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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칭짱 철도/임태순논설위원

    한 조간신문에 난 사진이 눈길을 끈다. 일군의 어린이들이 송아지와 함께 최근 개통된 중국 칭짱(靑藏)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칭짱지역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티베트고원으로 해발 평균고도가 4000m에 이른다. 북쪽은 쿤룬(崑崙)산맥, 남쪽은 히말라야산맥으로 둘러싸인 오지이다. 이들은 알록달록한 옷에다 모자까지 쓰고 있어 궁하게 보이진 않지만 기차를 지켜보는 모습이 너무 진지해 오랜 세월 문명의 이기와 단절됐음을 느끼게 한다. 문득 오지로 향하는 저 열차가 저들에게 약이 될까, 독이 될까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1800년대 초반 등장한 기차는 산업혁명의 상징이었다. 피스톤의 단절없는 왕복운동에 기반을 둔 엄청난 속도감과 기적(汽笛)소리의 굉음은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말이 주요 수송수단이었던 당시 시속 40㎞에 이르는 기차는 첨단기술의 표본이자 문명이기의 총아였다. 철도는 궤도를 통해 국경을 뛰어넘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켜 나갔다. 기차는 또 지식과 문물을 실어 나르는 문명의 통로이자 제국주의국가가 약소국가를 수탈하는 수단이었다. 세계화의 원조인 셈이다. 인도·파키스탄 쪽에 면해 있는 티베트고원의 라다크지역에 1970년 중반이후 서구문명이 들어왔다. 지프차와 버스가 새로 개설된 도로를 점령하고 영화관, 화장품, 가전제품 등 서구적 소비문화가 전파됐다. 이곳에서 장기 체류하며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기술이나 재화가 오히려 그들의 삶을 파괴했다.”고 꼬집는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인플레이션, 실업, 환경파괴라는 신종 문명병이 생겼다. 종래에는 없던 스트레스, 권태가 주민들을 괴롭혔다. 여동생은 “도시에 사는 언니는 세탁기, 가스레인지 등 모든 것을 빨리 하는 것을 갖고 있지만 항상 찾아가면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칭짱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리는 안데스산맥의 페루비안철도보다 200m 더 높아 최고(最高)기차가 됐다. 그래서 과장법을 좋아하는 중국사람들은 ‘하늘열차’라고 부른다. 하늘열차는 불가불 외부와 단절됐던 티베트의 개방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하늘열차가 현대로 안내하는 꿈의 열차가 될지 세계화의 주름을 깊게 하는 비운의 열차가 될지 주목된다. 임태순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명88124/임태순 논설위원

    ‘9988124’란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하루이틀(12) 누워있다 죽는 것(4)을 말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다 병치레 길게 하지 않고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이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다시 이 말이 화제로 올랐다.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한 인사는 아직 이 말을 몰랐던 듯 참 공감이 가는 말이라며 재미있어 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더니 ‘명(命)88124’라는 새로운 조어(造語)를 만들어냈다. 그는 우리나라 남자 평균수명이 75세인데 그 정도면 살 만큼 산 것이라며 99세까지 바라는 것은 욕심이자 사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너무 오래 살면 자식들에게도 큰 부담을 주는 만큼 하늘이 정해준 명에 따라 건강하게 살다 조용히 졸(卒)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집착은 많이 사라졌다. 대신 ‘9988124’나 ‘명88124’에서 보듯 건강(88)과 병석에서 오래 고생하지 않고 죽는 것(124)은 공통어가 됐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경범죄/임태순 논설위원

    며칠 전 승용차 앞유리창에 광고물이 끼여 있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났다. 기(氣)치료를 안내하는 전단지였다. 전화를 걸어 ‘왜 남의 차에 광고전단지를 끼워놓느냐. 가져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 야박한 것 같아 그만뒀다. 하지만 전단지를 집으로 들고와 쓰레기통에 버리려 하니 조그만 것에 손해보기 싫어하는 소시민 근성이 발동, 공연히 화가 났다. 경(輕)범죄는 말 그대로 사회상규나 사회질서를 가볍게 어긴 범죄를 말한다. 노상방뇨나 침뱉기, 담배꽁초 버리기 등이 얼핏 떠오른다. 누구나 남이 보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또 약간의 일탈행동을 하고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행동이 타인에게 크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경범죄 위반자에 대한 처벌은 범칙금 부과나 즉결심판에 그친다. 우리나라는 1954년 일본의 경범죄처벌법을 본떠 처음 제정했다. 이후 9차례 개정됐다. 경범죄에는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미신요법이나 사회불안감 조성에 대한 처벌은 60년대에 만들어졌다. 우리에게 친숙한 경범죄는 70년대에 많이 생겨났다. 비밀댄스홀, 암표, 새치기 등이다.‘대한늬우스’에서 볼 수 있던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80년대에는 무단취식, 무임승차, 장난전화가 추가됐다. 현행 법에 따르면 경범죄는 모두 50개가 규정돼 있다. 빈 집에 들어가거나 음주소란, 자릿세 징수, 금연장소에서의 흡연 등도 처벌대상이다. 그러나 유명무실한 조항도 적지 않다. 도랑이나 개천의 물길흐름 방해, 뱀 등 혐오물질 전시, 무단소등 등은 시대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배나 비행기표에 이름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급작스러운 사고시 공무원을 도와 남을 구조하지 않았을 경우도 경범죄로 처벌된다. 경찰청이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경범죄를 정비한다는 소식이다. 굴뚝 관리소홀, 전당포 장부 허위기재, 비밀춤 교습 등은 삭제대상이라고 한다. 반면 무전취식의 범위가 넓어져 PC방이나 당구장도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모두(冒頭)에 언급한 차문에 전단지 끼우는 행위도 광고물 무단첩부(貼付)로 처벌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 때가 되면 소시민 심리가 조금 보상될지 모르겠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나무 심는 단체장/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나무 심는 단체장/임태순 논설위원

