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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기업 도덕적해이 유형/분식회계·사주 부당지원 금융기관·기업 공멸 불러

    25일 드러난 대농·극동건설·나산 등 3개 기업의 ‘모럴 해저드’는 분식회계,기업주 부당지원,비자금 조성 등 금융기관과 기업이 공멸(公滅)하게 된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멋대로 회계조작 - 대농은 ㈜대농의 자산을 2255억원이나 많이 계상한뒤 이를 바탕으로 1559억원을 대출받고,회사채를 1360억원어치 발행했다.또 93∼97년 ㈜미도파의 매출액을 총 1139억원이나 부풀린 뒤 금융기관으로부터 4701억원을 대출받았다.극동건설은 94∼96년 당기순이익 733억원,순자산 1040억원을 가짜로 꾸며 금융기관으로부터 1911억원을 대출받았다.나중에 부실화하면서 서울보증보험 등은 330억원의 보증채무 손해를 봤다. ◆경영주 부당지원 - 97년 신동방그룹이 미도파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자,박영일(朴泳逸) 대농 전 회장 등은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도파의 자금 877억원을 계열사인 ㈜메트로프로덕트 등에 빌려준뒤 이들로 하여금 미도파 주식을 사들이게 했다.나산종합건설은 94∼97년 안병균(安秉鈞) 전 회장에게 756억원을 단기대여금 형식으로 주고 아직 돌려받지 않았으며역시 안 전 회장에게 538억원규모의 오피스텔 공사를 시공해 주고 공사대금을 받지 않았다. ◆비자금 조성 - 극동건설은 92∼97년 건설현장에서 노무비나 장비대금을 실제보다 높게 올려 공사원가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122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이 돈을 김용산(金用山) 전 회장은 골동품을 사는 등 개인용도로 썼다. ◆회사돈을 사적으로 유용 - 대농은 경기도 안성에 있는 박 전 회장의 별장 관리인을 고용하면서 ㈜대농의 총무부 소속 정규직원을 채용한 것 처럼 속였다.관리인에게는 88년부터 10년동안 급여와 퇴직금으로 1억 1700만원의 회사돈을 지출했다.극동건설 김 전 회장은 자녀들이 다른 회사에 다니는데도 극동건설㈜에서 일하는 것처럼 꾸며 급여·퇴직금으로 10억원을 지급했다.또 개인적으로 고용한 경비원,가정부,운전기사 등에게도 16억원을 지출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경매 포인트/ 고양 화정 코오롱아파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948 별빛마을 911동 1704호(33평형)가 오는 31일 오전 10시30분 의정부지원 경매5계에서 경매에 부쳐진다.사건번호 ‘2002-13242’.지역난방이라서 관리비가 싸다.고양경찰서 서쪽에 있다. 지하철 3호선 화정역이 걸어서 10분 거리.서울을 오가는 버스 노선도 많다.인근에 공원과 광장이 있어 주거환경은 쾌적한 편.덕양구청,LG마트,롯데마트,킴스클럽,세이브 등을 걸어다닐 수 있다. ◇수익성- 최초감정가는 1억 7000만원이었으나 한차례 유찰돼 1억 3600만원으로 떨어졌다.시세는 1억 8000만∼1억 9500만원.전세가는 1억 3000만∼1억 4000만원.입찰가격이 전셋값 수준이다. ◇안전성- 등기부상 모든 권리관계는 경락대금 완납 뒤 자동 소멸된다.집주인이 살고 있어 세입자 처리에 따른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 [CLEAN 3D] 구인난 몸살 시화·반월공단 르포

    “처음엔 기대를 갖고 구인광고도 내봤지만 이젠 신규인력 채용은 아예 포기한 상태입니다.” 입구부터 매캐한 화공약품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도금업체 S사의 10평짜리 작업장.이 회사 김명수(50) 이사는 “일하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고 어렵게 사람을 구해도 2,3일을 버텨내는 이들이 없다.”며 영세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하소연했다. 자신과 사장을 제외한 6명의 직원 모두가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라는 그의 말에서 인력난을 절감할 수 있다.시화·반월공단 내 10여개 도금단지는 물론 전국 587개 사업장의 사정이 대부분 비슷하다.경인금속 협동화 단지 정양남(44) 차장은 “내년 3월로 예정된 외국인 출국 조치로 외국인이 빠진다면 도금산업 전체가 마비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교적 작업환경이 양호하다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반월공단에서는 규모가 제법 큰 ‘파스코’는 조립라인 인력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 오는 10월까지 미국에 납품해야 할 석유난로는 15만대지만 7월초까지 4만대밖에 만들지 못했다.사람을 뽑아도 며칠하다가 ‘도망’가기가 일쑤다.강임중(42) 인사팀장은 “얼마 동안 일할 것인지가 면접에서 가장 중요하게 됐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최근 실업계 고교 연수생들이 실습을 와 숨통을 터주지만 정작 남아서 일하겠다는 학생은 없었다고 한다.이 때문에 구인을 둘러싼 ‘스카우트 전쟁’도 치열하다.최근 시화공단의 한 전자제품 조립업체가 인천 남동공단에서 10여만원의 월급을 올려주는 조건으로 라인 조립공 50여명을 빼오는 등 업체간 ‘인력 뺏기’도 심각한 양상이다. 파스코의 최영호 사장은 “하루에 생산라인 종사자의 15%인 70여명이 나간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출퇴근 문제도 중소기업 구인난을 가중시키고 있다.주물업체 Y사의 최익천(43)씨는 “3D 업종은 옛말이고 요즘은 출퇴근 거리(distance)를 포함,4D라는 표현을 쓴다.”고 귀띔했다.공단 내부까지 다니는 일반 버스가 없기 때문이다.수도권을 벗어난 공장지대의 경우 교통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 때문에 안산지역에선 주변 회사들이 돈을 모아 통근 버스를 운영하는 사례가늘고 있다.아예 출퇴근이 어려운 직원들을 위해 기숙사를 새로 짓거나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파스코사는 최근 4억여원을 들여 기숙사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 한달 기숙사비는 1만5000원으로 싸지만 그나마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귀띔이다. 반월·시화공단 오일만 유영규기자 oilman@ ■구인난 원인과 대책 / 클린 3D사업' 통해 작업개선 추진 산업 현장의 인력난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하반기 들어 경기 회복과 함께 중소기업들이 인력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만성적인 중소기업 취업기피 현상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구인을 원하는 중소 제조업체 가운데 3분의 2가 ‘원하는 만큼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나마 산업연수생 제도가 3D업체 구인난을 덜어줬지만 전체 중소기업 차원에서는 역부족이다. 산업기능 요원(병역특례 대상자)도 현장 수요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중소기업들이 인력부족을 메우기 위해 불법체류자,일용근로자 등 비정규직인력을 활용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의 왜곡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인난 실태-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중소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중소제조업체 40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응답 업체의 82.5%가 채용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채용계획이 있는 업체 중 희망인원을 전부 채용할 수 있을 것이란 응답은31.6%에 불과했다.일부 채용이 가능하다고 답한 업체는 56.1%,채용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말한 업체도 5.2%나 됐다.설상가상으로 선거철을 맞아 손쉬운 선거판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 중소기업 구인난 전망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인-중소기업들은 인력확보 애로 요인으로 ▲해당지역의 채용 대상 근로자 부족·지방근무 기피(21.6%) ▲상대적 저임금(20.9%) ▲열악한 작업환경(13.1%) ▲중소기업에 대한 왜곡된 인식(12.7%) 등을 꼽았다. ◇정부 대책-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효과는 없는 듯하다.구조적 문제가 중첩돼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최근 8만명 쿼터의 산업연수생 숫자를 대폭 확대하고 제조업 이외에 건설업,서비스업으로 연수생 배분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노동부를 중심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국내 근로자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수급문제와 인권시비 등을 종합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질 높은 고용안정 서비스’를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고용안정정보망(Work-Net) 기능개선 ▲클린 3D사업을 통한 작업개선 ▲적극적인 동행면접 실시 ▲중소기업 취업시 조기 재취직 수당지급 상향조정 등을 꼽을 수 있다. 오일만기자 ■인력난 中企 돕는 ‘고용보험' 고용보험이 지난 95년 7월 도입된 이후 7년만에 우리 사회의 주요 ‘사회안전망’으로 정착되고 있다. 96년 고용보험기금 운용규모는 9116억원이었으나 올해 2조 7620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사업추진실적은 96년 334억원에서 지난해 1조 5000억원으로 45배 가까이 늘었다.근로자 및 사업주가 받는 고용보험 수혜규모가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보험은 최근에는 영세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지원하기 위해 직업능력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업주를 위해선 ▲유급휴가 훈련 ▲직업능력개발 훈련시설과 장비자금대부및 지원을,근로자를 위해선 ▲실업자 재취직훈련 ▲수강 장려금 지원 ▲근로자 학자금 대부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고용보험 적용확대- 시행 초기 실업급여는 30인 이상 사업장이 적용대상이었으나 98년 10월부터 1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다.영세사업장의 근로자·사업주에게 고용보험을 통한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 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또 지난해 11월부터 근로여성의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 30일분의 출산급여 및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육아휴직급여 지급으로 고용보험 업무가 확대됐다. ◇고용보험의 내실화- 1개월 미만 고용된 일용직 근로자도 고용보험의 수혜를 받도록 고용보험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현재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심의중이다. 중소기업의 직업능력 활성화 등 고용보험 시행령 개정과 4대 사회보험 통합 서식 마련 등도 추진 중이다. 오일만기자■하반기 인력시장 명암 ‘대기업 맑음,중소기업 흐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채용시장에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대기업은 미래의 핵심역량이 ‘인재’에 있다고 보고 우수인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전체적인 채용규모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필수인력조차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15일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에 따르면 상장 대기업 150여개 업체는 올 하반기에 모두 1만 5000여명을 신규로 채용할 계획이다.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증가한 수치다. 상반기에는 650여개 기업이 지난해 동기보다 18%가량 증가한 3만 6000여명을 채용했다.이같은 채용확대는 전기·전자,자동차,정보기술(IT),유통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 업종의 경기회복 속도가 빨라진데다 능력위주의 연봉제,수시채용이 확대되면서 우수인력들이 대거 몰리는 탓이다.특히 능력위주의 연봉제 확대는 취업대상자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택하는 주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성·LG·SK·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연구개발(R&D)인력을 중심으로 해외유학파를 대거 채용하고 있다.또 핵심인력 빼내가기에 대비,기업들은 핵심인력 특별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까지 우수인력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반면 중소기업 구인난은 하반기에도 여전히 심화될 전망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달 중소 제조업체 401곳을 대상으로 ‘하반기 인력채용 전망’을 조사한 결과,생산직은 11.5%,사무직은 8.0%가량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20명미만의 소규모 기업의 생산직 인력부족률은 19.3%로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일례로 공구제조업체인 ‘예스툴’은 지난해부터 생산직 인력 3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지만 아직도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플라스틱 식품용기를 만드는 동진기업도 생산직 인력 80명중 15명가량이 부족한 실정이다.양원근 총무부장은 “신규 인력을 뽑으면 잠시 일하다 그만두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어 아예 중국 현지공장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을 데려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 강충식 김경두기자 chungsik@
  • 김포매립지 개발내용/외국인 주거단지 10만평 조성

