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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명제 공방/“경제 우선”“개혁 먼저”/민주 실명제 대체입법 토론

    ◎“돈은 돌아야… 음성자금 길터 경기 살리자”/현실론자/“세무조사 등 「핵심」 사문화… 입법화 불가피”/개혁론자 민주당 경제개혁대책위(위원장 유준상)는 27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금융실명제 대체입법 방향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이날 토론회에는 경제활성화 우선론자들이 대거 토론자로 나서 민주당의 당론이 개혁보다는 경제활력 회복에 역점이 두어져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학계에서 초청된 이필상교수(고려대)와 최운렬교수(서강대)도 보복성 개혁논리에 의한 실명제 운용에 반대하면서 비실명자금의 제도금융으로의 유인을 위한 보완책 마련을 강조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유최고위원은 『지난 24일 정부의 보완조치는 결국 기득권세력과 큰손들의 압력에 정부가 굴복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대체입법이 불가피한 이유로 ▲일정금액 이상 모든 금융거래의 국세청 통보 의무화 ▲개인금융정보의 철저한 비밀 보장 ▲긴급명령에 부여된 재무부장관과 국세청장의 재량권 최소화 ▲잦은 보완조치로 인한 5천만원이상실명전환시의 세무조사,5년간 소득세 추징,3천만원 이상 현금인출시 국세청 통보조항 사문화를 지적. ○…정부측 토론자로 출석한 정덕구 재무부 저축심의관(실명제실시단 부단장)은 『법을 고치는 것보다는 실명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가계수표제등 하부구조(infrastructure)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대체입법 반대입장을 개진. 정심의관은 무기명장기저리채권의 발행등을 골자로 하는 지난 24일 정부의 2차 보완책 내용에 관해 언급,『후속조치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실명제 본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민주당의원들의 추가보완책 제시입장에 동감을 표시. 정심의관은 이어 『장기금융채권의 발행은 지하자금을 산업자금화하자는 의도가 아니라 상속세와 소득세를 모두 내면서 채권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자는 것』이라고 설명. 정심의관은 『실명제 추진과정에서 국민들이나 전문가들이 예상못한 부분까지 불안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8·3조치와 단자사및 신용금고 설립,그리고 금융실명제로 이어지는 정부의 특단적 조치의 불가피성을 역설. ○…이필상교수는 『깨끗한 돈이든 검은 돈이든 일단 흐르게 하면서 그 과정에서 점차 건전성을 갖도록 하는 동태적 정화작업이 필요하다』면서 『경제침체를 막고 금융시장 위기에 대비한 보완책으로 지하경제의 음성자금에 대해 일정액의 과징금을 내면 면죄부를 발행하는 확정적 세무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
  • 국·내외 가요계 「레게음악」 열풍

    ◎60년대 자메이카 전통가락에 흑인음악 접목/오락적이기보다 사회고발내용이 주류/국내 80년 「골목길」효시… 최근 「하여가」인기 작열하는 태양,푸르른 바다와 끝없는 모래사장이 연상되는 레게음악이 성하의 가요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레게(Reggae)는 60년대 중반 토속적이고 원초적인 자메이카의 전통음악에 미국의 흑인음악인 리듬 앤 블루스등이 융합돼 탄생한 음악.「레게의 제왕」 보브 마리(Bob Marley)에 의해 소개된 이 음악은 70년대 이후 보편화되었으며 최근엔 영국의 「UB40」,「서태지와 아이들」,「코나」,박중건등 국내외 유명그룹및 가수들에 의해 시도되는등 일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레게는 몇개의 멜로디가 한곡 전체를 지배하면서 계속 반복되는 순환형식의 음악으로 강약이 바뀐 변칙적인 리듬이 특징.구사하는 음악적 내용 또한 통상 오락적이기보다는 사회고발적인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현대 레게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진 존재는 영국의 흑백8인조 록밴드「UB40」.「실업자 구호카드 40번」(Unemployment Benefit 40)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결성된 이 그룹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명곡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레게풍으로 리바이벌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샤론 스톤 주연의 영화 「슬리버」의 주제곡으로도 삽입된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6주째 차지하는등 팝계를 석권하고 있으며 백인 래퍼 스노우가 부른 레게리듬의 랩곡 「Informer」도 상위 랭크되는등 영·미가요계는 바야흐로 레게음악의 전성기를 맞고있다.국내에서 비교적 높은 인기를 누렸던 해외 레게음악 그룹은 70년대 「보니엠」과 80년대 「굼베이 댄스 밴드」등.또한 80년대 초반엔 「블론디」의 레게음악 「The Tide Is High」가 가요계를 풍미하기도 했다. 국내 레게음악의 효시는 80년대 그룹 「장끼들」이 발표한 「골목길」.이 곡은 그후 김현식,방미등이 리바이벌해 성가를 높였다.이어 나미의 레게댄스곡 「보이네」,그룹 「벗님들」에서 퍼커션을 담당했던 김준기의 「사랑은 가도 추억은」등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레게음악은 꽃을 피웠다. 이같은 흐름은 최근까지 이어져 가요계를 강타하고 있다.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요에 랩과 레게,그리고 우리의 전통음악을 조화시킨 이색곡 「하여가」를 발표,경쾌한 자메이칸 랩에 격렬한 「힙합춤」까지 선보이며 인기몰이에 나섰다.또한 CM전문 작곡자 박중건은 레게의 리듬뿐 아니라 가사까지 사회고발적인 내용을 담아 보다 확실한 「레게의 가요화」를 모색하는 가수.돌림노래 형식으로 흥을 돋운 레게풍의 「괜찮은 하루」,소울적인 코러스와 레게풍의 사운드가 이채로운 「아직 늦지 않았어」등을 내놓으며 레게음악의 선두주자로서의 면모를 다하고 있다.이밖에 오석준의 「웃어요」,015B의 「수필과 자동차」,3인조밴드 「코나」의 「그녀의 아침」,최민영의 「선샤인 레게」등도 대표적인 레게곡들로 꼽힌다.이가운데 하와이의 청량한 하늘빛 바람을 뜻하는 「코나」의 「그녀의 아침」은 경쾌한 레게리듬이 가미된 감상용 댄스곡으로 남국의 정취를 만끽하게 한다. 이같은 레게열풍에 대해 SBS라디오국의 윤정수PD는 『현재의 흐름으로 볼때 올 가을엔 보다 보편화된 장르로 자리잡을 것이며 그 색깔도 다양해질전망』이라고 진단했다.그는 또 『레게음악이 우리 정서에 쉽게 와닿는 장르는 결코 아니며 한편으론 이질감까지도 느껴질 수 있는만큼 이 레게리듬을 우리 음악인들이 어떻게 소화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 총력기술전쟁체제 구축하자/이상희 과기자문회의 위원장(일요일아침에)

    지금 미국의 경제가 커다란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미국 경제의 어려움은 미국의 간판급 기업들인 GM사나 IBM,애플,맥도널 더글러스,보잉사등에서 현저히 드러난다. ○적자타개 안간힘 비대한 규모가 가져온 「비경제」의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현재 조직 축소나 통합,감원 등을 통해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GM의 스템펠회장의 경우 95년까지 『7만여명의 사원을 감원하겠다』며 과감한 「GM회생작전」을 폈으나 결국 실패하여 물러나고 말았고,아멕스의 로빈슨 회장이나 IBM의 에이커즈 회장조차도 현재 불안한 처지에 있다고 한다.이처럼 미국기업이 한결같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그러나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MS­DOS」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30대에 미국 최고의 부를 누리게 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지금까지 매출액 신장률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빌 게이츠의 미래를 겨냥한 기술적 안목에 세계는 혀를 내두른다. 사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경제가 장기적인 무역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는 반면 일본의 경우 무역흑자의 대로를 지속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 역시 미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경영 마인드의 차이에 근거한다는 해석이 짙다. 미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현실 문제에 급급한 「이익,관리마인드」가 지배했고,이와 달리 일본 기업들은 과연 어떠한 기술이 장래 부가가치를 가지며 국제 경쟁력의 우위를 확보할 것인가하는 「미래 마인드」,「기술 마인드」가 강했다는 분석이다. 경제문제를 국가 최대과제로 삼고 있는 미행정부가 이런 차이점을 놓칠리 없다.「미래,기술마인드」창출이라는 「빌 게이츠식」전략이 절실해진 것이다. 미행정부는 『기술에 대한 추자는 미국의 장래에 대한 투자다』라고 천명하고 금년초 「미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계획」이라는 「신기술정책」을 발표했다. ○경쟁력 강화 주력 이 신기술정책은 우선 기업이 개발을 회피하는 기술에 대해 국가가 앞장서서 기술개발을 가속화하며,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기술인력이므로 대규모의 고용 창출과 아울러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훈련 등을 정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고도 정보화사회는 급속한 변화와 빠른 「라이프 사이클」을 요구하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력에 대한 지속적인 학습과 더불어 신속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정책 기준에 부합되는 수단과 목표로서 ▲연구개발에 대한 과감한 조세감면및 재정정책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촉진을 위한 「연구용역 지원센터」와 「제조기술 지원센터」의 지원 ▲정보화 사회의 하부 구조(Infrastructure)에 대한 혁신적 지원 ▲미래의 기술기반인 기초과학에 대한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등이 제시되고 있다. 가장 훌륭한 기술 정책은 발명이나 기업활동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그래야만 경제 주체들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자유롭게 발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정부의 이러한 신기술정책은 지금 우리가 특히 주목할만하다고 생각된다. 또하나 미 하원의회에서 지난 5월 통과된 법안도 무척 인상적이다.「미국 기업의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법안」으로명명된 이 법안은 21세기 기술 경쟁력 우위 확보를 가장 중시하고 있는데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기업의 기술개발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그리고 정부 차원의 기술정보 제공 부분이다. 종래 미국 정책이 기업의 기술개발은 기업의 자율성에 맡긴데 비해 오늘의 정책은 기업 기술개발조차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한다는 점이다.이제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외국 경쟁기업의 기술 정보까지도 정부가 제공해주겠다는 것이다.미국의 국가기술경쟁력 우위 확보에 대한 총력전의 강도를 실감케하는 부분이다. ○장기적 안목 필요 이제 우리도 당장의 좁은 현실의 문턱을 넘어 미래와 밖을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정부를 중심으로 기업,노조,대학이 한데 똘똘뭉쳐 「미래,기술마인드」로 총력전을 펼쳐가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우리나라는 아예 몸살을 앓는다』는 말이 있다.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해 우리는 눈을 크게,그리고 멀리 뜨고 기술패권시대의 범국민적인 총력기술전쟁체제를 구축해가야 할때이다.
  • 가정·직장서의 불협화음/「성격유형 검사」로 치료

