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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이경민 지음

    ‘기생’이 언제부터인가 문화적 ‘양념’을 넘어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는가 하면, 번듯한 전시를 빌려 생생한 사진과 평소 쓰던 잡동사니까지 내보이며 내밀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보는 사진과 문학, 영화속 기생들은 과연 실체적 진실을 담고 있을까?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글 이경민, 사진 중앙대DCRC, 사진아카이브연구소 펴냄)는 이런 의문을 배경으로 사진속 기생들의 실체를 찾고, 이를 통해 일제에 의해 강제된 ‘근대의 실험’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은 기생의 표상일 뿐 기생 그 자체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기생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창출된 개념이라고 정의하고,‘기생만들기’에 참여한 여러 담론들을 추적한다. 그 담론들은 다름 아닌 성담론, 위생담론, 민속(풍속)학, 인종학, 우생학, 오리엔탈리즘이며, 결국 식민주의라는 거대담론으로 결합된다. 식민주의 담론의 주체는 물론 일제다. 책에 의하면 일제는 조선을 강제병합한 후 철저한 식민주의 준거틀 속에서 정치·경제·문화·예술 등에 대한 다양한 조사사업을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의 이미지가 탄생한다. 예외없이 일제가 의도한 이미지로 창출되는 것이다. 사진엽서나 신문, 잡지, 사진첩, 포스터 등에 ‘박제’된 기생들은 기품 있는 예기(藝妓)나 새로운 근대여성의 모습이 아닌 반강제적으로 연출된 억압적 포즈속에서 잠재적인 매춘의 조짐을 보여줄 뿐이다. 책은 다양한 인쇄 도구속에 수록된 기생사진들을 생산 맥락에 따라 정리하면서 기생의 이미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핀다. 또 기생이 근대적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근대적 매춘제도와 연계돼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 되었는지 고찰한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프랑크푸르트도서전 홀거 에링 부위원장 방한

    한국이 주빈국 자격으로 참가하는 2005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조직위원회(FBF) 홀거 에링 부위원장이 17일 방한, 도서전 준비상황 등에 대해 밝혔다. 그는 우선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북한의 도서전 참가문제와 관련, “지난해 12월 북한측이 이번 도서전에 주빈국 자격은 물론, 일반 참가국으로도 참여치 않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도서전이 열리는 오는 10월까지 한 두 프로그램이라도 참가하도록 설득해보겠지만 지금으로선 참가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이 주빈국으로서 이미 매 달 문학인들을 보내 순회 낭송회를 갖는 등 적극 나서면서 독일 문화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명했다. 이어 “과거 남미를 중심테마로 도서전을 연 이후 남미문학이 집중조명을 받았듯이 한국에겐 이번 도서전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한국문학과 문화를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스 판매와 관련, 에링 부위원장은 영미권 도서 및 아동도서는 이미 부스가 매진됐으며, 학술부문은 출판사 통폐합의 영향으로 작년만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1∼3% 판매율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문화예술에 대한 스폰서로서의 중요성이 독일과 달리 한국에선 과소평가되는 것 같다.”며 한국 기업들의 이번 도서전에 대한 협찬이 여의치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공직이 변해야 나라도 변한다] ⑨ 민속박물관 이관호 연구관

    [공직이 변해야 나라도 변한다] ⑨ 민속박물관 이관호 연구관

    실천문학, 실천사학은 들어보았어도 ‘실천민속’은 처음 들어본다. 국립민속박물관 이관호(43) 학예연구관이 항시 강조하는 이 생경한 개념은 그의 근무신조요, 연구철학이다. “우리 풍속의 고유성과 우수성을 아무리 연구하고 떠들어도 함께 공유함이 없다면,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민속은 글자 그대로 민이 함께 해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의 주변은 항상 ‘손님’(관람객)이 붐비고, 일이 쌓여 있다. 오죽하면 박물관 동료들로부터 ‘일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란 별명까지 얻었을까. 그래서 인사 때면 혹시나 그가 일을 몰고 옮겨오지 않을까 하고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한다. 이 연구관이 어떻게 손님과 일을 몰고 다니는지 보자. 그는 현재 전시운영과 소속의 학예연구관이지만 지난해 말까지 섭외교육과에 근무했다. 그가 2년 반 동안 근무한 섭외교육과는 관람객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을 주요 업무로 하는 부서. 2002년 6월 그는 섭외교육과로 와서 가장 먼저 프로그램이 단조롭고 빈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 위주의 체험 프로그램 몇 개를 빼놓으면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그래서 다양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중 가장 먼저 눈을 돌린 데가 소외계층이다. 이들은 그나마 빈약한 프로그램도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시범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요. 다양한 민속공예품 만들기는 물론 전시프로그램도 운영했습니다.‘앞을 못보는 장애인에게 무슨 전시냐?’는 의문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희미하게나마 약간의 시력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 형태나 색깔은 매우 중요하거든요.” 시각장애인협회의 협조를 얻어 점자 브로슈어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서면서 ‘장애인들은 으레 못오는 곳’쯤으로 여겨졌던 박물관에 시각장애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데 말이죠. 무엇이나 서툴고 부족할 것으로 여겼던 장애인들이 너무 좋아하고, 실력도 일반인들 못지 않은 겁니다. 함께 왔던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고 감격해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이 연구관은 더욱 힘을 얻어 박물관내의 일회성 교육을 탈피해보자고 생각했고, 지난해엔 교육팀과 함께 강남 충현복지관을 직접 찾았다. 매주 1회 6개월간 재활교육을 겸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와 함께 ‘함께 나누는 민속교실’을 설치해, 방학때마다 시각장애인 이외의 장애인들과 저소득층 자녀들,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찾아가는 박물관’프로그램도 오지 중심에서 소외계층 중심으로 바꾸어 방문횟수를 2년 만에 연 11회에서 83회로 늘렸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으면 머릿속 공상에 불과하지요. 그래서 전임 관장님(이종철 전 관장)만 보면 떼를 썼어요. 하도 졸라대는 게 많으니까 나중엔 슬슬 피하시더라구요. 그래도 우는 놈에게 젖준다고 예산이 6억에서 16억으로 늘었지요.” 이 연구관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왜 그걸 해야 하나요?’란 비아냥 섞인 불만. 그러나 관람객과의 교감을 위해선 바쁘고 귀찮더라도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요즘 공직사회에서 유행처럼 강조되는 혁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는 그가 어떤 새 바람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클린턴 한국 온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24∼25일 그의 자서전 ‘마이 라이프’(원제 MY Life) 출판 기념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당초 책이 한국에서 번역출판된 지난해 6월 방한하려고 했으나 갑작스러운 개인 사정 때문에 일정이 연기됐다고 초청자인 도서출판 물푸레가 17일 밝혔다. 오는 24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팬사인회를 겸해 열리는 출판기념회에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등 정·관계와 경제계, 사회문화예술계 인사, 그리고 출판사측이 추천한 일반독자 50여명 등 7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가정의 動産문화재도 꼭 장갑끼고 만지세요”