    김포매립지가 국제 금융기관의 메카로 탈바꿈한다. 14일 확정된 종합개발계획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과 개발계획 수립 등의 절차를 거쳐 오는 2009년까지 순차적으로 개발된다.개발에는 모두 2조 5227억원이 투입된다. 개발계획을 보면 먼저 중심지 33만평에 국제금융기능 업무를 담당할 초고층 빌딩 3∼4개가 지어진다.이곳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이 머물 수 있는 10만평 규모의 외국인 주거단지도 별도로 조성된다.이 단지에는 용적률 100% 이하,3층 이하의 낮은 주택만 들어선다.국제업무시설은 외자유치로 개발하되 국가가 20%정도를 우선 매입,외국인 투자자에게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제금융단지 동쪽에는 주거,스포츠·레저,첨단 화훼단지가 배치된다.주거·업무·공공시설 용지(167만평)중 79만평은 주거용지로,9만평은 상업용지로,14만평은 공공시설 용지로,나머지는 공원·녹지용지로 쓰인다. 주거용지는 단독주택지(36만평),연립주택지(13만평),아파트용지(40만평)로 나뉘어져 있으며 모두 2만 8000가구가 들어선다. 매립지 남·북·서쪽에 배치된 스포츠·레저용지(320만평)에는 18홀규모의 골프장 3∼4곳과 43만평 규모의 테마파크가 조성된다.이 가운데 32만평에는 경마훈련시설·승마장 등이 들어선다.남·북쪽에는 농업기반공사가 첨단 화훼단지를 조성,인천공항 이용객의 테마관광지로 이용할 계획이다. 남쪽에 있는 유보지 22만평은 장기적으로 외국대학원 분교,외국 유수의 종합의료시설 등을 유치하되 일단 김포매립지의 국제업무도시 기능이 활성화될 때까지 축구,야구장 등 생활스포츠 용지로 활용된다. 토지공사는 김포매립지 487만평 가운데 화훼단지 57만평,국유지 117만평을 뺀 313만평과 청라매립지,사유지 등을 사들일 계획이다.매입가는 김포매립지의 경우 농업기반공사가 당초 매입한 가격에 이자를 붙여 9119억원,청라매립지는 인천시의 개발비용에 금융비용을 더해 462억원으로 결정됐다.사유지는 택지개발 절차에 따라 매입한다. 류찬희기자 chani@ ■“안된다더니…”용도변경 논란 김포매립지 용도변경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전망된다. 수도권 인구집중 심화와 지역간 불균형확대,관련 지역 부동산투기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동아건설 경영진으로 복귀한 최원석씨가 김포매립지 매각 당시 용도변경이 전제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김포매립지는 중동특수가 시들해지면서 건설장비를 대거 철수해야 했던 동아건설이 지난 80년 1월 1151만평에 대해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따내면서 탄생했다.88년 2월에는 조성된 1151만평중 629만평이 수도권 쓰레기매립장 용도로 양도됐고,91년 1월에는 487만평(국유지 117만평)에 대한 준공인가가 났다.당시에는 인가조건이 농지로 한정돼 소유주인 동아건설은 농업용수 부족등을 이유로 이를 다른 용도로 변경하려고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동아건설은 외환위기로 경영난에 몰리자 99년 370만평을 농업기반공사에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이를 사들인 농업기반공사도 당초 목적대로 농업용지로 쓰자니 매입비용도 못건질 상황이었고 주거·상업용지 등 다른 용도로변경하자니 외부의 반발이 워낙 거세 2년여를 허송세월로 보냈다.이번에 용도변경이 결정됐지만 현대건설의 서산농장 간척지 용도변경요구와 맞물려 형평성 시비도 우려된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재벌회장들 거액 주식 평가차익

    국내 그룹의 오너들이 자사주나 계열사 주식매매를 통해 막대한 주식 평가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지분 정보제공업체 에퀴터블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5월까지 국내 50대 그룹 오너들의 자사주 거래에 따른 평가이익을 조사한 결과,21개 그룹 오너 37명이 자사주 또는 계열사 주식을 거래해 22명이 이익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고 1일 밝혔다. 박문덕(朴文德) 하이트맥주 회장은 자사주 233만 1583주를 장외 매수해 5월 말 종가 기준으로 조사대상중 가장 많은 722억원의 평가이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됐다. 최태원(崔泰源) SK㈜ 회장은 SK주식 646만 3911주를 장외 매수해 129억 3000만원의 평가 차익을 거뒀다.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은 49억 6000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 반면 그룹 분할을 위한 내부 거래가 활발히 이뤄진 LG그룹의 경우 구본준(具本俊) LG필립스LCD 사장은 91억 5000만원,구본무(具本茂) LG 회장은 87억2000만원의 평가손실을 기록했다. 강충식기자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7)불꽃튀는 러,日 첩보전

