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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라운지] 격투기 선수 데니스 강

    [스포츠 라운지] 격투기 선수 데니스 강

    ●이소룡이 우상인 하프 코리안 인구 약 5000명의 캐나다 인근 프랑스령 작은 섬 마을. 마도로스였던 한국인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이던 프랑스계 캐나다인 어머니 사이에서 그는 태어났다.10대에 접어들었을 때 아버지는 사업차 한국으로 떠났다. 이웃들과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은 자신과 동생들밖에 없었다. 중국인이냐고, 일본인이냐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울면서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울지 마라, 넌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니란다. 넌 한국인이야.” 그래서일까. 강해지고 싶어서일까. 또래들은 농구, 야구스타를 좋아했으나 그에게는 이소룡이 우상이었다. 소년은 태권도·유도·합기도·레슬링·주짓수(브라질 격투기) 등 격투기에 마음이 쏠렸다. 1998년 즈음 “난 격투기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본격 격투선수의 길을 결심했다. 하지만 배고픈 시절이었다. 나이트클럽 경호원, 관광가이드, 주정부 직원, 주짓수 사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남는 시간에는 링에서 구슬땀을 흘렸다.2년 전 “반드시 우승할 수 있으니 한국에 갈 비행기 값을 먼저 보내달라.”며 국내 종합격투기(MMA)대회인 스피릿 MC를 노크했고, 호언장담은 그대로 이뤄졌다.“내가 하는 것이 싸움질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한국을 찾은 이유다.‘하프 코리안’이 아니라 스스로를 “슈퍼 코리안”이라고 부르는 그는 세계 최고 MMA 무대인 프라이드와 국내 스피릿 MC에서 함께 활약하고 있다. ●올해 목표는 웰터급 정복 26일 ‘프라이드 웰터급(83㎏ 이하)그랑프리 2006’ 2라운드(8강전)에 나서는 데니스 강(29)을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프라이드 진출 이후 4연승을 질주하는 그의 이번 상대는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와 같은 팀(레드 데빌) 소속인 아마르 슬로예프다. 타고난 성실성으로 자는 시간을 빼면 90% 이상 훈련에 집중한다는 데니스 강은 자신감이 넘쳐났다. 얼굴도 알려지고 인기도 얻었지만 요령을 모른다. 이뤄야 할 과제가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올해 목표는 당연히 프라이드 웰터급을 정복하는 것.“MMA의 전설이 되고 싶다.”는 그는 “기량도 가다듬고, 체중도 늘려 미들급(93㎏ 이하)의 반달레이 실바와 마우리시오 쇼군과도 붙어보고 싶다. 난 언제나 도전을 좋아한다.”며 눈을 번뜩였다. 이왕 시작했으니 표도르처럼 프라이드에 이름을 새기고 싶어하는 그는, 하지만 가장 동경하는 선수는 ‘UFC의 전설’ 프랭크 샴락이란다. 샴락이 불량했던 성장기를 털어내고 최고의 파이터가 됐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지금 성적은 좋지 않지만 프로페셔널한 트레이닝으로 MMA의 전형을 만든 최초의 파이터라고 덧붙였다. 요즘 한국의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국이 왜 남북으로 분단됐는지 알기 위해 열심히 역사책을 읽고 있단다.IMF나 FTA 등 한국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호기심 천국’이 돼 주변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데니스 강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역을 떠난다면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도장을 열고,MMA를 가르치고, 기회가 닿는다면 영화 쪽에도 진출하고 싶다며 싱긋 웃었다. ■ 프로필 ●출생 1977년 9월17일 프랑스령 캐나다섬 생피에르미클롱 ●국적 프랑스·캐나다 ●체격 183㎝,83㎏ ●한국이름 강대수 ●가족관계 아버지 정근(57)씨, 프랑스계 캐나다인 어머니 파울라 강(58). 토마스(26), 줄리언(24) 등 남동생 2명 ●종교 없음 ●취미 역사공부, 강아지와 놀기 ●좋아하는 음식 불고기 ●주량 소주 한 잔 ●흡연 안 피움 ●학교 칼슨그램하이스쿨 졸업 ●소속 스피릿MC ●경력 국내 종합격투기(MMA)대회 스피릿MC 그랑프리 우승(2004), 프라이드 무사도6(오바 다카히로전) 텝아웃승(2005.4), 무사도8(안드레이 세메노프전) 판정승(2005.7), 무사도10(마크 위어전) 텝아웃승(2006.4), 무사도11(웰터급 그랑프리 개막전 무릴로 닌자전) KO승(2005.6)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적의 공격 없어도 나라 자연 소멸되면, 아아, 우리 백성들 어디 가서 사나. 이 나라 강토 없게 되면 가옥, 전토는 뉘 것인고. 국채 다 갚는 날 오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손가∼’ 100년 전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국채를 일본에 상환하고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고자 이심전심으로 불렀던 ‘국채보상가’ 중 일부이다. 당시 국채 1300만원은 국가의 존망을 흔들었다. 애국인사들은 2000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매일신보가 애국의 불길 지펴 이에 고종황제는 ‘불가흡연’을 외치며 요원지화(燎原之火)를 지폈고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는 국운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확대시켜나갔다. 임금에서 백정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불길처럼 타올랐다. 특히 두산그룹 창업주로 당시 ‘박승직 상점’을 운영했던 박승직씨는 100원이라는 거액을 쾌척(1907년 2월23일자 대한매일신보)해 불길을 드높였다. 결국 이 운동은 일제의 온갖 탄압으로 1년여만에 막을 내렸지만 망국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진 민족의 가슴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애국의 불꽃을 심어주었다. 이로부터 90년이 지난 1997년 11월,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비통한 표정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선언했다. 말 그대로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것. 그러자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모으기운동’에 적극 나섰다. 돌반지며 장롱 속의 금비녀 등을 손에손에 들고 은행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를 본 외국 매스컴은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경탄했다.90년만에 ‘국채보상운동’이 재현된 셈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저력과 5000년 역사에 최초의 국민운동으로 자리매김되는 ‘국채보상운동’이 100주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새삼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영호(66) 전 산업자원부 장관. 경제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97년 일본 경제학자가 뽑은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경제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장’이자 100주년기념사업 공동대표를 맡아 그 정신과 취지를 알리는 데 적극 앞장서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말이었다. 김 전장관은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 경북대에 복직했다. 오랜만에 모교에 돌아온 그는 대구지역 경제·상공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하나의 큰 깨달음에 이른다. 즉, 대구에서 발상된 국채보상운동이 90년이 됐건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 세계사에서 유례 없었던 민족운동이 왜 역사 속에 묻혀야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문희갑 대구시장에게 찾아가 “이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며 90주년기념을 반드시 이슈화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설득했다. 아울러 대구지역 언론사 등을 찾아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97년 2월 드디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최초로 ‘국채보상 90주년’기념 행사가 열렸다. 그해 10월에는 ‘90주년 국제심포지엄’까지 개최되면서 고귀한 민족정신을 여러 나라에 알렸다. 이때 김 전장관은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우리나라의 빚이 1300억달러나 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며칠후 피셔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답장과 함께 “한국 정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1300억달러의 규모를 어떻게 아느냐.”라며 놀라워했다. 이 서신의 내용은 국내 경제·금융계에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화제가 됐다. 역설적으로 당시 한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얼마만큼 안일하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99년 10월 외채탕감을 위한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를 개최, 그나마 한국의 체면을 세운다. 그해 12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완공됐으며, 현재 대구 일대의 중심공원으로 자리잡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 광복 61주년을 맞아 서울 시내 모호텔 커피숍에서 김 전장관을 만났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겸 IMF사태 10주년을 맞아 제2차 대구라운드 개최와 기념관 건립 추진 등을 준비하느라 바쁜 틈에 잠시 시간을 냈다. 앉자마자 국채보상운동의 중요성과 역사적인 의미에 목소리를 높인다. “강만길 교수는 최초의 시민운동이라고 했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국 기부문화의 효시라고 했습니다. 또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최초의 NGO가 중심이 된 국민적 사건으로, 박용옥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적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이어 “당시 정부가 빌린 돈 1300만원을 못갚게 되자 국민들이 술 안 마시고 담배를 끊어가며 갚겠다는 눈물겨운 운동이 아니냐.”면서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역사적 사건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대구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는 이준 열사의 부인이, 평양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 등도 참여할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 즉 ‘부추김과 꼬심’을 고발하고 비판한 전국민의 외자경계 운동이기도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신국채보상운동’이라는 IMF사태 때에는 그렇지 못해 우리들에게 숙제를 남겼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 서민들은 숨겨놓은 돌반지까지 털어가며 외채갚는 데 앞장섰지만 정부나 금융관계자들은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우리나라가 IMF의 빚을 다 갚고 난 직후의 일입니다. 당시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현 컬럼비아대) 교수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했더라면 적어도 200억∼300억달러는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중요한 말을 했어요. 돈이 오고가는 데 있어서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책임도 마땅히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이같은 책임문제를 따지기 위한,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외채탕감운동을 예로 든다. 대표적으로 주빌리(Jubillee)운동과 아탁(ATTAC, 시민지원 금융투기거래 과세운동연합) 등이다. 김 전장관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거래되는 돈의 규모는 하루 1조 8000억달러인 데 반해 물동량은 200억달러도 채 안된다.”고 전제한 뒤,“물건뿐만 아니라 돈거래에 대한 세금도 매기고 규제하자는 것이 아탁운동.”이라면서 돈 거래액에 0.25%의 세금만 물어도 1년에 1500억 내지 2000억달러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돈으로 빈국의 부채탕감을 도와주고 문맹퇴치와 지구온난화 방지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 자산 팔아 IMF 빚 갚은 건 잘못” “내년은 국채보상운동의 100주년이자 IMF체제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는 정말 반성할 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캉드시 전 IMF총재가 임기를 마치고 주빌리운동 자문관으로 간 것을 보십시오. 이는 채권자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난센스죠.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이 얼마나 바보같이 빚을 갚았는지 알 수 있지요.” IMF 빚은 한국의 자산을 외국에 팔아서 갚았으며 이는 결국 우리 주요 기업들의 외국자본율만 높아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 에너지 등과 관련된 회사는 절대 안 내주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포철까지 일부 외국에 내다팔았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IMF는 분명 한국에 빚이 있다. 그 빚을 갚아야 진정으로 IMF 위기가 끝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금융기술이 부족해 그같은 일이 발생한 만큼 IMF는 도덕적 책임을 갖고 한국에 ‘국제금융기술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세계가 공감하는 일이며 우리 정부도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FT(금융기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IMF에 당당히 요구할 권리 또한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나라는 외국자본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외환은행 사태를 보십시오. 개방을 하되 적어도 안방과 기둥뿌리는 지켜야 하지요. 이젠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으로 경제적인 주권회복에 국가나 국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지요.” 김 전장관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일찍부터 ‘기술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다.85년 오사카시립대학 교수와 92∼94년 도쿄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많은 경제서적을 남겼다. 특히 ‘기술경제론’은 일본 100개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3년 전 유한대학을 국제적인 종합대학으로 만들어달라는 학교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0년 합천 출생 ▲대구상고 졸업 ▲62년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65년 공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 ▲71년 하버드대·일본 아세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73∼88년 경북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85년 오사카시립대 경제학 박사 ▲85∼88년 오사카시립대교수 ▲92∼94 도쿄대 교수 ▲97년 경북대 경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일본 경제학자 설문조사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 경제학자’ 선정 ▲2000년 산업자원부장관 ▲01년∼현재 중국 옌볜대 석좌교수 ▲03년∼현재 유한대학장 ●상훈 다산경제학상(92년)●주요 저서 한국경제의 분석, 동아시아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일어), 한·일간 기술경제질서론(공저) 등 다수 km@seoul.co.kr
  • “신문유통원 문제등 고려 차관 교체”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문화차관 경질 논란과 관련,“실제로 알려진 것처럼 인사문제로 다툼이 있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신문 유통원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체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열린우리당 운영위·문광위 소속 의원들과의 만찬회동에서 “처음 교체 의견을 보고받았을 때는 신중하라고 했으나 이후 여러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체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 참석 의원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의 아리랑 TV 부사장 인사청탁 논란과 관련,“청탁이 아니라 추천”이라면서 “청탁은 개인적으로 이익을 보자고 하는 것인데 홍보수석이 개인이익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니 인사추천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인사시스템에 대해 노 대통령은 “과거와 비교할 때 개선된 것”이라며 “YS(김영삼 전 대통령)때 ‘소통령’(김현철씨를 가리킴)이 전횡한 것과는 시스템이 다르고 (지금은) 중요한 인사는 대통령이 직접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 국정운영과 관련해 “이전 대통령들이 임기말에 굉장히 어려움에 처하면서 국정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 피해가 국가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느냐.”며 “YS 같은 경우 아들문제 생긴 다음에 국정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IMF 사태가 초래됐다.”고 말했다.박홍기 문소영기자 hkpark@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국제배드민턴연맹 강영중 회장

