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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무장사터서 귀부조각 발견

    경주 무장사터서 귀부조각 발견

     추사 김정희는 1817년 경주 무장사터에서 비석 파편 2개를 찾아냈다.신라 제39대 소성왕(재위 799~800)의 왕비인 계화부인이 돌아간 왕의 명복을 빌고자 아미타불상을 세우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비석이었다.앞서 추사는 비석이 파손되기 이전에 찍은 탁본을 입수하여 당시 청나라의 대학자인 옹방강에게 보냈고,옹방강은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한 가치있는 비문이라고 회신했다. 무장사터에는 또 이 비석의 머릿돌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수와 받침대 역할을 한 거북이 모양의 귀부가 남아있었는데,추사는 머릿돌에 발견 과정과 감회를 새겨놓았다.이후 1915년 비석 파편이 하나 더 나와 지금은 추사가 찾아낸 것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경북 경주시 암곡동에 있는 무장사터 아미타불조상 사적비는 머릿돌과 거북이 모양 받침대를 보수하면서 1963년 보물 제125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지난달 아미타불상 사적비의 비신을 복원하기 위해 현지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 행방을 알 수 없던 거북이 머리 조각 하나를 다시 찾아냈다.  문화재청 건축문화재과 임동훈씨는 “내년으로 예정된 비신의 복원을 앞두고 현지조사를 하다가 주변 정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내려간 계곡에서 가공 흔적이 있는 돌조각을 발견해 파보니 거북이 머리였다.”면서 “맞춰본 결과 왼쪽 귀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무장사터 아미타불상 사적비는 쌍거북이 모양으로 귀부 양식이 거북머리에서 용머리로 변화해 가는 중간 단계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견된 거북이 머리는 내년에 비신을 복원하면서 제자리를 찾아준다는 계획이다.무장사는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아버지인 김효양이 숙부를 추모해 창건한 사찰로 전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존엄사 첫 인정] 각계 반응

     ‘존엄사’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에 대한 각계 반응은 분명한 반대에서부터 조심스러운 찬성까지 미묘하게 엇갈렸다.일부 시민단체,종교계에서는 판결 이후 분주한 모습이었으나 뜻을 한데 모으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사회적 후폭풍은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의미없는 연명치료 중단 기회”  대한의사협회 김주경 대변인은 “의미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면서도 “환자의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동의서를 받는 등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는 “완벽한 절차가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존엄사에 대한 논의에서 첫발을 디뎠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판결이 나왔으니 곧 절차를 마련하는 논의도 활발해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박정우 사무국장 역시 “우리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의 경우 ‘집착적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면서 ‘원칙적 환영 의사’를 밝혔다.그러면서도 그는 “의료 전문가의 판단과 양심,환자 보호자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환자에게 기본적인 간호와 영양공급을 중단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장희 앰네스티 법률가위원장(한국외국어대 교수)은 “판결에 반대한다.”고 밝혔다.그는 “고통이 극심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라면서 “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하면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 “생명을 인간의 가치로 판단할수가….” 조계종 기획실장 장적 스님 또한 “어찌 천부적으로 주어진 생명을 인간의 가치 판단으로 재단할 수 있겠는가.불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조심스러웠다.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그러나 자기결정권 행사 여부가 전언에 따른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록삼 김민희기자 youngtan@seoul.co.kr
  • ‘고통스런 과거의 흔적’ 치유하기

    ‘고통스런 과거의 흔적’ 치유하기

     10대가 아닌 어른들도 혼돈의 시기일수록 ‘나’를 찾아 단단히 붙들어매야 한다.  1998년 ‘문학사상’ 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종득의 첫 장편소설 ‘길,그 위에 서서’(화남 펴냄)에는 2명의 남자와 3명의 여자가 등장한다.그리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그 흔적을 만나고 그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한다.작품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등장한다.이야기는 1980년대 끝자락,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을 전전하던 사이 어머니의 교통사고,보상금을 들고 줄행랑 친 이모,사랑하는 여자의 부모와 겪는 갈등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된 ‘인석’의 죽음으로 시작된다.그의 죽음으로 각자 얽힌 기억과 흔적을 더듬어가듯 소설 속의 인물들은 계속 서로 서로를 찾아 길을 떠난다.마치 로드무비 같다.서울,영월,속초,청주,보길도 등을 헤맨다.  하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적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듯,그들은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에서는 결코 서로 조우하지 못한다.결국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것은 타인이지만 번번이 부닥쳐야하는 대상은,바로 자신이었다. ‘무엇을 보러 가는 것보다,가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113쪽)’,‘물론 아내를 만나지 못했습니다.하지만 만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제 아내가 원하는 저를 만났으니까요.(224쪽)’ 작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부정한 채 앞만 보고 달려왔던 출세 지향의 ‘진영’에 자신을 이입했다.10대처럼 어른들의 고민 역시 스스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그래야 20년전 그때처럼 다시 한 번 훌쩍 클 수 있으니까.책을 다 읽어도 곁가지 의문은 남는다.인석은 왜 출소 후에 통일운동과 사회운동으로 활동의 지평을 넓히지 못했을까.후일담 소설류도 안타깝지만 ‘소설의 밑반찬’ 정도로 전락한 옛 운동권의 쇠락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남녀상열지畵’ 통해 위선적 사회 조롱