    ‘동산문화재 관리 이렇게 하세요’ 국보나 보물이 아니더라도 집안에 걸려 있는 옛 그림 한 점, 선조 때부터 애지중지 아끼던 백사기 그릇 한 점이라도 파손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할 때가 있다. 손을 대자니 잘못하면 더 망가질 것 같고, 그대로 두자니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같은 고민을 해소해줄 매뉴얼 ‘동산문화재 보존과 관리’를 문화재청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함께 발간했다. 매뉴얼은 동산문화재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보관하고 다뤄야 하는지 세세한 요령을 담았다. 이를 테면 도자기를 제외한 일반 유물의 경우 만질 때는 꼭 장갑을 끼어야 한다든가, 유물을 보관할 때는 재질에 맞는 온도와 습도를 유지토록 한다든가, 포장시 유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질을 사용한다 든가 등등. 종이문화재, 섬유·가죽문화재, 목공예문화재, 석조문화재 등을 구분해 놓아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아보도록 했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했다. 문화재청은 이 책을 개인소장자와 각 기관 문화재 담당자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며, 일반인들을 위해 문화재청 홈페이지(www.ocp.go.kr)를 통해 원문을 서비스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비지정 문화재 국외반출 쉬워진다

    오는 7월부터 외국박물관이라도 비지정 문화재에 한해 우리 문화재를 구입하거나 기증받아 전시할 수 있게 된다. 문화재청은 비지정 문화재의 국외 반출 조건을 대폭 완화한 개정 문화재보호법(76조)이 7월부터 시행된다고 15일 밝혔다. 비지정 문화재는 국가나 시·도가 지정한 문화재 이외의 일반 동산문화재를 말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외국박물관 등 외국의 문화재 관련 기관·단체들도 우리 문화재를 자국의 박물관 등에 전시할 목적으로 국내에서 비지정 문화재를 구입 또는 기증받아 영구적으로 소장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다시 반입할 것을 조건으로 할 경우에만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문화재를 반출할 수 있었다. 또 국외 대여의 경우 반출 허가기간도 현행 최대 4년까지에서 10년 이내로 늘어난다. 문화재청이 이처럼 법을 개정해 문화재 국외 반출 조건을 완화한 것은 외국 박물관의 한국실에 전시된 우리 문화재의 종류, 수량 등이 빈약해 우리 문화의 독창성, 우수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반출 기간이 너무 짧아 계속적인 문화재 전시가 어렵고, 교체 전시에 따른 비용과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며, 외국박물관이 구입·기증을 통해 우리 문화재를 소장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개정된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및 규칙에 반출 문화재의 종류 및 수량, 신청절차 등을 규정해 비지정 문화재라도 무분별하게 반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그동안 위축됐던 우리 문화재의 해외 홍보가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광화문 현판 ‘원래대로’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때 함께 지어졌던 광화문 현판 원형을 사진 판독을 통해 찾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의 박정희 대통령 친필 현판 교체 방침으로 빚어진 논란도 일단락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15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광화문 옛 사진(1916년 촬영 유리원판)을 박물관 학예연구실에 의뢰해 디지털 분석을 통해 글자를 복원중이며, 글자의 윤곽을 비교적 뚜렷하게 판독해냈다.”고 밝혔다. 사진의 광화문 현판은 경복궁 중건 때 서사관(書寫官)을 지낸 임태영(任泰瑛)이 쓴 것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길섶에서] 3원짜리 팥칼국수/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어머니께서 용돈으로 5원씩 주시면 초등학생인 형과 나는 장터로 내달립니다. 팥칼국수를 사 먹기 위해서입니다. 장터 난전에 앉아 나는 5원짜리 팥칼국수를 시킵니다. 형은 3원짜리를 주문합니다.5원짜리는 양도 많고 설탕도 한 숟갈 넣어 줍니다. 그러나 3원짜리는 양도 많지 않고 설탕 대신 사카린을 줍니다. 달콤한 맛이 덜하지요. 그런데도 형은 3원짜리를 먹고 2원을 저금합니다. 형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동생에게 곧잘 선물을 사주곤 했습니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팥칼국수가 소개되는 것을 보고 군침이 돌아 집에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내를 조수 삼아 몇 시간을 씨름한 끝에 만들어 냈지만 팥국물은 너무 걸쭉했고, 면은 쫄깃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은 아빠의 성의를 봐서 맛있게 먹는 눈치입니다. 그러나 다 먹고 나서 큰 녀석이 한마디 합니다.“아빠, 맛있긴 맛있는데요. 솔직히 우리 취향은 아닌 것 같네요.” 맛이 없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합니다. 나는 말없이 먹기만 합니다.3원짜리 팥칼국수를 먹고 나머지는 저금을 했던 형과,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서 팥칼국수를 만들어 주시던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아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김용수 공공정책부 차장 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로렌스 쿤 지음

