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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경차/임태순 논설위원

    오랜만에 북한산에 올랐다. 친구와 둘이서였다. 여러명 가겠다고 했지만 약속날이 임박해오자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다며 하나, 둘 빠져 둘만 남았다. 일정을 연기하려다 말이 나온 김에 가보자며 그대로 강행했다. 친구가 선두에 서고 뒤를 따랐다. 빠르지는 않지만 꾸준한 걸음걸이였다. 몇년전 지리산 종주에 나섰을 때 체력이 부쳐 중도탈락한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곳에서 “쉬지 않고 참 잘 달린다.”고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난 산에선 경차야. 마력은 작지만 연비가 좋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산에 오를 땐 2∼3개 봉우리를 묶어 10∼12시간씩 걷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겐 속도가 느려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능선을 타면서 앞장을 섰다. 내 속도로 갈 수 있으니 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은 오르막길대로, 불편한 허리는 내리막길도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한동안 우쭐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산이건 도로건 요즘은 경차가 제일인 세상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청와대 뒷산/임태순 논설위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출구로 나와 7016,7022,1020,0212번 버스를 타고 자하문에서 내리면 서울성곽 가는 길이 나온다. 이끼 낀 성곽을 끼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금세 숨이 찬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면 올망졸망한 인왕산과 함께 서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600년 전 이곳을 도읍으로 정해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면 서울이 한층 새롭게 보인다. 역사의 두께가 더해서일 것이다. 길을 재촉하면 잠시후 백악산 표지석과 함께 백악(白岳)마루가 나온다. 백악마루에서 내려다보면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악산인 백악산이 경복궁의 주산(主山)이었음을 절로 알게 된다. 문화해설사는 풍수지리에 입각, 서울은 남산을 안산으로 삼고, 낙산과 인왕산이 왼쪽과 오른쪽에서 호위하고 있다며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남대문의 정문을 서울역쪽으로 비켜 세웠다고 설명한다. 또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를 만들기 위해 청계천을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설명을 들으면 경복궁이 천하의 명당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성곽은 조선 초인 1395년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방위를 위해 쌓은 도성(都城)이다. 세종 4년인 1422년 흙으로 쌓은 부분을 돌로 개축하고 숙종 30년인 1704년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다. 서울성곽을 걷다 보면 당시 방식대로 성곽을 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1968년 북한 무장공비침투사건 때 총격전이 벌어진 소나무도 만나게 된다. 그 앞에 청와대가 있었으니 침투로로 제격이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담화를 발표하면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시위를 본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촛불시위가 한창인 6월10일 밤 캄캄한 산중턱에 앉아 광화문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국민을 편하게 모시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청와대 뒷산은 닫힌 공간이다. 울타리가 쳐진 폐쇄된 공간이다. 청와대를 나와 시민들이 오가는 서울성곽을 걸으며 민심과 소통하면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열린 공간인 청계천과 서울광장에도 나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자원의 저주/임태순 논설위원

    갑작스러운 횡재가 반드시 좋은 결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70년대 네덜란드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됐으나 오히려 제조업이 수출부진에 빠진 것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고 표현했다. 각국이 가스를 수입하려는 바람에 네덜란드 화폐 길더의 가치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수출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져 제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석유, 가스, 구리 등 천연자원은 국부를 성장시킬 수 있는 주 요인이지만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영국과 노르웨이도 70년대 말,80년대 초 북해원유개발로 환율이 상승하고, 수출품 가격경쟁력이 떨어졌으나 대규모 환율안정화 기금을 조성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해 네덜란드병을 슬기롭게 넘겼다. 반면 후진국들은 심한 홍역을 앓고 있다. 그래서 경제분석가들은 발전도상국가의 경우 풍부한 천연자원이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석유가 많은 나이지리아가 잘살지 못하는 것이 그 예다. 풍부한 천연자원은 ‘근로의욕 감퇴’라는 부작용도 가져온다. 자원을 수출해 번 돈으로 국가에서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 국민들은 굳이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불로소득이 생기면 노동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밀·쌀 등 곡물의 가격과 석유·구리 등 천연자원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만 자원부국들의 경제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 흥겨워해야 할 자원대국들이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의 급증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심해졌고 소득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리특수를 누리고 있는 남아공에서 경제난으로 외국인배척 시위가 일어나고 밀수출국 카자흐스탄에서 국내 밀값 상승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천연자원은 한번 쓰고 나면 없어진다. 언젠가는 고갈될 운명이다. 반면 기술력에 기반을 둔 제조업은 생명력이 길다. 고원자재가로 어려움을 겪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내공을 쌓아 파고를 넘어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컨테이너/임태순 논설위원

