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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원앙사촌 멸종됐다/환경부 ’96환경백서

    ◎파초일엽 등 식물포함 모두 6종/조류·곤충류 등 76종도 멸종위기 호랑이·원앙사촌 등 야생 동·식물 6종이 멸종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25일 환경부가 펴낸 「96년 환경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서식했던 야생 동·식물 가운데 호랑이·원앙사촌·서호 납줄갱이·물솔·파초일엽·매화마름 등 모두 6종이 더 이상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서에 따르면 한반도 전역에 폭넓게 분포했던 호랑이는 지난 1920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해방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일제 때 호환예방을 내세운 남획과 6·25전쟁으로 인한 산림황폐 등 서식지 파괴가 결정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오리과인 원앙사촌은 71년 북한의 함경남도 명천군 칠보산에서 동해로 흐르는 보천강 하구에서 관찰된 이후 더 이상 발견사례가 없다. 경기도 수원의 서호에서 서식했던 서호 납줄갱이는 잉어과로 수염이 없으며 입이 작고 등과 배가 각각 암갈색과 은백색을 띤 특이한 모양의 물고기라는 기록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환경부는 최근 포유류 9종,어류 3종,양서·파충류 7종,조류30종,곤충류 8종,단자엽식물 5종,쌍자엽식물 13종,양치식물 1종 등 모두 76종을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종」이라고 발표했었다.〈노주석 기자〉
  • 6·25 전몰군경 등 유자녀 취업·주택자금 지원 확대

    ◎당정,새달 대책 확정 정부와 신한국당은 6·25전쟁 발발 46주년을 맞아 6·25전몰군경 유자녀들의 취업을 알선하고 주택자금을 포함한 융자폭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 DJ·JP 잇단 군부대 방문 눈길

    ◎“호국의 달 맞은 통상적 일정” 강조 불구/국회공전 비난­대권 의식한 행보 지적 국민회의 김대중,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6·25발발 46주년을 맞아 전방부대 방문 및 위문활동등 활발한 행사와 함께 당의 지원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두 김총재의 대권행보와 함께 국회공전 장기화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회의 김총재는 25일 정계복귀 이후 처음으로 민족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찾는다.지난 총선 때 국민회의 부진의 결정적 역할을 한 북한의 무장군인들이 휴전협정을 어기고 난입한 진원지이다.그는 이에 앞서 육군 ○○사단 본부와 관측소(OP)도 들러 부대현황과 최근의 남북대치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을 예정이다. 김총재는 24일 상오에도 서울 영등포구 등촌동 국군 수도통합병원과 길동 보훈병원을 차례로 방문,치료를 받고있는 국가유공자와 장병들을 격려했다.그는 『여러분들의 희생이 오늘의 풍요를 만들었다』며 당차원의 지원도 약속했다. 국민회의측은 김총재의 이러한 잇단 안보관련 행사참석에 대해 『6월 호국의 달을 맞은 통상적인 일정』이라고 강조했다.그러나 구색갖추기 차원에 머물던 예전에 비해면 매우 적극적으로 변한 게 사실이다.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도 25일 6·25전상자들이 공동 운영하는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의 「대방동 재활용사촌 복지조합」을 방문,군용양말과 전산용지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이들의 재활의지를 북돋워줄 계획이다.〈양승현 기자〉
  • 한국 남성 86% “전쟁땐 참전”/상이군경회,성인 1천명 조사

    ◎30∼40대 높고 20대는 낮아 우리나라 성인남자의 86.4%는 전쟁이 일어나면 전투에 참여할 생각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20대 신세대는 성인 남녀 평균 67.9%에 못미치는 66.4%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회장 윤재철)가 만 20세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6·25와 국가안보에 관한 국민의식」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 밝혀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쟁을 겪은 50대 이상 전전세대의 참전의사는 66.6%였고 이른바 「민주세대」로 불리는 30∼40대는 전체 평균을 웃도는 72.7%인 것으로 조사됐다.지역별 참전의사는 강원이 81.6%이고 광주·전라도가 72.4%,대전·충정도가 70.7%,서울 67.5%의 순이었으며 인천·경기가 64.4%로 가장 낮았다. 또 응답자의 60.6%는 북한의 남침위협이 상존하고 있으나 절반에도 못미치는 43.4%만이 국민의 안보의식이 매우 높다고 대답,남침위협과 안보의식간에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침 위협 체감도는 신세대인 20대가 전쟁을 겪은 세대의 49.8%보다 훨씬 높은 62.1%인 것으로 나타나눈길을 끌었다. 통일의 걸림돌로는 「남북한의 이념차이」가 30.7%로 가장 높았고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22.3%),「남북한의 통일방법의 차이」(20.7%)「남북한 지도자들의 통일의지 부족」(19.1%)의 순이었다. 또 향후 5년 안에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는 질문에는 50.7%가 「통일은 되지 않으나 지금보다는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대답했으며 25%가 「지금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전쟁에 대비해 비상물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4.6%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물품으로는 라면이나 국수(34.8%),휴대용 구급약(23.9%),방독면(13%),가스나 초(6.5%) 등이었다.〈황성기 기자〉
  • “청년들 안보의식 둔감 답답”/귀순 이철수 대위 서울 생활 한달

