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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보다 귀한 것 얻어가요”

    “돈보다 귀한 것 얻어가요”

    지난 1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강북청년창업센터 주차장에 승용차들이 한두 대씩 모여들었다. 7살 재영이네 가족은 함께 주차장을 찾은 30여 팀의 가족과 함께 트렁크를 열고 집에서 가져 온 책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뽀로로가 그려진 돗자리를 펴고 책들을 펼쳐 놓으니 멋진 ‘재영이네 가게’가 완성됐다. 앤서니 브라운 같은 인기 동화작가의 그림책을 인심 좋게 2000원에 팔았지만 매출액은 10만원을 훌쩍 넘겼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카 부트 세일(Car Boot Sale)이 열렸다. 카 부트 세일이란 판매자들이 쓰지 않는 물건을 차 트렁크에 싣고 와 판매하는 일종의 벼룩시장. 아름다운가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120여명의 가족이 참가해 5시간 동안 장터를 열었다. 참가비로 책 한 권을 기증하고 수익의 10%를 기부하는 ‘착한’ 벼룩시장이다. 기부금은 네팔의 어린이도서관 건립을 위해 쓰인다. 참가 가족들은 “돈보다 귀한 것을 얻어간다.”고 입을 모았다. 중고책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한편 기부와 놀이, 경제 교육, 집안 정리의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재영이 엄마 조병주(36)씨는 “아이에게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해 주고 싶어 참여했다.”면서 “아이와 책 파는 놀이를 하면서 기부까지 하는 등 일석이조”라며 밝게 웃었다. 다섯 살 난 딸 현서와 함께 참여한 이희진(38·여)씨도 “쓰지 않는 물건을 싣고 가볍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가게의 남재석(38) 책방사업팀장은 “앞으로는 판매 물건을 다양화해 참가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웹하드 등록제 시행 첫날… 업체 3분의 2 미등록

    영화 ‘건축학개론’ 100원, ‘러브픽션’ 280원…. 웹하드 등록제가 21일부터 시행됐지만 웹하드 업체들의 불법 콘텐츠 유통은 여전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를 버젓이 유통하거나 제목만 살짝 바꿔 업로드하는 등 불법 사례가 줄을 이었다. 단속이 어려운 토렌트(torrent) 등을 통한 파일 공유도 이전처럼 계속됐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중앙전파관리소에 따르면 21일 현재 등록을 마친 웹하드 업체는 71곳이다. 새로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모든 웹하드 업체는 3억원 이상의 납입자본금과 저작권 보호기술, 24시간 불법 콘텐츠 모니터링 요원 등을 갖춰 심사를 받아야 한다.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의 핵심은 저작권법 위반 등으로 3회 이상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 등록이 취소되는 ‘웹하드 삼진아웃제’다. 그러나 당초 우려했던 대로 웹하드 등록제의 빈틈을 노린 불법 콘텐츠 유통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재 영업 중인 250여개 업체 중 3분의2 이상은 여전히 등록조차 하지 않고 있다. 등록을 마쳤다고 밝힌 업체들도 콘텐츠를 불법으로 유통시키는 것은 이전과 다를 게 없다. 불법 업로더들은 ‘러브픽션’을 ‘본 사랑이야기는 허구입니다’ 등의 제목으로 바꾸거나 ‘건축학개론’을 ‘건학개런’이나 ‘건툭’ 같은 파일명으로 올리는 수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웹하드 등록제가 겉도는 것은 이용자들의 그릇된 인식 탓도 크다. 네티즌 신모(28)씨는 “솔직히 공짜로 다운로드가 가능한데 돈 내고 받으면 바보 아니냐.”면서 “문제라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싼 비용에 매료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홍훈기 저작권보호센터 사이버팀장은 “시행 초기인만큼 한 달 정도 지켜봐야 웹하드 등록제의 실효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유전·영양보다 중요한 건 체계적인 훈련”

    “유전·영양보다 중요한 건 체계적인 훈련”

    남자 육상 세계기록 보유자들은 단거리냐 장거리냐에 따라 다른 핏줄을 갖고 있다.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 110m 허들의 다이런 로블레스(쿠바), 400m의 마이클 존슨, 400m 허들의 케빈 영(이상 미국)까지 모두 서아프리카 혈통이다. 반면 800m의 데이비드 라디샤와 1000m의 노아 웅게니, 3000m의 다니엘 코멘(이상 케냐), 5000m와 1만m의 케네니사 베켈레, 마라톤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이상 에티오피아)는 모두 동아프리카 핏줄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1958년 설립돼 숱한 자메이카 육상 영웅들을 배출해 온 자메이카 기술대학의 에롤 모리슨(67) 총장이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오륜동 한국체육대학교를 찾아 자국이 스프린트(육상 단거리) 강국으로 떠오른 비결을 공개했다. 의학박사인 그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액티넨(ACTN) 3’란 유전자 성분이 스프린트 강국을 일군 단초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액티넨 3’는 근육의 빠른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 성분으로 스타트 반응속도가 승부를 좌우하는 100m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데 자메이카와 서부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이들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리슨 총장은 강연에서 “유전물질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물성 스테롤과 동화성 유도물질을 많이 함유한 식단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유망주를 조기 발굴해 지속적으로 훈련시키는 시스템. 유전적 요인이든, 영양학적 요인이든 어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중·고교에선 근육조직을 강화하고 혐기성 에너지를 증진시키는 생화학적 훈련을 실시하고 나중에 대학과 국가대표팀에서는 한층 더 집중화된 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불법 대출알선’ 금감원 前 부국장 징역 6년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부장 김재환)는 건설업자에게 불법으로 대출을 알선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금융감독원 전 부국장 검사역 선모(56)씨에게 징역 6년에 벌금 1억 8000만원,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금융감독기관 임직원의 직무집행의 공정성과 청렴성을 훼손해 금융감독기관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건전한 금융거래 질서에 해를 끼친 점, 수수한 금액이 적지 않은 점, 변명으로 일관하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선씨는 금감원 부국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8월 건설업자 류모(47)씨와 박모(60)씨의 청탁을 받고 모 은행 안양석수지점장과 송파지역본부장에게 전화, 200억원의 대출을 알선하고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최고령 88세 이종태씨 비밀특훈…외국인 1000여명 ‘우정의 질주’

