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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웬일이래? 해피엔딩 둔갑시킨 영화 ‘파이트 클럽‘ 원상 복귀

    중국이 웬일이래? 해피엔딩 둔갑시킨 영화 ‘파이트 클럽‘ 원상 복귀

    중국 텐센트 비디오에서 결말이 완전히 다르게 편집됐던 할리우드 영화 ‘파이트 클럽’의 결말이 복원돼 이례적이란 반응을 낳고 있다. 7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현재 이 동영상 라이브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파이트 클럽’은 삭제됐던 결말이 원상 회복돼 서비스되고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원래 영화에서 약 1분 정도만 잘려 나간 상태로 일부 알몸이 노출된 장면이 여전히 잘린 채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정도라면 중국에서는 으레 있는 일이다. 워낙 오래 전 영화이고, 많은 사람들이 봤을테니 스포일러의 위험을 감수하겠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치밀하게 복선을 짜놓아 결말을 알더라도 위대한 이 걸작을 감상하는 재미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앞서 텐센트 비디오가 지난달 컬트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는 결말의 결정적인 대목이 5분 잘려나가고 전체적으로 11~12분을 덜어낸 상태였다.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의 내레이션으로 얘기를 풀어나가는데 브래드 피트가 그의 아바타(alter ego)라 할 수 있는 타일러 더든을 연기한다. 원래는 자동차 리콜 심사관이었던 노튼이 상상으로 만들어냈지만 더 강해진 더든을 살해하고 폭탄을 터뜨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카드 회사 등을 날려버리며 끝난다. 체제 전복적인 메시지가 강하다. 그런데 텐센트 비디오는 결말 가운데 노튼이 총을 쏘는 장면과 건물 폭발 장면 등을 삭제했고, 대신 결말을 ‘긍정적으로 바꾼’ 설명이 영어 자막으로 달렸다. 당국이 음모를 미리 적발해 모든 범죄자를 검거하고 더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는 내용으로 둔갑했다. 이에 중국 누리꾼들은 완전히 다른 결말을 창조해냈다며 조롱을 섞어 비판했다. 1996년 원작 소설을 집필한 척 팔라니욱은 “슈퍼 원더풀! 중국에서는 모두가 해피 엔딩을 맞네!”라고 비웃는 트윗을 날렸다. 사실 이미 많은 중국인들이 해적판으로 영화 줄거리를 아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검열을 한 것이었다. 팔라니욱은 서브스택에 올린 글을 통해선 “참 대단들해. 나도 몰랑! 사필귀정(Justice always wins). 끝”이라고 고사성어를 동원해 비웃는 정성을 기울였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중국의 검열이야말로 이 영화가 묘사하려 했던 디스토피아라고 힐난했다. SCMP는 “중국에서 정부의 검열을 통과하느라 디즈니나 HBO 등 할리우드 영화사들의 작품이 일부 삭제된 채 개봉된 역사는 오래 됐다”며 “‘파이트 클럽’의 결말이 복원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달 말 ‘파이트 클럽’의 결말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전 세계 언론을 장식하자 텐센트는 중국 검열 논쟁의 한복판으로 소환됐다”고 덧붙였다. 텐센트는 이번 일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앞서 2005년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로드 오브 워’도 ‘파이트 클럽’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이 영화는 중국에서 후반부가 30분가량 잘려 나간 채 ‘긍정적인 결말’이 영어 자막으로 대체됐다고 SCMP는 전했다. 지난해 미국 인기 드라마 ‘프렌즈 재결합 스페셜’이 중국 검열을 통과하는 과정에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등장하는 장면이 잘려나갔다. 같은 해 6월 티베트 독립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는 이유 만으로 그녀의 노래 몇 곡도 방송 금지 처분을 받았다.
  •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혼불’ 7년 2개월 월간지 최장 연재총 10권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작가 “조상의 삶이 수놓여진 글” 생이 끝날 때까지 집필에만 몰두 어릴 때 지낸 전주에 문학관 건립호남 노래·풍속 등 생생하게 풀어힘든 서민의 생활 아름답게 표현“글 속 문장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밤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 최명희 ‘혼불’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최명희길을 걷다 중앙초등학교 옆의 작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 홀리듯 앞으로 향하면 부채문화관이 나온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최명희 문학관’이 나타난다. 예스러운 기와집이야 한옥마을 전체가 다 그러하니 크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 앞에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치게 된다. 문학관의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데 아마도 그 자리가 옆집에서 부쳐 온 부채의 바람이 드나드는 바람목이지 싶다. 바람을 따라 찾아온 누군가의 혼백 아니 도깨비불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길목이어서인지 그곳은 늘 생과 사가 공존하고, 먼저 간 사람의 마음까지도 매만져 볼 수 있는 자리다. 부채의 바람결에 실려 있는 최명희의 문장들 덕분이다. 남원의 혼불 문학관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 문학관을 찾은 것은 바로 그 ‘바람’과 ‘푸른 불’ 때문이었다. 문학관이 표방한 ‘작가가 다시 살러 온 집’은 그리하여 누구라도 계속 머물 것만 같고, 떠났던 이가 돌아와 여장을 풀며 몸과 마음을 바람에 말리는 장소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신의 음성, 차마 못다 한 말들이 부채가 일으킨 공명을 타고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눈 밝은 이들이 찾아드는 것이다.‘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봤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서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종발만 한데, 빛살 없는 푸른색이며,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중략) 이것이 미신이냐 실화냐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최명희 ‘나는 왜 ‘혼불’을 쓰는가’ 소설가 최명희는 1947년 전북 전주시 화원동에서 출생했다.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사범병설중학교, 기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전주 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중, 보성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 제1부가 당선됐다. 교직을 그만두고 혼불 창작에만 매진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부터 5부까지 연재했다. 이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만 7년 2개월)다. 1990년에 혼불 제1부와 2부를 발간했으며 1996년에 혼불 제1부부터 5부까지 총 10권(한길사)을 발간했다. 이는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이다.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혼불’ 작가 후기 최명희의 주요 작품으로는 ‘몌별’, ‘만종’, ‘정옥이’, ‘주소’와 마지막으로 ‘혼불’이 있다. 혼불은 10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미완성된 작품이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기 직전까지 혼불의 제5부를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가 된 이후 생이 끝날 때까지 ‘혼불’을 구상하고 집필에 몰두했던 최명희는 1998년에 난소암의 발병으로 51세에 사망했다. ‘혼불’ 제5부 완간 4개월을 앞두고 암이 발병했지만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하다 1996년 12월에 혼불의 마지막 부분을 썼다. 그가 죽었으니 제5부가 마지막일 뿐, 그가 살아 있었다면 혼불은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책이 출간되자 일부에서는 ‘완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은 아직 완간이 아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해방 공간 이후 6.25, 4.19, 5.16 등 가까운 현대사까지 이어져 한국사의 격동기를 그리게 될 것”이라 말했다. 우리의 풍속을 잃지 않으면서도 격변하는 사회상과 민중의 삶을 잘 그려 냈다는 평에 대하여 작가는 생전에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글은 제가 쓴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아득한 개국의 시원에 웅녀 할머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이 땅의 조상들의 말 없는 한숨, 괴로움, 아픔, 그들이 나서 살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저절로 와서 한 자씩 수놓아져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소설은 이미 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거대한 강물로 저를 붙잡고 있어서 작중의 인물들이 토해 내는 많은 이야기를 주워 담는 것만이 제 역할이었어요.”(‘필’ 1997년 1월호)라고 소회를 밝혔다. 만 17년을 한 작품에 쏟는 열정, 그 때문에 그가 일찍 혼불이 돼 날아갔을까.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장례는 전주시 사회장으로 5일 동안 치러졌다. 전주시청 앞에서 영결식이 열렸고, 고인의 생가와 모교인 기전여고를 거친 시가지 운구 행렬에 이어 전북대에서 노제를 지냈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앞으로 써야 할 글감이 130여개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저쪽에서도 끊임없이 쓰고 있을까. ‘혼불’을 일컬어 ‘한국 혼 일깨우는 이 땅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라고들 한다. 소설 속에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잘 버무리며 생의 질곡과 역사의 너울을 한없이 순정하고도 곡진한 우리말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사, 풍속사, 의례와 속신들을 유장하게 풀어낸 소설의 문장들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라 일컬어진다.또한 ‘혼불’은 호남지방의 관혼상제, 노래, 음식, 세시풍속 등을 생생하게 표현해 내서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름답게’가 아닐까. 최명희는 그 유장하고 지리멸렬했던 한국사와 생활사 그리고 사람살이를 어떻게든 ‘아름답게’ 표현해 내려 평생을 바쳤던 작가다. 단재상과 세종문화상, 전북 예향대상과 여성동아대상, 호암상 예술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육관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1997년에 독자들이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혼불기념사업회가 발족됐고, 이듬해부터 혼불문학제가 개최됐다. ‘혼불’의 배경 지역인 남원시는 2004년 10월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혼불 문학관을 개관했다. 전주시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완산구 풍남동에 최명희 문학관을 세웠다. 최명희 문학관은 2006년 4월에 전주한옥마을에 터를 잡았다. 작가 최명희의 녹록지 않았던 삶과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친필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들, 생전 인터뷰와 문학 강연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여러 작품에서 추려 낸 글이 새겨진 각종 패널들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전시관인 독락재가 있고 지하는 문학강연장 및 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로 꾸며졌다. 한옥마을의 최명희길이 끝나 가는 즈음에 생가터가 있다. 자신의 고향, 생가터에 관하여 최명희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동네입니다. (중략) 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마음에 꽃밭 하나, 활활 타오르는 문장의 불 하나를 지니고 살았던 사람. 그리하여 그 불꽃과 화원을 함께 하늘로 태워 보낸 사람. 우리 곁에는 언제나 ‘푸른 불꽃’으로 남은 사람의 마지막 거처, 최명희 문학관이다. 부채의 바람을 탄 문장들이 이끄는 자리로 오늘의 당신을 초대한다. 바람이 푸른 불꽃을 당신의 거처에까지 가져가 준다면, 그대여 그 뒤를 따라오시라. 소설가 이은선
  • [씨줄날줄] 사형수/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형수/박홍환 논설위원

