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 “기부 부각돼 부담…난, 무대쟁이죠”
“지금 이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공연뿐인 것 같아요.”
최근 잇단 기부로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가수 김장훈(40). 그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위기’로 진단했다. 가수로서 앨범이나 공연이 아닌 그 밖의 것들이 더 크게 부각되는 데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물론 감사하긴 한데, 한편으론 답답해요. 처음 기부 사실이 알려졌을 땐 적응이 안 되고 두려워 매일 술을 찾았어요. 괜한 안티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하지만 어차피 제가 만든 상황이고, 도움의 손길이 시급한 곳들에 비하면 그런 걱정은 급한 게 아니라고 마음을 겨우 다잡았죠.”
●목회자 어머니 “궂은 일 꼭 챙겨라” 가르침
기부문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 그의 행동은 신선한 충격이 되기에 충분했다. 자신은 월세방에 살면서 10년간 40억원 넘게 기부해 화제를 모은 그는 태안 기름유출 현장에 5억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5000만원 등 최근까지도 기부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엔 일산의 한 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어머니의 가르침도 한몫했다.
“평소 장례식장에 무척 많이 가요. 어머니께서 ‘좋은 일에는 안 가도 궂은 일에는 꼭 가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시간이 될 땐 조문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저 또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고, 본의 아니게 어린 시절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많이 봤어요. 그러다 보니 당장 내일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오늘 하루를 최대한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 1991년 데뷔해 ‘나와 같다면’‘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노래만 불렀지’‘난 남자다’ 등의 히트곡을 발표한 그는 특유의 내지르는 창법과 개성있는 목소리로 사랑받아 왔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의 진가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유명한 공연장에서 빛난다.
●신기술 무대 접목 관심… KAIST에 2년 연속 쾌척
총 2000회 공연 돌파를 앞두고 있는 그는 지난 14일 고양을 시작으로 2년간 총 300회에 달하는 소극장 공연의 긴 여정을 떠난다.“소극장 공연의 매력과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을 결합시킬 거예요. 밴드와 스태프들을 위해 18인승 전국투어 버스도 마련했어요. 제 공연을 보시고 ‘나이 먹어서 저런 것 까지 하냐.’는 분도 계시는데, 무대에선 나이도 잊고 소년처럼 변해요. 우리 같은 ‘무대쟁이’들에게 무대는 즐거움과 숭고함, 경건함. 그 모든 것을 의미해요.”
객석의 관객들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부모형제에게도 하지 못한 속얘기를 털어놓고 싶을 만큼 친밀하게 다가오다가도 문득 수천명이 한꺼번에 날선 비판자로 느껴진다는 그다.
“무대는 정말 체계적이고 과학적이에요. 제가 KAIST에 2년 연속 기부한 것도 원래 제 꿈이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신기술을 공연에 접목시키는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에요. 적은 인구에 작은 땅, 부족한 자원을 지닌 우리에게 기술개발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요? 요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는데, 힘내시라는 제 마음의 표현이었어요. 무엇보다 KAIST 교수님들이 무척 좋아하시던데요?”
●“난 영원한 딴따라, 사고 한번 쳐야 되나?”
그의 인터넷 미니홈피에는 ‘청년이 서야 조국이 선다!’라고 쓰여 있다.“제가 평소 존경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말에서 착안했어요. 언제 어디서나 물질에 휘둘리거나 비겁하지 않는 ‘청년정신’으로 살자는 제 다짐이죠.”
가수는 ‘영혼을 파는 직업’이라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무대에 오르는 김장훈. 남의 행복도 좋지만, 이젠 본인의 행복도 찾을 나이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독신주의는 아니라는 답이 돌아온다.“아무래도 요즘 제 이미지가 무거워진 것 같아요. 전 원래 그 정도의 인간이 안 되는데, 떼밀려서 좋은 사람이 된 부분도 있어요. 김장훈은 본래 그냥 기행적인 구석이 있는 딴따라일 뿐인데 말이죠. 아, 정말 사고라도 한번 쳐야 되나요?(웃음)”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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