    ◎“북 전쟁준비 심각성 너무 몰라”/“「달동네」 생활도 북한간부 수준 30년동안 속고 산게 너무 억울” 『남조선 청년의 사는 모습이 부럽긴 한데,북조선의 전쟁준비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미그 19기를 몰고 지난 5월23일 귀순한 북한 공군 이철수대위(30)는 자못 불안한 표정으로 한달여동안 서울에서 느낀 소회등을 피력했다. 24일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이대위는 비교적 안정된 심리상태를 보이면서 그동안 남대문시장과 남산타워·63빌딩·용산전자상가 등 서울의 관광코스는 물론 종로구 평창동 고급주택가와 이른바 「달동네」로 불리는 관악구 봉천동 판자촌까지 구석구석 둘러보았다.지난 21일 30회 생일이기도 했다. 『30년동안 북에서 듣고 배운 것이 말짱 거짓말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평창동 60평짜리 집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귀순자에게 으레 보여주는 곳으로 여겼다.냉장고에 가득 찬 과일이나 식료품도 일부러 채워넣었다고 생각했다. ○구석구석 둘러봐 그러나 봉천동에서 「요원」들이 정해준집이 아닌,스스로 선택한 허름한 판잣집에 들어가 확인한 「가난한 남조선 인민」의 생활실상은 조종사로서 북에서는 상층의 대우를 받아온 그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집이 누추하다고 마다하는 아주머니를 설득해 들어가보니 역시 북에서는 간부집에만 있는 냉장고에 돼지고기를 비롯한 온갖 음식이 가득했고,고위간부만 놓을 수 있는 전화기나 세탁기도 있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명절이나 김정일 생일에만 배급받아온 그는 아주머니가 『먹고 싶을 때 시장에 가서 사먹는다』는 말에 다시 놀랐고,『집이 좁아서 그렇지 큰 불편은 없다』는 아주머니의 대답에서 속아 살아온 30년이 너무 억울하다고 느꼈다. 그가 밤에 찾은 이화여대 입구의 한 「록카페」.신세대가 아닌 이대위는 「입장불가」인 곳이었으나 TV 등을 통해 그를 알아본 신세대 남녀들이 그의 손을 끌어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현란한 조명과 귀가 찢어질 듯한 음악속에서 젊은 남녀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모습은 그에게 「잘 사는 남조선 청년들이 좋은 옷을 입고 젊음을즐기는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고기 등 가득 “깜짝” 그러나 『난 14살때부터 총을 쏘았고,17살에 입대해 전쟁준비를 해왔다』면서 『심각한 경제 및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인민군이나 북한 주민이 「사회주의를 하든 자본주의를 하든 어서 빨리 전쟁이나 해봤으면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해마다 6월이면 북한 곳곳에서는 정치강연회와 「전쟁영웅」을 추모하는 기념행사를 갖고 TV를 통해서도 6부작 6·25관련 전쟁영화를 50일이상 계속 방영하는 등 남조선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전쟁준비를 독려한다고 했다. ○“즐기는 모습부럽다” 『김정일은 지난 3월 동부전선을 방문했을 때 「인민군 조종사들은 싸움이 나면 모두 자폭비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히는 그는 귀순직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남한 7일점령계획」을 폭로,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대위는 『김정일은 「인민군대는 남한과의 평화회담에는 기대를 갖지 말라」고 하는 등 무력통일에 집착하고 있다』고전하고 『내가 귀순했을 때 서울의 경보사이렌이 울리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남조선 사람」의 둔감한 안보의식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황성기 기자〉
  • 6·25참전 전사자 명예졸업장/서울대 확인작업

    서울대는 개교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6·25때 참전했다가 전사한 서울대생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키로 하고 재학중 전사자를 확인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학적부상 전쟁기간중인 50년 1학기부터 53년 2학기까지 등록을 하지 않아 제적된 학생 가운데 전사했을 가능성이 있는 1천90명의 명단을 뽑았다. 이를 전쟁기념사업회가 갖고 있는 15만5천여명의 전사자명단과 컴퓨터로 대조작업을 펴 성명 및 생년월일·출신지역 등 일부 신상자료가 일치한 11명의 명단을 확보했다.그러나 두 자료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출신지 현지조사 등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김환용 기자〉
  • “북 공산통일망상 경계”/김 대통령,6·25 맞아 전방 시찰

    ◎주민·군인들 식량난으로 굶주려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6·25는 충분한 국방력과 완벽한 대비를 게을리할 경우 적의 침략을 자초한다는 냉엄한 진리를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 주었다』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이 투철한 자세로 국가를 방위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관련기사 2면〉 김대통령은 6·25 46돌을 하루 앞둔 이날 낮 중부전선 육군 ○○부대를 방문,장병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북한은 불행하게도 공산통일을 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않고,주민은 굶고 있으며 군인도 제대로 못먹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북한은 지금 세계 모든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마지막으로 도울 나라는 동족뿐인데 북한은 이것을 모르고 한국하고는 대화를 안한다고 하고 4자회담에도 대답을 않고 있다』고 말했다.〈이목희 기자〉
  • 김 대통령 전방시찰 이모저모

