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6.25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3살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400명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2형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물맛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597
  • ‘4월의 6·25전쟁영웅’ 터키 공군 중위

    ‘4월의 6·25전쟁영웅’ 터키 공군 중위

    국가보훈처는 ‘4월의 6·25전쟁영웅’에 무자페르 에르된메즈 터키 공군 중위(1922~1951)를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에르된메즈 중위는 1950년 9월 당시 한국전쟁(6·25전쟁)에 참전한 터키 여단의 일원이자 전방 항공통제 임무를 부여받은 2명의 공군 장교 중 1명이었다. 그는 전방항공통제관으로 복무하면서 조종사로 참전하기를 원했다. 에르된메즈 중위는 1951년 1월 미군 극동사령부 명령에 따라 미 제8군 사령부에 배속됨과 동시에 제452폭격전대 예하 제729폭격대대에 배치됐다. 1951년 2월부터 B26 ‘인베이더’ 폭격기를 조종한 그는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의 북한 중부·동북부 지역 공격 명령에 따라 그해 2월에 1회, 3월에 15회, 4월에 9회 출격했다. 그러나 에르된메즈 중위는 1951년 4월21일 교량 파괴 임무에 따라 평안남도 순천군 북동쪽 철도를 폭격하던 중 적의 대공포탄에 기체가 피격돼 전사했다. 황기철 보훈처장은 다음 달 1일(현지시간) 고인의 이름을 따 학교명을 지은 터키 ‘무자페르 에르된메즈 중학교’를 직접 방문해 고인의 동상에 헌화·참배하고, ‘6·25전쟁영웅 선정패’를 전달할 예정이다.
  • 군부대 LPG 공급업체에 일관된 조건 적용해야

    군부대 LPG 공급업체에 일관된 조건 적용해야

    군부대가 LPG 공급업체에 계약조건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아 10억원 정도의 공급설비 대가를 받지 못한 업체를 방치하는 것은 위법·부당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9일 서울과 경기 남부 지역 군부대로부터 LPG 공급설비 대가를 받지 못한 공급업체에 대해 설비 인수 등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도록 강원 원주 소재 A부대에 시정권고 했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A부대는 LPG 공급계약 공모가 유찰되자 B업체와 수의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B업체는 특수계약 조건에 따라 이전 공급업체의 충전탱크와 공급 설비를 계약규모 보다 더 많은 비용으로 인수했다. 이후 계약기간이 끝난뒤 A부대가 C업체와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이 업체는 공급설비 인수 대금의 일부만 인정하고 새로 설치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며 특수계약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B업체는 1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게 됐다며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다수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미리 마련한 특수계약조건은 계약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부대가 특수계약조건을 공급업체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해 B업체의 피해를 방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LPG 공급과 관련한 특수계약조건 운영 전반에 대해 조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토록 상급 부대에 의견표명을 했다. 한편 권익위는 이날 전통사찰의 대웅전 한가운데로 지적선이 설정돼 있을때는 지적선을 기준으로 사찰 건물을 철거할 것이 아니라 지적선을 바로 잡아 사찰을 보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고려시대 전통사찰의 주요 건물 한가운데로 설정된 지적선 바깥 부분을 철거하라는 명령에 대해 이를 취소할 것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권익위는 898년에 창립된 사찰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종교시설로 이용됐고, 이후 여러차례 국비와 도비 등을 지원받아 보존, 관리됐으며 지적선을 변경하더라도 소유권 분쟁이 없는 점 등을 확인했다. 이에 해당 지자체에 사찰 건물에 대한 철거명령을 취소하고 지적선을 현황에 맞게 변경하도록 의견을 표명했다. 임규홍 권익위 고충민원심의관은 “역사적 의의를 가진 전통 사찰에 대해 철거명령을 내릴 때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단양 곡계굴 한국전쟁 희생자 유해발굴한다

    단양 곡계굴 한국전쟁 희생자 유해발굴한다

    충북 단양군이 6.25 한국전쟁 당시 영춘면 곡계굴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 발굴을 추진한다. 29일 군에 따르면 상리 6-8일대는 2006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희생자 유해발굴 가능지로 분류한 곳이다. 충북도와 군은 사업비 1억2500만원을 투입해 오는 4월 말까지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한다. 군은 전날 유족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굴 시작을 알리는 개토제를 가졌다. 곡계굴 사건은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년 1월 7일, 인민군이 피난민 대열에 위장해 합류할 것을 우려한 미군이 가곡면 향산리 도로를 탱크로 봉쇄하면서 시작됐다. 피신이 어려운 피난민들은 자구책으로 곡계굴로 피신했고, 이후 1월 20일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민간인 다수가 희생됐다. 전쟁기간 공문서가 멸실돼 폭격으로 인한 곡계굴 희생자를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군이 신청인 및 참고인 조사를 통해 확인한 희생자는 167명이다. 미연고 희생자를 포함하면 3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군은 미군 폭격이 있던 날을 기억하기 위해 곡계굴 입구에 위령비를 세우고 2003년부터 매년 합동위령제를 열고 있다. 군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곡계굴 사건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발굴된 유해는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될 예정”이라며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고 유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유해 발굴 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국제의용군 모욕 말라”…한국인 자원자, 육대전에 사진 공개

