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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끼만행」 저행했던 부대/판문점시위 북한군 정체는

    ◎대대급… 인민무력부서 관할/32㎝ 강철 뚫는 로켓포 무장 지난 5일부터 3차례나 정전협정을 어기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무력시위를 했던 북한군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군사전문가들의 판단으로는 지난 76년 8월18일 「도끼만행사건」을 자행한 부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부대는 당시 판문점내 미루나무 가지 제거작업을 하고 있던 우리측에 도끼를 마구 휘둘러 미군 장교 2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미군 4명과 카투사 4명에게 중상을 입혔었다. 이 북한 경비부대는 1개 대대급으로 개성에 주둔하면서 고도의 훈련과정을 거친 숙달된 요원으로 구성돼 있고 인민무력부의 직접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이 부대의 장교들 대부분은 퇴촌 군관학교 출신으로 장교 가운데 일부는 판문점에도 파견돼 경비임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상황이 발생하면 증원되는 부대 가운데 하나. 4백여명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82 및 60㎜ 박격포 ▲RPG­7 대전차 로켓포 ▲B­10 대전차 및 대인용 82㎜비반충포(무반동총) ▲12.7㎜ 중기관총 ▲7.62㎜ 경기관총 등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 무력시위 때 소지했던 60㎜ 박격포는 무게 14㎏으로 1.5㎞ 밖에 있는 표적을 공격할 수 있어 판문점내 우리 경비병력을 사정권으로 하고 있다.이들이 5일 1차투입 때 동원한 RPG­7 대전차 로켓은 무게가 7㎏으로 개인이 쉽게 휴대할 수 있고 5백m 이내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북한군은 이 RPG­7 대전차 로켓포로 32㎝의 강철장갑을 뚫을 수 있어 건물 속에 피해있는 우리 경계병까지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이밖에 북한의 7.62㎜ 기관총은 유효 사거리가 6백m여서 판문점 남쪽 지역 전체가 사정권에 들게 된다.북한은 이같은 중화기로 무장한 부대를 투입,우리측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황성기 기자〉
  • 긴박의 DMZ­북 전방부대의 엇갈린 행태

    ◎북한군 지휘체계 “이변징후”/최전방 일부 초병 「경무」 완장 계속 착용/부대따라 다른 행동… “지도부 균열” 관측 북한군의 지휘체계에 균열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일 하오 5시 관영 중앙방송을 통해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에서의 유지관리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했다.1시간 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관할하는 북한군은 「선언」에 따라 정전협정에 의무화된 「경무」라는 완장을 떼내고 근무를 서는 것이 목격됐다.정전협정 파기와 관련,북한군이 행동에 돌입했음을 뜻하는 첫 표시였다.이후 5일부터 사흘동안 하루 1차례씩 북한은 JSA에 중무장한 병력을 투입,무력시위를 했다.사전에 계획된 치밀한 각본에 따라 군 조직이 움직이는 듯했으나 「이변」이 생겼다. 7일 낮 1시쯤 서부전선에서는 북한 최전방 초소에서 근무하는 경비병 12명이 초소에서 나와 우리측을 향해 『군사분계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외쳤다.이들 사병 가운데 9명은 정전협정에 규정된 대로 「경무」라고 씌어진 완장을 착용한 것으로 목격됐다.내부통제가 어떤 나라보다도 철저한 북한에서,특히 최전방 초소의 경비병이 북한군의 지침과 다른 행동을 한 것은 북한 지도부에 문제가 있다는 추정을 제기하게 했다.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이같은 사실에 대해 『북한군 전체에 정전협정 파기선언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북한군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지도부에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북한은 최근 유엔에 식량지원 재개를 요청했다.하지만 이는,군부의 반대로 외부의 식량지원을 더이상 받지 않겠다고 한 종전의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이 김정일과 군부의 갈등인지 또는 군부 내부의 갈등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북한 내부의 균열이 상당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 증거로 보기에 충분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황성기 기자〉 ◎한·미 4자회동 무러 논의할까/북의 판문점 무력시위 의도 분석/평양측 도발 공동제재방안 논의 북한의 판문점 무력시위에 대비하는 한미 양국의 군사·외교적 대응태세가 긴밀하게이뤄지고 있다. 공로명 외무부장관과 이양호 국방부장관,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대사,게리 럭 주한유엔군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은 10일 아침 7시30분 한남동의 외무장관 공관에서 조찬회동을 갖는다.공장관이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이나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는 자리는 있었지만,이같이 양국의 외교·군사분야의 고위당국자가 4자회동을 갖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최근의 판문점 사태가 한미 양국의 외교·군사적인 면에서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날 회동에서는 우선 북한이 지난 4일 이후 끊임없이 비무장지대와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분석하게 된다.이를 토대로 참석자들은 한미간의 공동대응책을 논의하게 된다.양국의 고위당국자들은 북한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않고,날마다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미북간의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의도는 명확히 알고있기 때문에,그에 대한 대응책의 선택은 우리측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이날 회동에서는 단순히 의례적인 의견 교환이 아니라,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력한 철퇴를 내리는 양국의 공동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도운 기자〉
  • 위기의 DMZ­평양의 잇단 도발 속셈