    ◎한국 심리교육상담센터,일반에 보급 움직임/성격 16가지 분류… 인간관계 유추 시도/인사관리·조직개발·결혼상담에 이용/결혼상대자는 비슷한 성격의 남녀가 적절 부부간에 심각한 불화가 있거나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좋지 않다면 우선 자기자신부터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자신을 먼저 이해하는일은 남을 이해하는 디딤돌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럴때 크게 유용한것이 「엠비티아이(MBTI)검사」다.엠비티아이검사는 자신및 타인의 성격 파악을 통해 실질적인 인간관계에 도움을 주는 성격유형검사이다. 90년대 국내에 본격도입되어 주로 학계와 상담전문가 사이에만 알려졌던 엠비티아이를 최근들어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관심을 끈다.한국심리교육·상담센터(대표 김계현·서울 방배동)는 3월말부터 엠비티아이를 응용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초기부터 주부및 일반인·학생·상담원들의 큰 호응을 얻고있다. 엠비티아이는 미국의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 모녀가 칼 융의 성격유형이론을 근거로 1941년이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한 성격유형지표.서구에서는 70년대후반부터 보급되어 인사관리및 조직개발,결혼상담,카운셀링등 인간관계훈련분야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엠비티아이는 인간의 타고난 성격은 기본적으로 변하거나 변화될수 없으며 나름대로 다른 성격과 중요도를 가릴수 없는 장점을 갖는다는 가설을 전제로 각 개인의 선호방식에 따라 성격을 ▲주의집중과 에너지의 방향을 기준으로 외향형(E)·내향형(I) ▲정보수집의 방법을 기준으로 감각형(S)·직관형(N) ▲판단과 결정의 근거를 기준으로 사고형(T)·감정형(F) ▲행동이행과 생활양식을 기준으로 판단형(J)·인식형(P) 등으로 나눈다.감각형은 사건과 사물을 외부에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태도이며 직관형은 겉으로 드러난것보다는 내면과 이상을 반영시켜 세상을 바라보는 유형이다.판단형은 주위환경을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해가는 형이고 인식형은 주위환경에 자신이 적응해가는 형이라고 할수있다. 이같은 성격유형을 근거로 인간관계를 유추해보면 그 불화원인을 보다 쉽게 알수있다.만약 내향형의 회사원 남성과 외향형의 주부가 부부라면 저녁에 싸움이 날 확률이 더 크다.사교적인 사회활동으로 에너지를 충전받는 외향형과는 달리 내향형은 사회활동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단독적인 내면활동으로 에너지를 충전받기 때문이다.따라서 퇴근후 집에서 쉬어야 하는 내향형 회사원남성은 외향형 주부의 대화시도마저 귀찮게 여길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같은 기본성격유형은 각 유형의 조합으로 보다 복잡한 16개 성격유형으로 갈라진다.16개 성격유형은 직업에서의 성공확률을 점치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도 이용된다.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교육자는 내향·직관·감정·판단형(INFJ),언론인은 외향·직관·감정·인식형(ENFP)이 성공한 비율이 높다.또 자유분방하고 호사가인 ENFP형 언론인은 정반대 성격의 내향·사고·감각·판단형(ISTJ)으로 금융계통에 종사하는 이성에게 호감을 갖는 예가 많다.그러나 상대이성과 조화하려는 특별한 노력이 없다면 결혼상대로는 비슷한 성격의 이성을 고르는게 잘사는 확률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귀띔. 한국심리교육·상담센터의 임승환원장은 『엠비티아이검사는 무엇보다 세상에는 똑같이 소중한 여러 성격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케 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면서 『한국적 토착화의 문제도 있지만 섣부른 성격규정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문자격을 갖춘 상담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철강분쟁 도발” 클린턴비상 확산/미 덤핑 예비판정 파문

    ◎EC·일 등 대응/불 총리 등 “유럽11국 정치적 조치 불가피”/“통상전쟁 서곡”·“추악한 탄압” 잇단 성명 미국 상무부의 수입철강제품 덤핑 예비판정에 대해 해당국 모두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보복을 다짐하는등 세계무역전쟁의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해당사국들은 일제히 이번 조치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제소등 대응조치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는등 그 어느때보다 강도 높게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 철강제품을 둘러싼 이같은 무역마찰은 6년째 타결을 보지못하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UR)의 조기타결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여 세계경제의 앞날을 더욱 험난하게 하고있다. 관련국들의 이같은 대응은 당장의 피해도 피해지만 그보다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클린턴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의 신호탄이라는 시각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보인다. 미국의 이번 조치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나라는 아무래도 유럽공동체(EC)를 중심으로 한 유럽국가들인 것같다. 덤핑 예비 판정을 받은 19개국가 가운데 11개국이 포함돼 있는데다 미국에 연간 10억달러어치를 수출하는등 철강산업의 뿌리가 깊은 EC 7개 회원국 모두가 피해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EC집행위원회의 리온 브리턴 대외무역담당위원은 『미상무부의 조치는 전적으로 부당하고 불균형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 초기에 이뤄진 점에서 불행하고 시의에 맞지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새 행정부로부터 협조적인 접근을 기대하고 있으나 그렇지 못하다면 EC의 모든 권리를 유보하겠다』고 경고했다. 철강제품에 대한 고율의 덤핑예비판정이 GATT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라는 예상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유럽철강업협회는 『미국의 덤핑예비판정은 상식밖의 처사』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EC집행위원회는 GATT제소등 모든 법적·정치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프랑스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보복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미국의 덤핑예비판정이 재고되지 않을 때는 무역보복 조치에 나설 뜻을비쳤다. 프랑스는 특히 28일자 르몽드지의 「워싱턴 보호무역주의자들의 갑작스런 발열」이라는 사설을 통해 미국의 조치를 『우려했던 무역전쟁의 서곡』으로 해석하는등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붓고 있다. 미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추악한 무역탄압』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낸 영국등 미국에 대한 유럽국들의 비난 또한 그칠줄 모르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고 26.71%의 덤핑 예비판정을 받은 일본은 일본산 철강제품의 「덤핑혐의」를 부인하며 면밀한 검토를 거쳐 GATT에 제소할 움직임이다. 일본은 특히 미국이 철강뿐만 아니라 자동차등 일본 수출품에 대한 덤핑제소를 잇따라 준비하고 있어 더욱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어떻든 미국 상무부의 철강 덤핑예비판정에 대한 최종 판정이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클린턴 행정부가 취한 이번 조치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미 내부 비판론/“조사절차 모호하다”… 불공정행위로 해석/“19년간 외국업체 97% 적용”… 법 모순 지적 클린턴 정부의 상무부가 최근 미국에 철강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19개국의 철강판재류에 최고 1백9%까지 덤핑마진 예비판정을 내린데 대해 당사국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28일자 월스트리트저널지에 이같은 조치를 통렬히 비판하는 미국인의 글이 실려 눈길을 끌고 있다. 국제무역에 관련된 글을 주로 쓰는 자유기고가 제임스 보바드씨가 쓴 이 글은 상무부의 이번 조치가 미국 반덤핑법의 모순과 위선성을 여실히 폭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요지를 간추려 본다. 덤핑은 외국회사가 자국내 판매가격 또는 생산원가보다 싸게 미국시장에 생산품을 내다 파는 행위를 의미한다.미국은 지난 19년동안 이를 확대해석해서 그동안 조사대상 외국업체의 97%에 덤핑 판정을 내렸었다.상무성은 최근 계속해서 외국회사들이 그들의 공정성을 입증하기 어렵도록 모든 규정의 해석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는데 이는 공정하지 못하다. 미국의 반덤핑 제도는 조사절차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특히 상무부는 피제소업체가 제출한 자료가 미흡하다고 판단되거나 정해진 기간안에 제출이 안되면미제소자측 제출자료(BIA:best informationav ailable)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이는 외국업체에 매우 불리하게 판정되도록 돼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철강제품 덤핑판정에는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아닌 폴란드 같은 나라도 포함돼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미국은 폴란드에 그동안 75%의 덤핑관세를 부과해왔으며 이는 폴란드의 집단적이고 개혁적인 경제구조를 무시하는 조치이다. 미국의 철강생산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외국공급업체들에 대한 공정치 못한 덤핑판정은 미국의 수요업계에 매우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상무부는 일부철강업계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은 수요업계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있다. 불행하게도 클린턴 행정부도 전임 공화당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반덤핑법의 취지를 충분히 알고있지 못하거나 아니면 정직하지 못한 것 같다.론 브라운 상무장관은 이번 덤핑조사가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으나 보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19개 피해당사국들은 BIA의 보복관세 피해자들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상무부는 공정무역이란 이름 아래 무제한의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다.클린턴 정부는 상무부가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더이상 해치기 전에 미국의 무역관련 법률들을 재검토 해야 할 것이다.
  • 장난감(알고삽시다)