    [스포츠 라운지] 국제배드민턴연맹 강영중 회장

    #장면1 2000년 시드니올림픽 혼합복식 8강전에서 중국의 장준-가오링조에 충격의 패배를 당한 나경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체육관을 떠났다. 응원차 호주를 찾은 그는 시드니항의 명물인 크루즈에 나경민을 태워 어깨를 토닥여줬다. #장면2 2004년 8월 아테네 구디체육관. 관중석에 앉은 그는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곁의 아내가 “평소 교회에도 잘 안나가는 양반이….”라며 타박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간절한 바람 덕인지 손승모는 남자 단식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남자 복식에선 금·은을 휩쓸었다. 영광의 순간이나, 노골드’의 수모를 겪을 때나 그는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와 국제배드민턴연맹(IBF)을 이끄는 ‘셔틀콕의 대부’ 강영중(57) 대교그룹 회장이다. ●한국 셔틀콕의 수장 강 회장이 배드민턴과 본격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7년. 삼성전기와 양대산맥을 이뤘던 오리리화장품이 IMF를 견디지 못하고 96년말 팀을 해체, 당대 최고의 스타 방수현을 비롯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무적’선수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시속 332㎞의 셔틀콕 만큼이나 초 고속으로 학습지 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일군 그는 여자농구단 창단을 염두에 뒀지만, 해체 소식을 전해듣고 배드민턴단을 전격 인수했다. 셔틀콕의 어떤 매력이 그를 사로잡았을까.“취미 수준부터 선수 수준까지 맞춰 즐길 수 있는 것이 배드민턴이다. 요즘 다이어트 열풍인데 배드민턴만큼 아름답게 몸매를 가꿀 운동도 없다.”며 ‘셔틀콕 예찬론’을 펼쳤다. 강 회장이 처음 라켓을 잡은 것은 진주농고(당시 진주농전) 재학 시절. 체육교사들이 강당에서 즐기는 모습을 난생 처음 봤던 그도 배드민턴을 배우게 됐고,10분여 만에 웬만큼 칠 수 있게 되자 이내 푹 빠졌다. 요즘도 대교눈높이팀 선수들과 종종 배드민턴을 치는 강 회장은 ‘아마추어 고수’ 수준으로 알려졌다. 요즘 강 회장은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국내 배드민턴계 최대 축제인 ‘코리아오픈’이 21일부터 열리기 때문.“그동안 저변을 넓히기 위해 지방에서 개최했지만 이젠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해 서울에서 열게 됐다. 세계 최대규모인 30만달러의 총상금에 걸맞게 톱랭커들이 몰려오는 만큼 셔틀콕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것”이라며 팬들을 초대했다. 올해 아마추어 스포츠의 화두는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주요 국제대회에서 ‘효자종목’ 역할을 해온 배드민턴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을까.“베이징올림픽을 겨냥한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무대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팬들께서 긴 안목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차세대 주자들이 성큼성큼 크고 있으니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강 회장은 올림픽 금메달 보너스로 3억원을 파격 제시, 체육계를 놀라게 했다. ●테니스를 뛰어넘겠다 그가 IBF 수장에 오른 것은 지난해 5월.15개월이 지난 지금, 스스로 평가한 성적표는 몇 점 정도일까.“첨예한 국가별 이해관계를 조정하느라 1년을 보냈다. 지금까지는 C플러스 정도”라면서 인색한 잣대를 들이댔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폭넓은 저변을 자랑하는 배드민턴은 미주와 아프리카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그가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염두에 두는 것도 배드민턴의 세계화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아테네올림픽 28개 정식종목 가운데 배드민턴의 시청률은 14위. 시드니올림픽 때 23위에 견주면 눈부신 도약인 셈. 강 회장은 “아네네올림픽때 인터넷 중계에선 2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뜨겁다. 테니스를 능가하는 최고의 라켓종목으로 만들겠다. 이를 위해 월드컵 창설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배드민턴계의 숙원인 전용체육관 건립과 관련,“이런 메달종목에 전용체육관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1만여평 정도의 부지만 지원한다면 숙박시설과 연습장을 포함, 세계선수권대회를 유치할 정도의 배드민턴 타운을 조성하는 게 마지막 목표”라고 강조했다. 3년뒤 IBF 회장에 재선될 경우 기회가 주어지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위원 직에는 욕심이 없는지 살짝 떠보았다.“IBF회장이 연임밖에 안되는 상황에서 IOC 위원은 의미가 없다. 일단 IBF의 회장 역할에 올인하겠다.”며 손사레를 쳤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출생 1949년 7월27일 경남 진주 ●가족 아내 김민선(53)씨와 사이에 2남 ●학력 진주농고-서라벌고-건국대(72년) ●경력 한국공문수학연구회 창립(76년)연세대 교육학석사(87년)대교 대표이사(87년)대교그룹회장(96년∼) ●배드민턴 관련 경력 대교눈높이여자팀 창단(97년)대한협회장(03년∼)제13대 아시아협회장(03∼05년)국제연맹(IBF)회장(05년∼) ●수상 세계가정의 해 대통령표창(95년)옥관문화훈장(04년) ●취미 골프(핸디캡 12)배드민턴 ●주량 소주 1병 ●종교 기독교
  • 불교관심! 일탈귀의?

