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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목에 꽃을 피우다

    폐목에 꽃을 피우다

    “취미가 직업이 됐으니 정말 행복합니다.” 서울 노원구에서 ‘나무 마술사’로 불리는 노원구립 노원 목공예센터 하종연(55) 소장의 이야기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인 7일 오후 불암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노원 목공예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저 나무로 무엇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 소장이 공예센터 마당에 버려진 듯 놓여 있는 작은 나무뿌리를 가리키며 던진 말이다.“글쎄요….” 기자가 머뭇거리자 그는 “오리로 만들지 강아지로 만들지 생각 중이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손을 거치면 나무는 의자가 되고 뿌리는 용의 머리가 된다. 버려진 나무는 새 생명을 받아 부활한다. 늘그막에 나무에서 삶의 보람을 찾았지만 그의 삶은 그의 이마에 난 주름만큼이나 굴곡이 많았다. 그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굴지의 건설업체 직원이었다. 경북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3년 현대건설 중기부에 입사해 20여년간 국내외 건설현장을 누볐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1995년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창업을 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1∼2년은 잘나갔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IMF)가 닥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2억여원의 빚만 떠안고 빈털터리가 됐다. 그래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가족과 주변의 도움으로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1억 5000만원의 빚만 떠안은 채 사글셋방으로 나앉았다. 화병이 나 산과 들을 찾았다. 그때 주로 찾은 산이 우면산. 산은 그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베어 낸 나무가 방치된 것을 보고 활용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 서초구가 상용직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구청을 찾아가 버려진 나무의 재활용 방안을 제시해 서초구청 목공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남달랐던 손재주가 발휘된다. 그는 놀이시설이 없던 초등학교 시절 고향 합천에서 친구들의 팽이, 눈썰매, 활 등을 도맡아 만들어 줬다. 현대건설 시절 취미삼아 목공부에서 어깨너머로 10여년 동안 기술을 배운 것도 보탬이 됐다. 그는 폐목으로 벤치 등을 만들어 버스정류장 등에 무료로 제공했다. 반응이 좋았다. 그 과정에서 일을 배우기 위해 대목장을 찾아다니고, 목공 관련 책도 읽었다. 의자를 만들던 수준에서 목공예 전문가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 소장은 지난해 5월 노원구로 옮겨왔다.7월에는 손수 불암산 밑에 터를 닦고 목공예센터를 열었다. 수락산과 불암산 등에서 나오는 폐목 등으로 중계동 화인아파트 단지에 무료로 정자를 만들어 제공했다. 나무 의자와 벤치 공예품 등 200여품목을 만들어 노원구청과 어린이집 등에 주었다. 요즘 그의 희망은 목공예센터에서 어린이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여는 것이다. 노원구는 오는 5월 목공예센터에서 만든 작품들을 모아 시청 앞 광장에서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다. 하 소장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다.”는 말에 뭐라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완전히’ 만족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소장으로 불리지만 아직 노원구청 정식 직원이 아니다. 이노근 구청장은 최근 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노원 목공예센터는 산림간벌 등에서 나오는 폐목을 재활용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동안 폐목 처리비용만 연간 3000여만원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목공예센터가 다른 구청의 폐목을 돈을 받고 처리해 준다. 또 폐목으로 구청의 벤치나 의자, 책꽂이 등 200여품목,8000만원 상당의 목공예품을 만들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김우중·박용성씨 12일 사면될듯

    노무현 대통령은 오는 25일 취임 4주년을 앞두고 12일 경제인을 주 대상으로 하되 일부 정치인도 포함시킨 사면·복권을 단행한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 겸 대변인은 6일 “한명숙 총리 주재로 9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사면·복권안을 심의·의결한 뒤 대통령 결재 등 법률적 절차를 거쳐 12일 사면·복권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면·복권 명단도 9일 나올 전망이다. 윤 수석은 “사면·복권의 대상과 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경제인이 중심이 될 것 같다.”면서 “취임 4주년과 함께 올해가 IMF 외환위기 10주년인 점들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사면 대상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고병운 전 동아건설 회장, 김관수 한화국토개발 사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이 거명되고 있다.또 경제 5단체가 지난해 연말 특별사면을 요청한 경제인들과 분식회계 관련 기업인, 정치자금법 위반자 등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검토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프로 스포츠가 살 길

    2007년은 한국이 IMF 사태를 겪은 지 10년이 되는 해다. 많은 회사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피해를 당한 반면에 구조조정의 결과는 몇몇 기업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해 조 단위의 수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IMF 이전이라면 연간 조 단위의 순익을 내는 회사가 프로 야구단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일은 거창한 홍보 효과를 들먹이기 이전에 직원 사기를 위해서라는 말만으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IMF 이후 바뀐 기업 패러다임은 과거와 같은 프로 스포츠에 대한 기업의 평가 기준을 바꾸어 버렸다.재정난을 겪고 있는 현대 야구단의 최대 주주인 하이닉스는 지난해 2조원의 순익을 올리고도 구단 운영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채권단이 최대 주주라는 사정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아무리 홍보 효과라는 가치를 강조하고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호소해도 기업은 냉정하게 주판알을 굴릴 뿐이다. 스포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섭섭하기 이를 데 없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현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길은 앞서 말한 조 단위 순익을 내는 기업들이 프로 야구단의 가치를 기존 구단처럼 평가해 인수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길을 가야 한다. 프로 스포츠 리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처럼 완전한 자유 경쟁을 하는 것이다.첼시나 유나이티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전 세계 최고 몸값의 선수들을 끌어 모아 우승을 다투고 경쟁에서 떨어지는 팀은 리그에서 탈락한다.어느 누구든 프리미어 리그의 구단주가 되고 싶다면 기존 구단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2부 리그 팀을 하나 사서 우승을 시키면 자연스럽게 1부 리그에 합류한다. 열린 상태에서의 무한 경쟁이다. 두 번째 방법은 미프로야구(MLB), 미프로농구(NBA)처럼 리그를 폐쇄해 놓고 가난한 구단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샐러리캡, 수입 공동분배, 연봉에 대한 사치세 등으로 기본 수익을 보장하고 신인선수 스카우트에는 완전 드래프트를 실시해 경기력에 대한 기본 경쟁력을 갖춰 주면 된다.2006년 메이저리그 팀 연봉을 살펴보면 하위 5개 구단의 연봉합계는 상위 5개 구단의 30%에 불과하다.공동분배 기금으로 연봉의 대부분을 부담할 수 있게 만든 닫힌 상태에서의 제한 경쟁이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한국의 팀 스포츠가 추구해야 할 모델은 무엇일까?`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cobb76@gmai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회사로 ‘영업방해’ 협박하는 채권자

    Q월급이 압류돼 하는 수 없이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개시 결정이 나서 채권자 집회를 기다리는데, 채권자 회사 직원이 제 직장 경리과에 전화해 월급 250만원 외에 추가로 준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회사 영업을 방해하겠답니다.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는데, 개인회생을 맡은 법률 사무소와 회생위원들은 그냥 버티라고 합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한인섭(36)- A회사는 채권 관계에서 제3자에 해당합니다. 한인섭씨 채권자가 회사에 대해 영업을 방해하겠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형법상 협박죄에 해당합니다. 회사는 영업을 실제 방해받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회사는 채권사 직원을 고발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영업에 바쁜 회사 입장에서는 이처럼 정당한 고발도 시간과 금전 면에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실행하기를 주저하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에 처한 채무자와 관련해 수반되는 불가피한 비용을 예상하면 고용을 꺼리게 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합니다. 즉 채권자는 채무자 직장에 전화를 해 채무자를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 굴복시키려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파산 및 회생 제도는 채무자를 둘러싼 채권관계에서 모든 채권자들이 서로 자기 채권을 받겠다고 몰려드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낭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따라서 일단 파산 및 회생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채권자들은 그 절차 외에서는 아무런 추심행위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파산 및 회생절차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합리적 채권자들은 채무자가 파산 또는 회생 신청을 한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절차에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파산 및 회생 절차는 채무자를 보호해 상환여력을 크게 늘리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 착안, 일부 채권자들이 혼자서만 많이 변제받으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방지할 조치가 필요합니다. 외환위기 이후 IMF가 도입을 권고했던 미국 연방 파산법의 자동추심 금지 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에 따르면 채무자에 대해 파산 또는 회생 절차가 계속된 사실을 알게 된 채권자는 파산·회생절차와 별도 추심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법정모욕죄로 처벌받습니다. 우리 경우에는 통합도산법을 제정하면서 과거 화의법, 파산법, 회사정리법을 단순히 하나의 법률로 합하는 수준의 개정만 있었을 뿐 이런 조항을 두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일부 채권자의 추심 시도에 대해 일반 민·형사법이 업무방해, 사생활 침해와 같은 침해행위에 대한 구제로 보호하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같이 부당한 추심행위가 동기가 돼 해고를 당하거나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경우라면 채권자 회사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적지 않은 번거로움을 주기에 사람들은 보통 그냥 참고 기다립니다. 짖는 개에 대해서는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 평온을 찾는 길이듯이 이와 같은 경우 통상의 변호사나 회생위원들은 조금 참으라고 충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생계획 인가 후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형사 고소, 민사 소송을 해야겠지요.
  • 前정권 부동산정책 비판 ‘논란’

