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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은 국군포로 송환하라”/조창호중위,전역식서 목멘 호소

    ◎“대한민국 만세” 43년 군생활 마감/“군인의 길은 대장부 보람” 후배에 당부/8천여 참석자,호국정신에 박수갈채/최장기 복무·최후의 6·25참전 현역 기록 『군번 212966 육군중위 조창호,저는 대한민국 소위로 43년을 보내고 오늘 하루 중위로 보내는 것을 끝으로 청춘을 바쳤던 국군의 품을 떠납니다』 26일 상오 10시30분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된 전역식에서 「돌아온 노병」조창호중위(64)는 감회어린 목소리로 전역사를 낭독했다.청춘을 북녘땅에서 잃고 돌아온 노병이 중위진급 하루만에 최장 현역복무군인 및 최후의 6·25참전용사 기록을 세우고 군문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화랑대를 몰아치던 초겨울 바람속에 1시간여 부동자세로 서있던 육사·해사·공사생도와 조중위의 모교인 연세대학군단 학생들은 한서린 「전역사」가 낭독되는 순간 솟구치는 감동에 추위도 잊은 표정이었다.그의 전역사는 한구절 한구절마다 「군인의 지표」가 되어 예비소위들의 폐부를 찔러 들어왔다. 전역식에 참석한 이병태국방장관·황명수국회국방위원장과 장병 등 8천여명은 조중위의 「불굴의 군인정신」에 내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날 행사장의 열기는 조중위가 가슴에 보국훈장 통일장을 달고 간호장교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에 오르면서 달아올랐다.행사진행을 맡은 합참 최경식대령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에 이어 가진 귀환보고에서 『북한의 끈질긴 전향공작과 고문 등을 이겨내고 조국의 품에 귀환한 조중위는 전후세대에게는 상무정신을,기성세대에게는 호국의 정신을 일깨운 참군인』이라고 조중위를 소개했다. 조중위는 전역명령 낭독이 끝나자 『육군중위 조창호는 94년 11월26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읍니다』라고 이국방장관에게 신고한뒤 이장관과 함께 열병차에 탑승,3사관학교 생도와 연세대학군단을 10여분간 열병했다.열병도중 조중위의 어깨에 부착된 다이아몬드 2개의 중위계급장은 햇빛에 더욱 반짝거렸다. 조중위는 전역사에서 『나라를 위해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자원입대했으나 적의 포로가 돼 북한공산집단을 대상으로 길고 긴 전투가 시작됐다』고 말문을 연뒤 『왼쪽눈을 실명하고 아오지탄광에서 규폐증까지 얻으면서도 43년간 자신과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터에서 배운 「죽어도 항복하지 않겠다」는 군진수칙과 신앙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군인의 길이 비록 힘들고 어렵다하더라도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가장 보람찬 길임을 명심해달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조중위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으며 목소리도 잠겨들었다. 조중위가 『지난 43년간 가장 불러보고 싶었던 것』이라면서 『대한민국 만세.대한민국 국군만세.대한민국 국군소위 만세』를 외치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장병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조중위는 이어 북한에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기 위해 남북적십자 회담에 응하고 제네바협약을 준수,국군포로를 송환하라』고 목메어 촉구했다. 전역증을 받아쥔 조중위가 헌병싸이카와 선도차의 안내 아래 누나 창숙씨(74)의 서울 서초동집으로 떠난 한참후까지도 참석자들은 조중위의 「인간승리」를 화제로 삼아 연병장을 떠날줄 몰랐다.
  • 새해 광복 50년… 어떻게 맞아야 하나/특별대담

