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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꽂이]

    ●An Animal Tale(동물 이야기)(재니 스콧 지음, 아이즐북스 펴냄) 전 세계 아이들이 열광하는 ‘E-마우스 시리즈’ 첫 번째 편인 동물 이야기다. 고양이, 개, 닭 등 친숙한 동물은 물론 오랑우탄, 표범, 뱀 등 야생동물까지 사진과 그림 등 책을 본 뒤 이를 활용한 길 찾기, 퍼즐등 놀이로 자연스럽게 복습할 수 있게 했다. 오디오북으로도 제공된다. 4권이 한 시리즈다. 각권 1만원. ●레옹과 어린이 권리 이야기(아니 그루비 지음, 김성희 옮김, 진선아이 펴냄) 전세계 모든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마음껏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전쟁과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아야 할 권리는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어린이들은 이렇게 보장된 어린이의 권리를 알 권리도 갖고 있다. 외눈박이 꼬마요정 레옹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여러 조항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8500원. ●열두 살에 처음 만난 학문의 기쁨(하랄트 레쉬 등 지음, 닐스 플리그너 그림, 랄프 사크파리 엮음, 송소민 옮김, 주니어김영사 펴냄) 아이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우주를 날아 별나라 여행을 하고, 복잡한 숫자의 나열에서 법칙을 발견하고, 성경책을 들여다보다 역사가 궁금해지고, 동물원 원숭이와 대화를 나누고…. 각 분야의 학자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지식 이야기, 공부하는 기쁨의 이야기다. 1만원.
  • “화장장을 우리마을로”

    경기 김포시 3개 마을이 화장장·납골당 등을 갖춘 장사시설 유치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파격적인 인센티브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된 ‘님비’(NIMBY·혐오시설을 기피하는 현상)와 대조되는 ‘핌비’(PIMBY·자기 지역에 이익이 되는 시설을 유치하려는 현상)로 해석돼 주목된다. 이는 그동안 혐오시설로 인식돼 왔던 화장장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지자체들에 긍정적인 선례가 될 전망이다. 1일 김포시에 따르면 지역에 화장시설이 없어 2013년 말까지 친환경 무색·무취·무연의 화장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최근 각계 인사 16명으로 ‘장사공원 부지선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장사시설의 규모와 부지 선정, 시설 주변 주민들에게 부여하는 구체적인 인센티브 범위 등을 정해 오는 12월 말까지 부지를 최종 선정키로 했다. 6만 5000㎡의 부지에 화장로 5∼10기를 설치하고 수목장 등 자연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시는 장사시설이 조성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시설 내 식당과 매점, 장례식장 운영권 등을 주고 직원 채용(30명 정도) 시 주민 우선 채용, 주변마을에 대한 특별사업(도로·상수도 확충, 마을회관·경로당 건립) 등 각종 혜택을 줄 방침이다. 이 같은 사실이 ‘시장과 주민과의 대화’를 통해 알려지자 김포지역 3개 마을 주민들이 장사시설 유치를 희망하고 나서면서 ‘님비’와는 대조되는 특이한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인센티브의 ‘유혹’ 때문에 주민들이 폐기물 처리시설 등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일부 지자체에서 일기는 했지만, 주민들이 가장 기피하는 혐오시설인 화장장을 대상으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인구 24만명의 김포는 하루 평균 2.6명이 사망하고 있지만 화장장이 없어 인천에 있는 화장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때문에 시신 1구당 100만원에 달하는 화장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차량으로도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어 장사시설 건립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중장비 하나없이…히말라야 아이들 꿈을 짓는다.”(전문)

    “중장비 하나없이…히말라야 아이들 꿈을 짓는다.”(전문)

    네팔이 늘 그리운 건 산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깊은 골을 만들고 그 안에 행복한 얼굴의 사람들을 품어서다.  엄청난 등짐을 지고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다 낯선 이와 마주치면 조심스레 비켜 서며 두 손 모아 ‘나마스테(산스크리트어로 ‘내 안의 신성이 당신의 신성에 경의를 표합니다’란 뜻)’를 읊조리는 이들, 그리고 논밭에 잇닿은 수천 개의 계단을 올라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 건물은 다 무너져 가고 교실은 비좁고 캄캄해도 낡은 공책에 ‘희망’을 꾹꾹 눌러쓰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기로 한 가운데 지난 12일 부처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룸비니주 쉬리 싯타르다 거떰부타에서 세 번째 학교 기공식이 열렸다. “내 발 아래 둔 히말라야 고봉과 같은 숫자의 학교를 지어 산과 신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던 엄홍길(51) 대장의 약속이 이렇게 진척되고 있는 것은 홍순덕(41) 네팔 지부장에 힘 입은 바 크다.  직함이 그렇지, 사실 혈혈단신으로 현지인과 먹고 자며 이들을 부리는 현장소장 역할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내려가는 데만 사나흘 걸리기도 하는 히말라야 자락에 온갖 건축자재를 끌어올리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더욱이 중장비도 없이 학교를 짓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나라들의 비정부기구(NGO)들도 제대로 된 학교 하나 짓기가 힘들어 포기하는 형국인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충북 제천에서 목조주택 사업을 하다 지난해 3월 엄 대장의 간곡한 당부에 넘어가(?) 1년 넘게 네팔에 눌러앉게 된 홍씨와 전화,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룸비니의 그곳 상황은. -기공식과 함께 연 진료캠프에 500여명이 찾아왔고 의류와 문구, 가방 등을 선물받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가난한 형편에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해 불치의 병으로 키우고 생필품도 턱없이 부족한 이곳의 생활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학교 건물조차 제대로 없는 이곳에 커뮤니티홀을 포함해 10개의 교실이 들어선다는 생각에 온 마을이 들떠 있으며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본격적인 공사는 24일쯤 시작한다. →어떻게 재단 일을 맡게 됐나. -지난해 3월 말에 처음 네팔에 왔다. 엄 대장이 첫 학교로 짓던 팡보체 휴먼스쿨을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당초 한 선교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재단과 여러 문제가 있었고 준공이 임박했는데도 공사 진행에 진척이 없어 급하게 날 보낸 것이었다. 한달 반 현지인들을 독려해 어린이날에 학교를 교사들에게 인계한 뒤 6월 중순에 귀국했다. 본업에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네팔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고 해 돌아와 지난해 추석에 잠시 다녀온 것 빼고는 죽 네팔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고민했을텐데. -40대 초반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사업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리를 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인생 후반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2000년 에베레스트와 2002년 로체, 그 이듬해 로체샤르를 함께 등정한 엄 대장과의 인연이 소중하고 오지에 학교를 짓는 사업이 보람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2~3년은 고생할 생각이었다. →왜 첫 휴먼스쿨이 팡보체에 들어섰나. -엄 대장이 첫 학교 터로 이곳을 잡은 것은 1986년에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1000m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세상을 먼저 등진 세르파 술딤 도로지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 수많은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찾고 해발고도 4060m에 쿰부 히말라야의 전초기지란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홍 지부장이 정말 자기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번째 타루프이겠다. -지난 2월23일 완공한 타르푸 휴먼스쿨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북 방향으로 95㎞ 떨어진 곳이다. 버스로 6시간 걸린다. 트레킹 명소로 떠오른 랑탕 히말라야의 들머리 트리슐리에서 25㎞ 떨어져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의 옛 학교 건물과 비교하면 정말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 우리네 학교에선 새삼스러울 게 없는 화장실, 급수시설에 주민들 보건소를 겸한 양호실, 컴퓨터실까지 갖췄고 완공식 날 아이들이 난생 처음 타보는 미끄럼틀과 시소 등에서 밤 늦도록 뛰어놀던 기억이 새롭다.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다고 들었다. -구입한 자재를 현장에 올리는 데도 위험한 산길로 3시간여를 곡예하듯 가야 도착하고 우기에는 거의 매일 장대비가 2~3번씩 내리고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우기가 끝날 때 까지 길을 보수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꿈만 같다. →그렇게 한 채 짓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며 얼마만큼의 돈, 공력이 드는지 알려 달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물자 수송이 어렵다. 기계장비를 올리기도 쉽지 않으니 모든 작업을 인력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기 한달 반은 공사를 못하고 네팔 명절 인 더사인축제, 띠알 축제로 15일 정도 쉬어야 한다. 자금도 많이 들었지만 재단을 돕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모아져 이곳 학생들에게 꿈을 이룰수 있는 소중한 학교가 세워지고 있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네팔말을 전혀 몰라 손짓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비가 내리면 산사태로 길이 막히는 일도 많았다. 화물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래를 나르는 트럭을 움직이기 위해 싣고가던 모래를 길에 뿌리면서 도착해보니 모래가 반밖에 남지 않은 일도 여러 차례였다. 말도 안 통하는 주민들과 협상하는 일 등을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이 정도로 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것이란 엉뚱한 생각도 했다. →재단에선 학교만 짓고 운영에 대해선 간여하지 않는 건가. -학교를 지어 주었다고 학교 운영이나 교사 배치 등을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부 자체가 선의의 일이지만 기득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팔만의 운영 방식이 있기 때문에 존중하되 학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교사 지원이나 의약품 지원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지원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팡보체에도 헬스 포스트를 설치하고 심각한 장애 소녀였던 밍마참지를 국내에 초청해 무상으로 외과 수술을 받게 하고 간호 교육을 받게 한 뒤 헬스포스트에 간호사로 배치해 간단한 진료와 약품을 나눠주게 했다. 급여는 물론, 의약품도 꾸준히 보내고 있다.  학교에도 영어와 예체능 교사의 급여를 지원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지인은. -자기네 학교가 지어진다는 생각에 쉬는 날에 현장에 나와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고 벽돌 내리는 일도 함께 했던 아이들이다. 우리 애들처럼 느껴졌고 학생들 역시 먼저 달려와 “나마스테!” 인사하며 삼촌처럼 따랐다. 주민들도 호박, 감자 등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심전심이란 말대로 성심껏 서로를 대하면 나라와 피부색, 언어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2000년 에베레스트, 2002년 로체, 2003년 로체샤르 등정한 산악인으로 알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을 평가한다면. -청주대 조경학과 다니며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2003년 엄 대장과 함께 로체샤르 오르면서 더욱 존경하게 됐다. 좋은 일에 뜻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산에서 받은 은혜와 에너지를 더 넓은 곳으로 환원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재단에 기부한 이들로부터 어떤 찬사를 듣는지. -많은 격려를 듣지만 “지금 나 자신에게 충실한가?”라고 가끔 묻는다. 네팔과 이곳 어린이들에게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사랑을 변함없이 베풀고 나에게도 충실하게 생활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기나 인터넷 모두 열악할텐데 여가는 어떻게 보내나.  (홍 지부장은 19일 전화 통화에서 답변과 사진 30여장을 이메일로 전송하는 데 14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푸념했다.) -네팔에 처음 왔을 때는 부족한 것들에 불평도 많이 하고 힘도 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네팔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편안해졌다. 짬이 나면 가까운 이들과 카트만두밸리의 산행코스를 오른다. 걸으면서 ‘난 누구인가?’ 생각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이 상당할 것 같다. -충주에서 초등학교 보육교사로 일하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올해 큰아들의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해 굉장히 미안한데 가끔 전화로 적응도 잘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힘들어하는 가족들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 힘이 된다. →새삼스럽게 돋는 의문점 하나. 네팔이 필요로 하는 많은 것 중에 왜 학교인가.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시설도 없는 곳에서 부모가 살던 것처럼 가난을 대물림하는 실정이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처럼 포터와 셰르파로 사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바로 그게 학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중장비 하나 없이… 히말라야 아이들 ‘꿈’ 짓는다”