    청주에 사는 홍재봉 할아버지는 올해 93세로 지방자치 원년 멤버이다. 지방자치가 처음 실시된 1952년 39세의 나이로 충북 청원군 강서면장으로 입후보해 당선됐다. 그는 면장으로 일하면서 관내 도로에 플라타너스 1600 그루를 심었다. 충청북도의 관문이 너무 허전하다는 상급기관의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묘목은 훼손되기 일쑤였다. 도로를 지나는 소장수들이 소 회초리로 쓰거나 어린이들이 갖고 놀기 위해 마구 꺾었기 때문이다. 홍 할아버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면장으로 재직하던 5년동안 보조목을 대주고 보식하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아 조그마한 묘목을 키웠다. 이것이 오늘날 청주를 상징하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됐다. 하늘을 가릴 듯 울창한 플라타너스 가로터널은 청주의 명소가 됐을 뿐만 아니라 영화 ‘만추’,TV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도 멋진 가로로 빼놓을 수 없다.1972년 당시 내무부가 이곳을 가로수조성사업 시범가로로 지정,3∼4년짜리 묘목을 심은 것이 어느덧 하늘을 찌를 듯한 아름드리 나무가 된 것이다.8.5㎞의 가로변에 열병하듯 서 있는 나무들은 푸른 녹음을 뽐내며 전국 최고의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자랑한다. 이 곳 역시 ‘와니와 준하’,‘아카시아’ 등의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소로 이용됐다. 가로수길을 둘러보기 위해 일부러 담양을 찾을 정도로 담양관광에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경남 함양에 있는 상림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숲이다. 통일신라때 함양 태수로 내려온 최치원이 홍수를 막기 위해 마을을 가로지르는 위천의 물길을 틀어 둑을 쌓은 뒤 나무를 심은 것이 계기가 됐다. 상림숲 역시 천년을 내려오며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5·31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단체장들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역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새로 업무를 인계받고, 지역발전을 위한 사업을 구상하는 등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저마다 지역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 또한 남다르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많은 단체장들은 업적과시용 또는 선심성 사업을 벌여 예산을 낭비하기 일쑤다. 감사원이 얼마전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단체장들은 타당성 조사도 하지 않고 컨벤션 센터, 영상문화시설단지 등을 건립하거나 체육시설이나 문화시설을 터무니없이 크게 지어 혈세를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밀한 검토 없이 의욕만 앞세웠기 때문이다. 새내기 단체장들은 주민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화려하고 거창한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토목공사보다는 마을숲을 가꾸고 가로수를 심는 등 자연에 투자하는 것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봄이면 벚꽃 터널을 보기 위해 쌍계사를, 가을이면 단풍나무길을 보기 위해 내장산을 찾듯 먼 훗날 자연은 반드시 보상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가장 경제적인 사업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영원히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무를 심기만 한다고 해서 다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강서면장을 지낸 홍 할아버지는 “나무심는 것은 자식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단체장들이 개발사업으로 산과 강을 깎아 먹기보다 후손들을 위해 자연이라는 원금을 불려 줄 것을 기원해본다.240여개 지자체들이 저마다 하나씩 ‘명품(名品)자연’을 가꾼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문데스리가’/임태순 논설위원

    저녁 배가 꺼지지 않아 과식을 후회하면서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있는 동네 공원을 찾았다. 밤 9시여서 어둠이 내렸지만 곳곳에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원은 부지런히 걷거나 뛰는 건강족들로 붐볐다. 그들 속에 파묻혀 함께 공원을 한바퀴 돌았다. 거리가 짧아 도보코스를 공원 옆에 딸린 작은 운동장으로 확대했다. 마침 운동장에는 몇몇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가로등이 비치고 달도 떠 있어 공을 차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순간 한때 축구에 매달렸던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던져놓고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20여명이 편을 나눠 시합을 한다. 경기가 끝나면 몇명이 사라지고, 이런 과정을 몇차례 거치면 5∼6명이 남는다. 어느덧 학교 운동장에는 어둠이 깔리고 휘영청 달이 뜬다. 우리 ‘달밤 축구족’들은 호빵을 걸고 최후의 일전을 벌인다. 시장기가 극에 달한 만큼 승리를 위해 사생결단이다. 월드컵이나, 독일 분데스리가는 아니더라도 아직 동네 ‘문(Moon)데스리가’에서는 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중년 치매/임태순 논설위원