    ◎“정전협정 파기” 행동으로 과시/강수로 “한반도 긴장”… 미 눈길 끌기/성과없으면 「제3의 도발」 가능성 북한이 정전협정파기를 선언한지 하루만인 5일 무장병력 1백30여명을 공동경비구역인 판문점에 투입한 데 이어 6일에도 무장한 2백여명을 투입한 것은 4일의 「선언」이 행동으로 옮겨졌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이번 선언의 핵심인 미·북간 직접 군사접촉을 위해 한반도에서의 고조된 긴장상황을 대외,특히 미국측에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는 미·북 미사일회담,유해송환 협상,대미·대일 관계개선 등 북한에 시급한 현안에 유리한 입지를 다져놓고 평화협정 체결 협상에 미국 등을 끌어내려는 저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양국은 북한의 일방적인 「선언」에도 불구,정전협정이 여전히 유효하며 따라서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정전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한 북한·유엔측 접촉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미·북간 군사접촉의 성사는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북한의 정전협정 무력화기도는 ▲군정위·중감위 등 정전협정 관리기구의 무력화 ▲한국을 배제한 미·북간 평화보장체제 수립주장 ▲미·북간 직접 군사접촉을 유도하기 위한 비무장지대내 긴장조성 행위 등 3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군 당국은 북한이 1개 소대 규모인 30∼40명을 개인화기로 무장시켜 판문점 북측지역에 2차례 투입했던 지난해 2월과는 달리 중대급 규모에 개인화기는 물론 박격포·대전차화기·경기관총 등 중화기로 무장한 점을 중시하고 있다. 「선언」이 있은 직후인 4일 하오 6시부터 정전협정 규정이 명시한 완장을 착용하지 않고 근무를 서는 등 일련의 「시나리오」에 따라 단계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6일 다시 2백여명의 병력을 투입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불법 무장병력투입에서 「성과」를 얻지 못하면 크고 작은 불법적 행동을 계속 자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군 당국이 예상하는 북한의 도발은 ▲비무장지대내 군사분계선 월경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푯말 제거 ▲비무장지대내 아군 민정경찰 임무 방해 ▲해상에서 우리 어선의 총격납치 등이다. 우리 군은 북한측의 의도적인 군사긴장 행위에 대해 「교전규칙」에 따라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교전규칙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에 침투할 경우 신원확인절차에 불응하거나 도주하면 사살하고 ▲아측에 포격을 가하면 대응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자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군 관계자들은 불투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전례없이 강경한 조치를 잇따라 감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발적인 군사충돌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황성기 기자〉 ◎북군 판문점 2차투입서 철수까지/박격포 등 중무장 2백60명 전술 훈련/유엔사,북 1차진입후 즉각 비상경계 중무장한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다시 나타난 시각은 6일 하오 7시쯤.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5일 있었던 북한군의 「도발」에 대비,비상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경계병은 다시 2백60여명의 북한군 병력이 중무장하고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이날 판문점에는 안개가 짙게 깔렸으나 북한군의 「도발」임이 분명했다. 이들이 타고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 9대도 목격됐다.이들은 박격포,기관총,무반동총 등 공용화기와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있었다.이들은 모종의 훈련을 실시한 뒤 하오 10시20분부터 도보 및 차량으로 철수했다. 이에 앞서 비슷한 공용화기로 중무장한 북한군 1백30여명은 식목일인 5일 하오 6시쯤 판문점 북한경비구역에 투입됐다. 이날 북한군이 투입한 병력은 축소된 1개 중대규모인 1백30여명. 게다가 권총만 휴대할 수 있는 규정을 무시하고 이들은 개인화기인 AK소총은 물론 대전차화기인 60㎜박격포 1문,82㎜ 무반동총 2정,40㎜ RPG­7 2정과 기관총 4정을 지니고 있었다.유엔사는 6시40분쯤 비상을 발령했다. 6시50분쯤 북한군은 남북회담이 열려온 북한측 판문각 오른쪽 지점의 1초소와 2초소에 임시진지를 구축하고 박격포와 기관총 등을 설치한 뒤 훈련에 들어갔다.날이 어두워진 8시쯤북한군 30여명이 판문각 왼쪽 5초소 옆 「72시간 다리」를 통해 철수하고 30분 뒤인 8시30분쯤 나머지 병력도 철수를 마쳤다.〈황성기 기자〉
  • 일,내년발사 통신위성 3호/“TV프로 50개채널 서비스”