    “중장비 하나 없이… 히말라야 아이들 ‘꿈’ 짓는다”

    네팔이 늘 그리운 건 산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깊은 골을 만들고 그 안에 행복한 얼굴의 사람들을 품어서다. 엄청난 등짐을 지고도 낯선 이에게 길을 비켜 주며 ‘나마스떼’(‘안녕하세요’라는 산스크리트어. 원래 뜻은 ‘내 안의 신이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임.)를 읊조리는 이들, 그리고 수천개의 계단을 올라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 건물은 다 무너지고 교실은 비좁고 캄캄해도 낡은 공책에 ‘희망’을 꾹꾹 눌러 쓰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기로 한 가운데 지난 12일 부처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룸비니주 시리 싯다르타 거텀부타에서 세 번째 학교 기공식이 열렸다. “내가 다닌 히말라야 고봉과 같은 숫자의 학교를 지어 산과 신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던 엄홍길(51) 대장의 약속이 이렇게 진척되고 있는 것은 홍순덕(41) 네팔 지부장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직함이 그렇지, 실은 현지인과 먹고 자며 이들을 부리는 현장소장 역할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내려가는 데 사나흘 걸리는 히말라야 자락에 온갖 건축 자재를 끌어올리는 일만도 보통이 아니다. 중장비도 없이 학교를 짓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비정부기구(NGO)들도 제대로 된 학교 하나 짓기가 힘들어 포기하곤 했다. 충북 제천에서 목조주택 사업을 하다 지난해 3월부터 네팔에 눌러앉은 홍씨와 전화,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거텀부타 마을의 상황은. -기공식과 함께 문을 연 진료캠프에 500여명이 찾아왔고 의류와 문구, 가방 등을 선물받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학교 건물조차 제대로 없는 이곳에 커뮤니티홀을 포함해 10개의 교실이 들어선다는 생각에 온 마을이 들떠 있다. 본격적인 공사는 오는 24일쯤 시작한다. →어떻게 재단 일을 맡게 됐나. -지난해 3월 말에 엄 대장이 첫 학교로 짓던 팡보체 휴먼스쿨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왔다. 일을 맡았던 선교사가 재단과 갈등을 빚었고 준공이 임박했는데도 공사에 진척이 없어 급하게 내가 투입됐다. 한달 반 현지인들을 독려해 공사를 마친 뒤 6월 중순에 귀국해 다시 본업에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고 해 네팔에 돌아왔다.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텐데. -40대 초반은 사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리를 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2000년 에베레스트, 2003년 로체샤르를 함께 등정했던 엄 대장과의 인연이 소중하고 오지에 학교를 짓는 사업이 보람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2~3년은 고생할 생각이다. →왜 첫 휴먼스쿨이 팡보체에 들어섰나. -엄 대장이 첫 학교의 터로 이곳을 잡은 것은 1986년에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세상을 떠난 셰르파 술딤 도로지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 수많은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찾는 쿰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며 해발고도 4060m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보람으로 여기는 건 두 번째 타루프학교겠다. -구입한 자재를 현장에 올리는 데도 위험한 산길로 3시간여를 곡예하듯 가야 하고 우기에는 거의 매일 장대비가 2~3번씩 내리는 데다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주민들은 우기가 끝날 때까지 보수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꿈만 같다. →학교 짓는 데 얼마나 공력이 드나. -자재를 수송하는 데 전체 공사비의 절반이 들 정도다. 인력으로만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기 한달 반 동안은 공사를 못 하고 네팔 명절에는 15일 정도 쉬어야 한다. 돈도 많이 들지만 모든 분들의 마음을 모아 이곳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학교를 세우고 있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네팔말을 전혀 몰라 손짓 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화물차가 오도 가도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트럭을 움직이려고 싣고 가던 모래를 길에 뿌리며 도착하면 모래가 반밖에 남지 않은 일도 여러 번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주민들과 협상도 했는데 한국에서 이 정도로 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거란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재단에선 학교만 짓고 운영에 간여하지 않는 건가. -학교를 지어 주었다고 학교 운영이나 교사 배치 등에 간여할 수 없고 간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부 자체가 선의의 일이지만 기득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팔만의 운영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되 학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교사나 의약품 지원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지원이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지인은. -자기네 학교가 지어진다는 생각에 쉬는 날 현장에 나와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고 벽돌 내리는 일도 함께 했던 아이들이다. 주민들도 호박, 감자 등 반찬거리를 가져다주었다. 성심껏 서로를 대하면 나라와 피부색, 언어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가족과는 어떻게 지내나. -충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큰아이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해 굉장히 미안했다. 가족들이 지금 하는 일을 많이 응원해 줘 힘이 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구제역 후폭풍 위기의 축산농] “종돈값 폭등·이웃들 반대… 돼지 다시 기를 수 있을지…”

    [구제역 후폭풍 위기의 축산농] “종돈값 폭등·이웃들 반대… 돼지 다시 기를 수 있을지…”

