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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우리 곁의 독재시절 망령/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열린세상]우리 곁의 독재시절 망령/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세상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를 전격적으로 뜯어고쳐도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심지어 체제를 전복시키는 혁명 앞에서도 사회는 종래의 관성을 좀처럼 버리지 않는다. 일상에 뿌리내린 문화적 습성과 오랜 세월 내면화된 의식이 끈질기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민주화 운동은 세상을 꽤나 변모시켰다. 4·19와 5·18 그리고 6·10 항쟁으로 이어진 절규와 몸부림은 독재정권을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냈고 나아가 우리의 정치와 법과 사회를 현격히 개선시켰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세상이 완연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우리사회에는 암울한 군사독재시절에 득세했던 억압과 저항의 문화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디어법을 둘러싸고 여의도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는 이를 여실히 예증한다. 방송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 현장의 분위기와 의원들의 몸짓을 보자. 흩어진 머리와 구겨진 와이셔츠 차림으로 본회의장에 들어서는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모습에는 특명을 받고 험난한 사선을 넘어온 지휘관의 비장함이 감돈다. 의장석을 에워싸고 진을 친 여당의원들은 선점한 고지를 사수하기 위해 다가올 일전을 기다리는 병사들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결국 ‘전투’를 강행했다. 금번 사태에 있어 여당이 보여준 정치문화와 정치의식 속에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옛 군사정권의 망령이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 민주당의 반응과 대처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엄연히 국민이 선택한 정부다. 한나라당 역시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다수당이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마치 정통성을 결여한 과거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득실과 명암이 공존하는 한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주저없이 단상으로 몸을 날리는 행위는 아무리 보아도 시대적 코드가 맞지 않는다. 인권이 무참히 유린되고 노동이 처절하게 착취되는, 그야말로 모질고 척박한 세상에 살았던 전태일의 비상(飛上)과는 번지수가 전혀 다르다. ‘무도한 이명박 정권과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지가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의 길이 될 것’이라는 정세균 대표의 발언 속에는 70~80년대의 전사적 저항문화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대학은 어떤가.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의 대학생들은 현저히 탈 정치화되었다. 총학생회의 주된 관심사는 더 이상 ‘촛불’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다. 그들은 대학 정문에 서 있던 공수부대 장갑차와 남영동 공안분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타는 목마름’을 경험하지 못했다. ‘서울의 봄’은 그들에게 그저 낯선 이야기다. 오늘의 대학생들이 박종철이나 이한열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에는 세월의 간극과 사회의 변화가 너무나 크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군사독재시절의 문화는 대학 캠퍼스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쾌하고 흥겨운 한마당이 되어야 할 축제에 철 지난 운동권 노래가 여지없이 울려퍼진다. 등록금 동결을 촉구하는 대자보에마저 ‘사수’와 ‘타도’ 같은 용어들이 난무한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물리적 행사도 서슴지 않는다. 정의와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그릇된 권력과 맞서 싸우던 극단의 시절에 불가피하게 선택된 저항과 관철의 방식이 여건이 확연히 달라진 지금도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뒤처진 기성세대의 정치문화가 청년문화에 전이된 형국이다. 내면화된 문화는 변화에 인색하다. 그래서 우리는 문민정부가 안착된 세상에 살면서도 억압적 군사문화의 희생자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삭발과 단식을 결행하고 몸마저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우리는 음습한 지난 시절을 지배했던 극단의 문화를 조장하는 공범자이기도 하다. 문화가 달라져야 진정한 변화가 도래한다. 박준철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 유인촌 문화 ‘전남도청 완전철거’ 철회 시사

    유인촌 문화 ‘전남도청 완전철거’ 철회 시사

    박광태 광주시장과 조영택(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한 ‘옛 전남도청 별관문제 해결을 위한 10인 대책위’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면담으로 1년 넘게 끌어온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부지 내 도청 별관 문제 해법이 나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광주시에 따르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28일 10인 대책위 대표와 가진 면담에서 ‘오월의 문’과 ‘3분의1 존치안’, 당초 설계안, 원형보존안에 대해 설계자의 기술적 자문과 조성위원회의 의견을 들은 뒤 조만간 최종 입장을 결정키로 했다. 문화부가 견지해온 ‘별관 완전 철거’ 입장에서 여러 대안을 고려하겠다는 쪽으로 한발짝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정부와 5·18단체 사이 1년2개월여 동안 팽팽한 대립을 보여온 ‘전남도청 별관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박광태 시장은 “정부가 그동안 ‘별관 완전 철거’ 방침에서 ‘5월의 문’ 또는 ‘완전한 원형보존’ 쪽으로까지 태도 변화를 보였다.”며 “이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화부는 당초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인 내년 5월 문화전당 개관을 목표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5월 단체의 ‘별관 보존 요구’와 ‘랜드마크 논란’에 막혀 2012년으로 연기했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부고]명예회복 못하고… ‘근로정신대’ 김혜옥 할머니 별세

    어릴 때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 채 끝내 노환으로 별세했다. 26일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근로정신대 출신 김혜옥(78) 할머니가 25일 낮 12시30분쯤 광주시 전남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지난 1944년 전남 나주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 할머니는 중학교에 진학시켜 주겠다는 일본인 교사의 말에 속아 친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의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기 제작회사에 배치돼 하루 10시간이 넘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그는 지난 1999년 3월 다른 근로정신대 출신 할머니, 유족 등 7명과 함께 일본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미쓰비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도쿄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1월 이를 기각했다. 김 할머니는 그러나 노구를 이끌고 명예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최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연금 반환신청을 하던 중 지난해 11월 병세가 악화돼 투병생활을 해왔다. 빈소는 화순 현대병원, 발인은 27일 오전 9시, 장지는 5·18묘지. 광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존엄사할머니 생존 한달] 의료계 통일된 가이드라인 마련 고심

