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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사후 한반도정세 진단/전문가 좌담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내부의 체제개편은 물론 한반도상황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북한은 「김일성신화」의 종언에 따르는 힘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나갈 것인가.김정일체제는 과연 순탄할 것인가.김일성의 사망이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통일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아니면 긴장고조로 이어질 것인가.서울대 이용필교수(정치학)와 통일정책개발원의 장수련원장,서울신문 통일안보연구소의 이재근소장의 긴급좌담을 통해 김일성 이후의 한반도상황을 다각도로 진단해본다. ◎“김정일체제유지 북경에 달렸다”/남북관계 장기적으로 우리에 유리/경제난 따른 반감 커 민중봉기 가능성도/폐쇄적 사회 한계… 중국식개방 불가피/정부 위기관리능력 극대화 필요… 예멘·동독통일 교훈으로 삼아야 ○「주석사망」 음모의혹 ▲이재근소장=김일성이 82세의 노인이긴 하지만 예상보다 빠른 죽음이었습니다.사인은 심장동맥 경화에 의한 심근경색 즉 심장마비라고 발표됐습니다.하지만 사망 후 34시간이 지나서야 공식발표가 있었고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등 일련의 사태가 혹시 김일성의 사망배경에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일단 이 의문점을 풀기위해 김일성의 사망배경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용필교수=김일성이 노령이긴 했지만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도 건강했고 1주일 전까지 만도 평상적인 활동을 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갑작스런 죽음은 의외입니다.노인이란 역시 예측할 수 없는가 봅니다.핵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문제,김정일에게 권력을 평탄하게 계승시키려는 권력내부의 정지작업,많은 외부인사 접견 등에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컸고 이것이 노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여기에 김정일이 최근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김정일은 자신의 생일 축하모임에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와 관련해 제가 만났던 미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도 김정일의 신변에 무언가 「심각한」 일이 생기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또한 카터 방문시 김성애의 갑작스런 등장,핀란드 대사였던 김정일 동생 김평일의 평양 복귀,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의 재등장 등 최근의 심상치 않은 권력내 동향도 있었습니다.아마도 자연사라면 국제적인 핵문제와 더불어 국내 체제의 불안정,그리고 권력내부의 역학 변화등이 노령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말하자면 50년 이상된 체제내의 「동맥경화증」이 작용한 것이지요. ○체제내 동맥경화증 ▲이소장=다른 측면에서의 설명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장례에 조문을 거절한 것을 근거로 궁정쿠데타의 가능성을 말하는 시각도 있는데요.장원장께서 말씀해주시지요. ▲장수동원장=노령이기에 자연사일 가능성이 많지만 타살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외부에 알려진 김정일의 성격이나 위치로 보건대 김정일을 둘러싼 옹호세력이 충동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지요.이러한 추론의 배경은 김정일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해 왔다는 것입니다.김정일은 평소 핵무기 보유가 북한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가져왔습니다.이러한 김정일의 측근 세력에게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회담이 자극적 행동을 하는 계기를 부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지요.더불어 말씀드린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단순한 외교용 엄포가 아닙니다.핵무기 개발은 북한의 이른바 적화통일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중심고리 전략」에 따른 것입니다.걸림돌 제거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입니다.당초 북한은 이를 위해 고려연방제를 내놓았으나 우리가 들어주지 않자 이를 대신해 핵무기 개발이라는 카드를 내놓은 것입니다.이를 김정일이 주도한 것이지요.하지만 그동안 김정일이 북한내에서 구축한 권력으로 보아 자연사이든 타살이든 김정일이 권력을 계승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이소장=북한 내에서는 거의 신격화되었던 김일성의 죽음이 앞으로 남북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데요.우선 김일성 없는 북한은 어디로 갈 지를 좀 말씀해 주시지요. ▲이교수=섣부른 예측은 위험합니다.우스갯소리지만 김일성이 8일 사망할 것도 몰랐으니까요.하지만 김정일의 권력계승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이제까지 공산국가에서 2인자가 자신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상속자의 형식으로 권력을 계승한 적은 없습니다.상속권력이란 그 만큼 취약합니다.이것이 조심스러운 관찰을 해야하는 이유입니다.또한 앞에서 말씀드렸던 최근 김정일의 잠적이 정치적인 이유라면 장례 당일 그가 장의위원장을 맡은 것을 공식 확인하기 이전에는 그가 권력을 굳혔다는 것을 예측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소련과 중국 등 과거 사회주의권에서는 권력이 혁명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체제변화와 관련,유례없이 극심한 권력투쟁이 있었습니다.이 때문에 김정일의 권력계승 문제는 북한체제의 변화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북한은 ①소련이나 동구형 ②중국형 ③루마니아형 등 3가지 가운데 한 형태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소장=포괄적으로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김정일은 지금까지 아버지의 후광으로 당·정·군권을 장악해 왔습니다.앞으로도 김일성 없이 권력의 장악이 가능할까요. ○권력의 정당성 부족 ▲장원장=중국이 지금까지 북한에미쳐온 영향력으로 볼 때 김정일의 권력계승은 중국의 신임여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중국은 현재 2010년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어야 할 상황입니다.이를 위해서는 한반도가 화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북한 내부에 시끄러운 문제가 생기면 곤란한 것이지요.이 때문에 김정일이 반중 인물이 아니면 비교적 순탄하게 권력을 계승할 수 있다고 봅니다.다만 김일성은 항일투쟁,6·25전쟁을 왜곡해 자신을 영웅으로 미화시킬 수 있었지만 김정일은 세습권력의 상속자로서 권력의 정당성이 부족합니다.더구나 지난 73년 김정일이 등장한 이후 남북비교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자체의 시기별 단순 비교만 해봐도 더 못사는 경제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감이 대단할 것입니다.민중봉기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이렇게 되면 중국도 김정일을 지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소장=북한 군부의 동향도 곁들여서 말씀해주시지요. ▲이교수=김정일의 경우 아마도 독자권력의 유지는 불가능할 것입니다.이를 위해서는 물리력을 가진 군부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테크노크라트의 지지가 필요할 것입니다.따라서 아마도 김정일과 군부,그리고 테크노크라트 세 집단이 김정일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동등한 위치에 있는 집단 지도체제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하지만 이 경우도 역사상 부자계승이 성공한 경우가 없다는 점으로 보아 김정일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타당하다고 봅니다. ○카리스마 별도 없어 ▲장원장=공산국가는 절대 권력자가 없으면 집단 지도체제를 이루지만 속성상 이는 과도체제이며,집단지도가 계속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카리스마가 별로 없는 김정일이 중국식 개방을 취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왜냐 하면 군부와 테크노크라트를 끌어 들이려면 이 방법이 유일하니까요.물론 과도적 집단 지도체제 중에서 제3의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소장=제네바에서의 미·북 회담이 중단되고 남북 정상회담도 사실상 무산됐습니다.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되겠습니까. ▲이교수=김일성이 없는 북한은 앞으로 2가지의 특징적 변화가 예상됩니다.우선 그간 극단적으로 폐쇄적이었던 억압 수준이 낮아질 것입니다.억압을 늦추지 않으면 루마니아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자연히 외부와의 접촉 기회가 많게 되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외부 정보도 늘어날 것입니다.그럴 경우 향후 북한의 체제는 중국식 개방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중국이 북한을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관계를 터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따라서 향후 남북관계는 다소의 기복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소장=북한이 외부적인 긴장을 조성하며 내부체제를 강화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장원장=김정일의 광폭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단기적으로 남북관계는 경색될 것입니다.하지만 권력승계가 마무리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습니다.1∼2개월 정도일 겁니다.그 때 김정일이 권력을 잡으면 남북 정상회담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핵무기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죠.김정일은 김일성에 비해 정상회담에대한 부담이 없습니다.6·25에 대한 책임도 없고 따라서 국제적 제재를 회피하기도 쉽습니다.북한의 대미협상 전략을 보면 첫째는 정전협정의 평화조약으로의 전환,둘째는 주한미군의 철수입니다.우리는 이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지금부터 북한에 대한 역전략을 구사해야 합니다. ▲이교수=우리 체제가 안정되고 견고한 한 김정일을 포함,그 누구도 대남 전략전술을 펴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 입니다.입지가 그 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죠.앞으론 여러 목소리를 들어야지 과거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지금 북한 주민들 사이에 분열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이제는 살 수 없으니 전쟁이라도 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지요.이번에 평양에서 수많은 시민이 오열했다고 하는데,상주가 고통스럽게 우는 것은 대개 자기 설움이 복받치기 때문입니다.김일성이 없는 상황에서의 통제력 강화는 자폭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장원장=김대통령은 김일성이 죽는 바람에 정상회담으로 인한 부담이 사라졌습니다.정상회담이 연기된 것은 국운이 트인 것입니다.북한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이지요.핵무기 문제나 주한미군 철수,경제원조 등의 현안이 일단 유보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잘 대처하면 북한을 완전히 궁지로 몰아 자폭시킬 수 있습니다.북한에 있는 무기는 모두 지하에 있기 때문에 3년 내에 고철이 되고 맙니다.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이 없을 때 공갈을 치는 버릇이 있습니다.전쟁 운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소장=앞으로 우리의 대북전략 내지 문제 해결의 방식은 어떻게 전개돼야 할까요. ▲장원장=통상 비둘기파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파가 기여합니다.실익없는 비둘기파의 목소리는 오히려 분란만 일으키죠. ▲이교수=김일성의 사망에 우리가 지나치게 호들갑 떨 필요가 없습니다.대범하게 대처해야지요.특히 정부가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는 더욱 없습니다.북한의 일거수 일투족을 냉철히 주시하며,미국·일본 등과 대북정책에 있어 긴밀한 조율을 꾀해야 합니다.돌발 사태에 대비하는 대처능력이 중요합니다. ○공산주의 마감예고 ▲장원장=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습니다.오히려 경제안정을 기해야지요.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교수=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독일의 통일,예멘의 통일을 교훈 삼아 남북관계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이소장=김일성이 죽음으로써 동족전쟁에 대한 책임문제와 사과는 어떻게 되는가요. ▲장원장=6·25의 책임을 북한의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김일성이 숨을 거두기 전에 역사와 민족에 대한 책임을 사과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교수=김일성의 죽음은 사회주의 체제가 마감하는 현 추세 속에서 공산주의 마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좌파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지요.
  • 김일성 사망소식이 남다른 두사람