    자연인으로서, 지도자로서의 장쩌민(江澤民)의 생애는 80여 년에 이르는 중국 근세사의 격동기와 동의어다. 일본의 침략,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톈안먼 사태, 그리고 오늘날 놀라울 정도의 경제성장, 타이완과의 긴장관계, 중·미관계에의 기회와 대립 등의 역사가 그러하다.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로버트 로렌스 쿤 지음, 박범수 등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은 오랜 세월 중국 전문가로 활동해온 저자가 장쩌민이라는 렌즈를 통해 중국의 전쟁, 혁명, 정치혼란, 사회 대변동, 경제개혁, 국가의 변신, 그리고 국제무대에서의 부활을 광대하게 조망한 역사적 서술이다. 서술에 앞서 지은이는 서문에서 ‘처음부터 장쩌민을 회의적으로 본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제대로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통일했고, 덩샤오핑이 중국을 개혁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장쩌민의 성취는 취약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쩌민이 집권했던 10년간 중국이 미국 다음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의 도전을 이해하기 위해선 장쩌민이 남긴 것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장쩌민은 1926년 장쑤성 양저우시에서 태어나 일본군 점령기에 초등 및 중등학교를 다녔다. 문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그는 대학에서 전기 및 전력 공학을 전공한 이후 기나긴 테크노크라트의 경력을 쌓게 된다.60년대 후반엔 엄격한 정치적 조사를 받고 후난성 보아이 농장의 핵심당원 교화학교에서 정치적 재교육을 받는 등 문화혁명의 악몽을 겪기도 했다. 마오쩌둥 사망후 1980년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시대가 열리면서 장쩌민은 핵심 정치가로서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개혁·개방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신설된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 및 국가투자관리위원회 부주임(부주석급)으로 발탁되고, 전국인민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된다. 이어 1985년부터 상하이 시장과 당 부서기로 재직하면서 상하이시를 재건하고 성장과 투자 진흥에 그의 진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덩샤오핑을 이을 수 있는 후계자로 낙점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89년 중국공산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 주석으로 선출되고,94년 국가 주석으로 선출됨으로써 확고한 1인자로 자리잡게 된다. 필자는 장쩌민이 10대 시절 겪었던 일본의 중국 침략이 그의 전 생애와 정신세계에 어떤 흔적을 남겼으며, 어떻게 해서 그가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수십년후 어떻게 혹평속에서도 당을 개혁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통찰한다. 온정주의적이긴 하나 흔들리지 않는 비전, 일생을 통해 변하지 않았던 중국문명에 대한 사랑, 천부적인 협상 능력 등의 정치술과 오랜 테크노크라트로서의 경력에서 나온 경제적 식견 등을 통해 중국사회를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급부상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책 출간을 위해 중국이 이례적으로 장쩌민 최측근 및 고위 관리들의 인터뷰를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보기 드물게 내밀하면서도 포괄적으로 다가오는 장쩌민의 생애를 통해 중국 역사는 물론 오늘의 중국과 그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2만 3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문광부, 행자부에 애국가 저작권 일괄구입 요청

    문화관광부가 행정자치부에 애국가 저작권을 일괄 구입할 것을 요청해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문화부는 지난 5일 행자부에 보낸 협조문에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애국가를 테이프나 MP3 파일 형태로 배포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라며 “애국가 주무부서인 행자부에서 안익태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저작권을 일괄 구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네티즌들은 개정 저작권법이 지난달 시행된 이후 애국가를 무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데 대해 항의성 글을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했다. 애국가 저작권은 스페인에 거주하는 안익태 선생 유족에게 상속돼 있으며, 유족은 199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저작권을 행사하고 있다. 문화부가 행자부에 애국가 저작권 일괄 구입을 요청한 것은 20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당시 행자부는 애국가를 돈으로 사는 것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여론 등을 고려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국가가 유족들에게 저작권을 일괄 구입할 경우 1억원 미만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성의 미학/미와 교코·진중권 지음