    ◎“북 농사상황 어떤가” 식량난관련 관심/“대북방송때 세계정세도 잘 알리도록” 김영삼 대통령은 6·25 발발 46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상오 중부전선 최전방 관측초소와 군부대를 방문했다.장마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가운데 김대통령이 전방을 찾은 것은 안보태세확립의 중요성을 감안한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승용차편으로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천2백m 남방에 위치한 관측초소 태풍전망대에 도착했다.부대장으로부터 전방상황과 경계태세를 보고받은 뒤 『최근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없느냐』 『북한의 농사상황이 어떠냐.군인이나 민간인이 같이 농사짓는 모습이 보이느냐』는등 북한군의 움직임과 식량난에 관심을 표시했다. 김대통령은 또 북한이 최근에도 하루 10시간씩 반정부선동내용의 대남방송을 하고 있으며 우리도 방어차원에서 일부 대북방송을 하고 있다는 보고에 『우리는 직접 북을 비방하지 말고 세계정세 같은 것을 알리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인근 부대 사병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직접 배식받은 배추국 정식으로 장병과오찬을 같이 하며 제주도 한·일정상회담결과를 설명하고 완벽한 경계태세유지를 거듭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세계속에 대한민국이 건재한 것은 65만의 우리 군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뒤 『이제 6·25와 같은 수모는 없을 것이며 당시 조금만 변화가 있었으면 통일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6·25때 한·미지도자의 판단력에 아쉬움을 표시. 김대통령은 『월드컵 공동유치는 우리가 힘이 있어 가능했으며 세계 주요정상이 우리를 도왔다』면서 『이는 우리가 가는 길이 옳고 도덕적으로 당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어 『우리에게는 힘이 있으니 자신감을 갖고 군은 국가에 충성해야 하며 특히 병사는 부모에 효도해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이목희 기자〉
  • 「주한미군과 한반도평화」토론회/이석복 군사정전위수석대표 주제발표

    ◎“주한미군 「평화 정착」 이후도 필요”/주변 강국과 관계 고려 「세력 균형자」 등 형태로/북 체제변화전 마지막 군사도발 가능성 상존 민주평통자문회의(사무총장 박상범)는 24일 6.25전쟁 발발 46주년에 즈음해 시내 타워호텔에서 전문가들을 초청,「주한미군의 역할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장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이석복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는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한반도 체제의 변화는 북한의 내부붕괴에 의해 초래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유엔사 차원의 대응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이수석대표는 특히 한반도의 평화 정착 이후에도 「세력균형자」로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그의 주제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주한미군의 실체는 사실상 유엔군,한미연합군,주한미군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먼저 유엔사령부는 평시 북한군과 군사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정전협정체제 유지에 대한 권한을 행사해 한반도 위기관리의 일차적인 책임을 수행하다가 전시가 되면 미군을 제외한 우방국의 지원군을 통제해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연합군 사령부는 지난 94년 12월1일부로 한국군에 대한 평시작전권을 이양한 후 평시에는 전쟁억제 및 전쟁수행준비를 위한 연합 권한위임 사항을 행사하다가 전쟁위협이 고조되면 외교·정치·군사 경제적 신속억제방안을 강구한다.만약 전쟁억제가 실패해 전시가 되면 지정된 한·미군 부대를 작전통제해 유엔군과 협조하에 침략군을 격퇴하고 북한지역에 대한 민사행정을 포함한 재편계획을 지원하게 된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평시 한국주둔 미군을 지휘하고 유엔사 및 연합사에 대한 지원업무를 수행하다가 전시가 되면 미국 해외 증원군을 인수해 필요부대를 연합사에 제공함과 동시에 유엔사 및 연합사의 작전을 지원하게 된다. 한반도 체제가 변화하는 상황은 여러가지로 상정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북한의 내부붕괴에 의한 체제변화라고 볼 수 있다.주한미군 군무원 콜린스씨는 최근 북한붕괴에 관한 7단계 시나리오를 작성,북한은 이미 붕괴단계에 돌입했다고 미육군 본부에보고한 바 있다.그는 북한이 자원고갈→자원에 대한 차별적 공급→지역독립→억압→저항→균열→재편 등 7단계중 1단계 자원고갈은 이미 완료된 것으로 보았다. 꼭 이 시나리오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떤 경우든 북한이 정치적,경제적,군사적 불안정으로 중앙정부의 효과적인 통제능력이 상실된 혼란상태가 발생,내부 붕괴하거나 그 이전에 최종적인 수단으로 남침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유엔사는 현 정전협정을 기본축으로 군사적 위기관리를 지속하면서 한·미 국가 통수기구의 지시에 의거,(북한의) 군사위협과 아울러 비군사적 사태에 대비한 대응방책을 강구하고 있다.북한은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키워온 군사력을 그대로 남겨둔 채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따라서 유엔사는 특히 북한의 군사적 조치가능성에 대해 비중을 두고 있다. 이처럼 주한미군은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라는 3대축을 중심으로 한국군과 더불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체제 구축을 보장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더라도 주변 강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세력균형자」 또는 「사심없는 지역안정자」로서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존재할 필요가 있다.〈정리=구본영 기자〉
  • 오늘 6·25 46돌/전국서 기념행사

    6·25 전쟁 발발 제46주년 기념행사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와 「호국정신 선양운동본부」(회장 백선엽) 공동 주관으로 25일 오전 11시 서울용산구 전쟁기념관 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된다. 이번 행사에는 6.25 참전 용사를 비롯한 향군원로회원,안보관련단체 회원 및전몰군경 유족 등 1만3천여명이 참석,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동족상잔의 참상을 고발할 예정이다.
  • 여야대표 “어색한 만남”/6·25 46돌 통일기원 미사 참석

