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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남북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남북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엊그제가 6·25전쟁 6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매년 6월 25일이 되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 게시판과 동네 담벼락에 수도 없이 붙어 있던 ‘상기하자 6·25’ 포스터가 생각난다. 그리고 운동장에 모여 우렁차게 불렀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되는 6·25 노래가 떠오른다. 당시는 6·25와 6·25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고 기념식에 참석했고 또 노래를 불렀다. 물론 공산당은 아주 나쁜, 상종 못할 악당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이후로 ‘반공’과 ‘멸공’을 수도 없이 외치며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교육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남북 관련 이데올로기나 체제 논쟁을 할 때면 혹시 정보원이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젊음을 보냈다. 아마 대부분의 내 세대가 다 그랬을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증폭되는 정치권의 남북 이데올로기 논쟁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생소한 말이 갑자기 횡행하기 시작하더니만 정권 말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이른바 진보통합당 사태를 계기로 소위 보수 신문들과 집권여당,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과거 독재시절로 회귀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종북문제에 관해 공격적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언급해 가며 수세에 몰렸던 이데올로기 싸움을 역전시키기 위해 총반격에 나서고 있고 카운터 블로를 맞은 여당은 한 발짝 뒤로 빼고 있는 형국이다. 가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촌놈들의 현대판 이데올로기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주변 강대국들은 남북 간은 물론 남남 간의 싸움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들의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만든 이 싸움판에서 불쌍한 건 대한민국이요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데올로기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심, 사상, 언론과 학문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그리고 국민 뇌리에 이데올로기 트라우마가 너무도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거나 어느 한쪽이라도 편드는 얘기를 하다가는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치권과 언론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데올로기 싸움판을 벌여도 시민으로 위장한 일부 정치패들의 집단행동을 빼면 대다수 국민은 지겨운 싸움을 마냥 구경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경직된 사회주의와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고 제3의 길을 주창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남과 북은 서로 상생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과거처럼 반공교육을 받지 않아도 이념이 흔들릴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데올로기 타령으로 허송세월할 셈인가. 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싶다. 어느 누구도 부당한 권력의 통제 없이 건전한 자유 시민으로 살아가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아직도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고 말리고 싶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해묵은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분열되고 서로 생채기 내는 상황이 지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남북 이데올로기라는 벽을 넘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경제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회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느 때보다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한 지금, 정치권과 언론이 더 이상 낡은 이데올로기 논쟁에 사로잡혀 공허한 말장난으로 세월을 축내지 말고 유연한 남북관계, 현명한 외교 전략과 효율적인 경제운용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질 등 보다 발전적인 정책의제들에 관해 더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 6·25때 딘 소장 구출작전중 순직 김재현 기관사 美 정부 62년만에 민간인 최고 훈장

    6·25때 딘 소장 구출작전중 순직 김재현 기관사 美 정부 62년만에 민간인 최고 훈장

    1950년 6·25전쟁 당시 미군 구출작전에 참여했다가 순직한 김재현(1923~1950) 기관사에게 미국 정부가 62년 만에 훈장을 준다. 국방부 관계자는 25일 “미 국방성이 26일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전쟁 당시 철도 기관사로서 자국군을 도운 김재현 기관사의 공적에 감사를 표하고 군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큰 훈장인 특별민간봉사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재현 기관사는 6·25전쟁 당시 교통부 철도국 대전 운전사무소에서 기관사로 근무하던 중 개전초기 북한군에 의해 고립된 미군 장성 윌리엄 딘 소장의 구출작전에 자원했다. 딘 소장은 6·25에 처음 투입된 미군인 미8군 24사단을 지휘하다 대전 전투에서 북한군에 패하고 결국 생포됐다. 딘 소장이 북한의 포로가 된 것은 미국의 6·25 전쟁사에서 뼈아픈 치욕으로 꼽힌다. 1950년 7월 19일, 고인은 급수용 기관차에 미군 특공대 33명을 탑승시킨 후 이원역에서 열차를 몰아 대전역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세천역 부근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아 미군 특공대 32명이 전사하는 등 작전은 실패했다. 김 기관사도 가슴에 관통상을 입어 27세의 나이로 순직했다. 고인은 지난 1983년 공적을 인정받아 철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되기도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김 기관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62년 고인이 숨진 장소인 경부선 대전역과 세천역 사이인 대전시 동구 판암동 경부선 철로변에 순직비를 세우는 등 매년 공적을 기려왔다. 훈장은 고인의 아들인 김제근(63)씨가 대신 받을 예정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與 “반납세비 14억원 유해발굴 기부”

