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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7세 나이 때문에 뽑힌 듯”/한마당축구 MVP 이부열씨

    ◎“축구열기 확산 계기됐다” 제1회 전국시군구 대항 한마당축구대회에서 MVP상을 차지한 순천시팀의 이부열씨(37·순천고 코치)는 MVP의 영예를 열심히 싸워준 후배들 모두에게 돌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최우수선수로 뽑힌 소감은. ▲최고 연장자라는 점이 고려된것 같다.모든 공을 후배들에게 돌려 같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순천시의 축구열기는 어느정도인가. ▲대소경기를 막론하고 운동장이 메워질만큼 열기가 대단한 곳이다.순천시에는 모두 11개의 축구동호인클럽이 있는데 연중 격주로 리그전을 펼치고 있을 정도다.이번의 팀구성도 이들 동호인클럽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연일 계속된 경기로 피곤하지 않았나. ▲힘들었다.그러나 고장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뛰었다. ­대회성과에 대해… ▲각지역에서 다 모여 게임을 치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친선도모가 이뤄져 좋았다.다만 더 많은 홍보가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월드컵 유치노력과 관련해서 한마디 한다면…. ▲축구열기가 높아져야 하는데 요즘 축구경기장을 가보면 한결관중이 줄어든 느낌이다.이런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번 대회처럼 축구에서 지역연고제가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 한국 3연속 종합 2위/히로시마 아시아드 폐막

    【히로시마=특별취재단】 육상 1천6백m 계주에서 마지막 금메달을 추가한 한국이 종합 2위를 차지한 가운데 제12회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가 16일 열전 15일의 막을 내렸다. 「아시아인의 화합」을 내걸고 42개국 7천2백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번대회는 이날 하오 메인스타디움에서 폐막식을 갖고 98년 방콕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한국은 사상 최대규모,국가가 아닌 도시 주도의 첫 대회,중앙아시아 5개국의 합류 등 아시아드에 새 이정표를 세운 이번대회에서 홈팀 일본의 집요한 견제를 뿌리치고 금메달 63개,은메달 53개,동메달 63개로 금 59개,은 68개,동 80개의 일본을 제치고 3연속 종합2위를 달성,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중국은 예상대로 독주를 거듭한 끝에 금 1백37개,은 92개,동60개를 따내 종합 4연패를 이룩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홈코스의 일본을 상대로 멋진 역전승을 거두며 또한번 세계정상의 마라토너로 성가를 떨쳤으며 여자배구와 남녀 농구,축구,유도와 배드민턴 등 주요종목의 한·일 맞대결에서 대부분 통쾌한 승리를 거둬 선수단 응원에 나선 재일동포와 원정응원단을 기쁘게 했다. 이날 폐회식은 육상과 축구,배구 결승전 등 10개종목의 마지막 경기를 치른 후 메인스타디움 빅아치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메달 경쟁을 벌여온 참가국 선수들은 석별의 정을 나누며 4년후의 재회를 약속했다. 폐회식에서 이번대회 MVP인 한국의 황영조에게 이상백컵이,중국올림픽위원회에 셰이크 파하드컵이 수여됐다.아마드 OCA의장이 폐회를 선언한뒤 OCA기가 방콕대표에게 넘겨지고 OCA찬가와 평화의 시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성화가 사그라들면서 일본 육상자위대의 축포로 막을 내렸다. ◎3연속 종합 2위 쾌거/대표팀에 축하메시지/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16일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종합 2위를 이룩한 한국선수단에 축전을 보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대통령은 축전에서 『30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이번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탁월한 기량과 지칠줄 모르는 투혼을 발휘하여 대회 3연속 종합2위를 달성한 쾌거를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하며 선수단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말했다.