    ◎이북5도민회 강제문의장/“분단 고착 장애물 사라져”/동족상잔 원흉… 정상회담 진의 의심 『남북이산가족의 한맺힌 염원은 한걸음 앞당겨 실현되겠지만 한편으로 김일성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사과를 받아야 할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1천만 실향민들의 정신적 고향역할을 해온 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 강제문 대표의장(72)은 김일성의 죽음을 『남북분단 고착화의 큰 장애물이 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25살때인 지난 47년 공산당학정을 피해 월남한 강의장은 김일성이 좀더 살아 남북화해의 기틀을 정착시켰으면 좋았겠다는 일부 견해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그는 최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 때문에 그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북한공산정권이나 김일성의 본질과 죄과를 망각한 감상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강의장은 이어 오는 25일로 잡혔던 1차 평양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차 서울회담을 약속하지 않았다는 점등을 새겨보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김일성이 진심으로 민족화해를 위해 응하려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김일성이 「불바다」발언 파문때 죽지않고 남북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남북화해에 혹시나 기여하지 않았을까」하는 한가닥 아쉬움을 남긴채 죽은 것을 보면 『김일성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쓴웃음을 짓는 강의장은 『그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남북의 창을 열지를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민족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김일성은 잘 죽었다』고 말하는 강의장은 『김일성은 분명 민족분단의 원흉이요 동족상잔이라는 반역사적인 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살아생전에 꼭 사과와 참회를 받아 냈어야 했다』고 아쉬워 했다. 강의장은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에게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지만 김정일은 숙명을 지닌 인간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김일성이 휘둘러온 절대권력을 그대로 이어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김정일이 당장은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록 김일성처럼 강도높은 주민통제정책을 실시하더라도 올해를 넘기지 못하고 개방과 개혁으로 대내외정책기조를 전환하게되고 따라서 이산가족들의 고향방문이나 제한적인 「만남의 장」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원로 장로회 회장(대한예수교합동)이기도 한 강의장은 일요일인 10일 교회에서 『실향민들의 한풀이 마당이 하루라도 앞당겨지도록 간절히 기도했다』며 말을 맺었다. ◎군번1번 예비역대장 이형근씨/“사죄 한마디 없이 죽다니”/세계유일 분단국 멍에 벗는 계기로 6·25참전용사는 물론 그 미망인이나 유족들이 말하는 북한주석 김일성의 사망에 대한 느낌은 남달랐다. 『김일성은 우리에게는 불구대천지원수입니다.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라는 사실외에도 그가 이 땅에 저질러 놓고 간 일들이 어디 한두가지입니까』 6·25전쟁중 아내와 동생(이상근 당시 대령)을 한꺼번에 잃은 예비역 육군대장 이형근씨(74)는 『당시 참전용사와 그 미망인,그리고 유족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그를 자연사하도록 버려둔 것이 오히려 죄스럽다』고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오늘아침 미국대통령이 사망한 김일성에게 「미국국민들을 대신해 북한주민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는 뉴스를 들었다』며 『아마 미국대통령은 김일성이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UN군 15만2천명,한국군 25만7천명,민간인 86만명을 사상케 한 전쟁 책임자라는 것을 잊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그러나 그는 우리 민족에게 뿐만아니라 죽는 날까지 전세계 평화애호 국민들을 위협한 장본인이었습니다』이씨는 김일성이 최근까지 「핵」문제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했던 사실등을 예로 들고 『사죄한마디 하지않고 사망한 그에게 개인적으로 연민의 정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예비역 육군대장이라는 영예외에 「대한민국 군번 1번(10001)」·「창군의 주역」·「최연소 육군참모총장」등 군최고의 영예를 지니고 있는 그는 6·25전쟁때 2사단장으로 의정부전투에 참가,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기위해 최일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역전의 용사.그는 『현재 우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는데도 아직껏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다』며 『이번 김일성의 죽음이 우리민족에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있도록 국민 모두가 국력을 결집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아직은 체제유지에 급급한 만큼 당장 어떤변화를 기대하기란 힘들 것이라고 밝힌 그는 그러나 북한이 과거 김일성때보다는 개방과 개혁에 눈을 돌려 남북대화등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응해 올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정부와 국민들이 이에 신중히 대처해 나갈것을 다짐했다.
  • 김일성 마침내 죽다(사설)

    북한주석 김일성이 사망했다.갑작스러운 심근경색이 사인이라고 한다.한마디로 놀랍고 충격적이다.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만난것이 불과 20여일 전의 일이다.건강하고 10년은 더 살것같다던 것이 카터의 평이었다.앞으로 2주후면 우리대통령과 분단후 처음이 될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도 가질 예정이었다.핵문제도 실마리가 풀릴것 같던 참이었다.그래서 더욱 충격적인지 모르겠다.그러나 충격보다 더 깊고 아프게 느껴지는 감정은 착잡한 심정 그것이다. ○착잡한 심정이다 김일성.그가 누구인가.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최근 갑작스러운 태도변화의 화해공세로 우리인식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 와 생각하면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한 한반도분단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의 하나였다.적화통일을 위한 6·25남침의 최고 지령자요 지휘자이기도 하다.그로인해 우리민족이 겪고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 희생이 그얼마였던가.그 고통과 희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마침내 이번에는 핵포기와 남북정상회담등으로 그 죄값의 일부나마 치르려 하는것이 아닌가 하던 시기에 사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에대한 평가와 단죄는 후세의 역사가가 할것이다.당장 중요한것은 그의 사망으로 인한 한반도 통일안보상황의 급변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는 일일 것이다.지금 가장 급한일은 그의 사망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그의 죽음이 자연사냐 아니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심근경색이 북한측 발표내용이며 우리정부도 자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외국의 조문을 받지않는다든가 석연치않은 대목도있다. ○북한 변화 시작 신호 자연사일 경우라면 이미 후계자로 굳어져 있는 김정일의 승계로 혼돈의 여지는 있으나 일단은 비교적 신속한 안정을 회복할수 있을 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그러나 핵포기와 개방개혁을 반대하는 강경파의 반발로 인한 정변의 결과라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수 없다.복잡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의 전개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당장의 권력투쟁은 물론 내란사태로의 발전가능성도 충분히 있다.우리로서는 정말 대응하기 어렵고 위험한 상황의 전개가 아닐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의외로 통일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김일성의 죽음이 자연사이기를 바란다.그리고 질서있는 권력승계를 통한 안정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희망한다.그리하여 김일성이 시작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는 핵문제의 해결과 점진적인 대외개방을 계승해 주기를 기대한다.그러나 사태는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줄지 의문이다.자연사이건 정변이건 북한을 지탱해온 최대의 안전판이었던 김일성이 없어진 것이다.그것은 북한은 물론 한반도상황의 대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김일성시대와는 다른 불확실성시대의 시작인 것이다.그러한 대전제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대북및 한반도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할것이다. ○개방개혁 계기되길 우선 김일성의 사망은 그것이 곧 북한의 체제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북한사회주의체제 종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수 있다.그런 의미에서우리는 북한이 질서있고 점진적인 개방과 개혁을 통해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체제로 전환해 가는 계기가 될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적극 유도및 협력하는 장기적인 시각의 정책을 조심스럽게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초미의 위급한 상황인만큼 추호의 빈틈도 없는 만반의 대응을 철저히 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대통령과 정부가 비상안보대책회의를 잇따라 소집하고 전군에 즉각적인 비상태세를 발령하는 등의 신속 대응을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어떤 돌발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보수·개혁파간의 권력투쟁,내란,인민봉기,갑작스런 체제붕괴,혹은 대남도발등 모든 가능성을 상정한 철저한 대응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의연하게 대응하라 김일성의 사망사태로 인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주변강대국들과의 공조 내지는 협조체제강화도 서둘러야 할것이다.한반도정세에 이해관계가 깊은 미·일·중·러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특히 북한에 영향력이 가장큰 중국과의 협력은 한반도 평화와 안보유지의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중국은 북한과의 간접적인 대화창구도 될수있을 것이다. 김일성의 사망은 한반도 분단사의 최대 전환점을 의미한다.가장 큰 변화요,변화의 예고다.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같은 것은 삼가야 하겠지만 정부는 물론 온국민도 최대한의 긴장된 자세를 유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그러나 지나친 흥분은 금물이다.의연한 자세로 침착하고 냉철하게 북한의 사태전개를 예의 주시하며 자신있게 대응해 나가야할 것이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미,북핵봉 제3국서 폐기 요구/일지 보도

