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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리인사 단죄 일부 성과/문민정부 5년­사정·사건사고

    ◎비자금·율곡 사건 등 단죄… 막판 빛바래/잇단 추락·붕괴·폭발사건 등 대처 미흡 문민정부 5년은 ‘사건으로 시작해 사건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바람잘 날이 없었다. 30여년의 군사정권에서 배태된 우리사회 각 분야의 부정·부패상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고,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대형 사건·사고도 해마다 ‘유행’처럼 꼬리를 물었다. 문민정부의 사정드라이브는 출범 직후인 93년 3월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필두로 슬롯머신,율곡 및 군인사비리,12·12 및 5·18사건,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거쳐 97년 한보사건으로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 2명과 현직 대통령 아들을 비롯해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청와대 수석,군 수뇌부,은행장 등 이른 바 ‘거물급’ 인사 50여명이 대형부정부패 사건 등에 연루돼 사정의 칼날을 맞고 차례로 구속됐다. 그러나 사정의 겉모습은 화려했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단죄의 성과를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대출비리 등으로 구속된 은행장 등 4명만이 현재 복역중이고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사면·복권이나 형집행정지 등의 형식으로 현 정부 아래서 풀려났다.출발은 좋았지만 사정작업이 끝에 가서 빛이 바랬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육·해·공 전분야에 걸쳐 터진 잇딴 대형사고는 문민정부에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안겨줬다. 93년 3월 구포역 열차탈선 사고로 78명이 숨진 것을 시작으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서해 페리호 침몰,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대구지하철 가스폭발,대한항공 괌상공 추락사건 등으로 무려 1천8백여명에 이르는 무고한 인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사고때마다 부실공사 등 인재에 대한 국민의 지탄여론이 높았지만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형사고는 한해가 멀다하고 이어졌다. 반인륜·패륜 범죄도 극에 달했다. 무고한 시민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존파,부녀자 강간 살해 사건의 온보현,돈에 눈이 멀어 부모를 살해한 김성복·박한상 사건 등은 우리 사회에 깊숙히 뿌리내린 인명경시 풍조와 황금 만능주의의 실상을 보여줬다.
  • 과거규명보다 경제회생에 무게/김 당선자 “의혹사건 추후처리”배경

    ◎집권초기부터 국정운영·화합 차질 우려/정국안정뒤 진상 규명·역사재평가 의지 정치권 일각에서 일고있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김대중 납치사건’ 등에 대한 ‘역사 재평가’ 논의가 일단 수그러질 전망이다.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20일 “국가경제를 살리고 정치를 안정시킨 뒤각종 의혹사건들을 추후 공정한 기관을 만들어 처리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김대통령당선자의 의중을 전했다.여기에는 당선자 자신의 ‘과거사’로 인해 향후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없다는 의지가 배여있는 듯하다. 김당선자의 이같은 ‘교통정리’는 현 시점에서의 최우선 현안이 ‘경제회생’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IMF 국난극복과 경제재건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미래를 향해 뛰어야 한다는 ‘국민정서’에 무게를 실은 셈이다. 물론 정치적 고려도 없지 않다.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이 표면화될 경우 ‘동서화합’과 계층화합에 심각한 타격을 우려하는 분위기다.집권 초기부터‘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될 경우 자칫 과거에 발목이 잡혀 국민 통합은 물론경제회생까지 차질을 빚을 지 모른다는 인식이다.5·18 내란음모사건의 경우 신군부,즉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재조사여부가 불거질 공산이 크고 이는 문민정부의 뼈아픈 전철을 밟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당선자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뜻을 거듭 전달했다.내란음모사건같은 경우는 김당선자 개인 문제 차원을 넘어 광주시민,나아가 후세를 위한 역사평가 작업이기 때문이다.다만 신정권은 규명 방법에 대해선 ‘공정한 기관을 통한 종결처리’로 가닥을 잡았다.조용한 가운데 갈등을 최소함으로써 진실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에서 얻은 신정부의 교훈으로 볼 수 있다.
  • 문민정부 5년­김 대통령 퇴임간담회 문답