    멀게만 느껴지던 ‘치매’라는 말이 부쩍 생활속에 자주 쓰인다. 국립국어연구원은 얼마전 ‘디지털 치매’를 신조어로 올려 놓았다. 휴대전화나 내비게이션 등 디지털 기기를 많이 쓰다 순간적으로 집 전화번호나 자주 가던 길이 생각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갑자기 뇌가 지적 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말하는 치매는 주로 노년층에 발생하는 병이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치매는 이제 40∼50대 중년층은 물론 30대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등 환자층이 연소화하고 있다 일본에서 ‘중년 치매’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치매 선고를 받은 49세 회사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내일의 기억’이 계기가 됐다. 중년 치매 환자가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적은 숫자가 아니다. 수발하는 가족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알코올중독증에 빠지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이 파탄나는 등 고통이 주위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치매는 암, 뇌졸중, 당뇨병과 함께 ‘문명병’‘현대병’으로 꼽힌다. 스트레스, 운동부족, 영양 과잉섭취 등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오히려 더 많은 일과 노동에 시달린다. 조그만 반도체 칩에 수많은 정보가 담기면서 현대인의 노동강도는 더욱 세어지고 삶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자연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운동부족으로 한밤중 헬스클럽에 가 돈을 주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땀을 흘리는 것이 도시인의 모습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에 따르면 생활습관과 식습관의 변화로 젊은층 비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20대 비만인구가 1992년 8.1%에서 2000년 32.3%로 4배 증가했고 30대는 같은 기간 18.8%에서 35.1%로 늘어났다. 반면 40대는 25.2%에서 37.8%로,50세 이상은 26.1%에서 36.6%로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완만했다. 이 지경이니 치매가 일찍 찾아오는 것도 당연하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중년에 음주·흡연을 많이 하고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증상이 있던 사람이 노년에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40대 9000여명을 20여년 동안 추적 관찰해 얻어낸 결과라니 흘러넘겨 버릴 수는 없다. 적당히 운동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유쾌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해 중년을 슬기롭게 넘겨야 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기호 가나다/임태순 논설위원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서로 뜻이 통하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글자를 만들었다.”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은 서문에서 한글의 철학적 배경이 위민사상에 있음을 밝혔다. 한글의 우수성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ㄱ,ㄴ,ㄷ 등 글자를 만든 원리와 형태를 자세히 밝힐 정도로 과학적이다. 외국인들도 한국말을 배우기는 어려워도 글자가 되는 원리나 발음 등은 금방 깨치게 된다고 말한다. 이미 있는 문자가 아닌 새로운 것에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란 평가도 빠지지 않는다. 언젠가 국립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구내 매점에서 한글문양의 우산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란 바탕에 아로새겨진 ㄱ,ㄴ,ㄷ,ㄹ,ㅇ 등 한글의 자음은 독특한 조형미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 한글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그후 한글문양이 새겨진 지갑이나 가방 등을 자주 보게 된다. 독일의 한 백화점에서는 훈민정음 글꼴을 전시하고 있을 정도라고 하니 한글의 디자인으로서의 빼어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글꼴을 다양하게 변형시킬 수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글의 기초가 되는 가, 나, 다…는 순서를 정하는 데에도 자주 쓰인다. 학교 다닐 때 번호는 이름의 가, 나, 다순으로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도 가, 나, 다 순이 적용됐다. 새로 중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한 정당에서 복수의 후보자가 나오자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별 고유 숫자에 후보자 이름의 가, 나, 다순으로 투표용지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묘한 조화를 부렸다. 많은 사람들이 제일 앞에 있는 사람에게 기표를 하는 바람에 이름이 빠른 사람이 무더기로 당선됐다. 그래서 지방의원은 이름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좀더 짚어보면 이는 주민들이 주권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와 공약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고 그저 앞에 있는 사람에게 표를 찍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지마 투표였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한글을 만들었는데 500년이 지난 지금도 백성들은 여전히 우매한 모양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개망신/임태순 논설위원

    휴일 아침 부지런을 떨어 정발산 공원에 올랐다. 웰빙추세 때문인지 공원은 많은 사람들로 붐벼 활력이 넘쳤다. 헬스기구에 매달리고, 정자에 올라가 땀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할아버지가 개를 데리고 지나갔다. 그 옆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개와 함께 왔는데 배변봉투도 없이 무방비로 왔네.”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말이 할아버지의 신경을 건드렸나 보다.“개를 끌고 오든 말든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하는 말이 돌아왔다. 아주머니가 머쓱해한 것도 잠시 인근에 있던 20여명이 한마디씩 퍼부었다.“산에 개를 끌고 오려면 준비를 하고 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우리는 매일 아침 산에 올라와 개 배설물 등 오물을 치우고 가는데 당신은 산에 와서 청소해본 적이 있느냐.” 산악회 회원들이 달려들어 따지자 할아버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못하고 개를 끌어안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순간 저런 게 개망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견가들도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공공장소에서 개망신 당하기 쉬운 세상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청바지 결혼식/임태순 논설위원

