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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2보다 1만배 강한 온실가스, 중국서 기록적 수준 배출”

    “CO2보다 1만배 강한 온실가스, 중국서 기록적 수준 배출”

    이산화탄소(CO2)보다 1만2000배 온실효과가 강하며 중국과 인도에서 주로 생성되는 온실가스 1종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대기 중에 배출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틀대 등 국제연구진은 온실가스인 수소불화탄소(HFC-23)가 대기 중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2017년 중국의 공표와 달리, 기록적인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HFC-23은 온실가스 비(非)감축의무 국가인 중국과 인도에서 주로 가정용 에어컨과 냉장고 등의 냉매로 사용하는 수소염화불화탄소(HCFC)를 생산하는 동안 배출된다. 문제는 이 온실가스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온실효과를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 국가는 2015년부터 공장에서 HFC-23을 배출하지 않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고, 2017년 성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전 세계 HFC-23 배출량이 약 90% 감축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전 세계 대기 중 HFC-23 농도를 조사한 결과, 해당 온실가스의 배출량은 감축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출량이 현저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HFC-23은 특히 온실효과가 강해 대기 중 1t이 배출되는 것은 이산화탄소 1만2000t이 배출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위력 탓에 과학자들은 지난 20여년간 대기 중 HFC-23 농도를 예의 주시했다. 연구 주저자인 키런 스탠리 박사는 “우리 연구에서는 중국의 보고와 달리 HFC-23 배출 감축에 성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발견했지만, 인도가 배출 감축을 시행할 수 있었는지는 추가적 측정 없이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연구 공동저자인 맷 릭비 박사도 “이제 우리는 다른 국제 단체들과 협력해 국제적 자료보다 국가적 자료를 사용해 중국과 인도의 국가별 배출량을 정량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123rf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핵잼 사이언스] 지구서 가장 ‘오래된’ 크레이터, 22억 2900만년 전 형성

    [핵잼 사이언스] 지구서 가장 ‘오래된’ 크레이터, 22억 2900만년 전 형성

    지구상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크레이터(운석이나 소행성 등이 떨어져 생긴 큰 구멍)의 ‘진짜 나이’가 밝혀졌다. 호주 퍼스의 커틴대학 연구진은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 있는 크레이터인 ‘야라부바’(Yarrabubba)가 약 22억 29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가장 오래된 크레이터에 비해 2억 년 이상 오래된 것이다. 연구진은 야라부바 크레이터에서 수집한 광물인 지르콘과 모자나이트 등을 분석해 충돌 시기를 추정한 결과, 생성 시기는 22억 2900만 년(오차범위 ±500만 년)전으로 나타났다. 야라부바 크레이터가 충돌의 충격으로 형성된 지형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침식과 지각 변동을 겪은 크레이터의 경우 원형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워 생성 시기를 추정하기 힘들었다. 또 호주나 아프리카 대륙과 운석 또는 소행성이 충돌할 당시 튕겨져나간 물질이 20억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분석된 적은 있지만, 원래 충돌구의 형성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에 따르면 야라부바 크레이터를 만든 소행성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호주 대륙과 충돌하면서 지름 70㎞에 달하는 거대한 충돌구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충돌 이후에는 충돌로 발생한 약 87조~5000조㎏에 달하는 수증기가 대기를 뒤덮으면서 지구온난화 등의 기후변화를 유발하기도 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야라부바 충돌구가 정확히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 초기가 끝나던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눈덩이 지구이론은 과거 6~8억년전 선캄브리아 시기가 끝나갈 즈음에 지구 전체가 눈과 얼음으로 완전히 얼어붙었던 극심한 빙하 시기가 수차례 발생했었다는 가설이다. 또 “충돌 이후 발생한 대규모 수증기가 온실가스 역할을 했으며, 이는 대형 소행성의 충돌이 지구의 빙하시대를 끝내기에 충분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야라부바 크레이터는 지구 역사의 절반을 함께 했으며, 우리는 지구의 기후변화 역사를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의 중요성을 모른 채 20년 가까이 보냈다”면서 “소행성 충돌의 정확한 시점을 확인하는 것은 지구의 지난 역사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에 실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日 브랜드 꼼데가르송, 백인 모델에게 이집트 왕자 가발 쓰게 해

    日 브랜드 꼼데가르송, 백인 모델에게 이집트 왕자 가발 쓰게 해

    일본 패션 브랜드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이 백인 남성 모델들에게 머리카락을 가늘게 여러 가닥으로 땋은 콘로(cornrow) 가발을 쓰게 해 입길에 올랐다. 흑인들이 하는 헤어 스타일을 흉내내 문화적으로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고 영국 BBC가 19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파리 패션 위크에 참가한 이 브랜드는 지난 17일 남성 추동복 컬렉션을 선보이며 남자 모델들에게 이 가발을 쓴 채 런어웨이를 활보하게 했다. 헤어스타일리스트 줄리앙 디스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통해 이집트 왕자처럼 보이게 하자는 뜻이었을 뿐 누군가를 공격할 의도는 절대 없었다고 해명했다. 흑인 모델들 중에도 이런 가발을 쓴 사람도 있었고, 또 본인 머리로 런어웨이에 나선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에 ‘다이어트 프라다’란 계정으로 활동하는 비평가는 “전위적인 일본 레이블이 남성 쇼 때문에 일보 퇴보한 것으로 보였다. 그의 글에 2000개 이상의 좋아요!가 달리고,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의 댓글이 달렸다. 데빈핑크67이란 누리꾼은 “잘 생긴 검은 피부 모델들을 기용한 것은 적절한 것처럼 보였지만 옆과 뒤쪽 사람과 농을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콘로 스타일 등 흑인 문화에 관련된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표현한 것은 아둔하기 짝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카릴레이란 누리꾼은 “앞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을 때 이런 논쟁에 휩싸이는 일을 피하려면 적절히 행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그 문화 속 인물과 긴밀히 함께 작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브랜드는 성명을 통해 “누군가를 존중하지 않거나 다치게 할 의도가 없었다. 만약 의도치 않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심히 진지하게 용서를 빈다”고 밝혔다. 패션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가 창업한 이 브랜드는 2018년에도 여성복 컬렉션 모델을 기용하며 인종 다양성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입길에 오른 적이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잿물보다 훨씬 좋은 ‘소다’ 팝니다”/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잿물보다 훨씬 좋은 ‘소다’ 팝니다”/손성진 논설고문

