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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인의 귀감” 전사자 조문 줄이어/빈소주변 이모저모

    ◎미 국방성 연락실장 유족위로 눈길/오 대령 장인도 6·25때 양구서 전사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고 오영안대령,서형원 대위,강민성 상병 등 세 전사자들의 빈소에는 5일에 이어 6일에도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김수한 국회의장과 이홍구 신한국당대표,김종필 자민련총재,권오기 통일원장관,안우만 법무부장관,김동진 국방부장관,조순 서울시장,장태완 대한재향군인회 회장,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등 300여명이 찾아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상오 10시쯤에는 미 국방성 지원단 연락실장인 제럴드 브레드나 한씨가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한데 이어 AFKN TV에서도 취재진을 보내 합동분향소 주변을 촬영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날 빈소에는 50여명의 유족들이 조문객을 맞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 주위 사람들을 안쓰럽게 했다. ○…고 오영안 대령은 장인 윤진섭씨와 나란히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히게 돼 눈길. 오대령의 장인 윤씨는 6·25전쟁중인 53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전사,현재 국립묘지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데 오대령도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7일의 영결식 후 국립현충원 장군묘역에 묻히게 된 것. 윤씨가 전사한 뒤 유복자로 태어난 오대령의 부인 윤옥순씨(45)는 『현충일때마다 아버지의 묘소에서 참배하곤 했다』며 『이젠 남편과 아버지 두 묘소를 함께 찾게 됐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작전 49일,연인원 150만 투입/공비 침투사건 취재기자 방담

    ◎공비 26명중 25명 소탕,우리측 17명 희생/국민의 안보의식 고취… 특전여단 대활약/영동지방 6개 시·군 경제적 손실 2천억원대 □참석자 정호성 차장·조성호·조한종 기자(전국부),김경홍 차장·황성기 기자(정치부),김경운·박상렬·김태균·박준석·이지운·강충식 기자(사회부),유재림·오정식·최해국·남상인·김명국·조현석 기자(사진부) 지난 9월18일 강릉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잔당 3명 가운데 2명이 지난 5일 사살됨으로써 작전 개시 49일 만에 소탕작전이 사실상 마무리됐다.잠수함을 타고 온 공비 26명 가운데 1명은 생포됐고,13명은 사살됐으며,11명은 숨진 채 발견돼 25명이 소탕된 셈이다.이 과정에서 우리측도 군인 11명과 경찰·예비군 각 1명,민간인 4명 등 모두 17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당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취재기자의 방담을 통해 이 사건을 조명해본다. ­무엇보다도 공비를 거의 일망타진한 점을 성과로 꼽고 싶다.아직 1명이 잡히지 않았지만 이 공비도 현재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작전 기간동안 군은매일 3개사단,1개 공수여단,1개 기갑여단 등이 투입했다.예비군을 포함,연인원 1백50만명의 병력이 투입됐다.UH60·코브라 헬기 등 60여대의 헬기와 탱크·장갑차 등 첨단 중무기도 동원됐다.주한 미군이 보유한 최첨단 OH58 열추적 정찰헬기까지 등장했다.특히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을 노획,북한의 잠수함 전력과 대남 해상침투조의 전력을 확인할 수 있게된 것도 큰 수확이다.월남전 이후 실전경험이 없었던 군이 실전 경험을 쌓은 것도 성과로 꼽힌다. ○주민들 군작전 협조 ­하지만 우리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3군단 기무부대장인 오영안 대령 등 고급장교를 포함,군인 11명이 목숨을 잃었고 4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민간인도 3명이 공비에게 피살되는 등 4명이 희생됐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 무장공비가 출현한 강원도 강릉시 등 영동지방 6개 시·군은 공비소탕작전 기간동안 2천여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관광객 감소에 따른 요식·접객 업소와 교통업계의 불황,예비군 동원에 따른 인력손실,송이버섯 채취와 오징어 잡이 출어 제한으로인한 농어업 소득 격감 등은 지역경제에 많은 타격을 주었다.특히 작전의 주 무대가 된 강릉시는 667억원의 경제손실을 입은 것으로 자체 파악됐다.검문검색이 강화되고 관광객이 줄자 현지 주민들은 한숨을 쉬었고,급기야는 송이버섯을 채취하려 산에 올라갔다가 오인사살되는 일도 있었다.하지만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큰 불평없이 군 작전에 적극 협조하는 애국심을 발휘했다.설악산을 끼고있는 속초시와 인제군이 각각 470여억원,동해시 340여억원,고성군 90여억원,양양군 70여억원,삼척시 50여억원으로 어림되고 있다. ­소탕 작전기간 동안 군의 작전은 대략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됐다.공비출현 초기에는 우선 2중·3중의 포위망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포위망이 구축된 뒤 정찰 수색작전을 벌여 공비의 주요 은거지를 포착했다.그리고 포위망을 좁혀가며 수색하는 압박수색작전을 폈다.공비를 대부분 소탕,잔당 3명만 남게되자 예상 도주로에 대한 매복 작전에 들어갔다.정찰조원 2명을 사살한 것도 매복 작전의 성과다.이번 소탕 작전에서는특히 공수특전여단의 활약이 돋보였다.잔당 2명을 비롯,공비의 주요 은거지였던 청학산과 칠성산에서 공비의 대부분을 사살한 것도 그들이다. ­6·25 전쟁이후 최대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었던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소탕작전이 58일이었고 68년 김신조 일당 청와대 기습사건이 9일,78년 충남 광천 무장공비 사건이 38일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작전은 두번째로 긴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지친 기색없이 장기간에 걸친 작전을 완수하는 끈기를 보여줬다.제대날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를 연장하는 군인들이 속속 나타나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오인·오발사고 많아 ­하지만 이번 소탕작전을 지켜보면서 일부에서는 우려를 나타냈다.우선 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을 제집 드나들듯 했는데도 막지 못한데다가 좌초한 잠수함도 시민의 제보를 받고서야 비로소 알만큼 경계가 허술했다.소탕작전에도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초기에 특전여단 등 정예 병사들을 투입했더라면 빨리 소탕하고 아군의 피해를 최대한 줄였을 것이라는지적이다.시기를 놓쳐 결국 소탕작전이 길어졌다는 얘기다.또 공비들이 당초의 예상과 달리 포위망을 훨씬 벗어나 발견된 것도 군작전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작전 기간중 오인사격과 오발사고가 많아 희생자가 생긴 것 또한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또 부대간의 작전협력이나 통합 지휘의 문제점도 노출됐다.그동안 도상연습에 그쳤던 통합 작전훈련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표종욱 일병이 공비에게 납치돼 살해됐음에도 불구하고 탈영처리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시민들의 높은 안보의식이었다.택시 기사 이진규씨는 침투 당일 새벽 북한 잠수함의 침투사실을 가장 먼저 발견,신고했다.만약 이씨의 신고가 없었다면 때를 놓쳐 거의 완전한 공비 소탕의 전과를 올리는 것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9월19일 단경골에서 처음으로 공비를 사살한 것도 이 지역 주민의 신고 덕분이었다.이외에도 작전기간동안 주민들의 신고가 쇄도,높은 신고의식을 보여주었다. ○해안경계 너무 허술 ­이러한주민들의 안보의식에 비해 일부 한총련소속 대학생들의 어이없는 행동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일부 대학신문에 공비들을 옹호하는 기사가 실렸고,PC통신에도 비슷한 글을 실은 것은 연세대 사태에 이어 친북성을 또 다시 드러낸 것이다. ­이번 소탕작전을 취재하면서 아쉬움도 많았다.무엇보다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군 작전의 특수성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가 공식 발표 이전까지는 비밀에 부쳐져 군 관련 취재의 어려움을 실감케 했다.현장에 나와있던 군의 보도본부는 「보도통제본부」로 불리기도 했고,일부 오보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대전이 총력전인 점을 고려하고,국민적 참여와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는 보다 세련된 대언론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무장공비사건은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을 다시 한번 고취시키고 앞으로 북한을 다시 한번 올바로 바라보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적이다.또 군도 자체 조직을 정비하고 작전체제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바람이다.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일이 있으면 절대로 안될 것이다.
  • 공 전 외무,군전력 시비로 고민/외교팀 전격교체 뒷얘기