    최고령 88세 이종태씨 비밀특훈…외국인 1000여명 ‘우정의 질주’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뛰겠소.” 올해 참가자 가운데 최고령인 이종태(88)씨는 지난해에 이어 5㎞에 도전했다. 이씨는 18일 동안 “비밀 특훈을 했다.”며 농담을 섞어 자랑했다. 2시간씩 헬스와 수영, 체조 등을 즐긴다는 이씨는 지금도 법무사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운동을 하니 사람들이 열살은 젊게 본다.”면서 “머리도 아직 까매서 아무도 내가 할아버지인지 모른다.”며 웃었다. 외국인도 1000여명이나 참가했다. 주한 외국인 마라톤 동호회 서울플라이어스 회원 71명은 단체로 참여해 힘껏 뛰었다.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동호회에서는 미군 30여명을 비롯해 영국·호주·러시아·스위스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 180여명이 마라톤을 통해 국적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고 있다. 회원인 배선태(54)씨는 “달리기를 통해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삼성농아원 학생들은 마라톤을 공감의 자리로 만들었다. 지난 10년간 삼성농아원에서 봉사를 해 온 직원들이 마음이 맞는 청각장애인 학생 15명과 짝지어 달렸다. 올해로 4번째 참가다. 김관(18·여)양은 전국 장애인 동계체육대회 크로스컨트리 종목 우승자이기도 하다. 김양은 더 긴 코스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뛰기 위해 5㎞ 코스를 달렸다. 서울 일본인학교의 교직원과 학생 30여명도 참가했다. 재미 삼아 함께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던 게 계기가 돼 동호회로까지 이어졌다. 야마사키 히로키(41) 동호회 단장은 “외국에 나와 살면서 외롭고 적적할 때도 많은데 야외로 나와 즐길 수 있어 정말 좋았다.”면서 “한국 사람들과 여러 가지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명희진·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20일 챔스리그 결승… 트로피 주인공은

    사상 첫 유럽 챔프 등극이냐, 2년 만의 권토중래냐. 20일 새벽 3시 45분(MBC스포츠+ 중계) 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첼시와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벌인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나 홈 이점에서나 뮌헨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다. 1992년 대회 출범 이후 결승을 홈구장에서 치르는 것은 뮌헨이 처음. 두 팀 모두 준결승에서 각각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느라 경고 누적, 부상 등으로 결장하는 숫자가 적지 않다. 첼시는 바르사 봉쇄에 앞장선 중앙수비수 존 테리와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에 미드필더 하미레스와 하울 라미엘레스가 나오지 못한다.수비수 홀거 바트스투버와 다비드 알라바가 빠지는 뮌헨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믿는 구석이다. 34경기 22실점으로 리그 최소 실점을 자랑한다. 전성기가 지난 디디에 드로그바나 요즘 살아나고 있는 페르난도 토레스 등 첼시의 예봉을 꺾기에 부족함이 없다. 공격력도 뮌헨이 윗길이다. 아르연 로번과 프랭크 리베리의 좌우 날개는 유럽 최강이다. 윙백 필립 람과 하피냐까지 합치면 날개는 넷으로 늘어난다. 리그 33경기에서 26골을 터뜨린 마리오 고메즈는 몸의 어느 부위로도 골을 집어넣을 수 있다. 대회 12골로 리오넬 메시(바르사·14골)를 제치고 득점왕을 차지하기 위해 해트트릭을 욕심낼 것이다. 대회 우승 경험이 네 차례 있는 뮌헨은 2년 전 결승에서 인터 밀란(이탈리아)에 졌던 아픔을 만회하기 위해 경기 초반부터 첼시 문전을 두드릴 것이다. 홈 이점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 약 먹으면 성기능 좋아져” 영양제 속여 판 2명 검거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건강보조제를 정력제라고 속여 판매한 이모(45)씨와 최모(37)씨를 건강기능식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씨 등은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캐나다산 아연보충제를 성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고 허위 광고를 내고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홈페이지 체험 후기 등을 통해 “3개월 복용 시 성기가 1.5㎝ 길어지고 정자 수와 발기력이 좋아진다.”고 광고했다. 그러나 이들이 판매한 제품은 단순한 건강보조제로 확인됐다. 이들은 한 통에 3만원 하는 제품을 2600여명에게 24만 8000원에 판매해 8배가 넘는 1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프랑스 장애인 크루아종의 인간 승리