    ◎“국민에 큰 고통 안기고 떠나 죄송”/DJ와 40년 민주화 동지… 적극 도울것/금융실명제 등 문민평가 역사에 맡겨 김영삼 대통령은 20일 청와대에서 재임 5년을 마무리하는 기자간담회를 가졌다.다음은 인사말과 일문일답 요지. ▷인사말◁ 저는 며칠 뒤면 제 일생에서 가장 영욕이 크게 점철된 청와대를 떠나 상도동으로 돌아갑니다.그 동안 저로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였습니다.특히 IMF 금융지원 체제로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드리게 되어 어떻게 죄송스런 말씀을 드려야 할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그러나 사태가 이렇게 된 책임은 오직 대통령인 저에게 있으므로 저는 어떠한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저는 김대중 차기대통령에게 너무나도 어렵고 큰 짐을 남기고 떠납니다.그러나 우리 국민은 온갖 시련을 이겨낸 용기와 경륜을 갖춘 김차기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를 향한 재도약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문일답◁ ­퇴임후 계획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갈 것입니다.정치활동을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대통령도 퇴임하면 모든 것을 끝내는게 우리나라를 위해 옳은 일이라고 봅니다.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와의 관계는 어떤지요. ▲이명예총재는 내가 감사원장,총리,당대표로 임명했고 당총재가 되도록 총재자리를 넘겨주었습니다.퇴임후 상도동으로 오겠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문민정부 5년을 스스로 평가해 주십시요. ▲평가는 먼훗날 역사에 맡기겠습니다.대통령으로 일하는 동안 개혁이 성공한 면도 있습니다.그러나 5년을 보내면서 영광의 시간은 짧고 고뇌의 시간은 아주 길었습니다. ­지난 대선때 검찰의 ‘DJ비자금’ 사건 수사유보는 김대통령이 지시한 것입니까.배재욱 사정비서관이 한나라당에 자료를 넘겨준 것을 몰랐습니까. ▲당시 검찰의 조사가 이뤄졌다면 이번 대선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불행한 일이 됐을 것입니다.검찰이 독자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런 생각을 가진 내 입장에서 무엇을 누구에게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나는 정정당당하게 사는 스타일입니다. ­‘DJ 도쿄 납치사건’ 관련 중앙정보부 극비문서가 발견됐습니다. ▲20년이 더 됐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옳은 일입니다.역사상 큰 사건은 묻힌 것이 많은데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그러나 현재 안기부는 서류를 안가지고 있다고 어제 안기부장에게 보고받았습니다. ­재임중 어려운 일,보람된 일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관련돼 비밀리에 착오없이 단행한다는 것이 어려웠고 매우 고뇌했습니다.30여년만에 지자제의 전면 실시를 단행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제일 큰 보람은 지난 12월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른 것입니다.모든 기관에 강력히 지시했고 한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지난 개혁의 결과를 되돌아보면서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절감합니다. ­나사본 오찬에서 ‘DJ 적극지원’을 당부했습니다.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재결합까지도 의미하는 것입니까. ▲나의 참뜻인데….김당선자와는 40년 넘게 고락을 같이 했습니다.캄캄하고 어두울 때,누구도 소리를 지를 수 없는 때에 함께 민주화를 위해 고락을 같이 했다고 생각합니다.어려운 때 김당선자가 책임있게 나라를 이끌어 나가도록 뒷받침하는게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외환위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이 있다고 봅니까. ▲당시 경제부총리,경제수석을 비롯해 누가 나라가 잘못되기를,국가가 부도나기를 생각한 사람이 있었겠습니까.외환위기와 관련해 대통령인 내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향후 조사를 받을 일이 있다면 응할 생각입니까. ▲내가 얘기한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퇴임후 상도동으로 간 뒤 추후 거제도로 옮길 생각이 있습니까. ▲상도동에서 30년이상 살았으니까 거기로 돌아갑니다.10년,20년후의 일을 얘기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퇴임후 일상생활은. ▲상도동에 가서 모든 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도 없습니다.운동을 한다,안한다를 결정하는 것부터 그때 그때 생각해 보지요. ◎문민정부 일지 ▷93년◁ ▲2월 25일=제14대 대통령 취임 ▲2월 27일=대통령 재산공개 ▲3월 4일=정치자금 안받겠다고 선언 ▲7월 1일=신경제 5개년계획 발표 ▲8월 12일=금융실명제 단행 ▲12월 9일=쌀개방 관련 담화 ▷94년◁ ▲7월 8일=김일성 사망,남북정상회담 무산 ▲10월 21일=성수대교 붕괴 ▲11월 17일=시드니에서 세계화구상 발표 ▲12월 3일=재경원 설치 등 정부조직개편 단행 ▲12월 16일=WTO 비준동의안 국회통과 ▷95년◁ ▲1월 9일=부동산실명제 실시결정 ▲6월 14일=고용보험제도 도입 ▲6월 21일=북한에 쌀 15만톤 지원 합의 ▲6월 29일=삼풍백화점 붕괴 ▲11월 16일=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11월 24일=5·18특별법 제정 지시 ▲12월 3일=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96년◁ ▲4월 16일=4자회담 제안 ▲4월 24일=신노사관계 구상 제시 ▲5월 31일=2002년 월드컵 유치 ▲10월 11일=OECD 회원국 가입 ▲12월 26일=노동법·안기부법 여당단독 국회통과 ▷97년◁ ▲1월 23일=한보철강 부도 ▲2월 25일=한보관련 대국민담화 ▲5월 30일=92년 대선자금관련 담화 ▲7월 15일=기아그룹 부도유예 ▲11월 21일=IMF구제금융 공식요청 ▲12월 3일=IMF 협상타결 ▲12월 20일=전·노 전 대통령 사면복권 ◎퇴임후 거취/상도동 자택으로… 사무실 내지 않기로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상도동 자택 수리를 끝마쳤다.대부분의 이삿짐도 이미 옮겨졌다.오는 24일 하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상도동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상도동 생활에 있어 김대통령의 마음은 편치않을 것 같다.연금(월 8백여만원)만으로 지내기에는 어려움이 크리라 예상된다. 퇴임후 김대통령을 공식적으로 보좌할 사람은 3명의 법정 비서관.김기수 수행실장(1급)과 표양호 정무비서관,김상봉 부속실비서관(2급)이 그들이다.그리고 김대통령 재임 시절 수석을 지낸 몇몇 인사들이 돕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이원종 전 정무·유도재 전 총무수석과 함께 문종수 민정·신우재 공보·유재호 총무수석 등도 당분간 김대통령을 보좌하겠다는 자세다.특히 경제청문회 등을 감안,법률보좌역이 주목되는데 김광일 정치특보가 그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상도동 측근들은 퇴임후 김대통령이 아주 신중하게처신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와 관련,김대통령은 퇴임후 비서진 사무실도 따로 내지않기로 했다.차량도 본인의 경비로 국산차(체어맨)를 구입했다.
  • 개혁호 힘찬 출발… 부정척결 온힘/문민정부 5년­국정 쇄신 공과

    ◎기득권·소외층 반발­외환위기로 한계/지자제 전면 실시·대선후보 경선 업적 국민회의 김상현 의원은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문민정부 결산 기사를 쓸때 김영삼 대통령을 나쁘게만 쓰지말라.간곡한 부탁이다.김대통령이 임기중 경제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외환관리에 실패해 나라를 큰 어려움에 빠트린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것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모두 묻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의원은 문민정부 내내 김대통령과 적대적 진영에 있던 사람이다.노련한 중진정치인인 김의원이 김대통령을 보호하려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본 탓이다.그는 김대통령의 긍정적 측면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오랫동안 쌓여온 사회적 적폐를 해소하려 애썼다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15대 대선때 엄정중립을 지켜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김대통령은 ‘화려하게’ 5년 임기를 시작했다.취임직후 “한푼의 정치자금도 받지않겠다”고 선언했고,공직자 재산공개에 이은 사정작업으로 국민 90%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안가 철폐,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숙청 등 그야말로 ‘질풍노도’식 몰아치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여론몰이식 사정작업에 문제점은 있었다.정상적 협의절차를 거치지않음으로써 인치라는 비난이 나왔다.김대통령 특유의 ‘깜짝쇼’,‘1인 독주’형식으로 개혁이 진행되면서 그를 소화못한 계층의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특히 기득권층은 ‘역습’의 기회를 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김대통령 정권은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3당합당으로 여야,보수와 개혁세력이 뒤섞인 채로 집권했다.그런 정치기반을 갖고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것 처럼’ 홀로 개혁을 추진하려니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의욕이 넘치는’ 김대통령은 아랫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참지않았다.임기중 24회의 크고 작은 개각이 있었다.6명의 총리와 7명의 경제부총리를 포함,연인원 114명의 각료를 만들어냈다.정책의 일관성은 표류하게 되었다. 부정부패 척결에 이은 세계화추진,통합선거법 제정,지방자치제 전면실시,여당 대통령후보의 자유경선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 조치들이 계속됐다.‘5·18 특별법’제정으로 시작된 역사바로세우기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구속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96년말 여당의 노동법 단독통과에서 시작해 97년 벽두부터 한보사태,차남 김현철씨 국정개입논란과 구속,IMF사태는 막바지 김대통령 정부를 커다란 곤경에 빠뜨렸다.
  • DJ납치사건 정국 새 화두로 부상