    ◎오늘 제네바 3단계서 제안/핵동결 전제 대표부 교환 설치/금수 등 해제… 핵선제공격 포기 【도쿄=이창순·제네바=박정현특파원】 미국은 8일 열리는 북한과의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6·25이후 계속해온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상호 연락대표부를 설치해 외교관계를 개선하며 ▲핵 선제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는등 세가지를 제안할 것이라고 일니혼게이자이신문이 7일 보도했다. 미국무부의 고위당국자는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등 일부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고 대신 북한으로 하여금 현재 개발중인 흑연원자로를 플루토늄 추출이 곤란한 경수로로 전환하고 이미 추출한 연료봉을 모두 제3국으로 이전해 폐기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바 미대표단의 한 소식통도 이날 북한이 핵개발계획을 영구 동결하는 조건으로 북한원자로의 경수로전환지원,경제협력,연락사무소 상호교환설치등을 밝힐 것으로 전했다. 국무부당국자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의 해제와 핵선제공격 포기를 분명히 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는 것과 부응해 연락대표부를 설치하는 동시진행방식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출이 끝난 연료봉은 중국이나 영국,프랑스중 한 국가에 이전해 관리하든지 아니면 콘크리트등을 사용해 저장,폐기시키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한편 북한측 수석대표인 강석주외교부부부장은 앞서 6일하오 제네바에 도착,성명을 통해『핵문제를 포함한 조미사이의 현안들은 어느것을 막론하고 서로의 믿음이 없는데서부터 생긴 오해와 불신에 근원을 두고 있다』며 『북한은 핵문제 일괄타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쌍방은 모처럼 조성된 이번 회담을 결실있는 대화,생산적인 대화를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밝혔다.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차관보등 미국대표단 일행은 7일 하오 도착했으며 김삼훈 외무부핵대사도 이날 하오 도착했다.미·북한은 8일에 이어 9일에 회담을 가진 뒤 12일 또는 13일쯤 회담을 속개할 예정이다. ◎이번협상 순조로우면 9월 외무회담 가능성 【도쿄 연합】 미국의 북한문제전문가인 스코트 슈나이더 평화연구소 연구원은 7일 『3단계 미·북한 고위당국자 회담은 쌍방의 기조연설에 2일이 걸리고 본국조회 등을 위해 1,2일을 거른 다음 재차 협의를 할 것으로 보여져 약 1주일간 계속 될 것같다』고 밝혔다. 슈나이더는 이날 뉴욕에서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가진 회견을 통해 이같은 견해를 밝히고 『이번 협상에서 차기 회담의 기초를 위한 커다란 골격 구축에 성공한다면 8월이나 9월께라도 정치적 레벨,즉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 김영남 북한외교부장간에 외무장관급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많다』고 말했다.
  • 국력바탕 당당히 임하라/이영섭(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남북정상회담이 멀지않아 열린다.6·25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와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왔던 실로 대단한 일이다.얼마나 많은 선량한 백성이 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고 얼마나 엄청난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던가. 북한은 6·25전쟁이후에도 지금까지 국내외적으로 폭력을 휘둘러 남한의 체제를 뒤엎으려 해왔다.우리는 그동안 이러한 행동에 대한 보복을 참고 평화공존을 위해 애써왔다. 북한은 지금까지 남한과 맺은 수많은 합의를 지키지 아니했을뿐 아니라 최근에는 핵무기개발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북한의 문은 자유의 물결이 스며들 수 없도록 꽉 잠겨져 있고 수많은 실향민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몰라 오늘도 애타고 있는 실정이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이웃이 되고있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도 지척에 있는 이산가족의 안부를 알 수 없다니 그 고통이 오죽하겠는가.전쟁이후에도 많은 남한사람들이 납북돼 그 가족들이 슬픔속에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주의와의 대결로 볼 수도 있다.이 두 이념이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융합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지금까지 북한의 행태나 김일성주석의 행적으로 보아 정말 어려울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남북정상이 만나기로 되었다.북한의 김주석이 공산독재주의를 쉽게 포기할것 같지도 않고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으니 그들을 자주 만나서 달래고 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극적인 자세일지는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가 공산독재주의를 이기는 길은 국민이 합심하여 국력을 길러 상대를 압도하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국력이 신장되고 이에따라 북한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게 되면 그것이 곧 공산독재를 이기는 길이다. 현재 남북의 국력에 있어서는 우리가 북한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이점에서 김영삼대통령은 자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김주석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들을 감안할때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꺼번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아주미미한 것일지라도 틀림없이 실천할 수 있는 것 한가지만이라도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 자체가 매우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남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도 가장 합의하기 쉬운 간단한 문제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남북간의 왕래가 자유롭게 허용돼 남북의 어디라도 서로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된다면 그보다 더 소망스러운 일은 없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남북이 정한 일정한 장소에서라도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이렇게만이라도 된다면 우선 남북간에 꽉 막혀있던 숨통이 트이게 되고 앞으로 더 전향적인 일들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굳게 닫아걸었던 빗장을 열고 자유의 바람을 받아들이기를 국민들은 두손 모아 빌고 있다. 최근 남쪽에서도 북한의 김일성을 추종하는 듯한 몰지각한 일부 젊은이들이 있으니 기가 막힌다.정상회담에 관계없이 아직도 끊임없이 남한에 침투하는 공산세력에 대한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되겠다.당국도 이러한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법에따라 단호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아쉽다. 남북정상회담! 얼마나 기다렸고 환상적인 일이냐.남북이 갈라진지 어언 반세기,이제 남북이 서로 만나 가슴을 열어놓고 모든 문제를 얘기할 때도 되었다.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이면서도 여러가지 점에서 여유가 있는 우리가 그들을 관용하고 한 핏줄로서 받아들여야한다. 부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국민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성과를 거두기를 빌며 김영삼대통령의 역사에 길이 남을 장한 걸음을 축하한다.
  • 정상회담 기대 너무 부푼다/이중호(데스크 시각)

    남북한 정상회담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관심을 넘어 뜨거운 열기까지 느껴진다.저마다 바라는 것도 많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말도 많다.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방북대표단에 야당의원을 넣어야 한다거니,통일방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자거니 주문도 많다.『65세이상 실향민들을 북한에 가서 살도록 하자』『남북의 가정주부들이 판문점에서 정기적으로 만나게 하자』『노동집약적 중소기업들을 북한에 진출시키자』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난무한다.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관가 일각에서는 월드컵 축구대회의 남북공동유치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리자는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서울과 평양의 경평축구대회를 재개하고 문화예술사절단을 교환하며 문화재를 교환전시하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모양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생각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다.과연 그리되면 얼마나 좋으랴.그러나 그것들이 정말 실현 가능한 일이며 우리가 그렇게 들떠서 되는지…. 며칠전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국민들이 남북정상회담에 무엇을 바라는 가를 듣고 지혜를 빌리기 위해 여러 사람을 열심히 만나고 있다.그런데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났는데도 말이 서로 달랐다.한사람이 이런 식으로 회담에 임하시오 하면 바로 곁에서 그것은 안되니 이렇게 하시오 하는 것이다』­대통령의 고민을 짐작하게 하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아무래도 너무 흥분해 있는 것 같다.협상이나 회담이라는 것은 원래 상대가 있게 마련이다.이쪽에서 아무리 무엇을 바라고,또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두가 쓸모 없는 일이 된다. 북한은 누가 뭐래도 이데올로기의 사회이다.그것 때문에 실상은 모르면서 그 사회를 동경하는 부류까지 있다.이데올로기의 사회는 모든 언어와 전략을 그 이데올로기의 목적에 맞추게 마련이다. 그들이 「민족」을 말할 때 그 뒤에는 「남조선은 미제국주의자들에게 강점돼 있다」는 주장이 숨어 있게 마련이다.스스로는 우리와의 대화 보다 미국쪽에 매달리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나온다.「군축」도 마찬가지다.10만을줄이든 10만을 남기든 그 속에는 「미군철수」가 깔려 있다.미군이 철수만 하면 남쪽은 제손 안에 있다는 꿈을 꾸는 것이다. 지금껏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해서 이긴 사례는 거의 없다.싱가포르의 이광요 같은 이는 몰라도.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투쟁경력이나 지략에서 김일성을 훨씬 능가한다던 골수 공산주의자 박헌영이 무릎을 꿇었고 민족지도자 고당 조만식선생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심지어 독립투쟁의 영웅 백범 김구선생도 실패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이른바 「적진아퇴 적퇴아진」과 「담담정정」란 모택동전략이 있다.앞의 것은 상대가 굳세게 쳐들어오면 나는 물러서고 상대가 후퇴할 때 그 약점을 친다는 전략이다.뒤쪽은 협상은 어디까지나 협상일 뿐이고 혁명투쟁은 투쟁으로서 계속된다는 뜻이다.물러서거나 협상을 하는 것이 모두 공산혁명투쟁을 완성하기 위한 한 과정일 뿐이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이번 평양회담에 나오는 북한쪽에 그런 저의가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 될 것이라고 경고 하고있다.설사 그렇기까지야 하겠는가마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그것은 김일성이 남북분단의 단초를 제공한 장본인이라 해서가 아니고 민족상잔의 비극 6·25사변을 일으켰다 해서도 아니다.더더구나 1·21사태며 아웅산 만행를 논할 계제도 아니다.그런 것들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마당에 우리가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그들이 스스로 과거를 뉘우치고 진심으로 사죄하면 그뿐이다. 다만 우리 사회가 너무 들뜨거나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조급함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김대통령이 얼마나 어려운 회담을 하러가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마침 흥사단이 귀중한 성명을 냈다.『회담 날 정오 온 국민이 다 함께 회담의 성공과 통일을 축원하는 묵념을 올리자』.
  • 다이어트 아침결식/국민 31.9%가 “영양부족”