    與 “반납세비 14억원 유해발굴 기부”

    새누리당이 국회 개원 지연으로 반납한 소속 의원들의 6월분 세비 13억 5000만원을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기부한다. 김영우 대변인은 25일 “6·25전쟁 발발 62주년을 맞아 147명의 의원들이 반납한 세비를 전액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무노동 무임금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진복 의원은 “6·25를 맞아 정부 차원에서 애쓰고 있는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 기부하는 게 뜻깊을 것이라는 의견이 최고위에서 수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예산이나 철책선 문제 등으로 아직 발굴하지 못한 전사자들이 많아 안타깝다.”면서 “우리가 비용을 지원해 책임 있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전사자들의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데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는 “6·25 전쟁으로 피해를 겪은 분들에 대한 보훈을 한다면 국가보훈처를 다시 격상시켜 장관급 기관으로 예우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안동환·최지숙기자 ipsofacto@seoul.co.kr
  • [6·25 62주년] 청소년 57%, 6·25 발발 연도 모른다

    [6·25 62주년] 청소년 57%, 6·25 발발 연도 모른다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체제 때보다 ‘무력 도발 가능성이 더 크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6·25 전쟁이 언제 발발했는지도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안전부가 24일 발표한 ‘2012년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성인의 56.4%와 청소년의 52.7%가 ‘김정일 사후 김정은 체제에서의 무력도발 가능성’에 대해 ‘더 높아졌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5월 26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과 청소년(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자신의 안보의식 수준에 대한 질문에는 성인의 63.3%와 청소년의 51.5%가 안보의식 수준이 ‘높다’고 응답, 지난해 조사 결과보다 성인은 8.2% 포인트, 청소년은 15.3% 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안보의식이 높아진 원인으로 최근 북한의 권력체제 변화와 장거리 로켓 발사 등이 계기가 됐다고 답한 성인은 53.0%, 청소년은 34.1%에 달했다.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서는 성인 58.9%, 청소년 68.5%가 ‘큰 변화가 없거나 더 낮아졌다’고 답했다. 또 성인 70.4%와 청소년 71.5%는 남북관계와 관련된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 수준이 ‘높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성인 78.8%와 청소년 72.8%가 이러한 분열과 갈등이 안보정책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성인의 35.4%와 청소년의 57.6%는 6·25 전쟁 발발 연도를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6·25 수훈자 명예 찾아드려 보람”

    “6·25 수훈자 명예 찾아드려 보람”

    “참전용사들의 무공훈장을 찾아드리는 일이야 말로 예비군 지휘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6·25 전쟁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워 무공훈장 수훈자로 선정되었으나 지금까지 이를 잊고 살아온 참전용사 68명에게 무공훈장을 찾아준 예비군 지휘관이 화제다. 주인공은 육군 50사단 소속으로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면대장 홍성태(51)씨다. 예비군 면대장만 13년째인 홍성태씨는 지난 2009년 강구면 면대장으로 재직하며 육군본부로부터 무공훈장 수훈대상자 12명의 명단을 통보받고 이들의 신원을 추적해 수훈자 5명을 찾았다. “찾고 보니 10년전 작고한 상이용사 한 분이 무공훈장을 두 개나 받으셨습니다. 그분이 동네에서 평소에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수훈자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꼈죠.” 홍씨는 “이분이 훈장받은 사실이 생전에 알려지도록 좀더 빨리 찾았더라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무공훈장을 찾아드려 수훈자들이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홍씨가 최근에 찾은 수훈 대상자는 김도현(85)옹이다. 김 옹은 이름과 군번에 기록이 잘못돼 지금까지 수훈 대상자인지 모르고 살아왔다.김도현 옹의 도(燾)가 수(壽)로 기록돼 수훈명부에는 김수현으로, 군번은 1640번이 1648번으로 잘못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홍 면대장은 “6·25 당시 일일이 수기작업으로 병적 기록 등을 작성하다 보니 틀린 내용이 많았다.”면서 “과거 10년이 지난 전화번호부를 확보해 검색하고 문중이나 마을 이장 등 연고가 있는 분들을 통해 수차례 수소문해 역추적해냈다.”고 비결을 밝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CEO 칼럼] 6·25전쟁과 서울의 한옥/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