    ‘절집도 고학력시대’출가해 승려가 되기 위한 행자교육에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대거 몰려 불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올해 조계종, 태고종, 천태종 등 불교 3대 종단 행자교육과 수계식에서는 각 종단별로 전문대졸 이상이 40%선에서, 많게는 70%까지 차지해 본격적인 고학력 추세를 예고했다. 이처럼 고학력 출가자가 느는 것을 놓고 불교계에서는 일단 한국불교 발전과 포교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종단 운영과 수행 측면에선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것이란 견해가 적지 않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16일 조계종 교육원에 따르면 지난 11일 직지사에서 개원한 제31기 행자교육 입교 지원자 232명(남 149명, 여 83명) 가운데 전문대졸 17명, 대졸 76명, 대학원 5명 등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가 98명으로 전체의 42%나 됐다. 연령층도 40대 81명,50대 15명 등 40대 이상이 96명으로 전체의 41%를 차지했다. 이번 행자교육에 참여한 출가자들은 5급 승가고시를 통해 공부결과를 점검받은 뒤 사미, 사미니계를 수지해 예비승려의 길을 걷게 된다. 올해 행자교육은 지난해 출가연령을 40세 이하에서 50세 이하로 상향조정한 뒤 실시하는 첫 예비승려 교육. 따라서 조계종은 이처럼 올해 고학력자가 행자교육에 대거 지원한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禪·명상에 관심 늘고 불교 인식 개선 고학력 출가자가 느는 것은 태고종, 천태종도 마찬가지.IMF사태 이후 고학력·고령층 출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태고종의 경우 행자교육을 수료하는 250여명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이 절반 정도에 이르고 있다.천태종은 3년간의 행자교육을 마쳐야 수계를 하는데, 지난 7일 구인사에서 계를 받은 18명 가운데 70%인 12명이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로 나타났다. 고학력·고령 출가자가 느는 것은 아무래도 사회 전체적으로 고학력·고령자가 증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특히 선(禪)·명상 등 불교에 대한 관심이 늘고 인식도 좋아지면서 자연 이같은 고학력·고령 출가자의 불교계 유입이 늘어났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불교계의 예비승려 과정은 엄격한 기상과 취침, 예불·공양, 묵언, 철야정진, 외부 접촉금지 등 까다롭고 힘이 드는 만큼 보통 30∼50% 정도가 교육을 모두 마치지 못한 채 중도탈락한다. 따라서 불교계는 행자교육을 마쳤다고 해서 모두 승려가 되는 게 아닌 만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불교 포교에 도움… 기대 충족할 프로그램 필요”조계종 기획실장을 지낸 여연(일지암 암주) 스님은 고학력 출가자가 느는 것과 관련,“종전 불교는 개신교나 천주교에 비해 사회적인 역할에 있어서 뒤졌고 거듭된 분란으로 인해 우리사회에서 전반적인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근래들어 불교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바뀌고 불교계 자정운동이 늘면서 빚어지는 긍정적인 현상”이라면서 “그러나 사회에서 낙오된 뒤 귀의하거나 소외 등 일탈의 해결처로 출가를 택하는 것은 불교계나 본인을 위해 모두 불행한 일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태종 사회부장 무원 스님도 “고학력 출가는 불교의 대승적 포교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불교의 특성상 몸과 마음을 전적으로 일치시켜야 하는 수행 차원에서 볼 때 어려움이 적지 않아 고학력 출가자들에 대한 별도의 프로그램 마련 등 종단차원의 배려가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 “세계경제 성장 단계 이미 끝났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14일자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에서 “세계 경제가 정점에 이미 이르렀고, 서서히 활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2003∼2006년 세계경제 성장률이 연 평균 4.8%에 이른다고 밝혔는데, 이는 1970년대 초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로치는 “자산가격 상승을 바탕으로 한 소비 증가에 기대 세계경제가 성장하는 단계는 이미 끝났다.”고 분석했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4) 빙그레

    “집을 지으려면 아귀가 맞아야 하잖아요. 위원장, 아귀가 잘 맞게 협조해 주세요.”(정수용 빙그레 사장) “사장님, 못질은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힘을 빼고 리듬을 타세요.”(허성수 노조 위원장) 지난 2004년 8월 초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펼쳐진 몽골 수흐바트르지역. 흰색 안전모와 장갑을 낀 정 사장과 허 위원장이 새벽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망치질을 했다. 뼈대만 있던 집이 이들의 못질, 톱질을 거치면서 벽면이 완성되고 지붕이 덮였다. 노사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노조 협력 유도 ‘스킨십 경영´ 효과 바나나맛 우유, 요플레, 투게더, 더위사냥…. 빙그레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들이다. 이런 대박 상품들은 노사 화합에서 나왔다. 정 사장은 “노조의 헌신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히트 상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며 공(功)을 모두 노조에 돌렸다.1987년 이후 19년째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는 빙그레를 찾았다. 한여름 뙤약볕 열기가 후끈한 지난 9일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 빙그레 도농공장. 공장에 들어서자 달큼한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더위사냥’과 ‘투게더’ 등의 원료가 섞인 냄새였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허 노조 위원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머리가 밤송이처럼 자라 있었다. 굳센 ‘투사’의 이미지였다. 지난 1일 타결된 올해 임금협상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줬다. 임금 협상은 지난 6월 초 시작됐다. 몇 차례의 교섭이 진행됐지만 노사는 평행선이었다. 허 위원장이 삭발을 하면서 교섭 분위기가 험악했다.‘살벌한’ 교섭이 몇 차례 더 진행됐다. 하지만 ‘파국만은 막자.’는 것이 노사간의 속내였다. 밀고 당기기를 몇 차례, 큰 어려움 없이 5.8% 임금 인상에 합의 도장을 찍었다. 허 위원장은 “아무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수년 동안 순간순간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결과”라고 전했다. ●86년 파업때 영업망 완전붕괴 교훈 19년 무분규 역사를 쓰고 있는 빙그레의 노조는 약하지 않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1976년 노조 설립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파업이 86년에 있었다. 강동원 노조 부위원장은 “당시 3일간의 파업으로 전국의 영업망이 완전히 붕괴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붕괴된 영업망을 정상궤도에 올리는 데는 무려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노조는 당시 파업 피해를 실감했다. 파국을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때 형성됐다. 그래도 2000년 이전에는 교섭기간이 5∼6개월이나 걸렸다. 회사도 순탄치만은 않았다.1992년 한화그룹에서 분리·독립할 당시 부채비율은 무려 4183%에 달했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나 싶더니 98년 IMF가 덮쳤다. 회사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부채 비율이 350%에 달했을 때 노조가 앞장서 상여금을 반납했다. 이에 회사도 월급을 제 날짜에 꼬박꼬박 맞췄다.2003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던 라면 사업을 철수했다. 다행히 2004년 말 부채가 53.7%로 떨어졌다.92년 3000여명에 이르던 인력도 1700여명으로 줄였다. 드디어 지난해에는 5424억원의 매출에 387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독립경영 10여년 만에 식품업계의 ‘작은 거인’으로 거듭났다는 평을 받았다. 환골탈태에는 노조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노조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회사는 ‘열린 경영’과 ‘스킨십 경영’을 들고 나왔다. 빙그레는 도농(남양주)·김해·광주(경기도)·논산에 사업장이 흩어져 있지만 단일 노조를 갖고 있다. 본사 노조는 도농공장에 있다. 사업장별로 특성이 달라 쟁점도 다르다. 협의회 의결사항은 게시판과 전자메일로 전직원들에게 알려준다. 또 회사는 노조에게 생산, 영업 및 수금 등의 경영정보를 경영진과 똑같이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라면 사업을 철수할 때도 노사가 수개월간 머리를 맞댔다.‘구조조정=노사갈등’이란 싸움의 등식이 깨진 이유다. ●92년 한화서 분리 10여년만에 제자리 또 노사는 사업장마다 두달에 한번씩 산행을 한다. 윤정용 도농공장장은 “몸으로 부딪치는 스킨십이 있어야 노사가 서로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사가 함께 마라톤도 한다. 허 위원장은 “자주 부딪치다 보니 사무직과 영업직의 고충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2001년 김호연 회장이 시작했던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도 노사가 해마다 함께 참여하고 있다. 허 위원장은 “사회 봉사활동을 하니 뿌듯하고 회사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빙그레라는 ‘큰 집’을 짓는 노사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남양주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3) 셰플러코리아 전주 공장