    7만 4900㎡의 터에 7개 농가의 축사가 들어선 곳인데 적막감만 흘렀다. 4개월 전만 해도 돼지 1만 6000마리의 울음소리가 가득했을 곳인데 개 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이동 제한이 풀려 다시 삶의 터전을 찾은 농장주들이 굴착기로 마당을 정리하거나 돈사를 청소하고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있었다. 직원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내보낸 뒤라서인지 대부분 주인 부부가 일하고 있었다. 농장주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돌려 버렸다.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 A 농장주는 들머리에 들어서는 기자에게 손사래부터 쳤다. “나가라고 했잖아요!” 경북 안동시 와룡면의 S축산단지. 구제역의 첫 발생지로 알려진 곳이라 농장주들의 쌀쌀한 반응은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심했다. 지친 표정이 역력한 B 농장주는 “재입식 준비는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재입식은 돈사에 가축을 다시 들이는 일인데 농장주들은 50%만 지급된 매몰 보상금 때문에 재입식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으로 씨수퇘지(種豚) 90만 마리 가운데 30만 마리가 매몰되면서 50만~60만원 하던 가격이 90만원까지 올라 나머지 보상금을 손에 쥐더라도 전에 키우던 돼지 숫자를 채우기 어렵게 됐다. 모돈(母豚·새끼를 낳은 경험이 있는 돼지)과 후보돈(새끼를 처음 낳게 될 100㎏급 암퇘지) 역시 구제역 이전의 곱절인 100만원까지 올라 농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C 농장주는 “수십년 가꿔 온 재산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정부는 외면하고 이웃들은 손가락질하고….”라면서 혀를 찼다. 이웃 서현리 주민들이 연판장을 돌려 이참에 단지를 폐쇄하라고 안동시에 압력을 넣고 있어서다. 시에선 60억~70억원을 들여 매입한 뒤 단지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밝혔지만 농장주들은 가구당 6억~7억원 갖고는 “턱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시 관계자와 농장주들은 지난달 말에 만났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 그 뒤 아무런 접촉도 없었다고 했다. 서현리 주민들은 “냄새가 나고 파리떼가 들끓어 불편을 겪고 있다. 또 4㎞밖에 떨어지지 않은 안동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양돈단지를 폐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 농장주는 “여기도 먹을 게 천지인데 왜 마을까지 날아가겠나? 늘 서풍이 불어 냄새가 날아가지도 않는다.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화를 냈다. 재입식을 막겠다는 데 대해서도 “대한민국에 법도 없는가?”라고 쏘아붙였다. 서현축산단지에서 35㎞ 떨어진 영주시 갈산리 S양돈단지도 마찬가지다. 1만 3000마리가 매몰 처분됐다. 농장장은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안 돼요.”란 말만 10여 차례 되풀이했다. 이웃 주민들은 “집회를 열어 재입식을 막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10㎞쯤 떨어진 곳에서 개인 농장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돈사는 정리했지만 재입식 결심은 못 했다. 올해는 쉬고 내년 봄에나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움직임에 적잖이 신경을 쓰는 눈치다. 구제역 피해를 본 도처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5일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16개 마을의 주민들은 돼지 3만 7000마리를 매몰 처분한 S영농조합의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안흥면 번영회는 “영농조합이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는 데다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로 불편함이 가중될 것”이라며 재입식을 막겠다고 했다.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에서 다담농장을 운영하는 정태봉씨는 돈사를 청소하고 안팎의 바닥에 석회 가루를 뿌려 재입식 준비를 마쳤다. 양돈협회 원주지부장이기도 한 정씨는 “강원도에서 재입식 신청은 2건뿐이고 원주에선 1건도 없다.”면서 “경기도 이천에선 먼지까지 지적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하지만 불합격해도 다른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 먼저 받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검사 합격 뒤 30일을 기다렸다가 재입식해야 하는 규정도 문제다. 이미 구제역이 사상 최악의 피해를 준 마당에 뭘 또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동·영주·원주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구제역 위기 끝나지 않았다

    구제역 위기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잘하셨는데 앞으로 더 잘하시겠죠?” 경기도 가축위생연구소의 신영호 방역관은 돼지 혈청과 항원 채취를 마친 뒤 농장주 박호근(56)씨에게 철저한 위생 관리와 방역을 당부했다. 17일 오후 신 방역관이 포천시 창수면 추동리 박씨의 돈사 9곳에서 채취한 혈청과 분뇨 시료에서 구제역 항원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이동 제한 조치는 풀린다. 박씨는 물론 종돈 분양을 신청한 양돈 농가들이 목 빼고 기다리는 ‘그날’이 오는 것이다. 구제역 때문에 전국에서 돼지 330만 마리, 소 15만 마리가 살처분·매몰됐다. 소는 사육 마릿수의 4.5%에 그쳤지만 돼지는 33.6%가 당국의 미흡한 대처 탓에 땅에 묻혔다. 그러고도 구제역 위기는 진행형이다. 경보 단계를 ‘심각’(3개 시·도 이상 확산)에서 ‘경계’(확산)로 낮춘 지 닷새 만인 17일 경북 영천에서 구제역이 재발했다. 엄청난 타격을 입은 양돈 농가들은 보상금 미지급, 이웃 주민들의 반대, 종돈값 급등 등에 재입식(가축을 다시 축사에 들이는 일) 계획조차 잡지 못해 한숨을 내쉬고 있다. 효과도 없이 지나치게 경직된 사후 방역 조치도 농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소 사육 농가도 급락한 소고기값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다. 이런 상황에 농림수산식품부는 소와 돼지의 자급률을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박씨의 농장엔 희망이 싹트고 있다. 그 싹은 돼지의 절반이라도 구제역으로부터 지켜냈기에 가능했다. 사육 돼지의 80%를 살처분해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경기도, 그중에서도 한수 이북의 양돈 농가는 90% 이상 살처분하는 궤멸 수준이었다. 돼지 26만마리가 사육되던 포천시의 살처분율도 90%였다. 종돈장을 운영하는 박씨는 2000마리 가운데 1000마리를 땅에 묻었다. 불과 100m 떨어진 이웃 농장에선 돼지를 모두 살처분했고, 포천의 민간 종돈장 6곳 중 유일하게 종돈을 건져낸 곳이 박씨 농장이었다. 돈사의 환기·온도 조절, 사료 공급을 자동화하고 평소 꼼꼼한 위생 사육 원칙을 고집했기에 다른 농장에 보내지는 종돈을 지켜낼 수 있었다. 구제역 이후 축산 방향이 어떻게 가야 할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박씨 역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못했다. 50%밖에 받지 못한 보상금으론 재기가 힘든 데다 정부가 종돈 수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 박씨는 “값이 많이 오른 종돈을 들여오고 생활자금도 조달해야 하고 시설 현대화 자금도 마련하려면 최소 1억원의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정부가 축산을 경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박씨는 “정부가 국제무역 원칙과 경제 논리를 들어 축산과 농업에서 손을 떼려고 하는데 그래서야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식량 자급이나 안보를 지켜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포천 임병선기자·김상인PD bsnim@seoul.co.kr
  • “방사능 풍문 따른 휴교, 무지의 소치”

    “방사능 풍문 따른 휴교, 무지의 소치”

