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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호수공원2/ 임태순 논설위원

    얼마전 안산 호수공원이 개장한 것과 관련,‘씨줄날줄’란에 ‘호수공원’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산이 편안한 안산(安山)에 호수공원까지 들어섰으니 시민들은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안산에 사는 박종태씨가 전화를 걸어왔으나 바빠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늦었지만 전화통화를 통해 그가 하려던 이야기를 전한다. 안산에서 14년동안 장애인권익옹호 운동을 벌여왔다는 그는 “호수공원은 선거철을 맞아 서둘러 개장했다.”면서 “호수공원의 장애인 편의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우선 장애인 화장실이 좁아 장애인 스쿠터가 들어가기 어렵다. 화장실 가림막에는 ‘사용중’이라는 글귀가 없어 일을 볼 때는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 또 야외공연장에는 경사로 없이 계단만 설치돼 있다. 박씨는 담당 공무원들에게 규정에 맞게 장애인편의시설을 만들어 달라고 미리 귀띔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왜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WBC와 한국병/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WBC와 한국병/임태순 논설위원

    국민을 열광케 했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 끝난 지도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야구의 역사가 일천하고, 아시아 최강도 아닌 우리나라가 아마와 프로를 통합한 첫 세계 대회에서 야구종주국 미국과 아시아의 맹주라 자처하는 일본을 연파하고 4강에 올랐으니 흥분할 만도 했다.WBC의 쾌거를 폄하하거나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지만 무대에 불이 꺼지고 커튼이 내려진 시점에서 한번 우리 자신을 냉정히 되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분명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뭔가 빠뜨린 것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몇년전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라는 책을 쓴 한 일본인은 우리나라를 두고 ‘집단공주병’에 걸린 나라라고 했다. 건물이나 다리를 건설하면 으레 아시아에서 몇번째, 세계 최고라며 비교하길 좋아하는 허영심을 꼬집은 것이다. 반도의 조그만 나라라는 콤플렉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겐 남과 비교, 상대적 우위감을 느끼려는 보상심리가 있다. 이번 대회도 우리의 공주병 심리를 한껏 자극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욕심을 내 WBC에서 세계 정상에 서기 위해선 좀더 냉정했어야 했다.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자기분석과 절제를 통해 힘을 비축하고 결승까지의 일정을 고려, 버릴 경기는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바람에 4강전에서 투수력이 바닥나 완패하고 말았다. 열악한 야구 인프라에서, 완벽한 하모니로 이만한 결과를 얻어낸 것만 해도 대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선 여기에 만족해선 안 될 것이다.‘6승1패를 하고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우리가 두번이나 이긴 일본이 우승했다.’는 자화자찬이나 위안보다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던 것에 대한 자기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대회 도중 선수들에게 병역혜택을 부여한 것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자 서둘러 병역법 시행령을 개정, 국위를 선양한 선수들에게 군면제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정치권이 쉽게 끓어 올랐다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에 편승, 선심을 베푼 것이다. 그러나 흥분이 가신 지금 병역문제는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체조, 하키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과 코치들이 형평성 차원에서 병역특례를 세계선수권대회 입상자까지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들 역시 이런저런 특례로 국방의 의무가 누더기가 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병역문제는 그렇게 쉽게 즉흥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대회가 끝난 뒤 여론을 수렴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도 늦지 않았다. 중지를 모으면 꼭 병역혜택이 아니더라도 국위선양에 합당한 보상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냄비근성은 양면성이 있다. 냄비가 달아오를 때는 국민들 열기, 열광으로 미화된다. 또 실제 그 힘과 응집력, 구심력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2002년 월드컵 4강신화,IMF체제의 금모으기 운동 등이 이를 말해준다. 또 압축성장으로 우리나라가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이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냄비가 식으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우리들이다. 끝마무리를 잘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선진국이 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 나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초정밀도를 자랑하는 현대에서 이런 자세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부족한 2%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 이번 대회가 남긴 교훈일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조금 있으면 국내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된다. 개막전 시구자는 한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김인식 감독이었으면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호수공원/임태순 논설위원