    [위기를 기회로 만든 노사] (3) 셰플러코리아 전주 공장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전주 제2산업공단내 ‘셰플러코리아 전주공장’에 들어서면 ‘Together we move the world(우리 함께 세계를 움직여요)”라는 글귀가 방문객의 눈길을 끈다. 깔끔한 공장 내·외부, 다양한 복지시설, 성실한 조업 분위기에서 이 회사가 첨단부품을 생산하는 회사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각종 베어링을 생산하는 이 회사에는 29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연간 약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기업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베어링은 국제품질규격을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어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17년간 주인 4번, 사명 6번 바뀌어 대형 기계가 가동되는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2001년 환경친화기업으로 지정됐다.2004년에는 무재해 9배수 달성기업으로 선정됐고 생산성 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1995년 이후 노사분규가 단 한번도 발생하지 않은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의 셰플러코리아 전주공장이 있기까지는 엄청난 시련과 갈등이 있었다. 이 회사는 1989년 외국계 자본과 국내기업이 절반씩 투자해 삼미정공 전주공장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창립 이후 17년 동안 주인이 4번, 회사 이름이 6번이나 바뀐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소용돌이를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회사 출발과 함께 이 회사는 강성노조와 사용자간 양보 없는 대립으로 매년 한 달에서 석 달씩 파업을 하기 일쑤였다. 89년부터 94년 12월 한화그룹에 인수될 때까지 6년 동안 되풀이되는 극심한 노사분규로 회사가 휘청거렸다. 더구나 노·사간뿐 아니라 노·노갈등으로 해마다 노조집행부가 교체되기도 했다. 회사분위기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공격하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매년 적자가 늘어났고 94년 누계 적자가 400억원에 이르렀다. 경영상태가 악화되고 대립적 노사관계가 계속되자 외국계 자본인 독일의 FAG가 철수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1994년 한화그룹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노사관계가 싹트기 시작했다. 먼저 사용자측에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회사는 우선 노사화합을 위한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정확히 지켜나갔다. 한평수 업무팀장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노사분규의 가장 큰 화근이었다.”며 “노사간 신뢰회복이 가장 큰 과제였다.”고 말했다. ●매월 경영상태 근로자들에 공개 최고경영자는 매월 월례조회에서 생산, 판매, 이익 등 회사의 경영상태를 근로자들에게 공개했다. 다국적 회계법인을 통해 투명한 결산시스템을 운영하고 경영과 생산과정에 근로자를 참여시켰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사화합이 최우선 과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전 사원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 노사협의회 활성화, 사원아파트 간담회, 기숙사 간담회, 동호회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회사의 모든 정보는 사원뿐만 아니라 사원 가족들에게도 공개해 ‘우리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공장장과 사무직, 노조지부장, 생산직 전사원이 매주 1회씩 자기 기계를 청소하는 ‘마이머신(My Machine)제도는 주인의식과 노협력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다.1998년에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노사관계 진단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연2회 100문항의 사원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사업계획과 경영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집단 성과제… 3년만에 회사 정상화 노조위원장의 제안으로 99년부터 집단적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것도 이 회사의 특징이다. 노사가 서로 한발씩 양보하며 회사살리기에 나선 지 3년이 흐르자 회사는 노조를, 노조는 회사를 신뢰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93년 자본을 철수했던 FAG는 회사가 정상화되자 98년에 재투자를 했다. 12%에 이르던 이직률이 최근에는 정년퇴직 이외에 단 한사람도 떠나지 않는 안정된 직장으로 변했다. 노사관계 안정이 회사발전과 노동시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는 단체협약에서 임금을 4.8% 인상하고 57세인 정년을 59세로 연장하며 55세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신동관 노조사무장은 “IMF를 겪으면서 근로자들도 외국자본이 철수하면 어떤 위기가 오는지 인식하게 됐다.”면서 “한국기업과 문화가 달라 어려움도 있지만 우리가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감독·해설가로 돌아온 前천하장사 장지영

    [스포츠 라운지] 감독·해설가로 돌아온 前천하장사 장지영

    무려 22년 전 이야기다.‘모래판의 꽃’이라는 천하장사 타이틀은 그의 어깨엔 되레 추락하는 날개였다. 지난 1984년 3월8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천하장사 씨름대회. 인하대 3학년 장지영은 대학생으로는 이만기에 이어 두 번째로 천하장사에 등극했다.83년 이후 모래판을 점령한 이만기-이준희-이봉걸의 ‘트로이카 체제’를 비집고 천하장사가 된 것도 그가 유일했다. 하지만 갈채보다는 야유가 쏟아졌다. 교묘한 샅바 싸움으로 경기를 짜증나게 만들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 체격이 다소 작았던 그는 기본 중의 기본인 샅바 잡기에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거리를 다니다가 시비가 붙을 정도로 ‘역적’이 됐다. 실력이 없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과연 그랬을까. 그의 실력은 중학교 시절부터 어른과 ‘맞짱’을 뜰 정도로 빼어났다. 부평고를 신흥 씨름 명문으로 이끌었고, 최강 홍현욱과 이준희를 넘어뜨리기도 했다. 아마추어에선 이만기보다 더 유명했다.“9시 뉴스를 처음으로 늦게 시작하게 만든 주인공이 접니다. 천하장사가 되고도 CF를 찍지 못한 사람도 저밖에 없을 거고요.”7일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만난 장지영(43) 인하대 감독은 “천하장사를 안 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면서도 세월의 더께를 이미 털어낸 듯 싱긋 웃는다. 그는 지금 씨름 해설위원이다.‘샅바 파동’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89년 씨름판을 떠났다. 삶 자체가 씨름인지라 95년 명예회복을 벼르며 풍운아처럼 돌아왔지만 IMF로 소속팀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꿈을 접었다. 샅바를 푼 뒤 직장을 옮겨다니다 꽃가게까지 열며 생계를 꾸렸다. 씨름 인생의 2막은 99년 인하대 감독을 맡으면서부터.7년 동안 개인·단체전을 통틀어 팀을 전국 최강으로 거듭나게 했다. 최우수 감독상도 두 차례나 받았다. 장 감독은 “씨름 인생을 살아가며 모교에서 후배를 키우고 있다는 게 가장 보람 있었다.”고 했다.TV해설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84년 당시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해설로 거의 매장되다시피 했기 때문. 그는 “선수에겐 공정하고, 시청자에겐 쉬운 해설로 저변을 넓히고픈 욕심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마이크를 잡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 5개 대회밖에 입심을 자랑하지 못했다. 팀이 잇따라 해체되며 민속씨름이 난관에 부딪힌 탓이다. 씨름계 내분도 한몫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어려운 씨름판으로 이어진다. 그는 “아직도 불만을 갖고 서로 삿대질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민속씨름은 그럴 겨를이 없을 정도로 위기”라면서 “80∼90년대 좋은 시절 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최홍만에 이어 최근 이태현에 이르기까지 톱스타들이 모래판을 떠난 사실을 두고 “무척 아쉬운 일이지만 5000년 민족의 삶이 녹아 있는 씨름은 스포츠라기보다 문화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질 좋은 선수층이 아직 두꺼운 데다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대회 방식이 차츰 뿌리내리고 있는 건 희망적인 대목”이라고 진단했다. “씨름 박물관과 전용 경기장을 세우는 게 평생의 꿈”이라는 장 감독.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처럼, 민속씨름도 다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글 제천 홍지민기자 한국씨름연맹 제공 icarus@seoul.co.kr ■ 장지영은 누구 ●출생 1963년 5월25일 인천 ●가족 부인 장미희(43)씨와 1남 1녀 ●체격 180㎝ 128㎏(현역시절 110㎏) ●혈액형 A형 ●종교 가톨릭 ●취미 골프, 다도 ●학교 부평동중-부평고-인하대-인하대 대학원 박사과정 ●경력 소년체전 2회, 전국체전 2회 등 아마추어 대회 다수 우승 1983∼89(인하대-일양약품),95∼97(세경진흥), 3대 천하장사, 인하대 씨름팀 감독(99∼현재), 대한씨름협회 최우수 감독상 (2000·06), 인하대 체육학과 교수(2000∼현재), 한국씨름연맹 기술위원, KBS 민속씨름 해설위원
  • [시론] 민선4기 지자체장 지역경제 살리기부터/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민선4기 지자체장 지역경제 살리기부터/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1995년 6월 4대 지방 동시 선거를 통해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된 지 11년이 됐다.5·31 지방선거로 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장 16명과 기초자치단체장 230명이 취임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이들 광역·기초자치단체를 막론하고 모든 단체장들이 공통으로 외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정책의 최우선은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지역경제가 IMF 경제위기 때보다도 어렵다고 하고,KDI 같은 국책연구기관도 경기상승 둔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일자리와 지방경제에 직결되는 건설투자가 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인 점 등을 반영하고 있다. 단체장들의 ‘지역경제 살리기’ 노력의 예를 살펴보면, 김완주 전북지사는 취임식 현장에서 ‘대 중국 시장개척단’을 출범시켰고,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군산항에서 자동차 수출 선박에 승선해 군산항 살리기와 대 중국 시장개척에 대한 강한 의지와 비전을 선포했다. 대구의 김범일 시장은 ‘경제 올인’이란 용어까지 써가며 ‘희망경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산하 기업현장민원지원팀은 기업민원과 관련된 공장용지, 기업금융, 환경, 건축 등의 업무 협조를 위해 담당공무원들을 온라인 회의에 불러 최우선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주고 있다. 특히 경제국의 국·과장을 모두 40대로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체장들의 ‘지역경제 살리기´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같은 지식정보시대에는 ‘살아 움직이는 자치단체’ 즉, 경제환경 변화에 스스로 반응·진화·발전해가는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현재를 기준으로 100% 완벽하게 보이는 시책을 기획했다고 하더라도 그 기획안을 준비하는 데 지나치게 긴 시간이 걸려 대사를 그르쳤다면 차라리 현재 기준의 70∼80% 정도 완벽성을 갖고 기민하게 현장 대응을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결국 경제환경이 엄청나게 급변하는 지식정보화 시대에서는 변혁지향적이고 기민성(機敏性)을 겸비한 단체장을 요구한다. 이런 변혁적 리더십은 단체장이 전체 직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들이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며, 그들에게 자치단체에 대한 비전과 영감을 제공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더불어 요구되는 것은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다. 완벽한 시스템이 있다면 리더가 필요 없을 것이고, 완벽한 리더가 있다면 시스템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완벽한 리더도, 완벽한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리더와 시스템 모두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행정조직은 산업화 시대의 압축성장과 정보화 시대의 지식정보화를 이끄는 데 나름대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과거 자치단체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는데도 그러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단체장의 리더십이었다고 판단한다. 앞으로 조직과 시스템을 통해서 자치단체의 개혁을 이루는 것은 필수적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자치단체의 개혁을 이루는 데 단체장의 변혁지향적 리더십은 더욱 더 그 중요성을 더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변혁해라! 변혁 당하기 전에’라는 슬로건은 단체장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라고 하겠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 공인중개사 응시자 줄듯