    ◎“대통령에 누될라” 서둘러 퇴임/김 대통령 “공 전 외무 업적 높이 평가” 김영삼 대통령이 6일 외무장관에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외교안보수석에 반기문 의전수석을 기용한 것은 『될 사람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대통령은 유외무­반수석이라는 새로운 외교 투톱시스템을 기용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있다.김동진 국방장관이 최근 임명된 것과 연관돼 외교안보팀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게기가 될 수 있다. 지난 9월에 한승수 경제부총리팀이 출범했고,외교안보팀이 다시 정비됨으로써 연말로 예상되던 대폭적 개각 요인이 상당히 줄어든 느낌도 있다.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초대대사에 현직 경제각료가 내정되어 있는 등 부분개각 요인은 있다. 유신임장관은 「외무장관 발탁 0순위」로 거론돼왔다.때문에 관가에서는 유장관 기용보다 공로명 전임장관이 갑자기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더 관심이 쏠리는 듯 하다. 청와대는 공전장관이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관가에서는그와 관련해 갖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공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외무장관 재임중 업적을 높게 평가했다.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김대통령이 그렇게 말한 것을 감안하면 공 전 장관이 비리에 연루되지는 않았다고 판단된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공 전 장관이 6·25때 고등학생 신분으로 인민군에 강제징집,잠시 복무했던 전력이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공 전 장관은 그후 국군에서 통역장교로 5년을 근무했고 40여년간 외교관으로서 국가에 충성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공 전 장관은 그러나 최근 모 주간지가 자신의 전력을 다시 기사화하려고 하자 김대통령에게 누가 될 수 있으며 특히 야당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크게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김대통령은 공 전 장관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사표를 수리하고 일찍 후임을 임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 47년 월북→한국전 사망→88년 해금/희곡작가 함세덕 전집 나와

    ◎대표작 동승 포함 18편·산문­시 수록 월북 희곡작가 함세덕(1915∼1950년)의 희곡을 모두 소개한 「함세덕 문학전집」1∼2가 지식산업사에서 나왔다.(노제운 엮음) 함씨는 일제말,해방공간에 주로 활동하다 47년 월북,6·25 참전도중 사고로 요절했다.월북했기 때문에 88년 해금때까지 논의조차 불가능했던데다 해금 후에는 일제말의 친일경력으로 시비에 오른 비운의 작가.하지만 92년 서울연극제 무대에 대표작 「동승」이 오르면서 밀도높고 섬세한 작품세계가 새로운 조명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전집에는 한국희곡사에서 서정적 리얼리즘의 정수로 꼽히는 「동승」을 비롯,「산허구리」「해연」 등 초기작부터 월북이후 씌어진 「소위 대통령」「산 사람들」까지 그의 공개된 희곡 18편이 전부 실렸다.또한 신문,잡지 등에 발표된 산문 13편,시 3편과 함께 국문학자인 엮은이가 주변 연극인들의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작성한 함씨의 연대기도 수록됐다.
  • 생포 이광수·귀순 곽경일씨 일문일답