    성은 생명을 잉태시키고, 죽음은 성을 통해 탄생한 생명을 자연의 품으로 되돌린다. 성을 매개로 삶과 죽음은 대자연 속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영원히 순환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의 관념은 역사적, 시대적, 종교적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면서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돼 억압과 금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죽음을 부르는 죄’, 혹은 ‘생명의 맹아를 잉태하는 적극적인 힘’ 등 극과 극을 달리는 개념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성의 미학’(진중권·미와 교코 지음, 세종서적 펴냄)은 서양미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성관념의 변화를 파헤친 책이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인 진중권씨와 부인 미와 교코가 함께 저술한 이 책은 욕망과 금기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변신을 거듭해온 성 관념이 서구의 미술사에서 어떻게 표출됐는지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남성이 기득권을 쥔 사회에서 그들에게 성적 희열을 주는 여성의 신체를 그린 그림들, 그 이면에 감춰진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심이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성서나 고전의 응용회화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야 했던 에로티시즘, 훔쳐보기의 본능, 기존사회의 가치관으로 용납할 없었던 근친상간과 동성애, 양성구유 등 다양한 성을 파헤쳤다. 그림을 읽어내는 데 필수적인 도상학 개념들을 제시하면서 한 장의 그림을 두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장으로 써 내려감으로써 독자들이 쉽게 그림속으로 파고들 수 있게 했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미와 교코가 일어로 써서 보내면 진씨가 이를 번역해 미술전문지 ‘미술세계’에 연재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1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미시사·생활사 시리즈 전6권/김주리·강심호 등 지음

    미시사·생활사 시리즈 전6권/김주리·강심호 등 지음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사회는 지금까지 대개 어둡고 칙칙하게만 그려져 왔다. 그러나 아무리 암울한 역사라고 해도 그 이면엔 살아 꿈틀대는 사람들의 삶이 있는 법. 식민지 시기에도 사람들은 유행을 쫓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여성잡지를 보고, 도박을 하며 일확천금을 꿈꾸고 에로틱하고 엽기적인 것에 열광했다. 근대적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대중적 삶과 문화적 감수성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근대성을 띠기 시작했다. 도서출판 살림이 ‘살림지식총서’ 150호 출간을 기념해 펴낸 식민지 시절의 ‘미시사·생활사 시리즈’(전 6권)의 핵심은 이같은 다양한 문화적 흐름들을 미시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문학을 연구하는 젊은 연구자들은 낡은 잡지와 신문들을 뒤져 찾아낸 패션과 여학생, 에로와 그로, 가정, 문학과 유행이라는 미시사적 관점에서 우리 풍속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1930년대의 이런 문화들은 21세기인 지금 우리생활의 기원이란 점에서 단순한 옛 풍속이 아니며, 민족과 계급, 이데올로기 일색의 거시적 일제강점기 연구 틀을 깬다는 의미도 가진다. 풍속의 근대화로 몸살을 앓던 조선인들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키스걸’ ‘스틱걸’등 이채로운 명칭도 모던 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김주리 지음)근대적 패션의 풍경을 리얼하게 그려냈다.1930년대 경성에는 지금처럼 패션에 신경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심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있었다.‘모던 보이’의 전형은 신소설 ‘장한몽’에 등장하는 김중배다. 곱슬곱슬 지진 머리는 한 가운데를 좌우로 갈라서 기름으로 붙였고, 코엔 금테 안경이, 프록코트 속 조끼 한 가운데는 금시계줄이, 목엔 수달피 목도리가 감겨져 있었다. ‘모던 걸’들은 곱게 다려 입은 스커트가 구겨질까봐 전차에서 빈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았으며, 금시계와 다아아몬드 반지를 위해 몸까지 파는 여성이 있었다. 키스를 파는 ‘키스걸’, 모던 보이의 산책에 동행이 되어주는 ‘스틱 걸’, 길거리를 오가며 아는 남자를 낚는 ‘스트리트 걸’, 남자가 해야할 사소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핸드 걸’ 등 이채로운 명칭까지 생겼다. ●‘연애 못하게 숙제 많이내자’ 궁여지책도 누가 하이카라 여성을 데리고 사누(김미지 지음)당시의 학생, 특히 ‘여학생’이란 단어는 많은 것을 내포한 ‘문제아’였다. 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면 주변 어른들에게 ‘저런 하아카라 여성을 어떤 남자가 데리구 사누’라는 흉을 들었다. 이성교제가 자유로워지자, 여학생들이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숙제를 많이 내고 시험을 많이 보게 하자는 웃지 못할 궁여지책도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학생’이란 꼬리표만으로도 호기심의 대상이자 문화의 아이콘었으며, 워낙 수가 적어 지금의 연예인처럼 실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소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신여성 무얼 입고·먹나도 관심거리 스위트 홈의 기원(백지혜 지음)패션 리더 신여성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도 관심의 대상이었다.‘행복한 가정 만들기’는 지금뿐 만 아니라 그 당시도 마찬가지였으며, 잡지엔 최신 유행과 함께 젖먹이기, 아이 키우기, 옷 만들기도 비중있게 실렸다. 신여성은 패션감각과 함께 최신 교육법과 인테리어도 알아야 했던 것이다.1910년대 열린 ‘가정박람회’는 지금의 모델하우스 ‘원조’격으로, 전시된 중류 가정집엔 양로실 주부실, 하녀실, 그리고 아동실 등이 딸려 있었다. 또 마루, 큰 방 등이 아니라,‘식기방’,‘서재’‘객실’,‘흡연실’,‘수면실’ 등 방에 용도에 맞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당시 ‘문화주택’의 특징이었으며, 이같은 집들이 한 데 모여 ‘문화촌’을 이루기도 했다. ●상품광고·잡지·영화속 유행 따라가기 대중적 감수성의 탄생(강심호 지음)유행을 좇고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적 감수성의 기원은 1930년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1926년 5월5일 순종황제의 인산일 애도의 행렬엔 깃옷을 입고 검은 댕기를 드린 여학생들도 가세했다. 한데 ‘신여성’ 6월호에 보면 여학생들이 깃옷을 입은 것이 조의가 아니라 ‘유행’때문이었다고 따끔하게 꼬집는 대목이 나온다. 궁핍과 수탈의 역사를 살면서도 우리 민족의 심성은 이때부터 근대적으로, 자본주의적으로 변해갔으며, 흰옷과 짚신에 만족했던 여성들은 백화점에서 쏟아내는 상품의 환각속에 빠져들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쇼윈도의 상품광고와 잡지, 영화 등이 선도하는 유행을 허겁지겁 따라가게 되었다. ●당시 여배우 대다수 카페 여급출신 에로 그로 넌센스(소래섭 지음)에로틱하고 그로테스틱한 것들에 대한 욕망은 1930년대에 이미 본격화되었다. 당시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현상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에로 그로 난센스’라는 감각적 자극이었다. 당대의 지식인들은 ‘퇴폐적이고 외래의존적’이라고 경멸했고, 식민적 현상내지 소비자본주의적 부수물 쯤으로 치부해버렸지만, 오히려 1930년대 문학과 예술은 그러한 자극을 반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술취해 노파에게 성추행 당한 남자가 노파를 파출소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잡지 ‘별건곤’에 ‘에로 백퍼센트 애욕극’이란 이름으로 실리는 등 당시 잡지사에서 ‘에로’는 꼭 들어가야 할 요소중 하나였다. 당시 경성의 유명 카페는 에로틱한 문화의 천국이면서 연애의 온상이었으며, 여배우들 중 상당수가 카페의 여급이었다. 각권 33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불황을 뚫는 7가지 생존전략/한정화 지음