    “此(차) 純(순)소다가 大韓草木灰水(대한초목회수)보담 甚(심)히 好(호)한 物(물)이니 各處(각처)에 代用(대용)함이 妥當(타당)하오며….” 용 두 마리 사이에 ‘BM&Co.’라는 상표로 표시된 영국 회사 ‘뿌루너 못든’(브루너 모튼)의 소다 광고다. 요즘의 ‘탄산소다’, ‘소다수’, ‘가성소다’에 들어간 그 소다다. 한국 신문 최초의 전면광고이자 최장 기간 게재된 광고다. 국한문 혼용 신문인 황성신문 1899년 11월 14일자 4면 중 마지막 면에 처음 게재된 뒤 1902년 12월 말까지 장장 3년 1개월 반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실렸다. 소다에 대한 수요와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광고에는 세탁과 제지용의 ‘타는 소다’, 세탁과 제지, 토기·유리 제조용의 ‘순소다’, 떡이나 과자 제조용이나 약용의 ‘결면 소다’, 명주실을 짤 때 쓰는 ‘수정 같은 소다’ 등 네 가지 소다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반 가정에 많이 필요했던 것은 아마도 타는 소다(가성소다)와, 그와 비슷하지만 약한 성질의 순소다였을 것이다. 가성소다는 강한 알칼리 성질인 수산화나트륨(NaOH)의 다른 말로 서양에서 들어온 잿물이라는 뜻인 일명 양잿물로도 불렸다. 가성(苛性)이란 부식성, 독성이 있다는 뜻이다. 양잿물은 자결용 독극물로 쓰이기도 했으며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라는 속담도 있다. 근대 이전에 한국인들은 광고에 ‘大韓草木灰水’라고 적혀 있는 잿물을 세제로 썼다. 잿물이란 콩깍지, 짚 등을 완전히 태워 나온 재를 시루에 안치고 물을 부어 우려낸 물인데 무명옷이나 이불을 빠는 데 쓰였다. 그러나 수산화칼륨(KOH) 등이 섞여 있어 성분이 순수하지 않았다. 가성소다에 유지, 즉 기름을 섞으면 비누가 된다. 광고 문안에도 “肥?(비누)도 제조하나니”라고 썼다. ‘肥?’(비조)는 비누의 중국어다. 동물성 기름이 귀하던 때라 가성소다에 식물성 등겨 기름을 섞어 비누를 만들기도 했는데 거칠고 검어 ‘석감’(石?)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비누를 포르투갈어 발음을 따른 샤봉 또는 ‘셋겡’이라고 하는데 셋겡이 바로 석감의 일본어 발음이다. 영남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비누를 더러 ‘사분’이라고 불렀는데 19세기에 프랑스 신부 리델이 국내에 갖고 들어온 샤봉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누는 우리 고유의 어휘다. 조선시대 중국어 학습서인 ‘박통사언해’(1677)에 “비노 잇나냐 날을 주어 머리 감게 하라”는 글이 나온다. 이 글에 보이는 ‘비노’가 비누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광고에 있듯이 19세기에는 비누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비슷한 시기에 광고주는 제국신문에 “황토마루(광화문) 서다리 남편 벽돌집 소다발매소에서 소다를 판다”고 광고했다. sonsj@seoul.co.kr
  • 머큐리의 깜짝 등장… 퀸, 감동을 연주하다

    머큐리의 깜짝 등장… 퀸, 감동을 연주하다

    머큐리, 목소리·영상으로 멤버와 합주 ‘위 아 더 챔피언스’등 명곡들 이어져과거·현재 넘나들며 관객들 사로잡아 팬들은 떼창·무지개 불빛 만들어 화답강렬한 일렉 기타 연주를 선보이던 브라이언 메이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홀로 무대에 올랐다.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건넨 뒤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를 부르기 시작했다. 메이의 목소리를 이은 건 예상치 못한 프레디 머큐리의 음성이었다. 화면에는 메이와 머큐리가 눈을 맞추며 노래하는 모습이 잡혔다. 그 순간 머큐리는 완벽하게 돌아왔다. 잠깐의 합주가 꿈처럼 지나고 머큐리가 사라지자 메이는 눈가를 훔쳤다.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5 퀸’ 내한 공연에서는 29년 전 세상을 떠난 머큐리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었다. 관객과 밴드의 마음에 자리한 머큐리는 때로는 영상으로, 때로는 보컬 애덤 램버트의 목소리로 다시 살아났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연주에 2만 3000여 관객도 2시간 내내 떼창으로 그 감동을 증폭시켰다. 주말동안 관객 4만 5000여명이 몰렸다.퀸이 한국 팬들을 만난 건 2014년 8월 록 페스티벌 ‘슈퍼소닉’ 이후 5년 5개월 만이다. 그사이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열풍과 함께 퀸은 20~30대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이번 공연에서도 전체예매의 73%를 차지했다. 단독 내한은 처음이지만 관객들은 ‘레이디오 가가’(Radio GaGa) 등에서 손뼉을 치는 등 여러 번 합을 맞춘 듯 음악을 완성시켰다. 관객들의 열정적 떼창과 휴대전화로 비춘 무지개 불빛에 세 멤버는 감격 어린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백발의 70대 로커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무대를 압도했다. 첫 곡 ‘이누엔도’(Innuendo)부터 ‘해머 투 폴’(Hammer To Fall), ‘돈 스톱 미 나우’(Don´t Stop Me Now), ‘아이 원 잇 올’(I Want It All) 등 퀸의 명곡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테일러는 자신이 작곡한 ‘아이 엠 인 러브 위드 마이 카’(I´m In Love With My Car)를 소화하며 보컬로서의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앨범 ‘어 나이트 앳 디 오페라’(A Night At The Opera)를 연상시킨 오페라 극장 콘셉트의 무대는 공연 내내 변화무쌍한 화려함으로 음악을 뒷받침했다. 램버트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완벽한 보컬을 선보였다. ‘후 원츠 투 리브 포에버’(Who Wants To Live Forever),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 등 끝을 모르는 고음과 기교로 환호를 이끌어 냈다. 피아노에 걸터앉아 빨간 부채를 흔든 ‘킬러 퀸’(Killer Queen), 오토바이에 누워 ‘바이시클 레이스’(Bicycle Race)를 부를 때와 ‘엉덩이춤’을 추는 모습에선 머큐리의 끼가 엿보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마지막으로 조명이 모두 꺼진 뒤 관객들의 앙코르에 화답한 건 다시 머큐리였다. 화면 속에서 ‘에∼오’를 외치는 그에게 관객들도 같은 메아리로 응답했다. 이윽고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메이와 왕관을 쓴 램버트, 테일러가 재등장해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를 선물했다. 공연을 관람한 허남국씨는 “원년 멤버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새롭고 머큐리의 등장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길섶에서] 트렌드/손성진 논설고문