    지방에서 한의대를 다니는 학생이 선을 봤다. 늦깎이여서 혼기가 찼기 때문이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친구처럼 부담감 갖지 말고 만나자는 여자의 제안에 몇번 자리를 같이했다. 나이가 많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고 집이 부자도 아니었지만 착한 마음씨에 끌려 결혼을 약속했다. 두 사람은 양가가 서로 여유가 없는 만큼 결혼식은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장모되실 분이 아무리 없지만 예단 등 최소한의 혼수는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첫딸이어서 그냥 보내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신랑도 그렇게 하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당초대로 간소하게 혼례를 올리기로 했다. 주례는 목사직을 정년퇴직한 뒤 강원도 평창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신랑쪽 집안어른에게 부탁했다. 물론 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뒤 자신의 집을 혼례장소로 제공했다. 하객으론 양가 집안식구들만이 참석했다. 신랑은 청바지 차림이었으며, 신부도 직장 다닐 때 입는 평상복 그대로였다. 주례도 이렇게 멋진 결혼의 주례를 서기는 처음이라며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서울광장] 범대위와 월드컵/임태순 논설위원

    [서울광장] 범대위와 월드컵/임태순 논설위원

    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운동을 벌여온 사회운동단체들은 자신들을 평택미군기지이전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라고 불렀다. 범대위에는 민주노총, 한총련, 전교조, 전공노 등 각종단체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집회나 시위에 참여한 인원을 보면 범국민대책위원회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쑥스럽다. 관심이 집중됐던 지난 14일 일요일 평택집회만 해도 1만∼2만명 정도 참가할 것이라는 경찰의 예상과는 달리 4000명(경찰추산)∼5000명(한겨레신문보도)에 불과했다. 산하 조합원이 80만명인 민주노총은 올 들어 비정규직법 입법 저지 등을 내걸어 모두 8일간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참여인원은 4만∼6만여명(노동부집계)에 그쳤다. 그나마 현대차, 기아차 등 대규모 사업장이 4시간휴업 등의 형식으로 동참한 것을 포함한 수치이니 실질적인 참여자는 훨씬 적을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의 가장 강력한 쟁의수단이자 최후의 저항권이다. 이를 조자룡 헌칼 쓰듯 마구 휘두르다 보니 총파업도 이젠 엄포용이지 별로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5공,6공 등 권위주의 정부시절에는 운동권단체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언론에서도 대학생이나 재야운동권들의 시위나 집회를 우호적으로 다루었다. 민주화에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시위 숫자도 경찰이 발표한 것보다 주최측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50명 아니 20명이 참석한 ‘국민보고대회’도 애교로 받아들였다. 얼마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단 명단이 발표됐다.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TV앞에 몰려들어 귀를 쫑긋했다. 저녁 9시 뉴스에서도 이 소식을 장황하게 전해 개각발표는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신문도 1면 머리기사는 물론 2,3면 등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벌써부터 꼭짓점댄스가 유행하는 등 국민들의 눈과 귀는 온통 대표선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려 있을 정도다. 운동권, 시민단체가 퇴조를 보이는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사회전반적으로 민주화가 진전됐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극심한 취업난, 웰빙풍조 등도 통일, 반미자주화, 민중민주주의 등 이념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 범대위 등이 평택에서 보인 폭력시위도 국민들의 눈을 돌리게 했다. 세계사에서 폭력없는 혁명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미군기지 평택이전반대가 반드시 폭력까지 동원해 쟁취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운동권이나 민주화단체가 약간 일탈행위를 하거나 탈선해도 눈감아줬다. 또 ‘진상규명 국민규탄대회’ 등 표현상 ‘오버’를 해도 관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민들은 그들에게 더욱 엄격한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념에 대한 관심이나 열기가 식어가지만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 폐쇄된 것은 아니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효선·미순이 사건이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태에서 보듯 국민의 공감대만 얻으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한다. 또 인터넷을 통해 전파돼 더욱더 폭발적이고 위력적이 된다. 이제 국민들은 과거처럼 무지하지도 않고 권위주의 정권이 휘두르는 ‘채찍’이 무서워 웅크리고 있지도 않다.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시시비비를 가려 목소리를 낸다. 범대위가 자신들을 ‘범대위’라고 부르려면 언어의 거품을 빼고 눈높이를 국민들에게 맞춰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들은 더이상 범대위라는 명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학교급식/임태순 논설위원