    국정홍보처가 29일부터 자체 인터넷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을 통해 ‘부동산 정책사(史)’를 연재한다.지난 67년부터 올해 ‘1·11 대책’에 이르는 40년간의 정책을 망라한다.역대 정권과의 부동산 정책 차별화 시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존 정권에 대해 ‘대증요법’식으로 쏟아낸 정책이라며 싸잡아 비판해 논란이 예상된다. 29일 실린 첫회는 “‘부동산 신호등’ 세우기 40년 걸렸다.’는 제목으로 돼 있다.88 서울올림픽 직후인 6공화국, 문민정부 출범 초기,IMF 외환위기 직후인 국민의 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 실패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비난했다. 이어 “냉온탕을 오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국민에게 ‘때가 되면 바뀌는 것’이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고, 규제강화와 완화의 반복으로 ‘부동산 10년 주기설’이라는 세간의 공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험난한 오디세이’,‘개발연대의 패러다임’,‘잘못된 관행’,‘숱한 저항과 좌절, 유혹의 역사’,‘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는 주택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등으로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특히 98년 양도세 대폭 인하 방침 발표 이후 분양가 전면 자율화 등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해선 “가격폭락과 거래단절로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하루 아침에 과열로 바꿔놓은 첫 단추”라며 국민의 정부에도 비판을 가했다.“부동산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안정화에 대해 침묵했다.”며 언론의 책임도 거론했다. 반면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부동산 시장이라는 얽히고 설킨 도로에 제대로 된 신호등을 세우고 투기소득 숨을 곳을 없애는데 40년 돌아왔다.”며 의미를 부여했다.“부동산 세제 정상화와 거래 투명화 등 제도적 인프라를 처음 내놓은 점은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자화자찬도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장하성은 얼굴마담?

    장하성은 얼굴마담?

    |뉴욕 이두걸특파원|“우리는 장기 투자자입니다. 한국 시장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해 한국 증시의 주인공은 단연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 일명 ‘장하성 펀드’였다. 중견 중소기업의 주식을 대거 매입, 그동안 무관심했던 기업의 지배구조와 배당 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기업의 이익만 먹고 빠지는 ‘먹튀 펀드’와 다름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KCGF 운용사인 미국 라자드 애셋 매니지먼트의 아시시 부타니 회장과 존 리 라자드 KCGF 펀드 담당 매니저 겸 이사가 28일(현지 시간) 뉴욕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국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기업구조 개선 선행돼야 허브 성장 가능 부타니 회장은 “우리는 장기투자자이기 때문에 단기차익에는 관심이 없고, 과거 코리아펀드와 마찬가지로 한국 시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은 아시아의 금융 허브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지만 이를 위해선 먼저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리 이사도 “기업구조 문제 때문에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있는 상태인 만큼, 기업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대주주나 투자자에게 다 이익이 된다.”면서 “기업구조 개선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은 남미로 가는가, 선진국으로 가는가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와의 관계도 명확히 했다. 부타니 회장은 “투자 주체는 라자드이고 어떤 주식이 싸며 언제 사고 팔아야 하는지는 라자드가 결정한다.”면서 “장 교수는 기업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관련 문제에 대한 정보 제공과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존 리 이사도 “IMF 외환위기 이후 장 교수가 삼성전자 지배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고 ‘이런 사람이 있구나.’ 감동을 받아서 이후 친구가 됐다.”면서 “장 교수로부터 회사의 지배구조나 법률 관계, 소액 주주의 권리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일종의 ‘어드바이저’이고, 투자의 전권은 라자드가 행사한다는 뜻이다. ●부정적 시선 여전 그러나 라자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여전히 있다. 기업지배구조펀드가 주주의 권리를 향상시킨 것은 맞지만 기업의 자사주 매입 등을 유도하면서 투자 위축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한화섬, 크라운제과, 화성산업, 동원개발 등 라자드가 매입하는 종목마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또 하나의 ‘소버린’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남아 있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결국 외국으로 유출하는 투기 자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정승일 부연구위원은 “펀드가 투자냐 투기냐를 판단할 때는 기간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 가치를 높였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장하성 펀드가 현금이 풍부한 중견기업의 주가는 높였지만 그 대가로 장기투자의 여력은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차원에서 대기업과 건실한 중소기업이 자금을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로 돌릴 수 있는 해법을 고민해야 투기성 자본의 악영향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일부 국내 기관 라자드펀드 참여 라자드 애셋은 1848년 건식품 회사로 출발했으며,1876년 금융업으로 전환했다. 라자드 펀드의 전체 관리자산 규모는 990억달러이다. 라자드펀드는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시드니에 이어 세번째로 지난 2005년 한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한국 투자 규모는 전체의 1% 정도에 머물고 있다. 라자드 펀드의 전체 규모는 2300억원 정도.100만달러 이상을 투자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일부 한국 기관도 라자드 펀드의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ouzirl@seoul.co.kr
  • 靑 “조건없는 대화” 한나라에 거듭 제의