    ◎안테나 값싸 아주국 문화침투 가속 이토츄(이등충)상사와 미쓰이(삼정)물산,스미토모(주우)상사,닛쇼이와이(일상암정)등 4개 종합상사는 공동으로 출자한 「일본 새터라이트 시스템즈(JSAT)」를 통해 오는 96년부터 50개의 TV프로그램을 시청자에 서비스할 계획이라고 일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25일 보도했다. JSAT는 이를 위해 내년 8월 쏘아올릴 통신위성(CS)3호기에 새 프로그램을 디지틀방식으로 중계할 수 있는 중계기 8대가량을 탑재할 방침이며 프로그램공급업자의 선정및 시청자로부터의 요금징수등을 위해 새 회사를 설립한다. JSAT는 서비스개시후 4∼5년안에 2백만가구이상의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인근 아시아국가들을 대상으로한 서비스도 개시함으로써 문화침투우려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현재 통신위성2호기를 사용해 CS방송을 실시하고 있는 방송국과 민방,케이블TV사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는 기업에 적극 참여를 권장할 방침인데 서비스대상 프로그램은 축구등 스포츠,바둑등 전문채널,음악과 TV게임,가입자가 시청한 분량만 요금을 내는 채널등 다양한 방식이 선보인다. 일반시청자들은 안테나와 전용수신장치를 갖추어 TV에 연결하면 수신이 가능하며 기기의 구입가격은 5만엔(39만원)∼7만엔(55만원)으로 예상되며 월시청료는 3천엔(2만3천원)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JSAT가 통신위성을 통한 TV프로그램서비스를 본격 개시하면 지상파방송·방송위성(BS)을 사용한 위성방송,CATV등 매체간의 경쟁관계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BS가 아날로그방식으로 하나의 중계기로 한개의 프로그램만 중계할 수 있는데 비해 CS는 디지틀방식이어서 하나의 중계기에 압축시키는 기술로 여러 채널을 중계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 평시작전권/내년 12월 한국에/한국위기땐 미 신속억제군 투입

