌법소원을 낼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전씨측의 이같은 공세를 일축하고 있다.특별법 제정 등 「사정변경」의 사유가 있었으므로 재수사의 부당성을 따지는 전씨측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은특별법에 규정된대로 12·12 및 5·18사건과 헌정질서파괴사범에 대해서는 국가소추권의 행사에 장애가 존재한 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즉 내란주동자가 정치권력을 장악한 경우 비록 범죄는 성립했지만 공소시효는 정당한 국가기관이 그 기능을 회복한 이후부터 비로소 진행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특히 5·18사건에 대해서는 특별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법원이 시효기산점을 비상계엄해제일인 81년 1월24일로 인정했으므로 부담이 없다는 입장이다. ◎위헌법률심판제청과 헌소의 차이점/법원만이 신청 가능­위헌심판/사건 당사자가 청구­헌법소원 위헌심판제청과 헌법소원은 어떻게 다른가. 우선 위헌법률심판제청은 법원만이 할수 있다.헌법 제111조는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때에는 법원이 직권 또는 사건 당사자의 신청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를 제청,헌재의 심판에 따라 재판하도록 하고 있다.「재판의 전제가 된 때」의 재판에는 영장 심사도 포함된다는 것이 헌재의 판례다.전씨측이 지난 17일 장세동·최세창씨등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위헌제청신청서를 낸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또한 법률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됐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일반적으로 재판이 중지된다. 따라서 전씨측은 앞으로 5·18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 재판의 전제가 되면 특별법이 위헌이라든가 5·18 사건의 공소 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다시 담당 재판부에 위헌제청 신청서를 낼 수 있다. 헌법소원은 법원이 아닌 사건 당사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 낸다는 점에서 위헌제청과 다르다.또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헌법소원이 제기되더라도 재판은 중지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법 68조는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또는 위헌여부 심판의 제청 신청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때에는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전씨측이 지난 20일 낸 「검사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는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한 것이다.전씨 주장에 따르면 12·12 및 5·18 재수사 및 공소 제기는 「공권력의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 된다.또한 전씨측은 5·18로 기소된 뒤 재판부가 5·18 특별법 등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이 조항을 근거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 국세청·수산청·특허청/정부 2개부처·3개청 올 업무계획 주요내용

    ◎국세청/고지·체납세액 자동안내제 연내 시행/부동산 과다·불로 소득자는 전산관리 올 국세청 업무계획의 핵심 방향은 국민에게 편안함을 주는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납세자와 세무서의 관계를 「고객」과 「봉사자」로 새로 정립하겠다는 뜻이다.이런 방향으로 추진될 올 국세업무의 내용을 간추려 본다. ▲납세편의 위주 서비스=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대면 고지세금과 체납세금을 즉시 알려주는 자동안내시스템(ACS)을 빠르면 올해 안에 시행한다.또 현재 조사후 발급하고 있는 사업자등록증을 우편으로 발급해 준다. ▲과세적부심사제=과세에 다툼의 소지가 있는 경우 납세자는 물론 일선 세무서가 국세청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이를 위해 법령심사위원회에 교수나 변호사 등의 조세전문가를 새로 위촉해 적부심을 맡게 한다. ▲납세자 입증책임 완화=양도소득세 1세대 1주택 비과세 여부 확인 또는 근로소득자 부양가족 공제때 주민등록등본 제출을 면제한다.