    청와대는 28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민생경제회담’ 제의에 대해 ‘조건없는 대화’를 거듭 제안했다.지난 26일 개헌을 비롯한 주요 국정현안을 협의하자며 ‘역제의’할 때보다 포괄적인 제안이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의 회담 제의와 관련,“진실로 민생이 파탄 직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건 따질 것 없이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이 공당의 도리”라고 밝혔다. 또 “개헌 제안도 사회적·경제적 낭비와 혼란을 줄이자는 바람이 들어있다.”면서 민생의 한 부분임을 강조했다.이 실장은 29일 한나라당 강 대표를 직접 방문, 이같은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한나라당과의 회담을 성사시키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실장은 “진지한 대화를 위한 조건이라면 방식과 절차를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정쟁적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생산적인 대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특히 한나라당을 겨냥,“4년을 돌이켜보면 ‘탄탄탄 시리즈’, 즉 탄핵·경제파탄·민생파탄·세금포탄 등으로 대통령을 공격해왔다.”면서 “국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협력한 적이 몇번이나 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또 “정말 지금이 민생파탄 상황이라면 조건을 달지 말고 한밤중에 대통령을 찾아와 깨워서라도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으냐.”며 조건없는 대화 제의의 수용을 촉구했다.이 실장은 강 대표의 ‘참여정부의 잃어버린 4년’ 거론에 대해 “논거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면서 “IMF 이후 직장을 잃고 고생한 분들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꼬았다.노 대통령의 탈당 문제에 대해 ▲야당의 개헌 수용에 따른 탈당 요구 ▲열린우리당을 위한 당의 탈당 요구 등 2가지 상황을 거론하면서 “어떤 상황도 귀결된 부분이 없다.”면서 ”따라서 논의나 결정된 바 없다.”고 설 연휴 이후의 탈당설을 부인했다. 개헌의 발의 시점과 관련,“우선 2월 임시국회가 민생 개혁 법안의 처리에 충실하도록 하는 점에서 보면 2월 하순 이후가 맞지 않으냐.”고 밝혔다. 또 “2월 국회에서는 정기국회에서 미뤄진 많은 개혁 법안의 처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시론] 되풀이되는 공기업 도덕적 해이/김광구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되풀이되는 공기업 도덕적 해이/김광구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일 잘하는 행정부, 효율적인 행정부를 추구해 정부의 질적인 혁신이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까지 확산되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경영실태는 대통령의 인식과는 상반된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경영이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혁신적이지도 않다. 공공부문의 3대 축은 중앙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공기업으로 대표되는 공공법인과 기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장에 맡겨서는 제공할 수 없거나, 제공해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공공서비스의 생산 및 공급을 공기업 등에 맡기고 있다. 즉 전기 도로 토지 공공주택 가스 통신 등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뿐만 아니라 국부창출을 위한 연구기능까지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들에 시장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 법의 보호와 국민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주고 있다. 따라서 IMF 사태 직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경험한 민간부문과 정치권력에 의해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와는 달리 지금까지 공기업 등은 경쟁과 혁신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정부투자기관·정부산하기관의 예산은 132조원으로 중앙정부의 절반수준, 그리고 지방정부의 총예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국민경제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유이다. 국가경쟁력은 결국 민간부문의 경쟁력과 공공부문의 경쟁력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많이 있었다.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을 만들어 경영실적평가, 기관장추천위원회 구성, 고객헌장 제정 및 고객만족도 조사 등을 실시하고 있고 사외이사제 도입, 경영정보 공개, 평가실적과 성과급 연계 등이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도덕적 해이가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고 그 정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공기업 등의 고질적 현상은 사장, 감사, 이사 등 경영진의 정치적 임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감독기관도 자신들의 퇴임 후 자리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전문경영능력과 정통성이 부재한 경영진으로는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을 수 없다. 경영진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노조도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결국 정치권력-감독기관-경영진-노조가 한통속인 것이다. 공기업의 경영, 즉 ‘생선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긴 격’이다. 더 이상 비효율적인 공기업에 국민의 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 글로벌시대이다. 민간기업이건 공공기업이건 자신의 부문에서 전문성 및 기술력 등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과 FTA 협상중이다. 앞으로 공공부문도 FTA 등을 통해 시장개방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공기업의 비효율이 계속된다면 민영화를 통해 시장원리를 적용시켜 혁신과 경쟁으로 내몰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공기업 스스로 자기혁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영실적에 대한 감독기관의 책임성을 높여야 하고, 경영실적과 공공기관의 예산배정을 연계시키고, 사외이사 및 공공감사의 임명을 법제화해야 하며, 경영진의 정치적 임용근절을 위한 제도적장치를 만들어야 한다.4월부터 시행될 공공기관의 운용에 관한 법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효율성을 얼마나 높이는지 두고 볼 일이다. 김광구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 [세계의 싱크탱크] (18) 일본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

    [세계의 싱크탱크] (18) 일본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도쿄 시내 금융중심지인 니혼바시에 있는 ‘니혼게이자이 연구센터’(JCER)는 일본과 세계 경제의 경제예측·분석을 통해 일본경제의 활력소 역할을 담당한다는 평을 듣는다. 1963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민간연구기관으로 회원단체들의 회비와 연구용역, 기부금 등으로 운영된다. 모체인 최대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연구소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무로이 히데타로 아시아연구부 주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연구소의 회원제도는 일본사회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일반 회원은 일본의 기업과 단체 등이 법인단위로 가입한다. 그 밖에 경제분석가나 학자 등이 이사회나 총회의 승인을 받게 되면 개인의 특별회원이 된다. 일반회원은 입회금이 10만 5000엔(약 82만원)이다. 연회비는 1계좌에 94만 5000엔으로 5명이 이용할 수 있다.2계좌 회원은 연회비가 119만 7000엔(7명 이용),3계좌는 157만 5000엔(10명),4계좌는 182만 7000엔(12명),5계좌는 220만 5000엔(15명)의 회비를 내야 한다. 회원 가입시에는 면세인 100만엔(약 780만원)의 찬조비도 낸다. 회원이 되면 월간지인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 회보’나 예측·연구보고서 등 각종 출판물을 받아볼 수 있다. 또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 등에도 초대된다.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는 회원 단체의 관계자들에 대한 교육훈련도 병행, 인재양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일본 경제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인적네트워크 구축력이 유명하다. 후카오 미쓰히로 이사장은 “1200명이 넘는 연수생들이 경영간부나 이코노미스트, 학자, 저널리스트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인적교류 네트워크를 통해 일본경제에 공헌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설립 이후 이 연구소에서 연수를 마친 인재들이 일본 굴지의 기업에서 사장이나 이사 등 경영진은 물론 중견간부로 활약하고 있다. 저명한 경제분석가도 이 연구센터 출신이 많다. 미쓰비시UFJ리서치·컨설팅 시마나카 유지 투자조사부장, 경제평론가 모리나가 다쿠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연구소 출신 인재들은 무시못할 일본내의 ‘파워엘리트 집단’으로 활약 중이다. 특히 대학으로도 많이 진출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출신 김명중 연구개발부 연구원의 소개다. 1∼2년간 계속되는 연구과정의 연구생은 일본 및 세계경제의 실전적 분석과 예측을 하며 전문성을 강화한다. 일본경제의 구조문제를 분석, 정책제언이나 계획작성능력을 갖게 된다. 활발한 경기토론회나 세미나 개최 등의 현장연구도 주목을 끈다. 후카오 이사장에 따르면 이 연구센터는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경기토론회, 세미나 등을 1년간 무려 270회나 개최해 일본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격월로 개최되는 회원 기업 경영자 대상의 조찬세미나는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경제인 교류의 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강사는 현직 각료나 일본은행 총재 등이 맡는다. 중식 세미나는 회원 기업의 부장급들이 참석, 내외경제나 정치정세 등 폭넓은 분야를 공부한다. 일반세미나는 매주 3∼4회 정도 도쿄와 오사카에서 회원기업 관계자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열고 있다. 지난 11일엔 ‘2007년 세계의 논점’을 주제로 열려 경제·산업·금융 등 시사성 있는 내용들을 다뤘다. 세미나는 정보교류의 장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연구성과는 출판물로 공개되고 있다.‘일본경제의 신국면’,‘중국의 경제구조 개혁’,‘단카이 마켓-거대소비집단의 미래를 읽는다’‘일본기업 경쟁우위의 조건’ 등 단행본 30여권을 최근 수년간 펴냈으며, 학술논문집인 ‘일본경제연구’도 연 2∼3회 낸다. taein@seoul.co.kr ■ 한국무협·국회예산정책처등 일반회원 가입 |도쿄 이춘규특파원|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를 지탱하는 회원들은 화려하다. 지난해말 현재 도요타자동차, 마쓰시타전기산업, 소니, 히다치제작소, 스미토모생명보험 등 세계 최고수준 기업들이 대부분 회원이다. 기업이나 정부부처, 민간연구소와 대학교까지 모두 361개 단체가 일반회원이다. 한국에서도 무역협회, 국회예산정책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골드만삭스증권, 듀폰, 다임러·크라이슬러일본, 인텔 등 외국 기업들과 주일 영국대사관 등도 회원이다. 와세다대학 파이낸스종합연구소, 가쿠슈인대학 경제학부, 게이오대학 미타미디어센터 등은 물론 방위성 장비본부나 지바현 등 관공서도 회원이다. 연구센터 주요 인사들은 일본사회를 이끄는 논객이 많다. 고지마 아키라 회장과 게이오대 교수인 후카오 미쓰히로 이사장은 일본 사회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일본정부의 경제정책 사령탑인 정부세제조사회장에 고사이 유타카 특별연구고문이 내정되면서 이 연구센터는 관심을 끌었다. 연구센터의 일본내 영향력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다. 고사이 회장은 1987년부터 16년간 연구센터의 이사장과 회장을 지냈다. 아울러 고이즈미 정권 5년반 동안 고이즈미 정부의 개혁을 진두지휘한 다케나카 헤이조 전 총무상이 지난해 12월 특별고문이 된 것도 화제다. 향후 그의 역할이 주목된다. 이 밖에도 일본 최대의 경제단체인 게이단렌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 조 후지오 도요타자동차 회장 등이 연구센터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한국기업 중국 투자 치우쳐 제품설명서등 세부 보완을” |도쿄 이춘규특파원|후카오 미쓰히로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 이사장은 “인구가 감소되고 있는 일본은 우수한 외국이민자를 한 해 수 만명 정도 받아들여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지속적인 성장전략은. -경쟁원리가 충분히 투입되지 않은 분야의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의료산업과 서비스 산업이 대표적이다. 농업도 고령화 시대에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식회사가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일본경제 성장의 저해요인은. -인구감소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대안으로 좀 더 우수한 외국인 이민이 필요하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하고, 헌법과 역사 정도의 시험을 통과시킨 뒤 취직할 곳이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면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 중국, 타이완 등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서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일본에 모여들어 일본이 세계의 비즈니스센터가 될 것이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연간 수천명 선에서 한 뒤 잘 될 경우 늘리면 된다. 궁극적으로 한국인 수만명, 중국인 수십만명이 일본에서 살게 되면 일본의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일본이 한국·중국과 충돌할 때 완충역을 하는 등 국제관계나 안전보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구소와 한국과의 인연은. -한국의 싱크탱크들과 교류가 있다. 초청돼 강연하고는 한다. 무역협회 파견 연수생 등 한국인 연구원도 있다. ▶일본의 올해 경제전망은. -국내총생산(GDP)이 실질로 1.7% 성장하는 등 잠재적 성장률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나쁘지도, 매우 좋지도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고용이 매우 좋다. 대학 3학년생이 10월부터 기업의 스카우트를 받을 정도로 인재 확보전이 뜨겁다. ▶재정적자나 국가채무가 심각한데. -재정적자는 줄일 필요가 있다. 아직도 불필요하게 쓰이는 재정을 줄일 여지가 많다. 그러나 필요한 부분, 즉 공적의료보험 등은 유지해야 한다. 재정적자는 직접세를 줄이고, 소비세를 올리는 방법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소비세는 높여도, 일시적으로 소비위축 우려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문제없다. 유럽은 20%인 나라도 있지만 일본은 5%에 그치고 있다.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투자가 별로 안 좋다. 삼성전자 같은 건강한 회사도 있지만 약한 부분도 많다. 한국기업이 중국투자에 치우쳐 국내투자가 줄고 있다. 일본도 민간부문 투자가 2003년부터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은 수준이 낮다. 중국시장은 투자시장으로 매력도 있지만 불안정한 요인이 많다. 빈부격차가 매우 심하다. 참고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일본서 배울 점은. -정치안정이다. 대통령제라 국민적 인기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좋지만, 초기는 잘나가다 레임덕이 온다. 정치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노무현 정권의 북한 현실에 대한 인식도 너무 안이한 것 같다. ▶한국경제의 강점과 약점은. -한국은 대기업은 강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약하다. 강한 점은 역시 역동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갖고 있는 휴대전화기도 삼성 제품인데 매우 얇고 작아 편리하다. 일본어 설명서가 있지만 설명이 부자연스럽다. 이런 세부적인 것을 조금 보완하면 완벽해질 것이다. 인천공항도 통과 승객은 이용이 불편하더라. 섬세한 서비스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한국기업에 대한 조언을 해달라. -품질을 좀 더 향상시키고, 서비스를 확실히 하면 일본에서 이미지를 올릴 수 있다. 일본은 세세한 부분까지 까다롭다. 일본시장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고 하지 않나. 일본 기업 제품에 지지 않는 수준의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수를 던져 이겨내면 세계에서 통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중국과 미국으로 쉽게 향해 버린다. taein@seoul.co.kr
  • 우리銀, 외환·기은 M&A 나서나