    직장인들이 선뜻 자기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특히 불황의 골이 깊어진 후 수많은 실패사례들을 접하면서 섣부른 사업 도전은 인생실패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이같은 실패사례를 제대로 활용하면 오히려 사업의 위험성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불황을 뚫는 7가지 생존존략’(한정화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 펴냄)은 지은이가 10여년간 대학에서 전략경영론과 창업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수집해온 사례와, 중소기업청의 ‘창업 실패수기 공모전’에 응모한 사례를 포함해서 100여개의 실패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지은이는 사례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사업 성공을 가로막는 7개의 함정을 찾아냈다. 선택의 함정, 개발의 함정, 시장의 함정, 관리의 함정, 태도의 함정, 관계의 함정, 불운의 함정이 바로 그들. 선택의 함정으로 가장 중요하게 제시되는 것이 ‘아이템 선택의 잘못’이다. 그 원인은 경험부족과, 사업성 분석과정의 간과, 창업 붐에 따른 편승, 근거 없는 낙관적 사고, 자기 역량에 대한 과신 등이다. 지은이는 선택의 함정을 극복하는 법으로 ‘사업 타당성을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지 말라.’‘초기 성공에 취해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지 말라.’등을 제시한다. ‘시장의 함정’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창업자의 기술 중심 사고다. 고객이 바라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문제 해결이며, 가격 대비 가치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시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구매 1순위는 영양제가 아니라 진통제다.’,‘고객의 피드백에 민감하게 대응해라.’등을 제시한다. 책에는 이처럼 각 함정에 대한 분석과 이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들이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상세히 소개되어 있어, 창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가이드로 추천할 만하다.1만 25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발해제국사/서병국 지음