    컨테이너는 화물운송에 안성맞춤이다. 물건을 효율적으로 실을 수 있고 손상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컨테이너는 화물을 싣고 이 나라 저 나라 항구를 순례한다. 세계 여행이 취미인 셈이다. 지금은 해상운송에 주로 쓰이지만 출발은 육상운송이었다.1880년대말 미국에서 철도로 운송된 화차를 통째로 트레일러로 실어 고객의 문앞에까지 배달하는 것이 유래였다고 한다.1920년 뉴욕 센트럴철도와 펜실베이니아철도가 컨테이너를 대량제작, 보편화됐으며,1926년 강철로 만든 컨테이너가 뉴욕∼유럽항로에 취항한 것이 해상운송의 시초다. 컨테이너는 20피트(TEU·Twenty-foot Equi valent Unit)와 40피트(FEU·Forty-foot) 두 종류가 있다. 높이와 폭은 각 8피트로 똑같다. 하지만 40피트보다는 20피트 컨테이너가 일반적이다.4000TEU라면 20피트 컨테이너 4000개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8600TEU급 컨테이너선이 가장 크다. 신선도가 생명인 야채, 과일, 꽃 등은 냉동시설이 구비된 흰색 냉동컨테이너로 운반된다. 특수화물인 만큼 운송비도 비싸다. 컨테이너는 집으로도 이용된다. 태풍·지진 등 대형재해로 집이 쓸려 갔을 때 임시주택으로 활용된다. 몇년 전 동해안에서 수재가 일어났을 때 이재민들이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나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컨테이너가 시위대를 막는 장벽으로 변신했다. 경찰이 촛불시위대의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세종로 이순신 동상 앞에 컨테이너를 이중으로 쌓아 방벽을 친 것이다. 촛불의 청와대 행진을 막는데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소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바람을 막는 장벽이어서 시위대로부터 거센 비난과 조롱을 샀다.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컨테이너가 항구의 야적장에 쌓여 있다. 화물트럭 운전자들이 운송료 현실화, 표준요율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컨테이너 수송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테이너가 흐르지 않고 쌓이고 있는 것이다. 컨테이너는 물류수송의 대명사다. 물류는 막힘 없이 흘러야 한다. 물자수송을 통해 세계 각국을 연결시켜 주는 컨테이너는 소통의 첨병이다. 컨테이너가 흘러, 막힌 곳이 소통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경제성장률/임태순 논설위원

    19세기 산업혁명기의 경제성장률은 얼마나 될까. 엄청난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온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10대 미성년자들도 12시간 이상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린 만큼 성장률이 매우 높았을 것 같다. 하지만 성장률은 연간 1%였다고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종일 교수의 말이다. 증기기관 등 신기술이 산업 각 부문에 전파되기까지 많은 실패와 좌절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위(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18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농업을 제외한 부문의 생산증가율은 연 평균 2%를 조금 넘는 데 그쳤으며, 이는 국내총생산(GDP) 평균성장률이 연 2%에 못 미쳤음을 말해준다고 했다. 미국이 세계경제를 이끌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그러나 2%는 인류가 혁신이라는 신개척지로 얼마나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수치로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자릿수의 초고속성장에 익숙한 우리의 눈엔 2%의 성장률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린스펀은 개발도상국들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선진국의 확인된 기술을 ‘차용’할 수 있었고, 첨단 기술을 개발해 실용화하는 데 따른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듣고 보니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등 후발주자들은 선진국의 검증된 기술을 들여와 값싼 노동력으로 성장의 신화를 써왔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4.3%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전망치보다 0.9%포인트 낮아졌다.OECD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세계경제가 불안한 데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내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도 선거공약이었던 ‘7-4-7’에 기반을 둔 7% 성장론에 더이상 매달리지 않고 있다. 성장률은 기술진보율, 노동증가율, 자본증가율의 총합이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갈수록 노동과 자본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남는 것은 기술진보밖에 없다. 안팎의 여건이 좋지 않은 만큼 규제개혁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시급해졌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아쉬움의 실종/임태순 논설위원