    러시아 문서보관소 서고속에 묻혀있다 100년만에 햇빛을본 제정 러시아시대의 비밀문서중에는 군사첩보와 관련된전문이나 보고서들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제국과 만주에서의 주도권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은 외교라인과 군부를 총동원,첩보전을 전개한 것이다.러시아는 모든 면에서 불리했지만 연해주지역에 이주해 있던 한인들을 첩보요원으로 활용하는 이점이 있었다.러시아의 대일(對日) 첩보전은 러·일전쟁(1904∼1905)을 전후한 시기에 가장 첨예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한 이후 일본군의 동향 관찰과 대한제국군의 개편 상황을 감지하기 위한 상주 군사첩보원의 필요성이 긴박해지고 있다.이 비밀첩보 임무로 제2시베리아 보병사단 포병여단의 비류코프 대위를 일본주재 군사무관의 부관으로 임명하여 보내기로 되어 있다.비류코프는 10년간 대한제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1906년 2월13일 러시아군 총참모부장이 외무장관에게 보낸 공문) 비류코프가 군사무관 사모일오프의 부관으로 부임하게 되면 일본이 바로 의심하게 되어 첩보활동이 어렵게 될 것이다.(1906년 7월14일 도쿄주재 바흐메티예프 공사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두 건의 비밀문서에 등장하는 비류코프는 대표적인 군사첩보원이었다.1907년 그가 서울로 오자 당시 서울주재 총영사였던 플란손은 이토(伊藤博文) 통감에게 “서울에서러시아학교교사로 일하던중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현역에 소집돼 근무했으며 포츠머스 평화회담후 다시 예비역으로 편입돼 정들었던 서울에 다시 와 교사직을 알아보려고 왔다.”고 소개했다.이토는 비류코프에게 동정적으로 대해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비류코프는 서울의 러시아학교 교사 신분으로 국내에서 10년동안 암약하면서 알게된 한인학생 10여명을 러시아의하사관학교 등에 국비유학생으로 입교시켰고 전쟁이 나자소집해 예하의 비밀첩보원으로 활용했다.이후 1911년까지4년동안 원산주재 영사로 근무하면서 첩보수집활동을 했다.그는 1904년 1월 “한국어를 말하고 한복으로 변장한 일본인은 전쟁이 나면 러시아군을 감시할 것이며 또 통역이나 안내원으로 봉사하겠다고 자청할 수 있다.일본인은 용모 등이 한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구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그러나 걷는 모습을 잘 관찰하면 한인은 성큼성큼 걷는 반면 일본인은 촘촘히 걷는다.”는 첩보를 공사관에 올릴 정도로 한국과 한국인에 정통했다.또 러시아군이 만주와남우수리지방에서 대한제국으로 진격할 수 있는 3개의 길과 그에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보고하기도 했다. 그는 한인생도 출신들의 첩보활동에 대해 “생도들은 고종황제와 조국을 위해 열심히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한군과 강군은 나와 함께 활동하고 있고 이군은 북청에서,현군은 노보키예프스크,구군은 경성(鏡城)에서 각각 정찰임무를 맡고 있다.”고 1904년 10월19일 보고했다. 서울 불어학교교사로 고종의 헤이그밀사파견 사실을 러시아 극동총독부에 알렸던 프랑스인 마르텔과 프랑스 신문‘저널’지의 도쿄특파원 발레,블라디보스토크주재 프랑스상무관 플라르 등 프랑스인들이 러시아의 비밀첩보원으로활약했던 사실도 흥미롭다. 발레가 페테르부르크에 왔다.그는 전쟁중의 일본의 정세에 관해 흥미있는 정보를 러시아에 전해 주었으며 이제 외무부에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해 왔다.(1905년 5월22일외무부에서 육군장관에게).발레의 정보제공 제의는 수락되었다.정보비로 그에게 매월 600루블이 책정되었다.(1905년 6월15일 육군장관이 외무장관에게). 러시아는 일본과의 첩보전에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첩보의 통로인 우편 및 전신시설과 전달수단인 철도등 교통시설을 일본이 선점,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2년 니콜라이2세가 외무장관 람즈도르프에게 “서울주재 파블로프 대리공사의 보고서가 늦게 상신되는 이유가무엇이냐.”고 묻자 람즈도르프는 “파블로프의 보고는 비밀스런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일반 우편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믿을 만한 기회(인편)나 아니면 가끔 대한제국 항구에입항하는 러시아 선박을 통해 발송해 오기 때문”이라고해명하기도 했다.다음 문건은 러시아측의 애로사항을 잘보여준다. 고종황제가 소장하고 있는 러시아 외무부와의 연락용 암호 통신문이 궁정(덕수궁)화재로소실됐다.혹시 일본이 훔쳐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미리 방비하라.(1904년 5월16일 서울주재 파블로프 공사가 외무부에 보낸 보고서) 서울에서 파블로프 공사가 보낸 전문을 받았지만 내용이훼손돼 읽을 수가 없다.일본전신국이 조직적으로 교묘하게 비밀전문을 파손시켜 배달하고 있으며 이는 우연한 왜곡이라고 볼 수 없다.일본은 통신문을 제때에 배달도 하지않는다.모든 우편,전신국은 러시아에 적대적인 일본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과의 교신도 불가능하다.배달과정에서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손상시켜 놓은 몇통의 전보문을 첨부한다(1903년 12월7일 일본 나가사키 주재 가가린영사가 도쿄주재 공사에게 보낸 보고문) 대한제국의 우편시설을 장악한 일본이 서울의 러시아공사관에서 보내는 외교행낭을 손상시키거나 배달을 지연시키는 일이 잦아지자 러시아는 임시방편으로 제물포에서 상하이노선을 운항중인 동청철도(東靑鐵道) 소속 여객선을 이용해 외교문서를 발송하고 수신하기도 했다.2주에 1회 왕복운항하는 이 여객선도 비밀문서 수발에는 지장이 많았다.두만강 인접 도시 노보키옙스크지역과 한국간의 전신선을 육상으로 연결하려고 계획했으나 일본의 끈질긴 방해로실패했다.러·일전쟁 이후 한-러간의 통신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해저선을 통했다.러·일전쟁의승패는 통신을 장악한 일본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앞으로 러·일간에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대한제국에서 러·일은 사활을 건 혈전을 벌일 것이며 영국이 가담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대한제국이 전쟁터가 될 경우 러시아의 남우수리지방은 후방작전 기지가 될 것이다.일본의 병력을 고려할 때 러시아는 10만명이상의 병력과 2만명분 이상의 식량을 확보,비축해야 한다.연해주,아무르주,자바이칼주에는 1년간 공급할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일본군의 병력현황은 다음과 같다.(1899년 3월9일 알프탄 대령이 ‘러·일충돌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작성,보고한 문서) 이 보고서는 4년후 러·일전쟁 발발을 이미 예측하는 등러시아측 정보의 정확성과 뛰어난 분석력을 보여준다.이후 육군장관에 오르는 사하로프 중장이 1902년에 작성한 보고서도 일본 수비대의 주둔지와 규모,철도 및 전신성 공사 현황,저탄장,거주자들의 취득부동산 등 세세한 항목에 이르기까지 보고하고 있다. 무기도입 및 밀수와 관련된 첩보도 자주 등장한다.일본이 대한제국을 경유해 만주로 무기를 밀수출하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일본이 고물 함정을 거액에 대한제국에 팔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일본은 사용하지 않는 구형 총기를 만주로 수출하고 있다.어느 지방을 통해 어디로 보내고 있는지 추적하라.청국에무기를 공급해 주는 사람에게서 받은 정보에 의하면 일본이 청국의 여러 성(省)에 18만정의 구식 소총을 매입하라고 제의했다고 한다.(1902년 3월29일 하바로프스크의 그로드스키 장군이 서울공사관에 보낸 비밀전문) 주한공사관 쉬테인 공사의 보고에 의하면 미쓰비시사는 8문의 함포가 장착되고 200명의 해군을 태울 수 있는 순양함을 대한제국 정부에 납품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1903년 2월3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도쿄주재 이즈볼스키 공사에게 보낸 전문). 순양함은 오는 4월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때 축포를 발사할 목적으로 석탄선을 개조해 함포만 탑재시킨 것으로 외형만 해군함정으로 보일 뿐이라고 한다.일본의 고무라(小村) 외무상은 고종황제의 순양함 도입계획이 일본에 유익하지 못하다는 말을 했다.(같은해 2월9일 람즈도르프 외무장관이 서울공사관에 보낸 전문) 모스크바와 서울,도쿄를 오간 이들 비밀전문을 보면 순양함을 도입하려던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의 국제무기거래 사기극에 속은 것을 알 수 있다.당시 자료에 따르면 이 순양함의 가격은 55만엔이었고 3년 분할상환 조건이었다.대구경 대포 4문과 소구경 대포 4문이 장착되고 장교 25명과해군 200명이 승선하게 돼 있었다. 일본의 첩보망도 만만찮았다.1903년 제물포 부영사 팔야오프스키의 서북지역 출장보고서에는 “평양에는 일본의첩보기관이 있다.일본인들은 시내의 모든 약국을 운영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피고 있다.이곳에는 약 300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지방행정권은 일본영사의 수중에 있다.”고 보고하는 등 일본첩보조직의 촉수가 대한제국의 정부는 물론 지방에 이르기까지 거미줄처럼 뻗어있음을 알리고 있다. 간도의 일본 총영사관에는 비밀첩보과가 있다.그 과에는일본인,청국인,그리고 한인이 암약할 것이다.통감부와 헌병사령부 소속의 밀정만도 약 760명에 이른다.이들의 주요 임무는 의병을 추적하는 것이다.밀정중에는 여성도 있는데 대부분 기생이다.벌써 많은 의병을 경찰에 밀고하였다.(1909년 10월23일 소모프 총영사가 외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보고서) 새로 발굴된 문서에는 이밖에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일본비밀첩보원으로 활동한 한인 명단(1898년),대한제국내 비밀첩보망 구축안(1905년),흑룡강지방의 조선인 첩보원 명단(1912년) 등도 들어있다. 대한제국을 독식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스파이전쟁에 이용당하거나 희생된 한국사람들의 이름이다. 노주석기자 joo@ ■러 문서에 나타난 대한매일 보도 인용 전 서울 불어학교 교사 마르텔을 비밀첩보원으로 대한제국에 파견했다.그는 일어에도 능통하다.그에게 첩보임무와개인암호를 주었다.그에게 The Korea Daily News(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 제호)를 늘 잘 살피라고 지시했다.(1904년12월4일 중국 상하이에서 파블로프 서울주재 대리공사가그루세스키장군에게 보낸 보고서) 러·일전쟁(1904∼1905)의 패배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한 러시아는 이후 2∼3년동안은 그동안 심어놓았던 첩보망과 청,일주재 외교라인 등을 통해 극동정세를 그럭저럭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하지만 한일합병시기를 전후해서는 ‘정보부족증’에 걸렸다.그래서인지 1908년 이후에는 국내 언론과 일본 신문 기사를 발췌해 본국에 보고하고 있었다. ‘00년 00일부터 00년 00일까지의 일지’‘대한제국내 폭동에 대한 신문스크랩’ 등 러시아문서보관소에서 발굴된수백건의 정보보고가 그것이다.이중 80% 이상 인용된 신문이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1904년 발간)였다. 서울주재 공사관이 폐쇄된 이후 만주로 건너가 극동지역첩보수집총책임자로 일한 파블로프가 프랑스인 비밀첩보원 마르텔에게 “대한매일신보를 잘 살피라.”고 지시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26일 하얼빈역에서 5명의 한인이 이토에게 권총을 발사,이토는 곧 절명했다.전 고종황제는 식사중에 이 소식을 듣고 수저를 상에 떨어뜨렸다.(1909년 10월28일자).안응칠(안중근의사의 아호)은 항일운동을 하며 이강,유동설 그리고안창호와 비밀연락을 했다.(1909년 10월30일자).오늘 관보에 지난 9월4일 청·일이 간도에 대해 체결한 조약문이 발표됐다.(1909년 11월9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러시아와 중국,그리고 일본인의 간담을서늘하게 한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사건을 “고종이 수저를 떨어뜨렸다.”는 촌철살인의 한 문장으로 전달하고있으며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 간도를 청국에 통째로 넘긴일본의 외교술책도 간도협약 체결 기사를 통해 짚어내고있다.무엇보다 대한매일신보의 의병활동 보도는 러시아문서가 인용하고 있는 국내외 신문의 보도를 내용이나 횟수,정확도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경기도에 군사훈련을 받은 2000명이상의 의병이 집결해 있다.(1908년 2월19일자).대한제국에는 모두 5만명의 의병이 있다고 한다.결정적인 의병소탕을 위해 일본군이 또다시상륙한다고 한다.(1909년 7월29일자).이토가 사살된 이후러시아로 한인이주가 급증하고 있다.(1909년 11월27일). 대한매일신보 1911년 2월15일자와 2월21일자에는 의병장강기동(姜基東)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기사 2건이 실려있다. 지난 2월12일 원산의 한 일본식당에서 의병대장 강기동이체포됐다.(1911년2월15일자)그는 4년동안 경기도에서 의병 200명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다.강기동은 여객선편으로 서울로 이송된 이후 지금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체포당시 주머니에는 일본돈 2엔 밖에 없었으며 손과 발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1911년2월21일자) 노주석기자
  • 부동산 파일/ SK건설 가릉동 주공 재건축 등