    ◎한미 군사위 회의 6·25이후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해온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이 44년만인 94년 12월1일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 이에따라 늦어도 내년 12월부터는 한국의 합참의장이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돼 한반도방위의 한국화를 촉진시킬 수 있게 됐다. 또 지난해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국측이 제의했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경비책임의 한국군 인수는 유엔사령부(UNC)가 존속할 때까지 현재처럼 미군측이 계속 담당하게 된다. 이양호합참의장과 존 샬리캐시빌리 미합참의장은 3일 상오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양국 군사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5차 한미군사위원회의(MCM)를 열고 이같이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한반도 방어전략 강화책으로 전쟁발발시 미해군에 속해있는 미태평양사령부 7함대의 작전통제권을 한미연합사에 귀속시키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한반도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될 때 미국이 공군 및해군전력위주의 신속전개 억제전력(FDO)을 즉각 한반도에 투입시키고 유사시 증원되는 미전력계획을 계속 보완키로 했다. 내년도 팀스피리트훈련 중단여부 문제와 관련,이날 회의에서 양국 합참의장은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변화여부를 더 지켜본 뒤 결정하자는 유보적인 입장에 동의했으나 최종결정은 양국 국방장관회담과 SCM에서 확정키로 했다. 4일 양국 국방장관회담과 SCM에서는 이에따라 북한핵문제와 관련돤 내년 팀스피리트훈련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합참의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핵해결의지가 아직 미흡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만큼 현단계에서 내년 팀스피리트훈련중단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내년 팀스피리트훈련중단여부에 대한 결정을 유보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 판문점경비 대폭 강화/미 경비원이양도 연기/한·미

    ◎남북대화 중단 등 영향 한미양국은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에 대한 경비태세를 강화키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리스카시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이필섭합참의장과의 정례조찬회동에서 당초 지난해 한미군사위원회(MCM)합의에 따라 오는 9월말까지 JSA경비대대장을 포함한 경비책임 일체를 한국군에 이양할 방침이었으나 최근 남북대화 중단등 한반도 상황을 고려,당분간 그 책임을 미군이 더 맡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이 지역내 미군병력 수준은 현재의 1백9명에서 1백69명으로 늘어나게 됐는데 이와관련,주한미군측은 이 병력은 따로 보강되는 것이 아니고 한반도 기존병력중에서 이동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JSA는 현재 약 6.5대 3.5의 비율로 구성된 한미양국군 1개대대병력(5백여명·대대장 미군중령)이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군과 24시간 대치하고 있는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 판문점 유엔측 경비책임/미,한국에 내년 인계 제의/국방부 국감답변

    미국은 현재 주한 미제2사단이 맡고있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안의 유엔군측 경비책임을 한국군이 조기 인수할 것을 제의해왔다고 국방부가 22일 밝혔다. 최세창국방장관은 이날 상오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 7∼8일 이틀간 열렸던 제24차 워싱턴 한미연례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측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경비책임을 오는 93년6월까지 한국군이 완전 인수할 것을 제의했다』고 공개했다. 최장관은 이어 『미국의 이같은 제의에 대해 우리측은 유엔군사령부(UNC)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UNC가 존속하는 한 미국이 판문점 경비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기본입장아래 신중히 협의해 나갈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남쪽 유엔군측지역과 북쪽 공산군측 지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를 유엔군측 지역의 경비는 76년부터 주한미군이 담당해왔다.
  • 미의 판문점경비 한국군이양 제의 의미(해설)

    ◎유사시 미군 자동개입 인계철선/신중협의 거쳐 단계추진 바람직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은 군사분계선상에 세워진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을 축으로 하는 반경 4백m의 원형지대로 54년 11월8일 유엔군과 공산군의 협정에 따라 쌍방 35명씩의 장병들이 공동경비하게 됐다. 76년 8월18일 북한측의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하기전까지만해도 이 지역안에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지지 않아 양측 경비병이 자유롭게 통행했으나 충돌 방지를 위해 그해 9월16일부터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할했다. 당시부터 공동경비구역안의 북측지역은 북한군이,유엔군측지역은 주한미군이 주축이 된 한미 양국군이 경비를 담당해 왔다. 최세창국방부장관이 밝힌 JSA경비임무의 한국군이양은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풀이할 수 있으나 유엔군사령부(UNC)가 존속하는한 JSA의 경비책임은 미군이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주목되고 있다. JSA경비를 한국군이 맡는다는 것은 주한 미군의 역할이 주도적역할에서 보조적 역할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지역은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해주는 인계철선의 역할을 하고있어 한미간의 신중한 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국방당국자들의 의견이다. 한미양국은 지난해 10월1일 휴전이후 미군이 맡아온 서부전선 휴전선1마일에 대한 경계임무를 한국군이 맡도록 합의함에 따라 1백55마일 전 휴전선에 대한 경비를 모두 한국군이 맡게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휴전선 경비에 이어 JSA경비책임문제가 한미간에 긴밀히 협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조치들이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 전휴전선 155마일 한국군이 관할/10월 1일부터