    유교적 전통인 제사에 대한 고정관념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 1년에 제사를 여러 번 지내는 사람으로서 주변에 물어보면 여러 제사를 합쳐서 지내거나 절에 맡기는 가정도 적지 않다. 아예 지내지 않는다는 집도 있다. 지내는 시간도 늦은 밤에서 초저녁으로 바뀌고 있다. 격식을 따지셨던 부모님이 살아계셨더라면 ‘경을 칠 일’이라고 나무라실지 모르지만, 나도 간소화의 흐름에 스스로 얹히기로 했다. 할머니 제사를 할아버지 제사에 합치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지내지 않겠다는 것과 같아서 손자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집안 어른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는 않았다. 수일 전 42번째이자 마지막 할머니 제사를 지냈다. 사신(辭神·제사 절차의 하나로 신을 보내는 일)을 하면서 제주(祭主)인 내가 “할머니, 내년부터는 할아버지 제사 때 오세요”라고 고(告)했다. 그러자 30대인 사촌 여동생이 뒤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할머니, 요즘 이렇게 하는 게 ‘트렌드’예요.” 너무 우스워 속으로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도 섭섭해하시기보다는 손녀의 깜찍한 한마디에 덩달아 웃으시면서 모든 것을 용서하실 것 같았다. sonsj@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아기 젖도 떼는 ‘금계랍’ 사시오”/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아기 젖도 떼는 ‘금계랍’ 사시오”/손성진 논설고문

    독립신문 1897년 5월 18일 자에 게재된 ‘금계랍’(金鷄蠟)이라는 약 광고는 최초로 일러스트레이션(삽화)을 사용한 광고다. 이전까지의 광고는 모두 글자 광고였다. 그런데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단순한 왕관(크라운) 도안을 사용한 석유 광고가 1897년 2월 18일 자 독립신문에 먼저 실려 최초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왕관 그림은 특별한 뜻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이었을 수 있다. 금계랍 광고는 장수 동물인 학과 거북이를 이용했는데 사람이 학을 타고 있고 거북이 등 위에 토끼가 앉아 있는, 제법 모양새를 갖춘 일러스트레이션이다. 1896년 11월 7일 자 독립신문에 글자 광고로 처음으로 게재된 금계랍 광고는 약품 광고의 효시이기도 하다. 금계랍은 1820년 개발된 키니네(quinine)를 음차(音借)한 이름이며 키니네는 키나라는 열대 나무의 수액에서 추출한 생약 성분의 말라리아 특효약이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았던 구한말에는 말라리아(학질)가 매우 흔했고 10명이 걸리면 4~5명이 사망할 정도로 무서운 열병이었다. 매천야록에는 “이틀에 한 번 앓는 학질을 속칭 당학(唐?)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병을 매우 두려워했다. 그러나 금계랍이 서양에서 들어온 후 학질을 앓는 사람이 1전어치만 먹으면 즉시 낫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우두법이 나와 아이들이 잘 자라고 금계랍이 나와 노인들이 오래 산다’는 노래까지 있다”고 적혀 있다. 금계랍은 겡기랍·겡게랍(강원), 금계랄(경북)이라는 방언이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구비해 두었던 상비약이었다. 약병에는 알파벳으로 ‘kinkeirap’이라고도 씌어 있었다. 쓴맛의 금계랍은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신경통, 감기에도 썼고 엄마 젖꼭지에 발라 아기 젖을 떼기도 했던 신통한 약이었다. 1899년 12월 4일까지 독립신문 한글판 776호 가운데 543회나 실릴 정도로 금계랍은 수요도 많고 판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광고 문안은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금계랍을 이 회사에서 또 많이 가져와서 파니 누구든지 금계랍 장사하고 싶은 이는 이 회사에 와서 사면 도매금으로 싸게 주리라”라고 돼 있다. ‘이 회사’는 역시 지난주에 언급된 최초의 광고주 세창양행이다. 세창양행은 구한말 통리아문의 참의(參議)와 협판(協辦)으로 외교와 세관 문제를 맡았던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도움도 받았다. 묄렌도르프는 임오군란 때 살해당한 민겸호 집(현 서울 종로구청 후문 재보험 자리)에 살았다. 묄렌도르프는 조선 조정에 납품하도록 세창양행에 도움을 주었고 이후 세창양행은 조정에 차관과 대출도 제공하고 당현금광 채굴권을 획득하는 등 사업을 키워 나갔다. sonsj@seoul.co.kr
  • [포토] CES 2020, 도요타가 만드는 미래 도시 ‘우븐 시티’ 공개