    “교육감님에게 전화라도 걸까 싶었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추적추적 ‘방사능비’가 내린 7일 오전, 서울 한양대 공과대학에 있는 서울지방방사능측정소에서 만난 이재기(61)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방사능 피폭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는데도 여전히 불안 심리가 가시지 않아 문제”라며 이날 경기도교육청이 재량휴교 공문을 돌린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개탄했다. 이 교수는 세계에서 12명 밖에 없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유일한 한국인 위원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회 있을 때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재량휴교령까지 내렸다. 과학자로서 답답하지 않은지. -유의할 만한 위험이 있으면 재량권에 따라 학생 보호를 위해 그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기회있을 때마다 후쿠시마 원전과 1000~1100㎞ 떨어져 있고 어떤 경우에도 국민들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비행기로 10시간만 이동해도 우주방사선 때문에 0.2mSv 피폭량이 는다. 그런데 이번 일본 원전사태로 국민들이 피폭될 것으로 추정되는 방사선량이 연간 0.1mSv다. 그런 미미한 수준인데 국민들은 점점 더 위험한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과민반응이다. 풍문만 갖고 휴교하는 건 학생들로 하여금 ‘정말 위험하구나.’ 인식하게 한다. →방사성물질이 몸에 묻어도 샴푸나 비누로 깨끗이 씻긴다고 했는데. -오늘 비에는 방사능뿐만 아니라 황사 성분도 들어가니 당연히 샤워해야 한다. 옷이 비에 젖거나 피부에 닿았더라도 방사능 피폭을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워낙 의미 없는 농도이기 때문에 샤워하면 방사성물질은 전부 제거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수습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판단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근거로. -원자로가 정지되고 나면 핵분열은 나지 않는다. 이제 방사능 에너지가 잔류열인데, 잔류열이 원자로가 바로 서고 난 뒤에는 정상 출력의 6.6%가 된다. 후쿠시마 원전은 200만㎾짜리인데 6.6%면 13만㎾ 정도 된다. 이 정도면 꽤 많은 열이다. 라면 끓이는 전기 히터가 보통 2㎾이니 그런 게 6만개가 들어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식혀줘야 하는데 그걸 못해 핵연료가 녹는 건데, 이번처럼 발전소 정전 사태가 발생하면 진행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사실은 며칠 안 가서, 얼마 못 가서 원전이 ‘붕괴’되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천천히 진행됐다. 거진 한달이 다 돼가는데 그 열이 점점 준다. 하루 지나면 그 열이 10분의 1로 준다. 원래 6.6%였던 게 0.8% 줄고, 그 다음에는 더 천천히 준다. 현재 원자로에 남아있는 열이 5000㎾ 정도 될 것이다. 초기에 비해 엄청 준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로 바닥이 녹고, 압력 용기가 녹아 밑으로 뚫고 들어가는 그런 심각한 사고가 일어나려면 벌써 일어났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일이 초기에 일어나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그리고 이미 원자로 내에 물이 들어갔다. 들어갔으니까 더이상은…. 물론 경계하는 것은 물이 없을 때는 괜찮았는데 물이 들어갔기 때문에 수소폭발처럼 다시 수소가 발생하고 또 어떤 2차 폭발이 있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데. 일단은 원자로 속에 물이 들어가 있고. 물론 핵연료가 녹아있고 부서져 있겠지만 일단 그런 것들을 덮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온도가 올라가지 않고, 또 수소를 발생시키려면 1200도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것 같고. 특별하게 더 악화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환경에서 나오는 방사능도 줄어든 형태이고,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식품 방사선 기준이 일관되지 않고 샘물 기준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산물이 오염됐을 때 어느 정도까지 소비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비상시에 적용하는 기준이 있다. 일본은 다행히 국토 일부만 오염됐지만 재수가 없었으면 국토 전체가 오염될 수 있었다. 방사능 농도가 조금 높더라도 위험을 조금 더 감수하고라도 식품을 소비해야 하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비상시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영향을 받지만 비상시라고 보지는 않으므로 여전히 평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식품 기준은 식품의약청 기준이 있고 국제 협약으로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이 있다. CODEX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만들었는데 유럽 국가들이 방사능 날아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지고, 상대적으로 더 오염된 나라에서 자란 농산물을 다른 나라들이 수입 안하려는 것이었다. 실제 영향은 미미한데도 방사능 조금만 검출되면 수입 안하겠다, 이렇게 되니까 무역 분쟁이 생겼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미리 국제적으로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보다 낮으면 무역 거부를 할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아직까지는 권고로만 돼 있다.국제 협약이라는게 국가마다 이해하는 것이 다르니까, 체르노빌 영향 때문에 토지가 더 오염된 나라는 기준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려고 할 것이고, 오염이 덜 된 나라는 더 낮추려 할 것이고…. 서로 합의가 잘 안 돼 강제 규정이라기보다 그냥 권고 수준으로 돼 있는, 그런 의미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일본 사고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CODEX 기준에 맟추고 하는, 그런 기준은 전혀 안되니까 문제는 없다. 다만 이제 일본에서 수입되는 농·수산물이 오염된 것이 들어올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럴 가능성은 있다. 당연히 일본도 자국민 보호를 위해 이미 오염이 심한 지역의 농·수산물은 반출을 금지시켰다. 마찬가지로 원자로 자체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면 전국의 토지 오염도를 다 조사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느 수준 이상이 되는 지역에서는 무조건 경작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 방법들이 있다. 세슘은 토양에다 칼슘 같은 것, 석회석을 많이 뿌려주면 칼슘하고 세슘은 화학적으로 성질이 비슷하니까 토양 속에 칼슘이 많아지고, 어차피 식물은 칼슘이나 세슘 모두 필요한데 많이 빨아들이면 세슘의 농도가 약해진다. 희석 효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세슘에 토양이 오염되더라도 농산물의 방사능은 많이 줄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기준치 이하로 내려갈 수 있고. 그런 것은 일본이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을 세울 것이다. 어류들이 동해로, 남해로 들어오고 오염된 수산물이 잡힐 수도 있지 않나 이런 건 수산하시는 분들이 어류 이동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장기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직은 바다로 나간 방사능이 꽤 되긴 하지만 넓은 범위까지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라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좁은 해역은 어차피 어업이 제한될 것이고 그밖에 영역의 어류들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식약청 기준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비상시 기준이다. 비상시 기준이라 조금 높고 CODEX 기준과 비슷하다. 하나가 먹는샘물이라고 돼있지 않고 염지하수라고 돼있다. 이번에 알게 됐는데 만든 배경을 살펴보니 제주도에서 식수가 모자라니까 관정을 해서 지하수를 퍼서 쓰는데 바닷물이 들어와서 염분이 많이 있는데 그 물에만 적용되는 기준이라고 하더라. 제주도 지하수에만 해당되고 육지 지하수에는 특별한 기준이 아직 없는 셈이다. 제주도 지하수에만 적용하는 기준이라 해도 너무 턱없이 낮다. 왜 그렇게 낮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왕 말이 나왔을때 유관 부처들이 다시 검토를 해서 정립을 하는 것이, 그러니까 평시 기준과 비상시 기준을 맞춰서 정립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한 것이다. →어제(6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국내 방사선 영향’) 토론회에서 일본과 2005년 방사선 비상 진료 합의회의에서 약속한 바를 일본이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종순 인제대 의대 핵의학과 교수가 지적했는데 민간기관끼리의 양해각서(MOU)니까 지바현에 있는 기관 NIRS와 한국 방사선보건연구원의 문제이고 그걸 왜 안했느냐고 하는 것은 글쎄, 의무는 아니라고 본다. 심각한 사고가 나면 IAEA 협약에 따라 즉각 해당 국가에 통보를 강제할 수 있게 돼 있다. 두 기관이 앞으로 관계를 끌고 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적어도 정부간 채널은 아니다. →우리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나. -관점에 따라 다르다.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의 상황이 비상이 아니다. 매뉴얼대로 하면 되고 정부가 별로 할 일이 없다.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까 측정 주기도 15분에서 5분으로 단축하고 일주일에 한 번 하던 공기필터 교체는 매일 하는 등 감시 활동을 증가시키고 바로바로 알리는 활동 정도는 해야 한다. 더이상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할 일은 없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업무를 떠넘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모든 걸 KINS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식으로 불똥 튈까봐 너무 염려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정부는 비상상황이 아니고 원래 국가방사선방재계획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그렇게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다. →청와대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로 한 것도 ‘헛소동’이라고 보는 건가. -과민반응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사태에 맞춰 대응해야지. 실태는 요만큼인데 이렇게 키워서 대응하면 많은 자원이 낭비되는 일이 나중에 돌아보면 일어나지 않는가. 체르노빌 사고때 독일이 원래 반핵 기질이 강하지 않은가. 방사능이 날아온다고 하니까 정말 난리가 났다. 국토도 일부 오염됐지만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한 1986년 한해에 독일인들이 평균적으로 더 피폭된 방사선량이 0.2msv로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워낙 시끄럽고 하니까 옛서독의 임신중절 건수가 전년보다 4000건이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사실 단 한 명도 방사선 때문에 죽지 않았는데 풍문만 믿고 공포심에 소중한 아이들 4000명이 희생된 것이다. 후쿠시마와 우리가 1000~1100㎞ 떨어져 있고 옛서독과 체르노빌 거리가 비슷하고, 그런 과거의 경험이 가장 좋은 실험이 된 셈이며,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아는데 너무 펄쩍펄쩍 뛸 이유가 없다. →일본이 이번에 축적한 원전사고 대응의 노하우를 우리가 어떻게 전달받고 공유해야 하는지 중요한 과제가 된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노하우라고 특별하게 숨길 정보라고 보지 않는다. 일본은 기록문화가 뛰어난 국가니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주 좋은 보고서가 나올 것이다. 정말 배워야 할 교훈,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교훈을 우리 원자력발전소를 안전하게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체르노빌 사고 때는 워낙 우리 원자로 노형과 다르기 때문에 고쳐야 할 점이 많이 없었는데 스리마일 사고 때는 우리 발전소에 굉장히 많이 소급적용을 해서 문제점을 바로잡았다. 일본 발전소가 우리와 유형은 많이 다르지만 많은 공통점도 있으니까 많은 액션 플랜이 나올 것이니 우리 발전소에 필요한 것을 선별해서 조치할 것이다. →일본 정부나 일본인들이 자존심 때문에 (정보 공유를) 주저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 안전에 관해선 정보를 공유한다는 게 소위 패러다임이고 만약에 안하면 IAEA에서 압력을 가할 것이다. 더욱이 IAEA 사무총장이 일본인이니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글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인터뷰 동영상은 8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 “생명 못 구하고 시신 18구 수습에 그쳤지만…우리 노력이 한·일 우호 징검다리 되길”

    “생명 못 구하고 시신 18구 수습에 그쳤지만…우리 노력이 한·일 우호 징검다리 되길”