    ◎“해상처장 동승은 전쟁관련 임무수행” □이광수 상위 ­남한사람 자연산광어 모를줄 알았다 ­북한 인민들 전쟁나면 이긴다고 믿어 □곽경일 중사 ­입당·군관승진 대상서 제외 귀순 결심 ­탈출때 북 정찰중대원과 수류탄 교전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씨(31)및 휴전선을 넘어 귀순한 곽경일 중사(25)와의 일문일답을 요약한다. ­잠수함의 침투경로는. ▲이=함남 낙원을 떠나기 전날인 9월13일 저녁,인민무력부 정찰국장을 통해 남한침투임무를 처음 알았다.세포총회를 갖고 맹세문 낭독과 수표(서명)를 했다.이튿날 상오5시에 출발,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에서 기관을 끄고 은밀하게 해안에 접근했다. ○휴전선선 기관 끄고 접근 ­너무 쉽게 잡혔는데. ▲이=훈련을 많이 받았지만 잠수함을 타면 높은 압력때문에 두통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괘방산을 오를때 배가 너무 고파서 고민끝에 공작원과 떨어져 혼자 북으로 향했다.산마루에서 강릉시내와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민가에서 먹을 것을 구하려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붙잡혔다. ­붙잡힌 뒤 광어회를 먹고 싶다고 말한 이유는. ▲이=나는 해상공작원이라 고급어종인 광어회를 많이 먹어봤다.못산다고 믿었던 남한 사람들은 자연산 광어를 모를 것으로 여겼다. ­침투인원을 처음에 20명이라고 한 이유와 사살된 11명에 대해 말해달라. ○정찰조가 살해 가능성 ▲이=승조원들은 붙잡혀도 임무가 있는 정찰조는 하루만 시간을 끌면 복귀하리라 믿었다.해상처장과 부처장,정찰조는 숨기고 싶었다.사살된 11명은 해상처장이 『포위됐으니 죽자.나를 먼저 쏴라』고 해서 죽었을 것이다.북의 교신을 받고 정찰조가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곽중사의 탈출 상황은. ▲곽=지난 12일 하오9시쯤 잠복근무중 작업으로 피곤해진 동료들을 자게한 뒤 지휘 전화선을 끊고 총창으로 지뢰를 탐지하며 남으로 향했다.3시간쯤 뒤에 소대원들의 수색작업 소리와 남한측의 귀순 유도방송이 들렸다.13일 상오 뒤쫓아온 정찰중대원 3명과 수류탄을 던지며 교전을 벌였고 부상당한 다리를 이끌고 1시간쯤 도망쳐 국군 초소에 다달았다. ­잠수함 침투사실은 언제 알았나. ○“귀환 도우라” 지시 받아 ▲곽=9월21일 병사들의 외출금지와 지휘관 대기명령이 내려졌고 10월6일에는 소대장이 『좌초된 잠수함에 타고 있던 정찰조원 3명이 복귀할 예정이니 발견하면 무사귀환을 도우라』라는 지시를 받고 알았다. ­김정일이 군부대를 자주 방문하는 이유는. ▲곽=김정일이 군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자주 방문한다고 생각된다. ­남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은. ▲이=남한의 통신·방송을 듣고 요원을 남파,육안으로 확인한다. ­곽중사의 귀순동기는. ▲곽=북한의 정치·사회에 대한 의혹에서 시작됐다.남한의 대북방송을 통해 발전상을 동경해 왔다.또 지난해 6월 휴가복귀선물로 부대원들에게 나눠준 가스라이터와 볼펜이 중국을 통해 반입된 남한제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적들 물건의 선전자」로 찍혀 입당과 군관 승진대상자에서 제외됐다.규정을 어기고 지난 94년부터 김정희와 교제,감시를 받았고 김이 임신하게 되자 「생활제대자」로 분류돼 처지가 막막했다. ­세차례 침투한 것이 사실인가.당시 남한군의 경계상태는. ▲이=이전에 세번 침투했다는 말을 들었다.바닷속은 온도차가 커서 남한군의 잠수함 소음탐지기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찾은 일반 시민들을 본 소감은. ▲곽=이들은 8·15와 6·25때 북에서 도망친 친일분자들이 북한땅을 되찾기 위해 전망대를 찾는다고 교육받았다. ­체포된 뒤 남한에서의 생활과 남북한을 비교하면. ▲이=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 거리에는 미국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미국 상품들이 즐비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전혀 달랐다.한 가정집을 방문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이들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할 망정 파괴하러 왔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꼈다.남조선 인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 ­전향의사가 있는가. ▲이=죄인으로 남한정부의 처분에 따르겠다. ­구체적인 침투목적은. ▲이=정찰조 임무는 기밀사항이기 때문에 잠수함안에서도 밥도 따로 먹고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다만 정찰국의 주요임무가 군사기지 정찰·파괴,중요인물 납치·살해,후방교란인 점과 평소와 다르게해상처장이 동승했다는 사실로 미뤄 전쟁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북한의 백배천배 보복 성명이 나온 뒤 북한군의 경계상태는. ○민경대대 정찰임무 강화 ▲곽=민경대대의 잠복근무와 관측정찰 임무가 강화됐다. ­북한군내 식량사정은. ▲곽=전방 민경대대는 식량 사정이 원만한 편이나 민간인들은 「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수해로 식량이 부족하다고 교육받았다. ­잠수함이 훈련도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했다는 북의 주장은. ▲이=분명히 훈련은 아니다.정찰국장이 환송파티까지 해주면서 격려했고 내가 당사자다.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이=북한에서는 전쟁이 나면 당연히 북한이 이긴다고 믿는다.미국은 신형무기를 가졌지만 제일 무서운 것은 「자폭정신」,즉 사상적 무기다.인민들도 어떻게 죽든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전쟁을 벌이자는 생각이다.〈김경운·김태균 기자〉
  • 「백범암살 진실」 영구 미제 가능성/안두희 피살과 배후규명 노력