    ◎보사부 92년 조사결과 발표/인구 10.9%는 과다섭취로 비만증 국민의 42.8%가 잘못된 식생활로 영양부족이거나 영양과다인 것으로 나타나 정확한 식생활이 요구되고 있다. 보사부가 7일 발표한 「92년도 국민영양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하루 권장섭취열량이 2천1백㎉인데도 영양부족으로 분류되는 1천5백75㎉(75%)미만을 섭취하는 국민이 전년도보다 7.7%포인트나 높은 31.9%였고 영양과다인 2천6백25㎉(1백25%)이상을 섭취하는 비율은 10.9%(91년 12.2%)로 42.8%가 잘못된 식생활을 하고 있다. 영양과다비율이 떨어지고 특히 영양부족상태로 분류되는 비율이 전년에 비해 7.7%포인트나 높아진 것은 지나친 다이어트나 번잡스러운 도시생활에 따른 식사걸르기등 나쁜 식습관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 2천가구 7천2백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 따르면 또 대상자의 3.3%가 하루 한끼를 걸렸는데 직업별로는 군인 결식률이 11.1%로 가장 높고 관리직 8.3%,전문직 4.3%,판매직 3.8%,교통체신업 3.7%·학생 3.2%등이다. 결식률은 아침이 6.3%,점심이 2.7%,저녁이 0.9%였다.아침결식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아침을 먹지 않아야 건강해진다는 그릇된 인식이 일부에 퍼져 있는데다 아침 출근길이 바빠 먹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비만지수(BMI지수=몸무게의 ㎏수치를 m로 표시한 신장의 제곱치로 나눈 것)를 보면 25·1이상으로 비만증세를 보인 국민이 19.6%로 전년의 18.7%에 비해 늘어났다. 주요영양소별로는 단백질·철분·비타민B·C등의 섭취는 충분한 반면 비타민A는 권장량의 81.5%,칼슘 85.1%로 다소 낮게 나타나 녹황색채소,동물의 간,알의 노른자위등과 같은 비타민A식품과 우유등 유제품·잔뼈생선 같은 칼슘함유식품의 섭취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하루에 섭취하는 식품량은 1천97g으로 그 가운데 식물성이 8백82g,동물성이 2백15g으로 전년과 비슷했다.그러나 식물성 식품중에서도 곡류·감자류등 전통식품은 줄어든 반면 과일류·채소류및 조미료의 섭취는 증가추세를 보였다. 동물성 식품의 경우는 육류가 91년의 52.5g에서 58.1g으로 늘어난 반면 우유는 58.1g에서 오히려 51.6g으로 줄었다. 우리 국민의 영양실태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된 69년과 비교해보면 육류는 6.6g에서 58.1g으로 8.8배,어패류는 18.2g에서 85.4g으로 4.7배가 증가,식생활이 서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사부 관계자는 『우리 국민들의 영양섭취상태는 칼슘·비타민A등의 경우 권장량에 비해 다소 낮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그러나 80년이후 식생활형태의 서구화에 따라 성인병증가등이 우려되므로 곡류 영양섭취율을 현재와 같은 65∼70%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식사형태를 연구발전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산가족 오갈길 열어야/강제문(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김영삼대통령의 굳은 의지와 용단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평양에서 열리게 된 것을 우선 크게 환영한다.근 반백년동안 불신과 반목으로 적대속에 살아오면서 쌓인 두꺼운 분단의 벽이 이번에는 허물어질 것같은 흥분과 설레임은 비단 본인만이 갖는 심정은 아닐 것이다. 북측의 「서울 불바다」「전쟁불사」등 거듭되는 망언과 핵사찰 거부등으로 고조된 긴장과 위기감이 정상회담합의를 계기로 반전되어 남북간에 타협과 대화의 기운이 싹트고 큰 전환의 계기가 될 가능성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들뜨거나 지나친 기대로 자칫 잘못하다가는 더 큰 좌절감을 맛보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없지않다. 그것은 북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다.그동안 남북관계는 멀리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제 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때 김구선생이 이용을 당한 일로부터 가깝게는 지난 3월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 이르기까지 북측에 의해 당하기만 했다. 특히 월남실향민들의 김일성집단에 대한 불신감은 골수에 박혀있으며 뇌리속에는 6·25전쟁의 상혼이 여전히 깊게 자리잡고 있다.6·25동란을 아직도 북침전쟁이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83년 10월9일 랭군에서의 테러폭발사건과 87년 1월에 있었던 KAL기 폭파사건은 모두가 다 조작해낸 자작극이라고 역선전을 하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정부당국에서는 모처럼만의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여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남북간에 풀어내야 할 문제는 너무도 많다.그러나 양정상이 마주 앉았을때 최우선과제로 북측의 핵문제 해결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위기상황으로 이끈 이 핵문제의 해결이 타결되지 않을때에 두 정상간의 상봉이 우리 민족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따라서 정상회담의 큰 성격의 하나는 통일논의에 앞서서 핵문제를 확실히 타결하는 회담이 되어야 할 것이다.핵은 한반도 전체를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요소이며 북측의 핵개발을 포기하는데 합의를 못본다면 회담의 성과는 무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핵문제해결도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새삼스럽게 큰 의제로 내걸고 의견교환이니 토론이니 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없다.1992년 남북간에 상호합의로 발표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에서 이미 결정이 난 문제다.문제는 김일성이 합의된 내용을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신뢰성있는 약속을 하면 되는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은 휴지화된 합의내용을 상기시켜 그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여야 할 것이다.핵투명성 보장에 이어 풀어야 할 가장 초미의 과제는 이산가족의 문제이다. 7백50만을 헤아리는 월남실향민은 정든 고향산천과 부모형제를 생이별한지 반세기가 흘렀다.그동안 이산가족들은 남북을 가로막는 인위적 장벽때문에 북한에 계시는 부모님의 생사도 몰라 자식으로서 마땅한 제사조차 지내지 못하고 설이나 추석이면 탄식으로 보내고 있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과 중국등 여러나라는 이미 통일을 이루었거나 상호교류를 전면적으로 허용하고 있다.이제 이 지구상에 우리만이 오직 완전한 단절과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있다. 통일이나 민족화합이라는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은 겨레의 뜨거운 핏줄기가 민족애로 동포애로 발로되어 가슴아픈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할때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가족간의 생사를 확인하고 서신교환을 하며 친혈육을 상봉케하는 인도주의사업에 북측이 이번에는 꼭 호응하여야 할것이다. 개방과 개혁이 그들 체제의 붕괴와 연계하여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북측으로서는 이 문제 역시 내심 꺼려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이 수차 언급한 바와같이 북한을 결코 흡수통일하지 않겠다고 말한 진실성을 믿고 체제붕괴 공포증으로부터 탈피하여 상호신뢰로 이산가족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북측의 핵투명성 보장,이산가족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지면 경제 문화교류의 협력과 증진,군축문제등 모든 난제에 대한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6·25참변의 진상도 남북정상이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 것이다. 모처럼 무릎을 마주댈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은 평양에서만의 단발성이 아닌 서울에서도 회합을 갖는등 지속적인 회담을 통해 상호신뢰감을 쌓고 7천만 겨레의 염원을 원만하게 풀어나가길 두손모아 기원하는 바이다.
  • 이산가족 얼마나 될까/북·만주·구소 합쳐 1천만 추산

    ◎일제때 징병·징용 등 5백만명 “유랑”/대북 상봉접촉 70차례 … 단한번 실현 남북한의 이산가족은 몇명이나 될까. 이산가족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통일원이나 민원창구격인 대한적십자사,1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이북5도민회등 어느 곳도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다만 이들 모두 1천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을 따름이다. 통일원에서는 이산가족의 의미를 ▲8·15이후 38선을 경계로 가족과 친지의 왕래가 단절됐거나 ▲6·25동란으로 월남·월북하여 가족과 헤어진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통일원은 또 이산가족의 수를 1천만명으로 산출하는 근거를 ▲6·25이전까지 월남한 3백50만명 ▲6·25이후부터 1·4후퇴때까지 월남한 피난민 1백만명 ▲당시 행방불명되거나 납치된 30만명등을 합쳐 남한에만 5백만명의 이산가족이 있으며,남북 동수로 보면 이같은 수치가 나온다고 밝히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 90년 남북이산가족 문제를 보다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이산가족 파악을 위한 센서스」를 실시했었다.당시 통계청은 원적이 북한인 실향민을 순수한 의미의 이산가족으로 전제,조사했으며 그 결과 해당자는 모두 41만7천6백32명으로 집계됐다. 통일원은 이에 따라 실향민 한사람앞 5인 가족으로 계산,이산가족을 2백만명으로 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1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에서는 『실향민 한 사람이 결혼해 2세,3세가 태어날수록 이산가족의 숫자는 계속 늘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의 범위를 좀더 확대,해외에 나가 살고있는 사람들과 귀순자들까지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통일원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국권상실로 만주 일본등지로 유랑했거나 ▲2차대전중 일제에 강제징병,징용되었다가 종전후 귀향하지 못한 사람도 5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들가운데 2백만명이 중국,1백50만명이 미국,70만명이 일본,40만명이 옛소련 영토에 거주하고 있다.정부에서는 아무래도 생활여건이 어려운 중국과 옛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남북한은 지난 71년부터 적십자등을 통해 모두 70여차례의 접촉을 갖고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를 추진해왔다.그러나 실제 상봉이 실현된 것은 지난85년의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의 교환 단 한차례였다. 동구 공산제국의 몰락이 시작된 지난 89년 이후에는 중국 미국 일본등 제3국을 통해 1천3백17차례에 걸쳐 북한주민과의 서신왕래나 상봉이 추진되기도 했다.그 가운데 37%인 5백82건만이 성사됐으며 그나마 직접 만난 것은 54번뿐이다. 일부에서는 1천만명이라는 이산가족 숫자가 너무 막연해 오히려 구체적인 상봉대책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핏줄을 중요시하는 우리민족의 심성에 비춰볼 때는 1천만명도 적게 잡은 것인지 모른다.오히려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길 원하는 4천만 전체가 이산가족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라고 통일원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민족 내부행사”…정상회담 「관례」탈피/방북수행원 어떻게 구성하나

    ◎청와대·통일원 중심… 팀컬러 단순화/북선전공세 우려,손여사는 빠질듯 김영삼대통령은 요즈음『모시고 평양에 가겠다』는 사람이 많아 골치가 아플지경이다.장관은 장관대로,청와대 비서관들은 비서관대로 서로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에 끼어야할 당위성을 직소하고 있는 탓이다. 아직 수행원명단을 어떻게 짤것인지 대통령의 지침이 관계자들에게 주어지지는 않았다.그러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운영계획이 조금씩 밝혀짐에 따라 수행원단의 구성도 그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김대통령은 「7·25평양대좌」를 남북한의 신뢰구축과 핵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자리로 의미를 단순화 시키고 있다.또한 남북정상회담을 국가간의 외교문제가 아닌 민족내부 문제로 파악해 모든 의전과 행사를 치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복잡하지 않게 한다는게 대통령의 제일 큰 정상회담전략이다. 때문에 수행원도 청와대와 통일원 중심으로 짜고,일반 외국과의 정상회담 수행원과는 팀컬러가 다르게 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에 할애된 수행원수는 모두 1백명이지만 경호실에서 절반은 차지해야할 것으로 보여 남은 자리는 50명가량이다. 수행원단은 크게 장·차관급인 공식수행원과 실무진인 비공식수행원으로 이루어진다.북한측에선 공식·비공식의 구분을 두지 않고 있지만 공식수행원에게는 특별한 대접을 부탁한다는 뜻에서 차별을 두기로 했다. 공식수행원은 15명 안팎.나머지 85명이 비공식수행원이 된다.비공식 수행원단은 다시 경호·의전·회담(전략)·상황·공보지원등 5개팀으로 구성된다. 공식수행원에 끼일 것이 확실해 보이는 사람은 이홍구부총리·박관용비서실장·박상범경호실장·정종욱외교안보수석·주돈식공보수석·고창순주치의·김석우의전비서관 등이다. 비공식수행원으로는 청와대에서 정세현통일비서관(전략)·김기수수행실장(의전)·이경우의전비서관(의전),김기덕·박진·박영환비서관(공보지원)에게 우선권이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측에서는 구본태통일원정책실장·정시성남북회담사무국장 등이 포함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통신·암호·남북관계실무자들이 집중 선발된다.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함께가더라도 수행원 숫자에 포함되지 않으나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가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다.관계자들은 평양에서 손여사를 위한 별도의 일정을 만들다간 북한의 선전공세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는 점,회담결과가 좋지 않을때는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을 들어 손여사의 동행에 부정적이다. 대통령의 외국방문에 당연직 공식수행원이던 이양호합참의장은 제외될 것이 확실시 된다.남북간의 화해를 모색하는 자리에 대결의 상징인 군복은 어색하지 않겠느냐 하는 뜻에서이다.그런 이유에서는 국방부장관도 마찬가지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경제부처장관과 외무부장관의 수행과 외무부의전팀의 동행여부.청와대의 기류는 이들 모두를 배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당사자들은 반드시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무부장관과 의전장등 외무부 의전팀의 배제론은 이번 회담이 외국과의 관계가 아니라 국내 문제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동서독 또한 정상회담 때 외무부장관이 배석하지 않았다는 게 선례가 되고 있다. 경제기획원장관이나상공부장관·과학기술처장관 등은 회담의 성격을 불분명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경제부처 쪽에서는 남북경협에 대비해 자기들이 가야한다는 생각이다.그러나 그렇게 되면 핵과 경협을 미리 연계하는 것이 되고,회담의 초점을 흐릴 가능성도 있다는게 청와대의 생각이다.같은 이유로 현재까지는 박재윤경제수석도 동행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야의원들의 수행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펄쩍 뛴다.북한이 주장해온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대표단과 비슷해지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강재섭총재비서실장은 관례에 따라 동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청와대수석 중에서는 홍인길총무수석이 물자지원 등을 위해,이원종정무수석은 남북회담이 체제문제라는 점 때문에 수행원에 포함될지 주목되고 있다.이들을 포함시키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김대통령의 판단에 달린 일이다.그러나 이들이 최측근들이란 점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이 수행원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북서 요구…“불순한 목적 없나” 촉각/김 대통령 평양체류 연장될까 김영삼대통령의 평양체류기간이 얼마나 될 것인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패와 연관되어 있는 중대 사안이다. 남북한은 지난 2일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우리 대표단의 북측 지역 체류일정을 「2박3일로 하되 필요에 따라 더 연장할 수 있다」고 합의 했다.연장가능성이 명기된 것은 북한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북한은 무엇 때문에 김대통령을 평양에 오래 머물게 하려는가.그 배경을 안다면 정상회담의 횟수,김일성의 서울 답방,나아가 정상회담의 실질적 성과여부까지 예측이 쉬워진다. 정부 관계자들은 일단 북한의 의도가 좋은 데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김대통령의 평양 체류연장 희망이 정치선전을 위한 것이 아니냐하고 의심한다.특히 25일부터 2박3일을 머물때 체류 마지막날인 27일은 북한측이 이른바 「6·25전승기념일」이라면서 각종 기념행사와 군사퍼레이드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휴전협정일이다.김대통령을 하루라도 더 평양에 묵게해 그런 정치적 행사를 참관시키려 한다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김대통령의 평양체류기간은 김일성의 서울답방과 연관지어서도 분석되고 있다.북측은 김대통령을 평양에 좀더 머물게 함으로써 김일성의 서울방문이 필요없을 만큼 충분한 대화가 이뤄졌다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주려는 의도를 가졌을 수도 있다.한번의 회담으로 남북정상의대화를 끝내고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에서 실리를 챙기자는 목표를 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북측의 의도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여 실질적 성과를 위해 장기체류를 희망한다고 볼수도 있다.그런 생각이라면 남북정상회담은 잠정합의된 2차례를 넘어 3∼4차례,아니 그이상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2박3일도 실질적 논의의 진전에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앞의 우려들이 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정부는 따라서 오는 10일 북측이 구체적 체류일정을 전달해오면 13일 평양에 미리 파견되는 실무자들의 접촉을 통해 2박3일의 평양체류일정을 확정시킨다는 방침이다.정상회담 때까지 체류일정을 확정짓지 못하고 김일성이 김대통령을 만나 『진지한 논의를위해 며칠 더 머물라』고 제안한다면 물러서기 싫어 하는 김대통령의 성격에 비추어 평양체류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김정남 수석의 보수화(청와대)