    ‘얼굴 하나야/손바닥 둘로/폭 가리지만/보고 싶은 마음/湖水만 하니/눈 감을 밖에’ 납북시인 정지용의 시 ‘호수’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애달픈 마음이 간결하고도 절제된 언어로 잘 표현돼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다. 보고픈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눈을 감는다는 역설이 오히려 읽는 사람을 더욱 애틋하게 한다. 호수는 고요하고 조용해 동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이다. 깊은 산중 숲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호수는 아늑하고 깨끗하다. 이러한 호수의 이미지가 보고픈 마음과 중첩되면서 시적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호수의 나라는 핀란드다. 크고 작은 호수가 20만여개나 돼 국민 25명당 하나꼴이다. 수도 헬싱키만 해도 시내 곳곳에 호수가 널려 있어 많은 시민들이 호수 주변을 산책하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파라호, 영랑호가 대표적일 정도로 호수가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친수(親水)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공호수가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도 그중 하나다. 대형 인공 호숫가를 따라 7.5㎞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아침 저녁은 물론 사시사철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산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메마른 강물을 보면 덩달아 인심도 사나워지고 인색해진다. 반대로 물이 넉넉하게 흐르면 한결 풍성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물은 또 대립과 갈등을 잠재우고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싼다. 논어에서는 막힘 없이 흐르는 물을 빗대 ‘지자요수’(智者樂水)라고도 했다. 우리들은 한때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물을 멀리했다. 댐을 건설해 강물을 마르게 했으며 하천을 덮어 도로, 주차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수변공간의 중요성을 인식, 하천 복원에 나서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안산 호수공원이 어제 개장했다. 시화호와 안산천 사이에 위치한 호수공원은 20만평 규모로 960억여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축구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등 각종 체육시설은 물론 호수와 갈대습지, 수변광장도 조성돼 있어 시민들의 전천후 쉼터로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편안한 산에다 호수까지 갖췄으니 안산(安山) 시민들은 더 바랄 게 없게 됐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신데렐라/임태순 논설위원

    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엄마도 이젠 나만 보고 살지 말고 엄마 인생을 찾으라고 권했다. 이삿짐센터 영업을 하며 아들만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는 결국 맞선을 봤다. 아들도 결혼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노후를 함께 보낼 짝을 찾아 나선 것이다. 맞선장소에 나온 사람은 집 한채밖에 없다는 백수. 그런데 왠지 이 사람에게 끌렸다. 마땅한 벌이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남자 먹여 살리는 게 팔자인 모양이라며 자위했다. 백수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업무도 보고 데이트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던 어느날 두 사람은 강원도 산골로 갔다. 백수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자고 했기 때문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차가 멈춘 곳은 골재채취장.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사장님 오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백수는 골재사업을 하는 사장님이었다. 그는 여러번 맞선을 봤지만 모두들 자신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어 이번에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아내가 들려준 신데렐라이야기다. 허구이건 현실이건 신데렐라가 되려면 최소한 마음씨는 곱게 써야 하는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마피아/임태순 논설위원

    ‘마피아’(Mafia)는 원래 19세기 시칠리아섬을 주름잡던 산적 조직이라고 한다. 시칠리아말로는 ‘아름다움’이나 ‘자랑’을 뜻한다고 하니 의외다. 이들 중 일부가 이민시절이던 19세기 말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를 거점으로 급성장하면서 범죄조직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1930년 당시에는 뉴욕을 비롯해 전 미국에 24개의 패밀리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들은 ‘동지적 연대’를 뜻하는 불문율 ‘오메르타’(omerta)로 조직의 결속력을 자랑해 왔다. 마피아가 쇠락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USA투데이는 한때 전국 조직을 자랑하던 마피아가 뉴욕, 시카고에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할 정도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전했다. 성대하게 치러지던 입단식 풍경이 1990년대 초반부터 햄버거 하나로 대체될 정도로 위상이 초라해졌다. 마피아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경찰 등 치안기관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데다 동료의 잘못에 굳게 입을 다물던 오메르타의 전통도 퇴색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돈벌이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살인죄로 복역 중인 한 조직원은 “20년동안 번 돈은 60만달러로 연간 3만달러에 불과하다.”면서 “일찍 선배의 경고를 듣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마피아는 권력을 휘두르는 특정세력 또는 집단을 칭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대표적인 것이 ‘모피아’다. 재정경제부(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재무관료들이 거대세력을 구축해 금융계 등 경제계를 장악해온 것을 말한다. 과거 군인사 주요요직을 독식해온 하나회나 스포츠계에서 특정대학 인맥이 장악해온 것도 이에 해당한다. 노무현 정부 탄생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 산하단체 및 공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인사들의 친목모임인 ‘청맥회’(淸脈會)가 있다고 한다. 최근 언론보도는 청맥회 회원이 최근 2년 사이 60명에서 134명으로 2배이상 늘었다고 전한다. 특정집단이 세력화하는 것은 외부에 대해서 든든한 울타리나 버팀목이 돼주고 구성원을 끌어줄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찬 총리와 골프를 친 부산지역 상공인들과 이기우 차관 등 교육계 전현직 인사들도 ‘27회’를 구성, 나름대로 끈끈한 인연을 자랑해 왔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힘이 없었으면 이들이 자주 모임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기부의 두얼굴/임태순 논설위원