    ◎“처벌 안하되 진상 꼭 밝힌다” 분명한 의지/국회청문회 형태로 역사적 차원서 규명 ‘김대중과거사’의 진상규명이 정국의 화두로 떠올랐다.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19일 기자단 오찬에서 73년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에 대한 단호한 해부 의지를 밝혔다.이에 따라 새정부 출범후 어떤 형태로든 이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이 추진될 전망이어서 향배가 주목된다. 과거정권에 의해 김당선자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 사건은 ‘도쿄납치사건’과 80년 신군부의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들 사건에 대한 김당선자의 인식은 ‘처벌은 않되,진상은 밝힌다’는 것이다.이날 오찬에서도 김당선자는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그러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이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정치보복’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5·18민주화운동이나 최근 경제청문회에 대한 생각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 사건은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증언과 관련문헌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실체가 드러나 있다.그러나 일부 왜곡돼 있고 미흡하다는 것이 김당선자의생각이다.도쿄사건에 대해서도 김당선자는 납치사건이 아닌 살해미수사건으로 보고 있다.김당선자의 진상규명 의지는 이처럼 잘못 알려진 실상을 바로잡고,사건의 성격을 공식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진상규명작업이 어떤 형태가 될 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다만 도쿄사건은 국민회의 주도로 국회 차원의 청문회 형태가 될 공산이 크다.박지원 당선자대변인도 이날 “당 차원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80년 내란음모사건은 재심청구를 통한 사법적 차원에서 이뤄질 전망이다.이해찬 인수위정책분과간사는 “특별법 제정이나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대중과거사의 실체규명 작업은 국내외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당장 도쿄사건은 일본 정부와 직결돼 있다.당시 일본은 자국내에서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정부에 강한 유감의 뜻을 밝히고 진상규명에 적극 나섰으나 박전대통령측의 무마작업과 이듬해 터진 문세광사건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박대변인은 이와 관련,“필요하다면 양국 정부간 협력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내란음모사건은 일단 재판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법부의 법률검토가 중심이 될 전망이다.경우에 따라서는 현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로 단죄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세력이 다시 ‘역사’앞에 진술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 ‘김대중 납치’ 진상규명 착수/당선자측

    ◎내란음모 사건도 재심청구 방침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은 여야간 정권교체를 계기로 김당선자와 관련된 과거 정치사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73년 도쿄 납치 사건 ▲80년 5·18 내란음모 사건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등의 간첩사건 및‘북풍조작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19일 ‘김대중 납치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직적 범행이었다’는 모 언론 보도와 관련,“책임을 추궁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지금까지 납치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한 적은 없다”면서 “지금 그 때가 왔다”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 국내외적으로 이같은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정동영 대변인이 전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이해찬 정책분과간사는 “지난 연말 대선을 앞두고 한승헌 변호사와 고은 시인,이문영 경기대대학원장 등 관련자들이 5·18 내란음모 사건의 재심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해왔으나 현행 형사소송법의 절차가 까다로워 각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일단 유보했다”면서 “특별법 제정 또는 현행 형사소송법 개정 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아시아 인권선언문’ 광주서 발표

    세계인권선언 발표 50주년을 맞아 5월 광주에서‘아시아 인권선언문’이 발표된다. 광주시민연대모임(공동대표 정웅태)은 홍콩에 본부를 둔 아시아 인권위원회가 최근 ‘아시아 인권선언대회’ 개최 장소로 광주시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에따라 5월 5·18광주민중항쟁 18주기 행사기간중 광주에서 아시아 각국의 인권단체와 민주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 인권선언문을 채택,발표하는 ‘아시아 인권선언대회’가 열린다. 아시아 인권위원회는 광주가 5·18 민중항쟁의 발생지였고 최근 한국에서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등 민주발전에 가시적 성과를 거둔점을 높이 평가,이같은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대회에는 일본·미얀마·네팔·스리랑카 등 20여개국의 인권단체 관계자가 참석한다.
  • 복합터미널 민자유치 건설/건교부

    ◎중부 영·호남에 1조7,50억 규모 총 사업비 1조7천5백억원 규모(96년말 불변가격 기준)의 중부·영남·호남권 복합화물터미널 및 내륙컨테이너기지(ICD)가 민자(민자)로 건설된다. 건설교통부는 5일 이 사업과 관련한 민자유치시설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6일 고시한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사업신청자는 법인 또는 설립 예정인 법인이어야 하고 사업시행자는 총 투자비의 20%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투자해야 한다.최상위 출자자의 지분율은 25% 이상이어야 한다.건설기간은 1단계가 오는 2002년까지,2단계는 2006년까지이다.고속도로에서 터미널까지의 진입도로 확장·개설,가장 가까운 철도역까지 철도 및 상수도 설치는 정부예산으로 하고 총 민간투자비의 30%를 정부가 5년거치 15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건교부는 오는 5월18일에 사업신청서를 접수받아 9월에 사업시행자를 최종 확정하고 내년 11월에 착공할 계획이다.기본계획이 고시된 복합화물터미널 및 내륙컨테이너기지는 중부권의 경우 5천1백64억원을 들여 충남 연기와 충북 청원에,영남권은 6천49억원을 들여 경북 김천에,호남권은 6천3백44억원을 들여 전남 장성에 각각 건설된다.
  • 5·18 피해보상 824명 추가신청