    ◎아이성장단계에 맞춰 골라야/신생아땐 흑백색·기하학적 무늬 좋아해 요즘은 장난감도 연령에 맞추어 다양하게 나와 있어 성장단계에 따라 인지할 수 있는 형태와 색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두면 아기의 두뇌발달 및 운동신경발달에 도움이 되는 장난감을 고를 수 있다. 미국등 선진외국에서는 30여년전부터 갓난아기가 과연 무엇을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갓태어난 아기는 과녁판,서양장기판,줄무늬등 흰색과 검정색만으로 이루어진 기하학 무늬들을 알아 본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출생 직후의 아기는 눈에서 약20㎝ 거리에 있는 사물을 구분하고 생후6주 무렵에는 약30㎝거리에 있는 사물을 구분하는등 아주 가까운 범위내의 사물을 볼 수 있으며 형태와 크기,무늬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또 신생아들은 색조의 대비가 강한 흑백의 도형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며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은 도형을 좋아한다.따라서 흔히 갓태어난 아기를 위해 천장에 매달아 놓는 알록달록한 모빌은 실제론 아무 역할도 하지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생후 2개월무렵에는 보다 복잡한 무늬들에 관심을 나타내며 직선이나 각이 진 도형보다 곡선이나 둥근 형태를 좋아하게 된다. 생후4∼6개월 이전의 갓난 아기들은 미키마우스나 도날드덕등 아기용품에 흔히 등장하는 캐릭터에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하며 바둑판 무늬와 여러가지 기하학적 무늬로된 모빌을 보면서 단순함과 복잡함의 어우러짐에 의한 시각자극을 아주 기분좋게 받아들인다. 생후4∼6개월 무렵부터 아기들은 원근의 초점을 맞추고 색깔을 모두 알아보는데 이때부터 깊이에 대한 인지의 발달도 시작된다.이무렵의 아기들이 가장 먼저 감지하는 색상은 빨강.그다음 초록,파란색의 순으로 받아들인다. 유아발달전문가들은 이러한 과학적 자료를 토대로 하여 신생아들의 시각,청각,촉각,운동신경,미각,후각등 감각기관에 자극을 주면서 두뇌를 발달하게 하는 IS법(Infant Stimulation)을 개발했다.국내에는 유아능력개발법으로 소개된 IS법 프로그램을 생후 24개월아기에게 활용하면 아기의 운동신경이 발달되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진다고 한다.UCLA의 유아발달심리학교수인 수잔 루딩턴박사등 전문가들이 체계화한 유아능력개발법에 따른 장난감 고르기의 유의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아기가 가까이에서 쳐다볼 수 있는 장난감을 고른다. ▲생후4개월 이내의 아기들에게는 색조의 대비가 강한 흑백 장난감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가지 무늬로 된 것보다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까지 다양한 면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것이 좋다. ▲장난감에 사용된 재질,원료등은 무독성이어야 하며 너무 작거나 크거나 날카롭고 딱딱한 형태는 피한다.
  • 일 오코노기 마사오교수의 분석/해외석학 특별기고

    ◎“김영삼정부,남북공존 틀 완성을”/「김 부자체제 존속」 보장받기 부심/평양 서울의 「남북연합안」 더 선호/북의 정치체제개혁 적극 유도/정권 정통성 바탕으로 선진민주정치 실현할때 ▷냉전종결후의 한반도◁ 5년전 한국에서 노태우대통령정권이 탄생했을때 세계는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미소가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체결,두나라의 대립을 크게 완화했고 그 2년뒤에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냉전의 어두운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동유럽의 정치적 대변혁은 냉전의 시대가 사실상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있음을 나타냈다. 냉전의 종결로 전후수십년동안 계속된 「2극제체」의 세계질서는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졌다.냉전체제를 대신해서 세계 각지에서는 새로운 지역질서가 모색되기 시작했다.한반도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그러나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는 아직 그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노대통령정권 발족당시에는 전두환대통령정권때의 험악한 남북관계로 서울올림픽의 평화적 개최가 위협을 받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냉전종결이 곧바로 공산주의체제의 붕괴를 초래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체제붕괴는 아시아사회주의 국가들의 장래에 심각한 의문을 던졌다.천안문사건을 경험한 중국을 시작으로 북한·베트남 등 아시아의 공산주의국가들은 체제존속을 최우선하며 일시적으로 내부지향적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수 없었다. ○지역질서 구축선도 그러나 1990년 9월의 한소수교는 천안문사건이후 정체되었던 동아시아의 냉전종결 움직임이 한반도를 무대로 재개되는 계기가 되었다.북한은 일본에 국교수립교섭을 제안하고 남북총리회담을 수락했으며 더욱이 91년 9월에는 남북한의 국제연합 동시가입이 실현되었다. 남북총리회담과 일·북한국교정상화교섭은 북한의 생존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수 있다.김일성주석은 10월에 평양을 방문한 강영훈총리에게 「1민족 1국가,2정부 2제도」통일방식을 시사했다.이는 북한의 통일정책이 「대남해방」으로부터 「체제유지」로 전환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를 분석하면 한중수교를 포함,노대통령정권의 북방외교가 큰 성공을 이룩했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노대통령은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활용,냉전후 지역질서구축을 선도했다.바야흐로 한반도에도 이제 예상되는 지역질서가 명확한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정권의 이같은 성공은 한국외교역량에만 의존했다고 할수 없다.역설적이긴 하지만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사회주의체제의 존속이 냉전종결후의 동아시아에 유럽과는 다른 평화를 보장하고 있다.이러한 역설은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혁명」뒤에 나타난 유럽의 혼란을 볼때 명료해진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불안한 평화」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5년후에 아시아 사회주의정권이 내부로부터 붕괴되어 유고슬라비아의 비극이 동아시아에서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존재하는가.만약 사회주의붕괴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동아시아의 민족·국경·빈곤·종교등의 대립은 유럽이상으로 심각해질지 모른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우려되는 것은 북한 김일성정권의 장래이다.북한은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고 베트남도 도이모이(경제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체제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북한의 이같은 경직된 태도가 계속된다면 그 말로는 폭력적인 비극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방외교가 성공을 거둔 지금 한국외교의 최대목표는 「남북공존의 제도화」와 그 이후 북한의 「점진적 체제개혁」유도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2천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통일비용의 부담이라는 관점에서 볼때도 한국으로서의 최대위협은 북한정권의 갑작스런 붕괴가 아닐 수 없다. ▷남북공존의 제도화는 가능◁ 김일성의 「체제유지」전략은 비교적 단순하다.그 기본구상은 일·북한국교수립후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자본과 기술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과 기간산업을 정비하고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국민생활을 향상시키며 수출산업을 육성하는 등으로 한국과 장기적으로 공존하는 경제체제를 확립한 뒤 이를 아들인 김정일에게 이양하는 시나리오다. ○북한정권 장래 불안 북한지도부는 그러나 「남북공존의 제도화」가 완성될 때까지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의 개혁에 착수하지 않을 것이다.그때까지 북한이 허용하는 것은 단지 체제유지전략상 불가피한 경제의 대외개방뿐일 것이다.북한의 경제개방은 체제개혁과는 다른 현정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북한은 투자관계 3법을 공포하고 총리를 경질했다.연형묵총리와 교체된 강성산신임총리는 사실 함경북도의 당책임자로서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에 전력을 다한 인물이다.북한은 또 경제개방에 적극적인 김달현부총리겸 대외경제위원장과 김용순당서기겸 국제부장을 정치국원 후보로 승격시켰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전략이 성공해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남는다.북한의 경제난이 지금과 같은 개방정책으로 타개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며 중국과 소련에서 보는 것 같이 경제개방은 경제체제개혁을 위해 필요하지만 이는 정치체제개혁에까지 파급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북한의 핵무기개발도 당초는 체제유지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심중무기(삼손옵션)로서 보유할 목적이었음에 틀림없다.바꿔 말하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의 전술핵무기에 대한 억지수단이 아니고 체제존속을 보장하기 위한 몇발의 초보적 핵폭탄과 그 운반수단이라고 하지않을 수 없다. 그러면 체제유지목적과 관련,북한은 어떤 형태의 국제환경을 바라고 있는가.북한은 「단일제도에 의한 통일의 길」,즉 한국에 의한 흡수통일을 우려하고 있다.따라서 그동안 그들이 주장해온 「연방제통일」보다 오히려 노대통령이 제안한 2개의 주권국가가 공존하는 중간적 통일형태인 「남북연합」을 선호하고 있다.왜냐하면 그것이 남북공존을 국제적으로 제도화시켜 북한의 체제유지를 보다 확실히 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흡수통일될까 우려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북한은 유엔동시 가입이나 교차승인에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실제로 남북한 유엔동시가입후 전금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부위원장은 『동시가입은 비정상적인 면도 있지만 통일에 유리한 면도많다.남북이 대결로부터 화해로 전환,민족공동체를 이룩하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교차승인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커 전미국국무장관의 「2+4」회담발언에 대해서도 한국내에서는 여러가지 복잡한 반응이 있었으나 북한의 군축·평화연구소의 최우진부소장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보장한다면 그러한 회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김일성주석도 신년사에서 『조선통일은 역사적인 국제관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남북합의서 이행에는 관계제국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삼정권의 역사적 역할◁ 새로 탄생하는 김영삼 차기대통령정권은 대국적으로 볼때 1961년 박정희장군의 쿠데타 이후 30여년동안 계속된 커다란 정치사이클의 마지막 정권이라는 역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12·18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두 김씨는 박정권과 격렬한 투쟁을 벌이며 두각을 나타낸 야당지도자들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는 이미 노대통령에 의해 시작되었다.「김영삼대통령」의 역할은 민주화의 완성을 통해 지금까지의 정치사이클을 최종적으로 마감하는 일이다.군출신 대통령으로부터 야당출신 문민정치가로의 단계적 인계에는 한국적 민주화의 큰 특징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정권의 역사적 역할은 그것만이 아니다.커다란 정치사이클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자는 새로운 정치사이클의 「산파역」이 되지않으면 안된다.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3당통합」이 구국적인 행동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진가는 5년후에 평가될 것이다.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선진국적인 민주정치 사이클을 여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다.그러나 쉽지만은 않다. 김영삼정권의 당면과제는 「정치」보다도 「정책」,그 가운데서도 경제정책에 있다.경제분야에 경험이 부족한 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유능한 경제관료와 학자를 총동원,「경제재건팀」을 구성,그들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겠지만 단기간내에 「한국병」의 치유에 성공할지는 의문이 남는다. 김영삼정권의 또다른 중요한 역사적 역할은 평화통일의 길을 여는데 있다.가장중요한 것은 북한의 체제유지노력을 어떤 방법으로 「남북공존의 제도화」와 「점진적 체제개혁」의 방향으로 유도하느냐 하는 점이다.북한의 변화는 회유나 협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실현되어야 한다. ○대북위상 많이 강화 새로 탄생하는 한국의 문민정권은 정통성과 이미 달성된 북방외교의 성과로 북한에 대해 입장이 상당히 강화되었다.새정권은 인기를 위한 안이한 타협을 배제하며 북한의 정책적 변화를 참고 견딜 수 있다.그러한 자세가 견지된다면 5년간의 임기중에 남북대화에 획기적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새정권의 이같은 노력은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미국의 클린턴정권 발족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긴장완화와 신뢰조성을 위한 다국간 협의를 요구하는 소리도 적지않다.한반도의 안정적 지역질서형성은 최종적으로는 남북 당사자들의 대화만이 아닌 북한과 일본,북한과 미국의 국교정상화나 주변 6개국의 평화협력 노력이 동시에 진행될때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과제는 대일정책이다.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고 강경 대일정책을 추진해온 군출신 대통령과는 다를 것으로 여겨진다.김영삼 차기대통령은 국내의 민족주의와 반일감정을 달래며 실리중심의 외교를 전개할 것이 틀림없다.김영삼 차기대통령은 「이해조정형」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한국에 이같은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한·일 양국 모두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일본도 과감한 양보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오코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1945년생 ▲1969년 게이오(경응)대 법학부 정치학과졸업 ▲1985년 게이오대 법학부 교수 ▲1989년 연세대 객원교수 ▲1989년 소련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객원연구원 ▲1989년 하와이대 조선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전공:국제정치론·조선정치론 주요저서:「조선전쟁」「냉전기의 국제정치」「기로에 선 북한」「일본과 북한­지금부터 5년」「조선문제전후자료」전3권(공저)
  • 개혁 열풍 외자유치에 적극적(변화하는 베트남:2)