    [CEO 칼럼] 6·25전쟁과 서울의 한옥/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100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2년 전 미국의 뉴스전문채널 CNN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매력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으로 꼽았다. 서울에서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한옥이 즐비한 북촌이다. 때문에 북촌은 늘 외국인들로 붐빈다. 이런 광경을 보노라면 600년 도읍지인 서울에 한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에 큰 아쉬움을 느낀다. 6·25전쟁으로 인해 서울의 역사적 건축물과 한옥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후 거센 산업화 물결이 서울을 삼켜 도심의 한옥은 이제 겨우 7000~8000채만 남았을 뿐이다. 전국을 폐허로 만들었던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서울에 한옥마을을 새롭게 조성하는 일이다. 필자가 일하는 회사에선 최근 한옥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옥에서 하루를 지내는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안방에서 정원을 내다보는 구조라 실제 면적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내부구조가 편리하고 좋다.”라며 감탄을 쏟아냈다. 대청마루에 앉아 풍경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파트에 비해 맞바람이 불어 훨씬 시원하다고도 했다. 한옥의 우수성과 미학적 요소에 다들 만족과 공감을 표시하며 기회가 된다면 살아보고 싶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한 대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옥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요소로 지붕, 기와, 벽체, 출입방식, 창문 등이 꼽혔다고 한다. 지붕을 첫손으로 꼽았지만 정작 한옥의 지붕 형태인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지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을 펼쳐 엎어놓은 듯한 형상이 맞배지붕이고, 남대문이 우진각지붕, 청와대는 팔작지붕이다. 하지만 한옥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옥 지붕형태를 아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가 많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한옥을 ‘춥고 불편한 데다 돈도 많이 드는 집’으로 생각했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에서는 한옥을 ‘따뜻하고 편리하고 값이 적당한 집’으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상당한 성과도 있어 최근 ‘반값 한옥’이 언론에 보도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정부는 한옥 현대화를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한옥 활성화를 위해 건축비를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옥 관련 법규와 제도 개선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건축 관련 법규와 제도는 한옥이 아니라 양옥을 짓는 데 필요한 내용을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한옥마을을 만들고자 할 때 장애가 되는 불필요한 규제가 많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주택사업자들이 나서서 50~100가구 규모의 한옥마을을 지어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한옥을 20가구 이상 짓게 되면 주택법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적용을 받아 아파트처럼 성능과 시설의 기준을 따라야 하고 공급도 청약제도를 따라야 한다. 한옥 수요와 한옥 건축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현 제도 하에서는 민간 주택사업자들이 뛰어들 여지가 없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기업, 시민단체의 속도보다 행정관료, 법의 속도가 느리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렇게 늦어서는 안 된다. 전통한옥을 보전하고 활성화시키는 데 ‘아킬레스건’이 되는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무엇보다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며칠 전 기와 잇기 작업을 하는 숭례문 복원사업을 소개하는 뉴스를 봤다. 2만 2000여장의 기와가 전통기법을 따라 올려지고 있었다. 올 12월이면 숭례문이 새로 열린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이 다시 복원되듯이 6·25전쟁으로 사라진 한옥마을이 다시 우리 생활 속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 6·25전쟁과 통일의 필요성 바로 알기