    공인중개사 응시자 줄듯

    사람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어디든 부동산중개소가 있다. 공인중개사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각광을 받는 인기직종이자 응시자가 가장 많은 자격증으로 떠오른 까닭이다. 그랬던 공인중개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 하락과 중개업소 포화에 따라 10월29일 치러질 올해 자격시험에는 한때 26만명이 넘었던 응시자가 14만명선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최다 응시 시험’의 위상은 공무원 9급 공채 시험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응시자 14만명까지 하락할 듯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국토지공사는 최근 제17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시행계획을 공고했다. 응시 원서는 오는 24일부터 31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iklctest.co.kr)로 접수한다. 시험은 1,2차 모두 같은 날 치러진다. 합격자는 11월28일에 발표된다. 공인중개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12만명을 기록한 이후 상승세를 이어 왔다. 취업난과 조기 퇴직에 따른 대체 직장으로 각광 받았기 때문이다. 응시자가 정점에 오른 해는 2002년으로 26만 5000여명이 시험을 치렀다.2004년까지 20만여명 선이 유지됐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16회 시험에서는 15만 1000여명으로 수치가 뚝 떨어졌다. 물론 전해 시험의 난이도 조정이 실패함에 따라 5월에 추가시험을 치른 탓도 있었지만,‘8·30 대책’ 등 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시장이 갈수록 협소해질 것으로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최고 인기 국가 시험의 자리도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으로 넘어가게 됐다. 올해 9급 시험의 응시자는 18만 8000여명이다. ●응시료 2만 8000원으로 인상 최근 3년 동안 합격자 비율은 응시자의 17.3%. 그만큼 허수가 많다. 올해 가장 큰 변화는 응시료가 2만 3000원에서 2만 8000원으로 올랐다는 점. 시험 장소 임대료 등 시험 운영비의 상승으로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토공은 설명하고 있다. 시험 과목도 일부 바뀌었다. 부동산공법 과목 가운데 다른 법률에 대체되는 산림법은 제외됐다. 종전의 부동산중개업법령도 전면 개정·시행되고 있는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신고에 관한 법령’으로 대체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발언대] 한반도 통일은 열강들의 책무/정충모 시조시인 캐나다교민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부시 미 대통령, 고이즈미 일본 총리 등의 첨예한 대립이 극에 달하고 있다. 1943년 11월 포츠담선언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등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통일시키자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이해관계로 인해 한반도의 분단을 방조했다. 이른바 한반도가 지정학적인 이해관계로 얽히면서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열강들이 이면에 숨겨놓은 보따리를 풀지 않고서는 6자회담이니 햇볕정책이니 하는 것들이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예컨대 중국은 유구한 역사속에 한반도가 자신들의 속국이었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고 북한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 진출과 영토 확장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따금 대두되는 독도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상호우방으로 돈독한 유대를 이어왔으나 1970년대 이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의 급부상으로 미국경제가 흔들리자 미국이 급기야 우루과이 라운드를 비롯해 슈퍼 301조라는 통상법을 앞세워 무역에 있어서 많은 양보를 요구하면서 마찰이 심해졌다. 미국의 치외법권적 요구는 형평성에 어긋났고 이로 인해 먼 훗날 한국은 IMF를 맞았고, 우방의 기능에 대해서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미국이 우리에겐 은인의 나라임에는 틀림없지만, 미국이 과연 지정학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우리를 무조건 도와주었을까는 자문해볼 일이다. 물론 거대한 미국을 상대하기란 개미가 정자나무 건드리기이다. 따라서 비굴해서는 안 되겠지만 동맹국으로서의 유대를 돈독히 유지해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신세대는 명심해야 한다. 지엽적인 문제로 상호간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 한반도 통일은 분단을 고착시키는 데 일조한 주변 열강들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정충모 시조시인 캐나다교민
  • “삼성 성공비결은 인재중시 경영”

    |도쿄 이춘규특파원|세계 신흥시장을 공략하는 삼성의 역동적이고 치밀한 인재 경영술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에서 화제다. 식지않는 삼성 탐구 열기를 보여주는 한 예다.7일 발행된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 최신호는 삼성 특집을 통해 ‘인재제일(人材第一)’이라는 창업자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인재중시 경영이 오늘의 삼성을 일군 기본적인 정신적 토대가 됐다며 이를 분석했다. 이같은 인재중시는 현 이건희 회장에게도 계승돼 이 회장이 “21세기는 비범한 천재 한 명이 수만명을 먹여살린다.”라거나 “인재가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두뇌천국을 만든다.”고 강조한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닛케이 비즈니스는 “삼성전자의 경우 매출의 약 85%, 이익의 90% 가까이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삼성으로서 글로벌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에 해외시장을 개척할 ‘터프한(거친)’ 인재육성은 문자 그대로 생명선”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삼성으로서는 해외시장개척을 위해 중국·인도·러시아 등 ‘지역전문가’를 집중적으로 육성,‘신흥시장을 개척하는 첨병’으로 양성하고 있고 이 첨병들이 삼성으로 하여금 일본 기업들을 뛰어넘게 했다고 지적했다.또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겸 최고경영책임자(CEO)와의 장문의 인터뷰기사를 통해 인재 육성과 끊임없는 변화의 시도, 신흥시장 돌파라는 삼성의 ‘공격 경영’을 조명했다. 윤 부회장은 “오늘의 삼성과 내일의 삼성은 같지 않다.”면서 “연속해서 존재하지만 확실히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삼성의 큰 변신의 계기는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제창한 ‘신경영’이라는 이념이라고 말했다.“시대와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는 것이다.“처자식을 빼고 모두를 변화시켜라.”는 이 회장의 발언이 핵심이다. 삼성이 정말 변하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 놓였을 때라고 윤 회장은 강조했다. 당시의 위기감은 엄청났기 때문에 본질적인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윤 부회장은 아울러 나라도, 기업도 폐쇄적이면 발전할 수 없다면서 한국도, 일본도 폐쇄성이 강한 편이라고 우려하며 개방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의 핵심단어는 기술적으로도, 법·제도적으로도 ‘융합’”이라고 지적하면서 “컴퓨터,TV, 무선, 휴대전화, 방송, 통신이라는 것들이 브로드밴드(고속대용량)에 완전히 하나가 돼 구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적 부품과 마케팅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taein@seoul.co.kr
  • [발언대] 심각한 기후변화는 나무가 줄어든 탓/손봉영 산림청 구미국유림관리소장