    사형이 확정된 재소자는 교도소에서 사형수가 아닌 ‘최고수’로 불린다. 인간에게 부과할 수 있는 최고 엄한 형벌인 사형을 언도받은 수감자라는 뜻에서다. 빨간색 수인번호 표찰은 사형수들의 상징이다. 교도관이나 일반 재소자들은 어지간해서는 사형수들의 일탈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범행의 잔혹성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공포와 안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사형수들의 극단적 삶에 대한 배려심도 일정 부분 작용한다는 것이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동료 재소자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어 교도관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지난해 1월 60대 사형수 한 명이 암 투병 중 숨진 사실이 최근 뒤늦게 확인됐다고 한다. 1995년 여성 3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사형이 확정된 임모씨로 그는 25년간 하루하루 “언제 불려 나갈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사형 집행을 기다리다 형장이 아닌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임씨 사망에 앞서 2019년 7월에는 사형수 이모씨가 병사하는 등 1998년 이후 병사한 사형수가 임씨와 이씨를 비롯해 모두 7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일 엄습하는 형장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형수도 5명이나 된다.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모두 55명.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 지존파 조직원 6명을 비롯해 사형수 23명이 한꺼번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후 25년째 사형 집행이 중단된 상태다. 법적으로 사형제도는 유지하면서도 집행을 하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실효성 상실을 이유로 판사들의 사형 선고가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사형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사형제도 존폐 문제가 계속해서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잔혹 범죄가 재발할 때마다 사형제도 유지 및 강력한 집행 여론이 비등해지지만 사형제도는 조만간 또다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시간이 갈수록 위헌 판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1996년 제1차 심리 때는 7대2로 합헌 의견이 강했지만 2010년에는 5대4로 비슷했다. 2019년 2월 접수된 세 번째 헌법소원에서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27년간 車 5000대 팔아 ‘판매거장’에

    27년간 車 5000대 팔아 ‘판매거장’에

    김주선(48) 현대자동차 영업부장이 ‘판매거장’에 3일 선정됐다. 현대자동차는 영업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판매 명예 포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판매장인’(2000대)부터 ‘판매명장’(3000대), ‘판매명인’(4000대)에 이어 5000대 이상 판매했을 때 주어지는 칭호인 ‘판매거장’은 자동차 세일즈맨에게는 최고의 영예다. 김 부장 이전 판매거장에 오른 사람은 14명밖에 없었다. 김 부장은 1996년 입사한 뒤 27년 만에 5000대 판매를 돌파하며 이날 열다섯 번째 판매거장에 등극했다. 김 부장은 “저를 믿고 찾아 주시는 고객분들의 시간을 가치 있게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면서 “상담 시 많은 대화로 고객의 요구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하며 차량을 인도한 뒤에도 끝까지 책임진다”며 판매 비결을 소개했다. 이어 “급속히 변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에 앞서 지난해에는 김기양 대전지점 영업부장과 곽경록 수원서부지점 영업부장이 각각 열세 번째, 열네 번째 판매거장에 오른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앞으로도 다양한 포상 제도를 운영해 영업 현장의 동기 부여 및 건강한 경쟁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연습하다 또 다친 프리쉐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후회는 없어요”

    연습하다 또 다친 프리쉐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 후회는 없어요”