    ◎민족역량 이젠 통일에 모으자/일제 36년 원망에 너무 긴 세월 보내/민주정치·경제발전 성취… 우리 실상 재점검을 광복 50주년이 내년으로 다가왔다.지난 반세기에 우리나라는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량을 높여왔다.장년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 뒤에는 급속한 발전의 그늘에서 파생한 문제점 또한 없지 않다.서울신문은 창간 49주년을 맞아 다가온 광복 5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고 아직도 남아 있는 식민잔재의 청산과 성숙한 대일관계의 방향을 모색하는 한편 21세기 바람직한 한국의 모습을 전망하는 대담을 마련했다. ▲이만열교수=광복 50년은 일제통치 36년만을 원망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지요.기독교계에선 50주년을 희년이라고 하는데 광복 반세기는 우리 민족사 측면에서도 뚜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용하교수=일종의 성년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지요.따라서 광복당시의 상황을 다시 짚어보면서 지난 50년간의 발자취를 검토,성과를 음미·반성해볼 때입니다.지난 시절의 검토와 반성을 통해우리의 현위치를 정확히 점검하고 21세기를 구체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됩니다. ▲이교수=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볼 때 지난 50년은 민족사에서 3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첫째 최초의 근대화국가를 성립,발전시켰고 둘째 봉건적인 사대관계와 식민지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자주국가의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입니다.셋째는 과거 국제관계에서 중국과의 관계 이외는 거의 폐쇄적이다가 지난 50년간은 세계사에 개방적으로 진출하여 이제는 세계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50년발전상 괄목 ▲신교수=많은 일본인 학자들은 광복후 50년간의 우리의 근·현대화 성과를 일제 식민지정책의 역사적 산물로 주장하고 있지만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억지이지요.일본이 36년간의 식민통치에서 정치적으로는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소멸시켰고 경제적으로는 한국인의 산업발전을 극도로 억압하면서 반봉건적 지주제도를 적극 엄호했으며 사회적으로는 한국인은 어떠한 시민권도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일제의 식민지정책은 한국의 근대화를 저극 저지했습니다. ▲이교수=성과측면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문민정부의 출범이란 정치적 업적을 달성했고 제3세계에 대한 원조등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자유·평등권 신장등 사회·교육및 문화적 성과가 괄목했지요. ▲신교수=그중에서도 「건국」을 그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당시 우리의 건국은 민주공화국체제의 출발을 의미합니다.한국전쟁으로 타격을 받고 61년 군사정변이후 오랫동안의 군사통치와 독재의 양상을 띠었지만 93년 문민정부 출범으로 정치적으론 일단 민주체제를 확립했다고 보여집니다.경제적으로도 1인당 국민소득이 62년 82달러에서 지난 연말 8천달러에 육박한 수준이고 보면 그간 한국의 경제적 성취는 인류사에 기록할만한 업적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물론 문제점도 많았지만 말입니다. ▲이교수=그처럼 괄목할만한 업적을 성취한 동인은 여러가지가 있지요.무엇보다도 저는 36년간의 식민통치와 동족상잔의 6·25전쟁등 민족적 비극을 자기발전의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지혜와 변통성을 꼽고 싶습니다.전통사회와 식민통치시절,그리고 해방이후에 일관되게 나타난 교육열도 큰 역할을 했고요.여기에 근면성이 뒷받침했다고 볼 수 있지요. ▲신교수=사회·문화측면에서 각계각층이 모든 사회활동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과 여성의 사회참여도 적지 않은 부분입니다.이젠 정치민주화에 사회민주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국민의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하게끔 됐다는 점에서 한국민주주의는 낙관적으로 예견되기도 합니다. ○사회도덕 큰 위기 ▲이교수=흔히 문화발전의 지표로 간주되는 출판만 보더라도 지금은 연 2만6천여종의 책이 출판되면서 아시아권에서 절대·상대적으로 일본과 비슷하거나 다음을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니까요.그럼에도 반성할 부분이 많습니다.과거미청산문제 말고도 빈부격차 심화나 지역·집단이기주의의 극성등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말입니다. ▲신교수=건국직후 친일파척결을 못한 점은 가장 큰 과오라고 할 수 있지요.친일파의 해악은 자유당 집권시절 만연한 부정부패 말고도 이후 정·관계에 진출해대일자주외교를 방해한 점이나 민족이익과 자주성·민족정기확립에서 결정적인 저해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실정 아닙니까. ▲이교수=반민특위 조사대상 6백80여명 가운데 집행유예 5명,실형 7명,공민권제한 18명등 처벌대상자가 30명에 머문 것은 식민잔재청산노력이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4년밖에 안된 나치점령에 대해 프랑스는 사형과 수감 2천여명,공직제한 2만여명 수준이었습니다. ▲신교수=경제적으로 한국경제의 대일종속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미국등 여타지역에서 벌어들여 일본에 쏟아붓는 실정이니까요.국내적으로도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농업대책의 소극성,실직자나 극빈자등 최저변층에 대한 사회복지대책의 빈약함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입니다. ▲이교수=맞습니다.사회통합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요.거시적으로 볼 때 통일문제까지가 당면문제임에 틀림없구요.지방색과 집단이기주의 만연,심지어는 종교간 갈등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교수=현재 사회적으로 군데군데 보기 흉한 반점이 생겨난 데는 고도발전에 기생하여 나온 불로소득층이 가장 큰 원인이지요.이 과정에서 정당한 절차와 규범이 무시된 채 일확천금등 일시적인 성취욕구와 군사문화가 혼합돼 불로소득층이 생겨났고 이들이 생산적인 생활양식을 침범한 채 퇴폐문화등 모든 문제를 일으켜온 셈입니다. ○일본알아야 극일 ▲이교수=대가족주의에서 서양문화 유입에 따른 핵가족주의로의 이행도 이런 부작용과 연결돼 있지 않을까요.이것은 바로 우리사회의 공동체의식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서양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제도와 함께 정직·근면·절약등 그 정신도 제대로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교수=과학기술지식등 고급문화는 배우되 퇴폐·향락적인 측면은 심각하게 걸러내는 문화정책을 적극 수립해야 할 때입니다. ▲이교수=흔히 대일관계에서 「극일」을 거론하지만 일본의 부모들이 자녀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정직」은 우리도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정직은 정밀공업등의 각종 산업활동에서 양심의 척도로서 제품을 생산토록 합니다.그런 점에서 최근 성수대교참사등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신교수=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도덕과 규범이 도전받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위기임엔 틀림없습니다.도덕과 규범에 관한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사회교육을 철저히 강화할 필요가 있음은 당연하지요.더욱이 일본이 아시아를 자국의 철저한 영향권아래 두려는 「신대동아공영권」구상을 공공연하게 들먹이는 분위기에서 정신을 바짝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일본의 정책을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말려들지 않는 국가·대외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국제사회 흐름 능동대응 기틀 마련 ▲이교수=최근 활발히 논의중인 일본대중문화개방도 같은 맥락에서 숙고할 필요성이 있겠지요.일본은 「신대동아공영권」구상을 순탄하게 실행하려는 차원에서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적고 접근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대중문화개방을 들이밀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신교수=일본은 대중문화개방을 요구하면서 보편적인 관계를 들지만 한·일 양국은 결코 보편적인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이교수=특수관계라는것은 무엇보다도 양국간에 식민지시대의 청산이 안됐고 재일한국인차별대우나 문화재반환등 양국간의 특수한 현안처리가 답보상태에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예겠지요.따라서 한·일관계는 아직도 세계사적인 보편적 원리를 적용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비단 대일감정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일본대중문화의 속성상 개방이후의 파급효과와 대책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신교수=일본의 호혜주장에도 문제가 있지요.호혜는 양쪽이 모두 헤택을 본다는 뜻이지만 시장성을 앞세워 경제적인 침투를 염두에 둔 일본대중문화개방압력은 호혜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이것 말고도 한 영화에서 칼로 사람을 30∼50명씩 참혹하게 죽이는 사무라이·야쿠자영화는 현실적으로 모방가능한 위험성을 동반하여 어쩌면 우리 청소년교육을 송두리째 망칠 우려가 짙지요. ▲이교수=문제는 일본을 철저하게 알아내려는 노력입니다.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 통상조약에서 우리가 핵심조항인 치외법권과 관세권에 문외한인 채 일방적으로 당한 것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손해가 적지 않은 만큼 일본의 핵심을 철저하게 파악해내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합니다.정서적인 거부감을 이유로 「일본탐구」를 외면하거나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신교수=일본문화개방만 하더라도 일본정부의 숨겨진 의도와 정책을 충분히 검토끝에 추진중이냐 하는 데는 회의적이지요.진정한 의미의 자주독립과 선진대열 합류,남북통일등 현재 추진중인 정책은 계속 추진하되 실속 있는 실상점검과 대책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교수=지난 50년간 민족적 역량이 커진 만큼 대일관계를 포함해 세계를 보는 우리의 시각도 변화·성숙해야 합니다.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민족사적인 과제로서 민족통일의 문제가 있습니다.분단은 우리 세대가 후손에게 남겨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통일문제와 관련,정부가 취해온 창구단일화의 논리는 지양해야 합니다.우리가 성장한 만큼 지금부터는 제3세계와 약소국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등 세계에 대한 우리의 책임도 지혜롭게 감당해야 합니다.21세기 한국은 우리와 이웃과 세계를 다같이 풍요롭게 하는 데에 공헌하는 진정한 문화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더욱 전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 독립유공자 후손 박유철·양준자씨 부부(인터뷰)