    “국제의용군 모욕 말라”…한국인 자원자, 육대전에 사진 공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모집한 국제의용군에 자원한 한국인이 스스로 “신념에 따라 참전한 것이니 모욕하지 말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27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는 ‘저는 우크라이나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의용군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국제)의용군에 간 한국인들을 마치 인기몰이 또는 영웅심리 따위에 가득 차 우크라이나에 간 놈들이라며 의용군을 모욕한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신념을 알려주기 위해 글을 보낸다”고 육대전에 요청했다. 육대전에 따르면 글쓴이는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자원하기 위해 무단 출국했다가 국경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해병대원과 다른 인물이다. 글쓴이는 “과거 (6·25전쟁 때)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 처한 우크라이나가 권위주의 러시아에 침략당했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과거 소련의 일원이었지만 독립 후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 진영에 들어오기를 희망하고 있다”며 “과거 유엔군의 도움을 받았던 나라의 국민으로서 역겨운 침략에 맞서 싸우고 싶었다. 최소한 대한민국의 1명이라도 이 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해 6·25 때 희생한 (유엔군) 군인들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나 말고도 같이 있는 동료들 또한 마찬가지이며 나와 부대가 다른 한국 의용군들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글쓴이는 자신이 소속된 부대에서 ‘각자 다른 인종이 다른 언어를 쓰지만 모두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왔으며 한마음이다. 이에 우리는 모두 형제이며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침략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국민들을 미워하지 않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에 동조하는 세력, 그리고 러시아 군인만을 증오하고 싸울 뿐이다’ 등의 맹세를 했다고 전했다. 특히 글쓴이는 국내에서 국제의용군에 자원하겠다며 여행금지지역인 우크라이나에 무단 입국한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알고 있다며 “엄연히 법을 어긴 데 대해 잘못을 인지하고 있으며 처벌받아 마땅하고 어떠한 처벌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어떠한 한국인도 우크라이나에 가지 않고 관망만 했다면 국제적인 수치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나라가 공격 받았을 때 우리가 의용군으로 활동한 내용을 말하며 세계에 도움을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포로가 될 경우 우리나라 외교에 부담을 주느니 차라리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며 그렇게 못할 경우 대한민국 국적을 스스로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포로로 살겠다고 강조했다. 글쓴이는 “우리는 사리사욕과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에 왔다”면서 “국제의용군을 모욕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글쓴이는 실명이나 얼굴 등 신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국제의용군 부대원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우크라이나 현지 시내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날짜가 적힌 쪽지 사진을 공개했다. 얼굴을 가린 셀카 사진에서 국제의용군 부대 동료들은 글쓴이가 챙겨간 것으로 보이는 태극기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3월 26일, 육대전 알림’이라는 쪽지와 함께 찍은 사진 속 건물은 폴란드와 접한 우크라이나의 국경도시 르비우의 기차역으로 추정된다.지난 18일 외교부에 따르면 3월 2일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뒤 출국하지 않은 인원이 이근 전 대위를 포함해 9명 파악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근 전 대위와 함께 출국했던 2명은 16일 귀국해 9명 중에 포함되진 않았다. 이후 국제의용군에 자원하러 갔던 것으로 추정되는 1명이 19일 귀국해 8명으로 줄어든 가운데 21일 휴가 중이던 해병대원 1명이 무단 입국한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 외교부가 우크라이나에 협조를 구해 해병대원 A씨의 입국을 우크라이나 측 검문소에서 막았지만, A씨는 폴란드 측 검문소에서 나오지 않고 버티다가 23일 새벽 이탈해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육대전에 제보를 한 글쓴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아직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무단입국자 8명 중 한 명이거나 정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원일 가능성이 있다. 여행금지지역으로 지정된 우크라이나에 무단 입국한 경우 여권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정부는 여권 무효화 및 새 여권 발급 거부 등의 행정 제재를 가할 수 있다.
  • 최악의 ‘6.25%’ 김정은이 밝힌 코로나 후유증

    최악의 ‘6.25%’ 김정은이 밝힌 코로나 후유증

    3점슛 1위 답지 않은 경기력이었다. 아산 우리은행이 3점슛 성공률 6.25%에 그치는 부진으로 코로나19 확진 여파를 보여줬다. 우리은행은 20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열린 2021~22 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전에서 막판 역전에 성공하며 59-55로 승리했다. 양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전력을 다할 수 없던 경기였던 만큼 각종 지표에서 확연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은행은 특히 외곽슛이 문제였다. 3점슛을 32개 던져서 2개 들어갔다. 성공률은 6.25%로 김정은마저 “경기력이 너무 안 좋았다. 정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김정은도 3개의 3점슛을 던져 하나도 못 넣었다. 우리은행은 김소니아 홀로 2개를 성공했을 뿐 나머지 선수 모두 3점슛에 실패했다. 그나마 리바운드에서 집중력을 발휘한 것이 우리은행의 승리 요인이 됐다. 구나단 신한은행 감독도 “우리은행이 마지막 리바운드 싸움에서 확실하게 뛰어드니까 쉽지 않더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높이의 힘을 앞세워 리바운드 44개(공격 리바운드 17개, 수비 리바운드 27개)를 기록하며 39개(공격 리바운드 12개, 수비 리바운드 27개)를 기록한 신한은행을 앞섰다.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3점슛 경기당 평균 8.3개로 전체 1위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최근 코로나19 확진 여파로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날 저조한 3점슛 성공률을 보였다. 이번 시즌 코로나19로 경기가 미뤄진 팀은 우리은행이 유일하다. 선수들이 동시에 걸렸으면 같이 격리하고 준비했으면 됐지만 우리은행은 시차를 두고 확진돼 연습에 어려움을 겪었다. 김정은도 뒤늦게 코로나19 확진이 걸렸다. 김정은은 “늦게 걸렸고 별로 아프진 않았다”면서도 “그런데 후유증이 없는 건 아니다. 운동을 쉬다가 하면 호흡이 달리는데 그것과는 다르더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선수들도 확실히 많이 힘들어하긴 하더라”면서 “가장 빨리 걸린 김소니아가 (확진 후) 2주까진 힘들다고 했다”고 말했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역시 코로나19 확진이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위 감독은 “슛이 안 들어가는 날도 있는데 선수들이 몸도 마음도 힘든 것 같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면서 “다른 팀은 안 걸리는 선수 많은데 어디서 걸렸는지 그 부분에서는 관리를 못했다”고 아쉬워했다.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은행은 이날 승리로 2위를 확정하면서 조금 여유 있게 플레이오프를 대비할 수 있게 됐다. 남은 경기에서는 선수들의 경기 체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위 감독의 계획이다. 위 감독은 “몸 상태가 확실히 다운돼서 걱정이 된다”면서 “플레이오프까지 텀이 있는데 신한은행은 가동 인원이 많고 우리는 선수층이 얇은 게 리스크다. 그만큼의 약점을 보완하는 게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남은 시즌 계획을 밝혔다.
  • 세계 울린 대본 없는 드라마… 생이별의 설움 담은 OST [이호섭의 트로트 숨결]

    세계 울린 대본 없는 드라마… 생이별의 설움 담은 OST [이호섭의 트로트 숨결]

