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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임용예정자도 직무 중 사망 땐 ‘공무원 예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정식 임용되기 전인 ‘공무원 시보임용예정자’도 업무 중 사망했다면 공무원과 동일한 예우를 받게 된다. 최근 충남 아산소방서에서 실무수습을 받다가 교통사고로 숨진 소방교육생들에게 공무원 예우를 해주려고 제도를 개선했는데, 이를 일반직 공무원에게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인사혁신처는 이런 내용이 담긴 ‘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24일 입법예고한다. 그간 공무원 임용예정자는 현행 법령상 공무원이 아니어서 순직 인정 등 공무원 예우를 받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충남 아산에서 소방교육생 2명이 유기견 구조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현행 법령으로는 공무원 예우를 받지 못한다. 그러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일 국무회의에서 “현직 소방관과 똑같이 공무를 수행하다가 참변을 당했기에 사후 예우를 공무원과 같이 해드리는 것이 옳다”며 법령 정비를 지시했다. 이에 소방청은 ‘임용예정자가 실무수습 중 소방공무원과 동일 또는 유사한 직무수행 중 사망한 때에는 그 사망일의 전날을 임용 일자로 한다’는 내용의 소방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지난달 13일 입법예고했다. 또 이 규정 시행일을 ‘3월 1일 이후’라고 부칙에 명시했다. 지난 3월 숨진 문새미·김은영 소방교육생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다. 이 개정안은 차관회의까지 통과했고 이르면 다음주에 열리는 국무회의 안건에 상정된다. 한편 인사처는 공무원 재직 중에 입은 부상과 퇴직 뒤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퇴직 이후 사망한 공무원도 특별승진임용 등 추서가 가능하게 했다. 지금까지는 공적이 아무리 뚜렷해도 퇴직한 뒤 사망했다면 특별승진임용을 할 수 없었다. 또 육아휴직 사용을 활성화하고자 부부 모두가 첫째 자녀에 대해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승진 소요 최저 연수에 포함되는 경력 인정 범위를 기존 1년에서 육아휴직 기간 전체(3년)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구로 ‘물길’ 바꾸자 물난리가 사라졌다

    구로 ‘물길’ 바꾸자 물난리가 사라졌다

    5년간 하수관거 정비 집중침수지도·모터펌프 등 보급공무원 1가구 돌봄도 한몫수해구서 수해 제로구 변신서울 구로구가 수해 제로구(區)로 거듭났다. 구로구의 수해 피해 규모는 2010년 2311가구에서 2011년 496가구, 2012년 95가구로 크게 줄어들었고, 2013년 이후로 단 한 건의 피해도 없다. 구 관계자는 22일 “2011년 7월 강우량이 425.5㎜를 기록해 전년도 추석 강우량 230.5㎜의 2배 수준이었는데 피해 규모는 오히려 적었다. 큰 피해를 입었던 개봉동과 구로시장 일대가 2011년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구로구는 물난리 하면 떠오르는 자치구 중 하나였다. 2010년 추석, 갑작스레 내린 집중호우로 구로구 내 2000여 가구가 침수됐다. 특히 저지대 지역인 구로 2·5동, 개봉 1~3동, 수궁동 등의 피해가 컸다. 오류지하차도에도 누런 황토물이 가득 차 차량운행이 통제됐다. 1호선 오류동역은 지하철 운행이 전면 중단돼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반복되는 수해의 원인을 구는 하수관거(하수를 모아 하수처리장까지 보내는 큰 하수관)에서 찾았다. 배수처리 용량 부족, 하수관 경사불량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구는 기존 하수관거를 확장하고 물이 흘러가는 경로를 변경했다. 또 개봉3동 저지대와 접해 있는 목감천변 도로 하부에 길이 628m의 하수관거를 추가로 신설해 기존 하수관거의 유량 부담을 낮췄다. 공사 결과 개봉동 매봉산 인근의 빗물이 개봉1유수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과거 23분에서 17분 30초로 감소했다.구로구 관계자는 “구는 2012년부터 5년간 288억원을 투입해 지난해 말 ‘오류4배수분구 하수관거 종합정비사업’을 완료했다. 하수관거 용량이 초과돼 배수 마비, 역경사 역류, 경사불량 흐름 저하가 일어났는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구로구는 ▲수해 지역 정보를 담은 침수지도 작성 ▲침수 피해 가구 공무원 돌봄서비스 ▲모터펌프, 방수판, 모래주머니 보급 ▲건축사협회와 반지하 주택 합동 안전점검 ▲빗물받이 관리자 지정제 등 다양한 예방정책을 펼쳤다. 특히 공무원 돌봄서비스는 사업 첫해인 2011년 총 5657가구에 공무원 638명을 배치했으나 현재는 1인당 1가구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올해 606가구에 602명을 배치했다. 이들은 담당 가구에 재난 정보를 전달하고 침수 예방활동을 독려한다. 구로구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수궁동, 오류2동 일대 오류2배수분구, 개봉1동 개봉배수분구, 가리봉 배수분구 등 3개 배수분구의 하수관거 종합정비도 2022년까지 차질 없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6.13 판세 분석-서울시 기초단체장] 現구청장 vs 前시의원 vs 前경찰서장… 與 강세지역 쟁탈전