    김정남청와대교문사회수석은 최근 공식자리에서 『6·25관련문서를 남북정상회담과는 상관없이 공개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6·25관련문서는 북한의 남침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러시아외교문서.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해칠까봐 공개를 유보시키고 있는 문서다. 그는 민족의 이름으로 북한당국을 끌어안아야 하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밝힐 문서는 그것대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정상회담과는 별개로 공개할 것은 공개하는 것이 원칙에 맞다는 이야기다. 청와대 밖에서 김수석은 청와대비서실의 「진보파」로 알려져 있다. 6·25문서 공개에 대한 그의 이같은 입장은 밖에서 자리매김해준 진보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셈이다.그는 북한의 정상회담 수락배경에 대해서도 아직은 「술수」의 차원으로 파악하고 있다.정상회담과 관련해 보수세력이 내놓는 주문보다 오히려 그의 생각이 더 보수적이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의 재야경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재야의 이념과 주장을 대통령의 정책결정과정에 반영시킨다고 생각한다.이런 이유로 김수석은 보수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이념적으로 오도하는 것으로 비판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6·25관련문서의 공개뿐 아니라 정부의 민감한 현안이 되고 있는 노조의 파업문제에 대해 그가 다른 어떤 수석들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현재의 노사갈등을 「1인당 국민총생산 6천∼7천달러시대에 나타나는 마의 분수령」이란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그는 이 「마의 분수령」을 넘어 성공한 나라가 일본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우리만은 이 과정을 생략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또한 지하철과 철도의 파업으로 노사분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은 지금이 7년 넘게 끌어온 노사분규를 극복할 호기로 보는 눈치다.그는 파업현장의 공권력투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석은 구체적으로 현재의 제도상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그가 지적하는 것은우선 해고가 지나치게 어렵게 돼 있다는 점이다.두번째는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노조의 전임자수가 너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잦은 분규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제도적 문제점들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철과 철도의 파업이 수습됐다고 해서 대증요법으로 끝난다면 노사분규는 계속 악순환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수석이 최근의 노사분규에 대해 「단호」「극복」등의 용어와 함께 접근하는 것을 안다면 재야나 노동계는 섭섭해 할 것이다.가장 진보적인 사고를 한다는 김수석이 이런 상황인식을 갖고 있다면 청와대의 정책방향이 어떨 것인지는 계산해보지 않아도 알 일이다. 노사분규에 대한 대응책은 교문사회수석의 직접소관은 아니다.이에 비해 조계사에 대한 경찰투입은 김수석의 소관사항이었다.경찰투입으로 「범종추」측의 반발이 거셀 때 김수석은 경찰을 적극옹호하는 쪽이었다.『폭력이 있는 곳에 경찰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정부의 뜻이기도 했다. 최형우내무부장관의 유감표명으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김수석의 이념적 성향을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될만한 일이었다. 외부의 시각이 과장된 것인지,아니면 그가 청와대에 1년 넘게 근무하면서 생각이 바뀐 것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다만 그는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진보파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 6·25의 비극 다시는 없게해야/홍성유(남북정상회담에 바란다)

    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만약 젊어질 수 있다면」하는 제하의 앙케트성 원고를 청탁받은 일이 있다.정말 젊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잠시 허망한 망상을 굴려본 일이 있지만,다음 순간 내가 겪은 젊음을 또 다시 되풀이 하는 대가로 젊어지는 것이라면 구태여 젊어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나의 젊음이 유달리 참담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나의 젊음이 참담했었다면 그것은 순전히 6·25전쟁 때문이었다.그 비극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가는 여기에 새삼스레 늘어놓을 수가 없지만 바꾸어 말하면,6·25전쟁을 또 다시 되풀이 하는 대가로 젊어지는 것이라면 구태여 젊어질 것도 없겠다 싶은 것이다. 그렇다.6·25와 같은 비극을 또 다시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어떠한 대가,어떠한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 조국분단 반세기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7월25일 평양에서 열리게 되었다. 국제적인 기류의 급격한 변화와 남북 모두의 국내적인 정세변천을 실감하면서 그 첫번째 회담지가 하필이면 평양이냐 하는 다소의 불만과북측의 정상회담 제의가 유엔의 대북제재를 일시적이나마 회피하려는 술책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우심을 가지면서도,우선은 민족적 화해의 장에 한발짝 다가선게 아닌가 싶어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으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믿지도 기대도 하지는 않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을 또 다시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는 절대절명의 명제가 있기 때문에,그나마의 환영의 빛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하지만 그동안 북측이 완고하게 닫았던 철문을 빠끔히 열어 보였다고 해서 이번 정상회담으로 남북간의 오랜 대결의 앙금이 단번에 풀리리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핵문제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가 단숨에 해소되리라고도 기대를 하지 말자. 이산가주의 고통이 아무리 뼈아픈 것이라 할지라도 재결합의 기쁨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미리부터 흥분을 하지 말자. 하지만 우리는 정상회담이 가져 올 화해를 바탕으로 남북간에 가로놓여 있는 여러가지 난제를 하나씩,둘씩 조심스럽게 그리고 슬기롭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한가닥의 희망을 걸어 본다. 남북정상회담 합의의 보도를 접하고 그 의외성에 놀랐으면서도,이를 전적인 낭보로 받아 들이지를 못하고 떨떠름하게 환영의 빛을 보이는 데에는 나로서는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다. 「서울 불바다」를 회담장에서 서슴없이 뇌까린 북측이,카터의 방북을 계기로 무슨 쑥덕공론이 있었는지 돌연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해 온 저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그만큼 우리는 북측에 속아 왔으니 말이다.그 단적인 예가 6·25다.꾸준히 면밀하게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면서 조만식선생과 이주하·김삼용을 교환하자는 평화적인 제스처를 부리고 돌연 남침해 온 것이 그 좋은 예다.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붕괴되었고 붕괴되어 가고 있는 현재와,당시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이 있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역사의 거센 흐름이 냉전의 시대에서 화합의 시대로 흐르고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념은 종언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른바,「주체사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끝나기는 커녕,극히 소수일 망정,남한땅에서까지 「주체사상」을 부르짖는 세력이 있는 판국이다. 아마도 북측은 미군만 철수하면 남한쯤은 어깨만 툭 치기만 해도 뒤로 나자빠질 것처럼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77년 당시 카터대통령의 미군 철군정책에 반대했다가 해임된 싱글로브 전 미8군 참모장의 경고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북한의 김일성이 잘하는 일은 전쟁준비 뿐이며 『남한에 대한 적화야욕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허점을 보이면 그만큼 도발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한 것이다. 다행히 정상회담에 임할 김영삼대통령은 『한개의 원자탄이 아니라,반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아래 굳건한 안보의식과 한·미유대를 다짐하고 있으니 김일성이 아무리 노회할지라도 민주화운동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문민정부의 대통령으로서 꿀리지 않는 의연한 솜씨로,조국의 평화 정착에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북의 과거사」 거론않기로/정부,정상회담 전략 수립