    ■SK건설은 경기도 의정부 가릉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시공사로 선정됐다고 28일 밝혔다. 가릉동 657일대 1만 1951평의 부지에 기존 14∼19평형 아파트 480가구를 헐고 298%의 용적률을 적용,24∼42평형 아파트 1132가구를 짓게 된다. SK건설은 연말까지 조합설립 인가 및 건축심의를 마치고내년 12월쯤 640여가구를 일반분양할 계획이다.입주는 오는 2006년 8월 예정이다. ■㈜렛츠고펜션월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일본 펜션 투어를실시한다.오는 7월9일부터 3박4일간 도쿄 인근의 ‘하꼬네’와 ‘닛코’를 답사한다. 일본에서 펜션이 가장 많은 곳으로 펜션 운영 시스템과 부대시설,고객 서비스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다음달 20일까지 받는다.1인당 참가비는 99만원.(02)597-7144. ■성원산업개발은 서울 성동구 성수2가 277-37외 1필지에 마이너스 옵션제를 적용한 주거 및 업무용 원룸형 오피스텔을 분양중이다. 평형별로는 14평형 130실,16평형 196실,17평형 10실,20평형 10실,24평형 10실 등 모두 356실이다. 마이너스 옵션제를채택,사무실 용도 등으로 활용할 계약자가 세탁기·냉장고 등의 품목을 원하지 않을 때에는 그가격만큼 계약자에게 다른 혜택을 제공한다.원룸형에서는최초다. 중도금 무이자로 자금부담이 없다.입주는 2003년 8월말 예정이다.(02)498-9911. ■한국토지공사는 경기도 구리 토평,의정부 송산,의정부 민락,동두천 생연 등 택지지구 4곳에서 모두 46필지 7220평을 경쟁입찰로 분양한다. 단독주택지 25필지,근린생활시설 16필지,생활체육시설 2필지,주차장용지 3필지로 이뤄졌다.다음달 11일 입찰 신청을받는다.(02)550-7132∼4.
  • 법안 개정·입찰·사업자 선정 ‘3단계 로비’ “”송씨 국회문턱 닳도록 다녔다””

    김홍걸씨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지원 대가로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 부사장 송재빈씨로부터 13억원대의 주식을받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과정이공정치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송씨가 법률 개정단계 등에서 정·관계 로비를 벌인 단서도 속속 포착돼 사업자 선정 전반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다.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전말=우리나라가 월드컵 공동개최권을 따내자 세계적인 풀스게임(투표권사업) 업체인 영국의 리틀우드레저사가 98년 4월 송씨와 공동으로 타이거풀스코리아를 세워 ‘복표 사업’에 뛰어들었다. 복표 사업은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했다.송씨 등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법안 개정의 필요성을 설파,98년 11월 여야 의원 54명의 발의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99년 9월 개정안이 통과되고,2000년 3월에는 대통령령으로 체육복표사업 시행령이 공표됐다.사업 주관 단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입찰제안 지침서’를 마련해 사업자선정에 들어갔다.관심을 보인 업체는 10여개였지만 2000년 8월최종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한국전자복권과 스포츠토토(타이거풀스) 2개 컨소시엄이었다.공단측은 26명의 심사위원을 선발,선정에 들어가 12월2일 스포츠토토가 911점,한국전자복권이 871점을 얻어 스포츠토토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심사의 불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자 공단측은 최종계약을 미룬 채 실사단을 시스템운용 기술제휴사인 이탈리아 스나이사에 파견,기술 점검을 실시했으며 ‘사업 시행전까지 보완’ 조건으로 지난해 1월 스포츠토토를체육복표 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로비 의혹=이같은 선정 과정중 법안개정 단계,입찰 단계,최종 선정 단계 등 3단계에 로비 의혹이 쏠리고 있다. 송씨는 체육복표 사업에 모든 힘을 쏟았던 인물.최씨는법안 개정 시점인 98년말∼99년말 정·관계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한 것으로 드러났다.전직 문화관광부 장관 S씨의 비서관을 지낸 S씨를 이사로,대통령 2남 홍업씨 주변인물인 온모씨를 사장으로 영입했다.또 국회 문화관광위소속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하고,골프 접대도잦았던것으로 알려졌다.로비 대상으로는 민주당의 S, C, 또다른C의원,한나라당의 L, S, 또다른 L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송씨의 한 측근은 “송씨가 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면서 “당시 송씨의 돈을 받지 않은 의원이 없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타이거풀스측이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개최한 기업설명회에는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들을 포함,정치권 인사40여명이 참석하기도 했다. 송씨의 로비는 입찰과 최종 사업자 선정 단계 때 집중됐다.2000년 8∼9월 최규선씨를 통해 홍걸씨에게 주식과 금품을 약정하고,사업자 선정에 도움을 달라고 부탁한 것.당시 입찰에는 강력한 경쟁자인 한국전자복권이 버티고 있었다.한국전자복권은 여권 실세 P씨가 뒤를 봐주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송씨로서는 P씨를 능가할 로비 주체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점이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중국 본토요리 ‘한자리’…23일부터 음식문화 엑스포

    월드컵 기간동안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쓰촨(四川)·광둥(廣東) 등 중국 ‘4대 본토요리’의 진기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월드컵축구대회와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오는 23일부터 월드컵이 끝나는 다음달 30일까지 ‘중국본류음식문화 엑스포’를 개최한다. 종로구 부암동(세검정)에 위치한 ‘하림각’과 서대문구 연희동 ‘진북경’ 등 대형 중식당에서 열리는 이번 엑스포에는 중국본토의 유명 조리사 40여명이 대거 참가한다. 이들은 음식에 필요한 모든 식자재를 자국에서 직접 공수해 중국 본토요리의 진수를 시연한다. 특히 맛과 향,모양새 등에서 특이한 각 지방의 진귀한 요리를 한 곳에서 골고루 맛볼 수 있어 미식가들의 입맛을 한껏돋우고 있다. 베이징 요리는 높은 칼로리와 지방질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본토 요리사(吳方遵씨)가 직접 ‘베이징 덕’으로 불려지는 과루야쯔(掛爐鴨子) 등을 요리해 낸다.이와 함께 쓰촨(요리사 李德强),광둥(梁德勇),상하이(王士魁) 등에서 초청된 전문 요리사들이 자차이(炸菜),차오차이(炒菜) 등 정통 중국요리의 본토 맛을 선뵌다. 가격은 5000원에서 6만원대(1인당)까지 다양하다.3707-9114. 이동구기자 yidonggu@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秘史] (3)러 거주 한인들의 수난과 투쟁사