  • 프로야구 개막(외언내언)

    1982년 3월27일 하오2시24분,서울 동대문구장.2만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힘차게 던진 시구가 MBC 유승안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주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고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한국의 프로야구가 출범의 고동을 울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것은 1869년,일본은 1936년.미국은 한세기가 훨씬 넘었고 일본도 58년이나 됐다.한국은 12년.초창기에는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은 제1의 인기프로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지난해 4백87만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올해의 관중동원 목표는 5백만명. 올시즌의 한국프로야구가 9일 전국의 4개 구장에서 일제히 개막되어 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한다.오는9월9일까지 총 5백4게임이 치러지는데 한팀당 경기수는 1백26게임.7월14일까지 상반기 리그를 끝내고 7월22일부터 후반기리그에 들어간다.미국 프로야구는 지난4일 개막됐고 일본은 한국과 같은날 플레이볼된다. 올시즌에도 어느팀이 우승하고 어느팀이 돌풍을 일으킬지,또 어느선수가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하고 신인왕에 오를 루키는 과연 누구일지등이 관심의 표적.그뿐만이 아니다.「통산 6천호 홈런」 「1천5백 탈삼진」 「8백 타점」의 주인공들이 탄생,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또 올해는 미국프로야구 LA다저스팀에 스카우트된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프로스포츠는 경기만 치른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완벽한 팬서비스,현대적인 시설,선수들의 파인플레이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의 현주소는 어떤가.경기내용은 제쳐놓고라도 팬서비스가 부실하고 시설도 보잘것 없다.출범 13년째를 맞고 있는 한국프로야구가 자성하고 개선해야할 대목들이다.
  • “은행잎·쑥 피부미용에 좋다”(업계새경향)

    ◎야채화장품 잇따라 선보여 자연산 식물에서 원료를 추출한 「야채화장품」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오이,토마토,수세미,은행잎,콩 등 주로 피부 미용에 좋다는 야채들을 이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기존 화학성 제품에 비해 자극이 적고 보습작용,독성제거 등 효능이 뛰어나 많은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자연산,무공해,무자극 등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라미화장품은 지난해 말 오이,토마토,파슬리,미나리,당근 등 5개 녹황색 채소의 추출물을 함유한 「라피네 야채팩」「라피네 야채 크렌징 마사지」를 내놓았다.보습효과와 피부탄력에 좋은 오이와 미나리를 함유한데다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부를 매끄럽게 한다는 파슬리와 토마토의 성분을 섞어 한달 만에 30여만개나 팔았다. 주리아는 지난 해 8월부터 수세미에서 추출한 성분을 함유한 「소네트 크렌징 워터」를 내놓아 한달에 10여만개씩 팔고 있다.예부터 마사지용으로 사용된 수세미즙에서 보습효과가 뛰어난 사포닌과 아미노산,비타민 A·B·C 등을 추출했다는 것이다.지난 해 11월부터는 은행잎 성분을 함유한 남성용 로션 「타켓 월드」도 선보였다. 나드리 화장품도 지난 해 8월부터 은행잎 성분을 함유한 여성용 화장품 「이노센스」와 쑥,감초,은행잎 등을 사용한 남성용 스킨과 로션 「MVP 마제스터」를 선보였다.