    ◎투자법규 5년새 8백여건 개정/외국기업들엔 세제 등 각종특혜/대만·홍콩업체 벌써부터 사옥구입 경쟁 『베트남사람들은 고치고 바꾸는 데는 참으로 열심입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호치민 무역관장 조영복씨(45)의 말은 베트남 정부의 개혁의지를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조관장에 따르면 베트남정부가 88년부터 고친 외환관리법,은행법등 외국인투자관련법규는 모두 8백여건. 한마디로 베트남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들조차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법령을 이해하지 못해 제 각각으로 집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베트남이 지향하는 체제는 싱가포르식.자본주의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사회주의적 자본주의(Socialistic Capitalism)또는 자본주의적 사회주의(Capitalistic Socialism)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베트남정부는 이광요 전싱가포르수상을 국가경제고문으로 초빙하려고도 했다. 베트남의 개혁은 주로 외국 자본의 유치를 확대하려는 쪽에집중되고 있다. 2주일전 「도이모이」이후 두번째 임기를 시작한 베트남국회는 법률 개정,특히 투자법을 고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87년이후 5년만에 개정된 투자법은 ▲외국인투자기업의 사업시행연한을 현행20년에서 50년이상 70년까지로 확대하고 ▲외국기업의 베트남 사기업과의 직접 접촉을 허용하며 ▲외국기업의 베트남내 사회간접자본(Infrastructure)건설 참여를 가능케 하기 위해 건설(Building)운영(Operation)양도(Transfer)등 BOT를 투자법에 명시하고 ▲1백% 외국인투자기업에도 세제상의 특전을 제공하며 ▲수출가공지대(ExportingProessingZone)에 관한 법률을 투자법에 포함시켜 국가협력투자위원회(SCCI)의 관리하에 두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베트남의 이같은 대대적인 투자법 개정은 내년초 클린턴행정부의 출범 직후로 예상되는 미국의 대베트남 경제제재조치(Embargo)해제와 오는 2000년까지 무관세를 목표로 내년부터 시행되는 아세안자유무역지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베트남정부는 이같은 조치가 미국기업은 물론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투자를 꺼려왔던 일본등 서방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이다. 베트남은 또 지난 4월 헌법개정을 통해 투자허가를 받은 외국기업에 대해 주택및 건물의 소유를 허용함으로써 외국부동산기업의 진출을 유도하고 있다. 개정된 주택및 건물 소유에 관한 법률은 임대수입 가운데 국가에 내는 판매세와 소득세 명목의 25%,계약수수료조로 대외용역회사(FCS)에 내는 6%를 제외한 69%를 소유주가 챙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따라 대베트남 투자규모에 있어 1.2위를 다투는 대만과 홍콩기업들은 베트남에 진출하는 외국기업이 현재 3백여개에서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해 호치민과 하노이의 건물을 구입,수리에 한창이다. 그러나 베트남정부의 이같은 개혁 노력은 아직까지는 외국기업들이 볼 때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외국기업들이 가장 큰 불만을 느끼는 것은 투자법가운데 「합작지분에 관계없이 대소업무의 결정은 이사회의 만장일치에 따른다」는 규정이다. 외국기업이 아무리많은 액수를 투자했다 하더라도 소주주에 지나지 않는 베트남측이 반대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베트남정부는 이 부분이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의 논리를 허용할 경우 외국기업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개정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조관장은 『지난 12월 시작한 5년 임기의 국회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개혁입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불합리한 법제가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조관장은 또 『내년초 미국의 대베트남 경제제재조치가 해제돼 미국기업들이 베트남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베트남정부가 이들의 요구에 굴복,좀더 자본주의적인 방향으로 각종 법률을 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바르셀로나 올림픽/컴퓨터전용 통신망 개통

    ◎데이콤,미 인포네트와 연결… 내일부터 서비스 개시/한국기자들,PC이용 기사송고/사용료 국제전화요금 3분의1선 서울과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잇는 컴퓨터전용 국제통신서비스가 92바르세로나올림픽을 맞아 개통된다. 데이콤은 바르셀로나 올림픽관련 취재보도및 양지역간의 원활한 정보소통을 위해 컴퓨터전용 통신망을 이용한 서울∼바르셀로나간의 컴퓨터통신 서비스를 20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그간 국제전화회선만을 이용해 가능하던 서울∼바르셀로나간의 컴퓨터통신이 컴퓨터전용회선을 이용해 가능하게 됐으며 사용료도 동일분량의 팩시밀리서비스보다 3분의 2정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서울∼바르셀로나간의 이번 서비스는 데이콤이 데이터통신을 위해 개발한 다중매체통신서비스 데이콤­메일400을 국내외 컴퓨터전용통신망에 맞는 시스템으로 개발한 것.데이콤은 이번 서비스를 위해 미국의 부가가치통신망(VAN)사업자 ISC사가 구성·보유하고 있는 컴퓨터전용 국제통신망인 인포네트(INFONET)와 국내 컴퓨터전용 통신망인 데이콤네트(DACOMNET)를 데이콤­메일400과 결합시켰다. 인포네트는 현재 미국·영국·스페인등 전세계 1백15개국에 연결,구축되어 전자사서함,전자문서,데이터프로세싱등 각종 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비스의 제공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올림픽경기를 취재하는 국내 기자들을 노트북PC등 휴대용컴퓨터로 기사를 작성한뒤 시내전화 코드를 컴퓨터에 연결,전송하면 인포네트와 데이콤네트를 통해 국내 본사에 있는 컴퓨터나 팩시밀리로 기사와 전자우편을 보낼수 있다. 컴퓨터통신은 국제전화망이나 전용통신망이 개설된 곳이면 어느곳이나 휴대용컴퓨터에 담긴 기사 또는 각종정보를 원하는 목적지의 주컴퓨터나 팩시밀리에 보낼수 있다. 데이콤은 지난88년 서울올림픽때에도 25종에 달하는 경기결과,신기록현황등 각종 경기정보와 숙박·관광·교통등의 일반정보를 영어·스페인어·불어등 4개국어로 전세계52개국에 서비스한 바 있다.
  • 전술핵 미철수/한국·유럽 등 배치 2천4백기 본국회수 함축