    [포토] CES 2020, 도요타가 만드는 미래 도시 ‘우븐 시티’ 공개

    도요타자동차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0’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물인터넷(IoT)와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우븐 시티(Woven City)’를 조성하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AP·AFP·EPA 연합뉴스
  • [포토] CES 2020, 개인용 비행체 ‘S-A1’에 쏠린 시선

    [포토] CES 2020, 개인용 비행체 ‘S-A1’에 쏠린 시선

    세계 최대 국제전자제품박람회(Consumer Electronics Show 2020) 개막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참가자들이 ‘개인용 비행체’(PAV) 콘셉트 ‘S-A1’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2020.1.7 연합뉴스
  • [고든 정의 TECH+] 미 해군의 자율항해 무인 선박, 앞으로 말도 한다?

    [고든 정의 TECH+] 미 해군의 자율항해 무인 선박, 앞으로 말도 한다?

    미 해군은 미 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함께 사람 없이 혼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율 항해 무인 선박을 개발했습니다. 2018년 미 해군에 정식으로 인도돼 ‘시헌터’ (Sea Hunter)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대잠전(對潛戰) 연속 추적 무인함정(ACTUV)은 이것으로 미래 해상전의 양상을 바꿀 신무기로 주목되고 있습니다. 시헌터는 길이 40m가 조금 넘는 140t급 소형 선박으로 승무원 없이 최대 3개월 동안 작전을 수행하면서 적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미 무인항공기(드론)는 공중에서 현대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무기로 활약하고 있는데, 미군은 이에 더해서 자율항해 무인 선박 역시 새로운 핵심전력으로 개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군함은 운용하는 데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므로 일부만 무인화해도 상당한 병력을 절감하고 유사시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헌터 같은 자율항해 무인 선박이 실전 배치되기 위해서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자율주행차와 마찬가지로 자율항해 선박 역시 사람이 조종하는 선박과 충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차선이나 교통 신호가 없는 해상에서 선박이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제기구는 오래전부터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International Regulations for Preventing Collisions at Sea)을 만들었습니다. 시헌터의 자율항해 알고리즘은 이 규정에 완벽하게 따라 움직일 수 있게 개발됐습니다. 실제로 수년간에 걸친 시험 항해에서 씨 헌터는 다른 배와 충돌 없이 안전하게 항해했습니다. 하지만 운전과 마찬가지로 항해 역시 언제든지 돌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은 충돌 경로에 들어선 두 선박이 어떻게 정보를 교환하고 규정에 따라 충돌을 피하는지 명시하고 있지만, 3척 이상의 배가 인접해서 항해하는 경우에는 너무 변수가 많기 때문에 결국 항해사의 무전을 통해 항로를 수정하고 충돌을 피하게 됩니다. 문제는 시헌터에 해상용선박무전기(VHF) 채널을 통해 무선 통신을 할 항해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 해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지능 음성 비서와 비슷한 음성 인식 및 응답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인공지능(AI) 스피커나 스마트폰에 탑재된 AI 음성 인식 기술은 상당히 발전했지만, 시헌터에 탑재될 음성 인식 및 응답 시스템은 실수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대응이 중요합니다. 특히 영어권 사용자 이외에 비영어권 사용자의 응답을 이해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미 해군은 3단계에 걸쳐 기술을 개발하고 실제 시헌터에 적응할 계획입니다. 성공한다면 스스로 장애물과 다른 선박을 인지하고 항해할 뿐 아니라 인간이 조종하는 선박에 사람처럼 무선 교신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무인 선박이 등장할 것입니다. 마치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최근 자율주행 기술이나 음성인식 기술, 그리고 이와 연관된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인간처럼 반응하는 항공기, 차량, 선박, 그리고 로봇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진=해상 시험 운전 중인 시헌터(DARPA 제공)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유엔 “올해 한국의 대북지원 900만 달러…세계 1위”

    유엔 “올해 한국의 대북지원 900만 달러…세계 1위”

    김연철 통일, 국제기구 통한 대북지원 강조 北 “인도주의로 남북진전 호들갑 떨지 마라”北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는 염원 우롱”올해 한국의 대북 지원액이 900만 달러(약 104억 1750만원)로 세계 1위 규모였다고 유엔이 집계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30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북 지원 현황 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의 대북 지원액의 세부 내역을 보면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지원이 550만 달러였고,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을 통한 지원이 350만 달러였다. 지원 규모는 한국에 이어 스위스가 863만 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 북한에 인도주의 지원을 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노르웨이, 러시아, 스웨덴, 스위스 등 11개국이다.3위는 스웨덴(512만 달러), 4위는 러시아(400만 달러), 5위는 캐나다(151만 달러), 6위는 노르웨이(146만 달러), 7위는 독일(124만 달러), 8위는 프랑스(39만 달러)였다. 9위는 덴마크(33만 달러), 10위는 핀란드(15만 달러), 11위는 아일랜드(11만 달러) 순이었다. 올 한해 국제사회의 전체 대북지원액은 3829만 5877달러로 전년(3816만 1347달러)과 비슷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6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대북 인도지원·교류협력 활성화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 협력 등을 언급했었다. 통일부는 지난달 22일 ‘인도적 대북지원사업 및 협력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 고시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도 대북지원 사업자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특별대담에서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해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여야가 함께 모여서 협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잇단 미사일 등 발사체 도발에도 정부가 같은 동포로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대대적인 비난 성명을 내놨다. 대남 선전 매체 메아리는 “주변 환경에 얽매여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인도주의 등을 언급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새 역사를 써 나가려는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또 “몇 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놓고 남북관계의 큰 전진이 이룩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민심에 대한 기만”이라고 비난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2019 우주를 보다] 블랙홀부터 눈사람까지…2019 우주사진 베스트