    우리銀, 외환·기은 M&A 나서나

    금융권의 ‘뉴스메이커’ 우리금융지주 황영기 회장이 국내 은행권이 추가적인 통합 과정이 필요하고, 우리지주가 국내 기업과 고객을 돕는 ‘장산곶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이 ‘토종은행론’을 근거로 장기적으로 다른 은행들에 대한 합병을 추진하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황 회장은 지난 17일 저녁 “현재 은행들의 규모로는 국내시장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내부 경쟁과 인수·합병(M&A)을 통해 국가를 대표하는 금융기관, 규모나 질적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은행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선전을 거쳐서 국가대표가 2∼3개로 줄어든 뒤, 일본, 중국 은행들과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면서 “국내 은행들이 늦으면 ICBC 등 중국의 거대 은행들에 시장을 빼앗길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논란이 됐던 ‘토종은행론’도 다시 꺼내들었다. 황 회장은 “외국 자본 비율을 20%로 묶은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제한을 풀면서 우리은행을 제외한 다른 시중은행들은 대부분 외자에 넘어가거나 외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면서 “우리은행이 국가 대표로 ‘장산곶매’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시중은행 외국지분 80% 상회 은행권의 외국인 지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리딩뱅크’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17일 현재 83.10%. 시가 총액 25조 1000억여원 중 20조 8000억여원이 외국인 소유다.1대 대주주는 ING뱅크로 4.06%를 소유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각각 59.10%,80.22%. 신한지주는 재일교포들의 지분까지 포함하면 80%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신한주주의 1대 주주는 프랑스 금융회사인 BNP 파리바 그룹으로 7.99%를 갖고 있다. 하나지주의 1대 주주는 싱가포르 금융회사인 테마섹으로 9.88%를 보유하고 있다. 황 회장의 토종은행론이 힘을 받을 만한 ‘객관적 조건’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정부 결단에 따라 현실화 가능 금융권에서는 황 회장이 통합합병론과 함께 해묵은 토종은행론을 같이 들고 나온 것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우리지주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모두 12조원. 배당 등을 통해 10조 8000억원이 남아 있다. 우리지주 주가는 18일 현재 2만 2050원. 정부지분인 78%를 팔면 공적자금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 이는 곧 예금보험공사와 정부의 동의만 있으면 인수·합병전에 언제라도 뛰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인수 합병 대상으로는 외환은행과 기업은행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지주가 기업과 합치면 총자산은 290조원, 외환과 한 식구가 되면 280조원 정도가 된다. 국민은행을 멀찌감치 따돌리게 되는 셈이다. 우리지주 관계자는 “인수 합병을 위해서는 자체 자금뿐 아니라 차입, 컨소시엄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도 “황 회장이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치권의 결단에 따라 우리은행의 ‘희망’이 현실화될 수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부동산 거품붕괴론 점검 (하)] “기업 투자환경 개선… 시중자금 새 물꼬 터줘야”

    [부동산 거품붕괴론 점검 (하)] “기업 투자환경 개선… 시중자금 새 물꼬 터줘야”

    거품은 어느 산업이나 존재한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스스로 바람이 빠지거나 언젠가는 터진다.’는 게 거품의 속성이다. 그러나 현재처럼 거품의 크기가 상당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방치했다가 터지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급하게 터뜨렸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엄청나다. 일부 전문가들은 1997년 IMF 환란 이상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결국 관건은 거품의 크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느냐는 것. 이에 따라 다양한 금융 정책과 투자환경 개선을 통해 시중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유동성을 실물 경제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금융당국 ‘마지막 카드´ 콜금리 인상 최근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40조 9000억원. 카드 사태로 우리 경제가 휘청거렸던 2002년 61조 6000억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26조 8000억원이 늘어나면서 217조 410억원을 기록했다. 증가폭도 2002년 45조 5000억원 이후 가장 컸다. 현재 시장에 유동성이 얼마나 많이 풀려 있는지 보여준다. 지급준비율 인상, 주택담보대출 1인 1건 제한, 총부채상환비율(DTI) 40% 제한 등 금융당국이 시행하거나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정책은 부동산에 쏠려 있는 유동성을 회수하려는 조치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들어 6년여 만에 시중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물량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효과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보유하고 있는 마지막 카드는 콜금리 인상. 그러나 콜금리를 인상할 만한 여력이 있다는 의견과 시장의 여파를 생각했을 때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양대 경제학과 이영 교수는 “미국 등 외국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우리나라 콜금리는 낮은 수준”이라면서 “두세번 정도 올려도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한 채 과도한 부동산 거품을 줄여나가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시중은행 등 금융관계자들은 여기에 부정적인 편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 인상,DTI 규제 등에 따라 주택 시장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는 상태”라면서 “여기에 콜금리 인상까지 추가되면 시장 자체가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거품이 터져버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기관은 개인 리스크 관리를 풍선 바람은 한 쪽을 누르면 한 쪽이 나오기 마련. 출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터지게 된다. 유동성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기업투자 쪽으로 유동성의 출구를 마련하는 전 사회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LG경제연구소 이철용 연구위원은 “부동산 거품은 부동산 쪽을 최선의 경제 활동으로 선택한 수많은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면서 “정부는 기업투자 활성화 조건을 만들고, 금융기관은 개인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잘 하고, 개인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버리고 재테크의 다변화를 고민하는 다각적인 자세만이 부동산 쪽에 쏠려 있는 유동성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역시 투자 활성화 유도로 거품 해소의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SK 관계자는 “부동산 버블은 기업 투자와 성장, 이로 인한 취업 확대와 내수 시장 활성화라는 구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기업들이 풍부한 내부 자금과 낮은 금리의 은행 대출 자금으로 좀 더 활력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삼미→청보→태평양→현대