    [존엄사할머니 생존 한달] 의료계 통일된 가이드라인 마련 고심

    의료계는 김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연명치료 중단) 시행을 계기로 연명치료 중단이 고려되는 환자에 대한 통일된 기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일부 대형병원은 존엄사 적용기준을 마련하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전의료지시서를 받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주축으로 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등 의료계는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지난달 23일 ‘연명치료 중지 관련지침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켜 통일된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이윤성(대한의사협회 부회장) 특위 위원장은 “고등법원과 대법원의 판결, 의사윤리지침, 서울대·연세대의 존엄사 기준, 신상진·김세연 의원의 존엄사법 발의안 등을 비교 검토한 뒤 초안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큰 틀의 합의는 문제가 없지만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한 치료중단 범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5월18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진료권고안’을 발표한 뒤 7월 현재 15건의 사전의료지시서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도 5월21일 존엄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 인공호흡이 필요한 식물인간 상태, 회생불가능한 사망임박단계 등 3단계로 구분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고은 ‘만인보’ 23년만에 탈고

    한국 시단의 거목 고은(76) 시인이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시집 ‘만인보’를 최근 탈고했다. 2007년 26권까지 출간된 ‘만인보’에는 총 3285편이 실렸고, 27∼30권에 실릴 500여편의 마지막 원고를 지난 2일 탈고했다. 23년 만에 전체 3800편 30권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각권 120여편씩 구성될 27∼30권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살아간 인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30권의 마지막 부분에는 조선시대 비운의 왕 연산군을 통해 권력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있다. 만인보는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 생각해 냈으며 우리 민족의 여러 인간상을 시를 통해 형상화하려고 했다. 그러던 1986년 봄, 모두 3500편으로 완결하겠다는 공언과 함께 1∼3권을 펴냈다. 이후 ‘만인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민족의 다양한 얼굴을 그려 ‘한국문학사 최대의 연작시’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등 7개 언어로도 번역되기도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지은희 18번홀 6m버디… 11억원 잭팟

    지은희 18번홀 6m버디… 11억원 잭팟

    지은희(23·휠라코리아)의 별명은 ‘미키마우스’다. 그러나 이전에 그가 얻은 별명은 따로 있었다. ‘지쎄리’다. 6년 전인 2003년 5월18일 경기 용인의 88골프장. 박세리를 따라다니던 구름 관중들의 눈길은 함께 샷대결을 펼친 조그만 골퍼에게 쏠렸다. 여드름 가득하지만 눈매만큼은 야무졌던 이 여고생 골퍼는 ‘골프여왕’ 앞에서도 주눅든 기색 없이 이글까지 터뜨리며 당당히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체 타수에선 2등에 그쳤지만 3언더파나 쳤잖아요. 세리 언니는 겨우 1언더파였던 걸요.”라며 당돌한 소감을 밝힌 이후 그는 ‘지쎄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박세리의 뒤를 밟고 있다. 13일 마침내 올라선 미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퀸’의 자리가 그 증거다. 지은희가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베슬레헴의 사우컨CC 올드코스(파71·6740야드)에서 벌어진 US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 4라운드 18번홀에서 극적인 버디로 생애 첫 메이저 정상에 올랐다. 최종합계 이븐파 284타. 자신보다 2타 앞선 채 같은 챔피언조에서 샷대결을 벌인 크리스티 커(2오버파 286타)를 공동 3위로 밀어내고 역전우승을 일궈냈다. 지난해 웨그먼스LPGA에 이은 LPGA 투어 통산 2승째. ●사상 4번째 한국인 챔피언 캔디 쿵(타이완)마저 1타차로 제친 지은희는 박세리(1998년)와 김주연(2005년), 박인비(2008년)에 이어 한국선수로는 네 번째로 세계 최고 권위의 US여자오픈을 제패한 선수가 됐다. 한국자매들은 지은희의 우승으로 웨그먼스LPGA(신지애)와 제이미파 오언스 코닝클래식(이은정)에 이어 3주 연속 우승에 성공한 건 물론, 올 시즌 벌써 6승을 합작해 2002년 거둔 한 해 최다승(9승) 기록도 넘볼 수 있게 됐다. 또 지난해 박인비에 이어 US여자오픈을 2연패하는 쾌거를 이루며 ‘톱10’에 무려 5명의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파4홀인 10번홀에서 드라이버로 날린 티샷을 그린 앞 벙커에 빠뜨린 지은희는 두 번째 샷마저 다시 바로 앞 벙커에 빠뜨리며 4온2퍼트로 더블보기를 범해 우승경쟁에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나 13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핀 50㎝ 옆에 붙여 버디를 잡아낸 뒤 이어진 14번홀에서 20m나 되는 장거리 버디 퍼트를 집어넣어 공동선두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18번홀. 6m짜리 긴 버디를 성공시킨 지은희는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지은희는 그 순간 “손이 덜덜 떨렸다.”고 전했다. 연습그린에서 연장전을 준비하던 쿵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18번홀 버디로 10년간 출전권 확보 수천명의 갤러리가 숨을 죽인 가운데 라인을 타고 흐르던 공은 오른쪽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튼 뒤 홀 속으로 사라졌다. 이 18번홀 마지막 버디 한 방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지은희는 이 버디로 우승상금 58만 5000달러(약 7억 2000만원)를 챙겼다. 또 후원사인 휠라코리아로부터 상금의 50%인 29만 2500달러를 인센티브로 받아 합계 87만 7500달러(약 11억 5000만원)의 돈벼락을 맞게 됐다. LPGA 투어 향후 5년 동안의 풀시드는 물론, 10년간 US여자오픈 출전권도 확보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건립 무산 위기