    한인들의 러시아 이주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1860년 러시아와 청국이 북경조약을 체결,광활한 우수리지역이 러시아영토로 편입되면서부터였다.이때 비로소 조선과 러시아는두만강유역을 경계로 국경선을 맞댔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러측 극비문서에 따르면 1884년에러시아 거주 한인은 대략 1845가구 9000여명에 달했으며남우수리지방의 포시에트에 15개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독신으로 넘어와 품팔이를 하던 것이 점차 가족을 동반한집단이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다.물론 러측 문서에 나타난 이같은 한인이주는 이전부터 이곳에 거주하던 발해유민등 한인 원주민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인이주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863년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포시에트지역에 가족단위 이주민이옮겨온 이후 이주민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를 보였다.당시상황은 이와 같은 한인 이주민이 크게 도움이 됐다.(1908년 3월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운테르베르게르가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 한인이주문제는 아무르동부지역 총독부에서 내무부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주로 등장한다.이주의 원인으로 대한제국 북부의 토질이 나쁘고 흉년이 계속된 데다 관헌의 파렴치한 착취에 따른 탈출로 분석했다.또 대한제국 국경에서 가까운 남우수리 지방은 습기가 많고 해양성 안개가 자주 끼어 러시아 농민들은 농지로 적합치 않다며 떠나 버렸지만 한인들은 이곳의 기후와 토질이 한반도와 유사해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러시아 행정당국에서도 한인 이민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러시아군대와 도시민들에게 농산물을 재배,공급하는 한편 도로개설과 보수 및 짐마차 부역노동 등에 동원했다.한인 이주가 급증한 것은 1870년 초 조선에 흉년이 겹쳤기 때문이다.많은 국민이 빠져나가자 조선정부에서자주 항의를 해왔다.1884년 한·러수호통상조약체결이전에이주해 온 한인은 러시아국민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온 조선인은 러시아국적을 소지하고 있으며 정교회를믿었지만 이들이 러시아인화할 것이라는 믿음은 근거없는추측이다.남우수리에 거주하는한 한인가족은 40년을 살았지만 조선식으로 살고 있다.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인들이 그렇다.러시아가 청국이나 일본과 전쟁을 하게될경우 한인의 충성심을 믿어서는 안된다.이곳은 적의 소굴이 될 것이다.이때문에 일본은 한인의 러시아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상기 문서와 출처동일) 러시아 중앙정부나 지방당국은 한인들의 습관이나 생활풍속이 러시아인에 동화되지 않으며 황인종이 극동지방에 많을 경우 해롭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우선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는 정책의 시행을 차일피일 연기했을 뿐이었다.1891년 두홉스키 아무르 총독은 오히려 적극 정책을 폈다.한인의 러시아 동화를 독려하는 한편 2년간 러시아잔류허가를 받은 한인이 만기를 넘겨도 추방하지 않았고 새로 오는 이민자도 거부하지 않았다.그 결과 1904∼1905년 러·일전 기간중 한인수는 ▲남우수리 2500명▲하바로프스크와 우드스크에 7500명▲아무르에 3만 3500명에 달했다. 카자흐부대가 관리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18명의 가옥 8채를 철거하지 말고 한인이 경작하는 농토를 몰수하지 말 것.15년간 병역의무를 면제해주고 고국의 가족을 초청,러시아국적을 취득하게 해 줄 것.(1897년 8월16일 타반트 마을 촌장 이성삼외 18명이 카자흐부대 사령관에게 보낸진정서).가족을 초청,농업에 종사한다면 러시아국적취득에 동의하며 국적취득후에는 이들을 카자크관할 마을로 편입시킨다(카자흐 사령관의 회답) 카자흐란 15∼17세기 과중한 세금과 압제를 피해 러시아의 중앙부에서 남방변경지방으로 도망친 농노 및 그 자손들을 총칭하지만 주로 카자흐인들로 구성된 비정규군 둔병(屯兵)을 지칭한다.이들은 정부로부터 토지를 지급받는 대신 유사시에 징집될 의무를 갖고 있었다.한인 이주자들도카자흐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러시아는 한인들에게 미개간지를 개척하게 한 뒤 또 다른 미개척지로 밀어내고 개척지에는 러시아인들을 이주·안착시켰다.1937년에는 이민족을 국경지역에서 소개(疏開)시킨다는 명목아래 중앙아시아의 오지(奧地)로 강제이주시켰다.러시아가 추진한 한인 이주정책의 정체를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다. 이범윤을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정치 이민자들이 노보 키예프스크(두만강 넘어 남우수리지방에 있던 소도시)를 활동거점으로 삼고 있다. 일본이 우리의 우방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해야할지 유보하고 있다.(1908년 4월5일 남우수리지방 국경행정관 스미르노프가 연해주 주지사 플루그에게 보낸 통신문).한인 의병조직에 관심도 갖지 말고 처벌도 하지 말 것.그러나 격려하지는 말 것.(같은해 4월19일 플루크가 스미르노프에게 보낸 답신전문). 러시아 극동지역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부터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까지 항일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이후 러시아혁명정부가 빨치산부대를 해체하는 1922년까지는 공산주의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이곳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만주와 간도,연해주 등 국경을 맞대고 있어 한·러·청 3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이와 함께 간도와 연해주지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주민들의 풍부한 인적·경제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었다. 러시아내 한인들을 한인의용군으로 편성해 러시아에 공헌케 하는 방법으로는 산악지방에서 빨치산활동으로 일본군을 교란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함경남북도에서 6000명의 모병이 가능하며 소총 2300정이 확보가능하다.…부대는 3개 연대로 구성하며 소대장이상 지휘관은 러시아인으로 한다.(1904년 11월3일 코르프 남작이 제안한 러·일전쟁시 한인의용군 편성계획). 일본 외무성이 다음과 같이 전해왔다.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이범윤은 200명의 동지를 모아 통감부하의 현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이들은 불라디보스토크에서 다량의 무기를구입하고 대한제국으로 침투하기 위해 노보 키예프스크에집결해 있다. 이들중 일부는 육로를 통해 경성(서울)으로 갔으며 또 다른 일부는 선박편으로 대한제국 북부로 떠났다.(1908년 7월9일 도쿄주재 러시아대사 말레비치가 외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만주에서는 상인들이 빨치산 대원을 도와 무기와 돈을 지원해 주었다.총대장은 이범윤이며 그는 4000명의 빨치산을 지휘하고 있다.그중 1000명은 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3000명은 길림과 봉천지방 주민들의 지원을 받아 무장을 획책하고 있다.빨치산의 거점지역은 러시아와 청국국경지대에 일부 있으며 또 다른 일부는 간도에 있다.(1911년 11월11일 하바로프스크 아무르군관구 참보부가 총참모부 관리본부에 보낸 비밀첩보보고서)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로 타의에 의해 대한제국에서손을 떼게 된 이후 한일합병을 전후한 시기까지 러시아의비밀문서에는 이범윤과 관련된 항일투쟁활동이 유독 많이거론되고 있다.유인석·홍범도 등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다.러시아는 항일의병을 겉으로는 ‘강도단’‘폭도단’‘빨치산’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활용하거나 일본군의 두만강쪽 국경침범을 저지하는 데 이용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이범진·이범윤·이위종 3인의 항일 역정 러시아 문서보관국에서 발굴된 극비문서에는 이범진(李範晋·1852∼1910),이범윤(李範允·1856∼1940),이위종(李瑋鍾·1887∼?) 3인의 이름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들이 구한말 한·러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세사람의 관계와 비극적인 인생유전에 대해서는 국내에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세사람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였다.페테르부르크주재 대한제국 공사였던 이범진과 헤이그밀사로 파견된 3인중 한명이었던 이위종은 부자지간이었다.만주와 연해주땅을 오가며 평생 항일의병활동을 한 간도관리사 이범윤은 이범진의 6촌 동생이었다.이같은 사실은 이범진의 손자 이원갑(李元甲·65)씨에 의해 확인됐다. 또 고종이 같은 전주이씨인 이범진을 ‘조카’라고 호칭한 점으로 미뤄 이들은 이씨 왕가의 먼 일족이었던 것 같다.이범윤은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던 고종을 연해주로 망명시키려는 시도를 한 사실도 문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종의 측근이었던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친러내각이 무너진 뒤 주미공사를 거쳐 주러공사로 부임했다. 고종은 “짐은궁중에서 일본의 포로로 잡혀있지만 북쪽러시아를 바라보며 짐과 백성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다.짐의 사랑하는 조카,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곳에 남아 니콜라이2세 황제에게 도움을 청하라.짐이 운명한 뒤에도 그곳에 남아있으라.일본이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고 있으니 송금할 수가 없다.”(1908년 1월31일)는 서신을 보냈다. 조국으로부터의 재정지원이 끊긴 뒤 이범진은 러시아측이 제공하는 월 100루블의 정치성 생활보조금을 지원받고 연명하면서도 조선정부와 일본의 귀국종용을 거부했다.러시아 외무부차관이 소모프 서울 총영사에게 보낸 1910년 5월의 전문에는 “이범진은 귀국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러시아를 떠나지 말라는 고종황제의 어명을 지키느라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한일합병이후 ‘친러파’로 낙인찍힌 이범진이 일본에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이었다.그는 1911년 1월16일 “우리의 조국은 이미 죽었습니다.전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처지에 처했습니다.자살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고종에게남기고 목을 매달았다.그의 시신은 페테르부르크 교외 우즈펜스키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범진의 둘째 아들 이위종의 일생은 더욱 기구하다.그는 7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영국,프랑스,러시아를 전전하면서 3개 외국어를 익혔다.프랑스 샹생 육군사관학교를 중퇴,러시아로 들어가 주러공사관 참사관으로 일했으며 러시아의 귀족 놀켄 남작의 딸과 결혼할 정도로 엘리트 외교관이었다.1907년 고종의 밀서를 지니고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하지만 그가 만국기자협회에서 행한 일본규탄 연설은 세계에 일본의 잔학상을 최초로 알린 쾌거였다. 그는 생활고와 울분 등으로 러시아인 부인과 이혼한 뒤여기저기를 떠돌았다.1908년에는 군자금 1만루블을 관리하던 최재형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으며 이범윤과 함께독립운동을 꾀했지만 러 당국에붙잡혀 추방당했다.1차대전때 러시아군 장교로 참전한 사실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이름을 바꾸고 시베리아일대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조선인국제공산당원의 한 보고서에 나와있다.이후의 행적은묘연하다. 이범윤은 1903년 조선정부로부터 간도관리사라는 직책을부여받은 뒤 한때 5개 대대의 무장병력을 거느렸다. 대한제국으로의 진격계획을 세우기도 했다.그는 니콜라예스크에서 검거돼 이르쿠츠쿠로 추방됐지만 이곳에서도 1925년까지 항일운동을 폈다.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평생을 조국을 위해 투쟁했던 그는 노년에 거의 폐인이 돼 비밀리에입국,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노주석기자
  • 갤러리정 ‘박소영 이찬주 이혜주 전’

    세 모녀 화가가 시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이색적인 전시회를 마련했다.31일까지 갤러리 정에서 열리고 있는 ‘세 사람의 보물단지-박소영 이찬주 이혜주 전’.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태산준령에 둘러싸인 도시 속초에서 보냈다는 이들은 그 곳에 깃든 천지개벽의 몸부림,생명원리의 비의를 작품으로 형상화한다.어머니 박소영은 갤러리 외부를 덮는 대형 걸개그림 ‘구불상(九不像)’을 내놓았다(31일까지).우리 산야가 생성하던 개벽당시의 소용돌이를 유추한 작품.큰딸 이찬주는 ‘돌을 띄운다’를 주제로우주 공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돌로써 자신을 표현했고(17∼31일) 작은딸 이혜주는 어릴 적 그림을 바탕으로 한 그래픽 디자인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펼쳐보인다(16일까지).박소영은 “설악산,동해바다,청초호가 ‘보물단지’인 두 딸에게 보물을 가득 채워주었다.”면서 “이번 전시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통과의례”라고 의미를부여한다.태생과 깃듦,가족간 공유의 의미를 생각케 해주는 전시회.(02)730-1911. 신연숙기자yshin@
  • [식당문화를 바꾸자] (2)영·중·일어 메뉴판을 비치하자