    ◎“지구촌 핵추방” 첫 가시적 성과/한국 「핵부재 선언」 재확인 된셈/「제3세계 핵보유」 저지가 과제 미국이 2일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의 철수가 완료됐다고 발표함으로써 인류는 「핵없는 세계」를 향해 다시한번 의미있는 일보를 내디뎠다. 이로써 지난해 9월말 부시 미대통령이 약속한대로 공군,즉 전폭기에 장착되는 전술핵무기를 제외한 2천4백기의 해외배치 지상 및 해상발사핵무기들이 모두 미국본토로 회수돼 곧 폐기되게 됐다. 이번 철수가 완료된 해외배치 미국전술핵무기는 ▲1천개의 포탄두 ▲7백개의 랜스미사일 탄두 ▲2백개의 B­57잠수함공격용 폭뢰 ▲선박에서 제거된 5백기의 전술핵무기 등이 포함돼 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도 부시대통령의 발표에 앞서 성명을 통해 미국이 지상에 배치한 핵포탄,단거리 미사일,해군수중핵폭탄등 수천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고 발표함으로써 부시대통령의 발표를 뒷받침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18일 『우리나라 어디에도 하나의 핵무기도 없다』고 밝힌 노태우대통령의핵불재선언도 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를 통해 재확인된 셈이됐다. 지난 87년 12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INF(중거리핵전력)폐기협상이 타결된 이래 미소양국은 핵없는 세계(제로 옵션)를 향해 꾸준한 진전을 이루어왔다.이번 부시대통령의 발표는 지금까지 나온 일련의 군축약속이 현실화된 최초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9월 소련의 쿠데타실패 직후 부시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소련측에 제시하며 소련에도 유사한 조치를 촉구했던 사항이다.1년이 채안되는 짧은 기간내 이같이 미국의 해외배치 핵무기 철수작업이 완료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서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핵억지를 근간으로 한 두 핵강국 미국·러시아의 전략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술핵 폐기와 함께 10년 가까이 끌었던 전략핵무기제한협상(START)도 지난해 7월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각자 보유중인 핵탄두를 3분의 1씩(미소 각 6천4백기 수준으로)감축한다는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었다.지난 6월 워싱턴 미·러시아 정상회담에서는 오는 2003년까지 미국 3천5백기,러시아 3천기 수준으로 전략핵무기를 추가 감축키로 합의함으로써 핵감축에 관한한 이제 미·러시아는 거의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전략핵 부문에서 대규모 폐기작업이 시작될 경우 경제난에 허덕이는 러시아측에 핵폐기 작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경비를 미국이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아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딕 체니 미국방장관이 2일 미상원군사위 청문회에서 증언한바와 같이 이라크·북한등 제3국의 「무모한」핵무기개발을 어떻게 저지시킬 것이냐는 문제이다.동서 핵대결로 인한 인류전멸의 위협은 줄어들었지만 지역패권욕을 내세운 모험주의 세력들의 핵보유 위협이 보다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체코분리 추진 「민주운동」 총선서 압승할듯/독 민간기구 조사

    【프라하 AFP 로이터 연합】 체코슬로바키아에서 5∼6일 양일간 실시된 연방 및 지방의회 선거에서 체코공화국과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슬로바키아 민주운동(HZDS)이 슬로바키아공화국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총선후 재편과정에서 연방 분리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독일의 민간조사기관인 INFAS가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전슬로바키아총리가 이끄는 HZDS는 지방의회선거에서 35·9%를 얻어 최다 득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익계인 HZDS를 이끄는 메치아르는 슬로바키아의 독립요구와 경제개혁완화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자신들이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체코공화국과의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해왔다. 슬로바키아공화국은 체코연방 총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며 체코공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또 체코공화국에서는 바츨라프 클라우스 재무장관이 이끄는 우익 민주국민당(ODS)이 지방의원선거에서 36%를 득표,역시 최다득표를 보였다.
  • 한·독립국연합 과기교류 본격화

    ◎박원희 KIST원장등 3명,세부협력논의차 출국/올 한해 구소과학자 27명 방한 초청/자동차·중장비 컨소시엄협의 활발 그간 문서상의 교류에 머물러있던 한국과 독립국연합(CIS·구소련)간의 과학기술교류가 사람과 정보가 오고가는 실질 교류협력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현재 교류가 본격화 되고 있는 분야는 ▲과학자교류 ▲공동연구 ▲과학기술정보서비스사업 등.과학자교류는 구소련 즉 독립국연합(CIS)과학자들의 국내유치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올 한햇동안 모두 27명의 구소련 과학기술자의 초빙이 결정됐다.이중 1월중으로 입국할 교포과학자 게오르규 박씨(삼성종합기술원에서 연구활동을 벌일 예정)등을 비롯,3월말까지 기계금속분야를 중심으로한 10여명의 과학자들이 한국땅을 밟을 예정이다. 올해 내한하는 과학자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등 정부출연연구소등에서 장기(1년)또는 단기(3개월·6개월 등)로 근무하게 되는데 월1천5백달러와 왕복여비 및 숙식을 우리측에서 제공하게 된다.권오관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소과학기술협력센터소장은『금년에 입국하는 독립국가연합과학자들은 대개 초청형식으로 단기체류하게 된다』며 『오는 93년부터는 초청형식이 아닌 고용형식으로 이들과의 과학기술분야의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학자교류에 못지 않게 빠른 속도로 실질협력이 가시화되고 있는 영역은 협동연구분야.특히 자동차 및 중장비 컨소시엄사업은 컴퓨터를 이용한 절삭가공,자동차소음 및 진동,유압중장비기술,극저온극한지자동차엔진기술,소재경량화기술 6개사업분야를 놓고 세부과제조정에 들어섰다. 이 사업의 구체적인 추진을 위해 국내서는 현대·대우·기아·아시아자동차 및 대우기전·기아기공·한라중공업·삼성중공업등 9개사가 컨소시엄을 통해 나미(NAMI)사등 50여개사로 구성된 독립국가연합의 자동차 및 기계관련 컨소시엄들과 접촉을 벌이고 있다.우리측에선 독립국가연합의 연구소들이 갖고 있는 첨단기초연구들의 기술이전효과를,상대방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각종 기술의 상업화를 통한 기술사용료 등 경제적 효과를 각각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양국간의 실질적인 과학기술교류를 실감나게 하는것은 벨로루시공화국의 민스크에 오는 2월1일 문을 여는 기술정보교류센터(INFOCO).한소과학기술협력센터와 벨로루시공화국 과학아카데미가 공동설립한 이 센터는 한국측에서 요구하는 각종 과학기술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양국간의 과학기술교류가 구체화됨에 따라 그간 독립국가연합과의 과학기술교류협력의 국내창구역할을 맡아온 한·소과학기술교류센터의 권오관박사와 박원희KIST원장·김영식KIST홍보협력실장등은 지난 25일 러시아및 벨로루시·우크라이나공화국등 3개공화국 과학아카데미와 과학교육기술부등과의 세부협력논의를 위해 출국했다.
  • 타스통신사 명칭/RITA로 바꿔/옐친,포고령

    【모스크바 AP UPI 연합】 지난 73년간 구소련정부의 대변기구로 봉사해왔던 타스통신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개편안에 따라 「러시아정보통신」(Russian Inf­ormation Telegraph Agency:RITA)으로 이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22일 밝혔다. 미하일 폴토라닌 러시아공보장관은 이날 러시아의회 매체위원회에 타스통신과 구노보스티통신의 일부 기능을 통합하여 RITA통신사로 개편하기 위한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포고령안을 제출,매체위는 이를 승인했다.
  • 국제문제 영향력행사 희망/야인 고르비 어떻게 지낼까

    ◎「사회·정치연구재단」에 전념할 듯/정부선 아파트등 제공… 생활 보장 소연방의 소멸로 세계초강대국의 최고통치자에서 러시아공화국의 평범한 한 국민으로 전락한 고르바초프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일단 전직 국가원수로서 물질적 생활기반은 보장받게 됐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24일 고르바초프의 퇴임이후 그에게 아파트와 별장,경호원 20명,전용차 2대를 제공하고 현직수행시의 급여수준인 월 4천루블을 연금으로 지급할 것이며 지급액은 향후 인플레를 감안,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장래계획과 관련,모스크바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회­정치연구재단」이사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이른바 「고르바초프재단」으로 불리는 이 재단은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에 설립됐었다.그러나 그는 지난 22일 미CBS방송과의 회견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정치의 세계를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언급,새로운 체제에서도 정치적 활동을 계속할 뜻임을 비췄다. 한때 그는 새체제에서 상징적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다.그러나 그가능성은 희박하다.옐친은 최근 『새로운 체제하에서 고르바초프가 할일은 없으며 어떤 직책도 준비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았다.고르바초프도 새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과 거부감을 표시화면서 의례적인 역할을 맡을 의사는 없다고 밝혀왔다. 그는 우선은 재단의 일에 전념할 것으로 보이지만 해외에선 인기가 높기 때문에 틈틈이 국제무대에서의 활동도 펴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도 정치에의 강한 의욕을 지니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쌓아온 민주화와 개혁 업적을 온존시키고 대중으로부터도 소외되지 않는 분야에서 자신의 진로를 조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그 어떤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르비어록 ▲핵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겠다(85.3.11 당서기장 취임연설). ▲지구를 핵의 파국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전인류적인 과제이다(86.8.18 일방적 핵실험동결연장발표). ▲국제적인 파급효과를 지닌 우리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국제사회에서 「소련위협」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87.11 연설에서). ▲냉전체제의 와해가 시작됐다.냉전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여는데 전력을 모으자(88.12.31 신년TV메시지). ▲동서분단의 가장 강력한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89.6.18 연설에서). ▲냉전의 참호는 사라지고 있다.편견과 불신,적의의 안개는 걷히고 있다.전세계에 살고 있는 현세대는 문명사에서 확고부동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90.6.1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나는 2년후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지도부는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90.7.5 제28차공산당대회). ▲이제 냉전은 종식되고 핵전쟁의 위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평화의 지평선이 넓어진 것이다(91.1.1 90년 한해를 마감하며 미국에 보낸 메시지). ▲오늘날 모든 사회세력과의 단결을 위해,그리고 모든 갈등을 잊어버리기 위해 상호 함께 일해나가야 할것이다(91.4 연설에서). ▲우리가 시장경제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경제의 일원이 될수없다.우리는 개혁이 필요하다(91.7.30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의 생애에서 주요과업은 이루어졌다.나는 불과 물,바꾸어 말해 공산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새로운 연방의 동료들에 의해 짓밟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연성을 보였다.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실책도 없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나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떠나버렸을 것이다(91.12.13 기자회견). 고르비 발자취 ▲31년3월2일=러시아공 스타브로폴시 인근 프리폴노예서 출생 ▲50년=모스크바대 법학과입학 ▲52년=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60년=스타브로폴지구 콤소몰 제1서기 ▲66년=〃 당제1서기 ▲78년=공산당 농업담당서기 ▲79년=정치국 후보위원 ▲80년=정치국 정위원 ▲85년3월11일=소련공산당서기장취임 ▲87년1월=당간부 비밀·경선도입등 개혁정책 본격화 ▲87년12월=워싱턴 방문,INF폐기협정 서명 ▲88년9월=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년10월=몰타정상회담,냉정종식선언 ▲90년3월15일=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년12월=노벨평화상 수상.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쿠데타 경고후 사임 ▲91년1월=리투아니아공 무력탄압 ▲91년4월=제주서 한소정상회담 ▲91년8월=쿠데타 발발,3일만에 분쇄 ▲91년9월=소련 국가평의회,발트3국 독립승인 ▲91년12월=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공화국 「독립국 공동체」창설선언.소연방 공식해체 발표 ▲91년12월26일=소연방대통령사임
  • 고르비/「해빙」을 부르고 「개혁」에 지다