    [6.13 판세 분석-서울시 기초단체장] 現구청장 vs 前시의원 vs 前경찰서장… 與 강세지역 쟁탈전

    박겸수 민주당 후보 3선 도전 야 후보들 “정체된 지역 바꾸자”서울 강북구는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강세 지역이다. 민선 1~6기 구청장 대부분이 민주당 계열 출신이다. 물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승리를 거머쥔 적도 있다. 김현풍 전 구청장이 8년 동안 3~4기 강북구를 이끌었다. 하지만 민선 3기 선거는 민주당 표가 둘로 나뉘면서 한나라당에 승리가 돌아간 측면이 컸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두 번을 제외하고 민주당 계열이 지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민주당 박겸수(59) 현 구청장, 한국당 이성희(62) 전 서울시의원, 바른미래당 채수창(56) 전 강북경찰서장이 표밭을 다지며 주민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박 예비후보는 8년 만에 링 위에서 새로운 선수를 맞이한다. 2010년 박 후보는 8만 2708표(59.31%)를 얻어 김기성(5만 6731표·40.68%) 전 서울시의장을 꺽었고, 2014년 리턴매치에서도 박 후보가 7만 9901표(52.34%)를 획득해 6만 812표(39.84%)를 얻은 김 전 의장의 도전을 재차 물리쳤다. 지난달 20일 일찌감치 민주당 공천이 확정된 박 후보는 지난 8년간의 구정을 정리하며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도전자 이 예비후보는 강북구의원(2010년), 서울시의원(2014년)을 차례대로 거쳤고, 이번에는 구청장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시절의 경험을 살려 강북구를 관광 도시로 재탄생시킨다는 게 그의 약속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난 8년간 정체된 지역을 바꾸겠다는 각오다. 지난번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채 예비후보는 바른미래당에 입당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강북구청장 후보] “법적 선거비 절반 아껴 국가에 반납…깨끗하고 신뢰받는 지자체 운영 꿈”

    [강북구청장 후보] “법적 선거비 절반 아껴 국가에 반납…깨끗하고 신뢰받는 지자체 운영 꿈”

    “반값 선거를 해서 세금을 더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채수창 바른미래당 예비후보가 먼저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말했다. 22일 채 후보에 따르면 구청장 후보들은 법적 선거비용을 1억 7500만원까지 쓸 수 있다. 이 가운데 8750만원만 사용해 세금을 아끼겠다는 거다. 선거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데 후보자가 돈을 아껴쓰는 만큼 세금 투입을 안 해도 된다. “돈 안 드는 선거를 하려고 합니다. 나랏돈이라고 보존되는 금액을 다 쓰는 것은 또 다른 세금 낭비 아닙니까. 최대한 아껴서 반값 선거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나라에 반납하는 거죠. 세금을 더 좋은 곳에 쓰도록 하는 게 공직을 오래한 사람의 자세라고 봅니다. 경찰 조직에 32년간 있으면서 청렴하고 소신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강북구를 깨끗하고 신뢰받는 지자체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채 후보는 2010년 7월 강북경찰서장 시절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실적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파면된 그는 2012년 2월 복직했으나 한동안 보직을 받지 못하다가 화순경찰서장, 112 종합상황실장 등을 지냈다. 일선 경찰서장이 상급 지휘라인인 경찰청장에게 전면적으로 반기를 든 사건이라 대내외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당시 검거 실적주의가 있었습니다. 구속을 얼마나 많이 시키는지가 승진의 기준이 된 것이죠. 담당 지역이 아닌 청량리, 영등포 등으로 수배자를 잡으러 다니고 분위기가 요란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전국이 실적주의 광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고,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입니다. 저는 조용하고 무난하게 승진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혁신적이고 새로운 강북구를 만들겠습니다.” 자연스레 ‘새로운 강북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금해졌다. 채 후보는 북한산의 관광자원화를 첫 번째 공약으로 꺼냈다. “북한산을 관광자원화해서 산에서 돈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역사문화관광도시라는 구의 현재 타이틀을 산악관광도시로 바꾸겠습니다. 북한산경찰산악구조대와 함께 세계 산악구조대회 경진대회 이벤트를 개최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채 후보는 강북구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주민들을 만나 보면 삶 자체가 나아진 게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심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에 나서겠습니다. 부지런하게 발로 뛰어 주민들을 만나겠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강북구청장 후보] “북한산케이블카·수유역 쇼핑몰 관광산업 육성 ‘통 큰 변화’ 이끈다”

    [강북구청장 후보] “북한산케이블카·수유역 쇼핑몰 관광산업 육성 ‘통 큰 변화’ 이끈다”

    “생동감 넘치는 강북구를 반드시 만들겠습니다.”이성희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는 22일 수차례 ‘변화’를 강조했다. 박겸수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8년은 순탄했지만 큰 변화 없이 시간만 흘러갔다는 평가다. 순탄하다고 말하니 잘했다는 평가로 들렸다. 하지만 그건 아니란다. “박 후보의 구정을 8년 동안 지켜보니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입니다. 색깔 없이 구정을 운영했다는 거죠. 태극기 달기 운동, 청결강북 등의 사업이 아니라 이제는 생동감 넘치는 강북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역의 관광화를 통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겠습니다. 서울시장, 부시장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지역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후보는 ‘강북구의 통 큰 변화, 통 큰 이성희가 해내겠습니다’를 선거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로 정했다. 실제 강북구는 4층 이하의 건물만 건설할 수 있는 자연녹지지역이 구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해 개발에 제약이 크다.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는 관광산업 육성을 위한 첫 번째 단추다. 이 후보는 2011년 강북구의원 시절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고, 지속적으로 케이블카 설치 운동을 전개했다. “구의원 시절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계속 반대했습니다. 구청장이 돼 우이동으로 북한산 케이블카를 유치하고 주변의 관광 인프라를 개발해 강북구의 발전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디딤돌을 놓겠습니다. 세수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이와 함께 이 후보가 내세운 공약 중 하나가 40년 된 구청사의 이전이다. 이전 장소로 계획한 곳은 북한산 자락에 있는 파인트리 콘도 부지다. 시행사가 부도를 맞고 시공사인 쌍용건설마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2012년 공사가 멈춘 곳이다. “구청을 파인트리로 이전하거나 관공서와 상가가 함께하는 방식의 리모델링을 추진하겠습니다. 지금도 매년 2억~3억원의 개보수 비용이 현 구청에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현재 수유역 근처 노른자 땅인 구청 자리에는 대형 쇼핑몰을 유치해 젊음의 거리를 조성하겠습니다.” 이 후보는 20여년간의 지역 활동을 토대로 인물론을 내세울 예정이다. “강북구 생활체육협의회장을 지냈고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구의원, 서울시의원까지 했습니다. 구를 알아야 시를 알고, 시를 알아야 구를 알 수 있습니다. 강북구의 동맥경화를 뻥 뚫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관광 활성화, 꼭 이뤄 내겠습니다.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강북구청장 후보] “가족캠핑장·예술인촌 추진 사업 흐지부지 안 되게 잘 마무리할 것”