    한참을 기다려도 에일린 프리쉐(30·경기주택도시공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찌 된 사연인가 파악하자니 대한루지경기연맹 관계자로부터 프리쉐가 훈련 도중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긴 기다림 끝에 나타난 프리쉐는 손에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프리쉐가 3일 베이징동계올림픽 루지가 열리는 옌칭 슬라이딩 센터에서 남긴 기록은 1차 1분7초448, 2차 1분4초996이다. 1, 2차 모두 꼴찌다. 1차에는 12번 코스에서 팔과 다리를, 2차에는 13번 코스에서 손가락을 다친 탓이다. 루지 선수들은 옌칭 슬라이딩 센터의 12번, 13번 코스에서 헤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프리쉐 역시 같은 코스에서 고전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닥치는 부상은 누구에게나 안타깝지만 프리쉐는 부상이 유난히 더 조심스러운 선수다. 2019년 손과 꼬리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으로 지난 3년간 재활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지 6년째지만 선수 생활의 절반을 날린 프리쉐에게 지난 3년은 지금 생각해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프리쉐는 “너무 심하진 않아서 괜찮을 것 같다. 선수촌에 돌아가서 다시 체크해보겠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딸이 다칠까 늘 걱정하는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겠단다.부상을 딛고 출전하는 올림픽인 만큼 프리쉐는 참가 자체로도 의미가 남다른 선수다. 프리쉐가 대회에 오기 전 여러 언론을 통해 밝혔던 목표도 15위가 기준이다. 평창올림픽에서 8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성적이지만 이번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결심했기에 무엇보다 후회하지 않는 경기를 하는 것이 목표다. 프리쉐는 “작년 여름까지 많이 아파서 훈련을 잘 못했다”면서 “부상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아직도 손하고 꼬리뼈에 조금 문제가 있어서 이번 올림픽이 내 마지막 무대”라고 밝혔다. 부상 때문에 원하는 만큼 훈련을 못 한 점이 아쉽지만 프리쉐는 지금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올림픽을 치르는 것이 목표다. 프리쉐는 “모든 운동선수가 좋은 모습으로 끝내고 싶어한다. 나도 운동선수로서 마지막이니까 정말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다”면서 “후회는 없고, 지금이 그만두기에 적당한 시점인 것 같다. 더 하게 되면 오히려 후회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를 무사히 마치면 어떨 것 같느냐’ 묻자 프리쉐는 “엄청 많이 행복할 것”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정말로 화이팅하겠다”고 다짐했다.  평창올림픽을 위해 귀화했던 선수 대부분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간 것과 달리 프리쉐는 한국에 남았을 정도로 한국 사랑이 깊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네일 아트도 태극기로 했을 정도다.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할 프리쉐의 다음 계획은 독일이 아닌 다른 유럽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청각학(audiology)이지만 아직 뭘 공부할지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공부가 끝나면 다시 한국에 돌아올 예정이다. 프리쉐는 “포털 사이트에 남겨주는 코멘트를 읽으면 정말 행복하고 힘이 난다”면서 “한국에서 루지가 비인기 스포츠인데 저뿐만 아니라 루지팀을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웃었다. 프리쉐는 “올림픽이 끝나더라도 루지팀을 응원해달라”고 당부하며 후회 없는 마지막 무대를 만들기 위해 힘차게 걸어갔다.
  • 27년간 5000대…현대차 김주선 영업부장, 15번째 ‘판매거장’에

    27년간 5000대…현대차 김주선 영업부장, 15번째 ‘판매거장’에

    김주선(48) 현대자동차 영업부장이 ‘판매거장’에 3일 선정됐다. 현대자동차는 영업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판매 명예 포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판매장인’(2000대)부터 ‘판매명장’(3000대), ‘판매명인’(4000대)에 이어 5000대 이상 판매했을 때 주어지는 칭호인 ‘판매거장’은 자동차 세일즈맨에게는 최고의 영예다. 김 부장 이전 판매거장에 오른 사람은 14명밖에 없었다. 김 부장은 1996년 입사한 뒤 27년 만에 5000대 판매를 돌파하며 이날 15번째 판매거장에 등극했다. 김 부장은 “저를 믿고 찾아주시는 고객분들의 시간을 가치 있게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면서 “상담 시 많은 대화로 고객의 요구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하며 차량을 인도한 뒤에도 끝까지 책임진다”며 판매 비결을 소개했다. 이어 “급속히 변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자기개발로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에 앞서 지난해에는 김기양 대전지점 영업부장과 곽경록 수원서부지점 영업부장이 각각 13번째, 14번째 판매거장에 오른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앞으로도 다양한 포상 제도를 운영해 영업 현장의 동기 부여 및 건강한 경쟁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단독] 형 집행 없는 사형수 12번째 사망… 사형제 존속 논의는 제자리

    [단독] 형 집행 없는 사형수 12번째 사망… 사형제 존속 논의는 제자리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인 한국에서 지난해 ‘죽암사 살인사건’의 범인인 60대 사형수가 암에 걸려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병사나 자살 등으로 생을 마감한 것은 이번이 12번째로 남은 55명의 사형수도 자연사할 가능성이 커 사형제 존속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사형수 임모(사망 당시 67세)씨는 지난해 1월 29일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2019년 7월 사형수 이모씨가 옥중 사망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임씨는 1995년 10월 새벽에 귀가 중이던 40대 여성을 헤어진 연인으로 착각해 살해하고 충남 공주(현재 세종시) 죽암사에 숨어 지내다 60대 여성 신자 두 명까지 살해했다. 임씨는 1996년 사형이 확정됐지만 25년간 집행이 되지 않아 병사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뒤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것도 2015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세 모녀 살인사건’을 저지른 김태현에 대해 지난달 항소심 재판부는 “사형은 형벌로서 실효성을 상실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사형을 법원이 선고하지 않고 정부도 집행하지 않으면서 사형수 숫자는 계속 줄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 사망한 임씨까지 포함해 병사한 사형수는 7명이다. 사형수 5명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대로면 한국은 사형제도는 존재하되 사형수는 ‘0명’인 나라가 된다. 사형제 폐지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에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10년 “국민의 생명권 보호와 정의실현 등 사회를 보호한다는 공익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익보다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며 사형제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1996년에는 7대2, 2010년엔 5대4로 사형제에 대한 위헌 판단은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 2월에는 세 번째 사형제 헌법소원이 접수돼 심리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논란 탓에 이번 대선에서도 사형제 존속은 본격 논의되지 않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경선후보가 “흉악범 사형 집행”을 주장한 것이 전부다.
  • [단독] ‘죽암사 살인사건’ 사형수 암으로 사망…25년째 사형 집행無

    [단독] ‘죽암사 살인사건’ 사형수 암으로 사망…25년째 사형 집행無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인 한국에서 지난해 ‘죽암사 살인사건’의 범인인 60대 사형수가 암에 걸려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병사나 자살 등으로 생을 마감한 것은 이번이 12번째로 남은 55명의 사형수도 자연사할 가능성이 커 사형제 존속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사형수 임모(사망 당시 67세)씨가 지난해 1월 29일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2019년 7월 사형수 이모씨가 옥중 사망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임씨는 1995년 10월 새벽에 귀가 중이던 40대 여성을 자신과 헤어진 연인으로 착각해 살해했고 이후 충남 공주(현재 세종시)에 위치한 죽암사에 숨어 지내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60대 여성 신자 두 명을 추가 살해했다. 2003년에는 주변 재소자에게 “내가 경기 화성에서 아줌마를 죽였다. 한두 명 죽인 게 아니다”라고 말한 게 빌미가 돼 1986~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다.임씨는 1996년 사형이 확정됐지만 병사하기 전까지 25년간 집행을 피했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뒤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것도 2015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세모녀 살인사건’을 저지른 김태현씨에 대해 지난달 항소심 재판부는 “사형은 형벌로서 실효성을 상실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하기도 했다. 법원에서 사형 선고 자체도 이뤄지지 않고 정부 역시 사형 집행에 나서지 않으면서 옥중에서 사망하는 사형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 사망한 임씨까지 포함해 병사한 사형수는 7명이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형수는 5명이다.법조계 관계자는 “사형수도 수감 중에 질병이 발생하면 다른 재소자와 똑같이 병원에서 충분한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다만 사형 집행이 중단된 지 25년쯤 됐기 때문에 고령인 사형수 중에 자연사하는 이들이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형제 폐지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치적 논란이 큰 이슈인 탓에 이번 대선에서도 사형제 존속 문제는 본격 논의되지 않고 있다. 경선 당시 홍준표 국민의힘 경선후보가 “흉악범 사형 집행”을 주장한 것이 전부다.  
  • ‘위안부 망언’ 日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지사 사망