    ◎타개척 직접화법 대신 “협력필요” 연설 국회공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과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23일 상오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옆 까치봉 진지 기도의 집에서 열린 「6·25 46돌 통일기원미사」에 나란히 참석했다. 이대표 취임이후 지난 4일 혜화동성당에서 열린 고장면박사 추도식에 이어 두번째 비공식 만남이었다. 가톨릭대학 후원회장인 신한국당 이회창의원과 박찬종전의원도 자리를 함께 했다.간단한 인사말과 악수를 나눈 이들은 그러나 정국 타개책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미사에 앞선 통일기원강연회에서 이대표와 이의원은 은유적으로 여야 협력을 강조한 반면 김총재는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 이채를 띠었다. 이대표는 『통일은 역사의 흐름을 타고 함께 나가는 믿음과 목표를 향한 전략을 짜는 지혜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고 이의원은 『전쟁대신 평화,불의아닌 정의,증오아닌 사랑으로 통일의 씨앗을 심자』고 기원했다. 김총재는 『예수도 악과 위선에는 질책과 심판을 가했다』고 북한의 인권 유린과 적화야욕을 비난한뒤 정국경색을 겨냥,『남한에서 조차 화해와 협력,일치가 되지 않는 상황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미사를 집전한 김수환추기경은 『정치하는 분,나라를 책임진 분들부터 참답게 화해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앞서 이들은 김추기경의 안내로 귀빈실에서 10여분동안 「뼈있는」 대화를 나누었다.주최측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민족 복음화 추진본부」 회장을 맡은 봉두완전의원이 『화해와 일치를 위한 행사이니 여야도 잘되길 바란다』고 화두를 꺼내자 김총재는 『화해는 하고 있고 일치만 하면 된다』고 답했다.그러자 박전의원이 『화이부동(화이부동)』이라고 맞받았다. 총선기간동안 「세대교체」를 강조한 박전의원이 김추기경과 김총재에게 『나이가 한살쯤 차이 나지 않느냐』고 「의미있는」 질문을 하자 김추기경은 김총재에게 『나이가 몇살이냐』고 되물었다.김총재가 『만으로 71살』이라고 답하자 김추기경은 『우리나라 나이냐』고 거듭 물은뒤 『내가 74살이니 3살차이』라고 고개를 끄떡였다.전국구 승계에 대해 김총재가 『한번만 기다리면 된다』고 하자 박전의원이 『오히려 제 경우가 앞사람이 빠질 가능성이 많아 더 빠를 것』이라고 답했다. 행사에는 김덕 한승수 김기춘 이재명 강성재 이택석(이상 신한국당) 김령배 한화갑 김옥두 조홍규 정동채(이상 국민회의)등 여야 의원 40여명과 안병영 교육부장관,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 등 천주계 인사들이 참석했다.〈파주=박찬구 기자〉
  • 국내전문가 미 문서관리국 발굴자료 공개

    ◎대전 피란 이승만 정부/개전초 전황파악 “캄캄”/신성모 국방,대통령에 거짓보고 일관/북 동포 걱정하며 오히려 “북진” 큰 소리 이승만 정부는 6·25발발 3일만에 대전으로 수도를 옮기고도 전쟁진행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양태진 동아시아영토문제연구소장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내셔널 어카이브)에서 발굴,2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50년 7월초 전선에서 국군이 북한군에게 대패,후퇴를 거듭하는 데도 신성모 국방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세가 호전된다는 거짓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장관은 7월3일자로 된 「제4차 보고서」에서 식량문제에 언급,『대전에 한하여는 아직 넉넉히 지내며 앞으로 서울이나 이북동포의 식량을 생각하여 다량을 확보하자고 농림부장관에 말했다』라고 보고했다.이는 전황이 매우 불리한 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북동포의 식량을 걱정함으로써 마치 국군이 곧 북진할 것처럼 호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7월5일자 「제6차 보고서」에서는 『어제(7월4일) 상오 11시부터 강력한 적이 10여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영등포에서 안양·시흥·수원 도로로 침입했으나 국군은 수원시내에서 적군과 혼전을 하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 전과를 내세웠다. 당시 정부는 개전 3일만에 대전으로 임시수도를 옮긴 상태였으며,신장관의 보고서가 나온 지 10여일 뒤인 7월16일에는 다시 대구로 이전해야만 했다.〈연합〉
  • 화랑무공훈장 43년만에 주인품에/노 일병 김일온씨 눈물의 전달식

    ◎“상신” 통보받고 제대… 세월지나 포기/현역 소령 아들 추적끝 “미지급” 확인/당시 소속사단서 전달… 무동타고 감격 6·25 때 혁혁한 공을 세운 「빛나는 일등병」이 43년만에 화랑무공훈장을 되찾았다.현역 육군 소령인 아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한 덕이다.호국보훈의 달 6월에 옛 소속 부대에서 아들의 군복을 입고 훈장을 전달받았다. 지난 10일 창설 기념행사가 열린 제7사단에서는 노구의 김일온씨(69·농업·경남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 526)가 군복 차림으로 8연대 1대대 1중대원의 무동을 타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부대원들은 김씨의 43년 후배.자랑스런 「화랑무공훈장」도 가슴에 안았다. 육군 ○○부대 민심참모로 복무 중인 아들 김정태소령(40)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김소령은 아버지로부터 6·25 당시 훈장을 받았지만 손에 쥐지는 못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통보를 받으면서 제대했기 때문이다.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포기하고 말았다. 김소령은 지난 2월 같은 말을 듣고 훈장을 찾는 것이 마지막으로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3개월여동안 기록을 뒤진 끝에 지난 5월 육군 부관감실 상훈과와 총무처 상훈과에서 화랑무공훈장이 미지급됐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말로만 듣던 아버지의 훈장을 확인한 것이다.당시까지만 해도 아버지 김씨는 훈장을 타기는 했지만 무슨 훈장인지는 알지 못했다. 김소령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김씨의 투철한 군인 정신 때문이었다.김씨는 평소 『내 생일은 잊을 수 있지만 생사의 기로를 함께 하던 전우들과 군번(9241580)은 잊을 수 없다』며 43년전의 전역증과 병역수첩 등을 소중히 간직해 왔다. 김소령은 훈장을 확인하자 아버지의 옛 소속부대였던 7사단 사단장에게 아버지가 정식으로 신고한 뒤 훈장을 받도록 해달라는 서신을 보내 허락을 받아냈다.전역 후 농사일에만 전념하면서도 6·25때의 공적에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던 아버지의 명예를 찾아 준 것이다. 김씨는 52년 9월에 입대해 53년 전역 때까지 7사단에 소속돼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 날 행사를 마친 뒤에는 당시 격전지였던 화천댐 주변을 둘러봤다.전략적으로 요충지였기에 중국군의 공격도 치열했고 국군의 희생도 컸던 곳이다. 휴전 이틀 전 김씨의 바로 옆에 박격포탄이 떨어졌으나 나무뿌리 사이에 박히는 바람에 불발,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김씨는 후배들에게 『군인에게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명예』라며 『생전에 통일을 볼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사람으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강충식 기자〉
  • 전씨 5·18 혐의벗기 안간힘/14차 공판 이모저모