    30여년 만의 혈육 상봉 방송 계기‘아버님께’의 가사 바꿔 명곡 탄생‘신인’ 설운도, 상봉 장면마다 절창하루 만에 히트… 인기가수로 변모방송 관련 영상 등 세계기록유산에전 세계는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공분하고 있다. 그리고 조국을 지키기 위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애국심을 응원하는 한편으로, 노약자들의 피란 행렬이 말해 주는 가족 간 생이별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이런 참상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결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우리 역시 72년 전에 똑같은 생지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6·25전쟁으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겼다. 그러나 남북 간의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뉘고, 설상가상으로 통일이 되지 못한 채 38선을 분계로 휴전이 됨으로써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길조차 원천적으로 막히고 말았다. 그래서 부모 자식과 혈육을 그리는 단장의 노래 ‘잃어버린 30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잃어버린 30년’은 단 하루 만에 만들어져 KBS가 1983년 6월 30일 첫방송을 시작한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 역시 단 하루 만에 히트한 진기록을 가진 노래이다. 아무리 TV와 라디오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한 홍보일지라도, 단 하루 만에 히트한 노래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 노래로 가요계의 기린아로 등장한 가수 설운도는 1982년 서바이벌 오디션 KBS ‘신인탄생’을 통해 등장한 주목받는 신인이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었다. 본명이 이영춘인 설운도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평소 나훈아를 좋아했던 그는 나운도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다가 ‘잃어버린 30년’의 원곡인 ‘아버님께’를 낼 무렵, 음반 제작자의 제안에 따라 예명을 설운도로 고쳤다. 이런 설운도에게 드디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행운의 순간이 다가왔다. 작곡가 남국인으로부터 ‘아버님께’라는 곡을 받아 음반을 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바로 이때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전 세계인을 울린 대본 없는 드라마가 시작됐다. 당시 이산가족 첫 상봉의 분위기를 ‘한국방송 70년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태풍 전야의 적막. 그런 긴장된 순간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별안간 중앙 홀 바깥이 떠들썩하더니 5~6명의 중년 남녀들이 누군가의 이름을 외치며 뛰어들었다. 목이 메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을 진정시킨 후 확인반이 그들을 홀 안으로 안내하는 순간, 출연자 한 사람이 홀 안쪽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마주 달려갔다. 포옹, 통곡, 서로 얼싸안고 다시 이름을 부르며 만남의 기쁨으로 눈물을 쏟는 모습….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생사조차 모르던 혈육을 다시 만난 그 벅찬 반가움과 헤어져 살던 서러움이 한데 뒤엉켜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감동적인 장면…. 그것은 어느 드라마의 극적 장면보다도 진했다.’눈물겨운 상봉 장면을 지켜보던 설운도의 음반 제작자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바로 작사가 박건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님께’의 가사를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에 맞게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박건호는 당일로 다음과 같이 가사를 바꿔서 가져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 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 한 정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단 하루 만에 면모를 일신한 ‘잃어버린 30년’을 설운도는 눈물의 상봉 장면마다 절창해 단 하루 만에 히트시켰다. 4시간 45분간의 첫 생방송 동안 850가족이 출연, 36건의 상봉이 이뤄졌다. 급한 김에 반주(MR)를 새로 녹음할 겨를이 없어 ‘아버님께’ 반주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날부터 설운도는 아예 방송국 근처에 대기한 상태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끝난 11월 14일까지 4개월간 이 곡을 수백 번도 넘게 불렀다고 한다.138일 동안 생방송으로 방영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세계 방송 사상 미증유의 대기록을 수립했고, 이 프로그램과 관련된 영상물과 사진 등 기록물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설운도는 이후 파죽지세로 상승하던 인기가 한때 꺾여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으나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필자가 작사하고 설운도가 작곡 및 노래한 ‘원점’이, 전국노래자랑에서 이 노래를 부른 오세근에 의해 화제의 곡으로 크게 히트할 무렵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필자가 작곡, 김병걸이 작사한 ‘다함께 차차차’로 다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를 계기로 이전에 발표한 ‘마음이 울적해서’, ‘나침반’, ‘혼자이고 싶어요’ 등이 다시 사랑을 받았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 간의 이별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에 나서고 있다. 이렇게 러시아의 무력침공에 대항하는 한편으로는 노약한 부모님과 아이들을 국경 밖 안전한 지역으로 소개시키기 위한 피란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으로 인해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참상과 상흔을 우리 기억과 몸속에 내상(內傷)으로 간직하고 있다. 72년 전 우리가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전쟁은 사람의 목숨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과 인륜은 물론 우리의 꿈과 희망마저 모조리 파괴한다. 이로써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을 때는 언제든지 침략을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국제사회로부터 지지와 협조를 받을 만한 외교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잃어버린 30년’을 통해 72년 전 갈기갈기 찢겼던 우리의 뼈아픈 과거를 본다. 작곡가·문학박사
  •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개관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개관

    경기 이천시는 11일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와 지역문화기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천시 설봉공원 360-1 일원에 지하 1층, 지상3층 연면적 규모로 1346.25㎡규모로 사업비 66억5000만원을 들여 지난해 12월에 건립됐다. 2층에는 무형문화재 전시실과 전수교육실 그리고 실내공연장, 3층에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사무실과 예능종목 연습실이 조성되어 있다.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6호 벼루장, 제41호 사기장, 제49호 목조각장, 제50호 이천거북놀이 등 모두 4종목이 입주했다.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은 지난 2018년 문화재청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문화재청과 경기도, 이천시가 힘을 합쳐 추진한 사업이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인 이천거북놀이 보존회의 풍물 공연으로 시작한 개관식에서는 전수교육관을 수호하고 전수교육관이 이천 시민들의 전통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우뚝 서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장승을 세우고, 교육관에 나쁜 액은 막아주고 건강한 기운일 가득차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박바가지를 밟는 문굿행사로 문을 열었다. 이어 실내공연장에서는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립에 대한 경과보고, 개관 유공자 감사패 수여, 기념사 및 축사, 개관 축하 공연, 시설 관람 등이 진행됐다. 시 관계자는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은 공예 및 민속예술 부분 유네스코 창의도시인 이천의 시민과 함께 우리 전통의 멋과 흥을 경험할 수 있는 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의용군에 시민권 발급”…‘가짜사나이’ 이근, 우크라 시민될까