    **칼국수는 knife국수인가요? 러시아 어학연수생 올가 브린스키(26·여)씨.얼마전 한국 식당을 찾았다가 손님들이 ‘칼국수’를 시키는 것을 보곤 큰 충격을 받았다.칼(knife)로 만든 국수인 줄 알고 ‘엽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더욱이 주문을 받은 종업원도 주방에 대고 ‘칼 둘’(two knives)이라고 외쳤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메뉴판을 뒤져도 한글로만 돼 있어서 무슨뜻인지 몰랐다가 나중에야 ‘칼로 가늘게 썬 국수’라는걸 알았다. 일본 나고야에서 서울을 찾은 관광객 후나바시 지카(船橋千佳·32·여)씨.여행경비를 아낄 겸,한국의 뒷골목도 구경할 겸 호텔식당 대신 대중음식점을 찾았지만 일본어나영어로 된 메뉴판이 없어 주문에 애를 먹었다. 한국식 ‘야키니쿠’(燒き肉·구운 고기)를 맛보려고 했지만 메뉴판이 한국어로만 돼 있었다.결국 평소 알고 있는 불고기만 계속 시키게 됐다.한국음식의 다양함을 맛보러왔다가 실망만 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지난주 서울을찾은 중국인 관광객 첸아이궈(陳愛國·42)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음식점 입구에 음식 모형도 없고,음식 사진도 없는 데다가 메뉴판도 한국어로만 돼 있어 주문에 어려움을겪었다. 외국어 메뉴판이 없어 애를 먹는 관광객은 이들뿐만이 아니다.우리나라 식당은 호텔이나 대형식당 외엔 외국어 메뉴판을 비치하고 있는 곳이 드물다.메뉴판에 아예 가격은적혀 있지 않은 곳도 있다. 일본은 다르다.웬만한 식당이라면 영어로 된 메뉴판과 음식모형을 비치해놓고 있다.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일본 고베(神戶)시는 지난해 말부터 모든 음식점에 영어·한국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국어로 표기된 메뉴판을 보급하고 있다.또 ‘이것 주세요.’ ‘얼마예요?’ 등 간단한 회화도 곁들였다. 이번 월드컵은 일본·중국으로부터 대규모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일본어·영어·중국어로 된메뉴판 비치가 시급하다. 외국어 메뉴판 비치는 각 자치단체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서울시는 영세 식당들이 외국어 메뉴판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영어·일어·중국어·불어·스페인어 등으로 된 메뉴판을 개발해CD롬에 담아 배포하고 있다.홈페이지(www.metro.seoul.kr)에서도 쉽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홈페이지를 열어 식당 주인이 가격만 추가한 뒤 인쇄·코팅하면 훌륭한 외국어 메뉴판이 된다.서울시 보건위생과(02-3707-9111)에 문의하면 된다. 김용수기자 dragon@
  • 대학·각종 기관별 대회일정·공략법/ “경시대회로 大入문턱 넘어라”

    ‘대학으로 가는 문,경시대회로 열어라.’ 경시대회 수상 기록이 대입합격의 든든한 발판으로 알려지면서 각종 경시대회에 대한 수험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대학들은 자체 경시대회 입상자에게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은 물론 정시모집 영역 평가 때 가산점을 주거나장학금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다.하지만 최근 각종 경시대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과연 어떤 대회가 대학 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인지 수험생등이 헷갈리고있다. 고려학력평가연구소 유병화 실장는 “대부분 대학들이 전국 규모나 자체 경시대회 입상자 등으로 자격기준을 대폭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희망 대학이 인정하는 대회를 집중 공략하라.”고조언했다. ●경시대회 전성시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10월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911개의 경시대회가 열렸다. 출판사와 언론사 등 사설기관이 개최한 대회가 637회에이르렀고,대학이 주최한 것은 전국 100개 대학 274회나 됐다.분야도 다양하다.예체능 말고도 논술,수학,한자,외국어 등 20개 분야를 넘어선다. 공신력을 인정받는 대회로는 한국수학올림피아드(대한수학회),한국과학탐구올림픽대회(과학교육단체 총연합회),전국과학전람회(국립중앙과학관),물리올림피아드(한국물리학회)등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서울대는 수시모집 입시 세부안을 발표하면서 지원자격 인정 경시대회 목록을 지정하는 등 경시대회 남발현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 ●희망 대학이 원하는 경시대회를 공략하라= 경시대회를 단 1개도 열지않는 서강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기 위해 대회 개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 대학은 경시대회 성적을 몇 %나 반영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그러나 권위있는 기관에서 개최하는국제 및 전국 대회에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준다. 서울대는 수상기록을 인정하는 경시대회로 국제·전국 규모의 대회와 산하 연구소 등에서 주관하는 20여개를 꼽고있다.따라서 이 경시대회는 사실상 대학 예비고사의 효과를 내고 있다.9월말부터 접수하는 수시모집에서 1단계 비교과 영역 평가시 경시대회 입상경력을 반영하는 등 가산점을 준다. 고려대는 자체 경시대회 대상 수상자에게 일부 학과를 제외한 전학과의 입학지원 자격을 주고 입학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수여한다.또 입상자는 학교장 추천 전형에 지원할수 있다. 연세대는 입상자에게 2학기 수시모집의 특기자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해주며 정시모집 비교과 영역에가산점 혜택을 준다. ●재수생도 응시 가능= 대부분 고교 재학생으로 제한하고있으나 일부 대학은 졸업생과 검정고시 출신자에게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학교장 추천을 받은 고교 재학생으로 참가를 제한하는 곳이 많아 대학의 인터넷 홈페이지등을 통해 개최일정, 응시자격, 가산점을 여부 등을 사전에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고려대의 경우 논술·과학 부문은 고교장 추천을 받은 재학생만 응시할 수 있다.그러나 영어·수학은 재수생,검정고시 출신자도 가능하다.연세대는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한다. ●기출문제 풀어보세요= 경시대회 기출문제,예상문제와 시험경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시대회 준비용 사이트도 성업 중이다.정보부문은 한국정보올림피아드(www.icc.or. kr)’,교육전문 포털 ‘하우와우’(www.howow.com)’,화학·물리는 대한화학회(www.kcsnet.or.kr),물리올림피아드위원회(olympiad.snu.ac.kr),수학은 수학교육평가원(www.kmath.co.kr),‘골드매스’(www.goldmath.co.kr),국어는 119스터디(www.119study.com)등이 알려져 있다. 허윤주기자 rara@
  • 부동산 파일/ ‘이테크 써니벨리Ⅱ’ 1092가구

    ◆‘이테크 써니벨리Ⅱ' 1092가구. ‘이테크 E&C’는 경기도 용인에 ‘이테크 써니벨리Ⅱ’ 아파트 1092가구를 오는 12일부터 분양한다. 34평형 780가구,45평형 312가구로 전가구를 정남향에 배산임수형으로 배치했다.기흥인터체인지(IC)와 수원IC,경부·신갈∼안산 고속도로와 함께 10차선으로 확장되는 42번국도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또 분당∼에버랜드 경전철(어정역)도 오는 2006년 완공예정이다.분양가는 평당 430만원대로 책정했다.모델하우스는 분당 백궁 전철역 3번 출구 앞에 있다.(031)711-0231. ◆오피스텔 ‘Ⅰ스페이스' 83실. 현대산업개발의 자회사인 아이앤콘스는 대학 밀집지역 신촌에 오피스텔 ‘I-스페이스’ 83실을 12일부터 분양한다.지하 2∼지상 15층 규모로 11평형 3실,16평형 44실,17평형 22실,19·22평형 각각 7실로 구성돼 있다.평당 분양가는 640만∼700만원선.중도금 전액 무이자대출을 해준다. 주변에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홍익대 등 대학교가 밀집,임대수요가 풍부해 임대 목적의 투자자에게 적합하다고 아이앤콘스는 설명했다.(02)338-9119.
  • 러 전차 ‘T-80U’도입 교훈/ 최고 성능 국산무기 개발에 한몫