    정부가 추진 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사업이 ‘옛 전남 도청 별관 보존 문제’에 부딪쳐 장기 표류 또는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13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광주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이 참여한 ‘10인 대책위’는 최근 회의를 열고 시민·사회 단체의 별관문제 절충안인 ‘오월의 문’ 안과 ‘3분의 1’ 존치안에 대한 정부 수용을 건의하기로 했다. ‘오월의 문’안은 옛 도청 별관 1, 2층을 뚫어 터널식 입구를 만드는 방안으로, 지역 12개 시민사회 단체 대표로 구성된 ‘시민사회원탁회의’가 제시했었다. 3분의1 존치안은 기존 별관 중 5·18 당시 시민군이 머물렀던 공간은 그대로 두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두 방안 모두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혀 이 문제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병훈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은 13일 “10인 대책위가 제시한 두 개 방안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추진단은 그동안 5월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마련한 국책사업인 만큼 계획을 수정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따라 1년 넘게 현장 농성 사태가 이어진 사업이 장기 표류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밀도있는 스토리 아쉬워

    18일 ‘여고괴담5:동반자살’(이종용 감독)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여고괴담’이 처음 등장한 때가 지난 1998년이니 꼭 11년 만이다. 영화는 피로 우정을 맹세하는 여고생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곧 그 중 한명인 언주(장경아)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학교는 충격에 빠진다. 마지막 순간 소이(손은서), 유진(오연서), 은영(송민정)이 함께 있었다는 소문에 언주의 동생 정언(유신애)은 이들을 찾아 나선다. 제작진은 “5편은 여고생들 특유의 ‘동반’ 문화가 공포의 대상”이라며 “화장실에 갈 때도 함께 하는 사춘기 여고생이 죽는 순간도 함께 하자는 위험한 약속을 하면서 거대한 공포가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영화는 언주의 자살이 품은 진실을 향해 긴장감있게 나아간다. 그 와중에서 발생하는 또다른 죽음, 핏빛 가득한 영상과 귀를 때리는 효과음은 강도 높은 공포를 안겨준다. 힘있는 현실 풍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와 제도의 어두운 이면, 사춘기 특유의 불안한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점도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영화는 전편에서 다룬 성적, 우정, 이성, 왕따, 가정에 대한 고민이라는 소재들을 다시 갖다놓으면서도 긴밀감있게 엮지는 못했다. 또 인물들이 자살 결심에 이르는 과정을 충분히 묘사하지 못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는 ‘여고생의 동반문화’라는 기표를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피상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 죽음을 다짐하는 첫 장면에서 배우가 3명인데, 다음 장면인 옥상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갑자기 배우가 4명으로 늘어나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비약을 보이거나 개연성을 놓칠 때가 많다. 보다 신선한 소재와 심층적인 주제, 기본에 충실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다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15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동호독서당 다시 글소리 난다”

    “동호독서당 다시 글소리 난다”