    [강북구청장 후보] “가족캠핑장·예술인촌 추진 사업 흐지부지 안 되게 잘 마무리할 것”

    “구민이 주인 되는 행정을 일관되게 펼쳐 나가겠습니다.”박겸수다운 답이 날아왔다. 22일 ‘3선에 성공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을 던진 직후다. 박 예비후보는 매일 새벽 북한산, 우이천 등을 걸으며 주민과 하루의 시작을 함께해 왔다. 취임 직후인 2010년부터는 ‘열린 구청장실’을 운영해 매일 오후 2~4시 민원인을 만났다. 주민들의 생각이 다양해지는 가운데 맞춤형 행정을 하기 위한 노력이다. “주민은 구정의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관은 도울 뿐이죠. 주민을 만나면 제가 항상 ‘아이고 심부름꾼 왔소’라고 말을 합니다. 민선 5~6기 주요 사업인 역사문화관광도시, 청결강북도 모두 주민과의 대화 속에서 나왔고, 저는 행정 시스템에 적용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앞으로도 주민과 발맞춰 나가겠습니다.” 자연스레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궁금해졌다. 박 후보는 민선 5~6기에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 ‘청소년 유해업소 근절운동’ 등에 힘썼다. “임기 동안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등 역사문화관광벨트 조성이 탄력을 받았습니다. 사업 마무리를 잘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교육, 복지, 안전, 행정, 청결 등 분야를 나눠 구정을 해 왔는데 내실을 다지겠습니다. 계획 및 실행 단계에 있는 사업인 우이동 가족캠핑장·진달래 어울림숲 조성, 너랑 나랑 우리랑 스탬프 힐링투어, 예술인촌 마련 등이 제대로 정착될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돌아서면 꽝이 돼 버리지 않을까요.” ‘3선’을 강조하는 박 후보에게 ‘3선 피로감’에 대해 물었다. 흔한 질문이지만 민선 이후 지역 내 3선 구청장이 없었기에 궁금했다. 민선 1~2기(1995~2002년)는 장정식 구청장, 민선 3~4기(2002~2010년)는 김현풍 구청장이 강북구를 이끌었다. 박 후보는 오히려 3선의 필요성을 재차 역설했다. “전직 구청장들은 재선에서 다 그만뒀습니다. 그래서 사업들이 흐지부지된 측면이 있었죠. 주민들을 만나면 ‘사업을 완성시켜라’라는 목소리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 후보는 4·19혁명을 언급했다. 2013년부터 매년 ‘4·19혁명 국민문화제’를 개최할 만큼 박 후보가 애착을 갖는 부분이다. “4·19혁명의 세계화와 재평가는 역사문화관광도시와 연관돼 있죠. 지난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에 열리는 60주년 기념식 참석을 약속했습니다. 강북구가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4·19혁명을 알리는 데 지금처럼 앞장설 예정입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구본무 회장, 마지막 길도 ‘조용히’···유해는 곤지암 인근 숲에 수목장

    구본무 회장, 마지막 길도 ‘조용히’···유해는 곤지암 인근 숲에 수목장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22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최근 병세가 악화하자 가족에게 ‘조용한 장례’를 주문했던 구 회장의 유지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지켜졌다.이날 구 회장의 유족과 친지는 오전 8시쯤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비공개로 발인제를 진행한 뒤, 운구를 위해 장례식장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이후 8시 30분쯤 유족들이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운구하는 과정이 공개됐다. 구 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이 보이기 시작하자,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족 일부가 “너무 아까워… 어떡하면 좋아…”라며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구 회장의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건 맏사위 윤관 블루벤처스 대표였다. 윤 대표를 필두로 6명의 직원이 구 회장의 관을 들고 리무진 장의차로 향했다. 이들은 과거 구 회장을 모시던 비서를 비롯한 ㈜LG 소속 직원들이었다. 그 바로 뒤를 구 회장의 외아들이자 후계자인 구광모 LG그룹 상무가 따라갔고, 유족과 허창수 GS그룹 회장·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범LG가(家) 친지들 100여명이 그 뒤를 따랐다. 구 상무는 부친의 관이 장의차에 실리는 과정을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봤다.이윽고 관이 장의차에 실린 뒤 뒷문이 완전히 닫히자 구 상무를 비롯한 유족들이 목례로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유족들의 맨 앞줄에는 구 회장의 동생들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이 서 있었다. 이후 구 상무와 사위 윤 대표가 장의차에 탑승하자 구 회장의 관을 실은 장의차가 느린 속도로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이를 바라보던 구본능 회장이 눈물을 글썽였고 일부 유족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발인식이 끝났다. 발인식에는 LG(하현회)·LG전자(조성진)·LG유플러스(권영수)·LG화학(박진수)·LG디스플레이(한상범)·LG생활건강(차석용) 등 그룹 계열사 부회장단도 참석했다. 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구 회장과 1945년생 동갑내기이자 연세대 동문으로서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박 회장은 지난 20일 빈소가 차려진 날부터 이날 발인까지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찾아 구 회장의 마지막 곁을 지켰다. 이날 발인제부터 장의차가 장례식장을 떠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0분이었고, 이 중 취재진에 공개된 부분은 3분 남짓 진행된 운구 과정이었다. 이후는 가족들만 장지로 이동해 나머지 장례 절차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의 장례는 화장한 뒤 그 유해를 경기도 광주 곤지암 화담숲 인근 지역의 나무뿌리 옆에 묻는 ‘수목장’ 형태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상주인 구 상무는 부친상을 치른 뒤 현직인 LG전자 B2B사업본부 ID사업부로 복귀할 예정이다. 그는 다음달 29일 열릴 ㈜LG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계기로 경영 전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삼성·SK ‘반도체 수탁생산’도 세계 투톱 나선다