    “의용군에 시민권 발급”…‘가짜사나이’ 이근, 우크라 시민될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략군에 맞서 참전하는 외국인에게 군용 여권으로 거주 허가와 더불어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의용군이 되겠다며 무단으로 출국해 논란이 된 이근 전 대위의 우크라이나 시민권 신청 여부도 주목받게 됐다. 8일(현지시간) 우크라 우크린포름·영국 가디언을 종합하면 예벤 예닌 우크라이나 내무부 제1차관은 러시아 침공에 맞서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입국하는 외국인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제 군단’(international legion)이라고 칭하는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받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예벤 예닌 차관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발급한 군용 여권을 통해 거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참전 외국인 중 우크라이나 시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크라이나 법안 심사를 거쳐 시민권을 발급할 것”이라며 외국인 의용군 참여를 독려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현재 외국인 의용군이 약 2만명이며 세계 52개국에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이근, 곧 여권반납명령 통지 우크라이나 전역은 지난달 13일부터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돼, 한국 국민이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없이 입국하면 행정제재 및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정부는 이근에 대해 현재 소지 중인 여권에 대한 반납 명령, 미반납시 여권 무효화, 새 여권 발급 거부 및 제한 등의 행정제재를 가할 수 있다. 외교부는 이근에 대해 여권법에 따른 행정제재를 진행 중이며 형사고발도 추진하겠고 밝혔다. 유튜브 ‘가짜사나이’로 이름을 알린 이근은 출국 전 외교부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에 대해 문의도 하지 않고, 무단으로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했다. 이근과 함께 출국한 2명 역시 조만간 신원이 특정될 것으로 보인다. 6·25전쟁 때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이근 이근은 매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생활 모습을 올리고 있다. 이근은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뒤 “6·25전쟁 당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도와드리겠다”라고 썼다. 한국전쟁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속해 있었다. 당시 소련은 북한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 이근은 자신의 우크라이나행을 두고 네티즌들의 설전이 이어지자 “안 가면 안 간다고 지×, 가면 간다고 지×. 역시 우리나라 사회의 수준”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 ‘우크라이나 참전’ 이근 전 대위, 과거 예비군 불참 전력

    ‘우크라이나 참전’ 이근 전 대위, 과거 예비군 불참 전력

    러시아의 침공 전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된 우크라이나에 의용군으로 참여하겠다며 출국한 이근 전 대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과거 ‘예비군 훈련 불참’ 전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근 전 대위는 지난 6일 유튜브 채널과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ROKSEAL은 즉시 의용군 임무를 준비했다”면서 우크라이나를 향해 출국한 사실을 공개했다. 특히 그는 여행금지 지역이 된 우크라이나에 허가를 받지 않고 들어갈 경우 여권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의 강한 반대를 느껴 마찰이 생겼다”,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협박을 받았다”는 식으로 정부를 비난했다. 이후 외교부가 여권 무효화 등 행정 제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근 전 대위는 “시간 낭비하면서 여권 무효화하는 것보다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나 고민해보라”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이근 전 대위 일행이 현행법과 정부의 방침을 어겨가며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것을 놓고 “용기가 대단하다”며 박수를 보내는 반응도 있었지만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는 무모한 선택”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특히 그를 비판하는 의견 중엔 과거 그의 예비군 훈련 불참 전력을 거론하는 반응도 있었다. 그는 과거 페이스북 댓글로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당시 지인이 “켄(이근)도 못 피해가는 예비군”이라는 댓글을 달자 “한번 안 갔다가 체포되고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다”는 답글을 남긴 것이었다. 예비군 훈련을 이유 없이 거부할 경우 예비군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등에 처해진다.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뒤 인스타그램에 “6·25전쟁 당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쓴 글도 논란이 됐다. 한국전쟁 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처럼 이근 전 대위의 우크라이나행을 두고 네티즌들의 설전이 이어지자 그는 댓글을 통해 “안 가면 안 간다고 지×, 가면 간다고 지×. 역시 우리나라 사회의 수준”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한편 외교부는 이근 전 대위가 정부의 사전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그의 여권에 대한 행정제재를 진행 중이며 향후 여권법 위반 관련 형사 고발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우크라 도착한 이근 “안 가면 안 간다고 지×, 가면 간다고 지×…우리나라 수준”

    우크라 도착한 이근 “안 가면 안 간다고 지×, 가면 간다고 지×…우리나라 수준”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참여하겠다며 우크라이나로 출국한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출신 이근 전 대위가 자신의 행보를 비판한 네티즌을 향해 날선 반응을 보였다. 이씨는 지난 7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 ‘ROKSEAL’을 통해 “저의 팀은 우크라이나에 무사히 도착했다”며 “6·25전쟁 당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이제는 우리가 도와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외교부는 시간 낭비하면서 우리 여권을 무효화하는 것보다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나 고민해 보라”며 “우리는 최전방에서 전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야간투시경도 계속 요청했으나 수출 허가를 못 받았다”며 “따라서 미국 정부에서 야간투시경을 지원받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앞서 전날 이씨는 “최초 대한민국 의용군”이라며 우크라이나 의용군 지원 사실을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공식 절차를 밟아 출국하려고 했으나 한국 정부의 강한 반대를 느껴 마찰이 생겼다”며 “처벌을 받는다고 우리가 보유한 기술, 지식, 전문성을 통해서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지 않고 이 상황에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도해달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에서는 “외교부 방침에 반하는 무모한 선택”이라는 비판과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응원이 엇갈렸다. 네티즌들의 설전을 두고 이씨는 댓글을 통해 “안 가면 안 간다고 지X, 가면 간다고 지X. 역시 우리나라 사회의 수준”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한편 우리 외교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커지던 지난달 13일부로 우크라이나 전역에 ‘여행금지’를 뜻하는 여행경보 4단계(흑색경보)를 발령했다. 1~3단계 여행경보와 달리 4단계는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우리 국민이 4단계 발령 국가에 외교 당국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입국하거나 체류할 경우 여권법 제26조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거나 여권법 19·13·12조에 따라 현재 소지 중인 여권에 대한 반납 명령, 여권 무효화, 새 여권 발급 거부 및 제한 등의 행정제재를 가할 수 있다 외교부는 “국민은 현재 우크라이나가 전시임을 엄중히 인식하고 여행금지국인 우크라이나에 허가 없이 입국하지 말 것을 재차 당부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씨는 2018년 대통령경호처 경호안전교육원 교관단 감사장을 받았으며, 2020년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에서 훈련 교관으로 활약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 “벌 받겠다” 이근, 전쟁 폭발물죄 적용시 최대 ‘사형’

    “벌 받겠다” 이근, 전쟁 폭발물죄 적용시 최대 ‘사형’