    6·25전쟁과 통일의 필요성 바로 알기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2주년을 맞았다. 아직도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납북자 문제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맘때쯤 진행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 5명 중 2명은 6·25전쟁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고 있다. 누구에게는 아픔이 계속되고 누구에게는 잊혀지는 게 현실이다. EBS는 25일 낮 12시 10분에 ‘기획특강-끝나지 않은 전쟁, 6·25’를 방송한다. 기획특강은 학교 수업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기획한 EBS 모델 수업의 하나로, ‘3·1절 특강’과 ‘선거 특강’에 이은 3번째 프로그램이다. 최태성 대광고 교사가 강사로 나서, 남침을 위한 북한 내부의 전쟁 준비 상황과 중국·소련·미국 등 주변국 움직임 등 6·25 전쟁의 발발 배경을 설명한다. 낙동강 전선을 두고 북한군과 벌인 치열한 공방전, 인천상륙작전 진행 과정, 휴전 협정문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서명이 빠진 이유 등 다양한 동영상 자료와 문서, 지도로 알기 쉽게 살펴본다. 또 ‘가거라 삼팔선’, ‘전우야 잘가라’,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 대중가요 속에 담긴 애절한 가사와 음률로, 당시 상황의 절박함을 되새긴다. 이와 함께 이산가족이 겪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되짚어 보며 진정한 통일의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동원 담당PD는 “청소년 상당수가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혼동하고, 심지어 6·25전쟁을 일본, 소련 또는 러시아가 일으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면서 “호국선열의 피가 서린 6·25전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이번 특강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수능강의 전문 사이트 EBSi(www.ebsi.co.kr)와 포털 다음의 ‘EBS 지식’에서도 볼 수 있다. EBSi 사이트에서는 시청 소감 달기 이벤트도 진행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6·25 62주년] 6·25 참전국 ‘보은 순방’ 마무리

    [6·25 62주년] 6·25 참전국 ‘보은 순방’ 마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중남미에서 유일한 6·25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를 국빈방문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국가원수가 6·25 전쟁 휴전 이후 59년만에 도시국가인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참전국 15개국 모두를 직접 찾아가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대통령이 재임 기간 방문한 6·25 참전국은 13개국이다. 사실상의 참전국 순방 마침표도 이 대통령이 찍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보고타에서 참전기념탑에 헌화한데 이어 시내 한 호텔로 참전용사와 가족 200여명을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6·25전쟁 때 군인 5314명과 프리깃함(2000t) 1척을 파견했다. 콜롬비아 참전 군인 중 전사자는 213명, 부상자는 567명이다. 이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많이) 피를 나눈 형제국가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우리 국민은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고 영원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참전용사인 카를로스 푸리뇨의 82번째 생일을 직접 축하하고 생일 케이크도 전달했다. 푸리뇨는 두 팔을 벌리며 이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6·25 전쟁 영상물을 함께 시청하는 순서에서는 일부 노병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날 만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가자 큰 박수가 터졌다. 이 대통령은 “전쟁이 일시 중단된 상태로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면서 “전쟁을 하게 된다면 싸워서 이기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우리의 더 큰 목표는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보고타(콜롬비아) 연합뉴스 sskim@seoul.co.kr
  • [6·25 62주년] 1950년 6·25 폐허 속 대한민국

    [6·25 62주년] 1950년 6·25 폐허 속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은 24일 6·25 전쟁 발발 62주년을 맞아 유엔과 영국·몽골 국립문서보존소에서 수집한 전쟁 관련 희귀 기록물을 일반에 공개했다.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기록물 외에도 당시 북한의 우방국이었던 몽골이 북한에 살아 있는 말 7378마리를 지원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몽골 정부는 북한에 훈련된 군마를 제공하면서, 검역 이후 전염병이 없다는 진단서도 첨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영국 정부는 육·해·공군 참전 비용으로 당시 2200만 파운드(현재 가치 약 4000억원)를 쓴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 [6·25 62주년] 재일학도의용군은 월 98만원인데… 소년병은 월 12만원