    학교급식은 한국전쟁이 끝나던 1953년 구호차원에서 처음 실시됐다.50세 가까운 장년층에게는 옥수수죽의 아련한 추억이 있다.196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미국의 원조로 나온 옥수수가루로 쑨 죽을 급식으로 먹었다. 빈곤했던 시절 노란 옥수수죽은 제법 맛있는 먹거리였다. 지금이야 영양과잉, 비만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학교급식은 이처럼 못먹던 시절 보릿고개의 아픔이 있다. 학교급식은 81년 학교급식법이 제정되면서 농어촌과 도서벽지 초등학교부터 실시됐다. 초·중·고 전면 보급에 나선 것은 2003년부터다. 현재 99.4%인 전국 1만 780여개교에서 급식을 실시하고 있으니 전면 보급이나 다름없다. 학교급식은 주부들의 가사부담을 덜어주었다. 도시락을 싸가던 시절에는 주부들이 학교 다니는 자녀들 때문에 아침밥을 해야 했지만 학교급식이 실시되면서 이런 고민은 없어졌다. 최근 충북 청주 모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식당에서 학생들에게 밥을 빨리 먹으라고 채근하다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봉변을 당했다. 학부모들은 교사가 밥을 빨리 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어린 자녀가 체하고, 심한 경우에는 반성문을 쓰거나 벌을 받았다면서 교사를 몰아붙였다. 비좁은 식당에서 전교생이 제한된 시간에 식사를 해결하려다 빚어진 일이다. 경기도 일산의 한 고교에서도 급식식당 문제로 교사들이 삭발을 하는 등 소동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이 촉박해 1교시 수업시간을 20분 당기려 했으나 교사회의에서 부결됐다. 고민하던 교장선생님이 직권으로 수업시간을 당기려 하자 일부 교사들이 삭발을 하며 반발했다는 것이다. 급식식당 운영은 교육부 권장사항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음식부패 등 위생상의 문제가 있어 식당배식을 권장하고 있다.”면서 “배식시간을 학년별로 시차를 두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배도 고프지 않은데 점심을 일찍 먹게 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등 오히려 일선 학교에서는 식당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학교급식의 중심은 학생이어야 한다. 청주의 초등학교건 일산의 고등학교건 학생보다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너무 나섰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콩 한쪽도 나눠먹는 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풍요로워진 요즘에는 자신의 권리와 주장만 내세우는 탐욕과 욕심만 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님트/임태순 논설위원

    참여정부 들어 고위공직자들이 친정에 쓴소리를 하는 경우가 부쩍 많다. 그만큼 언로가 개방적인 데다 권위주의시절처럼 정부가 무시무시한 힘을 휘두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지난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추진은 임기내에 뭔가 업적을 남겨보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조급증 때문에 시작된 대표적인 한건주의”라면서 통상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전 비서관의 이같은 발언은 당시 정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 위해 협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때여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 무역협회장은 엊그제 서울대 강연에서 공무원의 무사안일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는 “부안사태 등 국책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님트(NIMT)’라는 병 때문”이라면서 “주민들의 복지가 어떻든 간에 공무원들은 님트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님트는 ‘Not In My Term’의 준말로 공무원들이 자신의 임기안에 혐오시설유치 등 부담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다. 퇴임전 소신발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임기말 한 강연에서 “기업의 투자확대를 위해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산업·금융자본의 분리원칙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재벌개혁을 주장해온 정부의 기조와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도 KT&G의 경영권 분쟁시 “한국 대표기업의 경영권을 외국기업이 빼앗아 가려는데 대해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시장자율과 경쟁촉진을 주장해온 종래의 입장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현직에 있을 때는 정부와 코드를 맞추고 떠날 때가 되니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어쨌든 네사람의 발언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한·미 FTA를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은 아닌지, 재벌개혁을 강조하다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등 한번씩 곱씹어볼 만하다. 아쉬운 것은 현직에 있을 때 왜 그러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국민들은 뒤돌아서 친정에 쓴소리를 하는 것보다 몸담고 있을 때 채찍을 휘두르는 공직자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희범 무역협회장의 발언도 님트에서 벗어나지 않아 씁쓰레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내셔널 지오그래픽/임태순 논설위원