    이근 예비역 대위는 7일 SNS에 “저의 팀은 우크라이나에 무사히 도착했다. 6.25 전쟁 당시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이제는 우리가 도와 드리겠다. 살아서 돌아간다면, 책임지고 그 처벌을 받겠다”고 말했다. 이근은 “외교부는 시간 낭비하면서 우리 여권을 무효화하는 것보다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나 고민해보라”며 “우리는 최전방에서 전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행금지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입국하면 여권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받을 수 있다. 실제 전투에 참여해 수류탄 등 무기로 러시아군을 사망하게 하면 한국법에 따라 사전죄(私戰罪)를 넘어 살인죄, 폭발물사용죄까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세 가지 죄 모두 예비 혹은 음모만으로도 처벌 대상이다. 형법 111조는 사전죄를 저지르면 1년 이상 유기금고에 처하고, 이를 사전모의한 경우 3년 이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전쟁과 관련해 폭발물사용죄를 저지를 경우 처벌 수위는 사형 혹은 무기징역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 등이 전투를 하다 러시아군에 만약 붙잡힌다면 러시아 정부에 의해 포로로 수감되거나 경우에 따라선 별도의 처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로 오는 외국 용병들은 국제법상 군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체포 시 최소한 형사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여권 무효화) 관련 규정에 따라서 법적인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며 “여권법 제26조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거나 여권법 19·13·12조에 따라 현재 소지 중인 여권에 대한 반납 명령, 여권 무효화, 새 여권 발급 거부 및 제한 등 행정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글로벌 조커’ 표현까지 등장한 李 우크라 대통령 폄하 논란

    ‘글로벌 조커’ 표현까지 등장한 李 우크라 대통령 폄하 논란

    이준석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이 후보” 비판이재명 “표현력 부족…사과”외신 “사과해도 발언 사실 변하지 않아”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토론회 발언을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5일 진행된 TV 토론회에서 우크라이나에 귀책사유가 있는 것처럼 발언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외신도 이들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고 있으나 향후 대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한국의 외교책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선 후보와 그의 주변 발언에도 주목하는 것이다. ● 이준석 “이 후보, 외교적 결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8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두고 이 후보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귀책사유가 있는 것처럼 발언한 것을 두고 “외교적 결례”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이 후보”라며 “세상이 모두 러시아 잘못을 가리키는 와중에 혼자 윤 후보 한 번 공격하겠다는 생각으로 우크라이나 탓을 하다가 국제사회에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해지게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방장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던데 ‘글로벌 조커’가 되려나보다”라고 꼬집었다. 이 후보는 앞서 지난 2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2차 외교·안보 분야 토론회에서 “우크라이나에서 6개월 된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며 “외교의 실패가 전쟁을 불러온다는 극명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 프로그램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 후보가 드러낸 외교적 무능·무지가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러시아를 비난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 정치권, 신출내기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에 귀책사유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이야말로 외교적 무능을 야기할 수 있다”며 “해외 사이트에서 이 후보가 이렇게 유명해지는 것이 부끄럽다. 국민의힘을 비판하려다가 외교적 결례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 “이 후보 사과했지만 발언 사실 변하지 않아” 실제 지난 25일 문제의 발언이 나온 토론 이후 영문 매체 등에는 이 후보의 발언뿐 아니라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판 발언 등을 언급하는 기사가 보도됐다. 한 영문 매체는 “추 전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에서 대통령을 잘못 택해 전쟁이 발발했다’며 ‘국가 안보에 우려를 일으키는 윤 후보를 뽑지 말라’고 적었다”고 국내 상황을 전했다. 실제 추 전 장관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외교란 국내정치의 연장”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국내 분열과 극한 대립이 외교적 위험과 전쟁을 초래한 것이다. 지도력이 부족한 코메디안 출신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나토 가입을 공언하여 감당하지 못할 위기를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또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보라. 그들의 대통령은 이전에 코미디언이었다. 인기에 갑자기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우크라이나는 영토와 국민을 잃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단순히 인기있거나 좋아 보이는 이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도 보도했다. 박 의원은 같은날 지역방송 kbc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좀 보라”면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잠깐 인기 얻어서 갑자기 대통령 된 코메디 출신 배우다. 그 때 인기 있어서 대통령 됐다.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에 서방 지도자들이 모여서 회의하는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초대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적대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뺏기고 국민들은 전쟁에 휘말려 있다”고 했다. 매체는 “이 후보는 ‘러시아의 침공이 정당화될 수 는 없다’며 사과했다”고도 했다. 다만 “민주당에서 윤 후보을 비난하려 젤렌스키 대통령을 활용했다는 사실이 그렇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尹 “우방국 도움 필수…李 조롱으로 ‘국제 망신’”李 “표현력 부족…우크라 안녕 기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전날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을 응원한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이 후보의 발언을 비판했다. 윤 후보는 “70여년 전 6.25 전쟁에서 우리가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유세계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이었다”며 “에티오피아와 같이 먼 나라의 젊은이들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 땅에 와서 피를 흘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 안보 위기 시에는 우방국들의 도움이 필수”라며 “민주당과 이 후보는 다른 나라의 비극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하하고 조롱해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 토론 발언을 두고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폄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저는 어느 대선 후보보다 먼저 명료하게 러시아 침공을 비판했고 우크라이나 지지 입장을 밝혀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의와 다르게 일부라도 우크라이나 국민 여러분께 오해를 드렸다면 제 표현력이 부족했던 것”이라며 “국가의 주권, 독립과 영토보전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침략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적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하루속히 군사 공격이 중단되고 외교적 해법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녕을 지지하고 기원한다”고 했다.
  • 국가유공자 운구 차량 경찰이 에스코트 한다

    제주도에서는 앞으로 국가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경찰이 운구 차량을 에스코트 한다. 제주경찰청은 25일 경찰청 한라상방에서 ‘국가유공자 예우를 위한 운구 차량 경찰 에스코트’ 협약식을 열었다. 협약식에는 제주보훈청, 광복회 제주지부, 대한상이군경회 제주지부,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제주지부, 특수임무유공자회 제주지부, 6·25참전유공자회 제주지부, 월남전참전자회 제주지부 등 보훈 기관·단체장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고기철 제주경찰청장은 “나라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다 하신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절대 외롭지 않도록 최고의 예우로써 에스코트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보훈청은 국가유공자 유가족에게 경찰 에스코트 지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유족이 원할 경우 경찰에 에스코트를 요청하기로 했다. 경찰은 유족의 요청이 오면 오토바이나 순찰차 등으로 운구 행렬을 호위한다. 앞서 제주서부경찰서는 2016년 국가유공자 운구 차량 에스코트를 시행했으나 6년간 총 58회에 그쳤다. 이는 홍보가 부족했고, 경찰에게 부담을 준다는 등의 이유로 보훈청이나 유가족들이 신청을 주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6·25 비정규 특수부대 ‘켈로부대’ 유족들 공로금 받는다