    ◎판문점 경비 미군 철수/유엔 공동경비 구역만 제외/대북 감시초소 1곳도 인수 서부전선 판문점지역의 비무장지대 1.6㎞의 철책선 관할권이 휴전 38년만에 한국군에 이관된다. 이로써 미군이 한국전쟁후 처음으로 최전선에서 모두 철수하고 한국군이 전휴전선을 관할하게 된다. 국방부는 19일 휴전 이후 주한미군이 경비해온 판문점지역 비무장지대중 공동경비구역(JSA)을 제외한 1백55마일 전휴전선의 경비관할권이 오는 10월 1일 정오를 기해 한국군에 인계된다고 발표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이에따라 이 지역의 경비관할권이 주한미2사단에서 한국군으로 이양되는 10월 1일 정오 현지부대에서 경비관할권 인수·인계식을 갖고 이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할 예정이다. 경비관할권이 넘어오는 지역은 판문점 남쪽의 동서 1.6㎞,남북 1.6㎞에 이르는 비무장지대(DMZ)로 그동안 미제2사단 1개대대 병력이 인계철선(Trip Wire)개념으로 상징적인 경비책임을 맡아왔으나 그 책임이 한국군에게 넘어옴으로써 1백55마일 전휴전선의 경비를 한국군이 전담하게된다. 국방부 당국자는 『주한미군의 최전방 초소로 한국군 인수 지역안에 있는 미군의 콜리어초소는 한국군이 인수하게 되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군사정전위원회 본부지역에 있는 오울레트초소는 종전대로 주한미군사령부 관할에 있게되어 인계철선 효과는 유지된다』고 말했다. 휴전선 1백55마일의 경비임무를 한국군이 전담하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군구조개편에 의해 합동참모본부를 재편한 이후 한국군이 한국방위의 주도적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가 있는 직경 8백m의 공동경비구역 경비책임을 유엔군사령부가 계속 유지토록 한 것은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상태하에서도 현행 휴전체제가 유지되고 유엔군사령부의 위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한반도 방위 한국 이양의 신호/판문점 경비 미군 철수 의미

    ◎미군,철군계획 따라 보조역할 전환/공동경비,구역도 한국군 증원 방침 휴전선 1백55마일 전 지역의 경계임무가 오는 10월 1일 건군43주년을 맞아 한국군에 이관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에 따른 한국방위의 한국화과정이라고 풀이할 수있다. 한미양국은 지난해 주한미군의 1단계 7천명 감축직후부터 한반도에서의 한미양국 군의 역할분담을 긴밀히 협의해왔다. 미군의 역할을 주도적역할에서 보조적역할로 전환하고 한국군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방안을 연구했다.그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가 1백55마일의 군사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를 미군이 담당하고 있던 유엔군측 군사정전위원회 본부책임지역(MACHA)1마일(1.6㎞)의 관할권을 한국군이 맡기로 합의한 것이다.군사분계선(MDL)상에 위치한 군사정전위원회 본부책임지역은 판문점공동경비구역(JSA)과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씩 떨어진 가로1.6㎞ 세로4㎞ 넓이의 직사각형의 평야지역이다. 이중 유엔군측 군정위본부지역은 직경 8백m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쪽 갑구지역과 후방지역인 을구지역으로 나뉘는데 바로 이 을구지역에 주한미 보병2사단이 유사시에 대비,인계철선 개념으로 「콜리어」와 「오울레트」 2개 전방초소를 운영해 오고있다. 이 두개의 전방초소는 현재 미2사단소속 1개 대대병력(8백여명)이 후방에 있는 캠프 그리브스에서 전진배치되어 경계근무를 하고있다. 이번에 한국군이 미군으로부터 경계임무를 넘겨받는 초소는 이중 1.6㎞의 철책선 경계를 맡고있는 「콜리어」초소이다. 국방부당국자는 그러나 「오울레트」초소는 군정위본부지역의 유엔군측 갑·을지역에 걸쳐 있어 이번에 한국군이 넘겨받지 않고 미군이 계속 맡아 인계철선으로의 역할을 하게된다고 밝혔다. 이번에 콜리어초소를 한국군이 인수하게 됨으로써 미군은 1백55마일 휴전선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한국군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휴전선 전지역의 관할권을 갖게됐다.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안의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 병력은 미군 1백80명 한국군 1백20명등 3백명 규모이다.그러나 최근 한미간의 군사실무자들은 내년말까지 한국군을 1백명 증원해서 2백20명으로 늘리고 미군은 80명으로 줄여 한국군주도로 경비대를 구성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다. 이 계획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최종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한미야전사령부(CFA)해체와 함께 한미연합사령부의 지상군구성군사령관의 한국군장성보임 등에 합의했기때문에 92년에는 한국방위에 있어 한국군의 주도적인 역할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한반도방위의 한국화가 제도적으로 이룩된다고 하더라도 유엔군사령부가 존속하는한 현행 휴전체제와 유엔군사령부의 위상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을것으로 보인다. 현행 휴전체제는 비록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남북한간의 실질적인 긴장완화조치및 평화적인 제도적장치가 마련될때까지 지속되어야한다는것이 국방당국자들의 주장이다. 이때문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대한 경비업무는 유엔군사령부가 계속 수행토록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판문점 비무장지대 관할권/연내 한국군에 이관