    ◎“검찰은 수사를 정확히 해야” 직격탄도/“반대 신문 천천히” 재판부 이례적 주문 1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14차 공판에서는 최대 쟁점인 5·18사건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시작됐다.전두환피고인은 『검찰이 5·18사건의 엄연한 역사적 진실을 왜곡해 (나를) 정치적 속죄양으로 만들었다』고 포문을 열었다. ○…전피고인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5·18사건의 중요성을 의식한 듯 『민족의 아픈 상처』,『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의 필요성』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사건이 정치적인 당리당략에 따라 검증되지 않은 논리로 휩쓸려 왔다』고 주장. 이어 『이 법정에서 5·18사건의 진실을 규명,민족의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함으로써 올바른 역사창조의 산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 ○…전피고인의 변호인측은 지난 해 말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될 당시부터 『가장 중요한 쟁점은 5·18사건』이라며 전피고인이 이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입증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공언. 이양우 변호사는 당시 모 월간지와의인터뷰를 통해 『5·18 특별법을 제정해 처벌할 수 있으면 하라.그러나 5·18사건 만큼은 한발짝도 양보할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었다. ○…이변호사는 지난 해 7월 5·18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라고 판정을 내린 검찰의 애초 결정을 검찰 공소사실에 대한 반박논리로 제시.이변호사는 『검찰이 새로운 증거의 제시도 없이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수사를 재개했다』고 검찰의 약점을 파고든 뒤 『원래의 수사결론을 뒤집은 것은 검찰권의 남용』이라고 주장. ○…전피고인은 온갖 수사적 표현을 동원,5·18사건의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검찰은 수사를 정확하게 해야 한다』,『모함을 받으며 법정에 서게 되니 허망하고 분한 생각이 든다』는 등으로 검찰에 직격탄을 쏘는가 하면,『죄가 있으면 엄하게 처벌받고 없으면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에 앞서 열린 5·17사건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거규헌피고인은 『검찰조사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과거는 기억하지 못한다』,『6·25전쟁 때 맞은 총탄이아직도 몸에 박혀있다』는 등의 사유를 들며 재판부에 『노병으로 하여금 안정된 마음으로 사라질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호소. ○…15대 총선에서 옥중당선된 허화평피고인은 검찰이 범죄사실을 입증하는데 주요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권정달·한용원 전 보안사 정보처장을 상대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공박. 허피고인은 『5·16혁명에 관해 연구하라는 전두환피고인의 지시를 받았다는 한씨의 진술은 악의에 가득 찬 거짓말』,『한씨의 거짓말은 장군진급에 실패한 데 불만을 가진데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주장. ○…익히 알려진대로 달변의 허피고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을 통해 70·80년대의 군계보를 상세히 설명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 검찰측에 유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 전 보안사 정보처장과 백동림 전 보안사 대공과 수사과장은 신군부측과 대립관계에 있던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의 직계로 하나회의 숙청작업을 진행했던 주역이라고 주장. ○…이학봉피고인은 전피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것과 관련,『정권장악은생각지도 않았으며 당시 치열한 정쟁으로 혼란한 시국을 하나하나 수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자연히 지도자로 부상된 것』이라며 전피고인을 한껏 추켜세우기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당시의 「3김씨」에 대해서는 『정부측과 협의해서 헌법개정과 정치일정에 합의하지 않고 집권욕 때문에 내각 사퇴·계엄해제·거국내각의 구성 등을 요구했다』고 비난. ○…전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도중 방청석에 앉아있던 5·18사건 피해자 가족 10여명은 전피고인이 답변할 때마다 비난조의 말을 하거나 한숨을 내뱉어 재판장으로부터 『신문에 집중할 수 없다』는 따끔한 질책을 받기도. 이들은 하오 5시쯤 휴정으로 퇴정하는 전피고인 등을 향해 『사람을 죽이고도 웃고 있느냐』며 고함을 지르는 등 소란을 피워 법정경위가 강제로 퇴정조치. ○…5·18사건과 관련,전두환 피고인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에 앞서 검찰은 공소장 정정 변경허가 신청서와 석명서를 재판부에 제출. 검찰은 이 날 5·18사건에 대해 국헌문란과 「자위권 보유 천명=발포명령」이란 두부분에 대해 공소장을 변경.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반대신문이 시작되기 전에 공소장 변경을 마쳐야한다』며 난색을 표명하며 설전을 벌일 태세였으나 재판부로부터 공소장 변경에 따른 변호인 보충신문 기회를 약속받고는 곧바로 5·18사건 반대신문을 진행. ○…하오 공판에서 김영일 재판장이 이학봉 피고인의 반대신문을 맡은 조재석 변호사에게 이례적으로 『좀 천천히 신문하라』고 주문하는 해프닝이 발생.이에 대해 조변호사는 『빨리 빨리 하라고 해서 빨리한다』고 답변해 방청석에 잠시 웃음. 재판장은 『너무 빨라 내용을 잘 들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맞받았고 조변호사는 지친 듯 신문을 석진강 변호사에게 인계.〈박은호 기자〉
  • 미군유해 찾기와 애국심(박화진 칼럼)