    한국전쟁(6·25) 당시 활약한 ‘켈로부대’ 등 비정규 특수부대의 부대원과 유족 160명에 대해 처음으로 공로금이 지급된다. 국방부는 지난 23일 비정규군 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켈로부대원과 유족 등 비정규군 공로자 160명(본인 143명, 유족 17명)에게 총 15억 7000만원의 공로금 지급을 의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비정규군의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첫 보상 조치로, 공로금은 전쟁 당시 공적이 유사한 백골병단 보상법의 사례를 참고해 1인당 1000만원 내외로 결정됐다. 비정규군은 1948년 8월 1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적 지역으로 침투해 유격과 첩보 수집 등 비정규전을 수행한 조직 또는 부대에 소속된 사람을 뜻한다. 켈로부대를 비롯해 미 8240부대, 미 중앙정보국(CIA) 첩보부대(영도유격대), 미 극동공군사령부 첩보부대(6004부대) 등과 비정규군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비정규전을 수행한 것으로 인정한 조직이 해당된다. 켈로부대는 미 극동군사령부가 1949년 6월 1일 북한 지역 출신자를 중심으로 조직한 북파공작 첩보부대로, 미 8240부대와 연계해 6·25전쟁 중 수많은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켈로부대원도 한국 정부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도록 특수임무수행자 보상법을 개정하거나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고, 정부는 지난해 4월 ‘6·25 비정규군 보상법’을 제정했다. 켈로부대와 미 8240부대 등 법 적용 대상 부대원은 1만 8000명에 이르며 이 중 생존자는 3200여명이다. 사망자는 유족이 대신 보상을 받게 된다.
  • 족보, 진술로도 6.25 참전사실 확인

    족보, 진술로도 6.25 참전사실 확인

    제적 등본과 6.25 참전 증명서상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참전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참전 증명서 뿐만 아니라 족보, 인우보증인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참전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는 21일 부친이 6.25전쟁에 참전했는데도 제적 등본상 이름과 징용해제통지서 등에 기재된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참전 유공자 등록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6.25 전쟁 당시 노무자 신분으로 참전한 A씨가 1990년 사망하자 자녀 B씨는 2016년 국가보훈처에 참전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제적등본상의 이름과 징용해제통지서 등에 기재된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참전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국가보훈처는 이에 근거해 참전유공자 등록을 거부했다. 그러자 자녀 B씨는 권익위에 부친의 참전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고충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권익위는 인우보증인의 진술을 직접 확보하는 등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적등본과 징용해제통지서에 기재된 인물이 동일인으로 추정된다며 참전사실을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의견 표명했다. 그럼에도 국가보훈처가 참전사실을 인정하지 않자, 결국 B씨는 중앙행심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중앙행심위는 제적등본과 족보, 징용해제통지서 등에 작성된 이름과 생년월일 등이 일치하고, 유족들이 징용해제통지서와 종군기장 수여증을 70년 이상 보관해왔으며, 인우보증인들이 동일인물이라고 진술하는 점을 들어 A씨의 참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권익위는 “참전 사실이 고충민원 조사와 행정심판을 통해 뒤늦게나마 확인됐다”면서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 이뤄지도록 힘써겠다”고 밝혔다.
  • 72년 만에 전달된 6·25 무공훈장

    72년 만에 전달된 6·25 무공훈장

    6·25 전쟁에 참전해서 낙동강 전투 등에서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군인에게 수여된 무공훈장이 주인을 찾지 못하다 72년 만에 유족에게 전달됐다. 경기 안산시는 6·25 참전유공자인 고 홍순철(1928∼1950) 하사의 유족에게 금성화랑 무공훈장을 72년 만에 대리 수여했다고 15일 밝혔다. 홍 하사는 1947년 입대한 뒤 육군 제8사단 소속(현재 오뚜기부대)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공비 토벌과 낙동강 전선 침공 저지에 공을 세우고 아군의 북진 공격 시도 등 반격에 기여했으나 1950년 7월 15일 전사했다. 전사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1950년 12월 30일자로 무성화랑·금성화랑 2개의 무공수훈 훈장 대상자로 선정되며 상병에서 하사로 2계급 특진했다. 전시에 훈장이 유가족에게 전달되지 못했다가 국방부의 ‘6·25전쟁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 사업’에 따라 72년 만인 지난 14일 조카인 홍일호씨에게 전달됐다. 홍씨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삼촌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애써 주신 국가와 안산시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화섭 안산시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와 유족들의 숭고한 뜻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 72년 만에 전달된 6·25 참전 무공훈장… 고 홍순철 하사 유족에 수여

    72년 만에 전달된 6·25 참전 무공훈장… 고 홍순철 하사 유족에 수여

    6·25 전쟁에 참전해서 낙동강 전투 등에서 혁혁한 전공 세우고 전사한 군인에게 수여된 무공훈장이 전시라서 전달되지 못하다가 72년만에 뒤늦게 유족들에게 전달됐다. 경기 안산시는 6·25 참전유공자인 고(故) 홍순철(1928∼1950) 하사의 유족에게 금성화랑 무공훈장을 72년 만에 대리 수여했다고 15일 밝혔다. 홍 하사는 1947년 입대한 뒤 육군 제8사단 소속(현재 오뚜기부대)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북한군 공비 토벌 및 낙동강 전선 침공 저지에 공을 세우고 아군의 북진 공격 시도 등 반격에 기여했으나, 안타깝게도 1950년 7월 15일 전사했다. 전사 이후 공적을 인정받아 1950년 12월 30일 자로 무성화랑·금성화랑 2개의 무공수훈 훈장 대상자로 선정되며 상병에서 하사로 2계급 특진했다. 이후 70년 넘게 서훈되지 못한 훈장은 국방부가 유공자·유공자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하는 ‘6·25전쟁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 사업’에 따라 72년 만인 지난 14일 조카인 홍일호(반월신문 회장) 씨에게 전달됐다.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서 전투에 참전하거나 접적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등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뉜다. 훈장을 대신 받은 조카 홍일호 씨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삼촌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애써주신 국가와 안산시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화섭 시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와 유족들의 숭고한 뜻을 절대 잊지 않겠다”라며 “보훈가족의 예우와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 코로나 팬데믹 예언자의 일침 “안전·위험, 구원·파멸은 다르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 예언자의 일침 “안전·위험, 구원·파멸은 다르지 않다”