    중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립)는 자녀들에게 자신을 화장해 다리 위에 뿌려달라는 유서와 함께 빛바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남기고 죽는다. 프란체스카는 독신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기자 킨케이드(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매디슨 카운티 다리에서 우연히 만나 3일간의 짧은 사랑을 나누지만, 다음 취재지인 프랑스 파리로 함께 떠나자는 킨케이드의 제안을 뿌리치고 가정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있다. 지리에 관한 지식을 전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00년 넘은 유서 깊은 잡지다. 미국 지리학회인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는 1888년 워싱턴DC에서 비영리단체로 설립돼 ‘인류의 지리 지식 증진과 확산을 위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발간해 왔다.2대 회장은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영상시대에 접어들면서 독자가 줄었지만 현재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29개국에서 월 800만부를 발행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사진을 실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큐물을 제작·송출하는 방송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은 2000년 설립됐다. 최근 유다복음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다큐물로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회사 브라이언 스미스 수석 부사장 등이 엊그제 내한해 한국에 관한 다큐물 제작 사업설명회를 가졌다.‘세계로 가는 한국’이라는 주제로 만들 다큐물은 한국이 보는 과학기술의 관점, 현대적인 대형 건물이 건축되는 과정, 야생 동식물 세계에 관한 연구, 발전 현장의 목소리 등 4편이다. 다큐물 제작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3억원씩 모두 6억원이 지원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얼마전 18∼24살 사이의 미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지리 지식에 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90%가 북한이 지도상에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핵이니 지구촌이니 떠들지만 구미인들의 지리적 문맹은 예상외로 심각하다. 한국에 관한 다큐물이 완성되면 세계 163개국에 27가지 언어로 방송된다고 한다. 영화 ‘매디슨’처럼 우리를 세계인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다큐물이 제작되기를 기원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체불임금/임태순 논설위원

    얼마전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그도 사업을 하기 전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굳이 특기할 점이 있다면 노조활동에 열심이었다는 것. 여러차례 노조간부를 지내 거의 노동운동가 반열에 이를 정도였다. 이야기의 주제가 돌고 돌다 노동운동으로 옮겨갔다. 대기업노조의 이기적 행태에 실망했다며 노조도 이젠 변해야 한다고 하자 그는 그래도 노조는 있어야 한다고 옹호를 했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이 무슨 노조냐면서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고 타박을 줬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잔 돌아오는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기분 좋은 술자리를 갖다 보니 과음을 했다고 한다. 사연인즉 체불임금을 해소했다는 것이었다. 처음하는 사업이라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그래서 임금을 주지 못하고 직원들을 그만두게 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임금은 반드시 갚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올해 이윤을 남겨 그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자신을 믿어준 그들과 기분좋게 한잔 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분좋게 술 한잔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여행의 축/임태순 논설위원

    미국 뉴욕타임스가 올 여름 북한이 ‘여행의 축’(Axis of Tourism)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이 아리랑축전과 수천명이 참여하는 매스게임을 관람할 수 있도록 오는 8월10일부터 10월10일까지 미국 여권 소지자들의 입국을 허용한 데 따른 것이다. 관광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 멀리 가는 것이 순서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에게 아시아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먼 데다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5박6일 극동투어는 1500달러 안팎이다. 반면 북한 상품은 체류기간이 11∼12일로 두 배지만 5000∼6000달러선이다.2인이 여행하더라도 1만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일부 8월 북한 상품은 이미 매진됐다고 하니 외화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관광은 문화유적이나 명승지를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욘사마 열풍, 골프투어 등 관광상품은 개발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미국인들이 북한 관광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방문을 제한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 보기 힘든 나라라는 희소성이 작용한 것이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중국 베이징을 둘러본 뉴욕타임스 기자는 “1980년대 초반의 베이징은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고 화려한 황실 유적지였고 북부의 아름다운 마을이었지만 이젠 농부도 양떼도 없고, 개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국제도시가 돼버렸다.”고 실망을 나타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아리랑축전의 매스게임은 미국인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눈요깃거리가 될 것이다. 현재 북·미 관계는 꼬일 대로 꼬여 있다.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라고 지칭한 부시 행정부가 대북 인권을 강조하며 강경노선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6자회담, 슈퍼노트, 탈북자 수용, 대북 경제제재 등 난제가 쌓여 있다. 하지만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미국 정부가 북한 관광에 제동을 걸 것 같지는 않다. 흔히 관광을 세계 평화의 패스포트라고 한다. 서로 교류하면서 상대편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광은 한자 그대로 빛(光)을 보는 것(觀)으로 풀이된다. 세계인들이 북한의 다양한 빛을 보고 마찬가지로 북한도 세계인들의 다양한 빛을 보기를 기대한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길섶에서] 이상한 나라/임태순 논설위원

    독일에서 10년 남짓 설치미술을 공부한 미술학도가 있었다.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판 덕에 학위도 받고 현지에서 전시회도 열어 좋은 평판을 받았다. 여기저기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가 있었지만 고국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모두 뿌리치고 돌아왔다. 그러나 ‘학벌’ ‘간판’이라는 현실의 장벽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나와 세칭 ‘명문대’ 출신이 아니다. 주요 대학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간신히 모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동료들이 “당신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밝히면 학생들로부터 불신을 받을 것”이라고 귀띔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공식적으론 모교 출신은 교수로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반면 그의 아내는 세칭 일류대학을 나왔다. 이런 간판덕에 그녀는 강사 자리가 3∼4개나 된다. 하지만 미술적 재능은 남편이 훨씬 뛰어나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은 실력있는 사람이 대접 못 받는 이상한 나라라면서 귀국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Hi-Seoul 잉글리시