    ●현대야구단 변천사 현대가 농협에 매각되면 국내 프로야구 26년 역사에서 5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맞게 된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모기업이 철강과 해운업을 주업종으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인천을 연고로 야구판에 뛰어들었다.83년 재일교포 투수 ‘너구리’ 장명부를 앞세워 3위에 올라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85년 모기업이 자금난에 부딪히자 70억원에 청보산업에 매각된다. 당시 청보는 50대 기업에 들지 못하는 생소한 기업이었으나, 야구단 이름을 청보 핀토스(조랑말)로 하고 85년 후기리그부터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청보는 불과 2년 반 만에 외환은행 자금 관리에 들어갔다. 결국 87년 10월 태평약화학이 50억원을 주고 청보 핀토스를 매입했다. 이후 9년 동안 태평양 돌핀스 시대가 열린다.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등을 앞세워 ‘투수 왕국’이라는 명성을 얻었고,89년 3위,94년엔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태평양 돌핀스는 95년 8월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고액인 470억원에 현대에 팔렸다. 거액으로 프로야구단을 인수한 현대는 현대 유니콘스로 이름을 바꾸고 공격적인 운영으로 2006년까지 11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4개나 수집, 신흥 명문으로 떠올랐다. 창단 3년째인 98년 첫 우승을 했으나,2000년 인천을 떠나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하지만 IMF 위기의 파고가 높았다.2001년 모기업인 하이닉스반도체가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에 넘어갔다. 수원을 거쳐 서울로 입성하려던 현대의 계획이 좌절됐다. 현대 유니콘스는 그동안 현대자동차와 계열사 등의 자금으로 생명을 이어왔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부동산 거품붕괴론 점검](중)집값 ‘불감증’ 왜?

    [부동산 거품붕괴론 점검](중)집값 ‘불감증’ 왜?

    연말과 연초 건설·부동산 관련 연구원들은 대체로 2007년 집값이 5∼10%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절반 이상의 국민들도 올해 부동산 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부동산발 위기론’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해나갔지만, 지난해까지도 은행들은 대출규모를 대폭 늘렸다. 특히 11월과 12월 각각 5조 6404억원,4조 9896억원 폭증했다. 지난해 연중 최고 수준의 부동산담보대출 증가액일 뿐 아니라, 지난 3년래 최대 규모였다. 국민들도 위기론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지난해에만 2월,6월,8월에 콜금리를 0.25%포인트씩 3차례나 올렸다. 대출금리가 부담스런 수준으로 뛰었고, 더 오를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수억원의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하는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최근 대출금리가 7%까지 오르자, 이제서야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위기 불감증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유1. 이윤의 함정 한국금융연구원의 김병연 선임연구원은 은행들의 경쟁적인 부동산담보대출에 대해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대출시장이 경색되면서 은행의 수익원이 고갈됐었다.”면서 “5년 전부터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자 은행들이 새로운 수익원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매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카드와 소호대출 부실로 호된 시련을 당했던 은행으로서는 ‘거품’이라는 경고등이 들어와도 무시하고 유리한 정보수집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특히 2001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오름세를 보였기 때문에 담보가치의 하락에 대해 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출자의 현금흐름이나 소득흐름 등을 철저히 분석해 상환 절차·방법을 결정하는 미국 은행들과 달리 우리 은행들은 대출자가 요구하는 대로 거치기간이나 상환 방법을 정해 대출해주면 끝이다. 때문에 은행들 스스로는 도래할 ‘위기’를 발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은행의 경쟁적 주택담보대출이 부동산 거품을 조성한 측면도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자봉 연구위원은 “2002년 12월말 이래 78조원의 신규 주택담보대출이 이뤄졌고, 그 증가가 강남지역 주택가격 상승에 미친 영향은 20%정도, 그 기간 상승한 가격의 3분의 1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이유2. 가격의 함정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 이사는 “가격 측면에서 부동산과 주식은 비슷한 패턴을 형성한다.”면서 “가격 상승기에는 사람들이 가격에 도취되고, 기대감이 덧붙여져 떨어질 수 있다는 상상을 못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붕괴론이 대두돼도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서울 강남의 부동산 관계자들은 “강남 아파트가 평당 1억 간다.”고 전망한다. 현재 강남의 아파트는 평당 3000만원이지만, 이같은 가격 전망 때문에 강남의 다주택자나 거주자들은 팔 수가 없다. 이른바 ‘세금폭탄’이나 대출금 상환의 부담을 조금만 견디면 1년에 몇 억원의 이익을 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사는 “일반적으로 증시에서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이 제시될 때는 끝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라면서 “경험적으로 삼성전자가 100만원 간다고 주장하는 애널리스트가 나올 때마다 주식시장은 대세 하락기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유3. 정책의 함정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장은 아파트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왜 매도자들이 없느냐는 지적에 “차기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면서 관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학원장은 “대다수 국민들이 현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지만, 장기 거주자에 대한 종부세 일부 감면이나 양도세율 경감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현재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야당인 한나라당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연속성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이강국 헌재소장 후보 위장전매 의혹 공방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14일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이 제기한 ‘아파트 분양권 위장전매´ 의혹과 관련,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는 이날 ‘사유서´ 자료를 내고 “당시는 IMF 여파가 가시지 않은 때라 시공사가 미분양 가구를 조속히 분양하기 위해 계약금 5000만원만 내면 중도금 전액을 무이자로 융자해주는 파격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본인의) 배우자는 2001년 9월 서초구 소재 H아파트를 분양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분양받은 뒤 배우자는 주거지역으로 좋지 않고 면적이 가족수에 비해 너무 넓어 계약을 해제하려 했으나 계약금 몰취 문제로 어려움에 빠졌다.”며 “친정 어머니가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아파트를 직접 매수키로 하고 2001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위원인 박찬숙 의원은 자료를 내고 “이 후보자의 배우자가 총 9억 9700만원을 주고 93평형을 분양받았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친정어머니에게 미등기 전매했고,2001년 11월 후보자가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됐다.”며 “이 후보자가 투기대열에 합류했지만 공직자 재산신고 등을 처가쪽으로 위장전매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전광삼 김효섭기자 hisam@seoul.co.kr
  • [기고] 품격 있는 숲을 위하여/이창원 한성대 교수·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