    ◎당사자 통한 진실규명 불가/「참회록」 존재여부 관심 집중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씨의 피살로 백범 암살의 진실을 당사자의 입을 통해 확인할 길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자칫 영구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커졌다. 안씨는 지난 49년 6월 범행 이후 지금까지 암살 동기 및 배후에 대해 한번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단독범행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진실 규명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60년 4·19 혁명 직후부터였다.「김구 선생 살해 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안씨를 집요하게 추궁했으나 끝내 안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안씨는 87년 권중희씨에게 각목폭행을 당하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91년 처음으로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전신인 OSS를 배후로 거론했으며,92년 4월12일에는 김창용 특무대장이 4∼5차례에 걸쳐 자신에게 암살지시를 했다고 「증언」했다. 92년 9월에는 권씨에게 붙잡힌 상태에서 『범행 6일전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채병덕육군참모총장 등을 만났다』고 말해 당시 권력 핵심부의 배후관련성을 시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안씨는 『권씨 등의 강요에 의해 자백한 것』이라고 곧바로 부인해 의문만 증폭시켰다.94년 국회 백범 암살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단독범행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제 진실은 92년 그가 쓰겠다고 약속했던 「참회록」의 존재 가능성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안씨의 유품에서 참회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백범암살의 진상규명은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된다.〈김태균 기자〉 ◎피살 안두희는 누구인가/백범 저격… 47년간 은둔생활/암살죄로 15년형… 6‘25때 사면·군복귀/한때 군납공장 운영… 강원 제2갑부로/4·19후 「응징」 두려워 개명후 자취감춰/87∼88년 권중희씨에 수차례 납치·피습/94년 국회 증언… 암살 배후인물 안밝혀 백범 김구 선생을 지난 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저격,암살했던 안두희씨는 범행후 47년 동안 은둔과 잠행속에 살아왔다. 범행 당시 32세의 포병장교였던 안씨는 평생을 「백범 시해범」이라는 꼬리표를 단채,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데 전전긍긍했다. 안씨는 백범 시해 직후 징역 15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던 중 6·25가 터지면서 당시의 실세였던 김창용 특무대장의 비호로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포병장교로 복귀했으나 전투도중 부상당해 51년 군복을 벗었다.56년 옛 동료장교들의 도움으로 강원도 양구에 군납공장을 지어 군대 부식을 공급하면서 부를 쌓았다.한때 강원도에서 두번째로 세금을 많이 낼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후 터진 4·19혁명은 그가 진정한 죄과를 치르게 되는 계기가 됐다.혁명 직후 「김구 선생 살해진상규명 투쟁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공장 문도 닫고 처 박모씨와 3남2녀의 자녀들을 데리고 「안영준」 등 가명을 써가면서 종로구 명륜동,동대문구 신설동,강원도 양구 등지로 도망다녔다. 안씨를 「응징」하려는 추적자들의 노력도 집요했다.65년 곽태영씨로부터 칼로 두군데나 목을 찔린 뒤 극적으로 살아나는 등 피습이 이어졌다.여러차례 이민을 시도했으나 법무부로부터 출국자 블랙리스트에 올라 실패했다.장성한 자녀들은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다 못해 70년대 말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부인 박씨도 합의이혼하고 자녀들의 뒤를 따랐다. 86년 김명희씨(63)와 재혼하는 등 은둔에 「성공」,편안한 삶을 살아오던 그가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87년 3월 27일 집요하게 그를 추적해온 권중희씨의 피습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권씨와의 질긴 악연은 이때부터 이어져 88년 2월,92년 2월과 4월·9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권씨로부터 납치 및 구타를 당했다. 말년에는 언론사의 인터뷰에도 응하고 94년엔 국회 법사위에서 병상에 누운채 증언하는 등 약간씩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하지만 백범 시해가 자신의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는 점은 한결같았다.〈김태균 기자〉 □안두희씨 피습일지 ▲87년 3월27일=권중희씨,서울 마포구청 버스정류장에서 각목으로 안씨의 머리 구타. ▲88년 2월=권씨 등 3명,인천 집에서 안씨를 나무 막대로 구타. ▲92년 2월28일=권씨 등,백범묘소에서 안씨를 각목으로 폭행. ▲92년 4월12일=권씨 등,안씨 집으로 찾아가 안씨 구타. ▲92년 9월23일=권씨 등 4명,안씨를 경기 가평군 농장으로 납치,구타.
  • “국방·경제문제 인식 안이” 비난/이홍구 대표 연설 야 반응

    야권은 22일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의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에 대해 혹평으로 일관했다.심지어 이대표의 전력까지 들먹이면서 흠집내기에 나섰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현실인식이 안이하고 책임이 언급되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특히 이대표가 안기부법 개정을 역설한 것에 대해 『개정을 반대하면 과거 망령에 사로잡힌 것이라는 연설은 납득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대변인은 이어 『수십차례 물샐틈 없는 철통안보를 외치지만 실상은 물새는 철통이며 금리인하 공장용지값 인하 등 초보적인 경제처방을 집권 4년이 지나도록 되풀이하고 있다』고 안보 및 경제문제 부분을 비판했다. 윤호중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6·25직후 외국으로 유학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저버렸던 이대표는 안보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자민련 안택수 대변인도 『이대표 연설은 경륜과 정치철학은 없고 세부정책 대안을 나열한 한편의 논문과 같은 게 흠』이라며 『국정전반을 그렇게 잘알고 있는 집권여당인데도 불구하고 경제는 왜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으며 국방은 구멍이 뚫렸느냐』고 반문했다. 안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신한국당은 이대표가 제시한 정책대안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가도록 충고와 질책을 아끼지 말고 자기혁신이 있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권오을 대변인은 『안보상의 문제점과 경제난국에 대해 일언반구 책임지는 목소리가 없어 실망스럽다』며 『다만 중소기업 연쇄도산 방지를 위한 어음보험기금 설치 검토 및 규제개혁 기본법 등은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고 기대도 섞인 논평을 했다.〈박대출 기자〉
  • 저격용 외제총 복제 밀매/5명 영장

    ◎금속가공업체서 4정… 소음기 등 장착 【부산=이기철 기자】 요인을 암살할 수 있는 고성능조준경과 소음기가 달린 저격용 10연발 소총이 국내 공장에서 몰래 복제,밀매한 일당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소총이 공장에서 복제되다 경찰에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경찰청은 16일 독일제 에르마베르케소총을 제작,판매한 임병수(43·광주시 북구 우산동)·이춘근(41·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서영규(38·광주시 서구 서동)씨등 5명에 대해 총포도검 및 화약류단속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들로부터 사제 소총 2정,실탄 281발,망원렌즈와 소음기 각 2개,탄창 4개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임씨는 지난 6월25일 광주시 남구 양동 로뎅다방에서 서씨에게 소총 1정과 실탄 150발을 1천2백50만원에 파는 등 2명에게 소총 2정과 실탄 250발을 2천7백50만원에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임씨는 지난 4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금속정밀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이씨에게 자신이 은닉하고 있던 소총을 보여주면서 4백만원에 소총 4정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진술했다. 조사결과 임씨는 지난 91년 서울 청계천상가에서 40대남자로부터 에르마베르케소총 3정과 실탄 3천발을 1천2백만원에 구입,은닉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이 복제한 소총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정확한 복제숫자와 밀거래경위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청진항 통과능력 1천만t 확장 추진(북녘 뉴스라인)