    ‘남녀상열지畵’ 통해 위선적 사회 조롱

    신윤복 作 ‘월하정인´  ‘신윤복(申潤福·1758~?)자 입부(笠父),호 혜원(蕙園),본관 고령(高靈),첨사 신한평의 아들.벼슬은 첨사다.풍속화를 잘 그렸다.’  한국 역대 서화를 감정하고 고증하는 데 있어 권위를 인정받는 서예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의 한 대목이다.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인 신윤복이 역사와 접점을 이뤘던,단 두 줄의 짧은 기록이다.그리고 200년 남짓 흐른 지금 신윤복을 둘러싼 광활한 여백은 후세의 숱한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TV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바람의 화원 1,2’(이정명 지음)도 베스트셀러 목록의 윗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소설 신윤복’은 그 와중에 출간됐다.작가는 1990년대 초반 ‘십우도’,‘탄트라’ 등 불교소설을 쓰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가 한동안 뜸했던 백금남이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그림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소설 신윤복’은 조선후기 회화사 3부작 시리즈의 2부에 해당한다.1부는 이미 출간된 ‘샤라쿠 김홍도의 비밀’(한강수 펴냄).  작가는 “마치 시류에 편승하려는 듯 비쳐지는 것 같아 당혹스럽지만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의 하나”라면서 “운보 김기창까지 이어지는 근대회화사가 3부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소설 속에는 문근영(드라마)이나 김민선(영화)과 같은 예쁘고 섹시한 신윤복은 없다.소설 속의 신윤복은 남자다.그것도 여느 남자는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의 기개와 호기로움을 자랑하는 사내다.대스승 표암 강세황(1712~1791)이나 단원 김홍도(1745~1810전후) 앞에서도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의 예술관과 속내를 뱉어낼 정도로 거침없는 성정을 갖고 있는가 하면,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기생을 곁에 두고 술을 마시거나 투전판을 전전하며 싸움질을 일삼는 비루한 밑바닥 삶을,자학하듯 즐기는 인물로 그려졌다.똑같은 인물을 다뤘지만 출발이 이렇게 다르니 영화,드라마와 ‘신윤복’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신윤복이 김홍도에게 그림을 배운다는 설정은 마찬가지다.당시 풍속화에서 금기시됐던 남녀상열지사를 다루며 조정과 도화서 동료들의 미움을 받고 시중에 떠도는 춘화를 그린 장본인으로 지목되며 도화서에서 쫓겨나는 것도 역사와 소설,영화 등에서 동일하게 겹치는 내용이다.  소설과 영화가 엇갈리는 대목은 바로 ‘거지 화가’ 최북의 등장.신윤복의 그림 세계를 정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떠돌이 최북은 술 몇 잔을 위해 어디서든 그림을 그려주지만,강압적으로 그림을 요구하는 고을 사또 앞에서는 붓으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찔러댈 정도로 그림에 대한 자존심과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소설 속에서 신윤복은 김홍도의 강권에 의해 최북을 따라다니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지와 그 열정을 배우게 된다.그리고 도화서에서 쫓겨난 뒤 술집과 투전판을 옮겨다녔고,어릴 적 첫사랑인 기생 ‘송이’를 만나 불후의 작품 ‘미인도’를 그린다.영화,드라마와 달리 신윤복을 남자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인간의 본성과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조롱이 담긴 그의 작품 세계와 맞닥뜨릴 수 있다.  작가는 “기존의 소설,드라마,영화 등은 아무리 작가적 상상력을 더했다 하더라도 ‘남장여자설’은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 관계조차 지키지 못한 심각한 오류”라고 말했다.  어차피 역사의 빈약함은 신윤복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신윤복을 말해주고,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그림뿐이다.‘소설 신윤복’은 그림에 서사를 부여해 풀어간 작품이다.‘신윤복은 남장여자’라는 설정이 실존인물을 상상의 극한으로 몰고갔다면,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상당히 충실하다는 점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보완재’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셰익스피어에 빠진 소년의 고민

     열 네 살은 늘 괴롭다.어린이도 아닌,어른도 아닌,청소년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어른들 세계를 기웃거려도 보지만 집과 학교에서 부모와 선생의 간섭은 여전하다.하지만 어느새 훌쩍 커져 있는 마음의 키높이를 볼 수 있게 된다.  ‘수요일의 전쟁’(게리 슈미트 지음,김영선 옮김,주니어랜덤 펴냄)은 1967년 가을과 1968년 여름 미국을 배경으로 그 무렵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과 갈등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펼쳐낸다.미국 최고 청소년문학상으로 꼽히는 ‘뉴베리 아너상’,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우수도서 등을 휩쓴 ‘수요일의 전쟁’은 카밀로 중학교 7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 ‘홀링 후드후드’의 얘기다.본의 아니게,수요일 오후마다 다른 친구들이 종교수업을 들으러 간 사이 선생님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곰팡이와 먼지 냄새가 나는 셰익스피어’를 소개받는다.그리고,셰익스피어에 푹 빠지게 된다.  “장래를 내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잔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햄릿에 나오는 구절)을 뚫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기회가 아예 없을까봐 두려워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주시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던 후드후드는 이미 ‘주체적 자유의지’의 정수를 꿰뚫어버렸다.의젓하게 성장한 열 네 살이다. 중·고등학생은 물론,독서 지도가 곁들여진다면 초등학생도 유익하게 볼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히말라야 무당 트레이닝복 입고 굿 한다?