    인간이 이룩한 문명발달의 대가로 지구상에 존재하던 숲의 3분의1이 사라지면서 지구촌 곳곳에 심한 폭염과 폭설, 가뭄과 집중호우가 불어닥치는 등 기후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이같은 기상 변동은 대기 중에 탄산가스 등의 농도가 짙어져 열의 방출을 차단하기 때문이란다. 오늘날 환경문제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면적의 64%가 산림이어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환경보호의 시작이며 끝이라 할 만큼 산림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는 벌거숭이 산림을 녹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제는 어느 정도 푸른 산을 갖게 되었지만 매년 여의도만한 면적의 산림이 묘지로 잠식되고 있어 그 폐해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산림 내 자라고 있는 나무에 유골을 묻어 인간과 나무가 서로 어울려 자연으로 돌아가는 수목장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봉분을 만들지 않고 관의 크기만큼 땅을 파서 묻는다고 한다. 이처럼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에서도 산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우리가 갖고 있는 임야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IMF체제라는 국가 경제위기가 닥쳐왔을 때 민간단체 주도로 숲가꾸기 운동이 확산된 것처럼 국토이용의 효율화와 자연환경을 위해 우리의 장묘문화도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로 개선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온실가스 배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있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매장문화의 고정관념을 깨고 산을 나무들이 자라는 장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전 지구적 환경문제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사막의 확장, 기후변화, 대기오염, 수질오염, 오존층의 파괴 등이 모두 산림과 관련된 환경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주인공인 후손에게 아름다운 국토, 깨끗한 자연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열과 정성을 다할 것을 제안한다. 손봉영 산림청 구미국유림관리소장
  • [명문대 교육혁명] 호주 국립대(ANU)

    [명문대 교육혁명] 호주 국립대(ANU)

    |캔버라 윤창수특파원|“호주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관계를 확장하고 강화한다.” 1921년 계획도시로 세워져 한국의 참여정부 공무원들이 행정수도 건설과 관련해 즐겨 찾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1946년 이곳에 들어선 호주국립대(ANU)는 호주를 벗어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뻗어나가려는 호주인들의 여망이 담긴 연구 중심 대학으로 처음부터 설계됐다. 이 대학의 아시아 중시는 1973년 영국이 유럽연합(EU)의 전신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하면서 호주 원자재에도 관세를 매기자 더욱 강화됐다. 영국을 통해 유럽으로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경제적 이득을 누려온 호주로선 새로운 활로를 아시아에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호주 국민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자국군인들이 연합군 ‘총알받이’ 노릇을 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어 이것도 아시아로 눈을 돌리는 데 작용했다. 이 대학 일본연구센터의 이덕용 교수는 “설립 초기부터 대학원이 먼저 들어서고 학부가 나중에 생기는 등 연구 중심 대학으로 ANU가 세워졌다.”면서 “아시아·태평양 연구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매우 뜨겁다.”고 소개했다. 아시아·태평양학 대학원생들은 의무적으로 지역 현장 연구를 해야 한다. 외국에서 1년 공부하는 데 대학으로부터 7000∼1만 2000 호주달러(520만∼870만원)를 지급받는다. ●한국학 수업 참관해 보니… 러시아 출신 한국학 전문가 타티아나 가브로센코 박사가 주도하는 ‘현대 한국 사회’ 학부 강의에 들어가 봤다. 마침 이날 강의 주제는 18년간 통치한 박정희 정권의 공과였다. 가브로센코 박사는 “농촌과 공장을 오가며 현장 순시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은 인민복을 입고 현장지도를 하는 김정일 위원장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빔 프로젝터로 각종 사진과 도표 등을 제시하며 박 정권의 특징을 빠른 속도로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중요하게 소개된 인물은 박태준 전 포항제철(현 포스코) 회장이었다. 박 전 회장의 “일이 곧 취미이고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한다.”는 말도 언급됐다. 가브로센코 박사는 박 전 회장처럼 모든 한국인이 열심히 일했기에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현대 한국 사회’는 학부생을 위한 6학점짜리 교양강좌지만 튜토리얼(개인지도) 수업에서 좀더 심도있는 토론 기회를 갖는다. 주 3∼4시간 수업 중 1시간씩 주어지는 튜토리얼은 튜터가 10∼15명의 학생을 모아 토론하고 실습, 실험하는 시간으로 영국 옥스퍼드에서의 오랜 전통이다.2학기에는 ‘북한 사회’란 강좌가 개설된다.‘현대 한국 사회’ 수강생인 사브리나 크랜베리는 “읽을거리가 많긴 하지만 몰랐던 아시아 역사를 알 수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ANU에서 한국 관련 강좌의 인기는 한류의 영향으로 높은 편이다. 한국계 입양아나 혼혈아도 있지만 한국과의 교역에 종사하고자 하는 호주인들도 한국어를 배운다.“아니메(애니메이션) 때문에 일본어를 배웠다면 한국어는 드라마 때문에 배운다.”고 한국어 강의를 맡고 있는 로알드 말리양카이 교수는 설명했다.IMF 전에는 한국어 수강생이 35∼40명이었지만 10명 미만으로 줄었다가 최근 3∼4년새 25명 수준으로 회복 중이다. 이 가운데 70%가 호주인이다.ANU에서 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한 이들은 5번째로 많다. 한국인 유학생은 80여명으로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이어 10번째다. ●졸업생 절반 이상 대학원 진학 ANU 학생의 절반 이상은 ‘복수 전공’을 택한다. 대학에서는 부전공으로 언어학 학위를 권장한다. 회계학에 한국어, 법학에 아시아 전공을 겸하는 식이다. 호주 정부는 2004년까지 한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어를 주요 4대 언어로 정하고 이를 가르치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했다. 졸업생의 54%는 곧바로 석·박사 과정에 진학한다. 이 숫자는 호주 전체 학부 졸업생의 평균 대학원 진학 비율 23.4%보다 훨씬 높다.ANU가 연구 중심 대학임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것도 졸업생의 85%가 ANU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인문·사회전공 학부 과정은 3년에 끝난다. 교양과정 없이 바로 전공부터 듣기 때문에 학생들의 시간표는 고등학생처럼 빡빡하다. 튜토리얼을 포함해 5∼6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과목을 한 학기에 4개씩 듣는다. 교수진 3180명 가운데 44%인 1200여명은 강의를 전혀 하지 않고 연구만 한다. 이들의 숫자는 호주의 다른 대학 교수들의 3배가 넘는다. 호주정부 연구위원회(ARC)가 지원하는 연구비의 3분의1을 ANU 연구교수들이 받고 있을 정도다. 교수들은 매년 학부장과 면담에서 올해는 어떤 연구를 하겠으며, 어떤 성취를 해내겠다는 계획을 문서로 써서 약속한다. 지키지 못할 경우 특별한 제재는 없지만 연구 업적이 없으면 승진이 되지 않고, 연봉도 오르지 않는다.‘논문을 안 쓰는 교수는 창피해야 한다.’는 것이 대학의 불문율로 ANU의 연구 경쟁력을 강화한 토대가 됐다. 면학 분위기를 진작하기 위한 대학 지원도 세심하기 그지없다. 건물의 층마다 문방구가 있어 스테이플러, 공책, 필기도구, 포스트잇 등을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도서관에서 드는 복사비는 영수증만 가져오면 학과 사무실에서 처리해 준다. 식비를 빼고 학업에 드는 비용은 모두 학교가 부담하는 셈이다. geo@seoul.co.kr ■ 이안 찹 총장 인터뷰 |캔버라 윤창수특파원|“대학이 나를 고용했지, 정부가 나를 고용한 것은 아니다.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안 찹(63) ANU 총장은 자신의 임명권은 대학이 갖고 있지만, 선임 과정에 정부 입김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항상 공적 재산을 관리해야 하므로 대학에 제한을 가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국립대학에선 선거에 의해 총장을 뽑는다고 기자가 소개하자 좋은 제도는 아니라고 평가했다.“선거를 통해 임명되면 대학을 경영하기 힘들고, 총장직은 매우 복잡하고 지속적인 일이므로 임명제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물론 그에게 한국의 대학 총장 직선제가 민주화의 산물이란 점을 이해시킬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ANU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호주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국가의 존립 근거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된 호주는 이웃한 아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힘쓰게 된다.ANU는 호주의 국가 이념이 ‘백호주의’에서 ‘다문화주의’로 바뀌면서 그에 따른 문화사상적인 ‘싱크 탱크’로써 역할하게 된 것이라고 찹 총장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아시아·태평양 연구면에서 ANU는 세계 최고의 학문적 깊이를 자랑하고 있다. 대학 예산의 40%는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된다. 물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대학안의 연구회사를 통한 수익, 학생 등록금, 자문비 등으로 나머지 예산이 충당된다. 찹 총장은 현재 ANU와 정부의 호흡은 일할 정도로 잘 맞다고 밝혔다. 독일에선 교수 및 총장 임명에 정부가 직접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호주 정부는 대학에 견딜 만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학이 곤경에 처했을 때 정부나 정치인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총장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총장의 대학내 자주권은 대통령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ANU의 현재 유학생 비율은 22%. 앞으로는 25%까지 유지할 계획이다. 호주 명문 8개 대학 연합체인 ‘G8’의 회장이기도 하다.ANU는 연간 4000억원이 넘는 대학 예산의 69.7%를 연구비로 쓰고 있는데 이는 G8 국가 가운데 최고다. geo@seoul.co.kr ■ 김형아 교수 인터뷰 |캔버라 윤창수특파원|“아시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데 있어 호주가 갖는 교육 경쟁력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학자를 길러내야 합니다.” 아시아·태평양학 대학원 정치사회변동학과의 김형아 교수는 현재 ANU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다.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 한국인 교수로는 ANU 설립 이후 처음이다. ANU가 아시아 태평양 연구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한국학은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연구에 비하면 실적이나 규모에서 한참 처진다. 중국학 교수는 40명이 넘는데 한국학 교수는 고작 4명이다. 호주의 4위 교역 상대국인 한국의 호주 유학생 수는 2만 2000여명으로 중국에는 뒤진다. 중국에서는 대규모 군부대를 보내듯 연간 100∼200명의 박사과정 유학생을 ANU에 보내지만, 한국인은 15명뿐이다. ANU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은 것은 아시아·태평양학의 권위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아시아·태평양학 대학원에는 강의를 하지 않고 연구만 하는 교수가 100명 이상이며 대학원생은 430명이다. 김 교수는 “중국연구센터나 일본연구센터처럼 버젓한 한국연구센터를 ANU에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geo@seoul.co.kr ■ 김솔지 교환학생 인터뷰 |캔버라 윤창수특파원|고려대 유전공학과에 재학 중으로 1년간 ANU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김솔지(20)씨는 “강의 수준이 고려대보다 뛰어난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시스템이 월등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현재 우슬라 홀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는 김씨는 유학생들을 위한 세심한 지원과 배려가 넘치는 ANU의 교육 환경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교수들은 마이크를 켠 채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녹음된 내용이 인터넷에 그대로 다 오른다. 아직 영어가 부족해 수업을 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인터넷에 녹음 파일이 올라 충분히 복습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실험기구도 부족해 교수가 실험하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ANU에서는 모든 학생이 실험에 참여한다. 시험을 중간중간에 보고, 튜토리얼 강의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벼락치기 공부는 하려야 할 수 없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geo@seoul.co.kr
  • [체감경기 긴급진단] 불황에 업종 바꾸기 세차례…“언제 손님 늘까”