    ◎「영욕의 7년」 집권서 퇴장까지/「통독의 문」 여는등 냉전종식을 주도/냉전장악 실패·「빵」 해결못해 “몰락 길”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5년 3월11일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제8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돼 6년9개월의 집권기간동안 철저한 현실노선에 입각한 정책으로 「제2의 소련혁명」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변화를 소련과 국제사회에 몰고 왔었다. 그가 권좌에 오르면서 동토의 소련국민들은 볼셰비키혁명 68년만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았다. 이어 89년에는 사상최초로 복수정당후보를 상대로 한 선거가 치러졌다. 90년 2월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포기했고 고르바초프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다.서구민주주의 개념을 도입,당과 정부의 국가경영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에 바탕을 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은 국제정치면에선 세계사의 변혁을 주도해 왔다.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항상 군비축소와 주권존중이라는 「신사고 외교」를 원칙으로 삼았다. 고르바초프는 집권한지 8개월만인 85년11월 제네바에서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던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눔으로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87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체결을 비롯,88년 동유럽주둔군 50만 감축,91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등 그의 혁신적인 군축정책은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난 45년 얄타협정으로 출발한 미소 양극체제의 동서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이와함께 고르바초프시대의 최대업적인 독일통일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이루어졌다. 그는 또 88년5월 아프가니스탄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단행했다. 89년12월 몰타에서 열린 미소정당회담에서는 정식으로 냉전시대의 마감을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중국·이스라엘등 갈등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과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연 것도 다름아닌 그의 신사고 외교의 결과였다. 고르비는 셰계를 움직인 정치인답게 다양한 별명도 갖고있다.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세계의 대도박사」 「기적의 마술사」등 경탄스런 수식어가 붙는가하면 「금세기들어 가장 탁월한 소련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고르비가 상을 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노벨상에 무게를 더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은 「신사고 외교」의 바탕이 되어 탈냉전·군축등에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빵」문제는 해결하지못해 그를 몰락의 길로 재촉했다.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자신이 사회주의에의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으며 개혁의 속도를 끝내 스스로 통제하려고 했기때문이다.그는 사유화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거부했다.그리고 경제적인 비상조치를 취할수 있는 포고령 발동권을 갖는등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90년 여름 급진적인 내용의 경제개혁안인 「샤탈린의 5백일 개혁안」을 거부하면서 개혁파인사들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보수파들이 득세했다.상황이 이렇게 바뀌게되자 그해 12월 그의 측근이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독재출현과 쿠데타를 경고하며 사임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발생,고르바초프는 이들에 의해 연금을 당했다. 이 쿠데타는 3일천하로 끝나기는 했지만 고르바초프와 연방정부의 권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그는 쿠데타이후 공산당 활동도 정지시키고 보수적인 색채의 내각도 물갈이했다.원성의 대상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도 숙정했다.그리고 발트해3국의 독립도 승인했고 각 공화국에 폭넓은 권능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연방조약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연방정부의 권위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지난 1일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으로 소련방과 고르바초프에게 결정타를 안겼다.그 뒤를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국 공동체 구성은 소련연방의 사망신고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환상적 꿈에서 깨트려 현실적 사회로 되돌리려 했으나 70여년간 경직될 때로 경직된 공산체제의 「현실」의 벽에 부딪쳐 끝내 실각을 자초하고 말았다. 1931년 3월2일 러시아 공화국 남쪽 스타브로폴지역의 프리폴노예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고르비는 학비 때문에 고등학교를 3개월이나 휴학하는등 어려운 청소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교시절 집에서 16㎞ 떨어진 읍에서 방 한칸을 얻어 자취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 모범학생이었다.이때만해도 그가 훗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 법대에 입학,마르크스·레닌저작 외에도 로마법,로크의 정부론,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나갔다.심지어 법대에는 미국헌법까지도 열람이 허용됐는데,이같은 서구사상을 담은 「금서」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탈린 치하에선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이때의 지식들이 현실정치와 접목되어 뒷날 페레스트로이카로 체계화 된다. 1954년 대학재학시절에 만난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한 고르비는35세의 나이에 고향인 프리폴노예 시당위원장이 됐고 4년후엔 보다 넓은 지역인 스타브로폴지구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그는 다시 대학에서 농업경영학을 공부,학위를 얻고 농업문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고르바초프는 1978년 농업담당 당서기가 되면서 중앙무대인 모스크바로 진출하게된다.그가 모스크바로 올라오게된 계기는 농정실패에 책임을 느낀 쿨라코프가 자살함으로써 농업담당 당서기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그에게는 확실히 소련 역대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관운이 따르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러나 소련사회에 평화와 자유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개혁가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역사의 아이러니임에 틀림없다.동토의 땅에 개혁의 문을 열어젖힌 그는 결국 그 문으로 퇴장한 것이다.
  • 미­소의 군축경쟁 가속화된다/소 핵무기 감축 선언의 함축