    성동구가 우리 선조들의 향학열을 느낄 수 있는 ‘동호독서당 터’를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지난 12일 20년째 방치됐던 동호독서당 터의 표지석을 깨끗하게 정비한 것은 물론 내·외국인을 위한 안내판, 꽃과 나무, 잔디 등을 심는 ‘동호독서당 터 살리기 사업’을 마무리했다. 이번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옛 독서당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이뤄졌다. 이호조 구청장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사가독서제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호독서당은 성동의 역사를 알려주는 자랑”이라면서 “앞으로 ‘독서당계회도’처럼 다시 독서당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문학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1515년에 독서공간으로 건립 17일 성동구에 따르면 동호독서당은 사가독서(賜暇讀書)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조선 세종 8년인 1426년 총명한 젊은 인재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인재양성책의 하나가 사가독서제이다. 지금의 안식년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집과 산사를 오가며 자유롭게 학문을 연구하는 인재들이 점차 산사에서 독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중종10년인 1515년 동호 월송암 서쪽 기슭에 독서당을 지어 완공했고 이를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이라 했다. 따라서 성동구의 독서당 살리기 사업은 그동안 잊혀지고 묻혀졌던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되살린 것이다. 구는 지난 5월18일부터 6월12일까지 옥수동 428 옥수극동아파트 내에 가로 27.3m 세로 32.7m 공간을 마련했다. 그곳에 동호독서당의 기념표지석을 설치했다. 주변에 잔디와 소나무 등을 심어 옛 정취가 느껴지도록 꾸몄다. 또 울타리를 회향목과 사철나무 맥문동 등으로 대신했다. 주민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자연석 계단도 새로 만들었다. 안내 표지판은 외국인들을 위해 한글과 영어로 만들었다. 구는 독서당 터가 옛 선조들의 정신을 알리는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학습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디자인 거리와 연계, 새 지역 명소로 성동구는 ‘독서당 길, 디자인 서울거리 조성’ 사업과 동호독서당 터를 연계, ‘독서당 벨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 벨트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이야기 정거장’이 들어선다. 응봉동에서 금호동4가에 이르는 650m의 독서당길 디자인 거리, 독서를 주제로 한 가칭 독서당공원(응봉동·오는 8월 개장 예정), 무쇠 대장간이 있었던 무쇠막터(금호동4거리), 독서당터(옥수동) 등을 만들어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특히 독서당길은 동호독서당 터와 함께 응봉산과 8150㎡ 크기의 독서당공원을 연결할 뿐 아니라 금호지구 재개발 공사가 마무리되면 전통과 현대,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 대표 거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중립지와 권위지/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옴부즈맨 칼럼] 중립지와 권위지/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다른 신문과 비교해 볼 때 서울신문의 기사는 자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서울신문은 사건 및 사고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보도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파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고, 각 사안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서울신문은 중립지이다. 서울신문의 지난 6주 동안의 사설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신문의 사설에서는 다양한 주제를 균형감각을 갖고 다루었다. 경제 분야에는 ‘경제낙관론에 구조조정 늦춰선 안 돼’(5월8일자), ‘다시 늘어난 실업자 수 심상치 않다’(6월11일자) 등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北, 긴장 고조 말고 6자회담 나오라’(5월9일자), ‘美 여기자를 보며 유씨를 생각한다’(6월6일자)와 같이 시의적절한 주장을 담았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사교육 경감 종합대책에 대해 ‘이 정도 대책으론 사교육 못 잡는다’(6월4일자)를 통해 공교육 활성화와 교육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보완대책의 마련을 제안하기도 했다. ‘광장의 열기 의회가 수렴하라’(6월1일자)는 개헌논의로 이어진다. ‘대통령 수난사 끊을 국가적 지혜 모으자’(6월3일자)에서 내각제, 이원집정제, 정·부통령제에 기반한 대통령 4년 중임제 등 개헌 검토를 주장했다. 이제는 외국의 제도를 무조건 이식하기보다 우리에게 적합한 제도를 마련할 때가 되었다. 그 외에도 ‘헛발질 대책으론 출산율 꼴찌 못 벗는다’(5월23일자), 삼성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요구하는 ‘삼성 편법 승계에 무죄 판결은 받았지만’(5월30일자), ‘외국인이 지켜낸 동소문동 한옥’(6월6일자), ‘4대강 살리기 눈덩이 재정 경계해야’(6월9일자), ‘우주 대장정 첫발 뗀 나로센터 준공’(6월12일자) 등이 주목할 만했다. 하지만 국제 문제와 지역 사안에 대한 사설은 중요성에 비해 부족했으며 관심이 요구된다. 국제 문제에 대해서는 ‘번영의 新아시아시대 다짐한 한·아세안’(6월2일자)밖에 없었다. 지역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혁신도시 등 현 정부에서 추진이 미흡한 사안에 대해 논의되지 않았다. 국민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이 대통령, 공명(共鳴)의 국정 펼쳐라’(6월2일자)뿐이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93년 만에 한센인 손잡은 총리’(5월18일자)에서 한승수 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사과한 점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러한 역할을 주문했으면 어땠을까? 현 정부는 좋든 싫든 지난 정부의 공과(功過), 명예와 불명예를 함께 상속하고 있다. 정치적 세력을 이루고 있는 이상득의원과 박근혜 의원에 대해서도 핵심적인 조언을 했는데, ‘이상득 2선 후퇴 진정성 지켜보겠다’(6월4일자), ‘박 전 대표 국정안정에 힘 보태야’(5월8일자)가 있었다. 박근혜 의원이 공직을 맡아 차기 대권주자로서 훈련과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으면 했다. ‘한예종 총장 후임 인선 공정하게 해야’(5월21일자)는 황지우 총장의 사퇴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의 중도퇴진과 대비하면서 논의하였다. 기관장의 사퇴문제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교육내용에 대한 것이다. 예술교육에서 이론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핵심인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 상호 비판하는 신문들을 비판한 ‘보수 진보매체 이전투구 볼썽사납다’(6월9일자)는 서울신문의 중립지로서의 입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서울신문은 중립지의 위치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서울신문이 중립지를 넘어 좀 더 깊이 있게 시시비비를 가려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는 권위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남인용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권력에 약한 檢 이제는 고쳐야