자유직업인의 서적·자료구입비나 개인사업자의 승용차 운영비 등 필요 경비는손비로 인정한다. ▲우편에 의한 조회 회신제도=세무직원이 납세자를 임의로 출석하도록 요구하거나 업소를 방문하는 것을 일체 금지한다.납세자에게 사실을 확인하거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때는 우편에 의한 조회나 회신을 제도화한다. ▲전면적인 우편신고제=세무직원과의 밀착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통합 전산망 시행에 맞추어 모든 세목에서 우편신고제 실시를 앞당긴다. ▲종합적 누적적 납세 성실도 분석=세목별·과세기간별 납세 성실도 분석에서 종합적 누적적 분석체제로 전환한다.부가가치세와 소득세는 3년 이상의,법인세는 5년 이상의 납세성실도를 분석한다. ▲세무간섭 최대한 축소=종합세무조사체제의 확립과 함께 세목별 조사나 자료 조사 등 기타의 세무 조사는 원칙적으로 폐지를 추진한다.특히 다른 건을 조사하다 나타나 파생 자료를 처리하기 위한 수시 조사는 조세 범칙에 해당하는 것 등을 빼고는 폐지한다. ▲조사착수전 자기시정제도=일반 세무조사 착수에 앞서 납세의 성실도를 분석한 결과 나타난 문제점을 납세자에게 통보,수정 신고 등으로 스스로 시정·해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올 1월 부가가치세 신고부터 시범운영한다. ▲세무조사 민주화=조사 착수 1주일 이전에 통보해 주고 조사 연기신청제를 엄격히 시행한다.명백한 탈세가 없는 한 재조사는 금지한다.일반 세무조사에서 장부를 예치하지 못한다. ▲공익법인 관리=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함으로써 세부담을 회피하려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철저한 사전 지도로 공익법인이 적정한 세금을 내도록 유도한다. ▲주식이동 조사=자본거래를 통한 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주식이동에 대해 정밀조사를 수시로 실시한다.수시 조사 외에 정기 법인세 조사때 주식이동을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고액 상속 및 증여세 조사=고액재산가의 모든 재산을 전산으로 관리한다.빠르면 올해 안에 통합전산망을 완성한다.전산망에는 고액재산가 가족 등 구성원의 재산 실태도 담는다.지나치게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거나 소득원이 불분명한 음성 불로 소득자도 전산관리로 부의 세습을 방지한다. ◎수산청/적한 상습해역은 만 단위로 광역 정화/1·3종어항 56곳에 1,245억 투자­확충 수산청은 22일 어장을 일반해역과 특별관리해역으로 이원화해 바다를 정화하고 어로시설을 현대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바다정화와 수산자원 조성=적조발생 상습해역은 만단위로 광역정화를 하고 일반해역은 어장단지별로 집중 정화한다.상수원 특별관리지역의 내수면 가두리 양식장 5개소를 육상 양식장으로 바꾸고 양어장에 20개의 수질정화시설을 설치한다.적조피해 방지를 위해 이동식 및 침하식 가두리 시설연구와 새로운 순환여과시설을 개발한다. ▲양식어업육성과 어업구조 조정=어촌계 패류·어류 공동어장을 양식장으로 개발하는 데 72억원을 지원하고 양식용 종묘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15억원을 투자,종묘 중간배양장 3개소를 설치한다.소규모 생계형 불법어선의 전업을 유도하기 위해 1천척에 1백억원을 지원한다. 해선망 낭장망 연안안강망 등 경쟁력이 없는 연안어선을 우선 감축하고 대형선망·대형트롤 등 근해어선은 주변 연안국과의 공동 자원관리체제를 구축한 뒤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어업기반시설확충과 어촌 종합개발=1·3종 어항 56개항과 2종어항에 각각 1천2백45억원과 3백85억원을 투자,기본시설을 확충한다.어항기능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제빙냉동공장·가공공장 등에 민자유치를 유도한다.어선 1백80척의 장비·시설개량에 90억원을 지원한다.선착장·물량장 등 17개 권역의 종합개발을 위해 5백60억원을 투자한다. ▲수출입 유통개선과 수출입관리강화=국내산 원산지표시 대상품목을 1백개로 확대한다.종합가공단지 건설을 위해 공동이용 시설에 64억원,냉동·가공시설에 2백50억원을 지원한다.가리비,넙치,김 등 수출전략 품목을 개발한다. ▲원양어업 경쟁력 제고=중국·아르헨티나 등 4개국과 어업협정을 체결한다.한·중·일 3개국간 주변수역 공동자원관리 대책을 추진한다.원양어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출어자금을 2천50억원에서 2천6백50억원으로 확대한다.