    기부는 서구의 전통이고 문화이다. 로마시대 때 원로원 등 귀족들은 대회당이나 목욕탕 등을 건설해 시민들에게 남겼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장군 등 유공자들에게 전리품이 주어진다. 이처럼 부를 축적한 귀족들이 노후에 사재를 털어 공공시설을 지어 기부했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부의 사회환원인 셈이다. 여기에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국방의 의무 등을 다하는 것이 이른바 ‘가진 자의 고귀한 의무’로 불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물론 기독교도 기부문화가 뿌리내리는 데 일조했다. 수입의 10%를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 예수님이 다섯개의 보리빵과 물고기 두마리로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나눔과 베풂의 힘을 일깨워주는 일화이다. 반면 우리의 기부문화는 아직 인색하다. 나눔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한해 기부액은 5만 1000원이었다. 이는 1998년 미국의 1075달러(105만여원),96년 일본의 240달러(23만여원)에 비해 크게 부족한 것이다. 그나마 미국은 정기적인 기부자가 전체의 70%나 되지만 우리나라는 18.2%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말해주듯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실적도 ‘개미’보다는 기업 등 ‘큰손’들에 크게 좌우된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금모으기운동, 태풍이나 홍수피해시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기부문화보다는 위기상황에 따른 동원체제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엊그제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내역이 공개됐다. 몇백만원 등 고액기부자들은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공천을 노리고 낸 로비성 또는 대가성 후원금이라는 분석이다. 기업들은 업무와 연관된 상임위 의원들에게 보험성으로 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은행 ‘얼짱’ 농구선수 김은혜씨가 거인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선배농구인 김영희씨를 위해 연봉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정부보조금을 받는 80대 할머니는 20년간 모은 돈 600만원을 장학금으로 기증했다고 한다. 대비되는 우리 시대 기부의 두 얼굴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그리운 악마/임태순 논설위원

    점심에 만난 친구가 ‘나 열받았다.’라는 이메일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졸업식에 갔다 쓸쓸하게 혼자 돌아온 아버지가 보낸 것이었다.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돼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다고 한다.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예쁜 꽃까지 준비하니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불쑥 커버린 딸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교정을 오가며 열심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졸업식이 끝나면 근사한 곳으로 가 점심도 먹고 선물도 사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갔다 온 딸은 “아빠, 친구들하고 점심먹기로 했으니 먼저 가.”하더니 친구들에게 달려가더란다. 그날따라 비는 왜 그리 추적추적 내리던지. 아버지는 연인 같은 딸에게 버림받은 쓰라린 심정을 이수익 시인의 ‘그리운 악마’란 시로 달랬다. …숨겨둔 정부(情婦) 하나/있으면 좋겠다./머언 기다림이 하루 종일 전류처럼 흘러/끝없이 나를 충전시키는 여자./그/악마같은 여자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정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흥남철수 그후/임태순 논설위원

    아버지 손에 끌려 13살때 피란내려온 사촌형이 한분 계시다.1950년 12월21일에 거제도에 닿았다고 하니 그 유명한 ‘흥남철수’때인 모양이다. 그가 지난해 북에 있는 가족소식을 듣게 됐다며 한동안 흥분했던 적이 있다. 브로커가 달라붙었던 것이다. 몇차례 맞느니, 틀리느니 옥신각신하다가 어머니, 누나, 여동생, 남동생 등 가족사진과 편지가 전해졌다. 첫번째 편지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공부 잘하고 예뻤던 누나는 의사로 정년퇴직한 뒤 ‘년료보장’으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남동생은 위암으로 죽었지만 여동생 2명은 각각 함흥 성천강 피복공장 간부, 도 출하사업소 지도원으로 역시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설 때 그후 소식을 물어봤다. 여동생으로부터 짤막한 편지가 날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보고싶은 마음 간절하나 자식들한테 피해를 줄 것 같아 따라나서지 못합니다. 더 이상 사람을 보내지 마세요.”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동생이나 누나를 만나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보자 “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지.”하고 입맛을 다신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아파트 중독증’ 에서 벗어나자/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아파트 중독증’ 에서 벗어나자/임태순 논설위원