    히말라야 무당 트레이닝복 입고 굿 한다?

    인천공항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비행기로 꼬박 6시간30분,다시 1시간의 비행,여기에 버스로 2~3시간을 더 덜컹거려야 간신히 히말라야의 언저리다.   이렇게 머나먼 네팔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왔다.서울 삼청동의 실크로드박물관과 소격동의 티베트박물관을 운영하는 신영수 관장이 26일 인사동 갤러리 ‘떼’에서 ‘히말라얀,그 원색의 풍경’을 주제로 기획전을 연다.무복(巫服)과 무구(巫具) 등 히말라야의 샤머니즘 관련 문물 5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요즘은 현지의 무당들조차 제대로 된 무복과 무구가 없어 트레이닝복을 입고 굿을 할 정도라니 그 진귀함은 말이 필요없다.무당이 제의를 치를 때 쓰던 사람 뼈로 만든 가면,원숭이의 두개골로 만든 술잔,독수리 발,야크 꼬리,호랑이 뼈,운석을 녹여 만든 부적 등 각종 무구들이 눈길을 잡아 끈다.기원전 5세기 무렵부터 19세기까지 쓰여졌던 것들이다.  15년 동안 실크로드와 히말라야 지역의 유물을 중점 수집하고 있는 신 관장은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등에 4700여점의 자료를 기증했다.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신 관장의 상설 전시장까지 마련돼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무속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개인이 이처럼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수집 연구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경이”라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현지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무속 자료들은 특히 비교연구학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장 연구관은 “유물 하나 하나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공동 연구가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보적인 자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신 관장이지만 고충도 크다.일년이면 서너 차례씩 티베트나 네팔을 찾으며 수집 활동을 계속하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신 관장은 “박물관만 갖고는 운영이 쉽지 않고 창고에만 쌓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실크로드와 차마고도,샤머니즘 등 주제를 정해 전시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31일까지,관람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까지.관람료는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풍납토성 내부구조 비밀 풀리나

    풍납토성 내부구조 비밀 풀리나

     한성백제 도성이었던 풍납토성에서 식량 창고로 보이는 직사각형의 수혈(竪穴)과 주거지 등이 대거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6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197번지 일대 풍납토성에서 제5차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한성백제(BC 18~AD 475) 당시의 주거지 등 100개 남짓한 유구를 확인했으며,특히 창고로 추정되는 직사각형 구덩이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남북과 동서로 지나가는 도로 흔적과 육각형 주거지,한성백제 최대 규모의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특히 일반적인 원형 수혈이 아닌 이 시기 다른 유적지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크고 작은 직사각형 수혈이 발견돼 풍납토성 도성 내부 구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88개의 직사각형 혹은 원형 구덩이는 한 줄로 열을 맞추거나 군집을 이루고 있어 계획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직사각형 수혈 가운데 하나에서는 1m 이상 높이의 항아리가 3개 이상 온전한 상태로 출토됐다.따라서 이 수혈의 성격이 가까운 경당지구 등 한성백제의 궁궐이나 관청 등에서 필요로 하는 식량 등을 저장하던 창고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2005년 발굴된 부여 관북리 유적지의 과일저장 목곽 창고의 원류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더불어 수혈 주변으로 남북과 동서 방향으로 지나는 물길의 흔적도 발견됐다.이 물길 흔적은 기존에 확인되었던 동서 도로의 축과 연결되며, 1997년에 조사된 경당지구 남쪽의 물길 흔적의 연장선상에 있다.조사단은 이 유구들이 같은 성격의 것이라면 도시계획을 하면서 토성 내부를 남북으로 구획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밖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연화문 수막새가 완전한 모습으로 처음 출토된 것도 이번 발굴조사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과거 중국 북위의 도성인 대동과 낙양성 건춘문 유적에서도 비슷한 수막새가 출토된 적이 있어 백제와 북위의 교류를 추정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또한 토제 초석장식,금동·청동고리 및 각종 토기류 등 다량의 백제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신희권 학예연구관은 “이 일대에 대한 조사를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며 그 이후에도 풍납토성 내 사적지정지역에 대한 연차조사를 수행하여 초기 백제사의 보고인 풍납토성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숭례문 주변 조선시대 도로·민가터 확인