원양어선의 인력난을 덜기 위해 외국인 승선허용범위를 척당 일반선원의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확대한다. ◎특허청/출원심사·심판인력 263명 증원 추진/「지적 재산권연」 「발명자 회관」 설립 ▲인력증원=95년 현재 평균 3년걸리는 출원심사 처리기간을 장기적으로는 2년이내로 단축시킨다는 목표아래 올해는 심사·심판인력 2백63명,전산인력 50명등 모두 4백32명의 인력증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민에게 보다 저렴하고 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변리사시험 선발인원도 대폭 증원키로 했다. ▲특허행정 전산화 본격 추진=99년 전면실시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특허행정 전산화는 국내외 특허자료의 전산DB화,출원에서부터 등록에 이르기까지 사무처리 전반의 「종이 없는 환경」 구축,특허기술 정보의 온라인제공을 통한 기술개발능력 제고등 3대 목표를 갖고 있다. 이중에서 올해는 자동차,고분자화학,반도체등 최첨단 3개 기술분야에 대한 전산검색을 3월부터 실시하고 기술분야별 우선순위에 따라 DB구축이 되는대로 전산검색 대상기술분야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전자출원제도는 99년 전면시행을 목표로 올해 시스템 기본설계에 착수하는 한편 7월부터는 1단계로플로피디스크 부본 출원제도를 시행한다. 특허기술 정보자료의 대민서비스를 위해 특허기술정보센터를 강화,온라인서비스시스템의 개발과 데이터베이스의 정비 및 통신망 구축을 완료하고 상반기중 일부 첨단기술분야와 상표 및 행정정보에 대해 30개 업체및 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서비스를 실시하고 하반기부터는 상용서비스를 실시한다. ▲발명진흥기반 확립=발명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발명진흥연차대회를 5월18일 개최하고 발명유공자를 발굴,포상한다.또 발명계의 숙원으로 발명의 요람이 될 발명회관(가칭)을 98년까지 완공하기 위해 올해 기본계획 수립및 부지확보를 추진한다. 2월에는 특허기술 사업화 알선센터를 설립,산업재산권의 매매신탁및 특허기술 평가 사업지원등을 통해 우수 특허기술의 사장화를 방지하고 사업화를 촉진한다. 첨단기술의 국제분쟁과 산업재산권 제도의 국제적 통일화 추세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적 재산권제도를 연구·개발하기위해 전문연구기관으로 「지적재산권 연구소」 설립을 추진한다. ▲산업재산권 보호의국제화=그동안의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 공세적 산업재산권 보호외교를 펼칠 계획이다. 지금까지 외국과의 산업재산권 분쟁은 우리 기업이 미국등 선진국의 특허상표등을 침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우리기업의 해외진출이 활발해 짐에 따라 동남아,중국,중남미 등에서 우리 특허 및 상표가 침해당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이들 국가와의 특허청장회담등을 통한 우리 산업재산권 보호를 강화할 계획이다.
  • 노씨도 「5·18」 재수사 헌소

    전두환전대통령에 이어 노태우전대통령도 22일 12·12 및 5·18사건 재수사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노전대통령의 변호인인 한영석변호사는 이날 「검사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통해 『검찰이 12·12와 5·18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기소유예 및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고 이 사건 고소·고발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소를 취하한데다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두 사건은 합법적인 처분으로 종결된 것』이라면서 『이제 노씨를 재수사해 기소하는 것은 재소금지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며 지난 20일 전씨측이 낸 것과 같은 취지의 헌법소원을 냈다. 전전대통령의 변호인인 석진강변호사도 이날 『지난해 1월 헌재가 검찰의 12·12사건 기소유예처분에 대해 타당하다고 내린 결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마찬가지로 「기판력」이 있으므로 검찰은 재수사및 공소제기 등 어떠한 결정이나 처분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헌법소원 보충이유서」를 냈다.
  • 5·18당시 여수시장 전씨 가혹행위 고소

    【광주=최치봉기자】 5·18당시 전남 여수시장이었던 한병용씨(62)가 합수부측의 가혹행위로 인해 사표를 제출했다며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과 김종환 당시 내무부장관 등 5명을 22일 광주지검에 고소했다.