    프랑스 장애인 크루아종의 인간 승리

    양쪽 팔다리가 모두 없는 프랑스 장애인이 거친 바람과 조류를 이겨내고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인도네시아 파푸아령(領)까지 횡단했다. 핀이 연결된 의족을 달고 20㎞를 헤엄쳐 건너는 데 7시간 35분 35초가 걸렸다. ●바닷길 20㎞ 7시간35분35초 헤엄쳐 주인공은 1994년 감전 사고로 사지(四肢)를 모두 잃은 필리페 크루아종(43). 2010년 가을에 영국해협을 헤엄쳐 횡단한 그는 17일 이른 아침(현지시간) 파푸아뉴기니의 어촌 우통을 출발해 오후 1시쯤 파푸아령 마보 근처의 파사르 스코 마을 해변에 도착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그는 코코넛 나무가 들어선 해변에 도착한 뒤 숨을 헐떡이며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물살을 거슬러야 해 계획보다 90분 정도 늦어졌다.”고 덧붙였다. 주민 100여명이 그의 도착을 지켜봤다. 이날 그의 역영에는 2년 동안 준비했던 대륙 횡단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한 장거리 수영 챔피언 출신 아르노 샤세리 말고도 주민 제트 탐파가 참여해 함께 헤엄쳤다. ●8월까지 대륙~대륙 모두 횡단 포부 2년 전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10시간을 앞당긴 13시간 만에 영국해협을 횡단했던 그는 곧바로 몇 달 동안에 대륙과 대륙을 잇는 바닷길을 횡단하겠다는 포부를 품게 됐다. 이날 횡단은 오세아니아와 아시아를 잇는 구간으로 설정됐으며 앞으로 요르단 아카바를 출발해 이집트 연안에 이르는 아프리카-아시아, 지브롤터해협을 건너는 유럽-아프리카를 거쳐 8월쯤 베링해협을 통과하는 아시아-아메리카 횡단으로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베링해협 구간은 짧으면 4㎞, 길어야 8㎞밖에 되지 않지만 영하의 수온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가장 무모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네 구간을 합치면 모두 85㎞ 안팎이 되는데 상어 떼나 맹독 해파리 떼, 유빙 무더기, 화물선과의 충돌 위험에 그가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크루아종의 삶은 18년 전 지붕 위에서 텔레비전 안테나를 해체하려다 2만 볼트의 전선에 감전되면서 극적으로 바뀌었다. 수술로 팔다리를 모두 잘라낸 그는 병상에서 어느 날 영국해협을 횡단한 이를 다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게 됐다. 그가 영국해협을 건넌 뒤 남긴 멋진 한마디. “우리처럼 작은 사람, 남자들은 대륙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도 있다. 누구도 서로에게 그렇게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피부색이나 장애 유형마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 행성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보내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남대문시장 7월부터 ‘가격표시제’… 엇갈린 반응

    “가격 표시 안 하면 벌금 물린다니 시늉이라도 내야겠지만 그걸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손님 먼저 흥정땐 어쩌나” 반발 7월 1일부터 남대문시장에 가격표시제가 적용되면서 상인들이 볼멘소리를 내뱉고 있다. 서울 중구는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영업을 근절하기 위해 제품에 가격표를 붙이지 않으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가격표시제를 도입한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상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16일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가격표시제를 시행해도 결국 값을 깎는 흥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흥정이 관행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국의 한 여행 책자에는 ‘한국의 재래시장에서는 물건값을 깎을 수 있다.’는 여행 정보가 실려 있다. 모자점을 하는 박모(52·여)씨는 “제 가격에 내놓아도 무조건 깎으려는 외국인이 대다수”라면서 “결국 흥정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가격표시제를 어기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흥정 행위까지 단속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구는 유연하게 가격표시제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표시 가격을 일종의 상한선으로 두고 그 이상 폭리를 취하는 행위만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으면 그마저 불가능하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조모(44)씨는 “상인들이 담합해 가격을 높게 정해 놓으면 그 가격에 사는 손님들만 바보가 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상인들은 우려하는 바가지 행태가 가방과 인삼 등 일부 인기 품목에만 국한된 현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중구 “상한선 이상 폭리만 단속” 외국인 관광객들은 바가지 영업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는 반기면서도 실효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볼리비아 출신 결혼이민자 로미(26·여)는 “중국산도 너무 비싸게 받는다.”면서 “가격표시제가 신뢰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1970년대부터 사업 때문에 한국을 자주 찾는다는 미국인 고든(56)은 “각양각색의 수많은 제품에 모두 가격을 표시한다는 게 실효성이 있겠느냐.”면서 “이거야말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들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남대문시장을 자주 찾는다는 주부 한모(32·여)씨는 “재래시장은 나름의 관행이나 특징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책정해 놓으면 바가지 쓰는 것 아니냐.”며 못마땅해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AFC 챔피언스리그] 울산 “전북 물먹인 가시와 나와라”