    숭례문 주변 조선시대 도로·민가터 확인

     불 탄 숭례문을 복원 정비하면서 함께 벌이고 있는 발굴조사에서 숭례문 동서 성벽의 기초와 조선 후기의 도로,조선 전기 것으로 추정되는 민가(民家) 터가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5일 발굴 현장에서 2010년까지 3년 계획으로 진행 중인 숭례문 발굴조사의 1차 연도인 올해 숭례문 내·외부 800㎡(250평)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특히 현재의 지표 30~60㎝ 아래서 숭례문을 통과하던 조선후기 도로 표면을 확인했다.도로는 갈색 사질토를 6~8차례 켜켜이 쌓아 130~140㎝ 정도로 바닥을 다졌고,꽤 큰 부정형의 박석을 덮어 노면을 포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찍은 사진을 보면,이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민가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이번 조사에서 발견한 3동의 민가에서 구들시설과 배수시설 등을 찾아냈다.  조사단은 또 1908년과 1911년쯤 일제가 철거한 숭례문 성벽의 기초부를 확인했다.  이밖에 이번 조사에서 백자향로를 비롯한 백자 제기(祭器)와 분청사기,청화백자 등 조선 초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다양한 도자기류와 기와편,전돌편이 나왔다.  조사단의 신희권 책임 조사원은 “이번 발굴을 통해 조선 후기 숭례문 주변 도로면의 높이와 당시 축조기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숭례문 주변 지형 복원을 위한 고증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 2년 동안 추가 발굴이 이루어지면 조선 전기에서 한말에 이르는 숭례문 주변의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 민족에 덧칠된 폐쇄·은둔 이미지는 잘못”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교류 연구의 권위자인 정수일(74) 전 단국대 교수가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갖게 됐다.이름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듯한 문명교류연구소는 26일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창립 기념식을 갖고 사단법인으로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학문적 깊이와 함께 대중적 저변 확대를 동시에 꾀해왔던 그로서는 좀더 안정적으로 연구와 강연활동을 진행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고전 연구하면 우리 문화 세계성 확인” 정 전 교수는 24일 “이 연구소를 밑천으로 삼아 학문적으로 문명교류학을 정립하려고 한다.”면서 ‘문명교류학’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했다.그는 “10개 남짓한 우리 고전을 발췌해서 공부할 목록을 만들었고,이 연구를 바탕으로 ‘세계 인식에 관한 한국 고전 독해본’을 만들 계획”이라면서 또한 “세계 4대 여행기 가운데 아직 국내에 번역이 되지 않은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의 ‘동유기’의 번역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 전 교수는 2006년 8월부터 일반인들을 상대로 ‘실크로드 학교’를 운영하면서 한 달에 두 차례씩 대중강좌를 열었고,한해에 4차례 정도 실크로드 답사도 진행했다.실크로드 학교가 열릴 때마다 70~80명이 찾아올 정도로 끊임없는 일반인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 뚜렷한 학문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탓인지 ‘문명교류학’하면 여전히 체감도는 멀기만 하다.  그는 “이 연구는 특히 우리 민족에게 축복 그 자체”라고 말했다.그는 또한 “문명교류학적으로 접근해 우리 고전을 연구하면 우리 역사 문화의 세계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우리 민족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수용적이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나아가 문명교류사를 공부하다보면 그동안 우리 민족에 덧칠됐던 폐쇄적이고 은둔적 이미지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 주도 세계화는 문명교류 아니다” 정 소장은 “힘의 논리를 넘어 겸손하게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다른 문명과 함께 간다.’는 원칙을 갖고 문명교류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강대국의 일방적 주도로 이뤄지는 최근의 세계화는 문명교류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도 함께 피력했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는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이 이사장을 맡았고,강윤봉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부회장,장석 이우학교 이사장,한동헌 노래를 찾는사람들 대표,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 등이 상임이사로 참여했다.  중국 옌볜 출신인 정 전 교수는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나와 평양외국어대학,말레이대학 교수를 지내면서 동서교류사에 업적을 쌓았다.1995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고,2003년 사면복권됐다.이후에도 ‘이븐 바투타 여행기’,‘실크로드학’ 등 10여권의 번역서와 저서를 내는 등 동서 문명교류학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해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시대도 ‘정치깡패’ 있었네

    조선시대도 ‘정치깡패’ 있었네

    ‘조선시대의 조폭이라….재미있다.손에 슬며시 땀도 쥐인다.  ‘역사팩션’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작가 이수광(54)이 새 소설을 냈다.제목부터 솔깃하다.‘조선의 조직폭력배,검계’(청어람 펴냄).  실제 문헌과 사료(史料)에 근거해 당시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히 고증한 것을 보면 역사소설인가 싶지만,음험한 암투와 역모의 냄새 풍기는 정치소설인 듯도 하고,또 의리와 배신이 판치는 뒷골목 느와르풍 협객소설인 듯하다가 모호한 연쇄살인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추리소설의 얼개도 눈에 띄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배경은 숙종~경종~영조로 이어지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조선시대에서 가장 피비린내나는 당쟁의 시기였다.쿠데타(반정·反正)와 또다른 쿠데타로 해가 뜨고 저물었다.  ‘검계’는 실존한 조직폭력배를 일컫는다.작가는 당시 가장 이름짜했던 ‘이영’과 ‘표철주’를 내세워 이야기의 얼개를 풀어 간다.이들은 남인과 서인,노론과 소론이 벌이는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마치 해방 직후 ‘정치깡패’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정치권에 이용당하고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이 씨는 “정사(正史) 속에서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낮은 곳에 있던 이들을 통해 그 시대를 다시 들여다 보는 민중사적 복원에 대한 소명의식이 있는 것 같다.”면서 “10여년 동안 이 작업을 하면서 자료에 묻혀 살다 보니 마치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아하,조선 후기 어느 시절에 대한 탄탄한 고증,당시 민초들의 풍습과 생활상의 성실한 재현 등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득하게 이뤄진 사료 수집과 끊임없는 연구의 산물이었다.  그는 TV 드라마로 더욱 유명한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을 썼고,‘조선시대를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명성황후,나는 조선의 국모다’,‘조선의 방외지사’ 등으로 자신만의 소설세계를 굳혀가고 있다.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바람이여 넋이여’로 등단한 ‘정통파’지만,근작들은 평단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씨는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열과 성을 바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만큼 스스로 자부심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다음 작품은 조선시대 한 시인의 순애보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펼쳐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달청, 세계 첫 휴대전화 입찰