    북한은 나진·선봉경제특구의 외곽 자유무역항인 청진항의 통과능력을 2010년까지 1천만t으로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 최근호는 청진항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청진항은 서항에 480m의 내벽을 건설중에 있으며 앞으로 동항에 1천600m의 새로운 부두와 50만㎡의 야적장을 건설하는등 연1천만t의 통과능력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신설 금강산수전 1단계 20만㎾ 생산 지난달 18일부터 1단계 조업에 들어간 북한의 금강산발전소의 1단계 생산능력은 40만㎾에 이른다고 조총련기관지 조신신보 최근호가 보도했다. 총생산능력을 81만㎾로 잡고 있는 금강산발전소는 수풍(70만㎾),태천(70여만㎾)발전소보다 규모가 큰 북한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로서 1단계 생산능력은 40만㎾에 이르나 이번 1단계 조업으로 생산하는 전력은 20만㎾에 머무르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학교 「전쟁영웅」 이름딴 개명 잇따라 북한은 최근 「전쟁영웅」들의 이름으로 학교 이름을 잇따라 바꿔 김정일에 대한 충성과 호전성 고취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중앙방송은 지난 10일,6·25전쟁 당시 고지를 목숨으로 사수했다는 「노태진」을 기념해 평남 온천군의 금곡고등중학교를 「노태진 고등중학교」로 명명하고 동상제막식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에앞서 지난 6월에도 6·25때 사망한 「서강렴」의 투쟁정신을 선전하며 함남 고원고등중학교를 「서강렴고등중학교」로 개칭했으며 7월에는 신포시 룡원고등중학교를 군수물자 획득공로로 「영웅 룡원고등중학교」로 개칭했다.
  • 공비는 잔인한 적이다(사설)

    도주하던 무장공비들이 버섯채취를 하던 민간인 3명을 살해하고 달아났다.천인공로할 만행을 또 저지른 것이다.피해자들은 버섯과 약초를 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순박하고 선량한 산골마을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에는 60대 할머니도 한명 포함돼 있다.대거할 무기도,항거할 의사도 없는 민간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무장공비의 소행에서 우리는 사무치는 분노와 함께 북한 공산주의의 적나라한 실상을 다시금 보게 된다. 그들의 「혁명과업」과 「대남 적화통일」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치우고 양민도 얼마든지 살해할 수 있는 게 북한식 공산주의자다.6·25전쟁중에 그들은 수많은 애국지사와 선량한 주민을 「반동」이란 죄목으로 학살했음은 6·25세대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68년 울진·삼척의 무장공비침투때 강원도 산골마을의 이승복어린이는 일가족과 함께 참혹하게 살해당했다.그의 나이 아홉살,일곱살·네살짜리 여동생도 함께 희생되었다.입버릇처럼 인민을 위해 싸운다고 하면서 무고한 어린이까지 잔인무도하게 살상하는 것이 북한의 권력집단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그들은 상투적인 전술전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공산주의자의 속성을 우리는 직시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동국대학보에는 이번 무장공비를 옹호하고 두둔하는 대학생의 투고가 실렸다니 참으로 통탄을 금할 수 없는 일이다.민족과 역사의 죄인인 살인자를 동정하고 그들의 무사탈출을 기원하며 무장공비침투사건을 「한편의 시나리오」라고 왜곡하는 언사는 국민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망언이 아닌가.엄연한 사실을 부인하려 하고 선과 악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대학생이 통일을 방패삼아 흑을 백이라 하고 있음은 거듭 개탄할 일이다. 작전중인 군당국은 앞으로 더이상 민간인의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공비잔당을 철저히 수색,소탕해주기 바란다.
  • 무장공비 잔악한 만행에 치떨어/주민3명 살해당한 산골마을 스케치

    ◎주민들 졸지에 가족·이웃 잃고 통곡/“항거능력 없는 할머니까지 무참히 죽이다니…” 【평창=특별취재반】 마을주민 3명이 무장공비 잔당에게 무참히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9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마을주민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은 무장공비들의 잔악한 만행에 치를 떨었다. 탑동리는 진부면에서 차편으로 20여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산골마을.약초와 감자재배를 주업으로 순박하게 살아온 30여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은 졸지에 가족과 이웃을 잃고 통곡했다. 주민들은 지난 68년 방아다리 약수터와 가리재를 경계로 불과 7㎞쯤 떨어진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군집에 들이닥쳤던 무장공비들의 만행을 상기하며 더욱 분노했다. 희생된 김용수씨(45)는 아직 장가도 못간 노총각으로 여름에는 인근 방아다리 약수터에서 잡일을 하고 가을이면 약초와 버섯을 채취해 살아왔고 정우교 할머니(69)는 대구에 살림낸 아들집에 가끔 들리며 고향에서 혼자 살아왔다. 또 함께 변을 당한 이영모씨(45)의 부인 문넙덕씨(46)는 『버섯과 약초를 부지런히캐 두아들을 대학까지 마치게 하겠다며 산을 오르다 변을 당했다』며 오열했다. ○…마을주민 장범진씨(54)는 숨진 이영모씨가 『남에게 한번도 해를 끼치지 않은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정우교 할머니의 며느리 임은숙씨(26·대구시 중구 대봉동)는 시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지난 3일 어머니가 친정인 진부면에 송이를 따러간다면서 집을 나섰다』며 『매년 9월초에는 친정에 묵으면서 송이를 채취해왔다』고 울먹였다. ○…피살소식이 전해지자 평창경찰서 진부파출소에는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려는 문의전화가 쇄도.홍천군 내면 자운리에 사는 윤영수씨(27)는 『바로 계방산 밑에 사는 부모가 걱정된다』며 진부파출소로 전화. 이밖에 원주·강릉 등 인근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나 이 곳을 연고지로 외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은 혹시 숨진 사람이 부모가 아닌가 하는 문의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정도. ○…주민들은 이날 상오9시쯤 군병력 200여명이 트럭으로 마을에 들어올 때까지만해도 전혀 상황을 몰랐으나 군의 통제가 심해지고 헬기가 병력을 낙하산으로 투입하며 대규모 작전을 펼치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전전긍긍하기도. ○…공비가 다시 출몰한 탑동리일대의 모든 길목에는 9일 군병력이 집중 배치돼 차량과 민간인 통행을 통제.군수색대는 이날 탑동리로 통하는 진부면 상진부리 마을 입구와 진부면 방아다리 약수터 입구에 병력을 집중 배치해 검문검색을 강화. ○…3명의 사체가 발견된 지역은 「1281고지」로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울창하며 특히 6·25직후 빨치산 잔당들이 상당수 은거한데다 울진·삼척지구 공비침투사건때도 주작전지역으로 아군과 교전이 치열했던 곳이다.
  • 전 CIA 한국책임자/하우스만 사망