    삼성·SK ‘반도체 수탁생산’도 세계 투톱 나선다

    올 연구소 추가… 세계 2위 도전 SK하이닉스도 유상증자 마무리 中공략 위한 합작회사 설립 진행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1·2위인 삼성전자, SK 하이닉스는 주문형 수탁생산인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선두권으로 도약하겠다는 포석이다.파운드리는 생산라인 없이 반도체 설계만을 하는 기업으로부터 설계 도면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해 넘겨주는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대만 UMC에 이어 파운드리 분야 4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5월 시스템LSI 사업부에서 파운드리 분야를 따로 떼어내 ‘파운드리 사업부’를 신설한 데 이어 최근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문 내에 파운드리 조직을 추가했다. 지난 1분기 실적발표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올해 100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해 글로벌 업계 2위로 올라서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월 경기 화성 캠퍼스에 극자외선 노광기(EUV) 전용 생산라인 공사를 시작, 내년 하반기 완공 후 2020년 본격 가동되면 7나노급 이하 초미세 공정기술 확보로 대만과의 매출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최고 수준인 10나노미터(㎚·10억분의1m) 이하 반도체 회로 선을 그릴 수 있는 EUV 설비를 통해 성능과 집적도가 더 높은 고난이도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의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위탁생산하는 TSMC의 지난해 세계 시장 점유율은 51.6%, 매출액 322억달러로 삼성전자의 약 7배에 이르나, 이를 만회할 계기가 마련되는 셈이다. SK하이닉스도 파운드리 강화에 발을 뗐다. 파운드리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0.2%에 불과하지만, 지난 2월 파운드리사업부인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84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마무리하는 등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 D램 생산공장 단지에 합작회사 설립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크게 확대된 데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측면에서 파운드리 시장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우이천 범람 예방하는 강북

    서울 강북구가 오는 10월 15일까지 침수 피해로 인한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풍수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한다고 21일 밝혔다. 별도의 풍수해 재난안전대책본부를 통해 철저히 사전 대비를 하고, 피해 발생 시 신속한 대처 및 복구를 하기 위해서다. 구는 본부를 중심으로 단계별 비상근무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 내 22개 부서와 13개 동주민센터가 협력해 24시간 상황실을 유지한다. 특히 갑작스런 호우로 인한 하천 고립사고 예방을 위해 우이천 산책로 출입시설에 진입 차단 시설을 가동 중이다. 차단 시설은 상황실에서 원격으로 신속한 개폐가 가능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 구 관계자는 “침수 피해 우려 50가구를 돌봄 대상 가구로 지정해 사전 시설 점검 등 집중적인 관리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버스야, 성교육을 부탁해~

    버스야, 성교육을 부탁해~

    서울 영등포구가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아동성교육 ‘아하! 해피버스팅’을 오는 11월까지 운영한다.영등포구는 “해피버스는 성교육 전용버스로 버스 내부에 각종 성교육 도서, 영상자료, 교육 도구들이 비치돼 있어 아이들이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에 관련된 지식을 배울 수 있다. 버스가 지역 내 15개 초등학교로 직접 찾아간다”고 21일 밝혔다. 프로그램은 해피버스 차량에 탑승해 태아 발달모형 관찰, 임신 체험복 입어보기, 아기 안아보기 등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교구를 활용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체험형 성교육을 진행한다. 또 교실에서 진행되는 성폭력 예방교육에서는 성범죄의 위험성과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지도한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난임치료 휴가 29일부터 최대 3일… 근속 6개월 넘으면 육아휴직 가능

    오는 29일부터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등 난임치료를 위한 휴가가 신설되고, 근속 1년 미만의 신규 입사자도 육아휴직이 가능해진다. 정부는 21일 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령안 29건, 일반안건 4건을 심의·의결했다. 이번에 의결된 남녀고용평등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오는 29일부터 노동자는 난임치료를 위한 휴가를 연간 최대 3일간 쓸 수 있다. 이 가운데 최초 1일은 유급휴가를 적용할 수 있다. 난임치료 휴가를 원하는 노동자는 휴가 시작 사흘 전까지 사업주에게 신청하면 된다. 또 근속 6개월 이상 노동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사업주는 이를 의무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기존 육아휴직 신청 요건인 근속 1년 이상을 완화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1.05명이라는 최악의 인구 감소를 경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의 난임치료 휴가는 모성보호와 함께 출산율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6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경비 66억 9000만원, 해양경찰청 청사 이전 경비 115억 9900만원을 지출하는 내용의 경비 지출 안건도 심의·의결했다. 오는 6·13 지방선거 때 전국 12개 지역에선 국회의원 재·보선도 함께 치러지며, 해경 청사는 올해 안에 정부세종청사에서 인천 송도국제도시 청사로 돌아간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운영비 등 15억 4600만원, 세월호 희생자 배상금 등 69억 7200만원을 일반예비비에서 지출하는 안건도 함께 의결했다. 병역의무 부과 통지서를 모바일 앱으로도 전달할 수 있게 하고,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입영일 30일 전까지 본인에게 송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한 병역법 시행령 개정안도 의결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라이프 톡톡] 공고 출신 9급, 3급까지 하이패스…도전하는 자, 관운도 따르리니…