    “도대체 IP-TV가 뭐야.” 대학동창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한 친구가 물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상인 만큼 잠시 한눈을 팔면 새로 등장한 뉴미디어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러자 한 친구가 간단히 이야기하면 인터넷을 통해 TV를 보는 것인데 아무 때나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꺼내 볼 수 있으며 양방향 통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편리한 만큼 시장전망도 밝아 앞으로 많은 수익이 기대되는 분야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질문을 던졌던 친구가 “지나간 TV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다니 좋긴 좋은데 너무한 거 아니야.”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오래 기다렸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있어야지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면 이젠 아쉬움, 그리움 같은 것은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현대문명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씩 이루어내고 있다. 정말 안 되는 일이 없는 세상이다. 풍요와 속도에 밀려 아쉬움, 그리움, 안타까움, 향수 등 정감 어린 말들이 우리들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공기업을 위한 변명/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공기업을 위한 변명/임태순 논설위원

    정부가 며칠전 공기업민영화의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만시지탄이지만 백번 잘한 일이다. 정부는 최근 검찰수사 등으로 공기업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이같이 말했는지 모르겠만 공기업이 동요한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흔들렸다. 낙하산 공기업 임원들은 대선캠프에 줄을 댄 뒤 총선 공천을 받는다는 목표로 뛰기 시작했다. 대선을 전후해서는 임기종료된 공기업 임원의 인사권 문제로 술렁거렸다. 후임자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해야 하느냐,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인수위원회가 가동되자 수면하에 있던 공기업 개혁이 화두로 등장했다. 소유는 정부가 하되 운영은 민간에 맡기는 싱가포르의 테마섹방식이 이명박(MB) 정부의 공기업 개혁의 골격이다, 선 구조조정 후 민영화한다는 등의 방침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공기업 기관장 물갈이도 도마에 올랐다. 일부 기관장들이 법에 보장된 임기를 보장해야 하지 않느냐며 반발하자 MB정부는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인사권자의 신임을 묻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며 재신임론으로 맞섰다. 공기업은 지금 감사원 감사,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 검찰의 수사 등으로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감사나 수사의 강도는 전례없이 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공기업 직원은 감사를 하면서 10년전 자료까지 제출하라고 하니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오죽하면 임채진 검찰총장도 목적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무리한 수사를 해선 안 된다고 했을까.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신도 놀란 직장’에서 일하는 공기업 직원이라도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령탑 없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정부의 공기업 개혁방안도 공기업 직원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공기업 개혁을 주도하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기획재정부 외에도 총리실, 주무부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도 한마디씩 한다. 여기에 ‘규제개혁’,‘공공혁신’을 들먹이며 간섭하는 곳도 있다. 한공기업직원은 요즘 공기업은 숨만 쉬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회사가 굴러가기 위한 최소한의 일상 업무만 돌아갈 뿐 미래를 위한 사업발굴, 혁신사업 추진 등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눈과 귀는 우리 회사가 민영화될까, 구조조정의 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새로운 CEO는 누구일까 등에 쏠려 있다. 공기업의 방만경영,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공기업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무기력해져선 안 된다. 공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300여개 공기업의 지난해 총자산규모는 417조원, 고용인원만 25만 900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많은 민간기업들이 공기업과 연결돼 있다.GDP의 10%에 이르는 공공부문을 장기 표류시키는 것은 국가경제에 보탬이 안 된다. 정부는 하루빨리 공기업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고 후속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수도 등 공공성이 강한 공기업은 구조개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공기업의 동요를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의 행정학자 포터교수는 1990년대 후반 미국이 공기업 개혁을 추진할 때 공공부문의 혁신은 속전속결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재 지금 우리의 상황에도 유효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얼리 덕/임태순 논설위원