    올해로 산림청은 개청 40주년을 맞았다.1967년 우리 국토의 치산녹화를 위하여 뿌리내린 나무들과 함께 40년을 걸어온 것이다. 이제는 ‘녹화된 숲’을 ‘숲다운 숲’으로 가꿔나가고,‘심는 정책’에서 ‘가꾸고 이용하는 숲’으로의 정책적 전환을 위해 묵묵히 애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웰빙 붐과 주 40시간 근무제로 가족끼리 푸르러진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등산, 산림욕, 도시숲 산책 등 숲 속에서 건전한 여가와 건강을 찾기 위해서다. 이러한 산림휴양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산림청은 등산과 도시숲, 휴양정책 등 그 외연을 확장하고, 폐쇄적인 규제 위주의 국유림 정책을 국민들이 참여하여 함께 가꾸고 이용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국제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최단기 ‘녹화 성공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 레스터 브라운은 “한국은 산림녹화의 세계적 성공작”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의 경우, 월 1회 이상 등산 인구가 1500만명에 이르고, 연 1회 이상 등산인구는 4000만명, 자연휴양림 이용객은 500만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정작 640만㏊의 우리 산림을 가꾸고 보호하는 인력은 2000명이 안 되고 1인당 국유림 관리면적은 1790㏊나 된다.IMF 시절 지방자치단체의 산림담당 인력과 연구인력 위주로 산림 관련 업무담당자가 대거 축소되면서 인력 부족은 더 심화됐다. 그러다 보니 각 지자체는 산림의 보호보다는 개발을 통해 경제를 육성하려 하고,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선 산의 중요성과 가치를 간과하기도 한다. 한 집안의 문화 수준은 그 집안의 화장실에서 알 수 있고,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그 나라의 숲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림의 변천사는 우리의 역사와 꼭 닮아 있다. 일제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황폐한 산림은 가난하고, 굶주린 우리의 모습과도 같았다. 허리띠 조여가며 잘 살아보자고 이뤄낸 급속한 경제성장 시대는 모두가 함께했던 나무심기로 빠른 시간 내에 산림녹화 성공을 이루어낸 것과 견줄 수 있다. 급속한 양적인 성장으로 국민 삶의 질과 성숙한 문화정착이 더딘 것과 같이 빠른 치산 녹화로 숲의 가치와 질적인 성장이 아직 충분치 못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향후 산림정책의 방향은 고객지향적 관점, 관리가 아닌 경영의 관점, 참여를 통한 협치(governance)의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고객지향적 관점은 도시·산촌 등 지역에 따라 산림의 필요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 가치 극대화 방안을 모색함을 의미한다. 관리가 아닌 경영의 관점이란, 정부 주도의 국유림 관리 차원을 넘어 공익의 극대화·경제적 효율의 극대화를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정책 마인드 확보를 말한다. 특히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무형의 가치, 즉 여가와 같은 심리적 욕구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는 고객만족경영의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여를 통한 협치의 관점은, 고객의 욕구에 부합되는 공익성 또는 경제성 확충을 적실성있게 실현시킬 수 있는 대응력을 갖춘 조직체계로 전환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책공동체’ 형성을 통한 다양한 이해관계의 사전 조정 및 추진력 확보를 통해 경영상의 효율성을 높여나가는 시각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공기 정화, 녹색댐, 야생동물 삶의 터전, 휴양공간 제공 등의 역할을 말없이 수행하면서 우리에게 1인당 연 126만원의 공익적 가치를 보장하고 있는 우리의 숲!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문화 수준에 걸맞게 우리의 산림을 가꾸고 모두가 애정을 갖고 돌봐야 할 것이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고정수입 있어도 ‘파산’ 할 수 있나요

    Q은행에 오래 다니다 IMF 환란때 구조조정을 당했습니다. 퇴직금에다 빌린 돈을 합쳐 식당을 운영했는데, 최근에 팔았습니다. 그 동안 손해만 본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교육도 시키고 생활비도 댔기에 이렇다할 저축을 하지 못했습니다. 빚은 늘었고 전세금까지 빼서 정리해도 남은 빚이 6000만원 정도 됩니다. 아내와 둘이서 보증금 500만원, 월세 30만원 단칸방에 사는데, 최근 취업하여 월급 150만원을 받았습니다. 빚이 남아 있어 파산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구청에서 열린 상담회에서는 고정수입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파산신청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처럼 재산이 없는 사람도 그래야 하나요. -황헌기(56)- A그렇지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월급 받으면 개인회생, 그렇지 않으면 파산이라고 기계적으로 입력된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물론 개인회생은 채무자에게 비교적 안정된 수입이 정기적으로 발생할 때 할 수 있지만, 법률 어디에도 수입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개인회생을 신청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채무자가 살 수 있을 만큼 수입을 남겨 주고 나머지 잉여는 채권자가 가져가는 추심수단 내지 채무해결 수단이 개인회생제도에서 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수입이 있으면 개인회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개인회생을 이행한다고 채무자가 정해진 금액을 갚는 한 자기 재산을 지킬 수 있게 한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개인회생 제도의 취지는 다른 곳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개인회생 제도는 채무자를 옭아매는 추심수단이 아니라 채무자에게 살 길을 열어줘 회생하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개인회생과 파산을 굳이 정형화하자면, 기준을 수입이 아니라 현재 지킬 재산에 두는 게 맞습니다. 현재 채무자가 재산을 갖고 있다면 개인회생, 전혀 지킬 게 없다면 파산이라는 얘깁니다. 파산으로 가면 채무자는 가진 것을 모두 채권단에 내놓고 면책을 얻습니다. 개인회생에서는 채무자가 파산절차에서 내놓아야 할 ‘현재’를 지키는 대신 장래 벌어들이는 소득 일부를 내놓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지킬 ‘현재’가 없다면, 개인회생이라는 게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황헌기씨의 주거 수준은 노숙자를 간신히 면한 상태로 보입니다. 월세를 내고 남는 100만원으로는 생활비를 내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개인회생으로 20만∼30만원을 갚아 나가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근검절약으로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남길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장차 주거안정과 노후 대비를 위해 저축하는 게 낫습니다. 아무리 빚을 면해 줘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삶은 힘듭니다. 파산제도, 개인회생 제도로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이 노숙자는 아닙니다. 황헌기씨처럼 힘든 처지에 있는 분들은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 먹고 살아 주는 것만 해도 세금을 내는 다른 시민들이 고마워 할 것 같습니다.
  • [그의 삶 그의 꿈] 질곡의 세월에도 단단한 ‘희망’

    [그의 삶 그의 꿈] 질곡의 세월에도 단단한 ‘희망’