    [2019 우주를 보다] 블랙홀부터 눈사람까지…2019 우주사진 베스트

    올 한해도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계속됐다.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론으로만 존재했던 실제 블랙홀의 모습을 포착했고 태양계 끝자락의 천체와 조우했다. 또한 태양계 너머 ‘외계에서 온 두번째 손님’인 ‘2I/보리소프'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올 한해 포착된 흥미롭고 신비로운 우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정리해봤다.  태양계 끝자락의 눈사람 지난 1월 1일 전세계가 새해맞이에 들썩이던 사이 태양계 끝자락에서는 인류의 피조물이 미지의 세계를 떠도는 천체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났다. 지구에서 약 66억㎞ 떨어진 미지의 세계인 ‘카이퍼 벨트’(Kuiper Belt·태양계 끝자락에 수많은 천체가 도넛 모양으로 밀집해 있는 지역)에 위치한 이 소행성의 이름은 ‘2014 MU69’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별칭은 ‘울티마 툴레’(Ultima Thule)다. 그러나 지난 11월 미 항공우주국(NASA)은 울티마 툴레의 공식적인 이름을 ‘아로코스’(Arrokoth)로 명명했다. 북미 인디언의 언어에서 따온 아로코스는 ‘하늘’이라는 뜻으로 국제천문연맹(IAU)의 승인도 받아 천체의 공식명칭이 됐다. 마치 눈사람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눈길을 끈 아로코스는 원래는 각기 다른 2개의 암석 덩어리였다. 그러나 부드럽게 충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길이 30여㎞의 지금의 모습이 됐다. 인류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블랙홀 지난 4월 세계 과학 역사상 최초로 초대질량의 실제 블랙홀 모습이 포착됐다. 국내 천문학자들을 포함한 347명의 국제 과학자가 포진된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연구진은 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 관측에 성공한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에 달한다. 태양 1개의 질량이 지구 33만 2000여개 질량과 맞먹는 걸 고려하면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EHT 연구진은 세계 각지에 놓여 있는 전파망원경 8대를 서로 연결해 하나의 망원경처럼 가동하는 초장기선 간섭(VLBI) 관측법을 통해 개별 망원경이 얻을 수 없는 블랙홀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토성의 맨 얼굴 NASA와 유럽우주국(ESA)은 지난 6월 허블우주망원경의 최첨단 광시야카메라3(WFC3)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정도로 놀라운 ‘토성의 맨 얼굴’을 포착했다. NASA 관계자는 "토성은 많은 특징들을 지니고 있지만, 특히 그중에도 고리 시스템은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면서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는 토성의 밝은 고리는 장엄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밝혔다. 촬영당시 토성의 거리는 지구-태양 간 거리의 약 9배인 13억 6000만㎞였다.  ‘별중의 별’ 에타 카리나이지구로부터 약 7500광년 떨어진 곳에는 ‘별중의 별’로 불리는 특이한 쌍성이 존재한다. 마치 날갯짓하는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 덕에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쌍성계 ‘에타 카리나이’(Eta Carinae)다. 지난 7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는 허블우주망원경의 광시야카메라3(WFC3)를 이용해 열기가 남은 에타 카리나이의 가스 속에서 마그네슘이 뿜어내는 빛을 자외선으로 포착했다. 이 빛은 둥근 돌출부 사이의 공간과 외곽에서 충돌로 가열된 질소가 많은 영역에서 형성됐으며 이전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다. 용골자리(Constellation Carina)에 위치한 에타 카리나이는 지금도 매우 격렬하면서도 불안정하게 활동하는 별로, 크고 작은 두개의 ‘태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별은 태양보다 질량이 90배 정도 크지만 무려 500만 배나 밝은 것이 특징이다. 작은 별 역시 태양보다 30배 정도 큰 질량을 가졌으며 100만 배는 더 밝다. 외계에서 두번째로 온 그대 지난 10월 태양계 너머 ‘외계에서 온 두번째 손님’의 가장 선명한 모습이 4억 1800만㎞ 거리에서 허블우주망원경에 포착됐다. 푸른빛을 발하는 인터스텔라(interstellar·항성 간) 방문객인 ‘2I/보리소프‘(2I/Borisov·이하 보리소프)는 우리 태양계의 혜성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보리소프가 반지름이 약 1㎞인 고체 핵을 갖고 있으며, 코마(coma)처럼 핵에서 방출되는 가스와 먼지로 된 구름 같은 구조가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외계 항성계에서 만들어진 혜성으로 그 화학적 구성과 구조, 특성 등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 눈을 가진 오싹한 '유령 은하' 지난 10월 허블우주망원경이 심우주에서 포착한 ‘유령은하’다. 얼핏 소름이 돋는 이 화제의 이미지는 이글거리는 두 눈을 가진 얼굴 형상으로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유령 은하의 정체는 정면 충돌의 중간 단계에 있는 두 심우주 은하들로, 소름 끼치는 우주 얼굴의 섬뜩한 ‘두 눈’은 은하들의 밝은 핵이다. 그리고 각각의 은하 디스크에는 두 은하의 별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있다. 현미경자리에 있는 이 은하계는 ‘Arp-Madore 2026-424’라고 불리며, 지구로부터 7억 400만 광년 떨어져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고리 모양의 은하는 드물며, 그 중 수백 개만이 심우주에 존재한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길섶에서] 타임캡슐 개봉/손성진 논설고문