    발해사만큼이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시각이 엇갈리는 것도 드물다.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 제국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당나라 변방 소수민족인 말갈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발해를 말갈족이 세운 국가이긴 하나 당나라와는 무관한 독립국가로 보고 있으며, 일본 학계에선 발해가 독립국가이긴 하나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이며 피지배층은 말갈이라는 이중구조설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중국은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란 이론적 지침 아래 1970년대부터 발해가 당나라에 속한 지방정권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본격적인 정지작업을 해왔으며, 지금도 ‘동북공정’을 통해 이를 굳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발해제국사’(서병국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부제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인 34가지 이유’가 말해주듯 발해와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발해사가 우리 역사임을 밝히고자 한다. 최종 결론은 발해국이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공조로 세워졌으나, 그 발전을 주도한 것은 고구려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발해국 주민이 대부분 고구려계라는 주장이다.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인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달리 주민의 대부분, 즉 총인구의 70∼80%가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점이다. 책에 따르면 말갈 사람들은 사냥터를 찾아 옮겨 다니는 수렵·유목민었던 반면, 고구려인은 대부분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낙후한 문화를 가진 말갈계는 결국 고구려의 문화에 흡수·동화됨으로써 계속 남지 못하고 고구려계의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점이 조목조목 제시된다. 고구려계 사람들이 발해국을 주도하게 되면서 말갈의 풍속 또한 고구려 풍속에 완전히 압도되거나 동화되었으며, 발해의 문화는 ‘해동성국’이란 별칭을 얻었듯이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했다. 또 발해의 공예예술이 고구려의 것과 동일한 점, 발해국 문화에서 예술성·서정성·서사성 등이 강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도 고구려를 그대로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밖에 농업기술이나 매 사냥, 스포츠인 격구 등 농업기술과 수렵, 여가문화까지도 고구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제시된다. 이로 인해 발해국은 초기에 고구려와 말갈계 양면성을 띠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구려계의 단일성으로 바뀌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신라와 고려도 이같은 점을 인정해 발해국을 고구려 계승국가로 보았으며, 발해국 멸망 이후 발해국 사람들이 지도급 인물의 인솔하에 다수가 고려에 망명·이주한 것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지난 1990년 중국 옌볜대학에서 조선족 학자들 또한 발해국이 고구려 유민들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국의 압력으로 이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귀띔을 받았다고 전한다. 결국 중국의 ‘화이사관’(華夷史觀)에 따라 발해국이 동북아시아의 오랜 이적(夷狄)을 대표하는 말갈족이 세운 국가로 둔갑됐다는 것이다.1만 4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가부장제 근원찾아 문자문명시대 이전으로 가부장제적 누습의 전형으로 비판받아온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한다. 가부장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적으로도 뿌리깊게 자리잡아온 성차별적 사회제도이다. 더 나아가 ‘여성혐오’라는 성차별적 사회통념도 마찬가지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일생을 시작하고,‘어머니’란 단어로 말문을 열기 시작하는 동물이 인간인데도 대부분의 인간사회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팽배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선택, 지나 사피엔스’(레너드 쉴레인 지음, 강수아 옮김, 들녘 펴냄)는 이같은 아이러니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찾고자 하는 동기에서 쓰여졌다. 외과의사이면서 인류학·고고학자인 지은이는 이미 전작 ‘알파벳과 여신’에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지구촌에 자리잡는 데 문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논증을 폄으로써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애초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느낌과 함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심술궂은 태도는 훨씬 뿌리깊은 것이라는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후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의 근원을 찾아 문자문명의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 연구의 결실이 바로 이번 책이다. ●‘임신·출산의 주체’ 여성이 원시문화 이끌어 ‘지나 사피엔스’(Gyna Sapiens)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 속한 선조 여성들을 의미한다. 인류진화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적응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책 전반에 ‘현명한 남자’란 뜻의 호모 사피엔스에 대비되는 지나 사피엔스란 용어를 사용했다. 지은이는 논지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4만년 전 최초의 태음력이 탄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가 꽃피운 원시문화의 주역이 여성, 즉 지나 사피엔스였음을 밝힌다. 여성은 번식, 즉 임신과 출산의 주체로서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인류는 점차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핵심 키워드로 ‘철’(Iron)과 여성의 ‘월경’이 등장한다. 신체적으로 강하지 못한 인간은 생존의 방편으로 지능이 높아지고, 이를 위해 뇌(머리)가 점점 커지는 진화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부터 여성은 거대한 태아의 머리로 인해 출산 중 죽음의 위협에 직면한다. ●여성통해 호모사피엔스 시간·죽음개념 터득 이같은 위험은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성 충동을 멀리하고 섹스에 대한 거부권을 갖게 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여성에게 절대 필요한 철분을 얻는 길까지 막아버렸다. 월경과 출산, 수유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철분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여성으로선 건강 유지를 위해 철분 섭취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철분은 식물보다 동물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성분으로, 출산과 양육을 도맡았던 지나 사피엔스는 사냥을 주업무로 하던 호모 사피엔스에게 부족한 철분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왜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월경이 진화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되지 않았을까?’하는 점이다. 그리고 무언가 이같은 불리함을 상쇄할 만한 ‘선물’을 여성에게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나오는데, 지은이는 결국 그것은 달마다 피흘리기를 반복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시간’이란 결론을 내린다. 시간의 개념을 파악한 지나 사피엔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이같은 능력은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되게 한다. 그러나 시간의 자각과 함께 남성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유한한 운명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여자들의 임신에 자신들이 기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부성(父性)과 부권의 개념이 싹트고, 이는 자연스럽게 가부장제 문화의 동력이 됐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뼈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저자의 전작 ‘알파벳과 여신’ 저자는 책 끝머리에 ‘…지나 사피엔스’를 쓰게 된 동기가 전작인 ‘알파벳과 여신’ 출판 후, 애초 제기한 물음(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원인)에 대해 답을 완결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번 책이 전작의 완결편인 셈이다. 따라서 그의 전작인 ‘알파벳과 여신’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지나 사피엔스’를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알파벳과 여신’은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문자의 발명과 종교의 탄생과 더불어 본격화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 기록이 시작되었던 5000년 전까지만 해도, 아니 그 이후의 로마·이집트·일본·중국·인도·그리스·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기만 해도 그 중심엔 여신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신격의 시대였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문화적 권리와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갑자기 모든 것이 뒤틀리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변화의 동력으로 서양에서 발생한 3대 유일신 종교, 즉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 각각의 종교는 세상에 오직 단 하나의 신격만 존재한다는 유일신 개념을 핵심 전제로 삼는 한편 그 신은 명백히 남성이었고, 여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지은이는 특히 문자는 여성성인 아니마를 희생하고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강화시켰다는 가설을 세우는데, 도그마(교의, 정론)로 고착된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코란 등을 대표적 예로 든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지율스님 단식 100일째 “저혈압 심각”