    [체감경기 긴급진단] 불황에 업종 바꾸기 세차례…“언제 손님 늘까”

    “IMF 때도 이렇지는 않았어. 해도 너무 한 것 아니야. 정부는 뭐하는 거야. 살 길은 마련해 줘야지. 죽지 못해 악만 남았지 뭐….” 올해 잠재성장률 5%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는 정부의 낙관론에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못해 ‘살기(殺氣)’가 느껴진다. 자영업자 등 취재원들은 경기라는 것이 좋았다 나빴다 하지만 이번처럼 목을 짓누르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정부는 과잉공급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국민 평균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불황을 모르는 일부 업종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시각에 전문가들은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폭발 직전의 서민 경제 인천시 부평역 주변 먹자골먹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장은석(45)씨는 올해 간판을 세번이나 바꿨다. 매콤한 닭갈비인 ‘불닭’에서 ‘등갈비’로, 다시 냄비에 갈비찜을 해주는 ‘양푼갈비’로 갈아탔다. 장씨는 “불경기에다 장마까지 겹쳐 하루 20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면서 “이자를 못내는데 대출도 안돼 사채를 끌어쓸 형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극화한 소비패턴 강남의 룸살롱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서모(34)씨. 남들은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대형업소에 소속된 대리운전사들은 하루 2건은 뛸 수 있다고 한다.“양주 마시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모르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 비해 큰 차이가 없어요.” 서울 성동구에서 5년째 호프집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주변에 느는 게 빈 가게”라면서 “하루에 15팀을 받아야 재료비와 인건비가 나오는데 1∼2팀 정도 받고 있다.”고 했다.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를 내놓은 지 1년이 지나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여행업체는 희비가 확연히 엇갈린다. 국내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우리테마투어의 이승원 사장은 “날씨 탓도 있지만 6월부터는 영업이 절반으로 줄더니 8월 예약은 들어오지도 않고 있다.”면서 “고객들은 2박 3일보다 1박 2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하나투어의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실적이 30% 늘었으며 장마가 낀 7월에는 특히 40%나 증가했다.”면서 “국내 물가가 외국보다 비싸고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외국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설립후 7월 실적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8월엔 이 기록마저 깨질 것이라고 했다. ●자영업은 구조조정중? 우리은행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담당자는 “2000만∼3000만원의 자본금으로 가게를 차린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경기 악화 때문에 실업자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면서 “담보력이 없어 대출이 어려운 이들이 폐업하기 시작하면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나은행 소호비즈니스센터 관계자는 “보증금이 3억원 이상인 우량한 프랜차이즈 업체의 폐업률도 20%에 이른다.”면서 “그 이하의 생계형 영세자영업자들은 공멸의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택시면허나 영세 자영업체 상당수는 공급이 과잉인 상태”라면서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며 경쟁에 뒤떨어지는 업체들의 탈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백문일 전경하 이창구 기자 mip@seoul.co.kr
  • 한국투자공사 사장 후보 5명 압축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선임을 위한 공모가 지난 28일 마감됐다. 공모에는 한국은행 전·현직 3명을 비롯해 일반은행과 증권업계 출신, 인수합병(M&A) 전문가 등 20여명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부동산임대업자 1명도 신청, 눈길을 끌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30일 “공모에 응한 후보자를 포함해 사장추천위원회가 2∼3명의 후보를 선정,8월 중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모자 가운데 적격자가 없으면 사추위가 다른 후보를 낼 방침이다. 그동안 헤드헌터 업체 등를 통해 최종 후보군에 오른 인사는 5명 정도로 압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선임은 8월 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히 재경부 관계자는 “KIC는 한국은행으로부터 위탁받은 외환 보유고 200억달러를 해외에 투자하기 때문에 사장은 국제금융에 대한 전문지식이 밝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강원 전 사장이 은행과 증권 등 여러 분야를 거쳤지만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점도 시인했다.KIC 사장의 자격은 ‘금융·투자 관련 분야에 10년 이상 종사한 자’로 제한돼 있다. 지금까지 후보군에 거론되는 인사는 홍석주 한국증권금융 사장과 김수룡 도이치뱅크코리아 회장, 전광우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 등이다. 우리금융지주 총괄 부회장을 지낸 전광우 부회장은 초대 KIC 사장 인선에서도 이강우 전 사장과 막판까지 경합했다. 신명호 HSBC은행 서울지점 회장과 이영균 한국은행 부총재보, 박철 전 한은 부총재, 홍기명 JP모건 아시아지역 책임자그룹 멤버도 하마평에 올랐다. 오종남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와 신동규 수출입은행장 등 재경부 출신들도 일부 거론된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이상철 교수에게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수도론’ 묻다