    ‘위안부 망언’ 日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지사 사망

    일본 극우 보수정치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사진) 전 도쿄도 지사가 1일 사망했다. 89세.고베 출신인 그는 1956년 히토쓰바시대학 재학 중에 발표한 소설 ‘태양의 계절’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집필 활동 중인 1968년 참의원(국회 상원) 선거에서 자민당 의원으로 당선해 정계에 진출한 그는 이후 4년 만에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변신해 통산 9선 관록을 쌓았다. 일본 극우 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이후 환경청 장관과 운수 대신(교통부 장관 격) 등을 거쳐 자민당의 범파벌 정책집단인 ‘세이란카이’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1999년에는 도쿄도 지사에 도전해 13여 년 간 지사를 지냈다. 그는 재임 중 올림픽 유치 활동을 펼쳤다. 또 2012년 4월 방미 중 도쿄도 차원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구입 의향을 밝혀 중일 간 갈등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인종과 성 차별적 발언을 계속하고 일본의 재무장 등 보수층을 자극하는 논리를 펼치는 수법으로 일본의 보수우경화를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북한 미사일 발사 등 대북 강경론이 대두할 때는 일본 핵무장을 촉구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펼쳤다. 2004년 4월에는 “재일 외국인의 흉악범죄가 계속돼 지진 발생 시 소요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면서 자위대 출동 필요성을 강조하고 불법 입국 외국인 등을 ‘제3국인’으로 지칭해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2012년 10월 4선 임기 중 지사직을 내놓고 같은 해 11월 ‘태양의 당’을 창당해 당시 오사카 시장이던 하시모토 도오루 일본유신회 대표와 손잡고 중의원 선거를 통해 국정에 복귀했다. 그러나 2년 후인 2014년 12월 중의원 선거 비례대표로 낙선하며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수많은 망언을 쏟아냈다. 2013년 6월 도쿄 거리연설에서 “위안부를 알선한 것은 상인들인데 국가가 했다고 한 것이 고노 담화”라고 주장했고, 2014년 3월 기자회견 때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가 자위(자국 방어)를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한편 그는 활발한 집필 활동으로 계속해서 화제를 모았다. 1995년 공동집필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미일 관계에 파문을 던졌으며, 친동생인 배우 이시하라 유지로를 그린 1996년 ‘동생’은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은퇴 후인 2016년에는 자신이 통렬하게 비판하던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전 총리 생애를 일인칭으로 기술한 작품 ‘천재’를 출간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놨다.
  • 굽은 등, 수술 후 펴질 줄 알았는데… 이봉주는 그래도 웃었다

    굽은 등, 수술 후 펴질 줄 알았는데… 이봉주는 그래도 웃었다

    “인생과 마라톤 공통점은 둘 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뛰는 경우도 있고 안 좋은 상태에서 뛰는 경우도 있지만 몸이 좋든 나쁘든 끝까지 뛰어 완주해야 한다.” 희소병인 근육긴장 이상증을 앓고 있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2)가 가족들의 사랑으로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근황을 공개했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이봉주는 지난해 척수지주막낭종 제거 수술을 받고 한층 호전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6시간 넘는 대수술에도 큰 차도는 없었다는 이봉주는 “모르는 분들이 힘내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내주시는데 아직도 건강이 안 좋으니 미안한 마음 뿐이다. 빨리 나아서 빨리 뛰어다는 모습 보여줘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봉주의 부인은 “오늘도 어제보단 좀 나아졌구나. 감사하다. 이게 제 마음”이라며 매일같이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이봉주는 “운동장을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 그러지를 못하니 마음만 앞선다.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까 우울하다”고 아쉬워했다. 짧은 트랙을 힘겹게 뛴 이봉주는 “회복에 대한 기원해주는 많은 분들이 있다. 불사조같은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드리고 싶다. 앞으로 건강 전도사가 되어서 많은 분들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2000년 일본 도쿄 국제마라톤에서는 2시간7분20초의 한국 기록을 세우며 ‘국민 마라토너’로 불렸다. 그는 현역선수로 활동하며 총 41차례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했다. 은퇴 이후에는 방송에 출연하고, 대한육상연맹 임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육상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썼다.이봉주의 병 근긴장이상증이란 근긴장이상증은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의 긴장이 증가하면서 통증, 전신 뒤틀림 이 나타나는 세계 3대 운동 질환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2만8138명이던 근긴장이상증 환자는 2019년 3만9731명으로 9년간 41.2% 늘었다. 목 근육의 경련으로 머리가 한쪽으로 돌아가거나, 경련, 떨림, 경부 통증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처음에는 경미하게 나타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효과적인 치료 약물도 없는 상황이다. 보톡스 주사 혹은 수술로 해당 근육을 긴장시키는 신경 신호를 차단하거나 뇌를 전기로 자극하는 뇌 심부 전기자극 수술(DBS)을 받는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
  • 오미크론 확산에 사흘째 ‘1만7000명대’

    오미크론 확산에 사흘째 ‘1만7000명대’

    설 연휴에도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31일 국내 신규 확진자 수는 1만7천명대 초반을 기록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으로 확진자가 1만7천85명 늘어 누적 84만5천709명이라고 밝혔다. 신규 확진자는 지난 29일부터 3일 연속 1만7천명대를 유지했다. 전날 1만7천529명(당초 1만7천532명으로 발표된 후 정정)보다는 444명 줄었다. 설 연휴를 맞아 검사건수가 감소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신규확진자는 지난 25일(8천570명) 처음으로 8천명대를 기록했고, 26일(1만3천9명) 처음으로 1만명을 넘은 후 계속 증가해 30일까지 6일 연속 최고치를 경신한 바 있다. 검사량 영향으로 신규 확진자가 다소 줄었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전파력이 델타 변이의 2∼3배이고, 설 연휴 접촉·만남이 급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규 확진자가 2만명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규 확진자가 급증했지만 아직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 수 증가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위중증 환자는 277명으로 전날과 같다. 사망자는 23명 늘어 누적 6천755명이 됐다. 누적 치명률은 0.80%다. 전날 오후 5시 기준 전국의 코로나19 중증 병상 가동률은 16.0%(2천359개 중 377개 사용)로, 전국에 입원 가능한 병상이 1천982개 남아있다. 재택치료자는 이날 0시 기준 7만5천709명으로 전날(6만6천972명)보다 8천737명 증가했다. 신규 확진자의 감염경로를 보면 지역발생이 1만6천850명, 해외유입이 235명이다. 지역발생 확진자는 경기 5천64명, 서울 4천148명, 인천 1천209명 등으로 수도권에서만 1만421명(61.8%)이 나왔다. 비수도권에서는 대구 973명, 부산 764명, 경남 741명, 충남 666명, 경북 583명, 전북 524명, 광주 476명, 대전 444명, 충북 351명, 전남 284명, 강원 272명, 울산 202명, 세종 78명, 제주 71명 등 6천429명(38.2%)이다. 비수도권 지역발생 확진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처음으로 전날 6천명을 넘은 후 이틀째 6천명대로 집계됐다. 지역발생과 해외유입(검역 제외)을 합한 전체 신규 확진자는 경기 5천105명, 서울 4천193명, 인천 1천226명 등 수도권만 1만524명이다. 해외유입 확진자는 235명으로 전날(229명)보다 6명 늘었다. 지난 25일부터 1주간 신규 확진자는 8천570명→1만3천9명→1만4천514명→1만6천94명→1만7천517명→1만7천529명→1만7천85명으로 하루 평균 약 1만4천903명이다. 전날 하루 선별진료소의 의심환자 검사 건수는 6만9천973건, 임시선별검사소의검사 건수는 12만5천87건으로, 총 19만5천60건의 검사가 이뤄졌다. 29일의 34만3천996건에 비해서는 약 15만건, 30일의 21만8천716건에 비해서는 2만3천여건 줄어든 규모다. 이날 0시 기준 검사 양성률은 7.8%로 전날(5.1%)보다 2.7%포인트 상승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달 초중순 3%대 양성률에 비하면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향후 검사량이 늘어나면 신규 확진자 증가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한주간(23∼29일) 국내에서 검사를 통해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확진자는 7천19명으로, 누적 감염자는 1만6천879명으로 늘었다. 한편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기본접종을 마친 비율)은 이날 0시 기준 85.7%(누적 4천399만5천128명)다. 3차 접종은 전체 인구의 53.1%(누적 2천723만3천792명)가 마쳤다.
  • 임신한 뉴질랜드 기자, 귀국 막았다고 탈레반이 더 낫다?