    ◎“애국선열 유해봉환 적극 나서야”/고생하는 유공자가족에 죄송/서훈늘리고 보상금 올려주실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은 민족사의 영원한 거울입니다.그것이 흐려졌으면 다시 닦아 들여다 보면서 미래의 진로를 열어 나가야지요.그분들의 피나는 독립투쟁의 역정과 죽음으로 항거한 애국애족 정신을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서 선열들을 기리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장손 박유철씨(56·건설부 건설공무원 교육원장)와 항일언론인 우강 양기탁 선생의 손녀 양준자씨(50·안양 대신대 교회음악과 교수) 부부의 해방 50돌을 앞둔 감회는 남다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강남아파트 1동 101호.잘 가꿔진 상록화분이 인상적인 널찍한 응접실 북쪽 벽에는 백암 선생의 영정과 「국혼은 살아있다」는 휘호가 나란히 걸려있어 청사에 빛난 민족선각자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도 있듯이 생존 유공자나 후손들은 대부분 불우한 생활을해왔습니다.유족들중엔 배우지 못한 탓에 무직자들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독립유공서훈자를 늘리고 보상금을 인상하는 등 예우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친(박시창 장군·전 광복회회장)이 오랫동안 군에 봉직했던 관계로 자신은 다행히 교육도 제대로 받고 비교적 유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오직 정신적 자부심 하나로 애옥살이를 견뎌내고 있는 다른 유공자 가족들을 보면 괜히 죄스런 생각마저 든다고 박씨는 말한다.현재 광복회 이사이기도 한 박씨의 집안은 친가,외가,처가 모두가 독립운동과 연결돼 있다.친할아버지 백암,처할아버지 우강선생 외에 외할아버지인 최중호 옹은 임정에서 김구선생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으며 선친 또한 김홍일 장군과 함께 중국대륙과 러시아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다. 두사람은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됐지만 며느리감이 우강선생의 손녀란 말에 박씨의 부친이 더 열성적으로 결합을 추진했다고. 『독립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한다는 것이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실때 동지들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이셨다고 합니다.선친께서는 늘 「평생 네 할아버지처럼 겸손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한 백암의 인품으로 인해 인맥과 분파로 얽혀있던 당시 상해 독립운동가 사회에서도 선생만은 적이 없었으며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될 수 있었을 것이란게 박씨의 설명이다. 지난해 8월 박은식선생을 비롯,중국 상해시 만국공묘에 안장돼 있던 애국선열 5위의 유해가 국내에 무사히 봉환,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던 것을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 무엇보다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는 박씨.하지만 아직도 많은 독립유공자들의 유해가 해외에 산재해 있는만큼 이들의 조속한 국내 봉환을 위해서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유해봉환문제는 부인 양준자 여사에게는 한층 간절한 소망이자 아픔으로 다가온다.올 봄 우강선생의 묘소가 중국 강소성 율양현 한 시골마을에서 후손들에 의해 확인됐지만 60년대 모택동이 대대적으로 전개한 농지개혁작업때 인근 물구덩이에 매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국무령으로까지 추대된 할아버지는 당시 임정의 동상이몽에 회의를 느끼신 것 같습니다.그래서 말년엔 고당암이라는 한적한 시골암자에 칩거,중국인들을 상대로 참선과 기공을 가르치며 수도자같은 생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양효손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6·25때 납북)로부터 귓결에 전해들은 것이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지만 양준자 여사의 조부에 대한 정은 유별나다.『늦어도 해방 50돌을 맞는 내년까지는 할아버님의 유해를 반드시 모셔와 고국땅에서 편히 쉬시도록 하겠습니다』
  • 60년∼64년 외교문서/빠르면 내주 공개

    ◎이승만 하야·「5·16」관련 비화 주목 자유당 이승만정권의 퇴진과 5·16이후 3공화국의 탄생을 전후한 60년부터 64년까지의 외교문서가 빠르면 다음주 공개된다.일반인에게는 마이크로 필름으로 처리돼 12월중 공개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25일 박건우외무차관주재로 외교문서 공개결정에 관한 회의를 열어 그동안 예비심사반이 검토해온 공개대상문서를 최종 확정지을 방침이다.그러나 이 기간동안의 한일협정과 관련된 외교문서는 일본이 서명 30년이 지난 문서에 대해서만 공개한다는 원칙을 고수,한·일간 협상을 거쳐 내년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 공개는 지난 1월 새정부들어 48년 정부수립후부터 59년까지의 외교문서를 공개한 데이어 두번째이다. 공개될 외교문서는 우리나라가 직접 만들거나 외국으로부터 접수한 「전문」「친서」「협정서」「성명」등 8백여건으로 무려 10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공개될 문서가운데는 고 이승만대통령의 하야직전인 60년4월 크리스천 허터 미국무장관이 당시 양유찬 주미대사 앞으로 보낸 「8개항목의 주의각서」,사실상 이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던 매카나기 주한미대사의 외교각서등이 포함된다. 이와함께 「5·16」에 대한 입장을 밝힌 미국무부성명,6·25참전국을 대상으로 당시 김홍일외무장관이 각 공관장에 지시한 「군사정부지지활동서한」의 공개도 관심을 끌고 있다.
  • “김 대통령은 인권·민주주의 상징”/호 총리(김 대통령 순방여로)

    ◎“국가간 협력만큼 경쟁중요성 실감”/김 대통령 호주 방문 이틀째인 17일 상오 김영삼대통령은 수행기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세계화 장기구상」을 밝힌데 이어 시드니 항만시찰과 주총리내외 주최 오찬,교민리셉션에 참석한 뒤 비행기로 캔버라로 이동,상·하 양원연설과 만찬에 참석하는등 바쁜 하루를 보냈다. ▷만찬◁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폴 키팅총리가 국회의사당에서 주최한 공식만찬에서 상·하원 의원들과 기업인 교민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을 통해 두 나라가 6·25 참전으로 맺어진 혈맹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6·25때 호주 장병 2만명이 참전,3백40명이 희생된 사실을 상기시키고 『양국 경제의 상호 보완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고려할 때 두 나라의 협력전망은 밝다』고 역설. 키팅총리는 만찬사를 통해 『호주의 3대 수출국인 한국이 2년안에 2대 수출국으로 올라설 것』이라면서 김대통령을 APEC의 지도자,한국 민주주의 및 인권의 상징이라고 칭송. 호주측은 왕립사관학교 밴드를 동원해 중앙홀에서 두 나라 국가를 연주했으며 국회의사당 방송국이 만찬장면을 폐쇄회로로 중계하는 등 예우에 최선. ▷기자간담회◁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수행기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1시간15분동안 아·태3국 순방과 APEC정상회의 성과,회의 비화등을 설명한 뒤 「세계화 장기구상」이라는 새로운 국정운영기조를 제시. 김대통령은 『아세안국가 순방과 APEC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국가간 협력과 경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면서 『협력도 중요하지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세계화에 대한 장기구상의 필요성도 절감했다』고 장기구상의 제시배경을 설명. ▷오찬 및 교민리셉션◁ ○…김대통령내외는 이에 앞서 시드니에서 존 페이히 뉴사우스웨일즈주 총리내외의 영접으로 주정부청사 31층 연회실에서 오찬. 페이히 주총리는 환영사에서 『한국과 호주는 쌍방교역과 투자및 개발의 기회가 많다』면서 『아·태지역내의 경제협력은 우리 모두의 장래를 위해 필수적이며 한국은 호주의 매우 중요한 동반자』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먼저 『호주가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오늘 새벽 조깅때 비가 내려 하늘이 나의 호주방문에 대한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 김대통령은 『조국의 높아진 위상과 세계화 장기구상 구체화작업에 맞춰 교민사회도 하나로 단합해 세계화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 ▷시드니항만시찰◁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기자간담회를 마친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신실레어 뉴사우스웨일스주 총독의 안내로 1시간동안 「올림픽 스피리트」호를 타고 시드니항만을 시찰. ◎김 대통령 만찬연설 요지 한국과 호주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혈맹이었고 앞으로도 민주주의의 길을 함께 걸어가야 할 동반자라는 사실에 더 깊은 우정을 느낍니다. 한국은 지금 모처럼 이룩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안으로는 과감한 변화와 개혁을,밖으로는 국제화 개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호주에게 세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며 다섯번째로 큰 교역상대국입니다.양국경제의 상호보완성과 무한한 잠재력을 고려할 때 두나라간의 협력전망은 아주 밝습니다. 두나라 사이의 우정은 미래를 향하여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키팅 총리가 APEC에서 수행하고 있는 지도적 역할에 경의를 표하며 함께 APEC를 다자간 협력의 본보기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호주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동양과 서양,아시아와 유럽의 문화적 차이를 조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태평양의 남북단에 위치한 두나라 사이의 긴밀한 협력은 국가와 민족 사이의 이질성을 뛰어넘는 태평양공동체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00년에 시드니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은 아시아·태평양시대,새로운 희망의 세기를 여는 장엄한 인류의 대축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한국과 호주의 영원한 우의와 무한한 발전을 위해,그리고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양국 국민 모두가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갈 것을 제의하는 바입니다.
  • 입양고지(외언내언)