    사정상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했다.3층 건물의 2,3층에 전세든 것이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다가구주택으로 옮긴 것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왔으니 20여년만에 아파트를 벗어난 셈이다. 우리들에겐 알게 모르게 ‘집’하면 ‘아파트’라는 고정관념이 배어 있다. 어느 새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0%를 넘어섰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사오기 전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난방, 온수 등의 불편은 예견했던 일이지만 특히 일반주택에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걱정이 됐다. 그러나 아이들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잘 지낸다. 아파트의 발전속도에는 못 미치지만 다가구주택도 많이 진화해 난방과 온수사용에도 큰 문제가 없다. 집 주변을 돌아본 아내도 아기자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기대감을 표시했다. 청과물 가게가 어디에 있고 세탁소 세탁물 가격은 얼마라면서 아파트에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동네’,‘이웃’을 느끼게 돼 사람사는 맛이 난다고 했다. 불편한 점도 많다. 당장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아파트였으면 문앞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살짝 집어 왔을 텐데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어야 한다. 방범도 걱정이 된다. 아파트는 경비가 있어 안심이 됐지만 이제 집의 도난, 도둑 등 안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집 주변도 청소해야 하고 눈 치우기 조례에 따라 눈이 오면 눈도 쓸어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웬만한 것을 다 해결해줘 주부와 가장의 손을 덜어준다. 재테크로서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아파트 가격은 평당 2000만원을 넘어서면서 재산을 불리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 전세시장도 아파트 우선이다. 세입자들도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보다는 시장이 넓어 구하기 쉽고 순환이 잘되는 아파트를 찾는다.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기여한 것도 아파트다. 공동주택이다 보니 초고속인터넷망을 깔기가 훨씬 수월하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와서 케이블 TV이용료가 비싼 것을 보고 깜빡 놀랐다. 설치비로 4만5000원을 내고 한달수신료는 3.5배 비쌌다. 아파트분양은 곧 주택정책이라 할 정도로 아파트 중독증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채권입찰제, 청약저축, 아파트전매,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원가공개 등 그동안 쏟아져나온 각종 제도가 모두 아파트와 관련된 것이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뉴타운도 아파트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달동네나 단독주택 지역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실시할라치면 주민들이 돈이 되는 아파트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얼마전 도봉구에서부터 시내인 용산, 마포를 거쳐 은평구에 아파트를 대량 공급해 강북을 U자형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이 되면서 도시의 건강성, 역사성을 잃어가고 있다. 공동체의식, 커뮤니티, 사람사는 재미 등은 찾아보기 어렵고 단절과 소외, 획일성이 가득하다.600년 역사의 서울은 아파트 열기에 밀려 고도(古都)의 향취를 잃어가고 있다. 내집값만 올라가면 그만이라는 현세대의 이기심과 탐욕심에 아무도 2,3세들이 살아갈 도시의 미래, 서울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멈포드는 “각 세대는 그 세대가 창조한 도시에 자신의 전기를 기록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도시도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산을 아파트로 병풍처럼 에워싼 서울의 모습에 대해 후손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 모두가 아파트중독증과 대세론,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계 주/임태순 논설위원

    계주하면 가을운동회가 생각이 난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지는 가을운동회의 대미는 계주가 장식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년별 대표가 나와 배턴을 주고받으면서 달리기를 한다. 이어 달리다 보니 순서가 자주 뒤바뀐다.1학년은 청군이 앞서나가면 2학년은 다시 백군이 앞지른다. 배턴을 떨어트리는 실수도 자주 발생, 엎치락뒤치락한다. 이래저래 한편의 드라마일 수밖에 없고 보는 사람은 마음을 졸이게 된다.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이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이후 이 부문에서 줄곧 우승을 놓치지 않아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여자양궁이 하계올림픽 단체전에서 5연패를 하고 있는 것과 견줄 수 있는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3000m 계주도 각본없는 드라마여서 관전의 묘미를 더해주었다. 주연배우는 4번주자였던 변천사 선수였다. 그녀는 지난 19일 열린 여자 1500m에서 3위로 골인했으나 실격 처리돼 올림픽 동메달을 놓쳤다. 그러나 변 선수의 실격은 진선유, 최은경 등 우리나라 낭자들이 1,2위를 차지하는 등 메달을 독식하는 것에 대한 역풍이 작용한 것이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나이인데도 동료들이 메달을 땄으니 괜찮다고 말해 국민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이런 의연함, 희생정신은 계주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변 선수는 고비고비에서 우승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했다.27바퀴를 도는 중반 레이스에서 한국이 3위로 처지자 역주,1위로 배턴을 넘겨주었으며 4바퀴가 남은 종반전에서도 중국선수를 따돌리고 1위로 진선유에게 배턴을 넘겨줘 이름 그대로 금메달을 전하는 ‘천사’가 됐다. 쇼트트랙은 체구가 작은 동양인에게 유리한 운동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점에 착안, 쇼트트랙에 집중투자해 동계올림픽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호리병주법, 납조끼훈련을 개발해낸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계주는 팀워크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협동과 희생정신, 단결심이 없었으면 이런 선진 훈련법은 아무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단합된 힘으로 백인우위의 동계올림픽에 계속 황인종 돌풍을 이어가기를 기원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봄의 속도/임태순 논설위원