    글·사진 최원준 시인 자갈치 아지매 김순이 씨. 우리 나이로 오십 넷이다. 1세대 자갈치 아지매가 6~70대를 훌쩍 넘긴 나이이고 보면, 자갈치 아지매로는 많은 나이가 아니다. 그러나 김순이 씨의 자갈치 아지매 35년 이력을 보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다. 거의 자갈치 아지매 1세대급(?)의 인생역정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한국동란 이후 홀로 된 여인들의 혹독한 생활현장이었던 자갈치 시장. 이곳에서 자갈치 아지매들은 5~60년대 혼란의 전후 시절을 억척스레 살아왔다. 이들처럼 김순이 씨도 처녀시절, 전쟁을 피한 친정식구들과 함께 자갈치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는 3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의 궤적을, 거친 자갈치 바람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유전도 거칠고 급박했다는 이야기다. 자갈치 아지매, 그 무한한 아름다움 자갈치 아지매. 우리나라 억척 아줌마의 상징. 질곡의 세월 속에서도 희망을 찾던, 우리 시대 대표적 여성상이자 ‘장한 어머니의 대명사.’ 그들에게 부여된 수식어들이다. 자갈치시장의 삶은, 여성의 힘으로 견디기에 녹록치 않은 노동환경을 담보로 한다. 많은 노동시간과 과도한 노동력이 자갈치 아지매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갈치시장을 이끌어 나가는 그녀들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자갈치 아지매 중에는 남편과 사별한 이들이 많다. 남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갈치시장으로 흘러 들어온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자녀의 학업과 성공의 뒷바라지를 위해, 거친 시장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만큼 절망적인 삶의 환경과 미래에의 희망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활기차고 인정 많은’ 우리 이웃 자갈치 아지매들의 힘의 원천이자 아름다움인 것이다. 행복했던 시절의 짧은 비망 그런 ‘자갈치 아지매’ 김순이 씨를 만났다. 거친 일에도 불구하고 곱상한 얼굴에 정감어린 미소가 담뿍 묻었다. 그러나 수줍은 듯 다소곳이 맞잡은 두 손에는, 신산했던 세월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얼핏 보니 걷어붙인 팔목 부위에 크게 긁힌 상처자국이 선명하다. 생선상자를 무리하게 옮기다 다친 상처라 했다. 김순이 씨는 남편과 함께 시장 일을 같이한 ‘자갈치 부부’였다. 자갈치시장에서 처녀, 총각으로 만나, 사랑을 키우고 내일의 희망을 같이했다. 남편은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딴 ‘거제수산’이라는 수산물 도매회사를 설립하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회사를 차근차근 키워나갔다. 그만큼 행복도 ‘동전 모이 듯’ 차곡차곡 쌓여졌다. 남편은 자갈치 수협 중매인으로, 아내는 수산물 도매상으로, 호흡을 척척 맞추며 승승장구했었다. 한때는 자갈치 시장의 ‘경매 TOP’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었다. 살림 밑천이라는 딸 여섯도 고만고만하게 예쁘게 자라주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낮과 밤이 바뀐 고된 생활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과 가족의 다복함으로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IMF는 그들의 작은 행복을 송두리째 산산조각 내버렸다. IMF-모든 꿈은 산산조각 나고 사업이 잘되면서 회사 규모를 조금씩 키워 나가던 남편은, 소리 없이 불어닥친 IMF의 거대한 격랑 속에서 속수무책 휩쓸려갔다. 갑작스런 자금동결로 거래처 상당수가 도산을 하고, 그 여파로 남편 회사도 심각한 자금압박에 시달렸다. 회사를 살리려고 동분서주하던 남편은, 결국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가족들 곁을 떠나고 만다. 남편이라는 큰 기둥이 무너지고, 여자의 몸으로 남편의 뒷수습과 휘청거리는 회사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회사는 파산하고, 집과 재산 전부는 경매에 붙여졌다. 한마디로 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 것이다. 그 이후로 김순이 씨의 삶은 ‘뼈를 깎고 창자를 끊는’ 고통 그 자체의 세월이었다. 그 충격으로 혈압병도 얻고, 몇 년 자리보전도 했다. 그러나 마냥 이렇게 나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짊어진 빚도 빚이지만, 자식들에게 나약하고 실패한 어머니로 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십 년을 자갈치 아지매로 살아 온 자신이 아니던가? 자갈치시장에 새로이 좌판 하나를 마련했다. 주로 학공치와 꽁치를 취급하며 조금씩 빚도 갚아나가고, 그 시절의 악몽도 차츰 잊혀져 가는 요즈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잘 커준 여섯 딸이 평생의 재산 김순이 씨에게는 장성한 딸이 여섯 있다. 가정이 격랑 속에서 풍비박산 났어도, 아랑곳없이 잘들 커주었다. 첫째, 둘째는 시집가서 다복하게 잘 살고, 셋째 이민 씨는 엄마에 이어 ‘자갈치 아지매’가 되었다. 남포동에서 작은 가게를 내고 억척으로 일한 덕에, 보란듯이 자갈치시장에 횟집을 차렸다. 상호도 부모의 손때 묻은 ‘거제수산’으로 지을 만큼 ‘똑’소리 나는 여장부다. 횟집이 ‘시작’이란 뜻이다. ‘엄마’가 ‘자갈치시장’에서 잃은 것을, 반드시 ‘자갈치시장’에서 되찾겠다는 다부진 생각이, 상호에 오롯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넷째는 남포동에서, 다섯째, 여섯째는 국제시장에서 각각 가게를 하고 있다. 자갈치 아지매의 억척스러움을 모든 딸들이 한결같이 물려받았다. 그래서 김순이 씨는 든든하고 흐뭇하다. ‘농사 중에 제일이, 자식농사’라 했던가? 이즈음의 그녀는 자식농사 풍년으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좌판에서 영그는 내일의 희망 김순이 씨에게는 아직도 안고 넘어가야 할 짐이 많다. 그리고 그 갈 길이 만만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단단히 박혀있다. 비록 밤새 좌판에 앉아 있더라도, 몸이 부서지듯 힘들더라도, 그녀는 자갈치 아지매다. 자갈치 아지매는 결코 ‘포기나 실망’ 따위의 단어는 없다. 투박하고 억센 사투리 속에 묻어 있는 ‘내일과 희망’만이 있을 뿐이다. “싱싱한 고기 사이소~ 생선 사이소~” 크게 외치는 목소리에는, 손주들과 손잡고 편안히 마실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소록소록 부풀어오른다. 온 가족이 모여 깔깔대며 행복해하는 모습도, 가득~한 것이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 10만 포로의 눈물