  • “마라톤 코리아”… 「몬주익신화」창조/월계관을 조국에 바친 황영조

    ◎“입문 5년”… 풀코스 도전 4번만에 위업/어린시절 가난딛고 올 10분벽 깨며 각광 마지막 2㎞.몬주익비탈길을 오르며 황영조(22·코오롱)는 이를 악물었다. 집요하게 따라붙은 모리시타(일본)의 거친 숨소리가 지쳐있음을 감지케 해주었다. 『이제는 뛰쳐나갈 때다』 황영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내달았다.엄청난 함성속에 황영조는 결승점에 들어섰다.그리곤 쓰러져 파열해버릴듯한 심장을 움켜쥐고 울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르기만 했던 고향앞바다와 함께 어머니의 영상이 떠올랐다. 하루 세끼를 옥수수와 감자,불어터진 국수가락으로 견뎌야했던 가족들을 위해 추운 겨울날에도 늙은 몸을 추스르며 물질(해녀)을 하던 어머니.심장이 시려오며 가슴이 메는듯해 일어설 수가 없었다. 황영조는 가슴으로 외쳤다. 『어머니,당신이 진짜 승리자입니다.당신께 이영광을 바칩니다』 한국을 떠나기전 황영조는 공항에서 고향집으로 전화를 했다.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를 꼭한번 듣고싶어서였다. 『어머니는 네가 경기를 끝낼때까지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계실것』이라는 누나의 말만을 전해들은 황영조는 가슴이 저렸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며 그는 『나는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바르셀로나행 트랩을 올랐다.그리고 그는 정상에 올랐다. 황영조는 1970년 3월22일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초곡리의 가난한 어촌에서 황길수씨(50)와 이만자씨(53)의 2남2녀중 셋째(장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상때부터 고기잡이를 해온 어부였고 어머니는 물질하는 해녀였다. 넉넉지 못한 살림때문에 쌀밥을 구경하기 어려울정도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황영조가 처음 운동을 시작한것은 국민학교 4학년때였다.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영향으로 씨름선수가 됐다.그리고 근덕중에 진학해서는 사이클선수가 됐다.가족들은 반대했지만 황영조가 고집을 부려 관철시켰다. 황영조의 운명을 바꿔놓은 육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강릉명륜고 1년때인 지난 87년.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강희창감독이 기숙사제공·학비전액면제라는 조건으로 육상부가입을 권유했고 사이클처럼 위험하지도 않다는 말에 그의어머니도 쾌히 승낙했다. 처음에는 5천m선수로 뛰었으나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1년만에 학교를 휴학하고 제주도 외삼촌집으로 내려가고 만다. 그러나 황영조는 그곳에서 힘든 밭일을 하면서 『마라톤에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한다.중학교때 삼척군 5㎞단축마라톤에서 우승한 경력이 결심을 도왔지만,오늘의 황영조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m68㎝·56㎏의 다부진 체격,거친 파도를 이겨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지구력과 스피드,자맥질하는 어머니가 물려준 보통사람 두배의 폐활량등 황영조의 마라토너로서의 자질은 천부적이었다. 입문 5개월만인 88년 경부역전마라톤에서 최우수신인상을 차지했고 89년 경호역전마라톤에서 3개구간 우승을 휩쓸며 대회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어 고교1인자로 떠오른다.89년 전국체전에서는 10㎞단축마라톤마저 석권,한국마라톤의 「희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90년 정봉수감독(코오롱)의 끈질긴 설득으로 코오롱에 입단,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기량이 급상승,그해 경부역전대회에서 실업강호들을 제치고 MVP로 뽑혀 대성을 예고했다. 이어 91년 3월 연습삼아 출전한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2분35초의 호기록으로 일약 국내정상급 마라토너로 부상했다. 첫도전한 마라톤풀코스에서 자신도 놀란 성과를 올린 황영조는 이때부터 한국마라톤의 숙원인 「10분벽돌파」를 겨냥한다. 91년 7월 영국 셰필드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우승(2시간12분41초)에 이어 92년 2월,황영조는 일본 벳푸­오이타국제대회에서 마침내 10분벽을 깨뜨리며 2시간8분47초의 경이적인 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의 쾌거를 예고한다. 