     조달청은 20일 휴대전화로 공공기관의 입찰정보를 실시간 확인하고 입찰서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 휴대전화 입찰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휴대전화를 통한 입찰 참여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현행 전자입찰은 컴퓨터로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g2b.go.kr)에 접속해야 참여가능했다.휴대전화로 입찰이 가능해짐에 따라 장소에 구애 없이 이동 중에도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조달청은 국내 3개 이동통신사업자와 소프트웨어 및 공인인증서 적용방식 등의 시스템을 구축해 우선 KTF를 통한 서비스를 개시했다.SKT는 새달 한 달간 이용체험단을 운영할 예정이고 LGT와는 협의가 진행 중이다.휴대전화로 전자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종은 영상 통화가 가능한 3G 이상전화로 월 7000원을 부담하면 무제한 사용 가능하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신춘문예의 계절… 서울신문 역대 당선자 ‘천기누설’

    신춘문예의 계절… 서울신문 역대 당선자 ‘천기누설’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왔다.신춘문예의 기능을 둘러싼 갖가지 비판에 머리로는 동의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면서도 매번 늦가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슴은 하릴없이 벌렁댄다.첫사랑의 열병처럼 신춘문예 공고를 기다리고,자식처럼 소중한 작품을 누런 봉투에 넣어 보낸다.그리고는 한달 남짓,절대 다수는 새해 벽두부터 울분과 한숨으로 또다시 불면의 밤을 지새워야 한다.그러나 이상스럽게도 문학은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 자체가 희열을 주는 마력적인 존재다.아직 늦지 않았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다음달 12일까지 소설,시,시조,평론,희곡,동화 분야의 작품을 받는다.이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들의 ‘천기누설’을 들어본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한국문단의 자양분   1950년 첫 해부터 김성한,오영수라는,장차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거목을 배출했다.소설 ‘무명로’로 당선된 김성한은 이후 ‘바비도’,‘오분간’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이해 ‘머루’로 가작을 차지한 오영수는 ‘갯마을’,‘삼호강’ 등 작품을 썼다.1979년 타계한 뒤 ‘오영수 문학상’이 제정됐다.이후 이동하(1966년),손영목(1977년),임철우(1981년),한강(1994년),한동림(1995년),하성란(1996년) 등 시대의 복판을 가로지르는 소설가의 산실로 자리매김됐다.  시도 마찬가지다.소설과 동화,평론,희곡,미술,영화 등 경계를 초월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제하(1956년)가 서울신문으로 등단했다.또 ‘겨울속에 봄이야기’로 당선된 박정만(1968년)은 ‘한수산 필화사건’의 고문 후유증으로 1988년 세상을 등졌지만,그의 시세계는 사후에 더욱 각광을 받았다.이수익(1963년),문효치(1966년),나태주(1971년),강태형(1981년),박남희(1997년) 시인도 모두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이다.이밖에 권성우(1987년),한기(1988년),하응백(1991년),김문주(2001년) 등 평단의 뉴 제너레이션으로 꼽히는 젊고 힘넘치는 평론가들을 배출했다.한국 문단의 소중한 자양분들이다.   ●‘왜,문학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선배들이 한결 같이 신춘문예의 비법은 없다고 말한다.대신 ‘문학 그 자체의 희열과 고통을 즐기라.’는 것이다.  단편소설 ‘풀’로 당선된 하성란씨는 “처음에 글을 쓰게 될 때는 기성작가의 글에서 많은 도움을 받곤 하는데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도움을 받되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독창적인 주제의식과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씨는 “심사위원을 맡을 경우 그런 기준으로 본다.”고 귀띔했다.또 하씨는 “최근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현장에 나와 열심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 많은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보기에 좋다.”고 말했다.  1997년 ‘폐차장 근처’로 시 부문에서 당선된 박남희씨는 신춘문예가 만능이 아님을 역설했다.박씨는 “등단이 모든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닌 만큼 신춘문예를 통해서 문학을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시가 좋기 때문에 시를 쓰고,도전하는 일이 좋기에 매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다보면 어느 순간 신춘문예 당선의 행운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고 충고했다.그는 “험난해보이는 관문이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에게 관대한 것이 또한 신춘문예”라고 도전자들의 의지를 북돋웠다.  최근 소설가 조세희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30주년을 맞아 헌정문집 ‘침묵과 사랑’을 책임 편집한 권성우씨는 1997년 문학평론에 당선됐다.권씨는 “신춘문예 당선이 문학적 재능의 공식적 확인으로 통하는 등식은 이미 무너졌다.”고 단언했다.그는 “가벼운 대중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 “명료하게 답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하고 섬세한 자의식을 갖추지 못했다면 나의 문학이 습관적인 끄적거림은 아닌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신력 있는 한 끝없이 작품 고쳐나갈 것”