    임신한 뉴질랜드 기자, 귀국 막았다고 탈레반이 더 낫다?

    뉴질랜드 여기자가 임신한 몸이어서 조국으로 돌아가 출산하려 했으나 방역 격리 문제 등으로 귀국 길이 여의치 않아 악명 높은 탈레반의 도움을 얻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뉴질랜드 정부는 이보다 나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가졌다며 귀국하겠다니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기자로 일했던 샬럿 벨리스는 지난 29일자 뉴질랜드헤럴드 기고문을 통해 “탈레반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해 왔는데 이제는 내 나라 정부에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잔인한 아이러니냐”고 되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하던 벨리스는 탈레반이 장악한 뒤인 지난해 9월 알자지라 본사가 있는 카타르로 건너가 지냈다. 카불에서 지낼 때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에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벨기에 기자 짐 휴일브룩과의 사이에 아이가 들어선 사실을 알게 됐다. 휴일브룩은 여전히 카불에 남아 취재하고 있었다. 벨리스는 같은 해 11월 알자지라를 퇴사한 뒤 휴일브룩의 고향인 벨기에로 향했다. 카타르에서는 미혼 여성이 임신하는 일이 불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기에에서도 그 나라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길게 체류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해서 출산을 위해 뉴질랜드에 긴급 귀국 신청을 했다. 벨리스는 “59건의 서류를 구비해 신청했지만 거절 당했다”며 “우리 커플이 비자를 갖고 체류할 수 있는 곳은 아프간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뉴질랜드 정부는 현재 코로나19 방역 규정을 좇아 귀국하는 자국민에게도 열흘의 의무 시설 격리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이 시설은 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귀국을 원하면서 몇천명 이상이 빈 자리를 찾지 못해 해외에서 대기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미혼인데도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 만으로 다른 이들을 제쳐두고 벨리스를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초조해진 벨리스는 탈레반 고위 관계자에게 연락했는데 “아프간으로 돌아와도 좋고 당신은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을 것”이라며 “상황이 나빠지면 우리에게 전화해라.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이에 따라 벨리스는 휴일브룩이 있는 카불로 돌아오게 됐다. 하지만 의사들이 의료시설이 열악한 아프간에서의 출산이 안전하지 않다고 어서 귀국하라고 권했다. 벨리스는 변호사 등의 도움으로 다시 귀국 허용을 신청해 재검토되고 있지만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크리스 힙킨스 뉴질랜드 코로나 대응 장관은 벨리스의 하소연과 관련해 적절한 절차를 따라 대응했는지 살펴보라고 관계 직원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1차 집권기(1996∼2001년)에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앞세워 여성의 외출, 취업, 교육 등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재집권 뒤에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포용적 정부 구성, 여성 인권 존중 등 여러 유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실상은 1차 집권기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현지 여성들의 평판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벨리스의 긴급 귀국 신청이 거부된 것은 지난 26일이었다. 거부 사유는 (아마도 혼인 증명에 대한) 증거 부족, 뉴질랜드에서 어떤 의료 처치를 받게 될지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고, 현재 위치에서 똑같은 처치를 받기 어려운 점을 증명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에 떠들썩하게 ‘앓는 소리’를 한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뉴질랜드 정부는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휴일브룩의 비자도 발급됐다. 다만 아직 격리 숙소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영국 BBC는 뒤늦게 31일 보도하면서 탈레반의 음흉한 선전술에 벨리스가 놀아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스트리아계 아프간 기자 엠란 페로조는 “아프간 기자와 비아프간인 기자가 너무 다른 대접을 받는 얘기가 계속되는 것”이라며 “아프간 기자들은 살해 위협, 구타에 고문을 예사로 당하는데 비아프간인 기자들은 대접 받으며 모든 면에서 환영받고 부드러운 예우를 받는다“고 개탄했다.  조금 더 신랄한 비판은 아프간의 여성 활동가 사하르 페트랏이 30일 트위터에 올렸다. ”탈레반들은 다섯 여성을 어디론가 끌고간 뒤 열이틀이 됐는데도 어떤 화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탈레반을 찬양하는 일을 계속해서 보고 있다. 탈레반을 찬양하지 않고도 어느 정부에게 의문을 표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 ‘장자 1호 박사‘ 이강수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 별세

    ‘장자 1호 박사‘ 이강수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 별세

    국내에서 장자(莊子) 연구로 첫 박사학위를 받고 평생 노장사상을 연구한 이강수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29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2세.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학부 시절 노자(老子) ‘도덕경’에 나오는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말에 끌려 동양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립대만대 유학을 거쳐 1983년 고려대에서 ‘장자의 자연과 인간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경희대·중앙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88~2005년 연세대 철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 노장철학 연구의 대표자인 이 전 교수는 ‘도가사상의 연구’(1989)를 시작으로 ‘욕망론’(1995), ‘노자와 장자:무위와 소요의 철학’(1997), ‘중국 고대철학의 이해’(1999), ‘노장철학의 이해’(2005), ‘생명의 불꽃’(2005) 등 저서를 남겼고, 노자와 장자의 저작을 완역했다. 한국동양철학회장(1996), 한국도교문화학회장(1998), 한국도가철학회장, 한국철학회 부회장(2000) 등을 지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31일 오전 8시다.
  • 보란 듯 김건희, 포털 프로필에 학력·수상내역 추가…등판 초읽기(종합)

    보란 듯 김건희, 포털 프로필에 학력·수상내역 추가…등판 초읽기(종합)