    치명적 바이러스·집단감염·마스크3년 전 소설 속 묘사, 현실과 닮아“현실은 내 소설보다 더 기이했다”새로운 유형의 변종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친다. 종교 단체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확진자는 급증한다. 학교는 휴교하고 여객기 운항은 취소된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돌아다닐 수 없다. 지난 2년여간의 코로나19 팬데믹을 연상케 하는 이 내용은 놀랍게도 중국에서 첫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10개월 전인 2019년 1월 출간된 미국 스릴러 소설 ‘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에서 묘사한 풍경이다. 책은 3년 만에 국내 번역 출간됐지만 팬데믹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자인 한국계 미국인 토스카 리(한국명 이지연·53)는 8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집필 당시엔 설마 이런 현실이 실제로 일어날까 예상하지 못했고, 책이 나온 이후 소설보다 더 기이한 현실이 펼쳐졌다”고 돌아봤다. 미국에서 화장지 사재기가 일어나고 마스크 착용이나 백신 접종이 정치 문제가 될 줄 몰랐다는 그는 “책을 통해 반대 개념인 인류의 구원과 파멸, 온전한 정신과 광기, 안전과 위험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2020년 미국 ‘인터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한 소설 속 상황은 암울하다.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풀려난 치명적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정신 착란과 치매를 일으키고, 지옥 같은 상황이 종교집단 ‘신천국’(New Earth) 교주 매그너스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신천국 밖으로 추방당한 여성 윈터 로스가 매그너스와 맞서는 이야기는 박진감 넘친다. 속편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토스카는 “2016년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순록의 사체에 있던 탄저균이 풀렸다는 뉴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며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쫓겨난 젊은 여성이 외부 세상에서 다시 새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떨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상황을 허구로 단정한 그였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기이한데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작가의 의붓딸 중 한 명의 이름을 딴 소설 속 주인공 윈터 로스는 강인하고 재치 있는 캐릭터다. 작가는 “슈퍼 영웅보다는 한 용기 있는 여성이 역경을 극복해 나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영학계의 석학인 이상문 네브래스카대학 석좌교수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폐쇄적인 북한이 팬데믹으로 가장 이득을 본다는 한 미국인의 대화를 소설에 넣어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인생 대부분을 네브래스카주에서 보낸 작가는 “6·25전쟁 당시 열한 살이던 아버지가 북한군에 죽을 뻔했다”며 “많은 미국인이 북한 지도자의 핵 야망과 위협을 우려하는 등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을 18차례 정도 방문했다는 그는 또 “한국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일부로 한국 음식, 문화, 케이팝을 사랑한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영문학,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리더십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원래 발레리나가 되려 했지만 청소년기에 부상을 당해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와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대화하다가 문득 독자들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몬’, ‘하와’, ‘유다’ 등 히트작을 낸 그는 “다음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에서 싸웠던 미군 포로들의 우정과 희망에 관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 팬데믹 예견한 ‘라인 비트윈’ 작가 토스카 리 “현실이 내 소설보다 더 기이했다”

    팬데믹 예견한 ‘라인 비트윈’ 작가 토스카 리 “현실이 내 소설보다 더 기이했다”