    “4·19 직후 역사적 증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여름 숨가쁘게 ‘광장’을 썼습니다. 이제는 좀더 심미적이고 전위적 미학을 추구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죠.” 한국문학의 거목인 소설 ‘광장’(1960년)의 작가 최인훈(72)씨가 19일 자택 경기도 일산에서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나와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내년으로 등단 50주년을 맞는 그는 여전히 진지했고, 작가로서의 욕망에 충실하면서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다. 달변과 다변을 앞세운 지적 열망은 일흔이 넘은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그는 “광장은 신판이 나올 때마다 흐름에 지장이 없는 한 계속 고쳤다. 지금까지 여덟 번 개정·개작했다.”면서 “처음에는 역사에 대한 증언의 필요성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문학의 본령으로서 문학성을 보강하고픈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내 정신력이 있는 동안 단 한 글자라도 좋은 모습으로 후대에 남을 수 있도록 끝없이 고쳐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장’은 최씨가 불과 24세의 나이에 격정에 겨워 한달음에 써내려간 소설이다. 전쟁 포로로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택한 세계 전쟁사(史)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적 소재와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던 지식인 화자를 등장시킨 이 작품은 동료, 후배 문인들로부터 ‘한국 최고의 소설’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생활인으로서, 또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회한이 있었다.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최씨는 4학년 때이던 1955년 ‘운명의 장난’으로 졸업하지 못했다. 최씨는 “꼬박꼬박 학비 대주던 부모님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면서 “나 역시 이 나이 먹도록 세계관이나 종교가 없어서 후회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런 모습으로 부모에게 고뇌를 안긴 점이 후회된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졸업장이 없어 또 한번 곡절을 겪은 뒤 1977년 서울예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 인간적으로 구원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이런 안정적인 모습을 부모님도 느끼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현재 미국에 있는 그의 아버지(96)는 2004년 한국을 찾았을 때 아들이 ‘자랑스러운 서울대 법대인’으로 뽑힌 현장을 보고 가셨단다. 1980년 모두 12권으로 ‘최인훈 전집’을 낸 ‘문학과 지성사’는 그의 등단 반세기를 기념해 최근작인 ‘바다의 편지’(2003년),‘화두’(1994년)와 산문집 ‘길에 관한 명상’(1989년) 등을 묶어 15권으로 신판 ‘최인훈 전집’을 발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단 1차분 5권을 냈고, 내년 상반기 완간한다. 간담회 말미에 노(老)작가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독자들에게 ‘퀴즈’를 하나 던졌다. “이번에 전집 출간을 준비하며 딱 한 단어를 고쳤어요.(무엇이냐고 기자들이 내처 물었다.) 미리 말하면 재미없죠. 심심풀이로 비교해서 읽으며 찾아보세요. 한 부라도 더 팔아야 하잖아요?”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농부의 삶은 역사가 됐다

    농부의 삶은 역사가 됐다

     평생을 땅과 함께 한 농투성이 김씨의 삶은 그렇게 역사가 됐다.  해질녘 탁배기 한 사발 걸친 뒤 흥얼거리며 끌고왔던 지친 손수레도,그 위에 실린 녹슨 쇠스랑,이빠진 낫도,딸아이의 부러지고 닳은 30년 전 18색 ‘왕자 크레파스’도,그가 드나든 노인회관의 꾹꾹 눌러쓴 금전출납부도 모두 힘겨운 역사를 구성하는 한 조각들로 남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만들어온 땅과 삶,호남평야 농부 김씨의 한평생’ 특별전이 19일 개막됐다.일제 강점기,바다를 메워 논을 만든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으로 이주한 뒤 평생을 살아온 평범한 시골 농부의 삶을 일대기로 재구성해서 담아냈다.현대사를 힘겹게 헤쳐온 민초들은 물론,세상 모든 부모들의 고단했던 삶에 바치는 자식 세대의 헌정(獻呈)이다.‘호남평야 농부 김씨’는 지금도 현지에 살고 있는 김성문(83)씨가 모델이 됐다.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전시실로 들어서면 전북 김제시 광활면으로 가는 고속도로 영상이 입체감 있게 펼쳐진다.광활면 너른 들녘으로 떠나는 여행이자,부모의 지난 삶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그리곤 곧바로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그러나 억척스럽게 논을 일구고 삶을 일궈낸 ‘농부 김씨’들의 땀과 흙냄새가 진하게 밴 물건들과 만나게 된다. 호남평야의 농부들은 1920,30년대 한반도를 식량전초기지화하기 위한 동진농업주식회사의 간척지 사업에 동원됐다.일제 수탈의 역사와 직접적인 첫 만남이었다.그렇게 만들어진 540만평(1800정보)의 농토에서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으로 일했지만 소출의 절반은 빼앗겼고 비료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것도 없었다.  그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제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백발 성성해진 80대 노인들은 당시 ‘진봉공립국민학교’를 다니며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고,졸업명부의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을 살짝 지우고 원래 성씨를 쓰는 나름대로의 ‘저항’도 했다.  이들은 1952년 방조제가 무너져 마을이 온통 침수됐을 때는 당시 250억원이 들어가는 보수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방치해버린 방조제를 스스로 다시 쌓는 억척스러움이 있었다.  또한 1970년대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농업용수를 식수로 받아써야 했다.그러다보니 콜레라로 희생되는 이들이 속출하기도 했다.그야말로 ‘밤새 안녕’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겨워도 시대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가족이다.  혼례식에 썼던 투박하게 깎은 기러기,친정 어머니의 혼수품인 버선본,8남매를 기르느라 힘겨운 며느리 생각에 전주에서 2시간을 짊어지고 왔다는 시아버지의 재봉틀 등이 전시돼 있다.또 아이들 세 발 자전거,때만 되면 늘 한바탕 소동을 벌이곤했던 초등학교의 채변봉투,생활통신표,미술에 소질 있다며 늘 자랑스레 간직해온 딸의 그림 등은 부모의 가없는 사랑을 짐작하게 해준다.  전시장 곳곳을 눈으로 보고,귀로 듣다 보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다.부모와 자식이 함께 둘러볼 만하다.무료. 다음달 22일까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임란전후 소실 경복궁 건물터 발굴