    북구 노르웨이가 한국아 입양을 시작한 지 40년된다.6·25전쟁후 병원선 봉사자들이 전쟁고아 한둘 데려가기 시작한 이래 지난 5월말로 5천명에 이르렀다.한국아이를 기른 양부모들 잔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주 중요한 조사자료가 40년 기념으로 발표됐다. 13세이상 한국입양아출신 3천명과 노르웨이태생 3천명에 대한 사회조사결과다.전문사회조사기관이 1년여에 걸쳐 방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적응도·사회비중도·부모기대부응도등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항목을 조사한 것이다.한국입양아출신이 건강도·적응도등 여러 항목에서 우수하고 학교생활·학업에서는 단연 적극적인 것으로 나왔다. 특히 부모기대부응도에서는 단연 점수가 높았다.십대만되면 일찍 부모곁을 떠나는 노르웨이 아이들에 비해 집 떠나는 것이 늦고 학교 남녀친구문제등 걱정거리를 부모나 조부모에게 말하고 조언을 들어 합리적으로 해결하려 드는 점에 양부모들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냈다. 청소년기 봉사활동참여도 높고 사회직업에서도 남을 돕는 간호직·사회사업직·의료직·법률직등에 많이 진출하여 노르웨이 국가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됐다.미국이나 덴마크·벨기에등 세계 13개국에 입양된 한국아이들이 우수하고 유난히 부모를 따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이들은 모두 알만한 나이에 입양자라는 것을 알고 큰 아이들이다.양부모들이 잘 키워낸 것이다. 국내서도 입양자라는 것을 알리고도 잘 길러낸 사람들이 많다.홀트양자회가 57년도부터 입양한 국내 입양자명단 1만3천여명속에는 이름대면 바로 알 저명인도 상당하다.개중에는 입양자인것을 알게 된 아이가 가출하거나 반항해서 곤경을 겪은 집도 있지만 적합한 시기에 입양사실을 알게 한 것이 양육성공과 좋은 관계 지속조건이라고 조사됐다.다만 충분한 사랑속에 키우고 소중한 자식이라는 확신을 들게 한 것이 성공의 전제였지만…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는 2명의 국민교 5년 여아사건은 가슴아픈 일이다.
  • 주식투자로 올85억 수익/증권가에 「손말철 돌풍」

    ◎부동산으로 “떼돈”… 8개기업 소유/중기저가주 집중공략 작전 성공 제지 주만 대량으로 매집,「기업 사냥꾼」으로 지목되던 손말철씨(62·삼선개발 회장)가 80여억원을 주식에 투자,1년도 채 안돼 투자액만큼을 벌어들였다. 투신사의 펀드매니저들이 연 15%를 적정수익률로 잡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익률이다. 손씨는 올 1월26일부터 6월25일까지 주당 6천∼8천원대에 동신제지 43만여주를 사들여 이 중 21만여주를 지난 달 1만4천원대에 팔았다.차익이 약13억5천만원이다.작년 11월부터 올 6월사이에 8천원대에 매입한 신무림제지 28만여주 가운데 13만여주도 지난 달 2만1천원 대에 매각,16억5천만원 정도를 벌었다. 올 상반기 7천원 대에 사들인 신호제지 43만여주의 주가는 11일 1만2천8백원으로 올라 평가이익이 21억원을 넘는다.현재 보유한 주식까지 다 감안하면 89억원을 투자해 85억원을 벌었다는 계산이다. 손씨는 부동산 투자로 떼돈을 번 입지전적 인물이다.삼선개발·강화산업·동보주택·태평염직·동방기업·삼선기업·선일기업·제주목장·삼선장학문화재단 등 8개 기업을 갖고 있다. 부산고를 졸업한 뒤 건국대의 전신인 정치대학 법행정학과에 진학,고시에 달라 붙었으나 계속 낙방했다.약국기사와 금은방으로 기반을 잡은 뒤 부동산에 손을 대 순식간에 부를 축적했다. 3년 전부터 주식으로 옮겼다.남의 충고나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히 자기판단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또 남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의 저가주만 집중투자하는 「사회사업가형」 투자가라는 별명도 있다.대부분의 저가주는 중소기업의 주식으로 이들의 부도를 막는 길은 저평가된 주식을 제 값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대표적인 저가주인 제지주를 집중 매집했던 이유이다. 삼선개발의 한 관계자는 『주가도 많이 오른 데다 사업자금도 필요해 처분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며 『이제부터 주식투자보다는 개인사업에 치중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12·12사태」「5·16군사정변」/중고교과서 현대사 용어 확정

    ◎「4월혁명」·「대구폭동사건」도/국사편찬위,교육부시안 수용 최근 검찰이 「군사반란」으로 규정했던 12·12사건은 오는 96학년도부터 사용될 중·고교 국사교과서에서 교육부시안대로 「12·12사태」로 기술된다. 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당초 통상거부에서 「대서양 통상,통교거부」로 구체화되고 대구폭동사건과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제주도 4·3사건처럼 발생일자를 명시,「대구10·1폭동사건」 「여수 순천 10·20사건」으로 표기될 전망이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원순)는 11일 교육부의 국사교과서 시안에 대해 심의를 벌여 4·19의거를 「4월혁명」,5·16군사혁명을 「5·16군사정변」등으로 서술하게 하는등 교육부안을 대부분 그대로 수용했다. 이에따라 교육부는 이같은 심의결과를 토대로 빠르면 이달중으로 국사교과서시안을 수정,최종 확정한 뒤 새교과서 집필을 위한 준거자료로 활용하기로 했다. 새 국사교과서 상권은 96년 3월부터,하권은 97년 3월부터 배포된다. 국사편찬위에 따르면 최근 검찰의 성격규정으로 가장 관심이 모아졌던 12·12사건은 여전히 논쟁거리인데다 학문적인 연구성과등도 미약해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보고 교육부 시안대로 「12·12사태」로 기술하도록 했다. 대구폭동사건과 여수·순천반란사건는 제주도 4·3사건처럼 지명과 일자를 명시하기로 표기방식을 통일,「대구 10·1 폭동사건」 「여수 순천 10·20사건」으로 표기토록 했으며 8·15광복,6·25전쟁,10·26사태,5·18 광주민주화운동,6월민주항쟁등은 교육부안대로 통과시켰다. 특히 4·19의거는 비록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가치관를 두고있다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4월혁명」으로 기술토록 하고 5·16군사혁명은 다수설을 존중,「5·16 군사정변」으로,동학혁명도 「동학농민운동」으로 서술토록 했다.
  • 북한핵·유도탄 개발/역내위협 공동대처/이 합참의장­비 국방