    “생존자를 한명이라도 구조했어야 했는데….” 동일본 대지진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가 가장 늦게 빠져나온 정부 긴급 구조단의 일원으로 지난 23일 귀국한 최종춘(43) 소방장<서울신문 3월 19일 자 3면>은 진한 아쉬움이 남은 듯했다. 이번에 파견된 105명의 구조대원 중 가장 많은 65명을 파견한 중앙119구조대 소속인 최 소방장은 25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해외 파견 13차례 만에 처음으로 군 수송기를 이용하고 귀국 후 종합검진을 받는 등 우리의 국제 구호 체계가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고 했다. 그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시신 18구밖에 수습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두 나라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의 노력이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5년 소방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최 소방장은 지난해 한 정유사가 주관한 최고 영웅 소방관으로 선정돼 ‘제야의 종’ 타종에 나서기도 했다. →23일 귀국해서도 집에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데. -지난해 아이티 대지진 이후 매뉴얼 얘기가 많았다. 성남공항에 도착해 방사선 검사를 받았지만 국립의료원으로 직행해 종합검진을 한 결과 괜찮다는 판정을 받고 밤 10시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해외 파견 13차례 만에 처음으로 군 수송기를 이용하고 귀국 후 종합검진을 받는 등 우리의 국제 구호 체계가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 3대의 군 수송기를 이용하느라 시간은 더 걸렸지만 많은 장비, 특히 현지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던 기름 등을 싣고 갈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현지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샤워는 물론 세수도 제대로 못 했다고 들었다. -13일 출국 허가가 떨어졌지만 14일 새벽에야 떠나 실제론 9박 10일을 머물렀다.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점심은 현장에서 줄만 당기면 데워지는 비상 식량으로 해결했고 아침, 저녁은 컵라면과 햇반으로 때웠다. 주민들이 세수할 물도 아끼는 것을 보고 차마 얼굴을 씻을 수 없어 가져간 물티슈 등으로 닦았고 양치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니가타 소방학교로 옮겨 간 7일째에야 처음 샤워를 했다. 10m가 넘는 쓰나미가 시속 600㎞ 속도로 휩쓴 지역이라 생존자가 버틸 최소한의 공간마저 없어 한명도 구조하지 못하고 시신 18구를 수습하는 데 그쳤다. 막대한 예산을 쓰고도 ‘그것밖에 못 했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국민들에게 면목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서울, 경기, 강원 등 지방 구조대 대원 40명 중 상당수가 해외 원정이 첫 경험이었는데 많이들 안타까워했다. →아이티 등 재난 현장을 많이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할 때 일본은. -지금까지 중국, 인도, 터키 등 우리보다 발전이 더딘 나라들을 다녀왔는데 처음으로 선진국을 경험했다. 그리고 105명이란 대규모 인원을 파견한 것도 처음이라 낯설었다. 이만한 인력과 장비, 물자를 안정적으로 동원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일본은 사유재산 개념이 확고해 폐허가 된 집이라도 주인 허락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 작업할 수 없었다. 차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입로를 열지 못해 복구가 더뎌지기도 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차츰 ‘일본 문화가 이렇구나.’ 인정하면서 경찰에 입회해 달라고 요청해 잔해를 수색하곤 했다. →일본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데. -시신 발굴 건수를 일절 알리지 말라고 외무성에서 심하게 압박했다. 국민들이 동요한다는 이유였다. 우리도 이를 유념하고 작업했다. 경찰이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한 센다이시 가모지구에서 가끔 마주친 일본인마다 우리를 보곤 두손을 모으며 ‘아리가토!’라고 인사했다. 정말 이따금 서투른 우리말로 고맙다고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도 시신을 인계하면서 경례하거나 일본식으로 두손 모아 예를 갖춰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귀국길에 들른 니가타 공항의 청사 창문에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쇄된 A4용지 여러 장이 붙어 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성남공항에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대사가 영접하러 나와 깜짝 놀랐고 자부심도 느꼈다. →26일 돌아올 예정이었다가 앞당긴 건 일본 요청에 따른 것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현지에서 하려던 일은 시신 수색보다 생존자 구조였다. 출발이 지연돼 적기를 놓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쓰나미 위력이 워낙 대단했던 터라 더 이상 구조에 희망을 걸 수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일본 정부와 협의해 돌아왔다. →가족들 걱정이 많았겠다. -첫날은 전화가 터지지 않았고 다음 날부터 전화가 터져 하루 한번, 저녁에 아내(김종희·40), 두 딸과 통화했다. 국내 언론이 일본보다 더 떠들썩했던 것 같다. 아내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시골 부모님들은 대단하셨다. 귀국 후 안부 전화만 드려 죄송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힙합 래퍼로 변신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힙합 래퍼로 변신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책 속에 파묻혀 지낸 40여년, 경제학과 법학 박사학위 타이틀에 무어 아쉬운 게 있을까. 더욱이 이순(耳順)이 멀지 않은 연배에, 자유시장 이념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작정한 김정호(55) 자유기업원 원장이 힙합 래퍼로 변신했다. 7년째 이 ‘액션 & 싱크 탱크’를 꾸려 오고 있는 그가 마이크를 잡고 리듬에 몸을 맡긴 이유가 궁금했다. 김 원장은 3일과 10일 두 차례 인터뷰에서 “딱딱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며 “미래 동력인 젊은이들이 사상적으로 방황하고 목표를 상실한 것 같아 이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심어줄 수단을 찾은 결과가 힙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변신 자체도 놀라움이지만 지난 1월 프로젝트그룹 ‘김 박사와 시인들’이 출시한 앨범에 담긴 3곡의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트로트계 ‘이 박사’가 힙합계의 ‘김 박사’로 현신했다고나 할까.‘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란 노래에는 ‘일자리를 달라고만 하니…공짜는 없어…독립문이 왜 서대문에 있는 줄 알아?…김정일은 벌써 북한 팔아먹어’ 등 신랄한 어조로 가득하다. 3분 50초 뮤직비디오에는 강의 도중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이내 힙합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손동작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차 안에선 리듬에 맞춰 손가락으로 ‘탭’(tab) 하고 어깨를 들썩인다. 김 원장은 “주요선진20개국(G20)에 안주하지 않고 G5로 진입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단순한 저항을 뛰어넘어 긍정적인 변화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 연세대, 중앙대, 숭실대에서 랩을 곁들여 2~3시간 강연했고 인터넷TV를 통해 ‘프리스타일 코리아’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유기업원부터 소개해 달라. -액션 & 싱크 탱크다. 보통 싱크 탱크라고 하는데 우리는 생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 담보하는 싱크 탱크라 보면 되겠다. →표방하는 바는. -한민족은 굉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본격 발휘된 것은 대한민국에 들어와서였다. 보통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이전에는 그다지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이걸 이어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최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우리도 고래가 되자, 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랩인가. -강연으로 전달하려니까 몇 사람 안 되고 강연 끝나면 다 잊어먹고 그렇더라. 국민들의 마음에 직접 다가가 행동을 이끌어 내려면 감성에 호소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노래가 좋겠다, 해보자 했는데 노래를 잘 못하니까 노래 못하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노래가 랩이었다. 리듬감만 있고 조금 용감하면 되겠다 싶었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랩을 한다면 관심을 많이 가질 것 같더라. 그런데 때마침 하드코어 랩으로 유명한 힙합 그룹 ‘거리의 시인들’ 리더 노현태씨가 도와주겠다고 나서 프로젝트 그룹까지 만들게 됐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 -2009년 5월 대학을 졸업한 딸이 ‘꿈꾸는 다락방’이란 책을 건네며 아빠가 꿈을 잃은 것 같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돌아보니 자유기업원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그저 목표 없이 떠돌았다는 성찰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했고 사회운동가로서 좌표를 다시 설정하게 됐다. 그 연장이 힙합인 것이다. →랩을 배우면서 재미있는 일 많았겠다. -힙합은 생각보다 빨리 배울 수 있어서 나도 놀랐고 젊은 친구들도 놀랐다. 지난 1월에 뮤직비디오를 18시간 걸려 촬영하는데 굉장히 추웠다. 바지를 갈아입을 일이 있었는데 젊은 친구들은 바지를 올리니까 바로 맨 다리가 드러나더라. 그런데 난 내복을 껴입고 있었다. 무지 창피했다. →주위의 반응은. -‘하던 일이나 잘하지.’ 하는 분들이 많다. 직원들도 ‘왜 저러나?’ 한다. →잘한 일이라고 보나.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본다. 힙합을 하면서 젊어졌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앨범 수록곡을 소개해 달라.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내용이다. 대한민국이 얼마든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챔피언 한국’은 대한민국이 우리의 국호이고 1948년에 건국돼 63년 동안 이만한 성과를 거뒀으며 이 대척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똥파리들’이란 곡에 거친 표현도 보이더라. -젊은이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꾸짖고 싶었다. 악플만 달고 있지 말고 국가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스펙만 쌓지 말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기업가 정신을 가져 달라고 주문했다. 사실 욕설에 가까운 내용도 있는데 원래 힙합이 욕설에서 시작한 것이다.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 그런 노래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래퍼가 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곡 모두 지상파 3사에서 계층 간 갈등 조장, 특정 정당 및 국가 언급 등을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반항과 저항은 청년들의 특권이다. 생물학적 특권이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런데 저항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느냐가 문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반대편, 우리의 반대편을 지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북한과 비슷해지는 것을 진보라고 오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나 중국 체제와 비슷하게 가는 것을 진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위험하다. 지금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데 이것이 이슬람 독재나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독재 비슷한 무엇을 꿈꾸고 있다면 진보가 아니다. →진보에 냉소하는 건가. -진정한 진보라면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고 북한 인민에게 자유를 주는 진보를 꿈꿔야 한다. 우리 사회도 완벽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가야 한다고 꿈꾸는 것이 진정한 진보다. 내가 돈을 벌어서 남을 돕고 기업을 만들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진보다. 그런데 남의 호주머니 털어 그걸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도둑질이다. 내가 변해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이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영국의 1940년대와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다. 지식 지형이 완전히 왼쪽으로 기울고 있다. 예전에 남로당 지원을 받던 좌파가 아니라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겨나고 그 여파로 ‘강남 좌파’란 말이 등장할 정도다. 이들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국가에 생떼를 쓰게 만들고 이도저도 안 통하면 짱돌을 들라고 가르친다. 어쩌자는 것인가. 심지어 기업도 우파 싱크탱크를 외면하고 좌파에 돈을 갖다 받치고 있다. 이런 사상 지평을 바꾸고 싶다. →트위터에 ‘우파 문선대’란 비아냥도 있더라. -그런 지위를 내게 부여해 준다면 영광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랩을 2~3분 들려주고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2~3시간짜리 강연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2017년까지 이런 활동을 계속할 것이며 언제든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왜 2017년인가. -차차기 대선이 실시되는데 그때까지 진정한 자유시장경제, 보수 이념을 표방하는 정권과 정부가 출범할 수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까지 진정한 보수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이 정부가 한번도 진정한 보수임을 표방하지 않았다. 늘 중도 보수라고 물을 타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잘못된 비판을 가하곤 한다.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먼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도 2009년 5월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기 두려워하고 게으름 피우다 밤늦게 잠들곤 했던 내가 이만큼 달라질 정도로 인간의 잠재력은 놀랍다. 여러분의 잠재력을 지금 살리고 있나? 아니면 ‘잠 재’우고 있나? 그건 여러분 태도에 달려 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를 묶은 ‘대한민국 이야기’(이영훈 지음)와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파헤친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박성현 지음)을 권한다. 임병선·강경윤기자 bsnim@seoul.co.kr ●김정호 원장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미국 일리노이대학 경제학 박사 취득 ▲2003년 숭실대 법학 박사 취득 ▲2009년 12월 인터넷방송국 ‘프리넷 뉴스’ 개국 ▲2004년~ 자유기업원 원장
  • “시신 한 구라도 더 찾아내는 게 아직 남아있는 이유”