    지난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은 12·12사건 관련 피의자들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은 또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피의자 35명에 대해 공소권없음의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도 검찰의 판단에 손을 들어 줬다. 그 유명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연인원 1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진상규명, 학살자 처벌”을 외치는 사이에 내란죄의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됐다. 그러나 김영삼 당시 대통령 주도로 그해 12월 국회에서 5·18 및 헌정파괴범공소시효 특별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 또한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헌재로 갔고, 헌재는 한정위헌 5와 한정합헌 4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지만 “특단의 사정이 있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논리였다. 진정소급효를 부정하는 우리 헌법질서에 무리를 가하고서야 쿠데타 주범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특검 피하려 수사본부 급조 헌재 결정과 특별법 제정을 지켜본 뒤 수사를 시작하겠다던 검찰은 1995년 11월 갑자기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하고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급히 소환했다. 국회의 특별법 논의과정에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던 때였다. 검찰의 수사 배경에는 검찰수사를 기정사실함으로써 특검제 도입을 막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는 지난 2007년 겨울 삼성특검을 앞둔 검찰의 특본 구성으로 반복된다. 다짜고짜 전 전 대통령을 소환한 검찰은 이른바 ‘골목성명’이라는 반발을 불러온다. 성명발표 후 고향으로 내려간 전 전 대통령에 대해 검찰은 반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12월3일 새벽 전격적으로 영장을 집행했다. 법원과 검찰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전 전 대통령이 도주했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었고, ‘3당 합당으로 내란세력과 야합한 김영삼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한 데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었다. 검찰이 처음부터 엄정한 수사의지를 가졌다면 이런 복잡한 과정과 헌법질서에 흠집을 내지 않아도 될 수사였다. 특별법 제정 이후에도 검찰은 “주동자만 처벌하라.”는 김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부분의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삼성 SDS 사건 유죄 판단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시민단체 및 교수들의 항고·재항고를 포함, 모두 6번의 고소·고발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올해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과 달리 SDS BW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하지만 BW 저가발행에 따른 배임액이 50억원에 이르지 않을 경우 공소시효는 7년에 그친다. 즉 50억원이 넘어야만 공소시효 10년의 적용을 받아 처벌이 가능하다. 대법원이 유죄라고 판단할 사건을 검찰이 6번이나 무시함으로써 면죄부를 줬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檢 출신 인사 정치권 진출 제한해야 검찰의 수사는 선택적이다. 기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 들어오는 모든 고소·고발 사건을 동일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처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검찰은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조·중·동 광고반대, PD수첩, 미네르바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건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반면 경찰의 시위대 폭행사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고, 법원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용산참사 주요 수사기록 2500쪽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검찰이 그토록 싫어하는 ‘정치검찰’의 오명을 자주 덮어쓰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정권은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힘들 때 전가의 보도처럼 ‘검찰카드’를 빼들었다. 검찰 또한 자기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권을 바라본다. 뿐만 아니라 현직에서 물러난 검찰 선배들은 속속 정치권으로 진출한다. 검찰 출신 인사들의 정치권 진출을 제한하고, 검찰총장 및 각 지검장을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盧 전대통령 노제에 울릴 ‘이유있는 추모곡’

    盧 전대통령 노제에 울릴 ‘이유있는 추모곡’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 울려 퍼질 추모곡은 어떻게 선정됐을까. 오늘(29일) 오후 1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노제(路祭)에서는 국민장 장의위원회가 유족의 뜻에 따라 선정한 양희은의 ‘상록수’, 안치환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윤도현 밴드(YB)의 ‘후회 없어’가 무대에 올려진다. 제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파라만장했던 삶과 그를 보내는 국민들의 애통한 마음을 대변해줄 3곡의 노래들은 고인과 어떤 연을 맺고 있을까. ◇ [盧 애창곡] 양희은 ‘상록수’ 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선이 치뤄지던 지난 2002년, 편안한 차림으로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가사 또한 상록수의 강직함을 노래하고 있어 굴곡진 삶을 살았던 노 전 대통령의 생애를 그려낸 듯 하다.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리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상록수 가사 中) 양희은은 생전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2002년 취임식 당시 연합 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올라 ‘상록수’를 불렀던 바 있다. ◇ [盧 민중의식 담은 곡] 안치환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안치환은 민중가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과 ‘마른 잎 다시 살아와’를 부르며 ‘서민 대통령’으로 불렸던 노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자리를 만든다. 당초 안치환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를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동영상의 UCC에 삽입돼 화제를 불러 모으며 곡목을 수정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은 양성우 시인의 시를 가사로 붙여 만든 곡으로 5.18 민주화 운동의 탄압과 희생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 곡은 민중의 곁에서 아픔을 함께 나누려던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쳐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中) ◇ [盧 정치적 소신 담은 곡] YB ‘후회 없어’ 윤도현이 이끄는 밴드인 YB는 이 날 노제의 마지막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자신들의 8집 수록곡인 ‘후회 없어’로 마지막 이승길을 떠나는 고인을 위로한다. 이 곡은 마지막까지 정치적 소신을 지키려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는 곡이라는 점에서 피날레를 장식할 추모곡으로 선정됐다. ”비겁한 세상 비내린다면 그 비를 맞겠어. 날 가로막고 내 눈 가리고 내숨을 조여와도. 후회없어 걸어왔던 날들 이젠 다시 시작이야. 끝이 없는 험한 길이라도 이대로 난 걸어가 그것뿐야.” (’후회 없어’ 가사 中) 한편 지난 23일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오늘(29일) 오전 5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발인을 시작으로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영결식, 오후 1시 서울광장 노제로 이어진다. 오후 3시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된 유해는 오후 9시에 봉하 마을 사저 뒷산의 정토원에 안치되며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게 된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도시와 산] (8) 광주 무등산