    오래됐어도 책을 포함해 덩치 큰 것들은 다 버렸는데 먼지 쌓인 짐을 정리하다 빛바랜 물건들이 든 상자를 발견했다. 내 딴에는 수십 년 후에 열어볼 요량이었는지 나도 찾지 못할 깊숙한 곳에 타임캡슐처럼 넣어 두었던 듯하다. 초등학교 통지표, 중고교 성적표, 대학 본고사 문제지, 학우 주소록, 학생증, 막역한 친구 두 명에게서 받은 편지 두 통 따위였는데 마지막 것이 유학 갔던 친구에게서 30여 년 전 받은 편지였다. 편지를 바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보냈더니 친구의 첫 반응이 “이기(이게) 다 뭐꼬?”다. 그러면서 “삼십 년도 더 된 걸 아직도 갖고 있었나”라며 감격의 이모티콘을 보내준다. 장래가 막연하던 대학 졸업반 때 쓴, 지금 보면 글도 아닌 잡문(雜文) 몇 편도 상자 속에 들어 있었다. 학창 시절의 방황과 고독이 느껴지는 그중의 하나. “이별을 사랑하는 보헤미안처럼 황량한 벌판을 떠돌던 육신./천 갈래 번민에 단련된 심장으로도/마지막 남은 하나 여과할 수 없어/천상의 시간까지도 내게는 단지 나 하나일까./그래도 다만, 십구세기 정열이 비너스를 찾아 방랑하듯/청춘을 떠메고 토굴에 살던 횔덜린(*독일 시인)의 광기로/천사의 날개 빌려 창공을 날아 흐르는 별을 잡고 싶다.” sonsj@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그때의 ‘아듀!’

    [그때의 사회면] 그때의 ‘아듀!’

    12월 말이면 신문들은 송년사를 실었다. 이때만큼은 알쏭달쏭한 미사여구나 현학적인 표현도 허용됐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새해는 연말이면 늘 아쉬움이 가득했었다. 곁들인 사진의 단골 소재는 삼일고가도로의 명멸하는 차량 불빛이나 서울의 야경이었다. “산다는 것이 문뜩 두렵고 세월이 아쉬워진다. 그러나 가는 세월과 얻은 인생은 저버릴 수 없는지, 가는 그믐밤의 발자국 속에 한 해의 쓰라렸던 기억과 상처는 묻혀 보내는 것이 좋다.”(1963년) “제야의 종소리 구슬피 울리는 속에 1967년도 이제 저물어간다. 빌딩의 창가에 불야성의 밤이 켜지고 성탄의 뒷맛이 달콤한 황홀 속에 또 하나 미완의 장(章) 67년은 손을 저으며 과거로 사라져 가지만, 누구 하나 만신창이에 물러가는 시간의 위로의 손길을 얹는 지각을 지니지 못했고….”(1967년) “가슴처럼 허전한 리리시즘, 그 위에 또다시 구슬피 잦아드는 서정을 버리고 또 닻을 올려야 할 우리들의 길…. 그러나 제야의 종소리에 가슴을 용해시킬 겨를이 우리에겐 없다. 어서 나침반을 일깨우고 닻을 올려 세계의 바람을 타고 대해로 나가자.”(1968년)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뻗어나가 근대화로 향하는 고속의 해가 됐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줄 이은 차량의 불빛 속에 70년이 고요히 막을 내린다. 움츠렸던 가슴일랑 활짝 펴고 고달픔과 시달림, 아픔과 쓰라림을 떨쳐 버리고 올해에 이루지 못한 일은 새해의 푸른 꿈에 담아 보자.”(1970년) “설령 가책이 많았고 잘잘못을 거듭했던 해였다고 생각되더라도 안개가 서린 자리에서 감정을 멈추자. 헤어짐은 섭섭한 것이지만 희망 속에 사는 인생들이기에, 잘 가거라 신해(辛亥)여.”(1971년) “시련과 극복으로 점철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경제적 불황과 물가고, 어수선했던 사회현상들. 우리가 겪었던 상처와 아픔은 그 어느 때보다 깊었다.”(1974년) “좀더 잘사는 나라, 응어리진 민족의 비원(悲願)이 훌훌 풀어질 새해가 되기를 바라며.”(1975년) “한반도의 저 혈맥, 고속도로의 심야 질주를 보라. 이 순간에도 멈춤이 없는 저 쾌속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전진하자.”(1976년) “내일의 풍요를 신앙처럼 믿어 온 어진 백성들은 농촌에서, 남국의 정글에서, 아라비아의 열사(熱沙)에서 보릿고개의 슬픈 유산을 훌훌 털어버리고…. 지나친 물질 추구가 빚어낸 황금만능, 가진 자와 안 가진 자의 갈등 등 아쉬움과 반성을 남긴 채 보내는 79년, 70년대이기도 하다.”(1979년)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은 끝내고 새해부터 새 연재물을 싣습니다.
  • [동정] 백승기 부경대 교수 논문 일본 모바일 사이언스상

    △ 백승기 부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와 일본이화학연구소 계산과학연구센터 요스케 무라세 박사가 공동 발표한 논문(Seven rules to avoid the tragedy of the commons)이 최근 일본 제18회 도코모 모바일 사이언스상 사회과학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백 교수팀 연구 논문은 사회과학 연구에 슈퍼컴퓨터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
  • “고대 로마 황제 3분의 2, 즉위 첫해 비명횡사 위험 가장 컸다”

    “고대 로마 황제 3분의 2, 즉위 첫해 비명횡사 위험 가장 컸다”