    ◎전략핵 50% 감축 제의… 미안보다 진전/경제난 타개의 군비축소 고육책/공화국 핵통제 주장 차단 목적도/북한·이라크 핵개발 포기압력 강화될듯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의 5일 핵무기 감축선언은 지난달 27일 부시미국대통령이 핵감축을 제의한지 8일만에 나온 상응조치로서 상당부분 예견돼온 일이기는 하다.그러나 핵실험을 향후 1년간 중지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인준 직후 공격용 전략무기 50% 추가삭감을 위한 미소간 협상및 정상회담을 제의한 것등은 지난번 미국의 제안보다 다소 진전된 역공세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미소양국은 상대방을 향해 핵무기를 겨누며 군비경쟁을 가속화했던 반세기에 걸친 냉전시대에 명실상부하게 종지부를 찍으며 지구촌을 핵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하기 위한 군축경쟁의 좋은 출발을 보였다.START협상이 10여년을 끌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엄청난 규모의 전술핵무기 감축이 단 며칠만에 이뤄진 것이다. 소련이 이같이 진전된 핵감축선언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과다한 군사비 지출이 자체적으로도커다란 부담이 되고있을 뿐 아니라 경제난 타개에 긴요한 서방세계의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19일 불발쿠데타 이후 서방세계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소련의 핵무기 통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필요성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러시아및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카자흐공화국 등에 분산돼있는 소련의 핵무기가 앞으로 돌발사태에 의해 통제권을 벗어나기 전에 통제력이 가장 약한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폐기시켜야한다는 절박감은 미국 뿐 아니라 소련도 느꼈을 것이다. 이번에 폐기시키기로 결정된 소련의 단거리 전술핵무기는 수적인 면에서 전체핵무기의 20%를 차지하는 분량이다.그러나 혼란의 와중에서 악용될 소지가 가장 많은 것이 이들 단거리 전술핵무기라는 점에서 이번 핵감축선언은 수적인 비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의 이번제안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부시미대통령은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의 군축을 위한 미소정상회담에 대해 『상당부분 사전협의가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으나 일단 원칙적으로 찬성의사를 밝혔다.이문제는 군축협의를 위해 5일부터 소련을 방문중인 바솔로뮤미국무부장관 일행에 의해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은 향후 1년간의 핵실험 금지제의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아 군축 경쟁이 군비경쟁과는 달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풀기 어려운 문제임을 실감케 했다.미국은 전략방위구상(SDI)추진을 위해 핵실험을 중단하기 곤란한 입장이다. 아무튼 미국에 이은 소련의 핵감축선언으로 핵위협은 한결 줄어들게됐다.핵무기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차례도 사용되지 못한 채 폐기될 운명에 놓이게됐다.핵보유국들이 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있는 상태여서 핵억제력이 과연 발휘되고 있느냐하는 의문도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난번 미국의 핵감축선언 직후 자국의 단거리 전술핵무기를 폐기할 것이라고 호응하는 태도를 보인 것과는 달리 자국의 핵무기 감축여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던 중국도 소련의 핵감축선언으로 나름대로의 대응이 불가피하게 됐다.유럽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도 핵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되면서 북한이나 이라크등 군소국들의 핵개발야욕에 대한 국제사회의 저지노력도 한층 강도를 높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소 군축협상 일지 ▲68년 7월=핵확산금지 조약:비핵보유국의 핵무기 제조및 보유금지 ▲72년 5월=제1차 미소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Ⅰ):미소 양국의 탄도 미사일발사대 72년 수준서 동결 ▲73년 10월=동서 양진영 19개국,중구병력 감축협상시작 ▲79년 6월=제2차 미소 전략무기 제한협정(SALTⅡ):미소 전략미사일·폭격기 상한선 2천4백대로 제한 ▲82년=전략무기 감축협상(START)시작 ▲83년=레이건 미대통령,전략방위구상(SDI)발표 ▲85년 11월=제네바 미소정상회담서 핵무기 50% 감축노력 합의 ▲86년 10월=레이캬비크 정상회담서 미소 각각 탄두수 6천,발사대수 1천6백으로 감축합의 ▲87년 12월=중거리 핵전력(INF)협정:미소 지상·해상배치 전략핵미사일 탄두수 4천9백개로 제한 ▲90년 2월=미소,화학무기 대부분 폐기 합의 ▲90년 11월=나토 가맹 16개국과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맹 6개국 정상,유럽배치 재래무기(CFE)감축을 위한 「22개국 공동선언」조인 ▲91년 6월=소련측 CFE 감축협정안 죄종 승인 ▲91년 7월=START 합의:미소 양국 보유 대륙간탄도탄 30% 감축 ◎소의 핵감축 요지 ◇전술핵무기 △전술 미사일용의 모든 핵포탄과 핵탄두를 폐기 △대공 미사일의 핵탄두를 제거해 중앙 기지에 두고,그중 일부는 폐기하며 모든 핵지뢰를 제거 △함정과 다목적 잠수함에 배치된 모든 전술 핵무기를 제거,지상발진 해군비행대에서 제거한 핵무기들과 마찬가지로 저장하고 일부는 폐기 △미국이 해군력에 있어서도 상응하는 전술 핵무기 폐기조치를 취할것을 촉구.상호간에 전진배치(전술) 비행대에서 모든 핵병기(폭탄,항공기미사일)를 제거해서 저장할 수도 있음 △기타 핵 강국에 전술핵무기에 관한 소·미 양국의 광범위한 감축조치에 동참하기를 촉구 ◇전략공격무기 △가능한한 가장 빠른 시일내에 전략공격무기 조약에 대한 인준을 촉구 △중폭격기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상경계태세에서 해제되고 장착 핵무기는 제거,보관 △중폭격기용 신형 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연구개발을 중단 △소형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연구개발을 중단 △궤도차 수송 ICBM의 새로운 발사대와 이 미사일의 현대화 계획을 폐기,따라서 개별목표 다탄두를 장착한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숫자는 증가하지 않음 △모든 궤도 수송 ICBM은 저장소로 철수 △1백34기의 개별목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포함한 5백3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내려진 매일매일의 경계태세를 해제 △이미 실전부대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용의 44개 발사장치를 가진 3척의 핵미사일 잠수함을 제거했으며 48개의 발사장치를 가진 3척의 잠수함도 추가로 제거중 ◇공격용전략무기 △전략무기감축협정에 명시된 것보다 더 큰폭으로 감축,7년후에는 5천기의 핵탄두만을 보유 △전략무기감축협정 인준직후 미국과 소련이 공격용 전략무기를 약 50% 추가 삭감하는 협상개시를 제의 △지상과 우주에서발사되는 핵미사일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미소 공동체제 구성 가능성에 대해 검토할 것을 촉구 ◇핵실험 △즉각 1년간 일방적으로 핵실험을 중단 △미국과 모든 무기용 핵물질 생산중단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기를 희망 ◇기타 △핵무기통제에 관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전략핵무기를 단일 통제하에 두고 전략방위체제를 단일 군체제로 통합 △병력 70만명을 감축할 계획
  • ◎철수·폐기 어떻게 하나/재래무기에 장착된 탄두부터 철수/폐기방법은 지상폭파·발사 두가지 지상이나 함정에 배치된 전술핵무기의 철거는 재래식무기에 장착한 핵탄두를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전폭격기에 탑재하는 소형핵폭탄이나 핵지뢰·핵배낭등은 모두 수거해서 폐기장소로 보내진다. 핵탄두가 제거된 미사일본체는 지상폭파하거나 배치지점에서 일정목표의 사격장으로 발사폐기하는 두가지 방법을 택한다. 지난 87년 중거리핵전력폐기에 관해 합의했던 미소양국은 보유중인 중거리미사일의 80%는 지상폭파하고 20%는 발사폐기키로 결정했었다. 핵무기폐기를 위해서는 핵탄두와 미사일을 분해폐기할 수 있는 특수시설을 건조해야 한다.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이 시설에 도착하면 미사일에 전자꼬리가 붙여지고 전자꼬리는 미사일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전파를 발사한다.방사능물질탐지기와 특수 카메라가 핵미사일의 분해과정을 촬영한다. 해체작업중 가장 중요한 과정은 핵탄두안의 핵물질과 유도장치의 분해과정이다.핵물질과 유도장치는 핵무기기술의 핵심이다. 이런 특수시설에서 분리과정을 거쳐 핵이 제거된 미사일의 탄두는 파괴공장으로 보내져 분해된다.미사일의 액체연료는 감시하에서 해상에서 발사,연소시키고 고체연료통은 구멍을 뚫어 폐기한다. ◎핵무기의 종류와 성능/사정 5백㎞ 기준,전술·전략핵 구분/잠수함발사 미사일이 가장 위협적 핵무기는 운반수단의 사정거리에 따라 전술핵과 전략핵,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술핵은 사정거리 5백㎞이하의 핵무기로 단거리핵전력(SNF)이라고도 하며 지상발사랜스미사일과 F4팬텀이나 F16 등 전폭격기에 탑재하는 소형핵폭탄 또는 함정에 배치되어 있는 토마호크미사일을 말한다. 전술핵중에는 보병 한사람이 메고 다닐 수 있는 25㎏의 소형 핵배낭도 있으며 적의 기계화사단을 저지시킬 수 있는 원격조정의 핵지뢰까지 포함된다. 또 지상의 1백55㎜·2백3㎜등의 화포에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14∼30㎞의 야전용 전술핵도 있으며 어니스트 존·나이키·허큘리스등 재래식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사정거리 2백∼3백㎞의 핵무기도 모두 전술핵에 속한다. 나이키·허큘리스·랜스등 개발된지 이미 30년이나 지난 이들 전술핵은 지난번 걸프전쟁에서도 첨단무기에 밀려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95년 이후에는 수명과 성능이 다해 자연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입장이다. 사정거리 5천5백㎞이상의 전략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B52등 대형 전략폭격기에 탑재되어 있는 핵폭탄등 3가지로 나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열차나 지상컨테이너에 실려 이동할 수 있는 것과 지상에 고정배치되어 있으면서 미소양국이 상대방의 국토에 직접 공격할 수 있다. 항속거리가 긴 전략폭격기는 재래식 원자폭탄과 수소폭탄등 핵폭탄을 탑재한채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인도양등을 횡단할 수 있다. 그러나 전략핵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핵(SLBM)이다. 최근 첩보위성과 통신위성의 발달로 상대방의 지상발사전략핵이나 전략폭격기의 움직임은 감시할 수 있으나 수중에서 은밀하게 이동하는 잠수함(SLBM)은 감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군사전문가들은 우주공간의 개발로 서로 상대방의 영토를 감시하는 현체제에서 지상핵은 두려운 것이 아니며 수중과 지하핵시설이 앞으로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1945년 일본에 첫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46년이 지나는 동안 핵무기의 개발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오늘날 전세계가 보유한 파괴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1백30만배에 달해 지구를 멸망시키고도 남을 가공할 만한 분량이다.더욱이 지상·해상·수중·공중투하등 종류에 따라 파괴력이 다양해 1천만인구의 거대도시도 폭탄 1개로 파괴해버릴 수도 있다. 전술핵과 비슷한 의미로 전역핵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전술핵보다는 사정거리가 길고 전략핵보다는 사정거리가 짧은 5백∼5천5백㎞의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말한다. 이는 미국이 국지전에 사용키 위해 개발한 것으로 나토에 배치되어 있다. 미소간의 중거리핵전력(INF)은 지난 88년6월 유엔군축총회에서 모두 폐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미국의 퍼싱Ⅰ·Ⅱ,소련의 SS4·12·20·23등이 모두 폐기됐다.
  • 소련에 달렸다(냉전의 끝 핵이 사라진다:2)