    봄에도 속도가 있을까. 있다면 얼마나 될까. 봄이 ‘오고 간다.’는 말이 있으니 있을 법하다. 배달된 잡지책 표지에 봄의 속도를 소개한 글이 눈에 띈다. 정답은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정도라고 한다. 계산법은 이렇다. 제주도에서 개나리가 피면 보통 20일뒤 서울에서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의 직선거리가 440㎞이고 이를 20으로 나누면 하루에 22㎞씩 올라오는 셈이다. 다시 24로 나누면 개나리의 북상속도는 시속 900m로 나온다.3살배기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면 한시간에 이 정도 간다고 한다. 개나리에 비유해 산출한 봄의 속도이지만 그럴듯해 보인다. 봄다운 속도라는 생각도 든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모습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분위기가 솟는 봄의 이미지가 느껴져 궁합도 맞는 것 같다. 17일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7.3도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적으로 반짝 추위가 몰아닥쳤다. 아침에는 바람까지 불어 온 몸을 움츠리게 했다. 일요일인 19일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봄아, 아장아장 걸어선 대동강 물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속도 좀 내자.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새마을 운동/임태순 논설위원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새마을운동 노래의 한 구절이다. 요즘말로 하면 농촌 업그레이드 운동인 새마을운동은 70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근면, 자조, 협동의 기본정신에 따라 주민 스스로 농경지와 농로를 정비하고 교량과 마을창고를 지어 농촌의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농업기계화, 농한기 부업개발 등을 통해 농촌소득이 증대되고 도시로도 번져 뒷골목 정비, 생활오물분리수거 등의 사업이 실시됐다. 새마을운동은 1988년 국정감사와 5공청문회 등을 통해 된서리를 맞으면서 관주도에서 순수민간운동으로 전환됐다. 중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눈길을 끈다.14일 베이징에서 전국 31개 성과 시의 주요간부들이 머리를 맞대 일주일동안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중국 농촌에 접목시키는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도 참석한다고 하니 국가적 관심도를 엿볼 수 있다. 중국으로선 개방, 개혁의 뒷전에 놓여 불만세력이 되고 있는 농촌문제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한류1호’,‘원조한류’라고 할 수 있다.70년대부터 나이지리아, 네팔 등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이 내방, 새마을운동을 배워갔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71개국 1945명이 새마을연수원에서 정규교육을 받았다. 또 4만명 가까운 인원이 3732회에 걸쳐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방문, 새마을운동을 견학하고 돌아갔다. 그렇지만 새마을운동은 유신체제유지 및 옹호 수단으로 이용된 부정적 측면도 있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권위주의적인 사회체제도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토지소유자들의 이해다툼을 어떻게 조정했는지 궁금해 농로확장 등에 대해 물으면 연수원측에선 토지소유자가 마을발전을 위해 희사했다고 답하는데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마을운동이 개발도상국들에 농촌개발의 모범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균형감각을 갖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면 스테디셀러 한류로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디지털 치매/임태순 논설위원