    #1. 하이 서울 페스티벌 어린이날 행사 Today is Children’s Day,and at Gyeonghuigung Palace,the Hi Seoul Festival holds the ‘Hi Seoul Children’s Essay Contest’. 오늘은 어린이 날인데요, 경희궁에서 하이 서울 페스티벌 행사의 하나로 어린이 백일장이 열립니다. The essay is being held to develop children’s essay-writing abilities,as well as their awareness of Seoul’s value and their love for Seoul. 이번 행사는 어린이들의 글쓰기 실력 향상과 더불어 서울의 의미를 일깨우고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A fun show featuring highlights of Korean and foreign musical hits is held today at Seoul Plaza as part of the Hi Seoul Festival. 또 각종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구성된 ‘Oh,Happy Musical’ 행사가 서울광장에서 열립니다. The program includes music from ‘The Last Empress’,‘The Sound of Music’,and other famous musicals. 공연에는 명성황후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비롯한 유명 뮤지컬의 음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The show features top local musical performers.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2. 외국인 말하기 대회 The 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 of Kyung Hee University hosts the 9th Annual Korean Language Speech Contest for Foreign Nationals on May 17th. 경희대학교 국제 교육원에서는 5월 17일 제 9회 전국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합니다. It is open to any foreigners who live in Korea as long as the speech topic is ‘’Korean men’,‘Korean women’,or ‘experience about Korean culture’. 이번 대회에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말하기 주제는 ‘한국 남자/한국 여자’ 또는 ‘한국 문화 체험’입니다. You can get all the information online at www.iie.ac.kr. 자세한 내용은 www.iie.ac.kr 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어휘풀이 *develop 증진시키다 *awareness 자각 *include 포함시키다 제공 TBS 교통방송, FM 95.1 MHz, ‘Hi Seoul’(9:06∼9:09), ‘I Love Seoul’(21:06∼21:09)
  • [클릭 지구촌 이곳!] 中 베이징 한복판 식당 ‘레드캐피털’

    [클릭 지구촌 이곳!] 中 베이징 한복판 식당 ‘레드캐피털’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베이징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레드 캐피털(Red Capital)’. 중국 이름으로는 홍쯔쥐러부(紅資俱樂部)라는 호텔 겸 레스토랑이다.1년 내내 100%에 가까운 객실률을 기록하는 곳으로, 주 고객층인 서양인 사이에서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객실은 단 5개.2인실 셋,1인실 둘이다.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 하나를 약간 손질해 만든 만큼 방들도 좁다. 인기의 비결은 뭘까. 청조(淸朝) 분위기의 내부 장식에 전통 침대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2인실 190달러,1인실 150달러에 각각 15%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에 요금도 거의 1급 호텔급이다. 게다가 시내 동북쪽 전통 가옥 밀집촌에서 간판도 없는 호텔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입소문 없이는 찾아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답은 현장에 있다. 지난 주말 찾은 레드 캐피털. 가뜩이나 좁은 마당 한가운데 자리한 돌무더기가 맨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른은 드나들기도 어려울 만큼 좁은 구멍이 나 있고, 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매우 가파르다. 깊이는 2m 남짓, 안으로 제법 넓은 공간이 나 있다. 미니바가 있고,2곳에 테이블을 놓고 10여명은 족히 앉아 술을 마실 수 있을 정도다. 팻말이 눈에 띈다.‘탱크를 막을 수 있는 무기 개발을 가속화하라.’ ‘전쟁 대비능력을 강화하라….’ 아래에는 ‘1969년 10월17일, 국가부주석 겸 국방장관 린뱌오(林彪)’가 적혀 있다. 방공호(防空壕) 였다. 중국 정부는 1960년 후반 소련과의 분쟁으로 긴장이 극도에 달하자 도심 지하에 대규모 방공호를 건설했다. 성내 모든 가옥에도 각각 방공호를 파게 했다. 그리고 방공호는 집집마다 연결되도록 했다. 민간 방공호는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새 건물을 지으면서 없어졌거나 옛집 형태로 남아 있더라도 막아 버린 곳이 많다. 한 직원은 “방공호는 뒤에 도둑들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 가는 통로로도 쓰였다.”고 귀띔한다.“어렸을 때 집안 어른들이 종종 온 집안 식구가 모여 방공호를 파던 때의 얘기를 하곤 하셨다.”고도 했다. 방공호 내부는 혁명의 냄새가 물씬하다. 홍위병의 홍색 목도리에 각종 혁명 판화, 총과 무전기…. 이른바 ‘혁명 마케팅’인 셈이다. 공산혁명 사적지 관광을 일컫는 ‘홍색(紅色) 관광’이 유행하면서 더욱 인기다. 호텔 식당 겸 레스토랑은 어떤가. 직원은 문 옆에 늘어진 낡아 빠진 커튼을 자랑한다.‘많은 기밀의 배후를 알고 있는 커튼’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집무실에 있던 커튼이라고 한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사용했다는 라디오도 있다.‘50년대 만들어진, 고위층이 사용하던 것 가운데 하나’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개인사무실에서 쓰던 것으로 저우 총리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국제뉴스를 통해 영어·불어·독어·일어를 완벽하게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내부 소파는 저우 총리와 펑더화이(彭德懷), 천이(陳毅) 등 고위 인사들이 외국 손님을 맞을 때 앉았던 것이라고 한다.‘정책을 결정한 의자(決策椅子)’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 모든 게 당과 정부의 핵심지도자들의 집무실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하니,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중난하이가 가구와 집기 등을 교체할 때 당시 ‘힘있는’ 사람들이 헌 것들을 따로 챙겨 두었는데, 호텔 사장인 미국인이 중앙판공실의 친구로부터 직접 구해온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언젠가 현지 한 신문의 칼럼이 ‘다시 부는 홍색 물결’을 언급하며 이 곳을 거명한 것을 보니 과히 틀린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직원들의 의상도 모두 혁명시대의 것들이다.60∼70년대의 대자보와 마오쩌둥 주석의 사진과 어록, 당시의 인민일보와 북경일보가 펼쳐져 있다. 레드 캐피털은 평범한 중국의 전통가옥에 또 다른 ‘과거’의 흔적인 ‘혁명’의 기운을 살린 뒤 ‘유행’에 올려 태운 하나의 전형이랄 수 있다. 그야말로 ‘혁명’과 ‘자본’이 어떻게 결합돼 ‘홍색 자본(紅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홍색 자본가(Red Capitalists)시대를 맞아 이런 조합에서 만개하는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jj@seoul.co.kr
  • [길섶에서] 더덕/임태순 논설위원