    지금 평양에선 6·25때 전사 내지 실종한 미군유해 발굴봉환을 위환 미·북유해협상이 1주일째 진행중이다.얼마전 뉴욕회담에서 미국이 그동안의 유해송환에 보여준 북한의 노력에 사의를 표하고 대가로 2백만달러(약 16억원)을 지급하며 금년 10월이전에 유해발굴 미·북 공동작업을 개시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실무회담이다.미국정부가 보이는 이같은 미군 전사·실종자유해 찾기노력의 집요성과 끈질김에 놀라고 의아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이미 46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유해를 찾고 발굴하는 일은 물론 신원확인도 사실상 불가능하리만큼 지난한 상황이라 하지 않는가.6·25당시의 주로 미군인 주한유엔군 실종자수는 8천1백72명이며 최근까지 북한이 넘겨준 유해는 1백62구였다.그나마 말·소등 동물뼈를 제하고 미군유해로 확인된 것은 4구 미만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찾기에 열심인 미국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고 어리석게까지 보일지 모른다.특히 유물론의 공산북한 당국자들에겐 더욱 그랬을 가능성이 많다.그러나 바로 그점에 미국의 장점과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미국은 월남전 실종자 유해송환을 위해서도 많은 돈과 끈질긴 노력을 쏟은바 있다.유해송환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들을 국가와 정부가 영원히 잊지않고 찾는다는 의지의 과시라 할수 있다.클린턴대통령 재선이라든가 대북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하고 있을지 모르나 북한과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유해송환 노력에서 보듯 사자의 경우를 포함,미국정부의 철저한 자국민보호는 유명하다.특히 해외국민에 대한 미국정부의 보호는 세계적인 선망의 적이 되고있다.그것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해 강한 긍지와 애국심을 갖게 하고 분열·갈등이 불가피한 다인종·다민족에 자유방임의 민주국가인 미합중국의 국가적 단결력 지탱 및 강화의 중요원동력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미국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우리는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의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하고 있다.그때문인진 몰라도,그리고 미처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그동안 우리 국가와 정부의 자국민보호 및 애국심고취 노력은 부족하고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일제 36년,6·25동란의 시련기등을 통해 우리국민들이 보여준 자발적이고 본능적인 애국·충성심은 단일민족국가의 당연한 장점이었는진 몰라도 미국인들의 그것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라 할수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하단 말인가.본능적인 애국심 발휘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선 안되는 일임을 광복 및 6·25이후의 우리경험과 미국정부의 끈질긴 실종미군 유해찾기 노력에서 보여준다고 할수있다.특히 오늘의 우리상황은 더욱 그렇다고 할수있다.한때 듣기만 해도 가슴설레이게 하던 애국·애족이란 말도 언제부터인가 사라진지 오래다.그것은 분단과 전쟁,그리고 가난의 혼돈속에 애국심 고취노력은 커녕 애국과 매국의 상벌도 제대로 못가린 우리 근대사의 오점이 남긴 불가피한 결과의 하나라 할수있을것이다. 최근 우리정부가 그러한 역사과오 시정과 바로잡기 노력을 배가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특히 93년의 박은식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비롯한 신규식,노백인,안국태,김인전선생등 상해임정요인 다섯분 유해봉환 및 국립묘지 안장은 눈물겨운 민족사적 쾌거였다고 할수있을 것이다.나머지 87위의 유해 봉환노력과 작년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한 독립유공자 1천4백42분의 새로운 발굴·포상등 노력은 역사적인 업적의 하나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정부는 97년부터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에게도 대입특례를 부여하고 98년부터 국가유공자 기본연금을 18% 예산증가율(96년 기준)이상으로 대폭 인상·현실화 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애국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학의 말이 더이상 용납돼선 안될 것이다.정부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 뿐아니라 6·25와 월남전 전몰·부상자 및 그후손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의 따뜻한 손길과 응분의 보훈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할것이다.그것은 그들의 애국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보훈인 동시에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런 역사바로잡기의 하나이며 새로운 애국·애족을 고무·고취하는 민족백년대계의 씨뿌리기요 기초작업임을 잊어서 안될 것이다.호국·보훈의 이 6월에 미국정부의 열성적인 실종미군유해 찾기노력을 보며 하게 되는 생각이다.〈심의·논설위원〉
  • 2차례 정회… 밤늦도록 실랑이/파행국회 본회의 이모저모