    공군의 차기 전투기(F-X)사업과 관련,최종 기종선정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온갖 의혹과 억측이 가시지 않고 있다.어느기종을 선택하는 게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 것인지도 확실치않다.96년 9월 경제협력 자금을 일부 상환받는 조건으로 뜻밖에 도입된 러시아 T-80U 전차의 운영 실태와 성능 등에 대한 평가,분석을 통해 무기도입선 다변화에 따른 장단점을 알아본다. ■육군기계화학교 전차 훈련장 르포. T-80U 전차들이 굉음을 내며 숲길을 뚫고 나오자 붉은 흙먼지가 키를 넘어 원을 그렸다. 4일 오후 전남 장성군 육군기계화학교 전차 기동훈련장에서는 러시아제 T-80U 전차 5대가 고속 기동훈련을 시작했다.‘홍길동’의 생가가 있었다고 하는 이 지역 특유의 붉은 흙이 전차가 빠르게 구를 때마다 한 무더기씩 솟구쳤다.전차는높이 1m 이상의 구릉지를 손쉽게 타고 넘었다.이어 순간 멈칫하더니 포탑을 빠르게 회전하며 사격 자세를 취했다. T-80U는 동급의 다른 전차에 비해 차체가 작고 높은 출력을 자랑해 고속 기동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반면엔진이 가스터빈식이라 소음이 크고 연료소모가 많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된다.육군 기계화학교 80대대가 보유한 31대의 러시아제 전차는 96년 9월 당시 러시아에서 사용하던 무기 및 부품,차제 등을 그대로 들여왔다.공산권의 신예 전차를 철저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다. 포탑의 해치가 열리더니 부사관인 전차장이 상체를 드러냈다.전차모를 쓴 모습이 영락없이 북한군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전차모에 연결된 통신체계도 러시아제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대대의 K-1A1전차와 소통이 안되는 치명적인맹점을 지녔다.이 때문에 실전에서는 단독 작전에만 투입될수밖에 없다고 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포탑 전면에는 공산권 전차 특유의 서류가방 크기의 복합폭발반발장갑(ERA)용 화약통이 수없이 붙어있다.상대편 포탄이 장갑에 부딪히는 순간 이 화약도 함께 폭발,장갑의 피해를최대한 줄이기 위한 것이다. 전차장과 포수,조종수가 각각 앉은 자리는 몸을 옆으로 돌리기도 불편할 정도로 매우 좁다.온통 러시아말로 적힌 내부 기기들도 K-1A1 국산 전차와 비교해 구형이라는 느낌을 준다.하지만 T-80U 전차를 모는 전차병들의 사기는 어느 부대보다 높다. 전차장 신남석(辛南錫·28)중사는 “특이한 전차모를 착용하고 날렵한 전차를 모는 것이 너무도 신난다.”면서 “국산 전차는 그것대로,T-80U는 이것대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제80전차 대대장 김기동(金基東·학군22기) 중령은 “K-1A1이 좋으냐,T-80U가 좋으냐고 묻는 게 가장 난처한 질문”이라면서 “러시아제 전차를 운영·관리하면서 장·단점을파악해 최고 성능의 국산 전차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80대대의 임무”라고 말했다. 장성 김경운기자 kkwoon@ ■도입배경과 운영실태. [러시아제 무기 도입배경]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시절 러시아에 빌려준 14억 7000만달러(1조 9110억원 상당)의 경제협력 차관 가운데 일부를 현물로 상환받는 형식으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때 2억 1000만달러(2730억원) 정도의 신예 무기들을 들여왔다.이에 따라 96년 9월 T-80U 전차 31대,BMP보병 장갑차 33대,휴대용 대공미사일 ‘이글라(IGLA)’ 50기,대전차 유도탄 ‘메티스(METIS)’ 50기가 도입됐다.탄약은5년치를 한꺼번에 확보했으나,부품은 필요할 때마다 사오고있다.제80대대의 한 장교는 “아직 부품이 제때 조달되지 않은 일은 없었지만 한번 주문하면 몇달씩 걸려 운영에 애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산 전차와 장단점 비교] T-80U는 국산 전차(62.6t,1200마력)에 비해 중량이 작고 고출력 엔진을 갖춰 기동성이 뛰어나다.하지만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동성보다는안정성과 간편한 사격통제장치 등이 더 절실하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주장이다.5000m에 이르는 사거리도 우리 현실에서는 K-1A1과 같이 1500m면 충분하다는 지적이다.T-80U는 포탄 장전방식이 자동장전식(자동 28발,수동 18발)이라 탄약 병이 별도로 필요없다.따라서 승무원이 국산 전차보다 1명 적은 3명이면 된다.포탄은 작약과 탄두가 분리돼 있으나 자동식이라 연속 장전할 경우 수동식보다 속도가 빠르다. 실전에서 고장 등을 우려해 미국산 전차는 철저하게 수동식을 고집하고 있으나 차세대 국산 전차는아예 무인식이다.연료소모가 많고 탑승자들의 안전·편리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내부설계가 단점이지만 제작비가 서방 전차의 절반인 15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외국산 방산무기의 도입목적] T-80U는 비록 경협차관을 일부 상환하는 목적으로 들여왔으나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이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국산 전차의 성능을 높이는 데 큰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유사시에는 전남지역을 방위하며 독자적인 작전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제80전차 한 장교는 “도입 초기 연구요원들이 전차를 분해에 가깝게 뜯어보고 살펴보면서 성능뿐 아니라 전술,교리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다.”면서 “차세대 국산전차는 무적의 성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종 이상의 외국산 무기를 들여올 때 단순히 성능을 비교해 우열을 가리거나 또는 정치적인 판단으로 기종을 선택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라면서 “T-80U 전차처럼 여러 가지 기종을 운영하며 터득한 경험을 토대로 가장 우수한 국산무기를 조속한 시일내에 만드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육군기계화학교장 윤천득 소장 “성능보다 기여도 높여야”. “외국산 방산무기를 도입하는 것은 국산무기를 전력화하기 위한 전초단계의 작업으로,이것이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이다.” 육군 기계화학교장 윤천득(57·갑종 200기) 소장은 4일 차기 전투기(F-X)사업을 놓고 여러 논란과 의혹이 제기되고있는 데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국산 무기 개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윤 소장은 “러시아제 T-80U 전차는 K-1A1전차와는 통신·부품 등 상호운영체계가 달라 운영 비용이 터무니 없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산무기 전력화를 위한 막중한 역할을 하고있는 데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T-80U를 ‘다른 외국산 전차와 비교할 때 최고인가.’라고 묻는 것은 호랑이와 사자 중에서 누가 세냐고묻는 것과 같은 우문”이라고 강조했다. 윤 소장은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우수한 성능의 전차를 갖고 있는가보다는 ▲한반도의 지형 등 환경 조건에 적합한 것인지 ▲전차병들이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지 ▲조작 능력이 제옷을 입는 것처럼 숙달됐는지 등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윤 소장은 “전차전에서는 먼저 보고,먼저 쏘는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라면서 “이는 공중에서 혼자 싸우는 전투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여 운용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그는 “이 점에서 K-1A1 전차는 우리의 모든 조건과 능력에 맞게 잘 만들어진 전차로서 이를 운영하고 있는 전차 부대원들의 전투력과 사기는 어느 나라보다 높은 편”이라면서“T-80U는 그런 최고 국산 전차를 만들기 위해 제몫을 다하고 있는 우수한 성능의 전차”라고 말해 기술수준 및 성능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경운기자. ■'T-80U' 제원-중량 46t…최고시속 85㎞. T-80U는 지난 85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으나 베일에 싸여있다가 서방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90년 대독일전 승리 45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였다. 이 신예 전차가 러시아 밖으로 수출된 것은 96년 9월 우리나라가 처음이었다. 현재 T-80U를 보유한 국가는 중국(200대),키프로스(41대),파키스탄(300대)등에 불과하며,북한은 이보다 2단계나 구형인 T-64와 개량형인 ‘천마호’를 보유하고 있다.같은 3세대급인 국산 K-1A1 전차와 비교할 때 전반전인 성능은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육군기계화학교 제80대대는 러시아 신예전차인 T-80U 31대가 도입되던 96년 11월 전남 장성지역에서 창설됐다.부대원들은 160여명이며 사병은 8주간 기본 기갑교육을 받은 뒤 2주간 전문교육을 받고 배치된다.부대 운영과 훈련이 다른 부대와 달라 특수부대로서의 자긍심이 크다.
  • 서울대박물관 학술강연회/ 오세창선생 편집 근역서휘·근역화휘