    조선은 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는 비참한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한마디로 17세기초 명·청 교체기의 격랑 속에 조선 지배층이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2007년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370년이 되는 해이다. 북핵 문제를 놓고 6자 회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듯,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팎의 정세는 예측불허다. 우리가 과연 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러시아·일본 등과의 숨가쁜 외교전에서 북핵이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가며, 미래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해서이다. 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의 눈을 통해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살펴본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 매주 목요일 연중기획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편집자 주 ●준비 없이 전쟁을 선택하다 1636년(인조 14년) 봄.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청의 수도인 선양(瀋陽)에서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황제로 즉위한다는 소식이 조선에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척화파(斥和派) 신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 추장에게 황제 칭호는 가당치도 않다.”며 “정묘년(丁卯年,1627년)에 그들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고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은 이어 ‘황제 운운’하는 내용을 담은 국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의 목을 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주화파(主和派) 신료들은 “청이 명을 능멸할 정도로 세력이 강해진 현실을 인정하여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사신을 박대해서도 안된다.”고 맞섰다. 최종 결정권자인 국왕 인조는 양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척화파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곧 이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정이 청과 맺은 맹약을 파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장차 발생할지도 모르는 청의 침략에 대비하라는 내용으로 인조가 평안감사에게 보내는 극비교서(敎書)를 가져가던 금군(禁軍) 전령이 용골대 일행에게 교서를 빼앗긴 사건이었다. 자신의 목을 치라는 험악한 분위기에 놀라 황급히 달아나고 있던 용골대 일행에게, 다른 곳도 아닌 조선 영토 안에서 국왕의 밀찰(密札)을 빼앗긴 것이다. 척화냐, 주화냐를 놓고 정쟁만 무성했던 와중에 정작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어지는 정보 전달체계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1636년 12월6일. 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질풍같이 내달렸다. 병자호란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병력을 의주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大路) 바깥에 위치한 산성들 속으로 집결시켰던 조선군은 청군의 침입 사실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군이 조선군과의 접전을 피해, 곧장 서울로 진격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임진강 이북의 방어를 책임진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청군이 침입했다는 최초의 보고를 묵살하고 조정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적이 다가오자 싸우지도 않고 도주해 버렸다. 청군이 이미 개성을 지나 양철평(良鐵坪-지금의 은평구 녹번동)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월14일. 서울 도성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이들과 노약자들, 부녀자들의 울부짖음속에 피란행렬이 줄을 이었고, 조정 신료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조는 왕실 가족들과 종묘에 모셔져 있던 역대 국왕의 신주(神主)들을 강화도로 먼저 옮기도록 했다. 이어 자신도 강화도로 들어가려 했으나 청군이 이미 김포에서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해 버렸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대문까지 갔다가 강화도 행을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돼지´에게 무릎을 꿇다 1637년(인조 15년) 1월 중순. 준비 없이 들어왔던 남한산성의 상황은 참혹했다. 청군이 산성을 완전히 포위했고, 삼남으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를 차단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군량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청군은 연일 서양식 최신 대포인 홍이포(紅夷砲)를 쏘아대면서 항복하라고 종용했다. 조선 조정이 목이 빠져라 고대하던 지원군은 오지 않았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을 지킬 의욕을 잃은 장졸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까지 나타났다. 그 와중에도 신료들은 척화와 주화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인조는 눈물을 보이며 대책을 호소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1월26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청군은 바다에 익숙하지 못하여 수전(水戰)을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강화도 조선군 지휘부의 방심이 불러왔던 결과였다. 청군은 이에 앞선 1월22일, 조선에서 노획한 선박에 홍이포까지 싣고 강화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벌였다. 조선군이 변변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강화도는 함락되었고, 피란했던 왕실 가족과 중신들은 전부 포로가 되었다. 강화도의 함락 소식은 남한산성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와 현재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이윽고 그는 높다란 수항단(受降壇) 위에 앉은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의 예를 바쳤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씩 머리를 바닥으로 조아리는 오랑캐식 항복 예식이었다.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홍타이지를 포함한 여진족들을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로 경멸했다. 일부 인사는 심지어 청 태종을 ‘황태극(皇太極)’ 대신 홍태시(紅泰豕)라고 불렀다.‘붉고 큰 돼지’란 뜻이다. 그런데 인조가 ‘인간’도 아닌 ‘돼지’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청 태종은 인조로부터 항복을 받은 뒤 사로잡은 포로들을 이끌고 철수길에 올랐다. 그러면서 인조에게 또 다른 다짐을 받아냈다. “내가 끌고 가는 조선인 포로들 가운데 압록강을 건너기 전에 도망치는 자는 불문에 부친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단 한발짝이라도 청나라 땅을 밟은 뒤에 도망쳐 오는 포로는 조선 조정이 도로 잡아 보내야 한다.” 무시무시한 약조였다. 날이 갈수록 영토는 넓어지는데 인구가 부족했던 청은 조선인 포로들을 보배로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노동력이자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청은 10만이 훨씬 넘는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조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아냈던 것이다. 훗날 실제로 청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왔던 포로들은 이 ‘약조’ 때문에 청으로 다시 박송(縛送)되었다. 그리고 그 포로들은 청군에 끌려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에 신음해야 했다. 호란 후에도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의 통곡소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안추원의 비극을 책임질 것인가? 1664년(현종 5년). 항복 후 27년이 지나 한 남자가 청에서 도망쳐왔다. 마흔한살의 안추원(安秋元)이 그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 개성 부근에서 살았던 열세살의 소년 안추원은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했다. 하지만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될 때 그는 청군의 포로가 되었고, 선양으로 끌려갔다. 그는 선양에서 한족 출신 대장장이에게 팔린 신세가 되었다. 호란이 끝난 뒤, 포로로 끌려왔던 조선인 가운데 적지 않은 숫자가 몸값을 치르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하지만 안추원은 그렇지 못했다.1644년 명이 멸망하자 청은 베이징에 입성한다. 베이징을 새로운 수도로 정한 청 조정은 선양의 거주민들에게 베이징으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물한살이 된 안추원은 그의 주인에게 이끌려 베이징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지난 1662년(현종 3). 서른아홉의 장년이 된 그는 조선으로의 탈출을 결행한다. 산해관(山海關)을 통과하여 만주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하지만 산해관에서 청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베이징으로 송환된 그는 이마에 글자가 새겨지는 묵형(墨刑)에 처해졌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비원(悲願)은 처절했다. 다시 2년이 지난 1664년, 안추원은 마침내 청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정확히 27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가 사선을 뚫고 조선에 도착했을 때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조선인 포로들의 탈출을 금지하고 있던 청의 존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27년만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자국 백성을 어찌 차마 돌려 보내겠는가. 청이 알까봐 쉬쉬하는 가운데 안추원은 내륙으로 옮겨졌다. 안추원은 고향을 찾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자호란으로 그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목숨을 걸고 다시 찾은 고향이었지만 그는 당장 생계조차 막막했다. 조정은 그를 받아주었을 뿐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않았다. 귀향의 감격도 잠시 뿐 배고픈 그에게 아무런 피붙이도 남아 있지 않은 고향은 그저 또 다른 이역이었을 뿐이다. 안추원은 절망 끝에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청으로의 귀환은 탈출보다 훨씬 위험했다. 1666년(현종 7). 그는 결국 고국을 탈출하려다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 그가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처형되었을 것이다.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던 그가 온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성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 영의정까지 올라 안추원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위정자들의 오판에 떠밀려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비극은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까? 병자호란을 통해 수많은 ‘안추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극’을 불러왔던 최고책임자인 인조는 왕위를 유지했고, 책임을 져야할 신료들의 상당수도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전쟁 발생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적과의 싸움마저 회피하여 국왕과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던 김자점은 인조 말년 최고위직인 영의정까지 올랐다. 오늘날. 병자호란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현실을 돌아본다. 꼭 10년전 ‘IMF 외환위기’가 불러온 칼바람 속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민초들.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의 과실 또한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령들을 도탄에 빠뜨려 놓고도 자신의 과실을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은 시공을 초월하여 유전되는 것일까. 비극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면 또 다른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정치권의 난맥상과 민생의 어려움 때문에 걱정이 쌓여가고 있는 오늘, 370년전 병자호란의 비극을 되돌아보는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교수> ●필자 한명기 교수는 ▲1962년생 ▲1985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졸업(문학박사) ▲1998∼2001년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현재 명지대 사학과 교수. 계간 ‘역사비평’ 편집위원 ▲논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1999),‘광해군’(2000) 외 다수 ●청태종 송덕비(위 사진) 병자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강요해서 세운 청 태종 송덕비. 병자호란의 전말을 적었다. 사진은 일제시대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 삼전도에 있었다. 현재도 삼전동에 있으며 사적 101호로 지정돼 있다.
  • 李대법원장 “속인 일 없다” 변협 “신고누락 납득 어렵다”

    李대법원장 “속인 일 없다” 변협 “신고누락 납득 어렵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4일 변호사 시절의 세금탈루 의혹과 관련,“(신앙인으로서) 속인 일이 없다.”며 고의 탈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변협측은 ‘단순 실수’라는 이 대법원장의 주장에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네티즌들도 이 대법원장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세무사가 실수할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대법원장쯤 되는 공직자는 무한 검증해줘도 좋지만 모두 의혹을 제기하니 개인적으로는 섭섭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0원이라도 탈세했다면 대법원장직을 그만두겠다.”고 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서는 “그때까지는 세금신고 누락 사실을 몰랐다.”며 거취에 변동이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계 자본인 골드만삭스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채권을 매입하려고 설립한 세나 인베스트먼트를 변호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이 대법원장은 “3번이나 수임 의뢰를 거절했지만,IMF 사태를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 법조계가 외국자본을 차별한다는 말을 듣는 게 국가에 유익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건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2004년 이 대법원장의 세금신고를 맡았던 박상설 세무사는 “세금 누락은 전적으로 내 실수”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논평을 통해 “신고 누락이라는 변명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은 물론 대다수 변호사가 볼 때 과연 이같은 거액의 신고 누락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만일 탈세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국가 지도자로서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이용훈대법원장 탈세’ 파문] “30만원짜리 자문료도 빠짐없이 신고했는데…”

    [‘이용훈대법원장 탈세’ 파문] “30만원짜리 자문료도 빠짐없이 신고했는데…”

    이용훈 대법원장이 4일 집무실에서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만났다. 전일 보도된 자신의 세금 탈루 의혹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였다. 이 대법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전에 먼저 서두를 꺼냈다. -변호사 시작하면서 관심거리는 십일조 헌금을 어떻게 하느냐였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수입의 10분의1을 내는 방법이 있다. 생각해 보니 (변호사 수입이) 다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 주고 사무실 비용 쓰는 것은 내 돈이 아니라 기업 운영하는 돈이라고 여기고 통장에 전부 넣어두고 생활비를 매달 500만원씩 꺼내 쓴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세무사 사무실에 낸 명세서는 내가 두 세번 검색했다. 성공보수 자문료 30만원 받은 것까지 다 해놨다. 빠질 리가 없는데 (빠진 게) 있었다. 내가 속인 일이 없기에 (언론에) 명세서를 그냥 줬었다. 오기로 빠졌다고 하면 넘겨줄 리 있겠나. 그 명세서가 흘러다니다가 대조된 모양이다. 세무사 이기 과정에서 누락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궁금하면 통장 보여주겠다. ▶직접 기록한 부분과 세무사 사무실에서 잘못한 것 공개할 수 있나. -세무사 신고 부분은 자료 넘겨 받으려고 한다. 원 자료는 전부 세무서에 보여줬다. 전혀 관심없다는 취지로 세무서에서도 끝난 일로 알고 있다. 세무사 사무실에도 우리와 같은 자료가 보관돼 있다고 하더라. ▶10원이라도 탈세했다면 직을 버리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내가 몰랐으니 그렇게 얘기했다. 어제 방송에서 그렇게 묻기에 자료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자료에 (누락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10원 발언은) 상황이 그렇게 돼서 얘기했다. ▶(골드만삭스) 수임 경위는. -소위 외국자본이어서 3번 거절했다. 그쪽에서 대한민국 법조계가 외국자본이고 해서 대법관 지낸 분이 사건 안 맡는 게 말이 되느냐, 차별하는 것이냐고 해서 IMF도 극복된 상황 아닌데 국가 위해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내가 설사 무슨 얘기를 듣는다고 해도 나라 위해 대리하는 게 옳겠다고 해서 맡았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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