    새로운 유형의 변종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친다. 종교 단체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확진자는 급증한다. 학교는 휴교하고 여객기 운항은 취소된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돌아다닐 수 없다. 지난 2년여간의 코로나19 팬데믹을 연상케 하는 이 내용은 놀랍게도 중국에서 첫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10개월 전인 2019년 1월 출간된 미국 스릴러 소설 ‘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에서 묘사한 풍경이다. 책은 3년 만에 국내 번역 출간됐지만 팬데믹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저자인 한국계 미국인 토스카 리(한국명 이지연·53)는 8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집필 당시엔 설마 이런 현실이 실제로 일어날까 예상하지 못했고, 책이 나온 이후 소설보다 더 기이한 현실이 펼쳐졌다”고 돌아봤다. 미국에서 화장지 사재기가 일어나고 마스크 착용이나 백신 접종이 정치 문제가 될 줄 몰랐다는 그는 “책을 통해 반대 개념인 인류의 구원과 파멸, 온전한 정신과 광기, 안전과 위험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2020년 미국 ‘인터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한 소설 속 상황은 암울하다. 알래스카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풀려난 치명적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정신 착란과 치매를 일으키고, 지옥 같은 상황이 종교집단 ‘신천국’(New Earth) 교주 매그너스와 관련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신천국 밖으로 추방당한 여성 윈터 로스가 매그너스와 맞서는 이야기는 박진감 넘친다. 속편도 국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토스카는 “2016년 시베리아 동토층이 녹으면서 순록의 사체에 있던 탄저균이 풀렸다는 뉴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며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쫓겨난 젊은 여성이 외부 세상에서 다시 새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떨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소설 속 상황을 허구로 단정한 그였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 기이한데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작가의 의붓딸 중 한 명의 이름을 딴 소설 속 주인공 윈터 로스는 강인하고 재치 있는 캐릭터다. 작가는 “슈퍼 영웅보다는 한 용기 있는 여성이 역경을 극복해 나가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이야기가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 경영학계의 석학인 이상문 네브래스카대학 석좌교수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폐쇄적인 북한이 팬데믹으로 가장 이득을 본다는 한 미국인의 대화를 소설에 넣어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인생 대부분을 네브래스카주에서 보낸 작가는 “6·25전쟁 당시 열한 살이던 아버지가 북한군에 죽을 뻔했다”며 “많은 미국인이 북한 지도자의 핵 야망과 위협을 우려하는 등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을 18차례 정도 방문했다는 그는 또 “한국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일부로 한국 음식, 문화, 케이팝을 사랑한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영문학,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리더십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원래 발레리나가 되려 했지만 청소년기에 부상을 당해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와 좋아하는 소설에 대해 대화하다가 문득 독자들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데몬’, ‘하와’, ‘유다’ 등 히트작을 낸 그는 “다음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에서 싸웠던 미군 포로들의 우정과 희망에 관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혼불’ 7년 2개월 월간지 최장 연재총 10권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작가 “조상의 삶이 수놓여진 글” 생이 끝날 때까지 집필에만 몰두 어릴 때 지낸 전주에 문학관 건립호남 노래·풍속 등 생생하게 풀어힘든 서민의 생활 아름답게 표현“글 속 문장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밤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 최명희 ‘혼불’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최명희길을 걷다 중앙초등학교 옆의 작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 홀리듯 앞으로 향하면 부채문화관이 나온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최명희 문학관’이 나타난다. 예스러운 기와집이야 한옥마을 전체가 다 그러하니 크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 앞에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치게 된다. 문학관의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데 아마도 그 자리가 옆집에서 부쳐 온 부채의 바람이 드나드는 바람목이지 싶다. 바람을 따라 찾아온 누군가의 혼백 아니 도깨비불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길목이어서인지 그곳은 늘 생과 사가 공존하고, 먼저 간 사람의 마음까지도 매만져 볼 수 있는 자리다. 부채의 바람결에 실려 있는 최명희의 문장들 덕분이다. 남원의 혼불 문학관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 문학관을 찾은 것은 바로 그 ‘바람’과 ‘푸른 불’ 때문이었다. 문학관이 표방한 ‘작가가 다시 살러 온 집’은 그리하여 누구라도 계속 머물 것만 같고, 떠났던 이가 돌아와 여장을 풀며 몸과 마음을 바람에 말리는 장소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신의 음성, 차마 못다 한 말들이 부채가 일으킨 공명을 타고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눈 밝은 이들이 찾아드는 것이다.‘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봤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서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종발만 한데, 빛살 없는 푸른색이며,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중략) 이것이 미신이냐 실화냐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최명희 ‘나는 왜 ‘혼불’을 쓰는가’ 소설가 최명희는 1947년 전북 전주시 화원동에서 출생했다.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사범병설중학교, 기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전주 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중, 보성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 제1부가 당선됐다. 교직을 그만두고 혼불 창작에만 매진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부터 5부까지 연재했다. 이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만 7년 2개월)다. 1990년에 혼불 제1부와 2부를 발간했으며 1996년에 혼불 제1부부터 5부까지 총 10권(한길사)을 발간했다. 이는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이다.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혼불’ 작가 후기 최명희의 주요 작품으로는 ‘몌별’, ‘만종’, ‘정옥이’, ‘주소’와 마지막으로 ‘혼불’이 있다. 혼불은 10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미완성된 작품이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기 직전까지 혼불의 제5부를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가 된 이후 생이 끝날 때까지 ‘혼불’을 구상하고 집필에 몰두했던 최명희는 1998년에 난소암의 발병으로 51세에 사망했다. ‘혼불’ 제5부 완간 4개월을 앞두고 암이 발병했지만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하다 1996년 12월에 혼불의 마지막 부분을 썼다. 그가 죽었으니 제5부가 마지막일 뿐, 그가 살아 있었다면 혼불은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책이 출간되자 일부에서는 ‘완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은 아직 완간이 아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해방 공간 이후 6.25, 4.19, 5.16 등 가까운 현대사까지 이어져 한국사의 격동기를 그리게 될 것”이라 말했다. 우리의 풍속을 잃지 않으면서도 격변하는 사회상과 민중의 삶을 잘 그려 냈다는 평에 대하여 작가는 생전에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글은 제가 쓴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아득한 개국의 시원에 웅녀 할머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이 땅의 조상들의 말 없는 한숨, 괴로움, 아픔, 그들이 나서 살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저절로 와서 한 자씩 수놓아져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소설은 이미 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거대한 강물로 저를 붙잡고 있어서 작중의 인물들이 토해 내는 많은 이야기를 주워 담는 것만이 제 역할이었어요.”(‘필’ 1997년 1월호)라고 소회를 밝혔다. 만 17년을 한 작품에 쏟는 열정, 그 때문에 그가 일찍 혼불이 돼 날아갔을까.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장례는 전주시 사회장으로 5일 동안 치러졌다. 전주시청 앞에서 영결식이 열렸고, 고인의 생가와 모교인 기전여고를 거친 시가지 운구 행렬에 이어 전북대에서 노제를 지냈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앞으로 써야 할 글감이 130여개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저쪽에서도 끊임없이 쓰고 있을까. ‘혼불’을 일컬어 ‘한국 혼 일깨우는 이 땅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라고들 한다. 소설 속에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잘 버무리며 생의 질곡과 역사의 너울을 한없이 순정하고도 곡진한 우리말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사, 풍속사, 의례와 속신들을 유장하게 풀어낸 소설의 문장들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라 일컬어진다.또한 ‘혼불’은 호남지방의 관혼상제, 노래, 음식, 세시풍속 등을 생생하게 표현해 내서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름답게’가 아닐까. 최명희는 그 유장하고 지리멸렬했던 한국사와 생활사 그리고 사람살이를 어떻게든 ‘아름답게’ 표현해 내려 평생을 바쳤던 작가다. 단재상과 세종문화상, 전북 예향대상과 여성동아대상, 호암상 예술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육관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1997년에 독자들이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혼불기념사업회가 발족됐고, 이듬해부터 혼불문학제가 개최됐다. ‘혼불’의 배경 지역인 남원시는 2004년 10월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혼불 문학관을 개관했다. 전주시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완산구 풍남동에 최명희 문학관을 세웠다. 최명희 문학관은 2006년 4월에 전주한옥마을에 터를 잡았다. 작가 최명희의 녹록지 않았던 삶과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친필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들, 생전 인터뷰와 문학 강연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여러 작품에서 추려 낸 글이 새겨진 각종 패널들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전시관인 독락재가 있고 지하는 문학강연장 및 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로 꾸며졌다. 한옥마을의 최명희길이 끝나 가는 즈음에 생가터가 있다. 자신의 고향, 생가터에 관하여 최명희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동네입니다. (중략) 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마음에 꽃밭 하나, 활활 타오르는 문장의 불 하나를 지니고 살았던 사람. 그리하여 그 불꽃과 화원을 함께 하늘로 태워 보낸 사람. 우리 곁에는 언제나 ‘푸른 불꽃’으로 남은 사람의 마지막 거처, 최명희 문학관이다. 부채의 바람을 탄 문장들이 이끄는 자리로 오늘의 당신을 초대한다. 바람이 푸른 불꽃을 당신의 거처에까지 가져가 준다면, 그대여 그 뒤를 따라오시라. 소설가 이은선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