    프로축구 울산이 조 1위로 16강에 진출, 전북을 벼랑 끝으로 밀어뜨린 가시와(일본) 설욕에 대신 나선다. 울산은 16일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FC 도쿄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F조 조별리그 마지막 6차전에서 전반 37분 강민수의 선제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승리했다. 4승2무(승점 14)로 도쿄(3승2무1패·승점 11)를 제친 울산은 조 1위로 단판 승부인 16강전에 진출, 30일 홈으로 H조 2위 가시와를 불러들여 8강 진출을 다툰다. 도쿄는 같은 날 H조 1위 광저우(중국)와 맞붙는다. 이근호와 마라냥을 앞세운 울산이 측면 돌파로 기회를 엿본 것과 달리, 도쿄는 중원에서 기회를 엿보며 울산 문전을 노렸다. 먼저 울산이 웃었다. 김승용의 프리킥을 반대쪽 포스트로 쇄도하던 곽태휘가 헤딩으로 연결했고, 이를 도쿄 골키퍼가 간신히 걷어내자 마라냥이 다이빙 헤딩을 시도했다. 그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튀어나온 것을 강민수의 오른발이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김승용 대신 김신욱을 투입한 울산은 마라냥을 측면 미드필더로 돌리면서 스피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제공권 장악을 노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격 루트가 다양해졌고 상대 수비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또 후반 27분 체력이 떨어진 중앙 미드필더 김동석 대신 이호를 넣어 안배하고, 후반 33분에는 마라냥 대신 윙백 최재수를 넣어 수비를 공고히 했다. 도쿄는 후반 43분 가지야마가 날린 회심의 슛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오면서 반격에 맥이 풀렸다. E조의 애들레이드(호주)는 감바 오사카(일본)를 2-0으로 누르고 4승1무1패(승점 13)로 조 1위를 확정, 29일 G조 2위 나고야(일본)과 16강전에서 격돌한다. 포항은 타슈켄트의 자르 스타디움에서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의 후반 3분 가푸로프에게 빼앗긴 선제골을 끝내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졌다. 비기기만 해도 조 2위로 16강에 합류할 수 있었던 포항은 3승3패(승점 9)에 그쳐 분요드코르(3승1무2패·승점 10)에 2위를 내줬다. 분요드코르도 29일 G조 1위 성남을 찾아 8강 진출을 겨룬다. 한편 광저우의 이장수(56) 감독은 태국 부리람에서 귀국길에 오르기 전인 이날 오전, 구단으로부터 경질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감독은 국내 한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기에 놀라지는 않았다.”며 “오히려 홀가분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라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 16강 물거품…가시와에 0 -2 완패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 16강 물거품…가시와에 0 -2 완패

    가시와(일본)에 0-2 완패를 당했지만 프로축구 전북의 16강 진출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전북은 15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H조 조별리그 마지막 6차전에서 상대 공격의 핵 레안드로 도밍게스를 막는 데 실패하면서 0-2로 졌다. 하지만 이어 태국 부리람에서 열린 부리람-광저우(중국) 경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탈락이 확정된 부리람이 정규시간 종료 때까지 뜻밖의 선전을 펼쳐 1-1로 균형을 맞춰 그 희망은 이뤄지는 듯했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으면 가시와(3승1무2패·승점 10)에 이어 3승3패(승점 9)의 전북이 광저우를 승점 1차로 따돌리고 조 2위로 16강에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인저리타임에 날아갔다. 부리람 수비수의 파울로 페널티킥이 주어졌고 다리오 콘카가 성공시켜 광저우가 2-1로 승리, 16강에 올랐다. 가시와는 후반 4분 센터서클 중앙에서 올라온 공을 전북 수비진이 제대로 걷어내지 못해 오른쪽으로 흐르자 도밍게스가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 앞서나갔다. 이흥실 전북 감독대행은 6분 뒤 드로겟과 진경선을 빼고 이승현과 루이스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7분 뒤 도밍게스의 슈팅이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온 것을 다나카가 밀어넣어 승부를 갈랐다. 전북은 후반 31분 에닝요의 패스를 받은 이동국이 수비수에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을 얻었지만 이마저 실축, 추격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G조의 성남은 중국 톈진 테다 스타디움에서 윤빛가람의 선제골과 요반치치의 두 골을 엮어 3-0으로 승리했다. 성남은 앞선 경기에서 센트럴 코스트(호주)를 3-0으로 따돌린 나고야(일본)와 나란히 2승4무(승점 10)가 됐지만 골득실에서 1이 앞서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 29일 포항과 애들레이드(호주)가 속한 E조의 2위와 맞붙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대학가 축제 암표로 얼룩

    “표는 원하시는 대로 구할 수 있습니다. 장당 2만원.” 대학가 축제에 때 아닌 암표가 극성이다. 일부 학교의 축제 티켓은 정가의 2배 넘게 거래되기도 한다. 지난 9일 연세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세연넷’에는 일부 응원단원이 응원단에 무료 제공된 티켓을 비싼 가격에 거래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응원단원으로 밝혀진 이용자가 11일 열린 축제 ‘아카라카’의 1만원짜리 티켓을 2만원에 팔겠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티켓 수량은 제한돼 있는데, 판매자는 “원하는 만큼 표를 구할 수 있다.”고 밝혀 부당 거래 논란은 더욱 커졌다. 사태가 확산되자 응원단은 10일 사과문을 통해 “암표 거래는 응원단 출신 졸업생 A씨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응원단이 관행상 선배들에게 10장씩 지급해 온 티켓 중 4장을 A씨가 지인 B(29)씨에게 넘긴 것. 하지만 축제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B씨는 A씨와 티켓 처리를 두고 상의했고, A씨는 세연넷을 통해 판매할 것을 권유했다. 두 사람은 세연넷 계정이 없어 B씨는 A씨가 응원단 후배 C(21)씨에게 빌린 계정을 통해 글을 게재했다. 하지만 A씨와 C씨 모두 B씨가 티켓을 비싼 가격에 되판다는 사실을 몰랐다. B씨는 A씨에게 받은 초대권뿐 아니라 다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산 티켓도 비싼 가격에 거래했다. 응원단은 B씨가 이 과정에서 18장의 티켓을 구해 모두 12만 6000원의 이득을 남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B씨가 통화 목록을 지워 정확한 거래 내역이 확인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14일부터 축제 티켓 판매를 시작한 고려대 역시 5월이면 티켓 거래 글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붐빈다. 이처럼 암표가 성행하는 이유는 유명 가수들이 참여해 공연을 갖기 때문이다. 대학 축제 티켓은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서도 비싸게 거래된다. 지난주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에는 “연세대의 아카라카 티켓을 3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응원단 역시 이 같은 실태를 파악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프로축구] ‘안방불패’ 수원, 선두로