  • 전씨측 「5·18법」 헌소/검찰,곧 의견서 제출

    검찰은 21일 법원의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및 전두환전대통령측의 변호인 전상석변호사 등이 낸 검사의 공소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과 관련,금명간 헌법재판소에 검찰의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 검찰은 의견서에서 『5·18특별법이 헌정질서파괴사범에 대해 공소 시효를 정지시킨 것은 정당하며,전두환씨 등을 재수사해 공소를 제기한 것 역시 새로운 범죄사실을 확인하는 등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 5·18관련자 내란 확인/특수부/전·노씨 등 공소장 작성

    12·12 및 5·18수사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1일 전두환전대통령 등 5·18 관련,구속 및 불구속 기소자들에 대한 공소장 작성작업을 벌였다. 검찰은 오는 23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에 제출할 공소장을 통해 5·18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80년 5월4일 시국수습방안이라는 집권시나리오를 미리 작성,이를 근거로 치밀하게 이루어진 내란이라고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광주현장조사의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주남마을에서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들이 더 있다는 광주현지 목격자 등의 주장는 달리 당시 의무기록과 암매장장소 발굴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살된 양민 등의 사망자 수를 공소장에 추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시국수습방안에 따른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결의하는 배경,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임시국무회의가 열리는 과정,정권기반을 다지기 위한 언론통폐합 실행 등을 구체적으로 공소장에 담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광주현지에서 투입된 계엄군이 정식 명령계통과는 달리 별도로 신군부측에 의해 지휘되는 등 지휘체계가 이원화되었다는 사실도 포함시켰다. 검찰은 전씨등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등을 낸 것과 관련,검찰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헌재에 검찰의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
  • 전씨측,「5·18 재수사」도 헌소/“불기소사건 기소는 위헌”

    전두환전대통령측의 변호인인 전상석·석진강·이양우변호사는 20일 전두환·장세동·유학성·황영시씨 등 「신군부 인사」 27명을 대신해 20일 헌법재판소에 검사의 공소권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냈다. 전변호사 등은 이날 『검찰이 12·12와 5·18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기소유예 및 공소권없음 결정을 내렸고 이 사건 고소·고발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소를 취하한데다 검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합법적인 처분으로 종결된 것』이라면서 『이제 두 사건 관련자를 재수사해 기소하는 것은 재소금지 및 검사 동일체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검찰은 5·18 특별법의 제정을 재수사 및 공소 제기의 사유로 들고 있으나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되는 특별법이 공소제기 등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에대해 『불기소 처분을 했더라도 재범을 했거나 개전의 정이 없고 또다른 범죄의 단서가 발견되면 얼마든지 다시 수사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헌재에관련자료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전·노씨는 군형법상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기소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5·18법」 위헌심판 헌재,내일 심리착수 헌법재판소는 이에따라 이 사건을 오는 22일쯤 재판부에 배당,본격 심리에 착수하도록 할 방침이다. 헌재는 이와 함께 이날 서울지법이 제청한 5·18 특별법 위헌심판 사건이 공식 접수됨에 따라 김문희재판관에게 배당했다. 헌재는 이들 두 사건을 같은 성격으로 해석,한 재판부가 병합 심리토록 하는 등 집중심리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우선 이번주초에 법무부,검찰,국회 등에 이들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한 뒤 매주 한차례씩 전원 재판부 평의를 열어 가급적 한두달에 종결한다는 방침이다.