    고대 로마제국 황제들 중 약 3분의 2가 즉위 첫해에 ‘비명횡사’할 위험이 가장 컸다는 흥미로운 통계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조지아공대 조지프 살레 박사팀은 로마제국 통치자들의 생애주기에 관한 새로운 통계 연구에서 이들 황제가 즉위한 뒤 사망할 때까지의 기간에 공학 분야에서 쓰는 통계 방식을 적용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 방식은 기기나 시스템의 안전성과 보전성 등을 다루는 신뢰성 공학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원래 제품의 고장률 패턴과 수명 분포를 측정하는 것이지만, 이 연구에서는 황제의 뜻밖의 죽음을 분석한 것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초대 아우구스투스(사망 서기 14년)부터 테오도시우스 대제(사망 서기 395년)까지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69명 중 자연사 38%를 제외한 62%인 43명은 암살이나 자살 또는 전쟁 중 전사로 그야말로 비명횡사했다. 이런 기록은 일반적으로 통치자에 대한 충성심과 부(富) 같이 개별적인 요인과 함께 각각의 죽음을 하나의 무작위적 사건으로 검토한다. 하지만 각 황제의 통치 기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했는지에 관한 공통적이고 근본적인 패턴이 있는지는 이번 연구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살레 박사는 공학 분야에서 부품들의 신뢰성을 시험하는 데 자주 쓰는 통계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황제의 통치 첫해부터 사망하기까지의 기간을 통계적으로 모델링했다. 그 결과, 황제들이 비명횡사할 확률은 부품들이 무작위로 고장 날 확률과 패턴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레 박사에 따르면, 로마 황제들은 즉위 첫해 동안 비명횡사할 높은 위험에 직면했었다. 이 패턴은 공학 분야에서 부품들이 초기 생산 과정에서 의도한 대로 기능하지 못해 고장이 나는 확률처럼 가장 높았다. 이후 이들 황제가 사망할 위험은 8년차까지 점차 줄었지만, 안정기를 거쳐 12년차부터 다시 늘었다. 이는 부품들이 피로나 부식 또는 마모로 인해 고장 나는 것과 비슷한 패턴으로 확인됐다. 이 연구에서 사용된 로마 황제들의 데이터는 로마 황제들에 관한 동료 검토 온라인 백과사전 ‘드 임페라토리부스 로마니스’(DIR·De Imperatoribus Romanis)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고대사의 출처는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고 정확한 사인은 기록마다 다를 수 있어 이 데이터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앞으로의 연구는 로마 황제들이 왜 반복해서 비명횡사했고, 또 다른 역사적 사건들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를 탐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폴그레이브 커뮤니케이션스’(Palgrave Communications) 최신호(23일자)에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日·만주군과 전투 200여회 승리… 남북 국립묘지에 모신 유일 독립투사