    ‘학력사항’ 4건, ‘수상내역’ 3건 올려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 석사로허위 이력 논란 부분 정정해 게재팬카페 ‘건사랑’도 순항 중…6만 5천명 윤석열 “녹취록에 상처받은 분께 죄송”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가 국내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한 프로필 페이지에 허위 이력 논란 속에 앞서 공개하지 않았던 학력 사항을 추가했다. 김씨는 학력사항은 물론 전시기획자로서 인정 받았던 주요 수상내역까지 공개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프로필 당당히 공개를 한 김씨가 곧 공식석상에 등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9일 개설된 김씨를 지지하는 네이버 팬카페 ‘건사랑’도 MBC가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를 육성 공개한 뒤 회원수가 크게 늘어 현재 6만 5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수상내역에 예술의전당 전시부문최우수상·최다관객상·기자상 기재 27일 현재 김씨의 프로필 ‘학력사항’에는 총 4건, ‘수상내역’에는 총 3건이 추가로 기재됐다. 김씨 또는 대리인이 학력 사항과 수상 내역을 네이버 측에 직접 요청해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씨는지난 24일부터 처음으로 네이버·다음 등 대형 포털 사이트에 김씨 프로필 페이지가 개설하고 프로필을 제공해 사진과 이력이 노출되도록 했었다. 이번에 추가된 학력 사항은 경기대 회화 학사(∼1996),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1999),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디자인학 박사(∼2008),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 경영전문석사(∼2012) 등이다. 특히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과 경영전문석사의 경우 그간 ‘서울대 경영학과(전공) 석사’ 등 허위 이력 논란이 일었던 부분을 정정해 올렸다. 수상내역엔 마크 로스코전을 주관했을 당시 받았던 제2회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전시부문 최우수상·최다관객상·기자상을 기재했다.앞서 김씨는 2015년 ‘마크 로스코전’, 2016년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전’, 2017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2019년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등 기획전시회 4건을 공개했다. 국민의힘은 전날에는 김씨의 프로필 사진을 언론 보도용으로 별도 제공했다. 선대본부 공보단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알림방을 통해 김씨의 사진 원본을 공유하며 “언론사 요청에 따라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김건희 대표의 사진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남색 정장과 흰 셔츠 차림의 해당 사진은 이달초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MBC가 김씨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의 통화 녹음을 방송하기 전이다. 이날 원본 사진 제공은 앞으로 당 차원에서 김씨 관련 공보 업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건사랑’ 회원수 6만 5000명 육박“7시간 전율 영부인, 대선 찢다” 포스터 이와 함께 김씨를 지지하는 모임인 팬카페 ‘건사랑’ 회원수도 28일 0시 현재 6만 4900명을 넘어섰다. ‘건사랑’ 회원수는 지난 15일까지만 해도 200명 남짓이었지만 MBC ‘스트레이트’가 16일 김씨와 기자간 통화 녹취 파일을 육성으로 공개 방송한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다. 카페 대문에는 여성 주연의 영화 ‘아토믹 블론드’와 ‘원더우먼’ 포스터에 김건희씨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띄워 ‘원더 건희’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포스터에는 ‘적폐들을 입 다물게 만든 호탕함, 모두가 놀란 진짜 걸크러시! 유쾌하고 당당한 김건희 녹취록’, ‘압도적인 정권교체’ 이란 설명과 함께 “사진을 받았다고? 어때, 상관없는데”, “정치라고 하는 건 항상 자기편에 적이 있다는 걸 알아야 돼”, “조국의 적은 민주당” 등 방송에서 방영된 발언 일부가 담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와 김씨의 사진을 나란히 올려두기도 했다.또다른 포스터에는 MBC ‘스트레이트’ 후속 보도를 겨냥한 듯 ‘필름 바이 MBC 스트레이트’라고 적은 뒤 ‘정권교체를 위해 그녀가 온다, 공작질은 끝났어’라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이 후보의 ‘형수욕설’ 발언을 연상시키듯 ‘7시간 전율 영부인, 대선을 찢다 미스 건희’라는 제목의 포스터에는 ‘너 나하고 선거 하나 하자,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어 그냥 민주당만 없었으면 돼, 거대 권력에 맞선 가장 영리한 전쟁’이라 글들이 실렸다. 팬카페 특성상 게시글은 “멋지다, 정치 천재” 등 김씨에게 우호적이며 응원을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또 이 후보와 김혜경씨, 이 후보의 아들 등에 대한 제보 게시판과 이 후보와 내연 관계였다고 밝힌 배우 김부선씨를 응원하는 게시판도 만들어놓았다. 김건희씨 얼굴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 굿즈를 제작하는 공간도 있다.윤석열 ‘김건희 7시간 통화’에 “불필요하게 상대와 긴 통화 부적절”“민주당 선거 때마다 무속위 만들면서” 한편 이날 윤 후보는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논란에 대해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통화) 상대에 대해 확실하게 오랜 세월 관계를 좀 가져야 서로 간에 믿음이 있고 하는 건데”라면서 “일단은 불필요하게 왜 상대하고 이런 통화를 장시간 했는지에 대해서는 좀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공인의 부인으로서 (녹취록에) 상처받은 분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에서 도덕적으로 맞지 않은 것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방송 윤리나 책임 측면에서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씨가 설 연휴 전 사과를 검토한다는 기사가 있다’는 질문에는 “결정된 것은 없다. 기사가 아마 추측에 기한 것이 아닐까”라고 답했다.윤 후보는 ‘선거는 둘이 같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본인의 결정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아무리 부부라고 하더라도 저도 제 처가 하는 일에 안 끼어들듯이 (김씨도) 제가 하는 일에 어떤 식의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김씨의 ‘무속 논란’에는 “어쨌든 불필요한 오해를 갖게 된 데 대해 저도 송구한 마음을 갖겠는데…”라면서도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무속위원회도 구성하고 위원장도 발령내고 그런 입장에서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속 논란을) 공적 의사결정과 연결 짓는 것 자체는 지나친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 코로나에 도시락·김밥 소비량 급증… 밥 대신 빵 먹는 대한민국

    코로나에 도시락·김밥 소비량 급증… 밥 대신 빵 먹는 대한민국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의 일상화로 ‘혼밥’하는 사람이 늘면서 도시락과 김밥 소비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21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략류 제조업의 쌀 소비량은 4만 6723t으로 전년대비 16.2% 증가했다. 도시락류 제조업에는 도시락·김밥·집단 급식용 식사 등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면류·마카로니 및 유사식품 제조업의 쌀 소비량도 2만 2144t으로 전년대비 13.0%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나 홀로 식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도시락과 김밥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자연스럽게 쌀 소비량도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았다. 양곡연도인 2020년 11월 1일부터 2021년 10월 31일 사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으로 전년보다 0.8㎏(1.4%) 감소했다. 1963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양이다. 30년 전인 1991년 소비량 116.3㎏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96년부터 매년 사상 최저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 지난해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전년 대비 1.4% 줄어든 1인당 155.8g이었다. 밥 한 공기를 짓는데 대략 쌀 100g이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하루 한 공기 반 정도를 먹는 셈이다. 쌀과 보리쌀, 밀가루, 잡곡, 콩류, 서류 등 기타양곡을 포함한 양곡의 1인당 연간 소비량도 역대 가장 적었다. 지난해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은 전년 대비 1.3㎏(2.0%) 줄어든 65.0㎏으로 1991년(127.9㎏)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황호숙 통계청 농어업동향과장은 “식생활이 서구화하면서 빵을 비롯한 기타식품 소비가 늘었고 즉석밥 같은 대체식품, 레토르트 식품 섭취도 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영향을 받은 지난해에는 온라인 식품 배송과 배달 음식 주문도 많았다”고 말했다.
  • [여기는 중국] 하루 20시간까지 중국 IT업계 장기간 초과노동 도마에