  • 시인 서정주(작가를 찾아:1)

    ◎강물이 다시 풀리는 자연 이치 믿으며 살지요/내 시에 덜 표현된 것은 언제라도 다시 써/지구촌 곳곳 여행… 모든 사상·철학 등 시세계 담아/해방후 정치 건달이 나라 그르쳐… 문인들은 이용만 당했지 올해는 문화체육부가 정한 「문학의 해」.서울신문은 문학과 독자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문학의 해」특집기획 「작가를 찾아」를 새로 연재한다.국내 유명작가와 화제의 작가등을 찾아 그의 문학과 인생 및 세상에 대한 얘기를 듣는 심층인터뷰 「작가를 찾아」는 격주로 연재된다. 미당 서정주(81)시인댁을 찾은 기자를 대문간에서 먼저 반긴 것은 담장위로 뻗은 감나무에 붙어 홍시를 쪼아먹고 있던 까치였다.중닭만한 몸피에 흑백대비가 또렷한 이 새는 습기 머금은 청회색 하늘에 드리운 가지를 타고앉아 쭈글쭈글한 선홍열매에서 정신없이 단물을 빨고 있었다. 『…사당국민학교 본관 뒤에서 바로 서쪽편으로 2층짜리 개인주택이야.멀리서도 감나무가 잘 보일거야.손닿지 않는 높은데 단감 백여개는 까치밥으로 남겨뒀거든.까치만 아니라 가끔녹두빛 희귀조도 놀러온다고』 며칠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집 위치를 설명하며 덧붙이던 시인의 얘기가 선연히 떠올랐다.미당이 지난 70년 이래 살아온 남현동(구 사당동)예술인 마을의 일명 「봉산산방」.손바닥만한 마당에 소나무·시누대 등 자연을 들여놓은 봉산산방은 「질마재 신화」이후의 시집 아홉권을 세상에 내보낸 곳이다. 정초부터 세배객에 시달려 2층 서재에서 쉬고 있다는 미당은 한참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어느 새 갈아입었는지 말쑥한 옥색 한복차림으로 『서재가 정리도 안되고 구접스럽다』면서 1층 빈 방으로 잡아끄는 미당에게선 여전히 정정한 기운이 승했다. ○산이름 외며 두뇌 단련 아침마다 세계의 산봉우리 이름을 한차례 외우며 뇌세포를 깨운다는 미당의 두뇌체조는 널리 알려진 일.노시인은 그간 한번에 1천6백25개씩 외던 산이름을 지난해 가을부터 세개 더 늘렸다고 활기차게 말문을 연다. 『시베리아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걸쳐 시코테 산맥이라고 있어.거기 아브라치나야·크오·타르토키아니 산을 보태 이젠 매일 1천6백28개 산이름을 외우지.왜 그 산이냐고?아브라치나야 산중턱 두터운 밀림지대가 시베리아 호랑이 본산이라고.시베리아 호랑이 알지? 우리나라 호랑이 원조 말이야.우리 백두산을 타는 놈이 바로 아브라치나야 밀림에 사는 고놈이라 그것이야』 산에 대한 미당의 애착은 지난 91년 세계 각지의 산사람들과 산령들의 신묘한 사연을 별도의 시집 「산시」로 묶어낼 정도로 유별난데가 있다.그간 수차례 떠돈 세계여행길에서 산뿐만 아니라 세계곳곳의 풍물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싹튼듯 보인다. 『지난 77년 10개월간 세계여행한 것을 시발로 나는 지구끝까지 다녀봤어.킬리만자로부터 남태평양의 자그만 섬까지 안거친 데가 없다구.내가 인류문학사를 대개 아는데 세계의 작가,시인들 중 나만큼 많이 떠돈 이도 없어.어떤 때는 죽음도 무릎쓰고 결사적으로 다녔지.지금도 눈감으면 세계 중요한데가 머릿속에 환해.사상·철학·종교분포 등이 죄 인상박혀 있어』 이같은 여행체험은 미당 후기의 시세계를 규정하는 특징의 하나다. 하지만 미당시의 압권은 역시 초기·중기의 시집들에 나타난다.젊음의 원색적 생동감이 뿜어나오는 「화사집」「귀촉도」시절,사슬풀린 해방공간에서 한국적 단아미를 탐구한 「서정주시선」시절,인과와 윤회의 주제가 신라정신으로 둥글게 맞물린 「신라초」「동천」시절,고향 질마재의 민담 기록 「질마재 신화」시절의 미당은 무오류의 신에 비견할 만했다.이 책들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버릴 것 없는 숨막히는 명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애비는 종이었다…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자화상」)「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문둥이」)같은 명구를 비롯,교과서에 실린 「국화옆에서」,노래로도 만들어진 「푸르른 날」,이밖에도 「바다」 「밀어」「동천」「무등을 보며」「아지랑이」 「춘궁」 「기억」 「신부」 「상리과원」등 침을 꼴깍 삼키게 하는 밀도높은 시편들이 한없이 많다.「어느 것 하나 타작이 없다」「어떤 말이나 붙잡아 놀리면 그대로 시」라는 극상찬이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어떤 이는 미당을 「신라 향가이래 최고의 시인」으로 꼽았고 어떤 이는 장자를 빌려「영원위에서 소요하는」 미당 시세계의 아득한 경지를 찬탄했다. 