    “조선의 독립, 자유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최후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 만주를 호령하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했다.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거둬 군신(軍神)으로 추앙받았지만 양세봉을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양세봉은 1896년 7월 15일 평북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에서 소작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마을 서당 문지기로 일하며 귀동냥으로 천자문과 논어, 명심보감 등을 익힌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훈장의 안중근 의사 이야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양세봉은 죽음을 앞둔 안 의사가 남긴 “슬퍼하지 마라. 대장부로 태어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데 무엇이 슬프단 말이냐”는 말을 가슴 깊이 새겼다.19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병환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양세봉은 겨우 16세에 가장이 됐고 임재순과 결혼했다.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양세봉은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향했다. 흥경현(현 신빈현) 영릉가를 거쳐 한인 집단 거주지인 홍묘자 사도구에 정착했다. 1919년 4월 홍묘자에 있던 홍동학교 교장 이세일은 3·1운동 지지 시위를 주도했는데 양세봉도 동참했다. 이후 양세봉은 천마산대에 가입해 본격적인 독립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1920년 12월 최시흥이 청장년 500여명으로 조직한 천마산대는 경찰서,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밀정과 일경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던 항일 유격대였다.●“중국인, 관운장보다 유능한 장군으로 흠모” 천마산대는 일제의 공격을 받자 만주 유하현으로 가 광복군총영에 합류했다. 양세봉은 군기 검사관이 됐다. 그 뒤 만주 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은 대한통의부로 통합, 무력 부대를 설치했는데 오동진이 사령장이었고 양세봉도 두령이라는 작은 자리를 맡았다. 1923년 5월 양세봉은 평북 창성을 습격하고 일본군 10여명을 사살하는 등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새로 출범한 참의부 소대장이 돼 압록강을 건너가 유격 투쟁을 이어 갔다. 평북 초산과 강계에서 일경 수명을 사살했고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경비선을 타고 압록강을 지나갈 때 저격을 지휘해 일제가 간담을 쓸어내리게 했다. 1924년부터 남만주에는 정의부가, 북만주에는 신민부가 설립돼 참의부와 함께 3부 체제가 됐다. 양세봉은 참의부 중대장으로 승진한 뒤 정의부로 옮겨 갔다. 3부는 1929년 4월 민족유일당 운동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민부로 통합됐다. 흥경현 왕청문에 자리잡은 국민부는 조선혁명군을 창설했다. 국민부는 선민부 토벌에 나섰다. 조선민회라고도 불렸던 선민부는 한인 변절자들이 이끌고 있었다. 일제의 조종을 받아 독립군을 색출하고 가족을 살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은 부사령을 맡아 선민부 지휘부와 지부를 습격해 우두머리와 일당을 모조리 죽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31년 9·18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이듬해 1월 조선혁명당과 군 간부 10여명이 회의 도중 습격을 받아 체포되고 이후 두 달 동안 간부 83명이 붙잡혀 혁명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지역 부대장들의 추천으로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됐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양세봉 장군은 부대를 재정비하고 속성군관학교를 세우는 한편 조직적인 항일 투쟁에 나섰다. 또한 왕동헌, 이춘윤, 양희부 등 중국 지도자들과 협력해 ‘요령농민자위단’을 결성했다. 당취오가 총사령인 ‘요령민중자위군’과도 힘을 합쳐 자위군의 특무대 사령으로서 대일 연합작전을 벌였다. 괴뢰정부인 만주국 군대가 흥경현을 점령하자 연합부대는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탈환했다. 일본군은 400여명의 사상자와 500명 가까운 실종자를 냈다. ‘제1차 흥경혈전’이다. 그 중심에 양세봉 장군이 있었다. 다음달 일본군은 비행기까지 동원해 흥경으로 돌진해 왔다. 2차 혈전에서도 연합부대는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연합부대는 1932년 8월 청원현을, 다음달에는 석탄 탄광이 있는 무순을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연합부대가 지나갔던 평정산 마을 주민 3000여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32년까지 한중 연합부대는 일만 연합군과 200여 차례 전투를 벌였고 장군은 그때마다 크고 작은 승리를 거뒀다. 한편으로 멀리 경상도까지 소부대를 보내 경찰서 등을 파괴하고 악질 경찰을 살해했다. 1932~1933년 압록강 주변에서만 26차례 파괴 공작을 벌였고 일본 군경 243명을 사살했다. 1933년 5월 서원준을 황해도에 밀파해 사리원 경찰서 등을 습격한 것은 신문이 호외로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럴수록 일제의 추격은 집요해졌다. 조선인 변절자를 이용해 혁명군을 체포하고 가족과 친구까지 살해했다. 혁명군 수백명을 처형해 머리를 매달았다. 장군의 체포에도 혈안이 돼 현상금을 걸었다. 1934년 3월 장군은 중국 동북인민혁명군 사령관 양정우와 연합했다. 장군은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지만 항일을 위해 신념도 버렸다. 조선혁명군과 인민혁명군은 진주령 일본군 기차 습격, 노구대 격전, 쾌대무자 전투 등 연합작전에서 연전연승, 일본군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그해 9월 18일 일제의 지시를 받던 박창해는 장군과 면식이 있던 압동양을 보내 “저희 부대가 양 사령관께 오려고 합니다. 함께 가서 무기를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라며 유인했다. 장군은 경호대원만 데리고 따라나섰고 일행이 소황구에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압동양이 옥수수밭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매복하고 있던 일군들이 기습 사격을 가했고 장군은 가슴에 총탄 두 발을 맞았다. 장군은 “조선독립혁명을 완성하고 가지 못하는 나는… 민족의 죄인입니다”라고 자책하며 20일 오후 1시쯤 숨을 거뒀다. 15년 동안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웠던 영웅은 이렇게 희생됐다. 한인들은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며 슬퍼했다. 장군의 나이 38세였다. 한인들은 시신을 위치가 드러나지 않게 평장(平葬)했다. 같은 달 26일 양세봉의 죽음을 알고 향수하자촌에 일군이 몰려와 한인 70여명을 모아 놓고 시신을 내놓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둔장(屯長)이 묘의 위치를 말하자 일군은 시신을 파내 놓고 마을 노인 김도선에게 작두로 머리를 자르라고 했다. 김 노인은 “나는 조선 사람이다. 조선 사람이 어찌 자기 사령관의 머리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군은 그 자리에서 김 노인의 머리를 베고 장군의 머리를 가져갔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 없는 장군의 시신을 다시 고구려산성 아래에 묻었다. 장군은 전투에선 호랑이 같았지만 마음은 너무나 따뜻했다. 계급을 불문하고 대원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거친 밥을 똑같이 나눠 먹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발을 씻겨 주기도 했다. 배움이 부족한 ‘소작농 장군’이었지만 인격으로 감동시켰다. 장군의 비서였던 박윤걸(중국에서 작고)씨는 “중국인 이춘윤은 관운장보다 더 유능한 장군이라며 흠모했다”고 말했다. ●김일성 아버지와 의형제… 가족들 평양에 정착 광복 후 북한은 장군의 가족을 평양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장군은 김일성의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1961년 후손들이 유골을 북한으로 이장했고 장군은 애국열사릉에 옮겨져 묻혔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도 이회영 선생 묘소의 바로 왼쪽에 장군의 가묘가 있다. 남북 양쪽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독립투사는 장군이 유일하다. 우리 정부는 1962년 장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정시 특집] 연세대학교, 의예과 지원자 전원 대상 인성면접시험

    [정시 특집] 연세대학교, 의예과 지원자 전원 대상 인성면접시험

    정시모집에서 1136명을 선발한다. 전년도 대비 125명 늘었다. 전년도에 이어 2020학년도에도 언더우드 국제대학에서 정시모집을 실시한다. 서류평가(60%)와 면접평가(40%)를 일괄 합산해 15명을 선발한다. 수능 영어영역은 1등급을 100점으로 배정하고 등급이 내려갈수록 감점한다. 한국사 반영점수는 1~4등급(체능은 1~5등급)까지 10점으로 배정하고 등급이 내려갈수록 감점한다. 일반전형 일반계열 중 의예과 지원자 전원에 대해 인성면접시험을 실시한다. 제시문을 기반으로 자기결정성과 심리안정성 등 기본 인성을 평가한다. 면접 결과는 성적 산출에 반영하지 않으나 적정 기준 이하는 불합격 처리한다. 일반전형 국제계열은 면접구술시험을 실시한다. 제시문을 기반으로 논리적 사고력 및 의사소통능력을 평가한다. 일반전형 체능계열은 실기시험과 면접구술시험을 실시한다. 체육교육학과는 기본운동능력 실기시험 3종목(왕복달리기·제자리넓이뛰기·메디신볼던지기)과 교직 이수 자질을 확인하기 위한 면접구술시험을 실시한다. 스포츠응용산업학과는 선택실기시험 10종목(농구·배드민턴·골프·축구·태권도·유도·검도·수영·무용·체조) 중 1종목을 선택해 치르며 고교 재학 중 수상한 전국 규모 대회 이상의 입상경력이 있는 지원자는 선택실기시험 면제를 신청할 수 있다. 원서접수는 27일부터 31일까지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admission.yonsei.ac.kr)를 참조하면 된다. (02)2123-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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