    [프로축구] ‘안방불패’ 수원, 선두로

    역시 ‘빅버드’는 원정팀의 무덤이었다. 프로축구 수원은 13일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광주FC를 불러들여 치른 현대오일뱅크 K리그 12라운드 홈경기에서 4-1 역전승을 거뒀다. 8승2무2패(승점 26)가 된 수원은 리그 선두로 나섰다. 광주는 전반 36분 복이가 얻은 페널티킥을 김동섭이 성공시켜 앞서갔지만 후반 시작과 거의 동시에 터진 에벨톤C의 동점골을 신호탄으로 수원의 거센 반격에 밀렸다. 후반 17분 광주 유종현의 자책골로 판세를 뒤집은 수원은 7분 뒤 박현범, 34분 조용태의 잇단 추가골을 엮어 승리를 낚았다. 수원은 올 시즌 홈에서 치른 7경기 전승을 이어갔다. 제주는 자일의 해트트릭과 산토스의 1골 2도움 활약을 엮어 강원을 4-2로 따돌렸다. 제주 역시 안방 무패(5승1무)와 9경기 무패(6승3무)를 이어가며 7승4무1패(승점 25)로 수원에 승점 1 뒤진 2위로 뛰어올랐다. 전반에 두 팀은 네 골이나 주고받았다. 전반 9분 산토스가 오른쪽 페널티박스 안으로 날카롭게 파고들며 문전으로 볼을 내준 것이 자일의 오른발에 정확하게 걸리면서 선제골이 터졌다. 강원은 전반 32분 웨슬리가 한동진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해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러나 제주는 3분 뒤 문전 혼전상황에 산토스가 내준 공을 자일이 왼발 슈팅으로 다시 골망을 갈랐다. 하지만 전반 37분 강원의 김은중에게 페널티킥 동점골을 내줘 승부는 다시 원점이 됐다. 제주는 후반 4분 오른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자일이 헤딩슛으로 연결한 것이 골대를 맞고 나왔지만 산토스가 다시 머리로 밀어넣은 데 이어 37분 배일환이 얻은 페널티킥 찬스를 자일이 해트트릭으로 연결하며 완승을 마무리했다. ‘질식축구’의 부산은 전반 30분 박종우의 선제골과 후반 48분 상대 황순민의 자책골에 힘입어 대구를 2-0으로 제쳐 6승4무2패(승점 22)로 전북을 밀어내고 5위로 올라섰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기행소설 ‘첫사랑뿐’ 펴낸 박인식