    경복궁에서 조선 태조시대 처음 궁궐을 세울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2개의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동랑과 서랑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8일 서울 세종로 경복궁 광화문권역 발굴현장에서 현장 설명회를 열고 동랑 및 서랑 터와 함께 광화문에서 동십자각을 잇는 궁궐의 담장( 宮牆·궁장)과 고종 때 지은 용성문과 협생문의 기초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동랑과 서랑은 각각 정면 12칸, 측면 3칸에 세로 50m, 가로 11.2m의 동서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 대형건물이다. 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상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34년) 기록에 ‘홍례문(흥례문의 옛 이름) 밖 동, 서랑을 의정부, 육조, 명사(名司)가 분합하여 팔직방과 대조(待朝)하는 처소로 정한다.’고 적혀 있어 용도를 짐작하게 한다. 조사단은 “이 터에서는 조선 전기에 사용된 분청사기편과 죽절(竹節)굽 백자편이 나왔을 뿐 18~19세기에 유행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지 않았다.”면서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다가 임진왜란(1592~1598년)을 전후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는 죽음을 초월한다”

    “시는 죽음을 초월한다”

    노(老)시인은 50년 이상 시를 썼다. 이제는 기력이 떨어져 독서의 즐거움을 점차 잃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직접 찾아가 시법(詩法)을 배우거나 ‘한반도의 비극에 대한 시극(詩劇)을 쓰겠다.’는 열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노시인은 또한 후배들에게는 수도하는 자세로 시의 심층에 길을 내기를 바라고, 시쓰기를 신앙과 같이 여기라는 훈훈한 조언을 던지는 넉넉한 어른이다. 하지만 평론가들에 대해서는 ‘이 땅에 평론가가 있느냐.’고 힐난하면서 시의 뿌리를 읽어내기를, 감동이 있을 때만 말하기를, 무상의 희열이 있을 때만 쓰기를 툭 내던지듯 부탁하는 냉랭함도 내비쳤다. 문학세계사가 펴내는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겨울호가 한국현대시 100년을 맞아 등단 이후 50년 이상의 시력(詩歷)을 갖고 있는 원로 시인들에게 노년의 시와 삶을 물었다. 김광림(79), 김규동(83), 김남조(81), 김윤성(82), 김종길(82), 문덕수(80), 박희진(77), 성찬경(78), 허만하(76), 황금찬(90) 등 10명이 참여했다. 이들에게는 건강관리에서부터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까지 12개의 질문이 던져졌다. 김광림 시인은 시인으로 가장 후회스러울 때가 ‘시작(詩作)에 보수가 없을 때’, 김윤성 시인은 ‘결혼을 한 뒤 먹고 사는 일이 시를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느껴졌을 때’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김규동 시인은 생활고에 못이겨 ‘몇 푼 안되는 원고료 때문에 마음에 없는 글을 여기저기 쓴 일’에 대한 후회를 거둬들이지 못한다. 2008년의 젊은 시인들이 고스란히 겪고 있는 문제가 지난 50년 동안 별다르게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식에게 얹혀사는 느낌이 힘들고, 보행이 어려워진 ‘보통 노인’의 모습이지만 ‘시와 시론에서 뭣이 좀 보이는 것 같다.(문덕수)’고 나이들수록 끝없는 정진을 보여주는가하면 ‘시는 죽음을 초월한다.(허만하)’거나 ‘시작도 가치를 창출하는 일(김종길)’이라며 시인으로서 자부심은 더욱 깊어간다. 도통(道通)의 경지다. 재미있는 점은 늘 ‘오독(誤讀)과 편견’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학평론가에 대해서는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도식적인 괄호에 넣어 고정시키지 말라.(김남조)’,‘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쓰지 말라.(박희진)’,‘시를 정독해달라.(성찬경)’ 등의 반응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다. 가장 뜨끔한 대목은 아마도 ‘할 말이 없다.(문덕수)’는 냉소가 아니었을까. 시인에게 죽음은 무엇일까. 기독교 신자인 김남조 시인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따라 영혼불멸을 믿고 있으며 허무감과 손잡진 않겠다.’고 했고, 가톨릭 신자인 성찬경 시인도 ‘이 세상과 존재의 얼개가 갈수록 신비스럽다는 점을 실감하기 때문에 내세의 존재를 100퍼센트 믿고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김규동 시인은 ‘죄를 벗은 다음에는 새나 나비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전체적으로 끝없는 잠의 세계일 것 같다. 그러므로 조용히 기다려보는 수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조선 전기 경복궁 외곽 건물터 발굴...