    ◎의사진행발언중 단하선 고함·야유 공방 국회 의장단 선출을 위해 12일 소집된 본회의는 심야까지 가는 여야의 대치끝에 파행으로 얼룩졌다.여야는 이날 의원 19명이 투입된 의사진행발언 공방과 2차례의 정회,2차례의 몸싸움을 거듭하며 밤 늦도록 지루한 실랑이를 계속했다. ○…이날 본회의는 하오 2시30분 개회­의사진행발언­4시45분 1차정회­6시23분 신한국당 김명윤의원 등단 시도­6시31분 2차정회­8시35분 김명윤의원 등단 재시도­10시18분 김명윤의원 산회선포의 순으로 이어졌다.의장직무대행을 맡은 자민련 김허남의원의 개회 선언에 이은 의사진행발언에서 여야는 모두 19명의 의원을 동원,2시간동안 의장단 선출을 둘러싸고 치열한 설전을 전개.신한국당 박희태의원은 『내가 부동산을 사면 투자요,남이 사면 투기냐』며 무소속의원 영입에 대한 야권의 비난을 반박.이에 국민회의 이해찬의원은 『국민 4명중 3명이 신한국당을 찍지 않았다』며 여야합의에 의한 원구성을 촉구.설전이 계속되는 동안 의석에서는 고함과 야유가 끊이지 않는 등 단하의 공방도 치열하게 전개. ○…의사진행발언이 끝나자 김허남 의장대행은 돌연 감기를 이유로 사회권 포기의사를 밝힌 뒤 1차 정회를 선언하고는 곧바로 퇴장.의사진행상 더이상 의장단 선출을 미루기 어렵게 되자 자민련측이 만들어낸 고육책이었으나 일부 야당의원들은 영문을 몰라 아우성을 치는 등 한동안 소란. 이어 하오 6시25분 신한국당은 김의장대행이 등단하지 않자 본회의장 좌측 통로를 통해 당내 김명윤의원의 등단을 시도했으나 국민회의 박광태·김옥두·김영진의원등이 몸으로 가로막아 실패.결국 김의원은 야당의원들에게 둘러싸인채 『2시간동안 정회한다』며 2차 정회를 선언한 뒤 퇴장.이후 김명윤의원은 하오 8시35분 등단을 한차례 더 시도했으나 역시 야당의원들의 저지에 막혀 실패하자 결국 10시18분 좌측통로에 서서 육성으로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끝마치고 내일 하오 다시 열겠다』며 산회를 선포. ○…대치상황이 계속되는 동안 신한국당 서청원 총무는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로부터 『협상을 더 해보자』는 전화제의를 받았으나『이런 상황에서는 무의미하니 좀더 진전되면 보자』고 거절,절충가능성은 한동안 어려울 전망.〈박찬구·오일만 기자〉
  • 이 총리­“예산 효율적으로 부처배분을”(국무회의:11일)

    ◎6·25행사 안보의식 일깨우는 계기로 11일 열린 정례 국무회의에서 이수성 국무총리는 97년도 각부처 예산 요구액이 24조2천억원에 이르는 점을 지적하며 국가 재원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총리는 이어 황창평국가보훈처장으로 부터 제46주년 6·25 행사계획안을 보고받은뒤 『올해 행사는 특히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안보의식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총리는 『각부처의 예산요구액이 많은데 비해 세입의 예상 증가규모는 7∼8조원 정도』라면서 『알뜰한 나라살림이 될 수 있는 97년도 예산편성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 달라』고 재정경제원에 주문했다. 이총리는 『특히 경부고속철도 건설과 신공항건설 등 국민에게 약속한 중요한 국책건설사업은 차질없이 추진되어야 하므로 각부처의 신규사업과 계속사업의 타당성 및 우선순위 등을 철저히 검토하여 예산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은 이날『에어컨이 올해만 83만대가 늘어나는 등 총보유대수가 4백35만대에 이르러 올해 전력최대수요는 지난해보다 12.6% 늘어난 3천3백65만2천㎾가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공급능력은 수요증가를 따르지 못해 공급 예비율이 3.5%에 그치는 등 안정적인 수급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보고했다. 이총리는 이에 대해 『전력공급 예비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범정부적인 노력과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는 통상산업부가 마련한 대책을 적극 추진하고,아울러 공보처는 정부의 여름철 전력수급 안정노력을 국민들에게 알려 범정부적인 호응이 있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김우석 내무부장관은 풍수해대책법 시행령 개정안을 상정하며 제안설명을 통해 『지역방재조직으로 통·리에 15인 이상 50인 이내로 수방단을 구성,재해예방과 응급복구에 활용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총리는 풍수해대책과 관련,내무부와 건설교통부·지방자치단체에 『장마철이 다가오는 만큼 태풍과 집중호우에 대비할수 있도록 상습침수 및 산사태 지역,대형공사장,교량,하천,방조제 등 취약지역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지난해 풍수해 이후 복구한 시설도 다시한번 점검할 것』을 요구했다. 이총리는 그러면서 『해마다 반복되는 풍수해 등 재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정부의 기본임무』라고 지적하고 『관계부처는 금년 상반기 재해관리 추진상황을 종합 평가하여 국무회의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의결안건◁ ▲배타적 경제수역법(제정안) ▲화학무기의 금지를 위한 특정화학물질의 제조·수출입규제 등에 관한 법률(〃) ▲독학에 의한 학위취득에 관한 법률(개정안) ▲군인 및 군무원의 해외파견근무수당지급규정(개) 등〈서동철 기자〉
  • 경찰생활 28년 마치고 24년간 육림사업 정시환씨(인터뷰)