    미 군정청과 미 8군의 고문관 겸 미중앙정보국(CIA) 한국책임자로 35년간 일하며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제임스 하우스만 씨(78)가 6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하우스만 씨는 46년 미군정청 고문관(대위)으로 부임,한국군 창설에 깊이 관여했고,여순반란 사건,6·25,5·16,10·26 등 한국현대사의 격동기마다 막후에서 한­미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우리 군을 믿는다” 백령도 주민 차분/현지 르포

    ◎“우왕좌왕 하면 북한 돕는 셈”/조업 등 일상적 분위기 유지 【백령도=김학준 기자】 4일 하오 북한 황해도 옹진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북한의 보복위협발언으로 전군에 비상이 걸린 것과는 달리 이곳 주민은 일상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한의 상투적인 발언으로 우리가 우왕좌왕한다면 결과적으로 그들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결과입니다』 납북간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때마다 파급효과가 대표적으로 거론되온 지역 치고는 다소 뜻밖이라는 느낌이다. 그만큼 우리군의 경계태세를 믿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도발행위도 물리치겠다는 각오로도 보였다. 주민은 북한이 만일 국지적 도발을 감행해올 경우 이곳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인 것으로 알고 이같은 사실에 대비해 철저한 반공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축협 백령지소장 박신범씨(46)는 『이같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백령도주민만큼 군·민이 따로 없는 철저한 안보의식으로서 무장된 지역도 없다』며 『만일 북한이 무모한 도발을 해올경우 그것은 곧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북한은 6·25이후 서해5도 부근에서 크고 작은 수백건의 군사적 도발을 저질러왔다. 올 들어서만도 3차례나 북한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우리측 함장과 대치하는 등 20차례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주민은 그때마다 군이상의 전의를 보였으며 이에 따른 안보의식만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최근에는 지난 89년4월 군인가족 등으로 창설된 여자예비군까지도 모임을 갖고 이번 사태와 관련,적극적인 대책을 마련중이다. 특히 4일 북방한계선 북측 작전구역내에서 미그기가 수십대 출현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해군과 공조체제 아래 해상경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휴가를 나간 사병도 속속 자원귀대하고 있다. 조업나가는 어선을 선단으로 편성,어업지도선과 함께 출어하도록 하고 규정된 조업구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
  • 국론통일만이 오판 막는다(사설)

    북한의 보복협박으로 긴박해진 안보상황에서 정치권이 어떻게하느냐에따라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고 극복할 수도 있다.국론통일과 국력결집만이 북한의 오판을 막고 만약의 사태에도 이길 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정치권은 여야의 차이와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총단합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예상되는 북한의 전쟁도발에 선도적으로 대처해야한다. 그런점에서 여야가 무장공비침투에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과의 회동,그리고 대북 결의의 공동채택 등 초당적 협력을 과시한데 이어 보복협박의 긴장사태에 한목소리로 북한을 규탄하고 초당적 대처의 뜻을 밝히고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런 협력의지는 실천으로 옳겨야만 실효를 거둘수 있다.오늘 열리는 여야 원내총무 회담에서 분명한 합의안을 내놓기 바란다. 우선 안보관련부서가 이번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수 있도록 국회 관계상임위의 국정감사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거나 신축성있게 운용해야할 것이다.국감이 중요하지만 지금의 안보상황만큼 긴박한 것은 아니다.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상황변화를 분석하고대응책을 수립하는 등 대비노력을 지휘해야할 수뇌부들이 국감에 불려다니느라 안보업무에 지장과 불편을 받는 일은 국회가 자진해서 덮어주는 것이 옳다.야당은 6·25때도 국감을 했다고 하지만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인 오늘의 형편과,현대전의 개념에 입각해서 그것이 좋다고만 할수는 없다.국감조정은 그자체가 훌륭한 대북경고가 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이다.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과의 회동이나 제2의 대북 경고결의안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그러나 이런 문제는 어디까지나 국가보위의 책임과 국군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의 판단과 주도적 노력을 존중하고 협조하는 바탕에서 검토,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반세기동안 전쟁을 겪고 남북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더구나 오늘의 민주시대에서,안보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공안 정국조성이니 뭐니하면서 시비하는 낡은 정치행태는 이제는 청산해야한다.안보의 정권적 악용을 막기위해 구헌법의 대통령의 비상대권까지 삭제된 마당에 국론분열을 조장하여 북한을 도와주는 이적적 안보시비는 더이상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 대북정책과 잘못된 가설들(김호준 정치평론)