    ◎한화갑 의원·조비오 신부 포함/광주시,4월부터 보상금 지급 1월 한달동안 실시된 5.18 민중항쟁관련 피해보상 추가신청자가 모두 824명으로 집계됐다. 31일 광주시에 따르면 이날 하오 5.18 민중항쟁관련 피해보상 추가신청을 마감한 결과 상이자 480명,연행구금자 274명,행방불명자 51명,사망자 19명 등 824명이 신청을 했다. 이번 신청기간중에는 지난 92년과 93년 피해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 가운데 새정치국민회의 한화갑 의원과 강신석 목사,조비오 신부 등 32명도 피해보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다음달부터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이들 신청인에 대한 현지확인과 심의절차를 거쳐 빠르면 4월부터 피해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 고리외채 조기상환땐 평균금리 7%선/뉴욕협상 타결 배경과 전망

    ◎개혁 신뢰 확보… 외국인 투자유입이 다음 과제 뉴욕 외채협상 결과는‘아쉽지만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정부가 금리 결정방식을 입찰방식이 아닌 협상방식으로 하고 원금을 조기에 갚을 수 있는 ‘콜 옵션’방식을 관철시킨 것은 큰 성과다.금리 조건도 ‘낮은 수준’은 아니지만 괜찮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런던은행간 금리(리보)에 2%선을 얹은 수준을 제시한 반면,외국의 채권은행단은 +4%를 주장해 협상에 진통을 겪었지만 기간에 따라 2.25∼2.75%의 가산금리를 얹은 수준으로 타협했다. 당초 미국의 JP모건은행 등이 주장한 금리 입찰방식으로 할 경우 금리 부담이 너무 컸다.자칫 외채 이자율이 10%를 넘게 될 경우 한국의 외채이자 부담이 매년 1백50억달러를 넘고,이는 한국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초과해 결국 외채 지불불능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채권은행단도 받아들여 ‘누이좋고 매부좋은’ 결과를 끌어낸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번 협상의 결과를 바탕으로 외채의 평균 금리가 연 7.9%선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이는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외채금리수준(리보+2.5%)인 8% 안팎이라고 풀이한다.게다가 우리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콜옵션에 따라 금리가 높은 외채를 먼저 상환할 경우 평균 금리가 7%선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조기 타결에는 국내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현정부나 새정부 모두IMF와 약속한 개혁 프로그램의 실천의지가 확고했고 동남아에서의 외환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면서 채권 은행단간에 한국의 외환문제를 빨리 타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외채총액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삼성경제연구소는 평균 금리가 7.9%인 경우에도 오는 2000년에는 우리의 외채총액이 1천7백61억달러,2009년에는 2천5백18억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외채평균 금리가 9.4%선으로 악화될 경우 2009년에는 외채총액이 2천8백4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있다. 가산금리 수준도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성이 감안되지 않았다.리보에 2.25∼2.75%의 가산금리 적용은 태국 인도네시아 등과 비슷한 수준.세계 11대 경제대국인한국을 동남아시아와 비슷하게 평가한 것은 S&P와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지나치게 낮춘 때문이다.지난해 초 만해도 외채의 평균금리는 리보에 0.2∼0.4%를 얹은 수준이었다.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올라갈 때마다 금리를 자동적으로 낮추는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아쉽다. 대우경제연구소 정유신 금융팀장은 “외채협상 타결로 전반적인 분위기는 안정쪽으로 흐르겠지만 부실종금사의 폐쇄에 따른 기업어음(CP)의 만기연장문제,금융권의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상향조정 움직임,대기업의 상호지급보증 해소,동남아 환위기 수습 등 우리의 환위기 수습 제약요인들이 아직잠복해 있어 낙관은 금물”이라고 분석했다.
  • 연극인 김시라(이세기의 인물탐구:158)