    정권 출범초기 대부분의 대통령은 인기가 치솟았다. 신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과 신선함,‘허니문’으로 표현되는 밀월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YS) 대통령은 금융 실명제실시, 공직자 재산공개 등 과단성있는 개혁으로 한때 90% 넘는 지지를 받았다. 김대중(DJ) 대통령도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처럼 IMF체제에 슬기롭게 대처해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도 탈권위적이고 솔직한 자세로 호감을 샀다. 모두 정치인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언어에는 시대상과 사회상이 반영된다. 노무현 정권시절엔 독선적인 대통령의 성격과 관련된 조어들이 많았다. 대형 비리도 자주 패러디됐다. 노 대통령은 변양균·신정아 사건에 대해 언론이 사실이 아닌 것을 집요하게 부풀린다며 ‘깜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가 망신을 샀고, 기자실 복원 논란에 대해 “기자실에 대못질을 하겠다.”고 해 ‘대못질’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다.‘신이 내린 직장’ ‘반값 아파트’,‘노무현의 남자’ 등도 참여정부 시절 회자되던 용어들이다. 이명박(MB) 정부도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지만 벌써 많은 유행어를 남기고 있다. 인수위원장은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아륀지’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장관인선 등 인사파동과 관련된 신조어도 많다.‘강부자’는 강남에 사는 땅부자 자산가를 말하고,‘고소영’은 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 인맥을 지칭한다. 최근 MB정부의 조기 권력누수현상을 놓고 ‘얼리 덕’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하는 것을 말하는 ‘얼리 버드’(early bird)와 권력누수를 뜻하는 ‘레임 덕’(lame duck)의 합성어다. 권력이완 현상이 빨리 나타난 것은 대선에서 50%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받은 대통령으로선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오너 있는 회사의 전문 CEO로선 제대로 인사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천한 공직경험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행어, 조어의 생명은 길지 않다는 것이다. 대중은 변덕이 심해 유행어를 쉽게 잊는다.‘얼리 덕’은 본인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말로 대체될 수 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학원강사들 시위/임태순논설위원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가 20조 4000여억원이라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10분의1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전국 초·중·고 272개 학부모 3만 4000여명을 대상으로 두차례 실태조사해 나온 결과다. 초등학교 시장이 10조 2000억원으로 가장 크고, 중학교와 고교가 각각 5조 6000억원,4조 2000억원으로 반분하고 있다. 엊그제 보습학원 강사 5000여명이 서울역앞 광장에 모여 학교자율화 조치 철회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학원강사의 방과후수업 참여허용으로 학교 선생님들이 위축되고 공교육이 죽는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시장상실에 대한 위기감이 스며있다. 학교자율화 조치이후 서울시내 고교들은 우수학원 강사를 초빙, 영어·수학·국어 등 주요 입시전략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도 영어, 과학 등 특기적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동네 조그만 보습학원들은 입지가 좁아져 자연 설자리를 잃게 된다. 학원강사의 시위는 학교자율화로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고무적이다. 학원, 고액과외 등 밖으로 치닫던 교육의 물꼬를 장내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공교육이 사교육을 흡수해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교사들에게도 자극제가 될 것 같다. 우수 방과후 강사의 강의로 눈높이가 높아진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도 마찬가지 요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농간의 교육격차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든다. 시골이나 오지에 있는 학생들은 우수 강사의 방과후 수업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적인 측면에선 영세 보습학원의 위기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보습학원은 3만 2000여개에 종사자가 10만 4700여명으로 전체 학원의 70%를 넘는다. 경제와 교육관료들이 사교육시장을 어떻게 양성화해 보습학원 종사자들도 과실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지 지혜를 짜내기를 바란다. 실업에 불경기인 요즘 보습학원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주체이다. 임태순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스케이트/임태순 논설위원

    스케이트는 굉장히 배우기 어려운 운동 중의 하나이다.1.2㎜의 스케이트 날로 몸의 중심을 잡으면서 미끄러운 얼음판 위를 달려야 하니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으면 얼음판 위에 서는 것조차 쉽지 않다. 두 발로 빙판 위에 서면 자꾸 오른발과 왼발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밀려나가 결국 주저앉게 된다. 얼음판에 서는 것이 익숙해지면 앞으로 지쳐 나가고, 멈추는 동작을 배우게 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코너를 도는 법이다. 얇은 칼날에 온 몸을 싣고 코너를 도는 것을 익히려면 보통 노력이 뒤따르는 것이 아니다. 스케이트는 두 발로 얼음판에 서지만 경기의 우열은 한발이 좌우한다. 속도를 재는 스피드 스케이팅이건,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피겨 스케이팅이건 한발로 빨리 달려야 하고, 한발로 멋진 동작을 표현해야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체를 많이 사용해 얼핏 하체만 발달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더 속도를 내고, 우아한 자태를 선보이려면 중심이동이 자유로워야 하고 그런 만큼 상체와 하체가 균형 잡혀야 한다. 엄청난 체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날이 추워 실내에 웅크리고 있기 쉬운 겨울철 야외운동으론 스케이팅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모르겠지만 1980년대 군생활을 할 때는 동계 체력단련을 위해 전방부대에선 부대별 스케이트 대회가 열렸을 정도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스케이트도 진화하고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과 피겨 스케이팅, 아이스 하키의 전통종목에서 최근에는 기록이 아닌 순위만을 따지는 쇼트트랙이 생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롤러 스케이트에서 변형된 인라인 스케이트는 미용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많이 사용해 종아리와 엉덩이 등 하체 몸매관리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마포에 얼음없는 스케이트장이 개장됐다. 특수 플라스틱 패널에 화학물질을 발라 바닥을 매끄럽게 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얼음이 얼지 않는 한여름에, 얼음판이 아닌 곳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별미’는 있겠지만 맞바람에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타는 겨울철 스케이트 ‘묘미’만은 하겠는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합창’ 그후/임태순 편집국부국장