    [도시와 산] (8) 광주 무등산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김준태 시인이 5·18민주화운동 직후 지방 일간지에 발표한 시의 한 대목이다. 이 때문에 해당 신문은 폐간되고, 그는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이후 무등산은 고은·김남주·황지우·문병란·양성우 등에 의해 저항문학의 단골 소재가 됐다. 5월의 무등산은 신록이 눈부시다. 장불재 부근엔 철쭉이 산허리를 불태우고 있다. 도심에서 ‘광풍’이 몰아치던 1980년 5월에도 그랬다. 그 이후 매년 정월 초하루 수만명의 인파가 중머리재에 몰려 새해를 맞았다. 하고 싶은 말과 가슴 속에 숨겨둔 무언가를 외쳐댔던 곳이다. 원효·나옹 등 고승들의 발자취가 서린 사찰과 암자도 즐비하다. 무등산은 숱한 국난과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수천년간 지켜본 산증인이다.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 능선은 인구 150만 도시를 품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로 자주 비유된다. 시민들에겐 ‘산’이란 장소성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 이유이다. ●불교와 민속의 중심 무등산(1187m)은 광주광역시의 동쪽 가장자리와 전남 담양·화순에 걸쳐 우뚝 솟아 있다. 무진악, 서석산, 무당산 등으로 불리다가 ‘고려사’에 처음 무등산이란 기록이 나온다. 노산 이은상은 무등산이 불교적 용어인 무유등등(無有等等·부처님은 중생과 같지 않다)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걸맞게 곳곳에 사찰과 고승들의 전설이 서려 있다. 증심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규봉암·석불암·문빈정사 등 현존 사찰 이외에 서봉사지·개선사지·백천사지 등 문헌상으로 전해지는 절터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증심사~중머리재 구간에 있는 천제단과 송풍정 등은 나라가 어렵거나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 때 하늘에 제를 올린 곳이다. 이나라(32·여) 광주 동구문화원 사무국장은 “무등산은 예부터 기우제, 당산제, 철쭉제, 억새제 등 각종 산제사를 모시는 신령한 곳으로 여겨졌다.”며 “산제사는 시민들의 화합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무등산은 남북 주능에서 뻗어난 몇개의 가지 능선으로 이뤄졌다. 북서릉은 정상~중봉~바람재~향로봉~장원봉~잣고개를 넘어 국립5·18민주묘지가 위치한 망월동쪽으로 이어진다. 남서릉은 정상~장불재~백마 능선까지는 남북 주릉과 함께 달리다가 화순과 광주의 경계를 이루는 너릿재로 가지를 낸다. 그러나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한 덩어리처럼 육중하게 보인다. ●빼어난 풍광 예부터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무등산의 ‘경승’을 노래했듯이 각 지점마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꼭대기는 천왕·지왕·인왕봉 등 ‘정상 3봉’으로 이뤄졌다. 이 중 천왕봉(1186.7m)이 가장 높다. 현재 정상 3봉 일대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현장 접근은 불가능하다. 이 부근에 오르면 남서쪽은 나주평야와 월출산이 지척이다. 청명한 날이면 다도해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이보다 조금 낮은 서석대(1100m)와 입석대(1017m)는 가히 절경이다. 이들 봉우리는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주상절리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석대는 저녁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빛을 발해 ‘수정병풍(水晶屛風)’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천만년 비바람에 깎이고 떨어지고/ 늙도록 젊은 모양이 죽은 듯 살아 있는 모양이/ 찌르면 끓는 피 한줄 솟아날 듯하여라.’ 시인 이은상이 입석대를 노래한 시구이다. 억겁의 풍상을 겪는 동안 쪼개지고, 깎이면서 고통을 견뎌냈다. 이들 두 봉우리는 2005년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645호로 지정됐다. 10년 넘게 산을 오르내린 이길용(47)씨는 “철 따라 주변 환경이 환상적으로 변하는 입석·서석대는 신령스런 분위기를 풍긴다.”고 말했다. ●도시의 허파이자 쉼터 무등산은 도시의 허파이자 생태계의 보고이다. 진달래, 철쭉, 산나리 등 1000여종의 온대성 식물들이 철따라 변신하며 장관을 연출한다. 천연기념물인 붉은배 새매·황조롱이를 비롯해 삵·멧돼지·고라니 등 100여종의 조류와 포유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 시민들은 무등산을 동네 공원쯤으로 여긴다. 도심과 맞닿아 있어 맘만 먹으면 언제나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 코스 역시 산책로 수준인 1시간 대에서부터 6~7시간 정도의 코스까지 선택할 수 있다. 문현석(48·북구 용봉동)씨는 “산행을 할 때마다 친구나 직장 동료 등 한두 명의 지인을 꼭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서남쪽인 증심사를 출발, 약사사~새인봉 삼거리~중머리재~장불재~정상 구간이지만 ‘증심사지구 자연환경 복원 사업’으로 최근 잠정 폐쇄됐다. 대신 북쪽인 원효사 지구에서 출발, 꼬막재~규봉암~장불재~정상 코스 등으로 등산객이 많이 몰린다. 요즘은 철쭉철이라서 관광버스를 동원한 외지 등산객의 발길도 줄을 잇는다. 5월 초부터 해발 400~500m 능선인 토끼등·바람재 일대에서 철쭉이 피기 시작, 20일 이후이면 장불재 등 정상 구간까지 만발한다. 주말과 휴일엔 2만~3만명이 산을 찾는다. 공원관리사무소측은 최근 동구 산수동~충장사~원효사~서석대에 이르는 11.87㎞의 옛길을 복원하고 일부를 개방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실개천옆 정자엔 임을 향한 행진곡~~ 무등산의 북동쪽 줄기는 원효계곡을 따라 지실마을을 거쳐 전남 담양군 봉산면으로 이어지면서 평야지대를 이룬다. 지금은 지실마을 부근에 광주호가 생겼지만 예전엔 무등산 계곡으로부터 발원한 물길이 남면·봉산면 일대 들녘을 관통했다. 계곡 양 안은 무등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야트막한 산과 그런 야산에서 갈라져 나온 실개천이 여럿 있다. 이 일대에 조선 초·중기부터 유학자·유배자·풍류 가객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레 정자들이 들어섰다. 이를 중심으로 지체 높은 양반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나름대로 ‘누정 문화’가 탄생했다. 개인적 수양이나 후학의 교육, 현실도피적 은둔 등 정자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무등산권 정자들이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조선조 ‘가사문학’이 꽃피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광주호 상류 소나무 숲에 있는 식영정이다.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이자 스승인 임억령을 위해 1560년(명종 15년)에 세웠다. 송강 정철이 25살 때 이곳에 머물면서 무등의 4계절과 강호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성산별곡을 지었다. 이곳으로부터 1㎞쯤 상류에는 양산보(1503~1557)가 건축해 은둔생활을 했던 소쇄원이 자리한다. 소쇄원은 한국 정원의 전형으로도 꼽힌다. 이곳을 찾아 시를 남긴 인물로는 김인후·김성원·기대승·고경명·정철 등이 있다. 식영정과 불과 250여m 건너편에는 김윤제(1501~1572)가 지은 환벽당이 있다. 정철이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학문을 닦기도 했다. 광주호 아래쪽인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엔 송순(1493~1583)이 지은 면앙정이 있다. 국문학사에 주옥 같은 ‘면앙정가’가 탄생한 곳이다. 무등산 원효계곡과 맞닿은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는 송강정이 자리한다. 송강이 1585년 대사헌으로 지내다가 당쟁에 휘말려 3년간 머물던 장소이다. 연군지정(戀君之情)을 읊은 ‘사미인곡’이 탄생했다. 광주 북구 충효동과 원효계곡 하류엔 취가정과 풍암정이 있는 등 조선조 때 이 일대가 풍류를 아는 시인과 묵객들의 쉼터였다. ‘무등산’의 저자 박선홍씨는 “무등산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 권력에서 소외되거나 당쟁에 휘말린 선비들을 자연스레 모이게 했을 것”이라며 “이들 정자를 잘 보존해 후세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전직 대통령 수난사