    이상철 교수에게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수도론’ 묻다

    수도권 정책이 다시 이슈화되고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대(大)수도론’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인천·경기지역이 힘을 한 데 모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굳이 따로 놀 이유가 무엇이냐는 주장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당연히 ‘수도권 이기주의’라는 반론이 나왔다. 사실 이런 논란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참여정부에서 지방분권을 들고 나왔을 때부터 세계화로 인한 경쟁압력이 거세지고 지식기반산업으로 바뀌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를 테면 ‘집적’은 인구과밀과 공해와 같은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혁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도 낳는다는 것이다. 반년간지 ‘민주사회와 정책연구’에 ‘수도권에서의 집적과 혁신-산업구조변화와 혁신활동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상철 성공회대 경제학 교수에게 ‘대수도론’에 대해 물었다. 이 논문의 핵심은 ‘수도권 집적으로 인한 혁신 효과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수도론쪽에서는 런던·도쿄 등 외국 대도시의 사례를 드는데, 대수도론은 세계적인 추세인가. -그렇지는 않다. 어느 나라에나 균형발전론은 다 있다. 영국도 런던과 그 인근지역이 지나치게 발달한 것을 바로 잡고자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지역 클러스터 구성을 통한 내발적 발전론 등도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그게 내실있게 추진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영국도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의 경우 수도권정책은 IMF사태를 기점으로 ‘과밀해소’를 위한 네거티브 정책에서 ‘균형발전’이라는 포지티브 정책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규제위주이다.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문제 아닌가.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대신 예전에는 수도권 집적은 물류비 상승이나 환경오염같은 외부불경제를 뜻했지만, 지금은 외부경제·규모의 경제를 강조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자면 문화적 다양성이 보장된다거나 교육·서비스 등의 질이 높아진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일종의 인큐베이팅(incubating) 기능을 수도권에 제안했다. 혁신기업을 육성한 뒤 완숙단계에 들어서면 지역으로 내보내자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수도권 집적이 혁신과 별 관계가 없다고 밝혔는데. -창업초기의 중소기업은 재무·회계·컨설팅 등에서 외부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도시 입지가 유리하다. 또 산업단계상으로도 그렇다. 실제 조사해보면 초기에는 혁신이 일어나다가 산업이 안정단계에 들어서면 공정혁신에 그친다.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가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이번 논문이었다. 그런데 수도권과 다른 지역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 아직은 수도권에 혁신을 부추기는 입지적 요소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 왜 수도권 집적은 사라지지 않는가. -‘혁신’ 외에 다양한 다른 요소들을 감안해야 한다. 고급노동력을 확보하기 쉽다거나, 미국의 연구사례처럼 의료·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질이 높다던가 하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대수도론이 ‘생활권’이라는 관점에서 환경·교통 문제 등을 통합해서 다루자는 얘기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수도권 규제완화까지 내세운다면 그 주장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면 부동산 문제다. 수도권 지역은 땅값이 떨어지지 않는다. 인천 남동공단의 경우 사업은 망했는데 처음에 공장짓는다고 불하받은 땅의 지가상승으로 꽤 많은 이득을 낸 사례도 있다. 수도권에 공장을 지으려면 그린벨트나 농업용지를 공장용지로 바꿔야 하는데, 이것도 결국 부동산 문제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야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대수도론에 경기도가 가장 적극적인 이유는 뭔가. -아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이야 어차피 생산기능이 다 빠져나가고 대신 고급부가서비스산업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인천은 어차피 경제자유구역이라는 큰 덩어리가 있으니 수도권 규제니 이런 문제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경기도 입장으로서는 수도권 규제를 일종의 족쇄라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투자공사 사장 누가 오나

    한국투자공사(KIC)사장으로 누가 오나. 지난 11일 이강원 사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후임 사장이 누가 될지에 대해 금융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후보군은 6∼7명선. 신동규 수출입은행장, 오종남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박철 전 한국은행 부총재, 이영균 한은 부총재보, 홍석주 한국증권금융 사장, 전광우 딜로이트코리아 부회장 등이다. KIC 사장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비중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금융계나 관계출신 중량급 인사들의 이름이 자천타천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총괄 부회장을 지낸 전광우 부회장의 경우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우리투자신탁운용 이사회 의장, 국제금융센터 소장 등 국제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조흥은행장을 지낸 홍석주 사장은 조흥은행 기획·재무본부장을 거치면서 재무부문 경력을 쌓았고 한국증권금융 사장으로 국고자금, 공공기금 운용을 이끌었다. KIC에 170억달러를 위탁하는 한국은행측 인사로는 박철 전 부총재와 이재욱 전 부총재보, 이영균 현 부총재보가 후보로 거론된다. 이 전 부총재보는 지난해 8월 크레디트스위스자산운용(CSAM) 한국사무소 대표직을 맡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30억달러를 위탁하는 재정경제부와 원활한 업무 협의를 위해 국제금융에 밝은 관료 출신 인사가 선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때문에 오는 9월 임기가 끝나는 신동규 행장이나 오종남 상임이사(전 통계청장)도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꾸준히 후보로 거론된다.KIC 사장추천위원회는 지난 14일 사장 공모 공고를 냈고, 오는 28일까지 신청을 받는다.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여기도 소통이 필요하다] “네몫 양보? NO 근로자 권익 함께 찾죠”

    [’서울신문 102년-여기도 소통이 필요하다] “네몫 양보? NO 근로자 권익 함께 찾죠”

    국가 경쟁력의 잣대가 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경쟁력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38위를 차지했다. 노사관계 분야(노사관계가 생산적인 정도)는 조사대상국 가운데 꼴찌인 6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02년 이후 줄곧 60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임은 노·사·정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합의의 취약성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야 양노총이 사회적 협의체인 노사정위원회의 주요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지만 노사정은 무려 2년 가까이 대화조차 없었다. 이 같은 노동계의 소통부재는 노동운동이 시작된 지난 20년간 줄곧 계속돼 왔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관계 본부장은 “노사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것은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치중하면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소통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올 들어서도 비정규직보호법안을 놓고 노사정간 첨예한 이견차를 보였다. 한쪽은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라 맞서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한 노사정 지도자들간에 진정성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이를 비웃듯 정·비정규직 근로자간에 상생의 관계를 찾아내는 곳이 생겨나고 있어 대조적이다. ●상생의 길 찾은 양보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 5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통합 대의원대회를 가졌다. 지난달 13일 통합을 선언한 이후 첫 공식행사였다. 임명배(40) 노조위원장은 “노조원 모두의 양보와 이해로 상생의 길을 찾는 데 성공했다.”면서 자랑스러워했다. 이 회사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조간의 통합은 노동계에 큰 의미를 던져준다. 우리 노동계의 가장 큰 난제인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차별시정에 노조원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수범사례로 꼽힌다. 400여명의 정규직원으로 운영되던 이 회사는 외환위기(IMF)를 거치면서 1700여명까지 직원이 늘어났다. 줄도산으로 부실채권 업무가 폭주하면서 1300여명이 충원된 것이다. 주로 이 당시 퇴출된 5개 시중은행 출신으로 이 가운데 1000여명은 비정규직이었다. 이들 비정규직 사원의 문제는 외환위기가 진정돼 부실채권 업무가 줄었던 2001년말부터 노출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적정인력 유지 문제를 거론,2007년 말까지 400여명 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자연히 직원들 사이에 고용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고 정·비정규직간에는 갈등이 싹트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은 “처우도 열악했던 우리만 왜 잘려야 하나”, 정규직은 “모르는 일이다.”는 식의 벽이 생겼다. 신입사원들에게 간단한 업무조차 전수가 안될 정도로 정·비정규직간의 불신은 깊어만 갔다. 2002년초 취임한 임 위원장은 정·비정규직의 문제를 공동의 과제로 선언했다. 비정규직이 보호받지 못하면 정규직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논리로 노조원들을 설득했다. 예상대로 정규직은 “내 몫을 나눠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노조가 적정인력을 1000여명 수준까지 유지하는 데 노력키로 하고 비정규직의 복지수준을 연차적으로 높여 나가면서 불신의 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2003년에는 비정규직원 370명이 노조에 가입하고 비정규직의 복지수준을 정규직의 65%에서 85% 수준으로 높여갔다. 임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내 것을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면서 “노사 또는 노노간 원활한 소통이 이뤄질 때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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