    ◎핵투명성은 반드시 확보/기본합의서·비핵화 이행 주력/“김대통령 전권협상 뒷받침 국회결의 추진” 정부는 오는 7월25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6·25남침등 북한의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핵개발에 대해서만은 과거와 미래 모두 투명성이 입증돼야 한다는 원칙아래 회담을 진행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김영삼대통령이 남북문제및 통일문제에 관해 전권을 갖고 회담에 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한 「국론대통합」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를 단기적 과제인 핵투명성 확보,중기적 과제인 남북관계,장기적 과제인 통일문제로 설정하고 29일 이에 필요한 구체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일에 착수했다. 남북정상회담의 전략 및 대응방안은 통일부총리가 이끄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수립하되 실무적인 뒷받침은 통일원에서 맡기로 부처간 의견조정을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당국자는 29일 『북한의 6·25남침등 과거사를 규명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고 말하고 『그러나 과거사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 논의가 깊이 들어가게 되면 회담의 진행이 어려운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 정상회담은 새로운 남북관계를 여는 출발점이 돼야 하며 그런 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현존하는 위협인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만은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해서도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첫 정상회담에서는 남북한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준수가 주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정상회담에서 이를 합의하면 남북한 사이에 이미 설치돼있는 핵통제공동위원회등 5개 공동위원회를 가동,구체적인 현안들을 풀어간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핵,남북관계,통일문제등 장단기과제들을 의제로 다루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이산가족문제와 경제협력문제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단 오찬에서 참석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김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현안을 의제로 다루기보다는 부담이 적은 과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정부의 또 다른 고위당국자는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국론대통합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히고 이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국회에서의 초당적 정상회담 지지결의 ▲정상회담전 전직대통령을 포함한 각계원로와의 대화를 통한 사전논의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김일성 서울에 와야 한다/유은걸(데스크시각)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과연 서울에 올 것인가. 28일에 있은 남북예비접촉에서 김영삼대통령의 평양방문일정은 확정됐으나 북한 김주석의 서울방문문제는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분명하게 매듭지어야했을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번 정상회담을 꼭 성사시키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그리고 이번회의가 김주석이 직접 TV로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지시하는 가운데 이뤄졌음을 감안하면 북측에 어떤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분단 49년만에 이루어지는 이번 정상회담은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정상들이 상대방 수도를 방문하는 것 역시 이에 못지않게 의의가 있는 것이다.그럼에도 북측은 2차서울회담 합의를 끝내 거부하고 나왔다.신뢰를 잃어버린 북한이기 때문에 항상 의심이 가는 바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그 저의가 더욱 궁금해진다. 저간의 사정으로 미루어보아 김주석은 아예 서울에 올 생각이 없는데다 설령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가 서울방문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자체가 우리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이렇게 될 경우 「하나의 조선,하나의 국가」를 겨냥한 그의 적화통일정책을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게다가 미국과 짜고 북침했다고 몰아세우던 남조선을 찾아가는데 대해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하는가 하는 문제도 상당한 부담을 주고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둘째 미국과의 수교와 경제지원을 노리고 대미협상에 매달린 나머지 우리와의 정상회담은 부수적으로 여겨 서울방문엔 별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설사 그럴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차기 대남협상카드로 써먹기 위해 쉽게 응해오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이밖에 김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정치선전거리로 최대한 활용할 속셈이어서 서울방문은 생각조차 않고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서울에 올 수 없은 것은 그가 TV를 통해 보았거나 말로만 듣던 서울의 발전상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측근들이 이를 적극 만류하고 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그는 6·25때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진격한 틈을 이용,수안보까지 내려왔다가 서울을 처음으로 거쳐간 일이 있다.그가 다시 서울을 찾는다면 적화통일야욕이 얼마나 과대망상이었는가를 실감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가 수백만동포를 희생시킨 전범이기 때문에 서울을 감히 방문할 처지가 못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기의 이러한 전력을 의식,서울방문시 신변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김주석은 사정이 어떻든 반드시 서울을 방문해야 한다.이는 김대통령의 평양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당연한 도리이다.지난 70년 첫 동서독정상회담때 상호교환방문이 있었음을 김주석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의 서울방문 성사는 또 남북한이 앞으로 화해시대에 진입하느냐 못하느냐는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며 4천만 한국민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김주석은 김대통령과 「언제,어디서든 만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김주석은 서울에 와서 6·25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사죄를 해야한다.아직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1천만 이산가족들에게 이제 더이상의 고통을 주지않기 위해 헤어진 혈육과 재회할 수 있도록 인도적인 조치를 취해야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노회한 그가 서울에 와서 조금도 뉘우침없이 갖은 쇼맨십을 발휘하며 위세를 부릴 경우 국민들한테 주게될 실망을 감안하면 차라리 안와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않다. 더욱이 그의 서울방문을 김주석이 남조선을 해방시키기 위해 「현지지도」한 것처럼 북한 선전매체들이 떠들어댈 가능성도 많아 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 북한전문가들이 말하는 의미와 전망(남북 정상회담)

    ◎분단·적대 50년… 「만남」 자체가 새역사/순조로운 진행땐 민족화해 향한 디딤돌/공산당 기본전략 고려 정치적이용 대비/북의 서울회담 확약않는 의미도 새겨야/대좌에만 집착땐 시간낭비 우려… 성급한 낙관은 경계해야 □좌담 참석자 이명영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용필 서울대 교수 박화진 서울신문 논설위원실장 남북한이 다음달 25일부터 3일동안 평양에서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의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함에 따라 국내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전문가인 이명영성균관대명예교수와 이용필서울대교수,박화진서울신문논설위원실장의 좌담을 통해 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을 짚어본다. ▲박화진실장=분단 50년만에 남북한 정상이 만난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특히 문민 대통령이 처음으로 평양땅을 밟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6·25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가장 긍정적인 사건이 될 것으로 봅니다.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북한동포들의 심정이 어떨는지도 매우 궁금한 대목입니다.김영삼대통령의 첫 방북이 남북화해와 공존공영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이명영교수=회담에 앞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북한 노동당의 기본원칙과 협상전술입니다.김일성주석은 공산당의 기본전술에다가 30년대 만주에서 익힌 중국공산당의 유격전 원칙에 따라 적진아퇴,적퇴아진을 철저히 구사하고 있습니다.지금은 특히 한국과 미국이 강력한 제재태세로 밀어 붙이니까(적진) 한걸음 물러서서 대화를 추구하는(아퇴)국면으로 볼수 있습니다.카터의 방북을 통해 미국과 협상국면을 유도해 수세국면에서 탈출하고 이를 위한 보조축으로 남북간 대화무드를 조성하려는 것같습니다. ▲이용필교수=분단 반세기가 지난 적대적인 체제의 정상끼리 만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잘되면 민족화해를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동시에 동북아 국제정세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 아래서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가와연관시켜 봐야 할것입니다.성급한 장미빛 낙관은 금물입니다.북한이 회담에 응한것은 몇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볼수 있습니다.우선 북한은 핵개발에 따른 국제적 압력과 긴장고조에 따른 내외적인 불이익을 해소하려는 것입니다.그들은 정상회담을 남북한 최고위급회담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김대통령을 남한의 여러 정치,사회단체 가운데 하나의 장으로만 본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정상회담 개최논의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여러번에 걸쳐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북한이 진심으로 만나고자 하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이번에 정상회담의 일시와 장소가 합의되었다고 해서 남북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될것입니다. ▲박실장=회담에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북한측이 이번 정상회담을 비록 체제유지등 사회·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카드로 쓰고 있다해도 우리로서는 대화를 유도,통일에 유리한 국면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물론 북한은 시간벌기와 제재완화라는 목적에서보면 이미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죠.그러나 북한이 대화에 나선데는 카터의 역할보다 더 깊은 곳에 북한핵을 무한정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중국의 설득과 한·미의 강경한 제재태세등이 작용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은 대화가 제재보다 효과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수세 벗기 전술일수도 ▲이명영교수=북한은 어찌보면 우리의 정책 흐름을 간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우리정부가 반개의 핵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수 있습니다.또 미국은 북한에 핵이 한두개 있다한들 문제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이 때문에 북한은 대화로 위기 상황을 빠져나가도 되겠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라 정책을 변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용필교수=물론 용의주도한 준비와 경계로써 회담에 임한다면 냉전을 해소하고 통일로 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김대통령은 이미 지난 2월 북한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김주석을 만날 수 있다는 조건부 제안을 했습니다.그러나 북한은 평양에서의 1차회담 이후의 일정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유보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만남에만 집착할때는 과거처럼 소득없는 시간낭비만 하게될 우려도 있습니다. ▲박실장=평양과 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획기적인 사건이 되겠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우리정부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의견을 제기하기도 합니다.또 실제로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용필교수=북한당국은 김대통령이 북한에 가면 이인모노인이 송환됐을 때나 카터전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려 할 것입니다.우리측은 회담시기를 8월중순으로 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간파,7월말로 시기를 잡았습니다.그러나 일시보다는 장소가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독일 통일전에 동서독 정상이 만날 때도 장소를 양쪽 수도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동서독통일때와 달라 ▲이명영교수=북한은 정상회담에서 틀림없이 통일을 강조할 것입니다.그러나 북한의 통일이란 김일성 주권 아래서의,다시말해 주체의 통일을 의미합니다.따라서 북한은 하나 하나 요구조건을 내걸다가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을 결렬시키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실장=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을 결렬시킨다면 우리에게도 북한핵에 대한 제재등 강경책을 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지 않을까요.사실 김주석이 서울에 오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손실이 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소극적 견해인 것 같습니다.우리측이 서울방문에 집착하지 않은 것도 북한의 진의가 어디에 있건 북한의 핵무장을 막고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며 교류 협력을 통한 통일기반의 확대를 위해 김주석을 만나는 자체에 의미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용필교수=북한이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역량을 정비한다면 이 회담을 건설적으로 끌고갈 수 있습니다.또 우리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박실장=충분한 의심이 손실을 최소화하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수 있습니다.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북한의 한계를 단정짓고,실패를 전제로 회담에 소극적으로 임할때 북한은 더욱 소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우리로서는 북한의 핵개발포기와 핵투명성보장등이 첫번째 관심사이며 이산가족재회,남북교류확대등도 중요 관심사이지만 북한이 이들 문제에 쉽게 호응하고 나오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울것 같습니다.특히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앞으로의 개발계획중단만을 미국에 통보했을 뿐 과거는 불문에 부치자는 미국의 약속을 얻어내는데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느낌입니다.우리가 남북회담을 통해 남북상호사찰과 한반도 비핵화,남북합의서의 이행을 강력히 촉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해전제조건 촉구를 ▲이용필교수=지금 북한을 대화의 문턱으로까지 끌고 나온 것도 남한과 미국의 북한핵을 저지하겠다는 태도가 확고했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는 동독을 조금씩 흡수해나간 서독의 높은 경제력도 없고 상대는 동구의 막스­레닌주의보다 가부장적인 민족주의적 단일지도체제를 가진 북한입니다.우리의 목표를 분명히하고 저지선을 분명히 하는 것만이 북한을 한걸음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이명영교수=김대통령은 중요한 사안을 영수회담을 통해 결정짓는 스타일입니다.김일성주석이 제아무리 능수능란하다 해도 직접 만나 얘기해보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그러나 김주석은 수십년에 걸쳐 혼자 북한을 통치해왔지만 정책을 추진하는데 몇가지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노동당과 정무원,최고인민회의등에서 결의한 기본노선을 변경하지는 않습니다.그 원칙이라는 것은 남한정부가 괴뢰정부라는 것,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등입니다.그러므로 북한은 앞으로 실무접촉등을 통해 이러한 사항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려 할 것입니다.그들은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받아들이자니 곤란한 조건들을 계속 내세우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우리측도 마찬가지로 그런 제안을 북한측에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우리가 양보하면 북한도 양보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것이 좋습니다.그들은 오히려 또 다른 것을 양보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득촌진척,담담정정가 바로 그들의 전술입니다. ▲이용필교수=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핵문제에 대한 성의를 보이는 대가로 평화협정체결을 통해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북한측이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 남북한 공동합의서및 비핵화선언을 성실히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북한의 정치공세에 핵문제의 해결을 역으로 촉구함으로써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이행이 가능한 약속들을 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북한은 「회담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노력」등 비록 애매한 수준에서나마 주한미군철수,팀스피리트훈련중지등을 요구할 수 있는 카드를 마련하려 할 것입니다.미국에 대해는 주장을 펴기위한 사전준비작업이라고도 볼수 있죠.심각한 북한의 경제난도 미국의 북한 목조르기만 벗어나면 극복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을 겁니다. ▲박실장=상호주의 원칙에 의해 김일성주석이 서울에 올 가능성은 아직 점치기 힘듭니다.모처럼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을 결렬시킨다는 것은 북한이 바라는 미국­북한간 관계개선에도 곤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우리가 철저히 대비하되 줄 것은 주면서 설득에 나서고 실현가능한 대북지원계획을 제시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간다면 북한의 딴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위해선 강경책도 ▲이용필교수=북한은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미국과의 관계,우리체제와의 역학등을 고려하면서 회담을 끌고갈 것으로 보입니다.우리는 독일과 예멘의 경우를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서독은 체제의 우월성을 앞세워 동독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 했는데 한반도에서는 오히려 북측이 남측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최근 북한이 어렵고 곧 무너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북의 체제관리능력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습니다.그들은 정치선전에 매우 능란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명영교수=28일자 예비회담 합의문도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북한에 관한한 포괄적 또는 원칙적 합의가이루어졌다는 것은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과 같습니다.예비회담합의문은 그 자체가 실천의 아무런 담보도 되지 못합니다.북한의 의도에 대한 99%의 경계와 1%의 낙관만이 실제적인 회담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태도라고나 할까요. ▲이용필교수=언론등에서 북에 대한 경계론을 펴는 것이 오히려 정부에 유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정치지도자와 국민이 단결해서 지혜를 짜내야 합니다.파업이 계속되고 남한사회가 뒤죽박죽이 되면 북한이 오판하게 되고 상황은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 YS의 통일경쟁력/최평길(시론)