    【마닐라=김영만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이양호합참의장은 11일 하오 드 빌랴 필리핀국방장관및 엔릴레 군총사령관을 예방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의 안보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합참의장과 엔릴레총사령관은 북한의 핵무기및 장거리유도탄개발이 역내 안보에 중대한 위협요소임을 강조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합참의장은 특히 필리핀군 현대화에 우리나라가 참여 가능한 분야는 적극 참여하기를 희망한다면서 6.25를 계기로 맺어진 양국의 우의가 더욱 공고히 다져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12·12」 대치… 공전국회 어디로/절뚝거리는 의정…여야 움직임

    ◎장외투쟁 통해 여 핵심부의 「변심」 유도/민주/추곡·예산안처리 부각… “정면돌파” 선택/민자 민주당이 「12·12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반면 민자당은 「수용 불가」의 뜻을 고수,정국의 경색국면이 심화되면서 정기국회의 공전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주 전략◁ ○…7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특별당보의 가두배포 및 지구당별 규탄대회,종교·재야인사와의 공동기자회견등 앞으로의 구체적인 활동방향을 최종 확정.이른바 「장외투쟁 돌입」을 선언한 것. 이날 회의는 여권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국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초강경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었고 특히 이기택대표는 『일부에서 내가 사심을 품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표직을 사퇴하고 평의원으로 남아 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겠다』고 「폭탄선언」에 가까울 정도의 각오를 피력하며 분위기를 주도. 그의 이같은 발언은 이번 공세를 자신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샅바싸움」으로 보는 정치권 일부의 시각에 쐐기를 박고 「12·12 공세」의 주도권을 계속 확보하려는 「다목적용」으로 분석. 민주당의 공세는 2단계로 나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우선 김영삼대통령이 APEC(아·태경제협력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오는 10일까지를 1단계,그 뒤를 2단계로 삼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관측. 물론 총력은 1단계에 쏟을 것이 분명하다.내치가 불안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외국순방이 순조로울 리 없으므로 여권 핵심부로부터 뭔가 시그널이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내심 갖고 있는 듯한 눈치. 1단계에서 여권이 「요지부동」이면 2단계에서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나서겠다는 복안. 이 때문에 민주당은 이번주 중반쯤 발의할 것을 검토했던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 문제도 시기를 정하지 않고 있다.이를 위해서는 국회에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 이런 강경기조속에서도 『국회부터 정상화하자』는 비주류측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어 어떤 식으로 당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지가 주목. 결국 민주당이 무작정 국회를 팽개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전망. 국회 공전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비주류측의 탐탁치 않은 반응도 주요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 이와 관련해 지난번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 처리 때도 『야당이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던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오는 10일 중국에서 귀국하면 뭔가 바뀌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민주당은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의 발의를 원내 진입의 구실로 삼을 가능성이 높고 그 시기는 다음주 중반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유력. ▷민자 대응◁ ○…민주당의 「12·12 공세」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답답해 하면서도 국회의 장기공전에 따른 여론의 비난과 민주당의 내부균열을 기대하는 듯 추곡·예산안처리등 산적한 일정을 부각시키며 국회의 정상화를 촉구. 박범진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12·12 관계자들의 기소유예를 명분으로 국회를 공전시키는 것은 정치보복에 반대했던 김대중씨의 생각에도 어긋난 것』이라고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이기택 민주당대표의 미묘한 긴장관계를 겨냥.박대변인은 또 『6·25를 일으킨 북한 공산주의자들과는 화해를 주장하면서 국내적으로는 과거문제에 대해 처벌을 주장할 수 있느냐』고 민주당 논리의 일관성 문제를 지적. 이한동 원내총무도 확대당직자회의에서 『민주당의 태도가 지난주보다 더욱 경직돼 김대통령이 오는 10일 출국할 때까지는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그러나 언론에서 국회 공전에 대한 비난이 시작됐으므로 용기를 갖고 상임위와 예결위등 정해진 국회일정의 진행문제를 야당과 공식·비공식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보고. 강재섭 총재비서실장은 『민주당이 준비하는 검찰총장 탄핵이란 직무집행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을 때만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수사결과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찰이며 항고 재항고 헌법소원등 절차가 남아 있는 중간단계에서 기소유무는 법적으로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당당한」 대처를 주문.
  • 조창호씨 탈북지원 은인 있었다/성신여대 직원 최성규씨

    ◎북서 조선족 통해 보낸 서한 접수후 누나 수소문/6·25때 성신여고 근무한 창숙씨 찾아내 전달 조창호 소위(64)의 극적인 생환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주인공은 조씨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성신여대 총무과 직원 최성규씨(36). 7일 이 대학 한영환 총장(62)·안명수 교무처장(55)등과 함께 조소위가 입원중인 국군수도통합병원을 방문한 최씨는 한동안 말을 잊은 채 시리도록 푸른 가을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조소위는 92년 여름 북한을 방문한 중국의 조선족을 통해 실낱같은 기대속에 수취인을 맏누나로 「대한민국 서울시 성신여자대학 조창숙」앞으로 편지를 보냈고 이를 접수한 최성규씨는 수소문끝에 조창숙씨에게 전해줘 죽은 줄로만 안 동생의 생존사실을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알렸다. 당시 조씨는 16절지 한장에 앞뒤로 빼곡히 가족들과 생이별한 딱한 사연을 적은 뒤 가족을 찾아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한국전쟁당시 맏누나 창숙씨가 성신여대와 같은 재단소속인 성신여고 가정과 교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조소위는 설혹 누나가 아니더라도 편지를 받은 누군가가 이를 전달해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다. 북녘땅의 조소위가 가진 그 가느다란 바람이 뜻밖에 교직원 최씨에 의해 기적같이 이뤄졌다. 처음 편지를 받아본 최씨는 중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롭지 않은 사연을 담고 있을 것 같아」 뜯어본 뒤 절절한 사연과 접하고는 밤새 콧잔등이 시큰했다. 『분단의 비극은 누구에게라도 예외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조창숙씨의 소재파악에 나섰습니다』 4∼5일동안 교육부와 가정학회등을 통해 추적한 최씨는 조창숙씨가 건국대 가정대학장을 역임한 뒤 명예퇴직했다는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됐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 해 여름 최씨는 동생이 전쟁터에서 산화한 것으로만 여긴 창숙씨에게 일생중 가장 잊을 수 없는 하루를 선사했다. 「사자의 남매」는 그해 10월 중국을 방문,편지를 부친 조선족을 직접 만나 동생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뒤늦게나마 생명의 은인을 만나게 돼 기쁩니다.편지를 전달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생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꿈속에 그리던 남매가 자신의 편지를 받아본 사실을 북한을 방문한 조선족을 통해 전해들은 조소위는 「빠삐용의 탈출」을 감행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 한반도 평화체제의 방향(사설)