    “시신 한 구라도 더 찾아내는 게 아직 남아있는 이유”

    방사능 유출 공포가 확산되면서 일반인들은 물론 외국 구조대원들마저 서둘러 귀국하는 가운데 쓰나미가 휩쓸고 간 피해현장에 남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긴급 구조단이다. 지난 12일부터 센다이에서 구조 활동을 벌여온 이들은 19일부터 니가타현으로 옮겨 2단계 구조 활동에 나선다. 18일 이동성(53) 긴급구조단장, 최종춘(44) 소방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지 구조 상황을 알아봤다. →센다이에서 구조대원들이 니가타현으로 철수하는데. -이 단장 19일부터 구조작업이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간다. 구조대원 105명 중 3분의1인 35명만 센다이에 남고, 나머지 70명은 니가타로 이동한다. 구조작업에서 복구작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타이완 구조대원은 서둘러 귀국했지만 최대한 오래 일본에 남아 이재민들의 재활까지 도울 생각이다. →현재까지 구조 활동은 어떻게 진행해 왔나. -최 소방장 미야기현 시아가마시 니하마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오전 6시에 현장에 와 오후 5시 야영 텐트로 돌아갈 때까지 일본 자위대가 1차로 수색을 마친 지역을 현지 경찰과 함께 돌고 있다. 대부분 출입이 완전히 통제돼 있어 일반인들을 만날 수 없지만 만나는 분들은 깊은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건넨다. →구조 작업 중 어려웠던 점은. -이 단장 구조 작업보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국내의 과도한 관심이 더욱 힘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구조하는 우리들은 대원들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작은 힘을 보탠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를 영웅시하면 귀국하지 못한다. -최 소방장 쓰나미가 완전히 휩쓸고 지나가서 진흙이 10㎝씩 쌓여 있다. 걸어다니는 데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가모지구는 예전의 지형이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수색하느라 힘이 배로 든다. →점심은 제때 챙기나. -최 소방장 줄만 당기면 데워지는 비상식량을 12일치 가져와 점심 때 먹고 아침에는 컵라면 등으로 때우고 있다. 어제(17일) 5일치를 더 공수해 왔다. →국내에서는 구조단 대원들을 많이 걱정한다. -최 소방장 매일 방사능 수치를 점검하고 있다. 0.2~0.3μ㏜가 나온다. 일상생활 수준이어서 계속 남기로 했다. 언제든 탈출할 수 있도록 보호복을 준비해 왔다. 보호복은 피폭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작업하려는 용도가 아니라 탈출용으로 입겠다는 것이다. 충분히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 임병선기자·도쿄 이종락특파원 bsnim@seoul.co.kr
  • ‘착한 가격’ 고집하는 ‘착한 맛집’

    ‘착한 가격’ 고집하는 ‘착한 맛집’

    “소주 반병 주세요.” 도심 한복판에 아직도 소주 반병을 마실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서울의 웬만한 음식점에서 소주 한병을 주문하면 3500~4000원을 내야 하는데 낙원동의 유진식당에서는 2000원, 맥주잔에 따라주는 ‘반병’은 1000원을 받는다. 18일 오후 7시 30분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살인적인 물가 인상에도 꿈쩍 않고 ‘착한 가격’을 고집하는 음식점들을 소개한다. 유진식당의 메뉴판은 지난해 3월 붙였는데 돼지수육 한 접시와 설렁탕, 돼지국밥이 모두 3000원씩이다. 보기 드물게 돼지비계 기름으로 부친 녹두 빈대떡 한 접시는 4000원을 받는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물가난에 근처 식당들도 메뉴판을 고쳐 붙였지만 문용춘(85) 사장은 “물가가 너무 올라 남는 게 전혀 없다.”면서도 “(돈) 없는 사람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재동에 있는 ‘거부’도 30여년 명성을 이어온 집이다. 광주에서 올라오는 소고기 생등심을 얼리지 않고 숙성시킨 뒤 쑹덩쑹덩 썰어 내놓는다. 생등심 1인분(200g)에 1년 반 전 가격인 1만 8000원을 받는다. 인테리어에 잔뜩 치성한 유명 가든보다 30%, 많게는 절반 가까이 싸다는 입소문이 퍼져 있어 가족 단위 손님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남정출(75) 사장은 “때가 때인 만큼 올리고 싶어도 모든 사람들이 어려운 것 같아서…. (식사하고) 흐뭇하게 나가시는 걸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고 흐뭇해한다. 남산동의 삼미옥은 청국장 맛으로 유명하다. 서울에서도 이제 5000원짜리 점심 식사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의 청국장과 김치찌개, 된장찌개 가격은 3년 전 그대로 5000원이다. 이진숙(55) 사장은 “요즘같이 어려운 형편에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근처) 회사 분들이 수십년 동안 오시기 때문에 가격을 못 올리고 있다.”고 울상을 짓는 척했다. 살인적인 물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 식당에서 손님들은 허기진 속을 채우는 것은 물론, 한 움큼의 따뜻한 마음을 품고 돌아간다. 이 밖에 ‘TV 쏙 서울신문’에서는 일본 대지진을 취재하고 돌아온 윤설영 기자의 ‘5박6일 후기’,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의 정미애 박사에게 듣는 ‘일본의 미래’, 한 트럭 운전사의 고달픈 일상, ‘4인4색 마티네’, 영상스케치 ‘증오와 관용 사이’ 등이 방영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한국민 온정에 감사… 반드시 보답할 것”