    ◎미·소 새 안보협력 시대로/군사적 대결 아닌 정치·경제력으로 승부/어려운 고르비,부시에 적극적 협조 예상 미국의 획기적인 핵무기 감축조치로 인류는 오랜 염원이었던 「핵없는 세계」의 실현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그러나 조지 부시미대통령이 밝혔듯이 이 조치는 소련의 상응한 조치가 동반돼야 비로소 실질적인 효과를 갖도록 돼있다. 소련은 아직 구체적인 대응조치를 내놓지는 않고 있다.하지만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나온 소련측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소련정부도 대규모 핵감축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잇따라 긍정적인 대응을 약속했고 빅토르 카르포프 소외무차관은 오는 2천년까지 모든 핵무기의 폐기를 원한다는 소련정부의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3년여에 걸쳐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와 그에 수반돼 진행된 동서냉전체제의 붕괴는 이미 미소 양대세력간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경쟁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았다.군축을 둘러싼 협상과정에서 양국간 다소의 이견은 있었지만 미소양국은 이미 군축과 「핵없는 세상」으로의 착실한 진전을 계속해 왔었다.1987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체결과 금년 7월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진 START(전략무기제한협상)의 합의가 그 대표적인 업적들이다. 중부유럽에서는 독일통일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붕괴로 지난 40년 이상 소위 「핵억지력」에 기초해 유지돼온 평화구도가 무너졌다.부시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핵무기로 방어하려했던 소련의 군사위협이 소멸됐음을 공식선언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부시대통령이 뒤늦게 추인한 셈이 됐지만 핵무기 감축은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85년 집권이래 꾸준히 제의해온 문제들이다.서방국들로부터 악화일로의 소련경제를 구하기 위해 내놓은 일시적인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고르바초프는 핵무기폐기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군축조치들을 속속 내놓았다. 1986년에 이미 15년계획의 핵무기 전폐계획을 발표했고 87년 INF협정에 이어 88년 12월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소련군 50만명 감축계획을발표했다.아울러 중부유럽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을 포함,모든 군사력을 방어위주로 재편한다고 밝혔다.소위 신사고구상위에 마련된 이들 군축제의는 군사력의 상호균형에 의해 유지하는 평화개념 뿐아니라 핵무기의 효용성과 전쟁 그 자체를 부정하는 획기적인 발상들이었다. 아시아에서도 새로운 안보개념이 도입되었다.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88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에서 발표된 소련의 새안보전략들은 동아태지역에서의 병력감축,비핵지대화를 비롯해 CSCE(유럽안보협력회의)경험을 원용한 군사적 신뢰구축방안들을 담고 있었다. 고르바초프의 이런 제안들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어온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이 소련의 진의에 의구심을 떨칠수 없었기 때문이다.과거 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 때도 그랬듯이 데탕트를 부르짖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팽창주의,패권주의 정책을 펴온 나라가 과거의 소련이었다. 아울러 서방으로서는 소련내 군부·공산당내 수구세력들의 반동가능성에도 큰 우려를 갖고 있었다.경제난등으로 한때 움츠려있지만 군축과 서방원조에 힘입어 기력을 회복하면 다시 과거의 팽창주의노선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실패로 끝난 8월의 불발쿠데타는 결과적으로 서방의 이런 우려들을 일시에 씻어내 주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따라서 부시대통령의 핵감축선언은 동서 양진영 대결위주의 소위 「제로섬(ZERO SUM)게임」안보개념에서 벗어나 미소가 공히 협력위주의 안보,즉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정치·경제력으로 추구되는 안보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다소의 줄다리기는 있겠지만 현재의 경제난이나 쿠데타 이후 권력구조상 소련도 이 핵무기 없는 세계로의 대세에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다시 말해 인류의 공멸을 담보로 한 핵경쟁시대는 이제 막을 내려가고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환경보존,기아,질병등 인류공동의 문제와 일부 지역패권주의 국가들에 대한 지구촌 공동대응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공동대응의 무대에서는 위상이 강화된 유엔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또 소련이 오랫동안 주장해온대로 유럽·아시아등 지역별로 경협등에 바탕을 둔 지역안보체제가 태동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바르샤바조약기구등으로 대변되던 동서체제간 투쟁시대는 이제 핵무기의 퇴장과 함께 분명히 그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 M·L주의 포기한 개혁의 주역/고르비 집권에서 실각까지

    ◎85년 서기장 피선·90년 대통령으로/신사고로 세계냉전의 흐름을 바꿔 집권 6년5개월만에 실각된 고르바초프는 세계정세의 흐름을 냉전에서 데탕트로 바꿔놓은 장본인. 체르넨코가 서거함에 따라 러시아혁명(1917년) 이후에 출생한 최초의 소련지도자로서 지난 85년3월11일 54세의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고르바초프는 집권직후부터 「인간적인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신사고외교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및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을 추진,사회주의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총성없는 「제2의 러시아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사유재산제를 도입하는 등 소련경제를 철저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시키고 공산당 권력독점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등 국내에서의 엄청난 정치·경제적 변화를 주도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88년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동유럽개혁 불간섭을 선언,동구전역을 휩쓴 민주화물결의 불을 댕겼다.독일통일도 고르바초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지난달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역사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하는 등 미소관계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에까지 화해의 대기운을 몰고온 것도 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최소한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지난해 6월 노태우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소수교를 맺고 지난 4월 방한했는가 하면 북한에 개방압력을 꾸준히 가하는 등 한반도의 해빙무드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있다. 이같은 국제무대에서의 빛나는 업적으로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해외에서는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같은 급속한 개혁추진과정에서 정치·경제적 대혼란이 불가피하게 수반돼 인기가 곤두박질쳤다.식량위기 등 극심한 경제난에 따른 불만이 극에 달했다.지난달 런던에서 서방선진7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는 등 서방세계로부터 대소경제지원을 얻어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국내에서는 오히려 구걸외교라는 비난을 사기도했다.발트3국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독립요구에 따른 연방해체위기로 골머리를 썩이면서 러시아공화국 등 9개공화국과 신연방조약 체결을 추진,20일 조인할 예정이었다. 급진개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있는 보수파와 더딘 개혁속도를 못마땅해하는 개혁파의 협공 속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자신에게 도전한 보수파의 거두 리가초프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는 등 위기를 맞을 때마다 번번이 승리를 이끌어내 간간이 나돌던 실각설을 비웃으며 정치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60세로 지난 31년 남부 러시아의 프리볼노예에서 출생,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헌법을 개정,지난해 5월 임기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공산당서기장과 겸직하던중 1년 남짓만에 도중하차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돼버렸으나 고르바초프라는 이름은 세계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고르바초프 연보 ▲31.3.2 러시아공 프리볼노예에서 출생 ▲50 모스크바대 법학과 입학 ▲52 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78 공산당 농업담당 서기 ▲80 정치국정위원 ▲85.3.11 공산당 서기장 ▲85.8 핵실험 일방중지 선언 ▲85.11 레이건과 제네바에서 제1차 정상회담 ▲86.10 레이캬비크에서 레이건과 2차 정상회담 ▲87.12 워싱턴 방문,INF 폐기협정서명 ▲88.9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5 북경방문,최고회의 의장 피선 ▲89.10 몰타정상회담,냉전종식선언 ▲90.3.15 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5 워싱턴방문,미소정상회담,전략핵감축합의 ▲90.6 샌프란시스코한소정상회담 ▲90.10 한소수교 ▲90.10.15 노벨평화상 수상 ▲90.12 모스크바서 한소정상회담 ▲91.4.16 방일 ▲91.4.19 방한 ▲91.7.26 소련공산당 중앙위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포기,신강령안채택 ▲91.7.30∼31 모스크바서 미소정상회담,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조인
  • 이라크침공 1돌… 중동판도 어떻게 변했나

    ◎아랍/민족주의 퇴조 국가이익 우선/역내질서 재편… 아랍­「이」엔 “평화의 계기”/중립 지킨 이란,실지회복등 “어부지리”/사우디등 「걸프왕국」은 민주화 “제자리걸음”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2일로 1주년을 맞는다.결국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의 6주간에 걸친 공세에 밀려 2백70일 천하로 끝나기는 했으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은 유가를 천정불지로 치솟게 만드는 등 국제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국제질서와 중동지역의 역학관계를 뒤바꿔놓는 거대한 변화의 계기가 됐다.중동평화회담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도 변화의 결실중의 하나다.그러나 침공당사자인 사담 후세인이라크대통령이 아직도 권좌를 지키고 있고 아랍국들의 민주화도 요원한 상태여서 아직도 진행돼야만 할 변화들이 많은 상태다.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이 갖는 의미와 그에 따른 각분야의 변화,후세인의 근황 등을 살펴본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사태가 벌어졌던 90년8월2일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지금 국제질서의 가장 큰 변화는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세계의 지도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는 점과 적대적이던 양대 초강국 미국과 소련이 충실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같은 현상들은 예상돼 오던 것이기는 하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이를 기정사실로 정착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이 제창하고 있는 이른바 「신국제질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미국은 신국제질서에 대해 『경제적 경쟁이 군사적 경쟁을 대신하고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집단적 안전보장을 이루고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그럴듯하게 아무리 설명한다해도 그것은 바로 미국을 축으로 하는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를 감추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소련은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도입하고 경제회복의 한 방편으로 국방비를 삭감하기 위해 미국과 INF(중거리핵감축협정)및 CFE(재래무기감축협정)등의 군비감축협정을체결했다.이에 따라 소련에서 서서히 시작된 탈이데올로기 시대로의 이행이 동구권으로까지 확산됐으며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밑바탕이 됐다. 이처럼 제여건이 성숙된 가운데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란 사태가 발생했다.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갖는 의미는 그이후 전개된 걸프전쟁을 통해 소련의 군사적 열세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확실히 함으로써 양극체제의 붕괴와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새 국제질서를 앞당기는 「촉매」구실을 한데서 찾을수 있을 것이다. 걸프전쟁을 통해 미국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데 있어 유엔이 맡았던 몫도 결코 무시할수 없다.쿠웨이트 위기에 대한 유엔의 신속한 대응은 이라크의 행동이 국제사회의 공분을 산데도 이유가 있지만 미국이 영국·프랑스·소련·중국등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적극 호응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데 더 큰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엔은 걸프전쟁을 계기로 국제분쟁 해결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음으로써 앞으로 국제분쟁에 대한 중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중순 런던에서 열린 G­7(서방선진7개국)정상회담에서 유엔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정치선언문이 채택된 것도 미국이 주도하는 새 국제질서 확립을 위해 한걸음 더 나간 것으로 받아들일수 있을 것같다. 물론 미국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견제세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프랑스와 독일등 유럽국가들은 동구의 대변혁과 독일통일로 유럽의 정세가 크게 변하자 CSCE(유럽안보협력회의)를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대신할 새 안보기구로 탈바꿈시키려는등 그동안 미국에 빼앗겼던 국제정세에서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기도를 보였었다.이같이 미국에 대한 유럽의 견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주도의 국제질서는 앞으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그것은 소련이 지난달말의 미소정상회담을 앞두고 거의 10년을 끌어온 STATR(전략무기감축협상)를 서둘러 마무리지은데서 볼 수 있듯이 경제회생을 위해 서방측의대규모 경제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소련으로선 미국과의 협력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같은 미국주도의 새 국제질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40여년을 끌어온 이스라엘·아랍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중동평화회담 개최문제의 진전을 들 수 있다. 군사적 경쟁을 경제적 경쟁으로 대신한다는 미국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국제관계에선 경제문제가 주요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따라서 경제부문에서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지겠지만 걸프전쟁을 계기로 나타난 미국주도의 새 국제질서는 미국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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