    지율스님 단식 100일째 “저혈압 심각”

    고속철 천성산 터널공사를 막기 위해 몸을 던진 지율(48·여) 스님이 단식 100일째를 하루 앞둔 2일 심각한 저혈압 증세를 보였다. 지율 스님은 ‘소박한 장례’를 부탁하는 등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율 스님을 살려 보려고 노력하지만 ‘공사강행’이라는 입장엔 달라진 게 없다.‘불의의 사고’가 예견되는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반면 각계는 지율 스님 살리기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지율 스님은 지난해 10월27일 청와대 앞에서 네 번째 단식을 시작하면서 “터널공사가 천성산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조사하자.”고 요구했다. 터널을 뚫으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습지와 계곡의 물이 마르게 되므로 3개월간 발파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 평가를 다시 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국책사업을 일개인 때문에 자꾸 중단하기 어렵고, 환경영향평가 절차도 이미 법적으로 끝난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지율 스님이 동의하지 않는 한 강제로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율 스님의 단식이 계속되자 종교계는 물론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결의안 상정 등을 약속하며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이날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단식 중인 지율 스님을 방문해 위로했다. 김수환 추기경도 정토회관을 찾았으나 지율 스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오영교 행자·강동석 건교장관과 남영주 국무총리실 민정수석도 정토회관을 방문했다. 지율 스님은 법장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음을 정리한 듯 “천성산과 함께한 모든 인연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지율 스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를 동생(36·여)이 맡아서 치러 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수 이효용기자 dragon@seoul.co.kr
  • 민속박물관 ‘정월편’ 출간

    세시풍속을 흔히 ‘민족문화의 알람시계’라고 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설날이면 으레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으며, 정월 대보름이 되면 부럼을 깨물고 달맞이를 할 것이다. 이렇게 주기성과 반복성을 가지고 철마다 행하는 세시풍속은 한 민족의 물질, 정신문화 저반과 민족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민족문화의 복합체인 세시풍속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전 편찬은 민속학계 최대의 염원이었다. 이에 따라 국립민속박물관에선 지난 2002년부터 세시풍속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는데, 그 첫 결실인 ‘한국세시풍속사전 정월편’이 설날을 앞두고 나왔다. 세시풍속사전은 총 6권으로 구성되는데, 이번에 나온 ‘정월편’에 이어 ‘봄편’‘여름편’이 올해말까지 발간되며,‘가을편’‘겨울편’‘부록 및 색인편’은 내년에 완간될 예정. 4계절에서 ‘정월편’을 따로 떼어 편찬한 것은 일년 열두 달 가운데 세시풍속을 가장 많이 담고 있고 일년을 시작하는 달로 예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정월편’은 단월, 맹양, 맹추, 수세, 인월 등 정월에 나오는 다양한 이칭 등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제시해 줌으로써 광범위한 내용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민중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국가적 의례와 속신의 내용을 담았으며, 세시풍속과 관련된 민요와 속담을 제시함으로써 사전이 주는 무미건조함을 벗어나고자 했다. 집필은 표제어 595항목을 관련 분야에 일정 성과가 있는 학자들에게 의뢰해 이루어졌다. 강정원 서울대 교수 등 125명이 집필에 참여했으며, 박물관 현장조사단과 전문 사진작가들이 세시풍속의 현장을 찾아 직접 사진을 찍어 생생함을 더했다. 이번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사전처럼 표제어를 쉽게 찾아보면서도 단행본처럼 전체 체제를 유기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단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세시풍속 전반(예를 들면 정월의 세시풍속)을 효율적으로 파악하도록 했다. 박물관측은 비매품인 세시풍속사전을 전국의 대형 도서관 및 박물관, 연구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설 귀성 8일은 피하세요…귀경길은 9~10일