    [여기는 중국] 하루 20시간까지 중국 IT업계 장기간 초과노동 도마에

    악명 높은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장시간 초과 노동 문제가 공론화된 분위기다. 이 분야 중국의 업계 선두주자로 꼽히는 텅쉰(騰訊)의 내부 단체 채팅방에서 처음 시작된 초과 야근 근무에 대한 직원들의 문제 제기가 업체 고위 임원의 사과까지 이어진 양상이다. 중국 관영매체 관찰자망은 지난 25일 텅쉰 사내 채팅방에서 처음 공유되면서 시작된 ‘초과 야근근무’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는 최근 이 업체가 진행한 위챗(wechat)의 상위 버전 개발 업무 중 상당수 직원들이 20시간 이상의 고강도 근무가 문제가 됐다고 27일 보도했다. 위챗은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SNS로 지난 2018년 기준 가입자 수 10억 명을 돌파한 바 있다. 이 업체가 최근 진행한 플랫폼 개발 과정에서 관련 부서 직원들이 최장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등 강도 높은 근무 환경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이라고 알려진 한 직원이 내부 단체 채팅방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명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 문화’로 대표돼 온 중국 기업의 장시간 노동 관행이 논란이 된 것.  중국은 노동법상 법정 근로시간을 하루 8시간, 주당 44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또 초과 근무는 하루 1시간을 초과해서는 안되며 특별한 경우라도 하루 3시간, 월 36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다수의 중국 기업체에서는 ‘996’으로 상징되는 장시간 노동이 관행처럼 이뤄져 왔고, 별다른 단속의 손길도 미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19년 “젊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고 말했다가 청년들의 비난을 받았고, 또 다른 전자상거래업체 직원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996 노동 문화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해당 직원은 자신의 의견을 담은 공식 항의문을 업체 경영진에게 발송해 ‘부하들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면서 ‘악의없이 윗사람들에게 한 번 물어보고 싶다. 플랫폼 내부 실험 계획을 하루 정도 연기한다고 해서 기업이 망할 것 같으냐. 윗선에서 하달한 살인적인 스케줄에 맞춰서 근무하는 부하 직원들의 근무 강도를 고려할 때, 부하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직원은 자신이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것이 알려져 권고사직을 해야 할 위험까지 감수하겠다면서 사내 장시간 초과근무 문제를 내외부에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익명의 직원이 시작한 항의문이 공개되자, 내부 사원들은 잇따라 자신의 초과 근무 사례를 공개하며 장시간 근무의 폐해에 대해 공감의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다. 또 다른 직원 A씨는 “이런 글을 읽을 때 임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궁금하다”면서 “젊고 건강했던 신입 사원들이 20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근무 환경과 잔업 등으로 인해 건강을 잃고 활기찬 눈빛도 잃는 것을 한 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다. 이런 환경 속의 청년 근로자들에게 수천 위안의 인센티브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힐난했다.  이 같은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텅쉰의 위챗 부문 총책임자 황티엔밍은 “사내 직원들에게 실망감을 준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 사건과 관련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사건을 처음 공론화한 신입 사원과 사건 직후 직접 연락을 주고 받는 등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는 일손 부족으로 인한 고된 작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서 “향후 가능한 한 단기에 강도 높은 업무를 배정하지 않을 것이며, 직원들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작업 시간과 휴식시간에 대해 협의할 것이다. 또, 승진 등의 평가 기준과 관련해 퇴근 시간에 대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 LPGA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 US여자오픈 나오나

    LPGA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 US여자오픈 나오나

    오는 6월 열리는 메이저 골프대회 US오픈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52·스웨덴)이 현역 선수들과 함께 골프채를 휘두르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AP통신은 26일 “소렌스탐이 올해 US오픈 출전에 대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여자 골프 세계랭킹이 도입된 2006년 첫 1위에 오른 소렌스탐은 현역 동안 메이저 대회 10회, LPGA 투어 대회에서 72회 우승컵을 가져간 LPGA의 전설같은 선수다. 소렌스탐은 지난해 2월 LPGA 정규 대회 게인브리지 LPGA에 출전해 13오버파 301타로 컷통과를 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지난 24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올 시즌 LPGA 개막전 힐튼 그랜드 베케이션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의 유명인 부문에 출전한 소렌스탐은 준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한 샷 감각을 뽐내기도 했다. 소렌스탐은 이 대회가 끝난 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했던 내 경기를 통해 아이들이 뭔가를 얻고, 이런 게 인생이라는 것도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렌스탐은 12세 딸 아바와 9세 아들 윌을 두고 있다. 올해 US오픈이 열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파인스 파인 니들스 로지 앤드 골프클럽은 소렌스탐이 1996년 US오픈에서 우승한 곳이기도 하다. 소렌스탐은 “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젊은 선수들과 경쟁은 아무래도 쉽지 않다”면서 “아마 (대회에 나간다면) 가서 편한 마음으로 스윙하고, 결과를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렌스탐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 우승은 2006년 US여자오픈이고, 마지막 메이저 대회 출전은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공동 24위)이다. LPGA 역대 여자 메이저 대회 최고령 우승은 1960년 타이틀홀더스 챔피언십에서 페이 크로커(우루과이)의 46세다. 미국남자프로골프(PGA)에서는 지난해 필 미컬슨(51·미국)이 지난해 5월 PGA 챔피언십에서 50대로는 처음으로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 영업익 6조 넘기고도 아쉽다는 현대차

    영업익 6조 넘기고도 아쉽다는 현대차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만 아니었으면….” 현대자동차가 창사 이래 최대 매출액인 118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6년 만에 ‘6조원대’로 회복했다. 전년보다 2배가 넘는 수치로 최근 몇 년 사이의 부진을 씻는 호실적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왜일까. 현대차는 25일 지난해 4분기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을 열고 내수와 해외를 포함해 지난해 연간 차량 판매대수가 389만 726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 117조 6106억원에 영업이익 6조 6789억원이다.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6조원을 넘긴 것은 2015년 이후 6년 만이며 2조 3947억원에 머물렀던 2020년보다는 무려 179%나 늘어난 수치다. 10년 전만 해도 현대차는 연간 8조원대 영업이익을 냈던 회사다. 그러나 미국·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고전한 데다 원·달러 환율 하락, 전기차 등 미래차 전환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 등으로 2014년 이후 수익성이 꾸준히 악화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매출액이 100조원을 넘어섰는데도, 영업이익이 2조~3조원대에 머무르며 2~3%대의 부진한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정이 달라졌다.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서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초과수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누적됐던 신차 교체 수요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폭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현대차가 집중했던 친환경차, 고급차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현대차는 이를 ‘믹스 개선의 효과가 있었다’는 말로 설명했다. 수익성이 높은 차종의 판매가 호조를 이루며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의미다. 충분히 좋은 실적이지만, 업계에서는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마침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덮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때문이다. 현대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를 비롯해 ‘캐스퍼’, ‘GV70’ 등 신차들이 잇따라 호평을 받았음에도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지난해 4분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9% 감소한 18만 5996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해외에서도 77만 4643대로 전년 동기보다 17%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GV70 등 인기 차종의 경우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기다려야 신차를 받을 수 있는데, 반도체만 원활하게 수급됐으면 더 많이 판매됐을 것”이라면서 “물이 들어와 노를 저어야 하는데, 노가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현대차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수급난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올해 판매 목표를 지난해보다 11% 높인 432만대로 설정했다. 올해 전기차 ‘아이오닉6’(하반기) 등을 출시해 지난해의 판매 호조를 이어 간다는 계획이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 공장에서 싼타페 하이브리드(HEV)를 현지 생산하는 등 글로벌 주요 시장의 상황에 맞춰 친환경차 판매 증진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 中 블랙리스트 새 타깃? 여성재벌 주린야오 조사