    북한의 김정일정권은 정말 뻔뻔하고 악랄하다.아마 도척과 같은 천하의 불한당이 살아 있더라도 그처럼 후안무치하지는 않을 것이다.남녘 동포들이 구호미를 보낸 그 바닷길로 잠수함과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다니….세상에 그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단 말인가.못된 짓이 들통 났으면 사죄하고 용서를 빌 일이건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천배 만배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는건 또 무슨 행악질인가.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번 강릉 무장공비사건은 북한 정권의 무도한 실체와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의 현실성에 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그런 불한당들을 상대로 평화노력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그들과의 공존·공영을 전제로 한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3단계 통일방안은 북한 사회의 개방이 가능하다는 전제와 북한 지도층을 선의의 우호적 동족이라고 보는 잠재적 가설 위에 서 있다.그리하여 화해와 협력의 제1단계,남북연합의 제2단계를 거쳐 마지막제3단계에서 남북한 양측이 각자의 정치권력을 통일국가에 귀속시켜 통일을 완결토록 돼있다.그런데 여기서 갖게되는 의문은 북한 지도층이 과연 남한과의 공존·공영을 바라고 있으며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통일에 호응하겠느냐는 것이다.답변은 물론 『아니올시다』가 지배적일 것이다.그들은 남한에 대해 동족으로서의 연민의 정을 갖기 보다는 공산혁명을 위한 타도의 대상이요,북한의 정치권력을 빼앗으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멀리 6·25남침을 비롯하여 68년의 청와대 습격기도,83년의 아웅산 테러,87년의 KAL기 공중폭파사건,그리고 줄기찬 남한배제 정책및 이번 강릉사건 등은 남한에 대한 그들의 적대적 파괴의식이 얼마나 뿌리 깊고 집요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그렇다면 남북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선의의 동반자관계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통일방안은 근본가설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남북한간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선 남한이 북한의 경제난해결을 도와주면서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을 개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맏형론·햇볕론의 타당성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북한을 경제적으로 고양이에서 호랑이로 키워주면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북한이 과연 남쪽과의 화해·협력관계를 증진시키겠느냐는 것이다.그런 기대는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내놓지 않으려고 연방제통일 운운하는데 호랑이가 된다고 해서 그 속성이 변할리가 없다.오히려 독립국가의 옹벽을 더욱 높이 치면서 남침용 무기생산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남쪽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적대의식이 북한 지도층의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을 것이다.철저하게 세뇌되고 통제받는 북한 주민들에게도 남한의 어설픈 관용주의나 동정론이 발붙일 자리가 없을 것 같다.이번에 산속으로 도주하던 무장공비 11명의 「집단자살극」은 우리의 안이한 북한관에 경종을 울려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북한 사회의 개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가설도 오류일 수 있다.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앞으로 4,5년후에 전면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본다.그러나 지금같은 추세라면 10년이 지나도 전면 개방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한 전례에 비추어 사회개방은 북한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체제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에서만 제한적 소극적으로 개방을 시도하며 그밖의 분야에서는 폐쇄적 통제를 계속할 것이다.북한사회가 개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추진하는 체제연합식 통일은 오랜 기간동안 실현 불가능하게 된다. 통일을 원만하게 이루려면 흡수통일방안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북한을 경제적으로 돕기 보다 자체붕괴토록 방치해 뒀다가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후에 조건없는 통일을 수용하는 것이다.체제연합식 통일이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50년이상이 걸린다면 흡수통일은 금세기 내에 가능할 수도 있다.통일의 지연은 부도덕한 북한정권의 생명만을 연장시킬 뿐임을 깨달아야 한다.조기통일은 남한에 엄청난 통일비용을 안긴다지만 일방적 지출이 아니라 언젠가 이윤을 내는 투자의 개념으로 파악한다면 훨씬 가볍게 느껴질수 있다.
  • “카지노업소 거액 탈세 의혹”/정세균 의원 등

    ◎“빚 결제편법 불법 해외송금도” ◎ 국내 유명 카지노업소들이 거액 탈세는 물론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외국 카지노에서 진 거액도박 빚을 결제해주는 편법으로 불법 해외송금을 해온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 1일 제기됐다. 국회 재경위 소속 국민회의 정세균 의원은 이날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전낙원씨가 운영하는 파라다이스투자개발 소유 워커힐 카지노 등 국내 13개 카지노 업소들이 94년 이전에 대규모로 탈세를 자행해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의원은 『워커힐 카지노의 경우 세무조사가 실시된 이후인 지난 94년 매출신고액이 93년에 비해 무려 44.9%(6백25억원)이 증가한 2조1백15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 북한의 정치범(외언내언)

    한겨울에 난방시설은 물론 전깃불조차 없는 수용소에서 가족과의 면회도,서신교환도 할 수 없는 철저한 격리지대.이것은 스탈린시대의 시베리아 수용소군도 얘기가 아니다.「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스스로 「지상낙원」이라고 부르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모습이다. 통일원은 최근 국회 통일외무위원회에 제출한 국감자료 「북한의 정치범실태」에서 『현재 북한에는 함경북도의 청진시와 회령군,함경남도의 요덕군과 단천군,평안남도의 개천군과 북창군,평안북도의 천마군과 동산군 등에 10개의 정치범수용소가 있으며 이곳에 수감되어 있는 정치범은 20여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북한전체인구(약 2천3백만명)의 약 1%가 정치범이다.북한의 정치범은 반국가음모자,유일사상체제위반자,반혁명 및 종파분자,북한탈출기도자들.통일원 자료에 따르면 현재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정치범 가운데는 김광협 전당비서,허봉학 전대남 사업총국장,방철갑 전 해군사령관 등 거물급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이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것은 6·25이후 납북된 4백50여명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다는 사실이다.납북당한 것만도 서러운데 정치범이라는 올가미까지 씌워 인간이하의 탄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글자 그대로의 「지옥」.요덕수용소의 경비원으로 근무하다 귀순한 안명철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 수용되어 있는 정치범들은 굶주림속에 하루 16시간씩의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있으며 해마다 굶주림과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40∼50명에 이른다고 한다.안씨는 정치범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짐승보다 못하다』고 표현했다. 아무리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집단이라지만 21세기를 눈앞에 둔 문명사회에 이런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것은 인류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그것도 먼나라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와 한핏줄인 북한동포들이 처해있는 인권상황이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실태가 밝혀진 이상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당당하게 거론하고 인권개선을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그리고 국제사회도북한의 인권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 공비 촬영필름 발견… 군시설 등 담아/무장공비 소탕작전 이모저모