    지난달 본면에 ‘합창’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합창단을 만들어 취미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고교동창들이 자녀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다는 내용이었다. 얼마전 아버지들의 결혼식 축가를 실제 한번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와 흔쾌히 따라나섰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목사님 주례로 진행됐다. 목사님은 자녀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겐 주례를 서지 않는다며 2명 이상 자녀를 가지라고 당부해 웃음이 일게 했다. 주례사에 이어 합창순서. 신랑 아버지도 합창단이 서 있는 곳으로 갔다.20명의 합창단은 혼인서약을 한 신랑·신부에게 복음성가를 들려주었다.‘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노래는 커졌다 작아졌다, 때로는 이중주로 울려퍼졌다. 그 속에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잘살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하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뭔가 참된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박수였다. 합창단은 경복고 39회였다. 임태순 편집국부국장 stslim@seoul.co.kr
  • 英스카이스포츠 “설기현은 행복하다”

    英스카이스포츠 “설기현은 행복하다”

    설기현(28)의 ‘행복한 풀럼 생활’이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 스포츠 매체들은 설기현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내용을 자세히 보도하며 ‘풀럼에서의 설기현’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프리미어리그 주관 방송사 ‘스카이스포츠’(Sky soprts)는 17일 인터넷 뉴스에 ‘설기현은 행복하다’(Seol’s so happy)는 제목으로 설기현의 블로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스카이스포츠는 “설기현이 크레이븐 코티지(풀럼의 홈경기장)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밝히며 그 근거로 선수들 뿐 아니라 시설등 클럽 자체를 높게 평가한 블로그 내용을 전했다. 또 “설기현은 자신의 열정을 런던 사람들과 함께 불태우려 한다.”며 뜨거운 활약을 기대했다. 스포츠 전문사이트 ‘잇슬립스포츠’(eatsleepsprt.com)도 같은날 “팀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설기현의 말을 전했다. 사이트는 현재 강등권에 있는 팀에 설기현이 충고를 했다며 그의 블로그 내용 중 “현재 중요한 것은 눈에 띄는 성적을 내는 것이며 우리는 좋은 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보도했다. 또 “젊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 팀이 곧 안정권에 들어가리라 확신한다.”는 블로그 내용을 통해 설기현의 의지를 전했다. 한편 설기현은 20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더비 카운티와의 홈경기에서 이적 후 첫 골 사냥에 나선다. 사진= Seol’s Blog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길섶에서] 합 창/임태순 편집부국장

    고교 동창생들이 매주 월요일 만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스무명 남짓 된다. 고교를 졸업한 지 40년이 넘어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두시간가량 함께 노래를 부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오래전 고교 친구를 만나서 좋다.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니 더욱 좋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뭔가 맺힌 것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합창은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래서 온갖 풍상을 겪고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초로들이 쉽게 한마음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노래를 하면서 봉사활동도 펼친다. 두달에 한번씩 사회복지회관 등을 찾아가 외롭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로 달래준다. 이들에게 또 다른 고교 동창이 찾아와 아들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러마 한 뒤 기왕에 축가를 하려면 혼주도 함께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드디어 결혼식 날, 아버지가 친구들과 함께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축가를 불렀다. 아마 이보다 더 멋진 결혼식도 없었을 듯싶다. 임태순 편집부국장 stslim@seoul.co.kr
  • ‘내금강’ 시범관광 동행기