이후 그는 매주 3백60㎞씩을 달렸다.쉬는 날을 빼면 하루 70㎞씩을 달린 셈이다.이러한 살인적 훈련이,난코스로 알려져 세계톱랭커들마저 머뭇거린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코스를 아무 거리낌없이 질주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마라톤풀코스 도전 4번만에 세계를 제패,한국마라톤의 숙원을 푼 황영조는 평소 세가지의 꿈을 키워왔다.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고,지난 88년 이후 4년간 요지부동인 세계최고기록(2시간6분50초)을 갈아치우며,세계적인 마라톤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 꿈의 첫번째가 달성됐다.마라톤에 인생을 걸기로 한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의 영광을 뒤로 하고 두번째 꿈을 향해 내달을 것이다. 『도전앞에 불가능은 없습니다.반드시 세계최고기록을 바꿔 놓겠습니다』 황영조의 당찬 다짐이 또하나의 신화를 예고해 준다. ▷황영조 신상명세◁ ▲생년월일=1970년 3월22일 ▲본적및 현주소=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초곡리61 ▲체격=1m68㎝·56㎏ ▲소속=코오롱 ▲학력=삼척근덕중→강릉명륜고 ▲가족사항=황길수씨(50)의 2남2녀중 셋째(장남) ▲취미=음악감상 ▲별명=악바리 ▲주요입상경력=91유니버시아드대회 마라톤1위(2시간12분40초)92벳푸­오이타국제마라톤대회 2위(2시간8분57초)
  • 외언내언

    1982년 3월27일 하오 2시24분.서울 동대문구장.2만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힘차게 던진 시구가 MBC유승안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주심의 손이 번쩍 올랐고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한국의 프로야구가 출범의 고동을 울린 역사적인 순간.◆미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것은 1876년.일본은 1936년.미국은 1백년이 넘었고 일본도 50년이 넘었다.한국은 겨우 10년.역사나 수준으로는 비교가 안된다.때문에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은 제1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지난해 3백82만5천여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올해의 관중동원목표는 4백56만6천여명.◆올시즌 한국의 프로야구가 4일 전국의 4개구장에서 개막,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한다.오는 9월8일까지 총5백4게임이 치러지는데 한팀당 경기수는 1백56게임.6월18일까지 상반기 리그를 끝내고 6월26일부터는 후반기 리그에 들어간다.일본은 한국과 같은날 개막되고 미국은 1주일뒤인 11일 플레이볼 된다.◆올시즌에는 어느팀이 우승하고 어느팀이 돌풍을 일으킬지,또 어느선수가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하고,신인왕에 오를 루키는 과연 누구일지등이 관심의 표적.그뿐만이 아니다.「첫 1천경기출전」「첫 2천루타」「첫 2백호홈런」등의 주인공이 탄생,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게 된다.◆프로스포츠는 경기만 치른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완벽한 팬서비스,현대적인 시설,선수들의 파인플레이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그런데 한국프로야구의 실상은 어떤가.팬서비스는 부실하고 시설도 보잘것없다.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고….출범11년째를 맞는 한국프로야구가 자성하고 개선해야할 대목들이다.
  • 야전서만 32년… “청렴강직 사령관”/불의의 순직 이현부중장

    ◎육사20기의 선두주자로 일관/인맥·파벌 애써 외면… 깔끔한 처신/“순수·무욕의 완벽했던 군인”/동료들/슬픔속에 「부하」들 가족 걱정/부인·딸 예하부대를 순시하기 위해 14일 상오 헬리콥터를 타고 작전지역으로 가다 헬리콥터추락사고로 순직한 육군 제7군단장 이현부중장(50)은 32년간의 군생활을 주로 야전에서만 보낸 청렴강직한 지휘관이다. 훤칠한 키에 냉정하고 깔끔한 성격의 이중장은 명쾌한 업무수행과 해박한 군사지식,남다른 부하사랑으로 부하장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이중장의 육사동기생인 한미연합사령부 부참모장 도일규소장(50)은 이장군의 비보를 접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중장은 육사생도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대표화랑(MVP)에 선발될 만큼 우수했습니다.64년 소위에 임관된 뒤부터 지난해 12월 중장에 진급되어 동기생들 가운데 제일먼저 군단장에 임명될때까지 선두자리를 놓치지 않았죠.