    북한지도부는 한국과 러시아 및 중국의 수교로 3백60도 외교포위를 당한데다 바닥이 드러난 경제,서독식 흡수 통일에 대한 위기의식,정권승계의 부담 속에서 가장 경제적이며 가장 파괴력이 있는 방편으로 「핵」을 선택하게 되었다.최근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다 귀국한 제니소프 러시아 외무부국장은 한달전 필자에게 『북한 정부의 과장급 이상은 남한 주도의 현실성있는 통일에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고있다』고 북한의 내부사정을 말한 바 있다. 이에반해 한국은 북한핵 개발에 미국이 무력대응을 할 때 발생가능한 전쟁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6·25에 대한 연상과 최신의 무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더욱 공포감을 느끼는 듯 하다.그러나 체제붕괴,흡수통합,전쟁 공포의 삼중 공포감에 시달리는 북한이 보다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북한의 제의로 추진되고 있다.북측의 경우 안병수·백남준 회담꾼 말고 이번 예비회담에 나오는 김용순은 실세 중의 하나이다.김일성대학 출신으로 해외유학이나 재외공관근무경험이 없는 국내파이긴 해도 노동당 국제부장이였으며 해외감각이 있고 불어에도 능통한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이 예비대표로 온다니 무게는 다소 실리는 것 같다.1990년말 루마니아 차우세스쿠가 무너지고 체코의 무명 지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이를 감지하지 못한 구 소련 KGB나 외무부,당 외교 계통에서는 대경실색하여 다음의 민주화 대상국은 북한으로 보아 고르바초프의 직접 명령으로 소련 공산당 국제부 극동본부의 트카첸코 본부장은 김일성 이후 차세대 지도자 후보 1백인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10위권 이내에 김용순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민족주의자 조만식·국내 공산파 현준혁·소련파 허가이·연안파 김두봉·자기식구 박금철·심지어 신세대 이용무 장군까지 서로 이간시켜가며 숙청의 무대에서 방어자로 자란,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비위와 수모와 권력이동을 교묘히 이용해 오며 북한의 예수로 자처하는 80고령의 김일성은 중학교육을 받았으며 일제하의 민족 게릴라출신의 노쇠한 우회 돌파형의 정치술수가이다. 해방세대의 대학교육을 받고 야당의 정적을 처리하고 정보정치속에서 줄기찬 도전자로 성장한 투사형 김영삼대통령은 정면돌파의 정치전략가이다. 체제붕괴와 세습체제 종말,남한에 의한 흡수통합,핵무기제조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공포의 3중고에 시달리는 김일성에게 김영삼대통령이 주저하거나 일말의 불안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따라서 가능하면 판문점이나 개성 정도에서 7월중에 북미회담과 맞물린 정상회담을 하되 시간과 장소에 너무 구애받을 것이 없다.오히려 느긋한 쪽은 남한이며 김영삼대통령 쪽이다. 그러나 반드시 관철해야 될 일은 회담의제이고 처음 만남에 간결하고 정확한 메시지가 담겨야 하는데 여기서는 다음의 다섯가지 의제를 제시하고 분명히 설명해야 될 것이다.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제조를 중단하고 그간의 경위를 소상히 IAEA는 물론 남한에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과 그것이 불이행될때 남한도 단시일내에 북한보다도 더 빨리 핵무기제조를 할 수 밖에 없음을 통고해야 할 것이다.특히 제조능력은 갖추고 있더라도 만들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둘째 정권승계나 경제난·대중봉기 등 북한의 혼란이 있다해도 경제원조 등은 있어도 남한이 먼저 의도적으로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현재의 남한경제여건과 남한 국민이 통일비용부담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밝혀야 한다.셋째 무슨일이 있어도 남북한 관계는 전쟁이 아닌 평화적 해결이며 그 실질적·상징적 표상으로 남북한 정상 핫라인을 개설하여 항시 두 정상이 전화로 통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넷째는 이렇게 될때 북미간의 외교수립이나 국제관계에서 남한이 협조해야 할 것이며,다섯째는 군축·남북경제·사회·문화교류,특히 북한이 원하는 식량·원유원조·남북교역·두만강 특구 등 모든 경제교류 협조의 일대 물꼬를 트는 대담한 큰 정치 회담을 이끌어야 될 것이다. 통일시대의 YS와 IS의 대좌가 임박한 이때 YS의 국제경쟁력 향상,국내 정치 주도권 장악에 이어 자유민주체제를 위한 통일정국의 장악력을 기대해 본다.
  • 양기탁선생 묘소를 찾기까지/백범이 남긴 약도로 사후56년만에 확인