    [라이프 톡톡] 공고 출신 9급, 3급까지 하이패스…도전하는 자, 관운도 따르리니…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승진이 빠른 보직을 위주로 거쳤고, 도움을 주는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게 관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희망 되고 싶어 서한순(56) 인사혁신처 심사임용과장은 1981년 9급 공무원에 임용됐다. 당시 나이 만 18세. 고등학교 담임 교사의 권유로 공무원시험을 봤다. 마음은 고시를 보고 싶었다. 서 과장이 다녔던 기계공고는 특성화고라기보단, 당시만 해도 중학교 때 반에서 1~2등 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쳐 입학하는 ‘특목고’였다. 그러나 경제적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았다. 37년이 지난 지금 서 과장은 지난달 부이사관(3급)까지 승진했다. 지방직 9급 공무원 출신이 중앙 인사 핵심부처에 정착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는 20일 “9급 지방직 공무원 출신으로서 고시 및 경력 출신들과 경쟁하는 데 여러모로 열악하겠지만 고위공무원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며 “부족하지만, 9급 출신 특성화고 후배들에게 발자취가 되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 여천군(현 여수시) 돌산읍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서 과장은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두 차례 전입시험을 거쳤다. 1988년 장성군청에서 전남도청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와 1994년 전남도청에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로 옮길 때다. 첫 전입 시험에선 수석으로, 두 번째 시험에선 3등을 했다. 매 시험 경쟁률은 10대1을 넘었다. 서 과장은 “도청에 와서 일해 보니 지방 안이 아닌 국가 정책을 해 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퇴근하면 내무부 전입시험 공부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내무부 첫 근무지는 지방행정연수원(현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교육담당이었다. 이후 방재국, 자치제도과 등을 거쳐 2000년 초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일하게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자치행정과에 발령받았다. 이때 당시 최인기 장관의 눈에 띄어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수행비서는 관행적으로 행정고시 출신 초임 사무관들이 받는 보직이었다. 서 과장은 “당시 중앙부처 수행비서 출신 모임 회장을 맡았는데, 어느 부처에서도 협업을 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지방에서 중앙으로… 장관 수행비서로 발탁 이후 행자부 인사부서 4년 등을 거쳐 5급으로 승진했고, 서기관(4급) 승진 후 충북도로 부임해 ‘2014 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조직위원회’ 운영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2014년 말 인사혁신처에 합류하며 당시 최대 이슈였던 공무원연금개혁TF 팀장을 맡았다. 이후 노사협력담당관과 인사조직과장을 거쳐 현 심사임용과장에 올랐다. 서 과장은 “TF 근무 당시 끝없이 기나긴 동굴을 걷는 느낌이었지만, 사회적 대타협 등 개혁 타결이 된 이후 보람되고 배울 게 많았던 시기였다”며 “이후 사이가 안 좋아진 공무원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할 임무가 있었던 노사협력담당관을 지냈던 시점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야간대·석사·와세다大 박사과정 끝없는 배움 서 과장은 고졸로 입직했지만, 현재는 일본 와세다대 공공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상태다. 장성군청 근무 시절 호남대 야간대학에 진학해 ‘주경야독’으로 졸업장을 받았고, 5급 승진 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다. 이처럼 서 과장이 배움을 끊임없이 이어온 데에는 행정 분야 전문성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일본 유학 시절 취미로 즐겼던 테니스와 서예는 공직을 떠나 많은 사람과 교류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 고졸 출신, 자기개발·목표의식 남달라야 서 과장은 이제 막 입직한 9급 공무원 후배들에게 “고졸 출신은 목표를 달리 세워야 한다.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도 좋으니 자기개발 분야를 정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취미 생활도 꾸준히 가져 인맥을 키울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길러 나가는 게 알찬 공직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적자 쌓여도 10년 연구 독려… 23년간 ‘글로벌 LG’ 키워냈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구본무 회장이다.’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1] 글로벌 창업주… 매출 5배 껑충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2] 선구자… 2003년 지주사 전환 일찌감치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 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3] 정도…“편법 1등은 싫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 드문 ‘현역병’ 출신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제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 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입사 10년 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다시 10년 뒤에야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시대를 열었다. 구 회장은 이후 “1등을 해야한다”고 줄곧 강조하면서도 “편법은 싫다”고 단호히 주문했다. [4] 끈기…LCD·2차전지 1위 우뚝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액정화면(LCD) 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5] 눈물…외환위기 때 반도체 내줘 시련과 굴곡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 반도체 빅딜을 사실상 막후에서 조정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쪽은 눈길도, 발길도 주지 않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거렸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급한 자금을 일부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을 매각하는 등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6] 몰입…조류도감 펴낸 새 전문가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섭게 집중하는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냈을 정도로 새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지만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도 있었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모든 사업장에 비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7] 마곡…4조 투자 융복합단지 꿈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였다.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다. 투자비만 4조원이다. “마곡에서 수만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격식 차리지 마라, 연명치료 안 받겠다”… 마지막 길도 소탈했다