    군시절 산악행군을 하다 더덕 향에 취했던 적이 있다. 행군 도중 잠시 쉬는데 더덕 향이 주위를 진동해왔다. 누군가가 더덕을 캔 것이었다. 향긋하고 진한 더덕 향은 행군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파주시 야산에서 더덕캐기행사가 열린다고 해 하루 휴가를 내 찾아갔다. 파평산 인근의 야트막한 야산에 6∼7년된 더덕이 심어져 있었다. 농장주인이 더덕을 구분하는 법과 캐는 법을 일러줬다. 여기저기에서 화사한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려 봄 분위기를 화려하게 만들었다. 산길을 오르면서 서툴지만 더덕잎에 호미질을 했다. 뿌리를 캐내면 예의 그 향긋한 향이 느껴졌다. 신기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아줌마들도 신이 났다. 어린 시절 산에 올라 나물 캐던 추억이 그리워 상도동에서 왔다고 한다. 연신 이야기꽃을 피우고, 뭐가 그리 좋은지 까르륵하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멀리 철책선 너머로 임진강이 보이고 도로에는 탱크 등 군용차량이 지나갔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더덕에 취하고 봄에 취하면서 봄날은 간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멧돼지/임태순 논설위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멧돼지 때문에 애인을 잃는다. 남성편력이 심한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신 아레스와 사귀다 잘 생긴 목동 아도니스에 한눈을 판다. 이를 질투한 아레스가 멧돼지로 변신, 사냥하던 아도니스를 물어죽인다.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비탄에 잠긴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피로 꽃을 피웠다. 바로 바람이 불면 피고 진다는 아네모네다. 저돌(猪突)이란 말처럼 멧돼지의 습성을 잘 연상시키는 단어도 없다. 멧돼지는 놀라거나 화가 나면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든다. 그래서 탱크처럼 밀고 들고오는 강한 추진력을 흔히 저돌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맹목적이고 요령부득이란 부정적 이미지도 강하다. 그런데 그 저돌성이 끝내 사고를 치고 말았다. 환경부가 수도권 멧돼지 개체수 조절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수도권 산지에는 ㎢당 7.5마리의 멧돼지가 살아 전국 평균(3.7마리)보다 2배나 많다고 한다. 수도권에는 수렵이 허용되지 않는데다 군사보호구역이 많고 호랑이 늑대 등 천적도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고 보니 멧돼지가 서울 시내 산에 출현, 소동을 부리다 군경에 의해 사살됐던 적도 있었다. 논밭에 내려와 농작물을 해친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환경부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치단체에 구체적인 멧돼지 포획계획을 세워 시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하니 멧돼지들도 성질만 부리다간 온전치 못하게 됐다. 멧돼지는 깊은 산에서 약초나 뿌리 등을 뜯어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다. 동의보감에는 멧돼지 쓸개가 까무라치거나 경기에 걸렸을 때 등 비상시에 효험이 있다고 적어놓았는데 약초 등 진기한 성분이 쓸개에 많이 축적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먹성이 좋아 들쥐 등 작은 짐승이나 어류와 곤충까지 먹는 잡식성 동물이기도 하다. 자극을 받으면 앞만 보고 질주하는 습성이 있어 저돌에 당하면 생명을 잃을 위험이 높다. 따라서 마주치면 소리치거나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환경부의 이번 조치도 저돌적이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개체수가 많다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이건 생태계보호건 매사에 저돌적이어선 안 될 것 같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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