    이붕중국총리 방한을 계기로 한반도정전협정의 평화협정체제전환문제가 북핵이후의 가장 중요한 외교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당연한 순서라 생각한다.한반도질서는 40년전 6·25휴전이후의 냉전체제 그대로다.탈냉전의 세계적 평화공존질서에 부합되는 새로운 한반도질서와 체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것을 막아온 것이 북의 개방거부와 핵개발 고집이었다.결과는 모르지만 북·미합의로 북핵문제가 일단 해결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그에 따라 제한적일망정 북한 개방가능성의 문이 열린 이상 그것을 수용하고 발전시켜나갈 새로운 한반도평화체제의 정립이 불가피해진 상황이라 할 수 있다.중국총리나 우리 외무장관,그리고 로드 미국무성 아태차관보등의 동시다발적 문제제기의 배경이라 본다. 문제를 제일 먼저 제기한 것은 북한이었다.그러나 순수한 동기가 아닌 왜곡된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대했다.북한은 한국을 배제시키고 미국과만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한·미방위조약폐기와 주한미군철수등을 통한 한반도적화통일기반만 닦겠다는 냉전전략의 발상에서 군사정전위를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한편 중국의 동조를 끌어내는등 미국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켜온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 당사자 한국을 제외한 북한요구의 평화협정체제란 누가 보아도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것이었다.북한입장을 지지해온 중국이 이총리의 입을 통해 남북한당사자참여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도 그러한 논리의 모순성을 인정치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한외무장관이 제기한대로 남북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중이 추인,보장하는 식의 평화체제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그것은 우리 입장의 변화가 아니라 관철이다.통일도 결국은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8일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이 방한하면 논의는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전협정을 지키고 평화협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하는 것은 우리보다 북한이라고 본다.외교적 고립과 경제파탄,그리고 과도기의 불안정등 북한이 여유를 보일 여지는 없다.정전체제의 무력화가 우리에게만 불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북은 억지를 버리고 국제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합리적인 한반도평화체제 정착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전제조건으로서 북한이 진정한 평화의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미국과의 핵포기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고 남북대화에 적극 호응하며 군의 지나친 전방배치를 완화하는 것등은 북·미관계개선및 우리의 대북 경수로지원뿐아니라 한반도평화협정체제마련을 위해서도 북한이 갖추고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필수과정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 1천만 서울시민 살림 떠맡은 최병렬시장/정면돌파형 소신파

    ◎직언 잘하고 고집세 「최틀러」 별명/위기의 시정·민생분야 대수술 기대/「8개월 단명 시장」 맡은건 뭔가 결심했기 때문 「최틀러」가 드디어 1천만 서울시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최틀러」는 최병렬 신임서울시장의 별명이다.언론사 재직시절,이어 정계에 들어와 국회의원과 청와대수석,그리고 장관을 두번이나 역임하면서 보여준 불같은 추진력과 소신이 독일의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졌다.그러나 그는 히틀러가 보여준 독재성·잔인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합리를 추구하면서 옳다고 판단될 때만 밀어붙이는 히틀러에게서는 볼 수 없는 민주적 타입이다. 그가 새정부에서도 중용되리라고는 모두 생각했지만 서울시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예상은 거의 없었다.성수대교 붕괴사고이후의 서울시정의 난맥상,나아가 국기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여기서 종지부찍기 위해서는 「불의 사나이」 최병렬의 등장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최시장의 고향은 경남 산청.지리산 천왕봉밑 깡촌이다.부친이 6·25사변 때 사망해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진주중·부산고·서울법대등 엘리트코스를 착실히 밟았다. 한국일보·조선일보를 거치면서 언론인으로 명망을 얻던 그가 세인의 관심권에 진입한 것은 85년 민정당 전국구의원에 발탁되고부터다.그 이전에도 숱한 정계입문 제의가 있었지만 늘 거절하던 그는 『신문사를 위해서도 전국구를 수락하라』는 말에 마음을 바꿨다. 국회의원으로서 최시장은 단연 발군이었다.냉철한 현실감각과 뛰어난 판단력은 그를 단숨에 민정당의 「1급브레인」으로 지칭되게 만들었다. 87년 대통령선거전이 시작되자 당시 민정당의 노태우후보는 최시장을 최고의 참모로 생각했다.노대통령이 제시한 주요선거공약은 거의 최시장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6공화국」 출범후에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이른바 「5공청산」작업을 주도했다.이어 공보처장관·노동부장관을 지내면서 소신있게 업무를 처리한 일화는 너무나 많다.KBS노조사태 때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은 일,우리 근로자의 임금체계를 개혁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것등­그때는 그를 두고 「매파」 또는 「강성」이라고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태도를 긍정평가하는 쪽이 훨씬 늘어났다. 「노태우사람」이라고 여겨지던 최시장을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대통령후보시절 중용한 것도 그의 뛰어난 추진력·기획력·정면돌파기질 때문이었다. 그는 몇차례나 고사한 끝에 김영삼 후보의 선거기획위원장을 맡았다.일단 업무를 맡겨놓으니 밤낮이 없었다.김영삼 후보의 선거기획팀은 최시장의 불호령에 새벽 2시,3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자신의 기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김영삼 후보에게까지 듣기 싫은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김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뒤 최시장은 청와대비서실장 물망에 올랐고 최소한 장관자리는 주어지리라고 예상됐다.하지만 그는 『새술은 새부대에』라면서 극구 사양했다.최근들어서도 지구당위원장등 몇가지 매력있는 자리가 제시되었으나 모두 거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 최시장이 의원직을 버리면서까지 길어야 8개월가량인 서울시장직을 수락했다는 것은 무언가 결심을 단단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교통·건설 등 민생과 밀접한 분야에서 「창조적 개혁」이 중요하다고 평소 주장해온 소신파시장을 맞아 서울시 관리들은 최대로 긴장하고 있다.
  • 평불협부회장 집유

    서울형사지법 9단독 이길수 판사는 1일 미국영주권을 이용,북한을 드나들며 북한서적을 반입해 기관지에 그 내용을 게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국평화통일추진 불교인협의회(평불협) 부회장 신광수피고인(48·법명 법타)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신피고인등은 지난 4월 평불협 기관지인 「하나로」 제11호에 「6·25는 북침」이라는등 북한을 고무·찬양하는 이적표현물을 게재해 불교관계자들에게 배포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각각 징역 2년과 1년6월이 구형됐다.
  • “조소위 탈북은 조국애 실천의 표본”/김 대통령,조창호씨 위로방문