순수하고 욕심이 없는 완벽한 군인이었던 그가 가다니 사랑하는 형제를 잃은듯한 느낌입니다』 지난 60년 서울고를 졸업,육군사관학교 20기로 입학한 이중장은 중위때 황영시전육군참모총장이 사단장을 할 당시 전속 부관으로 발탁되었다. 대대장과 연대장을 기계화부대에서 마친 그는 군내에서는 전차와 보병의 협동작전 전문가로 꼽혀왔다. 군대가 인생의 전부였던 이중장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까지 군인과 결혼시켜 군인가족을 이루었다. 80년대 중반 장군에 진급한 이중장은 당시 3군사령관이었던 최세창국방부장관의 정보참모로 근무했다. 이상훈국방장관시절에는 동남아최강의 기계화사단인 수도사단장을 역임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당시 이진삼참모총장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육군본부의 작전참모부장에 발탁됐다. 일선사단장과 육본의 작전참모부장을 역임하는 동안 이중장은 인맥이나 파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군의 기계화·기동화·화력화를 통한 전력증강과 전술개발에만 몰두해 왔다. 독실한 천주교신자인 그는 부대안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는 아주 엄해 「호랑이사령관」이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부하들의 경조사등 사적인 면에서는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장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그는 숙소에 부인 이경주씨(44)와 외동딸 상미양(10·서울서이국교4년)의 사진을 걸어놓고 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선량한 가장이었다. 부하들이 숙소에 놀러왔다가 가족사진을 보고 『왜 딸이 이렇게 어리냐』고 물으면 『손녀딸』이라고 농담을 하며 수줍게 웃곤 했다고 부하들은 전했다. 지난 73년 이화여대 무용과 출신인 이씨와 결혼한 이중장은 가족에게는 자상하고 특히 부부사이 금실이 두터워 주위로부터 「잉꼬부부」라고 부러움을 사왔다. 부인 이씨는 이날 상오11시쯤 서울 서초구 우성아파트17동401호 자택에서 비보를 듣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구들에게 『같이 숨진 부하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했다. 부인 이씨의 몸이 약한데다 생활이 어려워 지난 74년과 76년 두아들을 돌도 되기 전에 영양부족으로 잃고난 뒤 뒤늦게 얻은 딸 상미양은 이날 하오 학교에서 돌아와 『내일 아빠보러 가기로 했지 않느냐』며 울음을 터뜨려 보는이들을 애타게 했다. 도소장등 이장군을 아끼는 지휘관과 평소 그를 따르던 부하들은 『우리군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이중장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되어 안타깝다』며 『이장군의 철두철미한 군인정신은 길이 기억될것』이라고 말했다.
  • 외언내언

    「바둑황제」의 불로초 기운은 아직도 살아 있다. 조훈현,그가 누구인가. 특히 금년 들어서의 부진한 전적으로 해서 「석양의 노장」으로 보는 시각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신문이 주최하는 패왕전의 타이틀을 지켜냈다. 14연패의 위업이다. ◆지난 10월 조 패왕은 제자인 이창호 4단에게 국수자리를 빼앗겼다. 그것도 3 대 0으로 스트레이트의 패배로. 그보다 앞선 지난 2월에는 최고위전 타이틀을 이 4단에게 내준 바 있다. 「황제」의 위엄은 그것으로 이미 금이 갔는데 얼마 전에는 유창혁 4단에게 기성위까지 탈취당해버린다. 1승 1무승부 후 내리 네 번을 지는 치욕스러운 전적으로. 그 때문에 조훈현시대의 종막을 내다보는 견해들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26기 패왕전의 도전 상대는 이 4단도 유 4단도 아닌 장수영 8단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유 4단도 참가했던 패왕전. 거기서 군웅을 젖히고 올라온 장 8단을 맞아 조 9단은 3 대 0으로 물리쳤다. 어쨌거나 조 패왕의 기력을 두고 퇴조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시기상조가 아닐는지. 아직 서른일곱이라는 창창한 나이. 누구에게고 일시적인 슬럼프는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타이틀을 잔뜩 움켜쥔 그는 많은 대국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서 피로가 쌓여 있다. ◆해방 후 우리 기단은 조남철 독주시대로부터 막이 오른다. 여기 제동을 건 기사가 60년대 중반의 현 김인 9단. 70년대 중반에 들어 현 조 9단이 김인시대의 막을 내린다. 그러고서 쌓아올린 철옹성. 서봉수 9단은 아무래도 좀 처진 「쌍벽」이었다. 그래도 타이틀전이다 하면 대체로 조­서전. 바둑 애호가들은 그래서 「새 얼굴」을 15년을 두고 기다려왔다. 거기에 여드름기사 이 4단과 미남기사 유 4단이 지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얼마 전 주요일간지 바둑기자들에 의한 90프로기사 MVP에는 15세 이 4단이 뽑혔다. 압도적 표수로. 아무튼 새해의 각종 기전은 볼 만하게 되었다. 조훈현 아성이 계속 무너져내릴 것이냐,아니면 다시 철옹성으로 굳어질 것이냐 하는 점에서.