    역대 대통령의 비극적인 운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끊이지 않았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9명의 전직 대통령 대부분은 하야, 시해, 가족 구속, 검찰 수사 등 수난과 비운에 시달렸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는 이승만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 체제의 싹을 틔운 이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이어가다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하와이로 망명, 결국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4·19혁명 후 대통령직을 수행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군사쿠데타로 도중 하차했다. 윤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반유신 운동 등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사법처리돼 최초로 법정에 선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나 18년 장기집권 끝에 1979년 10월26일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절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근대화의 틀을 마련하고 경제발전을 견인했지만 그의 권력욕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현직 대통령 시해’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집권한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의 권력 탈취로 8개월 만에 하야했다. 그는 1989년 신군부의 쿠데타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다 국회 광주특위에서 국회모독죄로 기소됐고, 1996년 12·12쿠데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항소심 공판에 강제구인됐다. 군부를 업고 대통령직에 오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반란 및 내란 수괴죄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전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이자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노 전 대통령에 의해 백담사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민주화 시대를 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재임 중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고 2004년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2004년 안기부 예산의 선거전용 의혹 사건인 ‘안풍(安風) 사건’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아픔을 겪었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갑작스럽게 서거해 비운의 역사를 이어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80년 아람회 사건 5명 재심서 무죄·면소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이성호)는 21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신군부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나누다 ‘아람회’라는 가상의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박해전(52)씨 등 재심 청구인 5명에게 모두 무죄 또는 면소 판결했다. 이들은 1980년 6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진압실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국가보안법 및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개월∼10년형이 확정됐다.재판부는 “이들이 친목 모임을 하다 전두환 정권을 비난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영장없이 이들을 대공분실로 끌고 가 한 달 정도 불법구금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고문 등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생존을 위해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고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사건은 처음에는 정부를 비방한 단순 반공법 위반 사건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공무원·교사·군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청와대 등에서 관심을 갖고 경찰에 격려전화를 하게 되면서 확대·조작됐다.”고 설명했다.재판부는 아울러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지 못함으로써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선배 법관들을 대신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피고인과 가족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10대그룹 투자 외면… 돈 쌓아만 둔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각종 규제 완화조치를 취하고 있는데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10대 그룹 상장계열사들의 유보율은 올 3월 현재 945.54%이다. 지난해 3월보다 60.80%포인트나 올랐다. 유보율은 자본금에 대한 잉여금의 비율을 나타낸 것으로 영업 활동 등으로 벌어들인 자금 가운데 얼마 정도를 회사에 쌓아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비율이 높으면 즉시 동원가능한 현금이 많다는 것이어서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의미지만 지나치게 높을 경우 투자를 게을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이들 대기업의 자본금 총액은 24조 6494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0.27% 늘었지만 잉여금 총액은 233조 698억원으로 6.59% 늘었다. 그룹별로 보면 포스코가 5782.94%로 유보율이 가장 높았고 현대중공업(1906.88%), 삼성(1659.57%), SK(1548.89%), 롯데(1316.70%) 등이 1000%를 넘었다. 현대차(665.57%), GS(592.54%), 한진(506.60%), LG(425.18%), 금호아시아나(214.32%)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유보율이 1000%를 넘나들자 기업들의 몸사리기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등 재계의 규제완화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기업들이 받아먹을 것만 냉큼 챙기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되는 투자는 게을리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회피하면서 지난해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2.0%로 2003년(-1.2%) 이후 5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1·4분기 설비투자액도 17조 704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 줄었다.