    ‘내금강’ 시범관광 동행기

    금강산의 진수라 할 내금강이 지난달 말 시범관광을 갖고 6월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지난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 9년 만에 외금강, 해금강에 이어 내금강으로까지 외연이 확대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마련한 2박3일 일정의 내금강 시범관광에 동행했다. 금강산 임태순기자 stslim @seoul.co.kr 사진 금강산 공동취재단 내금강과 외금강은 말 그대로 안과 밖이다.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바깥쪽이 외금강이고 내륙으로 면한 안쪽이 내금강이다. 유홍준은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예부터 금강산을 유람한다는 것은 바로 내금강을 의미한다고 했다.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이제현, 조선의 퇴계와 율곡, 근대의 이광수 최남선 등 당대의 쟁쟁한 문인들이 내금강을 노래했다. 내금강 계곡의 폭포와 못, 기암괴석엔 전설이 서려 있다. 나옹화상과 불상제작 경쟁을 벌였던 금동거사는 지는 바람에 내금강 울소바위에서 목숨을 끊었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표훈사에서 ‘청산아 나는 안으로 들어가는데 녹수야 너는 왜 밖으로 나오느냐.’(我向靑山去 錄水爾何來)라고 읊었다. 일제시대에는 서울에서 경원선 열차를 타고 내금강으로 들어갔지만 지금은 멀리 강원도로 돌아가야 한다. 최근 남북철도 연결로 주목을 받았던 화진포 북단의 제진역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수속을 받고 버스는 북측 감호역으로 향했다. 온정리에서 북측 교예공연을 관람한 뒤 첫날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아침 7시20분쯤 호텔 앞에서 인원점검을 마치자 버스는 북측 관리사무소로 이동했다. 잠시후 북측 안내원 2명이 올라탔다. 남자와 여자였다. 리남송이라는 남자 안내원은 자신의 이름은 ‘남산의 소나무(南松)’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며 ‘반갑습니다’라는 노래로 분위기를 풀어갔다. 버스는 외금강 만물상을 끼고 굽이굽이 힘겹게 올라간다. 온정령 정상까지는 고개가 106개나 있다고 한다. 차창 밖으로는 중국의 장가계를 연상시키는 만물상이 있지만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온정령 정상에서 가쁜 숨을 토해내고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마의태자의 묘, 장안사, 울소바위를 뒤로하고 2시간을 달려 버스는 표훈사에 도착했다. 경내의 능파루, 반야보전, 칠성각 등의 전각이 모두 단아하고 정갈하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자 잠시후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금강문이 나온다. 이제 속세를 떠나 신선세계로 들어오라고 하는 듯하다. 소나무 2개가 사이 좋게 맞붙은 부부소나무가 눈길을 끌더니 만폭동 계곡이 나온다. 원통골에서 흘러나온 물이 널찍한 바위를 타고 흐르며 못과 폭포를 형성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계곡에서 눈을 돌려 전후좌우를 바라보면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목이 반긴다. 갑자기 눈이 바빠진다. 조선시대 봉래 양사언은 금강대 너럭바위에 ‘만폭동(萬瀑洞)’과 ‘봉래풍악 원화동천(蓬來楓嶽 元化洞天)’이라는 글을 초서로 남겼다. 신선이 바둑을 둔 바둑판도 새겨져 있다. 비파담, 벽파담, 분설담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바위에 조그만 암자가 밧줄을 생명줄로 해 위태위태하게 걸려 있다. 보덕암이다. 안내원은 하산길에 보라며 갈길을 재촉한다. 진주담, 구담, 선담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산행길의 더위를 식혀 준다. 마하연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는 곳에는 세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200여m 오르면 불교교리를 가르쳤던 마하연터가 나오지만 가볼 수 없다. 최종 목적지인 묘길상(妙吉祥)은 계곡 옆으로 난 외길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두 사람이 간신히 서로 교행할 수 있을 정도다. 마침내 다다른 묘길상은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높이 15m, 좌우 폭 9.4m의 바위벽에 가부좌한 부처가 새겨져 있다. 불상 옆에는 묘길상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상호의 입초리에는 웃을 듯 말 듯한 미소가 머금어 있어 보는 이에게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안내원은 조금 더 올라가면 비로봉이 나온다고 설명하지만 더 이상 갈 수 없다. 하산길에 구름다리를 건너 보덕암으로 향했다. 계단이 가팔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몇백미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다. 왜 하산길에 구경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보덕암 뒷마당에 이르자 만폭동 계곡에선 잘보이지 않던 금강대, 무선대, 대·소 향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내원은 소 향로봉 위에 있는 작은 바위는 중 회정을 수도의 길로 이끈 보덕각시가 파랑새로 변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망은 좋지만 바위마다 새겨진 글귀가 마음을 개운치 않게 한다. 표훈사로 내려와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고 난 뒤 버스에서 설명으로만 들었던 울소바위, 장안사터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다. ■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표훈사에서 묘길상에 이르는 3㎞ 남짓의 산길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일정에는 왕복 2시간30분이라고 했지만 건장한 성인의 걸음걸이로는 여유있게 다녀오고도 남는다. 만폭동, 보덕암, 마하연, 묘길상 등에 북측 안내원이 배치돼 설명을 해준다. 하지만 미리 금강산과 관련된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좋다. 등산화는 필수. 바위가 많아 비 오는 날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계곡을 잇는 구름다리가 있지만 조금 불안하다. 더 많은 보조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 같다. 온정리∼표훈사 간은 40여㎞에 불과하지만 비포장이어서 두 시간가량 걸린다. 또 이동 중에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어 미리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 표훈사∼묘길상 산길에는 마하연에 화장실이 있지만 시설이 충분치 않다. 하산후 온천욕도 피로를 풀기에 족했으며 옥류관에서 맛본 소천엽, 쏘가리즙 튀김, 더덕철판, 돼지죽순볶음, 지짐, 냉면은 양도 적당했으며 조미료를 많이 쓰지 않아 담백했다.
  • [길섶에서] 성 묘/임태순 편집부국장