그러나 정작 미당 자신은 껄껄 웃으며 대꾸한다.『아무 것도 아냐.바구니를 겯는 사람도 하도 오래 결으면 불끄고 해도 불켠 젊은이들보다 낫잖아.시도 이와 마찬가지야.뭐든지 숙련공이 되면 솜씨부리기 쉬워지는 법이라구』 한국시의 거봉답게 미당의 작품은 현재 영어권인 미국·영국·아일랜드를 비롯,일본·스페인·프랑스·독일·중국 등 7개국에 14권 번역돼 있다.외국에서 찬밥취급돼온 한국문학의 현실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내 평생 마신 술을 끌어 모으면 큰 호수만해질 것』이라며 백주대낮에 캔맥주를 권하는 미당.시적 천재성에 그릇 큰 인물됨,게다가 『술마시는 것을 재미로 안다』는 술실력까지 갖춘 그에게도 삶의 부침,마음대로 안되는 인간사가 있었다.끊임없는 친일전력시비에다 80년 전두환대통령후보 찬양연설로 그는 문학의 사회참여 바람이 거셌던 80년대 내내 후배 문인들로부터 경원당했고 특히 진보적인 민족문학쪽 작가들의 분노를 톡톡히 샀다.『황동규하고 고은 모두 내가 추천했어.내 제자야.그런데 올초 황동규는 세배를 왔지만 고은 그놈은 그예 안와』라는 시인의 말은 씁쓸한 마음 한자락을 비춰보인다. 『해방후 정치가,그놈의 정치건달들이 우리나라를 그르쳤어.이들한테 회유당해 문인들은 뭣도 모르면서 이용만 당했지.문인만 아니야.민족전체가 나쁜 정치를 통과해온거야』라는 얘기는 그간의 정황에 비춰 이젠 어느 정도 허심한 토로로 들린다.그는 『강물이 다시 풀리는 자연의 이치를 믿는 낙천적인 심사로 한번도 절망해본적은 없었노라』고 덧붙인다. (「풀리는 한강가에서」중) ○진보문단 복권 움직임 지난 세월 수많은 후배문인들이 미당에 대한 미움과 사모의 틈바구니에서 갈등해왔다.그 미움은 그의 정치적 언동을 향한 것이었고 사모는 한국문학사가 도저히 저버릴 수 없는 그의 작품때문이었다.어떤 시절엔 그 미움이 너무 커서 그의 문학 전체를 매장해버리려는 이들도 있었다.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바뀌어 진보적 문학계간지가 앞장서 미당을 재평가,그의 복권에 힘을 보탰다.미당 문학은 인간 미당이나 그를 둘러싼 외부적 요인보다 훨씬 광활하고 영원하다는,문학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이다. 『해방된 뒤 중학교 때 친구가 항상 완성을 향해 미래지향적으로 나가라는 뜻으로 지어줬다』는 호 미당.그러나 그는 스스로 그 호를 뛰어넘어 온전히 차고 넘치는 작품세계를 보여줬다.천편에 이르는 시를 썼으면서도 미당은 아직도 계속 쓴다.그 나이에 『내 시에 아니꼽게 덜 표현된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고쳐써』라고 잘라말한다.그는 「천재는 대가의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못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준다.타고난 천재를 몇배 능가하는 노력으로 그는 「박제된 전설」을 넘어서 아직도 「현역」으로 건재해있기 때문이다.94년 계간 「작가세계」봄호의 미당 특집에 실린 문학평론가 유종호씨의 다음과 같은 말이 미당에 대한 현재적 평가를 가장 잘 대변할 것 같다. ▷미당 약력◁ ▲1915년 5월18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서광한의 장남으로 출생 ▲마을 서당에서 한학수업(1922∼24).부안군 줄포공립보통학교 졸업(1929),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1929)하였으나 광주학생운동 주모자로 퇴학.이어 편입한 고창고등보통학교(1931)에서도 권고자퇴.박한영대종사 문하생으로 입문(1933),그의 권유로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원에 입학(1935).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으로 당선.11월 김동리·이용희·오장환 등을 동인으로 한 「시인부락」편집인 겸 발행인. ▲1941년의 「화사집」부터 1993년의 「늙은 떠돌이의 시」까지 14권의 시집을 비롯,「떠돌며 머물며 무엇을 보려느뇨?」(1980)「미당산문」(1991)등 산문지,「서정주 세계 민화집」(1991)「우리나라 신선선녀이야기」(1993)등 동화 출간.일지사에서 「서정주 문학전집」5권(1972)민음사에서 「서정주 시전집」2권(1991)간행. ▲동아일보 사회·문화부장(1948)예술원 회원(1954∼)동국대 교수·문과대학장(1960∼79)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사(1966)숙명여대 명예문학박사(1976)한국문인협회이사장(1977∼78) ▲74년 고향 선운사입구에 「미당 시비」건립.