    ◎풍자극 ‘품바’ 탄생시킨 ‘각설이 마술사’/3,700회 최장기 공연… 한국기네스북에 등재/거리 시낭송­벽시운동도 펼치는 중견시인 생전의 함석헌 옹은 김시라의 ‘품바’를 보고‘이것이 바로 우리의 연극’이라고 했다. 그리고‘거지’를 극의 주인공으로 삼았을뿐 ‘품바가 무슨 연극이냐’고 했을때 ‘품바는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라고 두둔했다.‘아무 소리말고 몇년만 기다려보라’던 함옹의 예언대로 ‘품바’는 88년 뉴욕을 비롯한 전미순회에서 우리 연극의 해외공연사상 ‘전무후무’한 대성공을 거두었다. 동국대 황필호 교수는 ‘품바를 보지않고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고 94년 3천700회 최장기 공연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연극” ‘어얼씨구씨구 들어간다/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로 연극이 시작되면 누더기 차림에 찌그러진 깡통, 벙거지를 눌러쓴 걸인의 걸판진 놀이판에 객석은 온통 흥청거림으로 넘쳐난다. ‘일자나 한장 들고나 보니/일각이 여삼춘디 오십분단이 웬말이냐/두이 이자를 들고나 보니 이화도화는 만발한디 이산민족이 슬피운다’는 분단의 슬픔에 대한 울부짖음이며 ‘남인들은 북인치고 서인들은 동인치고 소론들은 노론치고’는 통렬한 정치풍자가 아닐수 없다. ‘품바’는 널리 알려진대로 ‘소외계층의 민주화운동’을 소재로한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매스컴들은 일찍이 ‘민족의 통곡’으로 특필한바 있다. 한때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일본초청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거지에게조차 저러한 여유와 풍자의 힘이 있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는 중론이 지금까지도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된다. 이 연극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김시라는 누구인가. 그는 실제로는 민족문학과 우리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중견시인이다. 그의 대표시인 ‘오­! 자네왔능가/이 무정한 사람아/청풍에 날려왔나/현학을 타고왔나/자넨 /묵이나 갈게/난 자우차 끓임세’는 그의 집안의 가훈이자 작가가 자라난 환경과 사람됨됨이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10남매중 6째로 태어났다. 현재 직계만도 42명, 한학자인 부친 김두성옹(84)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여 찾아오는 이웃을 마다하지 않았고 찢어지게 가난한 속에서도 어머니 채애임 여사(85)는 낯을 찡그리는법 없이 항상 손님접대하기를 즐겼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적이 없고 납부금을 내지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런중에도 집안에는 웃음과 노래가 그치지않아 부친은 논어와 한시를 가르치고 ‘재물과 명예’에 사로잡히지 말고 ‘청빈을 자랑하라’고 타일러왔다. 고교1학년때부터 목포로 통학을 하면서도 밤에는 동네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고 고교졸업후에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쌀가마를 등에 지거나 우마차에 실어 나르는 중노동으로 집안의 생계를 도왔다. 그런중에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떠나지 않았다. 고향을 학문과 예술의 고장으로 만든다는 의지로 ‘인의 예술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5·18의거가 일어나자 ‘사건이 사건인 만큼 그대로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 죄없이 죽어간원혼’을 달래기 위해‘품바’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사회적 물리적 폭력에 대한 각설이 패들의 응어리진 한과 비애가 어떻게 태동했는가를 비범하면서도 강건한 시선으로 조명해 나갔다. 겉으로는 흥겨운 각설이 타령이지만 섬뜩하게 다가오는 사설과 날카로운 비판은 한순간도 현실의 모순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지난 86년 ‘한민족 방언연극제’를 제안하고 사분오열된 지역갈등을 내용으로 한 ‘남바’를 발표하려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인의 예술회’ 등 조직 81년 고향의 마을공회당에서 ‘품바’ 초연후 목포 광주를 거쳐 83년 서울로 진출했고 한달만 머물려던 계획이 86년까지 장기공연되면서 ‘민초의 시대사’란 찬사와 함께 그는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연극의 무대공연실황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가 1백만장이상이나 팔리는가하면 전용소극장인 ‘왕과 시’ ‘강강술래’를 갖게 되었고 나이 사십이 넘어 결혼한 부인 박정재씨와의 사이엔 2남1녀. 그가 살고있는 대학로 동숭동에는 아들을 등에 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늦게둔 자식사랑’이 소문나 있다. 그는 여전히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지난해 미국 카네기홀공연 약속을 올해 중반에 실천해야하고 ‘품바’영화화를 위한 시나리오와 뮤지컬대본도 끝내야 한다. 연극을 하는 한편으로는 끈질기게 시운동을 펼친대로 한달에 한번씩 보리수 시낭송회, 거리 시낭송과 벽에다 시를 쓰는 ‘벽시’운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일에서 순풍에 돛단 듯한 유유자적은 없겠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남루에도 진솔한 심성을 변치않는 ‘순금같은 존재’다. 더구나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가 쓰고자 하는 시와 대사가 꿈속에서 물흐르듯이 계시되는 예감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시나리오 손질 시인 송수권이 ‘김시라의 삶은 신재효만큼 자리매김을 할수 있는 예술가’라는 말은 그의 예술정신과 끈질긴 탐구성을 두고 적절하다. 그리고 ‘나를 바르게 길러주신 부모님, 어려울때마다 돌파구를 열어주신 함석헌 스승님’과 친구를 좋아하며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하나같이 감싼다. 그래서 소설가 최일남은 ‘그러한 푸근한 인간성으로 인해 구수한 입담과 배꼽을 쥐는 관객의 모습은 삶의 역리가 맞닿아있고 웃음속의 눈물이 번뜩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품바’의 이론과 현장정립에 혼신의 힘을 쏟아왔다. 연극속에는 속되고 악한 세태, 인정에 따라 변하는 얄팍한 인심을 꾸짖는 꾸지람이 범람하지만 욕설을 듣고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것은 이 연극만의 ‘양심과 고뇌의 복음’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인류의 양심일 수도 있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그는 지금 세계무대로 나가려는 야심찬 계절에 감연히 서있다. □연보 ▲1945년 전남 무안출생 ▲1965년 목포고­한영신학대학­건국대 행정대학원­고려대 노동대학원수학 ▲1966년 시 ‘오 자네왔능가’발표 1976년 인의예술회 창립 회장 ▲1981년 연극 ‘품바’ 첫 공연 (전남 무안군 일로면 공회당) ▲1983년 ‘민족과 문학’지 시추천, ‘품바’ 서울 첫 공연 ▲1985년 극단 ‘가가’창단 ▲1986년 사회성극 ‘꽃관(막달라 마리아)’ 첫 공연 ▲1990년 MBC­TV ‘우리시대의 명인’및 ‘오! 자네왔능가’시낭송회 1988년 전용극장 품바예술극장개관 1988·91·92·96년 미국순회(30회공연) 및 일본 괌 호주공연 ▲1991년 ‘품바’공연 2천회 돌파 ▲1992년 전용극장 ‘왕과 시’·‘강강술래’ 개관 ▲1993년 ‘한민족방언시학회’창립 ▲1994년 국민시 생활운동 ‘벽시’동인회 및 상황문학회 창립회장 ▲1996년 ‘품바’ 한국연극사상최장기공연(3천700회) 한국기네스북수록, ‘한민족 방언연극제’ 조직위원회발족 ▲1997년 호주 시드니 일본 순회공연 ▲1998년 2월 ‘품바’ 4천회기념공연예정 소설 ‘품바시대’(상하권) 희곡집 ‘품바’ 방언시집 ‘오! 자네왔능가’ 상황시집 ‘어머니 대통령’ 시민시집 ‘형이중학’ ‘한민족 방언시학회’ ‘품바타령집’ 등 한국백상예술대상(88년) 한국기독교문화대상(97년)
  • 외국인 주가총액의 15% 보유/증감원 집계