    6·25 전쟁 당시 어린 나이에 전장에 나갔던 만 18세 미만의 소년병 가운데 생존자가 7500여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학업의 기회마저 포기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이들의 예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국방부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까지 전쟁터에 나간 소년병의 숫자는 2만 9603명이고 이 중 전사자가 2573명, 현재 생존해 있는 인원은 7500여명이다. 당시 소년병들은 62년이 지난 지금 평균 나이가 70대 후반이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간 소년병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제법상 만 18세 미만의 소년·소녀 징집은 금지되어 있어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8년에 와서야 이들의 실체를 명확히 인정해 병적을 정정해 주고 참전 사실을 전사에 기록하는 등 예우에 나서고 있다. 이에 앞서 2001년에는 참전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참전유공자들에게 월 5만원씩의 명예수당을 지급했고 이는 지난해부터 12만원으로 올랐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2008년 9월부터 6·25 참전유공자는 국가유공자의 18가지 그룹 중 하나에 속하도록 법이 개정됐으며 소년병들은 넓은 의미의 국가유공자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전시 혼란기 속에서 병적 기록이 미비한 일부 참전자의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월 12만원의 명예수당이 희생에 대한 적절한 예우인지도 논란이 일고 있다. 6·25참전 소년 지원병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나이에 일본에서 입대해 참전한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에 대한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일학도의용군 출신에 대해서는 1968년부터 정착수당까지 지급했으며, 1981년부터는 당시 생활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국내에 정착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본인이나 유족에게 월 98만 4000원 이상의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6·25참전 유공자로 명예수당의 혜택을 받고 계신 분들이 18만여명인데 예산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며 “소년병 출신들에게 상이군경 6급 수준의 연금인 월 90만원씩을 책정하기에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軍 ‘6·25 지평리 전투 61주년’ 기념행사

    軍 ‘6·25 지평리 전투 61주년’ 기념행사

    국방부는 오는 26일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서 미국과 프랑스군이 중공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지평리 전투 61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한다고 22일 밝혔다. 국방부와 미국, 프랑스 대사관이 주관하는 이 행사에는 61년 전 지평리를 끝까지 사수한 미국과 프랑스의 참전용사 69명과 국내 참전용사 60명, 미 2사단 장병 50명 등이 참석한다. 군은 이날 지평리 전투 전적비에서 합동추모식을 하고 국방부 의장대의 군악, 모둠 북 공연, 특공대의 무술 시범 행사를 열 예정이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4차 공세 때 미 2사단 23연대와 이에 배속된 프랑스군 대대가 중공군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막아낸 전투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당시 중공군의 압도적 인해전술로 밀리던 전선에서 유엔군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준 최초의 전투로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특히 프랑스군 대대를 지휘한 랄프 몽클라르(1892~1964) 장군은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노장으로 대대 규모를 파견하는 프랑스군을 이끌기 위해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해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투에서 미군과 프랑스군 52명이 전사하고 42명이 실종됐으며 부상자도 259명에 달했다. 중공군은 5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79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20-50 클럽 대한민국 이제 보훈을 말한다] (하) 보훈외교

    [20-50 클럽 대한민국 이제 보훈을 말한다] (하) 보훈외교

    ‘6·25 전쟁 참전국, 영원히 잊지 않는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라도, 한순간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6·25 전쟁에 파병했거나 의료 지원을 해준 참전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감정을 갖게 된다. 이들 나라를 잊지 않고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기 위한 이른바 ‘보훈 외교’가 활발하다. 그러나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 간 협업 강화와 함께, 체계적인 활동을 통한 국가 이미지 제고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아프리카 순방국 중 하나로 에티오피아를 택했다. 한국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방문은 사상 처음으로, 60년 전 에티오피아가 6·25 전쟁에 육군 3500여명을 파병한 참전국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빈민가와 인근의 가난한 농촌 마을을 방문, 봉사활동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특히 79세 참전 용사의 집을 직접 찾아 벽시계를 선물하며 “한국은 항상 여러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 한국에 초청할 테니 꼭 한번 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도 보훈 외교의 꽃이 피고 있다. 이스라엘은 참전국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마영삼 전 주 이스라엘 대사가 2008년 유대인이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착안, 이들을 수소문한 결과 약 4000명의 유대인이 6·25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 대사는 “유대인들은 나이가 들면 이스라엘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언론 등을 통해 참전 용사를 찾아 나섰고, 지금까지 25명을 찾았다.”며 “2009년부터 매년 주 이스라엘 대사관저에서 이들을 초청해 ‘평화의 사도’ 메달 수여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1차 메달 수여식에서 80대 한 노병은 가족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영광스러운 순간을 만끽했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올해도 오는 25일 주이스라엘 대사관저에서 기념 행사를 열어 유대인 참전 용사 4명에게 상패를 수여할 계획”이라며 “참전국 외교단 및 무관단, 가족 등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4월 올해 1차 참전 용사 재방한 행사로 캐나다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참전 용사와 가족 200여명을 초청했다. 이들 가운데 6·25 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인 아치볼드 허시의 딸이 아버지 유골을 들고 방한, 같이 참전했던 큰아버지 조지프 허시가 묻힌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60년 만에 이뤄진 캐나다 형제의 유해 상봉으로 캐나다 정부가 감사 편지를 보내오는 등 양국 간 우호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국가보훈처는 1979년부터 매년 참전 용사와 가족을 초청, 그들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는 기념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4회에 걸쳐 700여명을 초청하는 등 지금까지 2만 9000여명이 방한했다. 보훈처는 또 참전국과의 인사 교류, 참전 용사 후손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힘쓰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참전국과 우의를 두텁게 함으로써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도움받은 것을 기억하고 보답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국방부 ‘유가족 찾기팀’ 신규 편성