    “한국민 온정에 감사… 반드시 보답할 것”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가 17일 오후 본사를 찾아 동일본 대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일본 국민들에게 한국인이 보낸 배려와 온정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무토 대사는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을 만나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한국 국민들이 자신의 일처럼 챙겨주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언제든 말하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해 주셨다.”며 “이런 한국인의 온정과 배려에 감사 드리려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을 한국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선 것은 신문과 방송이 일본 사태를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이 따뜻한 감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일본인은 어려운 때 받은 다른 이의 도움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다.”며 일본 국민들이 한국인의 도움에 반드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토 대사는 특히 본지 14일 자 1면에 일본어 제목을 붙여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글을 실어준 데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동화 사장은 이에 대해 “큰 슬픔을 겪은 일본인들이 보여 준 희생과 질서 의식, 애국심,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은 한국인에게도 큰 감명을 줬다. 한국인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 문제 등으로 뒤틀려 있던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고 일본이 하루빨리 재난을 극복해 경제 대국 지위를 회복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日파견 구조견 2마리만 간 사연

    엄청난 재앙을 겪고 있는 일본을 돕기 위해 파견한 한국 구조대 규모, 특히 인명 구조견 숫자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2개팀 144명과 구조견 12마리, 독일이 43명과 구조견 3마리, 멕시코가 12명과 구조견 6마리, 프랑스가 100명을 보내는데 한국이 107명과 2마리를 파견한 것은 너무 적지 않으냐는 얘기다. 하지만 중앙119구조대가 보유하고 있는 구조견이 두 마리뿐이어서 더 보내려야 보낼 수가 없다. 오승훈 중앙119구조대 첨단팀장은 “9개 시·도가 따로 보유한 구조견은 15마리이지만 이들은 건강검진, 예방접종 등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아 해외에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관리, 운용해온 구조견은 36마리인데 19마리는 나이가 들거나 다쳐 퇴역했다. 모두 삼성생명 구조견센터(현재는 삼성 에버랜드로 이관)로부터 기증받았다. 보통 3~4년의 양성 훈련을 거친 공인견을 기증받아 훈련사(핸들러)와 1년 동안 1대1 매칭 훈련을 거쳐 10마리 중 2~3마리만 구조견 지위를 얻는다. 구조견 한 마리가 재해 현장에서 수색대원 2만명 역할을 한다는 얘기는 이런 엄격한 선발 과정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훈련된 구조견을 내놓는 데 4년 이상, 마리당 1억 5000만~2억원이 든다. 그런데 경찰견, 마약탐지견, 폭발물탐지견 등이 경찰, 관세청, 군 전담센터 등을 통해 길러지는 것과 달리 소중한 인명을 구하는 구조견 양성은 민간기업에만 손을 벌려 왔다. 그나마 지난해 10월부터 에버랜드가 시각장애인 인도견 양성에만 전념하겠다며 무상 기증을 중단함에 따라 중앙119구조대는 훈련 시설과 견사 등을 구축해야 했지만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 이에 따라 이달 말에야 훈련사 4명을 채용하고 에버랜드로부터 기증을 약속받은 11마리를 뒤늦게 넘겨받아 훈련에 들어갈 계획이다. 오 팀장은 “올해는 우선 가장 자질이 뛰어난 4마리를 집중 훈련시키고 순차적으로 구조견 투입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기꺼이 돕는다며 달랑 구조견 두 마리 보낸 이유

    “이왕 도울 거라면 팍팍 도왔으면 좋겠다. 실력 최고라는 우리나라 구조대도, 구조견도 많이 보내고.”  한 트위터 이용자가 14일 오전에 올린 글이다. 엄청난 참극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돕기 위해 파견한 구조대 규모, 특히 인명 구조견 숫자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인터넷에서 말들이 적지 않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2개팀 144명과 구조견 12마리, 독일은 43명과 구조견 3마리, 멕시코는 12명과 구조견 6마리, 프랑스는 100명을 파견하기로 했는데 가장 가까운 한국이 107명과 2마리를 파견한 것은 너무 적지 않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중앙119구조대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구조견은 2마리뿐이어서 더 보내려야 보낼 수가 없다. 오승훈 중앙119구조대 첨단팀장은 “9개 시·도가 따로 보유한 구조견은 15마리이지만 이들은 상시적으로 건강 검진, 예방 접종 등 사전 준비가 돼 있지 않아 해외에 파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98년부터 전국에서 관리, 운용하는 구조견은 36마리. 모두 삼성생명 구조견센터(현재는 삼성 에버랜드로 이관)로부터 기증받아 재난 현장에 투입해 왔다. 보통 3~4년의 양성 훈련을 거친 공인견을 기증받아 훈련사(핸들러)와 1년 동안 1대1 매칭 훈련을 거쳐 10마리 중 2~3마리만 구조견 지위를 얻는다. 구조견 한 마리가 실종·조난 현장에서 수색대원 2만명 역할을 한다는 얘기는 이런 엄격한 선발 과정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훈련된 구조견을 내놓는 데 4년 이상이 걸리고 마리당 1억 5000만~2억원이 든다.  그런데 경찰견, 마약탐지견, 폭발물탐지견 등이 경찰, 관세청, 군 전담센터 등을 통해 길러지는 것과 달리 소중한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구조견 양성은 민간기업에만 손을 벌려왔던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10월부터 에버랜드가 시각장애인 인도견 양성에만 전념하고 무상 기증을 끊기로 해 중앙119구조대는 훈련 시설과 견사 등을 구축해야 했지만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아 늦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말에야 훈련사 4명을 채용하고 에버랜드로부터 11마리를 마지막으로 기증받아 본격적인 매칭 훈련에 들어갈 계획이다.  오 팀장은 “공인견의 훈련 정도에 따라 현장 투입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며 “올해는 우선 가장 자질이 뛰어난 4마리를 집중 훈련하고 순차적으로 구조견을 현장에 추가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람도 공격하는 ‘괴물 메기’ 인도마을 공포

    사람도 공격하는 ‘괴물 메기’ 인도마을 공포

    성인남성의 키를 넘는 거대한 몸으로 인도마을을 공포에 떨게 한 ‘괴물 메기’가 공개됐다. 미국의 자연다큐멘터리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은 오는 4월 방송되는 ‘강의 괴물’(River Monsters) 편에서 인도의 거대 메기 ‘군츠’(Goonch)를 소개한다. 지구촌 오지에서 거대하고 특이한 물고기를 찾아다니는 생물학자 겸 베테랑 낚시꾼 제레미 웨이드(54)는 수년 전 인도 북쪽지방 칼리 강에서 성인 남성 3명이 들 정도의 거대한 괴물 메기의 실체를 확인했다. 웨이드는 미끼를 건 낚싯대로 메기를 유인한 후 몸을 날려 군츠를 낚았으며,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익사할 뻔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물밖에서 확인한 메기의 정확한 크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성인키를 넘을 정도였다. 방송에 따르면 근처 마을에는 메기에 희생당한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군츠를 두려워 해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다큐멘터리에서 괴물메기 외에도 지난해 10월 아프리카 콩고강에서 잡은 ‘타이거 피시’(Tiger Fish) 등도 소개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트위터(http://twitter.com/newsluv)   
  • NYPD 헬기가 촬영한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모습

     미국 뉴욕경찰청(NYPD) 소속 헬리콥터에서 지난 2001년 9·11 테러 당시 촬영한 세계무역센터(WTC) 주변의 끔찍했던 상황이 7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고커(Gawker) 닷컴에 따르면 국립표준기술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17분 분량의 이 동영상 공개를 요청한 상태였는데 누군가가 기밀 공유 사이트 ‘크립톰(Cryptome)’에 이 동영상을 게재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10년이 지난 필름이어서인지 동영상의 음질과 화질이 좋지 않아 시청하기에 다소 불편이 따른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새음반]

    ●디퍼런트 기어, 스틸 스피딩(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갤러거 형제의 불화로 영국의 슈퍼밴드 오아시스는 2년 전 해체됐다. 동생 리암이 오아시스에서 함께했던 앤디 밸(베이스), 겜 아처(기타) 등과 ‘비디 아이’(BEADY EYE)란 밴드를 결성했다. ‘다른 장비를 가지고 여전히 속도를 낸다’는 앨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오아시스 팬이라면 기대해도 좋다. 오는 5월 15일 내한공연이 확정됐다. 소니뮤직. ●미션 벨(Misson Bell) ‘기가 막히게 섹시한 남부 포크뮤직 보이스’란 평가를 받는 블루노트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에이모스 리가 3년 만에 4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빌보드와 아이튠즈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사랑하는 여인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곁을 떠났다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윈도스 아 롤드 다운’(Windows Are Rolled Down) 등 서정성이 돋보인다. 워너뮤직. ●해빗(Habits) 2005년 밴드 결성 이후 킬러스의 북미 투어 오프닝 밴드로 공연하면서 주로 인디 신에서 활약했던 네온트리스의 데뷔 앨범이다. 첫 싱글 ‘애니멀’(Animal)은 빌보드 싱글차트 13위, 얼터너티브차트 1위를 차지했다. 거친 질감의 개러지 록(1960~70년대 느낌의 영국풍 음악)과 뉴웨이브의 결합이 돋보인다. 유니버설뮤직.
  •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출입처가 없어지니… /임병선 영상콘텐츠부 부장급