    휴전선 1백55마일 가운데 유일하게 주한미군이 경비하고 있는 판문점 후방1마일의 경비책임이 빠르면 올해말쯤 한국군으로 이관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관할권도 92년말까지는 한국군이 갖게된다. 합동참모본부는 24일 『주한미2사단 1개대대(병력 8백여명규모)가 담당하고 있는 판문점후방의 군사정전위원회 본부지역경비를 한국군이 맡기로 합의했다』고 말하고 『구체적인 인수시기와 방법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13차 한미군사위원회(MCM)에서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판문점지역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중심으로 직경 8백m의 원을 그린 공동경비구역을 갑지역,1·6㎞의 원을 그린 공동경비구역 남쪽 구역을 을지역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을지역안에 1마일의 비무장지대가 있다. 갑지역의 경비책임은 유엔군사령부경비대가 담당하고 있으며 을지역책임은 미2사단이 맡고있다.
  • 미군 유해 11구 발견/북한,정전위에 통보

    북한은 최근 6·25당시 실종된 미군유해 11구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미국측에 통보한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북한은 최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열린 일직장교 회의에서 미군 유해 추가발견 사실을 통보해 오면서 미국 하원 원호위원회 소속의원들이 이를 인수할 것을 요청해 왔다』고 밝히고 『미국측은 그러나 국회창구보다는 군사정전위 등 기존의 창구를 통해 유해를 인수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해 5월 판문점에서 미군유해 5구를 미국측에 전달한 바 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군사정전위가 아닌 국회창구를 통해 유해를 전달하려는 것은 유해전달을 대미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 「7·20 선언」의 의의와 전망(민족대교류:상)