    ◎전체주식수의 9%… 시가 10조원 넘어 작년말 현재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우리나라 상장기업 주식은 전체의 9%를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시가로 환산하면 외국인의 주식보유 금액은 시가총액의 15%에 육박한다. 15일 증권감독원이 분석한 외국인투자동향에 따르면 작년 12월말 현재 외국인들의 상장기업주식 보유규모는 8억1천9백79만주로 전체의 9.08%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직접투자에 의한 보유주식수는 1억4천9백45만주로 18.2%,주식투자에 의한 보유규모는 81.8%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로는 총 10조3천5백80억원으로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14.59%를 차지했다. 외국인들은 주식시장에서 작년 12월에만 5천2백4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하는 등 지난 한해동안 5천6백9억원어치를 순매수했으며 지난 92년 외국인투자 개방 이후 작년말까지의 순매수규모는 11조8천5백18억원에 달했다. 지난 12월중 국가별 장내 주식매매현황을 보면 미국투자자들이 3천3백18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해 가장 많았고 말레이시아(3백31억원),뉴질랜드(2백22억원),영국(1백14억원)등도 순매수세에 가담했다. 종목별로는 포철(1천8백56억원)삼성전자(9백79억원),현대전자(2백89억원),LG전자(1백31억원),쌍용증권(1백31억원)등이 순매수 종목이었으며 제일은행과 한일은행,상업은행,대우중공업,금호석유등은 순매도 대상이었다.
  • 군인 명예·사기 손상 우려/‘모래시계’ 재방 취소 촉구

    ◎자유민주민족회의 자유민주민족회의(총재 이철승)는 12일 서울방송의 ‘모래시계’ 재방영 계획과 관련한 공개서한을 발표,“모래시계는 일부 역사의식이 미숙한 청년학생의 좌편향 사상을 선동하고 80년대초 삼청교육대와 5·18광주사건 당시 출동군인들의 일부 잔학행위 중 역사적 사실에도 없는 부분을 지나치게 확대 날조하여 결과적으로 국군장병의 명예와 사기를 손상할 우려가 있다”며 재방영을 하지 말것을 촉구했다.
  • 전씨,미 변호사비 16만불 송금/미 교민 5·18 위자료 청구소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국 법원에서 민사 소송의 피고로 재판을 받으면서 미국 변호사에게 수임료로 16만여달러를 지불한 사실이 밝혀졌다. 전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7일 “80년 5·18 사건 당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전 전남 도경국장 안병화씨(85년 사망) 유족들이 96년 5월 전전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인사 11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97년 말까지 3∼5개월마다 2만∼5만달러씩 16만달러를 수임료로 송금했다”고 밝혔다. 안씨가 사망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유족들은 “안씨가 시위 진압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고문을 당해 후유증으로 숨졌다”며 워싱턴주 현지 법원에 “위자료 등 6억달러를 지급하라”는 민사소송을 냈었다.그러나 미국 법원은 1심에서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국내/서울신문 선정 1997년 10대 뉴스

    ◎김대중 15대 대통령 당선 12월 18일 치러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김당선자는 총 유효투표의 40.3%인 1천32만여표를 획득,2위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39만여 표차로 누르고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김당선자는 71년,87년,92년 대선출마에 이어 네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김당선자는 정부수립후 50년 만에 야당후보로서 승리,최초의 정권교체 기록을 세워 정치권은 물론 경제 사회 등 각 부문의 폭넓은 변화가 예고된다.올해 대선은 대규모 옥외유세 대신 TV토론회와 여론조사가 선거전의 판세를 좌우해 ‘미디어 선거’ 양상을 이뤘다. ◎IMF 관리체제 돌입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수치스러운 사태를 맞게 됐다.‘12·3 국치’로 표현되는 IMF사태는 분수없는 해외 여행 등 과소비와 기업의 차입경영,방만한 외환관리가 빚어 낸 비극이다.IMF와 선진국으로부터 외환을 지원받는 대신,자본시장 전면개방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실업대란의 혹독한 계절이 찾아왔다. ◎기아 등대기업 연쇄 도산 대기업들에겐 기억하기 싶지 않은 한해다.연초부터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줄줄이 도산했다.한보그룹으로부터 시작된 ‘부도행렬’에 기아 한라 삼미진로 해태 뉴코아 등이 속속 참여했다.은행 빚으로 지탱하던 선단식 경영이 빚은 참담한 결과였다.재계가 인원축소 임금삭감 등 가혹할 정도의 리스트럭처링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지만 부도 도미노는 계속되고 있다. ◎황장엽·장승길씨 망명 북한의 권력서열 26위였던 황장엽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2월 한국으로 망명했다.황비서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체계화한 장본인이며 분단후 망명인사로서는 최고위직이다.황비서는 여광무역사장 김덕홍씨와 함께 북경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필리핀을 거쳐 4월에 한국에 도착했다.이어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가 8월에 미국으로 망명,서방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현철씨 구속 5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한보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검찰은 앞서 홍인길 권노갑 의원 등 정치인 5명과 은행장 3명을 구속했으나,‘깃털’이 아닌 ‘몸통’을 밝히라는 여론에 밀려 재수사에 착수,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도 구속됐다.12월26일 사건에 연루된 현역의원 4명은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KAL기 괌 추락사고 8월6일 새벽 2시30분 승객 254명을 태운 대한항공 801편이 괌 아가냐공항근처 니미츠힐에 추락했다.사고로 국민회의 신기하의원 등 228명이 숨지고 26명만이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사고 원인으로는 조종사의 실수 가능성 외에 부실한 공항시설,악천후 등이 꼽히고 있다.이 사고를 계기로 국내 전 공항에 대한 안전점검이 실시됐다. ◎전·노 전직대통령 사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12월22일 구속된 지 각각 750일과 767일 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협의를 거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복권을 결정했다.두 전직대통령과 함께 12·12 및 5·18사건,전직대통령 비자금 사건 관련자 15명도 사면됐다.5·18사건 관련단체 등도 두 전직대통령의 석방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영복 교수 간첩사건 안기부는 11월20일 36년동안 고정간첩으로 암약해 온 고영복(69) 서울대사회학과 명예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씨는 부부간첩 최정남(35) 강연정(28)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간첩으로 확인됐다.고씨는 남북적십자회담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하는 등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학자로 알려져왔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월드컵 본선 4연속 진출 차범근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98프랑스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으로 86멕시코대회 이후 4회 연속 본선진출의 위업을 달성했다.특히 9월28일도쿄에서 벌어진 1차 한·일전 역전승은 본선 직행의 결정적 계기이자 경제추락과 정치 혼란에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청량제 구실을 톡톡히 했다.앞으로 남은 과제는 아직껏 이루지 못한 본선 첫승과 더 나아가 16강 진출. ◎김정일 당총비서 취임 북한은 10월 8일 김정일이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군사위원회에 의해 당총비서로 추대됐다고 공식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김정일시대 개막을 알렸다.이는 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이후 3년3개월만이다.김정일은 최고권력인 총비서직에 취임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당·정·군을 장악했으나 극심한 경제난과,잇딴 고위층의 망명 등 여전히 체제의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 전·현 대통령 한자리에 설까