    ◎“자유의 소중함 일깨운 승전보” 격려/명예로운 전역식·생계보장 등 약속 김영삼대통령은 28일 상오 6·25사변 때 육군소위로 참전중 중공군에 포로가 돼 북한에서 억류생활을 하다 지난 3일 극적인 탈출에 성공한 조창호씨가 입원해 있는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찾아 조씨를 위문·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병원 특실에 들어가자 바로 병상에서 일어서 거수경례를 하는 조씨를 두손으로 뜨겁게 포옹하고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10여분동안 환담.김대통령은 조씨의 손을 따듯하게 감싸잡고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조씨는 대통령의 방문에 감격한듯 눈물을 글썽이며 『많이 나았다』고 답변. 김대통령은 『조소위의 북한탈출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인간승리의 표본이며 우리 국민들에게 조국과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고 높이 평가.이어 김대통령이 『조소위의 어머니께서 조국이 어려울 때 아들에게 군입대를 권유하고 평생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고 고인이 된 조씨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자 조씨는 『제가 살아서 돌아올 것으로 믿고 돌아 가셨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 김대통령은 조씨의 군적과 관련,『조소위가 아직 소위로 남아 있어 법적인 문제는 있지만 명예로운 전역식을 갖게 하라고 이병태 국방부장관에게 지시했다』면서 전역식 때 정부는 국가가 수여할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도록 준비하고 있으며 생계나 모든 문제를 국가가 영원히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이에 조씨는 『바쁘신 중에 이렇게 와주셔서 뭐라고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이처럼 발전한 조국의 건설에 저도 벽돌 한장이라도 쌓아야 하는데 아무 한일이 없어 마음이 무겁다』고 심경을 피력했다.그는 또 『북한에 있으면서도 가슴에 조국을 품고 있었으며 내가 조국이 아니면 어디에 묻히고 어디에 가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북한 억류생활을 회고. 조씨의 큰 누이인 창숙씨는 『어머니는 생전에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국가와 사회,그리고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불렀다』면서 『창호의 귀국은 어머니의 이같은 기도 덕분으로 감사한다』고 어머니를 회고.조씨도 『북한에 있을 때도 어머니가 새벽 4시면 일어나서 기도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조소위의 조속한 건강회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조그만 선물을 마련했다』면서 홍삼 6백g과 손목시계를 전달하고 『이제 아무 걱정말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도록 해달라』고 당부. 김대통령은 병실을 떠나기에 앞서 조씨를 다시 한번 뜨겁게 포옹.김대통령의 이날 방문에는 이국방부장관과 김동진 육군참모총장이 수행.
  • 북억류포로 송환교섭 나서라(사설)

    이 무슨 비극이란 말인가.북한의 포로가 되었다가 43년만에 극적으로 탈출해온,지금은 노인이 된 조창호(64)소위의 연이은 증언들이 충격을 주고있다.역시 6·25전쟁포로로 41년 동안이나 북에 억류되어온 한 육군병사의 가족찾기편지도 날아들어 분단의 비극을 고발하고있다.정말이지 송구스럽고 창피하며 화가 나는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6·25당시 국군 8만2천3백18명이 실종 또는 포로가 되었으며 이중 5만여명이 북한에 억류된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북한은 국군포로 수천명을 악명높은 아오지탄광을 비롯한 광산과 전쟁복구공사등의 강제노동에 동원한 것으로 조소위의 증언은 확인하고 있다.그들의 고초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도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적나라하게 증언하고있다. 그동안 우리는 1천만 남북이산가족과 납북자 4백30여명만 생각했지 5만여명의 국군포로가 북녘땅에 억류되었다는,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사실을 잊고 있었다.어려웠던 시기의 국가적 사연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본인들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 큰죄를 지었음을 자책하지 않을수 없다. 그들이 누구인가.망국의 위기에 생명을 걸고 국방에 나섰던 우리의 형제요 자랑스런 군인들이 아니었던가.그동안은 피치못하게 잊었다해도 이제부턴 절대 잊어선 안될 것이다.스스로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어떻겠는가를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것이다.우선 그들을 잊고 외면한다면 앞으로 누가 이나라를 위해 생명을 걸고 나서겠는가. 국가와 정부라는 것이 무엇인가.국민을 보호하고 지키자는 것이 제1의 책임아닌가.그것을 못한다면 국가나 정부의 자격이 있다고 할수없을 것이다.우리정부는 탈북난민을 받아들이고 독립지사들 유해도 찾아 봉환하는,당연하지만 자랑스런 사업도 적극 전개하고있다.조소위의 인간승리로 실태의 일부가 알려지기 시작한 북한억류 국군포로의 송환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도 당연히 나서야 할것이다.미국정부는 실종군인 유골을 찾기위해서도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선 정확한 실태파악이 제일의 급선무다.그것을 기초로한 대북송환협상을 시작해야 한다.유엔인권위와 국제적십자사등에도 끊임없이 호소하고 문제를제기하는 한편 국제여론도 적극 환기해야할 것이다.이산가족상봉과 함께 이것은 남북분단과 대립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핵문제와 전쟁까지도 초월하는 인도주의와 인간기본의 문제다. 우리는 이인모노인을 일방적으로 송환한바 있다.북한은 남아있는 미전향장기수들의 송환도 요구하고 있다.한국에 오기를 희망하는 납북자및 북한억류 생존포로들과 그들을 교환하는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
  • 조창호씨 전역식/새달4일 9사단서

    국방부는 43년만에 북한을 탈출,생환한 조창호씨(64)의 전역식을 다음달 4일쯤 조씨가 6·25당시 육군소위로 근무하던 9사단에서 이병태국방장관·김동진육군참모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갖기로 했다. 현역소위로 인정을 받은 조씨는 이날 중위로 특진하는 동시에 전역한다. 조씨는 전역에 앞서 국립묘지를 참배,영현봉안관에 있는 자신의 위패를 치운뒤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을 예정이다.
  • 「조창호소위」 재회앞둔 경기상고 23회 동창들

    ◎“고생 많이한 창호 우리가 돕자”/“언제 만나자” 사무실전화 빗발/총동문회선 환영식 준비 분주 이순을 훨씬 넘긴 경기상고 23회 동기동창생들은 요즘 설날을 앞둔 동심마냥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6·25사변때 포로가 되어 43년동안 북한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 탈출,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에 안긴 동기생 「조창호소위」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TV와 신문을 통해 조씨가 동문임을 확인한 동기생들은 너나 할 것없이 「조창호동문돕기를 위한 모임」행사에 발벗고 나섰다. 『옛날 모습 그대로든데』,『아니야,고생을 너무 많이 한 것같아』,『학교다닐때 본 것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우리가 열심히 도와줘야 해』 50년 당시 취업반(A반)과 진학반(B반)으로 나뉘어 졸업한 1백54명가운데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동문은 70여명으로 「조창호탈출」뉴스가 보도된 뒤에는 동창회사무실로 동문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어느덧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꿈많던 10대 소년들이 머리카락이 하얀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옛기억을 회상하면서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경기상고 23회 졸업생들은 삼수회·등반회·서울대상록회·청송회(연세대동문모임)등 각기 다양한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특히 삼수회는 셋째주 수요일에 만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을 통하면 알고 싶은 동문들의 안부를 언제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삼수회등 23회동문회의 작은 친목그룹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연락을 하며 조창호동창돕기운동에 나선 것이다. 동기생가운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서순화씨가 처음으로 조씨와 25일 상봉했다. 조씨가 입원해 있던 서울 중앙병원을 방문,반갑게 해후한 서씨는 『「창호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에게 「나,순화야」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내손을 붙잡고 놓을 생각을 않았다』며 감격의 순간을 되뇌었다. 『그냥 손을 꽉잡고 울기만 했어요.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이북억양때문에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요』 서씨는 혼자만 만나고 왔다고 동기생들로부터 야단을 들었다며 끈끈한 동기애를 자랑스러워 했다. 『동문회명부에는 그동안 행방불명으로 돼 있었어요.빨리 동기회명부도 고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건도 만들어 줘야죠』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정연덕씨(64·천보흥업 부사장)는 동기생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내에 모두 함께 만나 서울시내 구경도 하고 옛날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총동창회 신우균사무국장(경기상고 22회)도 『총동창회차원에서 조창호동문환영식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동문들끼리의정을 더욱 두텁게 하는 기회로 삼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6·25 한국군포로 중앙아 강제이송”/러 한국전전문가