    “격식 차리지 마라, 연명치료 안 받겠다”… 마지막 길도 소탈했다

    고인 유지 따라 조문·조화 사양 계열사 별도의 분향소도 없어 이재용·양승태·홍석현 등 조문 文 “재계 훌륭한 별… 안타깝다”떠나는 길도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재벌 총수이면서도 소탈한 면모로 유명했던 고(故) 구본무 회장은 눈을 감기 전 “격식을 차리지 말라”고 했다. “연명치료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가족은 20일 조용히 ‘작은 거인’의 산소호흡기를 뗐다.●구 회장, 조부처럼 뇌종양 투병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3층 1호실은 조용했다. 고인의 유지를 받아들여 LG그룹과 유족이 “가족 외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고 일찌감치 밝혔기 때문이었다. 몇몇 그룹에서 보낸 조화가 도착하기도 했으나 LG 측은 모두 돌려보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조화는 받았다. 문 대통령은 조화에 이어 장하성 정책실장을 보내 조문을 대신하게 했다. 장 실장은 “문 대통령이 ‘존경받는 훌륭한 재계의 별이 가셨다. 갑자기 이렇게 돼 더 안타깝다’고 했다”고 전했다.LG그룹은 “장례는 비공개 3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했으며,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아 했던 고인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빈소 유리문에도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장남 먼저 보낸 93세 구자경 회장 칩거 앞서 구 회장은 최근 병세 악화 이후 가족에게 미리 조용한 장례를 주문했다고 한다. 부친인 구자경(93) 명예회장이 생존해 있는 점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구 명예회장은 빈소에는 나오지 않고 자택이 있는 천안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생전 해외 법인 순시나 출장 때에도 비서 한 명만 수행하고 현지에 의전 인력이 마중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이런 뜻에 따라 LG는 그룹이나 계열사 차원의 분향소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 발인도 비공개로 가족들끼리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도 외부에 알리지 않을 방침이다.LG그룹 관계자는 “고인이 지난해 4월 뇌종양 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아 여의도 LG트윈타워 집무실에도 자주 출근했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12월 두 번째 수술 이후 올 들어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고인의 할아버지인 구인회 LG 창업주도 62세에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재계 “큰 별 잃었다” 애도 구 회장 임종 직후 상주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는 친적과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구 상무의 친아버지이자 고인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오후 3시 넘어 빈소를 찾았다. 부인 김영식씨와 딸 연경·연수씨도 빈소를 지켰다. 조화는 GS그룹 허창수 회장, LS그룹 구자열 회장, LIG그룹 구자원 회장 등 LG 관련 기업과 LG그룹 임직원 일동 명의의 것만 눈에 띄었다.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음에도 오후 들어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고모(이숙희)로 인해 LG와 사돈 관계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후 4시 10분쯤 빈소에 도착했다. 이 부회장은 수행원 없이 혼자 빈소 안으로 들어간 뒤 짧게 조문을 마치고 떠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범LG가인 구자원 LIG 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 구본걸 LF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의 발길도 이어졌다. 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는 “큰 별을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구광모 체제’ 떠받치는 6인회… 구본준은 계열 분리 가능성

    ‘구광모 체제’ 떠받치는 6인회… 구본준은 계열 분리 가능성

    ‘40세 총수’ 승계 과도기에 계열사 CEO 6인 조력자로 LG ‘징검다리 승계론’ 일축 구 부회장 조만간 분가 관측LG가 새로운 ‘구광모 체제’를 안착시키기까지 주요 계열사의 전문 최고경영인(CEO)인 부회장 6인회가 떠받치며 조력하는 과도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구광모 상무가 40대로 젊어 부회장이나 회장 직함을 바로 달기 부담스러워서다.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주요 계열사를 이끌며 구광모 체제를 떠받칠 것으로 보인다. 고(故) 구본무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작은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은 2~3년 안에 일부 사업을 떼어내 계열 분리를 하거나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LIG, LS그룹 등 형제 및 형제 자손들이 계열분리를 해 왔다. 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 온 구 부회장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해 왔다. 그러나 LG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고 일단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구인회 창업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서 독립시켜 LIG그룹을 만들었다. 또 구 회장의 6형제 증 넷째부터 막내인 태회·평회·두회 형제는 LS그룹으로 분가해 나갔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 역시 조만간 분가해 별도 경영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LG그룹이 장자 승계 때 묵시적으로 적용해 온 ‘70세 룰’도 구 상무의 향후 승진 시점과 맞물려 관심거리다. 앞서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 때 당시 50세인 장남 구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올해 40세인 구 상무가 회장 승계를 하려면 아직 10년은 남았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구본무 회장 빈소, ‘비공개 가족장’에도 각계 조문 잇달아

    구본무 회장 빈소, ‘비공개 가족장’에도 각계 조문 잇달아

    20일 별세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는 비교적 조용하고 간소했다. 구 회장의 유족이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을 치르기로 하면서 공식적으로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LG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구 회장은 이날 아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고, 통원 치료를 하다가 최근 상태가 악화해 입원했었다. LG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하고 겸손하게 살아온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며 비공개 가족장을 치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유족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 3층 1호실에 비공개로 빈소를 마련한 상태다. 빈소 입구에는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를 바란다’는 큼직한 문구가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날 오후 각계에서 조문이 시작됐다. 첫 외부 조문객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었다. 그는 이날 오후 4시쯤 수행인 없이 홀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약 10분간 머문 뒤 자리를 떴다. 그 뒤를 이어 범 LG가(家)인 허씨·구씨가 인사들이 줄지어 빈소를 찾았다. 구자원 LIG그룹 회장·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구본완 LB휴넷 대표·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과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이 조문을 위해 빈소를 방문했다. 비공개 가족장이 원칙이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 홍석현 한반도 평화만들기 이사장 겸 중앙홀딩스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장하성 정책실장도 빈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LG그룹 관계자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 외 조문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며 “조문 오신 분들은 돌려보내기 어려워서 받았지만, 고인의 뜻을 헤아려 마음으로 애도를 해주시길 부탁한다”고 거듭 밝혔다. 통상 빈소에서 눈에 띌 법한 조화는 유족 뜻에 따라 거의 없는 상황이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와 LG·GS·LS·LIG 등 범LG가가 보낸 조화에 한해서만 수용해 빈소 내부에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내 재벌총수 평균 수명 77세…최장수 회장은?