    집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거나 평소 자주 들르던 처갓집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본다. 휴대전화에 집전화번호를 저장해놓고 단축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승용차를 몰고 처갓집을 가는 사람들에게 발생한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사용에 익숙한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기억력이나 계산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디지털치매’(Digitai Dementia)라고 한다.‘IT 건망증’ ‘과학기술로 인한 건망증’ 등으로 불리다 지난해 국립국어연구원이 신조어로 발표하면서 용어가 정리됐다. 디지털치매현상은 생활 주변에 널리 번져 있다. 노래방 기기의 가사에 익숙했거나 한자전환모드로 한자를 써온 사람들이 갑자기 애창곡 가사가 생각나지 않거나 잘알고 있던 한자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전자계산기로 다시 계산하기도 하고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키보드로 입력하기도 한다. 치매현상은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때마침 외신은 영국에서 대학 신입생들의 학습수준을 조사해봤더니 덧·뺄셈을 못하거나 구두점, 철자법을 잘 몰라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입시위주의 주입식교육 때문이라는 분석이지만 인터넷 정보를 짜깁기한 논문도 부지기수였다는 걸로 미루어 디지털기기에 과다노출된 것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기억력 감퇴는 진화론의 용불용설에 기인한다. 사람의 꼬리가 쓰임새가 적어져 없어졌듯이 자주 사용하지 않다 보니 평소 잘 알던 것들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치매라는 용어가 붙었지만 뇌의 집중력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인 만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고급 두뇌기능인 암기와 연산기능을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창조적인 뇌 기능이 퇴화할 가능성은 있다면서 우려를 표명한다. 정보화 시대에 디지털 기계사용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작용을 얼마나 최소화하느냐는 것. 치매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치매를 예방하려면 단축키 대신 손으로 집 전화번호를 누르는 등 직접 손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일기를 쓰고 정신을 집중해 신문과 잡지를 읽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귀찮더라도 조금씩 손을 쓸 일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오만/임태순 논설위원

    눈 내리는 날이면 어느해 겨울 산행의 기억이 떠오른다. 봄을 앞두고 있는 이맘때였다. 주말을 맞아 북한산 삼천사를 찾았다. 끄물끄물하던 날씨는 눈을 뿌리기 시작했다. 매표소를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달려나와 이름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다. 예전에 없던 일이어서 왜 그러느냐고 묻자 눈이 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북한산에 자주 와 본 데다 눈도 많이 오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뿌리쳤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산에 올라가면 눈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투덜거리며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한동안은 산행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어 할아버지가 괜한 걱정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산에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등산로도 희미해져갔다. 예전의 눈대중으로 길을 재촉했으나 어느새 눈이 수북이 쌓이면서 등산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할아버지에게 큰소리 친 것이 생각나 오기를 부려보았으나 굵어지는 눈발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매표소를 되돌아 나오면서 한순간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할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입석/ 임태순 논설위원

    자라나는 세대들이야 입석표라는 말이 생소하겠지만 40대 이상의 장노년층에겐 낯익은 단어이다. 열차가 주요 장거리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시절에는 좌석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입석(立席)은 말 그대로 서서 가는 것을 말한다. 요금은 좌석표에 비해 60∼70% 쌌다. 어렵던 시절 어머니, 할머니 등 어른들은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좌석표 대신 입석표를 구입했다. 열차는 승객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들이 있어 큰 역을 지나면 빈 좌석이 나기 마련이다.1∼2시간 앉아 있다 좌석주인이 나타나면 다시 자리를 내주고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닿는다. 좌석에 앉았을 때 가장 난감한 것은 할머니나 아이를 업은 여성이 입석표를 갖고 열차에 오르는 것이다. 잠자는 체하면서 잠시 고민하다 자리를 양보하곤 했었다. 좌석표는 명절에 위력을 발휘한다. 귀성열차의 좌석표를 구하지 못하면 고향행을 포기하게 된다. 콩나물 시루속에서 어린 자녀들과 손을 잡고 장거리 여행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좌석표를 확보하면 뿌듯하다. 차창 밖으로 고속도로나 국도에 승용차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하기 그지없다. 한국철도공사가 설 연휴 동안 KTX에 입석표를 발매한다고 했을 때 개인적으론 괜찮다고 여겼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귀성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1∼2시간 정도 서서 가겠지만 빨리 가는 만큼 귀성승객들이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설 연휴 입석표 발매실험은 실패로 끝난 것 같다. 승객들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편하려고 탔는데 짐짝 같았다.’는 등 반대론자들이 60% 된다고 한다. 반면 귀성전쟁을 치러야 하는 명절에는 필요한 것 아니냐는 옹호론자들은 40%에 그쳤다. 철도공사는 설문조사를 거쳐 추후 명절 입석표 발매여부를 결정하겠다지만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강행할 것 같지는 않다. 때마침 귀성, 귀경전쟁도 한결 누그러지는 추세다. 역귀성이 느는 데다 유비쿼터스에 GPS시스템 등 첨단 지리정보장치의 개발로 귀성, 귀경교통 흐름도 한결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철도공사의 위험한 실험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신년결심과 신년특별연설/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년결심과 신년특별연설/임태순 논설위원