    【서울 연합】 6·25전쟁 당시 한국군 포로의 일부가 소련과 북한의 긴밀한 협조하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송된 사실이 있다고 러시아의 한 저명한 한국전 전문가가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 산하 전쟁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인 가브릴 코로트코프 박사는 최근연합통신과의 회견에서 한국전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군 일부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송됐으며 이러한 내용의 비밀문서가 옛소련비밀경찰(KGB)비밀문서고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초기 소련극동군총사령관 직속 한국전 전담 정보반에서 장교로 근무한바 있는 코로트코프 박사는 자신의 직무중 하나가 유엔군 포로에 대한 심문이었다면서 당시 소련군 포로 전문 장교들로부터 한국군 포로 이송에 관한 얘기를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 조창호씨/현역군인가 귀순동포인가/43년만의 생환… 군적 어찌되나

    ◎「포로」인정땐 원계급 회복,「최장수 소위」/단순 탈출… 「민간인」 간주땐 제대자 처리 6·25당시 포병소위로 참전했다가 중공군에 붙잡혀 북한땅에서 살아온 조창호씨(64)가 43년만에 북한을 탈출,생환해옴에 따라 조씨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고 조치를 취했던 정부의 관련부처들이 조씨에 대한 대우등을 놓고 부심하고 있다. 국방부와 육군은 조씨를 「전사자」로 처리,중위로 1계급을 추서했으며 국립묘지측은 조씨의 위패를 봉안해놓고 있는 상태다.또 국가보훈처는 조씨를 국가유공자로 처리,가족들에게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했었다. 조씨에 대한 처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분은 조씨의 군적문제이다.즉,조씨에 대해 북한생활을 포로생활로 인정하고 지난 43년동안 군적을 유지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제대한 것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이다.이 문제는 조씨가 앞으로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부여받을 수 있는지와 관련돼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씨는 포로상태가 인정되면 사망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지만 단순한 탈출로 간주되면 앞으로 실제 사망때에는 국립묘지안장이 불가능해진다. 현행 국립묘지령등에 따르면 현역군인등으로 20년이상 근무한 군인연금 수급권자등을 국립묘지안장대상으로 선정하고 있어 조씨는 자칫 생존시에는 국립묘지에 위패가 봉안됐다가도 실제 사망했을 때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게 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군인연금수혜여부는 조씨가 정상적으로 근무하지 않아 매달 연금갹출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연금수혜는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와 육군은 따라서 조씨에 대해 북한생활이 포로생활이었는지를 앞으로 조사할 방침이다.이 조사에서 포로로 인정되면 당연히 지난 43년을 현역으로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이 경우 조씨는 전사를 조건으로 1계급특진,중위가 된 만큼 다시 원계급을 회복,「최장 소위근무자」가 된다.그러나 조씨가 북한에서 결혼을 하는등 포로생활에서 벗어난 민간인이며 북한을 탈출한 동포로 단순하게 보면 조씨는 군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게 된다.이때 조씨는 전사처리된 51년 9월 자동제대한 것으로 간주된다. 육군에 따르면 조씨는 51년 4월14일 임관,5월 실종돼 4개월후인 9월10일부로 전사처리됐다.병역법과 군인사법등 관련법규에서는 「전투중 행방불명자에 대해서는 2년 경과시 전사처리하고 생환시 전사처리일부로 제대처리한다」고 규정돼있어 조씨는 이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다.육군의 한 관계자는 『조씨의 사례가 처음있는 일이라 관련규정이 정비돼 있지 않다』면서 『조씨의 처리결과가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철저히 관련법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적문제 다음으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조씨의 가족들이 그동안 받았던 국가유공자연금의 환수여부다.국가보훈처는 조씨가 전사처리된데 따라 61년 8월 국가유공자등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조씨를 국가유공자로 등록,조씨의 부모인 조연국씨(사망)와 이곤옥씨(사망)에게 61년 당시에는 한달에 5백원씩을,연금수혜자인 부모가 모두 사망한 82년 8월에는 마지막으로 1만9천9백원을 연금으로 지급했었다.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가유공자예우등에 관한 법률에서 본인이 거짓말을 하는등 본인의 귀책사유가 없으면 군기록이 변경되더라도 관계없다는 조항이 있어 조씨가 받았던 연금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조씨가 앞으로 정착금등을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도 관심거리다.보사부와 안기부등 관계당국은 조씨에 대해 귀순동포인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현행 「귀순월남동포보호법」은 북한에서 출생해 귀순한 사람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의 15∼20배를 정착금으로 지급하도록 돼있어 조씨의 경우는 해석이 다소 다르다는 입장이다. 관계당국은 이에따라 국방부가 조씨를 현역군인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지켜본뒤 조씨에 대한 처우를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포병소위 무사귀환 신고합니다”/생환 조창호씨,방문한 이국방에 거수경례 북한을 43년만에 탈출,극적으로 조국의 품에 안긴 조창호씨(64)는 25일 하오3시쯤 이병태 국방장관이 위문을 위해 병실을 방문하자 불편한 오른팔과 다리에도 불구하고 병상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크게 군번등을 외치며거수경례,군인정신을 보여줬다. 조씨는 당초 자신이 입원해 있던 서울중앙병원에서 이날 하오2시47분쯤 국군통합병원 5층 VIP실로 이송된 뒤 이장관이 자신을 방문하자 병상에서 일어나 부동자세로 『포병소위,군번 212966,국방장관님께 무사히 귀환했음을 신고드립니다』라며 신고한 것. 이어 이장관은 『선배님이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돌아오시게 된 데 대해 우리국민과 국군이 환영하며 대통령께서 저를 대신 보내셨다』면서 김영삼 대통령명의의 꽃다발을 전했다. 한편 이장관의 조씨 방문에 동행한 군 관계자들은 『조씨가 귀환신고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콧등이 시큰했다』며 『신고를 하는 조씨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조씨가 그토록 고생했어도 군인정신만큼은 살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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