    손톱 밑의 검은 때가 모든 것을 말해줬다. 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서울 종로의 커피점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노숙인 생활을 그만둔 지 반년쯤 된 그에게 빵 한 조각과 커피를 대접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였다. 그가 아침 일찍 거리에 나와 종종걸음치는 직장인들에게 노숙인 자활 잡지를 사달라고 1시간 30분이나 외친 뒤였다. 기자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외모. 그런데 조심스레 물어 보니 아홉살 아래란다. 삶의 굴곡이 얼굴에 잔뜩 생채기를 남긴 듯했다. 삿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초리에 언뜻 천진난만함이 깃들던 순간들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달이 바뀔 때면 새로 나온 잡지를 들고 거리에서 목멘 외침을 늘어놓을 그를 그리워하게 됐다. 기자는 서울신문 편집국 소속이지만 방송 일을 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이란 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21년 전 입사했을 때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시작한 지 9개월이 됐고 4일 저녁 40회분이 방영된다. 여전히 촬영 현장에 나가면 “서울신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웬 동영상 카메라?”라면서 당황하는 취재원들을 본다. 조금만 설명하면 취재원들도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신문 동네가 영 신통치 않으니 곁방살이에 힘겹겠구나 하는 동정도 읽힌다. 기자 또래보다 방송과 영상 전달 방식에 훨씬 친숙할 후배들마저 지면 일과 방송 제작을 병행하느라 벅차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기자들을 괴롭혀 가며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주 1회, 한 주가 끝날 무렵에 방송을 내보내다 보니 피할 것도 많고 조심스러운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꾸리다 보니 지상파나 기존 보도전문 채널에서 제공하는 뉴스보다 여러 모로 손방이다. 그런 속에서 조그만 위안과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장삼이사(張三李四)와의 만남이다. 출입처에 매인 처지였다면 결코 만나기 쉽지 않았을 이들에게서 진한 사람 냄새를 맡고 있다.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의 쪽방촌에도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정말 1980년대 달동네로 시간이동한 것 같았다. 두 손자를 건사하며 힘든 나날을 잇고 있는 할머니를 인터뷰했고, 그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평화의 집’을 찾았다. 25년째 그곳에서 자원봉사하는 안정자씨는 병을 얻어 “이대로는 죽겠다싶어” 구로구 개봉동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말이 이사지 실은 피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내 어르신들이 전화로 찾아대는 통에 왕복 3시간의 버스 출퇴근을 3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행복감을 쉬 잊지 못한다. 이 시설을 세우고도 그 흔한 사진 한장 걸어놓지 않고 한달에 한번 신용카드를 건네며 “어르신들께 맛난 것 만들어드리게 마음껏 장을 봐라.”고 당부한다는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잊기 어렵다. 임 교수는 이따금 이곳을 찾을 뿐 언론에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겸손함으로도 커다란 존경을 얻고 있다. 노숙인들의 ‘큰형님’ 이명식 중랑구청 주무관이 동상 자국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노숙인 발을 어루만지는 모습은 또 어떤가. 후배 PD가 촬영한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출입처 칸막이 안이라면 과연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그렇게 평범한 이웃의 고단한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과거 출입처에서 만났던 취재원들이 참 재미없었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펜이나 컴퓨터 자판 대신 마이크를 잡다 보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됐다. 일전에 편집국 제작회의에서 많이 부족한 우리 프로그램 이름을 들먹이며 “많은 시청 바랍니다.”라고 말해 실소를 산 일도 있다. 감히 독자 여러분께 같은 말씀을 여쭌다. bsnim@seoul.co.kr
  • 日, 봉 잡아당긴 채 40년8개월···기네스 신청

     일본의 한 연구실이 원통형 강재(鋼材)를 잡아당긴 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측정하는 실험을 1만4천853일(약 40년8개월)째 계속해 ‘세계 최장 기간 실험’으로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했다고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이 28일 보도했다.  화제의 연구실은 일본 물질.재료연구기구(NIMS)의 도쿄 메구로(目黑)구에 있는 실험실이다.  실험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당시는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로 건설 붐이 일었지만,기초 자료가 부족한 일본제 대신 미국이나 유럽에서 강재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NIMS의 전신인 금속재료기술연구소는 이를 극복하고자 장기간 고온에서 강재에 인장 하중을 가하는 ‘크리프 시험(creep test)’에 착수했다.발전소나 석유정제시설 등 가혹한 환경에서 강재를 쓰려면 이 실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험 내용은 지름 1㎝,길이 5㎝의 탄소강 봉의 한쪽을 고정해놓고 전기로에서 400도로 가열한 뒤 다른 한쪽을 약 2천360㎏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것이다.  기록을 세운 봉은 1969년 6월19일에 실험을 시작했다.1974∼1975년 1년간 실험에 쓰는 전기로를 바꾸려고 중단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27일 실험 기간이 1만4천853일에 이르러 독일 지멘스사가 2000년에 달성한 종전 최장 기록인 35만6천463시간(1만4천852일 15시간)을 넘어섰다.  이 봉은 40년 이상 이어진 실험의 결과로 2.7㎜ 길어졌다.NIMS 홍보실장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전체 길이(5㎝) 중 늘어난 부분이 차지하는 비율(5.4%)이 중요한데 이 정도면 무척 작은 셈”이라며 “이대로 50년 더 놔둬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적으로 30만 시간 이상 실험한 사례는 18건 있는데 이미 중단된 10건을 제외한 8건은 모두 NIMS의 메구로 실험실에서 하고 있다.끈질긴 실험의 결과로 일본의 화력발전소 설계 기준이 바뀌었고,미량 금속을 혼합하면 수명이 약 1천 배로 늘어난다는 사실도 입증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의 ‘예산재분배’의 결과로 메구로 실험실은 조만간 문을 닫는다.이에 따라 약 2년간 실험을 중단했다가 규모를 줄여 NIMS 본부가 있는 이바라키(茨城)현 쓰쿠바시에서 재개할 예정이다.수명이 더 긴 원자력 발전소 재료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다.  실험 책임자인 기무라 가즈히로(木村一弘)씨는 “이 실험은 신뢰성이 높은 일본 기술의 상징”이라며 “누구도 깰 수 없는 기록을 수립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연합뉴스
  • 17명 사람 잡아먹은 ‘식인 괴물 코끼리’ 충격

    17명 사람 잡아먹은 ‘식인 괴물 코끼리’ 충격

    인도 동부 서벵골의 한 마을에서 코끼리가 주민들을 잡아먹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1일(미국시간) 방송된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의 다큐멘터리 ‘세계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마을; 식인 코끼리’는 문제의 코끼리가 주민 17명을 잡아먹은 뒤 사살된 공포스럽고 안타까운 사건을 조명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 농촌마을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야생 코끼리들이 종종 출현하는 곳. 힌두교에선 가네사(코끼리신)가 존재할 정도로 코끼리는 성스러운 동물로 추앙받지만, 논밭을 망치는 등 피해를 끼치는 코끼리들은 골칫덩이가 된 지 오래였다. 마을주민들은 고민 끝에 사냥용 총으로 코끼리들을 마을에서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어미 코끼리 한 마리가 사살됐는데, 놀랍게도 부검을 해보니 사람을 잡아먹은 흔적이 발견됐다. 코끼리 위에 아직 소화되지 않은 17명의 DNA가 검출된 것. 동물학자 데이브 살머니는 “이상기후와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먹잇감이 인간들을 공격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일부 마을 사람들은 문제의 어미 코끼리가 새끼를 사람들 손에 잃은 뒤 식인 코끼리로 돌변해 인간들을 공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코끼리의 지능지수는 3살 아이들과 비슷한 50~70수준.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일 뿐이며, 제 새끼를 학대한 사육사의 얼굴을 기억했다가 10년 뒤 사육사를 공격한 어미 코끼리가 있었을 정도로 남다른 모성애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방송은 “지난해 인도의 한 마을에서는 벵갈 호랑이가 주민 14명을 잡아먹은 일도 있었다.”면서 “환경을 파괴해 동물들을 궁지로 내모는 인간들의 이기심이 동물들을 괴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사진=사살된 코끼리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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