  • 5·18불기소부당 민변서 재정신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대표 고영구)은 20일 『검찰이 지난해 7월 5·18 피고소·고발인에 대해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면서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 등 58명에 대해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 민변은 신청서에서 『5·18특별법에 근거해 12·12및 5·18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일부 피의자에 대해 또다시 불기소 처분할 가능성이 있어 재정신청을 낸다』고 밝혔다.
  • 집중심리로 두달내 결론 내릴듯/「5·18법 위헌심판」 어찌 되나

    ◎특별법 합헌 여부·공소시효가 최대 쟁점 헌법재판소는 20일 법원으로부터 5·18특별법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위헌법률심판제청서가 접수됨에 따라 곧바로 심리에 착수했다.헌재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사건을 배당해 온 관례를 깨고 사건이 접수된지 1시간여만에 김문희재판관에게 배당,「속전속결」의 의지를 나타냈다. 앞으로 진행될 헌재 심리의 쟁점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12·12와 5·18사건 피고소·고발인들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한 특별법이 헌법에 위반되는 지 여부에 관한 것이다.검찰은 이에 대해 특별법에 규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헌정질서파괴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소추권의 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한 기간,즉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이 재임기간인 93년 2월24일까지는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되는 만큼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그러나 전씨측 변호인들은 특별법상의 그같은 규정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번째의 쟁점은 공소 시효의 기산점에 관한것이다.만약 헌재가 헌정질서 파괴사범에 대해 공소시효가 중단된다는 결정을 내리면 12·12 및 5·18관련자들은 특별법에 따라 모두 사법처리할 수 있다.그러나 전씨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면 현행법에 따라 공소시효 기산점을 따져봐야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와 관련,12·12사건은 이미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12·12사건 관련자들은 특별법에 의해서만 사법처리가 가능하다.반면 5·18사건 관련자들은 특별법에 의해서는 물론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5·18사건 공소 시효의 기산점은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일로 보아 만 15년이 되는 오는 23일까지 관련자들을 기소하면 된다는 것이다.전씨측은 이에 대해 12·12의 공소시효 기산점은 79년 12월12일,5·18은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전씨측 주장에 따르면 두 사건의 공소시효는 만료된 셈이다. 세번째로는 검찰의 공소권행사에 관한것이다.전씨측은 이날 낸 헌법소원 심판청구서를 통해 『12·12와 5·18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이미 기소유예,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을 뿐 아니라 이 사건 고소·고발인들이 소를 취하해 이미 처분이 종결된 것』이라면서 『이제 다시 두 사건 관련자를 기소하는 것은 재소금지 및 검찰 동일체의 원칙등에 위배된다』고 위헌론을 폈다.검찰은 그러나 특별법에 의해서는 물론 12·12 및 5·18재수사를 통해 새로운 범죄사실,예컨대 80년 5월17일 열린 비상계엄확대국무회의가 공포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 등으로 확인된 만큼 사정변경의 원칙 등에 따라 사법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앞으로 매주 전원재판부 평의를 열어 재판관들의 의견을 모은 뒤 두달안에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또한 두 사건이 서로 연관돼 있는데다 법률적인 쟁점도 유사해 같은 재판부가 병합심리토록 하는 등 집중심리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전·노씨 23일 「5·18」기소/특수부

    ◎현역의원 4명 추후 사법처리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0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5·18 사건 관련자들을 처음 예정보다 하루 늦은 오는 23일 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정호용·허삼수·허화평·박준병씨등 현역의원은 임시국회가 끝나는대로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검찰이 5·18사건으로 구속·불구속 기소할 사람은 모두 1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기소시기를 하루 늦춘 데 대해 『광주 현장조사 기록 등의 정리작업이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날 5·18 당시 육본 군수참모부장이었던 박춘식씨를 소환,80년 5월23일 광주상황과 관련해 계엄사에서 열린 회의내용과 광주 진압군이 사용한 실탄및 기타 화력 규모 등에 대해 조사했다.