    경복궁에서 조선 태조시대 처음 궁궐을 세울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2개의 대형 건물터가 발견됐다.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동랑과 서랑으로 추정되며,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 경복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8일 서울 세종로 경복궁 광화문권역 발굴현장에서 현장 설명회를 열고 동랑 및 서랑 터와 함께 광화문에서 동십자각을 잇는 궁궐의 담장( 宮牆·궁장)과 고종 때 지은 용성문과 협생문의 기초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동랑과 서랑은 각각 정면 12칸,측면 3칸에 세로 50m,가로 11.2m의 동서로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 대형건물이다.초석과 기단 등 건물의 기초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상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6년(1434년) 기록에 ‘홍례문(흥례문의 옛 이름) 밖 동,서랑을 의정부,육조,명사(名司)가 분합하여 팔직방과 대조(待朝)하는 처소로 정한다.’고 적혀있어 용도를 짐작케한다. 조사단은 “이 터에서는 조선 전기에 사용된 분청사기편과 죽절(竹節)굽 백자편이 나왔을 뿐 18~19세기에 유행한 청화백자편이 출토되지 않았다.”면서 “조선 전기에 만들어졌다가 임진왜란(1592~1598년)을 전후해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맹식 조사단장은 “이번 발굴 조사에서 용성문,협생문,광화문 동편 궁장 등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고종 때 지어진 용성문과 협생문이 있던 자리에 동랑과 서랑으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있었다는 것은 경복궁이 고종시대 중건된 이후보다 태조시대 초창 당시 좀 더 화려하고 규모도 컸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글 / 서울신문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바마 인수위 유일한 한국계 오드리 최

    버락 오바마 새 미국 행정부 정권 인수위원회에 한국계로는 유일하게 오드리 최(40·최경옥)씨가 포함됐다. 오바마 당선인측이 지난 14일 발표한 대통령직 인수위 내 ‘정부점검팀’에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실장을 맡았던 한국인 2세 최씨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씨는 클린턴 정부 시절의 전공을 살려 이번 오바마 인수위에서도 ‘대통령팀 행정사무실’ 내의 경제자문위원회 팀장을 맡게 됐다. 그는 클린턴 재임 당시 대통령 연례 경제보고서를 발표할 때마다 경제자문위의 마틴 데일리 위원장과 함께 배석해 이목을 끌었다.2000년 월간지 ‘워싱터니언(Washingtonian)’에 ‘주목해야 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한 최씨는 백악관 근무에서 쌓은 풍부한 행정경험, 월스트리트 저널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닦은 경제 식견 및 국제 감각, 모건 스탠리에서 얻은 금융지식 등이 높이 평가돼 인수위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백악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 백악관 특별연구원(Fellow)에 선발되면서부터다. 이 프로그램은 정부 외부의 각 분야에서 30대 ‘꿈나무’ 10여 명을 선발, 1년 동안 미 정부의 정책수립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제도이다. 당시 리처드 홀부르크 유엔대사 보좌관이었던 남편 로버트 오어(46)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이후 상무부의 연방통신위원회에서 정보통신법 수립과정에 참여했으며 1998년 5월부터는 앨 고어 부통령을 보좌했다.1999년 4월엔 경제자문위로 옮겨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실장이라는 경력도 쌓았다. 그의 어머니 최숙렬(69)씨는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양출신인 어머니는 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요코이야기’를 읽고 충격을 받아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Year of Impossible Goodbyes)’이라는 소설을 집필,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가부장제에 짓눌린 여성 그렸죠”

    “그 동안 아랍권과 한국의 문학 교류는 극히 적었습니다. 경제, 정치분야 교류만이 아닌 양쪽 문인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아랍권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성 작가인 이집트의 살와 바크르(59)가 자신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인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김능우 옮김, 아시아 펴냄)’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전주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참석 이후 1년 만이다. 그는 18일 오전 한국외국어대 교수회관에서 열리는 ‘제1회 한국-아랍 문학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17일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바크르는 “소외받는 여성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국과 아랍의 문인들이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남성들 역시 여성의 적이 아닌, 가부장제의 또다른 피해자인 만큼 함께 해방되어야 할 대상이자 주체”라고 폭넓은 인간 소외를 말했다. ‘황금마차’는 아랍의 가부장적 문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종의 르포 소설이자 페미니즘 소설. 교육과 경제, 복지는 물론, 일상 속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난 이집트 여성들의 적나라한 삶을, 이집트 방언 등 생생한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며 그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자매애의 중요성’을 곳곳에 흩뿌려놓았다. 바크르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아랍권의 핵심적인 금기와 맞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종교, 정치, 그리고 성(性·gender)….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참여하다 구속된 적이 있는 바크르는 적지 않은 탄압을 받아야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버려진 ‘타이어 휠’로 용 만든 예술가

    고물로 버려진 타이어 휠이 600만원 상당의 ‘용’(Dragon)으로 변신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일간지 텔레그래프 온라인판은 “남이 버린 휠캡을 사용해 다양한 동물 조형을 만드는 예술가가 있다.”고 16일 보도했다. 프톨레미 엘링턴(Ptolemy Elrington, 43)은 버려진 휠캡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그가 휠캡으로 만든 작품 중 가장 비싼 것은 길이 10m짜리 ‘용’. 600만원에 팔린 이 작품은 한 달간 휠캡 200개를 사용해 만들었다. 엘링턴은 도로 옆에 버려진 휠캡을 보고 물고기를 떠올린 후 다양한 해양 생물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품 하나당 소요되는 휠캡은 10~200개로 BMW나 벤츠 같은 차에서 나온 게 더 잘 구부러져 재료로 사용하기 좋다고. 엘링턴은 “누가 버린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진 혹은 직접 본 것과 최대한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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