    [저자와 차 한 잔] 기행소설 ‘첫사랑뿐’ 펴낸 박인식

    산마루 흰 눈 위에 흩어진 핏빛. 10여년 전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그만큼 무섭고 아렸다. 잡지 ‘사람과 산’을 창간하기 전 이미 산 밑의 5000명을 정기 구독자로 확보했던 사나이. 힘들게 만든 잡지를 2년 이끌고 미련 없이 넘긴 뒤 산으로, 전업 작가로 떠난 그이. 여러 기행문과 대하소설 ‘백두대간’을 2권까지 내놓은 박인식(61) 작가가 200자 원고지 5000장 분량의 기행소설 ‘첫사랑뿐’(3권·바움)을 내놓은 것이 지난 연말이다. 넉달여 뒤늦게 책장을 100여쪽 넘길 즈음 푹 빠져들었고 그를 만나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인사동 술독을 마르게 했으며 황석영 작가 등과 더불어 ‘4대 구라’로 꼽히는 그를 봄바람 부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계동 한옥집 마당에서 만났다. ☞녹취록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원고지로만 작업하는 이유는. -글을 쓸 때의 집중력, 내 생각을 글로 옮길 때 느낌, 힘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해서다. 오랜 세월 그렇게 써 와 익숙해졌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1993년에 카슈가르를 경유해 곤륜산맥의 막장으로 들어갔다. 고소증에 걸려 신내림을 경험했다. 하룻저녁에 장편소설 한 권 분량을 써 내려 갔고 곧바로 잃어버렸다. 오랜 시간 그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는지 고민하다 10여년 전에 내 전생의 삶이 거기 있었고 간절한 바람 같은 것이, 사랑이라 해도 좋고, 날 꼭 다시 찾아오게 만든 염원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4~5년 묵힌 뒤 2년 전 파리에서 한달 동안 하루에 200자 100장씩 썼다. 곧바로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 101쪽부터 200쪽까지 쓰고, 그게 몇 시에 끝나든지 오직 글 쓰는 데만 매달려 1권 반 정도를 썼다. 그 뒤 부처가 태어나 도를 깨치고 열반에 들 때까지 걸은 1500㎞를 100일 동안 걸은 뒤 ‘너에게 미치도록 걷다’를 냈다. 그 뒤 다시 파리 집에서 한달 써서 6000장을 완성했다. 그걸 5000장으로 줄여 낸 것이다. →긴 분량인데 꼭 하고 싶었던 얘기는. -개인이나 집단이나 갈등이 생기고 정반합을 거치는 복잡한 과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에너지원 가운데 첫사랑의 숭고한 감정이 가장 앞선다고 본다. 감상적이라고, 너무 낙관적이라고 타박해도 뭐라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정서, 감정 속에서 정말 이 우주 질서를 재편해 재미있게 활달하게 이끌 수 있는 에너지원은 그것밖에 없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더 집약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 -길면 긴 대로 기승과 파고 들어가는 집중력이 있다. 황석영 선배도 길게 쓰지 마라, 200자 900장 넘어가면 잘 안 읽는다, 그랬다. 그래서 타협한 게 이 정도다. 누가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걸 쓰겠나. 남이 안 쓰기 때문에 나는 쓰고 싶다. →아끼는 경구가 있다면. -마르케스는 “소설가는 모든 것이 신문기사로 실려도 좋을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상식으로 여기는 것을 뛰어넘는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의미일 텐데, 인간이 어찌 저럴 수 있나 싶은 상황을 통해 역으로 인간의 길을 가리키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한국 사람과 산이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본 문학이 없었다고 본다. 내게 남겨진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백두대간’ 나머지 작업을 끝내고 한민족이 산과 맺고 있는 영성을 주제로 쓰고 싶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한국의 산들인 그런 얘기를 구상하고 있다. 그것만 마치면 더 이상의 글 욕심이 사라질 것으로 본다. →그럼 산행 계획은. -산행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돌아오지 못할 산을 마지막으로 한 번 가고 싶다. 7000m급의 처녀봉을 정말 힘들게 등반한 뒤 사라지고 싶다. 글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국내1호 시각장애인 최영 판사 재판 공개현장 가보니…

    국내1호 시각장애인 최영 판사 재판 공개현장 가보니…

    최영(32) 판사는 ‘시각장애인 판사’가 아니라 ‘판사’였다. 다를 거라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사건을 보는 듯했다. 11일 오전 10시 서울 북부지법 701호 법정.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민사11부 판사들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와 동시에 국내 첫 시각장애인 법관인 최 판사가 동료 판사들의 팔을 잡고 법정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초임인 최 판사는 부장판사의 왼쪽, 선임 판사는 오른쪽에 앉았다. 최 판사의 모습과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의 이미지가 오버랩됐다. 디케는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눈을 가렸다. 최 판사는 다른 판사들과는 다르게 사건 기록이 담긴 휴대용저장장치(USB)를 장착한 노트북에 연결한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다. 재판 도중 확인이 필요한 부분의 사건 기록을 듣기 위해서다. USB에 담긴 내용은 재판을 위해 업무보조원이 증거 자료와 사건 기록 등을 미리 음성 파일로 만들어 저장한 것이다. 변론 도중 다른 판사들이 펜으로 메모하는 것과 달리 최 판사는 필요한 내용을 음성으로 듣기 위해 노트북을 두드렸다. 그는 변론을 진지하게 청취했다. 중간중간 다른 판사와 조용히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재판장의 공지 뒤 재판 내용을 별도로 녹음했다. 최 판사는 이날 재판에서 주심을 맡은 전세권 설정 소송에 대한 변론을 주의 깊게 들었다. 법원 측은 최 판사의 업무를 돕기 위해 지난 2월 최선희(30·여) 실무관을 채용했다. 최 실무관은 최 판사에 대해 “시각장애인인데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감동해 자원했다.”고 밝혔다. 최 실무관의 주요 업무는 최 판사가 음성으로 사건 기록을 검토할 수 있도록 내용을 한글 파일로 작성해 주는 일이다. 접수된 사건 기록을 최 판사와 함께 읽고 최 판사가 필요한 부분을 결정하면 해당 내용을 한글 파일로 만드는 것이다. 최 판사는 이후 센스 리더 프로그램을 활용해 사건 기록을 들을 수 있다. 청취 속도는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빠르다. 눈으로 보아야 할 증거 자료는 손으로, 사진이나 그림은 설명으로 읽는다. 최 판사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기 때문에 자료를 이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보이지 않는 탓에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고교 3학년 때인 1998년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고 이듬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최 판사는 현재 방에 불이 켜졌는지 정도만 알 수 있는 1급 장애 상태다. 이창열 북부지법 공보판사는 “음성 기록 파일을 두 번 정도 들으면 사건 내용을 모두 외울 정도로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면서 “기억력이 좋다.”고 말했다. 최 실무관 역시 “법학 전공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많지만 최 판사께서 차근차근 알려주셔서 많이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최 판사는 재판 뒤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시각장애인이라서가 아니라 판사라서 책임감을 느낀다.”며 장애에 얽매이지 않고 판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시각장애인의 임용을 여성 법관 임용에 비유, “처음엔 여성 법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금은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최 판사는 “법원도, 저 자신도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고 밝혔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5·11 입양의 날] 입양아 ‘고독’을 말하다