    中 블랙리스트 새 타깃? 여성재벌 주린야오 조사

    자수성가한 중국의 여성 재벌 주린야오(52) 화바오 국제그룹 회장이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콩 증시에서 화바오 주가가 60% 넘게 폭락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담배와 식품에 넣는 향료 제조업체인 화바오는 이날 공시를 통해 중국 후난성 레이양시 감독위원회가 최고경영자(CEO)이자 회사 지분의 71%를 보유한 주 회장을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회사 측은 주 회장의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조사는 중국 공산당과 지방정부가 공동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주 회장에 대한 조사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새 정책 구호인 ‘공동 번영’ 추진의 일환이며, 담배산업에 대한 중국 당국의 규제와 감독이 강화된 데 따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주 회장이 ‘공산당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지면서 화바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4일 전거래일(14.50 홍콩달러)보다 66.6% 떨어진 4.84홍콩달러로 거래를 마쳤다가 25일 6.0%가량 반등했다. 주 회장은 1996년 26세의 나이로 화바오를 창업했다. 중국 후룬연구소에 따르면 주 회장의 지난해 자산은 76억 달러(약 9조 1086억원)로 중국에서 122번째로 많다.
  • “기다릴게”...약속 지킨 그 남자, 50년 전 첫사랑과 기적처럼 재회

    “기다릴게”...약속 지킨 그 남자, 50년 전 첫사랑과 기적처럼 재회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50년 전 첫사랑과 재회한 68세 여성의 기적 같은 사연이 공개돼 화제다. 중국 지린위성TV ‘하오지요부지엔’(好久不见)에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남자의 군 전출로 끊어졌던 인연을 50년 만에 찾은 68세 윤춘잉 씨의 사연이 방영됐다. 신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재회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TV프로그램인 ‘하오지요부지엔’에 윤 씨가 50년 전 헤어졌던 자신의 첫사랑 허샤오원 씨를 찾아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사연의 주인공 윤 씨와 허 씨의 인연은 지난 1970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18세의 윤 씨는 윈난성의 한 군부대 인근 농촌에서 거주했는데, 구이저우성 리보현 출신의 허 씨가 군입대와 동시에 윤 씨가 있는 윈난성으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입대 직후 윈난성으로 이주하게 된 허 씨는 어느 날 고열을 호소하며 이 지역 보건소에 입원 치료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약 보름 동안의 입원 치료를 받았던 허 씨는 지루한 치료기간 동안 종종 3층 병실 창문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바로 이 때 보건소 인근에 거주했던 허 씨를 우연히 발견했던 것.   약 3주 동안의 치료가 끝날 무렵 허 씨는 병실 창밖에서 책을 읽는 윤 씨에게 다가가 용기 내 말을 걸었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긴 인연의 시작이 될 줄은 당시로는 생각도 하지 못헀다.  이 무렵 중국 사회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분위기 상 허 씨는 줄곧 윤 씨와 멀찍이 떨어져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입원 치료가 종료되는 마지막 날 허 씨가 용기를 내 윤 씨에게 다가가 통성명을 했고, 이후 군대에서의 훈련이 없는 날마다 허 씨가 윤 씨를 찾아가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렇게 점점 가까워진 두 사람이었지만, 윤 씨의 부모 두 사람이 허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면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 씨의 부모 두 사람이 허 씨의 군부대를 찾아가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윤 씨는 1971년 다른 군부대로 전출되고 두 사람의 인연은 영원히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약 1년 후 윤 씨는 구이저우 고향으로 귀향한 허 씨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았는데, 이후 윤 씨는 이 편지를 무려 50년 동안 사는 것이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보며 간직했다.  하지만 윤 씨는 이듬해 가족들이 소개한 남편을 만났고, 두 딸을 출산해 살아오던 중 허 씨가 윤 씨를 찾아오는 일이 생겼다. 당시 구이저우에 살았던 허 씨가 편지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 이웃 주민들에게 윤 씨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이미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윤 씨는 자신을 찾아온 허 씨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이후 두 사람은 단 한 차례도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다.  그후 윤 씨의 남편이 1996년 후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1년 만에 사망했는데, 당시 윤 씨의 나이는 42세였다. 주변 사람들이 윤 씨에게 재가할 것을 권유했지만, 윤 씨는 재가 대신 과거 인연을 맺었던 허 씨의 생사를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이 무렵 윤 씨의 두 딸들이 윤 씨가 허 씨의 행방을 찾으려는 것을 알고 크게 분노했고, 만류하는 딸들의 뜻에 따라 윤 씨는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렇게 또다시 긴 세월이 흘렀고, 윤 씨의 두 딸이 모두 혼인해 각자의 가정을 꾸린 이후에야 그는 용기를 내 허 씨의 행방을 직접 찾기로 마음 먹었다.   그가 허 씨와 헤어진 지 무려 50년이 지난 68세가 돼서야 TV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생사를 찾기 시작던 것.  과거 허 씨와 주고 받았던 편지 한 장에 적힌 오래된 주소지로 찾아간 TV프로그램 제작진은 오랜 기간 수소문 끝에 허 씨로 알려진 72세 남성이 미혼인 상태로 여전히 이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군대에서 제대한 허 씨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홀로 거주해왔던 것. 제대 후 구이저우의 한 경로당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부상을 입고 장애를 가지게 된 상태였다.   그렇게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두 사람은 지난 4일 제작진의 도움으로 허 씨의 고향 구이저우 리보현에서 무려 50년 만에 재회하는데 성공했다.   반세기 만에 만난 두 사람은 과거와 달리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으로 만났지만, 허 씨는 멀리서 걸어오는 윤 씨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손을 맞잡고 웃음을 보였다.   허 씨의 눈에는 윤 씨를 처음 만났던 18세 그때처럼 풋풋한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시절의 사랑은 윤 씨의 얼굴만 봐도 하루종일 웃음이 나올 정도로 풋풋했다”면서 “안타깝게 헤어졌지만, 줄곧 그때 그 사랑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윤 씨를 다시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살고 있었다”면서 “가정이 있는 여인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멀찍이 떨어졌지만, 윤 씨가 아닌 다른 여성과의 결혼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다시는 못 만날 줄만 알았는데, 하늘이 도와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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