    ◎김 당선자측,전·노씨 취임식 초청 방침/얽히고 설킨 은원관계 해소 상징 의미 내년 2월 김대중 당선자의 새대통령 취임식에 생존 전현직 국가수반 모두가 자리를 함께 할지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23일 “정권인수위가 뜨면 공식 결론이 나겠지만 취임식에는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모두를 초청할 방침이다”고 귀띔했다.국민대화합을 위해서라는 취지였다. 따라서 취임식장에 전현직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일 가능성이 일단 높아졌다.당사자들은 80년 ‘서울의 봄’ 당시 기묘한 3각구도하에 있었다. 즉 현 김영삼 대통령과 김당선자가 야권에서,최규하 전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으로 신군부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 간접으로 밀리는 상황이었다.특히 김당선자는 5·18주도 혐의자로 내몰려 전정권에 의해 사형언도까지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문민정부 들어 전·노 두 전 대통령은 새옹지마라는 옛말을 곱씹는 처지로 몰렸다.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로 옥살이를 겪은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동석이 이뤄진다면 그 상징적 의미도 각별한 것이 사실이다.은원과 인과관계가 얽히고 설킨 관계라는 점에서다. 어차피 소수여당으로서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국민회의측으로선 그 자체가 국민통합을 위한 이벤트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한 관계자는 “전·노 두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박탈당한 신분이지만 과거와의 화해,국민화합을 위해서 초청을 긍정 검토중“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김당선자도 최근 연일 국민대단합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이를테면 “이번 선거에서 나에게 표를 찍지 않은 사람이나 지역도 모두 안고 서로 이해하며 마음을 열고 화합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 전·노씨 석방/12·12 관련 17명도

    ◎“경제난·지역감정 극복 기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22일 특별사면·복권조치로 2년여동안 복역해 온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정호용 전 국방장관과 황영시 전 감사원장 등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와 안현태·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비자금 사건 관련자,이양호 전 국방장관와 박은태 전 국회의원 등 15명도 이날 전국 6개 교도소에서 일제히 풀려났다.형집행정지 조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원조 전 국회의원도 함께 석방됐다. 전·노 전 대통령은 95년 11월16일과 12월3일 구속된 지 2년여만에,지난 4월17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지 8개월여만에 풀려나 공무담임권 등 각종 공민권을 회복하게 됐다. 전 전 대통령은 상오 10시50분쯤 안양교도소에서 석방된 직후 교도소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최근 경제대란으로 국민 여러분의 불안과 걱정이 클 것으로 생각되지만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노 전 대통령도 10시52분쯤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며 깊고 따뜻한 사랑에 감사드린다.김대중 당선자에게는 파탄지경에 이른 나라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전력 투구해 줄 것을 기대하고 지역감정 등을 극복해 명실공히 화합을 이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 대화합 새시대 여는 계기로/전·노씨 사면 시민 반응

    ◎‘보복없는 정치’ 가시화/재도약의 미래 준비하는 새정부에 큰 힘/경제위기 극복·지역감정 해소의 출발점/다시는 전직대통력 처벌받는 일 없어야 20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사면·복권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대체로 ‘죄는 밉지만 화합 차원에서 용서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민들은 “최악의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힘을 한군데로 모아야 한다”면서 새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민통합을 위해 바람직스러운 조치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5·18 광주항쟁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미흡하고 국민적 총의를 수렴하는 과정이 생략됐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피력했다. 한양대 김선웅 교수(사회학과)는 “정치보복을 없애고 화합의 정치를 편다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방침이 전폭 수용된 조치”라고 평가하고 “새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광호씨(28·서울 광진구 모진동)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전격적인 사면은 화합의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정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서윤옥씨(43·경기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는 “5·18의 가장 큰 피해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대중 당선자만이 취할 수 있는 조치”라면서 “다시는 전직 대통령이 처벌받고 사면되는 일이 없기를 빈다”고 덧붙혔다. 한국유권자운동연합(상임 공동대표 김민하·민병천)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민심을 하나로 모으려는 정치적인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주상공회의소 김광호 회장(54)은 “사면 조치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타개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출발점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해석하고 “모든 정치인과 경제인,근로자가 한마음이 되는 계기로 삼자”고 주문했다. 정문영씨(59·상업·광주시 서구 쌍촌동)은 “일부 5·18 피해자 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토록 열망했던 새 정부의 결단인 만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한남제 교수(사회학과)도 “이번 조치를 계기로 고질적인 지역감정을 없애고 경제난을 극복하는데 전력을 쏟자”고 호소했다. 반면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김형완 사무국장은 “과거에 대한 분명한 매듭과 진솔한 사과가 먼저 이루어진 뒤 국민적 합의에 따라 단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북연합 김영기 사무처장(35)은 “김대중 당선자는 이를 계기로 5·18 광주항쟁의 진실규명과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약속을 충실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씨 ‘반색’­노씨는 ‘담담’/전·노씨­연희동­법조계 표정