    [5·11 입양의 날] 입양아 ‘고독’을 말하다

    암울했던 시절인 1972년 제인 정 트렌카(40)는 생후 6개월 만에 언니와 함께 미국에 입양됐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경아라는 한국 이름은 몇 번 불리지도 못한 채 지워졌다. 입양 기관은 어머니에게 “변호사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랄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미국인 양아버지는 미네소타의 금속공장에 다니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양어머니는 가끔씩 공장에 나가거나 비서일을 했다. 무엇보다 양부모는 입양된 딸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다섯 살 때였다. 유치원에 특별한 물건을 들고 가서 설명하는 행사가 있었다. 입양을 보내며 친어머니가 넣어 준 한복이 생각났다.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한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옷은요, …” 말문이 막혔다. 왜 그 한복이 특별한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친어머니가 나를 키우지 않았는지 알고 싶었죠.” 미국인 어머니는 트렌카의 질문에 침묵했다. 어머니가 등을 돌려 걸어나가는 순간 그는 입양의 아픔을 양부모에게는 결코 털어놓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와 갈등을 겪으며 정체성을 고민하던 트렌카는 2008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 모임 트랙(TRACK)을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해외입양인 수십명이 모였다. 이들에게 입양은 아픈 기억이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입양의 날’을 ‘싱글맘의 날’로 바꾸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상처만 남기는 입양을 지원할 게 아니라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할 수 있도록 두리모(미혼모)를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한국인들은 흔히 아이가 어느 문화든 잘 적응할 거라고 믿죠. 어리니까요. 하지만 그건 판타지에 불과해요.” 트렌카는 단호하게 말한다. 입양인의 관점에서 트랙이 요구하는 건 두리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두리모가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고, 국내 입양은 그 다음이다. 해외 입양은 최후의 수단이다. 그는 “목표는 고아원과 입양이 사라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트랙은 해외 입양인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뿌리의 집’과 함께 11일 ‘싱글맘의 날 국제 콘퍼런스’를 갖는다. 그는 말한다. “좋은 입양이란 없어요. 차선의 선택일 뿐이지.”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대기업, 1인 디자이너 브랜드 디자인 도용 논란

    대기업, 1인 디자이너 브랜드 디자인 도용 논란

    “내 디자인을 베꼈다.”(개인 디자이너 측), “보편적인 디자인일 뿐이다.”(유명 의류업체 측) 1인 디자이너 브랜드와 유명 의류브랜드 사이에 디자인 도용 논란이 적잖다. 개인 디자이너들은 비용 탓에 디자인 등록을 하지 않는 상황을 유명 의류업체들이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명 의류업체들은 “기본적인 디자인이 비슷할 뿐 도용은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1인 디자이너 브랜드인 루치카(Luccica)를 운영하는 최찬범(32)씨는 최근 유명 가방 브랜드인 몽삭(Monsac)을 겨냥, “가방 디자인은 물론 실수한 부분까지 똑같으면 베낀 거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몽삭이 올해 출시한 제품이 지난해 초 자신이 내놓은 가방과 실수한 부분까지 너무 유사하다는 얘기다. 몽삭 측은 “보편적인 디자인일 뿐 도용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인 디자이너 브랜드인 얀웍스(Yarnworks)는 이랜드그룹의 스파오(SPAO)가 양말 디자인을 훔쳐 썼다는 글을 지난달 블로그에 올렸다. 지난해 5월 자신이 선보인 양말과 똑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스파오가 올해 초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파오 측은 “논란이 돼 제품을 거둬들였지만 도용 여부는 아직 확인중”이라면서 “얀웍스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디자인 등록 여부 등에 따라 사실관계를 따지겠다.”고 밝혔다. 휠라(FILA)도 소규모 브랜드인 커버낫(Covernat)의 가방 디자인을 베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윤형석 커버낫 대표는 지난해 봄 출시한 가방을 휠라 측이 겨울에 다시 출시했다며 트위터에 “라벨 갈이 수준의 카피”라고 비판했다. 휠라 측은 “우연의 일치로 기본적인 모양이 비슷할 뿐 지퍼 모양이나 가죽으로 덧댄 세세한 부분 등이 달라 도용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제일모직의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8seconds)는 지난 2월 소규모 액세서리 브랜드 코벨(Coevel)의 양말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유사성을 인정하는 사과글을 게재한 뒤 제품 전량을 소각하기도 했다. 도용 시비는 디자인이 등록되지 않은 데서 비롯되고 있다. 최찬범씨는 “100만원 정도가 드는 시제품 제작 비용을 대기도 힘든 현실에서 디자인 등록은 엄두조차 낼 수 없다.”면서 “도용 진위를 가리기 위한 변호사 선임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개인 디자이너 및 소규모 영세업체는 “바라는 건 사과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대기업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문제가 커지면 소액으로 합의하기 일쑤다. 변리사 나모(35)씨도 “소규모 업체가 디자인 등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기업들이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디자인 등록을 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구제받기가 훨씬 어렵다.”고 강조했다. 남윤자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대형 업체들의 디자인 베끼기는 결국 ‘제 살 깎아 먹기’인 만큼 디자인 산업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들의 윤리의식 제고뿐만 아니라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프리미어리그] 반갑다 이청용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 1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다시 섰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뉴포트 카운티와의 연습 경기 도중 톰 밀러에게 살인적인 태클을 당한 뒤 필드에 나서지 못했던 이청용은 6일 리복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스트 브로미치와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후반 10분을 남겨두고 교체 출장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지난해 5월 23일 맨체스터 시티전에 출전한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그는 기나긴 재활 훈련 끝에 지난 4일 위건 애슬래틱 2군팀과의 비공식 연습 경기 75분을 소화하며 경기 출전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당초 오언 코일 감독은 “상대 태클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며 그의 복귀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팀의 강등권 탈출이 절박한 상황을 감안해 교체 출장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볼턴 팬들은 기립박수로 반겼고 그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려온 고국 팬들도 그가 10분여 뛰는 모습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 이청용은 들어가자마자 상대 공격수에게서 공을 빼앗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경기 감각이 떨어졌는지 제 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2-1로 앞선 상황에서 투입됐지만 후반 44분 동점골을 터뜨린 제임스 모리슨 수비를 헐겁게 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전반 24분 마틴 페트로프의 페널티킥 선제골과 후반 27분 상대 수비수의 자책골로 2-0으로 앞서던 볼턴은 후반 30분 크리스 브런트에게 추격골을 내준 뒤 후반 정규시간 1분을 남기고 모리슨에게 동점골을 허용, 강등권 탈출 가능성이 더욱 엷어졌다. 승점 35가 된 볼턴은 이날 스토크시티를 1-0으로 제압한 퀸즈파크 레인저스(승점 37)와의 격차가 2로 벌어졌다. 한편 박지성이 소속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막판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맨시티는 세인트제임스 파크 원정경기 후반 막판 야야 투레의 두 골 원맨쇼에 힘입어 뉴캐슬을 2-0으로 따돌리고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커버스토리] “경찰 실종 전담팀 간판만… 장기실종은 손도 못대”