    국방부는 6·25 전쟁 62주년을 맞아 유해발굴감식단에 ‘유가족 찾기팀’을 신규 편성하고 다음 달부터 조직을 본격 가동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군 관계자는 “6·25 전쟁 전사자는 13만 7899명으로 공식 발표했지만 당시 전사자 중 2만여명은 병적자료가 부실했다.”면서 “이들은 최근까지 유가족을 찾지 못함에 따라 전사통지를 못하고 60여년간 보훈조치를 유보해 왔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에서 유해발굴과 더불어 유가족 찾기를 2대 중점 사업으로 선정하고 추진했으나 130여명을 찾는 데 그쳤다. 이후 2009년에는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단이 창설되면서 이를 재개해 유가족 1921명에게 전사통지서를 전달했다. 군은 이후 육·해·공군에 16명의 전담요원을 두고 유가족 찾기에 나섰지만 이들이 3개월 단위로 근무하면서 업무의 영속성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보강하기 위해 업무를 전담할 계약직 군무원 10명으로 새 팀을 편성한 것이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KBS1, 6·25 특집 풍성

    KBS 1TV가 6·25전쟁을 재조명하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오는 28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6·25 기획특집 ‘역사스페셜’에서는 ‘또 하나의 전쟁-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기록’을 내보낸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주고 징계를 받았던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진중수기를 통해 후방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을 조명한다. ‘KBS스페셜’은 24일 오후 8시 6·25기획 ‘허시 형제 이야기-캐나다판 태극기 휘날리며’를 방송한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투 중 사망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형 조지프 허시의 무덤에 묻히고 싶어서 유골로 한국을 찾은 아치 허시의 이야기 등 이역만리에서 피어났던 형제애를 소개한다. KBS 1TV는 25일 오전 10시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되는 제62주년 6·25전쟁 기념식을 중계한다.
  • 참전 해외용사 194만명·물적원조 4조5900억

    6·25 전쟁 때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얼마나 지원을 받았나. 정부는 194만여명의 해외 참전용사와 현재가치로 4조 5900억원에 해당하는 물적원조가 6·25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10일 6·25전쟁 당시 지원국이 모두 63개국이라고 공식 확정했다. 직접 참전한 16개국 외에도 노르웨이 등 의료진을 파견한 5개국, 물자를 지원한 39개국 등이 포함된다. 군 관계자는 “당시 세계 독립국 93개국 중 64.5%가 대한민국을 지원한 셈”이라고 말했다. 병력을 지원한 16개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룩셈부르크다. 참전인원은 194만여명에 달하고 이들 중 4만 4783명이 전사 또는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178만 9000명이라는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낸 미국은 3만 6940명이 전사하고 3737명이 실종됐다. 에티오피아는 3518명이 참전해 121명이 전사했다. 국방부는 전 세계 6·25 참전용사 중 53만여명이 현재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참전국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편성됨에 따라 구호와 재건지원도 유엔군의 이름으로 이뤄지게 됐다. 정부는 전쟁기간 구호원조 총액이 1953년 기준으로 4억 7190만 달러에 달한다고 평가한다.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9억 8856만 달러(약 4조 5900억원)에 해당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대구 동화사 ‘40㎏ 금괴’ 찾는다