    ◎잔당 도주흔적 이틀째 못찾아/괘방산 일대 봉쇄선 구축/UDT 유류품 수중수색/강릉인접 평창군민 “불안” 무장공비 출현 일주일째를 맞은 24일 군·경수색대는 지상 및 해상을 봉쇄하고 압박 수색 및 헬기 등을 동원한 공중 수색을 계속했다.그러나 사라진 잔당 5명의 흔적을 찾는데는 실패,소탕 작전이 장기국면에 접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있다. ○…군수색대는 산악에 숨어 있는 공비들을 코브라헬기 등을 동원,해안쪽으로 내몰아 토벌한다는 구상 아래 강릉시 강동면 괘방산 남쪽 정동진3리 분수골·오리골 등에 봉쇄선을 구축하고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들어갔다. 군은 공비 잔당 5명이 봉쇄선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면 이 지역에 은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폐광이 많고 6·25때도 북한군이 침범하지 못했을 정도로 지형이 험하기 때문이다. 군은 그동안 이 지역의 길목을 차단한 채 월북 도주로로 예상되는 태백산맥쪽을 봉쇄하는데 치중했었다. ○…안기부와 기무사 등으로 구성된 중앙합동신문조는 지난 22일 사살된 정찰조장이 지니고 있던 사진필름 10통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필름 10통 중 1통에는 동해고속도로부터 괘방산까지의 군사시설과 사회간접자본시설 등이 촬영돼 있었다』고 밝히고 『나머지 필름 중 8통은 파기되고 나머지 1통은 사용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공비들이 타고온 잠수함이 좌초됐던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에서는 이날 해군 수중파괴대(UDT)대원 10여명이 무장공비들이 숨겼을지도 모를 유류품을 찾는 수중 수색작업을 벌였다. UDT대원들은 수색결과 잠수함의 중심을 잡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손잡이가 달린 가로 20㎝,세로 15㎝ 가량되는 쇳덩이 30여개와 스크루를 보호하는 장치로 추정되는 원통형의 쇠망 등을 건지는 수확을 거뒀으나 중화기 등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68년 삼척·울진 무장공비 침투 때 퇴각하던 무장공비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된 이승복군의 마을인 용평면 노동리 등 평창지역 주민들은 이웃 강릉지역 주민 못지않게 이번 사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긴장. ○…동해안 관광업계와 어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91년부터 시작된 해안선 철조망 제거작업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 주민들은 『그동안 꾸준히 해안선 철조망 제거작업이 이뤄져 지역경제에 상당한 활력소를 주어 왔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철조망이 다시 설치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불안해 하는 표정.
  • 안보 불감증 다잡아야(사설)

    동해안 공비침투사건이 이번 말고도 지난해와 94년 이전에도 자행됐었다는 생포공비 이광수의 진술은 우리에게 충격과 경악을 안겨준다.특수임무를 띤 공작원들이 잠수함을 타고 최소한 3차례이상 동해안에 침투했다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우리 군의 해안경비가 허술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번 좌초잠수함의 발견과정에서도 군·경의 경계·감시체계에 허점이 있었음이 지적되고 있는 터다. 한반도는 세계유일의 분단지역이며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때문에 극한대치상황이 지속되고 있어 철통 같은 군의 경계와 국민의 안보의식이야말로 국가의 사활적 근간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잠수함 초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크게 유감스러운 일이며 차후 해안경비전반에 대한 전술적·종합적 보완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안보의식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본다.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은 6·25이후 전통적으로 견고했지만 최근 대북유화무드를 타고 느슨해진 것이 사실이다.무기수 이인모 노인의 송환을 비롯,대북 경수로지원이나 인도적 차원의 쌀공급 등의 교류분위기에 휩쓸려 북한에 대한 경각심을 해제해버린 느낌이다.그리하여 당국의 간첩체포 발표에도 『지금 무슨 간첩이냐』 할 정도로 철저한 안보불감증에 걸려 버렸다.경제난·식량난의 북한에 대한 과소평가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이번 강릉 침투공비는 북한의 실체와 무자비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북의 잠수함에서 발견된 이른바 「충성맹세문」은 광신적 교조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임무를 수행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고 믿는 그들이다.상부의 지령에 따라 도주중에도 자신들의 동료 11명을 살해할 수 있는 무장공비다.그럼에도 우리 국민중 일부는 살해된 시체를 보고 동정론을 펴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감상적인 통일론자나 환상적인 남북교류론자는 이번 사태를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북한의 대남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이 잠시도 해이해져서는 안된다.
  • 공비 사체 어떻게/시신 송환 북측서 거부 확실

    ◎파주 적군묘지에 매장할듯 강릉해안을 통해 침투,사살됐거나 피살된 북한 무장공비 사체 18구는 어떻게 처리될까. 첫째 종종 임진강으로 떠내려오는 북한군이나 민간인의 시신처럼 북한으로 송환하는 방법이 있다.또 하나는 과거 울진·삼척에 침투했던 무장공비의 사체처럼 우리측 처리규정에 따라 처리하는 방안이다. 무장공비의 사체를 북한으로 송환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당국이 이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나 잠수함의 침투사실 자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여서 정부가 이들 시신의 북한 송환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북한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들의 시신은 우리 규정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측은 「전시영현처리규정」에 따라 일정 지역에 가매장했다가 경기 파주군 적성면 「적군묘지」에 매장하게 된다.화장처리는 하지 않는다.적군묘지는 당초 경기 평택에 조성돼 6·25전쟁때 숨진 북한군 및 중공군의 사체를 매장했었으나 포화상태에 이르러 지난 8월 파주에 새로 묘지를 만들었다.지난해 10월 임진강과 부여에서 사살된 무장간첩들도 북한이 인도를 거부함에 따라 적군묘지에 매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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