    설 귀성 8일은 피하세요…귀경길은 9~10일

    징검다리 연휴가 끼여 있는 올해 설 귀성길은 8일, 귀경길은 9∼10일에 최대 혼잡이 예상된다. 승용차를 이용한 귀성길은 서울∼대전이 4시간50분, 서울∼부산 8시간30분, 서울∼광주 8시간이 각각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31일 건설교통부와 경찰청 등이 합동으로 마련한 ‘2005년 설 연휴 정부합동특별교통대책’에 따르면 설 연휴 수송기간(7일∼11일) 중 고속도로 이용차량은 지난해보다 5.6% 증가한 1392만대로, 이중 수도권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지난해에 비해 3.1% 많은 248만여대에 달할 전망이다. 지역간 이동인원은 평소보다 72% 많은 5833만명으로, 전국 인구 4882만명 중 2764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교부는 이에 따라 안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대중교통수단을 늘리기로 하고 임시열차 53편성(454량), 고속버스 예비차 225대, 시외버스 예비차 337대, 임시항공기 일 평균 20편을 각각 추가 투입키로 했다. 또 섬 지역으로 이동하는 귀성객을 위해 연안여객선도 하루 평균 151회 추가 운항토록 했다. 또 대중교통의 원활한 소통과 교통량 분산을 위해 경부고속도로 서초IC∼신탄진IC 구간에서 상·하행선 모두 7일 낮 12시부터 10일 밤 12시까지 버스전용차로제를 실시키로 했다. 또 고속도로 IC 진·출입로 통제는 귀성길의 경우 7일 낮 12시부터 9일 오후 6시까지 통제된다. 귀경길은 9일 낮 12시부터 10일 밤 12시까지 진입만 통제한다. 건교부는 이와 함께 설 연휴기간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곳에 우회도로 11개 구간을 지정하고 국도 4차로 확·포장공사 구간 중 부분적으로 차량통행이 가능한 부여∼논산 등 국도 10곳 46.3㎞를 임시 개방키로 했다. 또 심야 귀경길 교통편의를 위해 수도권에서는 9∼11일 지하철은 물론 서울역, 영등포역, 강남고속터미널, 상봉터미널을 경유하는 시내버스를 새벽 2시까지 연장운행토록 했다. 한편 설 연휴에 교통 및 기상에 대한 종합안내는 ARS 1333번이나 건교부 홈페이지(www.moct.go.kr), 정부합동특별교통대책본부(02-2110-8200,503-7401∼2) 등을 이용하면 된다. 김용수기자 dragon@seoul.co.kr
  • 유홍준 청장 ‘현충사발언’ 사과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충무공 이순신 사당인 아산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가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29일 잘못된 표현이었다고 공개 사과했다. 유 청장은 아산이 지역구인 열린우리당 복기왕 의원이 28일 저녁 인 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를 통해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이 아니라는 요지의 반론을 편 데 대해 29일자 문화재청 홈페이지 새소식란에 ‘복기왕 의원님께 드리는 글’이란 형식을 빌려 자신의 발언은 “부적절한 표현”이었으며 “저의 오류”였다는 사과문을 실었다. 유 청장은 이 글에서 “(복기왕) 의원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정과 멸사봉공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소중한 역사적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청에서는 이곳을 사적으로 지정하여 직접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면서 “문화재청장으로서 저는 앞으로 현충사를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고 후세에 널리 귀감으로 전파하는 공간으로 가꿔 나가는 데 더욱 성심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유 청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인 ‘광화문’ 현판을 교체하려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내재된 것이라는 요지의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공개 서한에 대한 27일자 답신에서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아산 현충사, 이것은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저는 이곳을 손보거나 (박 전 대통령 친필인) 현판을 떼 내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지식인의 죄와 벌/피에르 아술린 지음

    과거사, 특히 친일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갈등의 악순환을 겪어왔다. 해방후 친일 부역자 청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친일 지식인들은 그 추종자들이 여전히 대중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에 갈등의 골이 더 깊다. 이런 측면에서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사례는 우리에게 거울과 같다. 프랑스는 1944년 8월 나치에서 해방된 후 즉시 과거 청산에 들어가 약 2년에 걸쳐 나치에 협력한 1만여명을 처형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가혹하게 처벌한 것은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없으며, 올바른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죄와 벌’(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기언 옮김, 두레 펴냄)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이뤄진 지식인 숙청을 다룬 책이다. 신문이나 일기, 회고록, 재판 기록 등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객관적·중립적인 관점에서 지식인 숙청의 실상을 정리했다. 눈에 띄는 점은 일방적으로 숙청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 프랑스에서도 과거청산문제를 놓고, 특히 나치에 부역한 지식인들의 숙청 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2월까지 약 반년에 걸쳐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과 카뮈가 벌인 논쟁이다. 가톨릭 신자이며 부르주아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모리악은 저항운동을 펼친 지하신문 ‘프랑스 문예’에 카뮈, 사르트르 등과 함께 참여했음에도 우익 대변지 ‘르 피가로’를 통해 숙청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국민화합을 위해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카뮈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어온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하신문‘투쟁’지를 통해 모리악의 자비론을 다음과 같이 강력 비판했다. “나는 증오에 대해 조금의 애착도 없다. 인간으로서의 나는 반역자를 사랑할 줄 아는 모리악을 존경하지만, 시민으로서의 나는 모리악을 불쌍하게 여긴다. 이러한 사람은 우리에게 반역자와 졸개들의 나라를,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사회를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보수 지식인들이 숙청에 반대한 데는 자비론이나 국민들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 말고도 지식인들이 특히 가혹하게 처벌받고 있는 데 대한 동정과 저항도 작용했다. 문인이나 언론인, 출판인 등 지식인들이 다른 분야 부역자보다 더 엄중하게 처벌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지식인들에게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며, 글쓰기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저자는 프랑스의 지식인 숙청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고의든 아니든 숙청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런 점에서 보면 숙청은 목표라기보다는 수단인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친일 청산에 대한 입장이 어떻게 갈리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1만 28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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