  • “보안사를 「국방장관 장악체제」로”/신임 이종구 국방(인터뷰)

    ◎“기구 축소문제는 좀더 검토한 뒤 결정” 신임 이종구 국방부 장관은 8일 상오 취임식을 마친 뒤 접견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안정치 사찰사건의 사후처리방침 등을 밝혔다. 취임 직후 이루어진 이날 회견에서 이 장관은 『보안사는 보안사만 갖는 고유임무와 기능이 있으며 이 임무와 기능이 약화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다만 법과 규정대로 진행되도록 잘 감독하겠으며 장관이 확실히 장악할 수 있는 보안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도망간 이등병 하나가 기밀사항을 폭로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자식이 아버지를,부인이 남편을 고발하는 공산주의사회의 관행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생각해달라. 이등병 한사람 때문에 국가비밀이 들통나서야 되겠는가.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서울대 앞의 카페를 보안사에서 운영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고발에 의해서 국가조직이 모두 들통난다면 이것이 과연 좋은 것이냐. 이것도 하나의 민주화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안사의 기구나 인원감축계획은 없는지. 『필요하다면 기구 축소도 가능하지만 최소한의 임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만큼은 유지되어야 한다. 또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치고 잘하는 점은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보안사가 잘못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오해가 생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즉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 수 있도록 하겠다. 보안사 개편문제는 조금 더 파악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보안사의 일부 기능을 안기부에 이관하는 문제를 검토할 용의는. 『어젯밤 늦게 임명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후임보안사령관 임명에 대해서도 장관으로서의 의견개진 기회도 없었다.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취임 소감은. 『남의 나라 군대가 아닌 우리 군대이니만큼 튼튼한 군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국내외적으로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가안전보장을 책임지는 국방장관에 임명되어 영광에 앞서 무거운 짐을 지는 느낌이다. 국가 안보는 국민의 뒷받침 없이 군만으로는 안된다. 그런한 의미에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지난 6월11일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끝내고 예편한 뒤 만 4개월 만에 국방장관으로 발탁된 이 장관은 12ㆍ12사태 때 동경사참모장으로 재직했으며 그후 20사단장ㆍ수방사령관ㆍ보안사령관ㆍ2군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중키에 마른 체격으로 첫 인상이 날카롭고 다부져 허점을 보이지 않는다. 육참총장 때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위인설관」이 아니냐는 말이 돌자 예편원을 내 진퇴가 분명한 무관이라는 평을 들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북고ㆍ육사 후배다. 육사 재학중 최고인기생도(MVP)였으며 독서를 즐기고 영어와 서예 실력은 수준급이다. 부인 유재숙 여사(50)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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