    국내 재벌총수 평균 수명 77세…최장수 회장은?

    국내 재벌총수들의 평균 수명은 77세인 것으로 나타났다.20일 재벌닷컴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자산 5조원 이상 60개 대기업 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52곳을 대상으로 총수를 지냈다가 별세한 창업주와 직계 총수 36명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77세로 파악됐다. 이날 73세로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평균보다 4년 정도 짧게 산 셈이다. 조사 대상 재벌총수들이 타계한 연령대는 70대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80대 10명, 60대와 90대 각각 5명 등 순이었다. 50대와 40대는 각각 2명, 1명으로 집계됐다. 가장 장수한 총수는 2002년 타계한 영풍그룹 창업주 장병희 전 회장과 지난해 별세한 구태회 LS전선 전 명예회장으로 각각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별세한 이동찬 코오롱그룹 전 회장이 92년을 살아 그다음으로 오래 살았다. OCI(옛 동양제철화학) 창업주 이회림 전 회장과 이원만 코오롱그룹 전 회장도 모두 90세에 별세해 장수한 편에 속했다. 그러나 SK그룹 모태인 선경화학섬유의 창업주 최종건 SK그룹 전 회장은 1973년 가장 젊은 나이인 47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태광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호진 회장의 큰 형인 이식진 태광그룹 전 부회장도 2004년 5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한화그룹 전신인 한국화약 설립자 김종희 전 회장은 1981년 59세로 숨져 당시 29세이던 장남 김승연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과 구인회 LG그룹 전 회장, 박두병 두산그룹 전 회장, 박정구 금호그룹 전 회장, 이운형 세아그룹 전 회장은 모두 60대에 숨을 거뒀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명예회장은 1987년 노환과 폐암 합병증으로 유명을 달리하며 재벌총수 평균 수명만큼 살았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전 회장과 장경호 동국제강 전 회장, 이장균 삼천리 전 회장도 모두 평균 수준인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 밖에 허준구 LG건설 전 명예회장, 이재준 대림산업 전 회장, 최기호 영풍그룹 전 회장, 박성용 금호그룹 전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전 회장, 이임룡 태광그룹 전 회장, 장상태 동국제강 전 회장은 70대에 운명했다. 이수영 OCI그룹 전 회장도 지난해 향년 7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며 70대에 타계한 총수에 포함됐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86세인 2001년 노환으로 숨졌다. 조중훈 한진그룹 전 회장, 구평회 E1 전 명예회장, 구두회 예스코 전 명예회장, 금호그룹 창업주인 박인천 전 회장, 신용호 교보생명 전 회장, 정인영 한라그룹 전 회장, 세아그룹 창업주 이종덕 전 회장,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전 회장, 박경복 하이트맥주 전 회장 등도 80대에 유명을 달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광모 체제’를 떠받치는 6인회..‘작은 아버지’ 구본준은 분가할 듯

    ‘구광모 체제’를 떠받치는 6인회..‘작은 아버지’ 구본준은 분가할 듯

    LG가 새로운 ‘구광모 체제’를 안착시키기까지 주요 계열사의 전문 최고경영인(CEO)인 부회장 6인방이 떠받치며 조력하는 과도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하현회 LG㈜ 부회장과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에서 유임되는 등 여전히 건재하다. 구 회장의 동생이자 구 상무의 작은 아버지인 구본준 부회장은 2~3년 안에 일부 사업을 떼어내 계열분리를 하거나 독립할 가능성이 높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LIG, LS그룹 등 형제 및 형제 자손들이 계열분리를 해 왔다.재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온 구 부회장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LG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장자가 가업을 승계하고 일단 승계가 시작되면 선대 형제는 모두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구인회 창업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지난 1999년 LG화재를 그룹서 독립시켜 LIG그룹을 만들었다. 또 구 회장의 6형제 증 넷째부터 막내인 태회·평회·두회 형제는 LS 그룹으로 분가해 나갔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 역시 조만간 독립해 별도 경영체제를 만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LG그룹이 장자 승계 때 묵시적으로 적용해온 ‘70세 룰’도 구 상무의 향후 승진 시점과 맞물려 관심거리다. 앞서 구자경 명예회장은 만 70세 때 당시 50세인 장남 구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올해 40세인 구 상무가 회장 승계를 하려면 아직 10년은 남았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뚝심과 끈기의 CEO’ 구본무 회장 눈감다