    엊그제 점심 자리에서 추석 성묘가 화제로 올랐다. 누군가 명절 성묘 풍습도 우리 대에서 끝날 것이라고 하자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납골당에 화장이 자리를 잡는 추세인 만큼 멀리 시골 고향까지 내려가 조상의 묏자리를 돌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은 뻔한 일이다. 수목장을 생각해볼 만하다는 이도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묏자리를 써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말고,‘깨끗이’ 가자는 데에까지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동료가 조상의 묘도 우리가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 공부나 간신히 할 뿐, 청소와 심부름 등 집안 일조차 거들지 않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떻게 조상의 묘를 맡기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도 제 주변조차 정리하지 않는 것 같다. 방이 더러워 치우라고 하면 거실로, 식당으로 옮겨다니기만 했지 여간해선 품을 팔지 않는다. 이제 조상의 묏자리도 정리해 놓아야지, 아이들을 믿었다가는 저 세상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뵐 면목이 없을지 모르겠다. 임태순 편집부국장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고단한 노인/임태순 편집부국장

    지하철로 출근한다.3호선을 타고 오다 종로 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다. 전동차에 오르면 종종 할아버지 한분과 마주친다. 마른 몸의 할아버지는 전동차 선반 위에 있는 무가지들을 알뜰히 수거한다. 폐지로 팔아 돈으로 바꾸려는 것일 게다. 할아버지를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개발시대에 그들 세대의 열정과 근면이 없었으면 오늘의 우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마음 한 구석에선 빚진 기분도 든다. 한편으론 복지사회를 맞아 노인 일자리 마련에 소홀했다는 자책감이 인다. 고령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마련해 드렸으면 이른 아침 지하철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가지 수거도 경쟁이 치열하다. 때론 다른 할아버지와 마주치기도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승객을 밀치며 급히 수거할 때는 신경에 거슬린다. 공중 도덕을 중요시하는 시민사회에서 에티켓이 실종된 느낌이 든다. 신문을 수거하는 할아버지 모습이 내 안에 투영돼 일어나는 개발시대, 시민·복지사회의 복잡다단한 단면들이다. 임태순 편집부국장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산등성이/ 임태순 논설위원

    우연히 인도 대통령 압둘 칼람의 자서전 ‘불의 날개’를 읽게 됐다. 동료들과 힘을 모아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과정도 감동적이었지만 ‘산등성이’를 강조한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생명을 기르는 곳은 산등성이지,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만물이 자라고, 경험을 얻고 기술을 습득하는 곳은 산등성이지 결코 산꼭대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그의 말대로 산 정상에는 바위나 흙만 있고 나무나 풀 등 생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상은 삶의 터로 맞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상의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는 “정상의 중요성은 다만 산등성이를 규정하는 데 있을 뿐”이라면서 산을 오르되 산등성이를 찬찬히 음미하며 오를 것을 권했다. 인생이고 등산이고 정상에 있는 시간은 잠깐이다. 정상은 생존여건으로 부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대부분의 시간은 정상이 아닌 산등성이에서 보낸다. 산중턱을 오르면서 아름다운 나무를 만나고 땀을 흘린다. 산등성이에 이미 눈을 떠서인지 압둘 칼람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전처럼 조그만 집에서 소박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민들레/임태순 논설위원