  • 광주진압 연대장이하 지휘관 사법처리 제외방침/검찰,현장조사 마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9일 5·18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해 지난해 12월27일부터 시작된 광주 현장조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20일중 광주지검으로부터 관련기록을 넘겨받아 정밀검토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광주시위진압에 참여,검찰에 피소된 연대장급 이하 현장 지휘장교들은 형법상 내란죄를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검찰관계자는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한 시민의 암매장여부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등 장소확정 등에 문제가 있어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수사발표 이후라도 발굴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란죄는 「5·18법」 없이도 처벌” 법원 판단

    ◎전씨측,헌소 내기로 12·12사건과 관련,군형법상 반란수괴등 6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전대통령측은 5·18특별법과 김문관판사의 위헌제청 기각 사유중 「내란죄는 5·18특별법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학봉·유학성·황영시씨가 낸 위헌제청 신청이 김판사에 의해 기각,구속영장이 발부된데 대해 전씨 및 이씨등의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는 이날 『김판사의 결정문 중 「형법상 내란죄의 경우 5·18특별법을 적용,공소시효를 정지하지 않더라도 현행법 테두리에서 처벌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며 이 부분을 포함,5·18특별법 전체에 대한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전변호사는 이어 『범죄행위에 대한 기산점은 법률에 규정한 대로 범죄행위가 완성된 때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는 만큼 김판사와 검찰측의 주장과는 달리 12·12 및 5·18사건의 기산점은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그러나 구체적 기산점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헌법소원 신청인은 전전대통령을 포함,12·12 및 5·18사건 관련자들 모두』라며 『그러나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늦어질 경우 전전대통령과 이씨등이 우선적으로 헌법소원을 낼 수도 있다』고 밝혔다.
  • 헌재 빠른 결정 기대한다(사설)

    여야 합의로 5·18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것은 헌정파괴의 주모자들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쿠데타로 인한 민족의 비극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역사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시작한 과거청산의 과정은 적법하고 빠를수록 좋다.우리사회가 과거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갈등에서 빨리 벗어나 대화합의 전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특별법 위헌 제정신청이 수용됨에 따라 「12·12」 및 「5·18」사건 주모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제청 심리를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본격심리에서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리려면 최소한 2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여 재판일정이 영향을 안받을 수 없다. 「12·12」 반란혐의 공소시효문제와 함께 특별법 자체의 위헌여부 제청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정치권이 좀더 정교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법적 혼란은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정치권은 당초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일부가 특별법제정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헌재의 결정 직전에 소원을 취하했었다.결국 이번에 12·12 반란혐의의 공소시효와 특별법의 위헌여부는 헌재의 판단을 받게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정치권이 당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고 대응해도 되는데도 서둘러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제 다시 헌재의 결정을 구하는 역순을 밟음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자초했다고 하겠다.검찰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내란혐의를 22일까지 추가기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밖의 관련 불구속피의자에 대한 기소는 위헌제청 결정 이후로 미룰 수 밖에 없어 재판일정이 상당기간 미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는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며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지금 진행되고 있는 「5·18」처리는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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