    ◎연희동­2년여만의 재회에 들뜬 분위기/법조계­검찰 “할말없다”… 법원 “이른듯” 20일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서 사면 소식을 통보받은 전두환 전대통령은 상당히 기뻐한 반면 노태우 전대통령은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 전대통령에게 소식을 전한 안양 교도소 관계자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얼굴에 기쁜 표정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 전대통령은 석방일인 22일 교도소 정문 앞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밝히길 희망했다”면서 “전 전대통령 말을 그대로 전하면 ‘국민 앞에 한 말씀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전 전대통령의 의견을 수용,교도소 앞에 포토라인을 설치하는 등 기자회견을 허용할 뜻임을 밝혔다.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노 전대통령은 전 전대통령처럼 별도의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겠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하면 차 안에서 몇마디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즉답은 회피하면서도 허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12·12 및 5·18사건 수사를 사실상 지휘한 김상희 동부지청 차장검사는 “달리 할말은 없다”면서도 “일선에서 밤낮으로 뛰면서 사명감을 갖고 일한 검사들의 기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심정의 일단을 내보였다. 2심 재판부의 한 배석판사는 “현 대통령이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시작한 사건인 만큼 새로운 대통령 취임후 사면하는 것이 적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차기 대통령과 협의한 결과라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노 전대통령 자택에서는 사면소식이 알려지자 들뜬 심정으로 2년여만에 집에 돌아오는 가장을 맞을 채비를 서둘렀다. 가족들은 이날 하오 공식발표가 있기 전 여러 통로를 통해 언제 사면을 결정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희2동 전 전대통령 자택의 한 비서관은 “이순자 여사와 차남 재용씨와 삼남 재만씨 내외가 함께 소식을 들었다”면서 “특히 일본에 유학 중인 재용씨 내외가 방학을 맞아 어제 일시 귀국했는데 아버지를 집에서 뵐 수있게돼 무척 기뻐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연희1동 노 전대통령 자택에서는 부인 김옥숙씨와 딸 소영씨,한영석 변호사 등이 소식을 전해들었다. 한 비서관은 “김여사가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하셨다”면서 “미국 유학중인 아들 재헌씨는 22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전·노씨 사면복권­배경과 전망

    ◎‘동서 갈등’ 해소 국민대통합 출발/피해당사자 김 당선자 요구 수용/김 대통령,취임초 부담덜기 배려 김영삼 대통령의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사면·복권 단행은 ‘동서화합’을 염두에 둔 것이다.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대선승리 이후 첫조치로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택한 것은 ‘국민 대통합’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가시적 방안이라는 판단때문이다. 김당선자는 12·12,5·18의 직접 피해당사자다.그러한 피해당사자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또 가해자에 대한 사면을 요구하고 있다.김대통령으로서는 김당선자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김당선자는 대선후보시절부터 전·노 사면을 주장했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김당선자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보다는 미리 사면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20일 청와대 오찬회동에 앞서 사면·복권준비를 끝내고 김당선자에게 동의를 구했다.물론 김당선자는 흔쾌히 사면에 동의했다. 김대통령은 김당선자가 취임초부터 전·노 대통령을 사면하는 문제로 부담을 갖는 것은 덜어주려했다고볼 수 있다.전·노 두 전직대통령은 영남권에 기반을 둔 인사다.특히 대구·경북에서는 그동안 두 전직대통령을 사면하라는 여론이 높았다.호남에 기반을 둔 김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두 전직대통령을 사면한다는 것은 동서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정치권은 물론 5·18관련 단체들도 사면에 환영의 뜻을 표한 것은 사면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반증이다.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은 경제난국과도 관련이 있다.또 이번 대통령선거가 비교적 깨끗하게 치러짐으로써 과거의 정경유착은 용서되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김당선자의 20억 플러스 알파설 논쟁도 이제는 잊혀지게 됐다. 두 전직대통령은 복권까지 됨으로써 공민권에 제한을 받지않게 되었다.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대선패배로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 전직대통령의 정치적 움직임은 주목의 대상이다.한나라당이 재편되면서 간접적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는 있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두 전직대통령이 단순한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전선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전·노 전대통령의 측근들도 정치재개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당분간 칩거하며 은인자중하리라 예상된다. ◎절차와 효력/내일 국무회의 의결 거쳐 단행… 대통령이 재가/전대통령 예우 못받아… 노씨는 ‘청와대 경호’ 대통령이 단행하는 사면은 특별사면과 일반사면으로 나뉜다.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자에 대한 형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특별사면은 다시 ‘잔형 집행 면제’와 ‘형 선고 실효 사면’으로 구분된다. ‘잔형 집행 면제’는 남은 형기를 면제해주는 것 외에 다른 효과는 없다. ‘형 선고 실효 사면’은 형의 선고를 실효시키는 조치다.당연히 공민권도 회복된다.특별사면은 법무부 장관의 상신에 따라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 재가로 이뤄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법무부가 사면 대상 등을 확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통령이 재가하면 법무부 장관은 사면장을 검찰총장에게 보내고 검찰은 담당검사와 교도소장을 거쳐 본인에게 전달한다. 일반사면은 특정 범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대상자가 엄청나게 많을 수 밖에 없다.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복권은 말 그대로 형의 선고로 상실 또는 정지됐던 권리를 회복시켜주는 조치다.해당자는 피선거권이 회복돼 공직선거 출마나 정당 가입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경호와 경비를 제외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하지 않는다’는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금 지급,비서관 지원,국립의료기관 무료진료,새마을호 열차 무료탑승 등의 예우를 받지 못한다.국립 묘지 안장 여부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국방부 장관의 상신과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유동적이다. 다만 노전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7년동안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를 받도록 규정한 경호법에 따라 앞으로 2년동안 청와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다. 퇴임 7년이 지난 전 전대통령은 경찰의 ‘치안상 필요’에 따라 자택에 대한 경비만을 받는다. ◎전·노 전 대통령 사면일지 ▲95·10·19=박계동 전 의원,노태우씨 비자금 폭로 ▲11·16=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수감 ▲11·24=김영삼 대통령,5·18특별법 제정 지시 ▲11·30=특별수사본부 발족,재수사 착수 ▲12·3=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 수감 ▲12·21=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공포 ▲96·2·16=헌재,특별법 합헌결정 ▲2·28=12·12 및 5·18사건 수사종결,전·노씨 등 16명 기소 ▲3·11∼8·5=27차례 1심 공판 ▲8·26=1심 선고,전씨 사형,노씨 징역 22년6월 ▲10·7∼11·14=11차례 항소심 공판 ▲12·16=항소심 선고,전씨 무기징역,노씨 징역 17년 ▲12·26=대법원,전·노사건 형사1부 배당 ▲97·2·13=대법원 형사1부,전·노사건 전원합의체 회부 ▲2·13∼4·14=전원합의체 1∼7차합의 ▲4·17=상고심 선고,항소심 형량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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