투자 부진은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지나치게 재무구조 안정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투자 부진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면서 “앞으로의 경기회복기 때 글로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면 미리 투자 대상과 집행시기 등을 면밀히 조율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돈맥경화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800조원대 시중 부동자금을 기업쪽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으니 자금 수요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예비 현금을 상당 부분 확보해둔 상태라 대출수요가 많지 않다.”면서 “시장의 넘치는 자금을 중개해줘야 하는데 돈을 줄 곳이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차라리 주주에게 배당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를 안 한다면 그 돈을 주주들에게 나눠줘 주주들이라도 그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외국에서는 투자없이 현금만 가지고 있으면 주주들이 가만있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오너(총수)의 경영권이 너무 강력해 현금을 잔뜩 쌓아두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반론도 있다. 경제상황이 아직 불안한데 섣불리 투자에 나섰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논리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설비가동률도 떨어지고 있어 기업들이 (때를)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면서 “지금 당장 투자하라고 채근하기보다는 미래의 투자방향을 잘 잡도록 준비를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조태성 최재헌기자 cho1904@seoul.co.kr
  • ‘광주의 정신’ 마지막까지 실천한 일꾼 이야기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를 쓴 ‘광주의 시인’ 김준태가 모처럼 책을 펴냈다. 시집일 줄 알았더니 인물 평전이다. 바로 2000년 숨진, 교육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 민주화운동가이며 목회자, 그리고 오월 광주의 아들이었던, 명노근을 다뤘다. ‘명노근 평전-하느님의 작은 아들, 광주의 작은 다윗’(심미안 펴냄)은 심장마비로 숨지던 마지막 순간까지 광주의 정신을 담고 살았던 ‘명노근’이라는 인물의 평전이면서, 치열했던 1980년 5월 광주의 열흘을 포함한 광주의 오월 정신에 대한 엄정한 보고 문학이기도 하다. 김준태는 “명노근 선생은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참으로 아름답게 자신과 이웃을 지킨 사람이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지워준 무게를 흔쾌히 짊어지고 뚜벅뚜벅 걸어간 사람이다.”라고 술회했다. 명노근은 1965년부터 98년까지 전남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국국립대교수협의회회장단 의장을 지냈다. 또한 YMCA전국연맹 이사장을 역임했다. 덕분에 78년, 79년 잇따라 투옥됐고 80년 5·18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장로로서 광주기독계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이렇듯 그에 대한 추억은 모두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평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통되는 평가는 ‘명노근은 행동하는 실천가’라는 사실이다. 김준태는 정부 문서보관소를 뒤져 확보한 민주화운동 시절 명노근의 자필 진술서와 국회 5공 청문회 속기록 등을 바탕으로 200자 원고지 1800장 분량을 집필했다. 평전은 철저하게 사료 취재에 근거해 ▲교육자로서의 삶 ▲YMCA 활동가로서의 삶 ▲민주화운동가로서의 삶 등 3부로 나눠 명노근의 치열한 삶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DJ 목숨 구한 ‘교황 편지’ 첫 공개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 주동자로 몰려 사형이 확정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건지는 데 당시 교황이 크게 기여했음을 짐작케 하는 문서가 처음 공개됐다. 19일 광주일보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자료에 따르면 고(故)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12월11일 서울 주재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감형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제5공화국 정부에 보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1월5일자 ‘회답서신’을 통해 “(김대중은) 어떠한 정치적 이유가 아닌, 오직 불법적인 방법과 폭력에 의한 합법 정부의 전복 기도를 포함한 반국가적 범죄로 인하여 재판을 받고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교황) 성하의 호소가 순전히 인도적 고려와 자비심에 의거한 것임을 유념하겠다.”고 답했다. 이 후 김 전 대통령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낮춰진 것은 교황이 첫 편지를 보낸지 43일 만인 1981년 1월23일 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2월14일자 친서를 통해 “최근 사형이 감형된 김대중에 대해 순수하게 인도적 이유로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요청했습다.”며 “(전두환) 각하께서 신속히 배려(감형)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대법원에서도 사형이 확정됐지만 교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구명 운동을 벌이고 미국 등이 ‘김대중 사형은 지나치다.’며 군사정권을 압박한 결과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되고 나서 1982년 형 집행정지를 받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으며, 1987년 사면·복권되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3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당시 국제 사회의 구명운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김 전 대통령이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며 “구명운동에 교황청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1980년 신군부가 정권 탈취과정에서 발생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5·18 민주화운동이 ‘김대중 일당’의 내란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조작한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 문익환 목사와 이해찬 전 총리 등 당시 민주화 인사 24명이 연루돼 고초를 겪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미얀마 인권운동가 민꼬나잉 10회 광주인권상 수상

    미얀마 인권운동가 민꼬나잉 10회 광주인권상 수상

    “(이 상은) 5·18민중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낸 광주 시민이 미얀마 국민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5·18민주화운동 29돌인 18일 ‘제10회 광주인권상’ 수상자를 대신해 상을 받은 아웅 묘 민트(34)는 “2000여명의 양심수 석방과 민주화운동을 벌이는 모든 미얀마 국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 수상자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가 ‘민꼬나잉(47·본명 파우유툰)’. 그는 군부 정권에 맞서다 투옥돼 광주를 찾지 못했다. 민꼬나잉’은 ‘왕들의 정복자’라는 뜻의 미얀마어 필명이다. 민꼬나잉은 1988년 양곤대 총학생회 회장으로 ‘전국미얀마연맹학생연합’을 조직해 이른바 ‘8888 항쟁’을 주도한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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