    대구 동화사 금괴에 대한 발굴 허가가 났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21일 탈북자 김모(41)씨가 금괴 발굴을 위해 문화재청에 낸 ‘현상변경허가 신청’에 대한 심의를 벌여 조건부 발굴 허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장이 최종 허가 결정을 내리면 발굴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문화재위원회는 “김씨가 추가 자력탐사를 통해 발굴 신청 위치에서 이상한 물체가 있다는 자료를 제출했다.”면서 “이를 토대로 전문가 입회 아래 안전사고 등의 대책을 마련해 굴착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1563호) 뒤편에 금괴가 묻혀 있다고 주장한 뒤 지난 3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굴 허가를 신청했으나 문화재위원회는 모두 허가 부결 및 보류 판정을 내렸다. 금괴가 묻혀 있다는 근거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웅전 기단과 그 주변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씨는 문화재위원회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부분에 대한 자료를 보완해 이번에 허가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자료 보완을 위해 김씨는 맨 처음 발굴신청 때 했던 지표투과레이더(GRP) 탐사 외에 전기비저항탐사와 자력탐사 등 2가지의 물리탐사를 전문업체에 의뢰했다. 그 결과 GRP와 자력탐사에서 깊이 1.2~1.7m 지점에서 지하매설물로 인한 강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2008년 12월 탈북한 김씨는 월북한 남한 출신의 양아버지(84)로부터 ‘6·25 전쟁 당시 기름종이에 싼 40㎏의 금괴를 철모에 넣어 동화사 대웅전 뒤편 기단 부근에 묻었다는 말을 듣고 발굴을 추진해 왔다. 발굴은 이르면 다음 주 중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6·25때 이런 음식을 먹었대”

    “6·25때 이런 음식을 먹었대”

    21일 서울 서초구청에서 자유총연맹 서초지구회 주최로 열린 ‘6·25전쟁 음식재현 체험 및 안보 전시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개떡, 건빵 등 전쟁음식을 맛보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20-50 클럽 대한민국, 이제 보훈을 말한다] (중) 13만 호국영령의 恨

    [20-50 클럽 대한민국, 이제 보훈을 말한다] (중) 13만 호국영령의 恨

    지난달 25일 북한지역에서 발견된 이갑수·김용수 일병의 유해가 62년 만에 귀환한 드라마 같은 사건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목숨 바쳐 싸운 호국영령들에 대한 또 다른 보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월 들어 DNA 시료 채취에 참여하는 유가족 수가 이전보다 3배가량 늘었다.”며 “매일 60여명의 유가족이 채혈을 문의해 업무에 전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3만구로 추정되는 참전용사들의 유해는 지금껏 어두운 전투현장에 잠든 채 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발굴이 시작된 뒤로 지금까지 찾은 국군 전사자 유해는 6월 현재 6598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79구가 신원이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올해 목표치를 1300구 이상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자료와 인력으로 인해 발굴과 감식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유해 발굴 대상 지역은 현지 주민이나 참전 군인의 증언, 전투기록을 토대로 결정한다. 국토의 70%가 산악지형인데다 전투가 주로 산에서 벌어진 탓에 발굴작업은 주로 높은 산에서 이뤄진다. 이를 위해 발굴 현장까지 매일 최소 2~3시간씩 걸어 올라가야 한다. 주경배 발굴과장(중령)은 “보통 100~150곳을 파야 1곳에서 유해가 발견될까 말까 한다.”며 “지난해 대원들과 올라간 높이를 합하면 9만 1000m로 에베레스트산을 11번 등반한 셈”이라고 말했다. 일단 유골을 발견하면 한 구를 수습하는 데는 보통 4~5시간 걸린다. 땅 속에 묻혀 있던 유골이 비에 젖거나 위치를 표시하는 석회가루가 묻으면 DNA 샘플이 오염돼 신원 확인이 어렵다. 강한 햇빛을 받으면 유골에 있는 칼슘 성분이 하얗게 되면서 푸석푸석해져 가급적 유골을 서둘러 수습해야 한다. 주 과장은 “국군과 북한군, 중공군은 유골 모양만 봐서는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한꺼번에 넓적다리뼈나 정강뼈가 여러 개 발견돼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함께 발견된 유품을 100% 신뢰할 수도 없다. 실제로 국군이 사용하던 탄약을 북한군이 사용한 경우도 많아 유품을 100% 신뢰할 수도 없다. 유해발굴감식단이 유가족의 혈액 채혈과 DNA샘플 검사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DNA비교검사로 전사자의 8촌 이내 가족이면 유골의 신원을 밝힐 수 있다. 국방부는 2003년부터 2만여명의 DNA 자료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김종성 감식과장(중령)은 “의료기록 등이 없어 전사하신 분들의 정보가 빈약한 것이 문제”라며 “6·25전쟁 초기에는 병사들의 인식표 보급도 잘 이뤄지지 않은 만큼 유가족들의 더 많은 참여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부족한 인력도 문제다. 유해발굴감식단은 189명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지만 실제로 발굴에 참여하는 인원은 8명으로 구성된 8개팀 64명이다. 감식을 담당하는 감식요원은 10명이다. 1300구의 유해 발굴을 목표로 한다면 감식요원 1인당 연간 130여구의 유해를 감식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현재 감식단의 인력은 연간 600여구를 발견할 것이라고 추정해 맞춘 수치”라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의 예산은 연간 72억원에 불과하고 감식비용이 절반을 차지한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6·25전사자 발굴유해 10구 합동안장식