    ‘창업주는 구인회 회장이지만 글로벌 창업주는 20일 타계한 구본무 회장이다.’ 고(故) 구본무 회장은 LG를 명실상부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1995년 2월 22일 LG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또 자동차부품,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이른바 성장사업에 LG가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도 구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실제 구 회장 임기 중 LG그룹의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 기준)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했다. 임기 중 GS그룹과 LS그룹, LIG, LF 등 굵직한 기업군을 연이어 계열분리 한 뒤 거둔 성적임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다. 현재 지주사 체계를 완성시켜 LG그룹의 안정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구 회장이었다. LG는 2003년 3월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식이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만해도 이런 선진적 지배구조를 도입한 건 LG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이었다. 구 회장은 재벌 총수 중 보기드문 현역이다.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보병으로 입대해 만기 재대했다. 미국 애슐랜드대와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 19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 과장으로 입사했다. 구 회장은 한국전쟁 이후 회사를 일군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다. 입사 10년만인 1985년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는 데 이후 10년뒤 회정에 3세 경영을 시작한다. 재계에선 구 회장을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리더’로 평한다. 한번 목표를 세우면 과정이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통신사업 등이다. 1998년 말, 구 회장은 당시 LG전자와 LG반도체가 각각 운영하던 LCD사업을 하나로 모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했다. IMF 구제금융으로 나라 전체가 어려웠던 시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에 전격 투자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투자는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 기업인 LG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중대형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선 LG화학의 2차전지 역시 뚝심과 끈기의 산물이다. 1991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미래 신성장동력을 고민하던 중 영국 출장길에 충전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를 접했다. 이후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를 연구하도록 지시했고, 1996년에는 전지 연구 조직을 LG화학으로 이전해 10년 넘게 연구에 공을 들였다. 현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는 등 성과가 나오지 않자 그룹 안팎에서는 ‘사업을 접자’라 의견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구 회장은 단호했다. 현재 LG화학은 중대형 배터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차전지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됐다. 만만찮은 시련도 있었다. 1999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을 겪으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게 넘겨줘야 했다. 1979년 금성반도체를 시작으로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반도체 사업이기에 구 회장은 눈물을 머금어야 했다. 1999년 1월 6일 청와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구 회장은 긴 고민 끝에 “국가 경제를 위해 LG반도체를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더 큰 위기는 2003년 말 LG카드 사태였다. 당시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그룹은 물론 나라 경제가 휘청할 정도였다. 구 회장은 사태 수습 과정에서 사재를 털어 일부 유동성을 막은 뒤 급기야 LG투자증권 등을 금융사업을 모두 접었다. 구 회장은 한번 빠지거나 좋아한 분야에는 무서운 집중을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한 전문가다. 실제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였다. 중학교 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해 치료해 준 것이 새 와의 인연이었다. 새만큼 소문난 야구광이기도 해 LG 야구단의 초대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늘 사람 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었다고 한다.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이 공장 순시 등을 도는 날엔 전 사업장에 사전 준비에 비상이었다고 한다. 노년의 그가 마지막으로 깊은 애정을 기울인 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 프로젝트다. 4조원을 투자해 2만 2000명의 연구인력이 집결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를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 “마곡에서 수만 명의 젊은 인재를 육성해 기술들과 산업간의 융복합을 이루겠다”던 노년의 꿈은 2020년 완성된다. 마지막 꿈을 불과 2년 앞두고 그는 눈을 감았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5·18 38주년 기념식] “80년 5월 광주는 참혹함 그 자체… 의혹 없이 진실 밝혀져야”

    [5·18 38주년 기념식] “80년 5월 광주는 참혹함 그 자체… 의혹 없이 진실 밝혀져야”

    희생자 가족·항쟁 유공자 무대 올라 눈길 5·18 해외에 알린 외국인 유족들도 참석 이낙연 총리 “9월부터 진상규명위 가동…책임져야 할 사람들 진실의 심판 받을 것”5·18 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식이 18일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오월광주, 정의를 세우다!’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기념식은 항쟁 유공자와 희생자 가족이 추모·기념 공연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기념사에서 진실 규명을 강조했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은 추모공연과 헌화·분향, 경과보고, 국민의례, 기념사, 기념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의 순으로 50분간 진행됐다. 5·18을 주제로 제작된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 김꽃비와 김채희씨가 기념식 진행을 맡았다. 추모공연에는 5·18 당시 시민 참여 독려를 위해 길거리방송을 진행했던 전옥주(본명 전춘심)씨가 출연해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또 5·18 때 행방불명된 이창현(당시 8세)군과 창현군을 찾아 헤맨 아버지 귀복씨 사연을 영화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의 명장면을 모아 현장뮤지컬로 각색한 ‘씨네라마’에 담아 5·18의 과정과 의미를 재조명했다. 광주 서구 양동에 살았던 창현군은 1980년 5월 19일 집을 나간 뒤 사라져 1994년 5·18 행방불명자로 등록됐다. 이 총리는 기념사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부터 38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끝내지 못한 일이 있다”며 “첫째는 진실규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리는 “요즘 들어 5·18의 숨겨졌던 진실들이 새로운 증거와 증언으로 잇따라 나오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제정된 5·18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가 9월부터 가동되면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아무런 의혹도 남기지 않고, 진실을 완전히 밝혀 줄 것이라고 저는 믿는다”고 역설했다. 그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사실을 왜곡하고 광주의 명예를 훼손하기도 했다”며 “진실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역사의 복원과 보전’도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옛 전남도청이 5·18의 상징적 장소로 복원되고 보존되도록 광주시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역사자료를 더 보완하도록 광주시 및 유관단체들과 협력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이날 기념식에는 5·18 진실을 해외에 알린 외국인 유족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알려진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5·18 당시 광주 기독병원 원목으로 지난해 별세한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틀리도 기념식에 참석했다. 광주에서 선교사로 목회 활동을 했던 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버라 피터슨과 ‘2018광주인권상’ 수상자인 난다나 마나퉁가 신부 등도 초대됐다. 마사 헌틀리는 기념식에 직접 출연해 우리말과 영어를 섞어 가며 자신의 남편과 우리나라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편지를 통해 “제가 본 5월 광주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였지만 광주 시민의 인간애는 뜨거웠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기념식은 참석자 모두 손을 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마무리됐다. 참석자들은 마지막으로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서울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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