    ◎“깨끗한 산하 가꾸는게 나라 바로 세우는 길”/남덕유산 2백만평 20년만에 울창한 숲 변신 뿌듯 환경의 달과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은 독림가 정시환(73)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경찰생활 28년,촌부생활 24년. 이름을 떨치던 경찰관에서 국토사랑·나무사랑을 몸소 실천한 독림가로서 특이한 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남덕유자연농원회장.현재의 직함이다. 73년 퇴직한 뒤 못다한 학문에 열중하는 가운데 틈틈이 고향에 내려가 나무를 심던 정씨는 재산을 정리,경남 남덕유산 한자락을 매입했다. 『산막과 천막을 마련한 뒤 잡목을 베고 땅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석유등을 벗삼아 조림·육림·농사에 관한 책을 두루 읽었으며 마을사람과 손잡고 녹색사업을 펼쳤다.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골짜기 2백여만평이 무공해지대로 조성됐고 산은 울창한 밀림으로 바뀌었다.농약과 비료 안쓰기운동을 벌인 결과다. 『고독하고 힘든 긴 세월이었지만 울창한 산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도로를 포장하고 다리를 놓고 가로등과 공중전화를 설치하는 등 마을 현대화에 앞장선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그를 원로경찰로만 기억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 경남 거창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다 해방 뒤의 무질서한 사회를 보고 나라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질서유지가 중요하다고 판단,45년 22살 때 경찰대학의 전신인 조선경찰학교에 입학했다. 두달만에 교육을 마치고 일선에 나왔을 때는 나라살림이 어려워 정복을 지급받지 못했다.경찰이라고 쓴 완장을 두르고 업무를 보았다. 6·25까지는 공비토벌에 나섰고 전쟁이 나자 경감계급장 대신 대위계급장을 달고 미국 7사단에 배속돼 중대장으로 백두산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경찰관으로서 드믈게 무공금성·충무은성·무공훈장 등 훈장 30여개를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뒤 서울과 부산 중부경찰서장 등 6곳에서 서장으로 활약했다.특히 재직중에 석사학위를 3개나 받았고 은퇴 뒤에는 두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기도 했다. 나라 바로세우기로 경찰에 투신했듯이 깨끗한 산하를 후손에 물려주는 것이 조국을 바로세우는 것이라고 판단,산촌에 뛰어들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굵은 손마디를 빼고는 전쟁 등 각종 격변속에서 인생을 헤쳐온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온화한 표정과 품위 있는 말솜씨가 제자들과 평생을 지낸 노학자를 연상시킨다.자연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 김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오늘 우리는 마흔한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위훈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전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의 영전에 다 함께 머리 숙여 안식과 명복을 빌고 감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온 국민은 지금 이 순간 조국의 의미를 새롭게 헤아리고,진정한 나라사랑,참다운 겨레사랑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애국선열들은 빼앗긴 나라의 광복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을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자존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때는 수십만 용사들이 이땅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위해 장렬히 산화했습니다.우리는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위해 그동안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민주주의와 번영은 애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이 뿌린 희생의 씨앗을 우리의 피와 땀으로 가꾸어낸 소중한 열매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과 호국용사들의 충의를 현창하고 그 후손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입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기위해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외에 흩어진 애국선열의 유해를 이곳에 옮겨 모시고,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유적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국가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를 회복하고 12·12군사 쿠데타를 단죄하는 것도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입니다.역사가 바로서야 법과 정의가 구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정의와 법이 살아있어야 나라를 바로세우고 미래를 올바로 열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그분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온 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순국선열과 전몰용사들이 몸바쳐 다시 찾고,지킨 이 나라를 물려받은 우리는 그 분들이 못다이룬 뜻을 펴나가야하는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온 겨레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활약하는 일류국가,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적극 기여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호국영령들의 유지를 받드는 길입니다.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있는 나라,세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통일국가를 만들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야 합니다. 애국영령들의 영전에서 21세기 세계 중심국가를 건설하여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을 다함께 다짐합시다.오늘 뜻깊은 현충일을 맞아 저는 다시 한번 선열들의 영전에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온 국민의 이름으로 삼가 추념사를 올립니다. 호국영령들이시여,부디 안식을 누리소서.
  • 무명용사 유해 50여구 가매장/서귀포 하천변 방치 45년

    ◎6·25때 방위군징집… 제주수용서 사망/유족들이 확인 “위령탑이라도 세웠으면”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천 둔치에 6·25당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다가 훈련중 숨진 50여구의 유해가 가매장된 채 45년간이나 초라하게 방치돼 현충일을 맞은 유족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가매장된 주인공들은 6·25발발 직후인 1950년 12월 전시병력동원령에 따라 편성된 만 17∼40세의 제2국민병역 해당자로 51년 1·4후퇴 무렵 최후방 제주로 퇴각,당시 서귀포시 강정국민학교에 마련된 「특수공동수용소」에서 수용생활을 하던 사람중 일부. 당시 이곳에는 최대 2천∼3천명이 수용돼 있었으나 50년 12월∼51년 3월 사이 이른바 군 착복사건인 「국민방위군사건」이 발생,제주까지 군수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바람에 굶어 죽거나 디프테리아에 감염돼 병사한 것.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50년 12월23일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사사리(현재 안산시 사사동)에서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다가 이곳에서 숨진 김국진씨(당시 37)의 장남 흥순씨(61·상업·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2774의 34)의 끈질긴 노력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곳에 수용됐던 3∼4명의 고향사람을 통해 부친소식을 전해 듣고 20여년간 조사 끝에 수십구의 유해가 가매장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지난 93년 현지에 「무명용사탑」만이라도 건립해줄 것을 청와대와 서귀포시 등에 진정했지만 국방부나 육군본부 등 관계기관이 『전사자료가 없어 공식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히고 있어 3년째 그대로 방치돼 있다. 김씨는 『현충일을 맞을 때마다 아무 표석도 없이 하천변에 잠들어 있는 부친에게 불효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면서 『「무명용사」에 대한 국가차원의 배려가 아쉽다』고 말끝을 흐렸다.〈제주=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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