    육군은 20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6·25전사자 발굴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10구에 대한 합동안장식을 가졌다. 김상기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린 안장식은 유가족과 재향군인회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공훈장 수여, 조사, 헌화 및 분향, 영현 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에서는 지난달 25일 북한 장진호 지역에서 발굴돼 미국을 거쳐 귀환한 고 이갑수·김용수 일병의 유해가 안장됐다. 류광연 일등상사, 빈흥식 이등상사, 손만조·박갑손 일등중사, 최정준·손현수 하사, 함철식·이광수 일병 등 8구가 포함됐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6·25 역사스페셜(KBS1 밤 10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개전 이틀 후인 6월 27일, 한 미국인 여성 종군기자가 전쟁의 심장부인 서울로 잠입한다. 그의 이름은 마거리트 히긴스이다. 미국 일간지인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지국장인 그는 6·25전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였는데…. ●맨발의 꿈(KBS2 밤 1시 25분) 원광(박희순)은 한때 촉망받는 축구선수였지만, 지금은 사기꾼 소리를 듣는 전직 스타다. 이제 원광이 인생역전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곳은 내전의 상처로 물든 동티모르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커피장사로 대박을 꿈꾸던 그는 다시 사기를 당하고, 대사관 직원 인기(고창석)는 전직 스타에게 귀국을 권한다. ●주얼리 하우스(MBC 밤 11시 15분) 야구선수 이종범이 금가루를 뒤집어쓰고 탈의한 채 사진을 찍었던 일명 ‘금종범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그리고 과거 가수 양수경, 선동열과 함께 앨범을 발매한 경험이 있는 그의 노래실력을 들어 본다. 또한 그의 극성 스타야구팬 김창렬과 야구사를 뒤흔들었던 김성한 감독이 깜짝 등장해 그동안 못다한 야구 이야기를 펼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SBS 밤 8시 50분) 채식주의 붐은 더 이상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채식주의 스타들마저 굴복시킨 별난 채식주의자가 살고 있다는 서울의 한 아파트. 입구부터 짖어대는 강아지들 때문에 좀처럼 들어설 수가 없다. 채소에 죽고 채소에 산다.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하는 채식주의 견(犬) 뽀송이와 보들이를 소개한다. ●달라졌어요(EBS 밤 7시 35분) 35년의 결혼생활, 황혼의 여유를 만끽하며 살아야 할 부부에게서 냉기가 흐른다. 두 딸을 출가시킨 뒤, 막내아들과 함께 지내는 부부. 15년 동안 백수였던 남편과 30대에 들어선 백수 아들. 바뀌지 않는 현실 때문에 이제껏 가족을 지탱해 오던 아내의 분노는 폭발하고 마는데…. 과연 이 가족에게 행복한 미래는 있는 것일까. ●건강버라이어티-올리브(OBS 밤 11시 5분) 주식으로 방송까지 꿰찬 개그맨 김수용. 과거 다시마에서 대체연료가 개발된다는 지석진과 김용만의 말에 넘어가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이어 한 번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란 허황된 꿈은 버리고, 1년에 20%의 수익만 나도 성공한 투자라며 10여년간 익힌 투자 노하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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