    해가 바뀌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결심을 한다. 웰빙시대를 맞아 금연, 금주, 다이어트에서부터 외국어 및 컴퓨터 익히기 등 실용적인 목적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도와주는 ‘결심(決心)상품’이 많이 팔린다. 어학학습기, 금연파이프, 다이어트신발, 몸짱사이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상품은 장수상품이 되지 못하고 대부분 단명하고 만다. 정초를 맞아 굳게 먹었던 마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 십상이기 때문이다. 신년 결심중엔 담배를 끊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담배인삼공사에 따르면 1월에 급감했던 담배판매량은 몇개월 지나면 다시 원상회복한다고 한다. 새해를 맞아 마음을 다잡는 것은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다 1년을 새로 시작하는 전환점에서 분위기를 일신하고 새 출발하려는 심리가 있다. 그러나 마음먹는 것과 행동과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마음 먹은 대로 몸이 따라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연초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전 신년특별연설을 했다. 매년 연두회견을 통해 국정운영방향을 밝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청와대는 연두회견 형식으로는 언론에 기자문답 내용만 부각돼 정작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달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 특별회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견의 요지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경제·사회부문의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갈수록 확대되는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를 예로 들면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저소득층과 소외층의 교육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평소의 노 대통령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확보 방안은 조세논쟁으로 이어질 텐데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별로 득될 것 없는 세금문제까지 과감히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재원확보 방안은 쟁점이 됐다. 무책임하게 어젠다만 던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에서 시작돼 적자재정 편성, 증세 등 논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재원논쟁은 지난 25일 신년기자회견에도 반영됐다.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방안이 조세논쟁으로 번진 것을 의식한 듯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면서 대신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재원은 세출 구조조정과 예산효율화를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1주일전 예산절감으로는 재원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발언에서 물러선 것이다. 여당과 한배를 타고 있는 대통령으로선 5월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20대80 사회가 10대90 사회로 변할 만큼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의료, 주거, 교육 등 그 격차는 삶의 질 부분으로 확대되고 있다. 대통령이 어렵게 말을 꺼낸 만큼 양극화해소 의지는 작심삼일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5월 선거가 있어 부담스럽지만 세금도 손댈 것이 있으면 과감히 손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하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한다. 더더구나 증세, 감세 논쟁으로 희석돼서도 안 될 것이다. 언행이 일치하여 양극화 해소가 올 한해를 꿰뚫는 화두가 되기를 기대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맞춤형/임태순 논설위원

    ‘맞춤’이란 말이 부쩍 많이 쓰인다. 맞춤 여행, 맞춤 분만, 맞춤식 교육, 맞춤형 복지, 맞춤형 줄기세포…. 개성화 시대에는 제품이나 정책이 당연히 소비자,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춘 맞춤형이어야지 상품성이 높을 것이다. ‘안성맞춤’이란 말도 있지만 맞춤이란 말은 아무래도 양복과 연관이 깊다. 어린 시절 읍사무소가 있는 윗마을에 가면 ‘○○라사’ ‘××라사’라는 간판이 붙어 있을 정도로 양복점이 흔했다. 라사(羅紗)는 포르투칼어(rasa)로 두꺼운 모직의 한종류를 말하는 것으로 맞춤양복점을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우리나라에 양복이 처음 전래된 100여년 전부터 양복은 재단사가 직접 만든 맞춤형이었다. 양복점에서 옷감과 디자인을 고르고 치수를 잰 뒤 가봉(假縫)을 거치면 양복이 완성된다. 시침질을 하는 가봉을 거치는 만큼 몸에 딱 맞았다. 양복은 곧 맞춤(Tailor)이었다. 맞춤양복은 80년대 들어 기계의 발달로 기성복(ready made)이 대량 생산되면서 쇠퇴했지만 요즘 들어 재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맞춤양복 체인점까지 생기고 있으니 이 역시 개성화 시대에 발맞춘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의 풍속도라 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이 달러를 위조하는 등 파문을 일으키자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라는 칼을 들고 나왔다. 맞춤형 봉쇄는 2002년 재연 이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북핵문제에 대해 최근 미국의 네오콘들이 들고 나온 강경 제재책이다. 맞춤형 봉쇄는 주변국 또는 국제기구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에 대한 물자나 현금지원 중단, 북한의 미사일 수출 해상 봉쇄 등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북한에 전방위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개념이다. 북한을 양복에 비유하면 맞춤형보다는 기성복의 이미지가 강하다. 김정일 위원장도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중국 공산당의 전통복장인 중산복을 애용한다. 한동안 잠잠하던 맞춤형 봉쇄 주장이 다시 불거져 나와 한반도에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이에 대한 북한측의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북한에 지금 더 필요한 것은 맞춤형 봉쇄보다는 맞춤형 양복일지도 모른다. 북한에 재갈을 물리기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개혁, 개방이라는 맞춤형 양복을 입혀 스스로 국제사회에 걸어 나오도록 하는 것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경찰모자/임태순 논설위원