    근역서휘(槿域書彙)와 근역화휘(槿域畵彙)는 독립운동가이자 해방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초대 사장을 지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 선생이 우리나라 역대 인물들의 필적과 그림을 모아놓은 서첩과 화첩이다. 서첩에는 강감찬 이황 윤선도 한석봉 등 당대 명인들의글씨가,화첩엔 정선 신사임당 강세황 심사정 신윤복 등 대가들의 그림이 포함돼 있어 가히 한국 서화의 보배로 불릴 만하다.보통의 보배는 그냥 있는 것으로 족하지만 문화의 보배는 그 제작·편성의 뿌리를 알아야 진정한 빛이 난다. 그러나 일제 말기 이후 서울대박물관이 보관해온 이들 두 서첩·화첩은 지금까지 오세창 선생이 편집했다는 사실외에는 탄생 배경과 편집.증보 과정 등은 베일에 가려져있었다.작품 하나하나의 근원을 설명하는 해제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달 8일부터 열고 있는 ‘근역서휘 근역화휘명품선'을 계기로 2일 서울대박물관이 개최한 특별학술강연회에서 몇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공개됐다. 우선 근역서휘 편집목적이 위창의 문화적 차원의 독립운동 모색에 있었다는 것.이날 발표에 나선 진준현 서울대박물관 학예관은 “위창은 한일합방후 독립운동 차원에서 문화·교육적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 것 같다.”고 추정한다. 그 근거로 서첩에 있는 양한묵의 ‘근역서휘서’란 글을든다.양한묵(梁漢默.1862∼1919)은 위창과 함께 3.1운동당시 33인중 한 사람이다. 근역서휘서엔 “위창 선생의 가슴속의 한 점 진정을 보게 되면 옛 사람으로 하여금 수명을 잇게 할 뿐 아니라,오늘날 온 근역 강산의 고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란 뜻의글이 씌어 있다.진 학예관은 “여기서 근역은 무궁화동산을 뜻하므로 양한묵의 글은 일제치하에 점차 잊혀져가는우리 문화를 수집,보존,연구하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근역서휘 저본(底本)이 되는 두 서첩이 있었다는사실이다.이는 오세창 선생이 필적 하나하나를 모은 것이아니라 저본 서첩을 토대로 근역서휘를 편집했다는 것을의미한다. 진 학예관은 근역서휘에 포함된 몇 편의 머리글을 근거로, 이정신(李正臣.1660∼1727)과 생존 연대를 알 수 없는남태보(南泰普)란 사람이 각각 수집한 ‘해동필적'(海東筆蹟) ‘간독첩’(簡牘帖)이 근역서휘를 있게한 저본임이 분명하다고 추정한다. 세번째는 근역서휘가 1911년 1차 완성된 후 여러번 증보되었다는 사실이다.즉 근역서휘는 1권에서 23권까지 일단마무리된 후 5차례 증보를 거쳐 37권으로 책수가 대폭 늘었다.이는 서첩의 표제와 서문 등이 모두 1911년에 이루어졌다는 점,발문이 23권 말미에 붙어있다는 점,서첩을 장정한 종이가 1∼23권까지는 무늬가 있는 한 종류인데 비해증보된 책은 무늬가 없는 종이로 이루어져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근역서휘와 근역화휘는 위창이 편집한 후 진주의 수장가다산(多山) 박영철(朴榮喆)씨가 소유하게 됐고,박씨가 당대의 서화가들과 교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미루어 증보작업은 박씨가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실제 증보된 서첩엔 서예가들이 박씨에게 준 글이 여러 편 실려 있다. 67명의 그림이 실린 근역화휘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기 때문에 편집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진 학예관은 전통적인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의 시각으로 볼 때 근역서휘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편집은 천(天) 지(地) 인(人) 3권으로 하되 각권 수록 순서는 대체로 시대순을 따랐다.다만 지첩(地帖)에만 말미에 그림이 없는 백지가 여러장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앞의 천,지 두 첩이 먼저 편집되고,그 후 다시 모인 그림을 인첩으로 편집한 듯 하다.진 학예관은 “아직 서화첩 내용을 해제하는 작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근역서휘,근역화휘의 정확한 실체가 모두 파악된 것은 아니다.”며 “그 내용과 성격에 대해 보다 면밀한 조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사설] 국민경선 좌초 안된다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국민참여 경선제는 정치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정치실험이었지만 25일 김중권 후보가 사퇴한 데 이어 이인제 후보의 ‘중대 결심설’이 제기되면서 총 7만명중 15.6%인 1만911명만이 투표한 가운데 파행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 후보 진영은 김 후보가 사퇴한 뒤 ‘민주주의의 꽃인 경선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한편 ‘온건 중도의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지향성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당의 노선 문제도 제기했다.이 후보측은 26일 후보사퇴 압력설과 노무현 후보의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치 공세를 계속했다.이 후보측으로부터는 ‘(사퇴) 의지가 결연하다.’는 말과 ‘끝까지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는 상반된 이야기가 동시에 흘러 나오고 있다.지금까지 경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후보의사퇴설만으로도 경선은 이미 절름발이가 된 상태다.하지만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떠한 이유로도 국민경선을 좌초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경선이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지역연고주의와 근거가제시되지 않은 음모론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연고주의와 정략적 정치 행태가 부각된 것은충남지역 경선을 전후해서다.광주 시민과 당원들이 영남출신 후보를 선택,지역연고주의 극복의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그 희망은 이 후보의 연고지인 충남과 대전에서 철저히 부서졌다.충남·대전지역의 몰표로 이 후보는 선두에 서게 됐지만4월중 집중적으로 투표가 행해지는 영남지역에서 거꾸로 싹쓸이 당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이 후보가 충남·대전에서 지역연고를 자극했는지 여부를 떠나 그곳에서 나타난몰표 현상이 부메랑이 되어 이 후보의 발등을 찍게 된 것이다.또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당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싸늘한 반응을 얻게 된 것도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국민경선은 하향식 의사 결정방식과 밀실정치가 고착화된정당정치의 두꺼운 벽을 뚫고 나온 정치선진화,정치발전의새싹이다.민주당의 ‘정치 흥행’ 때문이 아니라 국민경선이 갖는정치적 의미를 생각할 때 국민경선제는 끝까지 치러져야 한다.경선 과정의 어려움도 극복 못하면서 시시각각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고 후보 경선에 나섰다면 국민들이 수긍하지 못할 것이다.더욱이 경선 과정에 파행을 불러일으킨 이 후보 진영은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경선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만일 음모론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경선 과정에서 근거를 제시하면서싸워야 할 터이다.후보들은 이런 점들을 잘 헤아려 국민경선이 무산되지 않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 [씨줄날줄] ‘3월 식목일’

    나무심기가 본격화되면서 식목일 조정 논란이 일고 있다. 식목일을 3월15일 전후로 앞당기자는 의견이 공감대를 넓혀간다. 지구 온난화로 나무 심는 적기가 달라진 만큼 식목일도 조정해 보자는 것이다.3월1일이면 나무심기가 시작되는남부지방에선 식목일이면 사실상 식목 행사가 모두 끝나게된다.중부지방 역시 산림청이 제시한 식목 기간이 3월10일부터 4월20일까지로 식목일이 나무심기에 기폭제 역할을 못하기 십상이다.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 보면 식목일 조정은 더욱 절실해진다.언 땅이 녹을 무렵에,물오름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무를심어야 착근이 잘 돼 생존율이 크게 높아 진다고 한다.버들피리를 불던 추억을 떠올려 보면 ‘4월 나무심기’는 절기상 너무 늦다.산림청에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명중 3명이식목일을 선택해 나무를 심는다고 한다.아무래도 나무심기가 시작되는 3월로 식목일을 옮겨 열기를 고조시키는 것이좋을 것 같다. 식목일을 처음으로 정해 놓고 나무를 심기 시작한 나라는미국이다.지금부터 130년전인 1872년 미국의 중북부 네브래스카주에서 개척민이 4월10일로 날을 잡고 대대적인 식목행사를 폈다고 한다.주변이 스텝기후로 모래가 섞인 토네이도라는 회오리 바람을 줄여 보려는 의도였다.네브래스카주의 식목 행사가 지구촌으로 퍼져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식목일을 지정해 놓고 나무심기에 안간힘이다. 식목일이 처음 지정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1년이었다. 미군정이 들어서 4월3일의 식목일을 지금의 4월5일로 바꿨다.24절기의 청명(淸明) 무렵으로 전통적으로 나무심기에적절하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여기에 신라가 삼국통일을이룬 날(음력 2월25일)이나 조선조 성종이 서울 동대문 밖선농단(先農壇)에 나아가 백성들을 격려했던 날의 언저리라는 의미가 배어 있다고 한다. ‘3월 식목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1960년 헐벗은 산림을 복원하기 위해 3월15일을 ‘사방의 날’로 새로 두면서공휴일로 지정해 식목일 노릇을 하기도 했다.식목일을 기어이 3월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시들해지는 나무심기 열기를추슬러 보자는 것이다.1991년엔 국민 한 사람이 3.2그루의나무를 심었지만 97년3그루,그리고 지난해엔 2.6그루로 매년 줄고 있다.지독한 황사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처음 식목일을 두었던 미국 사람들도 모래 바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한다.이번 식목일에는 아무쪼록 나무를 많이 심어야겠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박은식선생 역사서 ‘渤海太祖建國誌’ 공개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주필 및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실전(失傳) 저서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와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등 2권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19일 김도형(金度亨)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전후기에 활동했던 한 원로사학자의 후손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름만 전해진 이 책들을 입수했다고 밝히고 실물을 공개했다. 두 권의 저서는 박은식(朴殷植) 선생이 한일합병 직후인1911년 만주 서간도 지역인 환인현(桓仁縣)으로 망명,훗날대종교의 3대 교주가 되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머물면서 저술한 6권의 역사서중 일부로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와 함께 실물이 유실된 상태였다. 이번에 발굴,첫 공개되는 책은 두 저서를 합본한 것으로책 겉표지에 만주 봉천 ‘흥동학교(興東學校) 소장’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으며 서론에 이어 본문이 들어가는 첫머리에 ‘백암 박기정 저,단애 윤세복 열(白庵 朴箕貞 著,檀崖 尹世復 閱,박기정은 박은식선생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이라고 필자를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책들은 1910년대 단군민족주의를 확립해간 박은식 선생의 역사관을 밝히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하고 “특히 민족사의 계통을 단군과 이를 계승한고구려,발해를 중심으로 체계화하고 만주를 우리 역사 무대로 파악하는 등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견해를 이 책들을통해 펴고 있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 전체를 영인한 내용과 이를 분석한 논문을 ‘동방학지’ 114호에 발표할 계획이다. 신연숙기자yshin@
  • 타계한 獨소설가 루이제 린저

    지난 17일 타계한 소설가 루이제 린저는 1911년 4월 30일 독일 피츨링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기의 루이제 린저는 정신착란으로 30년 동안이나 갇혀 지내야 했던 비극적 시인 흴덜린과 니체에 심취했으며 철학자들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1939년까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교직에 있었으나 자신의 새로운 교육방법이 문교당국과 학교의 간섭으로 난관에 부딪치자 좌절감에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고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처녀작인 ‘파문’이 2차대전이 일어난 다음해에 완성되었으며 곧 유명해졌다.그러나 나치 군국주의가 감상적이고 종교적인 작품은 용납하지 않는다며 그의 작품을 판매금지 조처했다.또 남편마저 반사회주의로 낙인찍혀 투옥되었다.러시아 전선으로 끌려간 남편은 그곳에서 사망하고 린저 역시 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는다.린저는 종전 후 ‘옥중기’를 통해 이때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그의 문학 세계는 자신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인류의 세계사적 비극에 눈을 돌리게되었다.1950년 린저는 ‘생의 한가운데’를 발표해 전후 독일 문단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나아가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켰고 1953년에는 ‘다니엘라’라는 소설로 다시 한 번평단의 주목을 받았다.린저는 여기서 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인류의 구원이라는 큰 문제에 관심을 두었는데 린저는 이 문제에 천착하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1954년,루이제 린저는 현대음악계의 거장인 칼 오르프와재혼했다. 이후 현실참여적인 문학활동과 정치적 활동을 계속했다.1980년에는 북한을 방문,김일성 주석과 특별한 교분을 맺기도 했다.또 반정부 세력의 필수 교재가 된 ‘또하나의 조국’이라는 책을 집필했다.책에서 ‘북한에 다녀오자마자김일성주석을 사상과 실천의 대안이자 제3의 길임을 알게됐으며 김일성주석을 알고 인류의 미래를 믿게 됐다’는극도의 찬양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비판을 받기도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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