    ◎「분단의 벽」 개방으로 허문다/경제력 바탕,완전개방 향한 전향적 조치/북측 거부 불구 화해 향한 대장정 나서야 45년간 지속되어온 분단의 종식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시계에 들어오고 있다. 7·20 노태우대통령의 「남북간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는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을 분단 반세기이전에 기어코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실천적인 조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8·15 광복절을 전후한 5일간 북한동포들의 남한 전지역 방문허용→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시 남북 교류정례화→남북한 주민의 완전자유왕래 등은 한시적 시범교류를 거쳐 전면 완전자유왕래를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는 북한측이 광복절을 전후한 같은 시기에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범민족대회」를 개최한다는 시기적 일치성과 함께 지난번 제1백50회 임시국회에서 남북교류협력법이 입법되어 교류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실천의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는 훨씬 큰 것 같다. 노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대결지양,화해와 통일을 위한 일관된 정책추진을 계속해왔고 남북한 개방의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고 판단,이같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88년 7·7선언에 이어 유엔총회연설(88.10.18)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89.9.11) 6·29 3주년 특별연설(90.6.29 북한을 통한 항공기 선박 물자의 무제한 허용) 등이 모두 화해와 개방의 일관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 주변및 세계정세의 변화도 이같은 개방조치의 여건을 성숙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련·동구 등의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동서 냉전체제가 새로운 데탕트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특히 베를린장벽의 철폐와 동서독 통일의 현실화가 눈앞에 다가왔으며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 이은 양국 관계정상화를 위한 8월초 모스크바 양국 공식회담 개최합의도 이를 촉진시켰다. 또 미­일­중­소 등 한반도 주변관계국과 영­독­불 등 우방이 한반도의 냉전종식을 지지,지원하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주변환경속에서 노대통령은 우리의신장된 경제력과 함께 북방정책의 잇딴 결실로 민족통합의 주도권을 발휘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민족 대교류의 과감한 개방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 민족 대교류 제의는 북한의 대남 2중전략,즉 대외적 평화공세와 내부적인 대남 교란전술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동요의 공간을 시의적절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함축의미가 있다. 북한 김일성은 올 신년사에서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남북한 사회의 완전개방,자유왕래를 제안했고 최근에는 판문점 북측 지역을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면서도 우리 정부의 개입을 허용치 않겠다는 바탕위에서 남쪽 특정세력의 「범민족대회」 참석을 종용하고 있다. 또 북한은 남북한 고위급회담의 1,2차 본회담의 서울­평양 개최에 일단 합의하는등 성의를 보이면서도 우리 국내 정치상황을 이유로 국회 예비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하는 한편 그들의 매체를 통해 남한 국회해산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2중전략도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개방정책이냐 아니면 대남 교란전술의 지속이냐는 갈림길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고 이 양쪽 정책선택 결정의 딜레머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제의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들의 「평화제의」가 진심이었는지 위장이었는지를 내외에 입증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왜냐하면 민족 대교류 제의는 그동안 북한측이 내놓은 제의를 전폭 수용한 데다 남쪽을 방문하는 북한동포에 대해 남한의 전면개방이라는 보따리를 하나 더 얹어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일 하오 강영훈총리 명의로 오는 30일 이에따른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우리 국민이 북한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신변보장과 무사귀환의 약속을 북한당국으로부터 받아내야만 북한 방문자들에게 남북한 왕래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특별발표에서 노대통령은 남쪽을 찾아오는 북한 동포의 신변보장과 무사귀환 보장을 다짐했기 때문에 북한이 남북교류에 진실된 마음이 있다면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판문점 범민족대회에 전대협·전민협 등의 일부 세력이 참가를 희망하면 정부는 관계절차에 따라 승인을 한다는 방침이나 무엇보다 이들의 신변안전 무사귀환 보장이라는 북한당국의 약속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들 특정 대학생단체뿐만 아니라 이북5도민회,자유수호연맹,재향군인회 등 단체도 이곳에 참가해보겠다고 신청해올 경우 정부가 무조건 거부를 할 수 없으며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당국자가 판문점 공동안전지역(JSA)은 휴전체제의 유지로 긴장완화를 위해 협정으로 설치된 지역인 만큼 이곳에서 선전·선동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고 밝힌 점을 감안해보면 범민족대회 참가만을 목적으로 방북을 신청해올 경우 허용하기가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평양이나 다른 곳에서 민족통일을 진정으로 염원하는 대회를 연다면 이의 참가는 무제한 허용한다는 게 정부방침이다. 북한은 우리의 민족 대교류 제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이날 하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을 통해 「콘크리트장벽 철거」라는 억지주장을 펴며 거부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민족 대교류가 8·15를 전후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졌으며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개방키로 천명했지만 북한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획기적인 개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장래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서독도 63년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한시적으로 열었던 것을 시발로 오늘날 통독의 여건을 마련했음을 상기할 때 이같은 판문점 개방및 남북왕래는 통일로 가는 길에 거쳐야 할 관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이번 제의를 일단 거부했다 해도 꾸준히 개방과 화해를 향해 대장정을 해야 할 것이다.〈이경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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