    현직 경찰간부가 청와대에 보낸 경찰모자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찰청 소속 유모 경감은 “내 명예를 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승진할 때 썼던 모자를 우송했다고 한다. 모자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추위나 더위를 가리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부터 멋을 내기 위한 장식용으로도 이용된다. 특정집단을 일반인들과 구분하는 제복으로서의 이미지도 강하다. 그래서 모자는 사회적 지위나 권위, 명예를 상징하고 조직의 통일성, 일체감을 가져온다. 우리 조상들은 갓을 쓰고 양반의 위세를 부리기도 했다. 경찰모자는 단정함과 엄숙함을 상징하는 파란색 바탕에 한 가운데 무궁화와 독수리가 새겨져 있다. 창에는 노란테가 둘러쳐져 있다. “명예를 돌려드린다.”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 경감은 지난해 농민시위 진압과정에서의 공권력 행사가 폭력으로 매도되고 경찰청장이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모자를 보냈다. 유 경감은 “정당성이 훼손된 공권력이 어떻게 범죄 앞에 설 수 있느냐. 이번 사건으로 경찰은 서 있는 발판을 잃었다.”며 “제복을 입은 사람의 명예의 상징인 모자를 국민(대통령)에게 돌려드린다.”고 말했다. 또 “정치권은 우리를 폭력배로 낙인찍었다.”며 “시위대의 행동과 관계없이 경찰만 잘못이라고 하면 공권력이 설 자리가 없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유 경감의 서운한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경찰 간부가 경찰의 상징이자 공권력의 상징이기도 한 모자를 국가최고책임자에게 보낸 것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공권력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시위농민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과잉진압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공권력은 치안질서와 국민의 생명을 유지하는 범위내에서 사용되어야지 남용되어선 안된다. 또 국민을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줘야 할 경찰이 청와대를 겨냥해 국민들에게 불만을 표출한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다 나라의 기강이 이렇게까지 무너졌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다행히 청와대는 이 모자를 반송했다고 한다. 글을 올린 경찰간부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진해서 글을 내렸다고 한다. 반송된 모자를 쓰고 모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봤으면 한다. 경찰의 명예와 권위는 제 본분을 다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연하장/임태순 논설위원

    연초라서 그런지 연하장이 심심치 않게 배달된다. 이메일 또는 우편물로도 받는다. 우편으로 연하장을 받으면 우편배달부 아저씨들이 지난 연말과 연초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카드나 연하장을 받으면 뭔가 좀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보내는 사람의 정이나 체취, 온기가 덜하다. 철 지난 연하장 가운데 무릎을 치게 만든 것이 하나 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두개 적힌 것 외에는 여느 카드나 연하장과 다름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당연히 부부의 이름이라는 짐작이 들었지만 신년인사 겸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하나는 부인의 이름이라는 말과 함께 평소에도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편지 등 소식을 전할 때에는 부부의 이름으로 보낸다는 답변이었다. 여풍당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 각계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아직도 많은 아내, 또는 어머니의 이름은 남편, 또는 아버지의 이름 뒤에 묻히는 것이 현실이다. 연하장을 보낸 이의 부인을 본 적이 없었지만 남편과 나란히 적혀있는 이름에서 그들 부부의 사랑과 행복이 새록새록 전해져왔다. 가정의 행복을 주위에 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중의 하나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느린 동네/임태순 논설위원

    얼마전 봉사단체 회원과 달동네를 둘러봤다. 달동네는 홍릉에서 전농동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다 쓰러져 갈 것 같은 한옥 몇채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시절 등·하굣길로 이용한 낯익은 길이었다. 학창 시절 번듯했던 한옥촌은 30여년의 세월속에 남루하고 초라해졌다. 주위에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아파트의 기세에 눌려 더욱 왜소해 보였다.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할머니가 문간방에서 ‘누가 왔냐’며 고개를 내민다.87세의 고령이었지만 정정했다. 문간방 입구에 쳐놓은 비닐 구멍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기른 아들이 있었지만 생모(生母)를 찾게 되자 떠나갔다고 한다. 딸은 생활이 어려워 서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봉사단체 회원은 “재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달동네엔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면서 “그래서 동네가 참 느리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연탄이 배달되면 가스에 중독되지 않게 잘 가세요.” 하자 “연탄가스에 중독돼 소리없이 죽었으면 원이 없겠어.” 한다. 이러다 느린 동네는 죽은 동네가 되는 건 아닌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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