    생물의 본능은 종족보존이다. 화려한 꽃이나 수목들도 생존경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벚나무 아래에는 클로버 등 쌍잎 풀을 발견하기 어렵다. 벚나무 향기의 주성분인 크마린이 클로버에 치명적인 독이 되기 때문이다. 또 호두나무 근처에는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호두나무 잎에서 분비되는 유글론이 빗물을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뿌리 근처의 잡초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 없지만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민들레는 4∼5월이면 우리나라 산과 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야생화다. 노란꽃은 화려하지 않고 수더분해 친근감이 간다. 민들레 꽃은 200여개의 낱꽃이 모여 이루어져 두상화(頭狀花)라고 한다. 민들레하면 홀씨가 떠오른다. 많은 씨가 모여 공 모양을 이루고 씨에는 깃털이 있어 멀리 날려 흩어진다. 번식력이 강해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래서 민들레를 두고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하고,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거침없이 피어나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민들레는 자생민들레와 서양민들레가 있다. 꽃주머니로 구분되는데 뒤로 젖혀지는 것이 서양민들레, 그렇지 않은 것이 자생민들레다. 서양민들레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유입경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전래 서양식물의 상당수가 서양과 교류를 일찍 시작한 일본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미루어 개화기때 일본을 경유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양민들레는 생식력이 강하다. 종자생성률이 높고 꽃피는 시기가 길고 꽃가루 없이도 생식이 가능하다. 또 자생민들레에 자신의 유전자를 침투시켜 잡종으로 만들기도 한다. 반면 자생민들레는 꽃가루가 있어야지만 생식할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약하다. 이 때문에 서양민들레가 전체 민들레의 90% 이상을 차지할 지경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민들레가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는 등 별다른 피해는 일으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고유 유전자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서양민들레를 제거하는 등 관리를 해 나가기로 했다. 자생민들레에 서양민들레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이순신/임태순 논설위원

    공기업에 다니는 인사와 점심을 했다. 사장이 바뀌어 회사가 어수선하겠다고 인사를 건네도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회사 중역이 ○씨 사장운동을 위해 뛰었다는 투서가 들어왔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올바르게 직장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해왔는데 투서를 받으니 서글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를 당해 보니 주위로부터 모함을 받고도 의연한 자세를 보인 이순신 장군이 새삼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순간 최근 읽고 있는 책에 나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가 생각났다. 그는 일본의 통일을 위해 힘을 합치자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교토로 초청했다. 도쿠가와는 위세를 과시하려고 2만의 군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도쿠가와가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루머로 변질된다. 하지만 도요토미는 그 정도 군대로는 나와 싸울 수 없다면서 유언비어를 믿지 않았다. 당연히 충돌이나 전쟁은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유언비어보다 훨씬 악성인 모함에 굴하지 않은 만큼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하자 그는 파안대소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칭짱 철도/임태순논설위원

    한 조간신문에 난 사진이 눈길을 끈다. 일군의 어린이들이 송아지와 함께 최근 개통된 중국 칭짱(靑藏)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칭짱지역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고원으로 해발 평균고도가 4000m에 이른다. 북쪽은 쿤룬(崑崙)산맥, 남쪽은 히말라야산맥으로 둘러싸인 오지이다. 이들은 알록달록한 옷에다 모자까지 쓰고 있어 궁하게 보이진 않지만 기차를 지켜보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 오랜 세월 문명의 이기와 단절됐음을 느끼게 한다. 문득 오지로 향하는 저 열차가 저들에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1800년대 초반 등장한 기차는 산업혁명의 상징이었다. 피스톤의 단절없는 왕복운동에 기반을 둔 엄청난 속도감과 기적(汽笛)소리의 굉음은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말이 주요 수송수단이었던 당시 시속 40㎞에 이르는 기차는 첨단기술의 표본이자 문명이기의 총아였다. 철도는 궤도를 통해 국경을 뛰어넘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켜 나갔다. 기차는 또 지식과 문물을 실어 나르는 문명의 통로이자 제국주의국가가 약소국가를 수탈하는 수단이었다. 세계화의 원조인 셈이다. 인도·파키스탄 쪽에 면해 있는 티베트고원의 라다크지역에 1970년 중반이후 서구문명이 들어왔다. 지프차와 버스가 새로 개설된 도로를 점령하고 영화관, 화장품, 가전제품 등 서구적 소비문화가 전파됐다. 이곳에서 장기 체류하며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기술이나 재화가 오히려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고 꼬집는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인플레이션, 실업, 환경파괴라는 신종 문명병이 생겼다. 종래에는 없던 스트레스, 권태가 주민들을 괴롭혔다. 여동생은 “도시에 사는 언니는 세탁기, 가스레인지 등 모든 것을 빨리 하는 것을 갖고 있지만 항상 찾아가면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칭짱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리는 안데스산맥의 페루비안철도보다 200m 더 높아 최고(最高)기차가 됐다. 그래서 과장법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은 ‘하늘열차’라고 부른다. 하늘열차는 불가불 외부와 단절됐던 티베트의 개방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하늘열차가 현대로 안내하는 꿈의 열차가 될지 세계화의 주름을 깊게 하는 비운의 열차가 될지 주목된다. 임태순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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