    ◎유족들,제자와 함께 정확한 위치 찾아/“유해봉환위해 정부차원 지원 있어야” 『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산과 골이야 아무리 깁허도 우리마음은 당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물과 불이야 아무리 겁나도 우리마음은 해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달과 놀이야 아무리 발거도 우리마음은 빗칠수 없누나/대한사람에 우리들은요­총과 칼이야 아무리 무셔도 우리마음은 뚜룰수 없누나/…』(양기탁 「아해들 노래」 중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문인이자 언론선각자로 평생을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으로 일관한 우강 양기탁선생(1871∼1938)의 묘소가 중국 강소성 율양현의 한 시골마을에서 후손들에 의해 발견됐다. 상해에서 내륙쪽으로 7시간 이상 버스로 달려가는 강소성 남부의 작은 마을 대부진 남문두에는 아직도 우강의 가르침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생존하고 있어 그들의 증언을 통해 우강이 기거하던 고당암터와 묘소터를 확인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해서 7기간 거리 우강은 구한말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를 창간하여 외세의 침입에 항거,「행동하는 필봉」으로 민족자존의 횃불을 드높였다.또 일제치하에서도 굴하지 않고 만주와 중국대륙을 무대로 민족적 자각과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인물이다.이번에 그의 묘소가 사후 56년만에 유족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오는 7월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90주년을 앞두고 더욱 뜻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우강의 묘소는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가족들은 물론 애국선열들의 유해봉환을 추진해오고 있는 정부와 뜻있는 이들의 애를 태워왔다. 우강의 묘소를 찾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은 백범 김구선생이 해방후 유족들에게 건네주었던 묘소의 약도였다.백범은 우강과는 5년 연하로 신민회 활동에 이어 상해 임시정부등에서 함께 활동해와 남다른 교분을 갖고 있었으며 해방후 우강의 유족인 장남 효손(6·25때 납북)에게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보라며 현장의 위치를 그려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이 약도는 우강이 말년에 기거하던 고당암과 주변의 뽕나무밭,묘소위치등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이 약도를 들고 묘소를 찾아나섰던 우강의 자부 최선옥씨(76)는 『납북된 남편의 뜻을 40여년만에 이루게돼 여한이 없지만 어서 유해를 모셔와 고국에서 편안하게 영원히 쉬시게 하는 일이 남아있다』며 울먹였다. ○농지개선작업때 이장 우강의 묘소를 찾는 작업은 독립운동가 박은식선생의 손자이자 최씨의 사위인 박유철씨(56·건설공무원교육원장)가 4∼5년전부터 모친(최윤신·77)의 중국에 사는 친척들을 통해 수소문하면서 시작됐다.그 결과 대략적인 위치가 파악됐으며 이번에 박씨가 모친·장모와 함께 현장을 답사,백범의 약도와 비교해보고 생존한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게 된것이다. 우강의 묘소는 원래 고당암 앞의 뽕나무밭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60년대 모택동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농지개선작업때 4∼50ⓜ 남쪽으로 이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밭 한가운데 거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이 마을에서 만난 제자이자 이장을 역임했던 번정재씨(79·농업)는 『선생은 키가 크고 하얀 얼굴에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으며 학문이 높고 기공의 경지가 높아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회상하고 『선생이 기거하시던 고당암에는 늘 기공을 연마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덧붙였다. 우강의 유족측은 올 가을쯤 다시한번 강소성의 묘소를 방문,구체적인 유해봉환을 위한 절차를 현지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광복 50주년을 맞는 내년까지는 반드시 유해봉환이 이뤄질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여 줄것을 강력히 촉구했다.◎양기택선생의 항일 족적/대한매일신문 창간… 국권회복 앞장/신민회 결성… 독립군 양성 등 무장투쟁 말 외세의 침략이 노골화돼가던 1871년 4월2일 평양에서 태어난 우강은 소년시절 한학을 배운뒤 15세때 상경,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25세때 부친과 함께 미국인 게일의 한영사전 편찬작업에 참여했다.그 과정에서 일본 미국등을 다니며 선진문물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이어서 1898년 독립협회에 가담하였고 개혁당 당원으로 활약하는등 활발한 구국운동을 전개했다.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에는 대한제국 황실의외교담당부서인 궁내부 예식원 직원으로 임명돼 영어통역을 맡기도 했다. 우강의 가장 큰 업적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이다.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의 관할권을 내세우는등 침략을 노골화하자 이를 견제하고 국민을 교육시키기 위한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따라서 당시 영국 데일리뉴스의 임시특파원으로 서울에 와있던 어니스트 베델(1872∼1909)을 사장으로 하고 자신은 총무를 맡아 새신문을 창간했던 것. 국한문 혼용의 국내용 신문과 별도의 영문판도 발행한 대한매일신보는 일제의 잔혹한 통감정치 하에서도 전국각지의 의병활동을 상세하게 다루고 국채보상운동을 펴는등 국운이 쇠하여가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끝까지 민족에게 항일의식과 애국계몽의식을 심어 국권회복운동의 불씨를 재우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강은 또 안창호·이동휘·이동령·노백린·이시영·김구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외독립기지 건설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대한매일신보 사무실내에 본부를 두고 활동을 벌이던 신민회는 1909년 전국대회를 열고 해외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고 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진입작전을 펼쳐 독립을 쟁취한다는 「독립전쟁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어서 한일합방을 앞둔 1910년 3월에는 신민회가 만주 망명을 결정하고 서간도에 기지를 마련,자치기관인 경학사를 설치하고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이같이 신민회의 활동이 해외거점을 확보하자 일제는 1911년 7월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을 날조,신민회 중앙간부 16명을 모두 체포하고 신민회를 해체해버렸다.이어 13년에는 총독암살사건(일명 「105인사건」)으로 6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했다. 4년만에 감형으로 출소한 우강은 16년 주거제한지인 평남 강남군 쌍용면 신경리를 탈출,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와 광복회에서 활동했다.그러나 2년뒤 18년에 천진에서 일본경찰에게 다시 체포돼 국내로 압송,전남 거금도로 유배됐다. 20년 4월 유배를 끝나고 서울에 와있던 우강에게 새로 창간된 동아일보가 고문및 편집감독으로 추대를 제의해 왔지만 언론을 통한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있던 그는 거절했다. 34년 제26회 의정원 회의에서 우강은 김규식 조소앙과 함께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이어 주석으로 선출되었다.그러나 그는 주석직도 얼마 가지 않아 사임했으며 모든 관직을 떠나 강소성 율양현으로 들어가 선도에 몰입하다 38년 4월,67세로 이국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우강은 이같은 공로로 62년 독립유공자중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수여받았으며 86년 독립기념관의 독립유공자 임정위원 42인에 추대됐다. ▷연보◁ △1871 평남 평양 소천출생 △1885 한성외국어학교 영어수학 △1895 게일의 영어사전편찬 도움 △1900 나가사키 유학 △1904 베델과 대한매일신보 창간 △1907 신민회 조직 △1913­5 「양기탁 보안법 위반사건」 및 「105 사건」등으로 투옥 △1916 만주로 탈출 △1918 전남 거금도 유배 △1922 만주에서 의성단 조직 △1926 임정 국무령 추대,거절 △1934 임정 주석 선출 △1938 강소성 담양현 고당암에서 선도연구중 사망
  • 본사초청 모범용사들이 말하는 후방 5박6일

    ◎“산업현장서 호국일념 다졌다”/개혁바람속 변화의 분위기 실감/파업·시위는 안보 저해… 화합 아쉬워 ▷좌담참석자◁ △이수형소령(38·3군사령부) △김종배원사(49·공군 제111방공포병대대) △주영호원사(52·해군 제3함대사령부) △한광명원사(52·육군 제56사단) △이해우상사(48·해병2사단) △신영자중사(28·특전사 여군중대) 6·25 44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사가 초청한 국군모범용사와 배우자 1백20명은 지난 20일부터 5박6일동안의 산업시찰과 관광을 마치고 경주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뒤 25일부터 휴가길에 올랐다.제31회 모범용사 초청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좌담회를 마련,이들이 돌아본 후방에 대한 소감과 최근 북핵문제와 관련 고조되고 있는 전쟁위기와 함께 6·25를 맞는 용사들의 각오를 들어본다. ▲이수형소령=이번 행사는 저의 군생활동안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될 것입니다.휴전선 철책에서,하늘에서,바다에서,산간오지에서 묵묵히 국토방위에 열중하고 있는 장기근속 하사관을 중심으로 31년째 이같은 행사를 마련해주고 있는 서울신문사에 대해 전 장병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5박6일간의 행사가 육·해·공 전군에서 선발된 모범용사들이 모여 서로를 알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돼 더욱 뜻깊었고 군 사기진작에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우리들에게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이번 행사가 어렵게 생활하는 군인가족들에게도 많은 위안이 됐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뜻한 환대 감사 ▲한광명원사=오늘이 제가 군생활을 시작한지 만 34년 10일째입니다.긴 군생활중 집사람과 함께 이처럼 마음놓고 여행을 즐겨본 적이 없었습니다.TV 등에서만 보아왔던 대통령과 국회의장·국방부장관 등 고위인사들이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데다 우리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많은 지원을 약속해줘 사기가 충천된 느낌입니다. 이같은 기회가 유능한 후배들에게도 계속 주어지길 바라고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방의 국민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맡은 바 국토방위의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주영호원사=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진 곳에서 31년동안 파도와 싸우며 지내왔는데 이번 모범용사 초청에서 어디를 가나 우리들을 환대해줘 얼떨떨한 느낌입니다.모범용사로 뽑혀 모처럼 아내와 여행도 함께 할수 있게돼 가장으로서의 체통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신영자중사=오는 12월 상사 진급대상으로 10년 동안의 군생활을 하면서 이 길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입니다.특히 승진과 보직 등에서 남자들과 전혀 차별없는 대우를 받고 있어 여군들의 사기는 의외로 높습니다. 최근에는 여군들에게 대학진학 기회도 주어지고 있어 자기실현 의지가 강한 여성들은 군에 입대,남성들과 당당히 능력을 겨뤄 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적격퇴 전투력 충분 ▲김종배원사=하늘의 불침범 역할을 하면서 30년 가까운 군생활동안 후회도 많았지만 서울신문사에서 우리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아 무엇보다 고맙게 생각합니다.군부대에 돌아가 동료병사들에게 사회가 우리를잊지않고 있다고 전하고 우리나라 공군력이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큼 뛰어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북핵문제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지만 국민들은 우리를 믿고 국가건설과 생업에 열중하기를 바랍니다. ▲이해우상사=김영삼대통령의 말씀처럼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리의 전투력은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충분히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이곳에 모인 모범용사들은 모두 국가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충실하고 명예로운 군생활을 꾸려왔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전쟁이 일어날 경우 목숨을 바쳐 국토를 방위할 각오입니다.그러나 최근 일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외면한 무분별한 시위가 격화되고 있어 민주통일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소령=이같은 북핵 위험속에 또 철도와 지하철의 파업까지 겹쳐 크게 걱정이 됩니다.그러나 창원공단 등지의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산업역군을 대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 뿌듯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이번 행사로 얻은 산 경험을일선 전 장병들에게 알려 사기를 드높이는 한편 더욱 굳건한 안보태세를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군사기 매우 높아 ▲김원사=문민정부 출범이후 군의 개혁과 함께 장기근속 하사관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해주는 등 처우가 크게 개선됐고 복무기간도 2∼3년 연장돼 군의 사기가 어느때보다 높습니다.구타가 완전히 없어지고 교육훈련 및 작업이 대부분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등 병영생활이 크게 달라지면서 전군의 전투력이 배가되고 있습니다.44년전 6·25때와는 군의 전투력이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져 국민들이 전적으로 우리를 신뢰해도 될 것입니다. ▲신중사=여군도 이제는 단순한 행정보조역에서 벗어나 전투·병참·군수·정보등 다양한 병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결혼을 앞둔 나이지만 결혼후에도 군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국가를 위해 계속 봉사할 생각입니다. ▲주원사=모든 군이 국민의 군대,민주군대로 거듭 태어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최근 일부대학생들의 과격시위 및 집단파업 등은 민주사회로 가는 과도기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국민들의피해가 너무 클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도 저해요소가 될 것입니다.언론에서 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소령=서울신문사의 배려로 보낸 5박6일을 우리 모두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이 기간동안의 각종 경험을 각 부대에 돌아가 다른 전우들에게 알리고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전쟁 억제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투철한 안보의식과 사회기강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후방에 있는 국민들이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 “북 핵개발 절대 불용”/김 대통령,6·25참전용사 접견

    김영삼대통령은 25일 『북한 핵개발은 한개가 아니라 반개라도 절대 안된다는게 대통령으로서 나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6·25전쟁 44주년을 맞아 이날 하오 서울 신라호텔에서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열린 「6·25 자유수호전쟁 제44주년 참전용사 위로연」에 참석,치사를 통해 『우리는 전쟁없는 평화를 원한다』며 『현 시점에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는 6·25를 통해 생명보다 소중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의식을 갖게 됐다』며 『나는 헌법과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위로연에는 이만섭국회의장,민자당 김종필대표,최형우내무,이병대국방장관을 비롯,장태완 재향국인회장,김종갑 6·25 참전 동지회장,레이몬드 데이비스 미예비역 해병대장 등 국내외 참전용사 8백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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