    [커버스토리] “경찰 실종 전담팀 간판만… 장기실종은 손도 못대”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이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경찰 실종전담팀은 이름만 남아 있는 상태고요.”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지난 2월 실종 아동 보호 및 지원법이 개정되는 등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정부의 법적·정책적 지원은 부족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종아동찾기협회는 1995년에 설립해 2010년 사단법인이 됐다. 현재 300여명의 실종 아동 부모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다. 서 대표는 “부모들이 처음에 직면하는 어려움은 경찰의 적극적인 지원 부족”이라고 밝혔다. 이어 “2005년 실종아동법이 제정된 뒤 실종전담팀이 꾸려졌지만 간판만 걸어놨을 뿐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면서 “그나마 2년 전부터 잦은 성범죄에 실종팀 전체가 차출된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실종팀도 관리와 수사, 민원으로 나뉘어 있어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면서 “경찰의 수사로 실종이 줄어든 건 인정하지만 법 제정 이전의 장기 실종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만만찮다. 실종아동찾기협회 등 민간 기관은 부모들의 회비 이외에 의존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 기대할 수도 없다. 민간에서는 별다른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볼 요량으로 부모들은 전단지를 제작해 돌리지만 “전단지는 실종 아동 부모 스스로도 큰 효과가 없다.”고 털어놓고 있다. 서 대표는 “부모들 대부분이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을 찾는 데에는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보다 경찰의 적극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잃는 순간 경제 활동도 가족 간의 교류도 중단돼 실종 아동 가정의 70~80%가 경제적 문제에 부딪힌다.”면서 “아이를 잃은 슬픔도 모자라 가정이 해체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커버스토리] 실종아동 얼마나 되나

    [커버스토리] 실종아동 얼마나 되나

    하루 31명, 1시간에 1.29명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어버리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에 접수된 실종 아동 신고 건수는 1만 1425건이다. 실종 아동은 통계가 집계된 지난 2006년부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06년 7071건이던 실종 아동 신고는 5년 새 61.5%나 늘어났다. 올해의 경우, 지난 3월까지 2217건이 신고됐다. 대부분의 실종 아동은 비교적 빨리 부모의 품으로 돌아간다. 8세 미만의 아동은 99.95%, 9~14세는 99.1%가 조기에 해결된다. 문제는 장기 실종에 빠질 경우다. 2006년부터 지난 3월까지 찾지 못한 아동은 258명이다. 2006년 13명을 시작으로 2010년 48명, 지난해 67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실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늦어질수록 찾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경찰청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실종 뒤 12시간 이내에 발견하지 못할 때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접수된 1만 672건의 실종 아동 신고 가운데 ▲1시간 이내에 아이를 찾은 경우는 전체의 41.2%인 4405건 ▲12시간이 지나 찾을 땐 1.2%인 130건에 불과하다. 실종 아동들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발견되기도 한다. 실종 아동과 보호자의 유전자 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해 일치하는 가족을 찾아내는 것이다. 경찰은 2004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실종아동군(실종 당시 14세 미만 아동과 지적 장애인 등) 2만 2990명과 보호자 1492명의 유전자 정보를 대조, 196명을 찾아냈다. 그러나 실종아동군의 유전자 정보에 비해 보호자의 유전자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전자 등록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보호자도 많지 않은 데다 의무 등록도 아니기 때문이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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